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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C ‘파스타’ 알렉스 대사 선정성 논란

    MBC ‘파스타’ 알렉스 대사 선정성 논란

    MBC 월화드라마 ‘파스타’ 첫 회에서 극중 김산(알렉스 분)의 수위 높은 대사가 선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4일 방송분에서 서유경(공효진 분)이 일하는 ‘라스페라’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방문한 김산은 “외국에서는 이렇게 주방 요리사를 불러 달래서 메뉴 추천을 받기도 하고 ‘당신의 요리가 섹스보다 낫다’ 소리도 요리사를 불러서 직접 하고 그런다.” 라고 말해 유경의 화를 돋구었다. ‘당신의 요리가 섹스보다 낫다’ 는 말은 가수 마돈나가 세계적인 요리사 에드워드 권의 요리를 맛보고 한 말로 알려져 있다. 방송 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공중파에서 이래도 되나.” “자녀들과 함께 볼 수 있겠나.” 는 등의 의견도 있었지만 “외국에서는 요리사한테 흔히 쓰는 표현이다.” “막장 드라마도 많은데 대사 한 마디로 너무한다.” “좀 더 과감하고 신선한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본다.” 등 관대한 입장도 많았다. 이와 관련, 제작사 올리브나인 측의 한 관계자는 “알렉스 캐릭터가 외국물을 많이 먹은 재벌집 아들인데다 요리에 관심도 많은 인물로 설정돼 있다.” 면서 “(‘요리가 섹스보다 낫다’ 는 말은)요리사를 극찬하는 서양의 한 관행어로 공공연하게 쓰인다.” 고 설명했다. 작가도 논란이 일지는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상파 심의팀의 한 관계자는 서울신문NTN과의 전화에서 “대사 하나만을 가지고 문제를 삼기는 어렵다.” 며 “적나라한 욕설 등은 일회성 표현에도 제재가능성이 있지만 10시 이후에 방송됐고 또 극의 진행 흐름이나 전후 맥락을 따져봤을 때 자연스럽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극중의 ‘섹스’ 라는 표현도 일회성이라 문제로 삼기 어렵다.” 면서 “다만 시선을 끌거나 자극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며 향후 중점적으로 모니터링 해 이런 표현이 반복되는지 굳이 필요한 부분인지를 판단해서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5일 방송될 2회에서는 ‘꽃미남’ 요리사들의 인상적인 첫 등장과 함께 해고됐지만 계속 출근하다 현욱과 파스타 대결까지 펼치게 되는 유경의 끈질긴 모습이 전개될 예정이다. 사진 = 이규하 기자 서울신문NTN 백영미 기자 positiv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지상파 3사 명품다큐 안방 격돌

    2010년 경인년(庚寅年)은 한국사(史)에서 특별한 해다. 일제의 국권침탈 100년을 비롯해 6·25 전쟁 발발 60년, 4·19 혁명 50년, 남북 정상회담 10년 등 한국 근·현대사의 묵직했던 사건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해다. 또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한국에서 개최되기도 한다. 지상파 방송 3사는 2010년을 맞아 고품격·고품질의 다양한 기획물들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말하다 KBS는 4·19세대의 증언을 담은 ‘우리들의 50년, 한국의 50년’을 통해 한국 민주화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4·19혁명의 궤적을 추적한다. 또 1910년 한·일합병 조약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살펴보는 4부작 다큐멘터리 ‘국권침탈 100년, 우리 시대에 던지는 질문’도 방송할 예정이다. 5부작 ‘한반도와 일본열도 2000년의 전쟁과 평화’와 ‘독일 통일 20년’, ‘남북정상회담 10년’ 등의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관련 드라마도 활발하게 제작해 1970년대 인기를 끌었던 ‘전우’를 다시 드라마로 제작하고 10부작 ‘한국전쟁’도 만든다. MBC는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TV 시리즈와 통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라디오 프로그램 ‘판문점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고 있다. SBS도 ‘2010 역사 기획 프로젝트’를 세우고 다큐멘터리 드라마 ‘6·25 새로운 조명-대(大) 전투’와 2부작 다큐멘터리 ‘4·19, 미완의 혁명인가’, 한일합병 100주년 특집 기획 ‘제국의 몰락’을 준비했다. ●환경과 G20을 말하다 방송사들은 또 심각해진 환경 문제를 조명하고 G20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기획 시리즈도 준비하고 있다. KBS는 생태 다큐멘터리인 5부작 ‘동아시아 생명 대탐사, 아무르강’과 ‘푸른 지구의 마지막 유산’, ‘고선지 루트를 가다’, 녹색기술의 가능성을 점검해 보는 ‘미래기획 푸른 지구’, ‘동물의 건축술’ 등 다양한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한다. MBC는 우리 사회 각 분야에 걸쳐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G20 회담 개최를 발판으로 선진 일류국가로 나가기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연중 특별보도 기획 ‘대한민국, 미래를 향해 뛴다!’를 방송한다. 또 환경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잇는 ‘지구의 눈물’ 시리즈도 준비하고 있다. SBS도 G20 회담을 위한 연중 보도 시리즈 ‘2010 대한민국-일류 국가로’를 마련한다. 또 생태 위기의 툰드라를 조명한 3부작 다큐멘터리 ‘툰드라’와 지리산 반달곰 복원 프로젝트 10년을 돌아보는 ‘자연으로 돌아간 반달곰’을 제작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송도국제도시 갯벌 습지보호지역 지정

    인천시는 지자체 최초로 송도국제도시 갯벌 6.11㎢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습지보호지역 지정 권한이 2005년 환경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된 이후 첫 사례다. 4일 인천시에 따르면 송도국제도시 갯벌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6·8공구 2.5㎢와 11공구 3.61㎢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 고시했다. 인천지역에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것은 2003년 12월 옹진군 장봉도 갯벌에 이어 두번째다.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 건축물 신·증축, 모래·자갈·광물 채취, 동·식물 도입·경작·포획 등이 제한된다. 둑을 쌓아 수량이나 수위를 조절할 수도 없다. 이번에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송도 갯벌은 동아시아 철새의 이동경로로 국제적 희귀 조류인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말똥가리, 알락꼬리마도요 등 107종 2만 200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이곳은 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 조성을 위한 사업부지로 매립할 예정이었으나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보존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하자 시가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것. 인천시 관계자는 “송도 갯벌은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므로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조류보호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는 송도 갯벌을 관리하려고 국비 1억원 등 1억 4000만원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인천지역 환경단체들은 시의 이번 결정에 회의적이다. 인천녹색연합 관계자는 “습지보호지역 지정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이번에 지정된 곳은 매립을 하고 남은 자투리 땅”이라며 “제대로 된 조류 서식지 역할을 할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서울신문 2010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붉은 코끼리/이은선

