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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감 브리핑] 의인 외면하는 사회

    지난 9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화재 현장에서 잠든 이웃들을 깨워 대피시킨 뒤 숨진 ‘초인종 의인’ 안치범씨와 같은 의인들이 의사자로 지정돼 예우와 보상을 받도록 하는 문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성중(서울 서초을) 새누리당 의원이 정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사상자 관련 예산은 2011년 53억 3200만원에서 지난해 31억 5000만원으로 40.9% 감소했다. 예산 집행액도 41억 200만원에서 26억 1400만원으로 36.2% 줄어들었다. 다만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엔 집행액(39억 3200만원)이 예산액(31억 5000만원)을 초과했다. 같은 기간 의사상자로 지정된 사람도 37명에서 21명으로 점차 줄어들었다. 특히 지난해엔 재신청, 이의신청 제도가 생겨 72건의 신청이 있었지만 의사상자로 인정받은 인원은 29.1%에 그쳤다. 박 의원은 “우리 사회 곳곳에 ‘착한 사마리아인’이 많지만 정부의 홍보 부족으로 의사상자 지원 제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관련 예산을 더욱 확보하고 홍보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세상에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호주서 ‘선한 사마리아인’ 화제

     호주에서 분주한 이른 아침 한 남성이 선뜻 보여준 선행이 화제가 되고 있다.  목공인 타이슨 크롤리(30)는 출근길인 지난 23일 오전 6시쯤 편의점이 딸린 주유소에 들러 차에 기름을 넣고 아이스커피 몇 개를 샀다.  계산대에 앞에 선 크롤리는 곧 현금이나 마땅한 카드가 없는 것을 알고 큰 혼란에 빠졌다. 전날 밤 가진 돈을 다른 은행 계좌로 모두 옮겨놓았기 때문에 새 은행카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내야 할 돈은 약 110 호주달러(9만 3000원).  밖에서는 자신이 데려온 강아지가 시끄럽게 짓고, 출근도 늦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어려움은 가중됐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라며 뒤쪽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등장했다.  크롤리는 자신의 SNS에 “110 달러라는 돈이 그냥 포기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았다”며 그의 계속된 권유에 고맙게 그 뜻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른 아침의 멋진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크롤리는 돈을 갚겠다며 연락처를 요구했고 상대 남성은 크롤리의 영수증에 뭔가를 쓴 뒤 영수증을 접어 건넸다. 크롤리가 사진이라도 함께 찍자고 말하자 그는 기꺼이 받아들이고는 인사말을 남기고 떠났다.  잠시 뒤 차로 돌아온 크롤리는 영수증을 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접혀 있던 영수증에 연락처는 없고 단지 “존”(John)이라는 이름과 함께 “다른 사람에게 베푸세요”(pass it on)라는 글이 쓰여 있을 뿐이었다.  뮤지션으로도 활동하는 크롤리는 “이것이 바로 내가 항상 세상을 향해 말하려던 것, 즉 친절해라, 경쟁하려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는 것이었다”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실감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호주 언론은 26일 전했다.  크롤리는 자신의 SNS에 남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이 소식을 알리고는 이번에 받은 친절을 반드시 갚겠다고 말했다.  크롤리의 글이 퍼져 나간 뒤 ‘선한 사마리아인’은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뉴캐슬에서 아이스하키 선수로 활동하는 존 케네디 주니어로 최근 새 아이가 태어났고 부자는 아니라고 시드니모닝헤럴드가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월드피플+] “남편이 출산했어요” …첫 아기 낳은 ‘성전환’ 부부

    [월드피플+] “남편이 출산했어요” …첫 아기 낳은 ‘성전환’ 부부

    첫 아기를 낳은 에콰도르의 트랜스젠더 부부가 언론에 소개됐다. 아기가 태어난 지 18개월이 됐지만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다는 부부는 사회가 너무 큰 관심을 보여 이름을 결정하기가 부담이 된다며 "관심이 수그러들면 아기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식 이름이 없는 아기를 부부는 '카라오테'라고 부르고 있다. 의미는 없지만 왠지 사랑스럽게 들리는 호칭이라는 게 부부의 설명이다. 디아네 로드리게스와 페르난도 마차도가 화제의 부부. 두 사람은 성별, 국경을 넘은 사랑으로 널리 알려져 중남미에서 가장 유명한 트랜스젠더 부부다. 에콰도르는 동성결혼은 합법이지만, 성전환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에콰도르 태생인 부인 디아네는 원래 루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남편 페르난도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졌던 베네수엘라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성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남자는 여자로, 여자는 남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에콰도르와 베네수엘라에 살던 두 사람을 연결시켜준 건 사회적네트워크서비스(SNS)다. 지난해 온라인으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단번에 사랑에 빠졌다. 남자로 거듭난 페르난도는 당장 짐을 싸 국경을 넘었다. 에콰도르에서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 사이엔 3주 만에 아기가 생겼다. 임신을 한 건 남편 페르난도였다. 겉모습은 남자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남자로 바뀌었지만 완전한 성전환 수술을 받지 않은 덕분이다. 두 사람 사이에선 5월 20일 건강한 아들이 태어났다. 임신과 출산 전후로 부부 사이엔 숱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임신 중 남편에게 의사가 던진 말이 대표적이다. 산부인과 의사는 남편 페르난도에게 "임신을 했으니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몸을 챙기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출산 후에는 안전이 문제가 됐다. 트랜스젠더 부부의 출산을 비판하고 있는 사회 보수계층이 테러를 감행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에콰도르 트랜스젠더 단체는 안전을 위해 CCTV까지 설치하고 부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동방정교 지원 업은 푸틴 동유럽 장악 新제국주의 ‘망령’

    동방정교 지원 업은 푸틴 동유럽 장악 新제국주의 ‘망령’

