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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람도....판 커지는 충북지사 선거

    이 사람도....판 커지는 충북지사 선거

    3선연임 제한에 걸린 이시종 충북지사의 불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충북지사 선거가 거물급 정치인들의 대결장이 되고 있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이름이 알려진 전국구 인사들이 충북과의 연고를 강조하며 속속 선거전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일부 인사는 예상밖의 출마로 외인 논란을 자초하며 당내 갈등까지 초래하고 있다. 30일 충북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현재 국민의 힘에서 보은 출신인 박경국 전 행안부 차관과 4선 의원을 지낸 오제세 전 의원이 충북지사 선거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서울 서초갑 3선 의원 출신인 국민의 힘 이혜훈 전 의원은 이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4선 국회의원과 과기부장관 등을 지낸 국민의힘 김영환 특별고문의 출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박덕흠(보은·옥천·영동·괴산)·이종배(충주)·엄태영(제천·단양) 의원이 김 고문에게 충북지사 출마를 위한 경선 참여를 요청해서다. 박 의원은 “김 고문이 고향(충북 괴산)에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지역을 위해 봉사해 줄 것을 권유하는 차원에서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 고문은 “현재 경기지사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한 상태라 동지·가족들과 논의해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 힘 충북지사 후보군에 포함됐던 나경원 전 의원은 최근 불출마를 선언했다. 아직 예비후보 등록자가 없는 더불어민주당에선 청주에서 3선의원을 지낸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28일 출마를 공식화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는 당내 후보자 검증을 신청했다. 곽 변호사는 아버지가 충북 영동군에 살았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곱지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출마가 뜬금없다는 것이다. 박문희 도의회 의장은  “곽 변호사가 당원들 의견을 듣지 않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충북에서 활동하지 않고 출마하는 것은 충북도민들에게 무례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혜훈 전 의원의 출마도 눈총을 받고 있다. 이 전 의원이 부친 고향이 제천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당내에서조차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의원은 경남 마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서울 서초에서 17·18·20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21대 총선 때 서울 동대문에서 낙선했다. 박경국 전 차관은 “도지사는 퇴출된 정치인의 종착지가 아니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박 전 차관은 김 고문에게 경선참여를 요청한 의원들에 대해선 ‘부당한 경선개입’이라고 비판했다.  박 전 차관은 “다른 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한 인사에게 충북지사 선거 출마를 종용한 것은 충북도민과 경기도민 모두에게 해서는 안될 부적절한 처사”라며 “지방선거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해당행위”라고 비난했다.  공직사회도 일부 인사들의 출마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충북도청의 한 공무원은 “그동안 충북에 관심도 없다가 충북지사 선거에 나오려는 사람들을 보면 충북을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전남지사 출마 공식화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 전남지사 출마 공식화

    국민의힘 소속으로 오는 4월 중순께 공식 출마선언 박근혜 복심...민주 텃밭서 출마땐 전국 이슈 떠오를 듯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64) 전 새누리당 대표가 오는 6월 전남지사 선거 출마의사를 사실상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의 불모지이자 민주당의 텃밭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 전 의원이 민주당 후보와 맞붙을 경우 전남지사 선거가 전국적인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정현 전 의원은 28일 광주에서 지인들과 모임을 갖고 “오는 4월 중순께 국민의힘 소속으로 전남지사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은 “저는 보수 정당에서 호남의 정서와 호남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며 “호남에서 장기간 집권해 온 민주당에 맞서 전남의 획기적인 발전을 만들어내도록 하겠다”고 출마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선거에 임하는 전략으로 ‘탈 정당, 탈 이념, 탈 금품, 탈 네거티브’를 제시하고 “민주당 후보와의 제대로 된 정책대결을 통해 잘 사는 전남, 청년 일자리가 남아도는 전남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올바른 정책대결을 위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도 ‘전남에는 오지 마시도록’ 요청하겠다”며 “정치나 이념보다는 후보간 정책대결을 통한 경쟁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의원은 이번 광주시장선거에도 국민의힘 소속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호남을 끌어안기 위해선 호남지역 주요 선거에도 후보를 내야 한다”며 “광주의 경우 김경진 전 국회의원이나 정승 전 한국농어촌공사사장 같은 이들의 출마도 생각해봄직하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해 대구 달성군 사저로 돌아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도 내보였다. 이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님이 병원 앞에서 환히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뻤다”면서도 “헤어져 지하철을 타러 가면서 그동안 박 전 대통령님이 겪어야 했던 고초를 생각하니 울음이 터져 나오더라”고 전했다. 1년여 전 전남 곡성으로 주민등록을 옮긴 이 전 의원은 “광주·전남은 지난 30여년 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줬지만 지역민과 청년들이 힘든 것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며 “앞으로 4년 한 번만 지지 정당을 바꿔 전남발전의 터닝포인트로 삼아달라”고 말했다. 한편, 이정현 전 의원은 곡성 출신으로 18대 비례의원을 거쳐 19대(곡성·순천 보궐) 와 20대(순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당대표에서 사임 후 2017년 새누리당을 탈당했지만 지난 2월 복당,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이다.
  • 권총 겨눈 강도, 알고 보니 옛 제자...기막힌 사제 간 재회

    권총 겨눈 강도, 알고 보니 옛 제자...기막힌 사제 간 재회

    기막힌 사제 간의 만남이 아르헨티나에서 충격적인 사건으로 현지 언론에 보도됐다.  아르헨티나 투쿠만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사 훌리오 페라리(사진)는 최근 죽을 고비를 넘겼다.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하는 그는 퇴근길에 권총을 든 2인조 무장강도를 만났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리려고 할 때 어디선가 출현한 2인조 무장강도는 권총을 겨누며 교사의 소지품과 오토바이를 강탈하려 했다.  백팩을 빼앗은 강도들은 오토바이마저 가져가려 했다. 교사가 저항하자 강도 중 1명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교사는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틱 소리만 났을 뿐 권총이 불발하면서다.  교사 페라리는 인터뷰에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권총이 너무 오래된 것이라 불발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그때 일어났다. 권총이 불발하는 순간 교사는 방아쇠를 당긴 강도와 눈이 마주쳤다. 복면을 하고 있었지만 교사는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 강도는 교사의 옛 제자였다.  교사는 "건장한 청년이었지만 눈가에는 어릴 때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면서 "옛 제자였다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도들은 권총이 불발하자 도주하기 시작했다. 교사는 "나 네 선생님이야. 네가 11살이었을 때부터 너를 아는 네 선생님이라고~"라고 소리면서 도망가는 강도들을 추격했다.  도주하던 강도들은 백팩을 길바닥에 내팽개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쩌면 교사가 생명까지 잃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됐다.  하지만 사연은 계속 이어졌다. 얼마 뒤 교사는 낯선 번호에서 발송한 2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발신자는 강도가 된 옛 제자였다.  정중한 인사로 메시지를 시작한 강도는 "선생님께 저지른 짓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를 구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제 곰곰이 어릴 때를 돌이켜 보니 학교 다닐 때 제게 많은 도움을 주신 선생님이셨다는 게 기억납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도는 "많은 도움과 조언을 주신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사랑했습니다. 제 잘못에 용서를 구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예요"라고 거듭 사죄했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현지 언론은 교사와 인터뷰를 했다. 교사 페라리는 "청년들이 얼마나 희망 없이 방황을 하면 범죄자가 되겠는가"라면서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국가와 언론의 역할이 특히 요구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청년들이 밝은 꿈을 꿀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이효근의 파란 코끼리] 두 명의 학생이 고속도로로 질주하오/정신과의사

    [이효근의 파란 코끼리] 두 명의 학생이 고속도로로 질주하오/정신과의사

    인천의 대학에 진학한 동네 친구가 있었다. 집에서 통학하기엔 거리가 좀 되었던지라 친구는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며 주말에만 집에 왔다. 모처럼 동네에서 마주친 어느 날 그가 이런 제안을 했다. “너 우리 학교 안 와 봤지? 가자. 내가 구경시켜 줄게. 주말 아침이라 안 막히고 금방 가.” “지하철 아니고 차 타고 가게?” “응, 아버지 차 몰래 타면 돼.” “운전면허는 있냐?” “지난달 땄어. 나 이제 운전 잘해.” 호기롭게 출발한 초보 운전자와 나. 어찌어찌 경인고속도로는 올라탔는데, 그때부터 진땀과 고난의 드라이빙이 시작됐다. 예나 지금이나 공항과 항구로 가는 거대한 트레일러들이 많은 경인고속도로. 주말 아침이라 한갓진 터에 한껏 속도를 올린 트레일러가 가득한 경인고속도로. 친구가 모는 차는 하필 질주하는 트레일러에 앞뒤좌우로 둘러싸였다. “우리 지금 몇 킬로냐? 120킬로인데 괜찮아?” “좀 무서워. 사실 100킬로 이상은 지금이 처음이야.” “그럼 속도를 줄여.” “못 줄여. 앞뒤좌우가 다 120킬로야. 게다가 다 트레일러잖아. 이 속도에선 닿기만 해도 큰일나. 아까 브레이크 밟았을 때 뒤차가 빵빵거리는 거 봤지?” 충격과 공포 속 고난의 드라이빙이 어떻게든 끝났다. 기진맥진해 인천 자취방에 도착한 우리는 문자 그대로 뻗어 버렸다. 애초 계획했던 학교 구경도 포기한 채 짜장면과 군만두를 시켜 먹는 것으로 인천 구경은 끝. 꽤 오래전 일인데도 그날을 여태 기억하는 이유는 요새 나의 출퇴근길인 영동고속도로 또한 그날의 경인고속도로처럼 대형 화물차의 통행이 많기 때문이다. 그날처럼 과속하는 화물차들을 자주 보니 본의 아니게 그날이 자주 회상되고, 그러니 잊혀지지 않을 수밖에. 원래 사람의 기억은 불완전한 법이라 우리는 과거에 경험한 많은 것을 망각하는데, 망각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그 기억을 다시 회상하는 것이니까. 최고 학습법 중에서 복습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이것이다. 강렬한 감정이 동반된 기억은 유난히 더 오래간다고도 하니 그날의 드라이빙은 아마도 오래도록 내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나는 나름 원숙한 드라이버가 됐으니 그런 상황이 발생해도 별로 긴장하진 않지만. 기호지세(騎虎之勢)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달리는 호랑이에 올라탔다는 뜻이다. 호쾌한 질주를 찬탄하는 말 같지만, 원래 뜻은 일단 시작해 버려서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내리면 바로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버리고 말 테니까. 굳이 출퇴근길이 아니더라도 그날의 경인고속도로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은 많다. 뉴스를 틀면 기호지세로 질주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은 조마조마하다. 그들이 친구 한 명만을 태우고 달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회사 직원을 다 태우고 달리고, 때로는 온 나라를 다 태우고 달린다. 가끔 그때 친구가 운전이 좀더 익숙해진 다음에 나를 태우고 학교 구경을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아마 우리는 오가는 길에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고, 학교 캠퍼스를 즐기며 맛있게 식사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오래도록 유쾌한 추억으로 남았겠지. 이제 곧 우리 모두를 태우고 고속도로 운행을 시작할 이가 이 작은 후회를 꼭 염두에 두고 임기를 시작하기를 기대한다. 호랑이 등에 잘못 올라탔다가 내리지도 못하고 난감해하던 몇몇 전임자들의 모습이 회상되는 건 나의 기우이길 기원한다. 앞으로 우리의 5년이 편안하고 유쾌한 드라이빙이 되길 나 또한 간절히 바라니까.
  • 고종은 정말 조선 처음으로 가베를 마셨나 [클로저]