    할머니가 사라졌다. 노인정과 공판장을 지나 경찰서로 뛰어가던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뭐라고? 할머니가, 어디? 엄마, 잘 안 들려요! 모퉁이를 돌아서자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얼결에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재빨리 칸막이를 닫았다. 어느새 전화가 끊어져 있었다. 아침 식사 시간 전부터 기숙사에 와 잔소리를 해대는 팀장과 이러저러한 일들이 겹쳐 오후 두 시가 다 되도록 한 번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내친김에 변기 위에 걸터앉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는데, 옆구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가 울렸다. 곧 리허설을 시작하겠다는 팀장의 목소리였다. 그건 안 됩니다. 코끼리들 상태가 좋질 않아요. 오늘은 무조건 쉬게 해야 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팀장은 무전기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오라고 했지만 당장은 가기 싫었다. 무전기의 전원을 끄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디 가셨다는 거지? 몸도 안 좋으시면서.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삼촌의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울고 있던 가족들이 황망히 수골실로 내달렸다. 나는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삼촌의 유골은 대리석 탁자 위에 새카맣게 탄 못들과 뒤엉켜 있었다. ‘냉각’을 거쳤다고는 하나 아직 열기가 식지 않은 유골이었다. 할머니가 탁자 모서리에 가슴을 짓찧었다. 망연히 서 있던 아버지가 서둘러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려 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작은 뼛조각 하나를 움켜쥐는 것을 보았다. 탁자 옆에 서 있던 나도 얼른 새카맣게 탄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아무도 못 본 건가. 주위를 둘러보니 고모들은 아예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내내 울음을 참던 아버지도 할머니를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못을 내 몸에 박아두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쥐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나는 공항에서 곧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나를 데리러 온 사촌 동생의 차를 탈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는데도 어쩐지 집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례식장 앞에서 선뜻 안으로 들어서지 못해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둘째 고모가 내 몫의 상복을 내밀었다. 장례식장 안팎에 삼삼오오 모인 가족들은 삼촌이 왜 죽었을까 답답해했고 삼촌의 동료와 친구들은 경찰서를 오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이라도 불러 알아볼 수 없을까? 사촌 동생이 불쑥 꺼낸 말이었다. 삼촌의 방에 널브러진 술병들, 불에 탄 이부자리, 종류가 다른 담배꽁초들. 어떤 추측은 가능할 테지만 진실은 아무도 몰랐다. 그날 밤 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삼촌은 각기 다른 이유들로 죽고 또 죽었다. 효원 장례식장 국화실에 놓인 영정사진 속 삼촌은 너무나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무릎에 올려놓은 상복이 자꾸 무겁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삼촌의 죽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바로 눈앞에서 삼촌의 시신을 보았다는데도. 거의 녹아내린 새카만 못과 유골을 분리하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뼈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그만 잠에서 좀 깨어나라고 흔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데 나는 어쩌려고 못을 집어든 것일까. 할머니가 두 주먹을 옹골차게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덩달아 나도 주먹에 힘을 주었다. 내 손이 못과 함께 타들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원내 방송이 들려왔다. 잠깐 눈만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재빨리 손목의 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숫자를 거꾸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득달같이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이하설 조장님, 본부 운영실로 와’달라는 방송은 계속 되었다. 운영실이 가까워질수록 방송이 더 자주 들려왔고, 느려터진 두 발은 점점 더 내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하기만 하면 저 공손한 팀장의 말투는 야수로 변해 나에게 돌진할 것이었다. 그때 가로수 사이로 한 여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남색 기지바지와 연두색 스웨터, 복고풍의 파마머리까지. 혹시 할머니인가 싶어 가던 방향을 바꿔 전속력으로 달려갔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섰다. 팀장이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두루마리 휴지가 창문 쪽으로 날아갔고, 내 가슴팍에 내리꽂힌 전화기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박살이 났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었다. 원내 방송 담당 아나운서가 시디 데크를 만지작거리는 게 보였다. 팀장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악단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악단장의 발치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란색 나비넥타이가 떨어져 있었다. 기어이 팀장과 한바탕 한 것 같았다. 오전에 병원으로 실려 간 러시아 무용수는 응급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하혈이 심해 개복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악단장과 팀장의 관계를 가장 잘 알고, 더듬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러시아 말을 할 줄 알았던 내가 그 ‘중요한’ 시기에 사라졌다는 것이 팀장이 화를 내는 이유였다. 앞으로 바짝 다가온 팀장의 손이 내 뺨을 향해 날아왔다. 그때 태국인 조련사 푸앙이 운영실 안으로 들어왔다. 푸앙은 코끼리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퍼레이드를 취소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코끼리의 설사 따위는 팀장에게 먹혀들 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나는 푸앙의 손을 잡아끌고 코끼리 우리로 갔다. 쏘냐는 계속 설사를 했고, 아프리카 산 일 년 생 코끼리 튀라는 쏘냐의 엉덩이 쪽에 대가리를 박고 누워 있었다. 제때 검사를 하며 건강을 돌보아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야생과는 달리 동물원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동물들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래서 예방 접종, 먹이, 변의 상태 등을 확인하여 제때 사료 혹은 건초 더미를 바꾸어 주는 것들은 무척이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들이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팀장은 번번이 동물원의 재정 상태를 운운하며 우리가 올리는 건의사항들을 묵살했다. 이하설, 오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너부터 자를 줄 알아! 나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들었다. 팀장님, 직접 오셔서 코끼리들을 살펴보시란 말이에요! 무조건 데리고 나가는 일이 능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뭐야? 푸앙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코끼리 나가지 마, 나 죽어. 푸앙, 그러기 전에 내가 먼저 어떻게 되겠어. 그러니 나한테 제발 좀 이러지 마! 그러나 푸앙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삼촌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내가 아는 한 삼촌은 아픈 동물은 절대로 퍼레이드에 내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외국인 조련사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었고, 윗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선에 맞추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못을 만졌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울고 있는 푸앙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오늘은 이틀 앞으로 다가온 퍼레이드의 리허설이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를 나온 동물들의 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한 달 전부터 신문 및 지역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나날이 쇠락해가는 테마랜드의 혁신을 위해 팀장이 삼 개월 넘게 심혈을 기울인 행사였다. 만약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삼촌은 일급 코끼리 조련사이자 동물 쇼의 사회자였다. 공휴일이나 특별한 행사가 있기 한 달 전이면 삼촌의 얼굴이 실린 포스터가 동네 곳곳에 나붙었다. 지역 방송국에서는 매일 테마 랜드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고 또 어떤 쇼가 진행 중인지 보도해 주었다. 삼촌은 방송에도 자주 나왔다. 나도 삼촌에게 꽃을 건네는 어린이 중 한 명으로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있었다. 십 년이 지나 스무 살이 된 나도 테마 랜드에 조련사 보조로 들어왔다. 그러다 조련사가 되었지만 그 삼촌에 그 조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내내 업무에 허덕이다 시간이 되면 퇴근하기에만 급급한 나날이었다. 삼촌처럼 되기를 원했지만 그를 뛰어넘을 재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동물 구입 차 태국과 러시아에 출장을 간 사이 삼촌은 직원 기숙사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맸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할머니는 삼촌의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가 지난 뒤 실신한 채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실려 왔다. 어린이 날 행사를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바쁘게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래저래 악단장과 팀장 사이에 생긴 일들을 조율하고 동물원 곳곳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별 탈 없이 생활을 했다는 진술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바와 다를 것이 없었다. 장례식 도중, 나는 삼촌이 행사를 진행할 때 입던 붉은색 조련복을 챙겨두었다. 팀장은 동물원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가 사육사들이 동물 관리를 잘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물 구입의 명목으로 예산을 타갔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단란주점에서 여자애들과 놀아났다는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 날에는 실내 경마장에서 누군가와 게임을 했다는 말도 들렸다. 건의서를 제출하면 가지고 있는 동물 관리나 잘하라며 번번이 우리의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이 죽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후 사체처리비로 외유를 떠났다. 이사장이 바뀌고 줄을 잘 섰다는 소문이 돌았다. 얼마 후 악단의 인원이 대폭 감소되었다. 게다가 이러저러한 꼬투리를 잡아 악단장의 연봉도 삼십 퍼센트나 감봉시켰다. 대부분이 계약직인 연주자들은 불만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곧 재계약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하나 둘, 동물원을 떠나는 연주자들이 늘자 참다못한 악단장이 팀장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악단장은 내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소주를 마시고, 매일 두 갑의 담배를 피웠다. 테마랜드는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짐승들과 관리되지 않은 채 잡풀이 번다한 식물원, 날만 흐리면 전기가 오르는 범퍼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놀이기구만 모아 놓은 부상 랜드였다. 사육조장에게선 늘 술 냄새가 났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날이 더우면 덥다는 이유로, 동물들이 발정이 나면 수컷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늘 술을 마셨다. 나도 간간이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곤 했지만 어쩐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싫었다. 그는 술만 취하면 내게 삼촌의 이야기를 하려고 들었다. 삼촌의 성격과 그와의 관계, 동물들을 아끼던 마음, 은밀하게 나누곤 했던 농담들. 하지만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반쯤 마신 매실 주스에 소주를 타먹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도 그는 코끼리 우리를 나오면서 빈 매실 주스 병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처음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집에서 없어진 할머니를 이곳에 있는 내가 어찌해 볼 도리는 없었다. 엄마,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요, 지금 좀 바빠! 통화를 끝내자마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조장님, 홍학 우리에 고양이가 들어와 새끼들을 물어뜯고 난동을 부렸어요. 뭐라고? 홍학 한 마리가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알았어, 곧 갈게. 안 그래도 행사 준비 때문에 신경이 무척 곤두서 있는 홍학무리였다. 허겁지겁 바쁘게 뛰어가다 보니 남색 기지바지가 또 눈에 띄었다. 오늘은 동물원에 남색 기지바지가 유난히 많았다. 그 바지들은 여기서도 나타났고 저기로도 지나갔다. 동물원에 온 할머니들은 대부분 남색 기지바지 혹은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모두들 엇비슷한 파마머리를 한 채 손차양으로 햇빛을 가리고 느릿느릿 걷거나 그늘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납골당은 노인들이 게이트볼을 치고 있는 공원을 지나 한참 더 올라가는 산 중턱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적한 공터인 줄 알았던 공원도 지나가며 살펴보니 있어야 할 것들은 다 있었다. 그물이 벗겨진 하나밖에 없는 축구 골대, 녹슨 시소, 줄 끊어진 그네. 곳곳에 놓인 페인트칠이 벗겨진 벤치와 그곳에 누워 있는 사람들. 공원을 지나 한참을 걸었는데도 납골당이 나오질 않아 잘못 찾았나 하고 두리번거리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따름이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산길을 따라 삼십여 분쯤 더 걸어가다 보니 자그마한 분지 위에 지어 놓은 건물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곧장 유골 안치실로 들어갔다. 삼촌의 위패에 쓰여 있는 이름이 낯설었다. 이선빈이 아닌 고(故) 이선빈은 내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는 수학공식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저쪽 세계의 풀 수 없는 문제 같은 것인가. 돌아갔으나, 되돌아 올 수는 없다는 낙인? 오늘만큼은 할머니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퍽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귀신같이 아들 있는 곳을 찾아냈다. 가져간 술과 포를 놓고 준비되어 있는 향을 피웠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에 혹시나 싶어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대꾼한 두 눈을 슴벅이며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계시라 해도 한사코 일어서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술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잔을 쥐고 향 위에 세 번을 돌린 후 상에 올렸다. 두 뺨이 경련이 이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였다. 옆 칸에서 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담배에 불을 붙여 제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보였다. 분향실의 향내에 짓눌려 있던 나는 생담배 타는 매캐한 냄새가 차라리 반가웠다. 우리도 한 대 필까, 삼촌? 부검 결과 별다른 타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악단장과 몇몇의 연주자들, 팀장에 대한 조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알지 못하던 우울증이 새로 생겨났으며, 사육조장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알코올 중독이란 말이 덧붙여졌다. 추측성 발언들이었지만 조서에 쓰인 것들은 그대로 사인(死因)이 되었다. 분개한 가족들이 사건 수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바로 장례 일정이 잡혔다. 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발인 날짜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발인 전날 신발도 신지 못하고 영안실로 달려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납골당 쪽을 다시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쉽게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가 저쪽의 삼촌을 아직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할머니의 어깨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다. 듬성듬성하던 머리칼은 그 사이 더 빠졌는지 머릿속이 훤히 다 보일 지경이었다. 올라오는 길을 잘 찾았던 할머니가 돌아가는 길을 헷갈렸다. 납골당에 들어서는 길은 우리가 걸어온 길 하나밖에 없는데도 할머니는 분향실에서부터 출구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맸다. 내가 앞장서 걸을 수도 있었지만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그렇게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아 가만히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지난 주말에 할머니와 내가 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납골당에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내가 만약 그곳에 할머니를 모시고 간 것을 알면 크게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버지의 기억에는 할머니가 한 번도 삼촌에게 다녀온 적이 없다는데, 처음이라는 할머니는 삼촌의 자리를 잘도 찾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홍학 우리 안의 소동이 잠잠해진 뒤였다. 고양이에게 물려 다리를 다친 홍학은 다행히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이 아니라 두 달 전에 알에서 깬 새끼였다. 놀란 홍학들을 진정시키느라 껍질 깐 호두와 아몬드를 두 자루나 뿌려주었다. 어느샌가 팀장도 홍학 우리 앞에 와 있었다. 그는 퍼레이드에 나갈 녀석들을 좀 더 밝은 빨간색 형광 안료로 칠하라며 조련사들을 다그쳤다. 나는 홍학들에게 빨간 안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해 보았지만 팀장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다. 나는 물끄러미 팀장과 조련사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제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을 보내고도 꿋꿋하게 나오던 곳이고, 그가 하던 일만은 내 손으로 이어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조련사들이 빨간 형광 안료 통을 들고 사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퍼레이드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나는 옷장에서 삼촌의 조련복을 꺼내 입었다. 오랫동안 묵혀둔 것이라 혹시 곰팡이라도 슬었으면 어쩌나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의자 위에 놓아둔 전기 총을 집어 들자 푸앙이 비명을 지르며 울어댔다. 미안해,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얼른 끝내버리자. 나는 입을 앙다문 채 쏘냐의 뒷다리에 총을 쏘았다. 쏘냐가 움찔하며 왼쪽 다리를 들었다. 재빨리 엉덩이에도 총을 갖다 댔다. 한참 만에 쏘냐가 일어섰다. 푸앙이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다 울부짖으며 내 왼팔에 매달렸다. 쏘냐의 몸에 멋을 내느라 발라놓았던 노란색 형광안료가 설사에 섞여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형광 선을 긋는 것 같았다. 무전기에서는 팀장의 목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무전기 소리를 무시하니 그 뜻 없는 말들은 점차 행진곡 풍으로 변해갔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괜찮다고, 얼른 끝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흙탕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호두를 쪼아 먹고 있던 홍학들이 코끼리 우리 앞에 나와 있었다. 온몸에 빨간색 형광 안료를 잔뜩 바른 홍학 무리였다. 등에 홍학을 둘씩 태운 코끼리들이 정문으로 출발했다. 붉고 노란 머리들이 공중에다 점을 찍었다. 휴대전화와 무전기에서 팀장과 사육조장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어차피 코끼리들이 도착하지 않으면 행렬을 완성할 수 없고 또 사회자인 내가 가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 역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뺐다. 팀장님, 지금이라도 리허설을 취소해 주세요. 뭐, 뭐야? 이대로 가단 코끼리들이 죽습니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얼른 데리고 나와! 시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지켜보고 있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니가 나한테, 대든 거냐? 쏘냐와 튀라는 절뚝이고 비틀거리면서도 앞만 보고 걸었다. 푸앙이 코끼리 배에 손을 얹고 함께 걸었다. 저렇게라도 가주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쏘냐는 설사를 하고 있었다. 코끼리, 죽어. 나도 죽어. 푸앙이 울며 말했다. 푸앙, 나도 어쩔 수가 없잖아, 미안해! 니가 살려! 푸앙,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키고 이미 죽은 것도 살려낼 수만 있다면야 오죽이나 좋겠니. 