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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택2002/‘PK 세몰이’ 휴일 격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1일 부산을 다시 방문,밤 늦게까지 시내곳곳을 돌며 유세를 펼쳤다. 허태열(許泰烈),정형근(鄭亨根),최병렬(崔秉烈) 등 국회의원 20여명을 비롯해 개그맨 심현섭,탤런트 박철·옥소리,가수 설운도 등 연예인들까지 지원사격에 나서 이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이 후보가 지난달 27일에 이어 다시 1박2일 일정으로 부산을 찾은 것은 부산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당내 핵심 당직자들의 조언 때문이다.한 고위당직자는 “후보단일화 시너지 효과로 약 35%까지 올랐던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부산 지지율이 30%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고 전하며 “이 후보가 이같은 여론동향을 들은 뒤 ‘다시 부산에 가야겠다.’고 말해 긴급히 오게 됐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부터 부산 덕천로터리를 시작으로 사상 시외버스터미널-하단오거리-다대농협-부산역 등 12군데를 돌며 연이은 유세전을 펼쳤다. 이 후보는 “부산을 물류·해양산업의 기둥으로 만들고 선물거래소를 조속히 이전시켜 서울도 따라올 수 없는 대도시로 키우겠다.”고 약속하며 ‘노풍’(盧風) 진화에 나섰다.이 후보의 부인 한인옥(韓仁玉)씨도 이날 부산을방문,이 후보와 동선을 달리하며 지지를 당부했다. 특히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김부겸(金富謙) 김영춘(金榮春) 등 젊은 개혁파 의원들도 부산 유세전에 가세,젊은 표 모으기에 나섰다.박찬종(朴燦鍾) 고문은 이날 오후 부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열린 유세에서 젊은층을 겨냥해 “노무현 후보는 두번이나 국회에 불만을 품고 국회의원을 그만두려 했던사람”이라며 “국민적 지지가 떨어질 때 언제든지 대통령을 그만두고 떠날수도 있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날 유세에는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연설회마다 3000여명씩 모여 열기를뜨겁게 했다.그러나 모인 청중들이 주로 40∼50대에 집중돼,젊은 표심을 붙잡으려던 당직자들의 심정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부산 오석영기자 palbati@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주말 대선의 최대 승부처인 부산·경남(PK)지역에 총력을 쏟아부었다.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가 적극적인 공조를 약속하면서 후보단일화 바람인 ‘단풍(單風)’을 최대한 확산시켜 본격적으로 ‘노풍(盧風)’을 일으키겠다는 전략이다.특히 자체 여론조사 결과 이 지역에서 한나라당이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지지율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지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신계륜(申溪輪) 후보비서실장은 “이미 4대6에 이르렀고 5대5도 가능할것”으로 내다봤다. 노 후보는 1일 오전 마산 새벽 어시장 방문을 시작으로 진주 시민마라톤대회에 참석,첫 500여m를 함께 달리며 지지를 호소했다. 앞서 지난달 30일에는 부산대 앞과 서면,부산역 광장,부산국제영화제(PIFF) 광장 등에서 거리유세를 가졌다.이 자리에서 노 후보는 “사자는 새끼들을절벽에 떨어뜨려 살아 돌아온 강한 놈만 키운다.내가 부산에서 여러번 떨어졌는데 살아 돌아왔으니 여러분이 키워줄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지금 부산이 ‘디비진다’(‘뒤집어진다’의 부산사투리).”며 영남 판세 역전을 장담했다. 이 지역 유권자들의 반응도 변하고 있다고 민주당측은 밝혔다.노 후보가가는 곳마다 돼지저금통이 즉석에서 쌓였으며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넣어 흔드는 신종 ‘저금통 응원’도 첫 선을 보였다. 직장인 최모(38)씨는 “민주당 의원들이 여기서 박수받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최영칠(51·괴정동)씨는 “92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때도 지금처럼 분위기가 뜨겁지 않았다.”며 “지금 부산이 바뀌고 있다.”는 말로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50대 이상은 여전히 달갑지 않은 눈치다.부산대 앞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0대)씨는 “노무현이 싫은 것도 아니고,이회창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무조건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나이 든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소개했다. 부산·진주 김재천기자 patrick@
  • 이봉주 ‘골프 금지령’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2·삼성전자)에게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다. 최근 골프를 시작한 이봉주에게 “선수로 활약하는 기간에는 골프와는 담을 쌓으라.”는 오인환 감독의 지시가 떨어진 것. 오 감독이 골프 금지령을 내린 이유는 두 가지.첫째는 이봉주에게 붙여진‘국민 마라토너’와 골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골프가 세계적으로 대중화됐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여전히 귀족 스포츠의 상징으로 인식되고있는 만큼 자칫 서민적인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육상단의 한 관계자는 “이름 앞에 ‘국민’이란 수식어가 붙은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면서 “육상단으로서도 이봉주 선수가 마라톤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골프 스윙으로 인한 근육의 쏠림 현상 때문이다.골프의 특성상 좌우 대칭이 아닌 어느 한쪽의 근육에 힘을 많이 주게 돼 좌우 대칭의근육 발달이 필수적인 마라토너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 단 해외 전지훈련 때 현지에서 여유시간에 골프를 즐기는 정도는인정하기로 했다.이봉주도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이봉주는 지난달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우승,2연패를 달성한 뒤 본격적으로골프에 입문했다.그동안 해외전지훈련 때 간간이 골프클럽을 잡은 이봉주는첫 라운드에서 파 4개를 잡으며 110타로 선전,탁월한 운동신경을 보였다.주위 사람들조차 “역시 이봉주”라며 놀라워했다.이봉주도 “실제 해보니 너무 재미있다.”면서 흥미를 나타냈다.이후 연습장에서 비지땀을 쏟으며 애착을 보였다. 그러나 이봉주는 ‘국민 마라토너’답게 미련없이 클럽을 내려 놓았다. 박준석기자 pjs@
