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마도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1조원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출혈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백도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밥상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459
  • 이적생·수비수·외국인 ‘16인 16색’

    이적생·수비수·외국인 ‘16인 16색’

    프로축구 K-리그 개막이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새달 5일 축구 축제가 시작된다. 16개 구단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새 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주장에 선출된 선수들은 더욱 그렇다. 왼쪽 팔에 완장을 찬 만큼 어깨는 더욱 무겁다. 선수들을 다독이면서 믿음직한 플레이도 보여줘야 하기 때문. ‘16인 16색’이라 할 만큼 각 팀의 ‘정신적 지주’는 매력이 다르지만, ‘승리와 우승’을 염원하는 것만은 똑같다. 올 시즌 ‘캡틴’들의 특징을 분석해 봤다. 올 시즌 가장 두드러진 유행은 ‘이적생 주장’이다. 전남 이운재, 울산 곽태휘, 수원 최성국, 인천 배효성 등 4명은 옮긴 둥지에서 바로 주장을 꿰찼다. 경험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팀에서 새롭게 출발하려는 의욕이 넘치는 것이 강점이다. 팀 사정에 낯설어서 완장을 맡기는 게 모험일 수도 있지만, 구단 관계자들은 “기본 기량이 있다는 전제하에 새로 들어온 선수가 주장을 맡으면 팀에 훨씬 잘 녹아들어서 좋다.”고 설명했다. ‘연임’한 주장도 6명이다. 지난해 통합우승을 이끈 FC서울 박용호,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제주의 김은중, ‘조광래 유치원’ 돌풍에 앞장선 경남FC 김영우가 손꼽힌다. 포항 김형일, 강원 정경호, 성남 사샤도 지난해에 이어 중책을 맡았다. 지난 시즌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점을 인정받은 셈이다. 국가대표팀 조광래 감독은 “중앙 수비수는 한번만 실수해도 부담이 커지고 판단이 흐려진다.”며 수비수를 주장으로 뽑지 않았다. ‘리더’가 실수할 경우 경기 내내 이를 의식해 전체 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K-리그 주장은 수비수가 대세다. 곽태휘·김형일·박용호·조성환(전북) 등 6명이 수비수다. 지난 시즌(8명)에 비하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다. 이운재와 백민철(대구FC) 등 골키퍼 주장도 2명이다. 수비수와 골키퍼는 경기 전체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서는 데다 득점에 민감한 공격수에 비해 안정적으로 경기에 나설 수 있어 팀을 이끄는 데 유리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샤는 16개 구단 중 유일한 외국인 주장이다. 지난해 성남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승승장구한 데에는 신태용 감독의 ‘형님 리더십’ 못지않게 사샤의 카리스마도 단단히 한몫했다. 외국인인데 어떻게 선수들과 대화하느냐는 질문에 사샤는 “선수들 대부분이 기본적인 영어 대화가 가능하다. 자세한 설명은 한국말을 잘하는 라돈치치를 활용한다.”고 웃었다. 외국인이지만 강한 정신력과 뛰어난 경기력으로 솔선수범하는 모습. ‘말썽쟁이’ 라돈치치가 사샤를 형처럼 따르는 것도 이점이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는 캡틴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도 K-리그를 즐기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영화프리뷰] ‘센티미엔토 : 사랑의 감각’

    [영화프리뷰] ‘센티미엔토 : 사랑의 감각’

    어시장에서 밤새도록 생선을 손질하는 류(왼쪽·기쿠치 린코)의 또 다른 직업은 전문 킬러. 아무리 짜내도 1%의 수분도 없을 듯한 메마른 표정의 류의 유일한 친구는 백발의 음향기사(다나카 민)뿐이다. 짬짬이 방아쇠를 당기고, 일터에서는 생선을 손질하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던 류에게 어느 날 새로운 일감이 들어온다. 딸 미도리가 손목을 긋고 세상을 등진 후 식음을 전폐한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연인이었던 스페인 남자 친구 데이빗(오른쪽·세르지 로페즈)을 세상에서 지워달라는 것. 류는 평소대로 ‘타깃’인 데이빗의 와인숍을 찾아갔지만, 운명적인 하룻밤을 보내면서 모든 것이 뒤틀린다. ‘격정 로맨스’란 타이틀을 달았지만 ‘시각적인 격정(?)’만 기대한다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매력은 죽여야 할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의 미묘한 심리와 관계의 변화를 소리를 통해 접근한다는데 있다. 내레이션을 맡은 화자가 음향기사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터. 류와 데이빗이 처음 만난 날, 일본 라면을 먹으면서 데이빗은 류에게 “소리를 내지 않고 먹는 게 (일본에서는) 결례란 건 알지만 스페인에서는 매너를 지키는 일이다.”라고 말을 건넨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 데이빗은 홀로 라면을 먹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후루룩~’ 소리를 낸다. ‘당신을 찾아오는 그 여자(류)가 누구냐.’고 묻는 동료에게 ‘아무도 아니다.’(She´s nobody)라고 말했지만 이미 데이빗은 류에게 맞춰가고 있던 셈이다. 현실에선 성큼 떨어진 사랑 얘기다. 미국 할리우드의 기승전결에 익숙해진 관객에게는 친절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까닭은 상당 부분 여주인공에 있다. 결코 미인은 아니다. 카리스마도 없다. 하지만 미묘한 손끝의 떨림부터 입가의 흔들림까지, 그의 연기는 열 마디 대사 이상을 표현해 낸다. 1981년생. 일본에서 15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가 영화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건 2007년 브래드 피트와 함께 출연한 미국 영화 ‘바벨’을 통해서다. 할리우드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청각장애인의 복잡한 내면 연기를 무난하게 소화해 그 해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4월 국내에서 개봉 예정인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의 일본 영화 ‘상실의 시대’에서는 주인공 나오코 역을 맡았다. 스페인의 국가대표 감독인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인정했다는 아자벨 코이셋 감독의 연출력도 두고봐야 할 대목이다. 굳이 ‘여성감독 특유의 섬세함’이란 표현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감정선과 소리를 엮는 그의 솜씨는 특별하다. 엔딩 자막이 올라간 뒤에도 재일교포 출신 고(故) 미소라 히바리 버전의 ‘라 비 앙 로즈’(장밋빛 인생)는 이명처럼 귓가에 남는다. 24일 개봉. 109분. 18세 관람가.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전설이 될” 미미시스터즈, 26일 첫 단독공연

    “전설이 될” 미미시스터즈, 26일 첫 단독공연

    선글라스와 두터운 메이크업, 그리고 앙다문 입술로 특징 지어지는 정체불명의 여성 2인조 ‘미미시스터즈’가 첫 단독공연을 가질 예정이어서 팬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미시스터즈는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에 안무 겸 코러스로 참여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했지만, 이들의 경력은 베일에 싸여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라는 곡을 시작으로 독특한 안무와 특별한 카리스마를 선보여 온 이들은 2010년 독립을 선언, 독자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의 첫 음반이자 단독공연명은 ‘미안하지만...이건 전설이 될 거야’에는 ‘거장’ 김창완을 비롯해 하세가와 요헤이, 서울전자음악단, 크랑잉넛, 로다운30 등 쟁쟁한 음악인들의 동참으로 이뤄졌다. 3월 초 동명의 첫 앨범 발매를 앞두고 그 면모를 처음 관객들에게 선보일 이번 공연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 장기하, 건반 이종민이 오프닝 무대를 장식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미시스터즈의 소속사인 두루두루amc 측은 “미미 시스터즈의 프로젝트는 ‘아마도’ 전설이 될 것”이라며 기대를 당부했다. 미미시스터즈의 ‘미안하지만...이건 전설이 될 거야’는 오는 27일 일요일 저녁 6시 40분 상상마당 라이브 홀에서 펼쳐지며,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수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로또1등, 운에 기댈 수 밖에 없을까?

    로또1등, 운에 기댈 수 밖에 없을까?

