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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수미 뉴욕 할렘 고등학교에서 ‘아리랑’ 부른 이유는

    조수미 뉴욕 할렘 고등학교에서 ‘아리랑’ 부른 이유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할렘가의 한 고교를 찾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무료 콘서트를 열었다. 조씨는 흑인과 라틴계 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맨해튼 북부 할렘가의 데모크라시 할렘 고교 지하 강당에서 아돌프 아담의 오페라 ‘르 토레아도르’에 삽입된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를 시작으로 학생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주역으로 섰던 프리마돈나가 할렘 가의 작은 학교 무대에 오른 것은 각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2013년 뉴욕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이 학교는 한국어 및 우리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학생들은 공연 도중 우리말로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공연 마지막 곡은 ‘아리랑’이었는데 조씨가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학생들과 함께 불러 기립박수를 낳았다. 이 학교 9학년생 자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너무 좋았다.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해준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할렘 고교 공연 전날에는 주유엔 한국대표부 주최로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한국전 정전 70주년 콘서트에 출연해 6·25 전쟁 당시 우리 손을 잡아준 참전영웅을 위해 노래했다.
  • K발레 개척자… “이젠 후배들 멘토, 한일 문화교류 다리 역할 할래요” [임형주의 임의 동행]

    K발레 개척자… “이젠 후배들 멘토, 한일 문화교류 다리 역할 할래요” [임형주의 임의 동행]

    한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이웃이었다. 동네에서는 늘 수수하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반려견과 산책하던 모습으로 만났다.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발레계를 호령했고 국립발레단을 12년간 이끌면서 한국 발레의 부흥을 이룬 주인공이라는 걸 누가 알까.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그는 평소와 다르게 화사한 바지 정장 차림으로 나타나 예의 그 화사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세월을 비껴 간 모습에 유지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오늘 사진도 찍어야 한다고 해서 신경 좀 썼다”고 했다. 살짝 매서워 보이는 듯한 눈이 반달처럼 바뀔 때는 손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다. “두 딸의 아이들과 반려견을 데리고 놀아 주는 게 인생 최대의 행복인 할머니”라며 웃어 보였다.최태지 전 국립발레단장은 1996년 최연소(37세)로 단장과 예술감독을 맡은 이후 연임과 재임용, 또다시 연임을 거치며 12년간 발레단을 이끌었다. 정동극장(현 국립정동극장) 극장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발레협회, 무용협회,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 등 다양한 위치에서 예술행정가로서 길을 걸어 온 게 27년이다. 이제는 서울시가 출범한 서울문화재단 문화예술포럼의 공동대표로서 여전히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오랜 시간을 어찌 그토록 에너지 넘치게 활동하는지 물었더니 “아이고, 이제는 ‘노땅’이라 옛날이야기 하는 게 쑥스럽다”며 운을 뗐다. 지금에야 국립발레단의 공연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객석이 꽉꽉 들어찰 정도로 사랑받지만 1990년대는 달랐다. “그때는 정말 답답한 게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도 내 한국말이 유창하지 않은데 그때는 더했죠. 한국말도 잘 못하고 행정 경험도 전혀 없고.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어요. 그래서 더 노력했죠, 잘하려고. 정말 진심을 담아서.” 그래서인지 발레계에선 여전히 최 단장 시절의 발레단을 이야기한다. 필자의 지인들도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불꽃 같은 추진력은 누구도 못 따라간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고, 그건 너무 좋게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누구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당시는 국립단체인데도 지원이 부족했습니다. 처우 개선이 너무나 필요했죠. 예를 들어 발레리나는 하루 종일 연습하니까 토슈즈가 금방 너덜너덜해져요. 공연을 앞두고는 2~3일마다 바꾸기도 하는데 이런 지원이 전혀 없는 거죠. 지원 예산을 요청했더니 ‘빨아서 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아와요. 토슈즈는 나무와 종이가 들어가 있거든요. 이런 걸 하나하나 설명해야 해요. 너무 힘들죠. 연말에는 으레 공연하는 ‘호두까기 인형’ 하나 올리는데도 정부 예산을 따야 하니 쉽게 간 게 하나도 없었죠. 그땐 거의 매일 기획재정부 가서 납작 엎드리는 게 일이었어요.” 추억은 항상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게 마련인가. “그때처럼 술을 많이 마셨던 적도 없는 듯하다”는 그는 “관계도 잘 다져야 하니까 기재부 공무원들과 모임도 많이 했다. 빼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맥주, 소주, 사이다 섞은 ‘폭탄’도 엄청 먹고 다음 날 일어나지도 못했던 적이 몇 번 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한국말을 잘 못해서 너무 어려웠는데, 가끔은 그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적어도 거짓말은 안 하겠지, 이렇게 생각했다더라”고 후일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였던 삶에서 180도 바뀐 셈이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책임감이 절 붙잡는다”고 했다. “오빠 둘과 언니 하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서 아버지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런 아버지가 한국의 국립단체에서 일한다니까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어요. 막내딸이 무섭고 외로울까 봐 매달 한국에 와 주시기도 했고요.” 최 전 단장은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다. 대학까지 일본에서 공부했고 1980년대에 프랑스 프랑게티 발레 아카데미와 미국 조프리 발레스쿨을 연이어 수료했다. 일어와 프랑스어, 영어가 한국어보다 먼저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조건이랄까. “무엇 하나 쉬운 것 없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아버지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늘 세상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서른일곱 살도 춤출 수 있는 나이였지만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지로 프리마돈나의 길을 벗어던지고 과감하게 예술행정가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1996년 초~2001년 말과 2008년 초~2013년 말, 그의 임기 동안 국립발레단은 르네상스를 맞았다. 창작 발레와 대작, 현대 발레를 골고루 선보이면서 무용수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관객들이 자연히 몰려들었다. 발레 공연 관객의 비중도 달라졌다. 초대 인사가 대부분이었던 객석에 유료 관객 점유율이 높아지며 그의 퇴임까지 꾸준히 90% 중반을 유지했다. 그는 “주변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고 깊이 배우게 된다.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고 감사히 일할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아버지와 함께 떠올리는 분은 임성남(1929~2022) 1대 국립발레단장이다. “일본에서 발레를 할 때 ‘이지메’(따돌림)를 많이 당했어요. 좋은 역할만 하니까 같이 놀아 주질 않더라고요. 탈의실에서 혼자 바나나 먹고, 애들은 옆에서 웃고 있고. 너무 외롭고 속상했지. 늘 부족하다는 생각에 도망가고도 싶었고. 그때 고등학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 주셨어요. ‘야스에(최 전 단장의 일본 이름이다)짱, 발레의 신이 당신을 사랑하게 돼서 도망갈 수가 없어요.’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쳤어요. 그리고 힘을 얻었죠.” 그런데 또 한 번 벽에 부딪혔다. 일본에서 해외 발레 연수 프로그램에 도전하려고 보니 우선 조건이 ‘일본 국적’이었다. “아버지는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으셨어요. 제가 그 뜻을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비로 프랑스 유학을 택했죠.”프랑스 유학 후에 일본에 돌아와서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던 때 당시 일본발레협회장이었던 시마다 히로시(한국명 백성규) 선생이 당시 국립발레단을 맡고 있던 임 전 단장을 이어 줬다. 그렇게 1983년 국립발레단 무용수로 한국 무대에 섰다. 실력이 남다른 그의 몸짓에 평단과 관객은 열광했고, 그렇게 한국의 삶이 시작됐다. 임 전 단장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을 덧댔다. “학연도 지연도 없던 한국에서 실력으로 인정해 주시고 한국의 정이라는 것,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말썽도 많이 부렸는데 끝까지 믿어 주셨어요.” 결혼과 출산으로 발레계를 떠날 생각을 했던 그를 설득하고 손을 내밀었다. 2000년 국립발레단이 재단법인화했을 때 최 전 단장은 그를 초대 이사장으로 모시며 국립발레단의 변화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했다. 발레단 지도위원으로 있던 그를 3대 단장으로 강력하게 추천한 김혜식 2대 단장에게도 감사의 마음이 크다. “처음엔 ‘내가?’,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론 뭐랄까, 운명 같은 걸 느꼈습니다. 그런 운명을 받아들이니 책임감을 갖게 되더라고요.”유료 관객률을 90%까지 끌어올리고 국립발레단 예산도 100억원을 넘기면서 이제는 국립발레단도 잘 유지될 거라 생각하면서 그는 단장직을 기쁘게 내려놓았다. 그러다 윤장현 당시 광주시장이 한국의 유일한 시립발레단을 키워 달라는 요청을 해 왔다. “이제 개인적인 시간을 우리 강아지랑 더 보내야 한다고, 이제 좀 쉬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필요하다고 하시더라”며 웃어 보이더니 “그런데 너무나 간곡히 요청해 와서 결국엔 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국의 발레 부흥을 이끈 그가 지역 발레단으로 간다는 소식은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실력이든 환경이든 국내 최정상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 의아해하기도 했다. 결국 자리를 받아들인 이유는 단순했다. “그저 광주에서도 발레가 더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시립발레단이 잘되면 다른 도시들에도 시립단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스스로는 ‘국립발레단과 절대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단원들에게도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충분히 얘기하면서 “우리가 할 일이 이렇게 많다”며 의욕을 북돋웠다. 1983년부터 40년, 한국 발레계를 성장시킨 최 전 단장 덕에 많은 문화계 후배가 문화예술행정가를 꿈꾸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예술계에 몸담은 필자의 입장에서도 최 전 단장의 존재와 발자취가 크고 남다르게 다가온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었더니 주저 없이 “후배들의 멘토”라는 답이 튀어나왔다. “그건 아마 죽을 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에요. 요즘 정말 훌륭한 발레계 후배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을 키워야죠. 그리고 내게 마지막 소망이 하나 있다면 재일교포 출신으로서 한일문화교류에 이바지하는 거예요. 이제 코로나 팬데믹도 끝났고 활발하게 교류할 때라고 봅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교과서 문제나 역사 인식 문제 등이 있지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게 문화예술이라고 봅니다. 참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예술로 다리를 놓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한국 아티스트를 일본에 더 많이 소개하고 일본 예술가들도 많이 초청해야 한다”면서 그는 광주에 있는 아시아문화의전당을 언급했다. “아시아의 문화 허브로 만들겠다고 지었는데 아직 활성화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죠. 이제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뷰하던 2시간 내내 그가 풀어 놓은 국내 발레계와 국공립단체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만의 노하우와 경험들, 빛나는 아이디어가 무척이나 아깝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청년 못지않게 정열적으로, 크고 둥근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다시 한번 우리 문화예술계를 위해 ‘봉사’해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커졌다. 그에게 ‘실례’가 되려나, 아니면 필자의 ‘욕심’이려나. 무엇이든 문화예술계에 그는 필요한 존재라는 확신이 든다.
  • “테니스는 마른 금발 백인이 하는 것” 한국계 디자이너 뉴욕서 피소

