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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 이사철 집수리 증가

    새봄을 맞아 집안 꾸미기가 한창이다.타일이 깔린 베란다에 나무 바닥을 깔거나 쓸모없는 붙박이장을 털어내면 집안 면적이 3∼4평은 늘어난다.단순 비내력벽(건물의 힘을받기 위해 세워진 벽이 아니라 단순히 공간을 구분하기 위해 설치한 벽)을 헐어내면 훨씬 쓸모있는 공간을 연출할수 있다.벽지를 새로 붙이고 바닥만 바꿔 깔아도 집안 분위기가 확 살아난다. 여기에 조명을 갈아 달면 새집 같은 느낌이 든다.집값이큰 폭으로 오르면서 적은 비용으로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작은 공사지만 리모델링에는 주의할 점도 많다.건물의 안전을 도외시하거나 실용성을 따지지 않고 값비싼 자재로 치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리모델링 요령과 주의점. 아파트의 경우 내력벽,슬라브,기둥 등을 헐어내거나 무리하게 공사를 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발코니 바닥 공사에돌이나 콘크리트 등 무거운 자재를 사용하면 안전에 문제가 생긴다.공사 범위와 구조 변경 가능 여부는 리모델링전문가와 상의하거나 구청 주택과에 문의하면 된다.●시공 전 이것만은 알아두자= 일을 벌이기 전에 어떤 부분을 고칠 것인지 꼼꼼하게 찾아내야 한다.손을 대는 범위와 공사 방법,기간을 고려해 대충 들어갈 공사비를 따져 본다.이사 뒤 방의 쓰임새나 가구 배치에 대해 간단한 도면을 그려보면 불필요한 공사를 막을 수 있다.가족들과 간단한 회의를 열어 공사 범위를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음 단계는 견적.마감재 가격은 천차만별이다.겉으로 보아서는 어떤 자재가 비싸고 좋은 것인지 가려내기 힘들다. 여러 곳을 둘러 보고 전문가의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이미 공사를 끝낸 이웃집을 구경하고 집 주인의 ‘훈수’를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감재는 집안 전체 분위기에 어울려야 한다.유해물질이적고 기능성 있는 것을 선택하면 금상첨화.좁은 공간에서는 공간 활용에 도움이 되는 가구가 아무래도 효율적이다. ●업체 선정이 관건= 공사의 범위가 결정되면 믿고 맡길 수 있는 업체를 골라 계약을 한 뒤 공사를 시작한다.동네에는 집 수리 업체와 리모델링 전문 업체가 있다.동네 업자는 종합적인 공사를 할 수 없다.흔히 장판·벽지를 파는집이나 중개업소에서 공사 업체를 소개해 준다.도배공사를 하는 사람이 베란다 확장이나 조명공사 업체를 끼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비용은 다소 싸게 들지만 하자 발생이나 공사 뒷 마무리,서비스는 전문 업체에 비해 떨어진다. 리모델링 전문 업체도 많다.한 부분의 공사만 하는 것이아니라 설계·시공·인테리어 전문가를 확보,모든 분야의공사를 맡아 처리해줘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인테리어가뛰어나고 법적인 문제나 하자 발생시 거의 완벽하게 처리해 준다. ●주의할 점도 있다= 집 주인이 중간 점검을 할 필요가 있다.당초 견적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불필요한 추가 공사는 없는지 살피는 것이 좋다.예상 밖의 공사가 생길 수도 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공사기간을 미리 확정짓는 것이 좋다.제 날짜에 공사를 마치지 못해 이사를 못하거나 공사가 덜 끝난 상태에서 입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공사를 하다보면 소음과 먼지 등으로 이웃과 마찰을 빚을 수 있다.미리 이웃에게 양해를 구하고아파트 관리소 등에 연락을 하는 것이 좋다.자재를 운반할 때 엘리베이터나 이웃 시설에 피해를 줄 수 있는 만큼 공사업체에 주의를부탁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공사가 끝난 뒤에는 계약 조건대로 시공됐는지,하자가 있는지 꼼꼼하게 살펴본 뒤 재시공을 부탁하거나 보상을 받아야 한다. 류찬희기자 chani@ ■밝은 벽지·상큼한 디자인, 공간 많아 두배 넓게산다. 적은 비용으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25평형 빌라 리모델링 사례를 소개한다.LG데코빌이 시공했고 전체 공사 진행은 한명식 디자이너가 맡았다. ●거실 넓히기= 거실 공간을 넓히는 데 초점을 뒀다.창문크기를 확장하고,집안 분위기를 환하면서도 간단하게 연출했다.단조로운 색상은 공간을 넓게 보이게 한다.천장이 낮아 복잡한 디자인을 배제하고 매입(천장을 일부 헐어내고콘크리이트 벽에 붙이는) 할로겐 등(燈)을 설치했다.간접조명이 은은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는 효과적이나,공간을 더욱 협소하게 보이게 할 우려가 있다. 좁은 거실에는 매입형 조명이 적합하다.매입 할로겐 등32개를 사용했고 가격은 개당 1만 2000원이 들었다.마루는흰색 톤과 어울리는 단풍나무 온돌마루를 깔았다.평당 시공비 포함 16만원.거실 중앙에는 철물점에서 바퀴를 구입해 패널을 깐 알뜰 탁자를 배치했다.패널 4만원,바퀴 2만8000원. ●욕실= 습식 부위를 줄여 신발을 신지 않고 이용토록 했다.샤워 부스도 유리 칸막이만 설치,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거실과 마찬가지로 화이트 컬러를 줬다.방수·설비·미장공사가 포함된 욕실 공사는 타일,위생기구 등을 바꾸는 데 300만원 정도가 들었다.고풍스러운 이미지를연출한 세면대를 갖추는 데 30만원 정도 추가 비용이 들었다. ●침실= 평온한 수면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최소한의가구만 배치,공간을 안락하고 간단하게 꾸몄다.흰색계통의 단조로운 색상을 유지토록 했다.창호를 확장,시원스러운분위기를 연출하는 동시에 모든 창문의 커튼은 롤 블라인드로 바꿨다.침실 창호 200만원,블라인드 공사에 45만원이 들었다. ●현관 옆의 공간을 활용한 서재= 서재로 이어지는 현관 옆 공간에 책장을 설치했다.서재를 넓게 쓰기 위한 지혜다. 책장은 기존 침실문을 보수하여 도장 작업을 하고,다리를달아 올려 놓았다.책장과 신발장은 일체형 제품으로 가격은 80만원 정도. ●주방= 구조 변화가 가장 많은 부분.바깥 공기를 많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냉장고 부분을 벽으로 나누고냉장고와 문을 따로 설치했다.주방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콘크리트 블록을 쌓아 시공한 미장 공사의 비용은 40만원,비규격 사이즈 문은 30만원이 들었다.씽크대는 550만원에제작했다.주방의 구조는 ‘ㄱ’자 구조로 만들어 공간 효율성을 강조했다. ●자료제공:LG데코빌 (02)3489-7397
  • 출범3년 ‘문화연대’맹활약/ “문화 민주주의 활짝 꽃피우련다”

    가요계 홍보(PR)비 비리폭로,연예인 인권운동,가요순위방송프로 폐지운동,가수 박진영의 가사 선정성 논란…. 대중문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문화개혁시민연대(문화연대)의 활약상들이다.문화연대는 출범 3년여만에 무시할 수 없는 문화 NGO로 자리잡아 나가고 있다.1999년 9월 창립할 당시 한두명에 불과했던 상근자수가 지난해 4명으로,올해는 12명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문화연대는 서울 종로구 화동의 한 한옥집에 둥지를 틀고 있다.나무대문을 삐걱 열고 들어서면 청명하게 울리는 종소리와 금속공예로 만든 문패가 반긴다.“역시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다르구나.”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한옥집에 사무실을 차린 것은 한 회원의 후원도 있었지만 문화연대가 ‘한옥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탁 트인 마당과 대청마루가 있어 시야가 갑갑한 빌딩보다는 좋지만 공간이 다소 비좁은 게 흠이다. 문화연대는 올해 ‘대중문화예술산업 종사자들의 생활권확보를 위한 정기 포럼’을 계획하고 있다.다음달 3일 오후2시 서울 흥국생명 빌딩에서 ‘영화 스태프들의 제작환경과 복지 정책’이라는 포럼을 여는 것을 시작으로 독립음악인,방송인 및 연예인의 인권과 제작관행,애니메이터지원정책 등을 1년동안 차례차례 조명할 예정이다. 포럼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주혜(27)씨는 “‘한번 써주면 고마운’ 방송국의 구성작가,밥 먹고 살 수가 없어 지금은 ‘죽어버린’ 홍대앞의 독립음악인 등 기층부터 탄탄해지지 않으면 우리의 대중문화의 장래는 불투명하다.”고강조했다. ‘상품’임을 자처하는 연예인들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쏟는 이유를 이원재(31) 정책실장은 ‘시스템의 모순’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연예인들이 스타가 되고 싶어 하는 일일지라도 방치해서는 안됩니다.방송과 기획사의 권력 밑에서 지나치게 상품화되는 연예인의 인권은 대중문화 발전의 한계로 연결되고 결국 문화 수용자인 대중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죠.” 문화연대의 활동은 어느 시민단체보다 범위가 넓다.‘문화 권리 찾기’를 큰 목표로 삼아 살고 싶은 서울만들기,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지식사회만들기 국민운동,문화관광부 지방자치센터 문화행정감시 등 자체활동뿐 아니라 연대사업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이 실장은 “급한 일이 터지면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과 함께 일하고 이를 통해 사회운동과 문화예술운동의 차이를 메우고 있다.”면서 “아직 다른 시민단체보다 어리다 보니 조직 이기주의가 없어 ‘어리버리’하게 하자는대로 다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연대 사람들은 스스로 문화지수를 ‘높다’고 평가한다.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춤을 멋있게 추는 것이 아니라‘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다.다른 시민단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로 우위와 서열을 가리는 것이나 성차별도 문화연대에는 없다.노랑머리,남성의 귀걸이,편한 운동복 차림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타박하지 않는다. “문화연대의 가장 큰 목표는 문화적 다양성과 창조성을인정하는 ‘문화 민주주의’입니다.기존의 선입관을 없애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할 수 있는 권리를 찾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윤창수기자 geo@
  • 美 태평양군 사령관 토머스 파고

    [워싱턴 AFP 연합]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관인 토머스 파고(52) 제독이 오는 5월 퇴임하는 데니스 블레어 해군 대장의 뒤를 이어 태평양군 사령관에 임명됐다고 미 국방부가21일 밝혔다. 파고 사령관은 지난해 2월 9일 일본의 고교실습용 어선 에히메마루가 미 잠수함과 충돌한 후 침몰해9명의 일본인 학생 등이 사망한 사건의 처리와 관련해 일반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잠수함 함장 출신인 파고 사령관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걸프만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군 제5함대 사령관을 역임했다.
  • 할머니와 손자의 귀막힌 동거 ‘집으로‘