  • [데스크 시각]‘대선 그라운드’와 페어플레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측의 ‘단일화 협상’이 막판 열기를 뿜어내던 지난 20일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페어플레이 선정위원회는 ‘올해의 진정한 스포츠맨십’ 수상자를 발표했다.영예의 주인공은 웨스트보로고교 남자 골프팀과 리딩고교 여자 축구팀. 매사추세츠주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웨스트보로고교 골프팀은 결승 마지막홀에서 스코어 카드를 잘못 적은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우승컵을 스스로 반납했다.우승컵은 2위팀인 워번고교의 몫이 됐지만 웨스트보로고교는 트로피보다 몇 배 값진 명예를 지켰다.리딩고교 여자축구팀 역시 규정과는 다르게 유리한 시드를 배정받자 주최측에 ‘불리한 대진’을 자청해 ‘당당한 패배’를 선택했다. 최선을 다하는 꼴찌의 페어플레이는 이보다 더욱 감동적이다.96애틀랜타올림픽 마라톤 완주자는 모두 111명.오전 7시5분에 시작돼 110번째 선수가 골인한 뒤 무려 1시간30분이 지나서야 아프가니스탄의 아자시르 와시키가 111번째로 메인스타디움에 들어 섰다.시상식까지 모두 끝난 스타디움에는 폐회식 준비요원과 자원봉사자들만이 남아 있었지만 그에게 쏟아진 갈채는 뜨거웠다.그를 위해 임시 결승 테이프를 마련한 자원봉사자들은 “진정한 스포츠맨십”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지난 27일 후보등록과 함께 제16대 대통령선거가 공식 레이스에 들어갔다.분석가들은 31년 만의 ‘양강구도’라며 선거전의 격렬함을 점친다.그래서국민은 불안하다.모든 것을 건 ‘건곤일척’에서는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격전이 할퀴고 간 폐허위에 홀로 선 승자는 그 역시 패자일 뿐이다.1815년 워털루전투의 승장 웰링턴은 18일간의 혈전 끝에 나폴레옹군을누른 뒤 ‘전쟁에서 패배 다음으로 가슴 아픈 것은 승리’라고 토로했다.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과정의 부도덕성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를 웅변해준 셈이다. 이번엔 진짜 멋진 대선을 치러 보자.그동안 직선 8차례,간선 7차례 등 모두 15차례의 대선이 있었지만 게임의 룰이 제대로 지켜진 적은 없다.국회에서편법으로 선출한 초대 대선을 시작으로 탈법과 부정,위법과 관권개입,흑색선전,지역감정 등이 늘 망령처럼 따라 다녔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희망을 갖고 민주주의를 해 보자.누가 당선되면 어떠랴.후보들의 구호를 들어봐도,그들이 내놓은 정책을 봐도 그저 그렇다.과거에 다 들어본 말들이고,성과를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크고 작은 규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히 겨루자.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축하,그리고는 다시 승자가 패자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고,꼴찌에게도따뜻한 눈길을 나눠주는 아름다운 스포츠맨십을 실천해 보자.어떠한 반칙을하더라도 승리만 하면 된다는 생각,승자는 기고만장해 패자 위에 군림하고,꼴찌의 인격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는 원시성은 이젠 멈추자.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승패는 병가지 상사’로 받아 들이는 허심탄회한 자세가 바로 민주주의 요체임을 깨달아야 한다.스포츠가 아름다운 것은 페어플레이가 있기 때문이다.몸과 몸이 부딪치는 격렬함 속에서도 규칙이 지켜지고,스포츠맨십이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에서의 페어플레이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오병남 체육팀장
  • 정남균, 재기의 신발끈 ‘질끈’/새달 후쿠오카마라톤 대비 맹훈련

    한국마라톤의 차세대 주자 정남균(24·삼성전자)이 신발끈을 조여맸다. 다음달 1일 일본에서 열리는 후쿠오카대회를 위해 충남 보령에서의 마무리훈련을 포함 최근 3개월 동안 혹독한 담금질을 했다.이번 기회에 그동안 자신을 따라 다닌 ‘차세대 주자’라는 꼬리표를 떼고 당당하게 한국의 간판마라토너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각오에 차있다. 오인환 감독은 “세계적인 선수들이 많이 출전해 치열한 레이스가 예상된다.”면서 “막판 접전에 대비,스피드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고 말했다.이번 대회에는 시드니올림픽 금·은메달을 목에 건 게자헹 아베라(에티오피아)와 에릭 와이나이나(케냐) 등 내로라하는 철각들이 대거 출전한다.버거운 순위싸움이 예상되지만 정남균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기회다. 한국체대 시절 정남균은 생애 두번째 마라톤 풀코스 도전인 2000동아마라톤에서 2시간11분29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당시 마라톤계는 황영조-이봉주를이을 차세대 스타가 탄생했다며 환영했다. 그러나 세계마라톤의 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그해 10월시드니올림픽에서 2시간22분23초의 저조한 기록으로 45위에 머물렀다.잠재력을 인정받아 ‘스타군단’ 삼성전자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마라톤 수업에 들어갔지만 좀처럼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왼쪽무릎과 골반의 잦은 부상은 더욱 그를 괴롭혔다.때문에 시드니올림픽 이후 2년동안 마라톤 풀코스 도전은 두차례가 전부다.성적도 모두 10위권 밖이었다. 이런 와중에 정남균의 승부욕을 자극시킨 일이 있었다.차세대 주자로 함께주목받은 지영준(21·코오롱)이 10분 벽을 깨며 한발 앞섰 나갔기 때문.지영준은 올해 중앙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9분48초로 3위에 올랐다. 탄자니아 용병 존 나다사야와 함께 출전하는 것도 마음이 놓인다.이번 대회를 위해 3개월간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편안하게 레이스를 펼칠 수 있을것으로 예상된다.정남균은 잘생긴 외모 덕에 여고생 팬들이 많다.발렌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 때면 한아름씩 팬레터와 선물을 받지만 마음은 그리 편치않았다.팬들이 바라는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28일 현지로 떠나는 정남균은 후쿠오카에서 그 짐을 훌훌 털어버리려고 한다. 박준석기자 pjs@
  • [사설] 盧·鄭, 노선도 조율하라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 21 정몽준 후보간 단일화 협상이 어제 전격 타결됨으로써 대선구도가 양자 대결로 급변하게 됐다.노 후보가 여론조사방식에 관한 정 후보측 요구를 전폭 수용했다고 한다.장장 27시간이나 계속된 마라톤 협상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이 의사를 반대로 표시하는 것을 막는,이른바 ‘역선택’ 문제에 걸려 결렬위기까지 맞았던 터다.두 후보간 이해관계의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두 후보는 합의된 대로 어젯밤 TV 토론을 벌여 국민들에게 ‘내가 경쟁력있는 후보’임을 역설했다.이제 정해진 절차와 방식에 따라 여론조사를 실시해 단일 후보를 정하게 될 것이다.여론조사 결과는 TV 토론을 지켜본 민심의 향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그러나 2시간의 토론으로는 두 후보가 앞으로 노선의 차이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를 제대로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단일화 협상 과정도 험난하고 힘들었지만,단일 후보를 정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TV 토론에서도 감지되었듯이 두 후보 모두 ‘내가 후보가 되어야 하는 단일화’ 의지가 확고해 ‘진 쪽이 선대위원장을 맡는다.’는 합의가 있긴 하지만 흔쾌히 승복할지 여부가 여전히 최대 관건이 될 것 같다.노 후보가 수용하긴 했지만,합의된 여론조사 방식을 살펴보면 불복의 구실이 숨어있다.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단일 후보가 확정되면 노·정 두 후보의 정책을 조율해 국민에게 조정된 노선을 공약으로 서둘러 제시해야 한다.‘단일화하지 않으면 승산이 없다.’는 산술적 표계산 말고는 두 후보간 합치점이 없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대북정책을 포함해 기업·복지·교육·노동정책 등 국정의 중요 분야에서 노선차이가 극명해 국민이 납득할 통합된 정책을 대선기간 중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나아가 만일 연정형태에 대한 이면합의가 있다면 이를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표로 심판받는 투명함도 보여주길 기대한다.