    “테니스는 마른 금발 백인이 하는 것” 한국계 디자이너 뉴욕서 피소

    팝스타 비욘세와 마돈나를 고객으로 둔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욕의 한국계 디자이너가 자신이 해고한 직원에게 고소를 당했다. 뉴욕포스트는 1일(현지시간) 디자이너 유지니아 킴에게 해고당한 브리지트 세나(47)가 뉴욕 법원에 민사 소송을 냈다고 보도했다. 원고 세나는 테니스 패션 라인 런칭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지니아 킴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결국 해고당했다고 주장했다. 테니스 패션 광고와 관련해 플러스 사이즈 흑인 모델을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유지니아 킴이 분노했다는 것.소장에 따르면 킴은 “나는 테니스 패션 광고에 흑인 모델을 고용하고 싶지 않다”며 “나는 매일 테니스를 치는데 흑인을 본 적이 없다. 세레나 윌리엄스를 제외하고 흑인이 테니스를 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왜 XL 모델을 촬영해야 하나? 아무도 XL 모델로 찍지 않는다. 나는 비만인, 어 XL 사람들이 테니스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킴은 새로운 패션 라인 홍보를 위해선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고의 반론에 “테니스는 마른 금발 백인이 하는 운동”이라고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고는 지난 4월부터 플러스 사이즈 흑인 모델 기용에 대해 자신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자 업무에서 배제됐고, 결국 지난 6월 회사 정보를 빼돌렸다는 누명을 쓰고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킴에 대한 원고 세나의 요구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킴의 디자인 회사는 “소수인종 여성이 경영하는 우리 회사는 인종과 성, 종교 등 어떤 차별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킴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이 회사는 원고의 문제제기 전부터 다른 제품 라인 홍보에서는 플러스 사이즈 흑인 모델 등을 기용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킴은 독특한 모자 디자인으로 뉴욕 패션계에서 유명해진 디자이너다.
  • 겨드랑이 털이 뭐 어때서? 남자도 밀고, 여자도 기른다 [김유민의 돋보기]

