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마돈나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강풍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발급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올가미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 승무원
    2026-08-0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0
  • 킴 캠벨 캐나다 새수상/정계입문 7년만에 대권 차지(뉴스인물)

    13일 보수당 당수 선거에서 승리,캐나다 최초의 여성총리 자리를 굳힌 킴 캠벨(46)은 정계입문 7년만에 「대권」을 차지할 정도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지닌 신세대정치인. 「캐나다 정계의 마돈나」로 불릴만큼 미모에 자유분방한 사생활을 영위하면서도 특유의 독설과 재치로 정책추진력은 남성 이상으로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런던대학 경제학과에서 러시아문제를 전공,지난 86년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90년 법무장관과 인디언문제담당장관,지난 1월 국방장관 등을 역임하며 일찌감치 지도자수업을 받아왔다.
  • 집권당 당수출마 캠벨 가 국방(뉴스인물)

    ◎인기절정… 캐나다 첫 여성총리 유력 오는 6월이면 캐나다에 첫 여성총리가 등장할 것 같다. 바로 킴 캠벨 현 국방장관(45)이다.그녀는 25일 고향인 밴쿠버에서 오는 6월11일에 열릴 집권 진보보수당 당수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캠벨이 당수로 선출되면 지난달 사퇴할 뜻을 밝힌 브라이언 멀로니의 총리직을 바로 이어받아 캐나다의 첫 여성총리가 된다.이는 세계 주요 선진국에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에 이어 40대지도자가 한명 더 늘어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수선거까지 두달도 더 남았지만 다음 총리로 그녀가 확실해 보이는 이유는 그녀의 국민적 인기가 매우 높은 데다 아직까지는 당내에 적수가 될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캠벨은 지난 90년 법무장관으로 입각한 뒤 캐나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자리를 굳혀왔다.지난해말까지만해도 20%를 밑돌던 보수당의 인기도 그녀가 올해 1월 첫여성국방장관으로 임명되자 덩달아 40%까지 치솟았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캠벨이 당수가 되면 11월에 있을 총선에서 보수당을 지지하겠다』는 국민이 43%나 된다.이는 자유당(25%)과 신민주당(11%)에 대한 지지율을 크게 앞서는 것이다.그녀의 인기는 무엇보다 그녀가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갖춘데서 비롯된다.「캐나다정계의 마돈나」로 불릴 만큼 자유분방한 사생활과 빼어난 외모까지도 인기상승요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법무장관으로 있을 때는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동성연애자들의 권리를 넓히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폈다.이를 통해 침체된 국가분위기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런던대학 경제학과에서 러시아문제를 전공한 캠벨은 줄곧 변호사로 일하다 86년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원으로 정계에 들어섰다. 그녀는 25일 출마의사를 발표하면서 멀로니총리의 당정운영방식을 비난한뒤 자기 스타일대로 국민과 보다 가까운 정부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오는 7월 도쿄에서 열릴 선진7개국정상회담에서는 대처 전영국총리에 이은 새로운 홍일점을 보게 될 전망이다.
