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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를부탁해]남북정상의 진한 인사는 ‘형제의 포옹’이었다

    [뉴스를부탁해]남북정상의 진한 인사는 ‘형제의 포옹’이었다

    스위스 유학파라서 볼 뽀뽀 ‘비쥬’?동지애·우정 상징하는 ‘형제의 포옹’김정은, 2번 만난 시진핑과는 포옹 안 해김정일은 2000년 남북회담 때 DJ와 포옹‘40년 우정’ 김일성과 덩샤오핑도…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지난 26일 토요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렸습니다.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핫라인(직통전화) 통화도 건너뛰고 한 달 만에 다시 성사된 남북 정상의 만남에 전 세계가 놀라워했습니다.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2시간가량 회담이 끝난 뒤 남측으로 돌아가는 문 대통령을 환송했습니다. 온 얼굴에 환한 웃음을 피운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손을 잡았다가 그것만으론 안 되겠다는 듯 와락 문 대통령을 안았습니다.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번갈아가며 3번을 포옹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미처 예상치 못한 김 위원장의 인사에 당황한 듯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따뜻한 포옹을 나눴습니다. 언론들은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프랑스에서 유래한 인사법인 비쥬(Bisous·볼 뽀뽀)로 문 대통령에 친근함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비쥬는 상대방과 양쪽 볼을 번갈아 맞대는 인사법입니다. 뺨에다 입을 맞추진 않고 입으로만 ‘쪽’ 소리를 내는 것이 예의입니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 비쥬를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혈연관계나 친한 친구 사이에서 주로 하는 친밀함의 표현입니다. 남자들끼리는 비쥬를 거의 하지 않지만, 격의 없이 친한 사이에서는 하기도 한답니다.오른쪽 볼부터 시작해 왼쪽 볼까지 각 1번씩 2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비쥬이지만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스위스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3번 이상 볼 키스를 하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3번 포옹하는 비쥬 인사를 한 것은 김 위원장이 어릴 때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공부한 유학파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지난 기사와 사진, 동영상 자료를 뒤적여봤습니다. 그 결과 김 위원장이 스위스 유학파여서 포옹 인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하나씩 차근히 설명해보겠습니다. 김 위원장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베일에 싸인 은둔의 지도자였습니다. 2012년 공식 집권 이후 6년간 북한 밖을 벗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만난 외국 정상은 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2명뿐입니다.올 들어 2번 북·중 정상회담을 가진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공식석상에서 악수만 했을 뿐 포옹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3월 26일 김 위원장이 특별열차 편으로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그리고 지난 7~8일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서 2차 북·중 회담을 가졌을 때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방송이 공개한 편집 영상에서 두 정상은 여러 차례 만나 3~5초간 양손을 포개어 잡고 있긴 했지만 그 이상의 스킨십은 없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떠날 때에도 담백하게 악수만 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습니다. 김 위원장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지난 2일 방북했을 때,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두 차례 평양을 찾았을 때에도 악수로 맞이하고 배웅한 바 있습니다. 볼 키스나 포옹 등의 친밀한 표현은 조선중앙TV 영상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그런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잇달아 세 번 껴안았으니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지나친 해석은 아닐 겁니다. 일부에서는 남북 정상의 별명을 들어 ‘이니(문 대통령의 애칭) 삼촌’과 ‘으니(김 위원장을 지칭) 조카’의 애정표현이라고 하더군요. 실제 삼촌과 조카뻘만큼 나이 차(31세)가 나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비쥬식 포옹을 나눴습니다. 판문점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기념 촬영을 위해 잡은 손을 위로 들어 올렸던 남북 정상은 문 대통령의 제의로 2번 연달아 포옹했습니다.역대 북한 최고지도자들의 포옹 인사는 자주 있었던 일입니다. 김 위원장의 선친인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조부인 김일성 국가주석도 동맹국가 정상들과 만날 때 진한 포옹으로 우정을 과시했습니다. 김정일 전 위원장을 먼저 예로 들어볼까요. 2000년 6월 13일,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습니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김정일 전 위원장이 직접 맞이했습니다. 붉은색 꽃 장식을 흔드는 평양시민들과 도열한 북한군 의장대를 배경으로 두 정상이 환한 얼굴로 손을 마주 잡고 오랫동안 흔들었던 장면이 아마 가장 먼저 떠올리실 겁니다.2박 3일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김 전 대통령이 서울로 돌아갈 때, 두 남북 정상은 세 번 연속 포옹 했습니다. 김정일 전 위원장은 “또 만납시다”라며 김 전 대통령을 떠나 보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세 번 껴안으며 뺨을 맞대는 인사로 친밀함을 과시했고,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서도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김일성 전 주석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 중국 최고지도자와 교류했는데 역시 진한 세 번 포옹으로 우정을 쌓았습니다. 특히 김 전 주석과 덩샤오핑 전 주석과의 관계는 조선중앙TV가 제작한 기록영화를 보면 매우 특별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1953년 이후 1991년까지 수십 차례 만날 때마다 포옹 인사를 나눴습니다. 김 전 주석은 41차례 중국을 방문했고, 덩 전 주석은 5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했습니다.중국의 시사주간지 ‘세계지식’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은 1991년 10월 5일이었는데 구순을 앞두고 공직을 떠난 덩 전 주석은 만나자마자 김 전 주석을 뜨겁게 포옹하며 오랜 친구를 반갑게 맞이했다고 합니다. 특히 두 사람은 그냥 포옹만 하지 않고 뺨과 뺨을 맞대는 비쥬식 인사도 했습니다. 김 전 주석이 1994년 7월 사망하고 덩 전 주석이 2년 뒤인 1997년 2월 세상을 떠나면서 두 사람의 각별한 우정도 끝을 맺었습니다. 이전에도 북한 지도자들이 포옹이라는 외교적 인사를 통해 다른 국가 정상과 우애를 표현한 점에 미뤄볼 때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껴안은 것은 스위스 유학파여서라기보다는 선대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한 장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독일 베를린의 동쪽에 있는 벽화 말입니다. 중년의 서양남성 두 사람이 진하게 입을 맞추는 모습을 그래피티로 표현한 ‘신이시여, 이 치명적인 사랑에서 저를 구원하소서’(My God, Help Me to Survive This Deadly Love)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1979년 10월 초 동독 정권 수립 30주년을 맞아 동독을 방문한 뒤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과 반가운 나머지 키스로 인사한 장면을 그린 것이지요. 볼 키스와 포옹은 사회주의 국가권의 독특한 인사입니다. ‘형제의 키스’(fraternal kiss) 또는 ‘형제의 포옹’(fraternal embrace)이라고 부릅니다. 공산주의 국가 정상들이 특별한 유대관계를 드러내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동지애를 표현할 때 쓰는 인사법입니다. 형제의 키스는 양쪽 뺨을 번갈아가며 3번 맞대는 행동입니다. 볼에 입을 맞추지는 않지만 아주 예외적으로 정말 가까운 사이라면 볼에 입을 맞추기도 한답니다. 형제의 포옹은 3번의 진한 포옹을 뜻하는데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가며 하되 볼을 맞대지는 않습니다. 이 방법은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 정상들이 주로 쓰는 인사법입니다. 냉전기간 중국, 북한 등 아시아 사회주의권 국가 정상들이 유럽, 쿠바처럼 스킨십 문화가 있는 정상들과 교류하면서 형제의 포옹은 받아들이되 볼 키스는 뺐다는 게 대체적인 추측입니다. 1990년대 들어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하면서 형제의 키스 문화는 사라졌지만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에는 이런 풍습이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형제의 키스 또는 형제의 포옹은 19세기 중반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유산계급을 상대로 벌인 험난하고 외로운 투쟁과정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동지애를 표현하는 특별한 의미를 담은 인사였던 것입니다. 평등과 형제애, 연대와 결속의 상징을 뜻하는 형제의 포옹은 유럽식 인사법인 비쥬와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김 위원장이 ‘형제의 포옹’을 문 대통령과 나눴다는 것은 남북이 그만큼 이념을 뛰어넘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어쩌면 ‘혈맹’ 관계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보다 더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친구 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했던 문 대통령의 담화가 ‘형제의 포옹’으로 한껏 더 와 닿습니다. 우리는 세계 평화와 한반도 비핵화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역사적인 만남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정대로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인사를 나누게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서울광장] 100년 마라톤 뛰는 중국/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100년 마라톤 뛰는 중국/최광숙 논설위원

