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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려진 레닌의 동상 머리 발굴…전시물로 돌아온다

    버려진 레닌의 동상 머리 발굴…전시물로 돌아온다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을 이끈 혁명가이자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가 있다. 바로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사상가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이다. 과거 동독 베를린 지역에 우뚝 서있다가 해체돼 땅 속에 묻힌 거대한 레닌 동상이 발굴됐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독일 현지언론은 과거 동독 쪽 베를린 인근의 한 숲에 매장된 채 버려진 레닌 동상이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몸통은 없고 머리만 남은 채 햇빛을 보게 된 이 레닌 동상은 길이 1.7m, 무게 3.5t의 거대한 크기로 화강암으로 제작됐다. 이번 발굴이 의미있는 것은 레닌 동상이 땅 속에 묻히게 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잘 알려진대로 레닌은 사회주의의 상징이다. 무려 19m 크기의 이 레닌 동상은 지난 1970년 동독 쪽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의 옛 레닌 광장에 세워졌다. 그러나 지난 1990년 대 초 소련 해체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 붕괴 그리고 독일 통일이라는 역사의 흐름 아래 한때 도도하게 서있던 레닌 동상은 실패의 상징이 됐다. 결국 이 동상은 1991년 100여개의 조각으로 갈갈이 해체돼 지역 숲 이곳저곳에 버려지는 신세가 됐다.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과 더불어 레닌 역시 함께 몰락한 것이다. 이렇게 버려진 레닌 동상은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으나 최근들어 다시 뉴스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현지 슈판다우 시가 땅 속에 묻힌 레닌 동상의 머리를 발굴해 박물관에 전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레닌의 머리를 전시할 의미가 있느냐는 논쟁부터 발굴 비용까지 다양한 논란이 일었으나 결국 역사적 가치에 무게가 실렸다. 이번 발굴을 추진한 슈판다우 지역의원인 게르하르트 한케(59)는 "레닌의 복귀를 환영한다" 면서 "왼쪽 귀가 없는 등 일부 손상된 상태이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전시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것" 이라고 밝혔다.   사진= ⓒ AFPBBNews=News1 / 트위터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오감으로 느끼는 사상

    오감으로 느끼는 사상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박영욱 지음/바다출판사/384쪽/1만 9800원 사상이란 철학자들과 지적 선구자들이 내놓은 관념적인 그 무엇을 지칭한다. 흔히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단계로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상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의 저자는 25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언급하며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오감으로 느끼고 감상하는 대상으로서의 사상을 소개한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깨달았듯이 진리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는 사상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사상의 물질성은 예술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또 예술작품의 미덕이란 추상적 개념을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문화와 예술에 천착한 저자는 얼핏 보기에 아무런 공통성이 없어 보이는 사상가와 예술가를 연결지어 풀어 나가는 방식으로 난해한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한다. 우선 비트겐슈타인과 에스허르, 들뢰즈와 렘브란트, 사르트르와 마네, 하이데거와 고흐, 레닌과 말레비치 등 눈으로 감상하는 평면적인 회화와 사진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사상들을 정리한다. 이어 마르크스와 쇤베르크, 니체와 바그너, 프로이트와 루솔로 등 음악과 사상을 연결짓는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 몸의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를 소개하고 푸코와 르코르뷔지에의 지적 권력에 대해 논한다. 책은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떠돌던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현대 사상이 예술 작품을 통해 구체성을 얻도록 돕는다. 예술작품과 사상의 연결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자란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열린세상] ‘위로공단’을 위하여/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

    [열린세상] ‘위로공단’을 위하여/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

    마르크스의 ‘자본’을 미술관에서 낭독한다면 그것은 미술일까. 그 물음에 답도 하기 전에 누군가가 당장 구속하라고 외치고, 이어 경찰이 즉각 구속하지 않을까. 노동운동 탄압을 기록한 영화를 미술관에서 상영해도 마찬가지일까. 아무리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해도 사람답게 살 수 없는 현실을 고발하는 기록 영화를 1000만명은커녕 서너 명이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덩그런 영화관에 앉아서, 하루 한 번 상영이라도 해주니 너무나 고맙다는 저자세로, 무조건 봐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보아야 하는 것도 한국이어서일까. 그렇게 본 임흥순의 ‘위로공단’은 지난 수십 년의 처절한 노동운동을 분노의 눈물을 철저히 배제하고 만든 탓에 더욱 처절하게 마음을 찢었지만, 노동자를 위해 노동자가 만든 노동자의 영화임에도 대부분의 노동자가 보지 않는 듯해 너무 안타깝다. 반면 벌써 1000만명이 보았다는 영화는 언제나 그렇고 그래서 이번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가 여성 독립군과 반민특위를 처음 묘사한 작품이라고 해서 본 다른 영화는 비록 할리우드를 모방한 활극이었지만, 노동운동과 마찬가지로 정의를 위해 싸우다 권력에 의해 탄압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반가웠다. 여성 독립군과 여성 노동운동가가 한 사람인데도 왜 노동영화를 보지는 않는가. 출연료가 수십억이라는 소위 스타들의 황당무계한 총칼 놀이가 없어서인가. 지난가을 부산영화제에서 내가 강연한 오리엔탈리즘이나 탈제국주의라는 주제와 가장 밀접한 것이 거기 처음 출품된 ‘위로공단’이었지만 ‘다이빙벨’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아예 한국이어서였을까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40년 전의 공순이부터 콜순이 등의 감정노동자, 동남아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 상황에 이르는 보편적 노동사를 정확하고 냉정하게 기록한 영화였기에 인류 공통의 감동을 얻기에 충분했다. 인류가 대부분 노동자이고 노동자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이 낭독되는 세계 최고의 미술제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위로공단’이 은사자상을 받았다고 하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 한때 화제였지만, 소위 미술 관계자는 물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고 놀라운 일이었다. 지난 100년 이상 파리나 뉴욕 등의 화려한 유행을 따라 현대 미술이니 동시대 미술이니 하며 허위의 서양 가면을 떡칠하기에 모두 야단법석이지만, 베니스비엔날레도, 임흥순도, 밀레도, 반 고흐도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이 인간의 삶을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라고 하는 지극히 단순한 진실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그 삶을 파괴한 제국주의나 국가주의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 그 이상으로 베트남 전쟁에서의 학살이나 베트남인을 비롯한 이주민 결혼의 참상이나 이주민 2세에 대한 차별까지 우리의 아류 제국주의적인 침탈과 억압에 대한 영화 등의 예술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혹시 지금 우리가 서양이나 일본의 제국주의를 모방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 동남아 기업 진출이나 한류 진출도 그 일환이고, 그곳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열심히 백인처럼 성형을 하며 헬스장이나 골프장에 세월을 바치면서 영어로 영혼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물어야 한다. 그러려면 서양이라고 하는 것이 처음부터 제국주의적인 우월과 차별의 논리가 아니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최고라고 받들면서 그 모방에 미쳐 있는 것은 아닌지도 물어야 한다. 인문학이니 뭐니 하기 전에 플라톤, 카이사르, 니체, 하이데거 같은 사람들이 제국주의나 국가주의의 원흉이 아닌지도 물어야 한다. 세계의 미술관에서 ‘자본’이 낭독되고 ‘위로공단’의 아픈 노동이 인류를 위로하는데도 정작 우리 사회는 아직도 처벌의 위협과 냉담한 무관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참된 세계 예술의 창조에 참여할 수 없다. 예술을 형식적으로 구분하고 그 가치의 척도를 서양에 두는 제국의 시대도 지났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보통 사람, 노동자들이 어떤 억압이나 차별도 없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려고 하는 삶의 진실을 담는 예술의 창조, 아니 그 삶 자체다.
  • 시진핑의 장쩌민 지우기