  • 쿠웨이트에 미제 고급차 특수(세계의 사회면)

    ◎걸프전후 유럽승용차 인기 퇴조/“미는 구국의 은인”… 무조건 구매/올초 캐딜락 1백대 항구도착 즉시 팔려/GM 등 3사제품 시장 53% 점유 걸프전이 끝난이후 쿠웨이트인들 사이에 미국산 자동차 소비붐이 일고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구당 평균 자동차 보유대수가 3.7대일 정도로 자동차광이며 걸프전 이전에 독일이나 영국등 유럽산 자동차를 선호했던 쿠웨이트인들이 걸프전 이후부터는 미국제 자동차를 그것도 대형 고급차만을 즐겨 찾고 있는 것이다. 쿠웨이트인들이 이처럼 미국산 고급승용차를 많이 사고 있는 것은 걸프전을 계기로 『미국산 승용차를 사줘야 한다』는 정서가 쿠웨이트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걸프전으로 이라크에 반감을 갖고있는 쿠웨이트인들은 당시 이라크 침공을 무력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미국을 의식 이라크에 대해서는 다분히 감정적인 차원에서 이라크가 싫어하는 미국산 자동차를 의도적으로 구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쿠웨이트에도 마돈나에서부터 피자허트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대중문화가 깊숙이 침투해있긴 하지만 미국산 자동차가 이처럼 인기를 끄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이때문에 이라크의 침공이후 쿠웨이트는 미국산 고급승용차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가 됐다. 여기에다 걸프전으로 55만대에 이르던 쿠웨이트 자동차 가운데 35만여대가 파손되거나 약탈당했기 때문에 쿠웨이트는 요즘 「자동차 판매원들의 낙원」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쿠웨이트인들은 걸프전 이후 지금까지 제너럴 모터스와 포드및 크라이슬러사등 미국 자동차 3사 제품을 10만여대나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이들 자동차 3사가 쿠웨이트 자동차시장의 무려 53%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걸프전 이후 쿠웨이트인들은 과거 즐겨 찾던 「자가르」나 「벤츠」등 유렵산 고급 승용차 대신 크라이슬러사 제품인 「시보레 카프리스」등 미국산 승용차로 바꾸고 있다. 특히 올 초에는 1백대의 캐딜락 승용차가 컨테이너에서 짐을 풀기도 전에 쿠웨이트인들에게 모두 팔리는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쿠웨이트인들의 이같은 심리를 잽싸게 알아차린 미국 자동차 업계도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 톡톡히 재미를 보고있다. 제너럴 모터스사는 걸프전 이후 1t픽업 트럭의 차량 이름을 「패트리어트」로 바꿔 쿠웨이트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있다. 걸프전때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을 격추시킨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쿠웨이트인들에게 떠올리게 한 것이다. 제너럴 모터스사는 이로인해 이 차량 수출의 25%에 해당하는 물량을 쿠웨이트에서 소화해내고 있을 정도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쿠웨이트인들은 걸프전 이후 미국 자동차를 사야한다는 어떤 정서를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지적했다. 이와함께 걸프전 이후 쿠웨이트의 교통사고율이 높아지고 있는 현상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걸프전때 이라크에 점령당하고 있는동안 교통법규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라크의 영향을 쿠웨이트 운전자들이 부지불식간 받았다는 분석이다. 쿠웨이트에서는 지난해 1만3천여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하는등 개인당 고속도로 교통사고율이 세계에서 5위를 기록하고 있다.
  • 영 연출가 피터 브루크/교향악단 빠진 파격오페라