    두 달 전 상가에서 만난 한 전직 고위공직자가 “앞으로 우리 자식 세대들은 중국인들 발마사지나 하면서 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중국이 막강한 자본과 풍부한 인재풀을 기반으로 우리의 첨단기술을 맹추격하면서 핵심 산업에서 양국 격차가 점점 좁혀지고 있지만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는 얘기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데도 그런 걱정을 할 정도로 이제 중국의 위협은 현실로 다가온다. 지난달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반도체 제조업에 뛰어든다고 선언한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중국 정부가 2014년 1차 반도체 투자 펀드(약 24조원)를 조성한 데 이어 최근 약 51조원 규모의 펀드를 추가 조성하기로 한 것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4차 산업혁명의 요체인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중국에 밀릴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선제투자를 많이 한 데다 최근 10년 AI 논문 수만 봐도 중국이 선두를 달린다. 앞으로 3년간 10만명의 AI 인재 육성책까지 나왔다. 5년 뒤 최강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 중이다. 어디 그뿐인가. 정치·경제·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입지가 탄탄하다. 향후 수십년 동안 벌어질지도 모를 에너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천연자원 확보에도 사활을 걸 만큼 미래 지향적 행보를 하고 있다. 그러니 1972년 닉슨·마오쩌둥 회담 이후 중국이 개방 경제의 길을 가도록 경제·군사적 지원 등을 아끼지 않았던 미국마저도 이제는 중국을 견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미국이 중국의 통신 제조업체 ZTE에 대해 앞으로 7년간 미국 기업과의 거래 금지령을 내린 것도 이란·북한에 대한 수출 금지령을 위반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이나 실상은 중국의 5세대 통신(5G) 경쟁력을 의식한 미국의 견제구다. 아예 중국이 더이상 치고 오지 못하도록 싹을 자르겠다는 심사다. 1975년 1인당 평균 소득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에 속했던 중국이 어떻게 미국과 맞짱을 뜰 정도로 급부상했을까. 마이클 필스버리는 저서 ‘백년의 마라톤’에서 “중국의 경제 기적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진핑 등 그의 후계자들이 아편전쟁에서 패했던 치욕을 잊지 않고 서구 열강을 꺾어 다시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백년 마라톤 대장정’에 기인한다”고 했다. 필스버리는 닉슨부터 오바마 대통령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의 대중국 외교 전략을 자문했던 중국 전문가다. 그는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설립한 1949년부터 100년이 되는 2049년까지 미국을 무너뜨려 세계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원대한 계획 아래 치밀한 행보를 해 왔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경제 기적을 이루긴 했어도 선진국에 진입하지 못한 채 이제 중국에 쫓기는 신세가 됐다. 수출 효자인 반도체도 수입국인 중국이 자국산 반도체 양산 체제에 들어가면 당장 우리 반도체 산업은 물론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것이다. 반도체 이후 미래의 먹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지만 아직도 ‘포스트 반도체’가 안 보인다. 중국처럼 원대한 꿈과 비전을 갖고 멀리 내다보는 정책을 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근시안적 땜질식 처방만 난무한다. AI 기술의 선점을 위해 미국·중국 등이 한창 열을 올릴 때 뒷짐 지고 있다가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전을 보고서야 뒤늦게 AI 대책들을 쏟아내는 식이다. 최근 정부가 AI 연구개발(R&D)에 5년간 2조여원을 투입한다고 밝혔지만 지난 정부가 내놓은 재탕을 넘어서지 못한다. 선도자의 자세는 보이지 않고 빠른 추격자의 모습만 있다. 정권과 관계없이 긴 호흡으로 국가 발전을 위한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어 흔들리지 않고 매진해도 경쟁국을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정권 5년마다 제각각 새 역점 사업들을 내놓으면 관료들은 새 사업에 앞장서고, 정부 출연연구기관 역시 일사불란하게 발맞춘다. 다른 나라보다 한 박자 늦은 정책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는 국가 연구개발도 정권 따라 춤을 춘다. 이제 우리도 중국처럼 100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10, 20년 앞이라도 내다보고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bori@seoul.co.kr
  • 끈끈한 물밑협상, 냉전종식 이끈 산책…세기의 담판에 ‘답’ 있다