푸앙이 이를 악물고 우는 소리와 코끼리들의 거친 숨소리가 마치 한 덩이처럼 느껴졌다. 정문 쪽에 노란 나비넥타이를 한 악단장의 모습이 보였다. 전보다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잘 다려진 연미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심벌즈 연주자가 그만두는 바람에 탬버린을 담당했던 사람이 심벌즈를 잡고 있었다. 다섯 명이던 작은 북 담당 연주자들은 둘밖에 없었고 심지어 트럼펫 연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행렬이라도 완성해야 한다는 팀장의 고집 때문에 음악은 녹음해둔 것으로 대체되었다. 연주자들이 항의했지만 오늘은 ‘리허설’ 날이니 그렇게 해도 된다는 악단장의 말에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주자들의 얼굴 표정은 괜찮아진 것 같지 않았다. 안 그래도 불안한 처지인데 악단장마저 번번이 자신들 앞에서 팀장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에 익지도 않은 악기를 든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갔다. 악단장은 연신 나비넥타이만 고쳐 맸다. 동물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문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꺼내들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직접 코끼리를 만지려고 다가갔다. 놀란 사육사들이 그들을 말리는 사이, 나는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동물들의 우는 소리들이 마구잡이로 내 가슴속에 맺혔다. 그 사이 ‘시’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왔다. 행사를 하는 날도 아닌데 무슨 일로 온 거지? 팀장은 ‘시’ 사람들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시’ 사람들은 악단장에게도 다가갔다. 팀장이 활짝 웃으며 악단장의 오른팔을 잡아끌었다. 팀장에게 이끌린 악단장이 지휘봉을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엉거주춤하게 그들과 악수를 했다.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 않은 채 인사를 하는 악단장을 바라보는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팀장은 악단장에게 당장 연주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악단장은 시디를 틀기로 되어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빨리 하라니까! 팀장 자신도 모르게 나온 큰 소리에 본인이 더 놀라고 있는 사이, 악단장이 뒤돌아섰다. 그러나 내내 굽실거리거나 팀장에게 할 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던 악단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악단장은 맨 앞줄의 연주자가 들고 있던 바이올린을 넘겨받았다. 지휘봉을 연미복 허리춤에 찔러 넣은 악단장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축배의 노래였다. 멍한 얼굴의 팀장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악단장의 바이올린 선율에 맞춰 다른 연주자들의 악기도 조금씩 리듬을 탔다. 때마침 비가 내렸다. 당황한 팀장이 재빨리 ‘시’에서 나온 사람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나는 와중에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절정으로 향해 갔다. 어느새 굵어진 빗방울들이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원숭이와 코알라, 나뭇가지에 걸쳐 놓은 채 들고 나온 나무늘보들을 적셨다. 문제는 코끼리 등 위에 빨간 형광 안료를 덕지덕지 바르고 올라 앉아 있는 홍학들이었다. 진회색의 코끼리 등에 붉은 물이 들어갔고,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는 점점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나는 열심히 연주를 하는 악단장과 ‘시’ 사람들을 서둘러 본관으로 끌고 가는 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동물들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며 작은 소란이 일었다. 그때 푸앙이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홍학의 다리를 잡아챘다. 푸덕, 푸흐드덕! 홍학이 거센 날갯짓을 했지만 푸앙의 손아귀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푸앙이 정문과 반대쪽을 향해 뛰었다. 마치 홍학 연을 타기라도 한 것처럼 재빠른 속도였다. 홍학 한 마리가 사라지자 코끼리 등에 앉아 있던 다른 홍학 네 마리도 푸앙이 사라진 쪽을 향해 날아갔다. 푸앙은 홍학의 습성도 잘 알았다. 아마도 어미를 데려갔을 거였다. 홍학이 날아가면 코끼리들은 그 자리에 앉아 무릎을 굽혀 반쯤 앉거나 선 채 왼발을 들어 쇼의 시작을 알리게끔 훈련되어 있었다. 내가 말려볼 틈도 없이 정문에서가 아니라 정문으로 가는 도중에 코끼리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붉은 꽃 한 송이를 등에 얹은 코끼리들이 추는 군무가 악단이 연주하는 축배의 노래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때까지도 정문 앞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박수를 치거나 사진을 찍어댔다. 쏘냐와 튀라는 설사를 좍좍 갈기면서도 춤을 추었다. 코를 양 옆으로 흔들면서 왼발과 오른발을 차례대로 접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며 엉덩이춤을 추었다. 코를 하늘 위로 높게 치켜세웠다가 쿵쿵 땅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왼쪽 오른쪽으로 두 차례씩 긴 코를 하늘로 들어올렸다. 빗줄기를 쏟아붓는 하늘을 향해 코를 쏘아 올리기라도 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 번 쇼를 시작하면 끝이 날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게 훈련된 코끼리들이었다. 홍학과 함께 한 군무가 오 분, 코끼리만 하는 쇼가 십오 분이었다. 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코끼리들 옆에 전기 총을 든 채 무력하게 서 있었다. 코끼리의 군무가 점점 더 활기를 띠기 시작할 때쯤 다시 축배의 노래가 들려왔다. 악단장은 마치 무한 반복이라도 할 것 같은 완강한 표정이었다. 코끼리들은 덜렁덜렁 코를 흔들며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차례대로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 푸앙이 쏘냐의 어깨 위에 올라가 커다란 횃불을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이 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푸앙이 없다.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홍학들은 왜 하나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본관으로 갔던 팀장이 호루라기를 불며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문을 가로지르는 팀장의 뒤쪽으로 익숙한 남색 기지바지가 지나갔다. ……할머니? 축배의 노래에 맞춰 자박자박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할머니였다. 나는 재빨리 할머니를 향해 뛰었다. 할머니, 할머니이! 그러나 할머니는 멈춰 서지 않았다. 내 등 뒤에서 악단장이 연주하고 있던 바이올린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뒤따라 전기 총을 쏘는 소리도 들려왔다. 코끼리들이 거세게 날뛰며 질러대는 울음과 구경하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였다. 돌아서서 잠시 주춤하던 나는 다시 있는 힘껏 할머니 쪽을 향해 뛰어갔다. 빗물이 자꾸 눈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삼촌의 뼛조각을 손에 쥔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어서인가. 내 손은 자꾸만 할머니의 몸을 움켜쥐려고 했다. 아버지가 못을 골라내자 화장장 직원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바로 삼촌의 뼈를 유골함에 넣어주었다. 고모들은 자신의 혈육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막힌 듯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촉망받던 조련사였으며, 사람 좋던 막내 삼촌은 그렇게 몇 줌의 유골이 되었다. 옥색 유골함 위에는 삼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제 삼촌은 옥함 겉면의 금박 이름으로만 남게 될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움켜쥐고 있던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게 우시려는가 싶어 나는 고개를 돌려 유골함 쪽을 쳐다보았다.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단단히 쥐고 있던 두 주먹이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두 손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는 천천히 입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수골실의 모든 것이 잠깐 멈춘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가 갑자기 상체를 숙였다. 입 속의 것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가.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할머니 뒤쪽의 흰 벽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잘 움직이지 않았고 무엇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가려고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지 말고, 동물원에 가보자. 집으로 돌아온 후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했지만 그것은 분명 동물원이라는 말이었다. 아버지가 동물원에 데려다주지 않자 할머니는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모든 행위들을 다시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기세와 할머니의 고집 사이에서 가족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는 밤마다 할머니 방으로 가서 할머니의 몸을 쓰다듬었다. 여기 어디쯤 삼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할머니의 몸이 무척 단단하게 느껴졌다. 삼촌은 할머니의 쇄골 위에 올라 있었다. 할머니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 속에서도 삼촌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어느 날엔가 삼촌은 할머니의 팔목을 그러쥔 채 죽이 담긴 숟가락을 할머니의 입 속으로 밀어 넣어주기도 했다. 먹은 음식이 어쩌다 얹히기라도 하면 조용히 할머니의 등을 쓸어주었다. 나는 삼촌이 그렇게라도 여기서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것이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삼촌, 좋아? 나는 탄 못과 할머니의 무릎을 번갈아가며 만졌다. 할머니는 오래 울었다. 가족들 모두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상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할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뒤에도 삼촌의 베개를 쓰다듬으며 울었다. 어쩌다 밥상에 삼촌이 좋아하던 창란젓이라도 올라오면 그걸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 눕거나 앉거나 간신히 일어서거나 벽에 등을 기대거나. 언제 어디에서건 어떤 자세로든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속으로 울고 있었지만 나는 할머니가 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어쩌면 울다 지쳐 손으로 몸을 짚기라도 하면 어디에서건 삼촌이 만져져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 있는 유골함이 되는 일은 무척 힘겨워 보였다. 그래도 할머니는 식구들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할머니는 혼자서 동물원에 온 거였다. 우리가 걸음을 멈춘 곳은 식물원 입구였다. 할머니를 막 따라잡으려다가 도대체 왜 동물원에 왔고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인지 궁금해 뒤를 따랐던 참이었다. 할머니의 남색 기지바지 속에서 끊임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원내 방송이 나왔다. 이하설 조장님, 운영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식물원 뒤쪽에는 고사한 나무들이 즐비했다. 희귀한 꽃이나 과실수들은 이미 다른 곳으로 팔려가거나 누군가가 빼돌린 뒤였다. 테마 랜드를 재정비한다면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할 곳도 여기였다. 할머니는 왜 하필 이곳으로 온 것일까. 마침내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고 단풍나무 둥치에 기대앉았다. 집에서 동물원까지 걸어왔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나는 천천히 할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집으로 모셔 갈 작정이었다. 그때 할머니가 손을 뻗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나뭇조각이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할머니는 그것을 입에 넣은 후 가슴을 쳤다. 그러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크으헉, 으흑. 그것은 그동안 가슴에 쌓였던 울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듯한 소리였다. 나는 다가가 말리지 않았다. 할머니도 얼마간은 큰 소리로 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주먹으로 툭툭 땅을 쳤고, 나무 둥치에 등을 짓찧었다. 돌로 만든 조형물에 얼굴을 갖다 박았고 두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뜯었다. 할머니는 그동안 속으로만 쌓였던 울음들을 모조리 뱉어내려는 것 같았다. 그때 식물원 어디선가 커다란 새의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푸앙? 그는 나에게 다른 한국인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향기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자기를 찾는 거라 여기고 또 달아나버리면 어떡하지? 푸드덕거리는 새소리와 할머니의 울음이 식물원 안을 가득 채웠다. 죽은 나무들도 잔잔한 바람을 타며 울음소리와 박자를 맞췄다. 나는 할머니가 울고, 푸앙이 새들과 함께 마음을 삭이고 있는 여기가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누군가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눈물을 그친 할머니가 다시 걸었다. 나는 할머니를 뒤따라갔다. 할머니는 여전히 뒤에 있는 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참 동안 동물원 곳곳을 걷던 할머니는 코닥 필름 사진관 앞에서 멈춰 섰다. 우두커니 서서 문 닫힌 사진관의 창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코끼리 등에 올라 탄 삼촌이 붉은 조련복을 입고 활짝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테마랜드 30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도록 전시된 사진들이었다. 오래되어 빛이 바랬을 뿐, 사진 속의 모든 것들은 충분히 식별이 가능했다. 할머니는 손을 뻗은 채로 창가에 바짝 다가섰다. 삼촌의 사진이 언제부터 저곳에 걸려 있었던 걸까. 테마랜드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저 사진을 그곳에 걸어 놓지는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 그제야 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렀지만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코끼리 등 위에 앉아 밝게 웃고 있는 삼촌과 그것을 향해 말 없이 손을 뻗는 여인을 찍은 한 장의 사진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사진 속으로도 빗방울들이 쏟아져 내렸다.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푸앙이 우는 소리였다. 푸앙은 팀장에게 멱살을 잡힌 채 이쪽으로 끌려오는 중이었다. 여전히 홍학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야, 이하설! 나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놀라 나도 모르게 할머니!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내내 그렇게 멈춰 있을 것만 같던 사진 속 초로의 여인이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여인의 핏발 선 두 눈이 멈춘 곳은 내가 입고 있는 삼촌의 조련복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단추를 달고 솔기를 여며준 이 옷을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어느새 창틀에서 떼어 낸 삼촌의 사진을 안고 있는 할머니가 다른 한 손으로 내 옷을 가리키며 다가왔다. 팀장과 푸앙도 이쪽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코끼리 울음소리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쏘냐와 튀라는 우리로 돌아갔을까.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못을 꺼내 쥐었다. 나는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했다. 누군가 먼저 잡아당기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끝> ■ 당선소감 -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타슈켄트 동물원에는 코끼리 두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초원을 훑어야 할 우묵한 눈들이 녹슨 푸슈킨 동상을 바라보고 있지요. 어느 날 저도 모르게 코끼리 우리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야 말았습니다. 늙고 병든 코끼리의 두툼하고 너덜너덜한 귓불을 한참 동안 쓰다듬어 주었어요. 그 코끼리들이 저와 함께 아랄 해를 지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요즘 노인정에서 한글을 배우고 계십니다. 손녀가 쓴 글을 읽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저는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글을 써나갈 작정이므로 할머니는 기필코 200세 장수하셔야 합니다. 기꺼이, 조금 더 말랑해지겠습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동인, 그 섬’의 대장 임철우 선생님(‘그 섬에 가고 싶다’를 필사하던 그 순간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잘 견디고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치열하고 엄중한 소설쓰기가 일상의 진부함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그 방향을 제시해주신 최수철 선생님(선생님의 조언과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누가 되지 않도록 살고, 쓰겠습니다.), 검룡소에서 풀솜대를 뜯어주신 최두석 선생님(돌아가지 못하는 시의 자리가 아직도 제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글 쓰는 손가락은 절대적으로 겸손해야 함을 일깨워주신 서영채 선생님(밤새 꺼지지 않던 선생님 연구실의 불빛을 바라보며 술 취한 저는 도서관에서 잠들곤 했지요.), 사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신 주인석 선생님(아, 이제 오디오 튜닝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10년 전 홍성여고 문예반 수업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겁니다, 이정록 선생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행운입니다. 그 운명을 결정지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제가 무너지려 할 때마다 옆에서 바로잡아주고 격려해준 권오영 시인께는 미처 다 갚을 수도 없는 마음들을 받았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안 내내 소설 쓰기의 치열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던 김도연 선배께 맥주 한 잔 사드리고 싶습니다. 철없는 저를 뒤치다꺼리해 주느라 고생한, 제일 먼저 축하해준 이진희 시인. 정말 고맙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끝까지 손에 들고 계셨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같이 힘들어도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는 뚝심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얼른 ‘리보통(Ly-botong)’으로 달려가 그곳에 계신 분들과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약력 -본명:이미선. 1983년 충남 보령 출생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소설전공 수료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 세계언어대학 한국어 강사 역임 ■ 심사평 - ‘현대인 삶의 축도’ 동물원… 상징적 압축미 탁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열 편. 이 가운데 다시 세 편의 작품을 어렵게 추려 놓고 생각했다. 신춘문예가 필요로 하는 소설은 어떤 소설인가? 우리 소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단편소설은 산문 양식임에도 언어의 경제성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는 이 짧은 언어로는 ‘모든 것’을 쓸 수 없다. 그럼에도 이 양식은 이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한다. 어떻게? 수사학, 즉 기교가 우리를 지상적인 삶에서 초월적 의미의 세계로 순간이동시켜 준다. 그러니 기교가 모든 것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할 수도 있다. 상징적 깊이나 환유적 지시 체계를 갖추지 못한 훌륭한 단편소설이란 일종의 형용모순과도 같다. 하이준씨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현대적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어 가는 문체가 돋보였다. 강남의 한 미장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그만 사건은, 일상의 소소함이 그 한계 내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만든 장점도 갖추었다. 김명진씨의 ‘뷰티플 원데이’는 베트남에서 온 아버지와 아버지의 젊은 여인과 ‘나’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의 내면의 섬세함이 다문화라는 문제를 사회성 이상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그러나 ‘은행나무가 있는 풍경’은 의미를 구성하는 사건이 너무 희박하고, ‘뷰티플 원데이’는 사건을 보편적인 의미로 상승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이은선씨의 ‘붉은 코끼리’는 상징적 압축미가 뛰어나다. 동물원 코끼리 조련사의 이야기 안에 많은 것을 담았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자체가 어떤 상징성을 띤, 현대인의 삶의 축도로 이해하게 한다. 여기서 동물원을 지배하는 어떤 메커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세계의 어떤 축도와도 같다. 이 작품은 쓴 것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면서 독자에게 시적인 울림을 선사한다. 재능과 생각을 겸비한 이은선씨에게 축하의 말씀과 함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2010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질문하는 소설, 경험하는 콜라주’-김중혁론

