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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생에너지 22%·원전 37%로 확대…LNG는 전환기 완충 역할[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재생에너지 22%·원전 37%로 확대…LNG는 전환기 완충 역할[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석탄 줄이고 재생·원전 ‘조합’ 확대 재생에너지 변동성·원전의 경직성 LNG 발전, 두 전력원 취약점 대응 “원전파와 재생파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대화조차 안 합니다.” 국내의 한 연구기관 관계자가 전한 이 말에는 에너지 업계와 학계의 해묵은 반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무게추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사이를 오락가락했고, 그 틈에서 학계와 업계마저 반반으로 갈라졌다. 에너지 문제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국민적 분열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가 걸린 국가 생존의 문제다. 그 어느 국가보다도 불리한 대내외적 환경에 처한 대한민국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점을 맞춰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 최적의 에너지 믹스(전력원 구성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서울신문은 에너지·전력 전문가 40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걸 막기 위해 원전, 재생에너지 전문가 비율을 맞추는 것은 물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의 교수들에게 두루 의견을 물었다. 이들이 제시한 2030년 기준 최적의 에너지 믹스 비율을 평균 낸 결과 원자력은 36.7%, 액화천연가스(LNG) 25.4%, 석탄 13.6%, 재생에너지 21.8%로 나타났다. 지금보다 석탄 발전의 비중은 과감하게 줄이되,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함께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재생에너지·원전, 쏠림 아닌 믹스” 2024년 에너지 수급 동향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전력원별 비중은 원자력 31.7%, LNG 28.1%, 석탄 28.1%, 재생에너지 10.6%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2030년 기준 원자력(31.8%)과 재생에너지(18.8%) 비중은 늘리고 LNG(25.1%)와 석탄(17.2%)은 줄이도록 설계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보다 원자력은 4.9% 포인트, 재생에너지는 3.0% 포인트 각각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원전 활용도 병행하겠다는 정부 기조와도 궤를 같이한다. 대표적인 ‘탈원전주의자’로 분류된 김성환 환경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밝혔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최적의 LNG 비율(25.4%)은 전기본 목표치(25.1%)와 거의 같다. 허성윤 서울과기대 교수는 “재생에너지의 취약점인 변동성(간헐성)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때까지 LNG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려면 LNG 발전과 같은 유연성 전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원전처럼 가동을 멈추기 어려운 경직성 전원과 달리 유연성 전원은 시시각각 변하는 수요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다. LNG 발전의 탄소 배출은 석탄화력발전의 절반 정도다. ●새 정부 과제…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SMR·수소 투자 11차 전기본에 제시된 에너지 믹스 비율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이 나왔다. 실현 가능성이 ‘높다’(매우 높다 15%·높다 22.5%)와 ‘낮다’(매우 낮다 10%·낮다 27.5%)가 똑같이 37.5%로 집계됐다. 안석영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다양한 상황이 반영된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사용자, 전문가, 공급자 모두가 모여 협의해야 한다”며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계속 업데이트하고 이에 근거해 에너지 믹스 계획을 도출해야 한다”고 했다. 균등화발전비용은 발전 설비의 수명 주기(건설~폐기)에 걸친 비용을 집계한 것으로, 발전 단가의 기초가 된다.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달성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가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로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원전 추가 건설 ▲전력망 확충 ▲LNG 수입선 다변화 ▲수소 인프라 및 투자 확대 등이 꼽혔다. 오영국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은 “5년 내 단기적 관점에서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 확대가 현실적이며, 이에 따른 설비 확충과 기술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에너지 전략에서는 핵융합에너지 및 SMR 등 차세대 에너지 기술의 조기 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과감한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10명 중 7명은 “전기요금 현실화” 전력망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전력 수요와 발전설비 용량은 크게 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송전망 확충을 위해 필요한 조치(복수 응답)로 ▲지역주민 설득(75%) ▲강제성 있는 법령 제정(40%) ▲행정절차 간소화(35%) ▲반발 지역 보상 확대(35%) ▲재정 투입 확대(35%) 등을 꼽았다.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에너지 고속도로’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30년 서해안을 시작으로 2040년까지 전국을 ‘U자형’으로 잇는 해상 전력망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선 투자(35%·복수 응답), 어민 등 주민 설득(32.5%), 전담 정부기관 선정(30%) 등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력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전문가 10명 중 7명은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에 동의(매우 필요하다 35%·필요하다 35%)했다. 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5%,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은 7.5%를 기록했다. 인상 의견 가운데 57.1%는 가정용·산업용 요금을 모두 올려야 한다고 했으며, 40%는 가정용 요금만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전력시장 및 송배전망 개방(민영화)과 관련해선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37.5%)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조속히 개방해야 한다’(30%), ‘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25%)가 뒤를 이었다. ●“‘보수=원전, 진보=재생에너지’ 이분법 탈피” 한국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의 65%는 선언적인 목표인 만큼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반면 25%는 국가적 약속이므로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산업계의 RE100 추진 여건과 관련해선 미흡하다(매우 미흡하다 42.5%·미흡하다 47.5%)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보수는 원전, 진보는 재생에너지’라는 이분법의 제로섬 게임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래영 한국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바뀌어 국가적 손실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미래가 걸린 에너지 정책 수립에 대해서는 정파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웅혁 에너지안보환경협회 회장은 “에너지원별로 파편화되고 분절된 시각을 거두고 에너지 안보 차원의 종합적 관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신 분들 강창호(원자력정책연대), 김상훈(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선교(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김종규(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김종화(한국풍력에너지학회), 김진원(조선대), 김학노(원자력정책연대), 노동석(서울대), 민계홍(한국원자력산업회의), 박기철(원자력산업환경진흥협회), 박상덕(서울대), 박승일(한국원자력연구원), 박해균(경북대), 신현돈(인하대), 안석영(부산대), 안호선(인천대), 양수영(전 한국석유공사), 염화성(포항공대), 오영국(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유승훈(서울과기대), 유정석(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윤건수(포항공대), 윤순진(서울대), 윤지섭(한국원자력환경복원연구원), 임채준(한국원자력학회), 이동원(한국원자력연구원), 이웅혁(에너지안보환경협회), 이원호(고려대), 이현철(부산대), 임완빈(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 장동주(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장호현(한국원자력산업환경복원협회), 정래영(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정용훈(카이스트), 정재준(부산대), 조상민(한국공학대), 조영식(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조철희(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지성훈(한국원자력연구원), 탁태우(한국원자력연구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기후에너지부 ‘묘수’ 될까…“기후·산업 정책 통합” “충돌 우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기후에너지부 ‘묘수’ 될까…“기후·산업 정책 통합” “충돌 우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2050년 탄소중립 실현 이끌 기관 기후·에너지 대응 업무 점점 혼재 환경부·산업부 관련 부문 합칠 듯 이재명 정부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등 눈앞에 다가온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10년이 넘도록 에너지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며 ‘기후 악당’으로 평가받는데 기후에너지부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달 8일 기후에너지 태스크포스(TF)를 띄워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TF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이 골자인 국정과제를 점검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기후에너지부 설립에 대한 밑그림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에너지부는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며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에너지 믹스’를 주도할 예정이다. 환경부 기후변화 대응 부문과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정책 부문을 합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산업부와 환경부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 업무를 각각 나눠 담당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두 업무는 점점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 환경부가 바이오매스 에너지화 연구 및 생산을 지원하고, 산업부가 수소나 풍력·태양광발전을 지원하는 게 대표적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산업정책 추진체계 및 정부조직 개편 방안’을 통해 이원화된 현행 체계는 정책 추진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진단했다. 산업부는 태생적으로 산업 생태계 지원 및 국내 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하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의 94%를 차지하는 에너지·산업 부문을 관장하며 탄소중립을 우선순위에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 환경·사회적 전환을” “업무 합치면 규제에 규제 얹는 것” 서울신문이 에너지·전력 전문가 40인을 대상으로 한 심층 설문조사에서는 기후에너지부 신설 필요성에 대해 ‘필요하다’(50%)는 의견과 ‘불필요하다’(50%)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기후에너지부가 신설된다면 중점적으로 펼쳐야 할 정책(복수 응답)으로 ▲에너지 안보 강화(70%) ▲탄소중립 달성(50%) ▲에너지 종합로드맵 수립(45%)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에 대한 안정적인 전력 지원(45%) ▲원전의 미래에 대한 국민 공감대 형성(40%) 등이 꼽혔다. 기후에너지부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이들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에너지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탄소배출 대부분이 에너지 분야에서 이뤄지는 만큼 기후변화와 산업 대응을 하나로 합쳐 거버넌스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아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기후위기 대응은 생존의 문제로, 경제 논리가 지배했던 에너지 정책의 환경·사회적 전환을 위해 통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불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이 시너지를 내기보다는 서로 충돌해 결국 ‘옥상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제조업이 중심인 한국은 미래 산업을 어떻게 개발해 나갈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며 “산업과 밀접한 에너지 업무를 기후변화 대응 업무와 합치면 현행 규제에 기후 규제를 추가로 얹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재생에너지 22%·원전 37%로 확대…LNG는 전환기 완충 역할[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재생에너지 22%·원전 37%로 확대…LNG는 전환기 완충 역할[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원전파와 재생파는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대화조차 안 합니다.” 국내의 한 연구기관 관계자가 전한 이 말에는 에너지 업계와 학계의 해묵은 반목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의 무게추가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사이를 오락가락했고, 그 틈에서 학계와 업계마저 반반으로 갈라졌다. 에너지 문제가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국민적 분열로까지 번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에너지 정책은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가 걸린 국가 생존의 문제다. 그 어느 국가보다도 불리한 대내외적 환경에 처한 대한민국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균형점을 맞춰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 최적의 에너지 믹스(전력원 구성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서울신문은 에너지·전력 전문가 40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걸 막기 위해 원전, 재생에너지 전문가 비율을 맞추는 것은 물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의 교수들에게 두루 의견을 물었다. 이들이 제시한 2030년 기준 최적의 에너지 믹스 비율을 평균 낸 결과 원자력은 36.7%, 액화천연가스(LNG) 25.4%, 석탄 13.6%, 재생에너지 21.8%로 나타났다. 지금보다 석탄 발전의 비중은 과감하게 줄이되,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함께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재생에너지·원전, 쏠림 아닌 믹스”2024년 에너지 수급 동향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전력원별 비중은 원자력 31.7%, LNG 28.1%, 석탄 28.1%, 재생에너지 10.6%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은 2030년 기준 원자력(31.8%)과 재생에너지(18.8%) 비중은 늘리고 LNG(25.1%)와 석탄(17.2%)은 줄이도록 설계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이보다 원자력은 4.9% 포인트, 재생에너지는 3.0% 포인트 각각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원전 활용도 병행하겠다는 정부 기조와도 궤를 같이한다. 대표적인 ‘탈원전주의자’로 분류된 김성환 환경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적절한 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밝혔다. 전문가들이 내놓은 최적의 LNG 비율(25.4%)은 전기본 목표치(25.1%)와 거의 같다. 허성윤 서울과기대 교수는 “재생에너지의 취약점인 변동성(간헐성)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때까지 LNG는 어느 정도의 비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려면 LNG 발전과 같은 유연성 전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원전처럼 가동을 멈추기 어려운 경직성 전원과 달리 유연성 전원은 시시각각 변하는 수요에 따라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다. LNG 발전의 탄소 배출은 석탄화력발전의 절반 정도다. ●새 정부 과제…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SMR·수소 투자11차 전기본에 제시된 에너지 믹스 비율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이 나왔다. 