    지난 18일(현지시간) 러시아 하원(두마) 의원 선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64) 대통령이 이끄는 통합러시아당이 전체 의석의 76%를 차지하며 압승했다. 2000~2008년 러시아의 3·4대 대통령을 지낸푸틴은 헌법상 3연임 금지조항 때문에 측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5대 대통령으로 내세우고 총리로 물러났다가 2012년 6대 대선을 통해 크렘린으로 복귀했다.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늘린 푸틴이 2018년 7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맡게 돼 현대판 ‘차르’(황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푸틴의 승리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내전, 시리아 내전 개입 등 잇단 제국주의적 행보로 서방과 대립하는 가운데 그의 ‘강력한 러시아’ 노선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소련 시절처럼 동유럽의 패권적 지위를 다시 향유하려는 푸틴의 대외 정책 코드를 동유럽에서 2억명 이상의 신자를 보유한 동방정교의 힘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분석했다. ●러시아 제정 때부터 동방정교 유일 수호자 자처 동방정교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을 근거지로 한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395~1453년)의 유산으로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그리스,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몰도바 등 동유럽 대다수 국가의 제1 종교다. 1054년 로마 가톨릭과 갈라선 동방정교는 로마 교황청의 통제를 받는 가톨릭과는 달리 지역과 민족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용된다. 이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러시아는 제정 시절부터 비잔틴 제국의 계승자와 동방정교의 수호자임을 자처해 왔다. 1억 4400만 러시아 국민의 70% 이상이 동방정교 신자로 분류된다. 16세기 러시아 수도사 필로테우스는 1453년 비잔틴 제국이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에 멸망당하고, 로마도 (러시아인의 관점에서 이단인) 가톨릭으로 넘어가자 유일하게 남은 순수한 기독교 정신(동방정교)을 보존하고 강화할 책임은 오로지 모스크바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역대 러시아 황제는 이를 금과옥조로 여겼고 푸틴도 자신이 신자임을 밝히며 정교회의 정치적 후광을 받아 왔다. 리언 아론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2014년 6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 역사를 보면 전쟁을 일으키거나 제국을 확장할 때 문명의 사명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러시아는 특별하다’는 메시지를 자주 사용해 왔고, 이 모든 것이 푸틴의 세계관에 단초를 제공한 셈”이라며 “(크림반도를 합병한) 푸틴의 시각에서 보면 러시아는 유라시아를 통합하려는 역사적이고 정당한 임무를 수행하려 하는데 서구가 이를 좌절시켜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동방정교는 러시아가 서방에 대응할 수 있는 외교적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지난 5월 28일 푸틴이 유럽연합(EU) 회원국인 그리스 방문 당시 동방정교회의 성지(聖地)이자 ‘성모 마리아의 정원’으로 알려진 아토스산을 찾았을 때 러시아와 그리스 언론들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푸틴은 “아토스산은 도덕적 토대와 가치에 대한 중요한 작업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스 35% “러시아 지지”… EU 지지 23%뿐 이날 푸틴의 아토스산 방문에는 러시아 정교회 키릴 총대주교,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 니코스 코치아스 그리스 외무장관 등이 동행했다. 푸틴은 앞서 5월 27일에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와 회동하고 서방의 제재 영향으로 급격히 줄어든 양국 교역을 복원하는 문제와 러시아 남부에서 지중해 해저를 거쳐 그리스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 국가로 연결되는 가스 공급 파이프라인 ‘사우스 스트림’ 건설 재개 방안도 논의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갤럽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리스인의 35%가 러시아의 지도적 역할을 지지한다고 답변했다. EU의 지도적 역할을 지지한다는 23%보다 높다. 이는 최근 침체를 겪는 그리스인이 독일 중심의 EU 역할에 환멸을 느끼고, 문화·종교적 유대가 밀접한 러시아에 더 우호적이라는 점을 반영한다. ●聖地 신부 “동방정교 구원 지도자로 푸틴 적합” 영국을 제외한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그리스뿐 아니라 불가리아와 루마니아, 키프로스에서도 동방정교가 핵심 종교다. 이에 따라 정교는 EU 내부에서 EU의 대러시아 경제 재재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하는 기제도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몰도바에서는 러시아 정교회와 일체감을 갖는 신부들이 친서방 정책에 반대하고 있고, 발칸반도 국가인 몬테네그로의 신부들은 몬테네그로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격렬히 반대해 왔다. 아토스산 카라칼로우 수도원의 넥타리오스 신부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운명은 4세기 기독교로 개종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유사하다”면서 “푸틴은 당시 로마제국처럼 기독교가 박해받았던 나라(소련) 출신이라는 점에서 동방정교를 구원할 지도자로 적합한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2011년엔 ‘마리아 허리띠’ 聖物로 푸틴 대선 도와 동방정교는 러시아 국내 정치에서 푸틴의 권력을 공고히 할 유용한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2011년 11월 당시 총리였던 푸틴이 이듬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자 격렬한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푸틴의 도움 요청을 받은 그리스 아토스산 바토페디 수도원의 에프라임 신부는 동방정교에서 성물(聖物)로 여기는 ‘성모 마리아의 허리띠’를 지참하고 러시아로 날아가 러시아 각지에서 39일동안 이를 순회 전시했다. 이 기간 동안 300만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불임여성도 잉태하게 한다는 이 성물에 참배했다. 공항에서 에프라임 신부를 영접한 푸틴은 자연스럽게 이 성물의 첫 번째 참배객이 됐다. 이 모습은 고스란히 TV 중계를 통해 러시아 전역에 방송됐고 푸틴은 국민에게 성물을 러시아로 가져온 주역이라는 이미지를 심어 줬다. 2012년 2월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키릴 대주교는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혼돈의 상태였으나 신과 현명한 지도자의 도움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 푸틴에게 감사한다”고 푸틴을 향한 지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했다. 푸틴은 총선 승리를 바탕으로 국내외 정치에서 기존의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치 노선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가 소련과 같은 제국으로 성공하려면 소프트파워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군사력과 경제력이 필요하다. 러시아군은 현대화 작업을 지속하고 있지만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의 군비지출은 664억 달러로 미국(5960억 달러)과 중국(2150억 달러)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842억 달러)보다 뒤졌다. 나토는 내년 5월부터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는 동유럽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병력을 증강하기로 하는 등 푸틴의 팽창주의 정책에 대응한 서방의 견제도 강화되는 형국이다. 러시아 경제는 지난 몇 년간 원자재 가격 하락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침체해 왔다. 푸틴이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2012년 경제 성장률은 3.5%였으나 지난해 -3.7%를 기록했고, 올해는 -1.8%로 예상된다. 이달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도 3950억 달러로 2013년 10월(5240억 달러)에 비해 크게 줄었다. ●경제 침체에 군사력 뒷받침 부족… 팽창엔 한계 지난 총선의 투표율이 직전 선거의 60.2%보다 현저히 낮은 47.8%에 그쳤고 주요 대도시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30% 이하였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정치적 라이벌이 없는 푸틴 체제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반영한다. 블룸버그는 지난 19일 사설을 통해 “이번 총선은 푸틴이 대중과 점차 유리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경기 침체가 앞으로 러시아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될 것”이라며 향후 푸틴의 제국주의적 노선이 탄탄대로만 걷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알쏭달쏭+] 고양이는 어떻게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알쏭달쏭+] 고양이는 어떻게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개와 더불어 인간에게 가장 사랑받는 반려동물인 고양이는 어떻게 전세계로 퍼져 인류의 마음을 '정복'할 수 있었을까? 최근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자크 모너 연구소가 고양이의 '전세계 정복 과정'을 밝힌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유명 학술지 네이처(Nature) 최신호에 발표했다. 아직도 가축화가 끝나지 않은 고양이는 그 성격만큼이나 아직도 비밀이 많은 알쏭달쏭한 동물이다. 대표적으로 야생성이 강한 고양이의 가축화 시기를 놓고도 다양한 이론들이 제기될 정도. 현재까지 학계에서 받아들이는 주류 연구결과는 약 4000년 전 고대 이집트인들이 고양이를 길들여 전세계로 수출했다는 것이다. 이번 프랑스 연구팀은 고양이가 전세계로 퍼져나간 기원을 밝히기 위해 유전자 분석을 시도했다. 그 방법은 이렇다. 연구팀은 전세계 각지에서 발굴된 1만 5000년 전 부터 18세기에 이르는 208마리의 고양이에게서 미토콘드리아 DNA 샘플을 수집해 분석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죽은 세포나 미량의 시료에서도 추출이 가능하며 모계로만 유전돼 가계도를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다. 그 결과 고양이가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은 2단계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먼저 중동지역의 야생 고양이가 퍼져나가 지중해 동부 지역 농가에 자리를 잡았다. 쥐를 잡는데 능숙한 고양이와 식량을 지키기 원하는 인류의 이해가 서로 일치한 것. 이는 곧 고양이 가축화의 시작으로 개의 가축화 과정과도 비슷하다. 두 번 째 단계는 수천 년 후로 이집트산 고양이의 이동이다. 기원전 4세기~서기 4세기의 이집트 고양이 미토콘드리아 DNA는 서기 7~10세기 독일 바이킹 지역에서 발굴된 고양이에서도 확인됐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진 곳까지 고양이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류의 항해 덕으로 풀이된다. 연구를 이끈 진화유전학자 에바-마리아 게이글 박사는 "배 안의 식량을 지키기 위해 고양이가 타기 시작했고 이후 고양이는 유라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면서 "더 많은 샘플과 핵 DNA 추출 등 추가적인 연구가 있어야 정확한 고양이의 기원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10월 결혼’ 곽지민 “이상형? 건강미 넘치는 스타일” 발언 재조명

    ‘10월 결혼’ 곽지민 “이상형? 건강미 넘치는 스타일” 발언 재조명

    배우 곽지민(31)의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23일 스포츠동아는 “곽지민이 10월 중순 서울 인근의 한 웨딩홀에서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린다”고 보도했다. 예비신랑은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사실 외에는 구체적인 신상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다. 친구로 오래 알고 지낸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 결혼까지 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과거 곽지민의 이상형에 대한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과거 진행된 한 인터뷰에서 “공유 씨가 이상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공유를 이상형으로 꼽은 이유에 대해서는 “완벽한 조각 미남은 아니지만 자유로워 보이고 형식을 깰 것 같다. 남자답고 건강미가 넘쳐 보인다. 그런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2003년 영화 ‘여고괴담3-여우계단’으로 데뷔한 배우 곽지민은 2004년 김기덕 감독 영화 ‘사마리아’를 통해 파격적인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이 작품으로 그해 열린 제5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받기도 했다. 사진=곽지민 인스타그램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숨 가쁜 서초의 뒷공간 더 천천히… 더 자세히 느림과 여유 누려볼까

