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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의 날 특집] ‘환상의 섬’서 ‘첨단의 섬’ 으로

    [바다의 날 특집] ‘환상의 섬’서 ‘첨단의 섬’ 으로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에서 남쪽으로 81해리(149㎞)를 더 내려가면 ‘환상의 섬’ 이어도가 나온다. 파도가 높게 칠 때만 바위 끝이 드러나는 이어도는 엄밀히 말하면 섬이 아니라 수중암초다. 타령이나 소설, 상상 속에만 있었던 이어도가 종합해양과학기지로 변모한 것은 지난 2003년. 한국해양연구원은 8년 동안 21억원을 들여 바다속 암초에 철재탑을 쌓아 첨단 과학기지를 만들었다. 이어도가 과학기지로 자리잡은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의 40%가 이 곳을 지나기 때문이다. 태풍이 제주도에 상륙하기 10시간 전에 미리 태풍의 진로와 세기, 강수량을 측정해 뭍에 전달해 준다. 이어도 기지에는 온도계, 풍향계와 같은 ‘원시적인’ 장비부터 초음파파고계, 자외선형광측정기, 대기자동분석기 등 첨단 장비까지 모두 44종의 관측기가 있다. 관측자료는 인공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해양수산부나 기상청으로 전달된다. 첨단의 옷으로 가라입은 이어도이지만 여전히 사람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는 않는다. 기지 위에 헬기장이 마련됐지만 거센 바닷바람이 좀처럼 착륙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어도 기지를 담당하는 해양부 이상영 사무관은 “매월 한번씩 기기 유지·보수를 위해 관리 요원을 파견하지만 허탕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뭍 사람들이 고요하게 잠든 밤에도 외롭게 먼저 태풍을 맞이하는 이어도가 아직은 자신의 머리 위에 얹혀진 철재탑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일제피해자 개인청구권 “국내청산 우선 추진”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21일 일제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 문제와 관련,“우리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국내적 과거사 청산을 선결 과제로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 장관은 이날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에서 “체결된 지 40년이 지난 한·일협정의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이같이 답변했다. 한편 국방부는 2004년 국방백서에 독도 관련 부분이 누락된 것이 의도적이었다는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의 주장에 대해 ‘독도 누락’은 백서 구성상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해명했다. 국방부 윤영식 기본정책담당관은 “침투·국지 도발 대비태세 항목은 주로 북한을 겨냥해 이뤄진 것으로 이번에 누락된 울릉도, 마라도, 독도는 당연히 우리 영토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日 독도주권 침해] 국방백서에 ‘독도가 없다’

    국방부가 약 4년 만에 국방백서를 발간하면서 우리 영토인 ‘독도’에 대한 언급을 빠뜨린 것으로 16일 밝혀졌다. 지난달 발간된 2004년 백서의 군사대비태세 관련 부분에는 “우리 군은… 서북 5개 도서를 포함한 해양 관할지역에 함정 및 잠수함, 항공기에 의한 초계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명기돼 있다. 백서가 말하는 서북 5개 도서는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이다. 앞서 국방부는 97년 백서에 ‘독도 근해에서 작전활동’이란 설명 아래 전투기가 독도 상공을 초계비행하는 사진을 게재해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백서를 통해 처음 밝혔다. 당시 조치는 일본이 ‘97 방위백서’에 ‘북방 영토 및 죽도(독도), 조선반도 등 여러 문제가 아직도 미해결 상태로 있다.’며 20년 만에 독도문제를 재거론한 데 따른 대응성격이었다. 국방부는 이후 98,99,2000년 백서에도 “서북 5개 도서와 마라도, 울릉도, 독도를 포함하는 동·서·남해안의 우리 해양 관할지역에는 해군 함정과 항공기에 의해 초계활동을 하고 있다.”고 명기하거나 관련사진까지 게재하는 등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백서상의 서북 5개 도서를 포함한 해양관할구역이란 표현이 독도를 포함하고 있다.”고 해명한 뒤 “오해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5월 발간되는 영문판부터는 독도라는 말과 사진을 함께 싣겠다.”고 밝혔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굿바이 바티골’

    ‘굿바이, 바티골!’ 동물적인 득점 감각과 긴 머리를 앞세워 세계 축구계를 휘저었던 아르헨티나의 스트라이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36)가 그라운드를 떠난다. AFP통신은 최근 카타르 프로축구 알 아라비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바티스투타가 “현역 생활을 접겠다. 팬들의 성원에 감사한다.”며 은퇴 의사를 밝혔다고 14일 보도했다. 1988년 19살의 나이에 뉴웰스 올드보이스(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던 그는 91년 A매치에 데뷔했고, 그해 조국을 코파아메리카 정상으로 이끌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92년 세리에A(이탈리아 프로축구) 피오렌티나를 시작으로 유럽에 첫 발을 디뎠고, 약 10년 동안 293경기에서 182골을 뿜어내며 유럽 무대 최고 골잡이로 명성을 떨쳤다.00∼01시즌에는 AS로마 소속으로 마침내 ‘스쿠테토(세리에A 우승 상징)’를 품에 안았다. A매치에서는 78경기에 출전해 59골을 넣어, 아르헨티나 대표팀 A매치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바티스투타는 그러나 유독 월드컵과는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선배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한 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고,4년 뒤 프랑스에서는 8강에서 무릎을 꿇었다. 특히 세계 축구 팬들은 2002한·일월드컵 당시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비겨 16강 진출이 좌절된 뒤 그가 쏟아내던 눈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UEFA 챔피언스리그] 태극듀오 ‘4강 골문연다’

    유럽 빅리그는 축구 선수라면 당연히 뛰어 보고픈 무대. 그 가운데서도 각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 클럽들이 모여 자웅을 겨루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는 월드컵 못지않은 ‘꿈의 무대’다. 숱한 도전 끝에 마침내 한국 선수에게도 챔피언스리그 8강 그라운드가 열렸다. ‘태극 듀오’ 박지성(24) 이영표(28)의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이 10일 모나코 루이 2세 스타디움에서 열린 AS모나코(프랑스)와의 16강 2차전 원정 경기에서 베네고어 하셀링크(27)와 다마커스 비즐리(23)가 연속골을 터뜨려 2-0으로 승리했다. 지난달 홈 경기에서도 1-0으로 이긴 에인트호벤은 이로써 지난해 조별 리그 패배를 시원하게 앙갚음하며 8강에 진출했다. 박지성은 홈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은 ‘리틀 마라도나’ 하비에르 사비올라(24)와 마주쳤지만 주눅들지 않고 수차례 상대 골문을 위협하는 등 활발한 공격을 펼쳤다. 팀이 1-0으로 앞서던 후반 14분에는 모나코의 좌측 진영에서 수비수 사이를 꿰뚫는 날카로운 패스를 필리프 코쿠(35)에게 건네 비즐리의 쐐기골로 이어지게 하는 멋진 플레이를 선보였다. 왼쪽 수비수로 풀타임을 소화한 이영표도 사비올라 등 모나코의 창을 무디게 만들었다. 또 87∼88시즌 이 대회 우승컵을 안았던 에인트호벤의 거스 히딩크(59) 감독은 17년 만에 유럽 최고봉 정복의 꿈을 부풀리게 됐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문끼리의 격돌로 관심을 모은 레알 마드리드와 유벤투스의 경기는 연장 승부까지 벌였다. 부상에서 돌아와 오버헤드킥을 작렬시킨 다비드 트레제게(28)와 마르셀로 잘라예타(27)의 연속골로 유벤투스가 2-0으로 승리,8강에 진출했다. 1차전에서 1-0으로 이겨 비기기만 해도 준준결승전에 오를 수 있었던 마드리드는 무기력한 플레이를 보였고, 연장전에서 호나우두(29)마저 퇴장당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전날 FC바르셀로나도 탈락, 결국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클럽은 모두 침몰했다. 잉글랜드의 ‘화약고’ 아스날은 이날 경기에서 후반 11분 골잡이 티에리 앙리(28)가 거미손 올리버 칸(36)이 지키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독일)의 골문을 뚫어 1-0으로 승리했지만 원정 1차전에서 1-3으로 패한 탓에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리버풀(잉글랜드)은 루이스 가르시아(27·2골) 밀란 바로스(24)가 연속 득점을 올리며 레버쿠젠(독일)을 3-1로 제압하고 2연승을 거둬 8강에 합류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김홍신의 세상보기] 독도,진정 한국 땅이기 위하여