실현 가능성이 ‘높다’(매우 높다 15%·높다 22.5%)와 ‘낮다’(매우 낮다 10%·낮다 27.5%)가 똑같이 37.5%로 집계됐다. 안석영 부산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다양한 상황이 반영된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사용자, 전문가, 공급자 모두가 모여 협의해야 한다”며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계속 업데이트하고 이에 근거해 에너지 믹스 계획을 도출해야 한다”고 했다. 균등화발전비용은 발전 설비의 수명 주기(건설~폐기)에 걸친 비용을 집계한 것으로, 발전 단가의 기초가 된다. 최적의 에너지 믹스를 달성하기 위해 이재명 정부가 시급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로는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한 원전 추가 건설 ▲전력망 확충 ▲LNG 수입선 다변화 ▲수소 인프라 및 투자 확대 등이 꼽혔다. 오영국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은 “5년 내 단기적 관점에서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 확대가 현실적이며, 이에 따른 설비 확충과 기술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에너지 전략에서는 핵융합에너지 및 SMR 등 차세대 에너지 기술의 조기 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과감한 투자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10명 중 7명은 “전기요금 현실화” 전력망 확충도 시급한 과제다. 전력 수요와 발전설비 용량은 크게 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이 부족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송전망 확충을 위해 필요한 조치(복수 응답)로 ▲지역주민 설득(75%) ▲강제성 있는 법령 제정(40%) ▲행정절차 간소화(35%) ▲반발 지역 보상 확대(35%) ▲재정 투입 확대(35%) 등을 꼽았다.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에너지 고속도로’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30년 서해안을 시작으로 2040년까지 전국을 ‘U자형’으로 잇는 해상 전력망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선 투자(35%·복수 응답), 어민 등 주민 설득(32.5%), 전담 정부기관 선정(30%) 등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력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전문가 10명 중 7명은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에 동의(매우 필요하다 35%·필요하다 35%)했다. 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5%, 인하해야 한다는 의견은 7.5%를 기록했다. 인상 의견 가운데 57.1%는 가정용·산업용 요금을 모두 올려야 한다고 했으며, 40%는 가정용 요금만 인상해야 한다고 했다. 전력시장 및 송배전망 개방(민영화)과 관련해선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37.5%)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조속히 개방해야 한다’(30%), ‘현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25%)가 뒤를 이었다. ●“‘보수=원전, 진보=재생에너지’ 이분법 탈피”한국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의 65%는 선언적인 목표인 만큼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반면 25%는 국가적 약속이므로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 산업계의 RE100 추진 여건과 관련해선 미흡하다(매우 미흡하다 42.5%·미흡하다 47.5%)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보수는 원전, 진보는 재생에너지’라는 이분법의 제로섬 게임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래영 한국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바뀌어 국가적 손실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미래가 걸린 에너지 정책 수립에 대해서는 정파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웅혁 에너지안보환경협회 회장은 “에너지원별로 파편화되고 분절된 시각을 거두고 에너지 안보 차원의 종합적 관점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신 분들 강창호(원자력정책연대), 김상훈(한국과학기술연구원), 김선교(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김종규(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김종화(한국풍력에너지학회), 김진원(조선대), 김학노(원자력정책연대), 노동석(서울대), 민계홍(한국원자력산업회의), 박기철(원자력산업환경진흥협회), 박상덕(서울대), 박승일(한국원자력연구원), 박해균(경북대), 신현돈(인하대), 안석영(부산대), 안호선(인천대), 양수영(전 한국석유공사), 염화성(포항공대), 오영국(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유승훈(서울과기대), 유정석(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윤건수(포항공대), 윤순진(서울대), 윤지섭(한국원자력환경복원연구원), 임채준(한국원자력학회), 이동원(한국원자력연구원), 이웅혁(에너지안보환경협회), 이원호(고려대), 이현철(부산대), 임완빈(한국신재생에너지협회), 장동주(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장호현(한국원자력산업환경복원협회), 정래영(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정용훈(카이스트), 정재준(부산대), 조상민(한국공학대), 조영식(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조철희(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지성훈(한국원자력연구원), 탁태우(한국원자력연구원)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기후에너지부 ‘묘수’ 될까…“기후·산업 정책 통합” “충돌 우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기후에너지부 ‘묘수’ 될까…“기후·산업 정책 통합” “충돌 우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이재명 정부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등 눈앞에 다가온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10년이 넘도록 에너지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며 ‘기후 악당’으로 평가받는데 기후에너지부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지난달 8일 기후에너지 태스크포스(TF)를 띄워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TF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이 골자인 국정과제를 점검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기후에너지부 설립에 대한 밑그림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에너지부는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며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에너지 믹스’를 주도할 예정이다. 환경부 기후변화 대응 부문과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 정책 부문을 합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산업부와 환경부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 업무를 각각 나눠 담당했으나, 시간이 지나며 두 업무는 점점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 환경부가 바이오매스 에너지화 연구 및 생산을 지원하고, 산업부가 수소나 풍력·태양광발전을 지원하는 게 대표적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산업정책 추진체계 및 정부조직 개편 방안’을 통해 이원화된 현행 체계는 정책 추진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진단했다. 산업부는 태생적으로 산업 생태계 지원 및 국내 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하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의 94%를 차지하는 에너지·산업 부문을 관장하며 탄소중립을 우선순위에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에너지 정책, 환경·사회적 전환을” “업무 합치면 규제에 규제 얹는 것”서울신문이 에너지·전력 전문가 40인을 대상으로 한 심층 설문조사에서는 기후에너지부 신설 필요성에 대해 ‘필요하다’(50%)는 의견과 ‘불필요하다’(50%)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기후에너지부가 신설된다면 중점적으로 펼쳐야 할 정책(복수 응답)으로 ▲에너지 안보 강화(70%) ▲탄소중립 달성(50%) ▲에너지 종합로드맵 수립(45%)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에 대한 안정적인 전력 지원(45%) ▲원전의 미래에 대한 국민 공감대 형성(40%) 등이 꼽혔다. 기후에너지부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이들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에너지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탄소배출 대부분이 에너지 분야에서 이뤄지는 만큼 기후변화와 산업 대응을 하나로 합쳐 거버넌스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보아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기후위기 대응은 생존의 문제로, 경제 논리가 지배했던 에너지 정책의 환경·사회적 전환을 위해 통합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불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이 시너지를 내기보다는 서로 충돌해 결국 ‘옥상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제조업이 중심인 한국은 미래 산업을 어떻게 개발해 나갈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며 “산업과 밀접한 에너지 업무를 기후변화 대응 업무와 합치면 현행 규제에 기후 규제를 추가로 얹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새와 부딪혔을 뿐인데”…1700억짜리 여객기, 조류 충돌로 박살났다 (영상)

    “새와 부딪혔을 뿐인데”…1700억짜리 여객기, 조류 충돌로 박살났다 (영상)

    스페인 공항에서 이륙하려던 여객기가 새와 충돌해 공항으로 강제 복귀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3일(현지시간) 스페인에서 가장 큰 공항인 아돌포 수아레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서 이륙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이베리아 항공 IB579편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여객기는 이륙 후 2000m 상공까지 올라갔으나 몸집이 큰 조류와 기수 부분이 충돌하면서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종사는 공항 측에 회항을 요청했고 이내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마드리드로 회항한 비행기의 기수 부분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기체가 조류와 충돌할 경우 발생하는 피해는 작은 구멍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사고는 기수의 절반을 완전히 부술 정도로 심한 손상이 발생했다. 사고기의 기종은 에어버스 A321XLR 이었으며, 다행히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항공사 측은 “조류 충돌로 인해 기수 레이돔(비행기 기수 부분에 있는 둥근 외피 구조물)과 기상 레이더 안테나가 손상됐다”고 밝혔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최신 기종에 속하는 에어버스 A321 항공기가 초기 상승 단계에서 조류 충돌이 발생했다”면서 “새는 먼저 기상 레이더를 보호하는 기수 레이돔과 충돌했고 이후 왼쪽 엔진에 빨려 들어갔다”고 전했다. 또 “이륙 후 약 20분 만에 부상자 등이 없이 안전하게 회항했으며 현재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고기인 에어버스 A321XLR의 정확한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소 1억 2000만 달러(한화 약 1700억 원)로 추정된다. 조류 충돌은 항공업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위험 요소다. 주요 공항들은 활주로 인근에서 조류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다양한 야생동물 관리 조치를 시행한다. 그럼에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통계에 따르면 2011~2014년 전 세계적으로 약 6만 5000건 이상의 조류 충돌 신고가 접수됐다. 한국 국토교통부는 국내 항공기 조류 충돌 사고가 2017년 218건에서 2023년 433건으로 6년 만에 거의 2배로 증가했다고 발표했었다. 미국에서도 2023년 한 해에 만 조류 충돌 신고가 1만 8394건에 달하며 이는 전체 야생동물 충돌 사고 중 94%를 차지한다. 조류 충돌은 주로 이착륙 과정에서 발생하며 비행 1만 번 당 3~8회 정도 충돌 사고가 보고되고 있다.
  • (영상) 조류 충돌로 박살 난 1700억짜리 비행기…“새와 부딪혔을 뿐인데” [포착]

    (영상) 조류 충돌로 박살 난 1700억짜리 비행기…“새와 부딪혔을 뿐인데” [포착]

    스페인 공항에서 이륙하려던 여객기가 새와 충돌해 공항으로 강제 복귀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3일(현지시간) 스페인에서 가장 큰 공항인 아돌포 수아레스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서 이륙해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이베리아 항공 IB579편은 이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여객기는 이륙 후 2000m 상공까지 올라갔으나 몸집이 큰 조류와 기수 부분이 충돌하면서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조종사는 공항 측에 회항을 요청했고 이내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마드리드로 회항한 비행기의 기수 부분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기체가 조류와 충돌할 경우 발생하는 피해는 작은 구멍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사고는 기수의 절반을 완전히 부술 정도로 심한 손상이 발생했다. 사고기의 기종은 에어버스 A321XLR 이었으며, 다행히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항공사 측은 “조류 충돌로 인해 기수 레이돔(비행기 기수 부분에 있는 둥근 외피 구조물)과 기상 레이더 안테나가 손상됐다”고 밝혔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최신 기종에 속하는 에어버스 A321 항공기가 초기 상승 단계에서 조류 충돌이 발생했다”면서 “새는 먼저 기상 레이더를 보호하는 기수 레이돔과 충돌했고 이후 왼쪽 엔진에 빨려 들어갔다”고 전했다. 또 “이륙 후 약 20분 만에 부상자 등이 없이 안전하게 회항했으며 현재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사고기인 에어버스 A321XLR의 정확한 가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소 1억 2000만 달러(한화 약 1700억 원)로 추정된다. 조류 충돌은 항공업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위험 요소다. 주요 공항들은 활주로 인근에서 조류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다양한 야생동물 관리 조치를 시행한다. 그럼에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통계에 따르면 2011~2014년 전 세계적으로 약 6만 5000건 이상의 조류 충돌 신고가 접수됐다. 한국 국토교통부는 국내 항공기 조류 충돌 사고가 2017년 218건에서 2023년 433건으로 6년 만에 거의 2배로 증가했다고 발표했었다. 미국에서도 2023년 한 해에 만 조류 충돌 신고가 1만 8394건에 달하며 이는 전체 야생동물 충돌 사고 중 94%를 차지한다. 조류 충돌은 주로 이착륙 과정에서 발생하며 비행 1만 번 당 3~8회 정도 충돌 사고가 보고되고 있다.