    끈끈한 물밑협상, 냉전종식 이끈 산책…세기의 담판에 ‘답’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여는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킬 세기의 담판이 될지 주목된다. 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자 한반도 분단을 초래한 냉전 체제는 그 시작부터 종식까지 사실상 정상회담의 역사로 이어진다. 현대사의 주요 길목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주요 회담을 돌아보고 한 달 남은 북·미 회담의 성공을 가늠해 본다.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미국, 영국, 소련 등 3대 연합국 수뇌부는 러시아 크림반도의 휴양도시 얄타에 모여 종전과 전후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이 회담에서 당시 패전을 앞둔 독일을 분할 점령할 것과 소련의 대일본 전쟁 참전 문제 등을 논의했다. ●마지막 남은 ‘냉전의 섬’ 한반도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시 개발 중이던 원자폭탄의 효능을 확신하지 못했던 만큼 스탈린 서기장에게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해 줄 것을 요청했고, 스탈린 서기장은 독일이 항복한 뒤 2~3개월 내 대일전에 참전할 것을 약속했다. 결국 이 회담을 바탕으로 소련군이 같은 해 8월 일본을 공격하고 한반도로 남하하면서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을 분할 점령하는 계기가 조성된 셈이다. 남북 분단을 초래한 얄타회담은 소련이 동유럽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서방세계와의 냉전이 시작된 계기로 평가된다.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전 중국 국가주석 간의 첫 미·중 정상회담은 폐쇄적 공산국가였던 중국을 국제사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이끌어 이번 북·미 정상회담과 유사하다. 이를 계기로 6·25전쟁 이후 냉랭했던 미국과 중국 관계가 개선되고 미국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임으로써 1979년 미·중 수교로까지 이어졌다. 북한 지도자와 처음으로 만나는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중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닉슨 전 대통령과 비교되기도 한다. 두 정상의 만남은 당시 중국과 손잡고 소련을 견제하려던 닉슨 대통령과 당시 소련과의 영토 분쟁에서 패하고 문화대혁명 여파로 국내외적 비난에 직면한 마오 주석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물이나 실무진의 끈끈한 물밑 협상 덕에 가능했다. 회담 전년도(1971년)에 미국 탁구팀이 중국을 방문해 경기를 가진 것(핑퐁 외교)을 계기로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을 극비 방문해 양국의 물밑 접촉이 개시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을 두 차례 방문해 김 위원장과 만난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키신저 물밑접촉, 폼페이오·김정은 만남과 닮은꼴 김 위원장의 경우 당시 마오 주석처럼 정상 국가의 지도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완전히 핵포기라는 결단을 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반면 핵 포기 없이는 ‘비이성적 독재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에 봉착했다. 1985년 11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제네바 미·소 정상회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소 정상회담은 소련이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미국은 1984년부터 소련 핵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하겠다는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해 언제 핵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정세 속에서 6년 만에 이뤄졌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난 양국 정상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산책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도착하자마자 “신선한 공기를 좀 마시자”며 산책을 제안했고, 두 정상은 통역사만 대동한 채 한 시간 반 동안 제네바 호숫가를 따라 걸었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도보다리 산책’이 떠오른다. 양국 정상은 당시 군비통제 협상을 촉진시키고 후속 정상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이듬해인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전략 핵무기 50% 감축 등에 합의하고, 1987년에는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을 맺는 등 냉전 종식의 기반을 마련한 계기가 됐다. 이 밖에 1989년 12월 ‘몰타 미·소 정상회담’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종식에 쐐기를 박고 미·소 양극 체제의 종언을 알린 회담으로 평가된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9년 12월 지중해의 몰타 해역 선상에서 만나 1945년 얄타회담 이후 지속된 냉전 체제를 종식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한다고 역사적인 선언을 했다. 양국 정상은 동유럽의 민주화와 시장경제 체제로의 이행에 대해 소련이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합의했고, 전략핵무기와 화학무기 감축에 동의했다. 이 회담은 여러 현안에 대해 원칙적 의견을 교환했고 구체적 협의는 다음으로 미뤘으나 냉전을 종식시킨 상징적 의미가 있다.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로 동독 공산 정권이 위기에 처하고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가 동독에 자유 총선을 제의하면서 이듬해인 1990년 10월 동·서독이 통일됐다. 1991년에는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개혁·개방에 대한 반발로 인한 쿠데타가 실패한 뒤 경제 실패와 군비 경쟁으로 가뜩이나 구심력이 약화됐던 소련 체제가 붕괴해 미국은 단일 패권국가로 올라서게 된다. ●‘통일 독일’ 되기까지 美·소련 합의 결정적 주목할 만한 것은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분단국가였던 서독과 동독이 통일 이전까지 모두 7차례의 공식 정상회담과 6차례의 비공식 정상 간 접촉을 실시해 상호 신뢰를 다졌다는 점이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가 1970년 만난 이래 양측은 1972년 12월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해 평화공존의 발판을 마련했다. 통일 독일이 되기까지 미국과 소련의 합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서도 종전선언의 당사자가 되는 미국과 중국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점과 양상이 비슷하다. 다음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과 북한 체제 안전 보장의 수준 등 구체적 실행계획과 시점에 대한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외교 문법보다 거래의 본능에 충실한 트럼프 대통령,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과감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의 김 위원장, 그리고 적극적인 중재 노력을 펼치는 문재인 대통령 등 3자 간 ‘궁합’에 의해 열리는 회담인 만큼 73년에 걸친 한반도 냉전체제가 해체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역대 北·中 비밀회담 장소로 사용…2010년엔 김정일-리커창 회동도

    역대 北·中 비밀회담 장소로 사용…2010년엔 김정일-리커창 회동도

    방추이다오는 중국 랴오둥(遼東)반도 끝 부분에 있는 다롄시 동쪽 외곽의 해변 휴양지로 수려한 경관 덕에 ‘북방의 진주’로 불린다. 작은 섬에 조성한 리조트는 다롄 앞바다에서 여러 개의 다리로 연결됐다. 주위가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만큼 경호 및 언론 차단이 쉽다. 김일성, 김정일 등 역대 북한 지도자의 북·중 비밀회담 장소나 중국 지도자의 휴양지로 사용됐다.2010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곳에서 리커창(李克强) 당시 부총리와 회동했다. 1951년 건립된 게스트하우스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휴가 때 자주 들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중국의 첫 국산 항공모함인 001A의 시험 운항 행사 참석차 다롄에 방문했다. 001A는 현재 러시아산을 고쳐 운항 중인 중국의 유일한 항모 랴오닝함에 이어 중국이 처음 자체 제작한 것으로, 지난해 4월 다롄 조선소에서 진수식을 가졌다. 지난 5일 001A에서 수송용 헬기 이착륙 훈련이 시행됐고, 랴오닝성 해사국이 군사 임무를 이유로 4~11일 보하이해협과 서해 북부 해역의 선박 진입을 금지했다. 아직 정식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001A의 일거수일투족은 전 중국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국가원수급’ 삼엄 경계 다롄 방추이다오는···김정은 방문하면 ‘3대 인연’

    ‘국가원수급’ 삼엄 경계 다롄 방추이다오는···김정은 방문하면 ‘3대 인연’