    겨드랑이 털이 뭐 어때서? 남자도 밀고, 여자도 기른다 [김유민의 돋보기]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2’에 출연 중인 잼 리퍼블릭 막내 오드리(19)가 퍼포먼스 도중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노출해 화제를 모았다. 미국에서 온 오드리는 평소 인스타그램에도 겨드랑이 털을 숨기지 않고 올려왔다. 영화 ‘노트북’ ‘어바웃 타임’으로 잘 알려진 배우 레이첼 맥아담스(44) 역시 최근 화보에서 겨드랑이 털을 공개했다. 맥아담스는 “일단 (제모는) 하면 절대 멈출 수 없다. 인생은 길고, 면도는 힘든 일이다”라며 제모를 그만 둔 이유를 밝혔다. 그는 “나는 두 아이를 낳았다. 이것 또한 내 몸이고, 세상에 반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보정을 하지 말아줄 것을 요청했다. 패션업계 역시 이같은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아디다스는 2021년 겨드랑이 털을 드러낸 댄서 레일라 데이비스의 사진을 광고로 사용하며 제모에 대한 여성의 자율성을 내세웠다.이보다 먼저 1985년 마돈나는 남성 잡지 ‘플레이보이’에 제모를 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노출했고, 1999년 배우 줄리아 로버츠는 영화 ‘노팅힐’ 시사회에서 제모를 하지 않은 채 나타나 이목을 끌었다. 뒤늦게 제모하는 것을 잊었다고 말하긴 했지만, 필수처럼 여겨지던 겨드랑이 관리를 하지 않을 자율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중국에서는 여권 운동가들이 여성에게 강요된 ‘미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자는 취지로 ‘겨드랑이 털 인증사진 콘테스트’를 열기도 했다. 40여명의 여성이 제모하지 않은 겨드랑이를 웨이보에 올렸고, 주최측은 “여성은 겨드랑이 털을 포함해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방법에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 제모를 선택할 수 있지만, 고정관념 때문에 제모를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2007년 중국 영화 ‘색, 계’ 속 탕웨이의 겨드랑이 털과 관련 영화를 연출한 리안 감독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여성의 겨드랑이 털은 성적 매력의 상징”이라며 영화 속 배경인 1930년대 상하이에서는 여성 대부분이 겨드랑이 털을 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성별에 상관없이 제모 여부 선택” 지난 6월 이스탄불에서 열린 축구 챔피언스리그에서 맨체스터 시티 존 스톤스의 상의가 찢어져 겨드랑이가 노출되는 일이 발생했다. 해외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깨끗이 제모된 존 스톤스의 겨드랑이가 화제가 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겨드랑이 털을 완전히 미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찰을 줄이고 더 빠르게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운동선수 중에서는 겨드랑이털을 제모하는 경우가 많다. 운동선수 뿐 아니라 일반인 남성들도 겨드랑이 제모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제모를 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미국 잡지 맨즈헬스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19년 68%의 남성들이 겨드랑이를 제모했고, 그 중 52%는 심미적인 이유로, 16%는 운동 때문에 제모했다고 답했다. 이외에 땀, 냄새로 인한 불편함, 운동 기능성 셔츠의 효과 증진 등을 제모 이유로 꼽았다.겨드랑이 털은 언제부터 밀게 됐을까 일각에서는 여성의 겨드랑이 털을 터부시하게 된 것은 면도기 회사의 광고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1915년 미국 질레트사는 여성전용 면도기를 최초로 생산하면서 민소매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그림과 함께 ‘겨드랑이는 얼굴처럼 부드러워야 한다’는 문구를 넣어 매끄럽고 부드러운 겨드랑이가 아름답다고 광고했다. 이후 면도기 회사들이 비슷한 광고를 통해 여성전용 면도기 매출을 끌어올렸고, 여성의 겨드랑이 털 제모는 주된 문화로 자리잡았다.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겨드랑이 털은 길러도 되고 밀어도 되는 취향의 영역이며, 성별은 그 기준이 될 수 없다. 이제는 남성이 깔끔하게 털을 밀어도, 여성이 털을 기르고 민소매를 입어도 자연스러운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이제 사람들은 사회적 시선보다 개인의 필요와 개성에 따라 성별에 상관없이 제모 여부를 ‘선택’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 의식 잃은 채 발견됐던 마돈나…SNS에 전해진 소식

    의식 잃은 채 발견됐던 마돈나…SNS에 전해진 소식

    박테리아 감염으로 중태에 빠졌던 팝스타 마돈나가 근황을 전했다. 마돈나는 19일 자신의 SNS에 “장미 한 송이가 내 정원이 될 수 있다. 내 세상 단 한 명의 친구”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마돈나는 장미꽃 한 아름을 양 팔로 가득 안고 눈을 감고 있다. 이를 본 팬들은 “이전보다 나아보인다” “쾌차해서 다행” “많이 사랑한다” 등의 격려를 보냈다. 마돈나는 지난달 24일 박테리아 감염으로 인해 뉴욕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마돈나는 중환자실에서 삽관 치료를 받았다.
  • ‘세균 감염’ 마돈나, 중환자실行 이후 근황

    ‘세균 감염’ 마돈나, 중환자실行 이후 근황

    박테리아 감염 후 응급실로 이송됐던 팝스타 마돈나가 건강을 회복 중이라는 사실을 직접 밝혔다. 마돈나는 11일(한국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 장의 셀카와 함께 건강 상태를 알리는 글을 게재했다. 해당 게시물에서 마돈나는 “당신의 긍정적인 에너지에 감사드린다”며 “기도와 치유, 격려의 말로 당신들의 사랑을 느꼈다”고 전했다. 마돈나는 이어 “나는 회복의 길에 있고 모든 축복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사하다”며 “병원에서 일어났을 때 첫 번째로 생각난 것은 내 아이들이었고 두 번째로 생각난 것은 내 투어 티켓을 산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마돈나는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게 싫다”며 “지금 내가 집중하는 것은 내 건강과 점점 강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빨리 돌아오겠다”며 “현재로서의 계획은 북미 투어 일정을 다시 잡고 유럽에서 오는 10월에 시작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마돈나는 “당신의 보살핌과 지원에 이보다 더 감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마돈나는 지난달 24일 심각한 박테리아 감염으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고, 이후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 이송된 후 중환자실에 입원한 사실이 전해졌다. 당초 마돈나는 오는 7월15일 캐나다 밴쿠버를 시작으로 내년 1월까지 북미와 유럽에서 40주년 기념 ‘셀레브레이션’(Celebration)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치료로 인해 투어 일정을 연기하게 됐다.
  • 의식 잃은 채 발견됐던 마돈나 현재 상태

