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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박병한(전 대보건설 부사장)씨 별세, 윤종필(제20대 국회의원)씨 남편상, 박근문(한국마사회 과장)·선희씨 부친상, 최선규(메디코디 대표이사)씨 장인상, 윤자원(네이버 근무)씨 시부상 = 5일 분당서울대병원, 발인 7일. (031)787-1503 ●구희지씨 별세, 김영규(전 에스넷주식회사 본부장)씨 모친상, 민남홍(전 씨앤에스텔레콤 대표이사)씨 장모상, 민동환(카카오모빌리티 부장)씨 외조모상 = 5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7일. 070-7816-0246
  • ‘윤석열 절친’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경북대병원’, 고객만족도 ‘낙제점’

    ‘윤석열 절친’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경북대병원’, 고객만족도 ‘낙제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근무한 경북대병원이 정부의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정 후보자는 의사 생활 대부분 경북대병원에 몸담았고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제38대 경북대병원장을 역임했다. 기획재정부는 12일 2021년도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 품질을 향상하고자 서비스를 받은 고객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는 설문조사다. 올해 조사에서는 공기업 25개, 준정부기관 92개, 기타공공기관 128개 등 총 245개 공공기관이 대상이 됐다. 평가 등급은 ‘우수’, ‘보통’, ‘미흡’ 3단계로 나뉜다. 고객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는 ‘미흡’ 평가를 받은 기관에는 정 후보자가 병원장을 지낸 경북대병원을 비롯해 경북대치과병원,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충남대병원, 전북대병원, 경상대병원 등 대학병원이 상당수 이름을 올렸다. 의료기관이 코로나19 대응에 나서면서 일반 고객들이 이용에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북대병원 등은 지난해 조사에서는 코로나19로 현장 조사가 불가능해 달성도 평가 제외 기관으로 선정됐다. 공기업 중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한국전력공사, 한국마사회, 한국석유공사, 한국도로공사, 한국공항공사, 한국조폐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SR 등 11개 기관이 ‘미흡’ 평가를 받았다. 준정부기관 중에는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소비자원, 한국교통안전공단,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연구재단,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43개 기관이 낙제점을 받았다.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공영홈쇼핑, 국립암센터, 국악방송 등도 ‘미흡’으로 평가됐다. 고객만족도 ‘우수’ 기관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부동산원, 한국수자원공사, 국립공원공단, 국민연금공단, 도로교통공단, 신용보증기금,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41개 공공기관이 선정됐다. 특히 부산항만공사, 인천항만공사, 한국수자원공사, 국민연금공단,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무역보험공사 등은 3년 연속 우수기관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정부는 고객만족도 조사 결과를 2021년도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 반영하고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알리오)에 공시할 예정이다. ‘미흡’ 평가를 받은 기관에 대해서는 대국민 서비스 개선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분기별 이행실적을 점검할 계획이다.
  • 전북 숙원 새만금 개발, 인수위 TF 특별과제 됐다

    전북 숙원 새만금 개발, 인수위 TF 특별과제 됐다

    전북의 숙원인 새만금개발사업이 차기 정부에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6일 전북도에 따르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는 최근 전체회의를 열고 TF형 특별과제로 ‘새만금’을 선정했다. 지역균형발전특위는 ‘새만금 발전 기획단’을 구성해 속도감 있는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새만금 발전 기획단은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 새만금 특별위원회 대통령 직속 설치, 새만금 특별회계, 국제투자진흥지구 도입, 새만금 국제공항 조기 착공, 새만금 그린수소 생산 클러스터 구축 등을 통해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조성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새만금에 축구장 500배 넓이의 야생 동식물 서식지가 추가 조성되는 생태환경용지 2단계 사업도 추진된다. 2단계 사업은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1호 방조제 옆 관광레저용지 주변에 2027년까지 국비 2288억원을 투자해 3.57㎢ 규모로 조성된다. 새만금 기본계획상 환경생태용지는 2050년까지 총 49.8㎢를 조성하도록 계획됐다. 전북혁신도시의 5배 넓이로 사업비는 약 1조 1511억 원이다. 4단계로 나눠 추진하도록 구상됐다. 인수위가 한국마사회를 새만금으로 이전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지역균형발전특위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전 후보기관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마사회를 새만금으로 옮기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경전북도민회 등은 경기 과천 서울 경마장의 새만금 이전을 제안했으나, 인수위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방침과 맞물리면서 마사회 본사 이전으로까지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차기 정부서 탄력 받는 새만금 개발

