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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男권총 트로이카 시대… 50m ‘마의 581점’ 정조준

    한국 男권총 트로이카 시대… 50m ‘마의 581점’ 정조준

    한국 남자 사격에 트로이카 시대가 열렸다. 진종오(33·KT)가 원톱이라면 최영래(30)와 이대명(24·이상 경기도청)은 그 뒤를 바짝 쫓는 도전자들이다. 변경수 사격대표팀 총감독은 5일 “우리는 50m 권총에서 세계신기록도 새로 쓸 수 있다. 진종오와 최영래, 이대명이라는 에이스들로 한국 사격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남자 사격 50m 권총은 세계기록과 올림픽기록이 가장 오랫동안 바뀌지 않은 종목이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서 알렉산드르 멜레니티예프(옛 소련)가 본선 581점을 쏜 이래 32년째 기록을 경신한 선수가 없다. 올림픽마다 ‘최초’ 기록을 갈아치워 온 진종오는 런던올림픽에서 2관왕과 2연패를 동시에 해내며 ‘살아 있는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여기에 무명에 가까웠던 최영래가 첫 출전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며 가세했다. 최영래는 2010년 국가대표에 선발된 늦깎이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종합대회나 세계선수권대회 경험도 없다. 사격 입문도 단양고 1학년 때로 남들보다 늦은 편이고 국내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2010년 한화회장배 전국대회 공기권총 우승으로 진종오의 대회 3연패를 저지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이대명과 한솥밥을 먹게 된 지난해부터. 최영래는 지난달 초 진천선수촌 미디어데이에서 “대명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사격선수로는 나보다 위인 만큼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돌아본 바 있다. 이대명과 경쟁하며 최영래의 기량은 급성장했다. 상승세를 몰아 최영래는 올해 초 여섯 차례 치러진 선발전에서 이대명을 제치고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까지 거머쥐었다. 변 감독은 “최영래는 차분하게 끝까지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라며 “대기만성형이라 아직 앞날이 기대된다.”고 최영래를 평가했다. 대표선발전 탈락의 아픔을 맛본 이대명 역시 발전 가능성이 충분하다. 2006년 10월 남자 공기권총 사상 최연소로 국가대표를 단 이대명은 2009년 뮌헨월드컵 10m 공기권총에서 진종오에 이어 2위에 오르며 주목 받기 시작했다. 2010년 8월 독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진종오 등과 함께 50m 단체전 우승을 일구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10m 개인전과 단체전, 50m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사격에선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3관왕을 거머쥐었다. 런던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삼성그룹은 지금 ‘고전 읽기 삼매경’

    ‘논어, 도덕경, 손자병법, 사기….’ 삼성전자 등 첨단업종을 거느려 ‘모던 이미지’가 강한 삼성그룹에 고전 열풍이 불고 있다. ●마이싱글 ‘금요고전’ 코너도 개설 경영진은 물론 임직원에까지 이어지는 삼성의 고전 탐독 주문은 끝이 안 보이는 경기불황과 글로벌 정보기술(IT) 전쟁의 파고를 넘는 데에는 선인들의 지혜가 농축된 고전만 한 게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최근 20만 임직원들이 거의 매일 들여다보는 사내 인트라넷 ‘마이싱글’의 로그인 화면과 ‘미디어 삼성’의 전문가 칼럼, 마이싱글 블로그 등을 통해 임직원에게 고전 읽기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 마이싱글 로그인 화면에 고전 내용이나 추천도서 등을 띄워 자연스럽게 고전에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금요고전’이라는 고정 코너도 개설했다. 이 코너는 외부 명사들의 관련 칼럼이나 고전에 대한 임직원 설문조사, 임직원의 고전 추천 등을 통해 관련 콘텐츠에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논어·손자병법·죄와 벌 등 추천 임직원이 추천한 도서는 논어와 삼국지, 손자병법, 사기, 맹자, 도덕경 등이 주를 이뤘고, 조지 오웰의 1984, 단테의 신곡,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 등도 포함됐다. 최고경영자(CEO)들도 노자를 주제로 고전 특강을 받는 등 고전 읽기는 모든 임직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삼성이 고전을 적극 장려하는 것은 교양과 취미활동을 돕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고전을 통해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포석도 엿보인다. 하드웨이적인 기술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디자인이 강조되는 요즘 인문학적 소양과 통찰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중요성이 커진 것도 고전을 강조하는 배경이 됐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의 저자인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는 미디어 삼성에 기고한 글에서 “고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이 문제를 푸는 데에 수많은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 있는 책”이라며 “변화와 창조를 외치는 오늘날 상황에도 고전의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말까지 칼럼읽기 등 이벤트 지속 앞서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호암자전’에서 “가장 감명받은 책을 들라면 서슴지 않고 ‘논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논어에는 내적 규범이 담겨 있다. 간결한 말 속에 사상과 체험이 응축되어 있어, 인간이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마음가짐을 알려 준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삼성은 연말까지 CEO 추천 고전 소개, 임직원 고전 증정 이벤트, 고전을 영화와 사랑, 명화, 여행, 건축 등 다양한 주제와 연결시킨 기사와 칼럼 읽기 등 장려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모두 제 불찰… 어떤 질책도 받겠다”

    “모두 제 불찰… 어떤 질책도 받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친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한 친·인척, 측근 비리와 관련, “모두가 제 불찰이다. 어떤 질책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면서 국민에게 사과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담화를 통해 “근자에 제 가까운 주변에서, 집안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렸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이번이 여섯 번째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저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이를 지켜보면서 하루하루 고심을 거듭해 왔다.”면서 “검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보다는 먼저 국민 여러분께 저의 솔직한 심정을 밝히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판단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저 자신 처음부터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갖고 출발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월급을 기부하며 나름대로 노력해 왔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해 온 것도 사실”이라면서 “그런데 바로 제 가까이에서 이런 참으로 실망을 금치 못할 일들이 일어났으니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져 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대통령은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느냐.”면서 “그러나 개탄과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오늘 나라 안팎 상황이 너무 긴박하고 현안 과제가 너무 엄중하고 막중하다. 대통령으로서 책무를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어 “오직 겸허한 마음가짐과 사이후이(死而後已·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일하겠다는 뜻)의 각오로 더욱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면서 “다시 한번 국민께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사설] 대통령 친인척 비리 근절할 틀 마련하라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와 관련해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했다. 이 대통령은 “제 가까운 주변에서, 집안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렸다.”면서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져내리고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고 말했다.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아 구속된 데 이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던 김희중 청와대 제1부속실장까지 같은 혐의로 사법처리되면서 이 대통령으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된 상황이다.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이번이 여섯 번째다. 임기 첫해인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파문과 관련해 두 차례 사과했고 2009년과 지난해에는 세종시 이전 및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문제로 각각 사과했다. 또 지난 2월에도 측근 비리와 관련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고 해서 친·인척과 측근들의 비리가 묻히는 것은 아니다. 민주통합당은 어제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의혹 특검법’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이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 비리와 관련한 국회 청문회와 국정조사, 특검 등을 줄줄이 계획하고 있다. 대부분 검찰이 수사를 마친 사안이지만 그 결과에 의문을 품고 있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에 추가 조사의 필요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당 측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보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청와대와 여당을 공격하는 정치 공세의 기회로 활용한다면 오히려 문제의 본질만 흐릴 뿐이라고 본다. 이 대통령이 사과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얼마나 허탈했을 것인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임기 말이면 대통령이 주변의 비리 때문에 정치적 곤경에 빠지는 상황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권력 운용 시스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권마다 반복되는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법적, 제도적 시스템을 만드는 데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자와 그 주변의 마음가짐이다. 특히 올해 대통령 선거에 나선 여야의 예비후보들과 그 친·인척 및 측근들은 이 대통령이 사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 대성마이맥·티치미 수험생 ‘여름방학 학습 플랜’ 공개

    디지털대성(대표이사 최진영)이 운영하는 대성마이맥(www.mimacstudy.com)과 티치미(www.teachme.co.kr)가 대입 수험생들을 위한 ‘여름방학 스페셜 액션 플랜’을 20일 공개했다. 여름방학 스페셜 액션 플랜은 대성마이맥과 티치미의 김동욱(언어), 이명학(외국어) 등 두 대표 강사가 영상을 통해 ‘여름방학 학습전략’과 ‘수능에 관한 이야기’, ‘방학 중 마음가짐’ 등을 수험생에게 전하는 시즌 프로젝트다. 이들은 각각의 영역에서 강좌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김동욱 강사는 ‘이것이 비문학이다’와 ‘우수문항 고급독해’ 강좌로, 이명학 강사는 신텍스(Syntax)와 리드앤로직(Read N‘Logic) 강좌로 각각 수험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김동욱 강사는 “수능에서 EBS가 중요해진 만큼 여름방학 기간 동안에도 EBS를 활용한 학습을 해야 한다.”면서 “단순 암기가 아닌 정확한 독해력을 바탕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학 강사는 “정확성과 논리력으로 EBS 지문을 읽어내는 힘을 키워야 한다.”면서 “방학 동안 미뤄둔 공부를 한꺼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만큼 공부하라.”고 조언했다. 두 강사의 EBS 분석강좌를 구매하면 파이널 강좌를 10% 할인해 주는 이벤트가 이달 26일까지 진행된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또는 전화 (02)5252-110, 569-4182.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처의 나눔 정신으로 다가오는 100년 공동체 삶 고민할 것”