    의식 잃은 채 발견됐던 마돈나 현재 상태

    팝스타 마돈나가 건강을 회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9일(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페이지식스에 따르면 마돈나는 최근 동네에서 친구와 함께 산책 중인 모습이 포착됐다. 당시 마돈나는 선글라스와 챙이 넓은 모자 그리고 운동화를 착용한 모습이었다. 또한 그는 길을 건너기 전 가로등 기둥에 몸을 기대기도 했다. 페이지식스는 “일요일 오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마돈나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걷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고도 전했다. 앞서 마돈나는 지난달 24일 심각한 박테리아 감염으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고, 이후 미국 뉴욕의 한 병원에 이송된 후 중환자실에 입원한 사실이 전해졌다. 당초 마돈나는 오는 7월15일 캐나다 밴쿠버를 시작으로 내년 1월까지 북미와 유럽에서 40주년 기념 ‘셀레브레이션’(Celebration)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치료로 인해 투어 일정을 연기하게 됐다. 이에 마돈나의 매니저는 당시 성명을 통해 “그의 건강은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치료를 받는 중”이라며 “현재 투어를 포함한 모든 일정을 중단한다”고 전했다. 또한 “완전히 회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도 덧붙였다.
  • 마돈나, 자택서 의식 잃은 채 발견… 박테리아 감염에 중환자실 입원

    마돈나, 자택서 의식 잃은 채 발견… 박테리아 감염에 중환자실 입원

    다음달 시작 예정이던 월드투어 연기 미국 팝스타 마돈나(64)가 박테리아 감염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다음달 예정이던 월드투어는 연기됐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연예매체 페이지 식스 등 외신에 따르면 마돈나는 지난 24일 뉴욕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뉴욕시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외신은 “마돈나가 중환자실에서 밤새 삽관 치료를 받았다”며 “입원 당시 마돈나의 큰딸 루데스 레온이 함께 했으며, 밤새 엄마를 간호했다”고 전했다. 28일 마돈나의 매니저 가이 오시어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24일 마돈나는 심각한 박테리아 감염이 발병해 며칠 동안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은 호전되고 있지만, 여전히 치료받고 있다”며 “완전한 회복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로서는 투어를 포함한 모든 일정을 중단해야 한다”며 “투어의 새로운 시작 날짜와 일정 변경 등 자세한 정보가 나오는 대로 공유하겠다”고 덧붙였다. 마돈나가 감염된 박테리아의 종류는 알려지지 않았다. 마돈나는 다음달 1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월드투어 ‘셀러브레이션’(Celebration) 공연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이 투어는 미국에서 먼저 디트로이트, 시카고, 마이애미, 뉴욕을 돈 후 가을까지 런던, 바르셀로나, 파리 등 유럽 주요 도시에서 이어질 계획이었으나 추후 공지가 있을 때까지 연기됐다. 40년 넘는 마돈나의 음악 인생이 담길 이번 월드투어의 표는 거의 매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사랑의 기쁨과 슬픔/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사랑의 기쁨과 슬픔/미술평론가