    북한 고위급 인사가 7일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시 방추이다오 섬이 관심을 끌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미국의 대북 압박 메시지로 인해 북한과 미국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북한 최고위급 인사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다롄 시내에서 방추이다오로 이어지는 모든 도로들은 공안들에 의해 차단된 상태로 알려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다례으로 이동했다. 이에 따라 국가원수급의 삼엄한 경계가 펼쳐지고 있다. 방추이다오는 중국 랴오둥(遼東) 반도 끝 부분에 있는 다롄시 동쪽 외곽의 해변 휴양지로, AAAA급 국가공인 경구(관광지)이다. 수려한 경관 덕에 ‘북방의 진주’로 불리는 다롄에서 가장 좋은 해수욕장 가운데 한 곳으로 500m 길이의 모래사장을 갖췄고 다롄 앞바다에서 여러 개의 다리로 연결된 작은 섬 리조트가 조성됐다. 1951년 이곳에 건립된 게스트하우스 빌라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휴가차 자주 들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알려졌다. 섬으로 연결되는 다리를 봉쇄하면 외부 침입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안상 안전하다. 이에 역대 중국 지도부와 외국 정상급 지도자들의 회동 장소로 애용됐다.특히 북중 비밀 회담이 열리던 섬으로, 김일성 전 주석과 덩샤오핑(鄧小平) 등 중국 지도부가 은밀히 회동하던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0년 5월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다롄을 방문,방추이다오에서 리커창(李克强) 당시 부총리와 만찬 및 회동해 주목받았다. 이 때문에 이번에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고위급 인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일 경우 선친과 인연 있는 장소를 둘러본 셈이다. 현지 소식통은 “북한 고위급 인사의 다롄 방문설에 이어 방추이다오에 대한 중국 측 보안이 매우 강화돼 이곳에 숙박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방중 인사의 동선과 관련해 열차역, 공항과 더불어 주시할 만한 장소”라고 평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사망설’ 마오쩌둥 손자, 공식석상서 인증샷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마오쩌둥(毛澤東)의 친손자 마오신위(毛新宇)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홍콩 명보는 마오신위가 중국의 국영 조선업체인 중국선박공업집단(CSSC)에 지난 4일 방문해 시스템 공정 연구소 등을 둘러봤다고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마오신위는 단체 사진에서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맨 왼쪽에 섰다.지난달 22일 북한에서 32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사망한 대형 교통사고로 마오도 사망했다는 소문이 홍콩 언론과 중국의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격히 퍼졌다. 중국과 북한 당국이 사망자 명단을 발표하지 않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속죄’한다는 표현을 쓰며 직접 사고 처리에 나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사망설이 보도되자 마오신위의 친척들이 그가 교통사고가 일어날 당시 베이징에 있었다고 증언했는데 이번 사진으로 사망설이 일단락됐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사진설명] 지난달 22일 북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

    지난달 22일 북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마오쩌둥의 친손자 마오신위(맨 왼쪽)가 지난 4일 중국 베이징의 국영 조선업체 중국선박공업집단(CSSC)을 방문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고 홍콩 명보가 6일 보도했다. 중국선박공업집단 홈페이지 캡처
  • ‘北 사망설’ 마오쩌둥 손자, 공식석상서 인증샷

    ‘北 사망설’ 마오쩌둥 손자, 공식석상서 인증샷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마오쩌둥(毛澤東)의 친손자 마오신위(毛新宇)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홍콩 명보는 마오신위가 중국의 국영 조선업체인 중국선박공업집단(CSSC)에 지난 4일 방문해 시스템 공정 연구소 등을 둘러봤다고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마오신위는 단체 사진에서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맨 왼쪽에 섰다.지난달 22일 북한에서 32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사망한 대형 교통사고로 마오도 사망했다는 소문이 홍콩 언론과 중국의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격히 퍼졌다. 중국과 북한 당국이 사망자 명단을 발표하지 않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속죄’한다는 표현을 쓰며 직접 사고 처리에 나선 것이 결정적이었다. 사망설이 보도되자 마오신위의 친척들이 그가 교통사고가 일어날 당시 베이징에 있었다고 증언했는데 이번 사진으로 사망설이 일단락됐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열린세상] 김정은의 대중국 발언을 주시하는 이유/서상문 환동해미래연구원장

    [열린세상] 김정은의 대중국 발언을 주시하는 이유/서상문 환동해미래연구원장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의 길을 빨리 걸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지난달 방중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새로운 전략적 노선으로 나아가기로 결단했다면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한 말이다. 방북한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에게도 중국의 경험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을 중국식 개혁ㆍ개방정책을 취하겠다는 의미로 들어도 될까. 남북 통일은 자본주의를 적대시하는 주체사상과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물과 기름 같은 이질적인 이념 문제가 해소돼야 가능한데, 갈 길이 먼 장도의 출발점에 선 지금 김정은 발언의 진정성과 속내가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행보로는 김 위원장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자 하는 진정성이 읽힌다. 올해 신년사에서 그가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고, 지난 남북 정상회담 때 평화의집 방명록에도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라고 서명한 점도 그렇다. 이는 2016년 제7기 조선노동당대회 결정문에서 암시됐듯 이 갑작스런 임기응변은 아닌 듯하다. 북한이 처한 국내외 정세와 김정은의 언행으로 봐선 그는 베트남 모델이 아닌 일부 중국식 경제 시스템을 답습해 북한식 경제개혁 노선, 즉 주체사상을 구현한 “우리식 경제관리방법”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중국의 개혁ㆍ개방 때와 유사한 행보를 걷고 있는 점이 그 근거의 하나다. 1978년 12월 통과된 중국 ‘제11계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공보’에는 경제관리체제와 경영관리방법의 ‘개혁’이 제시됐을 뿐 ‘개방’이라는 자구는 없었다. 개방 의지로 해석될 대목으로 자립갱생의 기초 위에 세계 각국과 평등하고 상호 이익을 얻는 경제협력을 적극 발전시키며, 세계 선진기술과 선진설비 채용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북한도 지난 4월 20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의 사회주의경제 건설노선 의정보고에서 김정은은 ‘개혁’과 ‘개방’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개혁ㆍ개방이라는 말이 없다고 해서 북한이 개혁ㆍ개방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덩샤오핑 등 중국의 새 지도부는 사회주의 개조의 기본이 완성되면 당 노선의 중점을 경제와 기술혁명에 두기로 한 마오쩌둥의 구상대로 국정 운영의 중심 과제를 정치 과다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전환시켰다. 김정은도 2013년 3월 자신이 국정 목표로 제시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이 승리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 노선의 종료 선언과 동시에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노선으로 전환했다. 중국 개혁ㆍ개방 당시 사회주의 개조의 기초 완성처럼 김정은에게 노선 전환의 조건은 핵보유국이다. 이는 핵 보유가 “경제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이라는 선대의 유훈과 일치한다. 또 개혁ㆍ개방 정책 전환 시 덩샤오핑이 그랬듯이 김정은도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의 강조와 함께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정보화, 과학화”의 실현과 국가 건설의 기초이며 국력을 결정할 과학과 교육을 강조했다. 과학은 1945년 이후 김일성이 남한의 기술자와 지식인을 데려오라고 지시한 바 있듯이 북한의 주요 과제이며, 교육은 고난의 행군과 핵개발에 올인함에 따라 무상교육 체제가 붕괴된 것을 염두에 둔 결의였다. 김정은의 중국 모델 선택은 미국 주도의 봉쇄에 직면해 외부 세계, 국제 체제와의 단절로 인한 고립이 더 지속될 경우 북한 내부의 억제된 분출 욕구가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다 무역의존도가 90%를 넘고 있는 중국이 아니면 미국 견제는 물론 미국을 대신해 핵포기 반대급부로 경제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주체사상과 자력자강을 고수하며, 민주집중제의 집단지도체제로 나아간 중국과 달리 김정은 개인 권력을 강화할 것이다.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3자가 절묘하게 얽힌 시운에 즉응해 자의든, 타의든 어차피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중국을 뒷배로 해서 그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겠다는 게 김정은의 속내로 보인다.
  • 마오쩌둥 손자 북한서 교통사고 사망설은 ‘가짜뉴스’