    [김홍신의 세상보기] 독도,진정 한국 땅이기 위하여

    참으로 소중한 추억 가운데 하나는 이틀 동안 독도에서 우리 땅의 냄새를 제대로 맛본 기억이다. 독도를 떠날 때 막사 앞 작은 화단에 꽃씨를 심어 놓고 왔지만 해마다 꽃이 피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헬기로 수송한 방송장비를 설치하고 독도에서 생방송으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거침없이 당당하게 한국 땅임을 자랑했다. 바람이 하도 드세어서 헬기장 쇠말뚝에 밧줄을 걸어 내 허리춤에 묶은 채. 굳이 역사를 들추지 않아도 내 조국의 끝자락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비밀문서로 분류된 외교문서 속에 그 날의 생방송을 트집잡는 항의문서가 포함돼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3·1절을 앞두고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주한 일본대사가 서슴없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억지소리를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영유권을 지배하기 때문에 기존의 무대응 입장을 유지한다.’고 했다. 우리 땅을 굳이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우리 땅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틀’에서나 가능한 것이다.‘비상식과 기획된 음모’ 앞에선 효력이 상실되기 마련이다. 우리말에도 ‘억지가 논 서마지기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는가. 목적이 분명한 의도로 치밀하게 덤비는 일본의 집요함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정부 태도에 자존심 상한 국민이 많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유엔 해양법 제121조 3항에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그 자체의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지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래서 1999년에 발효된 이른바 신 한·일어업협정에서 우리 정부는 독도를 제외함으로써 일본의 야욕에 빌미를 준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보란 듯이 일본 영토로 못박고 나섰다. 파도 치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암석인 오키노도리섬(가로 2m×세로 5m)에 300억원을 투입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남한 반절 크기의 영해를 확보하기도 했다. 유인도는 2가구 이상의 인구가 거주해야 하고 식수와 수목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도를 국제법상 유인도화하는 것이 정당방위일 것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서도의 벼랑끝 지점에 식수로 부족함 없는 샘이 존재하고 있다. 과거에 거주했던 어부가 개발한 것이다. 오래 전에 토끼를 방목하는 바람에 수목이 피폐해진 점도 국가가 독도 관리를 잘못한 탓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산림 전문가의 소견에 따르면 화산섬에 구덩이를 파고 모진 해풍에 견딜 만한 수종을 개발해 이식하고 관리만 잘해 준다면 독도에 수목이 자랄 수 있다고 한다. 2가구 이상의 거주자 문제는, 독도 인근의 고급 어족자산 때문에 숙박시설과 판로만 확보되면 거주할 어부가 생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성금을 모아 매달 일정액의 지원금을 지급하면 거주자가 분명 생긴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부에서는 독도에 선박해상관광호텔을 정박시키면 자연스럽게 경제활동이 일어난다고 한다. 선착장을 증설하고 잡종지 지번을 부여하면 그만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점도 유념했으면 한다. 일본이 50년간 집요하게 주장하고 항의하는 까닭은 언젠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기겠다는 수작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국제사법재판관 한 사람 키워내지 못하고 그럴 각오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은 끊임없이 일본인 재판관을 배출했고 현 재판관도 마사코 왕세자비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분명하고 단호한 의지가 국제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땅이 분명하다면 무엇이 두려워 유인도화하지 못하며 무엇이 겁나서 국민들의 자유로운 입도를 꺼리는 것인가?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이라는 핑계가 옹색해 보인다. 같은 천연기념물인 마라도와 홍도를 한국인들은 자유롭게 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당당하지 않으면 훗날 무서운 재앙이 된다는 사실에 숙연했으면 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독도 여행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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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 신동’ 디에고 마라도나(44)가 살을 빼기 위해 위 축소 수술을 검토하고 있다고. 현재 마라도나가 머물고 있는 콜롬비아의 메디헬프 클리닉 프란시스코 홀귄 원장은 4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조만간 마라도나의 위 축소 수술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약물중독 치료 등으로 몰라보게 살이 찐 마라도나는 위를 일부만 남긴 채 소장과 연결하는 이번 수술을 받게 되면 조금만 먹어도 쉽게 포만감을 느껴 덜 먹게 돼 체중이 줄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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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롬비아에서 약물 중독 치료와 휴양을 겸하고 있는 디에고 마라도나(44)가 400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두들겨 맞았다. 이탈리아 신문 ‘라 레푸블리카’는 24일 “한 고등법원이 마라도나에게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에서 뛰던 지난 1981∼91년 사이에 내지 않은 세금 3000만유로를 납부하라고 판결했다.”고 보도. 마라도나는 이탈리아 세무당국이 부과 사실을 고지한 적이 없다며 납부를 거부한 채 법정공방을 벌여왔다.
  • [하프타임] 맨체스터, 9세 축구천재 영입 추진

    일본 ‘닛칸스포츠’는 잉글랜드 프로축구(프리미어리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브라질 남동부 파라나주의 2부리그 클럽 아소시아손 파라나 유소년팀 소속의 미드필더 안데르손(9)에게 영입을 제의했다고 26일 보도했다. 파라나 구단측은 “안데르손은 파라나주의 시골 마을 출신이지만 ‘마라도나’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천재성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7월에는 스페인 프로축구(프리메라리가)의 레알 마드리드가 주니어캠프에 참가한 영국의 7세 꼬마선수 닐 메이슨과 계약을 체결해 화제를 낳았다.
  • 쉬어가기˙˙˙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86년 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와의 4강전에서 핸들링 반칙 논란이 일었던 골은 무의식 중에 자신의 손으로 밀어넣은 것이라고 최근 스웨덴 TV와의 인터뷰에서 19년만에 고백.. 당시 잉글랜드를 2-1로 이긴 아르헨티나는 결국 우승컵을 품었고, 이후 필름 판독 끝에 공이 마라도나의 손에 맞은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마라도나는 줄곧 침묵을 지켜왔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 정도령은 누구인가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3) 정도령은 누구인가