     지난 한해 동안 로또1등에 당첨된 147명 중 43%가 ‘재미 삼아’ 로또를 샀다가 인생 최대의 행운을 얻었다고 한다. 하늘이 내려준 ‘천운(天運)’을 타고 났다고 하는 말은 아마도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다.   그런데 이 운도 노력이 따라야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최소한 로또를 사는 수고라도 해야 당첨을 기대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6년간 고정번호로 매주 꾸준히 로또를 샀던 영국의 한 부부는 딸이 태어나면서부터는 기저귀 살 돈도 모자라 로또구입을 중단했다. 그런데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그 번호가 1등에 당첨된 것. 이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지만,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그 결과는 87억원(487만3639파운드)이라는 ‘대박’으로 돌아왔다. 같은 번호가 또 다시 당첨된 것이다.   이것을 단지 운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처음 1등을 놓쳤을 때 좌절만 하고 다시 도전하지 않았다면 이 부부는 두 번이나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로또1등 당첨이 ‘노력의 산물’임을 확실히 증명한 사례는 더 있다. 미국 애리조나의 한 교사는 약 579억원의 1등에 당첨됐는데, 그는 6년 반 이상 매주 로또를 구입했다. 심지어 돈이 별로 없을 때도 로또 사는 것은 잊지 않았다. 뉴질랜드에서도 1등(8억 3000만원)에 당첨된 부부가 1987년부터 20년간이나 로또를 구입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로또1등 예측시스템 자세히보기 ●로또1등 당첨자들의 비밀스런 공통점!  국내 로또정보사이트 업계 1위인 로또리치(lottorich.co.kr) 관계자는 “자체 사이트를 통해 1등에 당첨된 회원들의 비법을 들여다보면 대박의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며 “이들 역시 매주 꾸준히 로또를 구입해 왔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로또1등 당첨들은 평균 14개월 이상 로또를 구입했다. 구입비용은 일주일에 1~2만원 사이. 부담 없는 비용을 투자해야 오랫동안 로또를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미당첨에 실망하지 않고 반드시 1등에 당첨될 수 있다는 강한 믿음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었다. ‘긍정의 힘’이 로또 1등 당첨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로또리치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자체 사이트를 통해 1등에 당첨된 주인공들은 모두 골드회원으로 밝혀졌다.”면서 “골드회원은 로또리치(lottorich.co.kr)가 오랜 시간에 걸쳐 개발한 ‘로또1등 예측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엄선된 특별 조합만을 제공받을 수 있는 회원제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골드회원은 월 9900원으로 가입 할 수 있으며, 매주 10조합의 로또1등 특별추천번호와 랜덤워크 로또예측시스템 이용권 5매, 퍼펙트조합기 이용권 5매, 추첨·당첨결과 SMS 서비스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또한 월 1만 2900원 상당의 인기 유료만화와 월 30,000원의 정통사주운세 서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등 다양한 특혜가 주어진다. ☞로또1등 예측시스템 자세히보기 출처 : 리치커뮤니케이션즈 본 콘텐츠는 해당기관의 보도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 [열린세상] 기록문화의 위기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열린세상] 기록문화의 위기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얼마 전 청주를 다녀왔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을 둘러봤다. 관람객들이 집중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말투에 힘이 있는 노신사. 직지활자와 직지 제작과정 모형 그리고 신라·고려·조선시대의 목판본, 금속활자본, 목활자본 등 전시물에 대해 정성껏 설명하고 있었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고인쇄물에 대해 설명하는 자원봉사자 일을 5년째 하고 있단다. 귀경길에 낭보를 접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도서 297권이 5월 반환된다는 소식이었다. 프랑스가 약탈해 간,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의 친정’을 막 다녀온 여행에 기쁜 소식이 겹치면서 여러 감회가 교차됐다. 연구실에 돌아와 외규장각도서의 반환 협상 자료를 찾아봤다. 이 도서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은 1975년이다. 이 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씨가 파손도서 창고에서 발견한 것이다. 모리스 쿠랑이 ‘조선서지’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 문화재는 국제법상 프랑스 소유를 인정받고 있다. 그 실존을 확인한 것만도 당시엔 대단한 성과였다. 우리 정부가 무려 17년이 지난 1992년 처음으로 약탈도서 반환을 요구했다. 이듬해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테제베 매각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해 이 문서의 반환을 약속했지만 곧 반환협상은 무산됐다. 프랑스가 등가등량교환을 조건으로 세운 탓이다. 약탈문화재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똑같은 가치의 문화재를 자신에게 주고 고도서를 찾아가라고 ‘생떼’를 쓴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 정부는 이에 합의했다. 국민여론이 폭발했다. 합의 자체가 없던 일이 됐다. 5년이 지난 뒤인 1998년 민간 차원의 형식으로 외규장각도서 반환협상이 재개됐다. 그 이후 민간은 물론 정부의 갖은 노력 끝에 영속 귀속을 의미하는 장기 대여의 쾌거를 얻어낸 것이다. 문화재 반환을 둘러싸고 ‘생떼’를 쓰던 18년 전과 지금의 프랑스 정부 입장에 변화가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형식적 소유권을 끝까지 고집하는 프랑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우리 국민의 요구대로 무상반환을 한다면 이것이 선례가 되어 세계 3대박물관으로, 프랑스의 자존심인 루브르박물관은 텅텅 비게 될지도 모른다. 노신사의 목소리가 이명 현상처럼 계속 달라붙는 느낌이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문명국만이 할 수 있는 대역사다. 그 기록을 제대로 보존하고 지키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다. 기록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의 기록역사문화는 세계 최고임을 인정받고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기록문화유산이 직지, 훈민정음, 팔만대장경, 동의보감 등 7개나 된다. 우리보다 역사가 깊은 중국도 5개에 불과하다. 그것도 청나라 왕조에 국한된 것이다. 일본은 하나도 없다.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기준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세계 역사와 문화발전에 기여, 또는 세계사의 중요한 변화를 반영했다고 인정되지 않으면 등재가 불가능하다. 이같이 우리 기록문화를 인정받을 수 있음도 우리의 힘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가치를 설파하던 노신사의 열정, 그에게 열중하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아마도 이날, 아니 어느 날이든 청주고인쇄박물관을 다녀간 청소년과 어린이는 자발적으로 관람감상문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 기록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기록의 필요성을 찾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본 사람들만큼 기록을 소중하게 여길까.’라고 되물어 본다. 왠지 답답하다. 외규장각도서가 발견된 이후 반환 요구를 요청하는 국민의 소리를 17년 동안 외면했던 정부, 등가등량교환에 합의했던 과거 정부의 모습에서 현재 정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 사찰, 대포폰, 하드디스크 파기, 아랍에미리트연합 파병 등에서 왜곡된 기록문화를 보게 된다. 현재 우리는 기록을 지키고 빼앗긴 기록물을 찾아오는 문제가 아니라 기록하는 자체의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기록문화의 위기다.
  • [싱글 라이프] 돌이키고 싶은 10년전 선택