    고대 그리스의 부타데스(Butades of Sicyon)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의 기원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 여인이 연인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빛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벽에 그린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옹기장이였던 여인의 아버지 부타데스가 딸의 그림을 본떠 빚은 점토 형상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대상-그림자-회화-조소’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속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 나아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적 표현은 사적 욕망의 구체화라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시원(始原)의 욕망과 대상을 그저 희미한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적 영역(oikos)과 공적 영역(polis)의 경계가 깨지면서 발생한 것이 ‘사회’라는 아렌트의 지적대로라면, 이제 우리의 사회는 개인의 욕망조차 자아를 충족시키는 내밀함에서 벗어나 공적 담론의 장 속에서 공익적 측면을 수용하기를 요구한다. 역사의 진행을 개인 욕망의 발현 과정으로 본다면,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 속에서 욕망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중요시된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의 개인적 욕망은 때로 성적(性的)인 원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집단적 도덕성으로 재단되기도 한다. 결국, 계량화가 가능해지고 공적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만이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순수하고 개인적인 욕망의 발현은 유아기적 망상으로 치부되기에 이른다. 더구나, 매스 미디어의 균질적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다양한 욕망들은 서열화 속에서 재배치된다. 이제 욕망은 비교우위 없는 순수한 발현을 억압당한 채 잘못된 대상에 고착되거나 인터넷의 작은 화면 속에서 일쑤 신경질적으로 해소된다. 마치, 떠나고 없는 연인의 그림자를 향해 말없음을 타박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말이다. 욕망조차 계열화된 현실에서 소설 행위(쓰기/읽기)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있다. 다양한 욕망이 부딪치는 공간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소설이 이야기와 달리, 이전 시대의 경험들과 분리되어서 후대의 경험으로 확장되거나 조언을 포함하지 않는 고립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소설은 정보가 그랬듯이 상품으로서 자본주의적 유통의 과정으로 포획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소설행위의 의미 역시 정보가 소비되는 방식처럼 한 순간 안에서만 소비되고, 우리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만화경 속에 갇히고 만다. 이 글이 김중혁의 소설(‘펭귄뉴스’(2006), ‘악기들의 도서관’(2008). 두 권의 단편집을 제외한 작품으로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창작과 비평, 2009년 봄), ‘C1+y=:[8]:’(문학과 사회, 2009년 여름), ‘유리의 도시’(현대문학, 2009년 8월), ‘1F/B1’(문학동네, 2009년 가을) 등이 있다. 단편집에서 작품을 인용할 때에는 작품의 제목과 면수만 밝히기로 한다.)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소설 안에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반복·중첩시켜 가며 소설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소설은 종국에 이르러 개인의 순수한 욕망을 만날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이 가벼움은 다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가로지른다. 김중혁의 이러한 작업은 부타데스 이후 멀어져 가고만 있는 개인의 욕망을 직접 대면케 하는 동시에 소설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여겨진다. 김중혁 소설의 근저에는 공통 취향을 가진 두 인물들의 반복과 변주가 배치되어 있다. 이 배치가 그의 소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소설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통 취향의 공간은 독자들을 무리없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 두 명의 중심인물들은 때로 쉽게 의기투합하기도 하지만(‘무용지물 박물관’), 결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협력의 지점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두 인물들은 만나지도 않거나(‘자동 피아노’), 아니면 아예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비닐광 시대’). 반면에 이럴 때조차 이들은 서로 여전히 “작고 가냘픈”(‘자동 피아노’, 29쪽)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데, 말하자면 두 인물들은 매개물을 통해 가까워진 두 개의 항이 아니라 매개물을 통해 반복되고 변주되는 하나의 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인물들은 ‘여성들의 서사적 비중이 축소된 남성적 유대관계’(신수정)나, ‘전형적인 남성 버디(buddy)소설의 면모’(심진경)로도 파악된다. 하지만 소설적 공간의 의미를 구축하는 이들의 역할에 주목하여 살펴본다면 성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우리는 다만 반복적 이형태(異形態)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동참하게 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상대자로 ‘나’와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영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만 나타나는 경우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지는데, 고유명사를 부여받지 않은 대상은 독립적 역할보다는 ‘나-나’로의 반복과 변화를 이끈다. 가령, ‘나와 B’에서 ‘나’는 ‘B’와 음악으로 인해 ‘핵융합’을 한 것처럼 금방 친해진다. 하지만 실제 이 둘의 관계는 ‘B’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행위로 시작되고, 전개된다. 음반 가게 점원인 ‘나’가 음반을 훔치려던 ‘B’를 처음 만난 뒤, 몇 번의 이직을 겪는 ‘나’와 무명 기타리스트에서 주목받는 신인 기타리스트가 되는 ‘B’의 사이를 ‘하나로 합쳐’졌다고 보기에 둘 사이는 느슨하다. 음악이라는 공통 취향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B’는 ‘음반을 두 번 정도 듣고 난 다음엔 음반과 거의 똑같이 기타를 연주’(195쪽)하는 전문가이고, ‘나’는 심장에 무리가 가서 아예 전기기타를 배우기도 힘든 인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는 동영상을 보다가 내 습관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화면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그를 볼 때마다 왼쪽 엄지로 나머지 왼손 손가락들의 끝을 비비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듯 매끄러운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런 행동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손가락 끝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아니면 굳은살 하나 박여 있지 않은 내 손가락 끝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중략…) 한 달 전 기타를 한 대 샀다.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중략…) 아직 내 손가락 끝은 너무 무르다. -‘나와 B’, 210~211쪽.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재발견이다. ‘나’는 ‘B’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던 자신 내면의 어떤 지점을 발견하고 다시 이를 통해 내면에 감추어졌던 순수한 욕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갑자기 음악(기타)을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거나 하는 등의 결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무른 손가락 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순간은 우리가 전망을 가지고 억압과 대결을 펼치든, 현실을 비틀어 냉소적 거리를 두든 오히려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적 억압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망이나 목표는 그 자체로 억압되고 조작된 욕망에 노출되어 뒤틀린 결과물이 될 위험성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결말이 보여주는 의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리거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과는 구별된다. 이제 우리는 조작된 욕망에서 벗어나 본래의 욕망, 즉 시원(始原)의 욕망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김중혁은 이러한 반복과 변주가 주는 새로운 의미의 발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가 자신의 작업에 붙이는 이름(제목)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첫 번째 소설집 ‘펭귄뉴스’에서 우리는 ‘무용지물/ 박물관’, ‘사백 미터/ 마라톤’이라는 제목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기 힘들 것 같은 두 단어가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면서 묘한 호기심과 낯섦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방식의 명명은 두 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더욱 늘어난다. ‘자동/피아노’, ‘악기들의/도서관’, ‘유리/방패’, ‘무방향/버스’(제목의 /부호는 인용자) 등이 그것이다. 지적한 제목들은 모두 이질적인 두 단어가 A+B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품을 읽은 뒤 우리는 소설의 내용이 A나 B 어느 한쪽과 관련된 이야기거나, A가 B(혹은 B가 A)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설이 전달하는 의미들은 사실, A∩B를 통해 파생되며 이를 통해 A나 B가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고 그것들의 공통점에 기반하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A‘(또는 B’)가 무한대로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교집합적 운동이라고 새롭게 불러도 좋을 이와 같은 김중혁의 소설적 전략은, ‘반복(repetition)’과 ‘이접(離接.disjunction)’을 통해 모든 ‘토대’를 집요하게 해체하고자 했던 일련의 운동이 문학적 테두리 안에서 갖는 성과이다. ‘엇박자 D’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이 성과를 분명하게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네 사람, 다섯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합창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창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의 음이 맞질 않았다. 박자도 일치하지 않았다. (…중략…)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략…) 22명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아마도 엇박자 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엇박자 D’, 280~281쪽. 공연기획자인 ‘나’가 20여년 만에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합창단 친구 ‘엇박자 D’를 만나 같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그 공연에서 ‘나’ 몰래 친구가 준비한 앙코르 장면은 소설속의 ‘나’가 그랬듯 예기치 못한 감동을 준다. 공연을 기획한 ‘엇박자 D’는 합창단 시절, 자발적으로 단장까지 맡을 정도로 유일하게 열성적이었던 친구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의 박치이자 음치’(255쪽)여서 실제 공연 때는 선생님에게 립싱크만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엇박자 D’는 결국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망친 장본인이 된다. 그 뒤 의도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던 ‘엇박자 D’는 전공으로 무성영화를 선택한다. 무성영화를 통해서, 영상과의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리의 자유로움을 깨닫고 위에 언급한 장면을 연출하기까지의 소설적 과정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엇박자 D’의 의도를 알게 된다. 실상, 음치라는 것은 ‘자신이 알아낸 게 아니고 들어서 아는 것’이며 ‘평생 그렇게 세뇌’(270쪽) 당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억압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기준이 음치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억압이 작용하지 않는 시원의 욕망을 만남으로써 주체들이 자유롭게 해방되고 나아가 ‘서로의 소리’를 억압하지 않는 ‘화음’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김중혁이 보여주는 교집합적 운동의 힘이다. 교집합적 운동 속에서 억압되/하지 않는 욕망을 만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교집합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기이다. 운동성을 상실한 모든 것은 결국 그 힘을 잃고 다시 계열화 속으로 수렴될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이러한 위험은 계시적인 교훈이나 전망으로 구체화되면서, 문학작품이 운동성을 상실한 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아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김중혁은 자신의 소설이 처할 수 있는 이 비극적 운명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여 표준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의 전략이 지속적 운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억압적 현실⇒구체적 전망의 필연성’으로 이어지는 고정적 틀 그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망이 다시 억압으로 작동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의 비트(beat)를 억압하기 위한 진압군과 이에 맞선 저항군이 전쟁 중인 현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각각 배경으로 삼은 ‘펭귄뉴스’와 ‘유리방패’처럼 비교적 억압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에서 이러한 의도는 더욱 잘 드러난다. 이는 억압의 체계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작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읽힌다. ‘전쟁 중인 현실→무감각한 나→저항군인 그녀→그녀와의 우연한 만남→그녀를 따라 저항군이 되는 나’로 이어지는 ‘펭귄뉴스’의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다소 의외로 ‘그녀’의 죽음을 확인한다. 전쟁 중인 현실조차 ‘지루하고 재미없’(263쪽)는 ‘나’에게 ‘그녀’는 ‘모든 살갗이 곤두서’(274쪽)게 하는 유일한 자극이었기 때문에 그 의외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제 곁에 있던 그녀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극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감상을 말해야 한다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야겠군요. 어쨌든 극히, 자연스럽게 그녀는 죽었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 ‘펭귄뉴스’, 357쪽. ‘비트’를 매개로 ‘나’와 ‘그녀’ 사이에서 이루어진 교집합적 상태는 필연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만, 이것 자체가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의 전환은 아니다. 교집합적 만남을 통해 변화된 주체는 다른 주체와 거리를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자유의 공간 즉, 운동성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 어디에도 ‘반납’할 수 없는 ‘정말 사적인 비트’(357쪽)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비트’는 ‘그녀’와 ‘나’만의 매개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 D’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쿵쾅’(358쪽)거릴 수 있는 운동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지속적인 운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파리의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공원은 설계단계에서부터 문학·철학·영화 등의 다양한 비건축적 개념을 적극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오히려 건축의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촉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공원은, 점·선·면의 세 체계를 따라 설계된 각각의 공간이 한 공간 안에서 중첩되고, 분열되고, 해체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설계의도에 따르면, 응집력 있는 구조들을 중첩시켰을 때 하나의 초응집적 거대구조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정될 수 없는 것, 즉 전체성에 반대하는 것이 생겨난다. 결국 이 공간은 반-맥락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실제 공원 내 기능들의 중첩은 고정된 시설물로서의 기능성과 편의성에서 벗어나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간을 탄생시킨다. 일상 언어학에서 말하는 관습적인 절차나 효과로서의 ‘맥락(context)’을 파괴하는 이 공간은 2000년대 우리 소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소설적 공간, 이른바 ‘무중력 공간’(이광호)과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소설들은 종래의 작품들에서 기피해 온 이질적인 소재나 인물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공간에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 자체가, 중력으로 작용하는 어떠한 억압적 기준 없이 자유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단절적인 대화나 전통적 서사 구성을 거부하는 듯한 문체, 현실과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환상적 비현실 또한 그 결과물이자 원동력임은 물론이다. 김중혁의 소설 역시 이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현실과 냉소적인 거리를 두거나 이질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현실들과 겹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는 변별성을 통해 보다 많은 욕망들을 해방시킨다. 따라서 비교적 전통 서사에 충실하게 진행되던 김중혁의 소설은 언제나 결말에 이르러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마음이 편안해’(‘자동피아노’, 35쪽)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이때의 ‘가벼움’이 바로 단순한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김중혁만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결과이다. 이 ‘거리두기’ 역시, 앞서 언급한 빌레트 공원에서 폴리(folie)라는 인상적인 개념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프랑스어로 광기, 무분별한 짓이나 말, 정열 등의 의미를 가진 폴리는 이 공원의 설계 단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점 체계 속의 폴리는 실제 빨간색 철골 구조물들로 형상화되었는데 공원 내에서 쉽게 눈에 뜨이기 때문에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이 폴리는 전체 공간을 나누고 분리시키는 동시에 면과 선 체계의 폴리들과는 상호충돌하고 왜곡되어, 애초 설계자의 의도대로 공원전체가 탈통합적인 공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기준점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모든 것들과의 반복과 중첩, 그리고 다시 그것과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M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M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M과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유리방패’, 180쪽. 위의 장면 속 ‘나’와 ‘M’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지내면서 취업을 위한 면접시험조차 같이 치른다. 심지어 한 명만 뽑는 회사의 면접시험도 ‘막무가내’로 같이 치르는 이 둘은 전형적인 김중혁 소설의 인물들이다. 이들이 면접시험을 위해 준비했던 일종의 퍼포먼스가 우연히 인터넷 신문에 예술적 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순식간에 이들은 면접관으로 불려다니는 유명인사가 된다. 서른 번의 입사시험을 치르는 동안 ‘한때 실패에 중독된 인간들’이었던 주인공들이 ‘실패중독자들을 위로해 주는 입장’(178쪽)이 된 것이다. ‘점수를 받는 사람’에서 ‘점수를 주는 사람’(176쪽)으로바뀌게 된 이 발랄한 치환은 현실의 체계를 뒤엎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적 서열구조의 확대·재생산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개취업의 기준에 함몰되어온 인물들이 그 틀을 자신들의 힘으로 벗어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본 경우보다 오히려 짧은 시간 내-‘스무 번째였는지 스물한 번째였는지의 면접관 일을 마치고 나올 때’(178쪽)-에 ‘피곤’을 느끼고 만다. 애초부터 이들의 ‘자리바꿈’은 사실 무분별하게 정보를 생산해 내는 매스미디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벤트’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변화가 억압이 작동하는 체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체계 안에 다시 포획되고 말았음을 느낀 순간, ‘나’는 ‘M’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교집합적 운동이 다시 체계 내에 갇히고 말 때, 김중혁의 ‘거리두기’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운동성을 확보한다. 교집합적 반복과 변주, 그리고 거리두기까지 포괄한 김중혁 소설의 운동성은 작가 특유의 소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공간과 교직(交織)된다. ‘마니아적인 열정과 감수성’(박진), ‘사물들을 해방시키는 수집광’(김형중), ‘등장인물들의 마니아적 취향과 취미를 개성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물-예술’(심진경) 등으로 평가되는 김중혁의 사물에 대한 애착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 속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공업적’ 성격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등장한 ‘정보’의 유통은 후대로 전달되는 경험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따라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던 시대에서, 진실과 관련 없이 사건만 난무하는 시대로의 변모를 지적한 벤야민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적 확산이 가능한 정보만이 중요시되고, 전생애에 걸쳐 축적된 개인의 경험들이 획득하는 의미와 그 깊이가 외면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때, 수많은 경험들이 구전적인 방식으로 축적되어 있는 이야기를 벤야민은 수공업적 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의 특성을 빗대서 말한 ‘옹기그릇에 남아있는 손흔적’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가치가 아닌 시스템의 오류로 취급될 뿐이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김중혁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동시에 새로운 경험들을 환기시키는 소재들을 사용한다. 마치 벤야민의 ‘이야기’처럼 그의 소재에는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 공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음에서 작가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먼저 살펴보자. “잠수함 설명하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제가 집에 있는 잠수함 모형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비틀스의 영화 ‘Yellow Submarine’에 등장했던 잠수함이에요. 청취자 여러분들이 이걸 직접 만져볼 수 있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텐데 아쉽네요. 전체적인 모습은 입이 툭 튀어나온, 심술 맞은 물고기 같아요. 심술난 것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한번 만져보세요. 잠수함 앞모습이 바로 그래요. 그리고 몸통은 비늘을 다 긁어낸 물고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미끈하죠. 창문은 왼쪽에 여덟 개, 오른쪽에도 여덟 개가 있어요. 이 창문을 통해서 바닷속 풍경을 보는 거죠. 그리고 꼬리 쪽에는 방향을 조종하는 지느러미 같은 게 달려 있어요. 지느러미 아래쪽에는 잠수함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프로펠러가 두 개 달려 있어요. 프로펠러는 바람개비를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위쪽에는 네 개의 잠망경이 올라와 있는데요, 잠망경은 잠수함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도 바깥을 볼 수 있도록 기역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굽힐 수 있게 만든 스트로 아세요? 그걸 잠망경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음, 그리고…….” (…중략…) “자, 이제 우리가 잠수함이 한번 돼 볼까요? 제가 자주 하는 놀이인데요. 욕조에 물을 받은 다음 스트로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에겐 그 스트로가 잠망경인 셈입니다.” -‘무용지물 박물관’, 33~34쪽. 대상과 직접적 연관없는 “물고기, 바람개비, 스트로” 등을 동원하여 잠수함을 설명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감각과 경험들 역시 대상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우리에게 ‘잠수함’을 경험적 실체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보편화시키는 정의(定義)는 ‘무용지물’이 되고, 나아가 감각 주체가 스스로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방법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과 달리 “통조림”처럼 압축되지 않고 수많은 감각과 경험들이 중첩되면서 위의 긴 인용문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비경제적이 된다. 김중혁이 선택한 소재들의 수공업적 성격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즉, 계열화된 체계 안에서 박제된 상태의 사물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는 사물이 바로 작가의 탐구 대상이다. 먼저,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지도가 그것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이 지도는 에스키모들이 ‘기억과 소리’로 만들고 촉각을 동원하여 ‘상상하는 지도’이다. 일반적인 ‘지도’의 제작과 활용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의 반복적인 경험 안에서 유용한 이 지도는 그 자체로 수공업적 소재라 할 수 있다. 이 지도로 인해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78쪽)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 사물에 축적된 수많은 경험들이 ‘나’와 중첩되어 나만의 경험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사물 역시 갇혀있던 가치판단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이와 같은 탐구는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심화되어 나타난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109쪽)는 생각이 든 ‘나’가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게 된 악기점에서 만든 이 ‘도서관’은 연주가 아니라 ‘그냥 악기 소리만’ 있는 곳이다. 악기는 애초에 인류가 감정표현과 전달의 도구인 신체를 보충하는 보조수단이었다. 여기에 악기를 사용해온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도구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악기가 분류되고 체계화되면서 점점 경험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전문연주자를 필요로 하기에 이른다. 체계 내로 편입되지 않은 개별적 경험들이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차단당한 것이다. 사실상 처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시되기 직전까지도 사물들은 오직 사용자들의 경험과 경험사이에서만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적 체제의 강제성을 보편타당성으로 받아들여 사물들을 분류하고 서열화해 왔던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적 질서로 재편된 박물관 안에서 사물들은 더 이상의 경험을 용납하지 않은 채 개별성을 상실하고, 인간마저 전시물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김중혁의 수공업적 사물에 대한 탐구는 이와 같은 운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박물관’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체계에서 소외된 모든 것들을 ‘악기도서관’으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긁거나 할퀴거나 두드리거나 뜯거나 쓰다듬거나 꼬집으면서’(127쪽) 억압되/하지 않는 개별적 경험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냐? 그보다 더 처음으로, 더 처음” -‘유리방패’, 178~179쪽(인용자 재구성). 시원의 욕망을 꿈꾼다는 것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전도되고 억압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기억을 통해 더듬어 가는 ‘처음’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하는 데리다는 기원을 아예 결정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부타데스의 딸이 기억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던 순간부터 실제 대상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차라리 현존(presence)과 부재 사이의 ‘놀이’ 그 자체가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자본주의는 모든 차이의 진폭과 오류마저 자신의 안으로 포획하는 강력한 보편타당성을 지향하는 체계이다.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이 자체 내의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적 처방만이 유효하게 거론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김중혁의 소설은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든 욕망들을 중첩시키면서 멈추지 않고 차이들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는 그 전략으로 모든 경험과 욕망들의 ‘흔적(trace)’이 새겨진 사물을 사용한다. ‘자신만의 생각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괴물에 가까’운 ‘타자기’(‘회색괴물’), 그 어떤 외부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연주되는 순간마다 ‘자신의 몸을 통째로’ 빌려주는 ‘투명’한 ‘피아노’(‘자동피아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이것이 다시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되는 작업을 하는 디제이들의 ‘비닐레코드’(‘비닐광시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차이들이 결국 무한대의 욕망들에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통해 우리들은 ‘처음’으로 이끌린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최근작인 ‘C1+y=:[8]:’에서 ‘보드빈터’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다. 정글의 특성을 도시에 연결시켜 보다 쾌적한 도심을 만들고자 하는 도시 연구가 ‘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심을 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 공간은 목숨을 걸고 정글을 탐사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이는 목적지로 충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도심 속 길들의 일부분이며, 수많은 익명의 스케이트 보더들이 ‘단 한 번도 신호등을 만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도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는 길의 연결일 뿐이다. 이 ‘길’이야말로 도시가 생성되기 이전 개인의 욕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던 ‘첫 길’이며, 그 ‘처음’은 억압 자체가 무화되고 인류전체의 경험과 개인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원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 길 위로 부지런하게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는 작가의 행보에 시선을 고정시킨 이유는 그의 소설행위가 하나의 답변이 아니라 ‘처음’을 향한 지속적인 질문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끝>
  • [뉴스다큐 시선] 유기동물 보호소