  • 발전소와 산단, 최대한 가깝게…‘에너지 섬’ 대만의 생존전략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발전소와 산단, 최대한 가깝게…‘에너지 섬’ 대만의 생존전략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전력망 고립 한국과 비슷했던 대만 지진도 잦아…원전 건설 쉽지않아 재생에너지 비중 8년만에 3배 증가 석탄·천연가스 등 해외 의존은 낮춰 “7년 전 쯤부터 풍력 발전기가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이 단지에만 69기의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어요.” 지난달 9일 대만 먀오리현의 포모사 해상풍력단지 인근 해안가. 이곳에서 타코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쥔씨는 “백사장은 물론 바다 위에도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병풍처럼 들어섰다”고 말했다. 2개 단지로 이뤄진 포모사 해상풍력은 발전 설비용량이 각각 128㎿(메가와트), 376㎿ 규모다. 연간 17억 7000만 kWh(킬로와트시) 전력이 생산되는데, 이는 50만 가구가 한 해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발전량이다. 초대형 태풍 다나스가 대만 서해안을 강타했지만,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발전기 블레이드는 유유히 돌아가고 있었다. 차량으로 타이베이에서 타이난까지 3시간 가량을 달리는 동안 300여m 간격으로 설치된 풍력발전기 400여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포모사 단지에서 70㎞ 떨어진 곳에는 495㎿급 펑먀오 해상풍력단지 조성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구글, UMC 등 5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에 공급될 예정이다. 발전소와 기업들 간 거리는 불과 40~60㎞. 송전 거리가 짧은 이점 때문에 2027년에야 완공될 예정인데도 벌써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기업 간 전력구매계약’(CPPA)을 체결했다. 대만은 한국과 달리 한국전력과 같은 독점적 공기업을 거치지 않고 수요자와 생산자가 직접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창화 해상풍력단지, TSMC와 계약반도체공장·발전소 간 거리 160km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230~280km‘최단거리 송전’ 등 에너지 전략 구축 발전 설비용량이 원전 2기보다 큰 2.4GW(기가와트)에 이르는 창화 해상풍력단지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했다. 발전소와 반도체 생산공장(팹) 간 거리는 약 160㎞다. 대만에선 비교적 먼 거리이지만, 한국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동해안 발전소 간 송전선로 길이가 230~280㎞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짧다. 10년 전만 해도 대만은 전체 에너지원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해 온 화석연료에 의존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대만 정부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본격 추진했다. 2016년 전체 발전에서 4.1%에 불과했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4년 약 11.9%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력망이 고립돼 있고 석탄과 천연가스 등 에너지원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 지진이 잦아 원전을 맘대로 지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만의 에너지 전략은 ▲재생에너지 확대 ▲전기 수요 기업과 발전사 간 직접 구매계약 활성화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한 최단거리 송전망 구축으로 요약된다. 대만 최대 첨단산업 단지인 신주과학단지는 팹과 사무동, 주차장 등 건물 곳곳에 소규모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일부 팹 사이에는 송전탑이 솟아 있었는데, 단지 내부에서 생산한 전력을 자체 소비하는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은 유사시를 대비해 발전사와 비공개 CPPA도 체결한다고 한다. 한국에너지공단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만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때 CPPA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기준 81%에 이른다. 한국은 4%에 불과하다. TSMC는 대만 북부와 남부 양측에 탄탄한 전력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한쪽이 부족하면 다른 쪽에서 보완하는 ‘분산형’ 구조다. TSMC의 2023년 전력 소비량은 약 250억 kWh다. 이는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의 약 8.9%에 해당한다. 올해는 12.5%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신주과학단지에서 만난 TSMC 관계자는 “북쪽 공장에서 전력 문제가 생기면 남쪽에서 끌어 올 수 있다”면서 “아직까지 전력 부족을 걱정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타이난 치구 지역의 22㎿급 다푸 태양광 발전소도 비슷했다. 훙더에너지(HDRE)가 운영하는 이 단지는 18㏊ 규모로, 부지 내에 자체 변전소를 두고 인근 산업단지와 주거지에 연간 340만 kWh의 전력을 공급한다. 우준이 총괄디렉터는 “대만에선 발전소와 수요처 간 거리가 100㎞ 이상인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대만도 과거에는 한국처럼 발전소가 많은 남부에서 생산한 전력을 산업단지가 밀집한 북부로 장거리 송전하는 중앙집중형 전력망 구조였다. 그러나 전력망 불안에 정전 사고가 이어지자 분산형 송전체계 구축에 행정력을 집중했다. 2016년에는 발전소가 밀집한 타이난 지역에 대규모 과학단지 확장 계획을 세웠으며, 지금은 북부의 신주과학단지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전력 공기업인 타이파워는 2022년 ‘전력망 회복탄력성 강화 건설계획’을 수립한 뒤 전국 곳곳에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설치하고 근거리 송전망을 강화하는 등 탈중앙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RE100’(재생에너지 100%) 달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마지막 원전인 ‘마안산 2호기’가 가동을 멈추면서 대만은 완전한 탈원전 국가가 됐다. 2016년 탈원전 선언 후 9년 만의 성과다. 전체 전력의 약 10%를 차지하던 원전 비중은 이제 0%다. 2022년 대만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5년 20%, 2030년 30%, 2050년에는 60~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해상풍력 설비용량은 2035년 20GW까지 늘리고 태양광 설비용량은 2050년 80GW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TSMC는 최근 자체 RE100 달성 시점을 2050년에서 2040년으로 10년이나 앞당겼다. 오는 23일 마안산 2호기 재가동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지만, 정부와 산업계는 동요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이미 굳건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천야오밍 국립대만대 교수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큰 대만이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재생에너지 확대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어클릭 ●발전(설비)용량 = 발전소가 최대로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출력량). 킬로와트(㎾), 메가와트(㎿) 등으로 표시된다. ●발전량 = 발전소가 일정 기간 동안 생산한 전력의 총량. ●CPPA(Corporate Power Purchase Agreement) = 기업 간 전력구매계약. 전력 수요자인 기업이 직접 발전사업자와 전력 구매계약을 체결하는 방식. 대만 에너지국 대변인 “핵폐기물 처리·사회적 합의 갖춰야 원전 재가동 가능”23일 마안산 2호 재가동 국민투표찬성표 많아도 ‘3대 조건 충족’ 강조“원전, 전체 발전량 비중 3%에 불과”탈원전, 전기요금 인상 우려 선 그어 “핵폐기물 처리 대책, 안전성 확보, 그리고 사회적 합의라는 3개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만 원전 재가동이 가능할 것입니다.” 대만 경제부 에너지국의 우즈웨이 부국장 겸 대변인은 지난달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원전 재가동 여부는 단순히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투표에서 재가동 찬성표가 많이 나오더라도 즉각 재가동하는 게 아니라 3대 조건이 충족돼야만 원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대만은 오는 23일 마지막 원전인 ‘마안산 2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우 대변인은 “대만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면서도 “투표 이후 실질적 조치는 관할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관련 법령 정비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이후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우 대변인은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우려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원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했다”면서 “원전 가동 여부보다는 오히려 국제 연료 가격의 변동성이 전기요금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대만은 2018년부터 총 6기의 원전을 순차적으로 폐쇄해 왔다. 지난 5월 마안산 2호기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탈원전’을 완성했다. 우 대변인은 “대만은 국토 면적이 좁고, 지진 발생 위험이 큰 지형적 특징을 가진 나라”라며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부지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에 원자력 사용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오랫동안 있었다”고 말했다. 대만 정부는 2016년 원자력 정책을 전면 재검토했으며, 원전 6기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9년 만에 탈원전을 이룬 셈이다. 우 대변인은 대만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26년까지 20%, 2030년에는 30%, 2050년에는 60~70%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면서 “이를 위해 민간 발전기업의 사업 참여를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 사업자들이 인허가를 획득할 때 여러 부처를 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태양광과 풍력 등 에너지원 별로 범정부 단일 접수창구를 운영하고, 신청 서류를 최대한 간소화했으며, 사업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사전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대변인은 “대만의 재생에너지 시스템은 ‘정부가 방향을 정하고, 국영기업이 선도하며, 민간이 적극 참여하는 유기적 구조”라면서 “태양광과 해상풍력은 민간 부문 발전량이 전체의 90%에 이른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타이완) 명종원 기자
  •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전력망 하세월…불 꺼진 ‘깡통 팹’ 위기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전력망 하세월…불 꺼진 ‘깡통 팹’ 위기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공장 설립 2027년까지 원전3기 전력 확보해야 지역 반발에 발전소 부지도 못정해 동·서해안 송전선 사업도 지연 우려 ‘전기 안 들어오는 반도체 클러스터?’ 2027년 1호 반도체 제조공장(팹) 가동을 목표로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력 공급이 제때 이뤄지 않아 자칫 반도체 생산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백조원을 들여 공장을 지어도 가동을 못하는 ‘깡통 팹’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정상 가동되기 위해선 우선 2027년까지 원전 3기 발전용량에 해당하는 3GW(기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2030년까지 6GW, 2053년까지는 10GW 이상의 전력과 이를 실어 나를 대규모 송전망이 필요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국가산단과 일반산단으로 나뉜다. 728만㎡에 이르는 국가산단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6기, 협력사 60여개가 들어서고, 415만㎡ 규모의 일반산단에는 SK하이닉스 공장 4기 등이 설립된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국가산단에는 동서발전, 남부발전, 서부발전 등 한전 자회사 3개가 각각 1GW급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순차 건설해 2030년부터 3GW를 공급할 계획이다. LNG 발전소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27년 12월 착공 예정이지만, 지역 주민 반발 때문에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 발전소 부지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일반산단 상황은 더 촉박하다. 첫 가동 시점인 2027년에 맞춰 ‘신안성~동용인’ 송전선로를 구축해 충남 당진·태안 등 서해안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 3GW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중 전력구 공사와 변전소 설치가 한창이다. 그러나 추가 전력 확보를 위한 동해안, 서해안 송전선로는 각각 2027년 12월과 2038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는데, 전문가들은 사업이 이미 수차례 연기돼 왔다는 점을 들어 더 늦어질 것으로 본다. 팹 가동률이 낮은 초기에는 그럭저럭 전력 수급을 맞출 수 있더라도 전체 팹이 돌아가야 할 시점에는 전력은 물론 송전선로가 턱 없이 부족할 수 있다. 원전, 태양광, 풍력 등 신규 발전소 건립에 5~1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송전망 구축도 제때 이뤄진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그동안 진행된 동해안~신가평, 당진화력~신송산, 신당진~북당진, 신시흥~신송도 송전 사업이 계획대로라면 모두 완공됐어야 하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북당진~신탕정’ 구간은 12년가량 늦어진 지난해 말에서야 공사가 마무리됐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외에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천안, 구미, 청주, 포항, 새만금, 울산 등지에 계획된 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는 2026~2030년 조성을 목표로 하지만 뾰족한 전력 공급 계획은 없다. 송승호 광운대 교수는 “계획대로 준공된 송전선로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다”면서 “한전이 송전 사업을 독점하는 구조도 송전망 확충 속도를 늦추는 요인인 만큼 민간 개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전망 위기, 이재명표 ‘에너지고속도로’ 해법될까‘U자형’ 전국 잇는 해상 전력망서해안 사업비만 11조원 전망발전단지·수요처 근접화도 필요“100조 안정적 예산 확보 시급” 이재명 정부의 송전망 확충 사업인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은 학계와 산업계 모두가 대체로 필요성을 인정한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재원 조달계획, 전력 수요처와 발전단지의 근접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2030년 서해안을 시작으로 2040년까지 전국을 ‘U자형’으로 잇는 해상 전력망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서남해와 남해를 거쳐 경북 동해안까지 순차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첫 공사 구간은 새만금~서화성(220㎞)이다. 2038년까지 신해남∼태안∼서인천(430㎞), 새만금∼태안∼영흥(190㎞) 구간이 차례로 조성된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리지만 U자형 전력망을 완성하려면 100조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국내 발전업계는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음에도 이를 실어 나를 송전망이 부족해 감발(減發)하는 실정이다. 전력망에 접속하지 못하는 ‘접속 대기 전력’ 규모는 약 8.9GW(기가와트)로, 원전 9기의 발전용량과 맞먹는다. 이 같은 미스매치는 비수도권에서 대다수 전력을 생산하고, 수도권이 전력 대부분을 소비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지난해 수도권의 에너지 자급률은 0.66(66%)으로, 강원권(1.53), 영남권(1.45), 충청권(1.23), 호남권(1.31) 등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첫 단추 격인 서해안 사업비만 11조 5000억원이 들 것으로 보이는데, 한전이 혼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면서 “정부의 재정 투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재원 조달을 위해 전력망을 민영화한다면 국민 저항이 심할 수 있다”며 “전력망 운영은 당분간 한전이 전담하되 민간 발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순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전력 수요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기업 등 전력 수요처를 지방으로 이전하면 송전망 수요를 줄이고 균형 발전도 추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기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도 “지역별 에너지 가격 차등제를 도입하거나 송전선이 지나는 지역 주민에게 충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송전선로를 먼저 깔고 발전소를 지어야 하는데, 지금은 전국에 흩어진 발전단지를 모두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라면서 “사업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타이완) 명종원 기자
