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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하타파 오늘 창당선언/지지율 사회당제쳐 2위

    ◎사회당도 「집권호기」 판단… 제휴 모색 【도쿄=이창순특파원】 오는 7월18일 총선을 앞두고 자민당 탈당 소장파 의원출신 11명이 22일 신당인 「사키가케」(선구)를 결성한데 이어 지난 18일의 내각불신임안 투표에서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총리에게 등을 돌렸던 집권 자민당내 하타(우전)파도 이날 집단으로 탈당계를 제출,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하타파에 속한 44명(중의원 출신 35명·참의원 9명)의 의원들은 22일 하오 전원 탈당계를 제출하고 창당절차를 밟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23일 임시총회를 열어 신당결성을 정식으로 선언하고 결당이념과 기본정책을 발표한다. 22일자 요미우리(독매)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하타파는 공산당을 제외한 비자민당 세력의 총집결을 목표로 「새로운 일본을 창조하는 국민회의」(가칭)를 결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마이니치(매일)신문이 일본 전역에서 유권자 1천명을 임의추출,전화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하타파가 신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설 경우 9%가 지지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는 사회당에 표를 던지겠다고 응답한 8%를 앞지르는 것이다. 또 자민당이 득표전략에 부심하고 있는 가운데 제1야당인 사회당은 자민당의 분열과 신당 바람이 일고 있는 이번 총선이야말로 절호의 집권 기회라고 판단,공명·민사등 다른 야당은 물론 자민당 탈당 세력들과의 제휴를 위해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 정계개편의 3개 시나리오/하타+범야권/비자민 연정 탄생… 하타 총리옹립/자민+범보수/자민 제1당 유지… 보수연합 추진/하타+범개혁/자민 총선 참패… 잔류의원 재분열 일본 자민당의 하타파가 22일 탈당,전후 38년간 일본정치를 독점해온 자민당이 분열됐다.자민당의 분열은 자민당 1당지배체제의 막이 내리고 새로운 정치체제인 연립정권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22일 7·18총선후 예상되는 연립정권과 관련,3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하타신당과 사회·공명·민사당 등에 의한 연립정권=자민당이 제1당의 자리는 지켰으나 과반수 확보에 실패,정권을 내놓고 하타신당이 사회당 등 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경우.사회당은 이미 총리자리를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혀 「하타총리,야마하나 사다오 사회당위원장 부총리」라는 비자민당 연립정권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공명당도 「하타총리」옹립에 지지를 나타내고 있다. 하타를 중심으로 한 연립내각에서는 중요 각료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사회당은 총리자리를 양보하는 대신 대장성,외무성,통산성 등의 중요 각료자리를 요구하고 공명당도 하타신당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경우 중요자리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네마루 신 전자민당부총리의 직계인 오자와 이치로 전자민당간사장이 주요 자리를 차지할 경우 사회당 등이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더욱이 정치개혁이외는 공통정책이 없다는 어려운 점이 있다. ▲자민당,일본신당,신당 사키가케에 의한 연립정부=자민당이 과반수에는 크게 못미치나 제1당을 유지하며 보수연합을 구성하는 경우.자민당은 지난 38년의 공적을 앞세워 하타파 이외의 보수계를 모아 정권연장을 시도할 것이라는 경계감이 야당내에는 강하다. 자민당은 미·일관계를 기본축으로 하는 외교와 안보 등 기본정책에서의 공통점을 고려할때 일본신당과 자민당을 탈당,새로 출범한 신당 사키가케와 연립정권 구성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이 구상은 자민당이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의 정치개혁요구를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그러나 자민당과 이들 신당및 보수계 무소속을 합해도 과반수가 안될 때는 실현 불가능하다. ▲하타신당,자민·사회당 개혁파에 의한 연립=총선 참패로 자민당이 다시 분열되는 경우.선거제도개혁과 관련,하타파와 협조했으나 자민당에 남아있는 「정치개혁추진의원연맹」을 중심으로 한 개혁세력이 자민당을 나와 하타신당과 손을 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총리후보에 하타씨가 될지 정치개혁추진의원연맹회장인 가이후 도시키 전총리가 될지는 미묘하다.선거결과에 따라서는 자민당을 나온 정치개혁세력과 하타신당의원의 수가 잔류의원보다 많아 이들이 「본가」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자민당은 총선후 미야자와총리 후임 선출과정에서 각 파벌의 치열한 경쟁으로 재분열될 위험성도 있다.자민당은 재분열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하시모토 류타로 전대장상이나 가이후 전총리를 총리후보로 옹립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고토다 마사하루 법무상을 추대할 가능성도 있다. ◎“자민과 연정 거부”/일본 신당 【도쿄 교도 연합】 호소가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 신정당 당수는 오는 7월18일 총선이후 신정당과 자민당과의 연정 구성 가능성을 배제했다. 호소가와 당수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민당과 신정당의 연정 제휴는) 자민당의 특성을 가진 사람이 한사람도 당선되지 않고 양식있는 사람만이 당선돼야 가능하나 현실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10명의 자민당 탈당의원들로 21일 전격출범한 「사키가케」(선구) 신당과의 협력 전망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 자민당을 뛰쳐나온 44명의 하타(우전)파 의원들이 결성할 신당과의 협력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 “자민 참패→ 「하타총리」 옹립”/일 총선앞둔 신정치세력의 목표

    ◎야와 협력구체화… 사회·공명당 지지/“막후실세” 오자와 거부감 극복 과세 일본정치에 「하타(우전)총리」시대가 열릴 것인가.자민당을 탈당,신당창당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하타파와 야당과의 선거협력이 구체화되고 있는 가운데 하타파 대표 하타 쓰토무 전대장상을 다음 총리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사회당은 「7·18」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수의석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선거후 특별국회의 총리지명선거에서 「긴급개혁정권」을 목표로 하타 전대장상을 지지하겠다고 밝혔다.공명당 등 다른 야당들도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때문에 자민당이 과반수의석에서 크게 밑돌게 될 경우 「하타 총리」정권의 탄생 가능성은 충분하다. 자민당은 「7·18」총선에서 과반수의석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자민당계는 현재도 하타파의 35명을 제외할 경우 중의원 과반수 2백48명보다 5명이 적은 2백43명이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자민당의 김권·부패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비난과 야당의 선거협력으로 의석이 더욱 줄어들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타파는 이미 야당과의 선거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다.하타파는 23일 신당창당 직후 사회·공명·민사등 야당과 정치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등과 협의기관을 설치하는 등 선거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하타파는 선거후에는 야당등과의 연립정부구성을 구상하고 있다.하타파의 신당 대표로 내정된 하타 전대장상은 선거후 총리지명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며 사회당은 이번 선거에서 자민당에 이어 제2정당이 될 것이 확실하지만 야마하나 사다오 위원장의 총리지명선거 출마를 단념하고 그대신 하타씨를 지지할 방침이다. 사회당의 이같은 방침은 정권교대를 통한 자민당 1당지배체제의 붕괴와 비자민세력내에서의 고립탈피를 위한 전략이다.하타파와 야당의 연립정부가 실현될 경우 이는 전후 38년간 계속된 자민당 장기집권이 끝나고 야당이 국정에 참여하는 최초의 실질적인 정권교체라는 일본정치의 대변혁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시나리오에는 많은 걸림돌이 있다.우선 총선에서자민당의 참패가 전제돼야 한다.자민당이 과반수에 조금 못미칠 경우에는 하타파를 제외한 자민당 탈당자 및 무소속당선자들과의 연립정부 구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또다른 중요한 문제는 사회당과 다른 정치세력간의 정책차이와 하타파의 실질적인 막후 지도자인 오자와 이치로 전자민당간사장에 대한 거부감이다. 사회당은 자위대 원자력 헌법 등 일본의 기본정책과 관련,하타파나 다른 야당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더욱이 사회당 좌파및 일본신당·자민당을 탈당해 21일 정당을 새로 만든 10명의 소장파의원들은 「가네마루의 후계자」인 오자와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비자민당세력이 정치개혁을 전면에 내세워 새로운 정권을 탄생시킨다 해도 정당간의 정책차이와 불협화음으로 얼마 못가 붕괴되는 등 정치혼란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새로운 정권의 탄생은 일본정치사의 중대한 변화이지만 동시에 정치혼란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 그 실현여부에는 여전히 의문이 따르고 있다.
  • “한때 총리물망” 신세대 리더/일 하타파 실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 등 두루 거친 8선/한국침략과 관련 망언 한동안 일본정계를 주름잡아온 가네마루(김환)가 진작부터 「끔찍이 아끼는 보물」로 불러온 오자와 이치로. 지난 18일 전후 38년간 지속돼온 일본 자민당 1당 집권체제를 일단 붕괴시킨 내부반란의 주역 하라파의 표면상의 대표는 하타 쓰토무(우전공)전대장상(58)이다.그러나 실질적인 막후 실세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전자민당간사장(51)이다. 지난 69년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대를 이어 중의원에 당선된 이래 8선을 기록한 오자와전간사장은 노정객들이 주도하는 일본정치현실에서 비교적 젊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실세요직인 간사장을 거쳤고 지난 91연말 이미 총리후보로까지 거론댔을 정도로 신세대의 리더로서 일찌감치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개혁을 거부하는 보수원로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아 지난해 10월 다케시타파 회장 선출에서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전간사장에게 밀렸다.그러나 곧 44명의 중·참의원들을 이끌고 새파벌인 「개혁포럼21」을 발족시켰다. 그는 자신의 황태자적인 정치성장 배경을 감안,이번 내부반란이 유권자들에게 정치개혁 요구투쟁이라기 보다는 밥그릇싸움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직접 전면에 나서지 않고 배후로 남았다. 경제대국 지위에 걸맛는 일본의 국제역할 증대를 주장하는 국제공헌파이며 지난해 유엔평화유지활동(PKO)법 제정당시 정치력을 발효했다.지난 90년 간사장재직당시 일본의 한국침략사죄문제에 대해 『땅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다』는 망언으로 물의를 빗기도 했다.
  • 일 자민,38년간의 1당지배 종막/중의원 해산이후의 정국 전망