    중국 베이징시 하이뎬(海澱)구에 위치한 중앙당교 정문에 있던 거석이 최근 사라졌다. 중국 공산당 교육기관인 중앙당교의 상징과도 같은 이 거석에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쓴 ‘중공중앙당교’라는 황금색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중앙당교 측은 “많은 사람들이 거석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교통에 영향을 줬고 일부 민원인들이 이 거석 앞에서 수료 기념사진을 찍는 당 간부들에게 접근해 억울한 일을 호소하는 일이 잦아 학교 내부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중앙당교는 거석이 있던 자리에 마르크스와 엥겔스,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자오위루(焦裕綠), 구원창(谷文昌) 등의 석상을 세워 학교의 공산당 혁명 전통을 강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오위루와 구원창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전 당원에게 본받으라고 주문한 지방의 옛 당서기들이다. 그러나 홍콩 명보와 중화권 매체 둬웨이 등은 24일 ‘장쩌민 지우기’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최근 상하이 공군정치학원과 베이징 인민해방군 301병원에 있던 장쩌민 글씨도 철거됐는데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관가에서는 낙마한 관리가 휘호한 글을 제거하는 전통이 있다. 앞서 이달 초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례적으로 당 최고지도부와 원로들 간 ‘비밀회동’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열리는 와중에 ‘손님이 떠나면 차(茶)도 식어야 한다’며 은퇴한 간부들의 지속적인 영향력 행사를 강력 비판했다. 장 전 주석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이어 중국 국영 CCTV와 당 이론지 광명일보는 지난 20일 ‘개혁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하고 신념과 강인성을 유지하자’는 제목의 칼럼을 동시에 냈다. 칼럼은 “개혁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반대하는 힘은 완고하고 맹렬하며, 복잡하고 기괴하다”면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을 초월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장 전 주석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에 따라 장 전 주석을 필두로 한 원로그룹이 시 주석의 반부패 개혁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고 시 주석이 장 전 주석과 마지막 일전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에리히 프롬은

    에리히 프롬(1900~1980)은 세계적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철학자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독일계 유태인으로 태어난 프롬은 1918년 프랑크푸르트대 법철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막스 베버의 동생인 알프레드 베버, 칼 야스퍼스 등이 교수로 있는 하이델베르크대로 옮겨 사회학을 배웠다. 하이델베르크대 생활 3년 만에 사회학 전공으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프롬이 관심을 보였던 분야는 정신분석학이었다. 대학 졸업 후 프리다 라이히만의 정신분석 치료소에서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뒤 1927년 자신의 진료실을 열었고, 1930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본산인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 들어가 자신의 정신분석학 이론의 정립을 마쳤다. 이후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고, 유태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프롬은 스위스 제네바를 거쳐 미국으로 떠났다. 프롬이 이룬 학문적 성과 가운데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정신분석학의 비조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후 정신분석 이론을 사회 및 정치 전반에 적용한 부분이다. 그는 자신을 ‘정치심리학’의 창시자로 만든 대표작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파시즘의 심리학적 기원을 밝혀 민주주의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밝히고 있다. 프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생물학적 성장이나 자아 실현이 방해를 받을 때 일종의 위기 상태에 빠진다. 이러한 위기에서 인간은 사디즘, 마조히즘 등 권위에 대한 복종 또는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는 권위주의로 빠지게 된다. 이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프롬은 자아를 실현하는 생활이 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또 생산적인 생활과 인간의 행복이나 성장을 바라는 인도주의적 윤리를 신봉할 때 사람은 행복하게 될 수 있다고 한다. 프롬은 권위주의, 사디즘, 마조히즘 등의 인간적 파탄은 인간성이 발전 및 발현되지 않을 때 일어난다고 봤다. 프롬은 윤리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인 ‘인간 상실과 인간 회복’,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사랑의 기술’, ‘소유냐 존재냐’ 등을 집필하면서 심리학의 지평을 넓혔다. 또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대자들과 지지자들의 잘못된 지식을 바로잡기 위해 ‘에리히 프롬, 마르크스를 말하다’를 펴내는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獨국민 ‘I ♥ 폭스바겐 >괴테 >메르켈’

    獨국민 ‘I ♥ 폭스바겐 >괴테 >메르켈’

    ‘맥주의 나라’로 알려진 독일을 대표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국 리서치회사인 ‘유고브’가 지난해 10월부터 올 4월까지 독일인 108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는 예상과 사뭇 달랐다. 밀맥주를 즐겨 마시며 매년 뮌헨에서 맥주축제인 ‘옥토버페스트’를 여는 독일인이지만 절반 이상(57%)이 “맥주보다 와인이 좋다”고 답했다. 맥주는 독일인이 꼽은 대표 상징물 순위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독일 심리학자 홀거 가이슬러의 말처럼 독일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실제와 차이가 났다. 독일 DPA통신 등 현지 언론들은 유고브의 설문을 인용해 독일인이 꼽은 대표 1~3위는 자동차 폭스바겐(63%·복수응답)과 19세기 대문호 괴테(49%), 현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45%)이라고 11일 보도했다. 폭스바겐은 ‘딱정벌레형 자동차’로 유명한 자동차회사다. 나치 통치기인 1937년 설립돼 부자의 전유물이던 자동차 보급에 앞장섰다. 이어 4~6위는 독일 국가(44%), 축구대표팀(39%), 통일의 기반을 닦은 빌리 브란트 전 총리(30%)가 꼽혔다. 나치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25%)는 7위에 이름을 올려 세계적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24%)을 간발의 차로 제쳤다. 9~10위는 아인슈타인에 소수점 이하의 수치로 밀린 전통 음식 커리부어스트와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각각 차지했다. 맥주가 외면받은 것과 달리 주로 맥주와 함께 먹는 소시지(15%)가 12위에 꼽힌 사실도 흥미롭다. 공산주의를 창시한 카를 마르크스(9%)는 16위에 그쳤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회장님의 침묵/주병철 논설위원

    독일 작가 마르크스 피카르트는 ‘침묵의 세계’라는 책을 통해 침묵을 이렇게 정의했다. “침묵은 인간을 포함해 세상 모든 것의 존재를 증명하는 제3자의 언어와 같다. 침묵은 말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우리는 침묵이란 언어를 잊고 있었을 뿐이다.” 뇌의학의 관점에서 침묵은 가치가 있다고 한다. 새로운 지식 혹은 정보가 뇌에 입력될 때까지는 시간(침묵)이 필요한 데 쉴 새 없이 또 다른 지식이나 소음이 들어가면 이전의 지식과 정보는 날아가 버린다는 것이다. 또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특징 중의 하나인 충동과 욕구를 잘 조절해 주는 데도 침묵이 도움이 된다. 침묵은 때론 위력적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1년 1월 13일 애리조나 총기 난사 사건 현장인 투손을 방문해 30분이 넘는 추모 연설을 했다. 오바마는 “우리 민주주의가 9살 난 최연소 희생자 크리스티나 그린이 상상한 것과 같이 좋았으면 한다”는 대목에 이르러 그만 감정에 북받쳐 연설을 중단해야만 했다. 감정을 추스르느라 입을 다물었고 눈물을 보였다. 51초 동안 침묵이 흘렀다. 뉴욕타임스는 ‘국민과 소통한 극적 순간’이라며 극찬했다.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로 불렸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제품 설명 도중 말을 툭 끊는 것으로 유명했다. 청중의 관심을 끄는 ‘의도된 침묵’으로 늘 성공했다. 지난해 5월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 도중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다 말문이 막힌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도 눈길을 끌었다. 침묵은 반대로 난처하거나 사실을 숨기려 할 때 괜찮은 무기로 활용된다.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을 때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을 요구받는 누구라도 이를 애써 외면하지 못한다. 한때는 독재자들이 침묵을 방패막이로 활용했다.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저서 ‘건전한 사회’에서 “실제적인 관점에서 진리보다 침묵이 더 위대하다. 지도자들은 어떤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거나 또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실이나 쟁점을 처칠이 말한 ‘철의 장막’으로 둘러쳐 대중이 그것을 알지 못하게 함으로써 아주 떠들썩하게 반박하거나 논리적 반증으로 견강부회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고 했다. 침묵의 또 다른 얼굴이다.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에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요즘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러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건지, 일각의 우려처럼 건강 이상설 등으로 말을 못 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왕자의 난’ 때 아들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는 걸 보고 얼른 문을 닫았다고 한다. 말도 잘 못 하고 정신도 오락가락했지만 본능적으로 다투는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후문이었다. 적어도 신 회장도 ‘말의 침묵’보다는 ‘생각의 침묵’을 택했을 수 있다. ‘욕망의 침묵’은 아닐 테고.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문장의 숲으로 발밤발밤 어느새 한글과 네롱내롱