    ◎「펠레아스 인상」 파리무대에/프리마돈나 박정원씨 등 아주 3인 발탁 영국의 연출가이며 유명한 연극이론가인 피터 브루크가 연출한 오페라 「펠레아스의 인상」이 큰 관심속에 파리 무대에 올랐다. 「펠레아스의 인상」은 모리스 메테를링크가 쓰고 클로드 드뷔시가 작곡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상드」를 피터 브루크가 과감하게 단순화한 것이다. 이야기는 왕자 골로가 길을 잃고 숲속 샘가에서 울던 소녀 멜리상드를 만나면서 시작된다.소녀는 골로를 따라가 결국 그의 아내가 된다.그러나 뭔가 알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지닌 이 여자는 골로의 의붓동생인 펠레아스와 사랑에 빠진다.금지된 사랑,삼각관계는 흔히 죽음 또는 죽임으로 결말이 나게 마련인데 「팔레아스와 멜리상드」에서도 그렇다. 브루크는 원작의 시와 멜로디를 따르기는 했으나 시대 설정이나 무대 장식·의상·조명 등등 많은 것을 거의 180도 다르게 처리했다.1902년 초연때 교향악단 연주로 했던 것을 두대의 피아노로 바꿨다. 무대도 작은 공간으로 줄였으며 금세기초 흔히 볼수있었을 평범한 응접실로 꾸몄다.사실 메테를링크는 이 작품의 시대나 장소를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등장인물 가운데 왕과 그 가족들이 있고 그들의 이름 또한 고풍스럽기 때문에 이제까지의 연출가들은 시대 배경을 중세쯤으로 잡았었다. 브루크의 배역 또한 혁명 아니면 반역이다.금발의 북유럽여성이 맡아오던 멜리상드역을 아시아 여성에게 맡겼다.그렇게 함으로써 수수께끼에 싸인 듯한 인물 멜리상드의 성격을 잘 나타낼 수가 있다고 본것이다.일본인 사이토 교쿄,한국인 박정원,중국인 주 아이란이 번갈아 출연한다. 「팔레아스의 인상」은 새해 1월23일까지 계속 상연된다.극장은 테아트르 데 부프 뒤 노르,출연진은 3개조로 돼 있고 일류 성악가들도 많다. 「팔레아스의 인상」의 공연시간은 1시간이다.원작의 많은 장면들을 무자비하게 줄이거나 잘랐기 때문이다.원작의 첫 장면인 숲속 장면같은 것은 자막과 영상으로 짧게 처리하고 넘어갔다.따라서 「펠레아스의 인상」은 「펠레아스와 멜리상드」를 바탕으로 연출가 부루크가 탄생시킨 별개의 작품이라고 할수 있다. 음악 애호가들은 원래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던 것을 피아노로 대치한 브루크의 이 작품을 대개 그리 좋게 평가하지 않는 편이다.어떤 이는 메테를링크와 드뷔시도 원작 상연때 피아노만의 연주를 감수한 적이 있으나 오케스트라를 동원할 수 없는 장소일때만 그렇게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오케스트라가 빠진 작품의 매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또한 메테를링크의 시에는 오늘날의 감각에 안맞게 지루한 것이 많고,브루크의 별난 연출로도 원작 텍스트를 따라야 하는데서 오는 지루함을 피할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브루크의 반역적인 연출은 화제의 초점이다.기존의 것을 남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밥법으로 뒤엎고 있기 때문에.
  • 유고/끝없는 내전… 문화유적지 황폐화

    ◎12세기 성곽·대성당등 쑥대밭/두브로브니크/박물관자리엔 군기지 들어서/사라예보시/관광객 발길끊겨 연20억불 손실 유고연방이 와해되는 과정에서 빚어진 끝없는 민족분쟁으로 엄청난 인명및 경제적 피해와 함께 유서깊은 문화유적지가 갈수록 황폐화돼 가고 있다.더욱이 언제 내전이 끝날지 몰라 복원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유고연방과 크로아티아의 8개월에 걸친 유혈분쟁으로 중세문화가 보존된 아드리아해안의 두브로브니크시시가 피폐화된데 이어 지난 3월 세르비아계중심의 소연방이 결성되면서 불똥이 다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번져 84년 동계올림픽을 치렀던 사라예보마저 다시 쑥대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가뜩이나 여러 민족으로 구성돼 있는 유고가 연방해체의 길로 들어서면서 각 공화국간의 영토분쟁이 심화돼 전쟁을 피해 서유럽으로 난민의 물결이 줄을 잇고 있는데다 주관광수입원이던 옛 유적지마저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되자 각 공화국 역시 심한 곤경에 처해있다. 동과 서의교량역할을 하면서 서양민족지배(로마 오스트리아등)아래 있을때는 서양문화를,동양의 지배(터키)아래 있을때는 이슬람문화를 창조하면서 독특한 유럽 모자이크문화를 지니고 있는 유고는 내로라하는 유적지만 하더라도 각 공화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유적의 나라다.특히 세르비아공화국의 수도이자 한때 연방공화국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는 로마제국의 요지였으나 그때의 유적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그동안 수없이 치른 전쟁으로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유고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는 프레스코 미술관과 정교회유물관등이 있는 세르비아의 국립박물관을 비롯,아드리아해의 진주로 불리는 크로아티아의 고도 두브로브니크,그리고 인근 자다르,시베니크등이 있다. 그중에서 매년 유고 전체 관광수입의 70%에 육박하는 20억달러이상의 외화벌이를 담당했을 정도로 고색창연했던 두브로브니크시는 이미 그동안의 전쟁폐해로 30여개의 유적지가 파괴되었고 4백여개의 교회가 폐허가 되는등 옛모습을 잃은지 오래다.