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단의 교육현실(시베리아 대탐방:62)
◎“배고픈 지식층 싫다”… 대학인기 시들/중학 11학년제… 9학년부터 취업·진학 선택/시장경제 전환뒤 교단이탈 교사 줄이어/유치원 국고보조금 줄어 학부모 부담 가중
9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러시아의 학제는 중학교가 11학년제다.우리의 초·중·고교를 합쳐놓은 셈이다.9학년까지는 의무교육이다.11학년까지 마친 뒤 5년제 정규대학에 입학하든지,아니면 9학년까지만 다니고 직업전선에 뛰어들거나 직업학교에 간다.만7살까지는 유치원에 다닐 수 있다.
마가단 제2중학교 역사실.정규대학 진학을 앞둔 졸업반인 11학년 1반학생 18명이 이동수업을 받고 있다.장래 희망직업을 물었다.변호사나 판·검사등 법률가가 9명으로 가장 많고 은행원 4명,사업 3명,경찰1명,통역1명이다.과학자나 우주인 군인 엔지니어 노동자 등 예전에 선망의 대상이었던 직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찾아볼 수 없다.수입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법률가·은행원 가장 인기
9학년2반 교실.학생 23명에게 학교를 계속 다닐지 여부를 물었다.11명이 대학에 갈 생각이 없어 9학년까지만 다닌다는 대답이다.일부는 직업학교에 들어가지만 대다수는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는 것이다.남학생 유라 아브라모프는 『공부도 잘못하지만 비싼 돈내고 대학에 다녀봤자 별볼일 없기 때문에 아예 장사를 시작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 학급 담임 아냐 스처니코바(여)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학자나 교사 등 지식층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가장 낮아져서 학력이 높은 사람들도 시장에 나가 장사하거나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도 장사를 하거나 처우가 좋은 은행원이 되려고 하지 애써 열심히 공부해 배고픈 학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루드밀라 베르진스카야 교장(여)은 『학부모들도 예전에 무료였던 대학학비가 이제는 유료로 비싸진 데다가 대학을 나와도 취직자리가 마땅치 않은 터여서 공부를 시켜야 할지 시장에 내보내 장사를 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설명한다.
러시아가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면서 덩달아 변화를 겪고 있는 학교교육 현장의 고민이다.마가단처럼 번화한 대도시가 아니어서일자리가 부족한 지방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1948년 설립된 이 학교에는 학년별 4학급씩 44개반 학생 1천명이 다닌다.수업은 주5일.1학년 24시간에서부터 11학년 32시간까지다.
○교과서 공급 제대로 안돼
교사는 80명으로 대부분 여자다.작년에만 6명이 그만 뒀다.교사월급으로는 생계유지가 곤란하기 때문이다.초임이 25만루블(약4만원),10여년 경력자가 60만∼70만루블,20년이상이 1백만루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옐친 대통령이 지난 8월1일부터 교사월급 인상을 지시했으나 한달이상 오르기는 커녕 제때 지급마저 안돼 지난 9월26일 전국적으로 교사들이 시위를 벌인 끝에 쟁취한 월급이 그 정도다.그러다 보니 젊은 층들 중에는 다른 직업을 찾아 학교를 떠나는 이직자가 속출한다.사범대학 졸업생들마저 학교로 오지 않고 다른 직장을 찾아간다.나이들어 오갈데 없어 연금받기를 기다리거나,아니면 직업적 사명감이 투철한 교사들만이 교단을 지키는 형편이다.
교사가 부족하다 보니 일은 더욱 힘들어져간다.1주일에 18시간 수업이 원칙이지만 요즘은 20∼27시간이 보통이다.게다가 영어·독어 등 외국어 시간이 늘어나고 컴퓨터 등 새로운 과목이 많아서 인근 연구소나 도서관 등에서 특별강사를 초빙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어렵사리 모셔오면 실력있는 특별강사들이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 기존교사들이 일하기란 더욱 어렵다.
공산주의에서 자유시장경제체제로 넘어가는 데 초점을 맞춰 교과서도 많이 개정되고 학생들도 잡지나 책에서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하고 교사를 평가하기 때문에 변화를 쫓아가기도 바쁘다.역사 교과서는 트로츠키나 부하린 같은 인물들이 스탈린과 벌였던 권력투쟁 등 모든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문학교과서도 예전에는 공산주의 작가의 작품위주로 실었으나 이제는 사상적인 작품분석은 사라지고 솔제니친 같이 예전에 공산주의에 맞지않아 발간되지 않고 잊혀졌던 작품들도 교과서에 나오고 시중에서 출간된다.페레스트로이카이후 5∼6년사이에 한꺼번에 교과서가 너무 여러가지 나와 어떤 책을 택해야 할지 교사들도 곤혹스럽다.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는교과서 공급마저 제때 안돼 교사들이 모스크바로 출장갈 때 한권씩 사와 복사해서 쓰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학생 52명에 직원 31명
25년 경력의 역사교사 마리아 스파크는 『러시아 역사의 좋고 나쁜 점이 모두 교과서나 시중서적에 다양하게 나오고 학생들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교사들이 교과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책이나 잡지,신문 등을 읽고 재량껏 가르친다』고 말한다.
1학년의 경우 유치원에서 간단한 읽기 쓰기는 배워오는데 요즘에는 학비 때문에 유치원을 안다닌 학생들이 늘어나 새로운 골칫거리다.
인근에 위치한 36년 역사의 마가단 제2유치원을 찾았다.만2세부터 7세까지 나이에 따라 4개학급으로 나뉘어 52명이 다닌다.아침 7시30분쯤 부모들이 출근하면서 데리고 와 저녁7시30분쯤 퇴근길에 찾아간다.러시아어 읽고 쓰기,산수·미술·체육·음악 등을 가르치고 하루 세끼를 제공한다.교실외에도 장난감실·체육실·마사지실·치료실·음악실 등을 갖추고 있다.취침실도 마련돼 있어 점심식사후에는 2시간 정도씩 재운다.
교사 11명,보조교사 6명과 요리사·마사지사·세탁부·운전기사 등을 모두 합하면 직원수는 31명이다.지난 9월부터 54% 인상된 월급이 30만∼42만루블(6만원 내외)이다.나탈리야 젤렌스카야 원장은 『봉급이 적어도 천직으로 알고 일한다』고 말한다.
학비는 하루 4천1백루블씩으로 월 평균 8만∼9만루블(1만5천원)씩이다.실제비용은 한아이당 한달에 50만루블이 소요돼 80%를 국가에서 보조받아야 하지만 국고보조가 점점 줄어들어 걱정이다.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후원을 호소하지만 여의치 않다.올들어 식비가 10% 올랐다.유치원 학비부담이 몇년전까지만 해도 월평균급여의 2%였지만 요즘은 10%로 높아졌다.앞으로 학비는 더욱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유치원생 1.7명당 직원 1명씩을 두고 부족할 것없는 시설을 아직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시절의 유산이다.교육분야에서도 일정부분 시장원리에 따른 수익자 부담 원칙을 수용해야 하고 가치관마저 변화하는 현실은 학교당국이나 학부모·학생 모두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