    “부처의 나눔 정신으로 다가오는 100년 공동체 삶 고민할 것”

    “자체적으로 생겨나 자체적으로 운영해 온 대표적 불교단체인 만큼 이제 시대에 걸맞은 역할을 찾아 목소리를 제대로 내야 할 것입니다.” 내년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지난 14일 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를 마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의 최경환(25) 회장. ‘5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추진위원장에 선출된 최 회장은 1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불련이야말로 한국 현대사와 한국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불련은 1963년 각 대학 불교학생회가 모여 창립한 불교 학생단체. 창립 이후 줄곧 ‘진리의 빛’ ‘진리의 얼’ ‘진리의 벗’ 등 3대 강령에 맞는 어젠다를 설정해 활동하면서, 불교계에선 드물게 일찍부터 사회참여의 목소리를 내온 단체로 평가받는다. “대불련은 무엇보다 부처님의 정신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구도자의 마음가짐으로 생명 가치 구현에 앞장서 복지사회를 건설하자는 실천의 정신을 중시합니다.” 그의 말마따나 대불련은 1960년대 만연해 있던 기복신앙을 떠나 부처님 말씀을 시대에 맞게 전하려는 운동에 앞장섰고 1970∼1980년대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90년∼2000년대엔 비교적 사회적 차원의 문제점에 착안해 대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아찾기’에 치중한 흐름을 보여준다. “대불련이 반세기를 맞는 내년은 지난 50년을 겸허하게 평가하고 다가오는 100년을 어떻게 맞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중요한 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21세기에 붓다가 있었다면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지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아마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역시 ‘같이 살아간다.’는 공동체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내년 기념사업의 테마는 일단 ‘감사와 사은’으로 정했단다. “대불련이 50년간 활동할 수 있었던 데는 밖에서의 지원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분들에 대한 감사와 사은을 토대로 새 역할을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그 감사와 사은의 마음은 ‘대불련 50년사’ 발간을 비롯해 역사자료 전시회와 대불련에 힘이 되어준 사람들에 대한 조사와 정리작업, 후원금 모집 행사로 결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도단체에 조계종 명칭을 써야 하고 포교원장이 단체장의 임명권을 갖도록 한 조계종 포교원의 ‘신도단체 재등록 사업’은 대불련 입장에서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16일 조계종 화쟁위원회에 그와 관련한 조정 신청을 내기도 했다. “모든 불교 종파가 함께 참여해 온 대불련은 늘상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같이 살아야 할 공동체라면 분란과 갈등의 요인을 먼저 경계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귀농열풍] 선행학습·철저한 계획·차별화된 기술

    2004년 귀농을 한 최정석(47)씨는 이듬해 경기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에 0.4㏊를 임대해 상추 등 엽채류와 애호박 재배를 시작했다. 1년 만에 연간 50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렸다. 이후 출하량이 증가하면서 지난해에는 과채류 50t, 엽채류 12t을 출하해 억대 소득 귀농인 반열에 올랐다. 최씨는 “시설하우스 이용률을 높이는 등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차별화된 서비스 경쟁력을 통해 작지만 강한 농업을 실현한 게 성공 비결이었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최씨처럼 성공적인 귀농인이 되려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귀농·귀촌을 위한 준비 및 고려사항을 일곱 가지로 요약했다. 우선 철저한 계획 수립이다. 경기농림재단 박영주 도농교류부장은 “실패하지 않으려면 농업기술 습득과 체험 등 계획을 통한 선행학습이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어떤 작목을 선택할 것인지도 미리 정하면 좋다. 영농기술은 다양한 귀농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받을 수 있다. 농촌을 알아야 농촌에 살 수 있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경기도 농업기술원 김현기 인력육성팀장은 “귀농의 장밋빛 환상만을 꿈꾸기보다는 농촌이란 공간을 이해하고 적응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가족의 동의와 이해가 필요하고, 마을 주민과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유리함과 정보를 활용해야 한다. 초기에는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기 어려우므로 일정기간 농사 이외의 직업을 갖는 것도 방법이다. 도시에서 쌓았던 사람과의 관계는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자양분이 된다. 도시민들의 소비 트렌드를 확인하고, 자신이 생산한 농산품을 평가받거나 판매하는 고객으로 활용 가능하다. 블루오션을 찾아야 한다. 농업을 단순한 1차 산업으로 바라보지 않고 2, 3차 산업과 연계할 길을 찾아야 한다. 창의적인 시각에서 융복합해 새로운 사업이 탄생하기도 한다. 끝으로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귀농·귀촌은 인생의 또 다른 페이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저마다 해법을 만들어 나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맥주이야기③] 맥주연구소 소장이 들려주는 ‘맥주를 음미하라’

    [맥주이야기③] 맥주연구소 소장이 들려주는 ‘맥주를 음미하라’

    사람들 마다 좋아하는 맥주가 다르고, 그 맥주를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도 다양하다. 부드러워서, 보리 맛이 느껴져서, 목 넘김이 좋아서, 향이 좋아서라는 이유도 있겠고, 남과 다르게 차별화되는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떤 특정 브랜드가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출 수 없듯이, 사람마다 맥주를 마시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맥주라도 입맛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 오늘은 맥주를 맛있게 음미하는 방법과 맥주에 있는 여러가지 성분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입과 코로 느끼면서 마시자 맥주를 마실 때, 먼저 눈으로 잔에 따른 맥주의 외관을 살펴보게 된다. 시각으로 본 맥주의 색도, 거품, 탄산, 혼탁 유무에 대한 정보가 뇌에 전달되어, 맥주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의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 다음 후각을 이용해 향을 느낀다. 그리고 나서, 코, 혀, 목의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입으로 한 모금 마신다. 맥주의 향은 직접 코로 맡기도 하지만,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갈 때 입 속으로 퍼지는 향을 코로 맡기도 한다. 맥주를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향은 에스테르향과 호프향이다. 바나나와 사과 향과 같은 에스테르류의 향은 맥주 제조 과정 중 발효 시 생성되는 것으로, 사용하는 효모의 종류에 따라 향의 특성과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맥주에서 느끼는 향긋한 호프 향은 장미와 같은 꽃 향기와 감귤 같은 과일향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호프 향은, 맥주의 쓴 맛을 부여하는 비터호프와 달리, 아로마 호프에 의해 생성되는 것으로 그 품종에 따라 따른 특징을 나타낸다. 세계적으로 호평받는 아로마 호프로는 미국산 Cascade, 체코산 Saaz, 독일산 Hallertau Tradition품종 등이 있다. 맥주에는 좋은 향도 있지만, 맥주 품질을 저하하는 이취가 발생하기도 한다. 맥주의 숙성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발냄새와 유사한 ‘다이어세틸’이라는 이취가 느껴지고, 오래된 맥주의 경우에는 산화과정을 통해 오래된 종이박스 냄새와 유사한 이취가 느껴지게 된다. 또, 맥주 병이 갈색인 이유는 햇빛 특히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함인데, 투명병이나 녹색병의 맥주제품에서는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어 스컹크 향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일광취’가 발생한다. 따라서, 맥주는 가급적 햇빛에 노출되지 않고 서늘한 곳에 보관하여 신선한 제품을 마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향을 맡은 후에는 혀에서 느끼는 맛과 함께 목 넘김까지 느껴봐야 한다. 최근에 국내 소비자가 중요시하는 맥주 맛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많은 소비자들이 부드러운 맛과 깨끗하고 상쾌한 맛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 소비자가 선호하는 맥주는 이취, 이미가 없이 과일 향과 호프 향이 적절하게 느껴지면서, 목넘김이 부드럽고 뒷맛이 시원하며, 떫은 맛이나 잡미가 남지 않는 맥주라고 하겠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맥주를 천천히 마시면서 입과 코에서 느껴지는 맛과 향과 함께 오감으로 음미하고 평가해 보자. 하이트진로㈜의 경우, 맥주맛을 평가할 때 이화학적 분석 이외에 여전히 관능 검사를 중요시한다. 최근 과학적 계측장비가 상당히 진보되었으나 물리, 화학적 측정만으로는 종합적인 평가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제품 개발과 최고의 품질관리를 위해 관능에 참여하는 연구원은 전문 관능 훈련을 받고, 정기적으로 평가를 통해 선발된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발된 관능 요원은 관능 검사 2시간 전에는 최고의 후각과 미각을 유지하기 위해 물 이외에 다른 음식을 먹거나 마시지 않고, 스킨로션, 향수 등도 관능의 방해가 되기 때문에 일절 사용할 수 없다. 그 어떤 기계보다도 최고의 분석장비는 우리의 몸이기 때문이다. 적당히 마시면 몸에도 좋은 술 요즘 건강에 좋은 성분도 많고 맛을 음미하기에는 와인이 좋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맥주는 더운 여름철 갈증을 풀어주는 대표적인 주류이면서, 와인 보다 쉽게 찾아 마실 수도 있고 건강에도 와인 이상으로 유익한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보통 알코올 3~6%(v/v)의 맥주는 주로 알코올에서 유래하는 칼로리와 함께 비타민과 미네랄 비교적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고, 또 미량이기는 하지만 소화되기 쉬운 단백질도 포함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맥주는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영양학적으로도 식품으로서 섭취될 수 있는 훌륭한 음료라 할 수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맥주 칼로리의 대부분은 빵이나 쌀 등의 탄수화물 칼로리와는 달리 혈액순환의 촉진이나 체온상승 등에 소비되기 때문에 글리코겐이나 지방으로 전환되어 체내에 축적되는 일은 없다고 알려져 있다. 또 맥주 내에 존재하는 엽산은 혈관 질환을 예방한다고 알려져 있다. 만성 알코올중독자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와인 보다 맥주를 주로 음용하는 사람의 심장병 발병률이 낮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되어 있다. 세계에서 맥주 소비량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 체코의 필센 주민 543명(35-65세)을 대상으로 실시한 혈액검사 결과, 맥주를 가장 많이 마시는 사람이 혈중 엽산이 가장 높은 반면 혈관질환의 위험 인자가 가장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치매에 관하여 연구한 영국 왕립 리버풀 대학의 앤더슨 박사 연구팀은 ‘맥주 속의 실리콘 성분이 치매에 관계된 알루미늄을 제거한다’고 발표해 흥미를 끌고 있다. 그 이외에 맥주는 위액의 분비를 촉진시키며 이뇨작용으로 체내의 노폐물 배설을 촉진하고, 호프의 상쾌한 쓴맛은 소화를 돕는다고 한다. 또한, 포르투칼 포르투대학팀은 맥주에 함유된 다양한 폴리페놀 성분들이 유방암 발병률을 크게 낮추는데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스라엘의 한 연구팀은 “하루 한잔의 맥주 음용을 통해 심장마비 발생률을 낮출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렇듯 맥주에 많은 유용한 물질이 상당히 존재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지만, 모든 일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과도한 음주는 반드시 삼가해야 함은 당연지사라 할 것이다.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온도와 음용 조건 이렇게 다양한 풍미와 향 그리고 영양성분을 가진 맥주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음용조건에 대해서 알아보자. 많은 맥주 애호가들이 살얼음이 생길 정도로 차가운 맥주를 좋아한다. 과연 언 맥주가 혹은 얼 정도로 차가운 맥주가 맛있을까? 지나치게 차가운 맥주는 오히려 혀를 마비시켜 맛을 싱겁게 느끼게 한다. 마시기 가장 좋은 맥주 온도로 여름철은 4~8℃, 겨울철은 6~10℃를 추천한다. 맥주가 이 온도가 되면 탄산가스가 제대로 살아나 거품이 넉넉하게 생길 뿐만 아니라 맥주 특유의 향과 상쾌한 청량감이 가장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겠지만, 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서로를 배려한다면 오늘 저녁 친구들과, 동료들과, 가족들과 같이하는 맥주 한잔이 그 무엇보다도 더 맛나고 값진 보약이 되지 않을까? 사진제공 = 하이트진로
  • [김문이 만난사람] 4개국서 동시 사진전 여는 배병우 사진작가