    [싱글 라이프] 돌이키고 싶은 10년전 선택

    “그때 내가….” 돌이켜 봐서 후회되는 일 몇가지 없는 사람이 있을까. 현실에 100%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2010년 9월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직장인 822명을 대상으로 ‘청소년기에 희망했던 직업과 현재의 직업이 일치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6.9%가 ‘일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어릴 때의 꿈을 실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다. 또 ‘일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의 31.1%가 ‘능력개발이 부족해서’라고 답했고, 27%는 ‘진로설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라고 하는 등 과거 자신의 노력이나 선택을 이유로 들었다.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잊고 싶은 기억을 돌이키고, 엇갈린 인연을 이루고 싶지 않을까.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싱글들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또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들어 봤다. “그때 용기 낼 걸”… 접어버린 첫사랑·꿈 ●짝사랑했던 첫사랑의 결혼식서 축가 12일 서울 방배동. 송세혁(가명·30)씨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대학 동기 P의 결혼식 피로연에서다. 이날 송씨는 결혼식장에서 축가까지 불렀다. 송씨는 10년 전인 2001년 대학에서 그의 첫사랑을 만났다. 같은 과 동기였던 P는 잘 신어보지 않은 듯 하이힐을 신고 힘겹게 계단을 올랐다. “약간 팔자 모양으로 걷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면서도 귀엽고 매력적이었다.”고 그는 돌이켰다. 특히 노래방에만 가면 자신에게 “노래를 잘한다.” “목소리가 멋지다.”고 칭찬하던 P였다. 송씨는 혹여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한 음절 한 음절에 목소리에 혼을 담았다. P의 매력을 알아챈 건 송씨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몇몇 동기와 선배들도 P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때부터 서로 말 못하는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승자는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이듬해 아직 고백을 못하고 끙끙대던 송씨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렸다. 3월 말년휴가를 나온 선배와 P가 사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백 한 번 못하고 마음 졸이기만 수백번, 수천번. 송씨는 학교 근처 하천에서 강소주를 마셨다. 학교에 다니는 둥 마는 둥 그는 학기를 마치는 대로 입대를 했다. 휴가 때마다 P의 소식을 물었지만, P는 여전히 그 선배와 열애 중이었다. 밤에 둘이 지하 매점에서 키스하다 경비아저씨한테 들켰다는 소문이며, 단둘이 인천 앞바다 섬으로 여행을 갔다가 파도가 세 며칠을 지내고 왔다는 친구들의 ‘디테일’한 진술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주잔을 비우는 일뿐이었다. 결국, P가 10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자신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씨에게 축가까지 부탁했다. 낮부터 마신 술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송씨는 “그때 고백을 했어야 했는데…. 다시 기회가 있을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며 애써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행복해 보이니 마음은 놓이네요. 이렇게 말할 자격은 없지만….”이라면서 “저도 이제 제 사랑을 찾아야죠.”라고 말했다. ●“아버지 사업 망해 로커꿈 접어” “슈퍼스타 케이(K)를 보니 다시 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 솟아요.” 휘경동에 사는 김진수(31)씨는 10년 전 로커의 꿈을 접었다. 김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7년 여름 친구들과 밴드부를 결성하고 자신은 보컬을 맡았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으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연습공간도 빌렸다. 축제 때 그의 헤드뱅에 인근 학교 여학생들은 자지러졌고, 인기를 독차지한 그는 친구들로부터 시샘도 받았다. 하지만 성적은 사정 없이 곤두박질쳤다. “이 놈이 공부는 안 하고.” 성적표를 받아보고 화가 난 그의 아버지는 방에서 기타 줄을 튕기고 있던 김씨에게 와 기타 줄을 끊어놓기까지 했다. 그래도 김씨는 굴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몰래 밴드 연습을 하면서 마이크를 내려놓지 않았다. 재수 끝에 2000년 4년제 지방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김씨는 이제는 취미가 아니라 진짜 가수가 되기 위한 밴드활동을 시작했다. 연예매니지먼트사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노래를 홍보하면서 스타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이듬해,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하게 돼 빚더미에 앉게 돼 가수의 꿈을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는 그는 기타 줄을 튕길 수 없었다. 생활비와 학비를 손수 벌어야 했다. 김씨는 “엄한 아버지보다 무서운 게 ‘생활’이더라고요. 가끔 밴드활동을 계속했다면 지금 어땠을까 후회될 때도 있죠.”라고 말하며 애써 의연한 척 억지웃음을 지었다. 일탈을 모르던 ‘범생이’ 탈피하고파 ●“공부만 했더니 친구 안 남아.” “줄기차게 공부만해서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대기업에 다니고 있긴 한데….” 서울 서초동에 사는 오주연(가명·27·여)씨는 가끔씩 초·중·고교 동창생들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본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9년이 지나 달라진 친구들의 모습을 보다 추억에 잠겨 혼자 배시시 웃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요동치는 감정을 억누르기는 어려웠다. 친구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자신의 빈자리에 질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학창시절, 공부에만 몰두했다. 공부말고는 별다른 취미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에게 소홀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고 그는 말했다. 딱히 친구들을 멀리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와서 보면 초·중·고교 시절에 만나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이 거의 남지 않았다. 반에서 1, 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오씨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를 자랑스러워했고 그는 늘 어른들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오씨는 모범생이기도 했다. 친구들이 밤에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공원에 놀러가자고 할 때도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어제 진짜 재밌었지. 킥킥킥.”라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눠도 강씨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내로라하는 명문대학에 입학했고 지금도 역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하지만 친구는 거의 남지 않았다. 그는 “10년 전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공부보다는 친구들하고 깔깔대며 웃고 떠들고 어울려 다닐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이어진 일상, 이젠 깨고 싶어” “부럽네요. 일탈할 수 있는 특권. 마음만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겠다는 용기.” 경기 분당에 사는 권혜영(28·여)씨는 일본작가 이시다 아라가 쓴 포틴(4teen)의 책장을 덮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평범한 14살 중학생들이 매일 모여서 일상을 깨는 것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면서 자신이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날라리가 되지 않겠다.”고 말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일곱 살부터 시작된 그의 학교생활은 대학졸업 후 그대로 직장생활로 20년 넘게 이어졌다. 장소만 바뀌고, 오전 7시 등교에서 오전 9시 출근으로 시간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그때부터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루틴”이 시작된다. 직장생활 5년차였던 그는 한참 회사생활이 지겹다고 느끼던 그다. 권씨는 다시 고등학생이 된다면 “시간표대로 짜인 일상을 살지 않고 오늘은 어떤 기발한 것을 해볼까 하며 고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소설에서처럼 방학 때 부모님께 거짓말하고 친구들끼리 자전거로 여행을 떠난다든지 아니면 수업을 제치고 온종일 만화책을 읽고 돌아온다든지 어찌 보면 소소하지만, 그때만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해 보고 싶어요.”라며 깔깔 웃었다. 만족감 없는 직업… 꿈을 좇았더라면 ●“고시공부할걸….” “고시공부했더라면 지금쯤….” 입사 8년차 대기업 과장인 김영섭(가명·35)씨는 대학생 때 고시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을 가장 큰 후회로 삼는다. 법학과를 졸업할 2004년 그의 주변에는 사법시험·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친구들이 많았다. 그가 대기업에 취직을 했을 때 모두 부러운 눈으로 보던 친구들이다. 체육복 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친구들에 둘러싸여 우쭐해 했던 그다. 하지만, 이때로부터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됐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판검사가 되고, 정부 요직에서 근무하면서 그의 직장은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이 못돼 버렸다. 특히 이제 갓 마흔이 넘은 선배들이 줄줄이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아직 장가도 못 간 김씨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는 “친구들은 늦었지만 서른두세 살에 고시합격하고 선보고 해서 시집·장가도 잘 갔는데, 저는 일만 죽도록 하다 보니 장가도 못 갔네요.”라면서 “이제 남은 건 두둑한 뱃살하고 벗겨지는 이마밖에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교사? 역사학자? 제주도에 사는 이정화(29·여)씨는 2007년부터 5년째 초등학교 교사다. 하지만 이씨는 10년 전인 2001년 대학 입학 원서를 쓸 때만 해도 자신이 교사가 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의 꿈은 역사학자. 중·고등학교 6년 내리 한마음이었다. 하지만 원서를 쓰던 그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교대를 가라.”는 부모님의 권유에 처음엔 황당해 했고, 다음 순간 무서웠다. 처음이었다. 부모님께 진학에 대해 상의해 본 적이 이때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이씨는 부모님에게 설득됐다. ‘IMF’ ‘경기’ ‘취업’ 운운하시는 부모님의 논리에 설득된 것이 아니다. 그는 “막연하게 ‘역사 공부는 꼭 직업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거잖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국, 두어 시간 짧은 설득작업 끝에 그는 교대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대학 4년을 마쳤고, 삼수를 하긴 했지만, 임용고사에 합격했다. 최고의 교사는 아니지만 인기있는 교사가 됐다. 그래도 늘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붙들고 있다. 늘 새로운 역사 관련 서적이 그의 가방에 자리 잡고 있다. 역사공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교사가 되길 잘했다. 천직이다.’라고 생각하는 이씨다. 그는 “수업 시간에 저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순진한 표정을 보면 교사가 된 게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여전히 제가 대학 때 한국사를 공부했다면 지금은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하는 궁금증은 있어요.” 이씨가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교대가 아닌 사학과에 지원했을까? 이씨는 “아마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윤샘이나·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문화계 블로그] 소설가 김영하 “미안하다, 고은아”

    [문화계 블로그] 소설가 김영하 “미안하다, 고은아”

    소설가 김영하가 14일 오후 자신의 블로그에 “오래 못 올지도 몰라요. 다들 잘 지내세요.”라면서 트위터와 블로그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중단 발표의 직접적 계기는 “살아서도 별로 도움이 못 되는 선생이었는데 가고 나서도 욕을 보이는구나. 미안하다.”고 밝혔듯 고(故) 최고은 작가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씨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시절, 고인을 가르쳤다. 이 이면에는 문학평론가 조영일(아이디 ‘소조’)과 최근 여러 차례 나눈 ‘문학의 낭만주의’ 논쟁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김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은이가 굶어 죽었다고 당연히 믿고 있다는 데 놀랐다. 아마도 최초로 보도된 선정적 기사 때문일 것(…) 물론 그녀가 풍족하게 살아갔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연하고 당당하게 자기 삶을 꾸려갔다고 들었다. 그녀의 직접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선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라고 고은이의 마지막을 수습한 친구들에게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진실은 아직 누구도 모른다. 사람들은 편한 대로 믿고 떠들어댄다.(…) 진실을 외면한 채 고은이를 아사로 몰고 가면서 가까웠던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자 최고은에 대해서도 “재능있는 작가였다. 어리석고 무책임한 자존심 하나만으로 버티다 간 무능한 작가가 아니었다.”면서 “그녀를 예술의 순교자로 만드는 것도, 알바 하나도 안 한 무책임한 예술가로 만드는 것도 우리 모두가 지양해야 할 양 극단이라는 것만은 말해두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김영하는 11일 ‘나는 최고은의 선생이었다.’는 글을 통해 “부음을 들은 날 밤에 나는 그녀가 과제로 낸 글들을 찾아 다시 읽었다. 맥락이 달라져서일까. 모든 게 달라 보였다. 글 속에서 고은이는 어느 가난한, 가스요금도 못 내는 시나리오 작가가 맞고로 떼돈을 버는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놓고 있기도 하고, 가슴이 물리적으로 너무 아파 방바닥을 기어다니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있기도 했다. 죽은 제자의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 읽었다.”고 아픈 기억을 더듬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열린세상] 사랑의 열매란 무엇인가?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열린세상] 사랑의 열매란 무엇인가?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오래된 미풍양속으로 이웃에 대한 따뜻한 손길과 배려를 들 수 있다. 우리 정신문화의 큰 맥을 이루어온 불교문화의 경우에도 보시(布施)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어 이를 열반에 이르는 첫 번째의 길로 평가했다. 유교문화의 경우에도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자손에게도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고 말하며 이웃에 대한 선행을 장려했다. 조선왕조시대 마을 사람들이 지켜야 할 약속 가운데에는 “환난을 서로 구제한다”(患難相救)는 조항이 있었다. 그들은 어려운 이들에 대한 배려를 사회적 의무로 생각했다. 전근대 역사에서는 사회의 안전망이 미비되어 있었다. 그 결과로 일반인들은 환난에 처해 곤란한 사람들을 구호하는 일의 일차적인 책임을 감당해야만 했다. 반면에 근대국가들은 점차 복지사회를 지향해 갔다. 이때에는 국가가 환난 구제의 책임을 당연히 짊어져야 했다. 그러나 국가라는 거대조직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간여할 수 없는 사각지대가 필연적으로 있게 마련이라는 말이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은 국가가 아닌 마음이 따뜻한 민간의 몫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사회에서도 불우 이웃에 대한 베풂은 숭고한 자기희생이며 선행으로 높이 평가되었고, 여러 종류의 모금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불우 이웃에 대한 민간의 선의를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불행을 겪게 된 사람들에게 이를 효과적이며 합리적으로 분배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어 갔다. 아마도 지금의 공동모금회는 이 과정에서 조직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금의 정신을 널리펼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이를 알리기 위해 앙증맞은 빨간색 사랑의 열매를 줄창 가슴에 달고 다녔다. 지 난해 11월이었다. 감사원이 보건복지부의 공동모금회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 직원 공채 과정에서 탈락자를 편법으로 채용했고, 업무용 법인카드를 부당하게 사용한 점 등이 지적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장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공동모금회가 편법과 부정으로 얼룩진 부도덕한 행동을 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비리에 국민들은 실망했고, 상당수가 공동모금에 등을 돌렸다.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에 ‘희망 2011 나눔 캠페인’을 전개했다. 그러나 캠페인은 목표액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조한 결과를 드러냈다. 올해의 모금액은 2072억원이었다. 이는 지난해보다 170억원이 줄어든 금액이었고, 목표액의 92%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목표액의 149%를 모금한 바 있다. 그때와 올해의 성과를 비교해 보면, 비리 사건에 대한 국민의 채찍이 매서웠음을 알 수 있다. 모금된 기금의 운용과 집행과정 등에서 일부 직원들이 저지른 일탈행동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한 따뜻한 마음에 대한 배반이었다. 또한 그것은 이웃을 도와 왔던 우리 문화의 아름다운 전통을 모독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불우이웃돕기 운동이 적지 않은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공동모금회는 사건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이웃돕기의 방법과 운영 및 집행과정의 투명성을 점검하고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불행한 그 사건이 공동모금 자체의 의미를 부정하거나 약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랑의 열매란 무엇인가. 그것은 착한 마음이 모여 이뤄진 아름다운 결정이다. 앙증맞은 빨간색 사랑의 열매는 이웃과 함께 삶을 나누려는 정신의 상징으로 다시 자리 잡아야 한다. 이제는 똑바른 눈으로 공동모금회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지켜볼 시점이다. 진흙 속에서도 연꽃은 피지 않는가. 이제 나도 불행한 과오를 딛고 우뚝 일어설 공동모금운동의 힘찬 모습을 다시 그려보고자 한다.
  • 소설가 김영하 “제자 최고은 ‘아사’ 아냐. 쪽지도 사실과 다르고”