    마오쩌둥 손자 북한서 교통사고 사망설은 ‘가짜뉴스’

    마오쩌둥의 친손자인 마오신위가 지난달 22일 북한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포함됐다는 보도는 ‘가짜 뉴스’라는 반박 보도가 중국 현지언론으로 부터 나왔다.홍콩 성도일보는 2일 마오쩌둥의 당질녀인 마오샤오칭에게 웨이신(위챗)으로 확인한 결과 “사망설은 거짓이며, 마오신위는 북한에 가지도 않았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 화교의 중문매체인 세계일보가 전한 사망설은 32명의 중국인 사망자 다수가 한국전쟁 참전군인의 자녀였고, 여기에 마오신위도 포함돼 있다는 내용으로 중화권 매체들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마오신위는 마오쩌둥의 차남인 마오안칭의 외아들로 마오쩌둥의 유일한 적손이다. 2010년 40세의 나이에 중국 최연소 군 장성으로 승진해 중국 군사과학원 전략연구부 부부장 등을 지냈다. 교통사고는 이들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전쟁에서 숨진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이 묻혀있는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사망자 묘역’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당시 사고 수습 과정에서 사망자 시신과 부상자를 후송하는 전용 열차를 편성한 뒤 25일 평양역을 출발할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열차에 올라 침통한 표정으로 전송하기도 했다. 성도일보는 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마오신위는 중국 인민해방군 소장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인해 단체관광으로 북한을 방문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中관광객 北교통사고 때 마오쩌둥 친손자 사망說

    中관광객 北교통사고 때 마오쩌둥 친손자 사망說

    中 사망·부상자 명단 미공개 중요한 인물 사망 의혹 커져 지난달 22일 북한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로 마오쩌둥(毛澤東)의 유일한 친손자인 마오신위(毛新宇·48)가 사망했다는 설이 중국에서 위챗을 통해 퍼지고 있다.중국과 북한 당국이 사망 32명, 부상 2명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가운데 프랑스 공영 국제라디오방송(RFI) 중문판은 1일 “사고 직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병원에 입원한 생존자와 주북 중국 대사관을 직접 찾아가 애도를 표현했는데 이와 대조적으로 중국 당국은 인명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있고 쉬쉬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대대적으로 부상자를 위로하고 베이징으로 가는 사상자 수송 열차를 직접 평양역에서 점검하는 등 사죄와 애도를 표시한 것은 단순히 북·중 관계의 급속한 온도 상승 때문만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특히 인도주의자가 아닌 김 위원장이 중국 희생자들을 극진히 애도한 것은 단순히 예우 차원이나 북·중 우호를 과시하기 위한 게 아니라 사망자에 중요 인물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마오신위는 마오쩌둥과 그의 두 번째 부인 양카이후이(楊開慧)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3형제 가운데 차남의 아들이다. 큰아버지의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오던 마오신위가 북한에서 사망했다면 마오쩌둥의 자손이 2대에 걸쳐 북한에서 죽음을 맞는 셈이 된다. 마오신위는 인민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한 뒤 군에 입대해 2010년 7월 40세의 나이에 중국 최연소 군 장성이 됐지만 지난해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대표에 포함되지 못했다. 생전에 5차례 북한을 방문했으며 1986년과 1990년 김일성 주석을 접견했다. 이번에 사망한 중국인들은 단순 관광객이 아니라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극좌주의자들로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 묘소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 전복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혈맹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평안남도 회창군의 마오안잉 묘소를 방문한 이들은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중국의 좌파 사이트 우유즈샹(烏有之鄕·유토피아) 산하의 싱훠여행이 모집한 홍색관광단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참전용사의 자손들로 북한의 개방에 대비한 중국의 사업가들이 포함됐다는 설도 있다. 사고를 당한 중국 관광객은 ‘항미원조(6·25전쟁의 중국식 명칭) 승리 65주년 기념’이란 이름으로 조직된 여행 상품에 참여 중이었다. 우유즈샹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통해 미국에 대항하는 것을 중국이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단체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마오쩌둥 손자’ 마오신위, 북한 교통사고 사망설

    ‘마오쩌둥 손자’ 마오신위, 북한 교통사고 사망설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인 마오쩌둥의 손자인 마오신위가 최근 북한에서 발생한 대형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1일 중화권 매체들은 미국 화교 중문매체 세계일보를 인용해 지난달 22일 북에서 발생한 32명의 중국인 사망자 대부분이 한국전쟁 참전군인의 자녀였으며 여기에 마오신위도 포함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마오신위는 마오쩌둥의 차남인 마오안칭의 외아들이다. 마오쩌둥의 유일한 적손으로 2010년 40세의 나이에 중국 최연소 군장성으로 승진했다. 중국 군사과학원 전략연구부 부부장 등을 지냈다. 북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이 묻힌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사망자 묘역’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마오신위가 큰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고자 북한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마오쩌둥의 자손은 2대에 걸쳐 한반도에서 숨지게 된 셈이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 당국은 사상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도 이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어 마오신위 사망설의 진위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한 중국 소식통은 “이 정도 인사의 사망 소식을 일주일간 감추는 일이 쉽지 않고 중국 당국이 마오신위 사망을 숨길 이유도 크게 없다”고 말했다. 중국 사정에 정통한 국내의 한 외교소식통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마오신위가 2006년부터 (참배에) 몇차례 참석한 적은 있었으나 이번에는 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마오신위 사망설은 사고 사망자들에 대한 북한의 이례적인 예우와 신속한 처리로 인해 증폭되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속죄합니다” 김정은 파격 사과… 김일성·김정일과 다른 행보 북한은 당시 사고 수습 과정에서 사망자 시신과 부상자를 후송하는 전용 열차를 편성한 뒤 25일 평양역을 출발할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열차에 올라 침통한 표정으로 전송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오쩌둥 친손자, 북한에 묻힌 큰아버지 묘소 다녀오다 사망”