    고종은 정말 조선 처음으로 가베를 마셨나 [클로저]

    한국의 커피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아관파천이 커피 문화 확산 계기? 사실 아닐 가능성최근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바이럴된 글이 하나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지난 2017년 게시물인데요. ‘고종황제 황실와플’ 소식을 알린 홍보물로 당시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기념해 판매했던 디저트입니다. 실제로 일각엔 고종황제가 커피를 특히 즐기고 와플 등 디저트를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알려져 있죠. 당장 고종 황제 가베(커피의 우리말, 이하 커피)만 검색해도 이름 그대로의 카페가 등장하는 등 고종은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조선 최초로 커피를 즐긴 사람의 대명사가 되어 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창덕궁에서 발견된 와플틀을 당시 디저트 판매의 역사적 근거로 제시했죠. 맞습니다. 그러나 커피와 와플은요. 당시 신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던 고종이 먹은 수많은 디저트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해당 게시물이 게재된 건 5년 전인데요. 아직까지 바이럴되는 것은 그만큼 고종황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걸 증명하죠. 일부 의견을 보면 그 배경에는 “나라는 풍전등화인데 와플과 커피를 먹었다”는 등 외세의 침입으로 시끄러웠던 나라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기호에 맞는 신문물을 앞장 서서 받아들이는 등 사치스러웠다는 서운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고종이 1895년 아관파천 당시 커피를 접해 빠져들었다는 왜곡 또한 그가 커피를 마셨다는 사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등 당대의 기록에는 없는 이야기죠. 근거 없는 이야기가 고종의 커피 사랑을 설명하는 정설이었던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근거도 없고 아니라는 확증도 없습니다.  고종실록에 등장하는 커피 이야기는 커피 찻주전자 언급(고종실록, 고종 35년 9월)뿐입니다. 1898년 9월 11일, 고종과 순종(태자 시절)을 대상으로 독살 미수 사건이 벌어진 것을 두고 경무청에서 규명한 기록이죠. 당대 기록에 따르면 사건은 유배를 가게 된 관료 김홍륙이 앙심을 품고 벌인 일이며 그가 커피 찻주전자에 아편을 넣은 것으로 파악했다는군요. 아마도 고종황제가 커피를 사랑해 조선 최초로, 많이 마셨다며 와전된 것은요. 1898년 일본 공사 가토가 같은 독살 미수 사건에 대해 오쿠마 일본 외무대신에게 보고하며 표현한 부분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그는 “폐하께서는 때때로 즐겨 양식을 찾으시는 일이 있는데 항상 먼저 커피를 드시는 것이 상례였다”며 “그날 밤에도 역시 전례와 같이 먼저 커피를 드렸는데 커피는 상시로 변하는 것인지 맛이 좋지 않다고 하시면서 아주 소량으로 두세 번 드셨다”고 당시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즉 때때로 양식을 먹을 때 커피를 차로 곁들였다는 의미죠. 일부 미디어에 표현된 것처럼 고종이 스트레스로 인해 커피에 중독됐다는 것은 이로써 사실이 아니게 됩니다. 실제 차애호가였던 고종이 여러 차 중 하나로 커피를 즐겼을 가능성이 있죠. 조선의 커피 문화가 러시아 공사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것을 알려면요. 이전부터 커피를 즐겼던 사람이 있다는 걸 찾으면 돼요. ‘친일파’로 분류돼 있는 당대 엘리트 윤치호는 일기를 꾸준히 남겼습니다. 1885년 중국 상해에서 유학을 시작한 당시에도 커피를 구매했다는 기록이 있죠. 커피·우유·빵을 구매했다는 일기인데 생소함은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오다”는 일기도 남겼죠. 고종의 아관파천으로부터 10년 전에 이미 커피를 즐긴 거예요. 1886년에는 “돌아오는 길에 커피 찻집에 가서 두 잔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오다”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로써 최초로 커피를 즐긴 조선 사람이 고종이라는 말은 거짓이 됩니다. 선교사들의 포교 활동이 활발해지며 커피도 들어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프랑스의 시메옹프랑수아 베르뇌(Siméon-François Berneux, 한국 이름 장경일) 신부가 1860년 3월 6일 쓴 서한을 통해 “커피 40리브르(livre) 등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기록이 있죠. 1863년에도 커피를 추가로 요청했습니다. 이것이 최초인지는 알 수 없으나 1895년 아관파천보다 훨씬 이전에 조선에 커피가 들어왔다는 걸 추측할 수 있는 근거예요.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 한국 이름 노월)이 1885년 펴낸 책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에도 조선의 커피 문화가 등장합니다. 그는 1883년 일본에 여행갔다가 조선 미국 수호통상사절단을 만나 이들을 미국으로 인도했는데요. 보빙사를 보좌하는 업무를 하게 됩니다. 그는 같은해 왕실의 초대로 조선에 방문합니다. 책에 따르면요. 그는 1884년 1월 추운 날 경기도 관찰사 초대를 받아 한강변 별장으로 유람 간 자리서 커피를 마셔요. “우리는 ‘잠자는 물결’이라는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던 ‘석식 후 커피’를 마셨다”고 하죠. 아관파천으로부터 11년 전, 조선에선 이미 커피가 최신 유행품이었네요.
  • [STOP PUTIN] JK 롤링 푸틴에 반박 “왜 날 끌어들여 전쟁 비호?”

    [STOP PUTIN] JK 롤링 푸틴에 반박 “왜 날 끌어들여 전쟁 비호?”

    “비판하는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독약을 먹이며 현재 저항했다고 해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사람이 서구의 캔슬 컬처를 비판하는 일이 아마도 최선은 아닐 것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느닷없이 자신의 예를 끌어들여 자신과 러시아를 옹호한 데 대해 트위터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롤링은 푸틴 대통령의 정적으로 최근 징역 9년형을 선고받은 알렉세이 나발니의 기사를 올리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러시아 예술상 수상자들과의 만남 자리에서 서방 국가들이 롤링을 배척하듯 “천년이 된 나라를 지워버리려(cancel)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수백만권의 책이 팔린” 롤링이 소위 젠더 프리덤을 지지하는 이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캔슬 컬처’의 타깃이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상당수 서방 국가에서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차별하고 있으며 전쟁을 지지하는 러시아 작곡가와 작가들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캔슬 컬처’를 1930년대 나치 독일이 책을 불태우려 한 데 빗대기도 했다. ‘캔슬 컬처’는 공인 등이 잘못을 저지르면 지지를 철회하고 배척하는 현상이다. 소셜미디어(SNS)에서 지지를 눌렀다가 이를 취소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롤링은 성전환 혐오로 보이는 발언으로 오해를 샀으며 최근 해리포터 20주년 회고편에 등장하지 않은 것도 그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롤링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털어놓은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험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라고 지적했을 뿐이었다. 영국 BBC는 지난달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에 찬성하는 러시아인들이 등장하는 행사가 일부 취소됐다고 전하면서도 미 타계한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이 연주된다고 행사가 취소된 경우는 훨씬 적다고 지적했다. 이날 모임에도 참석한 명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에프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페스티벌과 콘서트홀 초청과 매니지먼트 계약이 취소됐다. 이달 초 영국 카디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차이코프스키 작품을 레퍼토리에서 제외했는데 성명을 통해 “두 군데 군대 관련 소절이 나와 현 시점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인도적 위기가 끝나야 ‘woke’와 ‘캔슬 컬처’에 대한 토론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여기도 사람이 있다]내전으로 수백만명이 기아 위기…‘아프리카 뿔’의 비극, 티그라이