    [김문이 만난사람] 4개국서 동시 사진전 여는 배병우 사진작가

    사진은 진실이다. 진실은 감동이다. 감동은 사랑이다. 여기에서 문제 하나, 피사체를 담는 카메라는 언제부터 나왔을까. 궁금하다. 잠시 어원을 들여다본다.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방 안을 어둡게 한 뒤 한쪽 벽면에 바늘 구멍을 뚫어 놓으면 방 밖에 있는 물체의 영상이 방 안의 벽면에 비친다는 것을 알았다.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네모난 상자의 한쪽 면에 바늘구멍을 뚫어 놓고 반대 면에 종이를 붙여 그림의 윤곽을 잡았다. 바늘구멍이 향하고 있는 쪽의 영상이 상자 속으로 들어와 종이에 비치는 기능을 활용했다. 이 같은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는 오늘날의 사진기, 즉 카메라의 어원이 됐다. 재미난 과거의 뉴스 하나. 1839년 프랑스인 다게르에 의해 현재의 사진기가 처음 개발됐을 때 당시 유럽의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하느님의 형상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신(神)에 대한 모독이다. 이런 기계를 만들었다고 떠드는 다게르는 분명 바보 중의 바보다.” 아마 사람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이 영혼을 빼앗는 걸로 여겼던 것 같다. ●‘대양을 향하여’ 30일까지 여수서 사진전 지난 19일 오후 카메라를 들고 오롯이 예술을 추구하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다. 배병우(62)씨. 소나무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바다에 풍덩 빠진 사람이다. 서해안, 남해안, 제주도 바다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다. 올해로 사진 인생 40년, 궁금한 것은 만나서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 작업실로 갔다. 어라, 약속된 시간인데도 탁구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작업실에 있는 조교랑 주거니 받거니 잘도 한다. 약이 올랐다. 탁구 라켓을 잡고 같이 치자고 했다. 그런데 배씨는 왼손잡이.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왕년의 탁구 실력을 발휘해 볼 생각에 열심히 덤벼들었다. 오른쪽, 왼쪽으로 푸싱을 했다. 그런데 잘도 받아 낸다. 20분쯤 지났다. 땀이 눈을 자극했다. 항복했다. 그러고 나서 ”선생님 왜 그렇게 체력이 좋으세요.”라고 인사했다. 육십이 넘었는데 민첩하게 탁구를 잘도 친다. 돌아오는 답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탁구에는 급수가 있어요. A급은 프로 선수고 B급은 아마추어인데 내가 B급 정도는 되지.”라고 한다. 그러고는 슬쩍 웃는다. 흘리는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물과 냉커피를 갖다준다. 얼른 물었다. “여수 바닷가 출신이지요.”라고. 배씨는 오는 30일까지 여수에서 ‘대양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고 있다. 그는 소나무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바다를 먼저 시작했다. 1970년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바다를 그리워했다. 태생이 바다였기 때문이다. 배씨에게 다시 “탁구는 일주일에 몇 번 치세요.”라고 물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한테 강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웃으면서 말한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땐 유도를 했습니다. 탁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했고요.” 잠시 시간이 흐른다. 창밖에는 6월의 열정으로 가득 찬 나무들이 있다. 배씨는 그것을 잠시 응시하면서 말했다. “1999년이죠. 아내가 죽었을 때 탁구장 회원 등록을 했어요. 술을 많이 먹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건강도 생각해야 했고요. 그때부터 했어요, 탁구를….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탁구를 칩니다. 한 시간 30분 정도씩…. 웬만한 상대를 만나도 자신 있습니다.” ●1년 중 3분의1씩 바다·소나무와 보내 배씨는 건강에 대해서는 자신 있단다. 건강해야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얘기를 여수 전시로 돌렸다. 지난달 경주 전시에 이어 여수엑스포에 맞춰 전시 중이다. 소나무 작가인데 왜 바다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제 나이 29살 때 제주를 처음 갔지요. 카메라 들고 말입니다. 그 바닷가가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계속 바다를 찍었습니다. 지금도 1년의 3분의1은 제주도(바다), 또 3분의1은 경주(소나무), 나머지는 서울에 있지요.” 다음 전시는 언제 하는지 물었다. 피식 웃으면서 답을 한다. 늘 하는 건데 새삼 묻느냐는 의미로 다가온다. “올 11월 4개국에서 동시에 전시를 합니다. 따로따로 하는 경우는 있었는데 동시에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서울, 파리, 베를린, 안트베르펜(벨기에)에서 합니다. 주제는 바다로 3년 동안 찍은 제주바다를 전시합니다. 아직 제목을 정하지 않았지만 바람과 바다를 접목시켜 정하려고 합니다.” 그는 생선장수의 아들이다. 그래서 바다를 좋아한다. 어머니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바다를 보면서 수채화를 그렸고 나중에 미술대학을 갔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었다. 그리고 바다로 갔다. 어머니 품을 담으려고 했다. 고향이었고 삶 그 자체였다. 울릉도도 가고 서해안과 남해안 섬에도 갔다. 제주 마라도에도 갔다. 그러던 33살 때 소나무를 찾았다. 소나무는 아버지였다. ●독일 등 유럽 귀족들에 내 작품 인기 그는 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손의 떨림, 시선은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 질문을 했다. “열 명이라고 합시다. 각자의 신체, 손이나, 손가락의 움직임, 감각, 숨결, 사상, 재능 따위가 다르겠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인문학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이미지와 플러스알파, 뭐 이런 것도 있고요. 사진은 온갖 것을 찍을 수도 있지만 자연을 대할 때는 마음가짐이 좀 달라집니다. 사람의 자질도 자연을 대할 때 각자 달라지겠지요.” 소나무로 다시 돌렸다. 전국 방방곡곡 소나무 숲을 전부 다녔을 터이니 말이다. “바다를 찍다가 우리나라의 상징이 무엇인가 고민하던 중 소나무를 찾게 됐다.”면서 “지금은 소나무가 많이 사라져 안타깝다.”고 말한다. 제주도 자리돔이 울릉도에 와 있듯이 온도 변화로 활엽수가 침엽수를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갔던 숲 중에 가장 인상 깊은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가야산 숲이 최고다.”라고 대답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창밖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배씨 뒤에는 온갖 책들이 있다. 사진집, 미술 서적, 대부분 영어로 된 책이다. 문득 사진 예술가로 걸어 오면서 누구를 좋아하는지 물었다.“에드워드 웨스턴이 멘토였어요. 만나지는 못했지만 집에 가서 남겨놓은 작품들을 살펴봤습니다.”라면서 책꽂이에서 사진집을 꺼냈다. ‘캘리포니아 오두막에 살면서 사진관도 하고 자연과 인간의 삶을 담아낸 작가’라는 설명이 나온다. “보세요, 누드도 얼마나 잘 찍었는지….” 배씨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까닭 중에 하나는 2005년 팝스타 엘턴 존이 2700만원을 주고 배씨의 사진을 구입한 일이다. 이 얘기를 꺼냈더니 그는 “엘턴 존이 애틀랜타 별장에 사는데 거기에다 걸어놨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사실 스페인, 스웨덴, 독일 등 유럽의 귀족들 별장에도 많이 걸려 있다.”고 말한다. 하기야 그는 스페인에서 2년 동안 알람브라 궁전만 찍었다. 그러면서 사귄 유럽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어디 유럽뿐일까. 2009년 호주에서 사진 발명 170년에 맞춰 선정한 세계적인 사진작가 60인에 들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필름을 사용한다. 디지털이 영 안 맞는다고 했다. 린호프(4x5) 카메라를 주로 들고 다닌다. ●필름 없어질지 몰라 2년 쓸 것 구입해 놔 “내가 필름을 사용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겁니다. 필름이 없어지는 것을 대비해서 2년치는 구입해 놨지요.” 그래서일까. 그가 찍은 사진에는 사람이 없지만 사람의 기척 같은 것이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기는 한데 인간의 모습이 숨어 있다. 사람의 숨결이 감돌고 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와 술잔을 기울였다. 술병, 술잔, 도자기, 달력 등등 모두가 배씨의 그림이 새겨져 있음을 알게 됐다. 그런 거 저런 거 묻기가 부끄러워 술 친구들 많이 있느냐고 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인문학이라고 하잖아요. 사진도 그래요. 역사를 살피는 것, 자연을 살피는 것은 바로 인문학입니다. 내가 디자인을 전공했잖아요.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갔어요.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움을 갈망합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조용한 기다림이라고나 할까요.” 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잠시 후 시계를 본다. 약속이 있다고 했다. 그에게 고약한(?) 질문을 했다. 혼자 살기 때문에 여자 친구가 있는지라는 말을 꺼냈다. “귀찮아요.”라고 했다. 에구 역시 잘못 물었나 보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배병우 작가는 미대시절 사진 독학… “발 부르트도록 대상 찾아다녀” 1950년 여수에서 태어났다. 여수고를 나와 1974년 홍익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동대학 대학원 공예도안과를 졸업하고 독일 빌레펠트 대학에서 연구생활을 했다. 대학 때부터 카메라를 들고 바다를 찾았다. 사진은 독학했다. 1984년부터 사진작가 배병우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소나무 작업에 매달렸다. 자신이 태어난 바다와 산과 제주 오름 등 한국의 자연에 천착했다. 국내는 물론 프랑스, 일본, 캐나다, 미국, 스페인, 독일 등 국외에서도 많은 전시를 열었다. 세계적인 팝 가수 엘턴 존이 작품을 구입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세계 유수의 아트경매에서 1억원을 호가하며 낙찰되는 등 세계적인 작가로 활동 중이다. 사진 찍는 법을 물어오는 이들에게 “손 대신 발이 부르트도록 대상물을 찾아다닌다.”고 말한다. ‘풍경을 넘어서’ ‘사진-오늘의 위상’ 등 다수의 기획전과 개인전을 했으며, 일본 국립근대미술관 ‘90년대 한국미술’(1996), 토론토 파워 플래닛 ‘Fast Forward’(1997), 파리 OZ 갤러리 ‘배병우 개인전’(1998), 서울 박영덕갤러리 ‘배병우 개인전’(2000) 등의 전시 경력이 있다. 1981년부터 최근까지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주요 작품집으로 ‘종묘’(1998), ‘청산에 살어리랏다’(2005), ‘Sacred Woo’(2008), ‘창덕궁: 배병우 사진집’(2010),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2010) 등이 있다.
  • 지시 대신 이해… 좋은 엄마 도전기