  • 대선 D-27/ ‘단일화’ 오늘 최종담판

    민주당과 국민통합21의 대통령후보 단일화 협상이 이틀간 철야로 이어진 마라톤 협상에도 불구,접점을 찾지 못하고 21일 밤 중단됨으로써 결렬위기를 맞고 있다. 양측은 22일 오전 협상단 회담을 재개,최종 담판을 시도할 예정이어서 이 협상이 후보 단일화 성패와 연말 대선구도를 가르는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통합21의 민창기(閔昌基) 협상단장은 이날 밤 10시 협상을 마친 뒤 “저녁 7시쯤 양측이 후보단일화 방안에 합의,합의문 작성에 들어갔으나 민주당측 협상단이 당 선대위에 보고한 뒤 ‘오늘 협상을 중단하고 내일 다시 협의하자.’고 요청,합의안을 매듭짓지 못했다.”고 밝혔다고 정광철(鄭光哲) 수석공보특보가 전했다. 민 단장은 “합의문 내용중 충분히 협의해 결론을 내린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민주당측이 심각하게 이의를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전날 저녁부터 철야로 이어진 협상에서 양측은 노무현(盧武鉉)·정몽준(鄭夢準)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와 관련,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상대하기 쉬운 후보를 의도적으로 지지하는,이른바 ‘역선택’ 가능성을 최소화할 방안을 놓고 막판까지 대립,진통을 거듭했다. 통합21측은 “역선택 방지장치가 도입돼야 한다.”며 이 후보의 지지율이 최근 평균치를 일정수준 밑도는 수치로 나오는 여론조사는 역선택이 작용한 결과로 간주,폐기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합21측이 여론조사 무효화 및 파기 조항을 합의안에 담을 것을 요구해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양측은 또 단순 지지도를 묻는 설문과 이회창 후보에 대한 경쟁력을 묻는 설문을 동시에 물어 지지율 차이가 큰 쪽의 설문항목에서 앞선 후보를 승자(勝者)로 가리는 방안에 합의했으나,두 항목의 가중치에 차이를 두는 문제로 논란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양당 협상단은 22일 협상을 재개,역선택 방지방안과 승자 결정기준에 대한 최종 타결을 시도할 예정이나 향배는 극히 불투명하다. 양당 지도부는 이날 밤 협상내용을 보고받은 뒤 단일화 결렬만큼은 피해야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22일 재개될 협상에서 막판 대타결을시도하기로 했다. 진경호기자 jade@
  • 盧·鄭 단일화 오늘 최종담판/ ‘1박2일 협상’ 소득없이 중단

    ‘몽(夢)의 몽니인가,노(盧)의 노(NO)인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측은 단일화 협상을 계속 했지만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단일화가 무산 위기로 치닫고 있다.양측은 지난 20일 저녁부터 협의에 들어가 21일 밤 10시까지 이틀 동안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그러나 21일 아침 합의 타결 직전,정 후보측에서 민주당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제안을 한 것이 협상의 막판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노 후보는 한때 협상 포기 의사를 표시하는 등 격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양측 협상단은 이날 밤 기약없이 헤어졌지만 22일 아침 협상을 재개하기로 해 실낱 같은 타결 여지는 남겨두었다. ◆단서조항,또 하나의 변수 협상이 무산위기에 처한 것은 정 후보측이 막바지까지 제시한 한 가지 조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본선 경쟁력이 낮은 후보를 지원하는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지지율 평균보다 5% 포인트 이상 낮게 나온 여론조사는 무효화하자는방안이 그것이다.그러나 민주당은 이 조항이 포함되면 여론조사 무효화나 불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당초 합의의 본질을 뒤엎는 것”이라며 수용을 거부했다. ◆몽(夢)의 몽니에 노(盧)는 노(NO)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데는 마지막 단계에서 일이 꼬였기 때문이다.이날 아침 9시30분까지만 해도 합의문 발표는 기정사실이었다.협상단이 발표장에 곧 도착한다는 연락까지 왔었다. 두 후보 중 누가 고개를 저었을까.먼저 고개를 내둔 쪽은 정 후보였다.이날 아침 협상 타결 직전 단서조항을 내걸었다.이에 따라 오후부터 제3의 장소에서 재개된 협상은 더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저녁 8시.이번에는 민주당에서 제동이 걸렸다.정 후보측의 단서조항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민주당 협상단장인 신계륜(申溪輪) 후보비서실장은 정 후보측의 요구에 대해 “내 선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노 후보에게 보고했다.이에 노 후보는 노발대발한 것으로 알려졌다.노 후보는 “무슨 술수가 있는 것 아니냐.”며 한때 협상 포기 의사를 밝혔지만,잠시 후 “저쪽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다 해주든지 해야지 어떻게 하겠느냐.”고 흥분을 가라앉혔다는 후문이다. 민주당 분위기도 긴박하게 돌아갔다.민주당은 저녁 8시30분 선대위 긴급대책회의를 소집,대책을 논의했다.분위기는 전례없이 냉랭했다고 한다. 이상수(李相洙) 총무본부장은 회의가 끝난 뒤 “저쪽 주장이 황당한데 인내심을 가지고 노력하기로 했다.”며 협상이 깨졌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 했다.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내일 다시 협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서둘러 회의장을 떴다. ◆연기,또 연기 합의 타결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은 당초 21일 오전 9시로 예정된 공동발표가 10시→10시30분→11시로 연기되면서 현실로 나타났다.노 후보는 오후 일정을 취소하고 협상 진행에 신경을 곤두세웠다.정 후보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역선택 방지방안에 민주당이 관심이 없다면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다.”며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양측 협상단은 전날 저녁부터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 1025호에서 밤샘 협상을 벌였다.지난 1차 합의에서 내용 유출로 곤욕을 치른 탓인지 보안유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배석자 없이 각 3명씩 6명이 참여했으며 식사도 방에서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아침에는 취재진에게 협상장소가 알려지자 오전 11시쯤 각자 제3의 장소로 옮겨 협상을 계속하는 등 취재진과의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김재천 홍원상 이두걸기자 patrick@
  • 세계박람회-유치결정 보름 앞으로/ “7년간 준비… 꿈★은 이루어진다”

    ■여수 현지 르포 7년 동안 준비해온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 전남 여수시민들은 요즘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초조함을 애써 억누르며 “승산이 있다.”고 했지만 “어려운 싸움”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투표일(12월 3일)을 보름 앞둔 18일.‘예스 여수’라는 낭보를 기다리는 33만 주민들은 뚝 떨어진 수은주보다 더 내려간 체감온도를 느끼며 불안해 했다.다만 여수 들머리인 석창 사거리에서 여수 1청사까지 왕복 8차선을 비롯해 시내 간선도로 가로등 기둥에는 ‘아름다운 여수에서’,‘2010 세계박람회’라는 문구가 돋보이는 깃발만이 한가롭게 나부끼고 있었다. 2청사 앞에서 박람회 후보지인 오동도로 가는 개인택시를 탔다.눈썰미 좋은 기사 최광호(43)씨는 수첩을 뒤적거리는 행색을 보더니 대뜸 “우리가 중국에 밀린다고 말하는 손님이 열에 아홉입디다.결승에서 중국과 붙으면 깨집니다.”며 귀동냥을 자신의 생각처럼 못박았다. 지난해 10월 오동도에 세워진 박람회 홍보관은 이제 오동도의 명소가 됐다.평일인데도 학생과 단체 관람객 100여명으로 붐볐다.밖에 놓인 의자에는 햇살을 받으며 잡담하는 노인들이 정겨웠고 수십m 앞에서는 돔을 잡는 강태공도 있어 청정해역임을 반증했다.오동도내 종합상가 관리인 진상춘(50)씨는 논리적 근거를 들이대며 여수 유치를 자신했다.“체첸사태로 러시아의 동조표가 중국보다는 우리에게 우호적일 것으로 본다.”고 힘줘 말했다.오동도상가 횟집(11곳) 주인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이들에게 돈벼락이 떨어질 박람회를 놓고 적잖은 논쟁이 있었음을 짐작케 했다. 지난 3월 26∼27일 세계박람회사무국 실사단(7명)이 여수를 방문하면서 시내는 온통 박람회 열기로 달아 올랐다.술집의 안주거리도 여수 유치 가능성으로 좁혀졌다.술잔을 부딪칠 때마다 ‘여수 박람회를 위하여’가 울려 퍼졌다.사회주의 국가의 고압적 외교행태를 파고들고 물량공세를 경계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박람회 투표일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수에서 대통령 선거는 물밑에 가라앉았다.기자가 시청 민원실 방문자와 주변 소점포 주인,행인 등 30여명에게구두로 유치 가능성을 물었더니 답변이 얼추 반반으로 엇갈렸다. 공직자나 시청에 줄을 댄 사업자,종교인,주부 등은 여수 유치에 무게를 둔 반면 자영업자나 택시기사,직장인 등은 실패쪽에 섰다.이들의 판단 근거는 신문과 방송의 보도내용이었다. 여수시에서 꽤 이름난 복국집인 시청 인근 여서동 명동회관.점심인데도 쓰린 속을 풀려는 넥타이 부대들이 떠드는 잡담이 귀에 들어왔다.“중국이 하도 큰 나라가 돼 놔서 우리가 불리할 것인디.웬만한 (우리나라)로비가 먹히겠어….” 교동 사랑의 교회 홍성범(49) 목사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박람회를 치름으로써 평화 정착을 앞당긴다는 명분이 있어 우리가 중국을 이긴다.”고 강조했다. 