    [여기도 사람이 있다]내전으로 수백만명이 기아 위기…‘아프리카 뿔’의 비극, 티그라이

    지구촌의 눈이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쏠린 동안, 16개월 가까이 계속된 전쟁으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코뿔소의 뿔 모양과 닮아 ‘아프리카의 뿔’(소말리아, 소말릴란드,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지부티 등 5개국)이라고 부르는 동아프리카 지역의 티그라이(Tigray) 주민들이다.● 16개월간 내전으로 1만명 숨져 에티오피아에 속한 티그라이에서는 2020년 11월부터 정부군과 반군인 티그라이 인민해방전선(TPLF)가 내전을 벌였다. 수개월 동안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20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벨기에 겐트대 연구원들에 따르면 적어도 1만명이 숨졌고 230건의 집단학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BBC에 따르면 유엔은 550만명인 티그라이 인구의 90% 이상이 인도적 지원이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지난 1월 티그라이 주민의 40%가 극도의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굶주림으로 영양실조에 걸린 11만 5000명을 포함해 약 50만명의 어린이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영양실조 비율이 5세 미만 아동의 경우 13%, 임신 및 수유 여성은 60%에 달한다. 미국 구호단체 관계자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대략 70만명이 ‘기아와 같은 상태’에 처해있다”고 전했다.● 유엔 “매일 구호 트럭 100대 보내야” 전쟁으로 정상적인 경작이 불가능해지면서 지난해 식량 수확량은 평년의 절반에 그쳤고 그나마도 바닥이 드러나 주민들은 끔찍한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인도적 지원 외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다. 유엔은 티그라이에 매일 트럭 100대 분량의 식량과 의약품, 연료를 실어날라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지난해 7월부터 동서남북 통로가 모두 막혀 말 그대로 고립 상태다.정부군과 반군의 전투로 티그라이 동쪽의 아파르 주에서 들어오는 육로 통로가 막혔고, 티그라이 남쪽 암하라주와 연결된 도로와 서쪽 수단에서 이어지는 도로, 북쪽을 맞댄 에리트레아 국경도 가로막혔다. 12월 중순 이후에는 단 한대의 구호 트럭도 티그라이에 들어가지 못했다. ● 책임 돌리는 정부군과 반군 정부군과 반군 TPLF는 서로를 탓한다. 레제스 툴루 정부 측 대변인은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차단하고 있다는 주장을 일축하면서 TPLF에 책임을 돌렸다. TPLF 역시 “전투 전후나 전투 중에도 우리 군이 구호트럭의 진입을 막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반박했다.티그라이 출신인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티그라이만큼 수백만 명의 사람이 고립된 상태로 인도적 위기를 겪는 곳은 없다”며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지난 1월 말 에티오피아 정부가 긴급 의료물자 수송을 허용하자 적십자사는 31대의 화물기를 띄워 필수의약품을 실어날랐다. 유엔은 이달 중순까지 333t의 의약품을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현지 병원 의료진들은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고 말했다.● 미국 특사 방문 후 휴전 선언한 정부 에티오피아 정부는 24일(현지시간) 인도주의적 휴전을 선언했다. 티그라이 주민에 대한 긴급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성명을 통해 “휴전으로 인도주의적 상황이 개선되고, 추가 유혈사태 없이 북부 지역의 분쟁 해결을 위한 길이 열리길 바란다”며 반군을 향해 공격을 멈추고 철수하라고 촉구했다.반군인 TPLF도 휴전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들은 “구호물자 전달이 합리적인 시간 내에 재개되는 한 휴전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고 BBC는 보도했다. TPLF는 “적대행위 종식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휴전 협상 의사를 내비쳤다. 이번 휴전 선포는 데이비드 새터필드 아프리카의 뿔 담당 미국 특사가 지난 21~22일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방문해 정부 측과 아프리카연합(AU), 유엔 관리, 인도주의 단체 관계자를 만난 뒤 나왔다. ● 전쟁 시작한 에티오피아 총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그러나 실제로 포성이 멎고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이 재개될지는 미지수다. 반군은 지난해 6월 말 정부군의 일방적 휴전 선언을 거부하고 공격을 계속한 바 있다. 무엇보다 티그라이의 비극을 끝내기 위한 양측의 책임감 있는 평화협상 노력이 절실하다. 지난 2020년 11월 정부군에 티그라이 공격을 지시한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는 20년에 걸친 동아프리카 분쟁을 끝내고 이웃국가들과 화해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 5000만원 들여 전신 98%에 타투, 브라질 타투맨의 사는 법

    5000만원 들여 전신 98%에 타투, 브라질 타투맨의 사는 법

    누군가의 눈에는 흉측할 수도 있겠지만 타투 마니아에겐 감탄 섞인 극찬을 받을 법한 브라질의 타투맨이 중남미 언론에 소개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38살 청년 마르셀로 비보이. 전신이 컬러풀한 그는 길에만 나서면 이목을 집중시키는, 자타가 공인하는 타투맨이다.  그의 몸을 장식하고 있는 타투는 무려 1500여 개, 전신의 98%가 타투로 덮여 있다. 심지어 눈알과 잇몸에까지 타투를 했다.  비어있는 2%는 신체의 은밀한 부위와 다리의 타투 사이에 있는 좁은 여백들이다.  마르셀로 비보이는 "아마도 세계에서 나보다 더 많은 타투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남은 2%도 조만간 타투로 채워 전신 100% 타투의 목표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평범했던 마르셀로 비보이는 15살에 첫 타투를 경험했다. 바로 타투 마니아가 되진 않아 당시의 모습은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다는 그는 22살부터 본격적으로 타투로 몸을 덮기 시작했다. 지금의 그의 모습은 16에 걸쳐 완성한 1점의 작품인 셈이다.  그는 "22살이 되면서 갑자기 타투의 매력에 푹 빠졌다"며 "그때부터 쉬지 않고 타투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눈알에 타투를 한 것도 그때부터 식을 줄 몰랐던 타투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는 "눈에 타투를 할 때는 눈동자를 제외한 부분에 하지만 실명의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그래도 타투가 너무 좋아 위험을 불사했고, 겁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진정한 괴물(?)이 되려면 타투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그는 신체 일부를 성형했다. 뱀처럼 혀의 끝을 두 갈래로 갈랐고, 귀의 모양도 바꾸었다. 남다른 송곳니를 갖기 위해 치아를 모두 빼고 임플란트를 박았다.  타투와 성형으로 전신을 장식하다 보니 그가 여기에 들인 비용도 적지 않다. 마르셀로 비보이가 지금까지 타투와 성형에 쓴 돈은 어림잡아 약 4만 달러(약 4894만원)에 이른다.  워낙 타투를 좋아하다 보니 타투는 그에게 생업이 됐다. 그가 운영하는 타투 전문점은 유명세를 얻어 언제나 고객이 붐빈다. 특이한 외모 덕에 모델과 배우를 겸업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마르셀로 비보이는 완벽하게 바뀐 자신의 외모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이 매우 좋다고 평가했다. 그는 "길을 가다 보면 약간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있지만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특히 여성들은 나의 타투에 매우 호감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타투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타투가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한 뒤 시작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이르면 24일 퇴원…尹 언급할까

    박근혜 전 대통령 이르면 24일 퇴원…尹 언급할까

    대국민 공개 메시지 주목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 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르면 오는 24일 퇴원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21일 “내일 오전 진료를 마치면 퇴원일이 결정될 것 같다. 아마도 24~26일 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퇴원 후 대구 달성군에 마련된 사저로 곧바로 향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앞서 박 전 대통령 측은 퇴원일에 맞춰 대국민 메시지를 내겠다고 예고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나 새 정부와 관련한 발언이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퇴원 이후 윤 당선인이 대구의 사저를 찾아 박 전 대통령을 예방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대구 달성군에서 지지자들이 귀향 환영 행사를 열기도 했다. 당시 행사에는 친박 인사들과 지지자 등 500여명이 몰렸다. 박 전 대통령의 사저 입주를 앞두고 보수 인사들의 방문도 잇따랐다. 지난달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가 사저를 찾은 데 이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도 최근 방문했다.
  •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 그들이 가진 커리어의 역사 [클로저]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 그들이 가진 커리어의 역사 [클로저]