    [서울 핫 플레이스] 숨 가쁜 서초의 뒷공간 더 천천히… 더 자세히 느림과 여유 누려볼까

    서울 서초구 방배로42길, 일명 ‘사이길’이 수상하다. 방배동 서래마을과 카페 거리 사이 이면도로인 이 골목, 눈여겨보지 않으면 동네주민도 지나칠 법한 곳. 5년 전만 해도 동네슈퍼, 철물점, 세탁소, 김치공장이 들어서 있던 인적 드문 우중충한 뒷골목이었다. 350여m의 작은 거리가 이제 갤러리와 공방, 디자인숍, 베이커리와 작은 레스토랑 40여 곳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선 자생적인 명소로 발돋움하고 있다. 사이길은 현재 진행형 거리이다. 외지인이 점령해 버린 서촌길, 경리단길, 상수동 등과 달리 사이길은 아직은 젊은 예술인과 서초구민인 지역상인, 주민들이 주체다. 길 명칭도 상인회 격인 ‘예술거리조성회’의 아이디어 회의에서 나왔다.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이나 왁자지껄함은 적지만, 더 천천히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기쁨이 있다. ‘사이(42) 좋은 길’에 한발 들여놓는 순간, 당신도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볼 수 있다. ●즐길거리… 전시도 보고, 작품도 사고 사이길 초입의 4층 건물 ‘갤러리 토스트’는 이곳의 중심축이다. 2011년 이도영 아트 디렉터를 중심으로 몇몇 예술인이 의기투합해 “도심 낡은 뒷골목에 문화공간을 만들어 보자”며 덤벼든 게 시작이었다. 미나 아틀리에, 아트컴퍼니 긱 등 갤러리 예닐곱 개가 운영 혹은 새로 공사 중이다. 이씨는 “신진 예술가들을 자체 발굴해 전시·공연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다음달 14일부터 23일까지 ‘사이길 축제’와 더불어 아트페어 ‘작가와 함께하는 예술쇼핑’전이 열린다. 미술의 대중화와 소장문화 확산을 위해 신진작가들이 재능기부한 작품을 전시하고 10만원에서 100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사업에 선정된 행사다. 이씨는 “지난 8월 1차 페어 때 입소문을 듣고 ‘거실에 걸 그림을 싸게 사러 왔다’는 주민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1세대 조향사 정미순씨가 일일이 발품 들여 문을 연 우리나라 유일의 향수 박물관도 있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에 공방마다 일제히 할인상품을 내놓는 사이마켓데이에는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감 체험… 나만의 향수·가방 만들기 도자기, 가죽, 옻칠 공예, 베이킹, 부케, 선물포장, 목공 등 10여곳의 다채로운 공방이 들어서 있다. ‘1인 원데이 클래스’ 혹은 초·중급 과정이 다양해 초보자도 쉽게 체험하는 교육과정이 있다. 온라인에서 유명한 편집옷가게들도 있다. 향수공방(G.N 퍼퓸 스튜디오)에서 170여가지 향수 베이스와 천연향료를 이용해 나만의 맞춤 향수를 만들어 보자. 직장인 양수현(26·여)씨는 “남자친구 생일선물로 향수를 직접 만들어 주려고 한다”며 흡족해했다. 도자기 핸드 페인트 스튜디오(세라워크&방배목장)에 들어서니 동유럽 느낌이 물씬 나는 형형색색의 도자기 잔과 그릇들이 진열장에 한가득이다. 어린이 프로그램도 있어 아이들과 방문하기 안성맞춤. 한편에선 도자기처럼 흰 우유 아이스크림도 맛볼 수 있다. 옻칠공예가 박수이의 아틀리에 겸 카페는 오가는 동네 주민들이 노닥거리는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자가 들어서자 “매일 자리만 차지하다 가서 미안하다”는 노신사 네명이 왁자지껄 웃으며 자리를 뜬다. 2층 작업실에서 만든 옻칠소품들이 진열돼 있는데 구입도 가능하다. 다소 가격대가 나가긴 하지만 한창 핫(hot)한 가죽가방(알라맹)이나 핸드메이드 주얼리·바늘조각인형(수메이드), 마카롱·케이크(도나리) 만들기 체험도 매력적인 즐길거리다. ●먹을거리… 카페와 레스토랑 등 10여곳 성업 일식과 캐주얼 레스토랑, 베이커리, 카페 등 10여곳 중 입소문을 탄 곳이 많다. 메밀 자루소바 전문점(스바루)은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정기적으로 찾을 정도로 단골이라고 지나던 주민이 귀띔한다. 광화문 맛집인 ‘마이엑스와이프시크릿레시피’의 공동 창업자 출신 사장님이 낸 캐주얼 레스토랑(켈리&토니스팬케익)은 파스타·피자·볶음밥에 와인이 유쾌한 마리아주를 이뤘다. 크림치즈가 들어가 포실포실한 팬케이크는 사이길을 돌아보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딱이다. ‘구멍가게’라는 뜻의 에숍 레스토랑은 테이블 3개짜리 아늑한 공간이 매력적이다. 토스트 갤러리 1층의 베이커리(리블랑제)는 천연 효모, 프랑스 수입 밀가루로 만든 발효빵으로 오후에 한발 늦게 가면 떨어지기 십상이라고 한다. 일식 비스트로(강쉐프스토리)는 동네 주민들의 각종 모임 장소로 거듭나는 중. 문구용품 매장을 준비 중이던 30대 여성은 “성수동, 한남동 등지를 다 돌아봤지만, 번잡하고 임대료가 감당 못할 만큼 비싸더라”며 “예술적인 거리 느낌도 좋고 훨씬 싼 임대료로 들어올 수 있다”고 사이길에 대한 느낌을 말했다. 이도영 디렉터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느낄 수 있는 한적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이곳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정미순 조향사는 “트래픽이 많고 복잡한 상권보다 개인 공방·예술가들이 작지만, 자신만의 특색을 살려 주민과 함께하는 거리로 거듭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전했다. 방배본동 주민 정지원(45)씨도 “사이길에 대한 관심이 바람처럼 일었다가 썰물처럼 빠져버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찾아가는 길:내방역 7번 출구에서 함지박사거리 방향으로 걸어서 10분/ 3·7·9호선 고속터미널 8-2번 출구서 버스 148번 함지박사거리 하차, 7호선 내방역 2번 출구·2호선 방배역 4번 출구서 148·148·406번 방배프라자 하차 →서리풀공원길 연계코스:고속터미널역~서래공원~서리골공원~누에다리~몽마르뜨공원~청권사쉼터~방배역(3.9㎞)
  • 윤석화 교통사고, 갈비뼈 6대 부러져..연극 ‘마스터 클래스’ 일정은?

    윤석화 교통사고, 갈비뼈 6대 부러져..연극 ‘마스터 클래스’ 일정은?

    배우 윤석화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윤석화가 지난 20일 교통사고를 당해 갈비뼈 6대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에 2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개막 예정인 연극 ‘마스터클래스’ 공연을 일부 취소하기로 했다. 공연기획사 샘컴퍼니는 “윤석화가 20일 저녁 10시께 공연 연습과 TV녹화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6일까지 공연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윤석화는 2주 가량 안정을 취한 뒤 10월 7일부터 9차례 무대에 설 예정이다. 샘컴퍼니는 “무리하게 공연을 강행하면 안된다는 주치의의 권유에도 윤석화가 관객들과의 약속이며 생애 마지막 마스터클래스인 이번 무대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마스터클래스’는 전설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삶을 풀어낸 작품으로 원로 연출가 임영웅, 지휘자 구자범을 각각 예술감독과 음악감독으로 선임했다. 이번 앵콜공연에서는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새로 합류해 푸치니의 ‘토스카’ 아리아를 선보인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운드 오브 뮤직’ 차미안 카 별세... 그 때 출연 배우들 지금 뭘 할까?

    ‘사운드 오브 뮤직’ 차미안 카 별세... 그 때 출연 배우들 지금 뭘 할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올해로 개봉 51주년을 맞은 가운데 지난 18일 영화에서 맏딸로 등장한 배우 차미안 카가 별세한 소식이 전해졌다. 보도에 따르면, 차미안 카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에서 치매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21세였던 1965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출연한 차미안 카는 폰 트랩 대위(크리스토퍼 플러머 분)의 첫째 딸 ‘리즐’을 연기했다. 그녀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당시 영화 속 인물들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 크리스토퍼 플러머 (캡틴 ‘조지 본 트랩’ 역) 크리스토퍼 플러머는 당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사운드 오브 뮤직’ 주연 이후 100편도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과시했다. 그는 영화 ‘비기너스’로 81세의 나이에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 최고령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 줄리 앤드류스 (‘마리아’ 역) 줄리 앤드류스는 영화 출연 이후 약 36년간 무대와 스크린을 오가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영화 ‘프린세스 다이어리2’, ‘슈렉2’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연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1997년 성대 수술을 받으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게 됐다. 3. 니콜라스 해몬드 (둘째 ‘프리드릭’ 역) 영화 이후 그는 TV 버전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출연하며 연예계 활동을 이어 갔다. 1980년대 중반 호주를 방문한 니콜라스 해몬드는 호주와 사랑에 빠져 현재 시드니에 살고 있다. 그는 호주에서 여생을 배우, 시나리오 작가, 감독으로 보내고 있다. 4. 헤더 맨지스 (셋째 ‘루이사’ 역)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연기할 때부터, 그는 영화 ‘하와이’ 등 큰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다. 70년대에 그녀는 많은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1973년에는 ‘play boy’ 잡지에서 누드 화보를 공개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기도 했다. 광고 촬영 현장에서 남편을 만난 헤더 맨지스는 결혼 후 세 아이를 슬하에 두었다. 5. 듀안 체이스 (넷째 ‘커트’ 역) ‘사운드 오브 뮤직’ 연기 이후 단역을 주로 연기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그는 연예계와 단절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지질학 석사 학위를 딴 후, 현재 지질학 관련 소프트웨어 연구자로 일하고 있다. 현재 아내와 함께 미국 시애틀에서 살고 있다. 6. 킴 캐러스 (막내 ‘그리틀’ 역) 영화 촬영 당시 6살에 불과했던 킴 캐러시는 당시 ‘래시’, ‘나의 세 아들’ 등 많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현재 킴 캐러스는 오렐리아 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차미안 카의 별세 소식을 점한 킴 캐러스는 “내 평생의 맏언니 같은 분을 잃었다”며 애도를 표했다. 사진=‘오프라 윈프리 쇼’ 홈페이지 임효진 인턴기자 3a5a7a6a@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무용·클래식

