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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9급 공무원 시험 완전정복

    # 독도가 우리 영토인 근거 (문헌,지도) 1. 삼국사기:(신라본기) 지증왕 13년조와 (열전) 이사부조에 오늘날 우리가 독도로 인정하는 우산도에 대한 기록이 있음. 2. 세종실록지리지: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과 무릉 두 개의 섬이 현(울진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는 기록이 있음. 3. 신증동국여지승람: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도, 울릉도가 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하여 ‘세종실록’ 지리지의 기록을 잇고 있음 4. 팔도총도(동람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있는 우리나라의 전도 -우산도(독도)가 울릉도의 안쪽에 그려져 있음(정상기의 동국지도에서 위치가 수정됨) 5. 장한상 울릉도사적기 -1694년 삼척청사 장한상이 울릉도의 300여리 근처에 울릉도의 3분의 1 크기의 섬을 발견한 기록이 있음. -한국 문헌에 나오는 울릉과 우산(독도)의 지명은 모두 울릉도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일본의 주장에 대해 울릉도와 그 부근에 있던 독도를 우리가 17세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 6. 문헌비고, 통문관지, 매천야록 등 # 독도의 역사1.512년:이사부가 신라영토에 귀속시킴(신라 지증왕 13년) 2.930년:고려에 귀속(고려 태조 13년)→백길과 태두가 토산물을 바침(고려사) 3.1401년:공도정책(조선 태종) 4.1407년:대마도주 종정무가 동해 무릉도(울릉도)에 마을을 옳겨 살게해 달라고 간청함에 조의를 거쳐 거절(태종실록) 5.1425년:우산도로 호칭(조선시대에는 독도를 ‘우산도’,‘삼봉도’,‘가산도’,‘가지도’ 등으로 호칭) 6.1693년: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이 있었으나 안용복의 활약에 의해 일본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의 문서를 보내옴으로써 일단락(숙종실록) 7.1881년:울릉도 개척령의 반포(고종 18년) 8.1883년:조선 태종 이후 실시해온 공도정책을 폐지하고 54명을 울릉도에 들여보냄. 9.1900년: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시키고 울릉도, 죽도, 석도(독도)를 관할하게 함(대한제국 광무 4년) 10.1905년 2월:시마네현 고시로써 일본 영토로 불법 편입(러·일전쟁 때) 11.1906년: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서 ‘독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 12.1914년:경상북도에 편입. 13.1946년:연합군 최고사령관이 항복문서의 시행을 위해 일본정부에 보낸 각서에서 울릉도, 독도, 제주도를 일본의 통치권에서 제외(SCAPIN 제677호) 14.1953년:독도의용수비대가 창설되어 독도를 수호. 15.1982년:천연기념물로 지정(제336호) 16.1998년:‘신한일어업협정’의 체결(독도를 한일어업공동위원회의 관리를 받는 수역에 포함) 17.2005년:민간인의 출입 허용 ●문제 독도에 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1)‘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여 신라에 복속시켰다. (2)‘고려사’에는 우산국 사람들이 고려에 토산물을 바친 기록이 나온다. (3)‘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를 경상북도 울진현 소속으로 구분하고 있다. (4)일본 막부는 1699년에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하는 문서를 조선 조정에 보냈다. (5)독도가 우리 영토로 표기된 최초의 지도는 팔도총도(동람도)이다. ●풀이 및 정답 정답 3번. 울릉도와 독도는 하슬라주(신라) 또는 강원도(조선)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14년부터 경상북도에 편입됐다. 심태섭 남부행정고시학원 강사
  • [씨줄날줄] 조오련 3부자/육철수 논설위원

    수영은 열량소비가 퍽 많은 운동이다. 체중 60㎏인 사람이 30분 동안 수영할 경우 약 190㎉를 소비한다. 이는 36㎞를 쉬지 않고 걸어야 소비할 수 있는 열량이다. 또 등산 40분, 탁구 30분, 조깅 20분 등으로 땀을 흠뻑 흘려야 수영 30분 한 것과 맞먹는 열량이 소모된다. 수영선수치고 몸매가 날씬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마 소모열량이 많은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런데 광복 60돌을 맞아 엊그제 울릉도∼독도를 헤엄쳐 횡단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 3부자는 모두 역도선수 같은 우람한 체격이어서 TV 생방송을 지켜본 시청자들은 무척 놀랐을 것이다. 수영횡단을 앞두고 고강도 훈련을 쌓았다는 사람들이 어째서 저렇게 뚱뚱할까. 