    ◎다케시타파 분열이후 구심력 상실/총선결과 따라 연정구성 가능성도/국민들 정치불신높아 “자민 고전” 예상 일본정계의 대개편이 시작되고 있다.내각불신임안 처리를 둘러싼 자민당의 분열로 전후 40년 가까이 계속돼온 자민당 1당지배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전통적인 보수와 혁신의 대립구도도 바뀌고 있다. 자민당은 야당이 제출한 내각불신임안에 찬성한 하타파가 신당창당을 결정함으로써 분열의 길을 가고 있다.자민당내 일부가 야당이 제출한 불신임안에 지지를 보낸 것은 헌정사상 이번이 처음이며 이같은 행동은 이미 분열을 예고한 것이었다. 자민당의 분열은 일본정치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자민당은 지난 1955년 민주당과 자유당으로 나눠졌던 보수우익세력의 연합으로 결성됐다.이른바 「55년 정치체제」의 출범과 함께 자민당 장기독점체제의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그러나 자민당의 분열로 1당지배의 신화는 하나의 전설로 남고 새로운 정치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민당의 분열은 최대파벌 다케시타파의 분열로부터 시작됐다고할 수 있다.일본정계를 사실상 지배해온 다케시타파가 「가네마루 정치자금스캔들」과 관련,오부치파와 하타파로 분열됐으며 정치개혁을 둘러싼 대립으로 하타파가 자민당을 떠나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다. 자민당은 이번 정치개혁논의 과정에서 이미 심각한 대립현상을 드러냈었다.특히 가지야마 세이로크 자민당 간사장과 하타파의 실질적인 대표 오자와 이치로 전간사장간의 대립은 정치개혁논의를 저차원적인 권력투쟁의 양상으로 바꾸어 놓은 측면이 강했다. 다케시타파가 분열된 후에는 당운영의 사령탑과 유력 지도자가 없어 자민당은 구심력을 상실했다.더욱이 많은 젊은 의원들은 파벌을 초월,정치개혁을 주장함으로써 자민당의 전통적인 파벌정치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일부 젊은 의원들은 하타파가 창당할 정당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내각불신임투표와 관련,찬성한 사람이 하타파를 중심으로 39명,결장이 18명으로 자민당에 반대입장을 나타낸 사람이 57명에 이르며 10여명은 이미 탈당의사를 밝혔다. 하타파는 공명당 민사당 사회당 등 야당과도 연대를 추진하고 있으며 야당들도 이를 환영하고 있다.하타파가 야당과 어느 정도의 연대를 이룰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새로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하타파는 궁극적으로 연립정권을 구상하고 있다. 자민당이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의석 획득에 실패할 경우는 연립정권이 불가피하다.자민당의 장기집권에 의한 정치·관료·재계의 3각유착 부패구조와 정치자금스캔들의 반복으로 국민들의 정치불신이 높아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고전할 것으로 정치평론가들은 예상한다.
  • 정치개혁 주창해온 “차세대 총리감”/일 정계 불지른 하타는 누구

    일본국회 해산의 「주역」을 담당했던 자민당 하타파 대표 하타 쓰토무(우전자·58)는 장래 일본의 총리후보로 거론돼온 정치인. 다케시타파에 속해 있던 그는 미야자와정권 출범때 대장상으로 입각했다.그러나 다케시타파가 분열되면서 각료를 사임하고 정치동기생인 오자와 이치로 전자민당간사장과 함께 하타파를 구성,대표직을 맡고 있다. 그는 정치개혁을 강조하고 있으며 야당이 제출한 이번 내각불신임안 찬성에 오자와 전간사장과 함께 주도적 역할을 했다.하타파가 자민당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정당을 창당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총선결과에 따라서는 일본의 중요한 지도자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지난 69년 처음으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한 2세의원.그후 계속 당선,농림분야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며 농수산상을 2차례 역임했다.다케시타정권 탄생때도 무대뒤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다.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오다큐버스회사 등에서 근무.성성대학 경제과를 졸업한 그는 「아이디어 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타파의 또다른 지도자 오자와(소택·51)는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인물로 하타파의 막후 실력자다.가네마루 전자민당부총리의 「후계자」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그는 정적이 많아 하타를 파벌지도자로 내세우고 전면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하타와 마찬가지로 69년에 정계에 입문한 그는 헌법개정을 주장하고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통한 일본의 국제지위향상을 역설하고 있다.
  • 오늘의 일본 정국/김학준 단국대학원 교수(특별기고)

    필자는 지난주 일본 환태평양연구소 소장 이치카와 마사아키(시천정명)교수의 초청을 받아 도쿄 오사카 교토 일대를 여행하면서 일본의 몇몇 교수들 및 언론인들을 만나 최근의 동북아시아 정세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기회를 가졌다.여행기간중 특히 느낀 「오늘의 일본정국」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일본은 국내적으로 정치 개혁에 깊은 관심을 쏟고 있었다.일본정계의 거물인 가네마루(김환신)전 자민당 부총재의 부정부패 사건으로 대표되는 최근 몇가지 정치인들의 「검은 돈」내막이 폭로되면서 크게 자극된 국민들은 정치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고,이러한 국민적 압력앞에서 미야자와(궁택희일)총리는 오는 20일 폐회되는 중의원회기안에 정치개혁에 관련된 법안들을 통과시키겠다고 약속하고 있었다. 일본국민들이 정치 개혁을 얼마나 뜨겁게 바라고 있는가는 일본 최고의 유력지인 아사히신문이 지난 1일 발표한 전화여론조사에서도 잘 나타났다.이 신문이 전국의 유권자 2천4백69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7%의 응답자가 이번 국회회기안에 현행 선거제도를 고침으로써 정치개혁에 첫발을 내디뎌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정치개혁에 대한 높은 지지의 바탕에는 물론 강한 정치불신이 깔려있다.정치부패의 원인이 현행 선거제도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현행 선거제도의 개혁을 바라면서도 선거제도가 고쳐진다고 해서 정치불신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응답자는 겨우 15%에 지나지 않았다.응답자의 68%는 선거제도가 고쳐져도 정치에 대한 신뢰가 살아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일본의 중의원을 뽑는 제도는 중·대선거구제이다.이 선거구제는 엄청난 액수의 선거 비용을 요구하며,따라서 정치인들은 선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인들과 뒷 거래를 하게 되고 여기서 고질적인 정경유착이 발생하고 금권정치가 성장한다. 이렇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은 소선거구제로 기울어지고 있다.1구 1인 선출제로 바뀌면 선거 자금을 훨씬 덜 쓰게 되고,그렇게 되면 정경유착의 필요성이 아주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민당의몇몇 파벌들은 전국을 5백개의 선거구로 나누고 1구 1인을 뽑는 「단순소선거구제」를 제의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자민당 집안사정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자민당안의 7개 파벌이 서로 입장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들의 입장도 마찬가지다.「단순소선거구제」가 실시되면 불리하리라고 판단하는 6개의 야당들은 일치단결해서 이를 반대하고 있다.이들 야당은 그러나 국민 다수가 비판하는 현행 선거제를 고수하자고는 할 수 없기에 「단순소선거구제」에 비례대표제를 가미하는 「병립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병립제」는 2년전에 그때의 총리 가이후(해부준수)가 내놓았던 개혁안이다.자민당안의 소수 파벌 역시 이 개혁안을 지지한다.따라서 여야 사이에 「병립제」로 타협이 성립되지 않겠느냐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그러나 자민당안에 선거제도의 변경에 소극적인 이른바 신중파의 세력도 만만치 않아 과연 「병립제」로의 타협이 이뤄질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 은행,“기업경영을 배우자”/개방바람속 자구노력 안간힘