    차기 정부서 탄력 받는 새만금 개발

    전북의 숙원인 새만금개발사업이 차기 정부에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6일 전북도에 따르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는 최근 3차 전체회의를 열고 TF형 특별과제로 ‘새만금’을 선정했다. 지역균형발전특위는 TF 형식의 ‘새만금 발전 기획단’을 구성해 속도감 있는 새만금개발사업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새만금 발전 기획단은 새만금 메가시티 조성, 새만금 특별위원회 대통령 직속 설치, 새만금 특별회계, 국제투자진흥지구 도입, 새만금 국제공항 조기 착공, 새만금 그린수소 생산 클러스터 구축 등을 통해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조성하는 방안을 마련한다.새만금에 축구장 500배 넓이의 야생 동식물 서식지가 추가 조성되는 생태환경용지 2단계 사업도 추진된다. 2단계 사업은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1호 방조제 옆 관광레저용지 주변에 2027년까지 국비 2288억원을 투자해 3.57㎢ 규모로 조성된다. 이곳에는 야생 동식물 서식지, 자연생태섬, 염생식물천이지, 국제생태환경체험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2단계 사업이 완공되면 인간과 야생 동식물이 공존하는 쉼터이자, 수질 정화 기능과 완충녹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새만금 기본계획상 환경생태용지는 오는 2050년까지 총 49.8㎢를 조성하도록 계획됐다. 전북혁신도시 5배 넓이로 사업비는 약 1조 1511억 원이다. 4단계로 나눠 추진하도록 구상됐다. 1단계 사업은 지난해 8월 부안군 하서면 장신리 일원에 준공돼 현재 시범 운영중이다. 면적은 0.79㎢, 축구장 약 100배 정도다. 인수위가 한국마사회를 새만금으로 이전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는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이전 후보기관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마사회를 새만금으로 옮기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사회 새만금 이전은 재경 전북도민회 등이 최근 인수위 측에 건의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재경 전북도민회는 경기 과천 서울 경마장의 새만금 이전을 제안했으나, 인수위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방침과 맞물리면서 마사회 본사 이전으로까지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전북도와 새만금개발청 등은 새만금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관광레저 용지에 마사회의 경마장을 유치하는 방안을 제안해 왔다.
  •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이정재·가상인간 ‘로지’ 앞장

    2030 부산 엑스포 유치… 이정재·가상인간 ‘로지’ 앞장

    2030 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 신청 국가들의 유치 경쟁이 시작된 가운데 부산시는 28일 국내외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는 지난달부터 서울역 대형 옥외광고판을 이용해 부산 유치 홍보를 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엑스포 유치가 부산만의 현안이 아닌 대한민국의 기회라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앞으로도 집중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외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뉴욕과 런던시민에게 엑스포 부산 유치를 알리고자 지난달 18일부터 뉴욕 타임스스퀘어와 런던 피커딜리 광장 두 곳의 LG전자 전광판에 부산 유치 홍보 영상을 띄우고 있다. 지난 1월 16일에는 2020 엑스포가 열리는 두바이에서 ‘한국의 날’ 행사를 개최해 호응을 얻었다. 지난 4일에는 제5차 한·아프리카 포럼에 참석한 주요 외교 장차관급 인사 40여명을 초청해 지원을 요청했다. 시는 두바이엑스포 폐막 하루 전인 30일 열리는 바이데이(BIE DAY)에 이병진 행정부시장 등을 보낸다. 2030 엑스포 2호 홍보대사로 위촉된 가상인간 ‘로지’도 이날 위촉식을 가진 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인사가 된 1호 홍보대사 배우 이정재와 함께 유치 열기를 끌어올리는 활동에 나섰다. 지역 상공계, 시민단체, 대학생, 한국마사회 등도 힘을 보탠다. 마사회는 지난 17일 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경마장 대형스크린 3곳과 전국 사업장에 설치된 TV 1만 3000대 등에 유치 홍보 영상을 내보내기로 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2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엑스포 유치를 위한 전담팀이 구성돼 유치전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고 말했다. 2030 엑스포 개최지는 이르면 올해 말 국제박람회기구 현지 실사를 거쳐 내년 11월 170개 회원국 투표로 결정된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사설] 정권 말기 ‘알박기 인사’, 끝까지 내로남불인가

    [사설] 정권 말기 ‘알박기 인사’, 끝까지 내로남불인가

    정권 이양기에 여권·친정부 인사에 대한 ‘알박기 임명’이 줄을 잇는다. 지난 10일 한국가스안전공사 상임감사에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이 임명됐고, 지난달에는 김제남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으로, 윤형중 전 국정원 1차장이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정기환 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은 한국마사회 회장으로 갔다. 해당 기관의 업무 전문성이 없거나 새 정부의 국정 방향과 안 맞는 인사들이다. 낙하산 인사 관행의 고리를 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과 역행하는 내로남불식 인사가 아닐 수 없다.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면서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공기관 350곳의 67%인 234곳의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다. 이 때문에 윤석열 당선인이 올해 임명할 수 있는 공공기관장 자리는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가스공사 등 4곳에 불과하다. 차기 정부로서는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전문성이나 새 정부 국정 방향과 거리가 먼 기관장으로 인한 공공기관의 비효율적 업무 처리는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임기 도중 사직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환경부 산하 기관 임원들에게 사직을 종용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공공기관장들에게 사직을 강요하기란 사실상 어렵다. 정부는 당선인 취임 때까지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를 중단해야 한다. 그래야 “차기 정부가 국정 공백 없이 안정적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대통령 방침에도 부합한다. 새 정부에서도 정권 교체기마다 되풀이되는 낙하산 인사 논란을 어떤 식으로든 매듭짓기 바란다.
  • 공부 말고 말 편자·가죽·일러스트… 내 삶의 ‘대체불가 기술’이 됐다 [청춘기록]

    공부 말고 말 편자·가죽·일러스트… 내 삶의 ‘대체불가 기술’이 됐다 [청춘기록]