    ●정도령과 진인 ‘정감록’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계룡산 밑에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된다는 ‘정도령’이다. 달리 ‘진인(眞人)’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빤히 아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만 따져들면 실체가 애매한 것이 바로 그 진인이고 정도령이다. 실체를 잘 모르면서도 사람들은 정도령에게 제법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여러 해 전 일이었다. 대기업 총수 정모씨가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는데 당시 칠순 노인이던 그를 가리켜 ‘정도령이 나왔다.’며 사람들이 수군댔다. 도령치곤 참 늙은 도령이었다. 맨손으로 일어나 굴지의 대기업을 키운 사람이었던 만큼 그 뚝심이면 못 할 일이 없다고들 봤던 것일까. 하여간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고 그 뒤에도 정도령 감은 몇 명 더 있었다. 그런데 막상 정도령이란 칭호는 ‘정감록’에 안 보인다. 고작 ‘정성(鄭姓)’ 또는 ‘진인(眞人)’이 언급되는 정도다. 때론 그 정씨와 진인이 같은 인물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내가 조사해 보니 민중들이 쉬쉬하며 진인의 출현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먼저 조성됐고, 한참 뒤 그 진인이 정씨라는 예언이 등장했다.18세기 후반 들어 ‘왕조실록’에 ‘정성진인’이란 단어가 보인다. 물론 체통 있는 양반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정감록’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에 섞인 단어다. 그런데 정진인이 난데없이 웬 도령인가? 알다시피 도령은 양반집 사내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도령은 정진인에 대한 일종의 애칭이다. 도령이란 호칭을 달리 풀이할 수도 있다. 진인이 초능력자라 해도 정식으로 민중 앞에 나서기 전엔 아직 검증이 안 된 인물이다. 시쳇말로 딱지를 못 뗀 일종의 미성년이다. 진인으로 검증을 받을 때까진 정도령, 검증이 끝난 한참 뒤에는 성스러운 임금이다. 진인이 정씨라는 수사의 논리는 무엇인가? 정감록에 그 답이 있다. 이 예언서는 이성계의 조상인 이심, 이연 형제와 정몽주의 선조 정감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돼 있으나 3인이 두 집안의 실제 조상은 아니었다. 상상속의 인물들일 뿐이었다. 그런데 민중은 유독 정감을 더 사랑했다. 엄밀한 의미에선 책 제목을 3인의 대담집이라 해야 옳을 테고 실제로 ‘정이문답(鄭李問答)’이라 한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매우 드문 경우고 대개는 ‘정감의 기록’이란 뜻에서 ‘정감록’이라 불렀다. 그 제목엔 역사의 승리자는 조선왕조의 적대자들, 즉 정씨 성을 가진 진인과 그의 추종자들이라는 주장이 담겨있다. 그런데 새 왕은 왜 하필 정씨여야 하는가? 정씨는 ‘정감록’의 맥락에서 볼 때 고도의 상징성을 지닌다. 조선왕조를 반대하는 모든 세력이 정씨로 대표된다는 뜻이다. 이 주장의 배후엔 민중들의 집단적 기억이 배경에 깔려 있다. 민중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즉위를 반대하다 죽은 정몽주 이야기를 잊지 못했다. 조선왕조 건설의 주역이었으나 태종에게 제거된 정도전, 선조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정여립, 영조 때 일어난 반란 사건에 연루된 정희량의 이름을 들먹이기도 했다. 정씨는 조선왕조와 상극(相剋)이므로, 새 나라는 반드시 정씨가 왕이 돼야 한다는 민중의 주장이었다. 따지고 보면 김씨, 이씨, 박씨 등 다른 성씨 중에도 역모에 휘말려 죽은 사람은 수두룩했다. 그런 점에서 정씨 자손이 다음 세상의 주인이 돼야 한다는 논법은 너무 순박하다. 진인이 반드시 정씨 집안에서 출생해야 될 이유는 없었다.20세기 전반 어느 종교 운동가는 ‘정(鄭)도령’은 ‘정(正)도령’이라고 했다. 정씨 진인설의 핵심을 찔렀다고 본다. 정도령은 성씨가 무엇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민중이 믿고 따를 만큼 도덕적인 사람인가가 최고 검증요건이었다. ●진인이란? 조선시대엔 성리학이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였고, 그에 따르면 ‘도덕군자’가 제일이었다. 그 군자를 제쳐 두고 갑자기 왜 진인이란 생소한 존재가 나타나 왕조를 뒤엎는가? 그 이유를 나는 민중의 숨은 뜻에서 찾는다. 새 시대는 군자 되기를 외치는 사람들이 큰소리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는 민중의 노여움이 느껴진다. 성리학을 아주 폐기처분하지는 못할망정, 민중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뜻을 그렇게 밝힌 것이다. 진인(眞人)의 사전적 정의는 참된 도(道)를 깨달은 사람, 또는 진리를 체득한 사람이다. 진인이란 표현은 본래 도교 용어다. 영어로 된 도교전문 서적을 뒤적여 봤더니 ‘완벽한 인간 존재(perfect human-being)’라고 한다. 인간적 한계를 초월한, 신선과 비슷한 존재가 도교의 진인이다. 불교 쪽은 어떤가 싶어서 알아보았다. 놀랍게도 현대의 임제선에선 진인을 핵심개념으로 삼고 있다. 몇 해 전 어느 신문 기자가 서옹 스님(전남 장성 백양사 고불총림 방장)에게 진인의 개념을 물었다. 그때 서옹의 답은 이러했다. “거짓말 없는 사람이 ‘참사람’이지. 거짓이 없으면 양심에 부끄러울 게 없고, 양심이 깨끗하면 절대 자유로울 수 있는 거야. 정치인, 경제인, 관리들 정말 거짓말 너무 많이 하더군.” 서옹 덕분에 현대 불교의 진인 개념이 명료해졌다. 진인은 절대자유인이라 불릴 만한 참사람, 수행의 최고단계에 오른 사람이다. 조선후기 민중은 그런 진인이 나와서 세상을 확 뒤집어 놓기를 바랐다. 정감록에 함께 실린 예언서 ‘동차결(東車訣)’에는 진인왕이 건국한 뒤엔 불교신자가 대접받는다고도 되어 있다. 불교적 진인관이 맥맥이 흐르고 있다. 이 글을 쓰다 말고 잠시 나는 호남지방에 퍼져 있는 진묵 대사 설화를 떠올렸다. 진묵은 석가모니의 현신이었다는 전설도 있긴 한데, 그는 발달된 기계기술 문명을 가져다 백성들의 고생을 덜어주려고 잠시 서역으로 날아갔다고 했다. 육신은 절간에 두고 진묵의 영혼만 잠시 떠났던 것인데, 속된 유학자 김봉국이 그 육신을 불태우는 바람에 그만 개화의 꿈이 허망하게 무너졌다고 한다. 사실 진묵은 17세기 인물이었고 문명개화와는 무관하였다. 그럼에도 일부 민중은 유교가 못 이룬 개화의 꿈을 진묵이라면 이룰 수 있었을 거라고 여긴 것이다. 다시 본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민중이 기다리던 진인은 도덕적으로 특출한 인물이어야 했다. 그런데 도덕성을 통치자의 필수요건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민중의 생각은 양반들의 정치관을 닮았다. 유교의 성현(聖賢)이 진인으로 대체되고 만 느낌이다. 민중은 기존질서에서 벗어나고자 애썼지만, 제도가 아니라 인물을 최우선으로 삼는 유교적 사유의 틀에 갇혀 버렸다. 그런 한계를 인정해도 민중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부정하고 대안을 궁리하였다는 사실은 무척 중요하다. 민중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진인은 구원자라는 점에서 미륵불 또는 기독교의 재림 예수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에 앞서 벌어질 아마게돈에서의 선악의 일대결전이나 최후의 심판 같은 것은 진인의 출현과 무관하다. 진인이 세상에 나올 때 전쟁과 환난이 예정되어 있긴 해도 그것으로 역사가 완결되지는 않는다. 예수는 죽은 사람의 영혼까지도 불러다 영생을 준다지만 진인은 산 사람들을 좀더 살기 좋은 사회로 이끌 따름이다. 진인은 미륵불처럼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성불시키지도 못한다. 진인의 문제해결은 한시적이고, 부분적이다. 진인은 예수나 미륵불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때가 이르면 환상의 섬에서 나올 진인 현대의 우리로서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조선후기 민중은 섬에서 진인이 나온다고 보았다. 깊은 산골짜기의 신비한 동굴도, 오랜 암자도 아니었다. 바다 한가운데 이상향으로 상정된 섬이 있고, 거기서 때가 되면 진인이 출현할 것으로 생각했다. 이상향을 말하다 보니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로 시작되는 제주의 이어도 타령이 생각난다. 그 노래에는 이어도에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이어도는 파랑도라고도 하는데 제주도 남제주군 마라도(馬羅島)에서 서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수중섬(水中島)이다. 엄밀히 말하면 암초(暗礁)다. 해수면 아래 깊이 잠겨 있어 파도가 몹시 심할 때만 모습이 잠깐 보인다. 그런 이유로 이어도는 예부터 이상향으로 자리매김돼 왔다. 서양에서도 미지의 섬을 이상향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었다. 영국의 토머스 모어(1478∼1535)는 1516년 정치 공상소설 ‘유토피아(아무 데도 없는 나라란 뜻)’를 발표했다. 모어는 히스로디라는 뱃사람에게 어떤 신기한 섬나라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유토피아’인데 실제로는 당시 영국사회를 호되게 비판하고 저자가 동경하던 이상세계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그 섬은 공화국이고, 모든 시민은 하루 6시간만 노동하면 된다고 했다. 거기선 남녀 모두 교육 혜택을 받아 교양이 풍부하다. 전쟁이나 다툼도 전혀 없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평등하다. 누구나 이상향에 가보고 싶겠지만 그곳을 찾아가긴 불가능하다. 토머스 모어는 자기가 속한 세상을 이상향으로 만들자고 했다. 조선시대 민중도 그런 생각을 했을까? 민중이 세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조선왕조의 정치적·사상적 통제력은 그 시대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강했다. 그래서였을 테지만 민중은 이상향에서 구원자를 불러오고자 했다. 모어의 유토피아엔 법과 제도가 구원을 보장해 주었다. 그곳엔 구원자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조선 민중의 이상향은 그 반대였다. 사람이 문제를 푸는 열쇠였다. 민중은 진인이란 구원자를 통해 현실 문제를 풀려 했다.17세기 후반부터 역사기록에 나타난 해도진인(海島眞人)이 그것이다. 섬에 희망을 걸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되나? 바다는 신화시대로부터 생명이 숨쉬는 희망의 요람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민중은 대부분 뭍에 살며 농사에 종사했다. 그런 판국인데 진인이 낯선 섬에서 나온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이 문제로 씨름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이런 짐작을 해봤다. 진인을 하필 섬에서 찾는 이유는 민중을 괴롭혀온 조정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공간이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력의 공백 지대는 음모와 꿈이 무르익을 수 있다. 게다가 17세기부터 먼 바다에서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낯선 서양 선박(황당선, 이양선)이 출몰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의외의 사건소식을 접한 민중은 바다에서는 상상하지 못한 일도 가능하다는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것이 해도진인설로 굳어졌다고 본다. 서양 선박에 관해 좀더 이야기해 보자. 그때 네덜란드 상인들은 일본의 나가사키를 오가며 무역업에 종사했다. 그들은 조선 배보다 수백 배나 큰 거함을 타고 대서양·인도양을 가로질러, 대만을 지나 제주 남쪽 해상을 통과하여 일본을 오갔다.18세기 후반이 되면 그 큰 서양 선박들이 가끔 서남해에 나타났다. 그 소식을 듣고 실학자 박제가도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배 안에는 생김새, 언어, 습관이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서양 선박은 조선 해안에 표류하기도 했다. 박연, 하멜 등이 그들인데 훗날 하멜은 도망에 성공, 나가사키를 거쳐 네덜란드로 귀국하였다. 그는 ‘하멜표류기’를 통해 유럽각국에 한국을 알리기도 했다. 조선후기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서양 사람은 외계인이었다. 얼마나 먼지 거리조차 짐작할 수조차 없는 곳에서 큰 대포를 장착한, 초대형 선박을 타고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서양 선박의 출현은 민중의 공포심과 신비감을 동시에 자극했다. 그러나 19세기 전반까지 아직 서양 함대가 조선을 침략한 일은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 못지않게 신비스러움이 컸다. 이양선이 출몰하는 서남해는 경이로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 바다에 서양 선박이 나타난 것이 전혀 뜻밖이었듯, 언제 또 새로운 존재가 등장할지 호기심 많은 민중으로선 귀추가 주목되었다. 동해나 서해에도 이상향이 있다는 소문이 가끔 떠돌았지만 남해설은 좀더 유력했다. 어느덧 서남해는 진인의 고향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었다. 물론 서양배의 출현만 가지고 해도진인설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조선후기엔 무인도가 이주지로 각광을 받게 됐다는 점도 언급돼야 한다. 당시는 육지의 개발이 이미 끝난 상태였다. 가난한 민중은 삶의 터전을 섬에서 일구기 시작했다. 한번 민중의 눈길이 바다 쪽으로 쏠리자 수십의 무인도가 유인도로 바뀌었고, 율도·무석국 등 상상의 섬들이 인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런 사회적 맥락을 염두에 둘 때 ‘진인(眞人)이 남해에서 계룡(산)으로 나오면 (새 왕조의) 창업을 알 수 있다.’는 예언의 의미가 충분히 살아난다. 서남해에 서양 선박이 출몰하고, 무인도가 개척되는 가운데 민중은 해도진인의 출현을 동경했던 것이다. 육지로 나온 진인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진인의 정체를 밝히려는 나의 탐구는 다음 호로 이어진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루게릭병 투혼 김영갑 사진전