    소설가 김영하 “제자 최고은 ‘아사’ 아냐. 쪽지도 사실과 다르고”

    소설가 김영하씨가 고(故) 최고은 작가의 사인과 관련, 아사(餓死·굶어 죽음)가 아니라고 밝혔다. 김씨는 14일 오전 자신의 블로그에 “고은아, 미안하다. 살아서도 별로 도움이 못되는 선생이었는데 가고 나서도 욕을 보이는구나. 정말 미안하다.”고 전했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고은이에 대해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고은이가 굶어죽었다고 당연히 믿고 있다는데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아마도 최초로 보도된 선정적 기사 때문일 것”이라면서 “신문에서 보도한 쪽지도 사실과는 조금 다르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녀의 직접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선 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라고 고은이의 마지막을 수습한 친구들에게서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고은이는 우울증도 앓고 있었던 것같다.”면서 “친구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개인적 사물들이 정리돼 있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어쩌면 삶에 대한 희망을 서서히 놓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고 안타까운 설명을 했다. 김씨는 “진실은 아직 누구도 모른다. 사람들은 편한대로 믿고 떠들어댄다.”면서 “갑상선 기능항진증은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지고 그러면서 몸은 바싹 말라가는 병이다. 불면증도 뒤따르고 이 불면증은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진실을 외면한채 고은이를 아사로 몰고 가면서 가까웠던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제자 최고은에 대해서는 “재능있는 작가였다.”면서 “어리석고 무책임하게 자존심 하나만으로 버티다 간 무능한 작가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음의 병이든 몸의 병이든 우리 사회가 서로 살피고 돌보는 계기가 되면 그녀의 죽음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씨는 최근 평론가 소조와 ‘낭만주의적 예술관’에 관해 블로그와 트위터로 논쟁을 벌여오다 블로그와 트위터 중단을 선언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격투 황제 표도르 “떠나야 할 시점”

    격투 황제 표도르 “떠나야 할 시점”

    ‘격투황제’가 무너졌다. 에밀리아넨코 표도르가 또다시 충격패를 당했다. 표도르는 13일 미국 이스트러더포드 아이조드센터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스트라이크포스 헤비급 토너먼트’에서 안토니오 실바에게 2라운드 TKO패를 당했다. 10년 가까이 무패행진을 이어갔던 표도르는 최근 8개월 사이 2차례 패배를 기록했다. 심리적 충격이 컸다. 은퇴까지 시사했다. 경기가 끝난 뒤 표도르는 스포츠 전문채널 ESPN과의 인터뷰에서 “아마도 지금이 떠나야 할 시점인 것 같다. 그동안 대단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이 모든 게 신의 뜻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제 격투기 팬들은 더 이상 표도르가 경기장에 서는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변명이 필요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특히 하위 포지션 방어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표도르는 경기 초반 펀치 세례로 실바를 몰아붙였다. 그러나 정타가 없었다. 가격점을 찾지 못하고 상대 가드 위에 주먹이 꽂혔다. 허공을 가르는 주먹도 많았다. 오히려 간간이 던지는 실바의 카운터펀치는 표도르의 얼굴을 정확히 때렸다. 표도르의 펀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펀치가 잦아들자 실바는 곧바로 그라운드를 노렸다. 2라운드 시작하자마자 표도르는 실바에게 테이크다운을 내줬다. 밑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벗어나질 못했다. 15㎏에 이르는 체중 차도 문제였지만 실바의 그라운드 실력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실바는 아예 가지고 놀았다. 리어네이키드 초크, 니바 등 다양한 서브미션 기술을 시험하듯 걸었다. 표도르 위에 올라탄 채 무차별적인 파운딩 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표도르는 간신히 2라운드를 버텼지만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 오른쪽 눈이 찢어지고 피멍이 들었다. 만신창이 상태였다. 표도르의 상태를 점검한 의사는 경기를 중단시켰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중앙亞 ‘고려인 문학’ 찾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민족의 역사는 150년을 헤아린다. 50만명이 넘는 이들은 ‘고려인’으로 불린다. 구 소련 지역에서 살아온 그 후예들은 소수민족으로 살며 벌써 5세, 6세까지 거슬러 내려왔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도 문학을 누리고 산다. 러시아어가 아닌, 어머니 나라의 언어로 시를 쓰고, 소설을 쓴다. 우리 민족 문학사의 지워진 조각, ‘고려인 문학’이다. 국제한인문학회장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경희대 국문과 교수는 최근 고려인들이 쓴 문학 작품을 발굴, 집대성해 ‘중앙아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문학’(국학자료원 펴냄)을 내놓았다. 강태수, 리 왜체슬라브, 리시연 등 고려인 작가 8명의 시 46편, 소설 4편, 수필 2편, 희곡3편 등 모두 55편의 새로 발굴한 작품들이 실렸다. 지난해 8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와 고려인 첫 정착지 우슈토베 등을 방문해 국제학술회의를 갖는 한편 자료 발굴 및 수집한 결과물이다. 그동안 문단에서도 파편적으로나마 개별 작가론, 작품론 등을 통해 고려인 문학이 드문드문 소개되고 다뤄진 바 있다. 반면 ‘…디아스포라문학’은 이것을 뛰어넘어 한민족 문화권이라는 구도 속에서 고려인 문학의 위상과 의의를 총체적으로 살펴봤다는데 의미가 있다. 고려인 문학의 뿌리 역할은 조명희(1894~1938)의 몫이었다. 연해주 한인 신문인 ‘선봉’에 문예면을 마련했고, 카자흐스탄으로 옮긴 이후에는 ‘선봉’의 후신으로 ‘레닌기치’, ‘고려일보’를 창간해 고려인 문단 형성의 화수분 역할을 했다. 강태수, 조기천, 연성용 등 고려인 문인 후배들도 이끌었다. 실제로 이정숙 한성대 국문과 교수, 정호웅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고인환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등 국제한인문학회, 중앙아시아한국학회,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소속 고려인 문학 연구자들의 연구 논문이 실린 책의 1부가 고려인 문학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면, 발굴 작품들의 원문이 실린 2부는 구체적인 생김을 만지고 접할 수 있게 해준다. 김종회 교수는 “현지 고려인들의 연령 분포나 새로운 세대의 의식 변화 등을 감안하면 이번 성과는 아마도 우리말로 창작한 세대의 마지막 유품에 해당할 것”이라면서 “발굴된 작품들이 문학적 성취나 예술적 가치가 다른 디아스포라 문학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부분을 상회하는 역사적 삶의 자료로서 존재 의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책꽂이]