    자신의 일을 하던 역사 속 퍼스트 레이디는 누가 있을까커리어 있는 여성에 초점…정치가부터 기록가까지우리는 오는 5월 10일부터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를 한국 근대 역사 처음으로 갖습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지난 10일 당선된 데 따라 부인 김건희 여사가 퍼스트 레이디가 된 것이죠. 김 여사는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론도 조명됐죠. 퍼스트 레이디는 말 그대로 ‘the First Lady’를 일컫습니다. ‘the’가 붙죠. 단 하나밖에 없는, 대상이 특정된, 모두가 알고 있는 것에 붙이는 관사입니다. 국가 원수나 대통령의 부인을 부르는 말이고요. 지도자 위치에 있는 여성을 부르기도 하죠. 우리에게 직업이 있는 퍼스트 레이디가 생겼다는 점에만 중점을 두고요. 그렇다면 우리 역사 속에서 조선 시대 내명부의 수장으로 일했던 왕비의 역할 말고 주도적으로 일을 했던 왕가의 여성들이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고려 여인의 기상, 정치가 신덕왕후 ”강씨(康氏)를 세워 현비(顯妃)를 삼았다.“ (태조실록, 태조 1년) 조선 최초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 신덕왕후(神德王后)에 대한 기록입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부인 이야기인데요. 철저한 유교사회였던 조선과 달리 고려는 비교적 자유분방했죠. 덕분에 여성의 뜻을 펼치는 것도 자유로웠습니다. 신덕왕후는 고려에서 재상까지 지낸 가문 소속이었으니 역량을 못 펼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의 가문은 힘이 셌죠. 아버지 강윤성과 작은아버지 강윤충·강윤휘 형제들은 충혜왕·공민왕 때 재상권문가로 세도를 떨쳤습니다. 그 스스로도 이성계의 서울 부인을 일컫는 ’경처‘였기에 목소리를 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죠. 경처란 무엇이냐고요. 고려 시대는 조선과 달리 지역별로 부인을 두곤 했습니다. 지역에 뒀다면 향처고요. 수도에 두면 경처였죠. 신덕왕후의 아들 방간·방석은 어린 시절엔 형 이방원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신덕왕후는 이방원을 아들처럼 대했고 그가 정몽주를 죽여 이성계의 분노를 샀을 땐 보호하기도 했죠. 그럴 수 있다고 말입니다. 문제는 세자 책봉 때부터입니다. 정치력이 뛰어났고 현명했던 신덕왕후 덕일까요. 태조가 10살 아들 방석을 세자 자리에 앉힌 건데요. 물론 이성계의 판단이 컸겠지만요. 왕의 자리가 그리 가볍게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흔들리는 자리는 아니니 세자가 어리고 신덕왕후 가문의 힘이 세다는 정치적 판단이 있었을 겁니다. 조선 건국 초기, 명민했던 신덕왕후의 정치적 도움을 생각해야 했을 것이고요. 태조실록에 나오는 기록을 볼까요. 어린 서자 이방석을 세워서 왕세자로 삼았다…(중략)…나이와 공로로써 청하고자 하니 임금이 강씨를 존중하여 뜻이 이방번에 있었으나 이방번은 광망하고 경솔하여 볼품이 없으므로 공신들이 이를 어렵게 여겨 사적으로 서로 이르기를 ”만약에 반드시 강씨가 낳은 아들을 세우려 한다면 막내 아들이 조금 낫겠다.“ 고 하더니 이때에 이르러 임금이 ”누가 세자가 될 만한 사람인가?“ 라고 물으니 장자로써 세워야만 되고 공로가 있는 사람으로써 세워야만 된다고 간절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극렴이 말하기를 ”막내 아들이 좋습니다.“ 하니 임금이 드디어 뜻을 결정하여 세자로 세웠다. 세자 책봉 후 이방원은 신덕왕후에게 배신감을 느낍니다. 자신이 세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훗날 신덕왕후는 병을 얻어 사망하게 되는데요. 이방원과의 갈등도 컸고요. 끊임없이 이성계를 도와 일해야 했죠. 조선 건국 전 이성계의 식솔을 챙겨 도망다녀야 했으며 자신에게 기대는 주위의 정치적 압박이 컸기에 병을 얻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죠. ● 청계천에서 매일 만나는 후대 백성 왕이 현비가 평안하지 못하여 중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부처에게 기도하게 하고 중외의 이죄 이하의 죄수는 석방하게 하였다. (태조실록, 태조 4년) 임금이 현비의 병환으로 구궁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였다. (태조실록, 태조 5년) 현비의 병환이 위독하여 판내시부사 이득분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하였다. 밤에 현비가 이득분의 집에서 훙하였다. 임금이 통곡하고 슬퍼하기를 마지 아니하였고, 조회와 저자를 10일간 정지하였다. 봉상시에서 현비의 존호를 신덕왕후라 하고 능호를 정릉이라 의논해서 올렸다. 신덕왕후를 취현방 북녘 언덕에 장례하고 정릉이라 이름하였다. (태조실록, 태조 6년) 고려 말 권문세족 가문의 힘에 자신의 정치력을 더해 남편에게 힘을 보탰으나 신덕왕후는 결국 사망합니다. 조선 첫 왕세자인 아들도 그의 사후 잃고요. 분노한 이방원이 스스로 태종이 된 후 이미 사망한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시키고 그의 묘를 파헤치는 만행도 저질렀습니다. 자신의 생모인 향처 한씨를 태조의 유일한 부인으로 기록하려 말이죠. 태조가 덕수궁 뒤에 만들었던 신덕왕후의 묘를 파괴해 이는 현재 서울 성북구로 태종에 의해 강제로 이장돼 있고요. 주변 석상 등은 파괴해서 현재의 청계천 다리로 만들었습니다. 저자의 백성들이 마구 밟게 하도록 하겠다고 말이죠. 실제 현재의 여러분이 서울 청계천을 가서 보는 그 다리 말입니다. 태상왕이 거가를 움직이니 회안군 이방간과 각사의 관원 한 사람씩이 따랐는데 길이 정릉을 지나니 두루 살펴보고 머뭇거리면서 또 말하기를 ”처음에 한양으로 옮긴 것은 오로지 내 뜻만이 아니었고, 나라 사람과 의논한 것이었다.“ 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갔다. (정종실록, 정종 1년) 태종이 자신이 왕이 되기 전 잠시 왕으로 내세웠던 형 정종 재위 당시의 기록입니다. 태상왕은 태조인데요. 신덕왕후의 흔적을 보며 눈물짓는 태조를 통해 그와 함께 정치적 결정을 내렸던 사실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뛰어난 정치가였으나 정적에 의해 묘가 파헤쳐지고 태종의 의도대로 매일같이 거리의 백성들에게 묘 석상은 밟히고 있는 걸 안다면 말입니다. 세상이 바뀌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각광받죠. 매일같이 서울 청계천에서 국민을 만나니 지상에서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지지 않는 것, 정치가로선 좋은 걸까요. ● 펜은 나의 힘, 기록가 혜경궁 ”왕비를 높이어 왕대비로 삼고 혜빈(惠嬪)을 혜경궁(惠慶宮)으로 삼았으며“ (정조실록, 정조 3년) 이로부터 약 400년이 흘러 오로지 기록 하나로 자신·남편·아들을 지킨 여성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글을 남긴 기록가 혜경궁 홍씨입니다. 비교적 조선시대 왕 중 인기가 높은 개혁군주 정조의 어머니라 친숙한데요. 100여명을 살해한 사도세자의 만행, 아들 정조를 지키기 위해 효명세자에게 입적한 스스로의 판단, 화완옹주의 정조에 대한 집착, 영조의 사도세자를 향한 연이은 양위 소동·13년간의 대리청정을 통한 ’가스라이팅‘ 등은 혜경궁 홍씨의 한이 담긴 기록 한중록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사도세자가 어떤 만행을 저질렀고 궁인들이 어떻게 두려워했으며 주변의 옹주들과 혜경궁 스스로도 그를 조심했다는 사실, 거기에는 아마도 영조의 변덕·정신적 괴롭힘·완벽주의에 대한 강박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죠. 사도세자는 분명 주변인을 마구 살해했으나 그 앞의 이야기까지 더해줘 비극적 주인공으로 오늘날 묘사되곤 합니다. 정조의 뛰어남을 칭찬한 영조의 말도 사도세자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혜경궁 스스로 전달을 일부 막은 사례 등 상세하게 나와 있는데요. 이런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선 알 수 없죠. 이런 기록 덕분에요. 훗날 고종은 한중록을 통해 정조가 사도세자·혜경궁 홍씨를 황제·황후로 추존하려 했다는 사실을 읽고 그렇게 시행합니다. 덕분에 현재는 대한제국 추존 황제·황후가 됐죠. 한중록을 부르는 또다른 말이 있죠. 읍혈록. 피눈물의 기록이란 뜻입니다. 한이 가득한 구주궁궐에서 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궁을 제 발로 나가고 죽은 남편의 형에게 호적을 입적시키는 등 당시로선 현명한 판단을 통해 아들을 지켰죠.  기록이 훗날 힘을 발휘한 순간을 볼까요. ”아, 우리 장헌세자는 슬기로운 자태가 탁월하고 좋은 이름이 일찍이 드러났습니다. 영조를 효성스럽게 섬겨서 순 임금이 섭정했던 것과 같이 큰 공을 세워 도왔고 정조(正祖)를 낳아 계처럼 어진 아들로 천명을 잇게 하여 명을 받고 정사를 대리한 지 자그마치 14년이나 됩니다.“ (고종실록, 고종 36년) ”정조는 하늘이 낸 성인으로서 바다와 같은 효성을 지녔으며 어렵고 큰 왕업을 이어 빛내는 일에 힘을 썼으니, 온 세상을 경륜하는 학문으로 문화를 발전시켰고 나라의 임금으로서 백성들을 사랑하여 만물이 다 함께 혜택을 입었습니다. 임금 자리에 있던 25년 동안 지극한 인과 두터운 은택이 온 세상에 차고 넘쳐서 사람들이 오늘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가 혜경궁께서 지어 내린 책을 살펴보건대…“ 고종에게 당시 특진관 서상조가 상소로 청한 내용입니다. 100여명을 죽인 살인자도 사도세자도 아닌 장헌 세자로 불리는 것에 더해 슬기롭다고 평하고 있죠. 개혁군주 정조라는 아들의 덕도 있지만 그 속내를 낱낱이 기록했던 혜경궁이 아니었다면 사후 추존은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남편은 세자, 아들은 왕이었으나 퍼스트 레이디는 될 수 없던 혜경궁은 결국 죽어서 자신의 커리어인 책으로 이름을 찾았네요. 주변인의 이름까지 드높였고요.
  • ‘한·일 불상 소유권 분쟁’ 일본 사찰 적극 대응 나서

    절도범에 의해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온 고려 금동관음보살좌상(불상) 제자리 찾기 소송과 관련해 일본 사찰 측이 적극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2012년 10월 국내로 반입되기 전까지 불상을 보관하고 있던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대마도)의 사찰 간논지(관음사) 측이 최근 재판부(대전고법 민사1부)에 각종 서류 열람과 복사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남 서산의 대한불교 조계종 부석사가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낸 불상 인도 항소심이 2017년 1월부터 진행 중인데, 간논지 측이 외교채널을 거쳐 의견을 개진하던 그동안의 모습과는 달리 변론에 필요한 자료를 챙긴 뒤 자신들의 주장을 재판부에 직접 피력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해 11월 간논지 측은 이 사건 보조참가인 신청을 해 재판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민사소송법 제71조에 따라 소송 결과에 이해 관계가 있는 제3자는 한쪽 당사자를 돕기 위해 소송에 참가할 수 있다. 간논지 측은 오는 30일로 예정돼 있던 변론기일에 대해 변경 신청을 했고,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다음 변론 일정은 6월 15일로 잡혔다. 경우에 따라 간논지 측 인사가 국내 법정에 직접 출석할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공정한 소송절차 진행을 위해 재판부가 보조참가인의 의견을 들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사안”이라며 “시일이 더 걸리더라도 변론과 심문을 충분히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간논지 측이 우리나라에 반환을 요청하는 불상은 높이 50.5㎝·무게 38.6㎏인 금동관음보살좌상이다. 지난 2016년 4월 서산 부석사는 ‘1330년경 서주(서산의 고려시대 명칭)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이 불상을 제작했다’는 불상 결연문을 토대로 “왜구에게 약탈당한 불상인 만큼 원소유자인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후 2017년 1월 26일 1심은 여러 증거를 토대로 ‘왜구가 비정상적 방법으로 불상을 가져갔다고 보는 게 옳다’는 취지로 부석사 측의 손을 들어줬고, 국가를 대리해 소송을 맡은 검찰은 곧바로 항소했다. 검찰이 항소와 함께 낸 불상 이송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불상은 현재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수장고에 있다.
  • 500년 사는 희귀 그린란드 상어, 英 해안가서 사체로 발견