    [이주의 문화 레시피] 무용·클래식

    ●2016 한가위맞이 희희낙락 한가위를 맞아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전통 공연. ‘춘향가’를 이국적 사운드로 재해석한 ‘두번째달’의 ‘판소리 춘향가 프로젝트’와 경기민요를 독특한 비트와 퍼포먼스로 풀어낸 ‘이희문 컴퍼니’의 ‘거침없이 얼씨구’를 한 무대에서 감상할 수 있다. 16일 오후 3시, 서울 강북구 꿈의숲아트센터 퍼포먼스홀. 전석 1만원. (02)2289-5401. ●유지연 바이올린 독주회 베토벤 ‘로망스 제2번’, 피에트로 나르디니 ‘바이올린 소나타’, 윤이상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모음곡 ‘정원에서의 리나’ 중 ‘작은 새’,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등 서정적인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연주회. 17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강남구 마리아칼라스홀. 전석 3만원. (02)6412-3053.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천재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서 발견한 ‘천사’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천재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에서 발견한 ‘천사’

    “나는 대리석에서 천사를 발견하고, 그 천사를 자유롭게 할 때까지 돌을 쪼아 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1475~1564)가 남긴 말이다. 자신의 조각작업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던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 ‘피에타’와 ‘다비드’상을 꼽는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무수한 예술가들이 만든 피에타상 가운데 바티칸의 성바오로 성당 입구에 있는 미켈란젤로가 24세 때인 1499년 제작한 피에타가 가장 아름답고 유명하다. 피렌체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2년 뒤인 1501년 다비드상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메디치 가문의 참주정치에서 탈피해 시민이 주인인 공화정을 채택한 피렌체의 시 위원회가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다비드를 정했고, 그 작업을 로마에서 피에타 조각으로 명성을 얻은 젊은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덩어리, 2년 매달려 만든 다비드상 뛰어난 예술가에게는 삶이 언제나 시험과 시련이었던 모양이다. 미켈란젤로에게 다비드상을 만들기 위해 좀 묘한 형태의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가 주어졌다. 원래 피렌체 대성당에 둘 목적으로 아고스티노 디 두치오 등 두 명의 조각가에게 맡겨졌지만 대리석의 두께가 높이와 너비의 비율과 맞지 않아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한 뒤 40년간 시의회 뒷마당에 방치돼 있던 것이었다. 인간을 초월한 신성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조각이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위대하며 영웅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미켈란젤로에게는 명예를 건 도전이었다. 그는 다듬어지지 않은 대리석 덩어리를 면밀히 관찰하며 직감적으로 영감을 끌어냈다. 그리고 그 안에 갇혀진 형태를 찾아내 망치와 끌로 쪼아가며 꼬박 2년을 매달려 1504년 다비드상을 완성했다. 거인 골리앗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 신성한 용기를 품은 젊은 다비드상을 본 피렌체 시민들은 젊은 천재 예술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시위원회는 다비드상을 대성당에 세우려던 계획을 바꿔 시민들이 수시로 모이는 시뇨리아 광장에 애국과 호국의 상징으로 다비드상을 설치하기로 한다. 르네상스를 넘어 고금을 통해 최고의 조각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다비드상은 3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다 1873년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피렌체를 찾았던 관광객들이라면 시뇨리아 광장과 접한 베키오 궁전 앞에 헤라클레스 조각상과 나란히 서있는 다비드상을 봤을 것이고, 그 앞에서 기념 사진도 찍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광장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다비드상이 서 있다. 그것들은 모두 복제품이고 진품은 시뇨리아 광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우피치미술관 만큼은 아니지만 언제나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1784년 토스카나주를 다스리던 피에트로 레오폴드 대공이 자신의 소장품을 미술학교에 기증하면서 미술관이 세워졌다. 특히 이곳은 미켈란젤로에게 헌사된 전시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한 하늘색 돔 천장 아래에 서 있는 다비드상은 보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미켈란젤로 평전을 쓴 프랑스의 로맹 롤랑은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혹은 천재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고 했다는데 인간을 초월한 숭고한 아름다움과 요동치는 내면의 에너지를 표현한 위대한 작품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그리스 조각같이 한 발에 힘을 주고 서 있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한 다비드가 골리앗을 공격하려는 긴장된 순간을 묘사한 조각상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왼팔은 굽혀서 왼쪽 어깨의 투석기를 짊어지고 있다. 인물의 엉덩이와 어깨는 반대각도를 향해 몸이 S자 모양의 곡선을 이룬다. 아래로 내려뜨린 오른팔의 직선과 돋움 자세를 취한 왼쪽 다리가 대비를 이루며 긴장감을 준다. 부릅뜬 눈은 거인 골리앗을 노려보느라 미간에 주름까지 잡혀 있고, 목의 핏줄과 앙다문 입술이 용기있는 청년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예상’ 등 미완성 작품들도 만날 수 있어 높이는 받침을 포함해 5.5m 정도인 이 조각상을 5~7m 거리에서 보면 균형이 잘 잡힌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오른팔이 신체에 비해 길고 돌을 쥐고 있는 손도 유난히 크다. 하체는 상체에 비해 크고 두껍다. 머리도 비정상적으로 큰 편이다. 이렇게 어긋나는 비율은 천재 미켈란젤로가 원근법을 계산해 조각상의 각 부위를 실제보다 크게, 혹은 길게 조각상을 만든 결과다. 목동이었던 다비드는 돌팔매 하나로 적장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한 소년 영웅이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소년이 아니라 근육질 청년이다. 로마에 머물면서 보았던 근육질의 헬레니즘 조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미켈란젤로는 헬레니즘 조각보다 더욱 과장되게 신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움과 힘을 지니고, 감정을 드러내되 평온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품은 훗날 르네상스미술의 일반적인 양식이 된 조각을 완성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는 다비드상 외에도 말년의 작품 ‘펠레스트리나 피에타’와 같은 미켈란젤로의 걸작들을 여러 점 만날 수 있다. 특히 미완성 작품들은 대리석 덩어리에서 형체를 찾아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정으로 쪼아 내던 작업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비 장식을 위해 시작했다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미완성으로 끝난 ‘노예상’ 연작과 피렌체 대성당을 장식용으로 주문받았다가 작업 도중 계약이 취소된 열두 사도상 등이 전시돼 있다. 미완성 작품들을 보면 돌 속에 갇혀 있는 형체들이 막 생명을 얻어 깨어나는 순간을 보는 것 같다. lotus@seoul.co.kr
  • 내셔널지오그래픽, 국내 라이선스 사업 본격 진출