연방군과 크로아티아의 최대격전지였던 이곳은 12,13세기에 세워진 거대한 성벽,르네상스 스타일과 베네치안 고딕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스폰차궁전,라파엘로의 마돈나와 이콘등이 보관된 대성당등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유적지가 전쟁으로 파괴만 될뿐 복원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에 소유고연방소속의 세르비아민병대의 포격으로 올림픽을 위해 지어졌던 올림픽경기장이 3개월동안 계속된 내전으로 거의 황폐화돼버렸다. 이제 사라예보의 주위에 있는 아이스하키와 스케이트경기장,한 바로크풍 빌라에 있는 올림픽박물관도 옛 모습은 간데없고 그자리를 세르비아 민병대의 로켓발사기지가 메우고 있으며 대형 콘크리트 건축물들은 탄흔으로 얼룩진채 흉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이처럼 유고의 유적지가 황폐화되자 역사유물을 수호하자는 각계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다.유고의 지식층을 비롯,유럽공동체(EC)각국과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유고문화유적복원을 위한 모금운동과 함께 세계적인 지원을 호소하고나선지 오래지만 유고내전이 계속되는 한 이같은 노력은 큰 결실을 거두기는 힘든 실정이다. 이같은 국제적인 노력에도 불구,유고내전의 당사자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영토확장에만 혈안이 돼 있다.결국 유고의 문화유적복원은 내전종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교전당사자들이 인식할때 가능해 질 것으로 보인다.
  • 음악회와 꽃다발/전경화 공연기획가·미추홀예술진흥회대표(굄돌)

    예술이란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풍요하게 하며 생활을 윤택하게 할 뿐 아니라 물질적인 빈곤함 속에서도 우리들의 마음을 끌어 올려 정신적으로는 부유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그러나 이상하게도 당연히 정신적 의미를 찾아야 할 예술에 까지도 물질적 혹은 세속적 감정이 작용되어 본래의 의미를 그르치게 하는 일들이 종종 있어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요즈음 음악회를 가보면 언제부터인지 대형 화환,혹은 꽃다발이 시야를 가릴 만큼 늘어 서서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회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연주자를 축하하기보다는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크게 써붙여 자기를 과시하려는 풍토는 바로 세속적인 것이며 그것은 차원 높은 음악예술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훌륭한 프리마돈나에게도 장미꽃 서너 송이면 최고의 축하로 여기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음악회는 음악을 어떻게 하든지 간에 보통 화환도 모자라 이제는 3∼4층 짜리 화환까지 등장하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 그지없다.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 행위의 목적하는바를 충실하게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음악회는 음악예술을 통하여 세속에서 느낄 수 없는 진한 감동을 나누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만큼 꽃다발 세례를 통해 음악이 빛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차라리 꽃값을 그대로 연주자에게 주어 연주회를 준비하는 비용에 보탬이 되게 하든지 입장권을 사주어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과는 전혀 관계없이 오히려 우리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대형 화환들은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하겠다. 모든 것이 자신의 참모습을 갖게 될 때 우리 사회는 발전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한다.음악회에서 화환이 사라지는 날 참다운 음악예술이 살아 숨쉬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각박하고 감정이 메마른 우리 현대생활 속에 음악예술이 진한 꽃내음처럼 향기를 발하여 아름답게 피어날 때 우리의 전체문화도 많은 발전을 갖게 되리라 확신한다.