    ◎기업인 초빙,경영기법 강연 잦아져/임직원 연수·정보수집원 해외 파견 「기업을 배우자」­. 국제화·개방화의 급진전으로 경쟁의 시대를 맞이한 국내 은행들이 앞으로 전개될 국내외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건 구호이다.「관치금융」의 보호막 아래 안주하는 동안 은행들의 경쟁력은 퇴화한지 오랜데,정부의 보호막은 철거되는 중이다.국내 시장에 군침을 흘려온 미국·일본계 거대 은행들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채 생존을 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은행들의 눈을 기업 쪽으로 돌리게 하고 있다. 서울신탁은행은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의 윤순봉 경영혁신팀장을 초빙,「경영혁신의 방향」이란 주제로 강연 및 토론회를 가졌다.전반부 1시간은 조직의 간소화,책임경영 체제의 확립,결재단계의 축소,고객만족 경영 등에 관한 강연에 할애됐다.이어 토론회에서는 삼성이 5년전부터 전개해온 경영혁신 활동의 기법과 경험에 관한 질문들이 쏟아졌다.근무시간 중임에도 차·과장급 중간관리자 1백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반응이 좋아 앞으로 2개월에 한번 꼴로 기업인을 초빙,경영혁신 기법을 배울 계획이다. 단시간 내에 기업들의 선진 경영혁신 기법을 흡수하기 위해 자행 임직원의 연수를 기업에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한미은행은 홍세표행장을 비롯한 임원 전원과 부·실장,서울지역 지점장급 이상 74명이 오는 21일 경기도 용인의 삼성연수원에 입소,2박3일간 연수회를 갖는다.프로그램 편성은 삼성이 책임지며 외부 기업인을 초빙해「경영혁신 성공사례」도 듣는다. 이 은행은 이미 지난달말 삼성경제연구소와「경영혁신에 관한 자문계약」을 맺고 1년간 경영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계약수립·전략개발·추진과정의 애로 해결 등을 자문받을 계획이다. 선진국의 경영기법을 입수하기 위한 국내은행의 첩보전은 실리콘 밸리에서 미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을 빼내는 산업스파이들의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조흥은행은 본점의 종합기획부 차장 한명을 도쿄에 파견해 놓았다.그는 도쿄지점과 연락은 하지만 지점 근무는 하지 않는다.지점장조차 그의 정확한 임무를 알지 못한다.그는 매일 상오 8시30분 도쿄지점에 나타나 전용 팩시밀리를 통해 A4용지 4쪽 분량을 서울에 송신한다. 깨알 같은 글씨로 후지·스미토모·미쓰비시등 일본 은행들에 관한 정보들이 적혀 있다.일본계 은행들의 본점이 밀집해 있는 마루노 우치가에 파견된 정보수집원이다. 금융개방과 금리자유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에는『은행도 기업』이라는 말을 금융인들조차 생소하게 느꼈다.그러나 지금은『주식회사 ○○은행』이라고 자기 은행을 소개하는 금융인들이 많아졌다.차츰 기업마인드를 익혀가고 있다는 증거다. 국내은행과 외국계 은행간의 경쟁은 흔히「대형 슈퍼마켓과 구멍가게의 경쟁」으로 비유된다.은행감독원의 한·일간 은행 생산성 비교자료에 따르면 일본 5대 도시은행의 은행원 1인당 수신규모는 국내 5대 시은의 10.9배,1인당 여신은 10.7배,1인당 세전이익은 5.3배에 달한다.또 점포당 자산은 10.6배,점포당 수신은 12.1배,점포당 여신은 8.9배,점포당 세전이익은 5.9배이다.
  • 여름을 시원하게/대·왕골 등 수공예품 인기

    ◎대자리 1평반짜리 8만∼25만원선/화문석 왕골 가는게 상품… 6×9자 18만∼25만원 대나무·왕골·등나무등 천연소재를 이용해 만든 여름용 수공예품의 수요가 해마다 꾸준히 늘고있다.한때 값비싼 수입 카펫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던 우리 고유의 대자리나 화문석의 경우 항상 시원한 냉기를 유지해주는 특성때문에 더욱 인기를 끌고있다. ○차방석은 필수품화 특히 수요가 느는 품목중 하나는 대나무나 옥수수껍질을 엮어 승용차 좌석에 깔수 있도록 만든 차방석.여름철 땀으로 축축해지기 쉬운 자동차 좌석위에 걸쳐 놓으면 시원한 승차감을 갖게 해줘 이제는 에어컨과 함께 빼놓을수 없는 여름철 차량용품으로 자리잡았다. 이같이 천연소재로 만든 수공예품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자 올들어 각 백화점들은 「대나무용품 기획전」,「여름철 대자리 총집합」등 각종 판촉행사를 개최하고 있다.이중에는 대자리와 화문석 제조의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을 초청,만드는 과정에서부터 올바른 사용법을 지도해주는 행사도 열려 주부들의 관심을 모았다. ○수입품 쉽게망가져 그러나 손이 많이가고 각별한 정성과 기술을 요하는 이들 천연소재 수공예품의 특성상 요즘은 중국·인도네시아·태국의 값싼 제품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이들 제품은 열대기후에서 잘 자라는 등나무·억새풀등의 소재를 이용해 종류가 다양하고 값이 싼 장점이 있다.반면에 수입품은 끝마무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제조기술이 조악해 쉽게 망가지는 단점이 있어 제품 구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판매업자들의 얘기다. 마루나 응접실 바닥에 깔아 놓는 대자리는 몇만원대에서 수백만원까지 재료와 크기·디자인등에 따라 그 가격은 천양지차다.대를 굵게 잘라 만든 통대자리의 국산 가격이 1평반정도 넓이에 적당한 6×8자짜리 기준 8만7천∼25만원정도.여기에 각종 문양을 그려넣은 통대 그림대가 22만7천∼50만원까지 한다.왕골로 만든 화문석은 6×9자짜리가 18만∼25만원선이면 무난한 제품을 고를수 있다.수입품은 이보다 10%가량 낮은 가격수준이나 인도네시아산 등나무로 만든 수입 등자리는 고급품이 1백50만원을 넘는다. 이밖에 왕골베개·등베개·죽베개·지압베개등 각종 베개류가 8천∼1만원정도며 바구니·과자그릇·냄비받침등 대나무로 만든 다양한 생활용품이 1천∼8천원까지 비교적 싼 가격에 나와있다. ○베개는 1만원 내외 차방석은 대만산 옥수수껍질로 만든 줄옥피 2개 1세트가 5만원대이고 일반 대나무제품은 2만∼3만5천원정도. 삼풍백화점 기획실의 이명수계장은『천연소재 수공예품의 수입관세가 올해부터 1백% 인상돼 지난해보다는 가격이 많이 오른 편인데도 이들 제품을 찾는 주부들은 오히려 늘고있다』며 당분간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나무 제품을 살때는 대의 색깔이 고르고 윤기가 나는 제품이 좋으며 화문석을 고를 때는 왕골 자체가 가늘고 일정한 간격을 갖춘 것을 선택해야한다.
  • 건축가 엄덕문씨(이세기의 인물탐구:29)