    500년 사는 희귀 그린란드 상어, 英 해안가서 사체로 발견

    지구상에서 최장수 척추동물로 꼽히는 매우 희귀한 그린란드 상어(Greenland shark)가 사체로 발견됐다.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BBC등 현지언론은 그린란드 상어 한 마리가 지난 13일 영국 남서부 콘월 해안가에서 사체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이름도 생소한 그린란드 상어는 마치 신화 속에나 등장할 법할 정도로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특징을 갖고있다. 그린란드 상어는 노르웨이 등 차가운 북극의 심해에 서식해 모든 상어 종에서 가장 북쪽에 산다. 가장 놀라운 것은 수명이다. 그린란드 상어는 1년에 약 1㎝ 정도 성장하는데 최장 500년 이상 살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이번에 사체로 발견된 그린란드 상어는 암컷으로 길이는 3.96m, 나이는 100살 이상으로 청소년뻘의 어린 개체로 추정된다. 런던동물협회 로드 도빌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상어의 나이는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며 현재 정밀 감식 중에 있다"면서 "아마도 길을 잃고 좌초해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 그린란드 상어가 사체로 발견된 것은 역대 2번째다. 한편 그린란드 상어는 상어종 중에서도 가장 ‘느림보’다. 그린란드 상어의 평균 유영 속도는 초속 34㎝(시속 약 1.2㎞) 정도로 아기의 걸음마 수준이다. 또 눈의 기생충 때문에 그린란드 상어의 대부분은 앞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린란드 상어는 북극해 최상위 포식자로 평소에는 커다란 물개를 잡아먹기도 한다.
  • [와우! 과학] 수심 8000m 바닷속에도 생명체가…심해 해삼류 발견

    [와우! 과학] 수심 8000m 바닷속에도 생명체가…심해 해삼류 발견

    인류가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그곳에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생명체가 살고있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은 약 8000m 깊이의 아타카마 해구 바닥에서 미생물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페루-칠레해구로도 불리는 아타카마 해구는 페루와 칠레 해안에서 약 160㎞ 떨어져있으며 최대 깊이는 8060m에 달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해구 중 하나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 바닥에 도달하지 못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번 탐사는 칠레 콘셉시온 대학 연구팀과 미국 출신의 유명 탐험가 빅터 베스코보가 함께했다.지난 1월부터 특수잠수정을 타고 12주간 탐사에 들어간 연구팀은 약 8060m 해구 바닥에서 무엇인가 먹고있는 심해 해삼류를 발견했다. 빛 한줄기 없는 특히 웬만한 생명체는 살수 없는 수압 등 극한의 환경에서도 생명체가 존재했던 것.     연구를 이끈 오스발도 울로아 교수는 "해구 바닥은 이들 심해 해삼류에게는 '목장'과도 같은 곳"이라면서 "아마도 신종으로 추정되며 최악의 환경이지만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있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구팀은 탐사 과정에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많은 조류(藻類)와 새우와 유사한 단각목, 반투명 물고기 등 다양한 심해 생물을 발견했다.  특히 이번 탐사를 함께한 베스코보는 기네스북에 오를만큼 세계적인 탐험가로 유명하다. 미국 사모펀드 인사이트 에퀴티 홀딩스의 창립자이자 억만장자인 그는 이미 에베레스트 산을 포함 세계 7개 대륙의 최고봉을 정복하고 남극과 북극까지 여행해 이른바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베테랑 탐험가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그는 반대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해 오대양의 심해 중에서도 가장 깊은 지점만 골라 탐사하는 ‘파이브 딥스 엑스퍼디션’이라는 프로젝트팀을 이끌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총 48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무게 11.2t, 두께 9㎝의 유인 잠수정 ‘DSV 리미팅 팩터’(트리톤 36000/2 모델)를 사용해 심해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대서양의 푸에르토리코 해구(해저 8648m)부터 남극해의 사우스샌드위치 해구(해저 7235m), 인도양의 자바 해구(해저 7290m)에 이어 1만m가 넘는 마리아나 해구 탐사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 ‘박지성♥’ 김민지, 아이 등굣길 공개…“아빠와 함께”

    ‘박지성♥’ 김민지, 아이 등굣길 공개…“아빠와 함께”

    전 SBS 아나운서 김민지가 남편 박지성과 그의 자녀가 다정하게 등교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지난 16일 김민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만두 학교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차 안타고 다니기’를 권하고있다. 아마도 영국의 모든 학교가 저마다 캠페인을 마련해 진행하고 있는 듯 하다”고 글을 올렸다. 그녀는 “그리하여 만두가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다닌 지 3주가 되었다. 으슬으슬하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아휴 오늘은 좀 차 타고 가지’ 싶은데, 꿋꿋하게 하루도 안빼고 저렇게 다닌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는 진짜 위험하다고 이제는 진짜 별 수가 없다는 뉴스를 볼 때 마다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은데. 북극곰을 구하겠다고 30분 이상을 걸어다니는 저 아이들의 뒷 모습을 보면, 그래서 제일 붐비던 아침시간에 텅 비어있는 학교 앞 주차장을 보면, 희망이 뭔지를 배운다. 매일 매일 배운다”며 아이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공개된 사진에는 학교를 가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대문을 나서는 딸과 그의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박지성의 뒷모습이 담겼다. 김민지의 글에 장예원은 “만두 칭찬해”라고 애정 어린 댓글을 달았고, 기성용은 “형님 운동도 되시고 좋네요”라고 했다. 김민지는 2014년 박지성과 결혼, 슬하에 딸 아들 하나씩을 뒀다. 두 사람은 현재 영국에서 거주 중이며, 김민지의 개인 유튜브를 통해 팬들과 소통 중이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유럽, 감염 재확산…미국도 긴장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유럽, 감염 재확산…미국도 긴장

    코로나19 오미크론 유행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뒤 잠잠했던 유럽에서 다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 영국과 몇 주간 시차를 두고 코로나19 유행을 따라가는 양상을 보여온 미국은 영국의 재확산 사태가 곧 미국에서도 나타날지 주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자체 집계에 따르면 영국의 7일간의 하루 평균 신규 확진자는 지난달 27일 2만 8430명으로 오미크론 확산 뒤 최저점을 찍었지만 이후 상승세로 돌아서 15일에는 7만 3310명까지 올라섰다. 프랑스도 이달 4일 5만 3138명을 기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15일에는 6만 9702명으로 증가했고, 이탈리아 역시 비슷한 추이다. 독일도 16일 일일 신규 확진자가 26만 2593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독일은 이달 초 7일간 평균 일일 확진자 수가 15만명 수준이었다가 15일 처음으로 20만명이 넘었다. 영국 등 유럽에서 재확산이 이어지는 이유로 오미크론 변이의 하위 계통인 ‘BA.2’다. 초기 유전자 증폭(PCR) 검사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구별은 되지만 오미크론 변이인지는 탐지가 어려워 일명 ‘스텔스 오미크론’으로 불린다. 스텔스 오미크론은 전염성이 막강한 기존 오미크론보다도 80% 정도 전파력이 더 강한 것으로 영국 보건당국은 분석했다. 미국의 보건 전문가들은 스텔스 오미크론으로 인한 재확산이 미국도 덮칠 경우 65세 이상 고령층이 이에 대항할 강력한 면역 체계를 갖췄는지가 그 파급력을 결정할 핵심 지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CNN 방송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CNN은 기존의 오미크론 변이(BA.1)와 BA.2를 비교하면 BA.2는 입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작지만 이 변이가 감염시킬 충분한 취약층을 찾는다면 이는 의료 자원의 고갈로 이어질 잠재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사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전날인 15일 미 식품의약국(FDA)에 65세 이상 고령자를 상대로 코로나19 백신의 2차 부스터샷(추가 접종), 즉 4차 접종에 대해 긴급사용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미 보건당국은 BA.2가 미국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영국을 주시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여건이 영국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는 점이다. 가장 큰 차이는 영국의 백신 접종률이 더 높다는 점이라고 CNN은 지적했다. 영국은 부스터샷 접종까지 마친 성인의 비율이 82%에 달하지만 미국은 36%에 그친다. 65세 이상으로 범위를 좁혀도 약 3분의 1인 1500만명이 아직 부스터샷을 맞지 않았다. 키슬러는 “저변에 깔린 면역력의 차이 때문에 영국보다 미국에서 더 높은 (코로나19) 사망률과 입원율을 보게 될 수 있다는 점이 잠재적 근심의 원인”이라고 말했다. 존스홉킨스 블룸버그 공중보건대학원의 케리 얼토프는 “영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마도 여기(미국)에서 예상해야 할 일의 더 나은 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생의 끝에서 엮은 이어령 유고 시집

