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종횡무진] 영원한 마라토너 이봉주
국내에도 소개된 ‘천천히 달려라’의 저자 존 빙햄은 다섯 시간이 넘도록 달리고 또 달려서 간신히 도착하는 아마추어다. 카우치 포테이토(소파에 앉아 감자 칩을 먹으며 TV를 보는 사람들)였던 그는 마라톤을 한 이후 새 삶을 찾게 되어 그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해 왔다. 그는 말한다.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공기가 폐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것을 느낄 때, 더위와 추위, 이글거리는 태양, 쏟아지는 비를 느낄 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달리기란 그런 것이다. 물론 달리기 대신 공차기, 암벽 오르기, 헤엄치기, 심호흡하기 같은 말을 넣어도 빙햄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달리다’는 동사는 인간을 더욱 순도 높은 열정의 존재로 만들어준다. 달리기에 대한 세계적인 예찬론자로 독일의 요시카 피셔가 있다. 외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달리는 중 명상에 빠지거나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할 수 있다. 어느 때는 무아지경의 상태처럼 머릿속이 맑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그런 느낌, 일상에서는 좀처럼 획득할 수 없는 미묘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달리는지 모른다.
마라톤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소설가가 있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오래 살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니다. 설령 짧게 살 수밖에 없더라도 그 짧은 인생을 완전히 집중해서 살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이상 언급한 세 사람은 모두 아마추어다. 어쩌면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순수한’ 관점에서 마라톤의 미학을 성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뛰고 또 뛰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이러한 예찬과는 거리가 먼, 마치 이 거친 세계와 단독으로 맞선 자의 숙명처럼 달릴 것이다. 이봉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스포츠맨, 쉼없이 달려온 의지의 표상, 피니시라인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았던 마라토너. 그가 마침내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15일, 서울국제마라톤이 은퇴 경기가 되었다.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애틀랜타에서는 은메달을 땄고 시드니에서는 다른 선수와 충돌했으며 아테네에서도 14위에 그쳤다. 그러나 그는 우승을 했을 때나 그러지 못했을 때나 늘 달렸다. 20살에 처음으로 완주를 했고 이후 20년 동안 42차례나 도전해서 40회 완주 기록을 세웠다. 총 1687.8㎞. 현역선수로는 최다 기록이다. 올림픽 4회 진출도 유일한 기록이다. 그는 보스턴의 우승자이며 올림픽 은메달 수상자다. 그러나 그런 성취가 아닐 때에도 쉬지 않고 달렸다는 점이 중요하다. 체코의 마라톤 영웅 에밀 자토펙은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고 했다. 이봉주는 주어진 숙명을 피하지 않고 새로운 지평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위엄을 보여줬다.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