    취업이라고 하면 흔히 대학을 졸업해 대기업 사무직에 종사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직업의 세계가 있다. 일찌감치 적성을 찾아 아예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기술을 배우는 사람도 있고, 직장을 다니다가도 사무직에 답답함을 느껴 기술직으로 눈을 돌린 사람도 있다. 자신의 노력 외에도 스펙이나 시험문제 하나에 성패가 갈리는 여느 취업 시장과 달리 기술은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결과가 나온다.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돈을 벌 수 있어 기술직을 선택했다는 세 청년의 삶을 들여다봤다.●도제식 교육 5년…100명의 자부심 전남 장흥에서 말의 편자를 만들고 관리하는 장제사 주승태(26)씨는 중학생 때 특성화고인 한국말산업고등학교 홍보를 통해 장제사라는 직업을 처음 접했다. 장제사가 편자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단숨에 매료된 그는 장제사가 되기 위해 한국말산업고로 진학하고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혼자 일하기까지는 5년의 시간이 걸렸다. 주씨는 6일 “장제사가 되려면 스승 아래서 도제식 교육을 받으면서 기본 5년 이상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 역시 19세 때 본격적으로 장제 실습을 시작해 4년간 도제 교육을 받았고, 이후 한국마사회에서 6개월가량 장제교육과정을 밟은 뒤 1년가량 더 기술을 익힌 후에야 현재 운영하는 장제 업체 ‘클리닉’을 열 수 있었다. 말의 보행을 관찰하면서 말굽을 깎고 여기에 딱 맞는 편자를 제작하는 일이 장제사가 하는 일이다. 말 한 마리당 4개의 편자를 교체하는 데는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린다. 초기에는 말이 잘 걷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 말굽을 깎아 주려다 뒷발에 채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주씨는 “편자 작업을 할 때 말이 발을 차기도 하는데, 이때 놀라서 차는 것인지 공격하려는 것인지 파악해야 한다”면서 “말을 돌보기 시작한 지 10년쯤 되니까 이제는 말의 모습만 봐도 성격이 보인다”고 했다. 일 욕심이 많은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하루에 7~10마리의 말 편자를 관리한다. 연간 수익을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억대 연봉’이라고 귀띔해 준 그는 “저보다 기술이 좋은 분들은 기술료가 더 높다”면서 “전국에 장제사가 100명도 안 되는데 그중 한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크다. 앞으로도 말이 더 잘 뛸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진입장벽 높지만 경쟁 적은 가죽공예 서울 은평구에서 3년째 가죽공예 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다혜(27)씨는 2019년 대학 사업단에서 일하다 8개월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남들은 ‘꿀직장’이라며 부러워하던 곳을 박차고 나온 가장 큰 이유에 대해 김씨는 “다른 사람으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더 늦기 전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목공과 뜨개질 공예 수업을 다니며 창업을 준비했다. 그러다 친구의 권유로 가죽공예를 접하게 됐다. 김씨는 “가죽공예는 재료비가 많이 드는 편이라 다른 공예업보다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라며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경쟁자도 적어 창업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창업 의지가 확고했던 김씨는 온라인 수업과 여러 가죽공방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익힌 다음 3개월 만에 개인 공방을 열었다. 스스로 손재주가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될 때까지’ 했다고 한다. 김씨는 “기술은 한 번 익히면 손에 남기 때문에 밥 먹고 나머지 시간에 가죽공예만 하면 어느 정도 잘하게 된다”면서 “모자란 손재주가 오히려 제품 양산 과정에서 불필요한 디테일을 과감히 빼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가죽 소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경기를 많이 타는 것은 넘어야 할 장벽이다. 김씨는 “사업이라는 게 처음 5년은 무조건 힘들다는 각오로 시작했다”며 웃었다. 김씨의 사업 철학은 지속가능함과 대체불가능함이다. 그는 “공장에서는 제작하기 어려운 제품이나 시장에서 필요로 하지만 공방에서만 대응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면서 “생분해되는 친환경적인 스플리트 가죽을 쓰는 등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일러스트, 한정된 정보·지식 뚫어야 일러스트레이터 김도현(20·경남 창원)씨는 트위터와 픽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의 작업물을 꾸준히 올려서 홍보하고, 이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작업한다. 대학 진학 대신에 일찌감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트를 선언한 김씨는 고1 때 대학을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일러스트 업계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대학을 꼭 가야 하는가였다”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시간에 그림을 더 배우고 익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특강을 찾아 듣거나 관련 서적을 읽으며 꿈을 키워 나갔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일러스트는 그림 실력 외에도 빛의 재질 등 관련 지식이 많이 필요하고 이를 공부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면서 “업계 정보도 많이 없기 때문에 길을 선택하기 전에 충분히 사전 조사를 하라”고 조언했다. 김혜균(사학과 2학년) 이도연(문헌정보학과 2학년) 성대신문 기자
  • 지난해 청년고용의무제 미이행 60곳