    소나무가 늘어선 바닷가에 한 젊은 여인이 뒷짐을 지고 서서 정면을 바라본다. 바다는 호수처럼 고요하고 달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노르웨이의 여름은 밤이 돼도 환하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고 뿌예질 뿐. 이윽고 먼동이 튼다. 에드바르 뭉크는 평온하면서도 불안한 백야의 분위기를 포착하려고 오후 9시에서 11시 사이에 바닷가에 나가 작업을 했다. ‘목소리’는 여섯 점으로 이루어진 연작 ‘사랑의 씨앗’의 첫 번째 작품이다. 뭉크는 1902년 베를린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생의 프리즈’라는 대주제 아래 작품을 ‘사랑의 씨앗’, ‘사랑의 개화와 소멸’, ‘불안’, ‘죽음’이라는 네 개의 소주제로 묶어 맥락을 부여했다. ‘마돈나’, ‘절규’ 같은 걸작이 이 시리즈에 포함됐다. ‘목소리’는 ‘생의 프리즈’ 연작 가운데 가장 밝고 천진한 분위기다. 흰옷을 입고 달빛 아래 서 있는 귀여운 여인에게서 남자를 유혹해 파멸시키는 팜파탈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뭉크가 스물한 살에 만난 첫사랑의 여인 밀리 테울로브. 오슬로 사교계에서 유명했던 테울로브는 뭉크보다 서너 살 위인 유부녀였고 발랄했다. 그녀는 부드럽게 얘기하다 갑자기 남을 놀리고 도발적인 농담을 하고는 했다. ‘목소리’라는 제목은 움트는 사랑의 설렘을 담고 있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 대신 따르던 누이마저 폐결핵으로 잃은 뭉크가 연상의 여인에게 빠져든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유부녀인 테울로브와의 사랑이 행복한 끝을 맺을 수는 없었다. 2년 후 테울로브는 떠났고 뭉크는 배신감에 몸부림쳤다. 이 그림은 뭉크가 표현주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소나무와 여인, 달빛이 만드는 리드미컬한 수직선이 길게 휘어진 해안선과 만나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뭉크가 반 고흐, 고갱, 휘슬러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세계로 들어섰음을 볼 수 있다.열흘 전 나는 이 그림 앞에 서 있었다. 보스턴 미술관이 아니라 빗속을 뚫고 당도한 클라크 아트 인스티튜트에서였다. 매사추세츠에 있는 이 미술관에서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뭉크를 가져와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이 그림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좌절된 욕망이 때로는 아름다운 시를 낳는다.
  •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로 보사노바 알린 질베르투 [메멘토 모리]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로 보사노바 알린 질베르투 [메멘토 모리]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The Girl from Ipanema)’로 널리 알려진 브라질 보사노바 가수 아스트루지 질베르투가 83세에 세상을 떠났다. 손녀이며 음악인인 소피아 질베르투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망 소식을 전했다. 소피아는 “할머니가 오늘 하늘의 별이 됐고, 할아버지 주어웅 질베르투 옆에 있다는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됐다”고 했다. 소피아는 할머니가 자신을 위해 작곡한 ‘아름다운 소피아’라는 노래를 언급하며 “노래가 말하는 것처럼, 인생은 아름다워요. 이파네마의 보사노바를 전 세계로 알린 진정한 소녀였다”라고 적었다. 며느리 아드리아나 마갈라이스는 6일(현지시간) “아스트루지가 살던 미국 필라델피아의 집에서 그녀가 바라던 대로 평화롭게 떠났다“고 전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소화 불량을 호소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1960년대와 70년대 브라질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던 그녀는 16장의 앨범을 녹음했으며 퀸시 존스에서 조지 마이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했다.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는 500만장 이상 팔렸고 보사노바란 장르를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고인은 스물두 살의 나이에 영어로 노래를 불렀는데 나중에 프랭크 시내트라와 마돈나에서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냇 킹 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들이 그들만의 해석을 실어 노래를 불렀다. 바이아에서 태어난 아스트루드 에반젤리나 와인너트는 어린 나이에 리우데자네이루로 이주했는데 “거의 모든 사람이 악기를 연주했던 외가 쪽으로부터 음악적 영감을 물려받았다”고 돌아보기도 했다.10대 중반에 그녀는 보사노바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유명한 가수 나라 레아오와 유명 기타리스트 주어웅 질베르투를 포함한 “음악 클랜”이라고 묘사한 젊은이들과 어울렸다. 1963년 주어웅이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 스탠 게츠와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스튜디오 통역을 하려고 뉴욕으로 향했다. 그렇게 만난 지 몇 달 안돼 두 사람은 결혼했다. 밴드가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의 영어 버전을 녹음하려 했을 때 질베르투는 수줍게 그녀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엔지니어 필 레이먼은 2012년 재즈왁스(Jazzwax) 인터뷰를 통해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가 당장 곡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고 방을 둘러봤다. 아스트루지가 영어로 노래할 수 있다고 자원했다. 크리드가 말하길 ‘좋아요’라고 했고, 아스트루지는 (당시만 해도) 전문적인 가수는 아니었지만 그날 밤 그곳에 앉아 있던 유일한 희생자였다”고 말했다. 준비할 시간이 거의 없었지만 아스트루지의 초연하지만 섹시한 보컬은 지나가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키도 크고 눈이 황갈색이며 젊고 사랑스러운” 소녀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살려냈다. 그래미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노래가 게츠와 주앙의 작품으로 발매됨에 따라 그녀가 노래를 부른 명목으로 챙긴 것은 120달러의 세션 비용뿐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65년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을 시작으로 성공적인 솔로 경력이 시작됐으며 재즈 기타리스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과 팀을 이뤄 브라질 재즈의 표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들었다.지난해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뷰를 통해 아들 마르셀루는 어머니가 여성이란 차별적인 시각 때문에 음악산업에서 생활하는 것에 힘들어 했다고 전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게츠가 그녀를 주부가 되지 않도록 구해줬다면서 몇몇 사람들이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가 성공한 것에 숟가락을 얹으려 한 사실을 돌아봤다. 그녀는 “진실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적었다. “내 노래에서 재능이나 잠재력을 인정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 중요해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의 중요성에 아첨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1970년대에 그녀는 앨범 ‘Astrud Gilberto Now’(1972)와 ‘That Girl From Ipanema’(1977)을 위해 자신의 노래를 만들었다. 뒤 앨범에 그녀는 전설적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와의 듀엣으로 자신의 작품인 ‘파 어웨이’를 수록해 평생의 소원을 이뤘다. 영화 ‘The Hanged Man’과 ‘Get Yourself a College Girl’에 얼굴을 내밀고 퀸시 존스의 ‘The Deadly Affair’ 사운드트랙에 참여했다. 1980년대 초 아스트루지는 아들 마에클로가 베이스를 맡은 그룹을 결성하고 세계를 돌았지만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브라질에서 연주하는 일은 피하려 했다. 대신 유럽에서 그녀는 제임스 라스트와 함께 삼바 클래식 앨범을 녹음했다. 조지 마이클은 1996년 자선 앨범 ‘Red Hot + Rio’를 위해 ‘Desafinado’ 듀엣을 제안했다. 고인은 2002년 마지막 앨범 ‘정글’을 녹음한 뒤 “예전에는 대중과 가까이 있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하면서 공연 중단을 발표했다. 말년의 대부분은 동물 학대에 반대하는 캠페인에 바쳤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 부산시, 세계적 공연기획사 라이브네이션과 복합문화단지 조성 협약

    부산시, 세계적 공연기획사 라이브네이션과 복합문화단지 조성 협약

    세계적인 공연 기획사인 라이브네이션이 부산에 대형 공연장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하는 협약을 부산시와 체결했다. 시는 19일 라이브네이션엔터테인먼트와 최첨단 아레나 공연장을 포함한 복합문화단지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협약식에는 박형준 부산시장과 그레고리 길린 라이브네이션 수석부사장, 특수목적법인인 비겟의 이승한 대표이사가 참석했다. 협약에 따라 비겟은 단지 조성과 운영을 위한 투자계획 수립, 재원 조달 등을 담당하고 라이브네이션은 단지 내 공연장 문화콘텐츠 제공 및 운영, 공연장 기획·설계 노하우 제공 등을 맡기로 했다. 부산시는 단지의 원활한 조성을 위해 행정적인 지원을 한다. 라이브네이션은 세계 250개 이상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공연장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고, 비욘세, 마돈나, 레이디가가, 아델,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트와이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투어를 책임지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에 지어지는 아레나는 우리나라 대표 관광허브가 돼 지역과 국가 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오시리아관광단지, 해운대해수욕장, 부산불꽃축제 등 지역 관광명소, 콘텐츠와 융합돼 부산이 문화적 역동성이 풍부한 도시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 휴머니즘 한 움큼 빼도…여운은 한가득[OTT 언박싱]

    휴머니즘 한 움큼 빼도…여운은 한가득[OTT 언박싱]