    루게릭병 투혼 김영갑 사진전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제주도로 내려가 20년 가까이 제주의 풍광을 담아온 사진작가 김영갑(47).6년째 루게릭병으로 투병해온 그가 투혼의 전시를 마련했다.10일부터 15일까지 서울 태평로 서울갤러리 전관에서 열리는 ‘내가 본 이어도,1 용눈이 오름’이 화제의 전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전시에서 김씨는 미발표작 70여점을 선보인다. 제주의 오름과 주변의 억새,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시적인 풍광을 담았다. 김씨는 근육이 마비돼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인 루게릭병으로 미라처럼 온몸이 바짝 마르고 전화조차 받기 어려운 상태. 다행히 그는 전시회에 부치는 글을 통해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한데 중도에서 낙오했다고 모두 안타까워하지만 난 결코 멈추지 않으렵니다. 모두의 사랑과 채찍이 헛되지 않도록 삶의 열정을 잃지 않으렵니다.”라며 “이번 전시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믿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렵니다.”라고 말했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섬에 살아보지 않고서는 섬의 외로움과 평화를 사진에 담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무작정 제주에 정착해 한라산과 마라도, 노인과 해녀, 오름과 바다 등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동안 16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지만 누구를 초대한 적은 없다. 사진을 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가난은 그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 동굴 같은 곳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할 정도로 제주의 삶 역시 가난 그 자체였다. 이번 전시도 재력있는 지인이 강남의 한 화랑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했지만 상업화랑이라는 전시공간과 자기 작품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그동안 김씨를 도와온 ‘김영갑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그와 마주앉아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서 아무쪼록 이번 서울갤러리의 전시가 작가의 마지막 전시가 되지 않길 기원하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마라도 등대지기 김석천 항로표지관리소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마라도 등대지기 김석천 항로표지관리소장

    지난 풍진(風塵)세상의 먼지를 털고 새 옷을 입어 보자. 어디로 갈까. 산사(山寺), 바다, 아니면? 파도가 거칠고 바람이 몹시 부는 곳이면 어떨까. 처음 시작되는 이름이 ‘마(麻)’에서 ‘마(馬)’로 바뀐 곳, 최남단이 좋겠다. 맞다, 그 섬이구나.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제주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산다는 것이 싱겁다, 간이 맞지 않는다,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은 마음의 장난이다.” 20년 동안 제주에서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김영갑씨의 ‘그섬에 내가 있었네’가 문득 생각난다. 또다름의 풍진세계가 다가온다. 올해는 아픈 역사를 되새길 일도 유난히 많다. 을사조약 10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협정 40주년…. 굵직한 화두다. 어이해야 하나. 생각의 나침반을 우선 저 멀리 돌려 보자. 국토의 한 점밖에 안되는 낮은 그 곳으로. 마라도는 우리 땅의 막내이자 맨끝.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줄을 잘못 서서 홀대를 받아왔다. ●90년째 국토 시작의 불 밝힌 마라도 등대 마라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반도의 허리가 삭둑 잘린 상황에서, 마라도는 반도 시작의 불을 밝히는 곳이다. 그렇다, 마라도의 등대. 온갖 선박의 항로를 밝혀주는 생명의 길잡이가 있는 곳이다. 거친 파도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90년째 묵묵히 걸어왔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지금은 세계 각국의 해도(海圖)에 어김없이 표기될 정도로 창대해졌다. 마라도 등대는 을사조약 체결 10년 뒤인 1915년 3월 첫불을 밝혔다.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을 염두에 두고 주위 작은 섬들과 교신하기 위해 군사통신기지를 설치하면서 시작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난달 말.50여명을 태운 마라도행 유람선이 제주 남제주군 송악산 선착장을 막 출발했다. 겨울바다여서 그런지 파도가 꽤 높았다. 유람선 오른편 창가너머로 얼굴을 돌렸다. 바다와 맞닿은 송악산 절벽자락에 뻥 뚫린 동굴들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들어왔다. 유람선 안내원이 선내 방송을 통해 “보다시피 송악산 해안가에는 모두 25개의 인조동굴이 있다.”면서 “저 동굴은 일본군이 연합군 함대가 인근을 지날 때 어뢰공격이나 가미카제식 공격을 하기 위해 어선을 숨겨 놓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일제는 10m 간격으로 해안을 돌며 동굴을 파놨으며 공사에는 인근 주민들이 강제 동원됐다.”고 덧붙였다. 20여분후 저 멀리 마라도 등대가 보였다. 마라도의 전체 둘레는 4.2㎞, 가장 높은 곳이 해발 30m. 그 위에 마라도 등대탑이 16m 올라가 있었다. 한폭의 풍경화 같았다. 외부인의 침입(?)에 대한 경고일까, 아니면 홀대받아온 막내의 ‘몽니’일까. 배가 마라도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파도는 더욱 거세졌다. 잠시후 배는 가까스로 접안했고 관광객들은 ‘와’하는 탄성을 지르며 발을 내디뎠다.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풍진의 먼지를 털어내려는 듯 사방팔방에서 바람이 세차게 몸을 감았다. ●등대 대표로 보신각 ‘화합의 종’ 울려 등대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제주지방해양수산청 마라도항로표지관리소’라는 문패가 있었다. 좌우로 살폈다. 아무리 둘러봐도 발 아래에는 망망대해뿐. 뒤로는 한라산, 동으로 대마도와 일본열도 구나카이현, 서쪽으로는 중국 남쪽 상하이와 마주하는 북태평양이 펼쳐진다. 아, 이곳이 시작이구나. 누가 국토의 끝이라 했던가. “마라도 등대는 올해부터 ‘바다로, 세계로, 미래로’라는 기치를 내걸고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됩니다. 최근 이곳에 해양문화공간을 완공했거든요. 이는 곧 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한민국 해양문화의 시발점을 상징합니다.” 김석천(43) 항로표지관리소장. 등대근무 경력만 20여년째의 베테랑. 그는 섬(우도)에서 자라 고교를 졸업한 뒤 곧장 등대원의 길을 걸었다. 우도에 3년, 추자도에서 5년 등 주로 제주의 섬 등대에서 근무했다. 마라도에는 1년여 전에 부임했다. 등대원들은 옛날과 달리 공무원 신분으로 2년마다 순환근무를 하게 된다. 을유년(乙酉年) 새해를 맞는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 우선 31일 서울 보신각 ‘화합의 종’ 제야 타종 인사 16명 가운데 한명으로 선정됐다. 개인적으로는 등대원 생활 20년 만에 처음이지만 전국 유인등대 43개소 가운데 대표로 발탁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159평 해양문화공간 최근 완공 또 있다. 다름아닌 타종식이 있던 날 마라도 등대시설에 새로운 해양문화 공간이 들어선 것. 그는 “마라도가 결코 국토의 끝이 아닌 광복 60주년을 맞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장소가 될 것”이라고 흥분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이 공간에는 대지 159평에다 100여평의 전시실 외에도 휴게공간 ▲사진촬영 코너 ▲거꾸로 보는 세계 지도 ▲광파의 시초인 장작불 모형의 조형물, 특히 마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꿈을 보관할 수 있는 타임캡슐까지 만들어 먼훗날 후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등대 탄생 90년 만에 동방의 새로운 불을 밝히는 국토사랑의 장소로 탈바꿈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10초마다 한번씩 깜박이는 마라도 등대의 불빛은 최장 40㎞까지 뻗어 나간다. 등대에는 태양과 풍력 에너지로 발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기가 끊겨도 불빛은 결코 꺼지지 않는다는 것. 최근에는 위성항법 장치까지 설치돼 마라도 주위를 항해하는 모든 선박에 기상 상태 등을 실시간 제공해 주고 있어 한차원높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새해 소망요? 마라도는 1년내내 아무리 많은 파도가 쳐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불이 한번도 꺼지지 않는 곳입니다.2004년의 괴롭고 어두웠던 풍랑은 이미 지나갔지요. 올해는 다들 힘든 일이 있어도 등대처럼 어두운 길에 불을 밝혀주는 그런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또 “관광객들 중에는 마라도를 어떤 낙도의 외딴섬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면서 “마라도를 국토사랑의 순례지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아울러 피력했다. 김 소장과 함께 일하는 등대원 고성봉(39)씨는 “이곳 30여가구의 주민들이 마라도에 오래오래 살 수 있도록 희망을 안겨주는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횟집을 운영하는 김춘광(34)씨는 “경제난의 여파가 마라도에도 불어닥쳤다.”면서 마라도를 떠나는 주민이 생겨나서는 안될 것이라고 의미있는 지적을 했다. 전교 학생수가 3명이 고작인 마라분교의 김혜지(4학년)양은 “요리사가 꿈”이라면서 “컴퓨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올해 소망을 얘기했다.3학년의 김영일군과 2학년의 김은영양은 열심히 공부해서 장차 선생님과 변호사가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 마라도 김문기자 km@seoul.co.kr ■ 마라도 등대에 얽힌 사연 ‘군인집’으로 불렸던 마라도 등대는 한때 파괴될 뻔한 위기가 있었다. 마라도 주민들에 따르면 1948년 4·3사건 때 서북청년단들이 쳐들어와 등대를 부수려고 했다는 것. 그러나 당시 나봉필이라는 주민이 서북청년단들을 겨우 설득시켜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그후 나씨는 자진해서 등대지기가 됐고, 또 마을 주민들과 조를 짜서 밤마다 등대에 올라가 손으로 직접 불을 밝혔다고 한다. 나씨는 정부수립때까지 무료봉사로 등대를 관리했으며 정부수립 후에 밀가루와 구호물자 등으로 3년 동안의 보수를 한꺼번에 받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이후 등대운영은 정부측으로 넘겨졌다. 한편 ‘마라’란 명칭은,1702년(조선 숙종 28년) 제작된 ‘탐라순력도’에 ‘麻羅島’로 표기돼 있다. 칡넝쿨이 우거진 섬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그 이후 언제부터인가 ‘馬羅島’로 표기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어부들 사이에는 남쪽에서 부는 바람인 ‘마파람’에서 유래됐다는 해석도 있다.
  • 순창등 6곳 지역특구 첫 지정