    ‘미술관옆 동물원’을 연출했던 이정향 감독의 두번째 장편 ‘집으로…’(제작 튜브픽처스·4월5일 개봉)는 까맣게잊었던 향수(鄕愁)를 일깨우는 영화다. 어린 시절 시골 운동회날 까먹던 도시락 맛이 나는듯 싶다. 요란한 찬 얼마든지 곱씹을 맛을 내주던 소박한 도시락말이다.그리고 기어이 사람살이의 근본을 더듬게 만드는,그런 영화다. 본격적인 영화감상에 들어가기도 전에 여감독의 뚝심에 새삼 놀라워진다.77세 산골 할머니와 7세 소년이 주인공인 영화라니.충무로에 돈줄이 넘친다 한들 흥행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뵈는 이야기 소재에 흔쾌히 뒷돈을 대겠다는 제작사가 있었을까도 싶다. ‘미술관 옆 동물원’이 그랬듯 이번 역시 감독은 시나리오까지 직접 썼다.사람사는 냄새를 오롯이 스크린속에 옮겨담기 위해 단 한명의 스타도 끌어들이지 않았다. 털털털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에 일곱살 상우(유승호)가 타고 있다.장에서 돌아오는 촌사람들의 왁자한 웃음바다 속에서 게임기를 열심히 두드리고 앉은 아이의 표정에는 짜증이역력하다.뭔 사정이 있는지 엄마는 혼자 사는 외할머니(김을분)에게 상우를 맡기러 가는 길이다. 영화는 보기 민망할 만큼 초라한 굴피집 한채를 주요공간으로 삼았다.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일흔일곱살의 할머니에게 상우의 첫 반응은 막돼먹었다 싶게 함부로다.“더러워.”“병신,귀머거리.” 할머니가 김치를 찢어 밥위에 올려주면 매몰차게 퍼내버리던 녀석이 한밤중 화장실이 급해질 땐 할머니가들이미는 요강에 뻔뻔하게 잘도 ‘볼 일’을 본다. 영화 포스터는 두사람의 만남을 ‘귀막힌(?)동거’라 표현했다.정말이지 소통이 잘 될 까닭이 없는 이들의 동거는 상우의 일방적인 까탈로 내내 불안하다.하지만 영화는 관객을불안하게 만들진 않는다. 두 주인공의 캐릭터야 반대편 꼭지점에 맞선 듯하지만,휴먼드라마의 ‘관성’상 끝내는 화해로 접점을 찾아갈 거란 것쯤 눈치못챌 리 없기 때문이다.게임기 배터리를 사겠다고 할머니의 은비녀를 몰래 뽑아 구멍가게를 전전하고 마루위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상우.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다는손자에게 장대비를 맞아가며 생닭을 사와서는 닭백숙을 고아주고마는 할머니.도통 ‘사인’이 안맞는 동거를 보면서도 관객들은 걱정 대신 웃음을 퍼올릴 게 분명하다. 두사람의 관계는 70세의 나이차만큼이나 단절된 과거와 현재의 상징이다.상우의 롤러스케이트와 시골집 돌마당,켄터키 치킨과 닭백숙만큼이나 멀던 둘의 거리는 영화가 끝날 즈음 거짓말처럼 좁혀져 있다. 감독이 사랑을 풀어내는 방법에는 일관성이 있다.‘미술관옆 동물원’에서도 여주인공(심은하)은 이렇게 되뇌었었다. “한번에 푹 젖는 게 사랑인 줄 알았더니 서서히 젖는 거였구나”라고.상우도 그걸 알게 된다.그런데 그 사랑이란 게이번엔 막판에 홍수가 나도록 젖고만다. 할머니를 홀로 남겨두고 도시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 상우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군다.시사회장에서 훌쩍거리는소리가 덩달아 들린 대목이기도 하다. 황수정기자 sjh@
  • CI교체 롯데백화점 젊어졌다

    최근 CI(이미지통합)를 교체하며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롯데백화점이 새 봄을 맞아 매장 구성을 확 바꿨다. 한마디로 젊어졌다. 일본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마루이백화점의 PB(자체개발상품) 브랜드 ‘타스타스’를 우선 서울 본점과 잠실점에 입점시켰다. 일본의 PB를 롯데의 PB로재포장한 것.50%는 직수입이다. 잠옷 스타일의 상식을 깨는 디자인으로 출시초기 일본 젊은이들이 열광했다.타스타스란 커피잔을 뜻하는 프랑스어. 함께 모여 차를 마시는 즐거움처럼 기분좋은 옷이란 뜻이다.가격대는 10만원선.16∼25세가 주 타깃이다. 스페인의 영캐주얼 브랜드 ‘씨마론’(본점·잠실점)과섹시한 느낌의 국산 진 브랜드 ‘쉐비뇽’,‘바닐라B’(본점·영등포점)도 새로 들어왔다.본점·잠실점·일산점에동시 입점한 ‘오마이솔’은 미국 젊은이들이 즐겨신는 운동화 브랜드. 남성의류매장도 ‘화이트칼라’ 계층의 젊은 남성들이 좋아하는 영국의 ‘폴 스튜어트’(본점·잠실점)와 ‘런던포그’(관악점),일본의 ‘준꼬 고시노’(본점)로새롭게 보강했다. 홍보팀 임형욱씨는 “영캐주얼 부문의 고급PB 개발에 각별히 신경썼다.”면서 “해외 유명 PB를 벤치마킹한 뒤 별도부문으로 독립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미현기자
  • 자민당 최대파벌 하시모토파 ‘위기’

    일본 집권 자민당의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橋本)파가 위기를 맞고 있다. 파벌 내 실력자인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 의원이 각종 이권에 개입한 의혹으로 궁지에 몰려 있는가 하면 회장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 총리는 지난주 심장수술을 받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개혁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의 본산’이라는 이미지로 타격을 받고 있던 터에최근 잇따른 실력자의 침몰로 약체화 일로에 빠진 것이다. 지난 2일 열린 고 가네마루 신(金丸信) 부총리의 7주기에 참석한 노나카 히로무(野中廣務) 전 간사장은 “가네마루,다케시타(다케시다 노보루 전 총리) 선생이 살아계셔서 지금의상황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이날 7주기 모임에는 노나카 전 간사장,아오키 미키오(靑木幹雄) 참의원 간사장 등 현 하시모토파의 실력자 외에 하타쓰토무(羽田牧·민주당) 전 총리,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자유당 당수 등 과거 하시모토 파의 정치인 330명이 참석했다. 하시모토파는 오부치파,다케시타파로 거슬러 올라가는자민당 정권의 중추에 있었던 파벌.그러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다케시타 전 총리의 사망 등으로 파벌의 구심력이 크게 줄어들었다.게다가 지난해 4월 자민당 총재선거에 출마한 하시모토 전 총리가 고이즈미 총리에게 참패한 뒤로는 비주류로 전락했다. 총재 후보를 가장 많이 거느렸던 하시모토파는 총재 후보들이 잇따라 비리에 관련되는 바람에 더욱 더 자민당 내에서힘을 잃어가고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세양 청마루’ 408가구 공급

    세양건설산업은 경기 광주에 자연친화형 아파트 ‘세양청마루’ 408가구를 공급한다.23평형 48가구,32평형 360가구로 꾸며졌다.23평형 분양가는 8950만원,32평형은 1억2950만원이다.단지 앞으로 강변역,잠실역,양재역,교대역과 수원 등을 오가는 버스노선 7개가 있다.분당까지 자동차로 10분 걸린다.성남∼장호원을 잇는 6차선 도로가 2005년에개통될 예정이다.2004년 3월 입주예정.(031)752-0990.
  • 부동산 파일

    ■‘LG이지빌' 492실 새달 분양. LG건설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 있는 주거형 오피스텔 ‘LG이지빌’ 492실을 다음달 분양한다. 지상 13층 규모로 20평형 480실,30평형대 12실로 꾸며졌다. 평당분양가는 524만∼660만원.은행,증권사,방송국 등 주요시설이 밀집해 있어 임대 사업도 할 만하다.주변에 한강시민공원,여의도공원 등 녹지공간이 많다.내년말 입주 예정.(02)783-1555. ■한솔, 분당 오피스텔 352실. 한솔건설이 경기도 분당 수내동 초림역세권에서 오피스텔 352실을 분양한다.18평형 110실,19평형 176실,22평형 33실,24평형 33실.입주는 2004년 5월 예정이다. ‘ㄷ’자형 주방과 에어컨,빌트인 세탁기·냉동고·냉장고,원목마루 등 고급마감재를 채택했다.지하 5∼지상 12층.초림역에서 걸어서 5분 걸린다. 또 지하철 분당선 선릉∼수서구간이 오피스텔 입주시기보다 빠른 2003년 말에 개통될 예정이다.분양가는 평당 390만∼510만원대.계약금 1000만원을 내면 중도금을 전액 무이자로대출받을 수 있다.(02)3470-4151.
  • [세기의 게이트] (2)록히드 뇌물 사건

    [도쿄 황성기특파원] “아,그런가….” 1976년 7월 도쿄지검 특수부 조사실에 체포돼 온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고개를 떨구면서 내뱉은 첫 마디다. “전 총리가 총리 시절 비리로 체포되기는 사상 처음”이라는 담당 검사의 말에 거물 정치인은 이 짤막한 한마디로응대했다.일본 전후 최대의 스캔들인 ‘록히드 사건’의서막이었다. 희대의 록히드 사건은 공교롭게도 ‘워터게이트’로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물러난지 2년 뒤인 1976년 2월 미 상원 외교위원회의 다국적기업 소위의 공청회에서 시작됐다. 미 항공기 제작사인 록히드의 회계담당자가 신형 ‘트라이스타-L1011형’의 판촉을 위해 일본,독일,프랑스,이탈리아등에 총액 1600만달러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관련국이 이 증언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한 것과 동시에도쿄지검 특수부도 경시청,도쿄국세국과 공동으로 수사에들어갔다.일본 검찰은 수사 개시 6개월 만에 다나카 전 총리가 록히드로부터 5억엔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포착했다. 이는 일본을 주무르던 자민당최대 계파 회장인 거물 정치인의 두 손에 수갑을 채우는 것으로 이어졌다. 검찰은 다나카 전 총리가 총리 재직 중이던 1972년 자택에서 일본 항공사인 젠니쿠(全日空)가 록히드 비행기를 선정,구입토록 운수상에게 지시했고 그 성공 보수로 현금 5억엔을 약속받았다는 점을 들어 그를 기소했다.이어 다나카 전 총리가 비서를 시켜 4차례에 걸쳐 5억엔을 록히드측으로부터 건네받았다는 점도 기소장에 적시하는 개가를 올렸다. 당시 검찰총장은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수사 개시’를선언했을 만큼 성역없는 수사는 착착 이뤄졌다.결국 정계에서 다나카 전 총리를 비롯해 현역 정치인 3명,마루베니(丸紅)와 젠니쿠 회장 등 대기업 간부 등 16명이 형사소추를 당했다. 다나카 전 총리는 1,2심에서 징역 4년,추징금 5억엔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수사 착수 6개월 만에 전직 총리 구속이라는 전대미문의 실적을 올린 이 사건의 재판은 무려 19년을 끌었다.1995년 2월에서야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내려져 다나카 전 총리 등 11명에게 유죄가확정됐다.다나카 전 총리는 그러나 상고 중인 93년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일본 검찰은 ‘성역을 모르는 검찰’,‘정치적 중립을 견지하는 검찰’로서 세계적인 명성과 권위를확립하게 됐다.이같은 명성을 얻게 된 일본 검찰은 리크루트 사건(1988년) 등 정경유착의 사건을 파헤치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다나카 전 총리는 사법적 단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영향력은 더욱 커지는 기현상을 보였다.체포 당시 91명이던 자민당 내 다나카 파벌은 10년 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시절에는 140명의 대군단으로 커졌다.뿐만 아니라 재판이 진행 중인 형사피고인이라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파벌 정치의 배후에서 그의 입김에 따라 총리가 결정되는 ‘킹 메이커’ 역할을 지속하는 기묘한 정치적 영향력도 계속됐다. 또 총리를 지낸 정치 실력자의 체포에도 불구하고 록히드가 일본 정계에 뿌린 로비자금이나 로비 내용의 전모를 밝혀내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건일지. ●1976.2.4 미 상원 외교위 다국적기업소위,록히드사의 일 고위관리들에 대한 뇌물 제공 폭로. ●2.24 일 검·경,수사 돌입●4.11 일 공산당 기관지,다나카 전 총리 관련 폭로. ●7.14 다나카,록히드 관계자 만난 사실 시인●7.27 다나카 구속●1983.10.12 1심서 다나카 유죄 판결. ●1993.12.16 다나카 사망●1996.2 유죄 판결 최종 확정. marry01@
  • 정겨운 ‘추억 여행’ 인터넷속으로