    지시 대신 이해… 좋은 엄마 도전기

    부모가 가장 쉽게 범하는 오류는 ‘왜 아이들이 내 맘 같지 않을까.’일 것이다. 자신이 그 나이였을 때와 끊임없이 비교를 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는…”이라는 전제에 사로잡혀 아이들의 행동을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알아서 척척 공부하고, 남들이 알아주는 명문 대학에 들어가 번듯한 직장까지 잡은 부모라면 더더욱 그런 틀에 사로잡히기 쉽다. 둘째를 임신해서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셋째를 가졌을 때는 대학원을 졸업한 임혜정(36)씨는 똑똑한 여성이자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인이다. 하지만 양육에서만은 좌절을 느낀다. 18일 저녁 7시 35분 EBS ‘부모가 달라졌어요’는 혜정씨가 아이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엄마로 변화하는 눈물겨운 노력을 담은 ‘엄마, 아이라는 문제를 풀다’를 방송한다. 혜정씨의 세 자녀는 각자 성격이 달라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첫째 아이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둘째는 시도 때도 없이 자기감정을 표출한다. 막내는 아직 말이 통하지 않는 어린아이이다. 작은 섬에서 태어난 혜정씨는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하는 똑부러진 아이였다. 그런 탓에 아이들을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했지만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부터 힘에 부친다. 이런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엄마가 보이는 행동은 지시하고, 캐묻고, 심문하는 것뿐이다. 그러다 보니 첫째 아이는 어느새 엄마와 거리를 두고 있다. 혜정씨에게 양육은 인생에서 가장 실패한 과제처럼 느껴진다. ‘부모가 달라졌어요’의 전문가들이 제시한 네 가지 처방에 따라 혜정씨는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와 시선을 맞추는 100점짜리 엄마로 탈바꿈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7주 후 엄마와 첫째 아이의 관계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이제는 양육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는 혜정씨의 마음가짐이다. 전문가의 처방은 무엇이었고, 엄마와 아이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 본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일일동장’ 나선 이성 구로구청장

    ‘일일동장’ 나선 이성 구로구청장

    다음 달 1일 취임 2주년을 맞는 이성(사진 오른쪽)구로구청장이 13일부터 임기 시작 당시의 마음가짐을 되살리기 위해 주민과 직접 소통하는 ‘일일동장’에 나선다. 그는 구로1동을 시작으로 매달 2~3개 동에서 동장 업무를 수행하며, 15개 동을 모두 찾아간다. 그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주민들의 생활과 어려움을 살펴보고 임기 후반기에 실천해야 할 정책을 가다듬기 위해 중간점검을 하는 차원에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일일동장 업무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주민들의 일상을 돌아보고 의견을 듣기 위해 단 1분도 쉴 틈도 없이 빡빡한 스케줄로 구성됐다. ●15개 동 모두 돌며 동장 업무 수행 그는 우선 오전 7시 30분 주민들과 함께 마을청소를 시작하고, 오전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청소 참여 주민과 조찬 간담회를 갖는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자치회관을 방문한 뒤 오후 1시까지는 동 주민센터 직원과 각종 지역 단체장과의 간담회를 마련한다.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는 직접 주민센터 안내 및 상담 업무를 맡는다. 오후 2시부터는 취약지역과 경로당, 저소득층 가구, 어린이집, 재개발 구역 등 각종 현장을 방문해 주민 애로점과 정책 수립을 위한 의견을 수렴한다. ●마을청소·주민센터서 상담·경로당 방문도 구는 구청장의 일일 동장 순회를 통해 ▲발로 뛰는 대화 행정 구현 ▲동 문제 해결 능력 강화 및 지역사회 통합 ▲복지 체감도 향상 ▲동 직원 사기 강화 등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구청장에서 동장으로 신분이 낮아진다고 주변에서 농담을 많이 하지만 임기 첫 시작 때처럼 적극적인 자세로 업무를 담당해보려고 한다.”면서 “스스로에 대한 건강검진을 진행하는 것처럼 주민들의 다양한 이야기에 진심 어린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 섣부른 충고 대신 환자의 고충 경청 치료·복약 적극 관리