    [뉴스다큐 시선] 유기동물 보호소

    한 해 버려지는 반려동물은 서울시에서만 1만 5000여마리, 국내에서는 7만~8만마리에 이른다. 애완동물이 병들고,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게 버려지는 이유지만, 인간의 이기심이 이 동물들을 버렸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지난 26일 유기동물 보호소인 경기 양주시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를 찾아 동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때 온기 가득한 인간의 집에서 사랑을 독차지했을 동물들은 차가운 철창 우리 안에서 세밑을 지내고 있었다. “멍멍”, “야옹”. 혹시 새 주인이 아니냐고 묻는 듯했고, 인간의 무책임함을 비웃는 듯도 했다. # 1. 유기견 보호소에 개들이 한 마리씩 2층으로 된 우리에 들어가 있다. 사료를 먹는 개도 있고, 조용히 잠을 자는 개도 있다. 짱구: 방금 과장님하고 들어와서 사진만 찍고 나간 인간들 뭐야? 나 찾으러 온 주인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선물도 없이 이렇게 크리스마스 연휴가 지나가는 건가. 방울이: 여기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구먼. 오래 있어 보니까 자기 동물 찾으러 온 주인인지, 입양할 동물 살펴보러 왔는지 한번 보면 알겠더라고. 안타깝지만 주인이 찾아오리라고 기대는 하지마. 난 내 주인 잊은 지 오래다. 둥가: 그래도 얼마나 나를 예뻐해 준 주인인데 곧 오겠죠. 방울이: 내가 슬픈 얘기 하나 해 줄게. 시추 한 마리가 여기 보호소로 온 적이 있는데, 40대 부부가 한 달 뒤쯤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고 찾으러 온 거야. 시추는 직원 품에 안겨 있다가 주인을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지. 그런데 부인이라는 여자가 시추를 안아 보더니 대뜸 자기 개가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 직원 아저씨가 “동물이 거짓말 할 리 있느냐. 개들이 보통 주인을 보면 바로 안기지 않느냐.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당신이 주인인 것 같다.”고 했지. 아마 한 달 가까이 여기서 살다 보니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냄새도 많이 났겠지. 그 여자가 강아지 냄새를 맡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움겨쥐었다는 거야. 결국 주인을 쳐다보는 개를 뒤로하고 부부는 돌아갔대. 둥가: 세상에, 이거 왠지 씁쓸하군요. 방울이: 여기 온 애완견 주인들은 자기 개가 너무 많이 더러워져서 놀라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 그런데 설마 자기 개를 몰라보겠어? 직원이 화가 나서 그 사람들에게 “다시는 개 키우지 말라.”고 퍼붓고, 그 사람들 가고 나서 입구에 소금을 뿌렸다지. 하하하. 짱구: 그래도 자기 개 세 번이나 잃어버리고 다시 찾아간 아줌마도 있어요. 저번에 저 같은 발바리 한 마리가 있었는데, 여기에 세 번째 왔다고 하더라고요. 주인아줌마가 단독주택에서 자기를 키웠는데, 목줄도 안 매고 키웠대요. 정원에서 놀다가 문이 열려 있으면 그냥 나갔는데 그러다가 길을 잃은 거죠. 세 번째로 왔을 때는 직원들도 자기를 알아보더래요. 직원이 “이 아줌마, 그렇게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또 잃어버렸구먼.”이라고 하면서 아예 집에 전화해서 찾아가라고 했답니다. 그 아줌마는 또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깜짝 놀라서 한걸음에 달려와서 발바리를 찾아갔다는데, 직원도 “여기서 일한 지 7년 동안 세 번이나 개를 잃고 찾아간 경우는 그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했다죠. 그래도 자기 개를 사랑하고 다시 찾으려고 하셨던 분인데, 헌신짝 버리듯 애완동물을 버리는 요즘 세태에 비춰보면 그래도 기분 좋은 얘기 아닙니까. 방울이: 짱구는 많이 아프다더니 괜찮나? 짱구: 그럼요, 일단 몸이 아프면 치료부터 받아야죠. 옆 동에 있는 동물병원에 아픈 친구들이 많아요. 포획 덫에 걸려서 다리를 심하게 다친 길고양이 하나를 봤어요. 염증치료를 받고도 세균이 감염돼서 계속 치료를 받더니 잘 적응하더라고요. 길고양이라 말도 붙이기 어려웠는데, 치료를 받으면서 온순해지고 나중에 말도 몇 마디 나눴어요. # 2. 짱구 따분한 듯 하품을 한다. 짱구: 새해에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텐데. 방울이: 입양이 되면 새 삶을 찾는 거지. 삼성생명 탐지견센터라고 있는데 정기적으로 와서 똘똘한 녀석들을 입양해 가곤 해. 입양된 개들은 청각 장애인 도우미견으로 훈련받아서 새 주인집으로 가는 거지. 주인이랑 살다가 전화가 오거나 초인종 울릴 때 주인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거야. 전문적인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똑똑한 개들을 데려가지. 짱구야, 내가 볼 때는 자네는 아무래도 자격 미달인 것 같아. 짱구: 잡종이라고 놀립니까. 방울이: 미안해, 농담이니까 화 내지마. 그런데 입양 절차도 사실 까다로워. 먼저 홈페이지에 입양신청서를 작성하고 전화 상담과 방문 상담을 거쳐야 해. 동물을 키운 경험이 있는지, 유기동물을 잘 보살피고 키울 수 있는지 등을 확인한 뒤 입양을 허락하는 거지. 큰 개들 입양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단독주택처럼 넓은 공간이 있어야 해. 또 한 번에 한 마리씩만 입양할 수 있어. 전에 입양했던 사람이 다시 새 동물을 찾아오는 일도 있는데, 이럴 때는 전에 입양한 동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을 받아야 해. 그리고 중성화 수술도 해야 해. 개장수 같은 사람이 와서 입양하면 큰일 아니겠어. 그래도 이렇게 꼼꼼히 따져서 입양해도 못 키우겠다고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아. 입양이 무료이기는 하지만 우리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둥가: 그러게요. 오늘도 입양하고 싶어서 온 아줌마를 봤는데 좀 알아보다가 가족들과 상의한 뒤에 다시 오겠다고 하고 돌아가더라고요. 얼마 전 키웠던 시추가 죽고 빈자리가 너무 컸다는데…. 버려진 개를 보니까 관심이 간다고 하는 걸 보니 다시 올 것 같아요. 아참, 여기 새로 들어올 때 보니까 고양이도 많던데요. 방울이: 요즘은 유기 고양이도 많지. 예전에는 개, 고양이 비율이 8대2였는데 요즘은 7대 3 정도라고 하더라. 가끔 햄스터나 이구아나도 있다는데 난 본적은 없어. 서양속담에 ‘개는 자기가 사람인 줄 알고, 고양이는 사람이 고양인 줄 안다.’고 하는데 그 도도한 성격으로 보호소 생활을 잘 견딜지는 모르겠네. 둥가: 주인도 안 찾아가고 입양도 안 되면 어떻게 되죠. 방울이: 20%는 주인이 찾아가고 10%는 입양되는데, 나머지는 안락사돼. 나도 직원들 하는 얘기를 엿들은 건데, 일주일에 두 차례씩 수의사가 마취 후에 약물을 주사하는 방식이야. 주사를 맞으면 3초 정도 고개를 떨어뜨리다 죽지. 냉동창고에 보관했다가 소각업체에 넘겨. 안락사할 때 직원들도 수의사를 돕거든. 처음 일하는 직원들은 안락사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아. 그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면 여기에서 계속 일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더군. # 3. 이때 60대 남성이 직원과 함께 보호소로 들어와 잃어버렸던 시베리안 허스키를 찾고는 기뻐한다. 박모씨: (애완견을 품에 안고 직원에게 밝은 표정으로) 옆집 개가 발정이 났는지 이놈도 마당에서 가만히 있지 않더라고요. 평소에 내보내면 잘 들어오기에 대문을 열어놨더니 이놈이 없어져 버렸어요. 경찰에 신고했더니 여기에 보냈다고 해서 오늘 바로 찾으러 왔죠. (두 사람은 밖으로 나간다.) 둥가: 와, 부럽다. 우리도 저렇게 나갈 수 있는 거죠. 방울이: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이지. 하지만 키울 때는 애지중지하다가도 자기 동네에 유기동물 보호소 들어오는 것은 결사반대하는 게 바로 인간이야. 이곳 보호소가 서울에서 떨어진 경기도 양주에 있는 이유도 바로 사람들 민원 때문이래. 내년에는 유기동물 수가 조금이라도 줄어들었다는 뉴스만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네. 글 사진 안석기자 김민석 김태웅 수습기자 ccto@seoul.co.kr
  • 착한 소비, 그 울림

    착한 소비, 그 울림

    커피전문점에서 7000원짜리 커피를 마신다고 치자.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만 그 한 잔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커피전문점의 바리스타부터 커피를 볶고 가공하는 커피공장 노동자,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에서 커피를 운반해 온 물류 노동자 등 수많은 사람들의 땀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그럼 이 한 잔 커피를 만들기 위한 가장 첫 단계, 즉 커피의 원재료인 커피콩을 재배하는 에티오피아 커피농장 농민은 과연 하루에 얼마를 벌까. 커피 소비자와 커피 생산자 사이의 역설적인 간극은 이미 유명해진 이야기다. 우리가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마시지만, 정작 강렬한 햇빛 아래서 종일 일하며 커피를 재배하는 농장 노동자가 받는 돈은 고작 1~2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무역의 메커니즘 문제를 떠나 인간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러한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무역을 극복하고 합리적인 거래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은 생산과 소비 양측 모두의 인간다움을 위한 무역방식이다. 생산자는 생산한 만큼 대가를 받고, 소비자는 쓰는 만큼 대가를 지불한다. 이 공식은 지극히 당연하게 들리지만 사실 실제 무역에는 이 당연한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덤핑 수출이나 대기업·다국적 기업의 불균형 거래 등 무역에는 공정하지 못한 거래가 판을 치고, 그 결과 우리가 구매하는 제3세계 제품은 그 생산비의 최저비용조차 생산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커피의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박창순·육정희 지음, 시대의창 펴냄)를 펴낸 박창순·육정희 부부는 내가 마시고 낸 커피값의 얼마가 생산자에게 돌아가느냐를 따지는 것만이 공정무역은 아니라고 말한다. 공정무역은 경제적 사고가 지배하는 무역에 환경·생태론적 사고와 인간애를 담은 무역이다. 단순히 돈 몇 푼이 더 가고 덜 가고의 문제를 넘어 인간적 유대감이 바탕에 깔려 있는 거래라는 얘기다. 이 부부의 신간은 각종 문제를 품고 있는 불공정 거래를 극복하고 공정무역을 꾸려나가는 세계 곳곳의 공공무역 거래자들의 이야기다. 공정무역을 소재로 한 TV다큐멘터리 ‘아름다운 거래’를 제작하며, 또 그 이후 공정무역가게 ‘울림’을 운영하며 직접 발로 뛰며 보았던 일본, 인도, 네팔, 필리핀, 영국, 네덜란드 등 13개 국가의 공정거래 현실을 전한다. 이들은 공정거래가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깊이 뿌리내렸다고 한다. 해마다 5월9일은 ‘세계 공정무역의 날’로 지정돼 있고 스위스, 일본 등 공정무역이 활성화된 국가에서는 공정무역 축제와 같은 다양한 행사도 열리고 있다. 소비자들도 절반 이상이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윤리적 생산을 위한 윤리적 소비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유럽 일부 국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는 아직 불공정 무역의 질곡에서, 생산자는 생산자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이 본 비공정무역의 현실은 비참하다. 모순에 찬 거래 과정은 생산자들의 비윤리적 생산까지 종용하고 있다. 축구공을 만들다가 눈이 먼 아이들이나, 농장에서의 아동 학대 이야기는 지금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복잡화된 무역은 장거리 거래를 유발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탄소 연료의 과다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을 동반한다. 불공정거래가 환경까지 파괴한다는 얘기다. 공정무역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지은이들은 특히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의 말을 잊지 않는다. 공정무역이 국가 간 윤리적 유대를 근거한다는 점에서 볼 때, 한국은 국력에 비해 국제무역 무대에서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소비자 중 공정무역에 대해 안다고 답하는 사람이 15%가 안 되는 게 현실. 그나마도 공정무역은 동정심에 근거한 거래라든지, 공정무역 제품은 비싸다는 등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 부부는 최근 일어났던 ‘착한 초콜릿’(카카오 생산자의 노동가치를 보호하고 소비자의 정당한 지불가치를 보장하는 공정무역 제품의 하나) 캠페인 등에서 희망을 봤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열풍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지속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대형마트 등 유통권력과 사업자, 정부 지배층이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1만 60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송구영신-해넘이·해돋이 숨은 명소 8選

    송구영신-해넘이·해돋이 숨은 명소 8選

    시나브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야 할 때지요. 기축년(己丑年)의 붉은 해가 펼치는 마지막 빛의 축제에 아쉬움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빈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울 때, 가슴 벅찬 환희와 감동도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옛것을 털고 새것을 맞는 송구영신 의식을 치르기 적합한 장소를 모았습니다. 해마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일출·일몰 명소들은 배제하고, 접근하기 쉽고 덜 알려진 곳들로 골랐습니다. 다만, 최근 화재로 사라진 전남 여수의 향일암은 예외입니다. 오르기는 다소 힘들어도 해넘이와 해돋이를 함께 볼 수 있는 ‘랜드마크’와도 같은 곳이었지요. 향일암을 잃은 비통함에 해질녘 여수 앞바다는 얼마나 붉디붉은 빛깔을 토해 낼까요. ●넉넉한 가슴으로 지는 해를 보내다 망해사 하늘과 땅이 맞닿은 풍경을 볼 수 있는 내나라 안 유일한 곳이 김제·만경평야다. 그 지평선의 끝자락, 그리고 막 수평선이 시작되는 곳에 망해사(望海寺)가 있다. 극락전과 낙서전, 범종각 등이 전부일 정도로 작은 절집. 하지만 뜨락만큼은 세상 어느 거찰보다 넓다. 서해-새만금간척사업이 바다를 갈라 놓았기 때문에 보다 정확히는 육지 속 바다-를 앞마당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절집 앞 범종각에 걸린 해넘이 풍경이 일품이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온 절집의 연륜만큼이나 깊고 웅장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너른 바다와 단절된 탓일까, 광대하기는 하나 한켠에선 쓸쓸함도 묻어 난다. 대해의 위세를 잃어버린 바다 아래로 몰락하는 해가 여느 곳보다 붉다. 백합조개 산지로 유명한 인근 심포항도 둘러볼 만하다. 전북 김제에 있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서김제 나들목→우회전→29번 국도 만경 방향→만경고 삼거리→좌회전→702번 지방도 심포항 방향→망해사(063-543-3187). 궁평항 경기도 화성8경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궁평 낙조’다. 길이 2㎞, 폭 50m에 달하는 백사장과 수령 100년이 넘는 해송 500여그루가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펼쳐낸다. 궁평항의 자랑은 길이 193m짜리 ‘피싱피어’(Fishing Pier)다. 뭍에서 바다까지 긴 나무다리를 설치하고 끝부분에 넓은 휴식공간인 ‘파고라’를 만들어 휴식과 산책, 낚시 등을 할 수 있도록 꾸몄다. 이 나무다리에서 바라보는 해넘이 풍경이 그만이다. 인근 화옹방조제는 반드시 들를 것. 서신반도와 우정반도를 잇는 4차선 도로로, 일직선으로 달리는 드라이브의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송산면 고정리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공룡알 화석지도 있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비봉 나들목→306번 도로→20㎞ 직진→309번 도로→궁평항. 화성시청 (031)369-2114. 천수만 해거름. 노을이 만든 붉은 하늘과 한낮의 기운이 여전한 파란 하늘이 팽팽히 대립하는 시간. 그 경이로운 하늘 위로 먹물 번지듯 검은 물체들이 퍼져 간다. 가창오리 수십만마리가 펼치는 군무(群舞)다. 충남 서산의 천수만에서는 이처럼 ‘겨울 진객’ 철새와 해넘이가 어우러지는 풍경과 만날 수 있다. 특히 일몰 전후로 벌어지는 가창오리의 ‘에어 쇼’는 감동적이다. 가을걷이 끝난 너른 간척지 들녘을 자분자분 걷는 맛도 각별하다. 인근 안면도 일대에는 꽃지해수욕장 등 일몰 명소가 가득하다. 서해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부석사와 옛 정취 물씬 풍기는 해미읍성도 둘러볼 만하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홍성나들목→28번 국도→서산·해미 방향 좌회전→40번 국도→안면도 방향 좌회전→천수만. 서산시청 (041)660-2498. ●가슴 열어 오는 해를 맞다 함백산 일출산행을 말할 때 가장 앞줄에 세울 만한 산이 강원도 태백과 정선 등에 걸쳐 있는 함백산(1573m)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 높은 산.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 됐다. 겨울이면 설경과 일출이 어우러져 선계가 따로 없을 비경을 펼쳐 낸다. 눈이 많이 오면 길이 통제될 수 있으므로 사전에 확인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겠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 나들목→38번국도→석항→31번국도→화방재(어평재)→414번 지방도→함백산. 고한읍사무소 (033)560-2615. 오도산 경남 합천의 오도산(1134m)은 작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너른 풍광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멀리 지리산 등 명산들 사이에서 펼쳐지는 해돋이는 오래전부터 근동의 사진작가들 입에 오르내릴 만큼 유명하다. 수십개의 봉우리가 넘실대는 ‘산들의 바다’를 눈으로 따라잡기 벅찰 지경. 정상까지 도로가 나 있다. 다소 폭이 좁은 것이 흠. →가는 길 88고속도로→해인사 나들목→1084번 지방도(야로·합천 방향)→26번 국도→묘산면 소재지→묘산초등학교→오도산 중계소→오도산. 묘산면사무소 (055)930-4031. 백운산 강원도 정선의 백운산(1376m)은 특유의 고원지형과 백두대간 전경을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국내 최장(2832m)의 곤돌라를 타고 은색의 태백준령을 발 아래 두는 맛이 각별하다. 백운산에서는 아기자기한 눈꽃보다 산들의 파노라마에 주목해야 한다. 내로라하는 백두대간의 마루금들이 주름 접힌 채 다가서는 장면은 쉽게 접할 수 있는 풍광이 아니다. 설경이 아름다운 산 중턱의 도롱이연못을 반드시 찾을 것.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나들목→영월→사북→하이원리조트. 관광곤돌라 어른 1만 2000원, 어린이 1만원.1588-7789. ●뜨고 지는 해를 한자리에서 만난다 향일암 지난 20일 화재로 소실된 비운의 절집. 아침 해를 향한 암자라는 이름만큼 다도해 너머 펼쳐지는 해돋이 풍경이 장관이다. 향일암으로 향하는 산길은 제법 가파른 편. 중간쯤에 암벽을 타고 오르기도 하고, 암자 근처에선 집채만 한 바위 사이로 난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암자 오른쪽 기암괴석 너머로 사라지는 해넘이 풍경도 처연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일출제 행사는 규모를 축소해 예정대로 새해 1일 오전 6시 열린다. 여수시청 관광진흥과 (061)690-2037. →가는 길 남해안고속도로→광양 또는 순천 나들목→여수→돌산대교→17번 도→16㎞→죽포→7번 국도→9㎞→임포→향일암(061-644-4742). 홍포 경남 거제 앞바다는 넓고 웅장하다. 특히 남쪽 홍포의 빨려들 듯 망망한 바다는 거제 바다의 본성이라 할 만하다. 여차~홍포간 해안도로는 거의 전 구간이 일출·일몰 전망대나 다름없다. 대·소병대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주르륵 펼쳐져 있고, 멀리로는 일본땅 대마도가 아련하다. 해가 대·소병대도 사이에서 떠 통영 쪽으로 질 때면 홍포(紅浦)란 이름에 걸맞은 풍경이 펼쳐진다. 거제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며 한려수도에 대비해 혁파(赫波)수도, 혹은 적파(赤波)수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상동동 계룡산(566m) 자락의 포로수용소 유적지도 유명한 해넘이 전망 포인트다.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통영→거제도. 거제관광안내소(055)639-3399. 글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포토맵’으로 일본 맛집 찾는 책 출간