    순창등 6곳 지역특구 첫 지정

    순창군, 고창군, 순천시, 대구 중구, 남제주군 마라도 등이 지역발전에 필요한 각종 규제가 면제되는 지역특화발전특구로 처음 지정됐다. 정부는 30일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제1회 지역특구위원회를 열어 순창장류산업특구, 고창복분자산업특구, 고창경관농업특구, 순천국제화교육특구, 대구약령시한방특구 등 6개의 지역특구 지정을 의결했다. 정부는 창녕교육도시특구는 내용이 미비해 지정을 보류했다. 지역특구란 정부가 재정, 조세 등의 지원을 해주지 않지만 토지, 교육, 농업 등 각종 규제를 풀어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특성을 살려 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 따라서 이번 특구 지정은 지역별 투자와 고용을 크게 늘려 지역균형발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전통 고추장 생산지로 유명한 전북 순창군의 장류특구는 장류연구소 건립, 순창장류 브랜드 강화 등을 통해 고추장·된장·간장·청국장·고추장 소스를 산업화하게 된다. 고창복분자특구는 100만㎡가 넘는 복분자생산단지를 조성해 매년 복분자 축제를 열고 복분자 생산 재배기술을 개발하며 고품질의 복분자주 브랜드를 세계화할 계획이다. 고창경관농업특구는 관내 예전리와 용수리 등의 207만평에 청보리·메밀 등 친환경 농업단지와 청정 채소단지를 조성, 수확기인 봄과 가을에 축제를 열어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다는 구상이다. 대구약령시한방특구는 350여년 전부터 300여개 한약방이 들어서 성업 중인 중구 남성로 약전골목 5만 666평 일대에 약령 전시관, 가공공장, 사이버 약령시장 등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다음달 중 제2회 지역특구위원회를 열고 창녕교육도시특구를 포함해 지자체들로부터 신청·접수된 부산 해운대구(해양레저특구), 여수시(리조트특구), 산청군(한방특구), 의령군(골프특구), 고창군(선사문화특구), 익산시(한방의학특구), 금산군(인삼특구), 완주군(한방특구), 파주시(교육특구) 등 10곳에 대해서도 특구지정을 심의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지역화합 기원 ‘제야의 종’ 친다

    올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여는 ‘제야의 종’은 서울대 황우석 교수를 비롯해 우리 사회를 빛낸 팔도 주민 대표들이 타종한다. 서울시는 보신각에서 2005년 을유년(乙酉年) 새해를 여는 제야의 종 타종인사 16명의 명단을 26일 발표했다. 유난히 심했던 지역간 갈등과 반목을 씻어내고 지역화합을 다지자는 의미에서 우리사회를 빛낸 인사를 골고루 선정했다. 타종에는 대전·충남을 대표해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53) 교수, 인천·경기를 대표해 강남역 ‘천사빵집 아가씨’ 길지빈(24·여)씨, 전북을 대표해 올림픽 양궁2관왕 박성현(21·여)씨 등이 참여한다. 세계아마바둑대회 우승자 이강욱(22·강원)씨, 조무제(61·부산·경남) 경상대총장, 세계우표디자인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자 김상헌(25·대구·경북)씨,‘공룡박사’ 허민(44·광주·전남)교수, 김석천(42·제주) 마라도 항로표지 관리소장, 충북 바이오농업대상 수상자 이욱희(39)씨, 배기열(77·여) 이북5도 연합합창단장 등도 팔도 대표 10명에 포함됐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임동규 서울시의회의장,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허준영 서울경찰청장, 김충용 종로구청장, 박용성 서울상공회의소 회장 등도 타종식에 나설 예정이다. 시는 지방에서 상경한 타종인사에게는 여비지급규정에 따라 교통비가 지급되고 기념품도 증정하지만 별도의 보수는 지급하지 않는다. 시는 타종행사에는 10만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교통대책을 마련했다. 이날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30분까지 보신각 주변 세종로 교차로(교보빌딩)∼종로2가 교차로, 안국동 교차로∼광교 교차로 등이 통제돼 이 구간을 지나는 시내버스 43개 노선 1106대가 인근도로로 우회운행한다. 지하철은 모든 노선이 종착역 기준으로 1일 오전 2시까지 연장운행된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31일 오후 10시30분부터 1일 오전 1시30분까지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는 전동차가 서지 않고 그대로 통과한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하나은행 2004 FA CUP] 4골 폭발… 안효연 ‘부활’

    [하나은행 2004 FA CUP] 4골 폭발… 안효연 ‘부활’

    ‘잊혀진 스타’ 안효연(26)이 부활을 노래하며 올해 K-리그 통합 순위 7위에 그쳤던 부산을 국내 축구 왕중왕을 가리는 2004FA컵 결승전으로 이끌었다. 부산은 23일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대회 4강전에서 무려 4골을 터뜨린 안효연의 원맨쇼에 힘입어 우승 후보 울산을 5-1로 크게 꺾고 결승에 올랐다.2000년 3위가 최고 성적이었던 부산은 이로써 사상 첫 FA컵 정상을 넘보게 됐다. 부산은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를 거쳐 2001년 우승팀 대전을 4-2로 제압, 역시 정상을 처음 노크하는 정규리그 통합 꼴찌 부천과 25일 오후 2시 우승을 다툰다. ‘리틀 마라도나’ 최성국과 이진호 등을 투입한 정규리그 통합 2위 울산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부산을 압도했다. 그러나 부산에는 안효연이 있었다.2000년 시드니 올림픽 지역예선과 이듬해 히딩크 사단 초창기 주전 멤버로 뛰었지만 일본 교토 퍼플상가 진출 이후 허리 부상으로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선수. 지난해 부산으로 이적, 무득점에 그쳤으나 올해 30경기에서 6골을 낚으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안효연은 뜨거운 공방이 오가던 전반 43분 울산 수비수 조세권의 머리에 맞고 흐르는 공을 따내 오른발로 상대 골문 왼쪽을 갈랐다. 부산은 후반 21분 실점을 만회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최성국에게 동점골을 허용했지만 9분 뒤 브라질 용병 아드리아노가 헤딩골을 작렬시키며 다시 앞섰다. 이후 경기는 안효연의 독무대.38분 상대 수비의 실책을 틈타 공을 가로챈 안효연은 골키퍼 서동명까지 제치고 추가골을 성공시켰고,42분에는 울산 수비수 4명을 제치는 화려한 드리블을 뽐내며 오른발 슛, 해트트릭을 작성해 울산의 전의를 잃게 했다. 인저리 타임에는 박진섭의 핸들링 반칙으로 얻은 페널티킥이 서동명의 몸에 맞고 나오자 가볍게 밀어 넣으며 대미를 장식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하나은행 2004 FA CUP] 결승행, 나를 따르라