    며칠 있으면 설날을 맞는다.어릴 때의 명절 풍경 속에는잊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그 가운데에는 장독대,곳간,처마,마루,큰 솥뚜껑 같은 것들도 있다. 요즘엔 다 만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의식주 세 테마로 인터넷의 추억 풍경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 주). ■아름다운 한복문화 한자리에. ▲털고무신부터 한복까지=아버지를 기다리는 밥상 위에 다소곳이 올라 있던 보자기.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한국자수박물관'(korea.insights.co.kr/korean/pojagi/)에 가보면 소박한 인정이 느껴지는 보자기를 만날 수 있다. 보자기는 여인들의 혼수 품목 중 하나로 이불을 싸는 이불보,예단이나 혼수를 싸는 혼수보,밥상을 덮는 상보 등 헤아릴수 없이 종류가 많다.허동화 관장은 “물건을 포장할 때 복도 함께 들어 간다는 믿음이 담겨져 어느 물건보다 정성이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주변에 이런 보자기처럼 아련한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들은 의외로 많다.털고무신이나 장화,호빵 모자 같은 것들이다.이런 것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인터넷에는 우리가 잊고 있는 과거의 옷과 장신구들을 보여주는 기행 사이트들이 많다.‘21세기 박물관'(www.museum21.org/folk-48.htm)은 과거의 복식 문화를 사이버 갤러리 안에모아 놓았다. 그 가운데 우리 옷의 대표 격인 한복은 인기를 많이 모으고있다.그러나 전통 한복부터 실용 한복까지 관심은 높아졌지만,제대로 한복을 입는다는 것이 힘들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전통인형작가 이승옥(36) 씨의 ‘석란전통인형'(www.ahakorea.co.kr),고종건씨의 홈페이지(myhome.edunet4u.net/~hongil/)가 안성맞춤이다.이들 사이트는 설과 같은 고유명절 속의 아름다운 의복 문화를 둘러볼 수 있는 보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전통 의복과 과거의 향수를 불러 모으는 갖가지 소지품들을 온전히 감상하기도 전에 전자상거래 상품으로 치부되는 것은 아쉽다. ■불량식품 종합세트도 팔아. ▲추억의 음식 여행=학교 난롯불에 구워 먹던 ‘쫀디기',손바닥으로 비벼 하나하나 빼먹었던 ‘아폴로'.추억의 먹거리가되살아나고 있다.코 묻은 동전으로 사먹을 수 있었던 쫄쫄이,호박꿀,맛기차콘,월드컵,씨씨 등 이른바 불량식품들도 다시 돌아왔다. 불량식품 판매 사이트 ‘쫀디기몰'(www.zondigi.com)은 이들식품을 맛있게 먹는 비법(?)을 소개하고 있다.심지어 “건강 해친다고 못 먹게 해 더 감칠맛이 났다.”는 회고담도 쏟아진다.‘엔토크'(entalk.co.kr),‘언더몰'(undermall.co.kr) 등에선 아예 20∼25종의 불량식품 종합세트까지 팔고 있다. 또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으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들을 소개하는 곳도 나왔다.‘오키의 잊혀져 간 것들'(myhome.naver.com/okyjjang)은 지난 30년간의 도시락 변천사를 정리했다.이 사이트에는 소시지,깍두기,멸치조림,콩조림,계란 등도시락 반찬 이야기가 구수하게 배어 있다. 한 네티즌은 “아직도 도시락 반찬통 한 귀퉁이에 담겨있던소시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며 먹거리 추억 여행에나선다.이밖에 ‘1980년대'(b612kh.dive-studio.net)는 네티즌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1980년대 먹거리에 관련된 글만 모아 뒀다. 한편 고유의 먹거리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계속돼 눈길을 끈다.특히 과거의 전통식품을찾는 동호회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대표적인 경우가 ‘청국장닷컴'(chungkookjang.com).최근패스트푸드 음식과 외식 산업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어머니의 손맛을 읊는 일은 또다른 감동을 선사해준다. ■한옥의 모든것 미학으로 승화. ▲“아랫목에서 몸 녹이세요”=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매서운 계절.아랫목 이불 밑으로 언 몸을 넣으면 발 언저리엔 밥 공기 하나가 닿는다.그 따뜻한 밥그릇에 따뜻한 사랑까지 느꼈던 시골집 아랫목은 이제 보일러와 라디에이터에밀려 사라졌다. 하지만 요사이 전통적인 주거 환경을 재조명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 아랫목도 덩달아 떴다.남대문에서 전남 송광사 미륵전까지 내로라하는 전통 건축물을 보수한 목수 신영훈(67)씨의 ‘사이버 한옥문화원'(www.hanok.org)이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서는 전통 한옥을 3D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하여 절기마다 다른 태양 방향과 각도까지 계산한 전통 처마,한국인의평균신장과 눈 높이를 가늠해서 설계한 방과 지붕 등 한옥의 모든 것을 미학으로 격상시킨다. 한편 황토집,귀틀집 등 나무와 흙과 같이 친환경적인 전통가옥은 신용만 씨의 사이트(home.hanmir.com/~wamo/)에서,전통 사찰은 ‘아즈의 홈페이지'(azcul.zotta.net)에서 만나볼수 있다. 이들 사이트에선 마당 깊은 집과 장독대 위를 배회하던 고추 잠자리,마루,옛날 부엌과 세간들,재래식 화장실 등 아련한유년의 집 풍경들을 고루고루 선사한다. 그러나 전통 가옥에 관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한옥에서 거주하는 인구는 줄고 있다.서울시(hanok.seoul.go.kr)가 벌이는 한옥 지원 사업은 잘 알려지지도 않은 데다 실적도저조한 편이다. 마지막 양반 마을인 서울시 북촌의 전통 가옥은 15년전에 비하면 그 절반인 850여동만 남았다.우리가 가슴으로 느꼈던아랫목의 온기는 정녕 어디에서 느낄 수 있을까.고향의 아랫목은 그대로인지 귀경하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허원 전효순 유영규 kdaily.com기자 whoami@
  • 아파트 소음·진동기준 강화

    올 하반기부터 아파트건축시 층간 바닥두께가 아이들이뛰는 소리를 차단할 수 있을 정도인 150㎜ 이상이 돼야 하는 등 공동주택 내 층간 소음·진동을 줄이기 위한 기준이 대폭 강화된다. 규제개혁위원회는 23일 공동주택 내 화장실 배수 및 피아노 소리 등 생활소음을 줄이기 위해 공동주택 내 층간·세대간 소음·진동기준의 강화,방음벽의 관리체계 개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소음·진동규제 합리화방안을 심의,의결했다. 현행 ‘주택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공동주택 층간 소음방지 기준에 대해 ‘각 층간 충격음을 충분히 차단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불구,건설업자들이 공사비 절감을 위해 층간 바닥 슬래브 두께를 얇게 시공함으로써 부실시공 논란은 물론 입주자간 소음을둘러싼 민원을 야기시켜왔다. 위원회는 층간 소음기준에서 ▲거실에 쪽마루 설치,화장실벽간 소음 완전 차단 등 공동주택 건설시 소음저감 공법을 채택토록 하고 ▲현재 보통 120㎜인 층간 바닥콘크리트 슬래브 두께를 150㎜로 강화하고 차음성능 우수자재를 사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현재 55∼75데시벨(dB)인 외부 소음기준도 강화해 선진국 수준인 50∼70dB로 낮출 예정이며,도로 및 철도변에설치되는 방음판의 표준성능규격을 마련하고 방음벽의 정기적인 점검·보수 등 사후관리를 체계화하기로 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최근들어 소음·진동관련 민원과 피해가 급증,지난 91년부터 2000년까지 총 분쟁조정사례 401건 중 78%인 312건이 소음·진동문제”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관련 법령을 개정할예정이다. 최광숙기자 bori@
  • [굄돌] 세 아들과 책읽기

    이 봄이면 중학생이 되는 경진이는 서너살 때 사탕달라 하듯이 책을 읽어 달라고 졸랐습니다.저는 “야,다음에 읽자” 미루었고 경진이는 책에 대한 맛을 잃어 이제는 TV와 컴퓨터만 쳐다보고 싶어합니다.책읽기 습관을 다시 세우려,몇달전 헌책방에서 깨끗한 전기전 한 질을 구해서 선물해 주었지만 책에는 먼지만 앉아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전집에서 ‘퀴리부인’을 꺼내 읽어 보았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저녁에 산책하며 경진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그날 밤 저 혼자서 일곱 권 더 읽었습니다.다음날 저녁식사 후 경진이는 “아빠 아까 읽은 책 이야기 해주세요.”페스탈로치의 유년시절 이야기에 침을 꼴깍 흘리며 빠져들무렵,“경진아,아빠가 다 기억하지 못하겠으니 책 좀 가져와 봐라.” 아예 함께 읽기 시작했습니다.4학년인 성진이도 2학년인 안진이도 쪼르르 와 함께 앉았습니다.아예 이불과 베개도 가져왔습니다.큰아들은 오른쪽,둘째는 왼쪽,셋째는 무릎에 앉았습니다.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빠르게 읽어 나갔습니다.한 시간이 지나자 셋째는 방으로가고 두 시간이 지나자둘째는 “아빠,마루에 누워서 듣기만 할게”하더니 곧 꿈나라로 갔습니다.시간은 11시.페스탈로치의 묘비명 마지막 줄을 남겨 두고 제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겨우 눈을 떠 읽었습니다.“그의 이름에 영원히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지어다. ” 그날 우리는 책을 통해 18세기 스위스로 신나는 여행을 하였습니다.페스탈로치의 “실물교육,현장교육,공동체 교육(개인의 출세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사랑의 교육”을 보면서,우리 학교교육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함께한 그 시간은 실은 빚갚기입니다.혼자서 살림하랴 돈벌랴 아이들 교육하랴 고생하던 아내 선희에게,아빠에 배고파하던 아이들에게 부채가 얼마나 많은지.속죄를 위해 같이 책읽기를 앞으로도 계속하려 마음먹었습니다. 함께 책읽기,그리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것 돕기는 화풀이이기도 합니다.눈가림과 거짓과 뇌물에 익숙해져 아이들까지도 조작적 영상과 광고로 꼬드기는 어른들에 대해.그것은 희망만들기입니다.함께 사는 시민사회를 만들자 소리쳐도 반응들이 없어실망하지만 함께 할 아이들이 있는 한 희망은 있으니까요. ▲유해신 기독교윤리실천운동교육위원장. ■새 필자 양운덕,나해철씨에 이어 유해신(41)남경태(41·역사 저술가)씨 두 분이 1∼2월 두 달간 굄돌 글을 씁니다.
  • [2002 길섶에서] 삶은 달걀