    지난해 청년고용의무제 미이행 60곳

    지난해 공공기관 42곳과 지방공기업 18곳이 청년고용의무제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에서는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대한법률구조공단, 한국마사회,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미이행 기관 명단에 올랐다. 지방공기업으로는 서울교통공사, 광주광역시 도시철도공사, 창원시설공단, 부산지방공단스포원 등이 청년고용의무제를 지키지 않았다.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제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라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이 의무적으로 매년 정원의 3% 이상을 만 15세 이상, 34세 이하 청년으로 신규 고용해야 하는 제도다. 적용 대상은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이다. 24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1년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 이행현황’에 따르면 청년고용의무제가 적용되는 445곳 가운데 이를 이행한 기관은 86.5%인 385곳이었다. 전년도인 2020년 당시 84.9%, 370곳에서 소폭 증가한 수치다. 의무이행 기관 비율은 2015년 70.1%에서 2016년 80.0%로 오른 이후 2021년까지 6년 연속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2021년 청년 신규고용비율은 5.8%로 2016년 이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신규 고용비율은 2015년 4.8%에서 2016년 5.9%로 증가한 데 이어 2019년에는 7.4%까지 상승했으나 2020년 5.9%, 2021년 5.8%로 줄었다. 고용노동부는 “2018~2019년 자율 정원조정제도 운영에 따른 기저효과와 코로나 19 확산 영향으로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 청년고용의무제에 따르면 신규 고용률이 3% 미만인 기관은 명단을 공표하고, 청년 신규 고용 실적을 경영평가에 반영하도록 돼 있다.
  • 경북경찰, 불법 경마 사이트 운영 일당 4명 검거

    경북경찰, 불법 경마 사이트 운영 일당 4명 검거

    경북경찰청은 불법 사설 경마 사이트를 운영해 억대 수익을 챙긴 혐의(마사회법 위반 등)로 일당 4명을 검거해 A씨를 구속하고 나머지 3명은 불구속 입건했다고 2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 일당은 2020년 1월부터 최근까지 인천에서 활동하며 사설 경마 사이트 3개를 개설해 운영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회원 1500여명에게서 34억원 가량을 입금받은 뒤 경마 경기 결과가 적중하면 한국마사회가 제공하는 배당률에 따라 돈을 지급하고,ㅍ 결과가 적중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가져가는 수법으로 약 7억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한국마사회로부터 해당 사설 경마 사이트에 관한 고발장을 접수한 뒤 사이트 도메인 분석, IP 추적, 계좌분석, 탐문수사 등을 벌여 왔다. 경찰 관계자는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장,스크린 경마장을 제외한 온라인 경마 사이트는 모두 불법”이라며 “사설 경마 사이트를 이용하면 도박죄 처벌은 물론 사기당할 우려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노동계 책임감 커졌다

    [사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노동계 책임감 커졌다

    국회에서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률이 통과됐다. 이로써 한국전력, 한국마사회, 예금보험공사 등 131개 공공기관은 올해 하반기부터 노동자 대표가 추천하는 비상임이사 1명을 선임해야 한다. 노동계의 오랜 요구였던 노동이사제 도입을 통한 내부 감시 기능 강화로 공공기관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조직 내 비리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노동이사제 도입이 모든 문제 해결에 능사는 아니다. 공공기관 노조는 이제 노조원들만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는 조합주의적 활동에 그쳐선 안 된다. 이사회 발언권과 의결권을 가진 만큼 경영의 주체라는 입장에서 전체 국민들을 바라보며 공공적 역할에 대한 책임감과 과제 의식을 더욱 키워야 한다. 또한 해당 공공기관의 공공적 기능을 키우고 국민과 사회에 복무할 수 있는 구체적 비전을 노조가 먼저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이사의 추천 및 선발 역시 민주적이면서도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록 비상임이사지만 최소한의 경영 전문성을 가져야 함은 물론 노조 구성원 및 국민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을 선발해야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노동이사는 10명이 넘는 이사회에서 거수기 역할 또는 메아리 없는 소수 의견에 그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단순히 노조 지도부 일부의 출세 수단으로 전락하거나 노사 담합을 통해 조직 이기주의를 키우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성공해야만 민간 부문으로도 확산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해묵은 대결과 갈등의 노사 관계를 협력과 신뢰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것 또한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 ‘측근 채용 강요·폭언 논란‘ 김우남 전 마사회장 재판 넘겨져

    ‘측근 채용 강요·폭언 논란‘ 김우남 전 마사회장 재판 넘겨져

    측근을 채용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직원에게 폭언한 혐의 등으로 고발된 김우남 전 한국마사회장이 30일 재판에 넘겨졌다. 수원지검 안양지청 형사2부(하동우 부장검사)는 이날 강요 미수, 모욕,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김 전 회장을 불구속기소 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3월 초 지인을 비서실장으로 특별 채용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인사담당 직원 B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폭언하고 채용 절차 진행을 강요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한 달 뒤 임원 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던 또 다른 직원에게 욕설한 혐의도 받는다. 김 전 회장은 이런 사건이 있고 난 뒤인 지난 6월 말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주장한 B씨 등 직원 3명을 부당하게 전보한 혐의로도 기소됐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한국마사회 노조의 고발 및 피해자 고소장을 각각 접수해 조사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지난 7월부터 11월까지 순차적으로 각 사건을 건네받아 보강수사하고, 이날 김 전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 右장우진·左임종훈 ‘세계탁구선수권 남자복식’ 새 역사 쓰다