    “진정한 천재를 가리자.” ‘시리우스’ 이관우(26·대전)와 ‘리틀 마라도나’ 최성국(21·울산)이 2004FA컵 결승에서의 한판 대결을 벼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의 ‘천재 공격수’ 자리를 놓고 진정한 실력을 겨뤄 보자는 것이다. 물론 맞대결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23일 각각 부천, 부산과의 준결승전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지만 이들은 강한 자신감을 보이며 결승 진출을 장담하고 있다. 청소년대표 시절 ‘천재 미드필더’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으나 이후 부상의 연속으로 대표팀과의 인연을 맺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이관우는 지난 21일 전남과의 8강전에서 현란하고 정교한 볼 배급을 선보이며 팀을 4강으로 견인했다. 지난해 K-리그 최고 인기 올스타이기도 한 그는 올해 올스타전에서는 캐넌슛 1위를 차지하며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다. 2000년 데뷔 이후 110경기에 출장해 작성한 기록은 18골 13어시스트(올시즌 5골 2어시스트). 잦은 부상 탓도 있지만 74경기가 교체 출전일 정도로 체력이 약해 풀타임을 뛰지 못한 탓에 다소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전남과의 경기에서 연장전 포함,120분을 완벽히 소화하며 지난해 8강에서 패배했던 부천과의 준결승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였다.3년 만에 다시 한번 FA컵 정상 도전하는 그는 오는 26일 백년가약을 맺을 동갑내기 조경미씨에게 우승컵을 선물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포워드와 미드필더를 오가는 최성국도 한창 물이 올랐다. 올해 올림픽대표팀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한국을 56년 만에 8강에 올려놨지만 그로 인한 공백으로 K-리그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19경기 출전,1골 4어시스트에 그쳤다. 루키였던 지난해 27경기에 나와 7골 1어시스트를 기록,‘패트리엇’ 정조국(20·FC 서울)과 신인왕을 다퉜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하지만 지난달 대전과의 정규리그 경기에서 마수걸이 골을 신고한 뒤 이번 FA컵 3경기를 통해 2골 2어시스트를 터뜨리며 팀을 통산 5번째 4강으로 이끌었다. 최성국은 최근 상승세를 바탕으로 2000년 대회 8강전에서 울산에 0-1 패배를 안겼던 부산을 반드시 꺾고 결승에 올라 팀의 ‘FA컵 무관의 한’을 풀겠다는 각오다. 울산이 정상에 선다는 것은 최성국이 프로 데뷔 이후 첫 우승컵을 품에 안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파들이 대거 참여한 독일전 국가대표 엔트리에서 제외돼 기분이 상했던 최성국으로서는 구겨진 자존심을 다소 회복하며 내년 1월 대표팀 미국 전지훈련에 참가하게 되는 셈이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하나은행 2004 FA CUP] FA컵 4강 ‘프로본색’

    [하나은행 2004 FA CUP] FA컵 4강 ‘프로본색’

    2004FA컵 4강전은 부산-울산, 대전-부천 등 프로팀들간의 대결로 압축됐다. 부산은 21일 마산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대회 8강전에서 연장 포함,120분을 무승부(2-2)로 마치고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골키퍼 김용대의 선방에 힘입어 디펜딩챔피언 전북을 6-5로 꺾고 2000년 이후 4년 만에 4강에 진출했다. 남궁도 박규선 등 국가대표팀에 수혈된 ‘젊은 피’를 앞세운 전북이 공세를 퍼부었지만 역습에 나선 부산이 먼저 2골을 따내며 쉽게 승부가 결정되는 듯 했다. 부산은 전반 5분 미드필더 도화성이 상대 문전 왼쪽에서 오른발로 감아 찬 20여m짜리 프리킥이 전북의 골망을 가르며 기세를 올렸고, 후반 7분에는 수비수 박충균이 역시 프리킥을 꽂아 넣으며 달아났다. 그러나 사상 첫 3회 우승을 노리던 전북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다. 후반 종료 3분을 남겨 놓고 삼바 용병 호마와 정종관이 연속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것. 연장전 30분의 공방이 무위로 끝난 뒤 맞은 승부차기. 부산은 김용대가 전북의 마지막 8번 키커 윤정환의 슛을 막아내는 등 무려 3개의 킥을 쳐내며 팀에 4강 티켓을 안겼다. 2001년 우승팀 대전은 연장 후반 14분 작렬한 브라질 용병 루시아노의 결승골에 힘입어 97년 챔피언 전남을 1-0으로 꺾고 4강에 합류했다. 대전은 간판스타 이관우를 축으로 루시아노와 공오균을 앞세워 K-리그 득점왕 모따와 이따마르를 내세운 전남과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쳤다. 후반 20분 전남 공격의 핵 이따마르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한 이후 분위기를 장악한 대전은 득점 없이 연장전에 돌입한 뒤 종료 직전 루시아노가 결승골을 터뜨려 가까스로 승리를 거뒀다. 그동안 8차례 대회에서 4강에만 4차례 올랐을 뿐 우승컵은 품지 못했던 울산은 실업팀으로는 유일하게 8강에 합류한 김포 할렐루야를 맞아 ‘리틀 마라도나’ 최성국(1골 1도움) 유경렬 이진호(2골 1도움) 김진용이 골잔치를 벌인 끝에 5-0으로 승리했다. 부천도 전날 주전들이 대거 제대해 힘이 빠진 광주를 2-0으로 제압했다. 준결승전 두 경기는 23일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크루즈 타고 한라산 올라볼까