    어릴 적 제상(祭床)에 올라온 삶은 달걀은 언제고 나에게는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할아버지 아버지 작은아버지 다음에 장남인 형님,그리고 남는 것이 있어도 막무가내인 동생에게 양보할 수밖에.톱날 모양으로 가운데를 잘라 놓은삶은 달걀,흰자위 테두리 속의 샛노란 노른자위가 어찌나맛있어 보였던지…. 그 때 억울했던 기억이 작용한 탓일까.성인이 돼서도 도시락을 열면 맨 먼저 삶은 달걀에 젖가락이 가고,그것도 모자라 옆 사람 것까지 집어다 먹는 버릇이 생겼는데,나의 이점잖지 못한 버릇은 이정록 시인의 ‘달맞이 꽃’이 고쳐주었다. “마루에 걸터 앉아 알 껍질을 벗긴다.노른자가 한 가운데있질 않다. 삶기 전까지 끊임 없이 꿈틀거린 까닭이다.물이끓어 오르자 껍질 가까이로 몸을 밀어 붙인 보이지 않는 발가락과 날갯죽지 그 힘줄과 핏빛 눈망울과 ….” 내가 침을 꼴깍 삼키는 삶은 달걀에서 보이지 않는 발가락과 날갯죽지의 발버둥을 보는 시인의 눈이 부럽다. 김재성 논설위원
  • 대한매일 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 할아버지의 오동나무-김은수

    할아버지의 슬레이트 집은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있었다.금모래가 질펀한 강변을 따라 녹푸른 물이 쉬지 않고 흐르는 강에서는 늘 잔잔한 바람이 불어왔다. 헌 장판을 씌워 만든 평상에서 강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집 안팎으로 빼곡이 들어찬 어린 오동나무들을 손질하는 것이 할아버지의 낙인 것만 같았다.뒷산 꼭대기엔 장송들이 우람하게 서 있고 주위는 온통 솔 향이 넘실대건만 할아버지는 오동나무를 심어 기르면서 집 둘레에 있던 소나무를 모조리 베어 버리셨다. “소낭구는 햇빛 욕심이 많아서 안돼.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린 묘목들이 제대로 자랄 수가 없어.”사실 오동나무가 우뚝 자라려면 창이가 할아버지의 큰아드님만큼 나이를 먹어야 할까? 창이는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어렴풋하게 시간을 재고 있었다.하지만 할아버지는 지극정성으로 오동나무를 돌보셨다.그런 까닭에 줄기마다 통통하니 물살이 오르고 오동잎은 사뭇 푸르렀다. 촉촉한 바람이 할아버지의 흰 머리칼을 헝클고 지나갔다. “할아부지,우리 공기놀이하자.”창이는 점을 치려고 두 손을 비틀어 모아 눈가에 갖다 대었다. “가새,바위,보재기.”할아버지가 나무 껍질 같은 손을 천천히 내민다. “히히...내가 먼저여.”할아버지는 히죽 히죽 웃으며 조약돌을 풀어 던졌다. 창이는 할아버지와 공기놀이를 할 때면 여간 신이 나질 않았다.할아버지가 너무 늙으셔서 오래 못하는 섭섭함이 따르긴하지만.그럴 때면 창이는 더 하자고 조르지도 않았다.할아버지는 한 번 뱉은 말은 두말이 필요 없는 고집쟁이니까. 할아버지에게 야속한 마음이 먹어질 땐 창이는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고집쟁이 할아방구 같으니라구.”언제인가 뒤뜰 오동나무 응달엔 하얀 꽃이 피어났다.가냘픈줄기 마저 백짓장처럼 하얀 그 꽃은 언제나 고개를 땅으로숙이고 있었다.꽃잎에 이슬이라도 맺히면 창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낙엽들이 흩어져 쌓인 곳에,가을 날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보낸 그 슬픔이 남모르게 하얀 수정초로 피어난 것만 같았다.오두마니 그 곳에 앉아 하얀 꽃을 보고 있노라면 창이는 자꾸만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그래서 마당으로 뛰쳐나와 한없이 강을 바라보았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늘 한결 같았다.샛바람이든 하늬바람이 불든 강물은 새처럼 활짝 펼쳐 올린 날개 선으로 상 하류를 엇갈려 흐르고 있었다. “시간은 유수 같거늘….윗물과 아랫물이 구분이 없으니…. 예전과 지금이 함께 있는 듯하구나.”할아버지가 혼자소리로 하던 어려운 말이 어슴푸레 강바람에 섞여 불어왔다. 할아버지는 아득한 시절을 꿈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는 을씨년스러이 굳게 닫힌 작은 방으로들어가셨다.창이는 감히 가까이도 못 가보고 방안에서 새나오는 가야금 소리를 훔쳐 들어야 했다.할아버지의 가야금 소리는 늘 생가지 같은 다리를 길게 모은 두루미가 날개 짓도못해보곤 사라지듯 뚝 그쳤다.소리는 그렇게 끝났는데 할아버지는 방 안에서 감감 나오지를 않으셨다. ‘어두운 방안에서 할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계신 거지?’어느 날 창이는 그렇게 궁금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살금살금 다가가 문 창호지에 귀를 대고 들었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방에서 잠이 드셨나?’창이는 검지에 침을 묻혀 창호지 위를 살살 문질렀다.콩알만하게 구멍이 뚫리자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거무룩한 방 안에서 할아버지는 가야금을 끌어안고 고개를숙이고 계셨다.어두움을 삼키는 듯 할아버지의 야윈 어깨는가늘게 떨었다.할아버지도 뒤뜰에 핀 하얀 꽃 같은 아픔을지니고 사시는 가 보았다. 창이는 서럽게 핀 수정초를 쳐다보다간 냉큼 회 벽을 보고돌아앉았다. 돌 틈에서 까만 돌을 주워 들고 창이는 회 벽에 아기 새를그렸다.언제인가 눈 먼 아기 새처럼 울고 있을 때 처음 보는 할아버지는 창이를 따듯한 품에 보듬어 주셨다.그렇게 안긴 인연으로 할아버지는 창이를 양자로 들이시고 큰아드님의집에서 나와,수십 년 전에 살던 시골에서 창이와 함께 지내는 터였다.창이는 아기 새 옆에 키 작은 오동나무를 그리고그 다음,가야금을 드리운 할아버지를 그렸다.얼핏 보면 동그라미와 작대기가 얽혀 있는 낙서 같지만 창이는 제 마음을담뿍 담아냈다. 신작로까지 내려가는 샛길 귀퉁이는 창이네 마당과 이어져있었다.샛길 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 그늘에서 쉬었다 오는길인지 중노인 한 분이 버들잎새를 입 끝에 물고 마당을 기웃거렸다. “계슈우?”중노인에게서 날아온 버들잎이 뱅그르르 돌다간 댓돌,할아버지 신발 위에 살포시 앉았다.할아버지는 방문을 활짝 열고내다보았다. “아이구 이 사람아...”중노인은 할아버지를 보더니 입 언저리에 곰살궂은 웃음을걸고 두 팔을 번쩍 치켜올렸다.그리곤 단풍잎같이 손바닥을펼치곤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처럼 사뿐사뿐 춤을 추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도 중노인의 춤 장단에 맞추어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며 버선발로 걸어나오셨다. “기별도 없이 우짠 일이여어?”할아버지는 노랫가락을 붙여 물으셨다. “부평초 같은 이내몸 바람 따라 와았소.”“그려.그려.잘 왔네.”안부를 노래로 물으며 할아버지와 중노인은 얼싸 안고 춤사위를 벌렸다. 창이는 뒤뜰에서 쪼르르 달려 나와 희한한 광경에 입을 벌리고 웃었다. “창이야.어여 절 드려라.할아버지 친동생이나 진배없어.”창이는 중노인을 향해 땅바닥에 털썩 앉듯 서투르게 절을 했다. “네가 바로 갸 구나.”할아버지는 윗도리 속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창이에게 내미셨다. “얼른 아래께에 내려가서 소주 두어 병만 사오너라.”그러자 중노인이 배죽배죽 웃으며 안 저고리에서 술병을 꺼내 들고 찰랑찰랑 흔들어 보였다. “으이구….도깨비 같은 눔.”할아버지의 술판은 점점 여물어만 갔다.한바탕 술판이 무르익지니 강 저편에는 노을이 풀리고 있었다. “성님,가얏고를 다시 만들어보오.”할아버지는 맥없는 한숨을 뚝 떨구었다. “예끼….가당치도 않지.그게 언제 적 일인데….”“성님이 가얏고를 좀 잘 지었소? 형수님이 그렇게 가시지만 않았어도….”고개를 젓는 중노인의 이마엔 금방 움푹한 주름이 패였다. 할아버지는 엷은 노을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창이는 오동나무까지 휘휘 울리다 그쳤던 할아버지의 가야금 소리를 떠올렸다. 그 옛날 할아버지는 이 곳 강가에서 가야금을 만들며 사셨다고 한다.할아버지의 소원은 영영 시들지 않는 소리 꽃을 피우는 가야금을 만드는 거였다.할머니 또한 가야금 타는 솜씨가 빼어나 두 분은 가난했지만참 행복하게 사셨다고 한다. 하지만 지독한 가난으로 할머니가 세상을 뜨신 이래 할아버지는 두 아드님을 데리고 도시로 나가셨다고 했다.그 후에도 할아버지는 이곳으로 돌아올 날만을 꿈꾸며 사셨다고 했다. “다시 가얏고를 지을 수만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허나 이젠 늦었네.가슴은 그대로라고 친들 손이 너무 굳어먹어서…쯔쯔.”“그래도 그 솜씨가 어디 갔겠소? 다시 만들어 보오.나두 성님이 만든 가얏고 소리가 그리워서 그러오.”중노인은 할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가얏고 임자는 제가 다리를 놓아 드리지요.”할아버지는 눈을 감고“꿈이라도 꾸어봄세….”그러더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머뭇머뭇 말을 이었다. “여보게,실은 말일세.내가 그 분을 만난 적이 있다네.”“누구요?”할아버지는 중노인에 귓속말을 했다.그러자 중노인이 눈을크게 떴다. “우륵님을?”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에이….성님도….연세가 드니깐 별 농을 다 치네.허허허….”중노인은 할아버지를 힐끔 흘겨주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어느 초겨울,찬바람이 문밖에서 잠을 깨우는 이슥한 새벽이었다. 창호지에 뿌리는 달빛처럼 아득하게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창이는 잠결에,씨익 미소짓다간 눈을 떴다. 할아버지가 두루마기를 두르고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게 보였다. 창이는 이상한 생각에 조용히 일어나 할아버지를 뒤따라 나갔다.여느 때와는 다른 걸음걸이로 할아버지는 마당을 가로질러 샛길로 성큼성큼 사라졌다.창이도 얼른 샛길 쪽으로 달려갔다.할아버지는 어느새 산비탈로 옷자락을 날리며 오르고 있었다.바람에 날아가 듯한 뒷모습이었다. “할아버지.할아버지.”아무리 불러도 할아버지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꼬부랑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찬바람이 낙엽을 휘날리고 발목은 가시가 할퀴는데 얼마나쫓아 왔을까? 창이는 언제인가 할아버지가 들려준 산도깨비가 떠올라 할아버지를 죽자고 따라 올라갔다.고개 하나를 넘자 장다리 장송들이 하늘을 우러르다 잠이 든 까뭇한 벼랑이 나왔다.거기를 벗어나니 강바람이 불어왔다. 쏴아…. 달빛은 밝기만 한데 할아버지는 큰 바위로 올라가 겨울,강바람을 온전히 맞고 서 계셨다.할아버지의 머리칼과 두루마기자락이 마구 휘날렸다.그 때,창이가 꿈결에서 들었던 가야금 소리가 은은히 스쳐갔다. 할아버지는 바위에서 넙죽 절을 하였다.그리고 강을 바라보았다.그러자 바위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가야금의 소리 꽃이 하늘로 강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동녘이 밝아왔다.창이는 할아버지가 되돌아간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해 걸었다.내내 얼떨떨하였다. 마당에 들어서니 벌써 할아버지는 두루마기를 벗고 키 작은오동나무 숲을 돌아보고 계셨다.짚 옷이 입혀진 어린 나무줄기 마다 할아버지는 따듯하게 어루만졌다. “새벽부터 어딜 갔다 오는 겨?”할아버지는 천연덕스레 물으셨다.할아버지의 입김이 소로로오동나무 사이로 말려 들어갔다. “똥 누러.”차마 할아버지를 뒤쫓아 갔다오는 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창이를 꼭 끌어안으셨다. “내게 가장 큰 바람은 우리 창이가 우람한 오동나무처럼 잘 자라는 거여.”할아버지는 유유히 남한강을 바라보고 계셨다. 창이는 회 벽에 여우비가 내리면강 모래밭에 드리우곤 하던 무지개를 더 그려 넣었다.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강물의 대화-정다일(1)