    문장의 숲으로 발밤발밤 어느새 한글과 네롱내롱

    ‘어디선가 무덥고 게으른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여름 오후의 햇빛은 날이 잔뜩 서 있었다. 아스팔트조차 찐득찐득 녹아들고 있는 도심지로 나를 태운 버스가 거침없이 굴러들어 갔다.’ 소설의 힘은 문장에서 나온다. 밤잠을 설치게 하는 벅차오르는 감동도,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아픔도 문장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소설 속 문장이 소설 밖으로 나왔다. 한 문장 한 문장 모여 숲을 이뤘다. ‘문장의 숲’은 우리글 고유의 맛과 향기로 가득하다. 소설 속 문장을 통해 우리글의 가치를 되새기는 국립한글박물관의 특별전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소설 속 한글’이다. ●집필과정의 고뇌와 영감 속 한글 가치 찾아 전시장은 소설가들이 글을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는 과정에 따라 구성됐다. 소설가가 글을 쓰면서 고뇌하고 영감을 얻고 집필하는 공간, 어느 정도 완성된 소설을 고쳐 쓰는 교정 공간, 완성된 소설이지만 좀더 맛깔나는 우리글로 바꾸기 위해 다시 쓰는 공간 등이다. 집필 공간에선 소설가 김중혁·김애란이 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정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 준다. 교정 공간엔 소설 속 단어들을 낱말카드로 만들어 전시해 놨다. ‘앵하다’(기회를 놓치거나 손해를 봐서 분하고 아깝다, 염상섭 ‘전화’), ‘발밤발밤’(가는 곳을 정하지 않고 발길이 가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걷는 모양, 이기영 ‘쥐불’), ‘막덕’(마르크스주의나 그것을 믿는 자를 낮춰 부르는 말, 채만식 ‘치숙’), ‘우엉을 까다’(시치미를 떼고 모른 체하다, 이기영 ‘쥐불’) ‘네롱내롱하다’(서로 너나 하면서 터놓고 지내다, 채만식 ‘태평천하’)…. 카드마다 감칠맛 나는 우리말의 단어와 그 의미 및 출처, 예문을 적어 놨다. 전시장 벽면 곳곳이 소설 속 문장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게 인상적이다. 근현대 소설들 속에서 우리글의 아름다움과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문장들을 뽑았다. 사랑과 여름 등을 묘사한 문장, 소설의 첫 문장들, 원전 한 권을 두고 다양하게 번역된 문장 등 수많은 문장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창작열 오롯이 담긴 원고·연필 선보여 작가들의 집필도구, 육필원고, 교정지, 소설을 쓰기 위해 참고하는 책 등 다양한 물품도 마련돼 있다. 김훈이 ‘칼의 노래’를 쓰기 위해 공부했던 자료들과 몽당연필, 최명희와 황순원의 만년필, 조정래가 ‘아리랑’을 쓰면서 사용했던 세라믹 펜과 펜 심 580여개 등 한 편의 소설을 쓰기까지 혼을 불사르는 작가들의 창작열을 느낄 수 있다. 한글의 특징과 의미를 주제로 소설가, 번역가, 교열가 등을 인터뷰한 내용도 볼 수 있도록 꾸몄다. 윤후명은 “지금은 이미지가 메시지를 선행하는 세상”이라며 “이야기가 중심이던 소설이 문장 중심의 소설로 바뀌면서 올바른 우리글 사용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김훈은 “한글은 우리의 피돌기와 같은 것”이라며 “한국인이 무엇에 관해 생각한다는 것은 머릿속에 한글이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책 500여권… 음악·영화 등 놀거리도 소설가들에게 감동을 준 500여권의 소설을 구비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한글의 다양한 면모를 실험하는 ‘잠재문학실험실’의 소설 쓰기 체험, 소설 속 음악과 영화 등 다양한 즐길거리도 마련됐다. 문영호 한글박물관장은 “소설가들의 끊임없는 고뇌 속에서 탄생하는 문장들은 한글의 가치와 진면목을 보여 준다”며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한 소설가들의 노력을 이해하고 그들이 만들어 내고 지켜 낸 우리글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다음달 6일까지 열린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한국 ‘마르크스 경제학 거두’ 떠나다

    한국 ‘마르크스 경제학 거두’ 떠나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거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73세. 김 교수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인물로,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태두로 꼽힌다. 2일 지인들에 따르면 김 교수는 지난달 24일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갔으며 같은 달 31일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미국에서 장례를 치른 뒤 다음 주말쯤 김 교수의 시신을 한국으로 옮길 예정이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년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1969년부터 1975년까지 한국외환은행에서 근무했다. 김 교수는 학문의 길을 걷기 위해 런던대 대학원 경제학과에 연구생으로 들어갔다. 1982년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해 한신대 무역학과 부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냈다. 1989년 2월 서울대 교수가 될 때에는 기존 교수진의 반대가 심해 임용이 무산될 뻔했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을 배우고 싶다는 학생들의 바람이 워낙 강해 결국 모교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같은 해 3월 ‘자본론’ 1권을 출간한 뒤 다음달에 2권, 그 다음해에 3권을 연달아 발표했다. 당시 자본론은 금서였다. 김 교수는 저서에서 “잡아가려면 잡아가 보라는 마음으로 자본론을 출판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도 번역해 좌우 학문적 균형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자들은 김 교수를 ‘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통해 발견하고 이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려 평생을 바친 학자’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를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며 주변 지인들과 술 한 잔 나누며 대화하기를 즐겼다고 떠올렸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김 교수는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변화하는 자본주의 현실에 맞춰 재해석하려고 연구한 스승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길섶에서] 불평등의 기원/문소영 논설위원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읽지 못하고 목침으로 활용하고 있다. ‘조만간 읽어야지’에서 ‘언젠간 읽어야지’로 모드 전환해 놓았다. ‘자본이 돈을 버는 세상’이라는 지당한 격언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읽고 싶은 마음이 뚝 떨어진 탓이다. 다만, 옆에 놓고 굴리면 조금은 빠른 시점에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다. 지난 5월에 김병익 평론가가 쓴 어떤 서평을 읽다가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 공저의 ‘불평등의 창조’라는 책을 샀다. ‘인류는 왜 평등 사회에서 왕국, 노예제, 제국으로 나아갔는가’가 주제인데 1000쪽을 넘긴 이 책 역시 읽지 않는다면 목침용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 책은 책상머리에 두고 그 위로 한숨을 쌓는다. ‘언제 읽을까!’라며.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불평등의 기원을 먼저 알아봐야겠다는 지극히 ‘먹물’ 같은 생각이 두꺼운 책에 막혀 괴롭던 차에 자크 루소가 1753년에 쓴 ‘인간 불평등의 기원론’을 최근 읽었다. 마르크스 ‘자본론’보다 약 100년 앞서 불평등을 질타한 이 책은 160쪽에 불과하다. ‘자유 이외에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란 표현의 저작권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루소였다. 좋은 책은 얇더라!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글로벌 시대] 글로벌화에 대한 단상/이옥순 인도연구원장