    ‘포토맵’으로 일본 맛집 찾는 책 출간

    해외여행 갔을 때 가장 난감한 것 중의 하나는 여행 가이브 북에 있는 ‘지도보기’다. 지도는 아무리 잘 그려놓아도 헷갈리기 십상. 그런데 지도가 아니라 사진을 보면서 찾아가면 어떨까. 가는 길, 방향, 위치가 모두 사진으로 게재되어 있다면 아마도 맛집이나 관광지를 찾아가기는 훨씬 쉬울 것이다. 최근 발간된 ‘500엔의 도쿄 맛집과 술한잔 Let’s go’(인니뽄북스)는 바로 ‘포토맵’이라는 새로운 새로운 형식의 길찾기로 맛집을 알려주는 가이드 북이다. 현지의 취재단이 일일이 출구, 방향, 인근의 큰 건물 등을 사진으로 찍어놓아 누구든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전철에서 300보 이내에 있는 500엔의 맛집’이라는 콘셉트가 눈길을 끈다. 일반적으로 많은 가이드북들이 ‘맛’을 위주로 소개를 하다보니 거리나 위치는 그리 상관하지 않았던 것.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일본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체인점을 비롯해, 기존에 다녀간 여행객들도 알지 못했던 기이한 맛집들도 소개하고 있는데, 기상천외한 요리들이 독자를 궁금하게 만든다. 자라고기, 말고기 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 책을 발간한 인니뽄북스는 현재 일본 포탈 사이트 인니뽄 매거진( www.innippon.net)을 운영 중에 있다. 나우뉴스팀
  • [씀씀이 탐구생활] 2030세대 용돈 어떻게 썼나

    [씀씀이 탐구생활] 2030세대 용돈 어떻게 썼나

    올해가 열흘도 남지 않았다. “아니 벌써!” 달력을 보고 놀란 당신이 한숨을 쉬는 이유는 바로 올해도 그리 많은 돈을 모으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 연말 바쁜 업무로 통장 잔고 한 번 챙길 겨를이 없던 당신도 각종 연말 모임에서 오가는 경제, 재테크 노하우, 씀씀이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올해 그대 용돈은 어디로 흘러갔는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분위기 따라 카드를 썼다면 십중팔구는 후회할 걸! 2030세대의 ‘씀씀이 탐구생활’을 통해 해답을 찾아보자. ●술 한번 더 먹을까 무선 인터넷 연결할까 9급 공무원 윤모(26)씨는 회식 때면 습관적으로 시계를 봐요. 시내버스 막차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죠. 막차시간이 다가오는데 눈치 없이 소주 한 병 더 시키는 과장은 정말 질색이에요. 짜증 나는 상사는 또 있어요. 노래방에서 추가시간 30분 더 넣는 부장 때문에 윤씨는 씁쓸한 마음으로 손에 들었던 외투를 내려놔요. 노래방 ‘진상’은 가까운 곳에 있어요. 마지막 30초 남겨 놓고 최후의 한 곡을 위해 취소와 시작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회사 동기가 바로 그 ‘진상’이죠. 그 친구가 마지막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사이 막차는 떠나갔어요. 윤씨가 시내버스를 타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에요. 바로 택시 타기에는 돈이 아깝기 때문이에요. 상사부터 한 분 한 분 택시에 태워 보내다 보면 자기 차례까지는 30분도 더 걸려요. 집이 멀어서 한 달 택시비로 50만원을 쓴 적도 있어요. 그렇다고 택시비 챙겨 주는 상사도 없어요. 이 돈이면 회사 가까운 동네에서 월세를 살아도 돼요. 막차 버스에서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도 내년을 생각하며 꾹꾹 참아요. 내년 4월 결혼도 해야 하는데 택시비로 흥청망청 쓸 수는 없잖아요. 이 마음 여자친구는 아는지 모르겠어요. 회사원 안모(32)씨는 아예 집에 인터넷과 케이블을 연결하지 않았어요. 안씨가 원했던 것은 아니에요. 자취방에 전에 살던 남자가 나가면서 인터넷, 케이블을 모두 끊고 나갔어요. 그 남자가 쓰다가 팔고 간 텔레비전도 일주일 뒤에 고장이 났어요. “이런 젠장, 밤마다 즐겨 보던 영화채널도 볼 수 없는데 무슨 낙으로 사나.” 한 달 전에 본 영화 또 보면서, 이미 본 영화 다시 보다가 중간에 채널 돌리기 일쑤이면서도 남자들은 이런 생각을 해요. 인터넷, 케이블 다 연결해야지 하다가 시간이 안 나서 설치를 아직 못 했다고는 말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귀찮아서예요. 퇴근도 늦고 주말에는 약속도 많아요. TV도 다시 사려면 그것도 일이에요. 안씨가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노트북에 무선인터넷 신호가 잡혔기 때문이에요. 영화나 드라마도 인터넷으로 다 해결이 됐어요. 그런 안씨의 한 달 용돈은 60만원 정도예요. 술 한번 안 마시고 그 돈으로 케이블TV 연결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만 안씨는 그저 자신이 돈을 아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요가·대학원… 월급절반 인생 재설계에 단순히 씀씀이를 줄인다고 돈이 모이는 건 아니에요. 지혜롭게 돈을 쓴다면 수십만원도 아깝지 않아요. 여기 월급의 절반을 인생 재설계에 쓰는 이가 있어요. 지난해 잡지사에 취직한 이모(24·여)씨는 지난달 1년 만에 정규직이 됐어요. 기쁜 마음도 잠시.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력 키우기가 절실해요. 지난달부터는 체력을 키우기 위해 요가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어요. 요가를 스트레칭으로 알고 있는 남자들은 이씨를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또 이씨는 대학원도 알아보고 있어요. 매달 한 권 이상의 책을 들고 한 곳 이상의 여행을 가기로 결심도 했어요. 이씨는 이렇게 딱 3년만 하기로 했대요. 아직 나이도 어린데 저축은 조금 뒤로 미뤄도 된대요. 역시 젊음이 최고예요. ●백수때나 결혼해서도 용돈은 그대로예요 남자들은 결혼하면 더 궁핍해진대요. 공연 분야에서 근무하는 장모(31)씨가 바로 그래요. 시원하게 돈 잘 쓰던 장씨가 바뀐 이유는 바로 아내와 아기 때문이에요. 장씨는 하루하루 부인에게 용돈을 1만원씩 받아요. 분유값, 기저귀값 마련하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아내가 그랬어요. 아기 옷, 장난감, 기저귀 사는 데 한 달에 50만원은 족히 나가요. 대학에 결혼까지 보내려면 앞날이 캄캄하지만, 장씨는 그래도 좋대요. 아직은 말도 못하는 아기의 트림이 귀엽기만 해요. 버스를 타다가도 아기 생각에 웃음이 나요. 초보 아빠는 어쩔 수 없나 봐요. 결혼 2년차 김모(29)씨도 장씨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의 용돈은 30만원이에요. 대학 때도 30만원, 백수 때도 30만원인데 달라진 게 없대요. 모든 돈 관리는 아내가 해요. 김씨는 돈을 모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해요. 결혼해야 돈이 모인다는 말도 자기 하기 나름이래요. 김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갑에 카드 한 장도 없다며 “결혼 2, 3년차가 되어 신혼 생활이 끝나면 남편들은 밖에서 노는 경우가 많아 씀씀이가 커진다.”고 경고해요. 지갑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믿을 수밖에 없어요. ●별·콩다방 지출에 헉헉… 새해엔 커피도 끊어? 고속열차(KTX) 승무원 박모(26·여)씨는 입사 초만 해도 소문난 ‘짠순이’였어요. 지방 출신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박씨도 서울에 처음 올라와 비싼 월세에 놀랐어요. “월세로 이렇게 나가면 돈은 언제 모으나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꼭 이런 말을 해요. 박씨의 한 달 용돈도 처음에는 20만원을 넘지 못했어요. 밥값 줄이자고 요리도 직접 하고 인터넷 쇼핑몰은 쳐다볼 생각도 안 했대요. 하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박씨도 달라졌어요. 2년차에 접어들며 일이 바빠지고 냉장고에 마른반찬은 손을 안 대서 말라 갔대요. 박씨는 처음에는 쳐다도 안 보던 인터넷 쇼핑몰을 이제는 중간 유통 단계를 줄인 ‘소비자의 친구’라고 말해요. ‘지름신’이 부활하신 거예요. 무엇보다 박씨의 지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은 커피예요. 이른바 ‘별다방(스타벅스)’, ‘콩다방(커피빈)’에 쓰는 돈이 한 달에 10만~20만원이래요. 그래서 내년부터는 커피를 줄일까 생각 중이에요. 주변에서는 그런다고 돈이 모이는 건 아니라는데 그래도 시작은 해봐야겠대요. ●실연 아픔 잊으려 늦바람 당구… 나좀 말려줘요 직장인 김모(27)씨는 한때 친구 중에서는 저축을 가장 많이 하는 편에 속했어요. 그런 그가 변한 것은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부터예요. 여자친구의 간섭에서 해방된 김씨가 여친의 손 대신 잡은 것은 바로 당구 큐대였어요. 남자들은 당구에 미치면 칠판과 천장이 당구대로 보여요. 친구들도 김씨의 철없는 ‘늦바람 당구’를 막을 수는 없었어요. 여자친구를 잊겠다고 치는 당구를 아무도 막지는 못했어요. 김씨는 스포츠토토에도 돈을 썼어요. 3만~4만원씩 쓰던 김씨는 이번 달에만 20만원을 썼어요. 몇 번 당첨이 되면서 용돈 벌이도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후회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어요.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당연히 귀에 꽂혔을 잔소리가 오히려 그리워졌어요. 김씨의 새해 다짐은 일단 당구와 복권을 끊는 것이에요. 바꿔 말하면 연애를 다시 하기로 마음잡았다는 얘기죠. 연애를 하면 씀씀이도 커져요. 비싼 선물 주고받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비싼 스파게티, 파스타를 먹어야 해요. 기념일은 꼬박꼬박 챙겨요. 얼마 전 애인이 생긴 이모(28·여)씨도 데이트 비용이 고민이에요. 이씨가 용돈도 아끼고 남자친구와 사랑도 돈독히 할 방법으로 생각한 것은 바로 데이트 통장 만들기예요. 두 사람이 만든 체크카드는 50만원이 넘으면 카드가 정지돼요. 이씨는 자신이 낸 아이디어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요. 한때는 비싼 레스토랑,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만나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내야 한다고 말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 적령기에 환상만으로 데이트를 즐기기는 어렵다.”고 이씨는 말해요. 결혼 적령기가 되면서 변한 사람이 또 있어요. 간호사 한모(27)씨는 얼마 전 10년 사귄 남자친구가 직장을 잡자 결혼 얘기를 하기 시작했대요. ‘나나 너나 돈 없는 거 서로 아는데 무슨 배짱으로 결혼 얘기를 하냐.’ 남자친구 몰래 이런 생각도 했지만, 여하튼 결혼은 현실이에요. 한씨는 어제 지갑 속 수많은 카드를 가위로 잘라 버렸어요. 웬만한 보고서보다 긴 카드 명세서도 이제는 안녕이에요. 인터넷에서 펀드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인덱스, 브릭스, 채권형…. 무슨 말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새해에는 왠지 돈이 모일 것 같답니다. 안석 이민영 최재헌기자 ccto@seoul.co.kr
  • 아이덴티티…나는 누구인가