    내셔널지오그래픽, 국내 라이선스 사업 본격 진출

    128년 역사를 자랑하는 강력한 글로벌브랜드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국내 라이선스 사업 진출을 선언하며 각 분야에서 함께 일할 파트너를 모집한다. 모집분야는 ▲소비자제품 ▲전시전 ▲여행 ▲키즈 ▲게임 ▲강연 ▲잡지(어린이, 여행, 역사 등) ▲도서 ▲디지털콘텐츠(앱, e-러닝 등) ▲테마파크 ▲에듀테인먼트 ▲온그라운드 이벤트 등 내셔널지오그래픽 브랜드 및 오리지널 소스를 활용한 모든 사업 분야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지난 1988년 총 33인의 과학자, 탐험가, 학자들을 주축으로 설립 된 세계 최대 과학 및 탐험 비영리재단이다. 그 동안 수 많은 과학, 탐험, 보존, 교육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지구의 아름다움과 인류의 끊임없는 탐험 과정을 전세계적으로 알리는데 힘 써왔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대표 탐험가로는 ▲수중폐를 발견한 해양탐험가이자 스쿠버다이빙의 창시자인 ‘자크 쿠스토’ ▲곰베 프로젝트의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영국의 동물행동학자이자 국내에서는 이효리와의 만남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제인 구달’ ▲세계 최초로 잉카의 공중 도시인 마추픽추를 발견한 ‘하이럼 빙엄’ ▲타이타닉과 아바타의 영화감독이자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인 마리아나 해구를 탐사한 ‘제임스 캐머런’ ▲대형 고양이과 동물보호 프로젝트인 ‘빅캣 이니셔티브’를 진행한 ‘데릭’과 ‘비버리 쥬베르트’ 부부 ▲세계 최초의 북극점을 탐험한 ‘로버트 피어리’ ▲탄자니아에서 호모 하빌리스 등 원시 인류의 화석을 발굴한 영국의 인류고고학자 ‘루이스 리키’ ▲1985년 수심 4천 미터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타이타닉호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로버트 밸러드’ 등이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파트너스코리아 양재현 대표는 8일 “지금까지 총 1만2,000건이 넘는 과학 및 탐험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 위치를 지구본 위에 모두 표시하면 빈자리를 찾기 힘들 것”이라며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모든 구성원들은 과학과 탐험, 스토리텔링에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7년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 마이클 페이가 가봉의 방대한 밀림 3,200킬로미터를 걸으며 숲의 아름다움과 훼손의 위험성을 전세계에 알렸고, 마침내 2002년에는 가봉 면적의 11%에 달하는 숲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보호받게 됐다. 한편 내셔널지오그래픽의 국내 비즈니스 파트너 모집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신청방법은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 홈페이지 와 페이스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아들아, ‘땀맘’ 먹지말고 죽으라!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아들아, ‘땀맘’ 먹지말고 죽으라!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땀맘 먹지말고 죽으라.” 죽음을 앞둔 아들의 수의(壽衣)를 마름질하는 어미의 마음을 어찌 필설(筆舌)로 나타낼 수 있으랴! 아들 응칠(應七·안중근의 아명)의 사형소식을 접한 조마리아 여사(1862~1927)는 안중근의 동생인 안정근과 안공근의 구설(口說)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전했다. '땀맘'을 먹지 말고 죽는 길이 어미가 원하는 길임을. 참으로 모진 어미다. 구설 내용은 당시 만주일일신문 1910년 2월 13일자 기사로 보도되었고, 지금까지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1909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 조선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한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는 어머니가 보낸 수의를 입고 그렇게 뤼순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이렇듯 조선의 독립은 힘들었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 히로히토(1901~1989)의 항복 선언을 통해 광복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이미 만주벌판 불던 칼바람이란 칼바람은 다 맞아오던 조선 독립 운동가들에게는 외세에 의한 해방이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노릇이었다.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또 다른 힘겨움을 예고하였기 때문에 일본천황의 항복선언은 두 눈이 얼얼해질 정도로 기뻤지만, 시간은 매웠다. 아쉬웠다. 우리 힘으로도 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이런 가슴 시린 조국 독립의 기억을 전시한 곳이 있다. 바로 천안의 독립기념관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대한문(大漢門 ) 앞뜰 가득 울려 퍼지던 3.1 운동의 눈물소리부터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맞추고 외쳤던 안중근 의사의 ‘코레아! 우라! (Корея! Ура! 대한! 만세!)’ 외침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눈보라 폭염 헤치며 항일독립운동의 한길을 걸어온 선대들이 건국절 운운하는 이들에게 내려치는 준엄한 꾸짖음에 정신이 번쩍 들 수 있다. ● 한반도의 얼을 담다! “말로만 듣다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왔는데, 정말 좋습니다. 모든 전시물들도 훌륭하고,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는 귀한 체험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독립기념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한 이무일(45·한의사)씨는 연신 전시물들을 보고 감탄을 쏟아냈다. 실제로 천안 목천읍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은 세계의 어느 독립기념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구성면이나 전시물의 수준, 규모 등 이 정도면 과히 한 국가의 독립을 기념할 만한 자격은 될 듯 하다. 독립기념관의 건립 계획 시초는 1982년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하여 1982년 8월 28일 독립기념관 건립 결정이 발표되었다. 이후 각계 대표 55명으로 구성된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만들어져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성금 500억을 기반으로 건립되었다. 원래 1986년 8월 15일 개관 예정이었으나 개관 11일 전에 전기화재가 발생하여 우여곡절 끝에 다음해인 1987년 8월 15일에 문을 열었다. 입구에는 민족의 비상을 표현한 '겨레의 탑'이 있어 하늘로 날아 오르는 민족의 기상을 표현하였다. 독립기념관 본관은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만들었는데 동양 최대 규모의 기와집으로 맞배지붕으로 모양을 마무리 하여 웅장함을 드러내고 있다. 본관에 들어서면 시계방향으로 제 1전시관에서 제 7전시관과 입체영상관이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전시관은 그 자체로도 규모가 있고 전시물들도 알차서 실제 모든 전시관을 다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 제 1전시관에서 제 7전시관까지 감동으로 우선 제 1 전시관의 경우 ‘겨레의 뿌리’라는 전시관명에 걸맞게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거북선까지 모형을 위주로 실감나는 전시물을 배치하였다. 제 2 전시관은 186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주로 일제 침탈시기의 기록을 전시하였다. 이 곳에서 을사늑약 전문과 형무소 체험을 할 수 있다. 제 3 전시관은 구한말 국권회복 운동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유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제 4 전시관의 경우 일제강점기 우리 겨레 최대 독립운동인 3.1 운동을 다루고 있다. 제 5 전시관은 일제강점기 시절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제 6 전시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제 7전시관은 일제 침탈 시기 각지에서 일어났던 독립 운동에 대해 그리고 있다. 이 외에 입체 영상관에서는 민족 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여러 영상물들이 제공되어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독립기념관은 다양한 특별전시들이 마련되어 있어 매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도 늘 색다른 전시공간을 제공하여 우리 겨레의 얼을 느끼게 한다. 또한 6.4m에 달하는 ‘광개토대왕릉비’가 있어 과거 선조들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전시관 이외에도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야외 캠핑장으로 인기가 있다. 특히 단풍나무길이 조성되어 조선총독부부재전시공원에서 통일염원의 동산 입구까지 약 4㎞에 걸쳐 아늑한 산책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니열차. 어린이방, 해설사 관람 안내 등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는 최적의 휴식 공간 및 문화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독립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독립기념관이라는 명칭에서 유래하는 무언가 무거운 주제의식에 버거워할 필요는 없다. 정말 볼만하고 가 볼만한 곳이다. 추천한다.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님이라면 필수 방문 코스. 혹은 연세 지긋하신 분들은 언제나 눈물짓는 전시물 하나는 발견한다. 3. 시설환경은 어떠한가? -바로 이 지점이다. 한 마디로 훌륭하다. 특히 여름철 캠핑장은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추천 1순위!! 4. 관람시간은 많이 걸리나? -가볍게 오후 반 나절 대강 보려고 한다면 기념관을 나설 때 아쉬움이 가득할 것이다. 제 1 전시관하나가 작은 박물관 규모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5. 독립기념관에서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는 공간은? -전시관들만 보지 말고 주변에 잘 정리된 숲길이다. 원래 독립기념관 주변은 풍광이 수려한 곳이어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산책을 꼭 해보길 바란다. 6. 홈페이지 주소 및 도움되는 사이트 주소는? -독립기념관 http://www.i815.or.kr/kr/ 7. 입장료와 기타 관광지정보는? -고맙게도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공휴일 정상개관). 주차료는 소형 2000원, 대형 3000원. 8. 주변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을까? -독립기념관만으로도 충분하다. 주변에 상록리조트와 남산 중앙시장 등이 볼 만하다.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체험은? -전시물들이 워낙 방대해서 독립기념관만큼은 꼭 해설투어를 들어야 한다.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독립기념관은 말 그대로 민족의 얼과 혼이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껴보는 것도 여행의 진정한 맛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함혜리의 미술관 기행]미켈란젤로에게 헌사된 공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함혜리의 미술관 기행]미켈란젤로에게 헌사된 공간,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