  • 발전소와 산단, 최대한 가깝게…‘에너지 섬’ 대만의 생존전략[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발전소와 산단, 최대한 가깝게…‘에너지 섬’ 대만의 생존전략[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7년 전 쯤부터 풍력 발전기가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이 단지에만 69기의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어요.” 지난달 9일 대만 먀오리현의 포모사 해상풍력단지 인근 해안가. 이곳에서 타코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쥔씨는 “백사장은 물론 바다 위에도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병풍처럼 들어섰다”고 말했다. 2개 단지로 이뤄진 포모사 해상풍력은 발전 설비용량이 각각 128㎿(메가와트), 376㎿ 규모다. 연간 17억 7000만 ◇(킬로와트시) 전력이 생산되는데, 이는 50만 가구가 한 해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발전량이다. 초대형 태풍 다나스가 대만 서해안을 강타했지만, 바다 위에 우뚝 솟은 발전기 블레이드는 유유히 돌아가고 있었다. 차량으로 타이베이에서 타이난까지 3시간 가량을 달리는 동안 300여m 간격으로 설치된 풍력발전기 400여기가 끝없이 이어졌다. 포모사 단지에서 70㎞ 떨어진 곳에는 495㎿급 펑먀오 해상풍력단지 조성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구글, UMC 등 5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에 공급될 예정이다. 발전소와 기업들 간 거리는 불과 40~60㎞. 송전 거리가 짧은 이점 때문에 2027년에야 완공될 예정인데도 벌써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기업 간 전력구매계약’(CPPA)을 체결했다. 대만은 한국과 달리 한국전력과 같은 독점적 공기업을 거치지 않고 수요자와 생산자가 직접 재생에너지 구매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창화 해상풍력단지, TSMC와 계약반도체공장·발전소 간 거리 160km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230~280km‘최단거리 송전’ 등 에너지 전략 구축 발전 설비용량이 원전 2기보다 큰 2.4GW(기가와트)에 이르는 창화 해상풍력단지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했다. 발전소와 반도체 생산공장(팹) 간 거리는 약 160㎞다. 대만에선 비교적 먼 거리이지만, 한국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동해안 발전소 간 송전선로 길이가 230~280㎞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짧다. 10년 전만 해도 대만은 전체 에너지원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해 온 화석연료에 의존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대만 정부는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본격 추진했다. 2016년 전체 발전에서 4.1%에 불과했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4년 약 11.9%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대만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력망이 고립돼 있고 석탄과 천연가스 등 에너지원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 지진이 잦아 원전을 맘대로 지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만의 에너지 전략은 ▲재생에너지 확대 ▲전기 수요 기업과 발전사 간 직접 구매계약 활성화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한 최단거리 송전망 구축으로 요약된다. 대만 최대 첨단산업 단지인 신주과학단지는 팹과 사무동, 주차장 등 건물 곳곳에 소규모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일부 팹 사이에는 송전탑이 솟아 있었는데, 단지 내부에서 생산한 전력을 자체 소비하는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은 유사시를 대비해 발전사와 비공개 CPPA도 체결한다고 한다. 한국에너지공단과 블룸버그에 따르면 대만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할 때 CPPA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기준 81%에 이른다. 한국은 4%에 불과하다. TSMC는 대만 북부와 남부 양측에 탄탄한 전력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한쪽이 부족하면 다른 쪽에서 보완하는 ‘분산형’ 구조다. TSMC의 2023년 전력 소비량은 약 250억 다. 이는 대만 전체 전력 소비량의 약 8.9%에 해당한다. 올해는 12.5%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신주과학단지에서 만난 TSMC 관계자는 “북쪽 공장에서 전력 문제가 생기면 남쪽에서 끌어 올 수 있다”면서 “아직까지 전력 부족을 걱정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타이난 치구 지역의 22㎿급 다푸 태양광 발전소도 비슷했다. 훙더에너지(HDRE)가 운영하는 이 단지는 18㏊ 규모로, 부지 내에 자체 변전소를 두고 인근 산업단지와 주거지에 연간 340만 ◇의 전력을 공급한다. 우준이 총괄디렉터는 “대만에선 발전소와 수요처 간 거리가 100㎞ 이상인 경우가 드물다”고 말했다. 대만도 과거에는 한국처럼 발전소가 많은 남부에서 생산한 전력을 산업단지가 밀집한 북부로 장거리 송전하는 중앙집중형 전력망 구조였다. 그러나 전력망 불안에 정전 사고가 이어지자 분산형 송전체계 구축에 행정력을 집중했다. 2016년에는 발전소가 밀집한 타이난 지역에 대규모 과학단지 확장 계획을 세웠으며, 지금은 북부의 신주과학단지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전력 공기업인 타이파워는 2022년 ‘전력망 회복탄력성 강화 건설계획’을 수립한 뒤 전국 곳곳에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설치하고 근거리 송전망을 강화하는 등 탈중앙화를 추진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RE100’(재생에너지 100%) 달성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5월 마지막 원전인 ‘마안산 2호기’가 가동을 멈추면서 대만은 완전한 탈원전 국가가 됐다. 2016년 탈원전 선언 후 9년 만의 성과다. 전체 전력의 약 10%를 차지하던 원전 비중은 이제 0%다. 2022년 대만 정부가 발표한 ‘2050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비중을 2025년 20%, 2030년 30%, 2050년에는 60~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해상풍력 설비용량은 2035년 20GW까지 늘리고 태양광 설비용량은 2050년 80GW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TSMC는 최근 자체 RE100 달성 시점을 2050년에서 2040년으로 10년이나 앞당겼다. 오는 23일 마안산 2호기 재가동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지만, 정부와 산업계는 동요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이미 굳건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천야오밍 국립대만대 교수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큰 대만이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재생에너지 확대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어클릭 ●발전(설비)용량 = 발전소가 최대로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출력량). 킬로와트(㎾), 메가와트(㎿) 등으로 표시된다. ●발전량 = 발전소가 일정 기간 동안 생산한 전력의 총량. ●CPPA(Corporate Power Purchase Agreement) = 기업 간 전력구매계약. 전력 수요자인 기업이 직접 발전사업자와 전력 구매계약을 체결하는 방식. 대만 에너지국 대변인 “핵폐기물 처리·사회적 합의 갖춰야 원전 재가동 가능”23일 마안산 2호 재가동 국민투표찬성표 많아도 ‘3대 조건 충족’ 강조“원전, 전체 발전량 비중 3%에 불과”탈원전, 전기요금 인상 우려 선 그어 “핵폐기물 처리 대책, 안전성 확보, 그리고 사회적 합의라는 3개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만 원전 재가동이 가능할 것입니다.” 대만 경제부 에너지국의 우즈웨이 부국장 겸 대변인은 지난달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원전 재가동 여부는 단순히 국민투표에 의해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국민투표에서 재가동 찬성표가 많이 나오더라도 즉각 재가동하는 게 아니라 3대 조건이 충족돼야만 원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대만은 오는 23일 마지막 원전인 ‘마안산 2호기’의 재가동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우 대변인은 “대만 정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면서도 “투표 이후 실질적 조치는 관할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관련 법령 정비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이후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우 대변인은 탈원전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우려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원전이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했다”면서 “원전 가동 여부보다는 오히려 국제 연료 가격의 변동성이 전기요금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설명했다. 대만은 2018년부터 총 6기의 원전을 순차적으로 폐쇄해 왔다. 지난 5월 마안산 2호기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탈원전’을 완성했다. 우 대변인은 “대만은 국토 면적이 좁고, 지진 발생 위험이 큰 지형적 특징을 가진 나라”라며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부지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에 원자력 사용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오랫동안 있었다”고 말했다. 대만 정부는 2016년 원자력 정책을 전면 재검토했으며, 원전 6기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9년 만에 탈원전을 이룬 셈이다. 우 대변인은 대만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26년까지 20%, 2030년에는 30%, 2050년에는 60~70%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면서 “이를 위해 민간 발전기업의 사업 참여를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간 사업자들이 인허가를 획득할 때 여러 부처를 오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태양광과 풍력 등 에너지원 별로 범정부 단일 접수창구를 운영하고, 신청 서류를 최대한 간소화했으며, 사업자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사전 체크리스트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대변인은 “대만의 재생에너지 시스템은 ‘정부가 방향을 정하고, 국영기업이 선도하며, 민간이 적극 참여하는 유기적 구조”라면서 “태양광과 해상풍력은 민간 부문 발전량이 전체의 90%에 이른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타이완) 명종원 기자
  •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전력망 하세월…불 꺼진 ‘깡통 팹’ 위기[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전력망 하세월…불 꺼진 ‘깡통 팹’ 위기[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전기 안 들어오는 반도체 클러스터?’ 2027년 1호 반도체 제조공장(팹) 가동을 목표로 추진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전력 공급이 제때 이뤄지 않아 자칫 반도체 생산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백조원을 들여 공장을 지어도 가동을 못하는 ‘깡통 팹’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정상 가동되기 위해선 우선 2027년까지 원전 3기 발전용량에 해당하는 3GW(기가와트) 규모의 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2030년까지 6GW, 2053년까지는 10GW 이상의 전력과 이를 실어 나를 대규모 송전망이 필요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국가산단과 일반산단으로 나뉜다. 728만㎡에 이르는 국가산단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6기, 협력사 60여개가 들어서고, 415만㎡ 규모의 일반산단에는 SK하이닉스 공장 4기 등이 설립된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국가산단에는 동서발전, 남부발전, 서부발전 등 한전 자회사 3개가 각각 1GW급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소를 순차 건설해 2030년부터 3GW를 공급할 계획이다. LNG 발전소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27년 12월 착공 예정이지만, 지역 주민 반발 때문에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아직 발전소 부지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일반산단 상황은 더 촉박하다. 첫 가동 시점인 2027년에 맞춰 ‘신안성~동용인’ 송전선로를 구축해 충남 당진·태안 등 서해안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 3GW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중 전력구 공사와 변전소 설치가 한창이다. 그러나 추가 전력 확보를 위한 동해안, 서해안 송전선로는 각각 2027년 12월과 2038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는데, 전문가들은 사업이 이미 수차례 연기돼 왔다는 점을 들어 더 늦어질 것으로 본다. 팹 가동률이 낮은 초기에는 그럭저럭 전력 수급을 맞출 수 있더라도 전체 팹이 돌아가야 할 시점에는 전력은 물론 송전선로가 턱 없이 부족할 수 있다. 원전, 태양광, 풍력 등 신규 발전소 건립에 5~1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송전망 구축도 제때 이뤄진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그동안 진행된 동해안~신가평, 당진화력~신송산, 신당진~북당진, 신시흥~신송도 송전 사업이 계획대로라면 모두 완공됐어야 하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북당진~신탕정’ 구간은 12년가량 늦어진 지난해 말에서야 공사가 마무리됐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외에 대규모 전력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천안, 구미, 청주, 포항, 새만금, 울산 등지에 계획된 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는 2026~2030년 조성을 목표로 하지만 뾰족한 전력 공급 계획은 없다. 송승호 광운대 교수는 “계획대로 준공된 송전선로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다”면서 “한전이 송전 사업을 독점하는 구조도 송전망 확충 속도를 늦추는 요인인 만큼 민간 개방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전망 위기, 이재명표 ‘에너지고속도로’ 해법될까 ‘U자형’ 전국 잇는 해상 전력망서해안 사업비만 11조원 전망발전단지·수요처 근접화도 필요“100조 안정적 예산 확보 시급” 이재명 정부의 송전망 확충 사업인 ‘에너지 고속도로’ 정책은 학계와 산업계 모두가 대체로 필요성을 인정한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재원 조달계획, 전력 수요처와 발전단지의 근접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에너지 고속도로는 2030년 서해안을 시작으로 2040년까지 전국을 ‘U자형’으로 잇는 해상 전력망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서남해와 남해를 거쳐 경북 동해안까지 순차적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첫 공사 구간은 새만금~서화성(220㎞)이다. 2038년까지 신해남∼태안∼서인천(430㎞), 새만금∼태안∼영흥(190㎞) 구간이 차례로 조성된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리지만 U자형 전력망을 완성하려면 100조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국내 발전업계는 더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음에도 이를 실어 나를 송전망이 부족해 감발(減發)하는 실정이다. 전력망에 접속하지 못하는 ‘접속 대기 전력’ 규모는 약 8.9GW(기가와트)로, 원전 9기의 발전용량과 맞먹는다. 이 같은 미스매치는 비수도권에서 대다수 전력을 생산하고, 수도권이 전력 대부분을 소비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지난해 수도권의 에너지 자급률은 0.66(66%)으로, 강원권(1.53), 영남권(1.45), 충청권(1.23), 호남권(1.31) 등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첫 단추 격인 서해안 사업비만 11조 5000억원이 들 것으로 보이는데, 한전이 혼자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면서 “정부의 재정 투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는 “재원 조달을 위해 전력망을 민영화한다면 국민 저항이 심할 수 있다”며 “전력망 운영은 당분간 한전이 전담하되 민간 발전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순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전력 수요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기업 등 전력 수요처를 지방으로 이전하면 송전망 수요를 줄이고 균형 발전도 추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기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도 “지역별 에너지 가격 차등제를 도입하거나 송전선이 지나는 지역 주민에게 충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조홍종 단국대 교수는 “송전선로를 먼저 깔고 발전소를 지어야 하는데, 지금은 전국에 흩어진 발전단지를 모두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라면서 “사업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타이완) 명종원 기자
  • ‘블랙 스타트’ 준비된 수력발전 댐…암흑에서 스페인을 구했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블랙 스타트’ 준비된 수력발전 댐…암흑에서 스페인을 구했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발전보다 심각한 송전 위기 자립발전 비결은 철저한 대비 훈련 전력수요 확대 속 정전, 남의 일 아냐 재생에너지 확대 따른 대책 필요 모든 것이 멈췄던 스페인·포르투칼 대정전 발생 두 달여만인 지난 2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국도를 타고 북서쪽으로 3시간쯤 달리자 웅장한 절벽 아래 거대한 수력발전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두에로강(Duero River) 상류에 위치한 ‘알데아다빌라 댐’이다. 이 발전소는 대정전 당시 불과 2~3분만에 발전기를 가동시켜 스페인 전역에 전력을 재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발전소 직원 이반 베레스씨는 “자립 시동 시스템인 ‘블랙 스타트’를 통해 빠르게 전력을 가동할 수 있었다”며 “우리가 스페인을 살렸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요 도시가 길게는 18시간 동안 암흑에 갇혀 있는 동안 이 발전소 인근 마을은 3시간 안에 일상을 되찾았다. 작은 시골 마을 알데아다빌라 데 라 리베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리아 비센테 로페스씨는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됐는데 이곳 주민들은 금방 평온을 되찾았다. 냉장 보관 음식도 전혀 상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이들이 빠르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대비다. 발전소는 1년에 한 번씩 정전 대비 비상 훈련을 이어왔다. 베레스씨는 “지난해 12월에도 외부 전력을 차단한 채 긴급 발전 훈련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고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블랙아웃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충분한 대비 없이 전력망을 운영하다가 대정전을 맞은 스페인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전력망이 고립돼 있고 에너지 전환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에게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미스터리 였던 정전 원인은 ‘과전압’…전조 증상 있었다 스페인 정전 이후 원인을 둘러싸고 기후 이상설, 사이버 공격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과전압 현상을 지목했다. 사라 아헤센 친환경전환·인구변화대응부 장관은 “전력망 내 과전압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전력망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발표했다. 서울신문 현지 취재와 스페인 정부의 조사 결과 보고서를 종합하면 정전은 4월 28일 낮 12시 30분쯤 시작됐지만, 이전부터 전조 증상이 있었다. 우선 사건 발생 며칠 전 전압 이상 현상이 감지됐다. 