    주부 박수정(42)씨는 혼자 사는 고령의 어머니(73)가 걱정이다. 근래 날짜 가는 것도 잘 모르고, 기억력도 나빠지고 있어서다. 지난달 초에 찾았을 때는 그전에 해드린 반찬이 상한 채 고스란히 냉장고에 들어있어 깜짝 놀랐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타박이라도 하면 3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만 늘어놓는다. 지난달 만났을 때 어머니는 “밤잠을 못 잔다.”고 털어놨다. “잠들기도 어렵지만, 뒤척거리다 겨우 잠이 들어도 금방 깨고, 새벽 3시가 넘으면 그나마 다시 잠들지도 못해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는 것이었다. 틀림없는 치매라고 여겨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아 신경인지검사, 뇌영상검사 등을 받은 결과 노인성 우울증이었다. 주치의로부터 환자 관리교육 등을 받았으며, 치료 4주 만에 점차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해 안도하고 있다. 김기웅 교수는 노인성 우울증에 대한 환자와 보호자의 인식이나 태도가 달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환자는 우울증이 결코 자신이 나약해서 생긴 병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릴 것을 권했다.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치료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라는 김 교수는 “치료를 받더라도 금방 좋아질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를 갖지 않아야 하며, 중요한 의사 결정은 병이 나은 뒤로 미루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지원 교수는 가족들의 태도를 짚었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가족들은 환자의 증상에 관대해야 하는 것은 물론 치료와 복약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며, 치료만 잘 받으면 얼마든지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 교수는 특히 환자와의 소통과 교감을 강조했다. 환자의 고충을 경청하고 이해하되 특정 사안에 대해 섣부르게 충고하지 않아야 하며, 환자가 자살을 암시하는 언행을 할 경우 반드시 주치의에게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기고] 부정부패 사슬을 끊기 위한 제언/홍성태 前 한국JC 중앙회장

    [기고] 부정부패 사슬을 끊기 위한 제언/홍성태 前 한국JC 중앙회장

    3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정부패 혐의로 수사가 시작될 무렵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역대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불행한 말로를 맞이했다. 부정부패의 규모도 국민의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 액수이다. 아울러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후 임기를 지냈던 지자체장의 50% 정도가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처벌되었다. 또 우리나라 고위직이나 사회지도급 위치에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상당수 인물이 부정부패에 연루되거나 의심을 받고 있다. 이쯤 되면 가히 부정부패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정권 말기로 치닫는 이명박 정권 역시 대통령 측근과 청와대 등 고위공직자들이 이미 상당수 부정부패 혐의로 사법처리되거나 조사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얼마 전에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인구 5000만명을 넘어서서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런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나라인데, 어찌 고위직에 있는 인사들은 하나같이 부정부패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는 고질병일까. 아니다. 부정부패는 우리 시대에 남은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국가 사회적인 합의 도출로 부정부패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원인은 간단하다. 국가 사회 지도급 위치를 차지하는 인사들이 지도자로서 검증되지 못했고, 도덕적인 가치관이 확고히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 잘못된 오류를 단절하는 국가 사회적 제도가 공평하지도 엄격하지도 못하고, 세월이 흐르면 용서까지 해주기 때문에 부정부패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선거 관련법의 규정과 실행을 보면, 우리가 고민하는 국가적인 부정부패를 쉽게 단절할 수 있는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 선거 풍토가 비교적 깨끗한 편이다. 우리나라 선거법의 집행과정이 다른 법보다 엄격하고 투명하고 공평하고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부정부패 척결도 선거법과 유사한 제도를 만들고, 공평함과 엄격함으로 일관하면 된다. 국가적인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부정부패에 대해서 예외 없이 법을 적용하는 강력하고 독립적인 사법제도를 새로 만들자. 작금의 권력 시녀 노릇을 하는 검찰과 물러 터진 법원의 권위, 형량으로는 절대로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없다. 둘째,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사법처리된 자는 누구든지 일생 사면과 복권이 못 되도록 하고 절대로 용서를 못 받도록 제도를 만들자. 영원히 퇴출되어야 한다. 셋째,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사법처리되면 부정부패 규모만큼의 확실한 추징은 물론 연루된 자 모두 선거법에서처럼 추가해서 몇 배 또는 수십배를 토해내는 회생 불가능한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아무리 제도를 바꾸어도 부정부패의 고리를 단호히 끊을 수 있는 칼자루가 무디고, 세월이 지나가면 잊히고 용서되는 사회분위기로는 부정부패의 고리를 결코 끊을 수 없다. 문득 인도의 제12대 압둘 칼람 대통령이 생각난다. 그는 대통령이 될 때 들고 갔던 가방 하나를 퇴임할 때 그대로 들고 나왔다. 그의 전 재산은 단칸방에 책상 하나라고 한다. 부정부패의 단절을 위해 제도뿐 아니라, 당사자의 가치관과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
  • [2012 런던올림픽 D-50] 4년 전엔 ‘죽기살기’ 지금은 ‘죽기’로 한다

    [2012 런던올림픽 D-50] 4년 전엔 ‘죽기살기’ 지금은 ‘죽기’로 한다

    숨이 턱에 찬다. 빳빳한 도복은 어느새 땀으로 흥건히 젖었다. 밀고 당기고 넘기고…. 상대가 손에 익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울리는 종소리. 다른 파트너가 달려든다. 다시 시작이다. 그렇게 두 시간, 쉼 없는 대련이 이어진다. 허투루 깃을 잡는 상대는 한 명도 없다. 새벽부터 태릉선수촌 뒤 불암산 자락을 뛰었고, 오전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붙였다. 끝날 것 같지 않은 혹독한 훈련. 몸은 지쳐 가지만 눈빛은 점점 매서워진다. 그 가운데 김재범(27·세계 2위·한국마사회)이 있다. 런던올림픽 남자유도 81㎏급 금메달 후보 0순위. 김재범은 대뜸 “그땐 ‘죽기 살기’여서 은메달을 땄다. 지금은 ‘죽기’다. 정말 독해져 있다.”고 했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 때 얘기다. 대회를 10개월 앞두고 체급을 올린 탓에 세계랭킹조차 없었던 김재범은 참 잘 싸웠다. 그러나 결승에서 올레 비쇼프(4위·독일)에게 유효를 내준 걸 끝내 만회하지 못했다. 8강과 4강에서 연장전을 치르느라 체력이 바닥난 탓이었다. 그래도 귀국 후에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김재범은 “한국사회에서 은메달은 없는 메달이더라. 금과 은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당시의 설움과 박탈감이 지금 자신을 악착같이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운동선수의 목표는 1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도 했다. ●“한국에서 은메달은 의미 없더라” 마음가짐 뿐 아니라 스타일도 확 달라졌다. 베이징에서는 모든 경기가 ‘승부차기’ 같았다. 김재범은 끈질기게 버텼고, 상대는 짜증을 내다가 제 풀에 지치는 식이었다. 오죽하면 외국선수들에게 ‘미스터 파이브미닛’으로 불렸을까. 경기시간 5분을 꽉 채워 이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특기인 업어치기와 안다리후리기를 앞세워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인다. 큰 키(178㎝)에 팔다리가 길어 잡기 싸움에 유리하다. 본래 체급인 73㎏에서도 세계 정상급이었던 만큼 웬만한 상대들보다 잽싼 것도 강점이다. 남자팀 정훈 감독은 “4년 전에 고등학생이었다면 지금은 대학생이다. 기량 자체가 완전히 진화했다.”고 평가했다.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2010년엔 수원마스터스를 시작으로 세계선수권·몽골월드컵·체코월드컵·독일그랑프리·아시안게임·코리아월드컵까지 7개 국제대회에서 연속 우승하며 이름을 떨쳤다. 지난해에도 파리그랜드슬램·아시아선수권·세계선수권 등 굵직한 대회를 휩쓸었다. 세계선수권을 2연패, 아시아선수권을 4연패(2008·09·11·12년)했다. ●‘미스터 5미닛’의 대변신 액땜까지 마쳤다. 지난해 12월 KRA코리아월드컵에서 왼쪽 어깨가 빠지고 팔꿈치 인대가 찢어졌다. 여러 대회를 치르며 단 한 번도 점수를 빼앗긴 적이 없을 정도로 잘나가던 때였다. 꼬박 100일을 재활에 매달리며 겸손해졌다. “솔직히 대회마다 우승하니까 건방지고 거만해졌다. 때마침 다쳤다. 밑바닥을 찍고 올라가는 원동력이 됐다.”고 웃었다. 베이징 때와 달리 런던에 나서는 숱한 선수들이 김재범을 타깃으로 분석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 그는 “분석이 들어와도 이길 실력을 갖추겠다.”고 했다. 경쟁자를 묻자 “모두가 라이벌”이란 모범답안(?)을 내놨다. 두 번 만나 1승1패로 팽팽한 유언 버튼(영국)이 껄끄럽지만 신경쓰지 않겠단다. 톱랭커 레안드로 길헤이로(1위·브라질), 엘누르 맘마들리(3위·아제르바이잔) 등도 메달 후보로 꼽힌다. 김재범은 “걔들을 만나기 전에 깨지면 끝이다. 경기 때 정말 열심히 했느냐고 스스로 물었을 때 ‘최선을 다했어’라고 한다면 난 이긴다.”고 힘주어 말했다. ●“7월31일 닭살돋게 해주겠다.” 김재범은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경기날인) 7월 31일에 닭살 돋게 해주겠다.”고 했다. 자기예언이란다. 벌써 긴장한 거냐고 묻자 “벌써라니? 4년 전 올림픽이 끝난 직후부터 2012년을 준비했다.”고 했다. 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을 제패한 김재범은 올림픽 금메달로 ‘그랜드슬램’의 마침표를 찍을 계획이다. ‘준비된 청년’의 시계추는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길섶에서] 노여움/주병철 논설위원