농협에 근무하는 최환표(48)씨는 “기대치가 높은 만큼 좋은 결실이 있을것”,여수시 시민단체연대회의 유중구(53)의장은 “반반으로 본다.그래도 우리가 이길 것이다.”,여천동 새마을협의회장인 정문국(49)씨는 “어렵다.잘 돼야지요.”라고 희망적 견해를 밝혔다.반면 김영미(24·여·문수동)씨는 “된다고는 보지만 확신이 안선다.”,택시기사 최성남(45)씨는 “막판 우리의 뒤집기가 불가능하다.”,오림동 버스터미널 뒷편 모아 기사식당내 택시기사 10여명은 “이번 투표는 국가적 차원에서 하는 거라 중국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한치과 박 원장(40)은 “몇년 째 여수 국동항에 들어오는 고깃배가 절반으로 줄면서 지역경제가 말이 아니다.”며 “시민들이 박람회 유치에 거는 기대치는 상상을 초월해 만일의 경우도 준비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금 여수시내 흥국사 등 사찰과 기독교·천주교 교회,시민사회단체 사무실 등에는 시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이같은 범 시민적인 유치 열기는 지역갈등과 앙금을 씻어내고 주민통합을 이루는 촉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지난 98년 4월 1일 여수시와 여천시·군 등 이른바 3려가 통합 여수시로 출범한 이후 적잖게 지역·계층간 반목이 있었다.아무튼 모처럼 남녀노소,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여수시민 모두가 바라는 소망은 하나다.‘세계박람회는 여수에서’ 여수남기창기자 kcnam@ ■대선후보들도 적극 동참나서 2010세계박람회 유치에 각 당의 대선 후보들도 적극 나섰다.대선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후보간의 경쟁이 뜨거운 가운데 유력 대선 후보들은 정권의 향방에 관계없이 세계박람회를 지지하겠다는 서명에 동참하는 등 유치활동에 적잖은 힘을 보태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는 세계박람회 지지서한에 서명해 달라는 ‘국회 2010 세계박람회 유치특별위원회(위원장 金景梓)’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유치특별위원회는 이들의 서명이 담긴 지지서한을 최근 프랑스 파리의 세계박람회기구(BIE)와 전체 회원국 89개국에 각각 발송됐다. 대선 후보들의 적극적으로 동참으로 최종 개최지 결정 투표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동안 치열한 막판 경쟁을 벌이면서 한국은 12월의 대선결과에 따라 세계박람회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설을 흘려왔다.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득표활동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대선 후보들은 지지서한에서 “2010년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한 한국의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는 뜻을 전한다.”며 “세계박람회 유치 결정은 이미 1997년에 결정돼 관련 연구 및 개발기본계획도 세워져 있으며,현 정부도 98년 집권 이후 적극적으로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이 오는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지만,세계박람회는 계속적인 국가사업으로 행정부의 교체로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확신시켜주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주병철기자 bcjoo@ ■유치대표위원장 추상은 “유치기원 100만 서명부 제출” “박람회 유치를 바라는 시민들의 소망은 간절합니다.절대절명의 과제로 생각합니다.” 98년 8월 7일 유치 열기를 높이기 위해 출범한 ‘2010 세계박람회 여수시유치위원회’의 추상은(秋相殷·사진·53) 대표위원장은 18일 33만 모든 시민들의 화산같은 유치 의지를 들어 박람회 유치 가능성을 대신했다. 유치위원회에는 관내 1000여개 사회단체,사업자 협의회,학계,종교계,여수석유화학산단 협의회 등이 한덩어리가 돼 참여하고 있다.때문에 모든 구성원들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간 경험이 일찌기 없었으며 이같은 폭발력이 결국 지역통합과 발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란 믿음이 굳어지고 있다. 추 위원장은 지난 3월 중순 세계박람회사무국 실사단이 여수를 찾았을 때 개나리꽃이 흐드러지게 핀 도로변에 나와서 열렬하게 환영해준 시민들의 정을 잊지 못하고 있다.“실사단이 내린 여수 비행장에서 행사 후보지인 오동도에 이르는 20여㎞ 도로변에 시민 5만여명이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열광했습니다.코흘리개에서 노인까지 거의가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이를 본 실사단도 환영인파에 깜짝 놀랐습니다.” 또 이 때 유치기원을 담은 100만명 서명부도 실사단에 제출됐다.단시간에 이처럼 엄청난 동의를 서명받을 수 있었던 것은 여수시민 10만명을 포함해 경남 서부권의 호응이 절대적이었다고 한다.추 위원장은 “여수와 이웃인 진주·하동·남해·사천 등 경남 서부권에 있는 시민사회단체와 주민 등 수만명이 내일처럼뛰어줬기에 가능했습니다.” 추진위는 국민적 붐을 조성하기 위해 오동도 열린 음악회,마라톤대회,전국씨름대회 등 갖가지 전국단위 행사를 성공리에 치러 박람회 개최 당위성을 널리 알렸다.국내·외에서 여수를 찾은 각계의 방문객을 맞이해 안내하고 설명하는 일에서부터 간담회·협의회·발대식 등을 뒤에서 도와주고 있다. 추위원장은 “시 유치위원회에 민간 후원금으로 10억원이 넘게 들어왔으며 올림픽·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행사인 박람회를 유치해 지역 발전을 앞당겨보자는 주민들의 염원이 뜨겁다.”고 말했다. 여수 남기창기자 ■세계박람회 홍보관 관광명소로 지난해 10월 27일 오동도에는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바다와 땅의 만남’이란 주제로 지상 1층짜리 세계박람회 홍보관이 문을 열었다. 관광명소가 되면서 18일 현재까지 이곳을 다녀간 국내·외 관람객은 71만 9000여명.일반인 68만 7000여명,사회단체 2만 500여명,외국인 5000여명,주요인사 1800여명이다. 홍보관은 전시장과 영상실·회의실 등으로 나뉘어 있다.전시장내 조감도미니어처는 국가 주제관·전시관과 이벤트관 등 60개의 건물로 짜여졌다.행사장 44만평 중 25만평은 바다를 메운다.흙이 아니라 수심 13m 위에 공기부양식으로 부표를 띄워 건물을 짓는다.또 세계박람회의 역사에서 여수 박람회투자(23조원)와 고용·생산효과(23만명) 등이 정리돼 있다.영상실에서는 박람회 개최 의의와 당위성,자연환경 등을 담은 홍보 영상물이 상영된다. 6개월동안 전시장을 찾을 관람객은 국내·외에서 3000여만명으로 추산된다.방문객 변일섭(64·부산 해운대구 반여2동)씨는 “세계 박람회 현장을 담은 자료 영상물과 체험 및 학습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전남 구례읍에서 장애인협회 소속 38명과 함께 왔다는 손재명(40)씨는 “설명을 듣고 여기 오길 잘했다.”고 웃었다.홍보관 박춘걸(46·6급) 관장은 “박람회가 올림픽이나 월드컵보다 더 큰 국제적 행사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방문객들이 놀라곤 한다.”며 “박람회는 우리나라가 21세기 신해양 국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고인 민족사랑 영원히…”故손기정옹 영결식…대전 현충원 안장

    ‘마라톤 영웅’ 고 손기정옹의 영결식이 17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은 고인의 약력 소개에 이어 장의 위원장을 맡은 이연택 KOC 위원장의 조사,헌화 및 분향,발인 순으로 진행됐다.이 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근대사의 영욕을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오로지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한국 체육발전을 위해 달려오신 선생님의 숭고한 뜻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외손자인 이준승씨가 영정을 앞세운 가운데 마라톤 후배인 황영조(국민체육공단 마라톤 감독)가 체육훈장 청룡장을 들고 뒤를 따랐다.운구는 전기영(유도) 김영호(펜싱) 오교문(양궁) 박시헌(복싱) 안재형(탁구) 차영철(사격) 김경훈(태권도) 박장순(레슬링) 등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맡았다. 영결식을 마친 운구행렬은 올림픽공원 국기광장과 만리동 ‘손기정 기념공원’에서 각각 노제를 올린 뒤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고인의 유해는 유족들의 오열 속에 국가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박준석기자 pjs@
  • “마라톤 큰별 졌다” 조문 줄이어, 故손기정옹 내일 영결식