정전 전날인 4월 27일 오후 8시쯤 스페인 전력망공사 REE(Red Electrica Espanola)는 전압 제어를 위해 준비된 10기의 화력발전소 중 1기가 다음날 가동이 어렵다고 통보받았다. 그러나 REE는 이를 대체할 발전소를 확보하지 않은 채 사고 당일 9기만 돌렸다. 정전 당일에는 이밖에도 다른 여러 징후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서 도미노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오전에는 전압 변동이 평소보다 더욱 심하게 나타났으며, 낮 12시 32분부터 전압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와 동시에 50㎐를 유지해야 하는 주파수가 급락했다. 과전압에 의한 발전기 탈락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재생에너지 탓” VS “낙후 전력망 탓”…치열한 물밑 공방 재생에너지 확대가 대정전을 불렀는지를 놓고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인 ‘간헐성’이 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전력망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스페인 전체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7년 32.5%에서 2024년 56.8%로 늘었다. 정전 사고 직전 스페인 전역의 전기 출력 비중은 태양광이 53%, 풍력 11%, 원자력·가스는 15%를 차지했다. 국민당(Partido Popular)을 비롯한 보수 야권은 정부가 국민을 볼모로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실험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신문이 만난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시각에 선을 그었다. 태양광산업협회 크리스티나 토레스 케베도 규제 담당 이사는 “재생에너지 기반이 확대돼 정전이 일어났다면 비슷한 사례가 몇 차례는 있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물밑에선 책임 공방이 더 치열하다. REE는 재생에너지와 민간 전기회사에,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낙후된 전력망에, 전기회사들은 REE에 서로 화살을 돌린다. 정전 피해 규모는 최대 45억 유로(약 7조 3000억원)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재생에너지 확대 추세에 비해 전력망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이 재생에너지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전력망 현대화에는 30센트를 투자했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70센트를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로욜라 안달루시아 대학의 하비에르 브레이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화 발명가가 살아 돌아온다면 현재의 통신망 체계는 알아볼 수 없겠지만,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이 부활한다면 스페인의 전력망 시스템을 금방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휴대전화로 결제하고 동영상을 볼 정도로 통신망이 발전했지만, 전력망은 발전원이 다양해졌는데도 과거 석탄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정부, 재생에너지 정책 후퇴 대신 전력망 강화 총력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후퇴할까?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재생에너지 정책은 단 1㎜도 뒤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81% 달성 목표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신 스페인 정부는 전력망 강화에 총력을 쏟고 있다. 현장에선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저장·출력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장치(ESS) 확대 등 대안에 대한 고민도 엿보였다. 풍력산업협회 헤이키 윌스테트 메사 에너지 정책 담당 이사는 “2022년까지만 해도 ESS의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았지만 태양광·풍력발전 비중이 높아지면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해졌다”며 “정전을 통해 배운 게 많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환 기로 한국, 만반의 대비 태세 갖춰야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정전이 일어난다면 피해 규모는 훨씬 크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전력소비량은 588TWh(테라와트시)로, 스페인 245TWh를 훨씬 웃돈다. 스페인은 정전 이후 유럽 다른 나라와의 전력망 연결을 강화키로 했지만 위로는 북한, 주변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전력망은 완전 고립 상태다. 유사시 다른 나라로부터 1㎾(킬로와트)의 전력도 공급받을 수 없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기준 우리나라의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3년 8.4%에서 2030년 18.8%, 2038년 29.2%로 높아진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문제가 커진다”며 “전력망 확충과 안정성 강화에 대폭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성윤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가야 할 길”이라며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대책이 중점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전력망 안정성·회복력 강화 안간힘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정전을 겪은 스페인은 후속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앞서 스페인 정부는 전력망 내 과전압 현상으로 대정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력 시스템 운영기업의 의무 강화 ▲전력망 및 저장설비에 대한 투자 확대 ▲국가 간 전력망 연계 강화 등의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전 당시 과전압 상황에서 ‘무효전력’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 무효전력은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전력으로, 가정 등에 전기 에너지로 공급되는 유효전력과 반대 개념이다. 이에 스페인은 전력 운영 규정을 개정해 허용 전압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무효전력의 발생 또는 흡수를 유지하도록 했다. 과전압 또는 저전압 상황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스페인 정부는 우선 전력망의 안정성 및 회복력 강화에 방점을 둔 ‘왕령법령(Real Decreto-ley) 7/2025’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 법안은 국가시장 및 경쟁위원회(CNMC)와 전력망 공사(REE·Red Electrica Espanola)의 발전 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CNMC와 REE는 각각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전력의 역할을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긴급 상황 발생 시 전력 당국이 전력계통과 발전소를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저장장치(ESS) 설치에 필요한 행정 절차가 간소화된다. ESS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고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설비다. 기존 재생에너지 설비에 저장 시설을 추가할 경우 행정 처리 기간이 절반으로 단축된다. 민간 싱크탱크인 레노바블레스 재단의 이스마엘 모랄레스 기후 정책 책임자는 “재생에너지가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력계통에 통합될 수 있도록 송전 인프라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스페인 정부는 유럽연합(EU) 차원의 전력망 공동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 포르투갈, 모로코 등 인접 국가와의 전력망 연계율을 높일 방침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화창한 봄날, 블랙아웃 올라…재생에너지 ‘전력 과잉’ 딜레마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화창한 봄날, 블랙아웃 올라…재생에너지 ‘전력 과잉’ 딜레마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날씨따라 태양광 발전 오락가락 주말엔 수요 떨어져 수급 불균형 ‘출력제어’ 사업자는 경제적 손실 송전망 부족에 전력 병목 현상도 “과거에는 날씨가 덥다, 비가 온다 정도의 기상 정보만 파악하면 됐지만 이제는 구름이 상층운이냐 하층운이냐, 두께는 얼마냐까지 파악해야 합니다.”(이창근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장) 우리나라 ‘전력 컨트롤타워’인 전남 나주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엔 올들어 새로운 인력이 투입됐다. 기상 상황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수요예측 관제사’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이에 대응하는 일을 한다. 2021년 신재생관제사에 이어 전문 인력이 추가됐지만, 수요 예측의 어려움과 긴장감은 더 커졌다. 그만큼 전력수급 관리가 ‘고차방정식’이 됐다는 의미다.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 10일 찾은 관제센터는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대형 전광판에는 전력 공급 현황과 예비전력 등을 보여주는 수치가 시시각각 업데이트 됐고, 중앙 지도엔 송전선로가 미로처럼 얽히고 설켜 있었다. 여름철 전력 피크 시기도 문제지만, 더 큰 위기는 봄·가을에 찾아온다. 이 센터장은 “화창한 봄날 주말마다 센터는 그야말로 전쟁을 치른다”고 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어 태양광 전력은 과잉 생산되는 반면 주말에 공장 등이 문을 닫으면 전력 수요가 떨어져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로 인해 안정적으로 전기가 흘러야 할 전력망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전력수급을 일치시켜야 하는 센터는 최근 몇 년 사이 수급불균형이 부쩍 심각해졌음을 절감하고 있다. 과거엔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우선 가동해 ‘기저 전원’으로 삼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초과수요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수급을 일치시켰지만,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 “100만㎡ 전기실 뛰어다니며 일일이 전원 꺼” 필요보다 더 많은 전력이 들어오면 발전을 정지시키는 출력제어(가동 중단) 조치가 불가피하다. 발전 5사 신재생에너지 출력제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2024년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건수는 958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65.3%에 해당하는 626건이 태양광이다. 봄에 원전 가동률을 낮추는 감발(減發)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출력제어를 당하는 발전소는 해당 시간 동안 전력을 생산하지 못해 손실을 본다. 전력 당국과 사업자 간 갈등도 커진다. 전북 군산 새만금 육상태양광 발전단지에서 만난 관계자 A씨는 “출력제어 지시가 떨어지면 4명이 약 100만㎡(30만평) 규모 부지에 분산된 19개의 전기실을 뛰어다니며 전원을 내려야 하는데, 최소 30분은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올봄에만 9번의 출력제어가 있었고 손해액만 수억원”이라고 했다. ‘햇빛 좋은 봄날 전력 당국은 기우제를 지낸다’는 소리마저 나온다. 송전망 부족…수도권-지방 미스매치도 심각 여기에 송전망이 부족해 생산된 전력을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 못하는 병목 현상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곳(수도권)과 많이 생산하는 곳(지방)의 미스매치도 심각하다. 2012~2023년 우리나라 발전설비는 8만 1806㎿(메가와트)에서 13만 8018㎿로 69% 늘어났다. 같은 기간 송전선로는 3만 676㎞에서 3만 4944㎞로 14% 확충되는 데 그쳤다. 도로 포장이 안 돼 차량이 달릴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송전망 확충 없이는 에너지 전환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전환 난제 풀 열쇠는…①ESS ②전력망 확충 ③계통 연계 강화 에너지 전환의 성공 열쇠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해소하고 전력계통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한 핵심 과제로 ▲에너지 저장장치(ESS) 도입 ▲전력망 확충 ▲계통 연계 강화를 꼽는다. ESS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잉여 전력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시점에 공급하는 설비다. 투자 비용이 크고 저장 시간이 4~6시간이라는 점은 한계다. 전력망 확충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재생에너지 확산은 물론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 햇빛연금 등 이재명 정부의 주요 에너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 한국전력은 ‘제11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에 따라 2023년 기준 송전선로 3만 5000㎞, 변전소 906곳을 2038년까지 각각 6만 1000㎞, 1297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총 72조 8000억원을 투자한다. 그러나 재원 조달 문제와 송전선로 건설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발목을 잡고 있다. 국가 간 전력망 연계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중국·일본·러시아 전력망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이 30년 전부터 논의됐지만 제자리걸음이다. 관건은 ‘비용’이다. 송전망이나 ESS 등 전력계통 보강에 드는 비용은 결국 돌고 돌아 소비자 요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한전 부채 205조원, 수도권의 과도한 송전망 집중 문제 등을 돌파하기 위한 전력시장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에너지학과 교수는 “전기 요금 현실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화창한 봄날, 블랙아웃 올라…재생에너지 ‘전력 과잉’ 딜레마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화창한 봄날, 블랙아웃 올라…재생에너지 ‘전력 과잉’ 딜레마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과거에는 날씨가 덥다, 비가 온다 정도의 기상 정보만 파악하면 됐지만 이제는 구름이 상층운이냐 하층운이냐, 두께는 얼마냐까지 파악해야 합니다.”(이창근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장) 우리나라 ‘전력 컨트롤타워’인 전남 나주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엔 올들어 새로운 인력이 투입됐다. 기상 상황을 전문적으로 분석하는 ‘수요예측 관제사’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가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이에 대응하는 일을 한다. 2021년 신재생관제사에 이어 전문 인력이 추가됐지만, 수요 예측의 어려움과 긴장감은 더 커졌다. 그만큼 전력수급 관리가 ‘고차방정식’이 됐다는 의미다. 폭염이 이어졌던 지난 10일 찾은 관제센터는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대형 전광판에는 전력 공급 현황과 예비전력 등을 보여주는 수치가 시시각각 업데이트 됐고, 중앙 지도엔 송전선로가 미로처럼 얽히고 설켜 있었다. 여름철 전력 피크 시기도 문제지만, 더 큰 위기는 봄·가을에 찾아온다. 이 센터장은 “화창한 봄날 주말마다 센터는 그야말로 전쟁을 치른다”고 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어 태양광 전력은 과잉 생산되는 반면 주말에 공장 등이 문을 닫으면 전력 수요가 떨어져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고, 이로 인해 안정적으로 전기가 흘러야 할 전력망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전력수급을 일치시켜야 하는 센터는 최근 몇 년 사이 수급불균형이 부쩍 심각해졌음을 절감하고 있다. 과거엔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를 우선 가동해 ‘기저 전원’으로 삼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초과수요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수급을 일치시켰지만,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달라졌다. “100만㎡ 전기실 뛰어다니며 일일이 전원 꺼” 필요보다 더 많은 전력이 들어오면 발전을 정지시키는 출력제어(가동 중단) 조치가 불가피하다. 발전 5사 신재생에너지 출력제어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3~2024년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건수는 958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65.3%에 해당하는 626건이 태양광이다. 봄에 원전 가동률을 낮추는 감발(減發)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출력제어를 당하는 발전소는 해당 시간 동안 전력을 생산하지 못해 손실을 본다. 전력 당국과 사업자 간 갈등도 커진다. 전북 군산 새만금 육상태양광 발전단지에서 만난 관계자 A씨는 “출력제어 지시가 떨어지면 4명이 약 100만㎡(30만평) 규모 부지에 분산된 19개의 전기실을 뛰어다니며 전원을 내려야 하는데, 최소 30분은 걸린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올봄에만 9번의 출력제어가 있었고 손해액만 수억원”이라고 했다. ‘햇빛 좋은 봄날 전력 당국은 기우제를 지낸다’는 소리마저 나온다. 송전망 부족…수도권-지방 미스매치도 심각여기에 송전망이 부족해 생산된 전력을 필요한 곳으로 보내지 못하는 병목 현상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곳(수도권)과 많이 생산하는 곳(지방)의 미스매치도 심각하다. 2012~2023년 우리나라 발전설비는 8만 1806㎿(메가와트)에서 13만 8018㎿로 69% 늘어났다. 같은 기간 송전선로는 3만 676㎞에서 3만 4944㎞로 14% 확충되는 데 그쳤다. 