     “나는 대리석에서 천사를 발견하고, 그 천사를 자유롭게 할 때까지 돌을 쪼아 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1475~1564)가 남긴 말이다. 자신의 조각작업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던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 ‘피에타’와 ‘다비드’상을 꼽는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무수한 예술가들이 만든 피에타 상 가운데 바티칸의 성바오로 성당 입구에 있는 미켈란젤로가 26때인 1499년 제작한 피에타가 가장 아름답고 유명하다. 피렌체로 돌아온 미켈란젤로는 2년 뒤인 1501년 다비드상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메디치 가문의 참주정치에서 탈피해 시민이 주인인 공화정을 채택한 피렌체의 시 위원회가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다비드를 정했고, 그 작업을 로마에서 피에타 조각으로 명성을 얻은 젊은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맡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예술가에게는 삶이 언제나 시험과 시련이었던 모양이다. 미켈란젤로에게 다비드상을 만들기 위해 좀 묘한 형태의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가 주어졌다. 원래 피렌체 대성당에 둘 목적으로 아고스티노 디 두치오 등 두 명의 조각가에게 맡겨졌지만 대리석의 두께가 높이와 너비의 비율과 맞지 않아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한 뒤 40년간 시의회 뒷마당에 방치돼 있던 것이었다. 인간을 초월한 신성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조각이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위대하며 영웅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미켈란젤로에게는 명예를 건 도전이었다.  그는 다듬어지지 않은 대리석 덩어리를 면밀히 관찰하며 직감적으로 영감을 끌어냈다. 그리고 그 안에 갖혀진 형태를 찾아내 망치와 끌로 쪼아가며 꼬박 2년을 매달려 1504년 다비드상을 완성했다. 거인 골리앗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 신성한 용기를 품은 젊은 다비드상을 본 피렌체 시민들은 젊은 천재 예술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시위원회는 다비드상을 대성당에 세우려던 계획을 바꿔 시민들이 수시로 모이는 시뇨리아 광장에 애국과 호국의 상징으로 다비드상을 설치하기로 한다. 르네상스를 넘어 고금을 통해 최고의 고각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다비드상은 3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다 1873년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피렌체를 찾았던 관광객들이라면 시뇨리아 광장과 접한 베키오 궁전 앞에 헤라클레스 조각상과 나란히 서있는 다비드상을 봤을 것이고, 그 앞에서 기념 사진도 찍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 광장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다비드상이 서 있다. 그것들은 모두 복제품이고 진품은 시뇨리아 광장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우피치미술관 만큼은 아니지만 언제나 입장을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1784년 토스카나주를 다스리던 피에트로 레오폴드 대공이 자신의 소장품을 미술학교에 기증하면서 미술관이 세워졌다. 특히 이곳은 미켈란젤로에게 헌사된 전시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한 하늘색 돔 천정 아래에 서 있는 다비드상은 보는 순간의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진다. 미켈란젤로 평전을 쓴 프랑스의 로맹 롤랑은 ‘천재를 믿지 않는 사람, 혹은 천재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미켈란젤로를 보라’고 했다는데 인간을 초월한 숭고한 아름다움과 요동치는 내면의 에너지를 표현한 위대한 작품 앞에서 할 말을 잊었다.  그리스 조각같이 한 발에 힘을 주고 서있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한 다비드가 골리앗을 공격하려는 긴장된 순간을 묘사한 조각상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왼팔은 굽혀서 왼쪽 어깨의 투석기를 짊어지고 있다. 인물의 엉덩이와 어깨는 반대각도를 향해 몸이 S자 모양의 곡선을 이룬다. 아래로 내려뜨린 오른팔의 직선과 돋움 자세를 취한 왼쪽 다리가 대비를 이루며 긴장감을 준다. 부릅뜬 눈은 거인 골리앗을 노려보느라 미간에 주름까지 잡혀 있고, 목의 핏줄과 앙다문 입술이 용기있는 청년의 심리를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높이는 받침을 포함해 5.5m 정도인 이 조각상을 5~7m 거리에서 보면 균형이 잘 잡힌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오른 팔이 신체에 비해 길고 돌을 쥐고 있는 손도 유난히 크다. 하체는 상체에 비해 크고 두껍다. 머리도 비정상적으로 큰 편이다. 이렇게 어긋나는 비율은 천재 미켈란젤로가 원근법을 계산해 조각상의 각 부위를 실제보다 크게, 혹은 길게 조각상을 만든 결과다. 목동이었던 다비드는 돌팔매 하나로 적장 골리앗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한 소년 영웅이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소년이 아니라 근육질 청년이다. 로마에 머물면서 보았던 근육질의 헬레니즘 조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에 머물지않고 미켈란젤로는 헬레니즘 조각보다 더욱 과장되게 신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움과 힘을 지니고, 감정을 드러내되 평온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품은 훗날 르네상스미술의 일반적인 양식이 된 조각을 완성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는 다비드 상외에도 말년의 작품 ‘펠레스트리나 피에타’와 같은 미켈란젤로의 걸작들을 여러 점 만날 수 있다. 특히 미완성 작품들은 대리석 덩어리에서 형체를 찾아내고 불필요한 부분을 정으로 쪼아 내던 작업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켈란젤로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비 장식을 위해 시작했다가 지지부진해 지면서 미완성으로 끝난 ‘노예상’ 연작과 피렌체 대성당을 장식용으로 주문받았다가 작업도중 계약이 취소된 열두 사도상 등이 전시돼 있다. 미완성 작품들을 보면 돌 속에 같여있는 형체들이 막 생명을 얻어 깨어나는 순간을 보는 것 같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길섶에서] 바이칼 (5·끝)데카브리스트/이경형 주필

    이르쿠츠크는 바이칼호의 관문이다. 이곳이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릴 만큼 문화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여기 유배 온 데카브리스트(12월혁명당원)들이 끼친 영향 때문이다. 러시아로 쳐들어온 나폴레옹 군대와 맞서 치열하게 싸워 파리까지 추격했던 젊은 귀족 출신 장교들은 서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1825년 12월 러시아 최초로 농노제 폐지 등 근대적 혁명을 꾀하다 실패해 처형당하거나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났다.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인 ‘볼콘스키의 집’에 들렀다. 유배된 볼콘스키 공작의 부인 마리아는 ‘전쟁과 평화’를 쓴 톨스토이의 숙모로 그녀의 손때 묻은 오르간과 피아노를 둘러보면서 소설 속의 장면들을 떠올려 본다. 톨스토이는 도덕성과 강인한 정신력을 지닌 데카브리스트로부터 감명을 받아 데카브리스트의 아버지 세대부터 당대까지 볼콘스키 가문 등의 얘기를 전개해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젊은이들은 늘 변화의 주역들이었다. 데카브리스트처럼 역사의 진운을 개척한 것도 그들이었다. 아픔은 젊은이의 숙명이자 특권이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시장 언덕길 따라 3층 같은 7층 건물… 속 깊은 요셉처럼 약현 성당 보호했나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시장 언덕길 따라 3층 같은 7층 건물… 속 깊은 요셉처럼 약현 성당 보호했나

