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유럽인가 중국인가
홍콩에서 서쪽으로 64㎞쯤 떨어진 마카오(澳門)는 면적이 23.8㎢에 불과한 조그만 땅이다. 중국 대륙의 주하이(珠海)시와 접한 마카오 시구와 타이파섬, 콜로안섬의 면적을 모두 합해도 홍콩의 5분의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카오의 인구는 약 45만명. 이중 95%가 중국인이며 수천명의 포르투갈인이 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지배 아래서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중계무역항이었으며 기독교 포교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오늘날 세계화는 마카오가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간의 무역중심지였던 18세기 후반 마카오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들도 있다. 지금은 영향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지만 마카오는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간직한 ‘향수의 도시’로 사랑받고 있다. 마카오까지는 지난해 인천∼마카오간 마카오항공 직항노선이 개설돼 한층 편리하게 갈 수 있다.
글 사진 마카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Fusion City (1) 유럽의 문화재
●돌에 새긴 대자연의 교훈
마카오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 행정특별자치구다. 마카오는 ‘도박의 도시’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마카오야말로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유서 깊은 문화의 고장임을 알 수 있다. 수백년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마카오에는 아직도 유럽의 정취가 남아 있다.
마카오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면 단연 성바울 성당 유적이다. 이곳은 원래 중국의 첫번째 교회이자 예수회의 대학이었다.17세기 초 이탈리아 예수회 신부인 카를로 스피놀라가 디자인한 이 성당은 일본의 종교박해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건너온 일본인 기독교 석공들의 도움으로 완성됐다.
1835년 태풍 때 화재로 소실돼 지금은 건물 정면과 계단, 지하실 등만 남아 있다. 유럽과 아시아 예술양식이 결합된 건물 정면에는 성직자들의 청동상이 안치돼 있다. 성당 벽면에는 성모 마리아가 발로 뱀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형상이 있는가 하면 ‘죽을 때를 생각해 죄를 짓지 말라.’는 구절도 새겨져 있다. 이것들은 종종 ‘자연물에 숨은 교훈(sermons in stones)’이라 불린다.
성당 지하에는 1996년 문을 연 천주교예술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예수회 신부의 묘와 일본인 선교사 등의 유골,17세기 종교예술 작품 등이 진열돼 있다. 유리 케이스에 담긴 순교자의 뼈가 주위를 숙연하게 만든다.1600년대 마카오에는 종교박해를 피해 건너온 일본 기독교인들이 특히 많았다.
●네덜란드 공격 막아낸 요새
성 바울 성당 터 동쪽의 꾸불꾸불한 ‘포트리스 힐’(요새 언덕)을 올라가면 구릉 모양의 ‘몬테 요새’에 이른다. 원래 성 바울 성당과 같은 시기인 1617년 예수회의 의식용으로 세워진 것으로 1626년 요새로 바뀌었다. 몬테 요새는 네덜란드의 공격으로부터 마카오를 지켜낸 곳으로 유명하다.1622년 세례자 성 요한의 축일인 6월24일 예수회 신부가 네덜란드 화약고에 대포를 발사해 적으로부터 마카오를 구해낸 곳이 바로 이곳이다. 몬테 요새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카오의 도시 풍경과 이웃 주하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요새는 훗날 총독의 관저로 사용됐다. 현재는 마카오박물관이 들어서 있어 지난 4세기 동안의 마카오 역사를 웅변해 준다.
●한국천주교의 상징 김대건 동상
성 바울 성당에서 골동품·재활용 가구 거리인 루아 데 산토 안토니오거리를 지나면 카모에스 공원이 나온다.1557년 한때 마카오에서 살았던 포르투갈의 국민시인 카모에스를 기려 만든 곳이다.‘흰비둘기 공원’이라고도 불리는 카모에스 공원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는 1837년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도착해 신학수업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 동상은 1985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제막한 것. 홍콩과 마카오의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이 이를 다시 보수해 1997년 새로 봉헌했다.
●마카오 시내의 세나도 광장
세나도 광장은 분수와 나무, 벤치, 카페와 공공행사를 위한 공간을 갖춘 보행자 전용 광장이다. 물결무늬가 인상적인 이 광장은 수세기에 걸쳐 도시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1999년 12월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될 때 포르투갈에서 돌을 가져와 새로 깔았다. 포르투갈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광장의 물결무늬는 세나도에서 성 바울 성당까지 이어진다. 광장 한쪽 편에는 시의회 건물이 있으며 반대편에는 16세기에 지어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자선시설 인자당(仁慈堂)이 있다. 광장 끝 쪽에는 17세기 도미니크회에서 지은 바로크 양식의 성 도미니크 성당이 웅장하게 서 있다.
●유럽풍의 콜로니얼 건축물
세나도 광장에서 택시로 15분 거리에 있는 타이파 주거박물관에서는 20세기 초엽 마카오에 살던 포르투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콜로안 섬을 바라보고 있는 박물관 주변에는 400년 전 포르투갈인이 가져와 심었다는 가(假)보리수가 가로수처럼 늘어서 있다. 박물관 안에는 초기 포르투갈 정착민과 ‘토생포인(土生葡人·마카오에서 태어난 포르투갈인) 등의 주거생활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마카오의 또 다른 상징은 마카오 타워다.2001년 개장한 마카오 타워는 높이가 338m로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초고층 건물이다. 마카오 전경과 주강 삼각주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마카오 타워에서는 안전벨트를 맨채 타워 바깥 수백m 고공을 걷는 스카이워크(skywalk)라는 프로그램도 있어 관광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참가자로선 스릴을 느낄 수 있지만 전망대에서 시내를 조용하게 조망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 Fusion City (2) 중국의 전통문화
●마카오 최고(最古)의 사원
신앙의 자유가 보장돼 있는 마카오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는다.7% 정도는 가톨릭 신자다. 아마 사원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가운데 하나다. 배를 타는 사람들의 수호신인 도교 여신 아마(阿)와 불교의 여신인 쿤람을 모신 사원이다. 입구에는 마조각(祖閣)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다. 사원 안에는 늘 향 냄새가 진동한다. 마카오 사람들은 현재와 과거, 미래를 상징하는 뜻에서 보통 향을 세 개씩 피운다. 아마신은 특히 푸젠성 사람들과 타이완인들이 많이 섬기는 신이다.