도로 포장이 안 돼 차량이 달릴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송전망 확충 없이는 에너지 전환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전환 난제 풀 열쇠는…①ESS ②전력망 확충 ③계통 연계 강화 에너지 전환의 성공 열쇠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해소하고 전력계통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한 핵심 과제로 ▲에너지 저장장치(ESS) 도입 ▲전력망 확충 ▲계통 연계 강화를 꼽는다. ESS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잉여 전력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시점에 공급하는 설비다. 투자 비용이 크고 저장 시간이 4~6시간이라는 점은 한계다. 전력망 확충은 가장 시급한 과제다. 재생에너지 확산은 물론 RE100(재생에너지 100%) 산업단지, 햇빛연금 등 이재명 정부의 주요 에너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 한국전력은 ‘제11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에 따라 2023년 기준 송전선로 3만 5000㎞, 변전소 906곳을 2038년까지 각각 6만 1000㎞, 1297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를 위해 총 72조 8000억원을 투자한다. 그러나 재원 조달 문제와 송전선로 건설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발목을 잡고 있다. 국가 간 전력망 연계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중국·일본·러시아 전력망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이 30년 전부터 논의됐지만 제자리걸음이다. 관건은 ‘비용’이다. 송전망이나 ESS 등 전력계통 보강에 드는 비용은 결국 돌고 돌아 소비자 요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한전 부채 205조원, 수도권의 과도한 송전망 집중 문제 등을 돌파하기 위한 전력시장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에너지학과 교수는 “전기 요금 현실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블랙 스타트’ 준비된 수력발전 댐…암흑에서 스페인을 구했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블랙 스타트’ 준비된 수력발전 댐…암흑에서 스페인을 구했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모든 것이 멈췄던 스페인·포르투칼 대정전 발생 두 달여만인 지난 2일.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국도를 타고 북서쪽으로 3시간쯤 달리자 웅장한 절벽 아래 거대한 수력발전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두에로강(Duero River) 상류에 위치한 ‘알데아다빌라 댐’이다. 이 발전소는 대정전 당시 불과 2~3분만에 발전기를 가동시켜 스페인 전역에 전력을 재공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발전소 직원 이반 베레스씨는 “자립 시동 시스템인 ‘블랙 스타트’를 통해 빠르게 전력을 가동할 수 있었다”며 “우리가 스페인을 살렸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요 도시가 길게는 18시간 동안 암흑에 갇혀 있는 동안 이 발전소 인근 마을은 3시간 안에 일상을 되찾았다. 작은 시골 마을 알데아다빌라 데 라 리베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리아 비센테 로페스씨는 “온 나라가 아수라장이 됐는데 이곳 주민들은 금방 평온을 되찾았다. 냉장 보관 음식도 전혀 상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가 비상사태 속에서 이들이 빠르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대비다. 발전소는 1년에 한 번씩 정전 대비 비상 훈련을 이어왔다. 베레스씨는 “지난해 12월에도 외부 전력을 차단한 채 긴급 발전 훈련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고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블랙아웃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충분한 대비 없이 전력망을 운영하다가 대정전을 맞은 스페인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전력망이 고립돼 있고 에너지 전환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에게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미스터리 였던 정전 원인은 ‘과전압’…전조 증상 있었다 스페인 정전 이후 원인을 둘러싸고 기후 이상설, 사이버 공격설 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과전압 현상을 지목했다. 사라 아헤센 친환경전환·인구변화대응부 장관은 “전력망 내 과전압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전력망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발표했다. 서울신문 현지 취재와 스페인 정부의 조사 결과 보고서를 종합하면 정전은 4월 28일 낮 12시 30분쯤 시작됐지만, 이전부터 전조 증상이 있었다. 우선 사건 발생 며칠 전 전압 이상 현상이 감지됐다. 정전 전날인 4월 27일 오후 8시쯤 스페인 전력망공사 REE(Red Electrica Espanola)는 전압 제어를 위해 준비된 10기의 화력발전소 중 1기가 다음날 가동이 어렵다고 통보받았다. 그러나 REE는 이를 대체할 발전소를 확보하지 않은 채 사고 당일 9기만 돌렸다. 정전 당일에는 이밖에도 다른 여러 징후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서 도미노 현상을 불러 일으켰다. 오전에는 전압 변동이 평소보다 더욱 심하게 나타났으며, 낮 12시 32분부터 전압이 급격하게 상승했다. 이와 동시에 50㎐를 유지해야 하는 주파수가 급락했다. 과전압에 의한 발전기 탈락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재생에너지 탓” VS “낙후 전력망 탓”…치열한 물밑 공방 재생에너지 확대가 대정전을 불렀는지를 놓고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인 ‘간헐성’이 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전력망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스페인 전체 전력 생산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7년 32.5%에서 2024년 56.8%로 늘었다. 정전 사고 직전 스페인 전역의 전기 출력 비중은 태양광이 53%, 풍력 11%, 원자력·가스는 15%를 차지했다. 국민당(Partido Popular)을 비롯한 보수 야권은 정부가 국민을 볼모로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실험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반면 서울신문이 만난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시각에 선을 그었다. 태양광산업협회 크리스티나 토레스 케베도 규제 담당 이사는 “재생에너지 기반이 확대돼 정전이 일어났다면 비슷한 사례가 몇 차례는 있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물밑에선 책임 공방이 더 치열하다. REE는 재생에너지와 민간 전기회사에,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낙후된 전력망에, 전기회사들은 REE에 서로 화살을 돌린다. 정전 피해 규모는 최대 45억 유로(약 7조 3000억원)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재생에너지 확대 추세에 비해 전력망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이 재생에너지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전력망 현대화에는 30센트를 투자했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70센트를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로욜라 안달루시아 대학의 하비에르 브레이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전화 발명가가 살아 돌아온다면 현재의 통신망 체계는 알아볼 수 없겠지만,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이 부활한다면 스페인의 전력망 시스템을 금방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휴대전화로 결제하고 동영상을 볼 정도로 통신망이 발전했지만, 전력망은 발전원이 다양해졌는데도 과거 석탄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페인 정부, 재생에너지 정책 후퇴 대신 전력망 강화 총력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후퇴할까?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재생에너지 정책은 단 1㎜도 뒤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81% 달성 목표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신 스페인 정부는 전력망 강화에 총력을 쏟고 있다. 현장에선 재생에너지 잉여 전력을 저장·출력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장치(ESS) 확대 등 대안에 대한 고민도 엿보였다. 풍력산업협회 헤이키 윌스테트 메사 에너지 정책 담당 이사는 “2022년까지만 해도 ESS의 중요성이 대두되지 않았지만 태양광·풍력발전 비중이 높아지면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해졌다”며 “정전을 통해 배운 게 많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환 기로 한국, 만반의 대비 태세 갖춰야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정전이 일어난다면 피해 규모는 훨씬 크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전력소비량은 588TWh(테라와트시)로, 스페인 245TWh를 훨씬 웃돈다. 스페인은 정전 이후 유럽 다른 나라와의 전력망 연결을 강화키로 했지만 위로는 북한, 주변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 전력망은 완전 고립 상태다. 유사시 다른 나라로부터 1㎾(킬로와트)의 전력도 공급받을 수 없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기준 우리나라의 발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3년 8.4%에서 2030년 18.8%, 2038년 29.2%로 높아진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날수록 문제가 커진다”며 “전력망 확충과 안정성 강화에 대폭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성윤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 확대는 가야 할 길”이라며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대책이 중점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전력망 안정성·회복력 강화 안간힘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정전을 겪은 스페인은 후속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앞서 스페인 정부는 전력망 내 과전압 현상으로 대정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력 시스템 운영기업의 의무 강화 ▲전력망 및 저장설비에 대한 투자 확대 ▲국가 간 전력망 연계 강화 등의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전 당시 과전압 상황에서 ‘무효전력’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 무효전력은 전력망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전력으로, 가정 등에 전기 에너지로 공급되는 유효전력과 반대 개념이다. 이에 스페인은 전력 운영 규정을 개정해 허용 전압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무효전력의 발생 또는 흡수를 유지하도록 했다. 과전압 또는 저전압 상황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스페인 정부는 우선 전력망의 안정성 및 회복력 강화에 방점을 둔 ‘왕령법령(Real Decreto-ley) 7/2025’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 법안은 국가시장 및 경쟁위원회(CNMC)와 전력망 공사(REE·Red Electrica Espanola)의 발전 사업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대폭 확대했다. CNMC와 REE는 각각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전력의 역할을 한다. 법안이 통과되면 긴급 상황 발생 시 전력 당국이 전력계통과 발전소를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에너지 저장장치(ESS) 설치에 필요한 행정 절차가 간소화된다. ESS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고 전력망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설비다. 기존 재생에너지 설비에 저장 시설을 추가할 경우 행정 처리 기간이 절반으로 단축된다. 민간 싱크탱크인 레노바블레스 재단의 이스마엘 모랄레스 기후 정책 책임자는 “재생에너지가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력계통에 통합될 수 있도록 송전 인프라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스페인 정부는 유럽연합(EU) 차원의 전력망 공동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 포르투갈, 모로코 등 인접 국가와의 전력망 연계율을 높일 방침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트럼프가 보낸 ‘불편한 초대장’…경제성은 글쎄[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트럼프가 보낸 ‘불편한 초대장’…경제성은 글쎄[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알래스카 LNG(액화천연가스) 프로젝트는 1970~80년대부터 추진됐으나, 번번이 경제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개발이 미뤄졌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프로젝트 재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사업 진행 가능성은 커졌지만, 경제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프루도베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를 동아시아로 수출하려는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건 1980년대다. 가깝다는 이점을 살려 LNG 수입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천연가스는 세계 유전지대 어디서든 생산되다 보니,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여러 차례 백지화와 재추진을 반복했다. 美, 경제성·난공사 문제 해결됐다…“알래스카산 LNG, 텍사스산보다 저렴” 현재의 프로젝트는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가 당선된 후 추진됐다. 알래스카 주정부와 사업을 담당하는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ADGC)는 알래스카산 천연가스가 텍사스산보다 저렴하게 동아시아에 공급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11월 알래스카 주정부가 주의회에 제출한 우드맥켄지 리포트는 사업 완료시 앵커리지 지역에 1MMBtu(영국 열량 단위) 당 2.23달러에 가스를 공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액화 전 가스 가격이 미국 천연가스 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3달러 선보다 저렴하다는 것이다. 알래스카는 한국까지 이동 거리도 7일로 20~30일이 걸리는 카타르, 미국 텍사스 등과 비교 우위에 있다. 알래스카 천연가스가 텍사스산보다 저렴하다면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이 미국에서 수입한 LNG 가격은 t당 90만원으로, 상위 5개국 평균 수입가격(93만원)보다 낮다. 여기에 알래스카는 한국까지 이동 거리도 7일에 불과해 20~30일이 걸리는 카타르와 미국 텍사스 등과 비교해 우위에 있다. 난공사 우려에 대해서도 미국 현지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70년대 비슷한 길이의 송유관을 만든 바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67년 프루도베이 유전지대를 발견하고도 동토를 개발하는 어려움 탓에 개발을 주저했다. 그러나 73년 1차 석유 파동이 터지고 천연자원 확보가 안보와 직결된 문제가 되자 즉각 개발에 착수했다. 통행도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을 관통하는 돌튼고속도로를 만들고 일본에서 생산한 강관을 들여와 1300㎞ 길이 송유관, 동토를 파내 유전시설을 만들었다. 이런 과정은 4년만에 완료됐다. 스콧 하멜 알래스카주립대학교(UAA) 토목공학과 학장은 “난공사가 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우리는 이미 40~50년 전 해봤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가스관은 송유관보다 공사가 쉽다”며 “송유관은 매우 뜨거워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지만, 가스관은 이보다 낮은 온도”라 설명했다. 주정부 재원 85% 나오는 에너지 기업 수익 악화…‘절실한 알래스카’ 오랜 시추로 인한 생산량 감소와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는 알래스카도 사업 추진이 절실하다. 알래스카에서 에너지 기업들의 수익은 주정부 재원과 주민 살림살이에 직결된다. 알래스카 주정부의 재원은 85%가 에너지 기업의 세금으로 이뤄진다. 또 천연자원을 판매한 수익 일부를 모아 만든 ‘알래스카 영구기금’은 수익률에 따라 매년 주민 1인당 1000~3000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한다. 또 알래스카가 사용할 가스마저 바닥나고 있다. 알래스카 주민 70만여명 중 40~50만이 몰려사는 앵커리지는 그간 앞바다인 쿡인렛에서 생산된 가스를 사용해 왔는데, 빠르면 2030년 매장량이 고갈될 것으로 예측된다. 주정부는 LNG를 알래스카 외부에서 수입해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을 정도다. 액화시설 예정지인 니키스키를 관할하는 케나이시의 테리 유뱅크 도시관리자(부시장)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쿡인렛의 LNG 생산량 감소로 침체된 지역 경제 발전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로도 알래스카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텃밭이다. 알래스카는 그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1964년 한번을 제외하고 모두 공화당 후보를 선택했다. 트럼프에게도 2016년, 2020년, 2024년 모두 50% 넘는 지지를 보냈다.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는 “주민들의 경제적 복지와 알래스카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프로젝트”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노리는 ‘에너지 우위’ 전략에서도 알래스카는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석유가 고갈된 후에도 미 해군이 쓸 석유 확보를 위해 1920년부터 운영해온 알래스카 국립 석유보호구역(NPR-A)의 개발 제한을 지난달 전격 해제했다. 