    은퇴한 전직 최고경영자(CEO)한테서 들은 얘기다. “나이가 들고 은퇴하니 사람들 보는 눈이 달라져요. 종전 같으면 그냥 넘길 일인데도 나이 들고 할 일 없으니까 나를 무시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종의 노여움 같은 게 발동해요. 내가 바뀐 건지, 주위 사람들이 바뀐 건지….” 어느 모임에서 이런 얘길 했더니 고위 공무원이 맞장구를 쳤다. “직급이 높지 않았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일들이 고위직으로 올라가니까 부하 직원들한테 불만이 점차 많아집디다. 젊은 후배들의 행동이나 어투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뭐라고 한마디해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도 뭐하고….” 노여움이란 게 나이가 들고 직급이 높은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나이가 젊고 직급이 낮아도 마찬가지다. 나이 들고 직급이 높을수록 노여움을 내려놓는 지혜를 얻어야 하고, 젊고 직급이 낮을수록 노년층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노여움이란 서운함, 섭섭함에서 비롯된다. 인생이 별건가. 세상은 역지사지인걸.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2인 인터뷰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2인 인터뷰

    23회를 맞은 2012년 김달진문학상은 40대 시인과 평론가에게 돌아갔다. ‘김달진문학상 운영위원회’와 서울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김달진 문학상 시 부문에 장석남(47·한양여대 교수)의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가, 평론 부문에는 이경수(44· 중앙대 교수)의 ‘춤추는 그림자’가 각각 수상작으로 뽑혔다. 100세를 살아간다는 21세기에 청춘의 나이인 40대에 가볍지 않고 묵직한 걸음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을 만나봤다. 김달진 문학상은 시인이며 한학자였던 월하(月下) 김달진(1907~1989)을 기리고자 1990년 제정된 문학상으로,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 고려대 교수)가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인간의 고유한 얼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정신주의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시인과 평론가를 선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김달진문학상 수상 축하 시낭송회는 역대 수상자들이 함께 모여 6월 5일 오후 6시 고려대 백주년 기념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시 부문 수상 장석남 교수 어려운 시대 서정시 더 필요 균형 이루는 삶 자세로 詩 써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과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사람이다.”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인 장석남(47) 한양여대 교수는 22일 자신에 대해 그렇게 소개했다. 이어 “사회적 위치에서, 우주적 위치에서, 자연의 위치에서도 과연 잘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갖는 사람이고, 그 의문을 한시도 놓지 않고 지켜보면서 의문의 풍경을 시로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치 화두를 들고 평생을 정진하는 승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시인 오세영이 심사평에서 “다수의 시류가 아니라 소수의 개성 혹은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평가할 만했다. 장석남은 김달진문학상 수상 이전에 김수영문학상(1992)과 현대문학상(1999), 미당문학상(2010)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이 그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앞의 문학상들은 어둠침침한 회랑에 있는데 밝고 화창한 날이 찾아온 것처럼 시인으로서 고비를 넘길 수 있게 하는 힘이 됐다.”면서 “그러나 김달진문학상은 조용히 다가와서 어깨를 툭 치며 눈을 끔쩍끔쩍하는 듯한 격려로 이전과 아주 다르게 그윽하고 편안한 기분이다.”고 했다. 그는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일생을 숨어살면서 자족하고, 부귀나 명예 등 욕망을 좇지 않았던 월하 선생의 치열했을 삶을 동경해왔다.”고 했다. 특히 김달진의 ‘산거일기’는 머리맡의 솔바람소리 같았다. ‘산거’라는 연작시가 나온 배경이다. 자신이 쓰는 시와 선생의 삶과 문학이 비슷해서 이번 수상이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다는 것이다. 그는 “시가 세속적 욕망을 표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욕망을 이길 수는 없지만 욕망을 들여다보면서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으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전업작가에서 교수가 된 지는 7년이 됐다. 모순덩어리 교육은 대학교라고 해서 없지 않아 갈등이 존재한단다. 그는 연간 10편의 마음에 드는 시를 쓴다고 했다. 시 관련 잡지도 많고 덕분에 청탁이 많은데, 계속 거절하면 잘난 척한다고 하니 작품을 안 쓸 수도 없단다. 연간 10편이면 50~60편의 시가 들어가는 시집은 5~6년만에 나오게 된다. 장석남의 생각으론 그런 간격이 정직한 시집들이 나오는 주기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에 살면서 서정시를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서정적이지 않은, 어려운 시대일수록 서정시가 더 필요하다. 속도 때문에 치어서 죽고, 병 걸려서 죽고 하는데, 왜 그런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더 절실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평론 부문 수상 이경수 교수 비평적 거리·균형감각 유지 덜 말하며 효과적 쓰기 모색 “2~3년 전에 나왔어야 할 평론집 ‘춤추는 그림자’가 올해 나와서, 제때 이별하지 못한 연인을 보듯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수상까지 하고 나니 마음이 더 복잡하다.” 제23회 김달진문학상 평론부문 수상자 이경수(44) 중앙대 교수는 21일 수상소감으로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다. 시원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시종 차분하고 망설이는 어투가 그를 싸고돌았다. 문학평론은 ‘문학을 위한 이타적인 글쓰기’인데, 문학이 힘을 잃고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고, 그에 따라 문학과 독자의 매개자인 평론의 역할과 자리도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작가들이 ‘콘서트’란 형식으로 독자들과 직접 만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학평론가는 할 일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교수는 “문학비평을 통해 세상하고 소통해나갔던 나로서는 이 시대 문학비평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글쓰기를 해가야 할지 더욱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미혼의 여성으로, 대한민국에서 버티고 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간 그의 평론은 여성으로서의 내 자리는 어디인지, 비평가로서 내 자리는 어디인지, 문학의 자리인가 어디인지를 찾아가면서 써내려간 평론들이라고 했다.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는 심사평에서 “이경수의 비평은 무겁고 둔중하다. 수사적 현란함을 펼치는 최근의 비평 경향과 거리가 있고, 문학과 삶과 사회라는 세 꼭짓점이 갖는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평가가 꼭 맞는 것 같다. 그는 “권력의 자장에 포섭되는 순간 개개의 목소리는 힘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비평적 거리와 균형적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면서 “어디에도 매이거나 포섭되지 않는 외로움의 자리를 지키고 견디며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2008년 암수술을 하고 투병을 하면서 연간 최대 34편까지 쓰던 평론을 뚝 끊었었다. 1999년 등단한 이후로 10여 년 열정적으로, 의욕적으로 써내려갔던 평론이었다. 문단에서 성실하다고 평가받은 것은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열망 탓이었다. 그래서 병이 나았나 하는 생각도 한단다. 지난해부터 몸을 추스르며 다시 평론가로 돌아온 그는, 덜 말하면서 효과적인 글쓰기의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평론에 ‘가난하고 외롭고 낮고 쓸쓸한’이라고 붙였다. 이것은 백석의 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따온 것으로, 시는 ‘높은 자리’이지만, 평론은 소외된 ‘낮은 자리’에 있기를 희망하며 붙인 것이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문학이 힘을 잃고 있지만, 문학과 문학비평이 자본주의적 폐해를 일부 씻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맹형규 장관 “고졸 공직 채용 확대할 것” 견습 공무원 “진학보다 취업 잘한 선택”

    맹형규 장관 “고졸 공직 채용 확대할 것” 견습 공무원 “진학보다 취업 잘한 선택”