    ◎자연이 담긴 한국적 건축문화 선도/「최상의 기능·최고의 미」 조화이룬 공간 추구/물욕없는 양심파… “대담·화기살린 구조” 정평/모두 격찬한 세종문화회관이 대표작… 데생·서악에도 빼어나 아름다운 푸른 자연을 경관으로 그 경관을 캔버스삼아 삶의 공간을 설계하는 예술가.괴테가 말한 것처럼 「단 한번도 살아보지 못할 건물을 낳기위해」원로건축가 엄덕문씨는 그때마다 모든 영혼,모든 마음,모든 정열을 그곳에 쏟아 붓는다. 하나의 건축이 지나치게 잘 꾸며졌다는 사실은 건축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별개일지 모른다.그것이 올바른 장소에 세워졌느냐,어떻게 쓰일 건물이냐에 따라 기능적인 특징을 질서정연하게 갖춰야만 비로소 최고의 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둥근 초가지붕과 미닫이창,쪽마루와 굴뚝과 사립짝,싱싱한 소나무 숲속에 둘러싸인 삼칸두옥은 얼마나 표정이 풍부한가.여기에 에메랄드비색같은 하늘과 햇빛·한가로운 구름의 모습,바람에 흔들리는 풍경(풍경)소리조차 건축에 포함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엄덕문 건축의 언어다.이를테면 온기와 화기,개성과 낭만,무한한 자연에의 추구가 엿보일 때만 건축은 인간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완벽한 공간이 된다는 논리다. 그는 모름지기 우리 건축계의 원로이자 현대건축의 선두주자의 한 사람이면서도 좀처럼 자신의 치적이나 업적을 앞세우는 법이 없다.겸허하게 주변에 양보하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일요화가회서 활동 다만 음악에 심취했던 일,화가 이마동 박광진씨등과 어울려 일요화가회에서 그림그리던 일만은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는 어쩌면 성악가가 됐을지도 모른다.「토스카」에서의 「별은 빛나건만」,도니체티「사랑의 묘약」중에서 「남모를 눈물」의 라멘토소 탄식은 그의 많은 노래 중에서도 절창으로 손꼽히는 레퍼토리들이다. 그러나 완고한 엄친은 그를 노래부르지 못하게 했고 그림물감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생전에 서양화가 이마동씨는 그의 「대한민국에서 알아줘야 할 데생실력」을 못내 아까워했고 그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취미삼아 여기로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투시도를 그릴 때도 그는 절대로 자를 대는 법이 없다.지우개로 지우지도 않는다.자를 대면 선은 죽어버린다.그래서 그가 그려온 투시도는 한폭의 그림과도 같이 삶의 여러 모습과 잔잔한 시어를 오밀조밀 담고있다. 그는 뛰어난 예술적 감각,예술적 정서를 지닌 반면 영묘하거나 민첩한 재기가 번뜩이는 수재형과는 유형을 달리한다.언제나 넉넉하고 신중하고 건실하다.마치 큰날개로 범상하는 알바트로스처럼 천천히 크고 넓게 그리고 높고 길게 나는 편에 속한다. 그는 동경유학시절 미국의 세계적인 예술건축가 F L 라이트의 데이코쿠(제국)호텔을 보고 건축의 기능과 미의 조화에 일찍이 눈떠갔다.단순한 호텔건물이 아닌 호텔의 기능을 최상으로 살리면서 현대적 건축양식과 동양의 전통미를 절묘하게 절충한 점이 놀라웠다. ○라이트작품에 감동 더구나 「라이트작품집」에 실린 「카프만의 집」은 혼도직전의 감동과 함께 그가 걸어가야할 건축의 방향과 목적을 번개처럼 일깨워주었다. 폭포가 쏟아지는 천연바위 위에 지은 이 별장은 자연 그대로의 일부였으며 건축과 자연과의 대선율적 조화를 단적으로 성취시킨 걸작품이었기 때문이다.인간이 없는 자연,자연이 없는 인간은 상상할 수 없었고 인간이 바로 이 지구상의 주인임을 각성시킨 예였다. 건축에 관한한 더 이상의 망설임이란 있을 수 없었다.건축은 도시를 형성하는 그림이었고 교치와 아치의 거대한 조형세계였다.부친을 원망하며 못내 미련을 버릴 수 없었던 음악과 미술이 그곳에 도사려 있었다.좋아하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작업에 그는 당연하게 취할듯이 빠져들어갔다. 작품을 보면 그사람의 인간됨을 알수 있듯이 그가 이뤄논 건물들은 한결같이 스케일이 방대하고 대담하고 헌칠한다. 세종로 한복판,사방 어디서 보아도 그 위풍당당한 세종문화회관의 호쾌한 선만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궁궐의 열주를 변형시킨 8각기둥과 8m나 곡선이 뻗어나간 캔틸레버,만자창살로 처리된 벽면등은 「동양최대의 문화예술전당」이란 찬사에 걸맞게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과 「예술적 조형미 단연압권」으로 개관당시부터 신문방송의 대대적인 기대를 모았었다. 이른바 엄덕문의 「최상의 기능·최고의 미」를 실현시킨 「세종문화회관식 건축」의 탄생이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여유만만 작작유여하다.이기심이나 경쟁심이 없어 언제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6·25직후 불어닥칠 건설붐에 앞서 낙후된 건축기술을 향상시킨다는 차원에서 후배인 김중업씨를 프랑스에 유학시킨 일화는 건축계의 미담으로 남아있다. 모두들 가난하고 절박하게 어려웠던 부산피란시절,풍산산업 김영구사장이 그에게 「프랑스 유학」을 권유했을때 그는 「나대신 재능있는 후배」를 밀었고 김중업씨가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의 연구소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홍대에 건축과 창설 그는 하나의 프로젝트가 세워지면 의욕적인 동료들을 작업에 참가시켰고 동료중의 하나가 공금실수를 저질렀을때도 수년에 걸쳐 자신의 빚처럼 갚아나갔다.또 조각가 윤효중씨와 함께 홍대에 건축과를 창설,국전 미술부문에 「건축」을 포함시킨 공로자이기도 하다. 나이 40을 넘긴 지난 60년,그가 다닌 일본 조도전대공고는 전문대 교육수준이라면서 한양대 홍대 이대에 출강하는 교수신분으로 뒤늦게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생생한 현장경력만으로 충분히 교수자격을 갖추고 있음에도 남들이 다밟는 절차에서 특혜자가 되긴 싫다고 굳이 대학과정을 졸업했다. 많은 건축가들,이를테면 건축원로 김희춘씨와 먼저 세상을 떠난 김수근·김중업씨 등이 그들의 집을 짓지 못한 것처럼 그도 지금까지 자신이 지은 집에서 살아본 적이라곤 없다.지금도 둔촌동의 한 빌라에서 5남매를 출가시키고 부인 고희용여사와 둘이 살면서 공용택지주변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이 취미다. 한창 부흥부의 도움으로 국민주택을 지을때도 20평규모 50가구씩 50동의 배당을 받았으나 건축가의 양식으로 형편없이 허술한 집을 지을수 없다는 신념에서 2m 도로폭을 4m로,좀더 탄탄하고 실용적인 건축자재를 써서 30가구로 줄어든 바람에 업자들과 관계자들의 원망을 사기도 했다.돈과는 상관없이 양심에 어긋나는 일에는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않아 그의 결벽과 청렴은 지금도 후배들의 존경을 받고있다.오죽하면 건축가 홍순오·송민구씨가 『엄덕문이가 화를 냈다면 그를 화나게한 사람은 틀림없이 나쁜 사람』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엄덕문씨는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서 태어났다.부친 엄항주씨는 경남 충무,옛통영 나전(나전)칠기의 장인으로 이왕직의 교사였고 명공 김진갑 김봉명의 스승이기도 하다.성격이 유별나고 꼿꼿하기만 한 부친의 엄한 가정교육이 그의 인격과 성격을 형성해왔다고 할 수 있다.다만 부친의 추호도 용서함이 없는 단호함에 비해 그는 「성실·정직·효도」의 가훈아래서 부모말씀에 극진히 순종하고 반듯하게 처신하여 일제시대때는 동네에서 주는 효자상을 받기도 했다.그는 너무 단단하여 부러지기 쉬운 성격보다 만사를 부드럽게 포용하고 수용하는 편에 속한다. ○장인집안서 태어나 『해방된지 반세기를 바라보건만 우리 정서와 한국적 감각으로 이루어진 고유한 현대 한국건축문화를 창조하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러운 그는 이제 우리의 멋과 미를 현대건축에 접목시킨 「우리의 것」을 창출하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의자하나라도 인체구조에 알맞게 가장 편안한 기능을 살려야만 최고의 미라 할 수 있다.디자인만의 아름다움은 이미 아무런 의미도 아니다』 그는 최근 마포에 있는 도원빌딩에 홍역문의 이미지를 건물입구에 적용시키고 부분 부조와 떡살무늬 솥뚜껑과 만자창살을 적절하게 살린 한국적 현대건축을 시도한바 있다.그리고 미완성이긴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최고의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의지로 충주호수 관광설계에 임하고 있다. 라이트가 「카프만의 집」을 지은것은 69세,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완성한 것은 그가 작고하던 해인 92세,물론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은 50부터나 60부터가 아닌,지금 무엇인가 자신의 일을 시작하고 있다면 그나이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것이 아니겠는가고 묻는다. 건축가로서 국전의 영예인 심사위원장을 거쳤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에서 건축으로는 처음 미술부문을 수상,오랜 파란끝에 예술성취를 이루는 모습은 체관으로 자연을 응시하는 청결과 정열,그나이 나름대로의 의미와 투철한 사명감이 담겨 보는이로 하여금 절로 경외가느껴지게 한다. ▷연보◁ ▲1919년 서울 출생 엄항주씨와 김수경여사의 3남4녀중 셋째(장남) ▲1943년 일본 조도전대학 공고건축과졸업 ▲1960년 한양대 공대 건축과졸업 ▲1946년부터 한양대 출강 ▲1954년 신건축 문화연구소 창설 ▲ 〃 대한민국 건축학회 이사 ▲1956년 홍대 건축과 창설(조각가 윤효중씨 등과) ▲1956∼69년 홍대 및 이대 미대 교수 ▲1956년 국전에 「건축」부문 참여 ▲1956∼80년 국전 추천작가·초대작가·국전 운영위원 ▲1960∼81년 국전 심사위원 ▲1964년부터 일본건축가협회 초청 한국대표참석이후 각종 국제회의 참가 ▲1970∼72년 한국 건축가협회 회장 ▲1970년 UIA(국제건축가연맹)회원 ▲ 〃 예총 상임이사 ▲1971년 서울특별시 행정 자문위원 ▲1977년 서울특별시 도시재개발 심사위원 ▲1980년 국전 심사위원장 ▲1988년 엄덕문 건축상 제정(매년 시행) ▲1990∼91년 대한민국 건축대전 운영위원장 ▲1992년 한국건축가협회 작가상 심사위원장 ▲현 재엄·이 건축연구소 회장·조도전 도문 건축회 회장·한국건축가 협회 명예이사 남서울 컨트리클럽하우스·리틀엔젤스 예술회관·세종문화회관·정부제2종합청사(과천)·롯데호텔(을지로입구)·롯데백화점·대한교육보험(교보빌딩)본사사옥및 전국 각 지사 빌딩·중소기업은행본점·단양 한국시멘트공장·남산외인주택·외인아파트·도원빌딩(마포)·충주호수일대 관광시설설계·이승만전대통령동상·민충정공·세종대왕·이율곡·다산·4·19학생의거기념탑 좌대및 구조물 일체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석탑산업훈장(세종문화회관설계공로)89 제21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미술부문)·초평건축상 수상
  • 에베레스트등정 2명 추락사/정상정복 하산길 참변