    “마오쩌둥 친손자, 북한에 묻힌 큰아버지 묘소 다녀오다 사망”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의 유일한 친손자인 마오신위(毛新宇·48)가 지난달 22일 황해북도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1일 한겨레는 프랑스 공영 국제라디오방송 중문판(RFI)을 인용, 마오신위가 한국전쟁에서 숨진 큰아버지 마오안잉의 묘소를 다녀오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고 전했다. 마오신위의 사망이 확인되면 마오쩌둥의 자손이 2대에 걸쳐 한반도에서 숨진 것이 된다. 마오신위는 2010년 7월 40세의 나이에 중국 최연소 군장성으로 승진해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 군사과학원 전략연구부 부부장 직함을 갖고 있었다. 2012년 18차 당대회의 대표로 피선됐던 그는 관례에 따라 2차례 대표 임기를 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 돌연 19차 당대회 대표 자격을 잃었다. 그는 마오쩌둥의 차남 마오안청(毛岸靑)의 외아들이다. 마오신위를 포함해 이 여행에 참가한 중국인들은 ‘항미원조(중국의 한국전 참전) 전쟁 승리 65주년 중국 조선(북) 방문 문화교류단’이란 이름으로 북한에 방문했으며 사망자 32명 명단에는 중국 좌파 누리집인 ‘홍가회’의 왕궈쥔 단장, 다이청 명예단장 등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고 다음날인 23일 평양의 중국대사관을 찾아 위문의 뜻을 밝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 “중국 동지들에게 그 어떤 말과 위로나 보상으로도 가실수 없는 아픔을 준데 대하여 깊이 속죄한다”며 위로를 보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사망자 주검과 부상자를 후송하는 전용 열차를 편성한 뒤, 25일 평양역을 출발할 때 직접 열차에 올라 송별하는 등 극진한 예를 갖춰 이목을 끌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죄합니다” 김정은 파격 사과… 김일성·김정일과 다른 행보

    “속죄합니다” 김정은 파격 사과… 김일성·김정일과 다른 행보

    中관광객 교통사고에 위로전문 솔직·대담한 스타일 더 부각돼 5년전 아파트 붕괴때도 사과 지시 “속죄합니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황해북도 교통사고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숨진 것과 관련해 25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에게 보낸 위로전문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대외적으로 이런 직적접인 용어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적이 없어 솔직하면서도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북한은 그간 최고지도자의 ‘무오류’(無誤謬)를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발생한 교통사고는 버스 전복으로 중국인 관광객 3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들은 평안남도 회창군에 안치된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 묘소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이들 중국 관광객은 ‘항미원조(6·25전쟁의 중국식 명칭) 승리 65주년 기념’이란 이름으로 조직된 여행상품에 참여 중이었다. 김 위원장은 위로전문에서 “우리 땅에서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이라며 “중국 동지들에게 그 어떤 말과 위로나 보상으로도 가실 수 없는 아픔을 준 데 대하여 깊이 속죄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사전에서 ‘속죄’(贖罪)의 뜻은 남한의 사전적 의미와 다르지 않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속죄라는 단어를 주로 일본을 겨냥해 식민통치 시기 만행에 대한 행동을 요구할 때 사용해 왔다. 사실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잘못을 인정하는 데 매우 인색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최고지도자의 ‘무오류’를 주장해 온 북한의 관행으로 볼 때 현안 해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시인해야 하는 때에도 변명 수준의 언급을 하며 ‘유감’을 표시하는 정도에 그쳐 왔다. 김정은 집권 이후 그의 솔직하고 파격적인 발언과 행보가 눈길을 끌어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내부적으로 잘못된 행태나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공개적으로 비판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과감히 사과하도록 해왔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남측 예술단의 1일 첫날 평양 공연에서 남측 취재단의 공연장 입장이 제한돼 논란이 되자 김영철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찾아와 기자들에게 사과했다. 김 위원장의 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로 평가된다. 2014년에는 평양 도심에서 아파트 붕괴로 대형 인명 사고가 발생하자 시공 책임자인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주민들 앞에 직접 나서서 사과하도록 하고 이를 노동신문에 전격 공개했다. 집권 7년째인 김정은 위원장의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커가면서 그의 파격적 행보의 수위는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3월 남측 특사단으로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던 한 남측 대표단원은 김 위원장에 대해 “솔직하고 대담하더라”고 평했다. 한 고위층 탈북자는 “자신의 무오류성을 중시했던 김정일 위원장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과 체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 스타일”이라며 “어쩌면 핵을 포기하고 경제건설 총력에 나선 현재의 전략도 김정은 위원장이어서 가능한 것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북한 김정은, 교통사고로 숨진 중국인 관광객들 기차역까지 배웅

    북한 김정은, 교통사고로 숨진 중국인 관광객들 기차역까지 배웅

    조선중앙방송은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중국인 관광객 32명의 시신과 부상자를 후송하기 위한 전용열차를 편성하도록 하고, 평양역에 직접 나가 전송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평양역에서 “자신과 우리 당과 정부가 이번 사고를 놓고 책임을 통절히 느끼고 있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해 중국 동지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밝히고, 위문 전문과 위문금을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시신 운반준비상태를 돌아보고 열차에 올라 부상자들을 병원에 이어 또다시 만나 위로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에게 보내는 위문 전문은 “전체 조선인은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하여 친혈육이 당한 피해로 여기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다”는 내용이다. 지난 22일 저녁 황해북도 봉산군에서 중국인 단체 관광객 등이 탄 버스가 전복돼 중국인 3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는데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 묘소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북중혈맹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평안남도 회창군의 마오인잉 묘소를 방문한 이들은 마오쩌둥을 추종하는 중국의 좌파 사이트 우유즈샹(烏有之鄕·유토피아) 산하의 싱훠(星火)여행이 모집한 홍색관광단이라고 홍콩 성도일보는 26일 보도했다. 이들 중국 관광객은 ‘항미원조(6·25전쟁의 중국식 명칭) 승리 65주년 기념’이란 이름으로 조직된 여행상품에 참여 중이었으며 사망자 중에는 우유즈샹 편집인이자 싱훠여행 대표도 포함돼 있었다. 2003년 베이징에서 설립된 우유즈샹은 2010년부터 해외 홍색관광을 조직하다가 2015년 싱훠여행을 차려 이를 수익 사업화했다. 좌파학자인 쿵칭둥(孔慶東) 베이징대 교수는 이번 여행이 싱훠여행사의 주선으로 이뤄졌다고 확인했다. 싱훠여행이 지난달 모집한 이번 북한 관광상품은 정원 30명에 판매가 5990위안(102만원)으로 18일 랴오닝성 단둥에서 출발해 7일간 북한 내 중국 관련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우유즈샹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통해 미국에 대항하는 것을 중국이 지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단체라고 소개했다. 북미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중국 관광객 교통사고 수습에 최고 지도자가 직접 나서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2년 기준 연간 북한을 찾는 중국인 숫자는 23만 7000명이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북중 정상회담에 등장한 마오타이주, 시진핑 때문에 멸종될 뻔한 사연