하지만 궁금증은 이내 풀린다. 바다 수영은 풀장 수영과는 다르다는데 열쇠가 있다. 바로 바닷물의 저온현상 때문이다. 낮은 수온에 따른 저체온증을 이겨내려면 몸무게를 10∼20㎏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바다수영은 상어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안전망을 사용한다지만 해파리떼의 공격과 높은 파도, 거센 바람과 수시간 동안 싸워야 한다. 어지간한 체력과 인내, 의지가 없이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역정이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뜻깊은 행사를 앞두고 지난 2월부터 제주도 모슬포와 마라도 등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해온 이들 3부자다. 정신·육체적 훈련도 힘든 마당에 체중을 늘리고, 파도와 싸우는 등 3중·4중고의 지옥훈련을 감내했다. 국민이 그들에게 아낌 없는 찬사를 보내는 것은 18시간의 대장정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물론이고, 그보다는 6개월 동안 이토록 어렵고 세심한 준비를 거쳐 행사에 임한 그들의 마음가짐 때문일 것이다. 대한해협(1980년)과 도버해협(1982년)을 수영으로 횡단했던 조씨가 두 아들과 함께 울릉도∼독도간 바닷길 92㎞ 도전에 나선 것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제정이 결정적 계기였다고 한다. 훌륭한 수영선수 일가를 가진 것만도 뿌듯한데, 이렇듯 국민의 소망까지 풀어주니 고맙기 그지 없는 일이다. 광복 60돌을 맞아 국민에게 자신감과 국토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준 조씨 3부자에게 거듭 박수를 보낸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맘대路 멋대路 프랑스여행

    유행의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가이드의 깃발을 쫓아 다니는 패키지 여행은 구시대 유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내맘대로’ 자유롭게 떠나는 선진국형 개별자유여행(FIT)이 새로운 추세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어디를 가보았다는 ‘점찍기식’ 여행에서 벗어나 나만의 여행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젊은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유럽의 관문인 프랑스를 FIT로 직접 다녀왔다. 쪽빛 하늘과 에메랄드빛 바다, 초록빛 계곡과 드넓은 초원을 따라 파리에서 노르망디, 루아르, 꼬뜨 다쥐르, 프로방스까지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렌터카와 지하철, 버스, 프랑스 철도와 연안 여객선, 조그만 지방 철도에도 올랐다. 여행도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멋진 풍경을 만났다. 에펠탑이나 니스해변 등 여행안내책자에 나와 있는 명소들보다 프랑스의 푸른 자연속에 숨겨진 비경들이 더 아름다운 감동을 안겨줬다. 그렇다고 패키지 여행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아니다. 크게 어렵지도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전정신과 철저한 준비다. 출발부터 도착까지 기자가 다녀온 10박 11일간의 프랑스 여행을 소개한다. ■ 도움말 MK유럽, 레일유럽, 프랑스관광청 프랑스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여행, 이렇게만 하면 준비가 반이다 준비에 많은 시행착오가 뒤따랐지만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준비에 노력한 만큼 편하고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교훈을 준 시간이기도 했다. 출발 한달전. 본격적인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항공과 숙박, 이동수단 등의 순으로 여행의 골격을 잡았다. 항공편은 인터넷 서핑을 통해 에어프랑스 홈페이지에서 특가 상품을 찾아냈다. 프랑스 파리를 경유하는 니스행 항공권으로 항공료 79만 9000원에 파리 스톱오버(경유지에서 24시간 이상 체류하는 것) 비용 10만원, 세금 10만 9000원 등 모두 100만 8000원. 정상 가격(130만∼180만원대)보다 많이 쌌다. 일본이나 두바이 등을 경유하는 60만∼80만원대 항공편도 있었지만 편하고 빠른 직항편을 택했다. 숙박은 유럽지역 호텔 예약 전문업체인 MK유럽(02-719-0461)을 통해 일정에 맞는 주요 도시에 호텔을 정했다. 인터넷에 숙박예약 사이트가 많지만 MK유럽은 국내 여행사 등에 호텔을 공급하는 다국적 호텔 체인업체로 훨씬 저렴하다. 숙박은 특급부터 일반 호텔까지 다양하며, 숙박비는 문의해 경비에 맞추면 된다. 교통수단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 등 단거리 이동은 현지에서 해결하면 되지만 철도나 렌터카 등은 국내에서 예약하는 것이 편하고 저렴하다. 유럽 지역의 철도는 레일유럽 한국사무소가 있는데 개인 예약은 받지 않으며, 서울항공(755-1144)과 걸리버(2170-6500),RTS(722-4033)에서 대행한다. 