    15일 타계한 ‘마라톤 영웅' 고 손기정(孫基禎·90)옹의 영결식이 17일 오전 9시 삼성서울병원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KOC)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에서는 황영조(마라톤) 전기영(유도) 김영호(펜싱) 안재형(탁구) 김경훈(태권도)씨 등 역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운구를 맡고,올림픽회관에서 30분간 노제를 올린다.이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과 고인의 모교인 양정고의 옛터이자 ‘손기정 기념공원'이 위치한 만리동을 거쳐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향할 예정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해 한민족의 기상을 세계에 떨친 손 옹은 폐렴 증세가 악화돼 지난 13일 삼성서울병원에 여덟번째 입원해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5일 0시40분 별세했다.유족으로는 재일민단 요코하마지부 사무부장으로 있는 아들 정인씨와 딸 문영(59)씨가 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박지원(朴智元) 비서실장과 조영달(曺永達) 교문수석을 빈소에 보내 조문했으며,정부는 체육훈장 청룡장을 추서했다. ◆손 옹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에는 이른 아침부터문상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이대원(李大遠) 대한육상연맹 회장과 손 옹의 제자인 함기용 육상연맹 부회장,‘몬주익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등이 차례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KOC는 이날 이연택 회장이 장의위원장을 맡고 김집 김성집 김상겸 김운용 김영재 김정행 김종하 박상하 박용성 신도환 엄삼탁 윤덕주 이건희 이철승 장수영 장충식 조상호 최만립씨 등 KOC 및 체육회 고문들을 장의고문으로 추대하는 등 장의위원회를 구성했다. ◆원로 육상인들은 한결같이 “한국 마라톤 발전을 위해 고생을 많이 하신분”이라면서 “후배들은 고인의 뜻을 기려 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영조 감독은 “내가 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좋아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이봉주 선수도 “어릴 때 TV에서 선생님에 대한 프로를 보고는 큰 감명을 받았다.”며 “선생님은 나의 정신적 지주”라고 말했다. 함기용 부회장은 “그 옛날 선생님은 돈암동 자택에서 사재를 털어 우리 같은 어린 선수들을 먹이며 합숙훈련을 시키셨고,돈이 떨어지면 손수 찬조금을 구하러 돌아다니셨다.”며 손 옹의 은혜에 고마워했다. ◆이날 100여개의 조화가 밀려들었지만 장소가 좁아 전·현직 대통령과 대선 후보의 조화만이 빈소에 놓여졌다.좌우로 김대중 대통령,김영삼(金泳三)·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그리고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조화가 진열됐다.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의 조화는 빈소 밖에 놓여졌다.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15일 일제 치하 때 베를린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만 했던 손 옹의 타계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하며,고인을 애도했다. 아사히 신문은 “손 옹은 조국이 일본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내키지도 않는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비극의 영웅이었다.”고 전했다. 박준석 윤창수기자 pjs@
  • 전국체전 MVP 배해진양 “”손기정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최고의 마라토너 다짐했어요””

    “손기정 할아버지 영정 앞에서 최고의 마라토너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5일 폐막된 제83회 제주 전국체육대회에서 여자 하프마라톤 한국최고기록을 세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배해진(23·서울도시개발공사)은 울먹일듯이 수상소감을 밝혔다. 배해진은 이날 타계한 손기정옹의 빈소를 찾아 분향한 뒤 MVP 수상을 위해 제주도로 다시 내려왔다. 하지만 달릴 때의 힘찬 모습이 아니라 풀이 죽어 있었다.긴 생머리에 여드름투성이의 얼굴,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듯했다. 손기정 할아버지와의 특별한 기억 때문에 배해진은 더욱 슬펐다.지난해 8월 강원도 횡계에서 고지대 훈련 때 정신교육차 할아버지가 방문,1박을 했다. 배해진은 “할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자 할아버지는 ‘괜찮다.너희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되면 내 아픈 다리도 낫는다.’고 하셨다.”며 울먹였다.“할아버지는 저만 보면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셨다.”고 떠올렸다. 배해진은 “내년쯤 여자 마라톤 한국최고기록(2시간26분12초)을 깨 할아버지께 보답하겠다.”고 의지를다졌다. 배해진은 지난 12일 열린 여자 하프마라톤에서 강한 바람을 이겨내고 1시간12분13초의 기록으로 골인,종전 한국기록(1시간12분15초)을 2초 앞당겼다. 지난해부터 두각을 나타낸 뒤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배해진은 한국 여자마라톤의 최고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는 유망주로 꼽히고 있다. 대구 금포초등부터 경북체고 때까지 5000m와 1만m를 뛰다가 1998년 서울도시개발공사에 입사하면서 마라톤으로 바꾼 배해진의 당장 목표는 한국최고기록을 다시 쓰는 것.162㎝·45㎏로 크지 않은 체격이지만 각오는 야무지다.강훈련을 해도 체중이 빠지지 않고 선천적인 지구력까지 갖추고 있다. 한편 이날 오후 열린 폐회식에서 각 시·도 선수들은 손기정옹을 기리는 묵념을 올렸다. 제주 이기철기자 chuli@
  • 다시 본 손기정옹 베를린마라톤/ 시상식 일본국가 흐르자 식민지 설움에 눈물이…

    1936년 8월9일 오후 3시 베를린올림픽 주경기장.조선청년 손기정은 가슴에 일장기를 단 채 27개국 56명의 선수 속에 끼어 출발선에 섰다.또 다른 조선청년 남승룡도 손기정 옆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렸다. 그 순간 초조한 손기정의 눈 앞에 여러 모습들이 어른거렸다.그리운 어머니,고국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동무들 …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고 손기정은 대열에 섞여 서서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초반 손기정은 서두르지 않았다.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한걸음 한걸음 페이스를 유지했다. 뒤에서 달리던 손기정이 선두그룹으로 나선 것은 6㎞ 지점.32년 LA올림픽 우승자 카를로스 자바라(아르헨티나)를 선두로 포르투갈의 디아스,영국의 하퍼에 이어 네번째였다.손기정은 다른 선수들을 곁눈질하며 여러 작전을 생각했다.한참을 달리던 손기정은 1차 승부를 걸었다.속력을 서서히 내기 시작한 손기정은 21㎞ 반환점을 앞두고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반환점을 돌자 체력이 떨어지는 조짐을 보였다.머리에서 쏟아내리는 땀을 연신 손으로 닦았지만 숨이 차오르는것이 느껴졌다.손기정은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앞에는 선두 자바라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달리고 있었다.순간 손기정은 자바라를 잡아야겠다는 강한 의욕이 발동했다.마음을 다잡자 혼미한 정신이 맑아졌다. 선두 자바라를 따라잡은 것은 29㎞지점.이 때부터 손기정의 외로운 질주가 시작됐다.오버페이스한 자바라는 결국 32㎞ 지점에서 쓰러졌다.함께 출전한 일본의 기대주 시오아쿠도 경기를 포기한 상태였다.손기정은 낯선 베를린 시가지를 힘차게 뚫고 지나갔다. 마지막 고비인 비스마르크 언덕.갑자기 손기정에게 참을 수 없는 복통이 찾아왔다.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손기정의 눈빛은 오히려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올림픽 참가를 위해 그동안 치러낸 인고의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또 일제 치하에서 참담한 생활을 이어가는 조국의 그리운 얼굴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일본 외교관의 모욕적 말도 손기정에게 오기를 불러일으켰다.베를린에 도착한 뒤 일본대사관 직원이 “어째서 조선인이 두 명씩이나 있는가.”라며 비웃던 생각이 났다. 손기정은 길가에 놓인 찬물을 머리에 부었다.한결 정신이 맑아졌다.이를 악물고 뛰었다.땀으로 흐려진 시야에 불현듯 고향에 있는 어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그리고 어머니 얼굴 너머로 저 멀리 주경기장의 모습이 들어왔다.손기정은 혼신의 힘을 다해 막판 스퍼트를 시작했다.드디어 주경기장.손기정은 10만 관중의 기립박수와 함성 속에 주경기장에 들어섰다.그리고 남은 힘을 다해 트랙을 한바퀴 돈 뒤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2시간29분19초.마의 30분벽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감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반자이(만세)’를 외치는 일본 관중들의 함성이 들렸고,시상대에서는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기 때문.식민지 조선의 청년 손기정은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삼켰다.그리고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 양정고보 환송식에서 친구들이 한 말을 떠올렸다.“일본 대표이기 전에 조선 청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박준석기자 pjs@
  • [사설] 영원한 마라토너 손기정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손기정 옹이 별세했다.그는 형해(形骸)뿐인 우리 민족의 기개에 스무살 청년의 힘찬 숨결을 불어넣은 민족의 ‘남아’였다.그의 타계는,그의 베를린 우승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과 백성들의 일제시대 살아나기와 견디기는 어떠했을 것인가를 묻게 한다.그의 타계는,그의 쾌거가 없었다면 일제 식민지 역사를 살펴보는 모든 대한민국의 후예들은 어디서 선조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을 찾았을 것인가를 되묻게 한다.손기정은 1936년 돌보는 이 없는 거리의 고아만 같던 2400만 조선 백성의 기를 단숨에 살려 주었다.이때 그가 함께 살려낸 우리 민족의 기개는 수수만대 이어질 것이다.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날은 우리 민족에게 영원히 특별한 날일 것이다.이웃 나라에 노예처럼 종속된 무명의 아시아 민족 젊은이가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것은 올림픽 마라톤사에서는 일회성의 사건일 수 있지만,식민 지배하의 조선 민족에게는 결코 일회의 일로 그칠 수 없다.다른 민족,국가와 맞부딪쳐야 하는 민족마다 민족의 기를 살려주는 영웅을 필요로 할 터인데,하물며 이웃 나라에 짓밟힌 나라 없는 민족의 백성에게는 민족적 영웅에 대한 갈구가 유별났을 것이다.비록 지배국의 깃발 아래 달리긴했지만 인간 육체의 잠재력을 가장 초인간적 수준까지 발현하는 마라톤 제패를 통해 손기정은 우리 민족의 잠재력을 확인시켰다.손기정은 우승대에서 지배국 깃발을 벗어버리지 못했지만 이같은 잠재력의 정상적 발현이 외부에 의해 억지되고 억압되고 있음을 세계에 시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고인의 마라톤 우승을 되돌아 보면서,우리는 민족의 기와 기개를 살려주는 민족적 영웅의 위대함을 다시 발견한다.그리고 일제시대가 아닌 지금도 그런 영웅을 필요로 함을 느낀다.고인의 명복을 빈다.