    [글로벌 시대] 글로벌화에 대한 단상/이옥순 인도연구원장

    1980년대 후반 구체제 붕괴 직전의 소련에서 온 기자들과 인도 여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인도 정부가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국립 타스통신사에서 일하는 남녀 기자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된 나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우리’라는 공통의 영역이나 실낱같은 인연을 찾아내 분위기를 띄우듯이 소련 출신의 작가, 즉 톨스토이의 ‘부활’과 ‘안나 카레니나’,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었노라고 말문을 열었다. 내 옆에 있던 다른 한국인 유학생도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물론 체호프의 희곡집과 단편들도 잘 안다고 거들었다. 그런데 소련 기자들은 반가워하기보다 난처한 표정을 지어서 나와 친구의 선한 의도를 수평으로 만들었다. 짧은 침묵을 삼키고 말을 시작한 그들은 그 책들을 읽은 적이 없으며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저 매일 데모가 일어나는 나라라는 정도라며 미안해했다. 문학 이야기에 이어서 무소로그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논하려던 나와 동행은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그 나라 사람들보다 그 나라의 작가나 음악가에 더 정통한 우리의 세계화된 지식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15년 뒤에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란 졸저를 통해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잡은 서양의 존재를 고민하게 된 발단이 그 순간이었다. 우리의 근대화란 발전한 서양의 기술을 채택하고 그 사상과 문화를 빌리면서 이뤄졌고, 은연중에 우리는 서양을 가치와 규범의 중심에 두고 내면화하는 동시에 서구 문학과 음악을 읽고 듣는 걸 교양으로 여기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문화적으로 서양보다 열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자 한국인인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중에 독일 작가 마르크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을 국내에 번역한 모 교수가 그 책이 독일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사랑받는다고 했을 때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조보다 더 원조 같고, 서양인보다 더 그들의 문학과 예술을 상찬해 온 우리는 오늘날에 이르러선 미국산 소프트 문화-할리우드 영화, 스타벅스 커피, 맥도날드 햄버거 등-를 향해서도 깊은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우리의 것이 잊히는 세상에서 서구적인 것이 주인공인 이런 현상이 자랑할 일은 아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의 서구화 또는 세계화는 빠르고 강렬했다. 성공을 수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진정한 글로벌화를 추구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국경 너머의 것들을 수입하고 소비하는 일방적인 짝사랑을 넘어서 우리 것을 바깥에 알리고 인정받는 것, 즉 쌍방 통행의 시기가 된 것이다. 현재 어느 정도 글로벌화한 우리 문화엔 ‘강남스타일’로 알려진 가수 싸이의 노래를 비롯한 케이팝과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은 한류 드라마가 꼽힌다. 삼성의 휴대전화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상품도 있다. 다른 세상에서 우리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받는 건 유의미하다. 기억할 건 서양에 인정받고 그들이 주도하는 주류 세계에 끼고 싶은 욕망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일이다. 얼마 전 해외 여러 나라에서 작품이 번역, 출간돼 글로벌 작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작가가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을 봐도 그렇다. 그래도 글로벌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한두 명으로 조급히 추진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은 건 무의미하지 않다.
  • 현실을 담은 문화, 역사에 눈뜬 비평

    현실을 담은 문화, 역사에 눈뜬 비평

    프레드릭 제임슨(81)은 포스트모더니즘, 후기 자본주의, 후기 마르크스주의적 문화이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문화비평가다. 그는 이미 35년 전 문학·문화의 비평에 있어 작품을 예단하고 재단하는 경향을 경계했다. 이는 개별 작품마다 갖고 있는 해석의 범주에 비평가들이 정직한 응답을 하기 이전에 미리 판단의 잣대를 설정하는 ‘윤리적 비평’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작가와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평단의 전체 흐름에 쏠리는 몰비판적 비평 등에 대한 계언이었다. 최근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꼽히는 ‘정치적 무의식’(민음사 펴냄)이 완역됐다. 이 책은 ‘사회적인 상징적 행위로서의 서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제임슨에게 가장 중요한 잣대는 역사와 역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변증법적 사유다. 그는 문학과 예술이 어떻게 집단·역사의 차원에서 모순적인 현실과 역사를 살아내고 새로운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밝혀내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그는 ‘비평에 담긴 가장 순진한 형식적 독해들조차도 그 본질적이고 궁극적인 기능에 있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특정 관점을 유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현실 속 비평이 갖고 있는 속성을 꿰뚫는 명제이다. 또한 비평이 개별적인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더욱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역사성에 대해 복무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넌지시 담고 있다. 이제는 하나의 비평 용어로 자리잡은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개념 역시 궁극적으로는 역사성에 대한 강조다. 이는 개인적이거나 개별 심리적이지 않고 계급적·집단적·역사적 차원, 즉 정치적인 범주 속에서 모순적인 현실과 역사를 살아내기 위한 무의식적이고도 필사적인 반응을 말한다. 그는 또한 문학과 예술이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모순을 서사화하는 부분에 주목하면서도 개별 예술작품들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해결해서 오히려 그 모순과 갈등을 은폐하는 데 효과도 있다고 말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해석법을 통해 ‘정치적 무의식’을 거침없이 설파하는 그조차도 ‘문화 비평의 특권적 위치를 아전인수 격으로 옹호하는 것은 망설여지는 일’이라고 전제하긴 했다. 문학·문화 비평은 그만큼 신중할 수밖에 없는 행위인 탓일 테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역사가들의 눈으로 바라본 시대史