    북중 정상회담에 등장한 마오타이주, 시진핑 때문에 멸종될 뻔한 사연

    중국의 국보급 술인 마오타이주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방중 만찬에 등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오타이주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꼽히는 브랜드로 한 병에 2억원이 넘는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처음으로 중국을 찾은 김 위원장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마오타이주는 수수(고량)를 원료로 하는 중국 구이저우성의 특산 증류주다. 향이 강한 독주로 마오쩌둥이 사랑한 술로 유명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시 주석은 최고급 술인 마오타이주와 전쟁을 벌였던 장본인이다. 부패와 사치의 상징으로 낙인찍힌 마오타이주는 술값이 반토막으로 떨어지고 매출이 급감하는 등 최대 위기를 맞았다. 시 주석은 최고 권력을 손에 넣자마자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시 주석은 중국 공산당 총서기였던 2012년 12월 허례허식과 사치풍조를 없애는 ‘8대 업무관행’을 발표했다. 고급술을 마시고 행사장을 성대하게 꾸미는 호화 연회가 금지됐다.군부와 각 지방정부는 군인과 공무원에 사실상 금주령을 내렸다. 상납과 뇌물용으로 쓰이던 마오타이주는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마오타이주 업체의 연 매출의 절반은 정부나 정부를 상대하는 기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반부패 정책으로 마오타이 회사 주가가 폭락해 시가총액 2조원이 한방에 날아가기도 했다. 2012년 초만해도 한 병에 38만원선에 거래되던 ‘페이톈 마오타이’의 가격은 2014년 29만원으로 떨어지더니 2015년에는 14만원까지 내리기도 했다.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 대접한 마오타이주는 아이쭈이 장핑 브랜드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중문판에 따르면 중국 온라인몰에서 540㎖ 한병에 128만 위안(약 2억 1715만원)에 거래되는 술이다.장핑 마오타이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생산됐던 희귀주로 황갈색의 독특한 병 디자인으로 같은 기간에 만들어진 다른 마오타이주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피로 짜낸 술’이라며 지나친 사치라고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후난성의 변호사 천이쉬안는 북중 정상 간의 만찬에서 사용된 비용과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신청을 국무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넷에 김정은 접대에 사용한 술의 시세가 128만 위안에 이른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가 만찬 비용과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시론]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의 계산법/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의 계산법/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남북 정상회담 합의는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예상할 수 있었다. 이미 두 차례나 해 본 경험도 있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합의는 경천동지할 만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 수령과 미국 대통령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역사적 사건임이 틀림없다. 남북과 북·미의 연이은 정상회담이 성공할지 여부는 사실 북·미 정상회담에 달려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잘돼도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하면 한반도는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면 남북 정상회담은 당연히 성공한 것이고 비핵 평화의 한반도가 시작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은 역사적 상상력이 현실화된다면 가능해 보인다. 김정은과 트럼프의 사진 한 컷에 머물지 않고 2차대전 이후 동북아 냉전 체제의 마지막 유산이 제거되는 국제정치적 지각변동으로 나아간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적 사건을 넘어 대사변이 될 만하다. 1972년 닉슨과 마오쩌둥의 정상회담은 20세기 동북아 질서에서 가장 획기적 역사였다. 미·중 정상회담은 동서 냉전의 새로운 질서 재편이었고 동북아 국제정치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마찬가지로 2018년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이 21세기 동북아 질서 재편의 획기적 사건이 된다면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북한이 친미 국가가 되고 미국이 북한을 정상국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상상력에서만 가능한 현실이다. 1970년대 중국은 ‘양탄일성’(원자탄·수소탄 및 인공위성)전략에 따라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준비했고 미국은 미·소 냉전 승리를 위해 중국을 견인하는 게 필요했다. 김정은도 양탄일성을 전제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트럼프에게 북한은 절실하게 필요치 않다. 자국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에 급급한 트럼프가 북한을 견인해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적 선택까지 고민할 이유가 없다. 미국의 국가전략상 북한은 1970년대 중국처럼 매력적이지도 않다. 북·미 정상회담에 상상력 동원은 가능하지만 상상력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실적인 북·미 정상회담은 김정은의 핵포기 결단과 트럼프의 관계개선 약속의 교환이다. 이는 리비아 모델에 가깝다. 카다피가 핵포기를 결단하고 그 대가로 제재해제와 대미 관계개선을 얻었던 방식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리비아 모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김정은에게는 핵보유도 인정받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성공한 파키스탄 모델이 최상이다. 김정은은 카다피가 핵을 포기하고 시민봉기로 죽음을 당한 리비아 모델과 핵이 없어 미국의 군사공격에 후세인이 죽음을 당한 이라크 모델의 결말을 잘 알고 있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북한의 공식 논리는 일관된다. 결국 핵포기와 관계개선이라는 리비아 모델을 김정은이 수용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북·미 정상회담에 기대가 쏟아지지만 우려가 상존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김정은의 전략적 양보를 얻어 내고 이를 바탕으로 트럼프의 결단을 끌어내려 할 것이다. 즉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조건을 만들어 내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지금껏 두 번의 남북 정상회담을 감안하면 이 역시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은 끈질긴 한·미 공조 노력으로 한·미 간 대북 정책의 완전한 일치를 확보하고 나서야 평양으로 갔던 게 성공 요인이었다. 노무현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은 끈질긴 북핵 협상으로 북·미 간 북핵 문제 진전을 이루고 나서야 평양으로 갈 수 있었다. 전면적 한·미 공조와 가시적 북핵 진전이라는 필요조건이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시켰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는 완전히 역순의 과감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우선 성사시킴으로써 이를 통해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고 트럼프 정부를 변화시켜 한·미 공조를 얻어 내겠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새롭고 창의적 접근이지만 현실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성공을 기대하지만 실패도 준비해야 한다.
  • 김정은 방중설에 ‘중국을 믿지 마라’ 김일성 유훈 다시 주목