  • ‘마라톤 큰별’ 손기정옹 별세

    한국 마라톤의 큰 별이 졌다. 한국 마라톤의 '전설' 손기정(孫基禎·사진)옹이 15일 0시40분 삼성서울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손옹은 겨레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에 신음하던 지난 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 한민족의 기상을 세계에 떨쳤다. 손옹의 마라톤 제패는 당시 한 일간지가 시상대에 선 그의 가슴에 그려진 일장기를 삭제한 이른바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겨레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1912년 평북 신의주에서 출생한 손옹은 양정고보와 일본 메이지(明治)대 법과를 거치면서 마라톤에 매진했다. 광복 뒤에는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했고 88서울올림픽 때는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화 최종주자로 나서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국민훈장 모란장, 국제육상경기연맹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영안실에 마련됐으며, 유족으로는 딸 문영(59)씨와 재일민단 요코하마지부 사무부장으로 있는 아들 정인(57)씨가 있다. 박준석기자
  • ‘베를린 영웅’ 손기정옹 별세/ 암울했던 시절 겨레에 그 큰 선물 주시고 하늘로 달려간 마라토너

    ‘영원한 마라토너’ 손기정(孫基禎)-.손기정에게 마라톤은 삶 자체였으며,그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였다. 손기정은 한반도가 일제의 압제에 신음하던 식민지 시절 세계를 제패함으로써 겨레의 가슴에 용기를 심었고,광복 뒤에는 서윤복(徐潤福)에서 황영조(黃永祚) 이봉주(李鳳柱)에 이르기까지 한국 마라톤의 영광이 있게 한 뿌리이자 버팀목이 됐다. 그의 마라톤 인생은 고향 신의주에서 시작됐다.1912년 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소학교 시절부터 ‘뜀박질왕’으로 불릴 만큼 달리기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다.집안 형편이 어려워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만,쌀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던 손기정에게 기회가 찾아 온 것은 32년.평북 대표로 출전한 그는 서울∼영등포 단축마라톤에서 2위에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 해 20살의 늦깎이로 양정고보에 입학한 그는 마라톤에 매진했다.주린 배는 끈으로 졸라맸고,살을 에는 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바람이 숭숭 들어가는 삼베로 된 팬츠 속에 신문지를 넣어 추위를견뎠다.땀은 정직했다.그가 35년 베를린올림픽 일본대표 선발전에서 남승룡(南昇龍·2001년 2월 작고)에 이어 2위를 차지하도록 한 것이다. 마침내 운명의 36년 8월9일.손기정은 당시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던 30분 벽을 깨고 2시간29분19초의 세계기록을 세우며 베를린 스타디움에 1위로 골인했다. 남들 같으면 하늘을 날듯 기쁜 순간.하지만 시상대에 선 손기정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머리에는 영광의 월계관이 씌워지고 관중들의 갈채가 끝없이 이어졌지만,기미가요가 울려퍼지는 스타디움에서 일장기가 그려진 셔츠를 입은 그의 마음은 어둡기만 했다.그의 이름은 ‘손기정’이 아닌 ‘기테이 손’이었고,국적도 조선이 아닌 일본이었다.그러나 손기정은 ‘기테이 손’이아닌 ‘손긔졍’이라는 사인을 관중들에게 건넴으로써 자신이 조선 사람임을 세계 만방에 알렸다. 손기정은 40년 일본 메이지(明治)대 법과를 졸업한 뒤 은행원으로 변신했다.그러나 마라톤에 대한 열정은 그를 돈을 세고 주판을 튀기도록 놔두지 않았다. 그는 광복 뒤 남승룡 등과 함께마라톤보급회를 조직해 후진 양성에 나섰다.47년 자신이 기른 서윤복(徐潤福)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시켰고,50년 같은 대회에서 함기용(咸基鎔) 송길윤(宋吉允) 최윤칠(崔崙七)이 1,2,3위를 석권하는 쾌거를 이룩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손기정은 말년에도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조깅을 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했다.그러나 3∼4년 전부터 왼쪽다리 동맥경화증으로 바깥 출입이 어려워졌고,급기야 2000년 12월 병석에 눕고 말았다.그로부터 2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손기정은 눈을 감았다.‘반환점 없는 마라톤’을 출발한 것이다. 생전에 고향 신의주의 압록강 둑을 달리고 싶다던 손기정.그의 소원이 하늘에서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박준석기자 pjs@ ■손기정옹 연보 ◆1912년 8월29일 평북 신의주 출생 ◆1933년 제3회 동아마라톤(세종로∼영등포역 구간) 우승 ◆1935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 일본대표 1차선발전 우승(2시간26분14초),일본 메이지신궁 체육대회 마라톤 우승(2시간26분42초)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2시간29분19초) ◆1937년 양정고보 졸업 ◆1940년 일본 메이지대 법과 졸업 ◆1948년 대한체육회 부회장,런던올림픽 한국대표팀 기수 ◆1963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1979년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1981년 서울올림픽유치위원회 대표단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 최종주자 ◆2000년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고문
  • 서윤복 추모사 “당신은 한국마라톤 버팀목 이셨습니다”

    ■서윤복 추모사 당신은 진정한 한국 마라톤의 든든한 버팀목이셨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난 1947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저 머나먼 미국땅으로 향하기 전 선생님께서는 항상 ‘민족혼’을 강조하셨습니다.‘나는 태극기를 달고 뛰지 못했지만 너희들은 이제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으니 마음껏 달려 세계를 제패하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립니다.우리는 선생님의 피 맺힌 그 말씀을 가슴에 묻었습니다.그리고 보스턴 하늘에 선생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하시던 그 말씀의 힘으로 저는 미국땅 보스턴에서 태극기를 휘날릴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한 지난 시절이 눈에 잡힐 듯 아른거립니다.춥고 배고픈 시절,한국마라톤을 살리려고 몸부림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집니다. 선수들의 끼니를 위해,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서울시내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던 때가 그립습니다.비록 많은 기부금을 모으진 못했지만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그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낙담해 청진동 어귀 선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던 선생님이 생각납니다.막걸리로 지친 목을 축이시며 껄껄껄 웃으시던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선생님은 그 막걸리 잔에 선생님의 인생을 담으셨습니다.몇 잔의 막걸리로 시름을 달래신 선생님은 다시 모금을 위해 지친 다리를 끌고 목적없는 길을 떠나시곤 하셨습니다.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그토록 좋아하시던 술 한 잔 더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게 이제는 큰 후회로 남습니다.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며 홀로 앉아 막걸리로 목을 축여보지만 선생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희뿌연 액체만이 눈앞을 어지럽힙니다. 선생님. 한국 마라톤은 선생님의 든든한 가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선생님께서 걱정하셨던 만큼 이제는 혼자서도 세계를 호령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으십시오.우리 모두는 맥박이 뛰는 한 선생님을 기억할 것입니다.그리고하늘나라에서도 한국 마라톤을 지켜봐 주시고 후배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황영조가 본 손기정옹/ “선배이자 정신적 지주” “친할아버지나 다름없었는데….” 