    右장우진·左임종훈 ‘세계탁구선수권 남자복식’ 새 역사 쓰다

    장우진(오른쪽·26·국군체육부대)과 임종훈(왼쪽·24·KGC인삼공사)이 8차례나 ‘구릿빛’(동메달)에 머물렀던 세계탁구선수권 남자복식의 메달 색깔을 바꿨다. 남자복식 세계 랭킹 14위의 장우진-임종훈 조는 29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조지 브라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6회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선수권 파이널스 남자복식 준결승전에서 일본의 새 ‘에이스 복식조’ 도가미 순스케-우다 유키야를 3-1(8-11 11-4 11-9 11-7)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1956년 도쿄 세계선수권에 처음 출전한 한국이 남자복식에서 결승까지 오른 건 장-임 조가 처음이다. 한국은 마지막 메달권이었던 2017년 뒤셀도르프 대회까지 8차례 입상 모두 동메달에 그쳤다. 1987년 뉴델리 대회에서 안재형-유남규를 시작으로 2017년 정영식-이상수가 메달권에 들었지만 이 메달들은 한결같이 구릿빛이었다. 특히 대표팀이 대회 엿새 만에 남녀 단식뿐 아니라 여자복식, 혼합복식 등 나머지 종목에서 모두 탈락한 가운데 장-임 조가 남자복식에서 사상 첫 결승까지 진출해 한국 탁구의 자존심을 지켰다. 20대 중반의 둘은 2017년 첫 호흡을 맞춘 뒤 그해 열린 독일오픈에서 처음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2018년 코리아오픈과 그랜드 파이널스를 연속 제패하긴 했지만 세계선수권에 나선 건 처음이다. 오른손잡이인 두 살 위 장우진과 대표팀 유일한 왼손잡이 임종훈이 일궈낸 짜릿한 역전승. 둘은 지난달 아시아선수권 결승전에서 패배를 안겼던 도가미-우다 조에 첫 세트를 내주며 아픈 기억을 반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장우진의 오른손 드라이브와 임종훈의 벼락같은 왼손 ‘백플릭’(손목을 축으로 아래에서 위로 라켓을 끌어올려 공에 회전을 주는 기술)을 앞세워 단박에 전세를 뒤집었다. 장-임 조의 결승 상대인 세계 31위의 크리스티안 카를손-마티아스 팔크(스웨덴)는 2017년 국제대회에 데뷔해 2018년 체코오픈, 2019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을 상대로 2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한국 탁구는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4.5개의 금메달을 따냈는데, 마지막 메달의 주인공은 2015년 쑤저우 대회에서 중국의 쉬신과 한·중 복식조로 짝을 맞춘 양하은(포스코에너지)이 마지막이었다. 1991년 남북 단일팀이 나섰던 지바대회 단체전 우승을 전후해 현정화(한국마사회 감독)가 여자단식(1993년)과 여자복식(1987년), 혼합복식(1989년)에서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임종훈 왼팔-장우진 오른팔로 세계선수권 메달 색깔 바꿨다

    임종훈 왼팔-장우진 오른팔로 세계선수권 메달 색깔 바꿨다

    장우진(26·국군체육부대)과 임종훈(24·KGC인삼공사)이 8차례나 구릿빛에 머물던 세계선수권 남자복식 메달 색깔을 바꿨다.남자복식 세계랭킹 14위의 장우진-임종훈 조는 29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조지 브라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6회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선수권 파이널스 남자복식 준결승전에서 일본의 새 ‘에이스 복식조’ 도가미 순스케-우다 유키야 조를 3-1(8-11 11-4 11-9 11-7)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1926년 시작된 세계선수권 남자복식에서 결승까지 오른 건 이날 장-임 조가 처음이다. 한국 탁구 남자복식은 마지막 메달권이었던 2017년 대회(뒤셀도르프)까지 8차례의 입상 모두 동메달에 그쳤다. 1987년 뉴델리 대회에서 안재형-유남규를 시작으로 2017년 정영식-이상수 조가 메달권에 들었지만 이들 메달은 모두 구릿빛이었다. 특히 대표팀이 대회 엿새 만에 남녀 단식은 물론 여자복식, 혼합복식 등 나머지 종목에서 모두 탈락하면서 부진을 면치 못한 가운데 장-임 조는 남자복식에서 사상 첫 결승까지 진출해 한국 탁구의 자존심을 지켰다.20대 중반의 둘은 2017년 첫 호흡을 맞춘 뒤 그해 열린 독일오픈에서 처음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2018년 코리아오픈과 그랜드 파이널스를 연속 제패하긴 했지만 세계선수권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오른손잡이인 두 살 위 장우진과 대표팀 유일한 왼손잡이 임종훈이 일궈낸 짜릿한 역전승. 둘은 지난달 아시아선수권 결승전에서 패배를 안겼던 도가미-우다 조에 첫 세트를 내주며 아픈 기억을 반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장우진의 오른손 드라이브와 임종훈의 벼락같은 왼손 ‘백플릭(손목을 축으로 아래에서 위로 라켓을 끌어올려 공에 회전을 주는 기술)’을 앞세워 단박에 전세를 뒤집었다. 결승 상대인 세계 31위의 크리스티안 카를손-마티아스 팔크 조(스웨덴)는 2017년 국제대회에 데뷔해 장-임 조와의 맞대결은 처음. 그러나 2018년 체코오픈 당시 조언래(현 여자대표팀 코치)-김민혁(한국수자원공사) 조를 3-0으로, 2019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장우진-박강현(국군체육부대) 조를 4-1로 꺾어 한국을 상대로는 2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한편 한국 탁구는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4.5개의 금메달을 따냈는데, 마지막 메달의 주인공은 2015년 쑤저우 대회에서 중국의 쉬신과 한·중 복식조로 짝을 맞춘 양하은(포스코에너지)이 마지막이었다. 1991년 남북단일팀이 나섰던 지바대회 단체전 우승을 전후해 현정화(한국마사회 감독)이 여자단식(1993년)과 여자복식(1987년), 혼합복식(1989년) 등에서 세 차례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 위드코로나에 모처럼 활기 띤 경마장…일부 불안한 모습도