    역사가들의 눈으로 바라본 시대史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루츠 라파엘 엮음/이병철 옮김/한길사/636쪽/2만 3000원 저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과거 사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해석, 평가하여 재구성할 때 확립되는 것”이라고 했다. 역사책을 접하기 이전에 그 역사가가 처한 시대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역사가들의 연구가 축적된 역사학은 그 시대의 문제의식과 담론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는 지난 두 세기 반 동안 근대 역사학의 태동과 발전을 주도했던 몇몇 뛰어난 역사가들과 그들의 저작을 통해 ‘역사학의 역사’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근현대사를 전공한 루츠 라파엘이 기획한 책은 모두 27명의 거장 역사가들을 선정한 뒤 각 인물의 전문 연구자들이 그들의 생애와 저술, 그리고 영향을 소개한다. 소개된 ‘거장’들은 역사학 분야의 학문적 토론에서 현재적 영향력을 지니고 이후 세대의 역사가들에게 중요한 자극을 준 학자들이다. 이들은 역사학의 개념, 이론, 방법론, 작업 유형에서 대표적인 본보기가 되는 인물들로, 이들 대부분이 탁월한 문장가이며 역사적 소재를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그리고 각자의 특이한 연출법으로 다룬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역사가가 아니면서 사회과학자로서 역사적 주제를 작업한 연구자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라파엘은 이들 거장에 대한 전기적 접근을 통해 책이 추구하는 것은 ‘일정한 역사학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기념비적인 저작을 남긴 근대적 역사 서술의 개척자 에드워드 기번, 근대 역사학의 창시자 레오폴드 랑케, 민족역사가 쥘 미슐레, 역사적 연구와 문학적 구성을 결합한 테오도어 몸젠, 예술을 역사적으로 맥락화한 문화사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임박한 사회적 변혁을 역사적으로 유추해 낸 카를 마르크스, 역사 서술의 한계를 넘어선 문화사가 요한 하위징아, 역사학의 거장이 된 사회학의 창시자 막스 베버 등이 차례로 거론된다. 또 유럽 중심주의에 도전한 과학사가 조지프 니덤, 대중독자를 확보한 고대사가 모지스 핀리, 사회사의 이정표를 세운 로런스 스톤 등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 역사학자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학문적 업적을 명료하게 보여주는 책은 역사학의 여러 가지 단면을 두루 여행할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길잡이로 안성맞춤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바보, 산을 옮기다(윤태영 지음, 문학동네 펴냄)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대변인·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윤태영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목표와 역정을 지근거리에서 기록한 비망록. ‘대통령의 필사’로 알려진 저자가 노 대통령의 언행들을 ‘국민통합’ 측면에서 중점적으로 서술했다. 자서전 등을 통해 잘 알려진 일화나 인권변호사 활약상은 과감히 생략했다. 대신 국민통합의 화두를 각 시기마다 어떻게 구현하려 했는지를 관찰자 시각에서 가감 없이 서술한 게 특징이다. 1987년 이후 정치인 노무현의 행보와, 대통령 당선 이후 재임기를 나눠서 다뤘다. 3당 합당과 낙선 등 시련과 좌절을 겪으면서 ‘국민통합’ 화두를 정치적 과제로 설정하는 과정, 부산에 잇따른 출사표를 던지면서 지역주의 벽에 도전하는 정치 역정이 그려진다. 한국 현대정치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한 정치인의 우직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저자는 지난해에도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 면모와 정치적 리더십을 조명한 ‘기록’(책담)을 출간한 바 있다. 418쪽. 1만 5000원. 잃어버린 낙원, 원명원(왕롱주 지음, 김승룡·이정선 옮김, 한숲 펴냄) 원명원은 중국 원림예술의 절정기에 지어진 웅장하고 아름다운 정원이다. ‘황실’의 어원으로 서양인들에겐 ‘지상낙원’으로 비쳐진다. 영국·프랑스 연합군에 소실된 뒤 동치제가 일부를 복구했으나 다시 훼손됐고 중화민국 이래 방치된 채 끊임없이 파괴당했다. 역사가인 저자는 원명원이 제왕의 궁원으로 성장했다가 아편전쟁기에 소실돼 스러지는 장면을 청조의 융성·패망에 얹어 살폈다. 문헌자료를 통해 재구성한 원명원 내 제왕 일상과 원 조직, 역할을 통해 원림이 휴양공간 아닌 청조 정치의 심장부였음을 보여준다. 건축과 역사로 나눠 원명원을 조망한 게 특징. 저자는 청조 제왕들이 주거공간이자 정치공간이었던 원명원을 자금성보다 더 아꼈을 것이라 본다. 지금은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유적공원이 됐고 곳곳에 복제 원명원이 조성되고 있다. 저자는 잘못된 덧칠을 그만두고 지금의 모습을 잘 유지하는 게 진정 유산을 보존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464쪽. 1만 5000원. 미디어 시간여행(김동민 지음, 나남 펴냄) 음악이나 회화, 연극, 건축, 영화는 각각 독립학문이나 예술로 분화돼 언론사(言論史) 영역에선 다뤄지지 않았다. 책은 그런 장르를 미디어 개념으로 확장해 ‘시간여행’ 테마로 엮었다. 한양대 겸임교수인 저자의 두 번째 책. 예술을 예술 이전의 미디어였다고 보고 예술품에 담긴 미디어 의미를 탐색한 게 특징이다. 미디어 역사에서 누락된 미디어를 찾아 동서양을 누빈다. 라스코 동굴벽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피카소의 ‘게르니카’, 류성룡의 ‘징비록’…. 사회과학 발전의 맥락과 맹점을 지적하고 그 안에서의 언론학 연구방법도 살폈다. 뉴턴이 중력 법칙을 철학적 사유에서 얻었듯이 마르크스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착상을 철학적 사유에서 얻었음을 추적한다. 미디어를 역사로부터 격리된 발달과정이 아닌, 역사 속 맥락을 살펴 상호작용에 대해 서술한 부분도 흥미롭다. 개화 당시 언론 부분에서 조선과 일본의 시선과 상황을 비교한 점이 도드라진다. 264쪽. 1만 5000원. 보이지 않는 힘, 퍼블릭 어페어즈(조승민 지음, 삼성경제연구소 펴냄) ‘기업·단체가 자신들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법안·정책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결정·집행되도록 펼치는 활동’ 이렇게 정의되는 ‘퍼블릭 어페어즈’(Public Affairs)를 글로벌입법정책연구원 연구원이 상세히 풀어냈다. ‘퍼블릭 어페어즈’는 미국·유럽에선 경영활동의 필수항목으로 여겨지지만 우리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로비’쯤으로 인식한다. 저자는 공감과 동의를 얻기 위해 세상을 설득하는, 시장 밖의 비(非)시장전략이 바로 퍼블릭 어페어즈라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퍼블릭 어페어즈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우리에게 이 활동을 뒷받침할 제도와 체계적 전략이 미흡하다고 말한다. 로비와 정치활동 후원, 선거 참여 등 10가지 범주로 나눠 퍼블릭 어페어즈를 개념화하고 한국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살폈다. 특히 한국 퍼블릭 어페어즈의 과제를 투명성 확보, 체계적 활동, 사회적 기여 등 3가지로 정리한 게 눈에 띈다. 176쪽. 7000원.
  • “광주 항쟁, 파리 코뮌보다 영향력 컸다”

    “광주 항쟁, 파리 코뮌보다 영향력 컸다”

    폭압에 맞서다 빚어진 숱한 죽음의 진실이 가려져 있던 그 시절, 또 시간이 흘러서도 그 희생의 의미가 제자리를 잡지 못하던 그 시절 광주는 외국의 언론인, 지식인들에게 큰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과 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던 배경에는 당시 서독 공영방송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78)가 있었다. 그가 찍었던 5월 광주에 대한 다큐멘터리 ‘기로에 선 한국’은 1982년 거꾸로 한국에 들어왔다. 광주 아닌 지역의 시민들은 흔히 ‘독일 비디오’, ‘일본 비디오’ 등으로 표현되는 외신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군부독재정권과 수구 언론이 시민폭동, 혹은 북한군 개입 등으로 매도하고 왜곡해 왔던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서구 지식인이 있다. 미국의 정치사회학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68) 보스턴 웬트워스공과대학 교수다. 1980년 5월 광주의 의미가 국내에서도 지역의 영역에 머문 채 소모적이고 정략적인 사실 공방만을 벌이거나 박제화한 명예의 틀 안에 갇히고 얼마간의 보상금 지급 문제에 얽매여 있을 때 1980년 뿜어졌던 광주의 빛줄기가 국경을 넘어 세계로 뻗어 갔음을 자각하게 해 준 이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최근 2012년 영문으로 펴낸 ‘아시아의 알려지지 않은 민중봉기’를 한국어로 번역해 ‘아시아의 민중봉기’와 ‘한국의 민중봉기’(오월의 봄 펴냄) 등 2권으로 내놨다. 사회활동가이자 연구자인 그가 10년 넘는 세월을 통해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특히 ‘한국의 민중봉기’는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서 시작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이르기까지 ‘봉기’(uprising)의 관점에서 그 내용은 물론 배경과 성격, 역사적 의미 등을 담아낸 한국 근현대사 속 민중항쟁의 연대기다. 엄연한 외부인의 시각이지만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연대의 관점을 놓지 않은 내재적 접근의 태도를 취했다. 그는 “한국의 풍부하고 고통스러운 봉기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학 연구에서 거의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며 “가장 훌륭한 영어판 한국 역사서 가운데 하나인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역시 광주에 대해 겨우 1쪽을 할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 막스 베버나 카를 마르크스는 극동(far east)의 문화가 서구 문명의 거대담론 외부에 존재한다고 인식했다. 또한 표트르 크로폿킨과 같은 급진적인 아나키스트들조차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관점을 공공연히 밝혔다. 위르겐 하버마스 역시 에른스트 놀테와 진행한 ‘역사가 논쟁’에서 아시아를 악과 연결하는 인식의 기초 위에서 논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도 여전한 서구중심주의 담론의 편향성, 서구우월주의 등은 엄존해 있다. 특히 그는 광주가 세계 혁명사에 던진 세계사적 의미를 분명히 밝히는 데 주력했다. 그는 20세기 말 필리핀, 대만, 방글라데시, 네팔,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벌어진 엄청난 정치 변화의 중심에 광주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 그는 “각 나라 수천명의 인명 희생에도 불구하고 풀뿌리 운동들이 독재를 ‘민주적’ 체제로 변혁할 때 광주의 자랑스러운 피플파워의 모범은 활동가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밝혔다. 또한 “직접민주주의와 자치의 측면에서 볼 때 광주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1980년 광주에서 자발적으로 시민군을 조직하고 파리코뮌처럼 자유와 민주주의가 민중 삶의 핵심 성격으로 자리매김되며 범죄율이 급감하는 등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뤘다는 점을 상기하면서 “어떤 관점에서는 파리코뮌(1871년)보다 세계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1968년 5월 프랑스를 휩쓴 68혁명에 관한 저서 ‘신좌파의 상상력’으로 잘 알려진 카치아피카스 교수는 2001년 전남대 5·18연구소 객원교수로 일하면서 광주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는 21일 광주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받는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세계를 흔든 혁명가, 그를 살린 가족애