    최근 안방극장은 두 편의 의드(의학 드라마)가 용호상박의 대결을 펼치고 있다. 지상파 드라마 최초로 시즌3가 제작된 ‘낭만닥터 김사부’와 ‘왕년의 마돈나’ 엄정화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닥터 차정숙’은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몰이 중이다. 의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장르 중 하나로 대박이 아니더라도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큰 사랑을 받아 왔다. 그 열풍이 2023년에 다시 이어지는 중이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박감 넘치는 수술 장면과 가슴이 따뜻해지는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의드의 매력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색다른 별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웨이브에서 감상할 수 있는 두 편의 의드는 장르의 힘은 살리면서 독창적인 시도로 치즈 닭갈비 같은 맛을 선사한다. 첫 번째는 캐나다 최고의 히트 드라마 중 하나로 시즌3까지 제작된 ‘트랜스플랜트’다. 의사 하메드는 생존을 위해 생과 사의 갈림길 속 분투해야 하는 위독한 환자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시리아 난민 출신이기 때문이다. 고국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그는 종합병원 서류면접에서 탈락한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던 중 요크 메모리얼 병원의 과장 비숍을 사고에서 구하며 인연을 맺게 된다. 자신의 권한으로 하메드를 외과 전문의로 취업시킨 비숍은 그에게 강력하게 한 가지를 요구한다. 바로 노력이다. ‘의사는 죽인 환자의 수만큼 성장한다’는 전설적인 의학 만화 ‘의룡’의 명대사가 하메드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다. 시리아와는 다른 병원의 절차와 형식에 익숙해질 시간도 없이 단 하나의 실수, 한순간의 나태도 허용되지 않는다. 영화 ‘미나리’ 속 이민자 가족처럼 하메드가 뿌리를 내려야 하는 낯선 땅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이방인이기에 받아야 하는 의심과 끊임없는 증명, 난민 사회 안에서 더 높은 기회를 부여받았기에 겪어야 하는 따가운 눈총과 부담이 쉴 틈 없는 응급실과 같은 모습의 삶을 보여 준다. ‘트랜스플랜트’는 제목의 의미를 액자식으로 구성한다. 수술을 통해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의사들의 이야기를 내화로, 새로운 땅에 정착하기 위해 노력을 반복하는 하메드의 모습을 외화로 둔다. 수술의 이식과 이민의 이식을 동일선상에 두면서 신의 영역에서 타인을 구하는 의사가 과연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지 주목하게 만든다.기바야시 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닥터 화이트’는 의사가 주인공이 아닌 의드다. 의료 저널리스트 가리오카 마사키는 어느 날 공원에서 기억을 잃은 소녀 유키무라 뱌쿠야를 발견한다. 정체불명의 이 인물은 풍부한 의료지식으로 환자의 상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의사들을 향해 “그거, 오진이에요”라고 말하는 뱌쿠야의 트레이드마크는 주제의식을 코믹하면서도 통렬하게 표현한다. 의드가 갈등을 만드는 코드 중 하나는 의사의 권위주의다. 병원 내 알력 다툼과 서열 문제는 정확한 진단을 방해하고 개복이 모든 걸 결정하는 수술 만능주의로 빠지게 만든다. 때문에 오진이 따르게 된다. 하얀 도화지처럼 단어부터 감정까지 하나씩 배워 나가는 뱌쿠야는 인간에 대해 모르기에 더 환자를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병원을 집어삼키려는 외과 과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의 견제 속에서도 뱌쿠야와 마사키가 속한 진단 전문팀은 오진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분투한다. 기존 의드의 공식이 뛰어난 스승의 조력으로 사명감을 지닌 의사로 성장하는 개인을 그리는 과정이었다면 ‘닥터 화이트’는 반대를 향한다. 완벽에 가까운 실력을 지닌 의료인이 주변의 도움을 통해 한 명의 인간으로 점점 채워지는 과정을 색다른 휴머니즘으로 담아낸다. 의술(醫術)이 지향해야 하는 가치가 인술(仁術)에 있음을 보여 주는 방향성은 이 드라마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뱌쿠야의 정체와 관련된 미스터리까지 더해지며 오락적으로 풍성한 재미도 책임진다.김준모 키노라이츠매거진 편집장
  • 성형중독 의혹 ‘로코퀸’ 여배우, 최근 모습 공개됐다

    성형중독 의혹 ‘로코퀸’ 여배우, 최근 모습 공개됐다

    1990년대 할리우드를 사로잡았던 ‘로코퀸’ 맥 라이언(61)의 과도한 성형수술이 팬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백투더퓨처’ 마이클 J. 폭스의 새로운 다큐멘터리 ‘스틸’ 상영화에 참석했다. 라이언은 빌 머레이, 엘비스 코스텔로 등 여러 친구들과 함께 사진 포즈를 취하며 미소를 지었다. 라이언은 전매특허 미소를 지으며 발랄한 매력을 뽐냈으나 그의 얼굴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페이지식스는 “6개월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멕 라이언은 이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보도했다. 한 비평가는 “라이언은 분명 마돈나와 같은 성형외과 의사를 만났을 것”이라며 라이언의 어색해진 얼굴을 꼬집었다. 한편 라이언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갓메일’ 등을 통해 최고의 로코퀸으로 불렸다.
  • CNN “블랙핑크 코첼라 공연 한복과 부채춤 역사에 남을 것”

    CNN “블랙핑크 코첼라 공연 한복과 부채춤 역사에 남을 것”