  • 일 사회당/좌파체질 탈피 가속화/다나베체제 출범 이후

    ◎대한·미 정책등 현실노선 추구/당 개혁싸고 좌·우 충돌 불가피 일본 사회당의 도이(토정다하자)시대가 막을 내리고 다나베 마코도(전변성)체제가 출범했다. 다나베체제의 출범은 동구대혁명 이후의 새로운 국제질서흐름과 일본내의 보수·우경화 경향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당의 현실적 선택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당내 우파인 다나베의원이 위원장선거에서 좌파인 우에다(상전철)에게 예상 밖의 접전끝에 신승함으로써 다나베가 주창해온 사회당의 자위대 인정등 「현실적 접근」의 당개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정치분석가인 게이오대의 우치야마교수도 사회당의 개혁은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그는 이번 선거결과는 다나베가 사회당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권력기반구축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정치분석가들은 앞으로 사회당의 개혁을 둘러싸고 당내 좌우파간의 적지않은 충돌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다나베 신임위원장의 개혁은 특히 좌파성향이 강한 지방과 일선당원으로부터 많은 저항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사회당은 체질개선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사회당은 한때 도이위원장의 「마돈나 열풍」에 힘입어 참의원선거에서 「여야역전」이라는 놀라운 신장세를 보였지만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겨우 17%의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사회당정책이 자위대,미일안보조약,핵발전소,한반도문제,걸프전 등에서 현실감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많은 정치분석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다나베 신임위원장은 이같은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감안,「평화헌법」의 테두리안에서 보다 현실적인 접근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다나베의 개혁안은 자위대,미일안보조약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다나베의 개혁안은 남북한 정부도 사실상 인정하고 있어 사회당의 대한반도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다나베는 북한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사회당의 일방적인 북한지지정책이 재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바 있다. ◎새 위원장 다나베는 누구/10선 관록의 체신관리 출신/지난해 방북… 수교협상 길터 다나베(전변)신임 일본 사회당위원장은 도이 전위원장이 마무리짓지 못한 「당내 개혁」을 완수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꼽힌다. 워낙 거물이었던 도이에 비해 지명도에 있어 훨씬 뒤떨어지긴 하지만 다나베는 탁월한 정치감각과 두둑한 뱃심을 갖고 있어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당개혁을 이끌 최적의 인물로 꼽혀 왔다. 지난해 자민·사회 양당의 북한공동방문을 통해 북한·일 수교회담의 길을 트기도 했던 다나베는 사회당내의 대북한 대화창구역을 맡아 왔다. 41년 체신부관리로 사회생활을 시작,군마(군마)현의원을 거쳐 50년 처음으로 진출한 이래 10선의 관록을 쌓았다.당내 최대파벌인 수요회의 회장이며 82년 부위원장,83년 서기장을 역임하는등 당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 외언내언

    신장 1백68㎝의 일본인답지 않은 당당한 체구. 회갑을 넘긴 64세의 할머니이면서도 군고구마를 좋아하고 「엔카」라는 대중가요를 즐겨 부르며 프로야구광이기도 하다.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없는 독신주의 여성정치인. 69년 정치입문 이후 8선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 제1야당인 사회당 위원장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의 프로필이다. ◆86년 사회당 위원장에 선출되었을 때 일본 사람들은 「일본판 대처(영국의 여걸정치인)」의 출현에 은근한 기대를 걸기도 했었다. 그런 기대에 호응하듯 「마돈나선풍」이라는 「도이붐」을 타면서 89년의 참의원 선거를 여·야 역전의 대승으로 이끄는 기세를 올리고 90년 중의원선거에서도 승리하는 등 「일본판 대처」의 자리를 굳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의 성공은 온갖 스캔들에 인기없는 소비세까지 들고 나온 집권 자민당의 실정에 보다 큰 덕을 본 것. 일본국민이 원하는 사회당의 개혁엔 제대로 손을 대지 못했다. 세계 환경의 혁명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비무장중립론의 고수,자위대 부인,핵무기 반대 등 해묵은 노선을고집하는 사회당의 만년 야당체질 개혁엔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던 것. ◆대한 정책모순의 시정에도 나서는 듯했으나 지지부진. 89년말 사회당 최초의 공식 방한단을 파견하고 노 대통령 방일시 회담을 갖는 등 변화를 보였으나 한국 및 한일 기본조약 공식승인은 아직도 유보상태. 핵을 그렇게 반대하면서도 북한의 핵사찰 거부에 대해선 일언반구가 없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사회당과 도이 위원장의 무력에 대한 새로운 실망이 지난 4월 일본통일지방선거에서 의석 98석 감소라는 사회당 참패로 나타난 것. 중의원의석 85석을 잃고 물러난 이시바시 위원장의 뒤를 이은 그녀도 21일 마침내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을 발표. 금권과 파벌정치의 비판이 요란해도 책임정치 하나만은 철저한 일본 정치풍토가 부럽다고나 할까. 광역지방선거에 대패한 한국야당들의 행동거지가 궁금해진다.