한국 마라톤의 ‘대부’ 손기정옹의 사망 소식을 접한 황영조(32·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92바르셀로나 마라톤 우승으로 손옹 이후 56년 만에 올림픽 마라톤 월계관을 되찾아온 황영조는 선배이자 정신적 지주인 손옹의 죽음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전국체전 관계로 제주에 머물던 황영조는 지난 14일 손옹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병원을 찾았다.산소마스크에 의지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황영조는 눈시울을 붉혔다.그게 손옹의 살아생전 뵙는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황영조는 “할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예전과 지금의 마라톤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신 인간적이고 외로운신 분”이라면서 “단순한 마라토너가 아닌 우리역사 그 자체이며 마라토너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나에게 많은영향을 끼치신 분”이라고 말했다. 황영조는 올림픽마라톤 금메달리스트라는 공통분모 외에도 손옹과 각별한 인연이 많았다. 36년 8월9일과 92년 8월9일.56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같은 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황영조가 한국 마라톤 영웅의 바톤을 넘겨받은 바르셀로나 몬주익 경기장은 원래 36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지어진 경기장이어서 감격은 더했다. 특히 손옹은 바로셀로나올림픽 주경기장에서 1위로 골인한 황영조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이후 황영조는 손옹을 친할아버지처럼 따랐고 손옹도 황영조에게 애틋한 정을 주었다. 손옹이 98년 ‘황영조 후원회’ 회장을 맡으며 황영조에게 힘을 실어 줬고 황영조 역시 99년 ‘손기정의 생애’라는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올 1월 창단된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에서 황영조가 감독,손옹이 고문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손옹의 병원출입이 부쩍 잦아지면서 황영조는 늘 마음이 편치않았다.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손옹은 주위의 도움으로 통원치료를 받았고 최근에는자주 병원입원실을 드나들었다. 황영조는 “할아버지는 마라토너로서뿐 아니라 사회인으로서도 귀감이 되는 분이었다.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곽영완기자 kwyoung@ ■이봉주가 본 손기정옹/ “항상 든든한 후원자” “그분을 볼 때마다 항상 든든한 후원자를 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손기정옹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은 ‘보스턴의 영웅’ 이봉주(32·삼성전자)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봉주는 “돌아가시기 이틀전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면서 “그게 마지막 대면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이어 “지난해 찾아뵜을 때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잘한다.’고 하신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고 말하는 이봉주는 아직 손옹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닮고 싶은 마라토너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봉주는 늘 입버릇처럼 “손기정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그만큼 이봉주에게 손옹의 존재는 든든한 바람막이였으며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다.이봉주는 손옹의불굴의 정신력을 가장 높이 샀다.그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을 동경하며 꿈을 키워왔다.”면서 “선생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자주 손옹을 찾아뵙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했다.2년 가까이 선생님을 못뵌 것이 죄송스러워 지난 12일에도 병원을 찾았지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했다.특히 이봉주는 지난해 4월 보스턴 우승 직후 곧바로 손옹을 찾아뵙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당시 손옹이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기를 입원실에서 밤잠을 설치며 지켜봤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동안 눈시울을 붉혔다. 이봉주는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가셨다.”면서 “우리 후배들은 그분의 뜻을 이어 한국마라톤을 다시 세계 정상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석기자 pjs@ ■손기정과 마라톤 역사/ 한국 마라톤의 ‘시작과 끝' 한국마라톤은 손기정의 올림픽 제패 뒤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육상은 불모지였지만 마라톤만은 한민족의 끈기를 말해 주듯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로 한국마라톤은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이 대회에서 손기정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지난해 2월 작고한 남승룡도 동메달을 따내자 세계는 일제 치하의 약소국 코리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손기정의 우승을 시발로 한국마라톤은 황금기를 맞았다.베를린의 두 영웅 손기정·남승룡이 코칭스태프를 맡은 47년 보스턴마라톤에서 한국은 우승을 일궈냈다.서윤복이 세계기록(2시간25분39초)을 세우며 우승,마라톤 한국의 기개를 다시 한 번 세계에 펼쳤다.한국마라톤의 역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3년 뒤인 50년 함기용이 또 보스턴마라톤을 제패,명실상부한 마라톤 강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이후 한국 마라톤은 긴 침체에 빠졌다.한국전쟁 뒤 국민들은 먹고살기에 바쁜 나머지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이런 와중에 세계 마라톤은 무서운 속도로 한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그러나 한국마라톤은 긴 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40여년이 흐른 뒤 한국마라톤은 거대한 용틀임을 재개했다.지난 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가월계관을 쓰면서 재도약의 전주곡을 울렸다.그뒤 한국마라톤은 세계와의 격차를 무서운 속도로 줄이기 시작했다.4년 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이봉주는 은메달을 따냈다.2회 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민족은 여자마라톤에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다.북한 선수이기는 하지만 정성옥은 지난 99년 세비야 국제육상대회에서 세계 철녀들을 제치고 당당히 우승했다.한민족 여자마라톤이 세계로의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박준석기자 pjs@ ■손기정 어록 “일장기 달고 우승 울고싶었다” ◆비극의 시대였다.절망만이 가득하던 그 시대에 내가 택한 것이 마라톤이었다.희망을 향한 탈출구라도 좋았고,끝내는 파멸로 향한 길이라도 좋았다.한시라도 달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나는 마치 공기를 숨쉬듯 눈덮인 언덕,얼어붙은 자갈길을 뛰고 달렸다.(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중에서) ◆나 오늘 천당 갔다 온 기분이야.너무 너무 기분이 좋아(2000년 8월9일 양정고에서 열린 ‘베를린마라톤 제패 64돌’ 축하행사에서) ◆왜정 때는 아무리 잘 뛰어도 제대로 칭찬 한 번 못받았지.그래서 일장기말소 사건도 나온 것이고….마라톤을 하면서 힘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모든 것이 한국 마라톤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니 결코 포기하지 말고 뛰어 주길 바라요.(97년 동아마라톤에 앞서) ◆마침내 우승은했으나 웬일인지 울고만 싶소.(1936년 베를린마라톤 우승 직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아무리 아파도 세계를 제패한 다리만은 자를 수 없다(2001년 1월 서울삼성병원 입원 치료중 의료진의 발가락 절단 진단을 듣고) ◆눈을 감기 전에 보고싶은 게 두 가지가 있다.첫번째는 살아 생전 고향(신의주)땅을 밟아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황영조가 마라톤을 다시 하는 것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뤘다.(1998년 3월 ‘황영조후원회’ 회장을 맡으며) ◆오늘 내 국적을 찾아준 것이나 마찬가지다.내가 노래를 잘 한다면 운동장 한복판에 나가서 우렁차게 악을 쓰고 싶다.(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가 우승한 직후) ◆코스도 모르고 뛰었던 마라톤 데뷔전. 1932년 3월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경영(경성∼영등포)마라톤대회 전날 코스답사를 하다가 길을 잃었다.광화문에서 반환점인 영등포까지 차비도 아낄 겸 걸어서 갔다 오기로 하고 나섰다가 해가 저물어 전차를 타고 그냥 돌아온 것.다음 날 서울역을 지나 삼각지까지는 선두를 달렸으나 이리저리 갈래를 뻗은 삼각지에서 어느쪽이 코스인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변용환에게 추월당했고 이후 그의 꽁무니만 쫓아 다녔다.