    걸그룹 ‘블랙핑크’가 세계 최대 음악축제인 미국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아시아 아티스트 최초로 헤드라이너로 나선 것이 크게 주목받고 있다. 미국 CNN은 19일(현지시간) 온라인판 ‘룩 오브 더 위크(Look of the Week)’ 코너에서 한복을 입고 코첼라 헤드라이너로 나선 블랙핑크를 조명하며 “역사에 남을 것(go down in history)”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이 코너는 지난 7일 동안 가장 많이 언급된 의상을 분석하는 시리즈다. CNN은 코첼라 관련 보도들을 인용해 “블랙핑크 멤버들인 제니·지수·리사·로제는 한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고 12만 5000명 이상의 관객 앞에서 한국 유산에 경의를 표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 팝스타 마돈나가 1990년대 투어 당시 입었던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콘 브라, 영국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 멤버인 게리 할리웰이 1997년 ‘브릿 어워즈’에서 입었던 영국 국기 ‘유니언 잭’으로 만든 미니 드레스, 미국 팝스타 비욘세가 2018년 흑인 여성 최초로 코첼라에서 헤드라이너로 공연했을 때 입은 발망과 협업한 노랑 후드 티 등 그 동안 팝문화 역사에 의미가 있었던 의상 등을 언급했다. 블랙핑크가 이번 코첼라에서 입은 네 벌의 검정 한복에 대해선 패턴 디자인 브랜드 오우르(OUWR)와 한국 전통의상 브랜드인 금단제(KUMDANJE)가 협업해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활동성이 강조된 옷으로 조선시대 무관이 입던 철릭(帖裏) 모양에서 영감을 얻었고, 단청 무늬 그리고 부귀와 풍요 등을 상징해 예로부터 왕실의 사랑을 받아온 모란 등을 포함한 금속성의 한국 전통 문양은 수작업으로 새겼다고 덧붙였다. 오우르 측은 십장생, 자연·별 등으로부터도 모티브를 얻었다고 했다. 블랙핑크는 전통보석과 자개 브로치도 착용했다. 아울러 CNN은 이번 의상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이 소셜 미디어에 “블랙핑크가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줬고, 세계를 눈부시게 했다”고 적은 내용도 전했다.이 밖에 블랙핑크는 이번 코첼라에서 한옥 양식인 기와지붕을 활용한 무대 세트, 대형 깃털 부채를 댄서들의 군무에선 부채춤을 활용하는 등 우리나라 전통을 활용한 무대를 꾸몄다. “한복을 입고 가장 큰 서양 무대에 발을 디딘 블랙핑크”, “블랙핑크는 최고임을 입증해냈다”, “블랙핑크는 그들만의 리그에 있다”는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블랭핑크를 향한 찬사가 쏟아졌다. 팬들은 블랙핑크를 향해 “한국의 문화 대표단”이라며 박수를 보냈다고 CNN은 보도했다. 또 공연에 한 관객이 가져온 대형 태극기는 무대의 한 장치처럼 어우러져 한국적인 미가 더해진 블랙핑크의 무대와 조화를 이뤘다. 블랙핑크 멤버들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코첼라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 눈물을 흘리는 등 감격했는데 22일 한 차례 더 같은 무대에 오른다. CNN은 또 블랙핑크가 2020년 발표한 ‘하우 유 라이크 댓(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선 김단하 한복디자이너의 현대화된 한복을 입기도 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 톱스타부부 이혼선언 “성욕 때문에 못 살겠다”

    톱스타부부 이혼선언 “성욕 때문에 못 살겠다”

    MBC에브리원 ‘장미의 전쟁’에서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충격적인 이혼 사유가 공개됐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팝스타 마돈나의 이혼 사유가 가장 큰 시선을 모았다. 이날 정다희 아나운서는 “성격이 안 맞아도 살기 힘들지만 이게 안 맞아도 살기 힘들다. 이혼 사유 중에 큰 게 성적 욕구 차이다. 배우자의 성욕 때문에 더는 못 살겠다고 이혼을 선언한 감독이 있다”고 운을 뗐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영화감독 가이 리치와 마돈나였다. 정다희는 “아내의 성적 욕구 때문에 이혼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영화감독 가이 리치다. 이분의 아내는 1980년대 섹시함의 대명사인 마돈나”라고 밝혔다. 당시 외신은 가이 리치와 마돈나의 이혼에 대해 “가이와 마돈나의 결혼은 ‘그녀가 성관계를 일정표에 넣기 시작했을 때’ 끝났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정다희 아나운서는 “마돈나는 자기관리가 철저해서 생활을 분 단위로 쪼개서 생활했다. 어느 정도냐면 몇 주 전에 계획해야 한다. 심지어 몇 주 전에 성관계를 하겠다고 일정을 미리 잡아뒀다”라고 전했다. 이에 양재웅은 “생각만 해도 너무 싫다”고 말했고, 이상국은 “대학병원 예약 잡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김지민 역시 “이건 남편 의사도 안 물어본 거 아니냐”며 놀라워했다. 정다희는 “마돈나가 개인 운동 2시간을 하고 와야 성관계를 할 수 있었다. 운동을 못하면 성관계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양재웅은 “그래서 마돈나가 어린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자신에게 시간을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 공감을 샀다. 정다희는 “부부관계가 개인 일정에 밀리다 보니까 남편은 상처가 쌓였다”라며 결국 이혼 전 2년 동안 두 사람은 왕래가 없었다고 밝혔다.
  • 조승우 “모두에 민폐 끼쳐 참담했다” 무슨 일?

    조승우 “모두에 민폐 끼쳐 참담했다” 무슨 일?

    배우 조승우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출연 중인 소감을 밝혔다. 지난 8일 소속사 굿맨스토리 계정에는 조승우의 일문일답이 올라왔다. 조승우는 “‘오페라의 유령’은 정말 대단한 작품이고, 제가 언젠간 꼭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어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도전해보자!’하는 마음으로 선뜻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이 바리톤의 음역을 소화해야 해 처음으로 보컬 발성 레슨을 꾸준히 받았다는 조승우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조승우는 “핑계일 뿐이지만 연습 초반부터 급성 부비동염, 축농증, 비염, 감기가 차례대로 찾아와서 연습 내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돼 연출님을 비롯한 모든 배우, 스탭분들께 걱정을 참 많이도 끼쳤다. 한 달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고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상황이어서 빠져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각종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그는 지옥이라고 말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고 밝혔다. 다행히 동료 배우와 스태프들의 응원 덕분에 최종 드레스 리허설부터 소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다. 조승우는 “아직도 회복 중에 있지만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아마 첫공은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얼른 회복해서 안정적인 소리와 연기로 보답해드리고 싶은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다짐했다. 한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19세기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흉측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오페라 하우스 지하에 숨어 사는 천재음악가 팬텀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크리스틴을 사랑하는 귀족 청년 라울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조승우는 오페라의 유령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6월 18일까지 공연한다. 이어 7월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관객과 만난다.
  • ‘유령’의 
세 글자, 
조승우가 왔다