    【카트만두(네팔) UPI AP 연합】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올랐던 안진섭씨(25·학생)를 포함,2명의 한국인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뒤 하산길에 숨졌다고 네팔 관광부가 18일 밝혔다. 네팔 관광부는 동국산악클럽 소속의 안씨가 17일 동료 2명과 함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봉(8천8백48m)을 정복하고 18일 남쪽 산마루 코스로 하산하던중 8천m 표시가 있는 지점에서 추락사했다고 전했다. 또 안씨의 유해를 베이스 캠프로 옮기려던 다른 대원 남원우씨(28·농업)도 같은 날 7천2백m 지점에 위치한 제3캠프 인근의 크레바스 밑으로 추락,숨졌다고 관광부는 덧붙였다. 30년전인 1963년 5월 뉴질랜드의 힐러리경과 네팔인 셰르파 텐징이 이룩한 사상 최초의 등정을 기리기 위해 최근 에베레스트에는 각국 등반팀들이 몰리고 있는데 네팔의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파상 라무(32)를 포함,금년 봄들어 벌써 5명이 에베레스트서 등반길에 숨졌다.
  • 가네마루,대북수교로 치부 획책/마이니치신문 폭로

    ◎1조엔 경협자금 이용한 건설사업 눈독/심복·아들 평양시찰단에 이권사냥 거액의 정치자금스캔들로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가네마루 신(김환신)전자민당부총재가 정치를 이용,거액의 부정축재를 한것은 물론 외교로도 「검은 돈」을 긁어모으려 했던 사실이 뒤늦게 폭로됐다. 마이니치(매일)신문은 4일 가네마루가 일·북한국교정상화를 적극 추진했던 배경에는 5천억∼1조엔으로 추정되는 거액의 경제협력자금을 노린 일본의 대형 종합건설회사와 가네마루계 정치가들의 움직임이 깔려있었다고 보도,가네마루가 일·북한국교정상화를 구실로 돈을 벌려했음을 폭로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가네마루와 다나베 마코토(전변성)당시 사회당부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한 후 1년만인 91년 10월 종합건설회사임원 12명으로 구성된 「건설시찰단」이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이 시찰단에는 가네마루의 대북한 실무창구였던 노나카(야중)중의원과 나가타(영전)참의원도 포함되어 있다. 건설시찰은 실질적으로 대형 종합건설회사인 니시마쓰(서송)건설이 주도한것으로 드러났는데 이 회사는 전사장의 딸이 가네마루의 개인비서인 2남 가네마루 신고(김환신오)와 결혼,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 또 건설시찰단의 방북 한달 후 전화교환기의 북한수출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NTT(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간부가 북한을 방문했다.이때도 가네마루의 2남 신고가 동행했다.건설업계 대부였던 가네마루는 자신의 아들과 심복인 노나카의원을 앞세워 일·북한정상화를 이용,장래의 이권개입을 노렸음이 드러났다.그러나 그의 이같은 「각본」은 무대에 올려지지 않은채 일·북한 국교정상화 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 서울·대구서 「국제 현대 무용제」 개최

    ◎16개 단체 “현대무용 대제전” 참가/9∼13일/영·독 무용단도 나와 유럽작품 선보여 현대무용의 대제전인 제12회 국제현대무용제가 9일부터 13일까지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대극장과 대구 문화예술회관대극장에서 각각 열린다. 한국현대무용협회 주최로 열리는 이번 무용제에는 서울현대무용단등 서울에서 활동중인 10개 무용단및 구본숙현대무용단등 대구·부산지역의 6개단체등 모두 16개 국내무용단이 참가한다.또 영국의 트랜스지션무용단과 독일의 미나유앤드댄서무용단이 국외단체로 나와 유럽현대무용을 선보인다. 공연은 8일 오프닝행사와 리허설에 이어 서울 9∼12일,대구 12∼13일에 펼친다.이번 무용제참가단체및 공연작품은 국내단체의 경우 ▲서울현대무용단(혼자일때…) ▲최청자툇마루현대무용단(겨울) ▲이숙재밀물현대무용단(내가 네게로) ▲양정수현대무용단(겨울잠자지않는 개구리) ▲박인숙현대무용단(하얀그림자) ▲김기인현대무용단(주)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나비와 영혼) ▲황문숙현대무용단(묵상) ▲정옥조현대무용단(무제) ▲구본숙현대무용단(벽소동) ▲소라댄스앙상블(향2) ▲장정윤로고현대무용단(프렐루드) ▲김원현대무용단(생명) ▲정귀인과 부산현대무용단(계유년의 축제) ▲하야로비현대무용단(예감)등이다.
  • “경제최우선” 클린턴외교 시동/미,대일 강경대응 의미