렌터카는 허츠나 에이비스, 알라모 등의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하면 된다. 개별 여행인 만큼 휴대전화 로밍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통신사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분당 발신은 1000∼2000원, 수신은 400∼500원이다. 여행자 보험은 출국직전 공항에서 가입하면 된다. 비용은 보상액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사망 1억원, 상해치료 2000만원, 질병치료 1000만원, 휴대품 분실 40만원의 경우 10일에 1만 5000∼2만원선이다. 여행 준비물로는 인터넷 등을 통해 자기가 가볼 곳에 대한 여행정보를 미리 찾아 준비하고, 프랑스 여행서적 2권 정도를 지참하면 좋다. 특히 파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관광지는 불어 안내서밖에 없는 만큼 불어 사전도 지참하면 요긴하다. 이 정도만 준비하면 여행에 큰 어려움은 없다. 기타 현지 여행 정보는 기사의 <ⓘ>를 참고하면 된다. ◆ DAY1 몽마르트르, 야경에 취하다 ●설렘과 걱정, 파리에서의 첫날밤 ‘잠시후 샤를르 드골공항(CDG) 도착하겠습니다.’현지 시간 오후 6시40분(국내 시간 새벽 1시40분). 파리 도착을 알리는 대한항공 KE 901편 기장의 목소리에 잠이 깼다. 창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파리의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그저 파랗기만 하다. 오후 1시55분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는 12시간을 날아왔지만 파리는 한낮의 강렬한 태양이 내리쬔다.‘뭘 해야하나?’ 첫 숙박지를 찾는 것조차도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목적지는 파리시내 북쪽에 위치한 ‘포레스트 힐 라 빌레트’(Forest Hill La Villette). 시내 지도를 펴고 한동한 고민한 끝에 고속전철(RER)과 지하철을 타는 것이 찾기 쉬울 듯싶어 공항 RER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RER 티켓(8.75유로)과 지하철표를 10묶음 단위로 할인 판매하는 ‘카르네’(carnet)를 구입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함께 탈 수 있는 티켓 1장은 1.30유로지만 카르네는 10유로. <ⓘ-1> 처음 타본 RER는 후텁지근했는데 무엇보다 내릴 역에 대한 안내방송이 없어 당혹스러웠다.RER는 20분만에 파리 북역(Gare du Nord)에 도착했고, 지하철 2,7호선으로 갈아타고 ‘포르트 드 라 빌레트’(Porte de la Villette)역 에 내렸다. 지하철 역시 안내방송이 없어 역구내의 간판을 보면서 내릴 곳을 가늠해야 했다. 지하철 문도 우리와 달리 수동식으로 내릴때 녹색버튼을 누르거나 손잡이를 손으로 돌려서 열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호텔 프런트에 ‘호텔 바우처’(호텔 예약서)를 보여주고 방을 얻은 뒤 짐을 풀었다. 별 3개인 호텔 숙박료는 조식을 포함,1박에 210유로. <ⓘ-2> ●젊음이 가득한 몽마르트르 언덕 밤 9시.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가기위해 과감히 방을 나섰다. 지하철 7,2호선을 타고 앙베르(Anvers)역에 내려 사크레쾨르 사원이 있는 언덕을 올라갔다. 순백의 성당 잔디에는 늦은 시간에도 많은 인파로 붐볐고, 언덕위의 노천 식당 테라스는 활기가 넘쳤다. 배가 고파왔다. 성당 아래 ‘레테 앙 팡트 두스’(L´ete en Pente Douce)라는 작고 예쁜 식당을 찾았다. 식사는 ‘오늘의 요리’로 치즈와 토마토, 돼지고기 등을 넣은 샐러드 ‘살라드 뒤 뮐레’(11유로)로 양이 무척 많다. 팁은 식탁에 놓고 나오면 된다. <ⓘ-3> 순백색 조명을 밝힌 성당을 올라가자 야경을 감상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젊은 남녀가 키스를 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했지만 너무 자주 보여(?) 금방 익숙해 졌다. 이어 성당을 끼고 오른쪽길로 올라가면 몽마르트르 언덕이 나타나는데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도 10여명의 화가들이 관광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밤 12시 호텔로 돌아와 파리의 첫날밤을 지냈다. 한국 시간으로 치면 아침 7시로 밤을 꼴딱 세운 셈이다. <ⓘ-4> ◆ DAY2 센강은 좌우를 나누지 않는다 ●쪽빛 하늘을 따라 도심을 걷다 눈이 부시도록 파란 물빛이 창밖에서 쏟아진다. 그 빛에 놀라 잠을 깬 것은 오전 5시. 시차 탓에 빨리 일어난 것이다. 호텔에서 간단히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은 뒤 본격적인 시내 관광에 나섰다. 오전 8시. 지하철을 타고 파리의 중심인 시테(Cit)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했다.