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패너티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
◎미 대중문화 유행과 쇠퇴 생생히 그려/‘놀줄 아는 사람들’이 ‘베이비 붐’을 낳기까지/생활유형·행동규범의 변천 10년단위 정리
현대적이고 독자적인 미국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1890년대부터 베이비 붐 시대로 불리는 1950년대까지 미국 대중문화의 변천사를 한 눈에 살필수 있는 인문교양서가 나왔다.미국 작가 찰스 패너티가 지은 ‘문화와 유행상품의 역사’(1·2권,이용웅 옮김).이 책 역시 ‘배꼽티를 입은 문화’‘뜻밖의 이야기’ 등 패너티의 저서들을 독점 출판해온 자작나무에서 펴냈다.
돌이켜 보건대 인류는 그동안 참으로 먼 길을 걸어왔다.처음에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더니(호모 하빌리스),여러 도구를 능숙하게 만들게 되고(호모 파베르),척추를 꼿꼿이 세워 뛰어 다니다가(호모 에렉투스),온갖 지혜를 쥐어짜는 단계를 넘어서서(호모 사피엔스),이제 와서야 ‘놀 줄 아는 사람’ 즉 호모 루덴스로 진화한 것이다.이 책은 바로 이 ‘놀 줄 아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189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1890년대는 미국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은둔적이고 순박한 빅토리아식 생활유형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한 미국식 행동규범과 미국문화가 움트기 시작한 과도기였다.그런 만큼 보통사람들의 가치관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칼 마르크스의 사위이자 열렬한 사회주의 운동가였던 폴 라파르그가 주창한 ‘게으를수 있는 권리’라는 명제에 공감하기 시작했으며 ‘여가’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겨났다.이러한 변화는 갖가지 오락과 유행 등 대중문화가 펼쳐질 무대를 제공했다.삽화가 찰스 다나 깁슨이 미국을 대표할 만한 여인상으로 소개한 ‘해방처녀’ 깁슨 걸(Gibson girl)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이마 위로 높게 빗어 올린 팜파도어식 머리 스타일과 꽉 죈 허리선이 도드라진 깁슨 걸을 모방하기 의해 미국 여성들은 무던히도 애썼다.전국적인 자전거 열풍 또한 빼놓을수 없는 현상이었다.해리 대크리의 ‘데이지 벨’을 비롯,‘더 사이클 맨’‘블루머 행진곡’등 자전거 예찬가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한편 1895년에는 처음으로 베스트셀러 소설이 등장했다.조지 뒤 모리에의 로맨스 소설 ‘트릴비’가 그것이다.이 책은 ‘빌트리’‘드릴비’등 트릴비의 이름을 흉내낸 유사소설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전 미국을 석권했다.
1900년대 미국의 이미지는 ‘빨리 빨리’라는 말로 압축 표현된다.‘시간관리’ 세미나까지 성행했다.그 무렵 미국이 움직이는 속도는 음악용어에 빗댄다면 ‘알레그로 콘 브리오’,곧 생기 넘치고 빠른 템포였다고 할 수 있다.이 시기에는 시어즈,로벅,몽고메리 워드 등 대형 통신판매회사들의 우편주문 시스템이 가동돼 소비사회의 특징인 쇼핑문화가 싹틀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5센트 영화관인 니클로디언(nickelodeon)이 번창했고 데이지 공기총 등 어린이 장남감이 폭발적인 수요를 누렸다.1990년대 말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칠면조 트로트·회색곰 춤 등 애니멀 댄스가 유행했다.이밖에 여성이 소설의 주요 독자로 등장하면서 여성작가가 여성독자를 상대로 여성의 이야기를 쓴 이른바 ‘해피니스 소설(happiness novel)’이 선풍을 일으켰다.
1910년대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은 미국의 국제적 위상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미국의 대중문화를 유럽대륙에 전파시키는 계기를 마련,대중문화도 수지맞는 산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테다 바라라는 요부스타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으며 ‘리바이어던’‘타이태닉’‘퀸 메리’ 등 호화유람선이 등장했고 헨리 포드에 의해 자동차가 대중화됐다.
1920년대 미국에는 급진적인 자기표현과 냉소주의가 팽배했다.특히 머리를 짧게 깎고 가슴을 동여매 남자처럼 하고 돌아다니던 ‘자유처녀’ 플래퍼(flapper)족의 등장은 파격적이었다.마라톤 춤시합,갱들의 전쟁,금주법에 따른 주류 밀매업 등이 시대를 장식했으며,흑인들이 작곡·제작·연기를 맡은 뮤지컬 ‘셔플 얼롱’이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히트하는 등 재즈가 전국을 휩쓸었다.
‘흔들리는’ 1930년대는 라디오와 영화의 황금시대였다.대공황으로 생긴 300만명에 이르는 실업자들이 라디오와 영화에서 위안을 얻었다.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매주 평균 8천500만명이 영화를 보기 위해 25센트의 요금을 선뜻 내놓았다.인생의 달콤한 신비를 찬미하는 지네트 맥도널드의 영화나 ‘피버 맥기와 몰리’ 등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화제였다.또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출간 6개월만에 100만부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한편 1940년대와 1950년대는 각각 나일론과 컬러 텔레비전이 첫 선을 보인 시대로 특기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