    생의 끝에서 엮은 이어령 유고 시집

    이어령 교수의 딸, 이민아 목사 10주기를 맞아 3권의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이혼과 암 투병, 큰아이의 죽음 등 시련과 인내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던 이 목사는 2012년 3월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열림원)는 지난달 26일 별세한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딸 10주기에 맞춰 발간을 계획했던 시집으로, 그의 유고 시집이 됐다. 시집에는 딸을 잃은 고통과 딸을 향한 그리움이 정제된 시어로 담겼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 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 / 네가 없어도 바다로 내려가던 하얀 언덕길이 거기 있을까’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사진처럼 슬픈 것도 없더라 / 손을 뻗어도 다가오지 않는 너’ (‘사진처럼 강한 것은 없다’), ‘세수를 하다가 / 수돗물을 틀어놓고 / 울었다 / 남이 들을까 몰래 울었다’ (‘지금 몇 시지’) 이 전 장관은 소진돼 가는 생의 끝에서 오래도록 이 시들을 모아 정리하고 표지와 구성 등 엮음새를 살핀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라는 서문을 출판사에 전화로 남겼다.‘땅끝의 아이들’(열림원)과 ‘땅에서 하늘처럼’(열림원)은 이민아 목사가 2011년과 2012년에 출간했던 책의 개정판이다. ‘땅끝의 아이들’은 땅끝 아이들의 ‘엄마’로서 자신의 사역을 감당했던 이 목사에게 일어난 여러 가지 시련과 시험, 그것을 극복하며 보고 들은 깨달음이 담긴 책이다. ‘땅에서 하늘처럼’은 그가 한 기독교방송과 함께 기획한 간증 프로그램의 하나로 2011년 10월부터 11월까지 진행한 강연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믿음이 있는데 왜 병에 걸리는 것일까’, ‘구원받은 우리가 왜 환난을 당하는 것일까’ 등 크리스천으로서 던지는 질문과 고민이 들어 있다.
  • 들어와 봄 황홀한 섬

    들어와 봄 황홀한 섬

    지금껏 세 번 정도 겨눴던 것 같다. 그때마다 거센 바람과 악천후로 발길을 돌려세웠던 섬이 있다. 남녘의 절해고도 관매도(觀梅島)다. 전남 진도의 여러 섬 가운데 가장 빼어난 섬으로 꼽힌다는 곳이다. 파도가 일군 기암괴석과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 해변, 100년은 족히 넘겼을 솔숲이 해학적인 전설들과 어우러져 있다.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했고, 국립공원 명품마을 제1호 등 이력도 화려하다. 장판 같은 바다 위로 봄바람이 살랑대던 어느 날, 네 번째 시도 만에 관매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관매(觀梅)는 ‘매화를 본다’는 뜻이다. 이름만으로는 누구나 섬에 매화가 많을 것이라 예상하기 십상이다. 한데 이 섬과 매화는 별 관계가 없다. 볼매(볼뫼)도, 관호도 등으로 부르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관매도로 바꿨다고 한다. ‘볼뫼’는 산을 본다는 뜻이고, ‘관호’는 호수처럼 잔잔한 앞바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섬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독특한 지형을 만나는 것이다. 관매도 역시 거대한 해안지형과 기암괴석이 볼만하다. 이런 웅장한 해안 경관들을 우리 선조들은 ‘뫼’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볼뫼’라는 낯선 단어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관매도 여행의 절정은 4~5월과 가을이다. 특히 봄에 섬 전체가 유채꽃으로 물들 때 많이들 찾는다. 그런데 왜 이도 저도 아닌 지금? 얼추 2㎞에 달하는 해변을 혼자 걸어 본 기억이 있다면, 혹은 두려울 정도로 거대한 해식동굴에서 혼자 파도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다면 잘 알 터다. 세상 고즈넉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귀에 가득 찬다. 그 장관이라는 유채꽃을 볼 수는 없지만, 대신 붐비지 않는 한적함과 고요를 얻을 수 있다. 첫 배로 관매도에 들어왔다가 오후 배로 이웃 섬 조도까지 둘러보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려면 관매도에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3시간 정도다. 섬의 일부만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아마 ‘일타쌍피는 해야 본전치기’라는 생각에서 이런 여정을 짜는 것일 텐데, 단언컨대 ‘본전’은 관매도에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들, 고요 속에 잠들고 어선 발동 소리에 잠이 깨는 낯선 경험들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관매도 가는 배는 진도항에서 탄다. 진도항의 옛 이름은 팽목항이다. 2014년 4월 이후, 대한민국 모든 이의 가슴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흔으로 남은 이름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가슴 아파서 발걸음하지 못한 사이 시간은 벌써 8년이 흘렀다.현지 분위기는 예전과 다소 다른 듯하다. ‘세월호 팽목 기억관’의 진도항 존치 여부를 두고 유족, 시민단체 측과 진도군 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진도항에서 1㎞쯤 떨어진 곳엔 국민해양안전관이 들어서고 있다. 세월호 추모, 해양 안전 의식 고취 등 여러 목적으로 조성되는 공간인데, 여기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는 5월 준공 여부도 불투명하고 문을 연 뒤 제대로 운영될지도 걱정이다. 진도군과 국가가 운영비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래저래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오전 9시 50분 배를 탔다. 관매도로 가는 첫 배다. 조도와 관사도, 소마도, 대마도 등을 거쳐 관매도까지 간다. 거리는 진도항에서 24㎞ 정도. 원래 1시간 20분 거리지만 완행버스처럼 가다 보니 2시간 정도로 늘었다. 그래도 나쁠 건 없다. 어쩌면 두 번 보기 힘든 섬들을 줄줄이 눈에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관매도의 볼거리들은 섬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다. 하루를 묵어도 다 돌아보려면 빠듯할 정도다. 대표적 경관은 ‘관매8경’으로 요약된다. 1경인 관매해변과 해송숲, 2경 방아섬(남근바위), 3경 돌묘와 꽁돌, 4경 할미중드랭이굴, 5경 하늘다리, 6경 서들바굴폭포, 7경 다리여, 8경 하늘담 등이다. 이 가운데 서들바굴폭포와 할미중드랭이굴, 다리여, 하늘담 등은 배를 타야 제 모습을 볼 수 있다.선착장에 내리면 길은 둘로 갈라진다. 왼쪽은 관매마을, 오른쪽은 관호마을이다. 관매마을 앞에 해변이 있다. 길이가 얼추 2㎞에 달하는 긴 해변이다. 백사장은 경사가 완만하다. 썰물 때는 바닷물이 수십 미터 뒤로 물러난다. 그래도 깊이 차이가 별로 없다. 예전에는 관매도를 관호도라고 불렀다. 앞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해서 그랬다. 그 이름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해변이다. 해 질 무렵이면 장판 같은 바다 위로 해가 지는 서정적인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해변의 모래도 밀가루처럼 곱고 단단하다. 경운기가 오가도 끄떡없을 정도다. 해변 뒤는 해송숲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하다. 일반적인 방풍림에 견줘 나무들의 둥치가 엄청 굵다. 솔숲 옆엔 거대한 후박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다. 관매도의 성황림으로, 해마다 정초에 이 나무 아래에서 마을 동제를 지낸다. 해변 옆엔 거대한 층암절벽이 늘어서 있다. 멀리서도 시선을 끌던 곳인데 가까이에서 보니 위용이 더 대단하다. 이쯤에서 관매8경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 층암절벽을 포함해 관매9경이라 불러야 했다. 실제 절벽의 모양이 채석강과 매우 흡사하다. 얇은 암석 절리들이 두꺼운 책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옆으로 펼쳐진 규모는 오히려 채석강보다 넓다. 이런 지형에선 해식동굴이 다양하게 발달하기 마련이다. 절벽이 들고 나는 곳마다 크고 작은 해식동굴이 형성돼 있다. 주민들은 이 일대를 ‘구랍’이라 부른다. ‘동굴 앞’에 있다는 뜻이다. 구랍 일대의 명소는 ‘독립문바위’다. 일몰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한데 내려가기가 매우 위험하다. 워낙 급경사여서 국립공원 측에서 입구를 막아 놓았다. 사실 독립문바위 정도의 층암절벽은 관매해변 옆에서 얼마든지 수월하게 볼 수 있다. 인증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힘들여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낙조 풍경 역시 관매해변 쪽이 훨씬 서정적이다.관매해변과 장산편마을 사이엔 평탄하고 너른 들이 있다. 이 들녘은 관광객을 위해 봄엔 유채꽃, 가을엔 메밀꽃밭으로 활용된다. 3월 말쯤이면 너른 들 전체가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일 테다. 독립문바위에서 1㎞쯤 떨어진 곳에 방아섬이 있다. 섬 꼭대기엔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다. 절구공이를 닮은 이 바위 덕에 섬 이름도 방아섬이 됐을 것이다. 한데 주민들은 굳이 남근바위라고 부른다. 방아섬엔 선녀들이 밤마다 내려와 방아를 찧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선녀들은 많은 곳을 두고 왜 하필 남근바위에서 방아를 찧고 놀았을까. 참 얄궂은 상상이 가미된 전설이다.이처럼 관매도의 대표 경관들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돼 있다. 해학과 풍경이 적당히 얽혔다. 관호마을 쪽의 돌묘와 꽁돌, 하늘다리 등도 비슷하다. 꽁돌은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둥근 돌이었다. 어느 날 옥황상제의 두 아들이 꽁돌을 갖고 놀다 지상으로 떨어뜨렸다. 옥황상제는 하늘장사를 보내 꽁돌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데 지상에서 선녀와 맞닥뜨린 게 화근이었다. 선녀들은 방아섬에서 방아찧기 놀이를 하다가 지루하면 하늘다리로 날아올라 잠자리 같은 선녀 옷을 벗고 놀았다지. 하늘장사가 선녀들의 미색에 ‘멘털이 털려’ 함흥차사가 되자 옥황상제는 또 다른 사자들을 내려보냈다. 한데 이들마저 하늘장사의 전철을 밟았다. 화가 치솟은 상제는 꽁돌 옆에 묘를 만들어 이들을 묻어 버렸다. 그게 바로 돌묘란다. 무미건조하더라도 사실적인 이야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지리적으로 남근바위 등은 사암류(화산쇄설성응회암)에 속한다. 풍화와 침식에 강하다. 남근바위는 절벽 꼭대기에 남은 응회암, 꽁돌은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응회암이다. 수많은 시간 동안 풍화와 침식이 이어졌고, 그 덕에 현재의 형태를 이루게 됐다. 꽁돌에는 구멍들이 나 있다. 전설은 하늘장사의 손바닥 형상이라 보지만, 학술은 타포니라고 말한다.선녀들이 옷을 벗고 놀았다는 하늘다리 쌍바위섬은 응회암 그 자체의 절벽지대다. 주민들은 베락밧(벼락바위)이라고 부른다. 벼락을 맞아 둘로 갈라졌다는 건데, 학술적으로는 지각변동으로 갈라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절벽 양쪽으로 작은 다리가 놓여 오갈 수 있다. 폭은 3m 정도지만, 발아래 절벽의 높이는 50m에 달한다. 굽어보는 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예전 주민들은 여기에 나무로 다리를 놓아 오갔다고 한다. 하늘다리에 서면 멀리 동·서거차도가 보인다. 그 너머에 세월호를 삼킨 바다가 있다. 옷자락을 여밀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다리여와 하늘담은 관호마을 끝자락에서 다른 경로로 접근해야 한다. 가는 길이 꽤 멀어 왕복 2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 여행수첩 →오전 9시 50분, 낮 12시 10분 하루 두 차례 배가 오간다. 차량도 싣고 갈 수 있다. 여러 섬을 들르는 1항차는 2시간 5분, 조도만 들르는 2항차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성수기엔 운항 횟수가 는다. 새섬두레호 (061)544-5353, 한림페리호 544-0833. →섬에선 민박이나 캠핑을 해야 한다. 식당은 있지만 비수기엔 거의 영업을 하지 않는다. 민박집에서 식사까지 해결해야 한다. 민박집은 꽤 많다. →섬에서 낚시는 금지다. 국립공원 지역이기 때문이다. 택시 등 대중교통도 없다. 성수기엔 자전거 대여점이 운영되기도 한다. →유람선이 없어 섬 일주를 하려면 어민들의 배를 빌려야 한다. 값은 15만원 선이다. 관광객들끼리 돈을 추렴해 빌리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한다.
  • 내려다 봄 짜릿한 섬