  • 「명기 홍도」의 전말을 보며…/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느닷없이 기생 「홍도」의 묘비가 화제를 만들었다. 30년대 신파극의 대표적인 히로인 홍도가 실은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원래 그런 이름의 명기가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극중 주인공이라는 식의 화제였다. 찬찬히 따져보면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는 좀 우습다. 어차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하는 홍도는 화류계 출신이고 화류계에 진출하려면 옛날 기생이름을 따는게 관례처럼 되어 있었으니,변사또의 수청기생 점고만 귀여겨 들어도 찾아질 수 있는 홍도를 작가는 주인공이름으로 채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조선시대의 기생 홍도가 그 모델이기라도 한 것처럼 연결하는 일은 턱도 없는 짓이다. 이치가 이렇게 명료한데도 미디어마다 이 뉴스를 상당한 크기의 지면을 별러가며 소개하고 있다. 제목도 「조선기생 홍도는 실존인물」식으로 붙여서 사진 곁들여 큼직큼직하게 소개했다. 왜 그랬을까. 「홍도」에 대한 관심이 왜 그리 높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새로 발견한 「명기」의 존재와 행적때문이었던 것 같다. 「명기」라는 말에는 호방한 남성문화가 조소되어 있다. 요즘처럼 왜소해지고 위축된 시대의 남성들에게는 아득한 전설처럼 들릴 그런 문화다. 새로 발견되었다는 「홍도의 묘비」는 남성들의 마음속 낡은 창고속에 먼지를 쓰고 망각되어가던 어떤 정서를 들춰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잡초가 무성히 자라 돌보는 이 없어보이는 스산한 무덤앞에 중둥머리께가 딱 잘린 채 서 있는 비석과 묘는 이상하게 누구의 눈길이나 끌게하는 데가 있기는 하다. 특히 당대의 지방 문장가와 풍류객들이 비문을 쓰고 모금을 해서 세웠다는 비석은 흥미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어떤 풍류객들이었을까. 문득 떠오르는 시조 한 수가 있다. 『청초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는다/잔잡아 권할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선조때 문인 임제의 시조다. 뛰어난 문장가요 기개있는 선비였던 그가 천하 명기 황진이의 무덤앞에서 읊은 시조다. 벼슬자리에 부임하러 가던 길에 이 시조를 써서 읊은 그는 신성하게 이도에 임해야 국록받는 선비가 한낱 천기 무덤앞에서 함부로 문장을 농했다고 해서 이후에 불이익을 당했다는 일화가 따른다. 유난히 규율과 규범이 엄격했던 것이 선비들의 삶인데 비명에 당당히 이름을 새겨넣어가며 기생을 찬양해놓은 이 홍도의 비는 꽤 흥미롭다. 더구나 이 비석은 사진으로 보아서는 허리께가 딱 잘려졌음을 보여준다. 더러 금이 가는 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딱 잘린 것은 아무래도 누군가가 심술삼아 잘랐던 것같아 보인다. 풍류로만 떠도는 지아비를 둔 어느 양반집 내당여인이 누군가를 시켜 잘라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하는 몰골이다. 우리네 어머니 할머니께서는 딸들을 나무랄때 입버릇처럼 기생을 들먹이셨었다. 