    아이덴티티…나는 누구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반드시 여러 성격의 공동체에 중복해 속해 있다. 예컨대 ‘우리 중의 누군가’는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남성으로, 아마도 단군의 자손으로 스스로 여기고 있을 것이며, 경상도에 살고 있거나 그곳 출신이고, 개신교 신자이며, 김씨 성(姓)을 갖고 산다. 정치적으로는 ○○당의 지지자이며, 연일 미디어법 반대 시위를 벌이는 시민사회단체와 생태계 파괴 정책에 저항하는 환경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5인으로 꾸려진 기획마케팅팀의 비교적 성실한 팀장이며, 주말이 되면 한마음산악회 회원으로 근처의 산을 찾는 등산애호가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는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이렇듯 복잡다단한 집단에 속한 그의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주 과거부터, 지금까지 늘 강조하며 배워 왔던 공동체 의식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다. 특정한 공동체 성원으로 정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서로를 배려하고 연대감이 풍부해지며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넘어설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개인의 만족감과 공동체의 소속감도 더욱 커질 수 있다. 다만 이는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때다. 인도 벵골 출신으로 1998년 동양인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76)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정체성과 폭력’(이상환·김지현 옮김, 바이북스 펴냄)을 통해 “정체성 의식이 타인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만큼 많은 사람을 단호히 배제할 수도 있다는 추가적인 인식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정 집단의 정체성에 기초한 인식은 다른 집단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경향을 낳을 수 있고 이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폭력을 유발한다는 얘기다. 그는 끊임없이 정체성과 폭력의 상관 관계에 대한 질문과 탐구를 멈추지 않는다. 코소보, 보스니아, 르완다, 부룬디, 팔레스타인, 수단 등 20세기 폭력과 전쟁의 야만이 휩쓴 세계 분쟁 지역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시대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정치경제학적 혜안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센 교수는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량 학살이 벌어진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에 사는 ‘키갈리 시민이며 르완다인이고 노동자인 한 후투족’의 예를 들며, 그 사람은 자신의 수많은 정체성 중 후투족으로만 바라보도록 압력을 받고 ‘키갈리 시민이며 르완다인이고 노동자인 투치족’을 살해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특정 정체성에 근거한 분파주의적 증오는 이렇게 야만적으로 조작돼 발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던지는 비판은 이른바 ‘문명 충돌론’을 겨눈다. 문명 충돌론은 1990년대 중반 발표된 뒤 9·11 테러 등을 거치며 현대 문명 담론의 기준점이 되어버린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이론이다. 문명 충돌론은 세계를 서구권, 이슬람권, 힌두권, 중화권 등으로 단순화시켜 문명 간 갈등과 충돌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이후 이 문명 충돌론은 많은 비판 이론에 직면하면서도 여전히 세계 지성계에서 정설처럼 간주되고 있다. 센 교수는 전제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세계의 사람들을 분류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방식을 배제한 채 ‘문명의 구성원’이라는 단일 집단의 정체성으로만 파악하려는 것은 사람들을 하나의 차원으로 환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예컨대 헌팅턴은 인도를 힌두문명권으로 분류했지만 인도의 무슬림 인구는 1억 4500만명으로 헌팅턴이 이슬람권으로 분류한 거의 모든 나라보다 훨씬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는 곳이다. ‘범주의 단순화’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이론이기에 이에 대한 옹호론이나 비판론 모두 잘못됐음을 지적한다.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에 천착해온 센 교수는 ‘정체성과 폭력’을 통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학문이라면 경제학과 철학, 정치학, 외교학, 사회복지학 등이 모두 서로 별개가 아님을 일깨워 주고 있다. 1만 8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탐사보도-2009 마약리포트] 서울 - 최대 시장, 부산 - 진원지, 인천 - 블랙홀

    국내에서 마약 3대 도시로 꼽히는 곳이 서울, 인천, 부산이다. 이들 도시의 마약 투약실태는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 수위다. 수사당국과 학계 등 전문가들은 “이미 마약이 대중화·상용화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진단했다. ●서울, 436개 동마다 판매책 최소 1명 서울은 최고의 마약 소비도시다. 마약 판매상들은 “서울 436개동에 최소 1명의 판매책들이 활동하며, 전 연령층에 각종 마약류를 공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판매책은 “유흥·오락업소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많이 유포된다. 장안동에 특히 많다.”며 “동네마다 포진한 판매책들은 ‘부산에서 누가 몇 그램 구해 왔다, 중국에서 택배로 물건 받았다.’는 등의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암약한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중년층은 서울 생활권인 하남시 미사리 등 라이브카페에서, 청소년들은 DVD방에서 엑스터시를 흡입하다가 단속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부산, 필로폰 주종… 보따리상 싼값 공급 부산은 ‘마약 진원지’라는 오명에 걸맞게 필로폰이 퍼져 있다. 연산동, 광복동, 남포동 등 전역에 확산돼 있다. 유흥업소에서만 투약하던 건 옛말이다. 가정집, 길거리 등 어디서든 하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 한 지역 판매책은 “10년 전만 해도 오락실에서도 손님들에게 권할 정도였다. 그만큼 투약 경험자들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수많은 보따리상들이 공항만을 통해 지속적으로 밀반입하고 있어 가격도 싸고 구하기도 쉽다.”고 말했다. 다른 판매책은 “업소 웨이터나 아가씨들에게 문의하면 판매책과 어렵지 않게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한 판매책은 “부산 210개동에서 동마다 최소 1명씩이 암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 마약류 거래 부산보다 많아 부산과 쌍벽을 이루는 곳이 인천이다. 부산은 ‘필로폰’이 주종을 이루는 반면 인천은 필로폰뿐 아니라 러미라·S정 같은 마약 대체 약물과 대마도 만연해 있다. 한 지역 판매책은 “마약 저변층을 봤을 땐 부산보다 인천 시장이 더 크다. 중고생부터 노년층까지 두루 한다.”고 말했다. 이어 “러미라 등 마약 대체 약물과 고기(대마의 은어)를 전국에서 가장 많이 한다.”며 “인천은 모든 마약류를 흡수하는 블랙홀”이라고 소개했다. 탐사보도팀
  • [열린세상] 수상한 시국/윤성이 경희대 비교정치 교수

    [열린세상] 수상한 시국/윤성이 경희대 비교정치 교수

    시국이 시끄럽고 참으로 수상하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사회를 갈라놓았던 것은 진보 대 보수의 싸움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처절했다. 둘은 한 하늘 아래 같이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자신만이 절대선(絶對善)이었고 정의였다. 양보란 있을 수 없는 불퇴전의 싸움이었다. 지금의 시국을 살펴보자. 4대강, 세종시 문제, 그리고 노·사·정 협약 등 숱한 난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어떻게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4대강 개발이 한강과 청계천과 같은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 시화호와 새만금같이 우리에게 또 다른 근심거리가 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세종시는 어찌할 것인가? 신뢰가 중요한지, 현실적 효율성이 중요한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느 것 하나도 버리기엔 그 대가가 너무나 무섭다. 그럼에도 세종시 문제는 우리에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지난 정권이 그랬고, 이 정권도 행정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약속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판단하기를,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니라 한다. 인기 영합을 위해서는 애초 약속한 대로 해야겠지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노사문제는 어떠한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과 복수노조 문제 둘 다 향후 노사관계를 결정할 핵심 사안들이다. 노·사·정 타협을 이뤄냈지만 민주당과 민주노총 그리고 일부 기업의 반대는 여전하다. 그런데 쟁점을 둘러싼 갈등 양상을 볼 때 참으로 수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4대강은 어떻게 의견이 갈려 있는가? 이 정권과 한나라당이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극구 반대이다. 대조적으로 민주당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광주와 전남의 자치단체장들은 대통령의 ‘탁월한 영도력’을 찬양해 마지않는다. 민주당과 그 지지기반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선의 구도를 보니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당의 호남세력이 한편이 되어 있다. 이들이 한편이 되리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나? 세종시 사업을 보자. 이 정부가 밀어붙이는 세종시 계획 수정의 최대 난관은 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 내 친박 세력이다. 세종시 문제에 있어서 정부와 한나라당 내 친이 세력이 한편이고, 그 반대편에 민주당과 친박 세력이 있다. 이 역시 처음 보는 갈등구도이다. 다음으로 노·사·정 협약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노동세력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갈라져 있다. 아마도 서로가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을 해야 할 성싶다. 기업도 희한하게 나뉘기는 마찬가지다. 경총과 현대자동차가 서로 반대편에 있다. 노·사·정 협약에서 경총이 전임자 임금지급에 대해 한 발 물러선 데 비해, 경총의 핵심 멤버 가운데 하나인 현대는 불만이 가득하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지난 10여 년간 진보와 보수가 이전투구의 싸움을 벌였다. 한나라당과 재벌기업 그리고 영남이 한편이었고, 민주당과 노동세력 그리고 호남이 그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갈등구도는 뒤죽박죽이다. 한나라당 정권과 호남세력이 한편이 되어 있고, 민주당과 영남의 터줏대감인 친박세력이 한 배를 타고 있다. 그리고 노동세력의 한쪽이 재벌기업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체 지난 10여 년간의 싸움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양보할 수 없는 절대선과 지고지순의 가치를 위한 것이었는가? 지금의 형국을 보니 그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합종연횡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결국 그들이 목을 맨 것은 절대선도 무엇도 아닌 그때그때의 현실이었다. 이제 그들에게 요구하고 싶다. 그들의 싸움이 철저한 이해타산의 싸움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의 수상한 형국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윤성이 경희대 비교정치 교수
  • 美고위관리 “북·미 2차회담 필요할 듯”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북한이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에서 6자회담 복귀의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양국이 한 차례 더 직접 대화를 해야 될지 모른다고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8일(현지시간) 밝혔다.익명을 요구한 이 당국자는 미국의 6자회담 복귀 요구에 관한 북한의 반응과 관련, “그들이 최근 혹은 오랫동안 지속돼 온 이슈에 그들 나름의 견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이번 논의에서 ‘예’ ‘아니오’ 또는 ‘아마도’ 등 어떤 대답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회담에서 결정을 하지 못한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면서 “그들이 무엇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분명히 하기 위해 두 번째 회담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이와 관련,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이 이번에 6자회담 복귀에 동의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외교협회(CFR) 한반도정책 태스크포스(TF)를 이끌고 지난달 말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그는 “북한이 보즈워스의 방북에서 양국 평화협정 관련 논의에 착수하길 강하게 원하고 있고 6자회담 복귀 전 평화협정 문제의 해결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처드 소장은 또 “북한은 평화협정에 대한 논의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며 이를 위해 북·미대화를 여러 차례 끌고 가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지난달 21일부터 24일까지 3박4일간의 방북기간 동안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을 비롯해 북한 당국자들이 한목소리로 휴전협정을 대신할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강조했다.”면서 “이들은 보즈워스 대표가 북한에 와서 단순히 6자회담 복귀만을 말할 경우 시간낭비가 될 것이라는 점을 말했다.”고 덧붙였다.kmkim@seoul.co.kr
  • 수리의 외출필수품은…하이힐에 화장품 가방

    수리의 외출필수품은…하이힐에 화장품 가방

    3세 숙녀 수리 크루즈의 외출 필수품은? 할리우드 최고 스타인 부모보다 인기가 더 많은 수리 크루즈(3)의 외출 사진이 또 한 번 화제로 떠올랐다. 수리는 얼마 전 외출할 당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어린이용 힐을 신고 등장해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바 있다. 최근 아빠·엄마인 톰 크루즈, 케이티 홈즈를 대동하고 외출에 나선 수리는 하이힐 뿐 아니라 휴대용 화장품 가방까지 들고 나섰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화장품 가방에는 다양한 색상의 립글로스와 립스틱 등 각종 화장품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아마도 홈즈의 화장품을 한데 모아 엄마 흉내를 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이힐과 화장품 가방, 핸드백 등 부쩍 ‘어른 놀이’에 푹 빠진 수리지만, 팔 한쪽에 작은 인형을 안아 ‘아직 어린아이’임을 알려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한 현지 언론은 “요즘 수리는 화장품 가방 없이는 밖을 나서려 하지 않는다.”면서 “하이힐을 수리가 요새 푹 빠진 아이템인데, 전문디자이너로부터 직접 구매한 하이힐 4켤레의 가격은 총 2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하이힐을 신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냐는 일부 비난에 홈즈는 “수리는 엄마의 하이힐을 신어보고 싶어하는 평범한 소녀들과 다를 바 없다.”면서 “수리의 힐은 원래 어린이들이 춤을 출 때 신는 신발인데, 너무 좋아해서 평소에 자주 신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진=멀티비츠 이미지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판교~광교~화성 바이오벨트 추진

    판교~광교~화성 바이오벨트 추진

    경기 성남 판교와 수원 광교, 화성 마도면을 잇는 수도권 바이오산업 벨트가 형성되고 있다. 경기도는 8일 제약·의료 분야 등 생명산업 육성을 위해 판교 테크노밸리에 이어 ‘광교 바이오 폴리스’와 ‘화성 바이오밸리’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원시 이의동 광교신도시에 들어설 바이오 폴리스는 제약의료 R&D 단지와 정부출연연구기관, 제2바이오센터 등이 밀집한 제약의료 산업단지로 육성된다. 내년 2월쯤 광교신도시내 도시지원시설용지 3지역 2만 3200여㎡를 제약기업에 대한 R&D 단지로 특별분양한다. 또 광교신도시내 10만 8000여㎡ 부지에는 제약의료와 관련된 정부출연연구기관 분원을 유치한다. 이미 조성된 광교테크노밸리에도 1만 6000여㎡ 규모의 벤처연구센터 ‘제2바이오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다. 도는 바이오폴리스에 들어설 제약의료기업에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원(INSERM), 한국 파스퇴르연구소, 바이오콤 등과 협력, 첨단기술을 공급할 계획이다. 또 2010~2014년까지 유·무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언제 어디서나 건강상태를 의료진에게 전달하고 진단 및 처방을 받을 수 있는 ‘유비쿼터스(U)-헬스케어’ 및 게놈 상용화 연구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도는 이와 함께 바이오 폴리스를 2012년 화성시 마도면 청원리 1.74㎦에 조성되는 생명산업 특화단지 바이오밸리와 연계해 첨단의료산업벨트로 집중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내년 7월 공사에 들어가는 화성바이오밸리에는 제약과 의료기기, 화장품, 식품, 화학, 기타 첨단업종 기업이 입주한다. 한편 성남 판교신도시내 테크노밸리도 90%의 공정률을 보이며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국내외 대형 연구소 등이 속속 입주하고 있는 가운데 2012년까지 34개 업체 및 연구소가 입주한다. 분당차병원은 내년에 ‘차병원그룹 통합줄기세포연구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국내 최고의 제대혈 은행을 갖고 있는 메디포스트도 연구소 이전을 추진 중이다. 이밖에 20여개의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가 손을 잡고 2011년 4월을 목표로 판교바이오센터(3개동)를 건립할 계획이다. 도는 광교바이오폴리스와 화성바이오밸리, 판교테크노밸리 조성으로 18만 7000여명의 고용창출과 연간 24조 2900억원의 생산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박수영 도 경제투자실장은 “경기도는 우수한 인력과 첨단의료기업, 교통·의료 인프라 등 제약의료산업 발전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수도권은 물론 국내 제약 및 의료산업 육성을 위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바이오 산업벨트를 구축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지방시대]서로 등밀어 주는 협동의 낭만/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지방시대]서로 등밀어 주는 협동의 낭만/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주말 추운 날씨에 목욕탕을 찾았다. 찜질방에서 목욕을 하면서 조금은 생뚱맞게 ‘낭만적이지 않아요(Isn’t it romantic)?’라는 스탠더드 재즈 한 곡이 생각났다.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한 해머스타인이 작곡한 노래의 한 부분에 등을 밀어주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난뱅이 청년이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부르는 이 노래에는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결혼하고 나이가 들어 할 수 있는 로맨틱한 일들을 조금은 코믹하게 나열하고 있다. ‘달밤에 양파 수프 해주는 것’도, ‘애 키우는 것’이나 ‘아내가 집안 청소할 때 앉아서 빈둥거리는 것’도 로맨틱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내가 목욕하는 남편 등을 밀어주는 것’이 로맨틱하다고 노래한다. 사실 자기 등을 자신이 밀 수 없기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상부상조’ 혹은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라는 뜻의 영어 표현으로 ‘내 등을 긁어주면 네 등도 긁어줄게.(Scratch my back and I’ll scratch yours.)’라는 속담도 있다. 이렇게 목욕탕에서 등 밀어주는 일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부자지간의 모습이다. 유치원 다닐 나이가 된 아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등을 밀어줄 때 아빠들은 뿌듯한 기쁨을 느낀다. 아마도 딸과 함께 목욕을 다니는 엄마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등 밀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하지만 우리 한국 사회는 이렇게 등을 밀어주는 협동의 기쁨을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협동을 경험하는 가장 작은 단위가 바로 가정이다. 부부 사이는 물론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그리고 형제들 간의 관계에서 협동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한국의 가정은 더 이상 협동을 경험할 수 없는 곳으로 바뀌었다. 부부가 각자 다른 직장에서 일하니 그런 기회가 별로 없다. 요리, 빨래, 청소 같은 집안 일조차도 그렇다. 이제는 외식을 하고, 세탁소에 맡기고, 청소회사에 부탁한다. 일에 대해 마음을 맞추고 손발을 맞추어 협동하기보다는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되는 문제로 생각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겨울철에 나무를 해오든, 여름철에 부모의 농사를 돕든 간에 가족간 협동의 경험을 배웠지만, 이제는 각자 알아서 자기 일만 잘하면 된다. 아이들 공부하는 것도 가족들이 도울 기회가 별로 없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혼자 공부하는 것이 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서로 성적 경쟁을 부축이다 보니 협동의 경험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마을 단위에서는 어떠한가? 일부 농촌마을을 제외하고는 마을에서도 서로 돕는 일이 사라져 버렸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옆집 사는 사람과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데 어떻게 협동이 가능하겠는가.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해야 할 일도 오직 두 가지 형태로 정리된다. 각자 자기가 알아서 할 것을 집집마다 배분하든지, 아니면 돈을 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든지 하면 된다. 집집마다 형편과 처지가 달라서 서로 힘을 모아 공동작업을 하거나, 또 할 상황이 전혀 되지 않으니 말이다. 더 이상 우리 사회가 농사짓는 시대의 협동을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과 중앙의 양극화·고령화로 인한 세대 간 불평등, 급속한 경제변화로 인한 소득격차 등의 문제는 가정에서의 협동은 물론이고 마을 단위에서의 협동이 없이는 실질적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목욕탕에서 등을 밀어 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가족이거나 같은 동네 이웃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처럼 말이다. 권선필 목원대 행정학과 교수
  • 日왕족들 ‘평민교육’ 원한다