    개자리를 찾아가는 밤길은 온통 어둠뿐이다.먹빛을 겹쳐바르고 곧 쏟아져 내릴 듯 낮게 가라앉은 하늘,그 사이로우쑥우쑥 솟은 산줄기들이 험상궂은 모습을 하고 좁은 산길을 에워싸고 있다.길로 뿌려지는 차 불빛이 어둠을 이리저리 헤집어 보다가 이내 끊어지고 만다.몇 걸음 달려가면이내 길은 먹빛의 산자락 속으로 사라졌다. 실로 오랜만에나는 어두운 세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백미러는 무엇 하나 반사해내지 못했다.어둠만을 담아내는 검은 거울.간혹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어느 막다른 골짜기로 들어가고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하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어둠 속에 20여 년 세월 저쪽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있다. 역시 밤길에 그곳을 찾아가는 것은 잘한 일이다.하지만 그토록 철저하게 잊으려 했던 그곳을 찾아가 무엇을 할 것인가,생각해 보면 막막할 뿐이었다.막막하기로는 여행이 될수 없는 이 번 여정 내내 그랬다.그저 발길 닿는 대로 흐르다,한번쯤은 길 위에 선 나에게 나의 길을 묻고 싶었다. 서해안에서 시작된 여정은 남해안을지나 동해안으로 이어졌다. 포항에서부터 바닷물에 철썩이며 이어지는 7번 국도에 올라섰을 때도 나는 이번 여정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여행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실감되지 않았다.서울을 떠난 지 9일이 지나고 있었다.하루가 남았다.아내는 미련 없이 이 땅을 떠날 수 있다고 말했다.여기서 무엇을 더 기대할 수 있겠어요.통일전망대까지 올라갔다가 진부령을 넘어서울로 돌아가면 아내와 약속한 열흘 안에 집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이튿날 차를 가지러 온 처제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를 타면 아내의 말대로 만사가 순조로울 것이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삼척항 뒤편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서는데,주머니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부르르 떤다. 아내였다. 어디예요? 삼척? 당신,하루밖에 안 남았다는 거 알고 있죠. 내일 밤 12시까지는 도착해야 되는 거 잊지 말아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당신, 괜히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말아요.우리가 당신을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것을 이해해줬으면 해요. 아내가 집어낸 엉뚱한 곳은 마하의 개자리다.아내는 우리라고 말했다.나나도 더 이상 아빠를 기다리지 않아요,아내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내는 항상 우리와 당신으로 나누었다. 나는 식당 문을 열다말고 되돌아선다.차문을 열자 억눌러두었던 멀미가 울컥 올라온다.길에 서서 바닷바람을 마셔본다.겨울바람에 언 비린내가 묻어있다.속이 다시 출렁인다.7번 국도를 타면 통일전망대까지 바다에 젖으며 가야한다.바닷물처럼 출렁여 흔들리며 갈 자신이 없었다.나는삼척에서 7번 국도를 버렸다. 42번 국도를 타고 백복령을 넘었다. 정선 여량에서 잠시길을 멈추었다.오래 전 나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 왔었다. 송천과 골지천이 어우러진다는 아우라지.우리는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자고 했다. 강변의 민박집에서 나는 아내에게 개자리에서의 내 어린 시절과 홀로 강물에 사무쳐 울던어머니를 이야기했다.지루한 아내는 잠을 청하며 말했다. 피곤해, 옛날은 옛날이지 뭐.나는 밤새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뒤척였다.나는 잠든 아내의 얼굴을 보며,우리는어우러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애써 지우며 새벽을 맞았다. 아우라지 강물은 그 때와 변함 없이 흐르고 있었다.아내와 나의 두 물줄기는 하나가 되어 서로 뒤섞이며흘러보지 못했다.나는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내 기억들을 모두 털어 버리듯 마하까지 한달음에달려왔다. 마하까지 이어지던 포장도로가 끊어졌다.이제부터 동강까지는 개울을 따라 자갈밭 위로 덜컹거리며 가야한다. 옛날 미탄 양조장에서 막걸리 배달차가 드나들던 길이다. 하얀 고무 막걸리 통은 창리천과 동강의 합수머리인진탄나루에서 배에 실려 강 건너 마을로 배달됐다.진탄나루 뾰족바위로 올라서자 상류에서 바람이 밀려온다.차가운강 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대며 하류 쪽으로 휩쓸려간다.상류 쪽 강가로는 아까부터 반딧불이 만한 불빛 하나가 기우뚱거리며 강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그러고 보니진탄나루에서 문희마을 쪽으로 희미한 비포장도로가 나 있다. 예전엔 사람 하나 다닐만한 토끼길이 고작이었다. 내심 나는 이곳까지 오면서 강을 만나면 이내 돌아서게될 것이라 짐작했다.이쯤에서 길을 접고 뒤돌아서면 늘가슴 한켠에서 펄럭이던 그곳에 대한 회오리도 멎으리라 여겼다. 그리고 개자리에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지도 모를일이었다.하지만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작은 불빛이 위안이 된다.상류 저 멀리로 기우뚱대며 가물거리던 불빛이 산모롱이를 돌았고,불빛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문득 강물에 깃드는 불빛의 여운.어둠 속의 손짓처럼 희미하다. 길은 얼어 있었다.바퀴 밑에서 얼음이 버적버적 깨지는소리가 들려온다.나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 황새여울의 자갈밭을 지난다.바퀴 밑에선 쟈그랑쟈그랑 잔자갈 부딪치는소리가 요란하다.황새여울을 지나자 협곡 사이의 무당소가언뜻언뜻 드러난다.길에 선다는 것은 매순간 어디로 갈 것인지를,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갈등의 시간이다.회사에서 밀려나 명예퇴직을 할 때도,아내에 등 떠밀려 이민서류를 앞에 놓았을 때도,이것도 그저 일상이려니했다. 갈등의 시간 앞에 온전히 앉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에몸이 부르르 떨린다. 불빛에 놀라 깨어난 어둠들이 뭉텅뭉텅 잘려 차창을 스치며 뒤로 밀려난다.갑자기 차가 헛바퀴질을 해대며 소리를지른다.어둠 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백운산 자락이 움찔움찔 놀란다.무당소 앞 자갈밭에 빠져 얼마쯤이나왕왕거리며 헛바퀴질을 해댔던가.랜턴 불빛이 둔덕에서 어둠을 휘휘 내저으며 다가오고 있다. “급할수록 조바심을 놓아야지요.” 남자가 파헤쳐진 모래밭에 마른 쑥대를 깐다.조용한 말소리와는 달리 익숙한 손놀림을 하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차에서 내린다.발을 디디자 살짝 언 모래밭 밑으로 물컹,하는 감촉이 전해온다.무당소 앞까지 가보겠다고 드문드문자갈이 박힌 모래밭으로 차를 들이민 게 잘못이었다.나는하늘을 올려다보며 북극성을 찾아본다.북극성은 바다나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과 세상의 지루하고 번잡한 길을 떠도는 자들이 길을 묻는 별이다.옆자리에 펼쳐놓은 책에는 밑줄이 그어져 있다.남자가 그 글귀를 읽었을까? 헛바퀴질을몇 번 해대던 차는 쑥대를 짓이기며 자갈밭을 나온다. 남자가 차안에서 손짓을 한다.남자의 옆자리에 앉은 나는 자연스레 그의 손님이 될 준비를 마친 느낌이다. “여긴막다른 길입니다. 여기서 하룻밤 묵어 가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강가 둔덕의 밭 사이로 길이 나 있다.밭은 묵정밭처럼 쑥대가 우거졌고,두어 채의 집들은 빈집인 듯 불빛이 훑고 지나가기가 무섭게 깜깜해진다. “겨울이면 민박을 치던 이들도 다 떠나고 개자리는 빈동네가 됩니다.” 나는 그가 개자리라고 말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개자리,하고 중얼거린다.남자가 흘끔 나를 쳐다본다. 빈집에서 튀어 나온 들고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질러 산 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이 흐릿하다.습기가 어린 차창이 뿌옇다. 개자리는 이 강줄기에서 가장 살기 좋은 텃자리다.내가 이곳을떠나겠다고 말할 때마다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어머니는 가장 따뜻한 집에서 한 세월을 보냈다.한겨울에도 개가 해바라기를 하며 팔자 좋게 엎드려 낮잠을 즐긴다는 개자리에서. “저도 민박이랍시고 명함을 걸어두었더니,사람들이 저더러 개자리민박집 문씨라 부르더군요.” 개자리집은 옛날 그대로였다.호박돌로 쌓아올린 키 높은봉당이며 울퉁불퉁한 마루며 내가 쓰던 문간방의 아궁이며.마당 한켠에 서 있던 대추나무 자리에 민박 손님을 받기위해 가건물을 들어앉힌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다.어머니와살던 옛날 어느 시간처럼 문간방과 안방 아궁이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저 불 속에 사라져버린 나를 던져버릴 수 있다면….내가 짜왔던 삶의 무늬 위에 엎질러진얼룩들을 골라낼 수 있을까.겨울밤 어머니와 화롯가에 앉아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감자 껍질을 까고,감자 한 개를다 먹을 때마다 손바닥을 탁탁 마주치며 미련을 털어 내던어린 나에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낮은 문설주에 머리를 숙이며 들어간 안방도 그대로다.군불에 익을 대로 익어 누렇게 변해버린 아랫목 장판도 옛날의 그것처럼 눈에 익었다.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들려왔고,순간 나는 어머니가 밤참을 만드시는가 하는 헛생각에 웃음을 흘린다.벽에 걸린 투박한 괘종시계가 막 열두 시를 치기 시작하자 갑자기 낯설어져 나는 우두커니 서있다. “올창묵이나 차려봤는데,입에 안 맞으면 옥수수막걸리나한 사발 하시지요.” “조금 전에 들어오신 모양이죠?” 나는 진탄나루에서 상류로 올라가던 불빛을 생각하며 묻는다. “그랬습니다.한잔하시고 문간방에서 주무시면 됩니다.” “빈방에도 불을 지펴두는 모양입니다?” “가끔,봉두난발의 어수선한 마음으로 천리 먼길 헤집어오는 손이 있지요.” 살얼음이 동동 뜨는 옥수수막걸리는 새큼하면서도 텁텁한맛이 시원스럽게 퍼진다.그는 숟가락 가득 뜬 올챙이묵을후르륵거리며 맛있게 먹는다.심심해서 엊그제 만들어봤는데,옛날 맛은 아닌데요.후르륵거리는 소리에 잘려나가는그의 말은 쥐어짜면 금세 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처럼 젖어 있다. 여름철 옥수수가 누릿누릿 익어갈 무렵이면 어머니는 올챙이묵을 쑤었다.옥수수 국수인 셈인 올챙이묵을 어머니도올창묵이라 불렀다.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옥수수 알을 따서 맷돌에 곱게 갈았다.이어 고운 체에 밭아서 가라앉힌앙금을 얻을 때면 허리를 펴고 등허리를 투덕이며 강물을하염없이 바라보았다.솥에 넣고 된죽을 쑤느라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을 때까지 강물 바라보기는 그칠 줄 모른다.찬물을 그득하니 받아놓은함지박에 구멍 숭숭 뚫린 묵틀을걸어놓고 나서야 어머니의 쓸쓸한 표정은 조금 가신다.야야,올창묵 먹자.니라두 실컷 먹었음 좋겠구나.느 아부진올창묵이라믄 자다가두 벌떡 일어났다야.찰기가 거의 없는올챙이묵은 찬물에 떨어져 뚝뚝 끊어지며 올챙이가 유영하듯 가닥가닥 흔들렸다.호박나물이며 잘게 썬 김치를 소로얹고 양념간장을 쳐도 내 그릇에서는 올챙이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아버지 생각으로 만드는 어머니의 올챙이묵이 나는 싫었다.올창묵은 야,그저 한 숟갈 가뜩 떠 넣어도어데 우물거릴 새가 있는 줄 아나.후르륵, 후르륵 하민서올창묵을 목구멍에 넘기구 난 다음참에 찾아드는 덤더 무리한 맛을 알어야 올창묵 맛을 제대루다 아는 거여. 니가,언제쯤이믄 이 덤더무리한 맛을 알까. 어머니로부터 개자리집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늘 달 밝은밤이었다.마당 한켠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대추나무에 걸린 달 그늘이 덮은 마루는 어둠침침했다.무릎을세워 턱을 고이면 어린 내 등은 새우처럼 휘었고,이미 할머니처럼 늙어버린 어머니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그런 날이면 처마 밑까지 내려온 산자락은 한여름에도 겨울에나어울릴 법한 바람을 쌩쌩 날려보냈고,그바람에 물푸레나무이파리들이 묵정밭 쑥대처럼 서걱이며 마구 흔들렸다. 그런 밤이면 나는 왠지 모를 무섬증에 떨며 어머니의 이야기가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따사로웠다. “개자리….지낼만하신 가요?” “어디서 꼭 한번은 만났던 분처럼 낯이 익군요.” 가부좌로 앉은 민박집 문씨는 엉뚱한 한마디를 던져놓고는 말이 없다. 그는 몇 번 허허 웃었고,고개를 몇 번 갸웃거린다.나는 그를 전혀 알지 못한다.내가, 이것도 괜한 질문이 되는 모양입니다, 하고 겸연쩍어하자 슬몃 말꼬리를잡는다.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 강물의 대화-정다일(2)