    성 요셉 아파트.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름이다. 가톨릭 성자의 이름이 붙은 아파트라니? 게다가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으로 일컬어지는 약현 성당이 바로 옆에 있다니? 약현 성당은 명동 성당보다 6년 앞선 1892년에 세워졌다. 설계자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코스트 신부로 명동 성당과 같다. 명동 성당은 사대문 안, 약현 성당은 사대문 밖과 그 너머의 경기도와 황해도 일부까지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관할하는 등 역할의 분담이 있었다. 명동 성당의 주보성인이 성모 마리아였기 때문에 그 준비 과정에 해당하는 약현 성당은 마리아의 남편인 성 요셉을 주보성인으로 모셨다고 한다(*이상 약현 성당 홈페이지 참조). 그런데 그 중요한 주보성인의 이름이 바로 성당 옆 아파트에 붙여진 것이다. 대중적인 지명도는 낮지만 아파트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건물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 두 건물 사이에는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만 같다. 종교적 이유에서 이 아파트가 세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사회 복지 사업의 일환으로 공동 주거를 마련했다거나, 혹은 신앙 공동체를 위한 시설이었다거나 하는 등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현장에서 들은 이야기와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성 요셉 아파트는 약현 성당의 수익 사업으로 진행된 프로젝트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종교 단체가 건물을 지어 수익 사업을 하는 것은 물론 종종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이 연재에서 다룰 예정인 신문로의 피어선 아파트 또한 같은 맥락에서 지어진 건물이다. 다만 개신교인 장로교 교단과 관련됐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통적으로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었다는 점은 자못 흥미롭다. 이 두 건물은 지어진 연대도 비슷하다. 성 요셉 아파트는 1971년 6월 20일에, 피어선 아파트는 같은 해 11월 10일에 각각 사용 승인을 받았다. # 답사의 시작은 서소문 공원부터 성 요셉 아파트의 답사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인근의 서소문 공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약현 성당 자체가 한국 가톨릭의 순교지인 이 서소문 처형장 터를 내려다보는 장소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의 집 또한 이 근처였다고 전한다. 약현(藥峴)이라는 이름은 ‘약초밭이 있던 고개’를 의미하며 지금의 중림로가 바로 약현이다. 이처럼 고개 옆 언덕 위에 지어진 약현 성당에서는 그 주변 일대가 잘 내려다보였을 것이다. 사실 이 서소문 처형장은 지난번 서소문 아파트 편에서 이야기한 욱천, 즉 만초천의 모래사장이었다. 지금은 복개됐으나 유난히 모래가 곱고 아름다웠다고 하는 바로 그 하천이다. 모래라서 처형된 사람의 피가 금방 스며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만초천 위에 지어진 서소문 아파트도 여기서 경의중앙선 철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지척이다. 청파로로 들어서서 브라운스톤 북서쪽 코너에서 보면 주변의 고층 빌딩 사이로 뾰족탑, 그리고 그 앞에 길게 누워 있는 누런색의 건물이 보인다. 약현 성당과 성 요셉 아파트다. 약현 성당이 능선 위에 있다면 성 요셉 아파트는 그 바로 아래에 낮게 깔려 있다. 하지만 이 정도 높이의 건물로도 성당 북쪽으로의 경관은 거의 다 막힌다. 그 방향으로 서소문 공원도 일부 있기 때문에 애초에 이 자리에 성당을 지은 취지에 위배되는 배치다. 지금이야 워낙 고층 건물이 많아서 경관이 거의 다 막혀있지만 성 요셉 아파트가 건립된 1970년대 초만 해도 이 일대에 높은 건물은 거의 없었다. 당시 성 요셉 아파트의 건립은 약현 성당으로서는 매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성 요셉 아파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본다. 청파로를 향해 우뚝 선 한림학사가 이 아파트의 일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두 건물은 서로 떨어져 있다. 이 일대는 시장 지역이다. 한때 칠패(七牌)시장으로 불렸고, 지금의 이름은 중림시장이다. 마포에서 만리재를 넘어온 어물과 곡물을 파는 시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조선 시대에는 종루, 즉 종로의 시전을 능가하는 큰 규모였으나 상권이 많이 축소된 지금도 아침이면 어물 시장이 열린다. 그 시장의 일부가 좁은 언덕길을 따라 오르는데 그것이 성 요셉 아파트의 저층부를 이룬다. 통인시장과 한 몸을 이룬 효자 아파트나 인왕시장에 인접한 원일 아파트를 연상케 한다. 그 시장의 소음과 혼잡으로부터 성당을 보호하기 위해 이 아파트를 지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 아파트 지어 인접한 시장의 소음·혼잡 차단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과 성 요셉 아파트로 들어가는 길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 아파트 옆 언덕길 어딘가에 성당으로 들어가는 부출입구가 있지 않을까 궁금해 직접 찾아도 보고 주민들에게도 물었는데 찾지 못했다. 약현 성당의 부출입구는 완전히 반대쪽인 중림로 쪽으로 나 있다. 즉 적어도 현재 상황으로 보면 약현 성당과 성 요셉 아파트는 인접해 있을 뿐 별다른 물리적 연결 고리 없이 분리돼 있다. 모르고 보면 경관이나 접근 등의 측면에서 성당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들어선 건물 같은데, 막상 건립 주체가 성당이었다니 좀 의아하다. 두 건물 사이의 긴장된 관계는 성 요셉 아파트 안에 들어가 보면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성 요셉 아파트의 복도는 약현 성당 쪽으로 나 있다. 이쪽이 남쪽이므로 결국 이 아파트는 북향이다. 즉 주거 가구는 약현 성당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다. 남향 선호가 워낙 강해 마주 보는 중정형 아파트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심각하다는 것을 이 연재에서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서는 그런 고뇌가 아예 읽히지 않는다. 아파트를 짓기는 짓되 시선은 성당 밖으로 돌리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 같다. 복도에 창이 나 있지만 상당히 높아서 성당 쪽을 잘 볼 수 없게 해 놓은 것도 유사한 맥락으로 읽힌다. 하지만 그런 덕분에 사적 252호로 지정된 이 유서 깊은 장소가 갖는 안온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잘 유지되고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약현 성당 마당 한구석에 앉아 늦은 오후의 햇살이 성당 벽면에 드리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이 기적 같은 일로 느껴진다. 건축은 수많은 대립과 모순의 관계 속에서 내리는 괴로운 결정의 과정이다. 다만 이 경우는 너무 ‘모 아니면 도’의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성 요셉 아파트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제3의 좋은 대안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찾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기도 하다. 약현 성당이 세운 건물치고는 성당과의 관계가 좀 뜻밖이라 그렇지 사실 성 요셉 아파트는 지금의 관점으로 봐도 배울 것이 많은 건물이다. 일단 지형의 흐름에 철저하게 순응하고 있는 건물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고갯길을 따라 지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형과 건물, 그리고 길 사이에 서로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가 만들어졌다. 툭하면 대지를 평탄화해서 경사지를 계단으로 만들어 버리는 요즘의 태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토 대부분이 경사지인 한국에서 경사지를 최대로 이용하는 건물의 유형이 발달하지 않았음은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 오래된 아파트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선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부의 공간 구성 방식이다. 경사지를 따라 아래에서 올라가다 보면 건물이 한 층씩 한 층씩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조형적으로나 동선적으로 혼란이 생길 수도 있는데 성 요셉 아파트는 이 문제를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하고 있다. 즉 건물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 중간과 양 끝에 계단실을 두어 편복도로 연결한 것이다. 건축물 관리대장에도 이 두 부분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그래서 개념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건물의 전체적인 윤곽이 단순하다. 다만 이런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저층부의 각 부분에서 레벨을 미세하게 조절한 흔적들이 많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낮은 층을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높은 층은 7층에 해당한다. 실제로 건물 안을 다녀보면 처음에는 미로 같지만 금방 구성의 논리를 알게 된다. 주어진 문제를 매우 간결하고 상식적으로 해결하고자 한 설계자의 생각이 읽히는 부분이다. # 선형식 서소문 아파트와 닮은 듯 다른 매력 성 요셉 아파트 최대의 특징은 역시 가장 대표적인 선형식 아파트라는 점이다. 특히 이 유형에서 최대의 라이벌이라고나 할 서소문 아파트가 또한 지척이다. 이 두 아파트는 여러 모로 비교 대상이다. 일단 지어진 시기도 비슷하다. 서소문 아파트는 1971년 1월 23일에, 성 요셉 아파트는 1971년 6월 20일에 사용 승인을 받았으니 이 둘은 동갑이다. 게다가 마치 자로 잰 것처럼 두 건물의 길이도 115m 내외로 비슷하다. 공통점은 또 있다. 둘 다 곡선형 건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중간에 두 군데가 꺾인 직선의 조합이다. 만약 완전히 곡선으로 지었으면 개념이나 조형면에서는 근사했겠지만 가구 배치, 콘크리트 타설 등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 기술로서는 이것이 최선이자 유일한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두 아파트의 차이점도 많다. 서소문 아파트가 만초천이라는 물길 위에 자리 잡은 것처럼 성 요셉 아파트도 물길 위에 지어진 것이라는 자료가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오류다. 물길에 대해 매우 자세한 조선 시대나 일제강점기의 지도 어디를 봐도 이 자리에 물길은 없었다. 성 요셉 아파트는 그냥 자연 지형 위에 지어진 건물일 뿐이다. 토지대장에도 종교용지로서 면적이 1790.8㎡에 달한다는 기록이 엄연히 나와 있다. 물길 위에 지은 건물이면 다르게 기술됐을 것이다. 또한 서소문 아파트가 계단실형인 데 반해서 성 요셉 아파트는 편복도식이다. 서소문 아파트는 거의 평지에 면하고 있지만 성 요셉 아파트는 경사지에 지어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두 선형식 아파트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 서로 저마다 다른 이야기와 건축적 가치를 보여 주고 있음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꼭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화려하고 눈에 띄는 건물만이 우리에게 감동과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 두 아파트는 설계자가 누구인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익명의 존재가 계획하고 구상한 건물들인 것이다. 다만 지어진 지 45년에 불과한 두 건물이 너무 낡은 상태로 있는 것은 안타깝다. 약현 성당이 1892년에 지어져 무려 124년이나 나이를 먹었고, 그 사이에 한국전쟁, 심지어 1998년에 취객의 방화로 인한 화마까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팎 모두 멀쩡하게 잘 남아 있는 것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모쪼록 중년을 맞은 이 두 아파트가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담는 그릇으로 건강하게 잘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 매개자로서의 예술 vs 실험에 빠진 예술

    매개자로서의 예술 vs 실험에 빠진 예술

    아시아 최대의 미술축제,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가 잇따라 개막해 2~3개월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가진 세계 각국의 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담론을 각자의 방식으로 펼쳐 보이는 미술축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지나치게 실험적인 거대 담론에 이끌려 길을 잃을 수 있지만 특징을 잘 찾아 작품들을 감상하면 신선한 예술적 충격을 맛볼 수 있다. 마리아 린드가 예술총감독을 맡은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를 주제로 37개국 101명의 작가가 참여해 회화, 설치,영상 등 252점을 선보인다. 린드 감독은 “예술의 도구화, 상업 예술시장의 팽창 등 예술 제반조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시점에서 예술을 중앙무대에 놓고 사회의 매개체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예술과 시민 사회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참여작가의 25%가 지난 1년여 동안 현지에서 지역 공동체와 협업 및 역사성에 주목한 신작을 제작했다. 전시 장소도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이외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의재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우제길미술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서구문화센터 앞 전광판 등 8곳의 외부 전시장으로 확대했다. 예술의 본질에 충실하고 삶 속에서의 예술적 개입을 실천하기 위해 전시 공간도 인위적인 구분 없이 작품들이 자유롭게 열린 공간에 배치되면서 관람객들에게 상상과 사색, 쉼의 여백을 제공하고 있다. 전시 작품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일상이 되어 버린 재난과 테러뿐 아니라 지구온난화, 인공지능의 문제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 준다. 1전시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요 거점이자 토론의 장이었던 광주 계림동 녹두서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라 가르시아의 신작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이다. 1980년대 광주의 상징적인 장소를 보다 광범위한 대중과 만나도록 개입한 가르시아는 이 작품으로 이번 광주비엔날레 눈예술상을 받았다. 도시의 공동체 문화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연구해 온 인도네시아의 줄리아 사리레티아티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이 자리잡고 있는 안산의 커뮤니티센터와 비디오 공유 플랫폼을 만들어 노동인구의 이주에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모색했다. 독일의 미하엘 보이틀러는 지역학생들과 함께 과일 담는 망과 인쇄소의 폐지를 ‘종이 소시지’로 재활용하는 ‘대인 소시지가게’를 선보였다.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사스키아 누어 판 임호프의 설치작품 ‘# +26.00’는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우제길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무등산 국립공원 내 의재미술관에서는 스웨덴의 구닐라 클링버그가 한국의 풍수지리와 오행, 자연 환경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비가시적 에너지의 흐름을 시각화한 ‘고요함이 쌓이면 움직임이 생긴다’를 전시하고 있다. 11월 6일까지. 광주비엔날레가 예술을 매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시험적인 성찰의 무대라면 전시 형식으로서 비엔날레의 본질을 묻는 부산비엔날레는 스펙터클한 작품들로 가득하다. 윤재갑 중국 하우아트뮤지엄 관장이 전시감독을 맡아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로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 열리는 부산비엔날레에는 23개국 121명이 참여해 미술뿐 아니라 건축, 디자인, 공연, 세미나를 펼친다. 윤 감독은 “전통과 현대, 아날로그와 디지털, 동양과 서양, 자본과 기술이 어우러진 세상이 혼혈하는 지구”라며 “90년대 이전의 자생적인 로컬아방가르드 시스템과 90년대 이후 대두한 글로벌 비엔날레 시스템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비엔날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로젝트1은 1960~1980년대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다룬다. 나라별로 큐레이터를 배치하고 각국의 섹션 전시로 세 나라의 아방가르드 미술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도록 했다. 한국작가 김구림, 이건용, 이승택, 이강소 등이 참여하고 중국에서는 쉬빙과 왕광이 등이, 일본에서는 시노하라 우시오와 야나기 유키노이 등 3개국 총 65명이 참여한다. 본전시에 해당하는 프로젝트2는 전시공간 F1963부터 볼거리다. F1963은 고려제강이 1963년부터 55년 동안 전 세계로 수출하는 와이어를 생산하던 공장을 조병수 건축가가 리모델링한 것으로 공장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채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노동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3000여평의 공간에서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네덜란드 작가 조로 파이글의 거대한 ‘오피움’, 김학제의 ‘욕망과 우주 사이’, 윤필남의 ‘손에서 손끝으로’ 등 스케일이 큰 작업들이 눈길을 끈다. 남아공의 자넬레 무홀리는 환희와 죽음이 교차하는 삶을 보여 주는 ‘사랑과 상실에 대하여’를, 중국의 진양핑은 평면회화 작업 위에 고무풍선을 매달고 공기총으로 쏴서 맞히는 ‘풍선맞추기’와 ‘스탠바이’를,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은 ‘혼혈하는 지구’라는 제목으로 미디어와 가상현실의 붓질이 접목된 신작을 선보인다. 부산비엔날레는 구글과의 협찬으로 구글컬쳐인스티튜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글 사진 광주·부산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예술에 담은 미래 광주서 열린다