    ●우등생 자기주도 학습법(백종화 지음, 아주좋은날 펴냄) 엷은 귀로 조바심내는 부모는 무관심한 부모만 못하다. 아동학 박사인 저자는 아이를 땅속에서 성장하다가 4년이 지나서야 죽순으로 삐죽 솟는 대나무에 비유하면서 꾸준하게 즐기며 공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부모 스스로 갖출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아이와 신뢰관계 갖기, 좌절하지 않도록 도움주기, 효과적으로 칭찬하기 등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습관을 갖도록 도울 수 있는 ‘자기주도 학습 5단계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1만 2000원. ●인도, 끓다(이재강 지음, 지식의숲 펴냄) 여행과 명상의 나라로만 알려져 있는 인도의 정치사회적 실체를 보여준다. 뭄바이 테러, 칸다말 학살 등을 직접 취재한 생생한 기록이 담겼다. 정치적 대립, 종교 갈등, 카스트제 차별 등 신비한 영적 이미지 안에 들어 있는 인도의 생생한 실체를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다. 인도가 신의 나라만이 아닌, 사람이 사는 나라임을 확인시켜준다. 1만 3500원. ●구글 완전 활용법(강재욱·김응석·신호승·양재봉 지음, 이지스퍼블리싱 펴냄) 외국어를 못해도 일본, 러시아, 중국, 미국의 사업 파트너와 번역 로봇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사내 인트라넷도 무료로 만들 수 있다. 웹사이트 만들기도 클릭 네번이면 충분하다. 외국 사이트 검색 기능도 척척이다. 제목 그대로 구글을 제대로 쓰는 법에 대한 설명서다. 1만 6000원. ●가위이야기(최정아 지음, 고즈윈 펴냄) 20년 동안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져온 이가 쓴 산문집이다. 오랜 시간 한 직업에 천착한 이가 보여줄 수 있는 핍진함이 문장마다 서려 있다. 때로는 미용 가위의 입을 빌려, 때로는 매만져지는 머리카락을 빌려 삶과 사랑, 유년의 기억과 가족의 얘기를 풀어간다. 소박한 생활의 아름다움이 잔잔히 전달된다. 9500원. ●사랑을 디자인하다(김희성 지음, 금빛날개 펴냄) 군산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이며 한국디자인산업 1세대인 저자가 쓴 자전적 소설이다. 청춘 시절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여러 형태를 자신과 주변 이야기를 버무려 풀어간다. 40대에 문득 찾아온 사랑, 육촌 동생에게 품었던 연심, 교수와 제자의 사랑, 마도로스와의 사랑 등이 풋풋함과 금기의 영역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1만 5000원.
  • 美도 “北 추가도발 시도할 수 있다”

    남북 간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된 가운데 북한이 후계구도의 안정을 위해 추가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는 미국 정보당국의 보고서가 나왔다.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10일(현지시간) 하원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연례 안보위협 보고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의 후계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연평도 포격과 같은 추가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잇단 도발이 후계 체제 구축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DNI 산하 16개 정보기관의 정보사항을 모은 것으로, 매년 의회에 제출된다. 보고서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김정은의 리더십과 정권 엘리트 집단 내 군부의 신뢰도에 빛을 내주기 위한 의도’에 따른 것으로 규정했다. 클래퍼 국장은 “때문에 김정일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엘리트 집단의 충성도와 지지가 의심스럽다고 생각될 때에는 김정은을 강인하고 용맹스러운 지도자로 부각시키려고 추가 도발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후계과정이 여전히 잠재적 취약성을 갖고 있으며, 김정은이 권한을 강화하기 전에 김정일이 사망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핵에 대해 보고서는 “북한은 핵무기를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전제하고 “북한이 핵기술을 또다시 수출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핵장치 실험을 실시했지만 실제 핵무기를 생산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클래퍼 국장은 우라늄 농축과 관련, “북한이 상당한 시간에 걸쳐 추구해 왔을 것으로 보이며, 자국 내에 원심분리기 제조시설 등 우라늄 농축과 관련된 다른 시설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하는 가장 큰 이유로 ‘재래 전력의 취약성 보완’을 꼽으면서 “후계자 김정은도 이를 쉽게 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클래퍼 국장은 “북한은 핵무기를 억지력과 강압적인 외교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따라서 우리는 북한이 매우 제한된 환경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검토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북한은 군사적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거나 되돌릴 수 없는 손해를 감수하지 않는 한, 비록 확신은 적지만 아마도 미군 혹은 미국 영토를 겨냥해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에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빠져 북한에 여지를 주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보고서는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한편 클래퍼 국장은 중국이 ‘글로벌 파워’로서의 자신감을 키우면서 인접국과 분쟁을 빚을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지난달 방미(訪美) 당시 국제 평화에 전념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더욱 적극적인 중국의 행태를 부채질하거나 인접국과 영해를 놓고 의도하지 않은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퇴진 임박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시위가 17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흐메드 샤피크 이집트 총리가 10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할 가능성이 있다며 곧 모든 상황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밝혔다고 영국 BBC 방송은 전했다. BBC는 무바라크의 퇴진 발표가 임박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군 고위 간부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국민들의 요구를 모두 다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집권 여당인 국민민주당의 호삼 바드라위 사무총장은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날 밤 아마도 대국민 연설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군 관계자들은 11일까지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AP 통신도 이날 이집트군과 집권당 간부들의 말을 인용,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는 내용의 발표를 곧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집트군은 또 국가를 보호하고 국민의 적법한 요구를 지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음을 AFP 통신은 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암살되자 부통령으로서 권력을 승계,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집트에 머물지 독일 등 제3국으로 망명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블룸버그 통신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하면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권력을 인계받고 헌법 개정 및 대선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이날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직 및 중산층이 대거 총파업에 가담하며 거리 시위에 속속 합류하는 데다 버스 운전사, 운하 근로자 등 노동자들의 총파업 및 시위 참여가 확산됐다. 시위대는 또 11일 금요 예배 후 ‘100만명 항의 집회’를 강행하겠다고 압박했다. 또 당초 정부는 군 개입을 경고했으며 이집트 외교부도 미국의 계엄령 즉각 해제 요구를 비판했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9) 부산 기장 죽성리 곰솔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19) 부산 기장 죽성리 곰솔

    나무가 사람을 품었다. 한 그루만으로는 사람들의 마음과 뜻이 지나치게 컸던 때문일까. 다섯 그루가 한데 모여서, 사람의 희망과 소원을 켜켜이 담은 서낭당을 품었다. 처음엔 여섯 그루를 심고 그 나무들 가운데에 돌무지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로부터 30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돌무지 탑 대신 서낭당이 들어섰고, 여섯 그루의 나무 가운데 한 그루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눈 씻고 당집을 여러 차례 돌아가며 짚어봐야 다섯 그루뿐이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사람들이 들고 났던 것처럼 나무도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것이다. ●윤선도가 7년 유배 생활했던 마을 미역으로 유명한 부산 기장군의 어촌 마을, 기장읍 죽성리는 대나무가 많고 성곽이 있다 해서 죽성(竹城)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세월 지나며 그 많던 대나무도 사라졌고,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지었다는 성곽도 푸른 이끼에 휩싸였다. 그러나 여전히 120가구의 삶이 오롯이 살아 있는 비교적 큰 마을이다. 꿈을 안고 대처로 떠난 사람도 있겠지만, 좌절된 꿈을 부여안고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조선 중기의 시인 윤선도가 그렇다. 1618년에 윤선도는 이 마을에 들어와 7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그는 소나무 몇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는 바닷가의 작은 둔덕에 황학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황금빛 학이 날아오르는 바위라는 뜻으로, 이백과 도연명의 자취가 남아 있는 양쯔강의 황학루를 떠올린 것이다. 황학대 뒤편으로 이어지는 낮은 동산 마루에 커다란 나무가 있다. 국수당이라고 부르는 마을 서낭당을 품고 서 있는 다섯 그루의 곰솔이다. 멀리서 바라봐도 이 정도면 마을의 자랑이라 할 만큼 훌륭한 나무다. “저 나무가 얼마나 귀한 나무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 절반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거든. 하지만 여기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한테 저 나무는 버팀목이지. 언제 심은 나무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 어릴 때에도 저만큼 컸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이면 나무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어.” 이곳에서 태어나 80년 동안 한집에서 살아온 장묘윤(80) 노인의 이야기다. 사람 좋은 표정으로 나그네를 방 안에 들인 노인은 엎드려 누운 채 나무 이야기를 풀어낸다. 불편해 보이는 몸이지만 싱그러운 기색이다. 나무 이야기에 신명이 담겼다.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일어나질 못해. 네 살 때 곱사등이가 돼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지. 요즘이야 잘 고치는 병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 그 바람에 멀리 나가지 못하고, 팔십 평생 그저 저 나무만 바라보며 살았지.” ●사람이 심은 나무가 되레 사람을 지켜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람들은 하늘을 바라본다. 죽성리 사람들이 바라보는 그 하늘 가장자리에는 큰 나무가 걸려 있다. 부산시 기념물 제50호인 기장 죽성리 곰솔은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모든 기쁨과 슬픔을 보듬어 안고 살았다. 처음에야 사람이 나무를 보살폈겠지만, 사람의 도움으로 잘 자라난 나무는 이제 거꾸로 사람을 지켜주는 듬직한 나무가 됐다. 자동차는 언감생심 드나들 수 없는 좁은 골목길. 나무는 그 길 너머 마을 뒷동산 마루에 우뚝 서서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버팀목 노릇을 했다. 돌무지 탑 대신 당집을 처음 놓은 게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섯 그루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 잡은 당집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견고하다. 마을 사람들은 곰솔 가운데의 서낭당을 국수당이라고 부른다. 국수당은 서낭당의 다른 이름으로, 옛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지은 당집이다. 당산나무 근처에 당집이 있는 게 남다르다 할 건 없지만, 여러 그루의 큰 나무가 서낭당을 둘러싸고 있는 경우는 아마도 유일한 풍경이지 싶다. “누가 심었는지는 알 수 없어.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옛날에 여섯 어른이 한 그루씩 심은 나무라고만 알고 있어. 국수당은 몇 차례 다시 지은 거야. 나무야 세월 지나도 끄떡 없지만 사람이 지은 당집은 허물어지게 마련이잖아.” 다섯 그루의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12m 넘게 자랐고 제가끔 펼친 품을 합하면 무려 20m를 넘는다. 그중 한 그루는 아예 긴 세월 동안 지탱해온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제 가지를 땅 바닥에 내려놓을 참이다. 머지않아, 언덕 위에 무거운 제 몸을 가만가만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천천히 다가설 듯하다. ●다섯 그루가 모여 빚어 더 아름다운 풍경 더 놀라운 건 다섯 그루의 나무가 마치 잘생긴 한 그루의 나무처럼 서로를 배려하며 지어낸 풍경이다. 가지를 한껏 뻗어 냈지만, 다른 나무의 자람을 방해하지 않는 쪽으로만 멀리 뻗어 냈다.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나무는 온 힘을 다해 바다 쪽으로 가지를 뻗었고, 마을에 가까이 서 있는 나무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몸을 풀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햇살만으로 이토록 옹골차게 제 살림살이를 꾸려냈다. 결국 한 그루로서는 도저히 지어낼 수 없는 장관을 이루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아름다운 한 그루의 나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도 이 다섯 그루의 나무를 복수형으로 부르지 않고 단수형으로 그저 ‘국수당 곰솔’ 혹은 ‘우리 나무’라고 부른다. “워낙 생김새가 좋은 나무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 그래서 오년 전에는 마을 당산제와 별도로 별신굿을 크게 올렸지. 일주일 동안 굿을 지냈으니 얼마나 컸는지 알 만하지.” 창밖으로 어둠이 짙게 내렸지만 장 노인의 나무 이야기는 끝 모르고 이어진다. 그의 삶을 짓누른 등짝만큼 고통스러웠던 삶의 무게를 나누어 품었던 나무에 대한 경배이지 싶다. 세상의 모든 나무가 사람살이를 더 아름답고 평화롭게 한다지만, 기장 죽성리 곰솔만큼 사람살이를 온몸으로 품는 나무는 흔치 않음이 틀림없다. 글 사진 부산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부산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249. 기장군을 가려면 부산 울산 간 고속국도의 기장 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좋다. 나들목에서 4㎞쯤 남쪽으로 가면 기장군청이 나온다. 군청 정문에서 남쪽으로 500m 가면 나오는 오거리에서 7시 방향으로 돌아 신천리로 들어선다. 2.7㎞ 가면 죽성초등학교가 나오는데, 학교를 지나면서 곧바로 오른쪽으로 난 좁다란 길로 들어서면 언덕 위로 나무가 보인다. 마을 안 골목이 비좁아 자동차는 마을 입구의 공터에 세워야 한다.
  • 공중에서 ‘패싸움’ 하는 새 3마리 순간포착