    크루즈 타고 한라산 올라볼까

    “인천에서 제주까지 배를 타고 간다고?” “아니, 비행기로 한시간이면 가는데 왜 13시간씩 배를 타?” 인천~제주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이제 그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한시간만에 비행기를 타고 휙 제주도에 도착한다면 바다와 파도, 여유가 있는 크루즈의 낭만을 어찌 알겠느냐고. 제주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떠나자, 크루즈여행 금요일 오후 7시 인천 연안부두 여객터미널에서 제주행 오하마나호에 올랐다. 에스컬레이터까지 있는 오하마나호는 6322t으로 정원은 695명,50대의 승용차를 나를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여객선 규모다. 객실은 로열실과 1·2·3등실로 구분된다.1·2등실은 침대가 놓여 있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마룻바닥에 이불이 제공되는 3등실에서 간단한 게임을 해도 좋겠다.13시간이나 배를 탄다는 말에 멀미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김동일(58) 선장은 “오하마나호는 필리핀의 전통 선박인 벙커처럼 수면 아래로 날개 같이 생긴 핀이 나와 4m 이하의 파도에는 꿈쩍도 않는다.” 걱정 말라고 큰소리쳤다. 금요일 저녁 출발인 만큼 저렴한 비용에 시간도 아껴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산악동호인들은 물론 직장단위의 등산객과 젊은층의 얼굴도 보였다. 세계일주 크루즈와 비교하면 소박하지만, 레스토랑, 커피숍, 영화관 등 오밀조밀한 재미가 곳곳에 숨겨져 있다. 노래방 시설도 있다. 한식으로 저녁을 먹고난 후 승객들은 끼리끼리 모여앉아 생맥주를 걸치며 여유로운 저녁을 보낸다. 방실이와 이름과 목소리만 같은 여가수의 낭창낭창한 노래를 안주삼아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비오는 한라산의 멋 다음날 제주도에 도착할 즈음. 선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들떠 이른 아침 눈을 떴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통에 일출구경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몰려든 갈매기떼에게 과자를 먹이는 것도 큰 재미”라던 선배 여행객의 말을 듣고 준비한 과자는 할 수 없이 내가 먹어야만 했다. 토요일 아침 8시에 제주에 도착하자 버스로 한라산 입구까지 이동했다. 한라산에는 영실, 어리목, 관음사, 성판악 등 4개의 등반 코스가 있다. 백록담 정상에 오르려면 총 8.7㎞로 5시간이 걸리는 관음사 코스나, 9.6㎞로 역시 5시간 정도 소요되는 성판악 코스를 택해야 한다. 두 등반코스 모두 겨울에도 이용할 수 있다. 관음사는 겨울 설경이 아름다우며, 성판악은 등산로가 길고 완만해 초보자에게 적합하다. 한라산은 비에 갇혀 있었다. 할 수 없이 백록담을 보리라던 계획을 접고 3.7㎞로 가장 짧은 영실 코스를 택했다.1시간30분 코스. 일행들의 섭섭함을 눈치챈 등반대장 박인철(57)씨는 “영실코스는 짧지만 오백나한상이라고도 불리는 기암절벽인 영실기암의 장관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라고 달래줬다. 해발 1700m의 윗새오름이 가장 높이 오를 수 있는 곳. 윗새오름 대피소 못미쳐 노루샘에서 맛본 시원한 물맛이 한라산의 청정함을 느끼게 했다. 윗새오름에서는 어리목 코스로 한라산을 내려갈 수 있다.4.7㎞로 하산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한라산은 그만의 운치가 있었다. 자욱한 안개로 시야가 막히는 아쉬움은 있지만 오히려 등산로는 고즈넉했다. 등산로 양쪽에 수북한 대나무 일종인 조릿대 잎새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심신에 잠긴 도시의 때를 벗겨준다. 초가을에 성판악 코스를 타고 백록담까지 올랐다는 최성회씨는 “정상에 이르는 동안 발아래 끝없이 뭉실뭉실 펼쳐진 구름바다 위를 한라산 초입에서 만난 큰 까마귀가 되어 날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며, 한라산에 푹 빠지면 주말마다 근질근질하다고 너스레를 떤다. 겨울 비치곤 양이 많아 겉옷과 신발에 비가 스며들었다. 마침 영실 휴게소의 인심 넉넉한 주인장이 제공한 난로 앞에서 서로 김을 풍겨가며 양말과 바지를 말렸다. ●느껴봐, 제철 방어의 맛 올해 4회째인 최남단 모슬포항의 방어축제를 보기 위해선 서둘러야 했다. 축제의 압권은 맨손으로 방어잡기. 참가비 1만원만 내면 4평 남짓 대형수조에서 잡은 방어를 모두 가져갈 수 있다. 한마리 5000∼1만원 하는 방어가 잡히는 만큼 내것이라니. 마음만 앞선 탓인지 면장갑만을 껴서는 잡기가 쉽지 않다. 녀석들의 헤엄치는 속도는 또 어찌나 빠른지. 주부들은 남편의 응원을 받으며 4∼6마리씩 방어를 잡아 즉석에서 회를 떠가기도 했다. 제주도의 방어는 11월에서 이듬해 3월이 제철. 마라도의 거센 물살에서 자라난 방어회의 붉은살은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올해 최남단 모슬포 방어축제는 지난 5일 막을 내렸다. 청해진해운의 김형자 주임은 “내년 3월까지 오후 3∼6시에 모슬포항에 들르면 어선에서 갓잡은 제철만난 방어를 싼값에 살 수 있다.”고 귀띔했다. ●13시간 항해의 여운 토요일 저녁 7시 오하마나호는 인천을 향해 출발했다. 제주항에서도 제주공항과 마찬가지로 간단한 면세점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매장규모는 작지만 담뱃값이 시중보다 보루당 5000원 가까이 저렴해 애연가들의 구미를 당겨 금연열풍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사려는 줄이 길었다. 선실의 창밖으로 잊을 만하면 하나씩 나타나는 서해안의 섬들을 구경하니 마음이 고요해졌다. 일요일 아침 8시, 인천항에 도착했다.13시간의 항해는 그렇게 바다 위에서 미끄러지는 배처럼 흘러갔다. ■ 한라산 여행이 9만9000원 제주도 한라산 여행이 9만 9000원? 인천에서 오하마나호를 이용한다면 가능하다. 청해진해운(032-889-7800,www.cmcline.co.kr)에서 매주 월·수·금요일에 출발하는 2박3일 제주 크루즈 상품이 9만 9000원이다. ●주말에 즐기는 한라산 일정 첫째날 오후 7시 인천항에서 출발, 둘째날 오전 8시 제주에 도착한다. 한라산을 오른 뒤, 셋째날 오전 8시 다시 인천항에 도착하게 된다. 서해안의 낙조와 갈매기와의 데이트, 밤하늘의 은하수와 제주 일출을 선상에서 즐길 수 있다. 객실은 카펫이 깔린 마룻바닥에 담요와 베개가 제공되는 3등실이다.1인당 2만원을 추가하면 2등실을 이용할 수 있다. 2등 가족실은 2층 침대 2개가 구비돼 있어 4인 가족에 안성맞춤. 한편에는 작은 화장실과 소파, 탁자도 있다.1등실은 17만 3000원. 식사는 오하마나호 안 레스토랑(한식 한끼당 5000원)과 매점을 이용할 수 있다. 미리 음식을 준비해서 가족끼리 선실에서 식사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라산을 오를 때 도시락은 무료로 제공한다. 한라산에 오르지 않을 경우 2만원을 추가해 제주도 일일관광으로 일정을 변경할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도깨비도로~성읍 민속마을~미천굴~섭지코지~해녀촌~박물관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성탄절 전날인 24일과 새해 첫 일출을 선상에서 맞을 수 있는 31일에 출발하는 배편은 지난 3월부터 판매, 이미 매진됐다. 내년을 기약하려면 일찌감치 예약해야 한다.24,31일에는 특별히 선상에서 불꽃놀이 축제도 벌어진다. 음력 설연휴에는 윷놀이 등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한다. ●크루즈여행, 이것이 궁금해요 제주 크루즈 여행을 즐기기 위해 멀미약은 따로 준비할 필요 없다.4m이하의 파도에서는 특별한 요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바다의 상태는 예측불가능하므로 여행 일정은 하루 정도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일요일에 돌아온다고 월요일 아침부터 중요한 일정을 잡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도록 한다. 등산 후 땀에 젖은 몸은 오하마나호 내에 작은 욕실을 이용해 씻을 수 있다. 휴대전화 통화는 출항후 1∼2시간은 가능하나 이후에는 배가 먼바다로 빠지면서 불가능하다. 애완견을 데리고 탈 수는 있지만 여객실에 함께 있을 수는 없고, 별도의 장소에 둬야 한다. 자전거는 별도 요금없이 가져갈 수 있다. 오토바이는 크기별로 1만 6000∼9만 8000원선, 자동차는 크기별로 11만 5000∼65만 4000원선의 운임을 내야 한다. 자동차를 싣고 가서 당일여행을 할 수도 있다.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6)제주 모슬포 방어축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6)제주 모슬포 방어축제