    세계를 흔든 혁명가, 그를 살린 가족애

    사랑과 자본/메리 게이브리얼 지음/천태화 옮김/모요사/992쪽/4만 2000원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오해를 받은 인물 중 한 명일 것이다. 그의 전기에 기술된 사건들 중 상당 부분이 정치적 혹은 개인적 이유로 인해 왜곡되고 그것이 반복 재생산되면서 마치 사실처럼 굳어진 까닭이다. 마르크스 학자들은 오해와 오류들을 바로잡는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마르크스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쏟지 않았다. ‘사랑과 자본’은 지구의 한쪽에서는 경전이 됐고, 나머지 반에서는 금서가 됐던 마르크스의 역작 ‘자본론’이 아니라 이 책의 완성에 바쳐진 한 가족의 삶을 다룬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전기작가인 저자는 8년 동안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아일랜드 등 그의 가족이 관련된 곳을 찾아 편지와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했다. 책은 다른 마르크스 전기가 간과했던 그의 아내 예니와 딸들, 그리고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가정부 헬레네 데무트의 삶을 상세히 기술함으로써 남편, 아버지, 그리고 인간으로서 마르크스의 초상과 그의 가족의 인생 역정을 한 편의 대하드라마로 완성해 나간다. 특히 마르크스가 험난한 길을 오롯이 걸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었고, 뼈아픈 배신을 당했음에도 용서하며 그를 끝까지 사랑으로 감쌌던 한 여인에 관한 생생한 기록을 담고 있다. 혁명의 불길 속에서 밀실의 음모와 치정, 권모술수와 극적인 사건들로 점철된 19세기의 유럽을 배경으로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기 시작한 1851년 런던에서 책은 출발한다. 마르크스의 가족은 가장의 오랜 정치적 망명 생활로 이미 빈곤에 익숙해 있었다. 그때까지 자식 중 둘이 영양 결핍으로 죽었고 한때 프로이센 남작의 딸로 지역에서 가장 매력적인 아가씨로 칭송받던 아내 예니는 빚쟁이들에게 돈을 갚기 위해 은식기 등 세간살이를 가지고 전당포를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공간에는 항상 망명객들이 북적였고 담배 연기로 자욱했다. 마르크스는 혁명의 좌절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물질적인 빈곤, 기대했던 아들 에드가의 죽음 등 비극 속에서도 ‘세상을 바꿀’ 경제학 이론서의 집필에 몰두했다. 맨체스터에서 아버지의 방적 공장에 근무하고 있던 엥겔스의 재정적 지원으로 겨우겨우 삶을 꾸려 나갔다. 마르크스 부부는 총명한 그의 딸들이 머리엔 급진적 사상으로 가득하고 배 속은 텅 빈 그런 남자와 일생을 함께하며 비참하게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예니헨, 라우라, 엘레아노어 등 살아남은 마르크스의 세 딸은 런던의 사립 기숙학교에서 숙녀 교육을 받지만 아버지를 추종하는 젊은 혁명가와 결혼해 부모의 삶을 되풀이한다. 큰딸 예니헨은 1871년쯤 파리 코뮌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프랑스에서의 처형을 피해 런던에 도착한 저널리스트 샤를 롱게와 사랑에 빠져 이듬해 결혼했다. 둘째 라우라는 언니보다 4년 앞서 프랑스인으로 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하고 있던 폴 라파르그와 결혼한다. 책은 마르크스의 가족과 함께했던 가정부 헬레네 데무트의 삶에도 상당 부분 할애하고 있다. 마르크스 가족에 맹목적으로 헌신했던 데무트와 마르크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프레데레크 데무트가 태어났을 당시의 상황, 눈물이 마를 만큼 울었지만 결국 남편과 데무트를 모두 용서한 예니의 지순한 사랑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프레데레크는 마르크스의 자식들 중 가장 오래 살아남아 세 자매의 비극적인 생을 마지막까지 지켜봤다. 예니헨은 1883년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시어머니와 갈등이 심했던 라우라는 1911년 남편과 동반 자살한다. 막내딸 엘레아노어는 유부남인 에이블리와 동거하다 1898년 음독 자살했다. 마르크스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 중 한 명이 된 데는 그의 열정과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했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가족들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혁명 속에서 먹고 자고 숨쉬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은 그들을 한데 묶어 주는 단단한 동아줄과 같은 것이었다”고 확신하며 ‘자본론’은 마르크스 가족의 작품이라고 감히 말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을 부정하라