또 프루도베이 동쪽의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ANWR)에서 시추를 허가하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무궁무진하다고 주장한다. 프루도베이와 포인트 톰슨 가스전에서만 연 2000만t을 20년 간 생산할 수 있으며 새롭게 발견된 AHPUN 유전·가스전, 프루도베이와 지질이 유사한 NPR-A, ANWR에도 풍부한 가스전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BP·엑손모빌·코노코필립스도 철수…한국, LNG 프로젝트 참가 나설까그런데도 한국에게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불편한 초대장’인 이유는 불확실한 경제성이다. 혹한의 기후, 매장량에 대한 정보 부족, 불확실한 공급 가격 등은 자칫 투자비를 회수할 수 없으리란 우려를 불러온다. 2016년 글로벌 에너지 대기업인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엑손모빌, 코노코필립스는 프로젝트에서 철수했다. 당시 사업비는 프로젝트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마다 올라 초기 450억 달러에서 65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셰일가스 혁명으로 천연가스 가격의 폭락, 천연자원 개발에 대한 제재 강화도 사업성을 악화시켰다. 알래스카는 미국에서도 인건비가 비싼 편이고 자재·물류비, 높은 안전기준 등도 부담이다. 유류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나온 보고서는 경제성이 있다고 하지만, 향후 구체적인 보고서가 나오면 사업비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정말로 경제성이 좋다면 글로벌 기업들이 왜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천연가스는 원유와 달리 이미 수입선이 다변화돼 있기도 하다. 5년 간 한국으로 들어 온 LNG의 수출국은 호주(23%), 카타르(21%), 미국(14%), 말레이시아(12%), 오만(10%) 등으로 고르게 분포돼 있다. 다만, 국내 업계는 이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몇몇 기업은 이미 알래스카 현지를 찾아 동향 파악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이와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는 큰 기회일 수 있다”면서 “정부 간 협상을 지켜봐야겠지만, 사업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기회인가, 함정인가…관세협상 테이블에 오른 ‘알래스카 LNG’, 알래스카에 가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기회인가, 함정인가…관세협상 테이블에 오른 ‘알래스카 LNG’, 알래스카에 가다[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미국 최북단 알래스카주. 이곳에서도 오지로 통하는 프루도베이(Prudhoe Bay)는 최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인구 1300명에 불과한 이 마을은 북미 대륙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전지대를 품고 있다. 1967년 발견돼 한때 하루 200만 배럴을 생산하던 이곳엔 3000~50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지난 7일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여를 북쪽으로 향하자 검은 툰드라 지역 사이로 프루도베이 공항이 나타났다. 작은 2층짜리 건물엔 작업화를 신은 노동자들로 가득했다. ‘곰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적힌 공항 출구를 열고 나서자 산업체가 몰린 지역 특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포장인 주차장에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유류 기업들의 셔틀버스가 노동자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멀리로는 거대한 시추 드릴과 각종 유전 시설들이 펼쳐져 있었다. 여름인 까닭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 현상과 함께 얼어붙었던 툰드라는 녹아 습지로 변해 있었다. 유전지대에는 원유와 가스가 지나는 무수한 관들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었다. 한 시추 현장을 지난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또 다른 시추 현장이 나타났다. 면적 1445㎢, 대구광역시와 비슷한 크기의 프루도베이 지역엔 시추 현장이 567개에 달한다. 100여대가 넘는 덤프트럭 크기의 제설차, 5층 빌딩보다 더 큰 드릴, 불꽃을 뿜어내는 가스관 등은 흔히 보이는 풍경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 의지를 밝히고 있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를 남부지역으로 옮겨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으로 수출하겠다는 440억 달러(약 60조 900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다. 프루도베이에 가스 처리 시설을 만들고 직경 107㎝, 길이 1298㎞ 가스관을 남쪽 니키스키 지역까지 이어 연간 2000만t 규모의 액화 시설 및 해양 터미널을 통해 수출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가스관은 과거 미국이 원유 운송을 위해 만든 송유관 옆을 중간 지점인 페어뱅크스까지 따라간 뒤 방향을 돌려 니키스키로 향한다. 미국은 1977년 송유관을 완공한 후에도 수차례 가스관 개발을 계획했으나, 판매 수익으로 공사비를 회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뒤로 밀렸다. 이 때문에 프루도베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는 원유를 뽑아낸 빈 지층에 재주입한다. 유정 내 압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인데, 미국 텍사스나 중동 등 다른 지역은 물로 대신한다. 알래스카 천연가스는 사실상 버려지고 있던 셈이다. 이튿날 찾은 니키스키 지역에는 오래된 LNG 수출 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스관은 앵커리지에서 ‘쿡인렛’ 해협을 건너 이곳에 도착한다. 알래스카 남부의 천연가스 생산량이 넉넉할 때는 접안부두 3곳에서 일본으로 LNG를 수출했었다. 하지만 생산량 감소로 2017년 운영을 중단했다. 지금은 녹슨 중장비와 부서진 건물, 버려진 LNG 탱크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좁고 긴 해협인 쿡인렛은 조류가 다소 강하지만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일대는 알래스카에서 가장 온화한 지역 중 하나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따르면 여기에 액화시설 및 수출시설을 새롭게 만든다.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한국과 미국 간 관세 협상에서 뜨거운 감자로, ‘한 방에 트럼프를 기쁘게 할 카드’로 꼽힌다. 실제 일본은 미국과 조인트벤처(JV)를 만들어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카드 등을 활용해 미국 수출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췄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도 사업 참여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불확실한 경제성과 개발 이후 얼마가 될지 모르는 공급 가격 탓에 우리 정부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을 심도 있게 연구해 온 한 전직 고위 관료는 “LNG 수입선 다변화를 통한 에너지 안보 강화, 관세 협상 활용 차원에서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분명 쓸 만한 카드 중 하나”라면서도 “문제는 비용이 얼마나 투입돼야 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인데, 한국이나 일본 정부는 물론 기업들도 정보 부족에 답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현돈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국내에는 최근에 알려졌지만,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오래전부터 계획돼 있던 일”이라며 “매번 경제성 문제로 개발이 늦어졌던 만큼 수익구조, 가스 구매 방식 등을 꼼꼼히 따져 사업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전력원 90% 수입해도 물 쓰듯 펑펑…‘에너지 갈라파고스’ 한국[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전력원 90% 수입해도 물 쓰듯 펑펑…‘에너지 갈라파고스’ 한국[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한국의 에너지·전력 소비량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에너지원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바닷길이 막히면 자칫 ‘갈라파고스’와 같은 고립된 섬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간한 에너지통계연보 2024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량은 5.42석유환산톤(toe)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3.76toe 대비 44% 많았다. 인구 1000만명을 넘는 회원국 중에서는 세 번째로 높았다. toe는 에너지를 석유 발열량으로 표시한 단위로, 1toe는 중형승용차가 서울과 부산을 16번 왕복하는 에너지양이다. 한국보다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국가는 캐나다(7.63)와 미국(6.51)뿐이었다. 한국과 여건이 비슷한 일본(3.14), 에너지 절약이 생활화된 유럽의 독일(3.24), 영국(2.26) 등은 소비량이 매우 낮았다. OECD 회원국은 아니지만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도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2.69toe에 불과했다. 한국은 전력 소비량도 많은 국가다. 인구 1000만명 이상 OECD 회원국의 1인당 연평균 전력 소비량은 6810킬로와트시(◇)인데, 한국은 이보다 69% 많은 1만 1503◇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에 판매되는 에어컨의 시간당 소비량이 0.8◇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에어컨 2대를 24시간 365일 사용해야 나오는 수치다. 상위권은 캐나다(1만 4591), 미국(1만 2985), 스웨덴(1만 2418) 등이었고 일본(7814), 프랑스(6638), 독일(6285), 스페인(5177), 영국(4323)은 전력 소비량이 낮은 국가에 속했다. 다만 한국에서 에너지 대부분은 가정이 아닌 기업이 소비한다. 2023년 전체 에너지 소비량 2억 817만 2000toe의 부문별 소비량은 산업(1억 2641만 2000·60.7%), 수송(3531만 6000·17.0%), 상업·공공(2438만 5000·11.7%), 가정(2205만 8000·10.6%)으로 나타났다.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 중화학공업 중심의 한국 산업구조 영향 때문이다.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과 데이터산업 역시 에너지 소비량이 많아 대책이 시급하다. 한국은 에너지·전력 소비량이 큰 다른 국가들과 달리 에너지원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캐나다와 미국은 손꼽히는 자원 부국이고, 스웨덴은 재생에너지인 수력과 풍력발전 비율이 60%를 넘는다. 에너지·전력 소비량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아이슬란드는 소비량 85%를 지열발전으로 충당한다. 한국의 1차 에너지원(석유·가스·석탄 등)의 수입 의존도는 2000년 97.8%에서 2023년 93.9%로 23년간 3.9% 포인트 낮아지는 데 그쳤다. 바이오 및 폐기물 재처리를 통한 에너지와 태양열·풍력·수력·지열 등에서 얻는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도 각각 3%에 불과하다. 원자력발전을 에너지원으로 포함해도 수입 의존도는 2000년 82.9%, 2023년 81.0%에 달했다. “한국은 콩보다 두부가 싼 형국…전기요금 현실화 해야”양수영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 인터뷰 “에너지 소비가 세계 최대 수준인데 에너지 확보에 대해선 우리나라만큼 태평한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양수영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에너지 효율화와 전기 가격 현실화를 강조했다. 양 전 사장은 “유럽 선진국들이 경제성장을 계속하면서도 에너지 소비가 감소하는 것은 굴뚝형 제조업에서 탈피해 선진국형 저에너지 산업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라며 “산업구조를 통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면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를 중심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에너지 소비 효율화의 핵심은 절약과 전기 가격 현실화”라며 “원자재 가격이 올랐는데 전기 가격은 정치적으로 판단해 올리지 않다 보니 ‘한국은 (비상식적으로) 콩(원재료)보다 두부(완제품)가 싸고, 가스보다 전기가 싸다’는 말까지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에너지가격사이트 ‘글로벌페트롤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한국의 2023~2025년 평균 산업용 전기 요금은 1메가와트시(mwh)당 116달러로 144개국 중 88위였고, 가정용 전기 요금은 126달러로 144개국 중 78위였다. 최근 산업용 전기 가격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지만, 가정용은 민생 안정 등을 이유로 동결되고 있다. 양 전 사장은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면 기업이나 가정 모두 에너지 절약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저탄소와 자립할 수 있는 에너지원 확보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정쟁 외풍에 멈춰 선 韓풍력, 에너지굴기 바람 탄 中풍력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정쟁 외풍에 멈춰 선 韓풍력, 에너지굴기 바람 탄 中풍력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미국 땅 뚫고, 대만 바람 탈 때… “해외 자본 안 돼” 우물 안 한국美알래스카주 LNG 프로젝트 가동대만 풍력발전 구글과 전력 계약국내선 ‘자본 국적’ 따지며 혐오 조장“무조건 반대 오히려 개발 속도 늦춰” ‘54시간’. 중국 광둥성의 한 해상풍력발전기 제조 공장에서 12메가와트(㎿)급 발전기에 쓰이는 118m 길이의 블레이드(날개)를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근로자 150여명이 동시에 투입돼 조립라인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듯 거대한 블레이드를 찍어내고 있었다. 블레이드의 탄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리섬유강화플라스틱 등을 일일이 손으로 붙였는데, 그 정교함과 안전성은 유럽에서도 인정한다고 했다. 이 공장은 지난해에만 총 1500개의 블레이드를 제작해 국내외 발전단지에 공급했다. 최대 출력이 여전히 8㎿급에 머물고 있는 한국의 풍력발전기 생산 능력과 대비됐다. 7월 초 서울신문 기획취재팀은 중국과 미국, 스페인, 대만을 찾았다. 에너지 패권을 노리는 국가이거나 에너지 안보에 사활을 거는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의 전력 생산 현장에서 목격한 공통점은 에너지 전환이 더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각국 정부는 탄소 중립을 목표로 구체적인 에너지 백년대계를 세웠으며, 이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갔다. 산업계는 재생에너지 기술 개발과 설비 역량 강화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신규 에너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기업들은 이를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었다. 에너지 수급 불안은 에너지원 다변화와 최적의 에너지 믹스로 극복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거듭했지만, 안타깝게도 에너지 안보는 뒷걸음질쳤다. 에너지원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흥청망청 전기를 쓰는 보기 드문 국가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 개발은 15년째 제자리걸음을 했고 원자력발전은 지난 두 정부를 거치며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미국의 “드릴, 베이비 드릴!” 미국 알래스카주 북극해와 인접한 유전지대 프루드호베이. 송유관·가스관이 거미줄처럼 펼쳐진 이곳에는 무려 567개의 시추 현장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첫날 이곳 동쪽에 있는 북극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시추공’을 뚫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주민 달리아(24)는 “천연자원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천연자원 개발 카드를 꺼내 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스페인, 대정전 트라우마 극복 안간힘 단 5초 만에 모든 일이 벌어졌다. 지난 4월 28일 스페인에서 15기가와트(GW)의 전력이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대정전이 발생했다. 초유의 블랙아웃은 국가적 트라우마로 남았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시민 호르헤 디아스(22)는 “일상의 마비를 처음 경험한 순간”이라고 했다. 대정전 사태는 재생에너지 확대 속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렸던 전력계통 안정성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 스페인은 전력망 및 저장 설비 투자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었다. ●대만, 국토 전체 분산 에너지 특구로 대만의 타이중 지역에 위치한 구글 데이터센터는 지난 3월 펑먀오1 해상풍력발전단지와 495㎿ 규모의 전력 구매계약을 맺었다. 데이터센터와 발전단지 간 거리는 35㎞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도 인근 창화 해상풍력발전단지에서 전기를 공급받는다. 대만 서해안을 자동차로 달려 보니 200~300m 간격으로 늘어선 수많은 풍력발전기를 볼 수 있었다. 전력 수요가 있는 곳에 발전소를 설치해 국토 전체가 ‘분산 에너지 특구’가 돼 가는 모습은 수도권이 지방에서 생산된 모든 전력을 빨아들이는 한국과 비교됐다. ●재생에너지 트랙레코드조차 없는 한국 문재인 정부는 2017년 느닷없이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전체 전력 생산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6.8%에서 2021년 27.4%로 오히려 늘었다. 전력 수요는 급증하는데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디기만 하고 수입에 의존하는 LNG 가격이 오르면서 원전 의존도가 커진 탓이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출범과 동시에 친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을 180도 바꿨다. 