    내려다 봄 짜릿한 섬

    지금껏 세 번 정도 겨눴던 것 같다. 그때마다 거센 바람과 악천후로 발길을 돌려세웠던 섬이 있다. 남녘의 절해고도 관매도(觀梅島)다. 전남 진도의 여러 섬 가운데 가장 빼어난 섬으로 꼽힌다는 곳이다. 파도가 일군 기암괴석과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 해변, 100년은 족히 넘겼을 솔숲이 해학적인 전설들과 어우러져 있다. 섬 전체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했고, 국립공원 명품마을 제1호 등 이력도 화려하다. 장판 같은 바다 위로 봄바람이 살랑대던 어느 날, 네 번째 시도 만에 관매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관매(觀梅)는 ‘매화를 본다’는 뜻이다. 이름만으로는 누구나 섬에 매화가 많을 것이라 예상하기 십상이다. 한데 이 섬과 매화는 별 관계가 없다. 볼매(볼뫼)도, 관호도 등으로 부르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관매도로 바꿨다고 한다. ‘볼뫼’는 산을 본다는 뜻이고, ‘관호’는 호수처럼 잔잔한 앞바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섬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는 독특한 지형을 만나는 것이다. 관매도 역시 거대한 해안지형과 기암괴석이 볼만하다. 이런 웅장한 해안 경관들을 우리 선조들은 ‘뫼’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보면 ‘볼뫼’라는 낯선 단어가 썩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관매도 여행의 절정은 4~5월과 가을이다. 특히 봄에 섬 전체가 유채꽃으로 물들 때 많이들 찾는다. 그런데 왜 이도 저도 아닌 지금? 얼추 2㎞에 달하는 해변을 혼자 걸어 본 기억이 있다면, 혹은 두려울 정도로 거대한 해식동굴에서 혼자 파도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다면 잘 알 터다. 세상 고즈넉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귀에 가득 찬다. 그 장관이라는 유채꽃을 볼 수는 없지만, 대신 붐비지 않는 한적함과 고요를 얻을 수 있다. 첫 배로 관매도에 들어왔다가 오후 배로 이웃 섬 조도까지 둘러보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려면 관매도에 머무는 시간은 기껏해야 3시간 정도다. 섬의 일부만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아마 ‘일타쌍피는 해야 본전치기’라는 생각에서 이런 여정을 짜는 것일 텐데, 단언컨대 ‘본전’은 관매도에 있다. 생전 처음 보는 생경한 풍경들, 고요 속에 잠들고 어선 발동 소리에 잠이 깨는 낯선 경험들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관매도 가는 배는 진도항에서 탄다. 진도항의 옛 이름은 팽목항이다. 2014년 4월 이후, 대한민국 모든 이의 가슴에 결코 지워지지 않을 상흔으로 남은 이름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가슴 아파서 발걸음하지 못한 사이 시간은 벌써 8년이 흘렀다.현지 분위기는 예전과 다소 다른 듯하다. ‘세월호 팽목 기억관’의 진도항 존치 여부를 두고 유족, 시민단체 측과 진도군 측이 갈등을 빚고 있다. 진도항에서 1㎞쯤 떨어진 곳엔 국민해양안전관이 들어서고 있다. 세월호 추모, 해양 안전 의식 고취 등 여러 목적으로 조성되는 공간인데, 여기도 상황은 비슷하다. 오는 5월 준공 여부도 불투명하고 문을 연 뒤 제대로 운영될지도 걱정이다. 진도군과 국가가 운영비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서다. 이래저래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오전 9시 50분 배를 탔다. 관매도로 가는 첫 배다. 조도와 관사도, 소마도, 대마도 등을 거쳐 관매도까지 간다. 거리는 진도항에서 24㎞ 정도. 원래 1시간 20분 거리지만 완행버스처럼 가다 보니 2시간 정도로 늘었다. 그래도 나쁠 건 없다. 어쩌면 두 번 보기 힘든 섬들을 줄줄이 눈에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관매도의 볼거리들은 섬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다. 하루를 묵어도 다 돌아보려면 빠듯할 정도다. 대표적 경관은 ‘관매8경’으로 요약된다. 1경인 관매해변과 해송숲, 2경 방아섬(남근바위), 3경 돌묘와 꽁돌, 4경 할미중드랭이굴, 5경 하늘다리, 6경 서들바굴폭포, 7경 다리여, 8경 하늘담 등이다. 이 가운데 서들바굴폭포와 할미중드랭이굴, 다리여, 하늘담 등은 배를 타야 제 모습을 볼 수 있다.선착장에 내리면 길은 둘로 갈라진다. 왼쪽은 관매마을, 오른쪽은 관호마을이다. 관매마을 앞에 해변이 있다. 길이가 얼추 2㎞에 달하는 긴 해변이다. 백사장은 경사가 완만하다. 썰물 때는 바닷물이 수십 미터 뒤로 물러난다. 그래도 깊이 차이가 별로 없다. 예전에는 관매도를 관호도라고 불렀다. 앞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해서 그랬다. 그 이름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이 해변이다. 해 질 무렵이면 장판 같은 바다 위로 해가 지는 서정적인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해변의 모래도 밀가루처럼 곱고 단단하다. 경운기가 오가도 끄떡없을 정도다. 해변 뒤는 해송숲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빼곡하다. 일반적인 방풍림에 견줘 나무들의 둥치가 엄청 굵다. 솔숲 옆엔 거대한 후박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다. 관매도의 성황림으로, 해마다 정초에 이 나무 아래에서 마을 동제를 지낸다. 해변 옆엔 거대한 층암절벽이 늘어서 있다. 멀리서도 시선을 끌던 곳인데 가까이에서 보니 위용이 더 대단하다. 이쯤에서 관매8경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 층암절벽을 포함해 관매9경이라 불러야 했다. 실제 절벽의 모양이 채석강과 매우 흡사하다. 얇은 암석 절리들이 두꺼운 책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옆으로 펼쳐진 규모는 오히려 채석강보다 넓다.이런 지형에선 해식동굴이 다양하게 발달하기 마련이다. 절벽이 들고 나는 곳마다 크고 작은 해식동굴이 형성돼 있다. 주민들은 이 일대를 ‘구랍’이라 부른다. ‘동굴 앞’에 있다는 뜻이다. 구랍 일대의 명소는 ‘독립문바위’다. 일몰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한데 내려가기가 매우 위험하다. 워낙 급경사여서 국립공원 측에서 입구를 막아 놓았다. 사실 독립문바위 정도의 층암절벽은 관매해변 옆에서 얼마든지 수월하게 볼 수 있다. 인증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힘들여 내려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낙조 풍경 역시 관매해변 쪽이 훨씬 서정적이다.관매해변과 장산편마을 사이엔 평탄하고 너른 들이 있다. 이 들녘은 관광객을 위해 봄엔 유채꽃, 가을엔 메밀꽃밭으로 활용된다. 3월 말쯤이면 너른 들 전체가 노란 유채꽃으로 뒤덮일 테다. 독립문바위에서 1㎞쯤 떨어진 곳에 방아섬이 있다. 섬 꼭대기엔 커다란 바위가 솟아 있다. 절구공이를 닮은 이 바위 덕에 섬 이름도 방아섬이 됐을 것이다. 한데 주민들은 굳이 남근바위라고 부른다. 방아섬엔 선녀들이 밤마다 내려와 방아를 찧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선녀들은 많은 곳을 두고 왜 하필 남근바위에서 방아를 찧고 놀았을까. 참 얄궂은 상상이 가미된 전설이다.이처럼 관매도의 대표 경관들은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돼 있다. 해학과 풍경이 적당히 얽혔다. 관호마을 쪽의 돌묘와 꽁돌, 하늘다리 등도 비슷하다. 꽁돌은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던 둥근 돌이었다. 어느 날 옥황상제의 두 아들이 꽁돌을 갖고 놀다 지상으로 떨어뜨렸다. 옥황상제는 하늘장사를 보내 꽁돌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데 지상에서 선녀와 맞닥뜨린 게 화근이었다. 선녀들은 방아섬에서 방아찧기 놀이를 하다가 지루하면 하늘다리로 날아올라 잠자리 같은 선녀 옷을 벗고 놀았다지. 하늘장사가 선녀들의 미색에 ‘멘털이 털려’ 함흥차사가 되자 옥황상제는 또 다른 사자들을 내려보냈다. 한데 이들마저 하늘장사의 전철을 밟았다. 화가 치솟은 상제는 꽁돌 옆에 묘를 만들어 이들을 묻어 버렸다. 그게 바로 돌묘란다. 무미건조하더라도 사실적인 이야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지리적으로 남근바위 등은 사암류(화산쇄설성응회암)에 속한다. 풍화와 침식에 강하다. 남근바위는 절벽 꼭대기에 남은 응회암, 꽁돌은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응회암이다. 수많은 시간 동안 풍화와 침식이 이어졌고, 그 덕에 현재의 형태를 이루게 됐다. 꽁돌에는 구멍들이 나 있다. 전설은 하늘장사의 손바닥 형상이라 보지만, 학술은 타포니라고 말한다. 선녀들이 옷을 벗고 놀았다는 하늘다리 쌍바위섬은 응회암 그 자체의 절벽지대다. 주민들은 베락밧(벼락바위)이라고 부른다. 벼락을 맞아 둘로 갈라졌다는 건데, 학술적으로는 지각변동으로 갈라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절벽 양쪽으로 작은 다리가 놓여 오갈 수 있다. 폭은 3m 정도지만, 발아래 절벽의 높이는 50m에 달한다. 굽어보는 것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 예전 주민들은 여기에 나무로 다리를 놓아 오갔다고 한다. 하늘다리에 서면 멀리 동·서거차도가 보인다. 그 너머에 세월호를 삼킨 바다가 있다. 옷자락을 여밀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다리여와 하늘담은 관호마을 끝자락에서 다른 경로로 접근해야 한다. 가는 길이 꽤 멀어 왕복 2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 여행수첩 →오전 9시 50분, 낮 12시 10분 하루 두 차례 배가 오간다. 차량도 싣고 갈 수 있다. 여러 섬을 들르는 1항차는 2시간 5분, 조도만 들르는 2항차는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성수기엔 운항 횟수가 는다. 새섬두레호 (061)544-5353, 한림페리호 544-0833. →섬에선 민박이나 캠핑을 해야 한다. 식당은 있지만 비수기엔 거의 영업을 하지 않는다. 민박집에서 식사까지 해결해야 한다. 민박집은 꽤 많다. →섬에서 낚시는 금지다. 국립공원 지역이기 때문이다. 택시 등 대중교통도 없다. 성수기엔 자전거 대여점이 운영되기도 한다. →유람선이 없어 섬 일주를 하려면 어민들의 배를 빌려야 한다. 값은 15만원 선이다. 관광객들끼리 돈을 추렴해 빌리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한다.
  • 내일 도시가 봉쇄되면 당신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물건은?