    “처음에는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도 했는데, 일하면서 생각하니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주위에서도 격려를 많이 해 주십니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 고졸 신입 직원) “직장과 집이 멀어서 힘든 점 빼고는 만족하고 있습니다.”(A부처 견습직원) 공직에 들어온 고졸 새내기들이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채용 기관 역시 이들의 전문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고졸 공무원 채용 확대 방침을 정한 뒤 공직에 입문한 새내기들과 이들이 속한 행정기관의 평가다. 행정안전부도 일단 고졸 공직채용 확대 제도의 출발은 성공적으로 평가했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21일 기능인재 견습직원 등 17명의 고졸 채용자를 정부중앙청사로 초청, 이들의 고충과 포부 등을 듣는 간담회를 가졌다. 고졸 채용자 17명 중 지난해 합격해 현재 각 부처에서 견습 중인 기능 인재 11명은 모두 올해 2월 고교 졸업자다. 새내기들은 현 직무에 만족했다. 공무원으로서 자부심도 대단했다. 한 새내기 공무원은 “남들보다 앞서 창조적인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며 “국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공무원이라는 긍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맹 장관에게 ‘장관 재임 중 가장 어려웠던 일’과 ‘인생의 전환점’ 등에 대한 질문 등도 쏟아냈다. 맹 장관은 가장 어려웠던 일로는 지난해 발생한 전국적인 구제역 파동을, 인생의 전환점으로는 군 복무 시절을 꼽았다. 지역정보개발원에서 근무하는 유재영(19·여)씨는 간담회를 마친 뒤 “처음에는 장관님을 직접 뵌다고 생각하니 떨리고 어렵게 느껴졌는데, 어린 직원들을 배려해 주신 덕분에 즐겁고 유익한 자리가 됐다.”고 말했다. 맹 장관도 이들을 격려했다. 맹 장관은 “고교 졸업 후 진학보다는 취업을 결정했고, 공직을 선택했는데 무척 잘한 일이라고 본다.”면서 “공직자의 판단 기준은 국민이고 나라의 이익이 되어야 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각자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가 고졸 채용을 확대할 뜻도 비쳤다. 맹 장관은 참석자들에게 “정부는 고졸자들이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치고 실력으로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고졸자의 공직 채용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SKT오픈] 2주 연속 정상 노리는 김비오 탱크샷의 부활 벼르는 최경주

    4년 만의 타이틀 탈환을 벼르는 ‘탱크’ 최경주(42·SK텔레콤)와 2주 연속 우승을 노리는 김비오(22·넥슨)가 격돌한다. 17일 제주 서귀포 핀크스골프장(파72·7361야드)에서 개막하는 원아시아투어 SK텔레콤오픈에서다. 물론 1라운드부터 맞대결을 벌이는 건 아니다. 최경주는 오전 6시 50분 박상현(29·메리츠금융) 등과 함께, 김비오는 10분 앞선 조에서 국내파 장타자 김대현(24·하이트진로) 등과 함께 10번홀에서 대회 첫 티샷을 날린다.최경주는 미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마친 뒤 15일 오전 귀국, 현지 적응을 마쳤다. 약 7개월 만에 국내 대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국내 팬들 앞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려 그동안의 부진을 털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올 시즌 성적은 마스터스에 이어 플레이어스 챔피언십까지 굵직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하는 등 지난해와는 크게 달랐다. 그러나 국내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둔 뒤 미국으로 돌아가 상승세를 탔던 좋은 기억이 있다. 특히 이번 대회는 분위기 반전에 좋은 기회다. 2008년 챔피언인 그는 “4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것도 목표지만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할 계기”라고 각오를 밝혔다. 그의 강력한 대항마는 ‘흥행 메이커’로 떠오른 김비오. PGA의 2부인 네이션와이드 투어에서 뛰고 있는 그는 13일 끝난 GS칼텍스 매경오픈을 2년 만에 제패한 데 이어 내친김에 2주 연속 우승컵을 노리고 있다. 국내 대회에서는 2007년 김경태가 토마토저축은행오픈에 이어 매경오픈을 제패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선수들 기량이 도토리 키 재는 식이어서 2주 연속 우승은 예전처럼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에겐 또 다른 목표가 있다. 내년 PGA 투어 복귀를 위한 발판을 다지는 일이다. 지난해 1부 투어에서 뛰다 연말 집계한 성적(상금랭킹)이 기준에 못 미쳐 반납했다. 매경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도 그는 “국내대회 선전이 PGA 투어 성적으로 반드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파들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매경오픈 4라운드에서 무너져 우승을 놓친 2009년 대회 우승자 박상현을 비롯해 막판에야 뜨거워진 샷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강경남(29·우리투자증권)도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우승 후보들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1) 허균과 김육