    ◎일 시장개방 확대 위한 선제공세/통상정책 달라 합의도출 미지수 「미·일경제전쟁」이 현실화되고 있다.냉전에서 승리했지만 경제전에서는 패배한 미국이 「경제시대」라는 새로운 국제환경의 변화를 맞아 일본에 대해 대반격을 시작하고 있고 일본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미무역대표부(USTR)의 미키 캔터 대표는 지난 30일 『일본은 공공사업,건설등에서 미기업을 차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60일간의 협상에서 차별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무역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그는 또 『일본정부가 미국슈퍼컴퓨터의 구입을 봉쇄하고 있다』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미국의 이러한 경고는 경제를 외교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클린턴정권의 최초의 대일강경조치로 일본을 긴장시키고 있다.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이를 「미국의 선제공격」이라고 보도했다.미국은 이미 유럽공동체(EC)의 통신분야에 제재조치를 단행하기로 결정한 바있다. 일본은 미국의 이번 일방적 조치를 개별분야의 시장개방을 촉구하기 위한 충격적인 강경전략으로받아들이고 있다.일본은 클린턴정권이 이번 조치를 대일통상정책의 「모델 케이스」로 삼고 건설,컴퓨터뿐만 아니라 반도체,전기,자동차등 다른 분야의 시장개방도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은 지난 88년 일부 대형건설 사업에 외국기업에 우대조치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그러나 일본건설시장은 여전히 폐쇄되어 있다.캔터대표도 『미국기업들은 일본시장에서 배제되어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가네마루 전자민당부총재의 정치자금스캔들에서도 건설업계의 담합,공공사업발주와 지명입찰제의 불투명성등 건설시장의 폐쇄성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건설시장의 차별은 없다』고 강변한다.일본건설업계는 미국의 이번 조치를 「일방적 도발」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건설성도 『미국이 제재를 단행하면 대항조치를 취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앞으로 60일간 협상을 하겠지만 이같이 큰 견해차로 합의점을 찾을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양국간의 건설협의는 지난 4월초로 예정되었던 회담이 무기연기되는등 현재 중단상태이다.미국과 일본은 건설분야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통상정책의 접근방법이 다르다. 클린턴대통령은 지난 4월의 미·일정상회담에서 신경제협의기구를 설치,각분야의 시장개방을 위한 수량목표를 설정하자는 이른바 「결과주의」방식을 주장했다.그러나 미야자와 일본총리는 이는 「관리무역」으로 자유무역원칙에 벗어난다며 거부했다.미국의 이번 조치는 클린턴정권의 「결과중시」통상정책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양국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상호 무역보복의 악순환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 국왕·군주제 반대/일 좌익,연일 방화

    【도쿄 AFP 연합】 일본 서부 교토(경도)시에서 국왕과 군주제에 반대하는 급진좌익세력의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로 2개 사원이 파손됐다고 현지 경찰이 발표했다. 이들 2개 절에서 발생한 화재는 각각 천장과 마루바닥을 태운 후 즉각 진화된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경찰은 24일 하오에도 교토의 경찰초소 1개와 관영 영빈관 1채가 아키히토국왕의 오키나와현 방문을 반대하는 급진좌익세력이 장치한 것으로 여겨지는 폭발물에 의해 파손됐다고 밝혔다.
  • 일 상사 9곳 국내법인설립 허용/외국인투자 활성화 돕게/7월부터

    ◎1백95개 업종 단계별 개방 오는 7월 1일부터 일본의 9개 대형 종합상사에도 국내 법인 설립이 허용된다. 또 외국인 투자가 허용되고 있지 않은 1백95개 업종에 대해 오는 97년까지 단계별로 모두 투자가 허용된다.외국인 투자가 허용된 9백24개 업종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토지취득을 실수요 범위 안에서 원칙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다. 재무부 강석인 투자진흥과장은 16일 경주에서 열린 제25차 한·일민간경제위원회 합동회의에 참석,외국인의 국내투자 유치대책을 이같이 마련중이라고 밝혔다. 이에따라 그동안 자본금과 매출규모가 커,국내 종합상사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법인 설립이 규제된 일본의 미쓰비시·미쓰이·스미토모·이토추·마루베니등 9개 종합상사의 국내법인 설립이 7월부터 허용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1일부터 국내진출 21개 일본 종합상사 가운데 중소규모의 이토만·도요다등 12개 종합상사에 대해서만 국내 법인설립을 허용,무역업을 할 수 있도록 했었다. 외국인 투자에 관한 5개년 개방예시제도를 마련,아직 외국인 투자가 허용되지 않은 2백74개 업종 가운데 지금도 합작으로 투자가 가능한 50개업종과 인가절차를 거치면 되는 29개 업종을 제외한 나머지 1백95개 업종을 오는 97년까지 단계적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또 그동안 외국인 토지취득제도를 「원칙금지 예외허용」(포지티브 시스템)에서 「원칙허용 예외금지」(네거티브 시스템)로 전환,국내 투자가 허용된 9백24개 업종에 대해 업무용 부동산의 취득을 빠르면 내년부터 인정하기로 했다. 이밖에 현재 첨단제조업에 한해 모기업이나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3년 내의 단기차입을 허용하던 것을 일반제조업까지 확대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한편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아산만 10만평의 부지에 외국인 투자기업 전용공단을 오는 96년까지 조성,1천개 외국업체에 임대해 주기로 했다.
  • “국제공헌” 외교노선 계승 확실/일,와타나베외상 전격교체이후

    ◎자위대의 해외파병 가속화 될듯/맞수 퇴진… 현총리 연임 가능성 일본 외상의 전격교체는 퇴임하는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외상이 정계실력자라는 점에서 일본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국제공헌을 강조하는 일본외교의 기본틀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토 가분(무등가문) 신임외상도 6일 『와타나베외상의 외교노선을 계승하겠다』고 강조,이를 뒷받침했다.와타나베외상은 자위대의 해외파견등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주장해온 인물.그는 냉전종식후의 새로운 국제질서 창출과정에서 일본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소신을 기회있을 때마다 밝혀왔다. 이번 외상의 전격교체는 와타나베의 건강악화가 그 이유다.와타나베외상은 지난해 5월 「쓸개관결석」제거수술을 받았으나 차도가 없어 최근에는 병원에서 출퇴근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는 것이다.일부에서는 그가 암을 앓고 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미야자와총리는 당초 「하타파」의 「자민당탈당」을 막기 위해 하타파를 이끌고 있는 하타 쓰토무(우전자)전대장상의 외상취임을 요청했으나 하타씨가 이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하타씨의 거부로 미야자와총리는 와타나베외상의 직계인 무토 전통산상을 외상에 내정했는데 이같은 맥락에서 무토씨의 외상내정은 파벌의 역학구조를 크게 고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토외상내정은 또 그가 통산상,농수산상 등을 역임했기 때문에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을 고려했다는 분석도 있다.그는 「쌀시장개방론자」로 알려져 일본이 쌀시장개방에 더욱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그는 특히 일·한의원연맹부회장직을 맡고 있어 한·일외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무토신임외상은 4월중순 도쿄에서 열리는 선진7개국(G7)외무·재무장관회담,7월의 G7정상회담,미야자와총리의 방미,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문제등 많은 현안을 떠맡게 됐다.그러나 그는 와타나베외상과 같은 외교의 주도권행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외교면에서의 미야자와총리의 영향력 증대가 예상된다. 미야자와총리는 다음 총리로 유력시되던 와타나베외상이 건강악화로 다음 선거출마도 불투명하기 때문에 총리연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야자와정권을 적극 지지하던 가네마루 전자민당 부총재의 정계은퇴에 이어 와타나베외상도 사임,정권기반이 약화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더욱이 하타파의 새로운 정당 창당움직임도 활발해 일본정국 전망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 신임외상 무토는 누구/와타나베 직계인 「3대 대물림의원」/통산성장관 등 역임한 지한파중진 일본의 새외상으로 내정된 무토 가분(무등가문·66)전통산상은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난 「3대 대물림」국회의원이자 일·한의원연맹부회장을 맡고 있는 원내의 지한파중진. 교토(경도)대를 졸업하고 지난 67년 최초로 국회의원에 당선,정계에 입문후한 9선의원으로 농수산상,통산상 등을 역임했다. 지난 90년 통산상 당시 미국의 베이커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쌀시장개방 양보」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여전히 최소한 부분개방이라도 해야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소기업육성에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산업계에도 발이 넓다.비교적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평도 듣고 있다.자민당내 와타나베(도변)파 중견간부로 와타나베외상의 직계로 알려져 있다.
  • 가네마루 보석/일 구속 3주만에