    내일 도시가 봉쇄되면 당신이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물건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며 무증상 감염자 1명만 나와도 거주지를 봉쇄해버리는 중국이었다.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지목되고 있던 우한시가 2020년 봉쇄된 이후 전체 봉쇄 조치가 없었던 중국에서 최근 계속된 현지 감염자 속출에 중국 4대 도시인 선전시를 봉쇄하기로 결정했다. 선전시 정부가 3월 14일부터 20일까지 1주일 동안 도시 전체를 봉쇄한다고 발표하자 13일 저녁 선전시의 거의 모든 도로가 마비 상태였다. 선전시 주민들이 도시 봉쇄 전 사수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컴퓨터’였다. 13일 선전시 정부는 수도, 전기, 가스, 통신, 환경위생, 육류, 채소, 곡물 등을 공급하는 공공서비스 기업과 홍콩에 물자를 공급하는 기업 외에는 모든 기업이 재택근무로 전환하고 공장 생산 가동을 멈출 것을 당부했다. 심지어 지하철 등 대중교통도 운행을 중단한다고 밝히자 전날 밤 선전의 회사원들은 일제히 거리로 나왔다. 도시 봉쇄 전날 저녁 중국 SNS 상에는 무수히 많은 인증샷들이 올라왔다. 선전 시민들이 사수하는 것은 딱 두 가지, 음식 아니면 컴퓨터였다. 밤늦은 시각, 각자 컴퓨터 본체와 기타 자료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가는 사람들, 늦은 저녁 지하철에 탄 시민들 대부분이 PC 본체를 들고 타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재택근무하면서 야근하면 야근 수당 못 받는데…”라며 수당을 걱정하기도 했다. 14일부터 1700만 선전 시민들에 대한 PCR 전수 조사가 시작되고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택근무가 시작되는 것은 물론 불필요한 외출은 모두 금지된다.선전 시민들 사이에서는 ‘13일 저녁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 마트에서 장보기 ▷회사에서 컴퓨터 가져오기 ▷이불을 가지고 회사로 가기 ▷공유 자전거 사수하기 ▷전기 자전거 사기라는 일명 ‘행동 강령’이 퍼지기도 했다. 한밤중 거리를 환하게 비추며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을 본 한 누리꾼은 “아마도 도시 봉쇄하기 전날 컴퓨터 가지러 가는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차가 막히는 곳은 세계에서 선전시가 유일할 듯”이라며 도시 봉쇄를 걱정하기보다는 일을 걱정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일부 선전 시민들은 지하철과 버스 운영 중단 소식에 서둘러 이동 수단을 구입하거나 집 근처에 놓여있는 공유 자전거를 비상수단으로 확보하기 위해 분주했다. 그러나 다들 컴퓨터를 가져가는 것과 달리 아예 일주일을 회사에서 머무르려는 사람도 많아 충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담요 등을 어깨에 메고 회사로 향하는 사람이 꽤 많았기 때문. 한 네티즌은 “컴퓨터를 집에 갖고 가는 사람만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회사에서 자발적 봉쇄되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게다가 회사 사장은 회사에 갇힌 사람들에게 수당도 더 주겠다고 했다더라… 선전에서 살아남기가 이렇게나 고달프다”라며 현실을 반영한 듯한 씁쓸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사실 현재 중국 대도시 중 선전시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곳은 상하이다. 처음으로 중국 대도시 중 봉쇄령이 내려진 선전시는 13일 하루 확진자 75명, 무증상자 11명에 불과했지만 같은 날 상하이는 확진 41명에 무증상자 128명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발생하는 거주지를 계속 봉쇄하고 있지만 거의 상하이 전 지역에 걸쳐서 확진자가 분포되어 있어 사실상 도시가 봉쇄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상하이는 중국의 경제 중심 도시로 인구 2500만 명이 상주하고 있는 곳이라서 선전시처럼 도시가 봉쇄된다면 중국 경제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 ‘中 자랑 어디 숨었나’…역대 노벨상 수상자 194명, 러 규탄 속 중국계만 쓱 빠졌다

    ‘中 자랑 어디 숨었나’…역대 노벨상 수상자 194명, 러 규탄 속 중국계만 쓱 빠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194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이번 공식 지지 서명자 명단에는 중국 국적의 노벨상 수상자들만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 분위기다. 노벨상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12일 공개된 공식 지지서명자 명단에는 노벨상 수상자 194명의 이름이 공개됐다. 공개서한을 통해 러시아 정부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공개 비판한 노벨상 수상자 194명은 해당 서한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은 1939년 독일 나치 군대가 폴란드 침략해 도발한 뒤 1941년 소련을 침공한 것과 흡사하다’면서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군 즉시 철수와 폭력 중단’을 촉구했다. 해당 공개서한에 대만 국적으로 198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던 리위안저와 중국계 미국인으로 199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스티븐 추, 199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대니얼 추이 등이 서명했다. 또,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공개서한을 지지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침공을 규탄했다. 하지만 총 194명의 공개서한 서명자 중에는 중국 국적의 노벨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비판의 도마 위에 섰다.  이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유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면서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국민들은 피해자이며, 푸틴과 그를 따르는 러시아 정부에 전쟁의 책임이 있다’며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과 푸틴을 동시에 비판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존재 자체에 대한 합법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유엔 헌장을 러시아 정부가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있다. 양국 군인 수백 명의 목숨이 부질없이 희생됐고, 러시아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적 제재로 인해 무고한 시민들이 곤경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특히 1975년 공포된 헬싱키 법안과 1990년 파리 헌장에 기반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향후 수백 년 동안 러시아의 명예를 더럽히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공개서한에 서명한 노벨상 수상자 중 중국인 수상자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소셜미디어상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 분위기다.  실제라 한 누리꾼은 ‘중국이 자랑하는 중국 최초의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양전닝(杨振宁)과 중국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모옌(莫言), 개똥쑥을 이용한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던 투유유(屠呦呦) 등 다수의 중국계 수상자 중 우크라이나 민간이 희생과 전쟁 피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더한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독일 주재 대만 대표 세즈웨이 역시 이번 공개서한 서명자 명단에 대해 “이미 고인이 된 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가 생존해 있었다면 오늘 이 사태를 매우 아프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면서 “그가 살아있었다면 중국 국적의 유일한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중국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권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는 톈안먼 사건 이후 중국의 인권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인물로 중국 공산당에 반체계 인물로 낙인찍힌 뒤 2017년 투옥 중 사망했다. 셰즈웨이 대만 대표는 “러시아 당국의 심각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광장에는 아직도 많은 러시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이번 사태를 비판하고 있다”면서 “그들의 용기는 민족과 혈연을 초월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아쉽게도 인구 14억 명의 중국에서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면서 “그들은 아직도 19세기 안에 갇혀 있으며, 아쉽게도 중국은 여전히 이런 면에서 한참 낙후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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