    ‘유령’의 세 글자, 조승우가 왔다

    전 세계 1억 4500만명 관람, 미국 브로드웨이 사상 최장기 공연 등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Phantom of the Opera) 한국 공연에는 특별한 수식어가 또 있다. 전석 매진. 아무에게나 붙을 수 없고, 다른 어떤 표현보다 배우의 가치를 잘 보여 주는 이 단어의 주인공은 바로 조승우(43)다.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이 13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달 30일 부산 남구 드림씨어터에서 개막한 이번 공연에 조승우는 김주택(37), 전동석(35)과 함께 주인공 유령에 캐스팅됐다.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조팬텀(조승우+팬텀)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부산 공연에서 조승우가 출연하는 회차는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가스통 르루(1868~1927)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의 유령’은 프랑스 파리 오페라극장 지하실에 숨어 사는 정체불명의 유령과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귀족 청년 라울의 사랑과 질투를 다뤘다.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75)가 뮤지컬로 만들어 1986년 초연했다.유령은 자신의 흉측한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지독한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애절하다. 극을 이끌어 가는 핵심 인물로 노래와 연기가 탄탄해야 함은 물론 카리스마까지 지녀야 한다. 조승우의 유령은 캐릭터가 가진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 냈다. 가면을 써서 얼굴이 절반밖에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목소리와 몸짓 등을 통해 좌절, 분노, 사랑과 같은 내밀한 감정을 고스란히 객석에 전했다. 누구나 한 번쯤 격하게 겪어 봤을, 요동치는 심정을 표현한 그의 연기에 관객들도 마음 깊이 공감하게 된다. ‘오페라의 유령’과 조승우는 22년 만에 성사된 만남이라 더 특별하다. 2001년 한국어 초연 당시 조승우는 라울 자작 역할로 오디션을 봤지만 제작사 신입사원의 실수로 불합격 통보 편지를 받았다. 탈락 통보를 받고 영화 ‘후아유’ 출연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인연이 이어지질 않았다. 조승우는 “두려웠고 도망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내 옷이 아닌가’, ‘내겐 너무 큰 옷인가’ 하는 수많은 편견, 선입견과 싸우느라 홀로 많이 지치기도 했었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재정비하고 싶은 의지가 강하게 있었는데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작품”이라며 “그저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은 무대에서 지킨 것 같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작품에 대한 진심은 유령을 분석하며 그에 어울리는 목소리와 발성을 찾아낸 데서도 느낄 수 있었다.이번 공연은 작품이 탄생했을 당시의 오리지널 디자인과 세트를 그대로 가져와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1t의 샹들리에, 22회 장면 전환, 375벌의 의상 등은 눈을 즐겁게 한다. 특별히 이번에 처음으로 3D 기술을 도입해 각 배우의 얼굴 윤곽에 완벽하게 맞춘 마스크도 제작했을 정도로 무대 연출에 힘을 줬다. 크리스틴은 손지수(34)·송은혜(31), 라울은 송원근(41)·황건하(26)가 맡았다. 부산 공연을 마치면 오는 7~11월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 요양시설서 숨진 톱스타 친오빠…사망 원인 밝혀졌다

    요양시설서 숨진 톱스타 친오빠…사망 원인 밝혀졌다

    세계적 팝스타 마돈나(64)의 친오빠 앤서니 치코네의 사망 원인이 밝혀졌다. 지난 2일(현지 시간) 영국 매체 데일리 스타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사망한 앤서니는 호흡 부전과 인후암의 합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흡연이 사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앤서니는 마돈나의 2살 위 오빠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싸워오다 지난 몇 년간은 집 없이 떠돌아다니며 다리 아래에서 노숙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앤서니는 지난 2월 사망했을 당시 미국 미시간주의 한 요양 시설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마돈나가 비용을 부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돈나는 추모글을 통해 “어린 소녀였던 내게 찰리 파커, 마일즈 데이비스, 불교, 도교, 찰스 부코스키, 리처드 브라우티건, 잭 케루악 등을 알게 해줘 고맙다. 확장적인 사고도 하게 해줬다. 오빠는 중요한 씨앗을 심어줬어”라고 고인을 애도했다.
  • 다리 밑 노숙 생활했던 톱여가수 친오빠, 숨진 채 발견

    다리 밑 노숙 생활했던 톱여가수 친오빠, 숨진 채 발견

    가수 마돈나(64·Madonna)의 친오빠가 사망했다. 마돈나의 제부인 조 헨리는 26일(현지시각) 인스타그램을 통해 “안소니 제라드 시코네가 어젯밤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를 15살 때부터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밝혔다. 안소니 시코네는 마돈나의 2살 위 오빠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싸워오다 지난 몇 년 간은 집 없이 떠돌아다니며 다리 아래에서 노숙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안소니 시코네는 지난 2011년 영국 데일리메일과 인터뷰에서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으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난 그들 눈에 없는 사람이며 아무도 아니다. 난 그저 당황스러운 존재일 뿐”이라며 “내가 얼어 죽어도 우리 가족은 아마도 6개월 정도는 알고 싶어 하지도 관심을 갖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마돈나, 큰오빠 앤서니 치코네 사망 소식에 좋아요!

    마돈나, 큰오빠 앤서니 치코네 사망 소식에 좋아요!

    미국 팝스타 마돈나의 큰오빠인 앤서니 치코네가 66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가족 중 한 명이 밝혔다고 영국 BBC가 26일(현지시간) 전했다. 앤서니는 마돈나의 일곱 형제자매 가운데 한 명으로 지난 24일 밤 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싸워 왔으며 몇년 동안 집 없이 떠돌아 한때는 다리 아래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처남이며 싱어송라이터인 조 헨리가 인스타그램에 고인의 흑백 사진과 함께 “이 지상이란 비행기를 탈출했다”고 적었다. 마돈나의 자매 멜라니 치코네와 결혼한 헨리는 “내가 열다섯 살 미시간주에 함께 살던 봄부터 그를 알아 왔는데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고 적었다. 사망 원인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마돈나는 오빠의 죽음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다만 헨리의 인스타그램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고 방송은 전했다. 마돈나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앤서니를 비롯한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자라났다. 댄스와 음악 일을 알아보려고 마돈나가 1978년 뉴욕으로 옮겨왔을 때도 치코네 사람들은 미시간주에 살고 있었다. 이들이 모두 어렸던 1963년 어머니를 유방암으로 잃었다. 헨리는 인스타그램 글에다 고인이 “복잡한 캐릭터”라고 적은 뒤 “하느님은 안다. 우리는 진정한 형제들이 할 수 있는 것처럼 순간순간들에 묶여 있다. 하지만 난 그를 사랑했고 내가 때때로 그러고 싶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를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곤경은 끝나간다. 가족은 남아있고 손을 뻗치면 닿을 거리에들 있다. 안녕, 앤서니 형”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고인의 축복받은 어머니(와 우리 어머니)가 그곳에 있다가 고인을 받아들이려고 기다린다고 생각하고 싶다. 적어도 오늘만은 누구도 이런 환상을 갖지 말라고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앤서니는 가족들과 거리를 둬 왔으며 전에 그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그는 2011년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를 통해 “난 그들 눈에 없는 사람이며 아무도 아니다. 난 그저 당황스러운 존재”라고 털어놓은 뒤 “내가 얼어 죽어도 우리 가족은 아마도 6개월 정도는 알고 싶어하지도 관심을 갖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에 그가 재활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으며 가족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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