    김정은 방중설에 ‘중국을 믿지 마라’ 김일성 유훈 다시 주목

    북한 최고위급이 그간 소원해졌던 중국을 전격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 김일성 주석이 과거 중국을 겨냥해 한 발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김일성의 발언 요지는 ‘중국을 믿지 마라’는 뜻으로 전해졌다.지난 1월 5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것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현재 북한이 겪고 있는 고난이 중국의 배신 때문이라는 식으로 주민교양을 했다. 경제난으로 일상생활에서 큰 불편으로 원망이 높아지는 여론을 돌리기 위해 모든 책임을 중국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당시 이에 대해“지난해 12월 중앙의 지시로 열린 청진의 동 단위 여성연맹회의에서 한 간부가 ‘일본은 백년 숙적, 중국은 천년 숙적’이라고 발언하자 참석자들이 술렁였다”고 전했다. ‘일본은 백년 숙적, 중국은 천년 숙적’이란 말은 김일성이 자신의 후계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우방인 중국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발언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이어 “여기서 말하는 주변국이 중국임을 북한 주민들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좋지 않지만 오랫동안 혈맹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에 대해 절대 믿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김일성은 누구보다 중국 지도부의 속내를 잘 아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이 참전하면서 북한을 구원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종전 직후 북한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에서 김일성에 반기들 든 연안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개입은 김일성의 감정을 건드렸다. 연안파는 중국과 매우 가까운 인사들이었다. 당시 마오쩌둥 중국 주석도 북한의 옛 동지들이 체포되거나 당에서 쫓겨나자 김일성을 겨냥, “스탈린과 다를 게 없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단 한마디도 듣기 싫어한다. 상대가 누구건 반대만 하면 무조건 죽여 없애려 한다”고 직접 비난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오는 이 사태를 해결하고자 한국전쟁 참전 중국군 사령관이었던 팽덕회를 평양에 파견했다. 이를 두고 과거 청나라가 병자호란 당시 조선을 유린한 용골대를 조선 왕조 특사로 파견했던 것과 비교되기도 했다. 팽덕회는 김일성이 내친 연안파 모두를 중국으로 데려왔다. 그런 중국을 경계한 김일성이 자신의 경험을 후계자였던 김정일에게 전했고, 김정일 역시 북한 통치 기간 측근들에게 중국을 믿으면 안 된다고 줄 곧 강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도 중국과 가까운 인물이었던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당시 중국은 장성택의 처형을 반대하며 중국 주재 대사관과 대북 핫라인을 통해 이같은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56년 김일성의 연안파 숙청과 달리 중국은 장성택의 처형을 막지 못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씨줄날줄] 시진핑·푸틴의 브로맨스/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시진핑·푸틴의 브로맨스/최광숙 논설위원

    마오쩌둥이 공산당을 창당하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소련 스탈린 덕이 컸다. 마오쩌둥이 의심 많은 스탈린을 안심시키기 위해 고통을 감내했던 스탈린의 ‘순종적인 학생’이자 ‘충실한 추종자’였던 이유다. 하지만 스탈린 사후 1950년대 말부터 중·소 간에는 공산주의 이념의 정통성과 헤게모니를 놓고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급기야 1969년 중·소 국경 지대에서 양국 간 군사 충돌이 일어났다. 양국은 전면전까지 염두에 두었으나 소련의 군사적 패권을 우려한 미국의 개입으로 확전은 피했다. 마오쩌둥은 이를 계기로 소련과의 관계 재정립에 나섰다. 기존의 ‘반(反)서방’ 태도에서 벗어나 서방과 새로운 제휴를 맺고자 했다. 1972년 당시 미국 대통령 닉슨을 베이징으로 초대해 마오·닉슨 정상회담을 한 배경이다. 냉전시대 적과 적이 손을 잡는 순간이었다. 마오쩌둥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소련을 견제하려고 했고, 닉슨은 중·소 간의 분열을 틈타 소련의 힘을 빼고자 했다. 두 나라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중국은 미국에 문호를 개방하기에 이른다. 과거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경제발전을 했던 중국이 소련을 버리고 미국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소원했던 중·러시아가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케미(궁합)가 너무 잘 맞아 두 사람의 브로맨스(남성들 간의 친밀한 관계)가 화제가 될 정도다. 최근 4선 도전에 성공한 푸틴 대통령과 국가주석 3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는 개헌안을 통과시킨 시 주석은 서로 전화와 축전을 보내며 각자의 장기 집권을 축하했다. 이들은 지난해 5번 회동 등 지금까지 20번 넘게 만나며 우의를 다지고 있다. “중·러 관계는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 “성격이 서로 닮았다”는 덕담도 나눴다고 한다. 실제 두 사람은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정적 제거를 서슴지 않고 후계자를 용납하지 않는 스타일까지 닮았다. 세계를 지배하겠다는 ‘패권욕’도 막상막하다. ‘중국몽’과 ‘강한 러시아’를 내세우는 이들의 끈끈한 연대에는 서방국가의 침략에 대한 공포와 설욕도 깔려 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으로부터 시작해 구소련 붕괴까지 겪은 러시아는 서구의 침략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중국 역시 아편전쟁 이후 서방에 대해 강한 공포가 있다. 중·러 스트롱맨의 의기 투합은 결국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신냉전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 북핵으로 골머리를 앓는 한반도 문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 [사설] ‘강국 건설’ 기치로 절대권력 회귀하는 중·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집권 4기에 성공했다. 푸틴은 그제 치러진 대선에서 득표율 76%로 이변 없이 승리해 2024년까지 임기가 연장됐다. 2000년부터 대통령 세 차례, 총리 한 차례에 이어 총 24년간 집권하는 것이다. 하루 전인 지난 17일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만장일치로 국가주석과 중앙군사위 주석에 재선출됐다. 국가주석 3연임 제한 규정을 없애는 개헌을 통해 종신 집권 가능성의 문을 연 시 주석은 이날 최측근인 왕치산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국가부주석으로 복귀시켜 친정체제를 가속화했다. 각각 31년, 27년 장기 집권한 이오시프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1인 독재 시대로 역주행하는 모양새다. 푸틴과 시진핑, 두 지도자는 공통으로 ‘강국 건설’을 명분 삼아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을 구축해 왔다. 푸틴은 ‘위대한 러시아의 부활’, 시진핑은 ‘중국몽’이란 이름으로 자국의 위상을 높여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를 위해선 인권과 법치, 언론의 자유 같은 민주적 가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방식도 닮았다. 러시아가 대규모 군 개혁과 현대화에 집중하고, 중국이 매년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는 이유도 따로 있지 않다. 두 나라가 부국강병과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할수록 주변국과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러시아는 영국 내 이중 스파이 암살 의혹 사건과 관련해 영국을 비롯한 서방국들과 격돌하고 있다. 중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정책 최우선으로 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안보와 통상에서 한 치 양보 없는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세 강대국 스트롱맨의 예측 불가능한 근육 자랑이 자칫 세계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1인 장기집권 체제 부활은 한반도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권력기반 구축을 마무리한 두 나라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북핵 협상 과정에 개입할 것이란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가 어제 사설에서 “북·중 우호 관계를 한·미·일이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한반도 급변 상황에서 ‘중국 패싱’에 대한 초조감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일본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 추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고도의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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