    ●수십만 인파 모여들어… 제주도 최대 축제 해마다 12월이면 제주도 서남단 모슬포항에서는 방어축제가 한창이다. 구로시오난류를 따라서 올라온 방어들이 한달여 동안 엄청나게 잡히기 때문이다.5월부터 세력을 확장한 이 해류는 12월 정도에서 세력이 약해진다. 방어는 그 난류에 묻혀 들어왔다가 12월이 지나면 일본쪽으로 빠져서 태평양으로 나가버린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의 양용수 박사는 “남해안은 물론이고 동해안으로도 구로시오난류가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동해 방어도 있지요. 모두 구로시오문화권입니다.”라고 한다. 사실 구로시오난류니 대마난류니 하는 학술용어들은 모두 일본이 국제학회에 보고하여 인정받은 명칭들이니 우리의 대응은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그렇더라도 대마난류는 동한난류 정도로 고쳐쓸 일이다. 사실 방어는 1∼2월이 돼야 한결 기름지고 맛이 좋다. 그렇지만 그 무렵에는 방어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따라서 어획이 잘 되는 12월에 방어축제가 열리는 것. 이 무렵 모슬포수협 관내인 대정읍 상모 하모 가파 동일 일과 무릉 신도 영낙리, 안덕면 대평 화순 사계리 사람들은 가건물을 대여받아 마을 단위로 방어횟집을 연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바다는 방어들의 열기로 끓어오르고 수십만 인파가 모여 성시를 이룬다. 가히 제주도 최대의 해산물 축제답다. 방어는 동해는 물론이고 남해안 추자도 관탈도 근해에서도 많이 잡힌다. 그러나 마라도 근역에서 잡히는 방어를 높게 친다. 시속 6㎞의 빠른 해류에 견디느라 운동량이 많아져 육질이 단단해서다. 마라도 가파도 같은 섬이 방파제 구실을 해 방어들이 잠시 쉴 만한 곳이기도 하다. 해역이 용암 암반층이어서 방어의 몸 단련에는 그만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이윤 연구관은 “마라도 가파도가 있는 주변 해역이 먹이사슬이 깨지지 않은 청정해역이라 방어들이 몰려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모슬포 방어지만 실상 마라도나 가파도 방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어장 형성이 주로 그곳에서 이뤄지기 때문. 게다가 가파도 사람들 절반 이상이 모슬포항으로 나와 살기 때문에 하나의 동네로 인정된다. ●도시민들 종종 ‘방어’와 ‘부시리’ 혼동 모슬포에서는 방어 부시리 멸치 참돔 벵에돔 벤자리 돌돔 고등어 삼치 가다랑어 등을 잡는다. 방어잡이는 11월부터 12월까지 약 두달간 계속된다. 소(小)방어는 30㎝ 미만, 중(中)방어는 60㎝ 정도에 2∼2.5㎏, 대(大)방어는 1m 이상 되는 크기다. 남방어류답게 부쩍부쩍 자라 2년생이면 중방어로 손색이 없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중방어가 맞춤하다. 도시민들은 종종 방어와 부시리를 혼동한다. 부시리 큰놈은 1m를 훌쩍 넘는데 살갗이 방어보다 희다. 강충범 서귀포 수중환경연합회장은 “제주도 사람은 사실 ‘히라스(잿방어)’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방어가 기름기 많고 물컹한 반면 잿방어는 담백하고 쫄깃하기 때문이다. 방어는 대중적인 횟감이다. 저렴한 가격에 등푸른 생선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으니 성장기 어린이나 청소년은 물론이고 산모들의 건강를 위해서도 권할 만하다. 축제 기간 내내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와 지역경제에도 도움을 준다. 방어횟집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은 방어를 먹으면서 싱싱하고 싼 가격에 그야말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비행기 삯을 빼고도 남겠다.”며 야단들이다. 모슬포에서 방어잡이를 하는 배는 모두 248척이며 대부분 3∼5t급이다. 축제부위원장을 맡고있는 나성무(54) 모슬포 어선주협회장은 “윗대 어른들부터 해오던 방식 그대로 잡고 있다.”고 전했다. 그 방어잡이의 핵심은 미끼다. 자리돔을 먹고 살기 때문에 출어 전에 자리들망으로 살아있는 자리돔을 잡아둬야 한다. 외줄낚시로 낚싯줄에 바늘을 1개만 매단다. 중층고기로 예전에 방어가 흔하던 시절에는 물 위에서도 방어떼가 보였다.“어군탐지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선장 역할이 중요했지요. 주로 선장의 노련한 감으로 잡았으니까요.” 이때 선장들은 물표가늠을 썼다. 먼 산과 가까운 산 등을 연결하여 자신의 위치를 삼각구도로 알아내 고기를 잡아올리곤 했다. 선장마다 자신의 기호도에 따라서 정하기 때문에 가늠은 제각각이다. 그래서 선장은 늘 두 사람 몫을 받았다. 배에는 보통 8∼13명이 타는데 잡은 고기는 여기에 7몫을 더하여 15∼20몫으로 분배한다. 가령 열명이 탔다면 17몫을 만들어 열명이 각각 1몫씩 가져가고, 나머지는 선장 2몫, 기관장 1.5몫, 나머지는 선주가 갖는 식이다. 선장은 아무나 못했다. 기상 여건 판단도 중요하고 어장 경험이 풍부해야 했다. 지금은 너나없이 어군탐지기를 사용해 이런 모습은 보기 어렵다.‘인간의 감’으로 잡는 어업에서 전자장비로 넘어왔으니 사실상 인간적인 어법은 종말을 고한 셈이다. 나 회장은 “짠 바닷물 맛이 세상사는 맛”이라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이를 “객객헌 바닷물 맛이 세상사는 맛이랭.”이란 남제주 토속어로 들려주었다. ●형편없는 가격에 어민들 울상 아무리 싱싱한 미끼를 들이밀어도 방어는 기분이 좋아야 문다고 한다.“낚시를 넣는 대로 잡히면 고기 씨가 마르고 말지요.” 탐지기로 움직임이 낱낱이 포착되는 현실이지만 방어의 기분에 따라 어획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동전화에 빗댄다면 누군가 은밀한 사생활을 엿듣는 것에 비교될까. 문득 ‘물고기의 사생활’이란 용어가 떠오름은 웬일일까. 하여간, 우리들 시대는 너무 정보가 많고, 그래선지 너무 지나칠 정도로 잡아들인다. 방어잡이배들은 보통 아침 5∼6시에 출항,17∼20시쯤 귀항한다. 힘들여 잡아와도 판로가 문제다. 그래서 4년여 전부터 모슬포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살리기 운동의 하나로 이 축제를 시작했다. 지금은 대정읍 개발협회가 주동이 되어 추진하고, 도와 시, 수협에서 지원금도 나온다. 올해만 1억 8000만원의 예산을 집행했다. 작년 기준 25만명의 관광객이 찾아들었는데, 그 중 외지인이 20만명이 넘는다. 낮에는 한산하지만 땅거미가 질 무렵부터 관광 일정을 끝낸 인파가 몰려든다. 각 단위어촌계에서 운영하는 가게마다 축제 기간에 통산 2000만∼3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문제는 형편없는 방어값.2∼3㎏ 정도 되는 1마리 값이 고작 2만원 선이다. 이전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방어의 60%가 모슬포산이었다. 그러나 싼 수입산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값이 폭락했다. 동해에서도 방어가 나기 때문에 제주도 방어의 판로가 문제가 되는 것. 그래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축제’로 열리게 됐다는 귀띔이다. 올해부터는 축제 기간도 3일에서 5일로 늘려잡았다. 방어는 얼음에 재워서 비행기로 운송한다. 문제는 이래 봐야 물류비도 안나오는 데 있다. 등푸른 생선 방어가 건강에 좋은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통통한 몸매에 품격있게 유영하며 푸른빛과 은빛을 조화시켜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일반인의 선호도가 높은 어종이다. 그러나 횟집에서 방어의 사촌격인 ‘히라스’로 초밥을 만들어 내도 일반인은 구분을 못한다. 생선에 관한 일반의 무지를 악이용해 대충 싸구려 수입어로 만든 초밥을 한마디로 ‘앵긴다.’는 설명이다.FTA협상이 타결되면 일본의 고품질 양식어류까지 밀려들 전망이다. 지금이야 관세율로 방어막을 치고 있지만 앞으로의 대책이 막연하다. 정부, 어민, 소비자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지난해 태풍 때, 모슬포 어민들은 배들이 좀 ‘깨져’ 없어지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배를 감축해야 하는데 인위적 감축이 어려우므로 차라리 자연의 힘으로 ‘왕창 깨버리면’ 남은 배들이나마 살게 될 것이란 서글픈 현실인식이다. 한마디로 한국 연안에 배가 너무 많다. 모든 배들이 어군탐지기를 매달아 바다밑을 샅샅이 훑고 있으니 종자가 남아 있기 어렵다. 무한정 배를 늘리고,‘싹쓸이’로 잡아들이게 한 정책이 빚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방어축제는 겨울 녹이는 ‘한 편의 드라마’ 방어회를 한 접시 시켰다. 살이 붉다. 히로시마대학에서 수산학을 전공한 국립수산과학원의 정달상 박사는 “흰살 생선을 선호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인은 붉은살 생선을 더 좋아한다.”고 설명한다. 삼치와 방어가 일본인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높게 치는 흰살 생선 넙치는 일본인에겐 별로다. 민족 간에 생선 선호도가 이렇게 다르다. 때로는 뜨거운 물에 방어를 살짝 익혀 껍질을 먹기도 한다. 껍질이 질겨서 먹을 수 없으므로 약간 데친 뒤 먹는다.‘샤부샤부’로도 먹는데 맛이 그만이다. 방어구이 맛도 색다르다. 머리 부분을 먹어보니 ‘볼따구’ 주변이 한결 맛있다. 탕은 미역이나 무를 넣고 끓이는데 매운탕, 맑은탕 모두 시원하다. 방어조림은 고등어조림과 흡사하다. 음식점 메뉴로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생선가스’도 그만이다. 살집이 풍부한 고기답게 ‘생선가스’로도 이점이 많다. 아직도 우리 해산물요리는 개발의 여지가 많다는 증거 아닐까. 방어축제에서는 방어만 뜨는 것이 아니다.1000여명에 이르는(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250여명) 잠녀들의 물질 경주도 볼 만하다. 물질경기에 나선 잠녀들에게는 자전거가 한대씩 주어졌다. 모슬포 아줌마들의 응원이 매운 바닷바람을 녹이고 있었다. 이래저래 방어축제는 겨울을 녹이는 한편의 드라마 같다. 이재수항쟁을 비롯, 제주도의 한을 안고 흐르는 옛 대정현인 이곳 모슬포항에는 백만 대군의 행진처럼 푸른등의 갑옷을 입은 방어들이 질주하며 바다를 온통 들썩이게 한다. 지금 모슬포로 달려가 그 푸름에 취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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