    “지낼만 하다 안 하다 그런 구분을 버렸습니다.그저 내마지막 정처(定處)이려니 하는 거지요.한 십 년이 돼 가나요.처음엔 묵정밭에 흑염소를 치며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이젠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었다하는 게 옳겠지요.그동안 내 대화상대라는 것이 강물이거나 그 물결이거나 그아래 조약돌이거나 그 사이 물고기들이었으니….” 나도 이곳에서 강물과 대화하던 시절이 있었다.어둑어둑산줄기와 물줄기를 덮어먹는 어둠이 밀려드는 저녁이면 나는 강으로 내려갔다.그곳에서 어린 나는 밤새 내 곁을 스치며 흘러가는 강물을,몇날 며칠 강물에 씻겨도 사라지지않는 알 수 없는 그리움을,그리고 쿨럭쿨럭 마른기침에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는 강의 새벽을,그것들에 홀로 사무쳐밤을 새워 울어야 하는 소쩍이의 서러움 따위를 생각했다. 매일 저녁 강에 나가 새롭게 흘러온 강물을 만났다.나는그 저녁 무렵을 좋아했다.저 강 양편의 산줄기 밑자락으로거뭇거뭇 이내가 밀려들고, 강 수면으로 하루살이가 발버둥을 치고,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시간.나는 그 시간이면늘어딘 가로 떠나고 싶어 강에 나가 종이배를 띄우고는 했다. 어떤 날은 내 고무신까지 띄워 보냈기에 어머니가 미탄 장에 가서 사온 신발을 내 발에 억지로 꿰어맞출 때까지나는 맨발이었다.그 무렵 나는 눈치챘다.이내가 곧 어둠이되어 강을 덮어먹는 먹장구름처럼 밀려들 때면 이 강의 저녁을 견디는 일이란 참으로 고단한 짓이라는 것을. 그 날,그러니까 어머니 곁에서 아예 사라지겠다고 처음으로 훌쩍강을 등지던 시간도 저녁쯤이었다. “나는 이 집에서 태어났고,어머니는 이 개자리집이 마지막 거처였습니다.” 술잔을 들다 우뚝 멈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는 개자리집에서 젊은 시절부터 강을 오르내리는뗏꾼들을 상대로 주막을 열었다. 뗏목은 아우라지를 지나조양강을 거쳐 밤이나 낮이나 떠내려왔다. 뗏꾼들은 험한황새여울을 지나가기 위해 무당소에 이르면 강변에 뗏목을 댔고, 개자리주막으로 올라와 술을 청했다.좋은 시절이었다. 강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고, 마루 밑의 개도 낮술에취해 어슬렁거리다 잠들었다 했을 정도로 흥청거렸다. 뗏목의 끝물이었다. 궁궐떼는 물론이고 서까래떼도 보기어려웠던 뗏목 막바지였다.하루종일 지켜봐야 겨우 부동떼나 화목떼 서너 바닥 내려가면 그만이었다. 그동안 나귀에봇짐을 싣고 부지런히 강마을을 찾아 강을 오르내리던 한남정네가 그 어름에 이 짓도 마지막이라며 개자리주막을스쳐갔다. 칠족령을 넘어 상류의 강마을 찾아간다는 그 남정네는 이튿날 믿지 못할 강바람 같은 기약 하나를 떨구고갔다.이번에는 기어코 이 강의 최상류 오대산 우통수까지다녀오겠다고 했다.그리고 한세월 개자리에서 등 붙이고살겠다고 했다.하지만,아무리 먼 길이라 해도 한 달포면우통수를 돌았을 터이고,또 한 달이면 강을 되짚어 내려왔을 시간이 흘렀건만 코끝도 보이지 않았다.남정네는 징용끌려가 감감무소식인 남정네들만큼이나 돌아올 줄 몰랐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2년이 지났다.강에는 날마다 남정네의 소식을 묻는 물푸레나무 나뭇잎배가 띄워졌다. 3년으로 접어들던 어느 보름달 밝은 밤이었다.마루 밑 누렁이가 달을 베어 물고 컹컹 짖어댔다.한 사내가 절퉁절퉁몸을 심하게 기우뚱거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루에 털푸석 주저앉은 사내가 다짜고짜 청했던 물 한 대접을 들이붓고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문지방을 넘었다.사내야 그 남정네가 맞건만 그 좋던 풍채는 다 어디에 떼어먹히고,머리는 쑥대머리요,걸친 것이라곤 어느 집 똥수세미요,다리 한짝은 뒤틀린 싸릿가지 모양으로 배배 꼬였다. 반딧불에 글을 읽어도 좋았을 눈빛이었건만 꾸물꾸물 진물이 배어나는눈자위엔 쉬파리만 닝닝대며 꼬여들었다. 이 강의 시원이우통수가 아닌 검용소란 말이여? 밤낮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렸다.정성이 지극했음인지,남정네는 일년을 반 토막낸그 여름에 훠이훠이 강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회복했다.그런 그가 가을 무청을 엮어 뒤꼍 바람벽에 주렁주렁 시래기를 매달아놓고는 또 길을 나서겠다고 말했다. 고향 청풍에 다녀오겠다는 남정네의 말은 아직 색깔 하나변하지 않았던 무청처럼 시퍼렇게 당찬 것이 믿을 만했다. 내 맘에는 그래도 느이 아부지가 첨부텀 끝까정 애오라지내 남정네였다야.니는 느이 아부지를 그래 빼다박았으면서두 성정은 으째 그리두 다른지….어머니의 이야기는 늘 그사람을 내 아버지로 오금박아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남정네와의 언약을 무당소 깊은 강 밑에 갈무리해두었다.하지만 그뿐이었다.강바람을 타고 오르내린 소식몇 점이 무당소를 회오리쳐대다가는 떠내려갔을 뿐이다. 한 뗏꾼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무당소 앞에서 굿을 하던무당이 굿판에 도취되어 스스로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져버렸다는 무당소.어머니는 밤을 낮 삼아 무당소 기슭에 넋을 놓고 주질러앉았고,속절없이 흘러가는 강물만 하염없었다.강물은 어머니의 돌팔매질로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한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푸념이 지나가고 나면 어머니는 뗏목아라리를 부르며 강을 쓰다듬었고 자신을 위로했다. 눈물로 사귄 정은 오래도록 가지만, 금전으로 사귄 정은잠시 잠깐이라네.우리 맺은 언약이 강물에 흘러갔나니. 구시월 막바지에 서리맞은 국화라.나를 보세요,함께 갑시다. 그믐 초승달이 뜨도록 놀다 가세요.무당소 황새여울에 떼를 띄워놓았네.무당소 개자리집아 술상 차려 놓게나. 내가 흥얼거리던 뗏목아라리를 따라 부르던 그의 눈빛이먹먹해져 있다. “충주댐 아랫마을에 살았던 때가 있었지요. 저녁이면 버릇처럼 충주호에 낚싯대를 담갔습니다.간혹 낚시를 따라온어머니가 이 아라리를 불렀지요.아버지가 부르던 소리라며.호수에 수장된 어머니와 나의 고향이 낚싯바늘을 물어줄리도 없었건만,우리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흘러간 뗏목아라리를 부르곤 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나는 끔찍한 선물을받았습니다.” 그의 낚싯대에 걸려 올라온 것은 뱀장어였다. 그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강에는 뱀장어가 많이 살았다. 하지만 고향남태평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충주호에 갇힌 뱀장어는 사람 팔뚝만큼이나 살이 뒤룩뒤룩 올라 있었다. 그 날, 그는낚싯대를 꺾어버렸다.그 뒤부터 밤이면 지붕 위 허공 어디에선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선 살찐 뱀장어가 뒤척였다. 강에서 살던 뱀장어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무려 3,000㎞나 떨어진,자신이 태어났던 태평양 먼바다로 헤엄쳐 가야한다.뱀장어는 자신의 알이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않도록 하기 위해서 칠흑의 어두운 그믐날에 마지막 사랑을 나누고 최후를 맞이한다.다시 태어난 뱀장어 치어 댓닢뱀장어는 바다 물결에 실려 한반도까지 오며 실뱀장어로바뀌어 봄이면 서해와 남해로 흘러드는 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이것이 뱀장어가 가고 싶은 길이다.하지만 이땅의 강은 이미 뱀장어의 강이 아니다.하구둑이나 수중보가 가로막고 길을 터주지 않는 것이다. 나는 빈 주전자를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인다. 술잔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그가 빈 주전자에 옥수수 막걸리를 가득 채워 들어온다. 오래도록 말없이 천장을바라보던 그가 입을 연다. “이 강물에 어머니를 잃고, 나는 정처 없는 떠돌이가 되었지요. 길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길을 잃는 일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길을 잃을 때 길의 본질을 만나게 됩니다. 나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백척간두의 순간에머무르고자 했습니다.잃어버린 길을 잇기 위해 동강으로들어왔다고 하면 그대의 궁금증이 조금 풀릴는지요.” 그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그 낭떠러지의 허공이 가난하게떠난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여백이 되는지를,그 여백은 정처를 정하면 충만해지는지를.하지만 나는 말로 만들어내지못한다. “내 어린 시절의 강에는 뱀장어보다 열목어(熱目魚)가많았습니다.” 눈에 열이 많아 그 열을 식히기 위해 물이 더 찬 상류로상류로 올라가야만 하는 물고기.어린 내 친구들은 그 물고기를 엿메기라 불렀다.우리는 싸리나무 낚싯대로 고등어만한 열목어를 낚아 올리고는 했다.그 엿메기를 잡는 날은최고의 낚시꾼이 되었다.개울 한가운데 바위 위에 앉아 열목어를 낚아채다 보면 낭창낭창한 싸리나무 낚싯대가 부러지기도 했고,물고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물 속으로 풍덩빠지기도 했다.그래서 물고기를 잡다가 열목어도 잡지 못하고 물에 빠지면 엿메기를 잡았냐며 놀려대기도 했다. 어린 내가 어찌 열목어의 열을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살다보면 세상에는 열을 올려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다는 것을, 그래서 저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야 한다는 것을 어찌알았겠는가. 나는 이 강의 개자리집에 돌아와서야 내 눈에식혀야 할 열이 참으로 많이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의 바짓가랑이에 휩쓸려온 바람에는 저 먼 북태평양 베링해의 냄새가 묻어 있습니다.연어를 만나기 위해 남대천에 가본 적이 있는지요. 10월의 남대천에는 베링해를떠나온 연어가 산란절식(産卵節食)으로 상류로 거슬러 오릅니다. 섬세한 지도를 그릴 줄 아는 그들은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떠올리고,밤하늘의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해낸답니다.그대는 무엇을 나침반 삼아 이곳까지 왔는지,그대는 어느 시절 어느 세월을 휘돌아 여기까지 거슬러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혼잣말처럼 말했다. 어쩌면 내 대답을 듣기 위해 청한 물음이 아닐 수 있다.나는 길을 나서기 전, 나침반으로동서남북을 가늠해보고 지도를 펼쳐 길의 처음과 끝을 짚어보며 준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어디서 휘어져 산모롱이를 돌아나가고 어디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건너야 하는지를 살피지 못했다.길에 서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낯선 길에서 깃들 곳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힘겨운가를,얼마나 서러운가를…. 한강 하류에 사는 동안 나는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을해 저녁이나 밤이면 집으로 돌아왔으며, 일요일이면 밀린빚을 청산하듯 하루종일 잠을 잤으며, 우리 가족은 살강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대로 지낼 만한 사이였다. 그도시에서의 20여 년은 그렇게 짜지도 맵지도 않은 적당한즐거움과 적당한 상실감으로 흘려보낸 시간들이었다.그 시간이 얼마나 밍밍한 시간,아니 세월이었는지를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곳 개자리로부터 나는 철저히 도망치려했으며 깨끗이 잊고 싶어했다. 아내의 부탁을 나는 기꺼이받아들였다. 아내가 딸 나나의 교육을 위해 불현듯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베링해의 물결은 지금이 아니라 이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아내는 5년 전 캐나다로 떠난 처형네를 찾아갈 것이다. 처형네 세탁소에서 한 3년 다림질을 하다 보면 이 땅에서의 기억은 다 증발될 것이다.아내는 나의 옛날을 다 증발시키고 싶어한다.나나를 위해 내일만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잊고 살 수는 없는거야? 아내는 나의 정처를 모른다. 아내는 지금 나에게 연락할 수 없다.이곳은 핸드폰 불통지역이다. “어딜 가나 적응하려 애쓰는 건 정신보다 몸이 먼저지요. 하지만 상처를 만나 먼저 시름에 겨워하는 것은 정신이 아닐는지요.그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것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강물처럼 소리소문 없이 빠져나가는 시간이더군요.” 어머니는 나이 마흔을 넘겨서야 얻은 자식 때문이었는지멍울은 조금씩 가시는 듯했다.뗏목이 사라지고,남정네가사라진 강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산자락 비탈밭을 일구기시작했다.이 일대 밭은 모두 어머니가 화전으로 일구어냈다.밤이면 산비탈에선 파란 도깨비불이 일었다.큰물이 지는 여름이면 무당소에서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밤새 꾸르릉꾸르릉 이무기 우는 소리가 강을 흔들어댔다. 한낮에도 산그늘이 지는 무당소 뼝대에서는 뻐꾸기가 무섭다며 뻐버꾸뻐꾹 울어댔다. 뻐꾸기가 우는 여름이면 어머니는 말했다. 세월처럼 무서븐 게 없다드니 참말이네. 내가 중학교 진학을 위해 이곳을 떠나면서부터 어머니는허물어지기 시작했다.밭은 하나둘 묵정밭으로 변해갔고,개자리집에는 머리 풀어헤친 귀신이 산다는 소문으로 흉흉했다.아랫마을 사람들도 발길을 끊었다.밤이면 승냥이처럼울어대는 어머니의 곡성이 강을 타고 내려가 아랫마을을하얗게 흔들어 깨우곤 했다.나는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더먼 곳으로 떠났고, 어머니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무당소로걸어 들어갔다. “강이 꽝꽝 얼었어요. 누치도 잡고, 보고 싶다던 무당소밑바닥도 실컷 봐요.…,먼저 나갑니다.” 마당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밤새워 술 마신 티가묻어 있지 않다.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다시 이불 속으로묻는다.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아내는 내가 돌아가지않아도 나나의 손을 잡고 예정된 시간에 공항으로 나갈 것이다.나는 이불 속에서 머리를 흔들어본다.머릿속은 끊임없이 윙윙 울리고 있다.겨울 하늘 높이 날아올라 팽팽하게당겨진 연줄이 우는 소리 같다. 어젯밤 그는 말했다.밤새 강이 얼 것이며,날이 새면 누치를 잡으러 가자고.요즘도 1월이면 무당소는 물론이고 1㎞상류까지 얼어붙는다고 했다.이 강줄기를 타고 올라오는누치는 100마리쯤이 한꺼번에 떼를 지어 몰려올 때도 있다.지난 겨울엔 강바닥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누치떼가 올라왔다.겨울이 되면 찬물에 산란하기 위해 상류로올라오는 것이다.얼음썰매를 타고 누치를 찾아 강을 오르내리며 이마에 땀이 배어날 시간이 흘러갈 즘이면 강바닥을 뒤집는 누치떼를 만날 수 있다.도끼와 작살을 움켜쥐고얼음 위를 질주하며 누치떼를 쫓다보면 놈들은 숨을 헐떡이며 꼼짝도 못하고 강바닥에 엎드려 있다.누치는 얼음장아래 찬물에서 쫌만 움직여도 곧바로 뼈 가운데로 얼음이생겨 오래 달릴 수가 없어요.누치가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서 있을 때 도끼로 얼음을 깨고, 작살로 단방에 찔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무엇인가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북진나루. 나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힌다.그는 마당에 없다.저 아래 무당소에서 움직이는 그가 조약돌처럼 작게 보인다. 개자리에 앉은 내 몸도 이제는 보호색을 띠어 강변의 자갈밭을 닮아있지 않던가요.그의 말처럼 그는 개자리에 앉아 조약돌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어젯밤 그가 고향 이야기를 할 때,그도 어쩌면 슬픔하나를 갈무리해두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는 어머니를생각하면 먼저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고 말했다.충주댐이막히면서 청풍의 절반쯤은 물에 잠겼지요.하지만 남한강뱃길이 있던 시절엔 제천의 중심이었습니다.서울에서 올라온 돛단배들은 소금에 절인 바닷물고기며 온갖 물건들을그득그득 싣고 북진나루로 들어왔지요.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봇짐장수였던 우리 아버지는 서울 물건들을 사서 나귀에 싣고 남한강 강마을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그 강물에아버지를 빼앗겨버린 우리 어머니…, 어머니는 돌아가시기며칠 전에야 말했지요. 동강에 한번 가보자.느 아부지 여즉 거서 잘 살고 있는지? 강은 정말 꽝꽝 얼어붙었다.그는 누치를 찾아 상류로 더올라갔는지 보이지 않는다.군데군데 얼음구멍을 낸 흔적이보인다. 얼음은 유리처럼 맑아 무당소의 강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물고기의 비늘이 얼핏 물 밖의 햇살을 받아내며 반짝 물살을 뒤집는다.그 물고기는 어머니의 하얀 버선을 닮았다.그토록 보고싶었던 무당소의 강바닥.하지만 어제의 그 강물은 이미 떠나고,얼음장 밑으로는 오늘 지금의강물이 흐르고 있다. 나는 거울처럼 맑은 강물 위에 내 얼굴을 댔다.어머니의유품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나를 쫓아온 댓돌만한 거울이그랬듯 얼음거울 역시 나를 다 비추지 못한다.하지만 나는알고 있다. 아무리 비춰 보아도 내 안에는 내가 없다는 것을.어린 시절의 내 강물은 이미 다 빠져나가고,내 몸은 메말라 있다는 것을. 나는 몸을 뒤집어 무당소에 눕는다.하늘은 눈이 시리도록푸르다.그곳에서 깨알같던 점 하나가 점점 커지며 검은 불덩이로 변해 무당소로 떨어지고 있었다.내 이마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다.내 몸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간다.곤두박질치던 그것은 무당소 바위벼랑에 다다른 순간,다시 파랗게 얼어붙은 하늘로 솟구친다.교미 중인 검독수리 한 쌍이다.어머니는 무당소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던 그 해 겨울,내게 말했다.언제 청풍 북진나루에 가보거라.느이 아부지 거서 여적 잘 살고 있는지? 나는 비틀걸음으로 상류로 오른다.
  • 대한매일 신춘문예/ ‘정다일’당선소감