    당연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을 부정하라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세계적 권위를 지닌 법철학자인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68) 이론의 출발은 적극적인 부정이다. 그 부정의 대상에는 일상의 삶, 학문의 삶, 정치의 삶, 혁명의 삶에서 당연시하는 것들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전통적으로 진행되는 국가와 시장의 대립과 같은 방식뿐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시장경제, 마르크스주의, 각종 법과 제도 등이 해당된다. 그는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정되지 않은 관점에서 고정된 것들을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개방성과 변화 가능성에 회의적인 채 이미 형성된 구조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우연적으로 형성된 제도에 매달리는 태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웅거는 이를 ‘구조 물신주의’, ‘제도 물신주의’로 일컬으며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다. 그의 방대한 저서 목록 중 하나인 ‘주체의 각성’이 2012년 하반기에야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사회개혁의 철학적 문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현실 정치와 사회이론 체계의 전면적 개혁을 소망하는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이론가의 저서로서는 한참 뒤늦은 감이 있다. 이 책은 ‘웅거 개론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법학, 철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등 여러 학문에서 르네상스적 성취를 이룬 웅거의 이론 체계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덕이다. 하지만 웅거는 여전히 쉬 다가서기 어려운 영역에 있었다. 이제껏 이뤄 낸 학문과 현실의 성취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사유와 상상력, 거기에 웅거 특유의 난해한 문장, 낯선 개념의 학술 용어들이 덧씌워져 있던 탓이었다. 최근 김정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번역한 ‘정치-운명을 거스르는 이론’(사진 ·창비 펴냄)은 비교적 친절한 용어 해설과 각주 등을 달았다. ‘주체의 각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을 뿐 아니라 웅거가 이뤄 낸 사유의 전체적인 상을 더욱 구체화할 수 있다는 평가다. ‘사회이론’, ‘허위적 필연성’, ‘조형력을 권력 속으로’ 등 웅거의 사회이론 3부작의 고갱이를 담고 있다. 물론 이 책 역시 중국의 신좌파 추이즈위안(崔之元) 칭화대 교수가 엮은 발췌본을 번역한 것이다. ‘정치’에 담긴 웅거의 적극적인 부정은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것만이 핵심적 사유는 아니다. 웅거는 기존의 사회민주주의 또는 좌파들이 시장경제와 대의민주주의를 바꿔 내는 대신 이제껏 수용해 온 구조적 분화와 위계질서가 사회에 끼친 결과를 완화하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사회민주주의 프로그램을 내부로 포섭해 가는 상황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대안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예컨대 사회기금 조성을 통한 사회적 상속 강화, 노동자의 시민으로서 자질 능력 강화를 통한 생산 기회의 분권화, 소규모 상품 생산의 긍정적 기능 발굴, 사적 소유권을 공적으로 분할된 소유권으로 재편하는 내용 등이다. 목표는 명확하다. 부유한 국가와 빈곤한 국가 모두에서 발생하는 경제·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고자 함이며 산업사회 이후 한 번도 다수를 점하지 못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심화와 진전을 만들기 위함이다. 또한 고착된 것처럼 보이는 각종 제도적 맥락을 변화에 더욱 개방적이게 만들어 구조와 일상, 혁명과 점진적 개혁, 사회운동과 제도화 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의미한다. 웅거는 1970~1980년대 하버드에서 ‘비판법학연구’(CLS)라는 새로운 진보적 법학운동을 주도해 핵심적으로 활동했다. 현실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기존의 자유주의 법학 연구와 다르게 비판법학연구는 법의 프레임이 경제·사회적 불평등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사회를 개혁하려면 법체계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뜻이다. 브라질 출신으로 리우데자네이루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을 공부한 웅거는 1976년 29세 때 하버드 로스쿨 사상 최연소로 종신 교수직을 받았다. 그렇다고 웅거가 단순히 책상물림 같은 학자인 건 결코 아니다. 방학 때면 브라질로 돌아가 아마존의 구석구석까지 찾아 브라질 시민을 만나는 등 1970년대 후반부터 브라질 군사정권에 맞서는 정당 활동을 벌였고, 룰라 정부에서 전략기획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미국식 사회과학을 복제하거나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지 않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학문 등 지적 식민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면서 “한국은 경제·정치·교육적 장치들의 구속 아래에서는 계속해서 발전할 수 없다. 경제적 장치와 기회를 급진적으로 분산해 국가와 대기업 간의 호혜적 관계를 대체하고 혁신자들의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서울대 지망생의 책장-읽어라, 청춘]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각 나라의 지폐에는 국가의 정체성을 표방하기 위해서건 위폐를 쉽게 구별하기 위해서건 상징성을 가진 인물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100달러짜리 지폐 속 인물은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다. 그는 신대륙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로 회자된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고 자연과학 분야에서 전기유기체설을 제창한 과학자이자 저술가였을 뿐 아니라 신문사의 경영자로, 교육문화 분야에서도 활약하였다. 프랭클린은 돈을 모으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글을 많이 남겼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도 이 사람이 한 말이다. 막스 베버는 자신보다 한 세기 앞서 살다간 프랭클린과 관련한 여러 자료들을 보다가 근대 자본주의 성장 배경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되었다. 오늘날 사회학자들은 베버를 마르크스, 뒤르켐과 더불어 고전 사회학의 3대 대가 중 한 명으로 꼽는 데 별 주저가 없다. 그러나 베버는 사회학에서뿐 아니라 법학, 경제학, 철학, 종교학, 역사학에서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 그는 단순히 한 분야의 학문에서 활동한 학자가 아니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사회과학자였다. 요즘 각광받는 통섭형 인재였던 셈이다. 사회과학자로서 베버가 천착했던 문제는 현대인들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게 되었는지 밝히는 것이었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자본주의의 기원을 연구한 이유 역시 이런 연구를 통해 우리 자신의 참모습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바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서문과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된 그리 길지 않은 책이다. 번역서를 기준으로 160여쪽 정도이다. 물론 본문과 같은 분량의 주가 달려 있지만 다른 사상서들에 비해 그 양이 적은 편이다. 먼저 제목에도 등장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읽는다면 훨씬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다. ‘프로테스탄트’란 16세기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 등이 주도한 종교 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해 성립된 기독교의 분파를, ‘프로테스탄티즘’은 프로테스탄트 사상을 뜻한다. 독일의 루터는 교황 레오 10세의 면벌부 판매를 반대하며 1517년 95개 조에 달하는 반박문을 발표함으로써 종교 개혁을 촉발했다. 이때 루터가 주장한 종교 개혁은 새로운 신앙 원리에 바탕을 둔 시도였으나 결과적으로 가톨릭교회를 분열시키고 프로테스탄트교회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루터의 해석은 사제를 통해 신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직접적 만남을 이루는 개인의 신앙이 유일하다는 것이었다. 이 해석이 종교 개혁의 출발이 되었다. 베버는 종교 개혁의 원인을 가톨릭교회의 타락에서 찾기보다는 신학적 대립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교 개혁 운동은 칼뱅이 등장하면서 철저하게 가톨릭과 결별했고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칼뱅은 신도들 또한 수도사처럼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신앙과 윤리를 결합하였다. 베버는 이러한 금욕주의를 ‘세속적 금욕주의’라고 불렀다. 베버가 칼뱅주의에 주목한 이유는 내세와 관련된 예정설을 내세워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 지침을 가장 체계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해 서유럽과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자본주의 경제 제도를 택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생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16세기 무렵 봉건제도 안에서 싹트기 시작했는데 18세기 중엽부터 영국과 프랑스 등을 중심으로 점차 발달해 산업 혁명에 의해 확립되었다. 자본주의의 등장과 관련해 증기기관의 발명, 인클로저, 분업, 장거리 무역, 화폐, 국가 등 다양한 원인을 제시할 수 있지만 베버는 새로운 기술의 발명이나 제도의 변화가 자본주의의 기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두 개의 사회가 비슷한 상황이었다가 그중 한 사회에서만 자본주의가 등장했음에 주목하고 유독 서구에서만 자본주의가 활발하게 번성한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베버는 자신의 주장에 앞서 몇 가지 전제를 한다.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체제로 보지 않고,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가치관, 신념 등과 연관된 문화 현상의 하나로 보았다. 또 자본주의가 생겨나는 데 작용하는 요인들이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며 연결되었는가를 살펴보았다. 그는 서문에서 자본주의를 비롯하여 보편적이 된 여러 문화 현상들이 서양에만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합리적 추론과 실험을 통해 결론에 이르는 과학, 엄밀한 체계를 갖춘 역사 연구와 정치사상과 법률, 합리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방법에 의한 음악이나 건축 같은 것들을 근거로 들었다. 이것뿐 아니라 인쇄, 교육기관, 훈련된 정부 관리, 의회 등의 예를 덧붙이며 동양에는 없었거나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서양의 것들처럼 엄정한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런 근거들을 보다 보면 동양인으로서 화가 나려고 한다. 그러나 베버가 이렇게 주장한 까닭은 동양을 폄하하기보다는 동서양의 비교를 통해 차이점을 살피고자 한 의도가 더 강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베버가 보기에 동양과 서양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서양의 문화 현상에만 존재했던 합리성이었다. 자본주의는 과학이나 예술처럼 동서양 모두 존재했지만 서양에서만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되었고 오늘날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서구 근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을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노동의 합리적 조직화에서 찾았다. 