    새 3마리가 공중에서 ‘패싸움’을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야위버(Baya Weaver)라 불리는 이 새들은 둥지 밖에서 부리로 서로를 공격하다 기이한 사슬형태를 만들어냈다. 사진을 찍은 인도출신의 동물사진전문작가 크리쉬넌(45)은 “싸움을 하고 있는 새 중 한 마리는 수컷, 나머지 두 마리는 암컷이며, 이들은 수컷을 사이에 두고 공중다툼을 벌이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새 3마리가 독특한 형태로 얽혀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본능적으로 카메라 렌즈를 들어 이들을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새들이 더 얽혀있는 모습을 찍고 싶었지만 새들이 워낙 작고 빨라서 매우 힘들었다.”면서 “아마도 수컷과 이 수컷이 만든 둥지를 둘러싸고 두 암컷이 ‘결투’를 벌였고, 수컷은 이리저리 날며 이들의 ‘분쟁’을 막는데 주력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바야위버 3마리의 공중다툼 장면은 인도 뭄바이의 한 습지대에서 촬영됐다. 크리쉬넌은 “2마리 이상의 새들이 단체로 공중에서 다투는 모습은 좀처럼 찍기 어려운 광경”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편 바야위버는 다른 새들에 비해 매우 견고하고 아름다운 둥지를 만들기로 유명한 새다. 옷감을 짜는 직조공이란 뜻의 ‘위버’(weaver)에서 이름을 가져왔을 만큼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둥지를 짓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최윤덕 장상 생가 복원”

    일본 대마도를 정벌하고 무인으로는 유일하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정렬공(貞烈公) 최윤덕(崔潤德) 장상(將相·장군+재상)의 생가가 복원된다. 경남 창원시는 7일 창원의 역사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창원이 낳은 역사적 인물인 최 장상의 동상을 지난해 11월 건립한 데 이어 최 장상의 생가를 복원한다고 밝혔다. 시는 최 장상의 생가 터로 알려진 의창구 북면 내곡리 1096 등 3필지 2840㎡에 50억원을 들여 생가와 정승샘, 진입로와 주차장 등의 부대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창원시가 복원을 추진하는 생가 터는 지방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돼 있다. 시는 오는 6월 최 장상의 생가복원을 위한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수립 용역을 거쳐 내년에 부지를 매입한 뒤 2013년부터 생가 복원 공사를 할 방침이다. 앞서 시는 지난해 11월 시청 옆 창원광장 중앙로 입구에 길이 7.8m, 높이 6.5m, 무게 6t(청동) 규모로 최 장상이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마상을 건립했다. 최 장상은 1376년(고려 우왕 2년) 창원시 북면 내곡리에서 태어나 19세(태조 3년·1394년)에 무과에 장원급제한 뒤 1419년(세종 원년) 삼군도절제사가 돼 출병 15일 만에 대마도를 정벌했다. 압록강유역 4군을 개척하는 등 우리나라 영토를 확장하는 데 앞장선 공을 인정받아 무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CEO 칼럼] 또 하나의 새로운 봄을 기대하며/장영철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CEO 칼럼] 또 하나의 새로운 봄을 기대하며/장영철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이번 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유난히 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온난화에 익숙해지면서 “이제 겨울은 더 이상 춥지 않을 거야.”하는 믿음을 가졌는데, 이번 동장군은 어찌 그리 혹독한지! 한반도가 지구온난화의 영향권에 놓이면서 여름에는 열대성 폭우가 빈발하고, 동해안에는 더 이상 냉대성 어류인 명태를 찾기가 힘들어졌으며, 사과의 재배한계선이 강원도까지 북상했다. 심지어 서해안에서는 상어가 출몰하기도 해 ‘조스’의 악몽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다. 이상기후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한달가량 지속된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를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학계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서 생긴 냉기류가 따뜻한 남쪽으로 떠밀려 내려오면서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가 모스크바 날씨보다 추웠다고 한다. 아마도 지구온난화라는 새로운 충격이 정착되어 가는 과정에서 예상외로 발생한 일이라고 짐작은 하지만, 삼한사온이 실종되면서 진정 봄은 올 것인가 하는 걱정이 슬그머니 생겨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상기후가 우주계의 순환법칙을 능가할 수는 없는 법. 사계절의 순환이 뚜렷한 한반도에서 혹독한 한파도 봄을 막지는 못했다. 입춘(立春)이 지나면서 봄은 어김없이 어느새 우리 곁에 살며시 다가왔다. 우리 경제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이상추위를 맞았지만 국민과 정부가 합심하여 견뎌냈고, 이제 경기회복이라는 완연한 봄 기운을 느끼고 있다. 2009년 0.2%라는 제로성장 상태에서 벗어나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인 6.1%의 성장률을 달성했고, 올해도 5% 수준의 성장이 전망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한민국의 대운(大運)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상추위처럼 혹독하게 찾아와 우리 경제에 시련을 안겨주었으나,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국민의 단합된 의지로 금융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했다. 재정정책은 역사 이래 국가가 행하는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 중 하나로서, 재정의 파급효과가 서민층에게 돌아가게 함으로써 국민을 하나가 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역사상 성공적인 재정정책의 사례는 매우 많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시대에 미국의 테네시강유역개발계획(TVA) 등 뉴딜정책이 대표적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도 그 예를 찾기가 어렵지 않다. 중국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蘇東坡)는 항저우(杭州)자사로 재임 중에 가뭄과 연이은 홍수로 백성들의 삶이 곤궁해지자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그 아름다움을 글로 옮겼던, 서호(西湖)에 남북을 가로지르는 긴 제방을 축조했다. 제방을 쌓아 홍수를 방지하는 한편 백성들의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었다. 소제(蘇堤)라고 불리는 이 제방은 지금까지도 소동파의 애민정신의 상징으로서 항저우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의 극복을 위해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펼쳤다. 경제위기 초기단계인 2009년도에 29조원의 예산을 추가 투입하고,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40조원 규모의 구조조정기금을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설치하여 위기를 극복했다. 겨울이 춥지 않으면 병충해로 이듬해 농사를 망친다고 한다. 우리 국민과 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혹한기를 내실을 다지고 경제 체질을 선진화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다. 추운 겨울 뒤에 풍년이 드는 것처럼 우리 경제 또한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하면서 서민들이 고루 잘살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새로운 봄이 오고 있다. 이번에 찾아온 봄은 예년과는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경제위기를 우리 힘으로 극복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 성취한 ‘새로운 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값진 경험이 세계 모든 나라에 전달돼 그들도 우리처럼 위기를 극복해 ‘또 하나의 새로운 봄’을 맞기를 소망해 본다.
  • 김병현 ‘낮은 몸값’ 무엇을 의미하나