  • 손기정옹 의식불명 위독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90)옹이 노환으로 인한 호흡곤란 증세로 13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병원측은 “폐렴 증세로 현재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으며 의식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병원측은 노환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의식불명 상태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
  • 전국체전/ “무명 만만세”

    ‘무명 만세' 제주 전국체전 마라톤과 높이뛰기에서 잇따라 파란이 연출됐다. 충북대표로 나선 이성운(23·코오롱)은 13일 제주종합경기장을 출발,북제주군 애월상고를 돌아오는 42.195km풀코스에서 펼쳐진 남자 마라톤에서 2시간18분42초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건국대 2학년 때인 지난 99년 처음 풀코스를 소화한 이성운은 6번째 풀코스도전에서 첫 우승을 일궈냈다. 지난 대회 우승자 이의수(충남)는 2시간20분2초로 2위에 그쳤고,송도영(충남)은 2시간20분16초로 3위가 됐다.우승후보로 꼽힌 형재영 장기식(이상 전북)은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제주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남자 높이뛰기에서는 ‘만년 2인자’ 배경호(26·안동시청)가 또 다른 이변을 낳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경호는 2.18m까지 이진택(30·대구시청) 김태회(29·정선군청)와 접전을 벌이다 2.21m와 2.24m 첫 시기에서 가뿐히 넘어 체전 12연패에 도전한 한국최고기록(2m34) 보유자 이진택을 따돌렸다.김태회와 이진택은 2.21m에서 한차례씩 실패했고,2.24m에서 나란히 바를 넘는데 실패했다.이진택은 2.18m로 2위. 충북 영동군 상춘초등학교 5학년때 800m로 운동을 시작한 배경호는 중학교땐 멀리뛰기를 잠깐 하다가 높이뛰기로 전향했다.1년에 3∼4㎝ 정도씩 꾸준히 기록을 경신해 현재 최고기록은 2.24m.국가대표 최종선발전을 앞두고 오른쪽 발목인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부산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놓친 것이 가장 아쉬웠다는 배경호는 “내년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당면 목표이며 3년뒤에는 한국기록을 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제주 이기철기자 chuli@
  •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 ‘마라톤맨’

    “달리다 보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여러번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 고통을 넘기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과 자신감을 얻습니다.” 마라톤 입문 1년여만에 100㎞ ‘울트라 마라톤’을 두번이나 완주,우승까지 차지한 LG상사의 ‘마라톤맨’ 김광호(사진·37)씨.회사내에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으로 통하는 김씨는 취미삼아 시작한 달리기에 빠져 매일 12∼13㎞의 고독을 즐기는 ‘마라톤 마니아’다.물류팀 소속인 김씨는 지난해 6월 직장상사의 권유로 달리기를 시작했다.그동안 42.195㎞ 마라톤 풀코스를 4번이나 완주했고 지난달 열린 춘천마라톤대회에서는 대회 참가 두번째만에 2시간57분이라는 뛰어난 기록을 세웠다.김씨의 ‘두번째’ 도전은 울트라 마라톤.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100㎞ 달리기다. 지난 5월 포항에서 열린 대회에 첫 출전,13시간17분50초만에 완주한데 이어 지난 3일 ‘제3회 서울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는 기록을 무려 4시간40여분이나 앞당겨 8시간39분49초에 완주,청년부 1위에 올랐다.울트라 마라톤을 ‘재미있다.’고 표현한 김씨는 “마라톤을 하면서 회사일과 인간관계 등 모든 면에서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
  • 제3교섭단체 난항 안팎/ 자민련 反李·親李 양분 조짐

    향후 당의 진로를 놓고 심각한 내부갈등을 겪고 있는 자민련이 11일 의원총회를 열고 당내 이견 조율에 나섰으나 실패,당분간 표류가 예상된다.이에 따라 자민련과 함께 제3의 원내교섭단체를 추진해 왔던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탈당 의원들의 ‘독자세력화’ 정국 구상도 큰 차질을 빚을 것 같다. 자민련은 이날 후단협과 이한동(李漢東) 전 총리가 추진중인 원내교섭단체참여 여부를 놓고 오전과 오후 3차례에 걸쳐 마라톤 회의를 가졌으나 “정국 추이를 봐가면서 논의하겠다.”며 입장을 유보했다. 자민련이 합의도출에 실패한 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 의원들간 시각차 때문이라는 관측이다.김종필(金鍾泌·JP) 총재와 조부영(趙富英) 부총재,김학원(金學元) 원내총무 등 지도부 및 전국구 의원들은 ‘반(反) 이회창’ 기류를 형성하고 있으나,대부분의 지역구 출신 의원들은 ‘한나라당 행(行)’을 노골적으로 밝히거나 내심 바라고 있다. 특히 회의에서 지역구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했다.이재선(李在善) 의원 등은 “교섭단체가 신당이나 특정후보 지지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며 반대했고,한 의원은 “자민련이 이렇게 된 데는 김 총재의 책임도 크다.”며 ‘JP2선후퇴’까지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원철희(元喆喜)·송광호(宋光浩) 의원 등도 유보적 입장을 견지,당 지도부의 교섭단체 구성 방침에 제동을 걸었다. 상황이 이렇듯 악화되자 오전 의총에는 참석하지 않았던 김 총재는 오찬 모임부터는 직접 참여했다.게다가 교섭단체 구성을 끝까지 밀어붙일 경우 오장섭(吳長燮) 의원 등 2∼3명의 의원들이 당장 탈당할 것을 우려,한 걸음 후퇴한 것으로 알려졌다.한 참석자는 “김 총재가 오후 의총에서 교섭단체 참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기는 했으나 적극적인 태도는 아니었다.”면서 “결국 김 총무가 말미에 ‘유보하자.’고 결론을 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후단협이 추진중인 원내교섭단체 출범은 당분간 불투명해 보인다.지금까지 이한동·안동선(安東善) 의원을 포함해 17명의 의원들로부터 교섭단체 가입 서명을 받은 후단협으로서는 자체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후단협 소속 의원들은 자민련의 유보결정을 통보받은 뒤 대책회의를 가졌으나,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12일 재론키로 했다.설송웅(설松雄) 총무위원장은 “우리끼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교섭단체 구성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이 이뤄지더라도 후단협의 교섭단체 구성은 그리 쉬워 보이지 않는다.추가 탈당파로 거론된 한 최고위원은 “지금은 탈당할 명분이 없다.”고 부인했다.더욱이 교섭단체 가입에 서명한 의원들중 일부는 독자 교섭단체 구성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한나라당행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원상기자 ws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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