아마 사원은 마카오라는 지명의 발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인이 마카오에 처음 상륙해 지명을 묻자 원주민이 현지어로 ‘아마카오’라고 대답했는데, 그때부터 마카오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 막아주는 나무
마카오 시내에서 또 하나 들를 만한 곳이 전당포박물관이다. 박물관 직원은 1994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실제로 영업을 했다고 말한다. 입구에는 ‘차수판(遮羞板)’이라는 붉은 색 칸막이가 설치돼 있어 눈길을 끈다. 부끄러움을 막아주는 나무라는 뜻이다.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는 말도 있는데…. 하지만 남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은 중국인에게도 역시 수치스러운 일인가 보다. 전당포에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따로 돼 있는 점도 특이하다. 박물관 나무기둥 아래에는 물이 담긴 돌받침이 깔려 있다. 마카오에는 개미가 유난히 많아 이런 장치가 필요하다고 한다.
●장대한 스케일의 민속공연
중국의 민속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원명신원(圓明新園)도 주하이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청나라 황제의 정원인 원명원이 열강의 침략으로 불탄 뒤 주하이에 이를 그대로 옮겨 지었다는 곳이다. 원명신원은 황제의 정원답게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중국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야외쇼가 하루 한차례 열린다. 무도사극 ‘대청(大淸)황조’도 그중 한 레퍼토리다. 드럼 위에서 춤추는 고상무(鼓上舞), 방패춤인 순패무(盾牌舞), 청나라 병사의 위용을 그린 팔기병무(八旗兵舞) 등 20여개의 춤이 중국인의 웅대한 스케일을 느끼게 한다.
■ Fusion City (3) 휴식: 라스베이거스+온천
마카오의 문화유적과 카지노를 즐겼다면 휴식을 위해 하루쯤 마카오와 이웃한 주하이에서 머무르는 것도 괜찮다. 주하이 사람들은 “주하이는 공기가 깨끗해 깡통 포장을 해 수출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남중국의 진주’라 불리는 주하이는 주강삼각주(Pearl River Delta)의 한 축을 이루는 경제특구. 중국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이 곳은 쑨원의 정치활동 무대이자 국민당 혁명의 근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하이는 146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백도지시(百島之市)´라 불린다. 북쪽으로는 중산시, 남쪽으로는 마카오와 연결돼 있다.
●꿈꾸는 ‘동방의 라스베이거스’
마카오의 밤은 화려한 카지노 전광판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마카오에는 처음으로 지어진 리스보아 카지노를 비롯, 지난 5월 문을 연 미국 ‘라스베이거스식’ 진사(金沙)오락장(일명 샌즈 카지노) 등 모두 19개의 카지노가 있다. 특히 샌즈 카지노는 카지노 겸 엔터테인먼트의 복합시설로 100만평방피트의 규모를 자랑한다. 카지노는 크게 미국식과 유럽식, 그리고 동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식은 대규모 테마파크 같은 유희시설을 갖춘 가족 단위 개념이 강하다. 반면 유럽식은 멤버십 개념으로 상류사회의 사교클럽 형식을 띤다. 동양식 카지노는 게임 위주의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는 게 보통이다.
●주하이 최고의 웰빙온천
주하이에서 무엇보다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히는 곳은 온천이다. 특히 광둥성 지역에서 최고·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어온천(御溫泉)은 홍콩자본으로 지어진 일본식 노천탕으로 꽃탕, 삼합탕, 화흥탕, 명주탕, 성신탕, 명목탕, 감무탕, 광피탕, 폭포탕, 지열탕, 망경탕, 욕족탕, 육복탕, 커피탕 등 다양한 온천탕을 갖추고 있다. 어온천은 당나라 시대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우아한 모습으로 관광객을 유혹한다. 입장객에게는 전통차와 음료, 샌드위치 등이 무료로 제공된다.
●발의 즐거움을 안다
주하이 여행의 피로는 주하이의 유서깊은 발마사지로 풀 수 있다. 이곳에서 누구나 아는 발마사지 가게는 ‘지족락(知足樂)’이다. 발의 즐거움을 안다는 제목이 운치가 있다. 이곳의 발마사지사들은 3개월 길게는 6개월의 교육을 받은 뒤 자격증을 딴다. 그렇게 천하지도 흔하지도 않은 직업이다. 피부미용사 정도다. 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하며 1일 3교대로 하루 24시간 영업한다. 값은 한국돈으로 5000원 정도니 별 부담은 없다.
●이렇게 가세요
마카오항공에서 주 5회 마카오 직항편을 운행한다. 목요일과 일요일은 부산에서, 나머지 요일은 인천에서 출발한다. 단 9월부터 매일 인천에서만 출발한다. 마카오는 홍콩에서는 배로 한 시간, 헬기로는 15분 걸린다. 마카오를 통해 주하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카오 반도 북쪽의 궁베이세관이나 타이파와 콜로안 섬 사이 매립지에 만들어진 연화대교를 건너 횡금도에 있는 횡금(橫琴)출입국장을 거쳐야 한다. 마카오관광청 서울사무소(02)778-4402, 자유여행사 (02)3455-8888, 에어마카오 (02)3455-9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