    김병현 ‘낮은 몸값’ 무엇을 의미하나

    올해 일본야구에 뛰어든 김병현(라쿠텐)의 몸값 총액은 3,300만엔(추정, 한화 4억 4700만원)에 불과하다. 계약금을 포함한 이 금액은 외국인 선수치곤 헐값이다. 지난해 일본진출 첫해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웠던 맷 머튼(한신)의 연봉은 5,000만엔, 이범호(당시 소프트뱅크)가 1억엔을 받았다는 사실로 비춰볼때 최저연봉 수준이다. 라쿠텐이 김병현을 영입한 것은 팀의 취약부분인 마무리의 중책을 맡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김병현이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미빛 전망만 있는것은 아니다. 그 역시 팀내 마무리 투수 후보들과 경쟁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김병현의 낮은 몸값이 이걸 방증한다. 이름값만 놓고 보면 절대믿음이지만 그 역시 부활이란 명제를 안고 있다. 일단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구상하는 마무리 보직의 후보는 모두 4명이다. 김병현을 비롯해 코야마 신이치로,이노우에 유스케, 그리고 루키 미마 마나부다. 경쟁을 통해 서로를 자극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감독의 이러한 구상에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 김병현의 무혈입성은 애초부터 가능성이 없었다. 미국보다는 덜하지만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그것도 오랫동안 실전감각이 없는 김병현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김병현과 경쟁하게 될 투수들의 기량은 어느 정도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병현을 제외한 3명의 후보 선수들 역시 마무리 투수로서 뭔가가 부족한 선수들이다. 선수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 호시노 특유의 계산된 립서비스는 향후 전개될 동계훈련의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 언론에 툭툭 내뱉은 한마디가 곧바로 기사화가 되는 일본의 특성상 호시노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가장 대표적인게 올 시즌 입단한 미마 마나부다. 호시노는 캠프가 차려진 오키나와 구메지마에서 지난해 아시안게임 대표팀 투수로 활약했던 미마를 마무리 후보감이라고 언급했다. 전문마무리 투수로서 자질을 실험하는겠다는 것. 미마는 168cm의 단신이지만 최고 153km의 포심패스트볼을 뿌린다. 또한 슬라이더,커브,싱커 등 변화구도 수준급이어서 즉시전력감으로 손꼽히는 투수다. 빠른공을 보유한 젊은 투수들은 선발투수로 키워내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미마는 프로입단 전 뛰었던 도쿄 가스 시절 부상으로 인해 여러차례 고생했던 전력이 있는 선수다. 관절부위가 건강하지 못해 빠른 공보다는 변화구 위주, 그리고 최근에는 견갑골쪽에도 부담을 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수의 견갑골은 투구시 체중을 장전(Load)해야 하는 중요한 곳이다. 아마도 미마의 이러한 몸상태를 감안해 그를 선발보다는 마무리 투수로 키워보겠다는 호시노의 의중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마는 올해 프로에 입단한 신인이라는 사실이다. 미마가 정규시즌에서 마무리 역할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뜻이다. 미마의 목표는 1군 엔트리에 포함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봤을때 어울리는 기대치다. 이노우에를 언급한 것도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2008년 드래프트에서 4순위로 라쿠텐에 입단한 이노우에는 부상으로 인해 2009년을 허송세월로 보냈다. 최고 148km의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컷패스트볼을 던지지만 아직 프로 1군에서 뛸만한 기량이 못된다. 제구력을 더 가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노우에는 1군에서 7이닝(불펜으로)을 던져 무려 4개의 피홈런을 허용할 정도로 즉시전력감으로서는 미흡하다. 호시노가 마무리 후보감으로 이노우에를 언급한 것은 좀 더 기량을 쌓으라는 우회의 표현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올 시즌 김병현의 적수는 코야마 신이치로가 될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라쿠텐은 ‘쓰리마운텐즈’ 즉, 코야마 신이치로-아오야마 코지-카타야마 히로시로 이어지는 강력한 불펜 3인방을 자랑했던 팀이다. 이중 코야마는 중간과 마무리를 오가며 11세이브(59.2이닝, 평균자책점 2.41)를 올리기도 했다. 1996년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주니치 드래곤스에 입단했던 코야마는 2005년 라쿠텐으로 이적하면서부터 꽃을 피우고 있다. 프로에서는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다. 최고 153km의 포심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싱커의 변화구 주무기를 갖춘 코야마는 투구시 백스윙이 매우 짧아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투구폼이 인상적이다. 셋트포지션시 제구력이 다소 흔들리는 경향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는 있지만 이정도면 팀내에서 김병현을 위협할수 있는 유일한 투수다. 최근 몇년간 해가 바뀔수록 성적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김병현이 스프링캠프동안 이른 구위회복이 절실한 것도 바로 코야마가 존재하고 있서서다. 김병현의 옛명성은 누구나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김병현은 팀내 투수들과 경쟁을 해야하는 입장이다. 김병현이 코야마로 인해 동기부여를 이끌어 낼지, 그리고 이번 캠프에서 얼만큼 자신의 기량에 근접할지가 기대된다. 분명한 것은 올해 라쿠텐의 전문마무리 투수는 확정된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 [행정의 달인 29인을 말하다] (4) 공간개선 분야