    [선택! 역사를 갈랐다] (11) 허균과 김육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1569~1618)과 대동법의 주창자 김육(1580~1658). 임진왜란 전에 연이어 태어나고 한 세대 이상의 차이로 생을 마감한 두 사람은, 서로 교분은 없었지만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다.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허균은 조숙한 천재로 이름을 날렸으나 이단아, 괴물로 비난받다가 50세에 반역죄로 죽었다. 몰락한 가문 출신인 김육은 4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70세에 정승이 되었고, 조선을 대표하는 명재상의 반열에 들었다. 두 사람의 희비가 엇갈린 것은 시대가 그만큼 격동하였기 때문이었다. 낡은 질서가 균열하고 새 살이 돋아날 때 지식인은 현실 변화를 모색한다. 그 점에서 그들은 출발점을 공유했다. 그러나 여정과 도달점은 너무나 달랐다. 새로운 질서가 모색되던 시기, 그들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남겼는가. ●시인의 감성 vs 경세가의 의지 허균은 최고의 명문가 출생이었다. 부친 허엽과 맏형 허성은 동인(東人)의 영수로 활약했고, 둘째형 허봉은 관료와 시인으로 유명했다. 누님 허난설헌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시인이다. 화려한 가문의 정수를 허균은 모두 흡수했다. 26세에 문과에 급제했고, 당대를 주름잡던 시인 이달에게 시를 배우고 마침내 뛰어넘었다. 그는 시평에도 탁월하였다. 명나라의 뛰어난 문사 주지번(朱之蕃)과 시를 화답하고 조선의 시를 소개하는 감식안을 두고, 신흠 같은 문장가 또한 “이 자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의 정령이 변한 것이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천재 시인 허균은 분방한 기질 때문에 평생을 비난받았다. 귀양지에서 그는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다신다는 뜻의 ‘도문대작’을 짓는다. 사대부가 팔도의 진미를 소개하는 일도 드문 일인데, 그는 한 술 더 떠 “식욕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조관기행’이란 글에서는 기생들과의 만남과 놀았던 일까지 솔직히 고백하였다. 그는 도덕 아래 가려 있던 인간의 감성과 욕망, 그 즐거움을 가식 없이 내보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가 마주한 조선, 전쟁의 참화를 겪고 주자학을 재건 이데올로기로 선택한 조선의 상황은 그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비정한 현실일 뿐이었다. 김육은 몰락한 가문 출신이었다. 고조부 김식이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자결한 뒤로 가문은 한미해졌다. 부친과 모친마저 임진왜란 전후에 사망하였기에 그는 고모부에게 의지하며 컸다. 26세에 문과 초시에 합격하고 성균관 유생이 되었으나, 광해군이 신임하는 정인홍을 비판한 일 때문에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서 관직에 오를 희망을 접어야 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영영 재야에 남아 있었을지도 몰랐다. 앞날을 예감할 수는 없었지만, 김육의 내면에는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중요한 씨앗이 심어져 있었다. 그는 어릴 적 ‘소학’을 읽다가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고 타인을 구제한다는 ‘애물제인’(愛物濟人)이란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게 되었다. 훗날 그는 “애물은 인(仁)에 근본하고, 제인은 의(義)에 근본하고, 의혹을 푸는 일은 지(智)에 근본한다.”고 정리하였다. 어짊에 기반한 사랑, 바름에 기반한 헌신, 그리고 앎에 기반한 판단을 사람의 본성으로 보았던 그는 사랑에 기초해서 전개되는 구체적인 개혁과 실천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편력하는 이무기 vs 기다리는 잠룡 허균의 호는 교산(蛟山)이다. 자신이 태어난 강릉 인근에 이무기(蛟)가 출현해서 생긴 지명에서 땄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분방한 행동은 당시 기준으로는 비상식적이었기에 그에게는 의례 비방이 따라다녔다. 요망한 자, 천지간의 괴물, 인륜을 어지럽힌 자, 금수 등이었다. 사상의 편력 또한 행실에 못지않았다. 사명당을 비롯한 승려들과 두루 사귀고 도가 수련에도 빠졌으며, 서학과 천주교까지 접하였다. 비판에 대한 허균의 대항 논리는 명쾌하였다. “남녀 간의 정욕은 하늘이 주신 것이요, 인륜은 성인의 가르침이다. 하늘이 성인보다 높으니 차라리 성인의 가르침을 어길지언정 하늘이 내려주신 본성을 어길 수 없다.”고 했다. 자연스러움을 최고 기준으로 내세우는 그의 논리에서, 성인이 내세우는 도덕과 사회 기강은 근본을 거슬러 재규정하는 일에 불과했다. 임진왜란 이후 주자학을 통해 사회를 재구축하던 긴박한 시대에서 그런 논리는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이중 삼중으로 비판받는 허균은 명분에 얽매인 이들에게 경고했다. 그대들은 명분을 앞세워 하늘이 내린 재주 있는 자들을 배척하고 있다(‘유재론’). 재주 있는 자가 한 번 호령하면 원망을 품은 백성과 숨죽여 있던 이들까지 동조하여 가장 무서운 세력이 된다(‘호민론’). 하늘 아래 평등한 인민이란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녔던 그는 주류에서 이탈한 비주류, 조선에서는 결코 용이 될 수 없는 그야말로 이무기였다. 김육의 호는 잠곡(潛谷)이다. 출사의 길이 막혀버린 34세, 농사지으러 내려간 경기도 가평의 잠곡이 그의 호가 되었다. 처음에는 거처할 곳이 없어 굴을 파고 나무를 대충 얽어 지냈다고 한다. 당시 생활을 보여주는 기록은 거의 없지만, 그가 여기서 농민들과 어울리고 노동의 질고를 체험하였음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소탈한 농사꾼 김육은, 서울에서 간혹 귀한 이가 찾아와도 입던 옷 그대로, 하던 일 그대로 맞이하였다. 가문에는 전설 같은 일화도 전한다. 농한기에는 숯을 구워 서울에 가 팔았는데, 새벽에 동대문을 열면 맨 처음 들어오는 숯장수가 그였다고 한다. 은거한 지 3년째 김육은 회정당(晦靜堂)이란 작은 집을 지었다. 그런데 ‘어둡고 고요하다’(晦靜)는 이름에 담긴 뜻이 의미심장하다. 후배 장유는 그 뜻을 이렇게 풀었다. “군자는 험난한 상황에서 천하를 경륜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곤궁한 생활도 달게 여긴다. 소리를 거두고 빛을 갈무리하니 그가 있는지도 모른다. 급기야 기운이 무르익어 움직이면 산악을 흔들고 하늘을 밝히니 그 기세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기회는 오게 마련이다. 회정당에서 세상을 나갈 때를 기다리며 곤궁을 달게 여기는 김육은 때를 기다리는 잠룡이었다. ●홍길동의 꿈 vs 안민(安民)의 현실 허균은 감성에만 빠진 시인이 아니었다. 서얼, 천민과 스스럼없이 사귀었던 그는 그들의 희생에 값하는 지도층의 책임을 누구보다 강조하였다. 특히 정치의 잘잘못에 대한 국왕의 책임을 무섭게 걸고 넘어갔다. 주자학자들이 국왕의 마음가짐을 강조하며 결과에 대한 검증을 모호하게 흐렸던 데 반해, 그는 정치·경제·국방 등 결과를 검증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당시 현실에서 그 책임에 답할 사람을 과연 찾을 수 있었을까. 없다면 남은 길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자기가 탈출하거나 아니면 판을 새로 짜는 것이다. 현실에 저항하다 탈출하여 새 질서를 세우는 허균의 염원은 모두 ‘홍길동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꿈에 불과했다. 현실의 그에게는 탈출할 율도국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따르던 7인의 서자(庶子)가 역적으로 몰리자 극적인 변신을 꾀한다. 인목대비를 폐하려는 광해군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국왕의 측근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제자 기준격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하여 그는 전격적으로 능치처사되었다. 허균이 왕조의 전복을 정말로 꾀했는지는 미스터리다. 말년의 변신은 꿈을 접고 권력에 아부했던 모습일 수도, 아니면 반역을 위한 극적인 변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반역에 성공했을지라도 그가 꿈 꾼 평등은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것이었다. 신분의 완전 철폐는 그로부터 3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김육의 관운은 인조반정 이후에 순탄하게 풀렸다. 새 정부가 특별 기용하였고 문과에도 급제하였다. 출발은 늦었지만, 그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개혁책을 건의하였고 차근차근 실현하였다. 그가 일생 심혈을 기울인 개혁은 대동법의 확대 시행이었다. 세금 제도를 바꾸어 민생을 도모하는 대동법을 삼남에 확대하는 일은, 그가 우의정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행되었다. 김육은 대동법 말고도 여러 방면에서 민생과 복리를 위해 노력하였다. 병자호란 직후에는 ‘구황벽온방’이란 의서를 간행하여 기근과 돌림병을 막고자 하였다. 수차와 수레를 사용하여 생산력을 높이려 했고, 은광을 개발하고 점포를 설치하여 상공업을 진흥하려 했고, 도시에서 화폐를 유통하고 전국으로 확대하여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꾀했다. 그 주장들은 후대에 대부분 실현되었다. 시대를 선도할 수 있었던 그의 저력은 민생을 중심에 놓고 이념과 실질을 적절히 운용한 데 있었다. ●이상의 대동, 현실의 대동 유학의 경전 ‘예기’에는 차별 없이 모두가 행복한 대동 사회가 그려져 있다. 이 소박한 이상은 고대, 중세의 개혁·혁명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였고, 현대의 민주주의·사회주의·공산주의와도 결합하여 변화의 불을 댕겼다. 17세기 초 조선의 갈림길을 두고 허균과 김육이 대동 세계를 기획한 것은 같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갔다. 허균은 거침없는 비판으로 위선을 폭로했고, 때론 일탈과 파격을 피하지 않았다. 김육은 현실에 충실했고 구체적인 실천에 주력했다. 허균이 하늘을 보며 세상을 뛰쳐나갈 때, 김육은 땅을 보며 세상 속으로 가라앉았다. “예절과 가르침이 어찌 자유를 구속하리오, 인생의 부침 다만 정(情)에 맡길 뿐. 그대들은 그대들의 법을 쓰시게, 나는 나대로의 삶을 이루겠으니.”(허균, ‘문파관작’) “성인의 법은 백성들에게 은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어리석고 생각이 얕아 학문이 어떠한 것인지 잘 모른다. 오로지 바라는 바는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일처리를 실질적으로 하는 것이니, 절약하여 백성을 아끼고 부역과 세금을 줄이는 것이다. 공허한 것을 추구하며 뜬구름 잡는 글은 숭상하고 싶지 않다.”(김육, ‘호서대동절목서’) 급진적인 평등을 꿈꾸며 자유롭게 인생을 편력한 허균도 매력적이지만, 노동 중에 묵묵히 인생의 도리를 깨친 김육의 통찰 또한 저력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선택을 앞에 둔 우리는 허균을 가슴 속에, 김육을 머릿속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이경구(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의 두 얼굴/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글로벌 시대의 두 얼굴/장홍 프랑스 알자스주정부 개발청 자문위원

    칭기즈칸은 당시 최상의 파발마를 갈아타며 몽골에서 유럽까지 가는 데 무려 6개월이나 걸렸다고 한다. 오늘날 비행기를 타면 인천에서 파리까지 12시간이면 도착한다. 전화나 인터넷 공간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현대 과학이 낳은 놀랄 만한 축지법이라 하겠다. 국내 상황으로 보아도 어느새 국제결혼이 가장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농촌에서부터 새로운 풍습으로 자리잡았고, 국내 거주 외국인은 100만명을 넘었다. 매년 2000만명이 넘는 코리안들이 외국 여행을 떠난다. 이렇게 우리는 지구촌 시대를 나날이 실감하며 살고 있으며, 동시에 타문화와의 만남과 교류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장애나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작게는 언어나 제스처의 문제에서부터 크게는 역사나 종교의 상이한 배경에서 비롯되는 것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다. 글로벌의 특성은 외형상 모든 것이 서로 닮아가는 것이다. 서울, 도쿄, 뉴욕, 파리와 같은 대도시 젊은이들의 겉모습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의 삶의 형태도 유사하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해볼 수 있다. 세계화는 곧 단일화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문화적 상이성의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것 같다. 우리는 두 가지 병행적인, 그러나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기술과 생산수단은 물론 생활습관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수렴이 진행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문화적 차별화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관찰한다. 이는 각 사회의 가치 기준이나 개인의 동기 분야에서는 물론이고 이따금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지나친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으로 간주될 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행동이 급진화되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문화적 상이성은 기회나 가능성으로보다는 장애물 내지는 위협으로까지 간주되며, 스스로를 외부 문화의 위협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 고유의 정체성에 대한 강한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타문화와 다를 수밖에 없는 자기 고유의 문화에 집착하는 아주 부정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타문화 이해를 위한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일까? 우선 열린 마음과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이다. 즉, 다른 문화를 장애물이나 충돌의 요인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과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편견과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는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타문화에 대한 존중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어떤 문화든 그것이 형성된 여러 복합적이고 특수한 환경과 역사가 존재하기에,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충분하고, 또 바로 그런 이유로 존중되어야 한다. 특히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과정에서 자기 고유의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리매김, 즉 자기 자신을 또 다른 시각과 차원에서 성찰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문화란 박물관에 원형대로 보존해야 하는 유물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꾸준히 변화 발전하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 문화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접근과 인식은 충돌보다는 상호이해를 가능케 해주는 공존의 공간을 마련해 준다. 내 것만이 최고라는 폐쇄적인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다.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은 외견상으로 여러 가지 기준이나 생활양식 등의 보편화를 필수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다. 내부적으로는 문화적 차별화나 정체성의 확립에 대한 노력이 병행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외형적 보편화와 문화적 차별화가 어떤 함수관계로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구촌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각자의 상황과 이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타문화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것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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