    위드코로나에 모처럼 활기 띤 경마장…일부 불안한 모습도

    “7번 달려! 힘 좀 내라!” 19일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 경마장. 빠른 속도로 달리던 경주마들이 결승점에 다다르자 관중들이 일어서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경주가 끝나자 원했던 결과를 얻은 관중은 미소를 지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반대로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지난 1일부터 정부의 단계적 일상회복 지침이 시행되면서 침체됐던 경마장이 활기를 띠었다. 한국마사회는 이날부터 전 좌석 대비 80%의 관중 입장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난 5일부터 전 좌석 50%의 수준의 영업을 재개한 마사회는 이날부터 100%의 관중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늘면서 80%로 조정했다. 경마장은 백신 접종 완료자와 PCR 검사 음성 확인자만 입장이 가능한 ‘방역패스’가 도입됐다. 과거와는 달리 휴대전화 전자카드 앱으로 경기 하루 전 좌석을 예약한 손님들만 입장이 가능하도록 지정좌석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날 경마공원에는 평일 이른 아침부터 경마 경기를 관람하러 온 손님들로 북적였다. 관람객들은 각자 준비한 경마 정보지를 손에 쥐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경마장으로 향했다. 경마공원 입구에서는 좌석 예약과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려는 직원들로 분주했다. 미처 전자카드 앱에 접종 등록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별도의 장소에서 직원들이 백신 접종을 확인했다. 1차 접종만 완료했다며 입장을 요구한 사람도 있었지만 직원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며 제지했다. 모처럼 활기를 띤 경마장에 관중들도 반기는 모습이었다. 박모(48)씨는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소액으로 경마를 즐기고 있다”며 “그동안 경마장을 못 와 답답했었는데 경마장으로 야외 나들이를 나올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방역패스가 도입된 만큼 거리두기도 강화된 모습이었다. 유·무인 발권창구 앞 바닥에는 거리두기를 표시하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었고, 대체로 관중들도 이를 잘 지키는 모습이었다. 실내에는 관중들이 좌석을 가득 메웠지만 비교적 조용했다. 관중들이 많아지면서 침체된 말 산업에도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경마 경기는 지난 6월부터는 무관중 경기를 하고 있어 손해가 막심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지방에서는 20% 관중으로 경기를 했지만 “차라리 운영을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호소도 나왔다. 다만 일부에서는 불안한 모습도 연출됐다. 경기장에서는 음식물 식사가 금지됐지만 일부 관중들은 간식거리를 먹는 모습도 보였다. 또 거리두기로 착석이 금지된 좌석에 앉거나 마스크를 내리고 소리를 지르는 관중도 있었다. 현장에 있는 직원들은 이런 행동을 하는 관중들을 발견할 때마다 찾아가 계도했다. 마사회는 향후 확진자 추이를 지켜보며 100% 좌석 입장을 고려한다는 계획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관중들도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어 예전과 달리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 편”이라며 “현재 거의 모든 직원들이 관중 안내 업무에 투입될 만큼 강하게 계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포토] 문중원 기수 유족에 위로를

    [포토] 문중원 기수 유족에 위로를

    문중원 기수 관련 비리 의혹으로 기소된 마사회 간부와 조교사들에게 무죄가 선고된 17일 오후 부산지법 서부지원 앞에서 유족들이 눈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 경북 영천경마공원 건축허가, 건설 본격 추진

    경북 영천시 금호읍 일원에 조성되는 영천경마공원 건설이 본격 추진된다. 17일 영천시와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영천시는 한국마사회가 신청한 ‘영천경마공원(렛츠런파크영천) 조성사업’ 건축허가를 지난 15일 허가했다. 마사회는 네 번째 경마공원인 영천경마공원 건설을 위해 지난 6월 영천시에 건축허가를 신청한 뒤 지난 8월 영천시 건축위원회 건축심의에서 지적된 사항을 보완해 이번에 최종 허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마사회는 3000억원을 들여 영천시 금호읍과 청통면 일원 145만㎡에 경주로, 관람대, 마사시설, 중계탑, 매표소, 출전 준비소 등을 건설하는 경마공원 조성을 내년초에 착공해 2024년 완공할 계획이다. 관람대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다. 영천시는 경마공원이 개장하면 하루 최대 9000여명이 방문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7월 확정·발표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영천 금호(경마공원)까지 연결하는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연장 계획이 포함돼 경마공원으로 접근하는 교통도 편리해진다. 최기문 영천시장은 “앞으로 중앙부처, 경북도, 한국마사회 등과 지속으로 협력해 국제 수준 경마공원이 건설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영천서 요동치는 말발굽 소리… “세계적 명품 경마공원 만들 것”

    영천서 요동치는 말발굽 소리… “세계적 명품 경마공원 만들 것”