    오랜 나날이 흘러갔습니다.아무리 꽉 움켜쥐어도 강물은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습니다.그래서 부끄럽습니다.늘 늦어서야 도착하는 나의 느림. 늘 떠나고 싶었습니다.길을 나서면 길은 참으로 많기도 했고,아득하니 하나도 보이지 않기도 했습니다.들녘을 질주해보기도 했고,바짓가랑이 적시며 강을 건너기도 했습니다.도시를 떠나 산에 들어 마루금을 긋는 산줄기를 타기도 했으며,재넘이바람이 불어오는 재를 넘기도 했습니다.그곳에 닿아나는 진정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아직도 오리무중이라 해야거짓이 없겠지요. 요즘도 나는 낯선 길에서 만난 떠나온 자들의 여정이 흥미롭습니다.사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길을 놓칠 때가많습니다.길의 갈피,사람살이의 갈피를 잘 읽어내지 못한 어두운 길눈 탓이겠지요.이제 길 하나 삐끔 트였으니,또 떠나야지요. 두 분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부끄러운 인사 올리고,무거운어깨 툭 쳐주시며 건넨 회초리 하나 들고 길을 나서겠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제 가슴의 갈피 열어 제 두발로 걸어가 닿을 수있는 참다운 ‘사람의 마을’을 찾아보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도 넣어두겠습니다. 내 어지러운 마음 늘 담아주는 아내여,내 두 빛돌이들아 창리천에 계신 어른들께 인사 여쭙고 먼저 동강 상류로 가보자꾸나. ◆약력. 본명 정희일 1961년 강원도 평창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여행칼럼니스트
  • 英언론 “빈 라덴 80㎢이내 포위”