    [행정의 달인 29인을 말하다] (4) 공간개선 분야

    지방행정의 달인이 회가 거듭할수록 독자들의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달인은 공간개선분야 달인들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축구형 모형 화분디자인을 개발한 달인, 색깔있는 벼로 자기 고장을 알리는 농촌지도사, 주민들의 손길이 깃든 항아리 등으로 소공원을 꾸민 달인, 한라산 지킴이 등이다. 5회인 전기기계분야 달인은 2월 7일자에 소개한다. ■‘발상의 전환자’ 충북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최병열 씨 유색벼로 그린 논그림 찬사… 올 달나라 토끼 도전 “발상의 전환이 충북 괴산군을 전국에 알렸습니다.” 충북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최병열(46) 농촌지도사는 유색벼를 활용한 논그림으로 공간구조 개선분야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선정됐다. 최씨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세가지 유색벼(황색, 자주색, 녹색)를 활용해 논에 그림을 그린 것은 2008년 4월이다. 2200만원을 들여 감물면 이담뜰의 논 2.3ha를 임대해 가로 100m, 세로 150m 크기의 상모돌리기 그림을 연출했다. 바닥을 평탄하게 만든 논을 가로·세로 1m 간격으로 세분화해 석회로 밑그림을 그리고 20여명이 투입돼 모내기까지 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15일. 이런 과정을 거쳐 거대한 논그림이 완성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괴산에 유색의 ‘미스터리 서클’이 나타났다며 국내 언론에서 앞다퉈 취재했고 일본 농업인 신문에도 보도됐다.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를 비롯해 ‘농경과 원예’, ‘그린매거진’, ‘청정 충북농업’, ‘새농사’ 등 각종 농업책자에도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논그림은 연간 3만 5000여명이 다녀가는 괴산의 관광명소가 됐다.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김민기 교수는 논그림의 홍보가치를 2200억원으로 평가했다. 군은 개청이래 최대 홍보효과를 가져왔다며 2009년 최씨에게 1호봉 특별승급 포상을 줬다. 논그림이 탄생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최씨의 집념이 있었기에 기발한 아이디어는 빛을 볼 수 있었다. 최씨는 2005년 일본 해외연수 도중 농업연구소에서 황색을 띠고 있는 유색벼를 보고 논그림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씨는 유색벼 종자증식을 위해 재배와 연구를 반복했다. 2007년에 초기물량보다 100배나 증가한 유색벼를 확보했다. 색상은 황색, 자주색, 검붉은색, 흰색, 녹색 등 총 다섯 가지를 갖췄다. 2006년 괴산군 발전전략 과제로 ‘유색벼를 이용한 논그림’을 제안했지만 채택되지 않았고, 2007년에는 군에 예산을 요구했지만 또다시 외면 당했다. 그러나 최씨는 개인 돈으로 육묘상자와 못자리상토를 구해 볍씨를 파종하고 육묘를 하는 등 포기하지 않았다. 농업기술센터 내에 ‘농촌사랑’이라는 군정연구 동아리까지 만들었다. 이런 노력 끝에 탄생한 논그림은 ‘유색벼를 이용한 논그림 형성방법’이라는 이름으로 2008년 특허출원됐다. 경기도 시흥시는 최근 2000만원을 괴산군에 주고 기술이전을 해갔다. 최씨는 논그림을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논그림과 주변관광지를 연계해 새로운 관광상품을 만들고, 논그림 주변에서 전국 사진촬영대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도시 소비자들을 논그림 작업에 참여시키고 논그림 이름 붙이기 이벤트도 계획하고 있다. 최씨는 “올해는 토끼의 해를 맞아 토끼가 달나라에서 떡방아를 찧는 모습을 연출할 계획”이라며 “농촌도 이제는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괴산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공공 조경연출 1인자’ 경기 수원시 녹지과 주무관 최재군 씨 평면 개념 화단 입체화… 지속 가능 생태녹지 조성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은 모두 훌륭한 조경 재료입니다.” 도시화단 조성의 달인으로 뽑힌 경기 수원시 녹지과 최재군(44·녹지7급)주무관의 꿈은 공공분야 화단연출의 1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1996년 임업직 공무원에 도전, 지금까지 15년째 지방 녹지 업무를 담당하며 수원시의 도시 환경을 획기적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그가 연출한 축구공 모형 화분은 국내외 관람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평면 개념의 화단을 입체화한 첫 시도였다. 최 주무관은 “당시까지만 해도 공공 화단연출은 88 서울올림픽 때처럼 주요도로 곳곳에 단품종의 꽃을 심는 수준에 그쳐 도시 환경과 어울리지 않았고, 시민들의 눈길도 끌지 못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인 만큼 월드컵 열기를 높일 수 있는 소재로 축구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최 주무관의 손길은 화단연출에서 그치지 않았다. 수원시민이 즐겨 찾는 수원천을 가꾸기 위해 2003년부터 심기 시작한 튤립이 수원천 일대를 가득 채우기 시작하면서 2007년 ‘수원천 튤립축제’로 발전했다. 별도의 사업 예산 없이 일반 조경 사업비를 활용해 개최한 튤립축제는 연인원 30만명이 찾는 대표적인 저예산 지방축제로 자리잡았다. 겨울철 시골 농수로 펌프는 최 주무관의 눈을 통해 얼음공원으로 재탄생 했다. 최 주무관은 “꽃이 살 수 없는 겨울에도 수원천 주변을 가꿔 1년 내내 주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싶었다.”면서 “농수로 펌프 끝에 물이 얼어 있는 것을 보고 얼음공원을 만들어 보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원천 얼음공원은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술을 배워가면서 주요 지자체 겨울 문화로 성장하고 있다. 공공화단 연출뿐만 아니라 상용 화분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최 주무관은 매일 화분에 물을 주는 번거로움을 줄이는 방법으로 등잔(燈盞)을 주목, 심지 급수 화분을 개발했다. 심지 급수 화분은 화분 속에 물탱크와 부직포를 이용한 심지를 설치해 식물이 원하는 양의 물을 스스로 흡수하도록 한 화분이다. 그는 이제 화단 연출을 넘어 지속가능한 생태녹지(ESSG)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생태녹지란 녹지 내 생태계가 선순환하는 것으로 광교신도시와 호매실지구 도시개발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들 도시에는 가로수와 조경 품종 등을 다양화해 병해충 발생을 줄이고, 토양오염 없는 천연의 숲을 조성할 방침이다. 최 주무관은 “녹지라고 해서 단순히 잔디공원만을 만드는 곳이 많다.”면서 “잔디는 관리를 위해 제초제를 많이 사용하게 되고, 과도한 제초제 사용으로 녹지가 토양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최 주무관은 “우리나라 조경의 발전과 생태도시 건설을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면서 “임업직 공무원의 직분을 다한 뒤에는 후배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마이더스 손’ 전남 진도군 환경미화원 전석환 씨 항아리·절구통 등으로 만든 15개 소공원 지역 명소로 전남 진도군에서 환경미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전석환(45)씨는 ’진도의 마이더스 손’으로 불린다. 아무 쓸모 없는 폐기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예쁜 조형물이 되고, 관광명소가 되기 때문이다. 진도군은 잊혀져 가는 농촌의 애환을 되새기고 추억을 더듬는 시골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2007년 ‘아름다운 연도변 가꾸기’사업을 추진했다. 전씨는 이 사업을 위해 진도군의 관문인 국도 18호선을 따라 유휴지 및 버려진 땅을 골라 대나무와 항아리 등을 활용해 원두막, 마차, 장독대, 물레방아, 항아리 조형물 및 수세미 덕을 만드는 등 15개의 소공원을 조성했다. 소공원은 지역 명물 공원으로 발전돼 관광객들에게 사진 촬영과 스토리 텔링의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 예술가가 아니기에 전씨가 만든 조형물들은 엉성한 면도 있지만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소박하고 투박한 예술성을 감미했다며 이곳을 자주 들르고 있다. 조형물로 사용했던 절구통, 항아리들은 모두 관내 주민들이 기증한 것들이었으며, 창고에 방치된 먼지투성인 항아리가 전씨의 손을 거쳐 독특한 예술 작품이 되었고 이후 ‘마이다스 손’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같은 사실이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항아리를 기증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17세에 섬마을에 시집 와 바깥 뭍 구경 한번 못하고 한 평생을 산 80세 할머니는 섬에서 살면서 자신의 혼이 담겨있는 절구통과 항아리 등의 소장품을 좋은 일에 사용하라고 선뜻 내놓아 직원 모두가 감명을 받기도 했다. 전씨는 기증한 항아리 등을 수집하러 갈 때마다 만나는 주민 모두 그 물건에 사연과 애정이 스며있단 걸 느꼈다. 이 점에 착안해 기증한 주민들의 애정을 담고자 ‘희로애락이 깃든 항아리 100인상’을 만들게 되었다.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우리네 삶의 다양한 모습을 주제로 항아리에 담아냈다. 친정어머니의 유품인 항아리를 기증한 주민은 고물장수에 팔려고 했었는데 멋진 조형물로 변모하게 돼 지나갈 때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생각난다며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2009년 희망근로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1만 5000㎡ 규모의 항아리 수생식물공원이 조성되었다. 전씨는 이곳에도 그동안 쌓아온 실력을 총 결집해 물레방아, 항아리탑, 춤추는 항아리, 통나무다리 등을 만들어 전시하게 되었다. 이후 항아리 수생식물공원은 개인 블로그와 입소문을 타고 현재 진도의 숨겨진 명소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전씨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도로변에 수천, 수억원을 들여 랜드마크나 야간 조명 시설 등 경관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비해 작은 비용으로, 또 주민들이 참여해 함께 만들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전씨는 “콘크리트 바닥으로 대변되는 청소년들과 원두막의 향수를 가진 세대들, 그리고 외지인들이 진도를 ‘전통미 넘치는 소박한 시골길’로 아로새겼으면 더할 나위 없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진도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35년 한라산 지킴이’ 제주 한라산 국립공원관리부 청원경찰 신용만 씨 고산식물·풍경 등 DB화… 세계자연유산 등재 힘써 “한라산은 저의 전부입니다. 우리나라, 나아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한라산을 만드는 게 저의 평생의 꿈입니다.” 해발 1950m 남한 최고봉 한라산을 매일같이 오르 내리는 신용만(59·한라산국립공원관리부 청원경찰)씨를 두고 제주사람들은 ‘한라산 지킴이’라 부른다. 35년간 한라산국립공원에서 청원경찰로 일하면서 아마도 3만번은 한라산을 올랐다는 신씨. 그가 한라산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76년. 한라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한라산의 매력에 빠져 청원경찰로 한라산과 동거를 시작했다. 한라산은 전국의 청원경찰 근무지 가운데 기상 환경이 가장 혹독한 곳이다. 연평균 4도 이하 기온, 해발 1700m 이상 지역에서 매주 1회 이상 숙박하며 밀렵 등 불법행위를 단속하는 게 지난 35년간 신씨의 일상이었다. 신씨의 주 업무는 한라산을 훼손하는 불법행위 단속이다. 그는 매일 단속활동과 병행해 한라산의 모든 것을 하나하나 기록하기 시작했다. 훼손 실태를 고발하기위해 카메라도 자비로 구입했다. 신씨는 “훼손 실태를 정확히 알려야만 보호의식도 생기고 복구방안도 마련할 것 같아 틈틈이 한라산 훼손의 역사를 기록했습니다.”고 말한다. 신씨의 훼손지역 기록을 통해 한라산국립공원은 현재 70% 이상 훼손지 완전 복구가 추진 중이다. 한라산 자원 기록의 데이터베이스화는 신씨의 평생 역작이기도 하다. 신씨는 요즘도 매일 무거운 식물도감과 카메라를 짊어지고 한라산을 오른다. 1992년부터 노루, 고산지대 특산식물 등 2만여점의 한라산 식생자원을 혼자 정리했다. 이를 토대로 신씨는 2001년 식물분야 권위자인 고 이영노박사 함께 ’제주도 자생식물도감’으로 펴냈고 한국식물도감에도 자료를 제공했다. 계곡, 기암, 절벽, 사계절 풍광 등을 카메라에 담아 4만여점에 이르는 방대한 한라산 경관 자원도 정리했다. 한라산에서는 연평균 44명의 조난자가 발생한다. 이런 조난자를 구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신씨는 수시로 조난자을 업고 험한 탐방로를 내려오는 바람에 관절이 좋지 않아 요즘도 병원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1988년 일본 NHK 취재 기자가 해발 1700m에서 쇼크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자 현장 부근에 있던 신씨가 인공호흡을 실시, 소생시키고 하산해 살렸다. 이후 NHK사장이 이례적으로 직접 한라산을 찾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신씨는 한라산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에도 한몫했다. 유네스코의 제주 현지 조사시 한라산 전문 해설사 역할을 자처해 동행하며 성심껏 한라산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렸다. 그는 2007년부터 사이버수사대를 조직해 인터넷 상에서 돌아다니는 한라산 불법 무단탐방 등을 조장하는 사진 등 게시물 등을 적발, 삭제를 요청하는 등 준법 산행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신씨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제주가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될 수 있도록 한라산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굳건히 지켜 나가겠습니다.”고 다짐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