    입지후보지 확정 이후 12년간 우여곡절이달 행정절차 완료… 내년 초 착공 예정국내 경마공원 최초로 잔디 경주로 설치연간 관광객 200만명·1800억 경제 효과 대구도시철도 1호선 경마공원까지 연장영천~대구 ‘30분 생활권역’ 시너지 기대4월 한방·마늘산업특구 선정 등 ‘겹경사’청년 유입 위한 전담 부서·청년조례 제정“영천경마공원을 세계적인 명품 경마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기문 경북 영천시장은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24년 영천경마공원(렛츠런파크 영천) 1단계 개장을 위한 모든 준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최 시장은 “영천경마공원은 2009년 12월 제4경마공원 입지후보지로 확정된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지역 정치권과 영천시, 지역 주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경마공원의 성공적인 개장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면서 “앞으로 중앙부처, 경북도, 한국마사회 등과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국제 수준의 경마공원을 건설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최 시장과의 일문일답. -영천시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경마공원 조성 사업이 10년 이상 늦어졌다. 착공은 언제쯤 되나. “애초 경마공원 사업 주체인 마사회가 2014년까지 약 2500억원을 투입해 영천 금호읍 성천리·대미리, 청통면 대평리 일원 141㎡의 부지에 경마장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레저세 감면 및 설계 축소 등의 문제로 사업이 오랜 기간 표류했다. 이에 시는 경마공원 건설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마침내 지난 8월 영천시 건축심의위원회가 경마공원 건축심의에서 조건부 의결했고 이달 중 최종 의결할 계획이다. 행정절차가 완료됨에 따라 마사회는 시공사 선정을 거쳐 내년 초 사업에 착공할 예정이다.” -경마공원 조성 사업 규모는. “영천 금호읍 성천리 등 일대 부지 145만 2813㎡에 총 3657억원이 투입된다. 마사회는 우선 1단계로 사업비 1570억원을 들여 금호읍 성천리 일대 66만 1000㎡ 부지에 세계적인 명품 경마공원을 조성한다. 주요 시설로는 국내 최초로 도입되는 잔디 경주로와 관람대, 마사 시설, 중계탑, 매표소 등 경마 필수 시설이 우선 들어선다. 2024년 9월 개장 목표다. 이어 2단계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개장에 따른 기대 효과는. “연간 2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해 지역의 대표 명소로 우뚝 설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적 파급 효과 1800억원, 고용효과 7500여명 등 영천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경마공원은 분명 지역의 성장잠재력을 끌어내고 민간투자를 촉진하는 경제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영천에 도시철도가 달리는 기적을 이뤄 내겠다는 시민과의 약속을 지켰다. 정확한 내용은 무엇인가. “지난 6월 심의된 국토교통부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대구도시철도 1호선 영천경마공원 연장을 신규 사업으로 포함시켰다. 올해 영천시 승격 40주년을 맞은 뜻깊은 시기에 시민들의 염원이 마침내 이뤄진 것이다. 이를 위해 과거 2차례 청와대 근무와 경찰청장을 지낸 제가 중앙정부와 정치권의 다양한 인사들에게 철도 개설을 강력하게 건의했으며 국회의원과 광역·기초의원, 관련 공무원 등이 합심 노력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운 만큼 앞으로 남은 절차들을 착실히 진행, 5년 내에 착공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도시철도 영천 연장 계획과 전망은. “국비 2052억원을 투입해 경산시 하양역에서 영천시 금호읍까지 5㎞ 구간을 연장하게 된다. 신축 예정인 하양역에서 현재 금호역(계획안)까지 지상철로 연결된다. 연장선이 개통되면 영천은 대도시인 대구와 ‘30분 생활권역’이 된다. 대구와 동일 생활권을 형성하게 되면서 인구 유입 및 투자 확대 등 도시 발전을 위한 각종 시너지 효과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교육·의료·쇼핑 등의 폭넓은 문화 향유 기회 확대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다.” -난지형 마늘 주산지이자 생산량과 재배면적에서 전국 2위를 자랑하는 영천이 국내 마늘산업 대표 도시로 부상할 수 있는 기틀도 마련했는데. “지난 4월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한방·마늘산업특구로 최종 선정된 데 이어 8월엔 경북도에 의해 마늘 주산지로 최종 지정 고시되는 겹경사를 안았다. 특히 한방·마늘산업특구는 민선 7기 시장 공약사업으로 기존 한방진흥특구(2005년)에 마늘 분야 특화사업 및 규제 특례 사항을 추가해 적극 추진한 것이 결실을 맺었다.”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기대되나. “이들 사업으로 영천 마늘의 경쟁력 확보와 농가 소득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됐다. 특히 마늘특구 지정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로 생산 유발효과 603억원, 소득 유발효과 285억원, 고용 유발효과 746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주산지 지정으로 정부의 마늘 수급 정책과 주산지를 대상으로 하는 국비 공모사업 등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인구 늘리기를 중점 시책으로 펼치고 있다. 주요 시책과 성과는. “취임 첫해인 2018년 인구정책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출산장려금을 최대 1300만원까지 확대했다. 이듬해부터 2년간에 걸쳐서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무상급식을 확대해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을 덜고 있다. 또 지난해 분만 산부인과병원 유치에 성공해 임신부들의 대도시 원정출산 불편을 말끔히 해소했다. 이 병원에는 소아청소년과, 산후조리원 등이 함께 들어서 원스톱 출산 지원 시스템이 가능하다. 이런 노력 등으로 영천시는 2020년도 합계출산율 1.358명으로 경북도(1.00명) 내 시부 중에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전국(0.83명) 시부 가운데서는 2위이다. 특히 영천 인구가 2018년 7월 10만 186명에서 지난달 말 10만 1670명으로 증가하는 등 10만명 붕괴 위기를 극복했다.” -청년 인구 유입책도 마련해 적극 추진하고 있다. “올해부터 인구 유입 정책 무게를 청년지원책에 맞추고 있다. 지난 1월 ‘청년정책담당’ 부서를 신설한 데 이어 6월에는 ‘영천시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했다. 7월엔 청년 정책 연구 및 수립 등을 위해 학생부터 소상공인(20~40대)까지 30명으로 이뤄진 ‘영천 청년 정책참여단’도 구성했다.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해 ‘중소기업 청년 일자리 지원사업’, ‘언택트산업 분야 중소기업 청년 일자리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발전의 핵심동력인 청년들이 정착하고 머무를 수 있는 여건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지난 3년여 동안 영천 시민이 정말 위대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시민들이 저를 믿고 힘을 모아 주셔서 생각보다 큰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천시는 그동안 중앙부처 건의 및 공모사업 등 총 131건 사업이 선정돼 국·도비 4007억원을 확보했다. 또 지난 6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발표한 ‘2021 전국 기초단체장 공약 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65점을 넘어 우수기관(A등급)으로 선정됐다. 시민들에게 정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도 시민 행복과 영천의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초심을 잃지 않고 더 성실하게 일하겠다.” ■ 최기문 시장은 ▲1952년 영천 출신 ▲경북대 사대부고, 영남대,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동국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행정고시(제18회)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장, 경찰청 기획정보심의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치안비서관, 경찰청 차장, 경찰대학장, 경찰청장, 한화그룹 고문 ▲황조·녹조 근정훈장 ▲제10대 민선 7기 영천시장(초선)
  • 비정규직 10명 중 7명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잘못”