『기생이냐,버선을 지루신게?』 『상스럽게 반절을 하면 못쓴다. 기생이나 그런 절을 하느니라』 『망측스럽게 치마를 외루 입었구나. 기생이나 그렇게 입는 법이니라』 조선시대 기생은 백정ㆍ장인ㆍ중과 함께 낮은 신분에 속했었다. 관에 기적이 매어 있어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종과 진배없는 신분이었다. 그렇게 낮은 신분이면 양반집 내당마님들은 경멸만 하면 그만이었을터인데 사사건건 빗대어가면서 기생을 들먹여 빈정거리는 대상으로 삼았던 것을 보면 기생이라는 존재가 사대부가의 아낙들에게 끼쳤던 심리적 갈등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알게 한다. 천하의 영웅 호걸이라도 눈이 멀어 녹아나는 것은 「기생첩」이었다. 「권련의 마지막 한대」를 아낀다는 뜻으로 『기생첩도 안준다』는 말도 있다. 남성들이 애지중지할 수 있는 상징의 집약이 「기생」이었을 터인즉,임금의 장인께 사랑받으며 만고의 호강을 다했을 기생 홍도가 자유로운 새가 되어 낙향을 즐기는 모습은 규방깊숙이 갇혀 사는 내당마님들에게는 눈허리가 시었을 게 뻔하다. 게다가 아무리 명문가의 며느리가 되어도 죽은 뒤에 아녀자의 무덤앞에 묘석같은 기념비가 세워질 수는 없다. 더구나 글을 읊는 호걸 한량들이 문장을 지어 바치는 명예로운 대접은 받지 못한다. 홍도 묘비의 허리를 자르고 싶은 심경을 가진 양반가의 「부인」들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경주시 도지동 야산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기생 홍도의 잡초무성한 무덤과 비석이 화려하게 화제를 뿌리게 된 까닭은,웬만하면 남성이 영웅호걸이 될 수 있었던 옛날에 대한 향수때문이 아닌가도 싶다. 서양의 기사도가 아름다운 숙녀에 대한 존경을 척도로 했듯이 동양의 영웅을 구성하는 조건도 미색에 있었다. 그 미색은 법도나 가문에 의해 정해지는 「부인」으로 대체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홍도는 「살롱」 문화의 여주인처럼 풍류객들의 「대모」노릇도 했던 모양이다. 이를테면 경주가 낳은 「조르주 상드」쯤 된다. 그런 여인을 향해 찬사를 바치고 비명을 지어줄 수 있었던 당대의 남성들에게 오늘의 남성이 선망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10여년전 일본에서는 이제는 고인이 된 전직 수상이었던 거물급 정치인이 자신의 소첩이던 여인의 죽음을 맞아 영정을 들고 장례식에 참례하여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그런 그를 가리켜 「최후의 명치인」이라고 표현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마돈나선풍을 일으키며 새 수상감이 나오는 족족 「스캔들」 방망이를 휘두르는 일본여성들의 힘을 보며 「최후의 명치인」이라는 말의 탁월한 지적을 다시 음미하게 되었었다. 천한 신분의 기생들 사이에서 원석하나를 찾아내어 「명기」로 탁마해 놓고 호방하게 천하를 논하던 조선시대의 사대부를 추념하노라면 우리 남성들은 오늘의 자신들이 좀 작아진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홍도전말」이 그런것이었던듯 여겨진다. 시대는 한참 변했고 남성들에 의해 「히로인」이 만들어지던 시대도 이제는 가버린 것 같다. 아무리 아쉬워하고 쓸쓸해 해도 변하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안됐지만 그것이 오늘이다.