    오사마 빈 라덴이 과연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을까. 빈 라덴의 탈출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18일 폭스TV에 출연,“빈 라덴이 아직 아프간에숨어있으며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라며 탈출설을 일축했다. 카타르 위성방송 알 자지라는 지난 17일 압둘 살람 자이프 파키스탄 주재 탈레반대사의 말을 인용,“빈 라덴이 네명의 부인 및 자녀들과 함께 아프간을 이미 떠났다”고 보도했다.그러나 자이프 대사는 CNN과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어 18일에는 “빈 라덴이 (탈레반)통제지역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아프간 이슬람통신(AIP)이 전했다. 유누스 카누니 북부동맹 내무장관은 즉각 자이프 대사의주장을 부인했다.카누니 장관은 이날 “빈 라덴은 칸다하르에서 동쪽으로 130㎞ 떨어진 마루프 지역에 숨어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빈 라덴의 거취와 관련된 탈레반의 잇단 언급은 색출작전에 혼선을 주기 위한 유인책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북부동맹이 붙잡은 탈레반 간부들을 심문,빈 라덴이 아프간 은신처에 숨어있다고 결론짓고 연내 색출작전을마무리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영국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빈라덴에 대한 포위망이 아프간 남동부 80㎢로 좁혀졌다”고보도했다. 제프 훈 영국 국방장관도 “빈 라덴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제한됐으며 칸다하르 남동쪽 산악지대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빈 라덴의 탈출설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군사전문가들은 카불에 이어 칸다하르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빈 라덴이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은 “험준한 산악로를통해 국경을 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딕 체니 부통령과 톰 리지 미 조국안보국장은 “빈라덴이 체포되거나 사살되면 대규모 후속 보복테러가 우려된다”고 밝혔다.세번째의 ‘테러경고’인 동시에 빈 라덴을 조만간 찾아낼 수 있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 우즈·듀발 “우승은 美품에”

    세계 골프 최강국을 다투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시즌4번째 대회인 EMC월드컵(총상금 300만달러)이 15일 일본시즈오카의 다이헤이요골프장 고템바코스(파72·7,232야드)에서 개막,4일간의 열전에 들어간다. 국제프로골프투어연맹 주최로 골프 최강국을 가리는 이대회에는 24개국에서 2명씩 48명이 출전,고국의 명예를 걸고 격돌을 벌인다. 지난해 우승팀 미국에서는 지난해와 같이 타이거 우즈-데이비드 듀발이 출전,3연패를 노린다.올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1개씩 챙긴 우즈와 듀발은 세계 랭킹 1위와 3위에 올라 있어 대회 3연패를 낙관하고 있다. 듀발은 일찌감치 일본으로 날아와 일본 투어 대회에서 우승,4,000만엔의 상금까지 챙기며 샷 감각 조율을 마쳤고우즈 역시 중국 방문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일본 현지 적응에 들어갔다. 미국의 적수로는 어니 엘스-레티프 구센이 짝을 이룬 남아프리카공화국 팀이 우선 꼽힌다.US오픈 2차례를 포함해PGA 투어 8승과 유럽 등지에서 24승을 올린 엘스와 올해 US오픈 챔피언 구센은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해 실력과팀워크에서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세르히오 가르시아와 유럽투어 7승에 빛나는 미겔 앙헬히메네스가 팀을 이룬 스페인도 만만치 않고 지난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앙헬 카브레라와 에두아르도 로메로를 내세운 아르헨티나,유럽 투어의 강자인 파드레이그 해링턴과폴 맥긴리가 나선 아일랜드 등도 쉽게 꺾일 팀이 아니다. 이밖에 비제이 싱(피지),마이크 위어(캐나다),피에르 풀케(스웨덴),마이클 캠벨(뉴질랜드) 등도 각각 고국을 대표해 출전했지만 짝을 이룬 고국 동료들의 실력이 떨어져 우승을 노리기에는 다소 벅차다는 평가. 한편 주최국 일본은 PGA 마스터스대회에서 공동4위에 올랐던 이자와 도시미쓰와 PGA 투어 대회 1승에 빛나는 마루야마 시게키가 호흡을 맞출 예정이며 한국은 지역 예선에서 탈락,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곽영완기자
  • [사라지는 것을 찾아] 시골 ‘엿장수’

    ‘찰가락,찰가락’ 엿판이 얹힌 손수레를 끌고 가위질하며 마을마다 돌아다니던 엿장수. 보리밥 한그릇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배고픈 시절,엿장수는 시골 어린이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이었다.동네 입구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집집마다 꼬마들은 부리나케 움직인다.엿장수가 오길 기다리며 모아 놓았던 갖가지 고물을 챙기느라 부산하다. 혹시 빠뜨린 게 없는지,장독대 주변,마루밑,담장밑을 샅샅이 뒤지고 또 뒤진다.돈을 주고 엿을 사먹는 것이 쉽지 않았던 가난했던 시절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엿판을 지게에 얹어 지고다니다 지난 60년대 후반쯤부터 손수레를 끄는 엿장수로 바뀌었다.엿장수가 마을을 찾는 날은딱이 정해져있지 않았다.그러나 이런저런 고물이 적당히 모였다 싶을때쯤이면 반가운 엿가위질 소리가 들렸다.엿장수가 오는 날 없어지는 멀쩡한 흰고무신은 달콤한 엿맛의 유혹에 이끌린 아이가 엿장수에게 몰래 내다주고 엿을 바꿔먹은 것이 틀림없다.그날 밤 아이는 혼이나지만 그때 뿐. 손자·손녀들에게 용돈을 줄 형편이 못되는 할머니들은 머리 빗질을 할때마다 나오는 머리카락을 꼭꼭 모아두었다가엿장수가 오는 날 손자·손녀들에게 내주곤 했다. 엿판 주변에 둘러선 아이들이 “많이 주세요”라고 보채면엿장수는 “엿장수 마음이야”하면서 엿판 위에 끌을 대고가위로 쳐 적지않을 만큼 판때기 엿을 끊어주거나 가래엿을건네주었다. 고물을 주고 빨래비누나 성냥을 교환해가는 어른들도 가위질 소리를 듣고 군침을 삼키는 자녀들을 위해 엿 몇가락도함께 바꿔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종이,빈병,무쇠솥,화로,쟁기보습,구리,비닐부대,시멘트부대,고무신,긴 머리카락,돼지털,염소털 등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은 모두 엿장수들의 수집대상이었다. 고물을 수집하는 엿장수는 80년대를 고비로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시골지역의 생활형편이 고물을 모아 엿과 비누로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나아진데다 고물값도 떨어져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엿장수가 사라진 요즘 시골지역에는 빈병,고철류 등 갖가지 재활용품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고 산과 들에방치되어 환경오염의 한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엿장수에 대한 내력을 알아보려고 고물상 경력 40년의 울산 태화자원 대표 이태화씨(56·한국폐자원재활용수집협의회울산시지부장)를 만났다.이씨는 지난 85년까지 엿장수들을데리고 고물상을 운영했다고 한다.5년전쯤만 해도 울주군 시골마을에서 간혹 엿판을 갖고 다니며 고물을 수집하는 엿장수들이 눈에 띄었으나 지금은 전국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했다. 이씨는 “현재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엿장수 출신도 많다”며 “재활용해 쓸 수 있는 고물 하나라도더 찾아 수집하려 애썼던 엿장수들의 노력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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