    日왕족들 ‘평민교육’ 원한다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 왕족들이 최근 전통적인 배움터인 가쿠슈인(學習院)이 아닌 일반 교육기관을 찾고 있다. 아키히토 일왕의 둘째 아들인 아키시노의 장남 히사히토(3)는 내년 4월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설 유치원에 들어가기로 했다고 지난 3일 궁내청이 발표했다. 히사히토는 여성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법 아래서는 나루히토 왕세자를 이을 왕손이다. 아키시노의 맏딸 마코(18)도 내년 새학기에 국제기독교대(ICU)의 교양학부 입학이 결정됐다. 왕족들의 가쿠슈인 ‘이탈’ 경향은 관심과 욕구가 다양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궁내청에 따르면 아키시노 부부는 히사히토가 또래들과 적극적으로 사귈 필요가 있다고 판단, 3년제 보육원을 희망했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일관(一貫)교육’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쿠슈인에는 3년제 보육원이 없다. 일왕의 조카인 다카마도노의 자녀들도 가쿠슈인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다. 1847년 설립된 가쿠슈인은 왕족과 귀족의 명문 사립교육기관이다. 1926년 공포된 ‘왕족취학령’은 왕족은 원칙적으로 가쿠슈인에서 배우도록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왕족취학령’은 폐지됐지만 왕족들은 여전히 가쿠슈인을 다녔다. 학교법인 가쿠슈인은 유치원에서 초·중·고교를 비롯해 여자대학, 대학을 갖고 있다. 가큐슈인대의 학부는 법학·경제·문학·이학부 등 4개뿐이다. 현재 가쿠슈인에는 나루히토 왕세자의 외동딸 도시노미야 아이코(8)가 초등 2학년, 아키시노의 맏딸 마코는 고교 3년, 둘째딸 가코(15)는 중학교 3학년, 다카마도노의 둘째딸 노리코(21)는 대학 문학부 3년에 재학하고 있다. 가쿠슈인 측은 “왕족들이 주위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지 않고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쿠슈인이 변화의 흐름을 충족하지 못하는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마코는 일반 교양과 어학을 공부한 뒤 전문 분야를 선택하기 위해 ICU를 제1지망으로 지원했다. 또 다카마도노의 맏딸 쓰구코(23)는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2학년, 셋째 딸 아야코(19)는 조사이(城西)국제대학 복지종합학부 1학년에 다니고 있다. 히타노 요시오 가쿠슈인 원장은 산케이신문에서 “현 체제상 3년 보육을 원할 경우, 어쩔 수 없다. 대학도 4개 학부만 있는 탓에 관심 분야가 넓은 학생들이 들어오려 해도 어려움이 있다. 향후 대응책을 검토하고 싶다.”고 말했다. hkpark@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청개구리 소/김춘옥

    [엄마와 읽는 동화] 청개구리 소/김춘옥

    옛날 옛날에, 아기 청개구리와 엄마 청개구리가 살았대. 아기 청개구리는 엄마의 말을 늘 반대로 듣는, 말 안 듣는 청개구리였지. 그런데 어느 날, 엄마 청개구리가 병이 나서 죽게 되었어. “아가야, 내가 죽거든 개울가에 묻어라.” 엄마 청개구리가 죽으면서 말했지. 이번에도 아기 청개구리가 반대로 할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아기 청개구리는 이번만큼은 엄마의 말을 잘 듣기로 했어. 엄마를 개울가에 묻은 거야. 이제 청개구리들이 왜 비가 오면 우는지 알겠니? 에이, 그것도 모를까 봐요. 엄마 무덤이 비에 떠내려갈까 봐 우는 거죠. 그래서 내가 엄마 말을 잘 들으라는 말이죠? 얌전히 지내면서 토실토실한 소로 자라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엄마, 나는 이 축사 안에서 다른 소들처럼 얌전하게 있다가 고기소로 팔려가는 게 싫어요. 축사 바깥의 풀밭을 마구 뛰어다니는 게 좋고, 울타리를 쿵쿵 치받는 게 신난다고요. 가능하면 울타리를 넘어도 좋고요. 앗,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에요? 이 새벽에 우리 축사에 불이 환하게 켜졌어요. 바깥에는 트럭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서 있네요. 주인아저씨가 다가와 억센 손으로 내 목을 그러잡았어요. 튼튼한 밧줄로 입 주위를 한바퀴 돌리고 양쪽 뿔까지 몇 번 돌려 단단히 묶었어요. 숨이 막힐 것 같아요. “왜 이래요? 엄마, 살려줘요!” “아가야, 아가야!” 엄마도 목 밧줄이 난간에 묶인 채로 소리를 쳤어요. 난 엄마를 돌아볼 틈도 없이 바깥으로 질질 끌려나왔어요. 주인아저씨가 나를 억지로 트럭에 태웠어요. “네 뜻대로 살아라!” 트럭이 떠나는데, 엄마 목소리가 따라 왔어요. 화난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였어요. “내 생각대로요? 아니면 내 생각과 반대로요?” 입이 단단히 묶여서 또렷한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어요. 내가 평소에 청개구리처럼 말을 잘 안 들어서 엄마가 거꾸로 말한 걸까요? 아니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 걸까요? 엄마한테 다시 물어봐야 하는데 트럭이 출발했어요. 어느덧 트럭이 우시장에 도착했어요. “자, 어서 내려! 이 놈의 소!” 주인이 내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리며 다그쳤어요. “음, 여기에 매어두면 되겠군.” 주인은 내 고삐를 먼저 와 있던 소들 사이에 맸어요. 그리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어요. 새삼 엄마가 보고 싶어졌어요. “음메에.” 나는 목청을 돋우고는 하늘을 향해 크게 외쳤어요. 엄마가 내 소리를 들었을까요? “그놈 울음 한번 우렁차군.” 그때였어요. 턱수염이 부스스한 아저씨가 내게로 다가왔어요. 나를 살펴보고 뿔도 만져보았어요. 나는 은근히 기분이 상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노려보았어요. “얘야, 얼른 고개를 들어. 농부들은 소가 고개를 숙이면 사람을 치받을 자세라고 싫어한단다.” 옆에 있던 늙은 소가 낮게 속삭였어요. “제가 바라던 바라고요.” “잘 봐, 저 사람은 농부란다. 땀을 흘려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논이나 밭을 가는 일이요? 그러면 내가 고기소로 죽지 않을 수도 있단 말예요?” “아무렴, 너 같은 수소는 역시 쟁기질을 하는 게 제격이야. 농부에게 팔려간다면 더없는 축복이지, 암.” 늙은 소의 말은 솔깃했어요. “성질이 보통 아니군.” 턱수염도 순하지 않은 내가 오히려 마음에 드는 가 봐요. “이 놈의 아비는 힘이 대단했지요. 싸움소로 이름을 날렸던 당찬이의 새끼라니까요.” 저쪽에 가 있던 주인이 다가오며 말했어요. 턱수염이 날 살피는 걸 보고 있었나 봐요. “자, 이만하면 어떻소? 굳이 중개료까지 지불할 건 없잖소.” 턱수염이 만 원짜리 지폐 뭉치를 주인에게 내밀었어요. “좋소, 아주 좋은 놈을 고른 거요.” 주인이 돈을 다 세고 나더니 고삐를 풀어 턱수염에게 건냈어요. 나는 마침내 다른 주인에게 팔린 거였어요. 턱수염의 집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었지요. 집 뒤 언덕배기엔 산으로 이어진 밭이 넓게 퍼져 있었어요. 축사는 집 옆에 붙어 있었는데, 내가 살았던 곳보다 훨씬 작았어요. 다른 소들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나 혼자 이 축사에서 살 모양이었어요. “오늘은 편히 쉬어라.” 턱수염이 나를 축사 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바닥에는 짚을 새로 깔았는지 보송보송하고 상쾌했어요. “안녕? 난 민수야. 앞으로 잘 지내자.” 아이가 다가와 먹이를 여물통에 넣어 주었어요. 다음날부터 힘든 날이 시작되었어요. 난 쟁기를 끌며 턱수염과 언덕배기 밭을 갈았지요. 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했어요. “우시장에서 말이야. 너를 처음 본 순간부터 우린 좋은 팀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언덕배기 밭을 모두 갈자, 턱수염이 아주 기뻐했어요. 나도 처음으로 뭔가를 했다는 뿌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여름이 되자, 아이는 나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어요. 향기롭고 싱싱한 풀을 맘껏 뜯어 먹을 수 있었지요. 때때로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가곤 했어요. 앞산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는 비릿한 냄새도 섞여 있었고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어요. “올해는 땅을 좀더 넓혀야겠어.” 턱수염이 언덕배기 밭을 모두 갈아엎은 후에 말했어요. 밭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 숲에 밭을 좀더 만들고 싶었나 봐요. “장마가 지면 흙이 흘러내리지 않을까요?” 아이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이 정도는 괜찮아.” 턱수염은 곧 사람들을 불러다가 나무들을 잘라버렸어요. 그리고 나와 함께 쟁기질을 해서 밭을 더 넓혔어요. 그리고 밭농사는 작년보다도 훨씬 잘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여름이 다시 지나고, 가을이 또 다시 지나고, 겨울도 지났을 때였어요. 이제 턱수염이 나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걸 알았어요. 그동안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서 트랙터를 샀던 거예요. 트랙터는 나대신 밭을 척척 갈아엎었어요. 나는 이제 축사에서 여물만 축내게 되었어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까 내가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어요. 그저 고기소로 팔려 갈 날만 기다리는 소가 된 기분이었지요. 여름이 되자, 아이는 여전히 나를 데리고 들판으로 나갔어요. 마음이 불안하니까 전처럼 풀도 맛있지가 않았지요. ‘고기소로 팔려 가기 전에 도망을 칠까?’ 나는 앞산 쪽을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자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렸어요. 산으로부터 물이 계곡을 타고 무섭게 흘러내렸어요. 급기야 불어난 물이 새 밭에 산사태를 일으켰어요. 밭은 흙더미로 변하고 곳곳에 나무뿌리며 돌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지요. “아이고, 이를 어쩐대요? 올해 농사를 망쳤으니.” 밤새도록 턱수염의 방에서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설핏 잠이 들었다가 누군가가 깨우는 바람에 눈을 번쩍 떴어요. 이른 새벽이었어요. “쉿! 조용히 따라와.” 나는 아이가 이끄는 대로 조용히 따라갔어요. 우리는 들판을 가로질러 어둠을 뚫고 계속 걸어갔지요. 이 들판은 눈을 감고도 걸어갈 수 있는 곳이었어요. 아이와 내가 언제나 함께 쏘다니던 곳이었으니까요. “자, 어서 가.” 앞산 입구에 도착하자 아이가 고삐를 풀어주었어요. 그리고는 내 목을 꼭 껴안더니 살며시 놓아 주는 거예요. “바보야, 아빠가 널 팔 거래. 난 네가 죽는 걸 볼 수 없단 말야. 사실은 벌써부터 널 사려는 사람이 있었어. 물론 나 때문에 팔지 못했지만…. 이젠 나도 어쩔 수 없어. 어서 가.” 아이가 나를 막 떠밀었어요. 나는 그대로 거길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 어디로 가지?’ 나는 캄캄한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어요. 한참을 걸어가다 나무 밑에서 잠시 멈추었지요. 아, 바람이 불기 시작하네요. 어느 여름날 들판에서 풀을 먹다가 맡았던 비릿한 냄새가 나요. 바람을 따라 가봐야겠어요. 쏴아아, 쏴아아.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와요. 그런데 며칠 낮밤 소리를 따라 가다 보니 갑자기 앞이 탁 트였네요. 드넓고 파란 물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요. 내려가는 길에는 계단처럼 층층으로 밭이 있고요. “이랴, 쏴아아! 워워, 쏴아아!” 밭에서 할머니는 쟁기를 끌고 할아버지는 쟁기를 밀고 있어요. 할머니가 마치 나처럼 앞에서 끌고 할아버지는 농부처럼 뒤에서 밀며 사이좋게 쟁기질을 하고 있어요. 정말로 평화롭고 즐거운 풍경이에요. 어느새 나는, 나도 모르게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어요.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나를 한 식구처럼 맞아 주셨고요. 이제 생각해 보니, 엄마는 나에게 내 생각대로 살라고 말했던 거 같아요. 날 청개구리로 여기지 않았던 거죠. ●작가의 말 요즘 소들은 축사에서 편안하게 자라 고기소로 대부분 생을 마감합니다. 과연 축사의 소들은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생각해 봤을까요. 우리 어른들도 아이들이 축사처럼 잘 만들어진 세상에서 얌전히 살아가길 바라는 건 아닐까요. 아무 탈 없이 자라 엘리트가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 여기면서 말입니다. 경계선을 넘어 다른 곳을 기웃거리는 아이들, 그들의 무모한 열정, 낯선 꿈들에 귀 기울이는 어른이길 원하며 글을 씁니다. ●약력 단국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아동문학을 전공했다.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박물관 가는 길’이 당선돼 등단했다. 저서:‘내일로 흐르는 강’ ‘달빛계로 가다’ ‘작은 나라’ 등
  • [독자의 소리] 패륜범죄의 증가를 우려한다/서울 용산경찰서 이현진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다. 동생을 더 편애한다는 이유로 집에 불을 질러 부모를 살해하고, 얼마 전에는 유산상속에 불만을 품은 50대 아들이 70대 아버지에게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는 끔찍한 일까지 있었다. 예를 중시하던 우리에게 왜 이런 패륜범죄가 증가하는 것일까? 아마도 요즘 우리 사회·문화의 측면을 보여주는 거울이 아닌가 싶다. 황금만능주의가 우리의 의식 속에 팽배해지고, 농경사회에서 도시사회로 바뀌면서 개인적 경향이 강해져 가족간 대화가 부족해진 게 현실이다. 입시위주 교육을 실시하다 보니 학생들이 기본적 윤리·도덕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것같다. 지금이라도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윤리·도덕이 얼마나 중요한 바탕이 되는지를 교육하고 가정에서도 자녀와 부모간 대화를 늘려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서울 용산경찰서 이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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