    【도쿄 로이터 연합】 탈세혐의로 구속수감돼 지난 3주동안 검찰의 조사를 받아온 가네마루 신(김환신)전 일본 자민당 부총재가 29일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NHK방송이 보도했다. 가네마루측 변호사들은 당뇨병과 안질환을 앓고 있는 그가 입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3억엔(2백50만달러)의 보석금을 걸고 보석을 신청,이날자로 보석허가가 이뤄졌다고 NHK방송이 전했다. 이로써 가네마루씨(78)는 지난 87∼89년 사이에 건설회사와 버스회사들로부터 받은 정치헌금을 신고하지 않고 챙겨 소득세 10억4천만엔을 탈세한 혐의로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됐다.
  • 무용가 이매방씨(이세기의 인물탐구:22)

    ◎날듯한 보법·절묘한 선… “타고난 춤꾼”/안으론 한·밖으론 허공 다스려 관객심혼 울려/「살풀이 춤」은 “미학의 극치·최고무작” 평가받아/옳지않은 일 못참고 욕설잘하는 자유분방한 성품 천명이고 만명이고 관중들의 오장을 속속들이 뒤흔들어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매방,타고난 춤꾼 신들린 춤꾼인 그의 괴팍한 성격은 무용계에서는 알아주는 막무가나다.비위가 틀리면 어른이고 제자고 눈에 보이는것이 없다.주춤거리거나 남의 눈치를 본적도 없다.한번 입을 떼기 시작하면 몇시간이건 쉬지않고 속사포처럼 쏘아댄다.세상의 욕이란 욕은 그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것이 없을 것이다.그야말로 제멋대로 살아온 자유분방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가 춤추기 시작하면 온몸으로 삼라만상을 보여주고 산천초목을 움직인다.미끌어질듯 날듯말듯 비스듬히 포개고 떼는 보법이며 무겁게 들어올렸다가 날카롭게 뿌리치는 광대한 능선,긴 날개처럼 펼쳐지는 장삼자락에는 냉혹한 귀기마저 감돌아 관객은 어느순간 전률에 몸을 떤다.아름답고 눈부신 보석같은 춤만으로도 그래서 그의 허물들은 눈녹듯이 용서된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하지않으면 신병에 걸리듯 천수북을 앞에놓고 변죽을 울리면서 연풍대로 몸을 젖혀 엎어치고 휘돌아야만 살맛이 나는 모양이다.그중에서도 그의 보념승무는 염불장단과 굿거리 사이사이에 현란하게 두들겨대는 북춤이 일품이다.인간의 고통스러운 열정과 비애를 북가락에 실어 남도특유의 흥과 멋을 종횡무진으로 엇가른다.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는 아현동에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한쪽 귀퉁이에 휘장을 치고 연탄불에다 냄비밥을 끓여먹었다. 결백증이 심해 돈이 오가는 풍조를 체질적으로 경멸하는데다가 재능이 없어보이면 처음부터 제자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이곳저곳 떠도는 방랑벽,훌쩍 떠나고 소리없이 머물면서 긴 정착을 꺼리는 성격탓에 마뜩한 거처하나 마련하지 못했었다.그의 부대끼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던 둘째누이가 2년전 타계하면서 유산으로 남겨준 연구소옆 허름한 아파트가 60평생에 처음가져보는 제집일 것이다.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현관에 들어서면 마루한가운데 왜정시대때나 볼수있었던 낡은 싱거미싱한대가 놓여있다. ○무용복 손수지어 입어 그는 옛날부터 꼼꼼한 바느질솜씨로도 유명하다.무용발표회가 있을 때마다 그의 춤이 훼손될것을 걱정하여 복색일체를 손수 지어입는다.화장과 도련 소매부리를 재단하고 재봉틀에 누비는 귀신같은 솜씨는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룰 정도다. 정종 3병의 술실력,4,5년전까지 만해도 주정·주사가 극심하여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면 욕설을 퍼붇거나 남의 멱살을 잡기가 일쑤였다. 60년대중반 발레하는 이인범씨와 국도극장 악극단 쇼에 나간것이 말썽이 되어 무용협회가 이들을 제명처분하려던 사건은 무용계의 잊지못할 에피소드로 남아있다. 징계사실을 사전에 안 그는 술을 잔뜩 퍼마시고 지금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예총으로 쳐들어가 기물을 부수는 등 광란의 주란을 부린 적이 있다. 「먹고 살자는 일인데 너희들이 내게 돈을 줬느냐 쌀을 줬느냐」 게다가 누군가가 그의 춤을 ‘기방춤’으로 격하시키려하자 「궁중무를 빼고 기방춤이 아닌것이 뭐가 있느냐? 너희춤은 양춤이냐발레춤이냐? 뿌리도없는 형식춤을 어디다대고 비교하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막상 그의 신랄한 반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한말이래 변질되지않고 원형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그의 춤』을 정명호씨(중대교수)등 여러사람이 감싸주었다. 77년 서울 YMCA강당에서 열린 그의 춤을 보고 원로언론인인 홍종인씨는 이례적으로 「속절없는 슬픔과 기쁨을 아로새겨 나가는가 하면 기쁨도 슬픔도 초월한 파탈의 경지로 솟구쳐오른 황홀」이라는 찬양의 글을 써서 세인의 관심을 모았었다. 또 여성적 미학의 극치로 칭해지는 그의 「살풀이춤」은 극도의 긴장과 절제,어둠과 밝음,괴로움과 갈등을 교차하면서 정속에 폭발을 감춘 최고의 무작으로 평가되었다. 안으로는 한을 다스리고 밖으로는 하공을 다스리는 춤.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어 슬피 끝난 일들을 차곡차곡 망각하려는 애절함을 눈물의 춤으로 승화시키자 객석에서는 조용한 흐느낌마저 파동쳤다. 「덩닥궁 덩다꿍,어깨들고 착착쿵…」 그가 제자들을 가르칠때 보면 숨쉴틈도두지 않는다.지시하고 지적한대로 선을 만들지 못하면 냅다 달려나가 욕설을 퍼붓고 북가락을 내던진다. 변덕스럽고 삐치기도 잘해서 사근사근 사람을 홀딱 반하게 하다가도 못마땅한 구석을 발견하면 살차게 뿌리치고 미련없이 돌아 앉는다.끝없는 줄담배,쪽쪽 뻗은 검지와 장지에 꼬나문 담배하며 낮으막하나 재빠른 말씨,아래로 착 내려깐 날카로운 눈매와 여성적인 걸음걸이 등등 그의 이야기는 글로 써서는 충분치 못하다.진한 사투리의 육두문자와 구성진 입타령 일본춤 스페인춤 흉내,바느질과 다림질 솜씨,무엇보다 사람의 애간장을 뒤흔들어 놓는 살풀이춤을 보고나서야만 그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된다. 지난해 어느 사석에선가 명창 김소희씨가 매방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자기예술에 혼신바쳐 『이매방동생은 남못하는 예술을 가진 사람으로써 젊어서는 정말 「개판」이었지요.누구라도 한번 걸렸다하면 밤샘 술을 마셔야하고 휘젓고 돌아다니고 욕설 잘하고,그러나 그 춤만은 현재로선 제가 아는한 전무후무한 명무라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그 춤만은 가히 당대의 명인이지요』 이른바 재주가 승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오만방자와 안하무인의 기색이 역력하지만 자신의 예술을 알리기 위해선 한자리에서도 몇십번씩 무태를 보이는 성의를 잊지 않는다. 한때는 그가 후계자를 키우지 않아 「그의 춤을 저승으로 가져가려나 보다」고 무용계가 빈정거린 적도 있으나 그는 몇몇제자를 모아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엄하게 그의 춤을 보존하고 전장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매방은 전라도 목포에서 태어났다.아버지 이경율씨는 목포 양동에서 싸전과 장작장사를 하는 집안으로 그는 3남2녀중 막내,부모와 형제들의 귀여움을 두루 받았으면서 어릴 때부터 여성취향이 짙어 경대앞에 앉아 춤을 추거나 화장하는 흉내를 즐겼다.『나 자신이 무엇이 될 것인가를 세살때나 또는 일곱살때,어쨌든 그 이전에 운명적으로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집에 세들어 있던 목포 권번 기생에게 춤을 배우고 권번에서 춤을 가르치던 집안의 할아버지벌인 이대조선생,화순의 박영구선생에게 본격적으로 승무검무 법고를 배웠다. ○매란방처럼 살고자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4년간은 큰형이 사업을 벌이고 있던 만주 대연과 북경에서 살면서 중국 경극의 대가인 매란방을 만났고 평생 매란방처럼 살고 싶어 본명인 「규태」를 버리고 그때부터 매방이란 예명을 스스로 지어가졌다. 군산에서 무용연구소를 개설,간간히 서울에 올라와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역마살이 뻗친듯 광주 대구 강릉 속초 부산 동래를 전전,형제들의 간곡한 권유로 69년,42세때 부산에서 무용활동을 하는 김명자씨와 뒤늦게 결혼하여 딸(현주·20)하나를 두고 대학 무용과에 다니는 있다. 부산에 머물고 있을때 그의 춤을 귀히 여기던 무용평론가 정병호씨와 거문고 인간문화재 한갑득씨의 권유로 77년부터 서울정착을 결심하게 되었다. 말도 탈도 많았던 들끓는 듯한 지난날,한번 움직일 때마다 수천 관중을 사로잡는 그의 춤에 매료되어 54년,서울 첫 정착때는 신익희선생의 따님인 정균씨가 동대문밖 창신동에 무용연구소를 차려준 적이 있었고 삼성의 이병철회장은 특히 그의 「살풀이춤」을 사랑하여 자주 별장에 불러 춤을 추게 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매일 하오4시부터 4시간씩 연습,이렇게 연습을 해두기 때문에 공연을 앞둔 총 리허설은 해본적이 없다. 해마다 명무전 명인전 전통무용의 밤과 수많은 해외고연에 참가하고 프랑스 렌느 페스티벌에 다녀와서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럽공연은 「질색」이라고 거절한다.평생을 통해 그가 하고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마지못해 체면상 해본 일은 없을 것이다.그가 무엇을 어떻게 하던,욕쟁이로 소문이 나고 성질이 괴팍하던 말던,방약무인하고 오만불손하다 하더라도 김소희씨의 말대로 「당대의 전무후무한 명인」,절묘한 선으로 이어지는 천의무봉한 춤솜씨 하나만으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이매방일 수밖에 없을 것같다. □연보 ▲1927년 5월5일 전남 목포출생(본명(이규태) ▲1935∼39년 만주 대연에 거주.전남 무안출신 이대조선생 「승무」「북춤」사사,전남 화순출신 박영구선생 「승무」「법고」사사,전남 목포출신 이창조선생 「검무」사사 ▲1943년 목포 공립공업학교 졸업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예능보유자(87년 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예능보유자(90년 지정) ▲1948년 명창 임방울선생 명인명창대회 「승무」(3고)첫 출연 ▲1953년 전북 군산 국악원주최 명인명창대회 「승무」(9고) ▲1953년 이매방 개인무용발표회(광주) ▲1954년 삼성여성국극단 창극출연 「승무」(7고) ▲1955년 개인무용발표회(문하생 발표 포함·광주) ▲1956년 개인무용발표회(부산) ▲1957년 개인무용발표회 「살풀이춤」(부산) ▲1959년 서울 을지로 원각사에서 개인무용발표회 ▲1962년 광복절 경축예술제 「살풀이춤」(국립극장)(도쿄∼오사카) ▲1968년 일본 대민단본부주최 광복절기념공연 ▲1970년 부산·시모노세키 자매결연기념공연(시모노세키·부산) ▲1975년 부산예총주최 「무용합동공연」(부산) ▲1977년 이매방 「보념승무」발표회(서울YWCA강당) ▲1979년 대한항공 민항 10주년기념공연(미 6개도시 교포위문) ▲1981년부터 제1회 대한민국 전통무용예술제참가(해마다) ▲1982년부터 국악대제전 한국 명무전 출연 ▲1984년 무용인생 50년 특별기념공연 「북소리Ⅰ」(세종문화회관) ▲1986년 미 한미문화센터주최 워싱턴 공연 「살풀이춤」 ▲1986년 아시안게임 축전공연 출연 ▲1987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Ⅱ」(문예극장 대극장) ▲1987년부터 해마다 중요무형문화재공연 출연 ▲1990년 개인무용발표회 「북소리Ⅲ」(호암아트홀) ▲1988년 88서울올림픽문화예술축전 참가 ▲1989년 조선일보주최 국악대공연 출연 ▲1990년 중국·북경·연변 교민 순회공연 ▲1991년 한국·일본 무형문화재 합동공연(도쿄) ▲1992년 국악대제전 명무전 출연 예술문화대상·눌원 향토예술대상·목관문화훈장서훈 (승무) 송수남·김진홍·임이조·채향순·국수호·채상묵 (살풀이) 정명숙·유숙희·김정녀·이진주
  • 즐거움 나누는 생활의 장으로/김용우 STM전략기획부과장(일터에서)