노동자는 자유로운 신분에서 스스로 결정하여 노동을 자본가에게 팔았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만 독특하게 발달했던 실험과 계산을 중시하는 과학, 규칙과 형식을 따지는 법률과 행정 등은 자본주의의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베버는 역사상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던 넓은 의미의 자본주의(그저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하고 누구나 돈을 많이 벌려고 애쓰는 경제 체제)가 아니라 서양의 근대에 등장한 합리적 자본주의가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졌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더 큰 이익에 대한 욕망은 어느 곳에서나 있어 왔기 때문에 근본적인 답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동양에는 없고 서양에만 있는 것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서양에만 있었던 종교, 특히 프로테스탄티즘에 주목하였다. 베버는‘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 정신’과 ‘직업윤리’의 연관성을 객관적으로 밝히려고 노력했다. 그는 성공한 사업가 가운데 개신교(프로테스탄티즘) 신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개신교의 여러 종파 중 칼뱅주의자들은 인생의 목적을 부를 쌓는 데 두는 것은 죄악이지만 성실하게 직업 노동과 금욕적 절제로 부를 이루는 것은 신의 축복이라고 가르쳤다. 독실한 프로테스탄트들은 금욕적이어야 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부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프로테스탄트들은 베버의 논리 덕분에 부의 축적에 대한 도덕적 부담감을 덜 수 있어서인지 세속적 금욕주의를 자진해서 받아들였다. 이렇게 탄생한 자본주의적 삶의 태도가 “가면이 철창으로 변한 것은 숙명이었다”는 베버의 말대로 그 사회적 틀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결정하게 된다. 이로써 현대 자본주의적 사회와 자본주의적 인간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질서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이것의 시작이 되었던 종교적 금욕주의는 사라졌다. 왜 돈을 벌고 불려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잃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현실만이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확실히 승리를 이루었음에도 자본주의 정신은 없어졌다.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자본주의 때문에 발생했다고 비난하기 전에 자본주의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돌아볼 때이다. 최영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읽어라 청춘’은 격주로 게재됩니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해방자 예수(혼 소브리노 지음, 김근수 옮김, 메디치 펴냄) 해방신학은 196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시작된 기독교 신학운동이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정의롭지 못한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이란 측면에서 이해하고 실천을 강조한다. 이 책은 예수회 가톨릭 사제인 혼 소브리노가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본 예수의 모습을 그렸다. 그리스도론을 대표하는 책 두 권 중 1부에 해당하며 예수 죽음까지 역사의 예수를 조직신학 관점에서 해석했다. 신앙 속 그리스도보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으로 본 역사 속 예수를 소개한 게 특징. 특히 부활은 단순히 행복한 결말로 이해할 수 없으며 예수 생애의 논리적 완성으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활은 예수를 높이는 사건에 그치지 않고 예수의 삶이 옮았음을 확인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책을 번역한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은 엘살바도르 UCA 대학에서 소브리노의 강의를 들은 제자.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말라”는 스승의 말에 충실하게 스페인어 원본을 번역했다. 580쪽. 2만 3000원. 어른을 일깨우는 아이들의 위대한 질문(제마 엘윈 해리스 엮음, 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 어릴 적 한 번쯤 가졌었고 어른들에게 질문했을 법한 의문을 어른 입장에서 되새기게 만드는 책. 프리랜서 편집자인 저자가 아들과 조카들로부터 받은 질문공세에 착안했다. ‘이럴 때 전문가들은 어떻게 대답할까’라는 생각 끝에 초·중학교 학생 수천 명에게 가장 궁금한 것을 물어 세계적 권위의 전문가들에게 보냈고 돌아온 답들을 엮었다. ‘케이크는 왜 이렇게 맛있는 걸까’‘딸꾹질은 왜 하나’처럼 간단하지만 사실은 간단치 않은 질문들이 충실한 답변으로 풀어진다. 옥스퍼드대 교수인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메사추세츠공과대 명예교수인 언어학자 놈 촘스키를 비롯해 철인 7종 경기 유럽챔피언 제시카 에니스, 24년간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밴드 ‘펄프’의 대표 멤버였던 자비스 코커 등 120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아이들의 반짝이는 질문과 그에 대한 어른들의 따뜻한 답변의 만남이 신선하다. 376쪽. 1만 4800원. 뒤르켐을 위하여(에드워드 티리아키언 지음, 손준모 옮김, 고려대출판부 펴냄)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을 평생 연구해 온 미국 듀크대 명예교수의 역저.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를 위하여’(1965), 브라이언 터너의 ‘베버를 위하여’(1981)에 이어 사회학 창시자 세 명에 대한 현대적 소개를 갈무리한 삼부작의 완결로 평가된다. 산업화와 프랑스 제3공화정의 격동기를 넘으면서 고전 ‘사회분업론’‘자살론’ 등을 남긴 뒤르켐이 살아 있다면 지금의 정치·경제·문화·종교적 사안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할까? 그 관점에서 9·11 사태를 통해 뒤르켐이 제시한 사회적 연대 개념이 어떻게 지구적 연대 개념으로 확장 적용될 수 있는 지를 다룬다. 현대의 성 해방 추세를 뒤르켐의 아노미 개념을 통해 포착하며 양성 평등이 근대성의 부수현상이 아닌 핵심 사안임을 규명하기도 한다. 학문적인 뒤르켐에 머물지 않고 사회변혁과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지식인의 인간적 면모 부각이 눈에 띈다. 576쪽. 3만 6000원. 스웨덴에서 협동조합을 배우다(아너스 오르네 지음, 이수경 옮김, 그물코 펴냄) 전 세계에서 가장 발달했다는 스웨덴 협동조합 운동을 다뤘다. 스웨덴에서는 협동조합 운동이 복지사회를 위한 사회개혁 운동의 큰 축이었다. 모든 협동조합이 가입했던 스웨덴생협연합회는 한때 스웨덴 식료품시장의 50%까지 점유했다. 따라서 하나의 연합조직이 어떻게 협동조합 운동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모델로 주목받는다. 저자는 1920∼193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던 스웨덴생협연합회의 사무총장으로 일했던 인물. 협동조합 운동 실천가이자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로 유명한 그는 큰 사회문제였던 독점기업 횡포와, 이를 뒷받침한 맨체스터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협동조합이 정부보다 업무 수행에 훨씬 더 유리한 체제라고 본다. 대의제와 교육을 통해 자주적인 조합원들이 연대의식을 갖고 협동조합을 운영해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공유해야 진정한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208쪽.1만 4000원.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스마트 미디어(김영석 외 지음, 나남 펴냄)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역사는 시장 경쟁의 변화나 갈등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고 한다. 그러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진화는 어디가 종착점이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 미래를 예측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이 테크놀로지, 시장, 인간의 측면에서 스마트미디어에 접근해 눈에 띈다. 15명의 언론학자가 각자의 분야에서 다양한 물음을 정리하고 답변을 찾는다. 스마트미디어가 불러일으킨 시장 경쟁과 규제, 이용자와 관련한 이슈가 주요 테마로 다뤄졌다. 특히 최근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의 변곡점을 살핀 게 눈에 띈다. 테크놀로지와 시장, 이용자의 변화를 서로 연계된 하나의 통합체로 보고 접근했다. 새로운 서비스인 VOD나 OTT, N스크린 서비스가 대표적 사례로 제시되고 분석됐다. 탐색과 전망에 포커스를 맞춘 게 특징이다. 472쪽. 2만 2000원. 왜 그들만 부자가 되는가(필립 바구스·안드레아스 마르크바르트 지음, 배진아 옮김, 청림출판 펴냄)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불평등의 원인으로 자본을 지목한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학파의 화폐론을 대중적으로 설명하면서 자본 대신 화폐에 눈독을 들였다. 이 학파의 두 대표학자가 신고전파 경제학의 치명적 모순을 화폐제도에서 찾는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추천사에서 “누구든 시장에 내놓을 상품을 지닌 이는 화폐를 창출할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하는데 국가권력 등이 이를 지배한다면 고유한 시장경제 질서라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돈에 얽힌 나름의 판단기준을 갖게 된다. 지금 통용되는 화폐는 무에서 창조되는 가치이고 인플레이션이 부의 재분배를 초래하며 국가 채무는 미래의 세금으로 전가된다는 것이다. 국가 독점의 화폐제도와 인플레이션이 국가에 대한 국민의 종속성을 강화한다고도 한다. 276쪽. 1만 4000원. 유럽과 역사 없는 사람들(에릭 R 울프 지음, 박광식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서기 1400년 이후 2세기도 안 돼 유럽은 교역 활동 범위를 전 대륙으로 확대했다. 그러면서 세계는 싸움터로 변해 갔다. 18세기 이후로는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확산돼 상품의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산업 중심지를 향한 대규모 이동이 있었다. 그 결과 노동계급이 출현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변이로 여겨진다. 이처럼 유럽 팽창의 역사는 각 인간집단의 역사 하나하나에 얽혀 있다. 자본주의가 수립·확산되는 과정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기도 하다. 책은 유럽인이 역사를 만든 유일한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대신 미개인, 농민, 노동자, 이주민 등 소수집단 역사를 강조한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을 도입해 이 연관 관계들의 발달과 성격을 해명한 점도 흥미롭다. 952쪽. 4만 4000원.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수잔 존슨 지음, 박성덕 외 옮김, 지식너머 펴냄) 관계회복 심리학자가 연인, 부부, 가족 연구를 통해 사랑의 본질과 속성을 밝혀낸 심리 보고서. 왜 사랑에 빠지는지, 무엇이 사랑을 지속시키고 끝내는지 파고들어 관계 유지와 회복의 구체적 방법을 소개한다. 존 보울비의 애착 이론을 중심으로 사랑을 정의한 구성. 직접 상담한 커플 사례를 통해 사랑이란 ‘애착 결합’이라는 사실이 증명된다. 순간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연애의 요령보다는진지하고 지속적인 사랑의 본질에 무게가 실린 책이다. 외로움, 심리적 거리감, 외도, 자녀 양육방식 차이…. 결혼 전 연인부터 노년기 부부까지 갈등 상황별 커플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와 이로부터 회복하기 위한 방법, 사랑하는 이와 공감하고 반응하는 법을 찾아낼 수 있다.400쪽.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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