    ‘2016 광주비엔날레’가 2일 개막, 66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광주비엔날레는 1일 오후 6시 40분 북구 용봉동 비엔날레전시관 광장에서 개막식을 열었다. 개막식에는 윤장현 광주시장, 박양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마리아 린드 총감독 등과 시민 1000여명이 참석했다. 개막식은 식전행사, 공식행사, 이벤트로 나뉜 빛고을 문화 난장으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2016 비엔날레는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를 주제로 오는 11월 6일까지 열린다. 모두 37개국 12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특히 올해는 광주의 정체성과 역사가 반영된 작품들이 대거 선보여 눈길을 끈다. 스페인 출신 도라 가르시아 작가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주요 거점인 ‘녹두서점’을 부활시킨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을 설치했다. 이 작품의 벽면엔 옛 녹두서점에 진열됐던 수천 권의 서적들이 꽂혀 있고, 입구에는 1980년대를 기억하는 각종 대자보가 나붙었다. 토미 스토켈이 광주에서 본 무등산 입석대, 표지석 등 큰 돌을 모티브로 한 ‘광주 돌’ 작품도 눈에 띈다. 마리아 린드 총감독은 “행사 주제인 ‘제8기후대’는 지진계가 기후의 변화를 예측하듯 예술가들이 사회의 변화를 먼저 예측·진단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예술에 담은 미래, 광주서 열린다

    예술에 담은 미래, 광주서 열린다

    ‘2016광주비엔날레’가 2일 개막, 66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광주비엔날레는 1일 오후 6시 40분 북구 용봉동 비엔날레전시관 광장에서 개막식을 열었다. 개막식에는 윤장현 광주시장, 박양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 마리아 린드 총감독 등과 시민 1000여명이 참석했다. 개막식은 식전행사, 공식행사, 이벤트로 나뉜 빛고을 문화 난장으로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2016 비엔날레는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를 주제로 오는 11월 6일까지 열린다. 모두 37개국 12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특히 올해는 광주의 정체성과 역사가 반영된 작품들이 대거 선보여 눈길을 끈다. 스페인 출신 도라 가르시아 작가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주요 거점인 ‘녹두서점’을 부활시킨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을 설치했다. 이 작품의 벽면엔 옛 녹두서점에 진열됐던 수천 권의 서적들이 꽂혀 있고, 입구에는 1980년대를 기억하는 각종 대자보가 나붙었다. 토미 스토켈이 광주에서 본 무등산 입석대, 표지석 등 큰 돌을 모티브로 한 ‘광주 돌’ 작품도 눈에 띈다. 페르난도 가르시아 도리는 광주 북구 일곡동 비영리민간단체인 ‘한새봉 두레’와 손잡고 개구리논과 생태 농업을 다른 ‘도롱뇽 논의 비탄’이란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이 밖에 우제길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의재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지에서도 본전시와 특별전을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  마리아 린드 총감독은 “행사 주제인 ‘제8기후대’는 지진계가 기후의 변화를 예측하듯 예술가들이 사회의 변화를 먼저 예측·진단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37개국 101명의 현대미술 작가들, 예술의 본질에 귀 기울이다

    37개국 101명의 현대미술 작가들, 예술의 본질에 귀 기울이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 축제 ‘2016광주비엔날레’가 1일 개막식에 이어 66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마리아 린드가 예술총감독을 맡은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를 주제로 37개국 101명의 작가 참여해 회화, 설치,영상 등 252점을 선보인다.  개막식에 앞서 1일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린드 감독은 “전세계적으로 예술의 도구화, 상업 예술시장의 팽창 등 예술제반조건의 과도한 팽창에 대한 우려가 증폭하는 시점에서 예술을 중앙 무대에 올려놓고자 하는 기획 의도를 담고 있다”며 “추상적이고 상상력이 가득한 공간에서 오늘날 동시대 예술이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답을 지속적으로 찾아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주제 ‘제 8기후대’는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에 대해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예술의 능력과 역할에 대한 탐구와 기대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예술의 역할 중 ‘사회와의 매개성’ 철학에 입각해 기획된 만큼 지역주민과의 소통, 사회적 실천 가능성을 부각시킨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이다. 키고 있다. 전시장소를 광주비엔날레전시관 이외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의재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우제길미술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서구문화센터 앞 전광판 등 8곳의 외부 전시장으로 확대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외부 전시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상상력으로 충만한 ‘제 8기후대’를 완성한다는 것이 기획의도다. 전시 외에 프로그램도 오프닝 퍼포먼스와 포럼, 시민 참여 프로그램, 광주비엔날레 특별전과 기념전, 포트폴리오 리뷰 프로그램 등 다양하다.  올해 전시에는 권역별로 유럽 18개국에서 44 작가, 아시아 11개국에서 32 작가를 비롯해 북미, 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에서 국제 미술계의 스타작가부터 신진작가까지 참여해 현대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지난 해 부터 작가들이 광주를 방문하면서 현지 주민들과 지역 밀착형 현장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그 결과물들을 전시에 반영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1전시관에서는 41명의 작가들의 다양한 장르 작품들이 파티션없이 전시돼 만화경적인 풍경과 ‘카오스’적인 풍경을 만들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주요거점이자 토론의 장이었던 광주시 계림동 녹두서점을 재현한 도라 가르시아의 신작 ‘녹두서점-산자와 죽은자, 우리 모두를 위한’을 만날 수 있다. 가벽 설치를 최소화하면서 비디오, 프로젝션 등 영상작품만을 배치해 공간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 2전시실에서는 필립 파레노의 드로잉을 LED조명과 사운드로 발전시킨 작품 ‘삶에 존재하는 힘을 넘어설 수 있는 율동적 본능을 가지고’가 설치됐다. 3전시실은 독립적인 영역을 만들면서도 열린 공간에 작품들을 설치했다. 장난감 레고블럭으로 독일 군용탱크기판을 실사이즈로 확대한 나타샤 사드르 하기기안의 작품, 광주에 머물며 지역학생들과 함께 작업한 미하엘 보이틀러의 작품 ‘대인 소시지가게’를 만날 수 있다. 4전시실은 테헤란에서 활동하는 모니르 샤루디 팔만팔마이언의 섬세한 거울공예 작품이 걸렸다. 5전시실은 성과 페미니즘 논의에 기반한 여성 퀴어문화를 주요 주제로 다뤄온 폴린 부드리와 레나테 로렌스의 영상 및 LED 조명작품이 중앙에 설치됐다.  외부 전시공간 중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사스키아 누어 판 임호프는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우제길 미술관에서 작품 ‘# +26.00’을 선보이며 뉘른베르크와 로테르담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베른 크라우스는 광주시민과 등산객, 여행자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이름없는 정원’을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제작했다. 무등산 국립공원내 의재미술관에서는 스톡홀름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닐라 클링버그가 한국의 풍수지리와 오행, 산 등을 연결해 작품화한 ‘고요함이 쌓이면 움직임이 생긴다’을 전시하고 있다.  광주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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