    가끔 도회지의 번잡함에서 해방되고 싶은 때가 있다.그래서 만사 제쳐두고 3∼4일 휴가를 내 시골 고향집을 찾아보곤 한다. 『며칠 푹 쉬었다 와야지』 떠날 때의 홀가분함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아니다.그러나 막상 시골집에 도착하면 조용하고 한적함보다는 무료함에 금방 좀이 쑤신다.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툇마루 앞에 놓인 빗자루를 잡아보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하다.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도시에서의 일상이 허물어진 틈새를 메울 길이 없다.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도시 근로자들은 어느덧 바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불안해지는 강박관념이 몸에 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한창 바쁜 시간에 옆 부서의 동료가 다가와 대뜸 『커피나 한잔 하자』고 한다.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내색할 수 없어 건성으로 자판기 앞까지 따라 나선다. 『일은 안 풀리고 어쩌면 좋지.정말 죽을 지경이야』 울쌍이 된 그의 하소연에 『세상 고민을 혼자서 짊어지고 다니는 것처럼 찡그리지 말고 얼굴 펴고 살라』고 점잖게 타일러 준다.그러나 막상 나 자신도 내심으론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터라 고개가 끄덕여진다. 누구나 하루의 바쁜 일과 속에서 허둥대며 스트레스를 받는다.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이 아닐까. 우리의 일터를 서로 즐거움을 나누는 생활의 장(장)으로 꾸며가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고객을 기다리던 곳에서 찾아다니는 곳으로,힘을 행사하던 곳에서 나눠주는 곳으로,혼자 하는 곳에서 협동하는 곳으로,답습하던 곳에서 개선하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그러면 모두의 마음으로부터 신바람이 절로 우러날 것이다.
  • 20대 증권사 직원/여 고객 살해기도

    【대전=이천렬기자】 대전중부경찰서는 25일 고객의 증권을 몰래 판뒤 이를 가로채기 위해 고객을 살해하려 한 대신증권 대전지점직원 이내명씨(28·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가람아파트 1동1108호)를 살인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지난 20일 위탁관리고객인 김모씨(51·여·대전M국교 양호교사)가 맡긴 6천5백만원어치의 세일중공업주식 1만주를 몰래 판뒤 이를 가로채기 위해 지난 23일 하오9시30분쯤 김씨를 대전시 서구 둔산동 한마루아파트 신축공사장 공터로 불러내 김씨의 머리를 둔기로 때리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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