    비정규직 10명 중 7명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 잘못”

    비정규직 노동자들 10명 중 7명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은 12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노동자 28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 결과 응답자 2409명 중 76.2%(1835명)가 현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잘하고 있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574명(23.8%)에 그쳤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74.5%는 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호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71.3%), 민간부분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69.0%), 민간부분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정책(67.7%) 순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남은 임기 동안 비정규직 공약을 이행할 것이라 생각하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79.5%(1916명)이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의지가 있었지만 자본(기업)과 여론의 압력 때문에 이행하지 않았다’(61.0%), ‘처음부터 의지가 없어서 이행하지 않았다’(19.8%)고 평가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이조은씨는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3단계로 나눠 직접고용을 추진했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이 많은 것을 각 기관의 자율에 맡겼다”며 “그러다 보니 인천공항, 잡월드, 마사회 등 많은 곳에서 정규직 전환은 가짜 정규직과 자회사로 귀결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의 동료 이준석씨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며 “5인미만 적용제외, 50인 미만 적용 유예를 폐지하고 질병범위를 근로기준법 및 산재보상법에 명시된 직업성 질병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은 노동존중 약속을 배신한 문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비적규직 노동자 100명이 촛불을 점화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오는 3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시위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5일까지 비정규직 이제그만 소속 노동자들과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 6경기 싹쓸이… 신유빈, 네 번째 태극 마크 ‘파워’

    6경기 싹쓸이… 신유빈, 네 번째 태극 마크 ‘파워’

    신유빈(17·대한항공)이 단 2세트만 내주고 6경기를 싹쓸이하면서 통산 네 번째로 국가대표팀에 조기 입성했다. 신유빈은 18일 전북 무주 국민체육센터에서 열린 2021 세계선수권(개인전) 국가대표 선발대회 이틀째 여자부 풀리그 4~6차전에서 이시온(삼성생명)과 양하은(포스코에너지), 유은총(미래에셋증권)을 모두 4-0으로 돌려세웠다. 승점 6을 쌓은 신유빈은 전날 성적까지 합쳐 중간 합계 6전 전승(승점 12)으로 세계선수권 태극마크를 확정했다. 오는 11월 미국 휴스턴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상위 3명을 가리기 위한 이번 대회는 8명이 사흘간 풀리그를 펼친다. 세계 랭킹 기준으로 우선 선발된 전지희(포스코에너지)와 서효원(한국마사회)은 출전하지 않았다. 그는 경기당 7전4승제의 6경기를 치르면서 소속팀 선배 이은혜를 꺾은 1차전에서 두 세트만 빼앗겼을 뿐 이후 5경기 모두 4-0의 ‘베이글승’을 수확했다. 19일 최효주(삼성생명)와의 남은 1경기마저 이기면 7전 전승으로 선발전을 마친다. 신유빈은 2019년 6월 아시아선수권 선발전에서 만 14세 11개월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에 뽑혔다. 지난해 2월 세계선수권(단체전)과 도쿄올림픽 대표 선발대회에선 추천 선수로 두 번째 대표팀에 들었지만 코로나19 탓에 세계선수권이 취소되고 올림픽마저 연기돼 빛을 잃었다가 지난 1월 다시 열린 도쿄 선발전에서 자력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지난 13일 대한항공 조원태 대표이사와 인사를 나눈 신유빈은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면 비행기를 달라’고 했다”고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또 “큰 무대는 1승이 어렵다는 걸 느꼈다”며 “(올림픽을) 한 번 경험했으니 두 번째는 무조건 메달을 따야 한다. 앞서 첫 세계선수권 메달은 물론이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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