동해안을 온통 원자력발전소로 채울 기세였지만 정작 3년 내내 신규 원전 입지조차 선정하지 못했다. 두 정부 8년간 ‘원전 공방’을 벌이는 사이 우리 여건상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던 태양광과 해상풍력은 후퇴했다. 문 정부가 재생에너지 핵심 사업으로 추진했던 태양광발전은 윤 정부 들어 수사 대상으로 전락했다. 토종 해상풍력 업체들은 해외 자본과 기술 없이는 10㎿급 이상의 발전기 하나 세우지 못하면서 자본의 국적을 따지며 혐오를 조장했다. 입찰 때마다 “중국 자본은 안 된다”, “유럽 자본만 어부지리를 봤다”는 등의 마타도어만 펼칠 뿐 정작 우리 힘으로 이룬 트랙레코드(실적)는 전무한 실정이다. 장연재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해외 자본의 에너지 안보 위협이나 국부 유출은 별도 인허가 절차로 대응할 수 있다”며 “무조건적인 반대가 오히려 개발 속도를 늦춘다”고 말했다. 시작은 비슷했던 해상풍력… 中에 143배 뒤처져정권 따라 에너지 정책 오락가락‘블랙록’ 2년 만에 발전사업 허가윤석열 정부에서 답보 상태에 놓였던 글로벌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해상풍력발전 사업이 최근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랜만에 사업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지만, 업계에선 정권 따라 뒤바뀌는 에너지 정책 기조에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이 위태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블랙록이 자회사인 크레도오프쇼어를 통해 추진 중인 전남 신안군 해상의 총 2GW(기가와트) 규모 해상풍력발전 사업이 지난달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발전사업 허가를 취득했다. 최초 발전사업 허가를 신청한 지 2년여 만이다. 산업부는 그동안 재무 능력, 계통 연결 어려움, 주민 수용성 문제 등을 이유로 불허 또는 심의 보류 결정을 내렸다. 업계에선 정권 교체가 이뤄진 뒤에야 비로소 사업 허가가 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적지 않다. 재생에너지 정책에 미온적이었던 전 정권 탓에 그동안 사업이 진척을 못 냈다는 이야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올 초 해상풍력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다만, 5년 후에 다른 성격의 정부가 들어서면 사업이 순항할 거란 보장이 없다”고 우려했다. 국내 해상풍력발전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해상풍력발전은 2010년 이명박 정부의 해상풍력 추진 로드맵을 통해 처음 거론됐는데, 여기에는 3단계(1단계 100MW·2단계 900MW·3단계 1.5GW)에 걸쳐 2019년까지 총 2.5GW 규모 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백지화됐다. 10년 뒤인 2020년 1단계 설비 계획에도 한참 못 미치는 60MW 규모의 서남해 해상풍력발전 단지가 건립된 게 해당 로드맵의 유일한 성과다. 2010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중국의 해상풍력 설비는 올해 기준 한국(0.3GW)의 143배인 42.9GW로 확대됐다. 영국 15.6GW(52배), 독일 9.0GW(30배), 네덜란드 5.4GW(18배), 대만 3.0GW(10배) 등 경쟁국들은 모두 다 초격차 상태로 한국에 앞서 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中 최대 해상풍력단지 ‘칭저우’… 정부 의지·기업 경쟁이 원동력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中 최대 해상풍력단지 ‘칭저우’… 정부 의지·기업 경쟁이 원동력 [에너지 패권 전쟁, 기로에 선 한국]

    수평선 위 펼쳐진 396기 풍력발전기 발전용량 5GW… 원전 5기와 비슷제조·공급 대부분 中기업이 도맡아국산 발전기 출력 ‘3~4MW’ 떨어져中 재생에너지 확대 국가 과제 설정올해 전력 수요 50% 이상 충당 목표 지난 3일 중국 광둥성 양장시 양장항에서 직선거리로 55㎞, 고속보트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중국 최대 규모의 칭저우 해상풍력단지를 찾았다. 발전용량이 원전 5기와 맞먹는 5 GW(기가와트)에 이르는 총 396기의 풍력발전기가 수평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수천개의 발전기 블레이드(날개)는 쉼 없이 구름을 가르며 회전했다. 하부구조물 주변에 점처럼 보이는 유지·보수 선박들이 역설적으로 발전 단지의 규모를 가늠케 했다. 이 단지에서 주를 이루는 11·12㎿(메가와트) 발전기 터빈은 해수면에서부터 약 140m 높이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있었다. 터빈에 설치된 블레이드 길이는 112~ 118m에 이른다. 한국 기업이 현재 제조할 수 있는 발전기의 최대 출력은 8㎿에 그친다. 칭저우 단지는 모두 7개 단지로 구성됐다. 1~4단지와 6단지는 2022~2024년 상업 운전을 시작했고 5·7단지는 2026년에 가동된다. 4단지 외곽에 설치된 부유식 발전기 ‘밍양천성호’(Ocean X)는 중국이 재생에너지 연구개발에서도 세계 최정상에 섰음을 증명했다. 이 발전기는 해수면에 뜨는 브이(V)자 타워 위에 8.3㎿ 터빈 두 개를 각각 설치해 총 16.6㎿의 발전용량을 자랑한다. 풍향에 따라 발전기 전체가 회전했다. 밍양천성호를 개발한 중국 풍력터빈 제조업체 밍양 관계자는 “기존 발전기처럼 블레이드가 바람을 앞에서 맞는 게 아니라 뒤에서 맞게 해 안정성을 높이고 하중은 줄여 설치·유지 비용을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독일 등 유럽 에너지 기업들이 이 발전기 도입을 검토 중이다. 칭저우 단지의 운영 및 발전기 제조·공급은 중국 기업들이 거의 도맡았다. 7개 단지 중 6개 단지의 발전기 제조·공급을 책임진 밍양은 2023년 기준 전 세계 해상풍력 신규 설치 1위 업체다. 지난해 슈퍼태풍 ‘야기’가 칭저우 단지를 관통했지만, 태풍 저항 및 하이브리드 방식의 발전기 구동 기술 덕에 피해를 면했다. 각 단지 발전기들은 육상 운영실에 구축된 시스템으로 통제됐다. 운영실에 설치된 중앙 스크린으로 각 발전기의 발전량, 유·무효 전력, 발전기 RPM, 풍속, 일·월·연간 발전량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발전기에 부착된 폐쇄회로(CC)TV와 각종 센서가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양장시 앞바다에는 칭저우 단지 외에도 사파, 난펑다오, 산산다오 등 다수의 해상풍력발전 단지가 상업 운전 중이거나 새로 조성되고 있다. 2021년 양장시가 해상 근처에 총면적 73㎢의 그린에너지 시범사업단지를 조성한 뒤 풍력발전 업체들을 대거 입주시킨 결과다. 이 단지에는 밍양, 골드윈드, 둥팡뎬치, 다진 등 11개의 풍력발전기 및 자재 제조기업이 입주해 있다. 조만간 16개 기업이 추가로 들어올 예정이다. 단지 내 기업 관계자는 “바로 앞이 항만인 데다 발전기 제조 공장이 집약돼 있어 작업 효율을 높이고 물류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관된 에너지 정책이 가져온 성과 중국 광둥성이 해상풍력발전의 메카가 된 것은 중앙정부가 20년 가까이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07년 제17차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후진타오 당시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환경·자원 문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한다”고 규정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국가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이행 방안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구체적으로 담겼다. 특히 2020년 발표한 제14차 5개년 계획(2021~2025년)에선 ‘2030년 탄소 배출량 정점 달성’, ‘2060년 탄소 중립 달성’을 골자로 한 ‘이중 탄소’ 목표를 공식화했다.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로는 ‘2025년까지 중국 전체 전력 수요의 5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것을 내세웠다.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 발전 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는데, 광둥성은 산둥반도, 창장강 삼각주, 푸젠성, 베이부만 등과 5대 해상풍력 발전 기지로 묶였다. 그동안 중국의 5개년 계획에서 제시된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는 늘 초과 달성됐다. 중국의 한 재생에너지 기업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계획한 에너지 설비 규모를 각 성과 시 등에 할당하면, 지자체가 발전 공기업과 민간 기업을 통해 이를 모두 구축한다”며 “정부가 판을 깔아 주니 다수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참여하며 실적을 내 시장을 키운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청정에너지에 약 68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전 세계 청정에너지 투자액 2조 달러의 3분의1 수준이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은 세계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의 약 40%에 해당하는 1890 GW 규모의 설비를 구축했다. 그린피스 베이징 사무소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1분기부터 전체 신규 전력 수요를 재생에너지로 100%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경우, 중국의 전력 부문 탄소 배출량은 올해 정점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고 그린피스는 평가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패권 다지기 중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개발에 올인한 것은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선 화석연료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절박함이 바탕이 됐다. 중국과학원, 과학기술부 등은 수많은 보고서를 통해 화석연료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중국의 경제성장과 발전을 가로막을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국제과학자그룹 글로벌카본프로젝트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사상 최고치인 374억t이다. 이 중 중국의 배출량이 32%로 여전히 가장 많다. 장연재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화력 발전을 일시에 중단할 수 없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가파르게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중앙정부에 의한 강력한 톱다운 방식으로 행정 잡음이나 주민 민원 없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할 수 있는 게 중국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소비량이 워낙 커 석탄, 석유,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석연료를 중동·북중미 등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는 중국 입장에서는 재생에너지 확충 없이는 에너지 안보를 확립할 길이 없다. 최근에도 중국은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 미국의 원전 설비와 LNG 등에 대해 수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기후솔루션에서 일하는 중국인 연구원 서리는 “호르무즈·대만 해협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에너지 수입 경로와 불안정한 미중 관계를 고려했을 때 에너지 자립은 중국의 핵심 과제이자 당면 과제”라고 말했다. 中해상풍력발전기 내부에 5000㎥ 양식장 구축… “현지 어민과 상생”하부구조물 안에 그물망 설치年 7만 5000㎏ 어류 끌어올려여수시, 양식장 기술 자문 요청 중국이 거대한 해상풍력발전기 내부에 양식장을 구축해 어민들과 상생에 나서고 있다. 한국 지방자치단체도 주민과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해당 기술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광둥성 양장시의 칭저우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참여한 밍양은 2023년 8월부터 단지 내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발전기의 터빈과 타워 등을 지지하는 하부구조물인 ‘재킷’ 안에 조류에 휩쓸리지 않는 그물망을 설치해 어류를 길러 내는 방식이다. 양식장 용량은 5000㎥로 연간 7만 5000㎏의 어류를 끌어올리고 있다. 앞으로 용량을 2만㎥로 확대할 계획이다. 밍양은 풍력발전기들 사이에 설치할 수 있는 일반 원형 양식장도 개발했는데, 이는 2022년 7월 칭저우 단지와 인접한 사파 해상풍력발전단지에 설치했다. 총길이는 90m이며 용량은 5000㎥다. 연간 5만㎏의 어류를 잡는다. 밍양은 해역 활용도를 높이고 부가 수익을 내보자는 취지로 양식장을 구축했다. 어류 포획 및 유통 업무 등을 현지 어민과 민간 단체에 위탁해 판매 수익을 나누고 있다. 밍양은 해상풍력발전기가 오히려 바다 생태계를 선순환시켜 어류량을 늘렸다고 보고 있다. 밍양 해양공정기술부 런중진 본부장은 “발전기 해상 시공이 바다 생태계에 주는 피해는 불가피하지만, 설치 이후 발전기 뼈대가 마치 어항 속 수초나 목재 같은 역할을 하면서 각종 미생물의 서식지가 됐다”고 말했다. 공중에 떠 있는 발전기 터빈과 바닷속 해저케이블에서 발생하는 전자파, 소음 등은 해양 생물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개발자들의 연구 결과다. 지난 7일 전남 여수시는 양식장 자문을 위해 밍양 본사를 방문했다. 여수시는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공공주도 해상풍력 단지개발 지원사업’에 선정돼 올해부터 3 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 조성을 본격화하는데, 이 과정서 양식장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다. 유럽 국가들과 필리핀도 양식장 건설을 문의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획취재팀 팀장 이창구, 마드리드(스페인) 장진복, 알래스카(미국) 김중래, 광둥성(중국) 이성진, 타이베이(대만) 명종원 기자
  • 신궁서 미궁 빠졌다 이젠 강궁… “내려앉았을 때 더 단단해졌다”[스포츠 라운지]

    신궁서 미궁 빠졌다 이젠 강궁… “내려앉았을 때 더 단단해졌다”[스포츠 라운지]

    돌아온 신궁, 안산(24·광주은행)의 미소에는 여유가 묻어났다. 세계 정상을 탈환하기 위해 다시 활을 잡았지만 성적 압박에 쫓기기보다 동료들과의 호흡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한국 양궁의 새 에이스 임시현(22·한국체대)과의 경쟁 구도에도 안산은 “사선을 벗어나면 같이 웃고 떠드는 친구”라고 애정을 보였다. 그는 “좌절의 시간에 무너지지 않고 정신력을 다졌다. 저는 더 강해졌다”며 양궁 인생 2막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선발전 탈락 뒤 선수생활 15년 만에 휴식 지난해 스포츠계를 들썩이게 했던 인물 중 한 명이 안산이었다.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파리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다. 스무 살에 2020 도쿄올림픽 3관왕을 차지한 그가 대회 2연패에 도전할 기회조차 잡지 못한 것이다. 최근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만난 안산은 “주변 많은 분이 (선발전 탈락에 대해) 괜찮냐고 안부를 묻는 걸 보면서 제 실력이 대단했었다고 새삼 느꼈다(웃음)”면서 “양궁을 시작한 초3 때부터 15년 동안 극한 경쟁 속에 살았다. 국대 탈락 이후 부담을 내려놓고 국내 곳곳을 여행하며 일상의 편안함을 되찾았다. 훈련량을 줄이니 팔꿈치 부상도 호전됐다”고 덤덤하게 털어놨다. 재충전을 마친 안산은 지난 4월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2025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렀고, 당당히 태극마크를 쟁취했다. 올해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 종합대회는 없지만 오는 9월 고향인 광주에서 세계양궁선수권대회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세계선수권이 한국에서 열리는 건 2009년 울산 대회 이후 16년 만이다. 돌아온 안산은 절정의 기량을 과시했다. 지난 13일까지 엿새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양궁 4차 월드컵 여자 단체전에서 임시현, 강채영(29·현대모비스)과 함께 금메달을 거머쥔 것이다. 안산은 “팀 분위기가 정말 좋고 컨디션도 최상이라 즐거웠다. 제 평균 점수가 가장 높았다”며 “앞으로 대학 대표팀, 국가대표 2진과의 특별 경기를 통해 광주 대회를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북한의 출전 가능성이 제기되며 세계선수권에 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홍보대사로 광주와 양궁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은 안산은 “유치 단계부터 광주시 직원들과 힘을 모아 성사한 대회라 애정이 남다르다”며 “북한 선수들이 광주를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들었다. 다른 대회에서 만난 적 있어 반가운 마음이 크지만 우리를 넘긴 어려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 최강 임시현은 경쟁자 아닌 동반자” 개인전에선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세계 최강’으로 거듭난 임시현을 넘어야 한다. 안산은 지난달 튀르키예 3차 월드컵 개인전 결승에서도 임시현에 막혀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2024 파리올림픽에서 연달아 3관왕에 오른 임시현의 기량을 재확인한 셈이다. “어렸을 땐 잘하는 선수와 맞붙으면 질투가 났으나 지금은 감정을 내려놓고 저 자신에 집중해야 성과가 난다는 걸 깨달았다”며 차분하게 입을 뗀 안산은 “그래서 개인전보다 단체전에 초점을 맞추고 대회에 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현이와는 라이벌이 아닌 친한 동료 사이다. 둘 다 서로를 보며 보완점을 찾기 때문에 견제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세계선수권의 흥행도 안산이 책임질 전망이다.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양궁 종목에서 이례적인 ‘팬덤’이 형성됐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안산이다. 그는 “동료들, 지도자 선생님들이 ‘팬들이 너를 보러 대회장에 오는 거냐’고 놀란다. 그런 말을 들으면 팬에 대한 고마움이 커진다”면서 “여자 팬들이 특히 많은데 경기장에 찾아와 손 편지를 주기도 한다. 눈치를 보지 않는 당당한 제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쑥스러워했다. ●“고향 광주서 여는 세계선수권 꼭 우승” 세계선수권에서 가장 견제하는 상대는 3차 월드컵 여자 단체전 준결승에서 한국에 패배를 안긴 ‘신흥 강호’ 미국이다. “미국이 같은 선수 구성인데도 기량이 급상승했다”며 경계심을 보인 안산은 “도쿄올림픽 때는 코로나19가 확산했고 인터뷰 일정도 많아 우승 여운을 만끽하지 못했다. 세계선수권에선 단체전 금메달을 목표로 과정까지 즐기겠다. 나아가 팬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선수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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