  • 「리크루트 추문」 14명중 13명 당선/일 2ㆍ18 총선 이모저모

    ◎여후보 최다득표 영광… “마돈나 선풍” 여전/거물 2세 17명도 금배지… “정치세습” 입증 ○…지역적 기반이 중시된 이번 중의원선거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것은 전직 총리등이 포함된 리크루트사건관련 입후보자들의 당락여부였다. 그러나 결과는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총리를 비롯,아베 신타로(안배진태랑) 전자민당 간사장,미야자와 기이치(관택희일) 전대장상,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정조회장 등 14명의 리크루트관련자들 가운데 13명이 당선됨으로써 거물급정치인의 뿌리깊은 지지를 다시한번 확인. 이밖에 여성스캔들로 권좌에서 물러났던 우노(우야)전총리도 사가(자하)현에서 당선됐다. ○나카소네 “이젠 속죄” ○…군마 3구에서 출마,고전을 면치 못하다 3위로 당선,17선을 기록하게된 나카소네 전총리는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이것으로 속죄했다』며 감개어린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민당은 가이후(해부) 총리와 다무라(전촌) 전중의원의장,오자와간사장,가네마루(금환) 전부총리 등당 실력자들이 개표시작 직후부터 속속 당선이 확정되기 시작,순조로운 스타트. 아이치(애지) 3구가 선거구인 가이후 총리는 개표시작 1시간후인 하오8시께 당선 확실시 소식이 전해져 「총리의 관록」을 과시했는데 가이후총리는 선거운동 기간중 자당 후보지원 때문에 자신의 선거구에는 한번도 들르지 못한채 부인과 장남ㆍ장녀ㆍ실제인 비서등 가족들에게 일체를 맏겼었다. ○28표차로 당락희비 ○…이번 선거에서 가장 근소한 당락표차는 28표차이었다. 가고시마(록아도) 3구에서 출마했던 자민당의 야마나카 사다노리(산중정즉) 전세조회장(68)은 18일밤 민족의 「당선확실」 뉴스를 듣고 환호를 올렸으나 최종 계표결과 사회당이 신인 아리가와 세이지(유천청차) 후보의 6만2천4백88표보다 28표 적은 6만2천4백60표로 낙선. ○최고령자 꼴찌 당선 ○…현직 의원중 83세의 최고령으로 5명의 의원을 뽑는 효고(병고) 2구에서 접전끝에 5위로 간신히 당선된 하라 켄사브로(원건삼랑ㆍ자민당) 위원은 『18선중 이번으로 꼴찌당선은 13번째이지만 당선만되면 됐지 1위나 5위를 굳이 따질건 없다』고 말해 꼴찌 당선이라고 낙선보다는 나음을 되풀이 강조해 눈길. ○…일본정계의 「정치세습」은 세계적으로 이미 정평이 나있지만 이번 선거에서도 「신인 2세후보」 43명 가운데 당일 개표 선거구의 40명중 17명이 개표시작 3시간만인 18일 밤 10시쯤 일찌감치 당선이 확정돼 소문의 「진가」를 입증. ○여자후보 12명 등원 ○…「마돈나 선풍」은 이번 선거에서도 잠들지 않았다. 자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1명의 여성후보도 내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는 66명의 후보가 나서 12명이 당선됐다. 소속 정당별로는 사회당 7명,공명당 1명,공산당 2명,무소속 2명이었다. 이 가운데 홋카이도(북해도) 1구에서 처음 출마한 사회당의 이토 히데코(이동수자 46) 후보는 중의원 선거사상 최다득표인 26만1천1백70표를 얻어 1등으로 당선,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남편을 「배신」(?)하고 사이다마 5구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부부출마」로 화제를 모았던 미모의 하마다마키코(47) 후보는 최하위로 낙선. 남편 하마다 타쿠지로 (병전탁이랑) 자민당의원은 리크루트사건 관련자라는 불명에에도 불구,사이다마 1구에서 거뜬이 당선됐다. ○부자의원 탄생도 ○…「NO라고 말할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으로 화제를 뿌렸으며 가이후 총리에 대항,자민당총재 후보선거에 출마했던 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태랑) 전 운수상의 장남 이시하라 노부데루(석원신황) 후보가 도쿄 4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부자의원으로 탄생했다. 아들 이시하라의원은 방송기자출신으로 곧 자민당에 입당할 것으로 보인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