<ⓘ-5> 시테역에 내리자 고딕 건축의 최고 걸작인 대성당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닥에는 파리 중심석이 새겨져 있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비취는 성당 내부는 장엄함과 엄숙함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이어 걸어서 파리의 중심을 흐르는 센(Seine)강을 건넜다. 강폭은 넓지 않았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파리 3·4대학(소르본대학)을 거쳐 뤽상부르 공원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앙리 4세의 왕비가 세운 공원으로 넓이가 25만㎡에 이른다. 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깎아놓은 나무과 넓은 잔디밭. 잔디에 누워 하늘을 봤다. 구름 한점없는 하늘이 마음을 편하게 한다. ●죽은자들의 세계 카타콩브 찌는 듯한 더위는 시원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지하묘지 카타콩브(Catacombes·입장료 5유로). 사전 지식이 없이 들어간 지하묘지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주택가 한복판에 만들어진 지하묘지로 800m에 이르는 동굴안에 인골 600만기가 안장돼 있다. 낮 12시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관광객이 거의 없다. 나선형 계단을 땅속으로 내려가자 어두컴컴한 동굴안에서 서늘함이 밀려왔다. 기온은 11∼12도. 밖의 날씨와 비교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다 못해 춥다. 가로 1.5m, 높이 3m의 동굴을 따라 100m쯤 걸어들어가자 유골이 동굴 양 옆으로 빼곡하게 쌓여 있다. 출구까지는 45분이 걸린다. 밖으로 나와 인근에 있는 ‘와자’(Wadja)라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 지역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을 벌이는 식당이다. 매일 바뀌는 오늘의 메뉴는 전채요리와 메인요리, 디저트 세 가지로 구성된다. 전채요리는 꽃양배추 샐러드, 메인요리는 생선과 쇠고기, 디저트는 과일프루츠나 치즈빵 중에 고르면 된다. 발품을 팔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맛있다. 가격도 14유로로 비교적 저렴하다. 몽파르나스 묘지는 철학자 사르트르와 시인 보들레르, 소설가 모파상 등 저명인 100여명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인근 주민들에게는 공원처럼 편안한 곳이다. 파리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집을 찾아 지하철을 타고 7호선 퐁마리(Pont Marie) 역에 갔다. 역에서 나와 퐁마리 다리를 건너 첫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보이는 ‘베르티용’(Berthillon)이라는 집이다. 유사한 아이스크림 집이 많아 헷갈리기 쉽지만 간판에 ‘31번’이라고 쓰인 집이 원조다. 가격은 1컵짜리가 2유로,2컵짜리가 3.5유로다. <ⓘ-6> 휴식도 여행의 일부. 오후 8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7> ⓘnformation center ⓘ-1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RER와 버스, 택시 등 다양하다.15∼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에어프랑스 버스의 경우 편도 11.50유로 정도이며, 택시는 도심까지 40∼50유로(야간 20% 할증)다. 환율은 1유로에 1240원 정도. ⓘ-2 이는 공시 가격으로 국내에서 예약하면 훨씬 저렴하다. 호텔 숙박료는 대도시와 지방,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방 도시의 별 1∼2개짜리 호텔이 40∼80유로다. 별 3개 이상은 100∼300유로 선이다. ⓘ-3 팁은 음식값이나 택시요금의 10% 정도지만 식당에서는 통상적으로 2∼3유로 정도면 된다. ⓘ-4 항공권은 에어프랑스 티켓을 끊었지만 왕복 대한항공을 이용했다. 인천∼파리행은 오전 10시25분, 오후 1시55분 두차례 있는데 오전은 에어프랑스, 오후는 대한항공이 운항된다. 두 항공사가 코드셰어(좌석공유)를 해 두 곳 중 저렴한 항공사에서 티켓을 끊으면 된다. 돌아오는 항공편은 오후 1시15분,9시50분에 있다. 에어프랑스 티켓으로도 대한항공 마일리지 적립이 가능하다. ⓘ-5 지하철은 14호선까지 있으며, 운행은 오전 5시30분부터 자정넘어(0시30분)까지 운행한다.1·3·5일권인 파리비지트 패스(www.parisvisite.co.kr) 등 다양한 할인 티켓 제도가 있지만 하루에 티켓이 2∼3장 정도면 충분한 만큼 카르네가 간편하다. ⓘ-6 프랑스 거리는 집 주소만 알면 지도 한장만 들고도 어디든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잘 정비돼 있다. 지도에 표시된 도로 번호를 따라 가면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있다. ⓘ-7 프랑스 전원은 220V로 우리나라와 같다. 자기전 카메라와 캠코더 등을 충전하면 된다. ◆ DAY3 전원 드라이브, 느림을 즐기다 ●파리의 명물 에펠탑과 개선문 전날 너무 일찍 잠을 청한 탓에 눈을 떠보니 새벽 2시. 잠이 오지 않아 오후부터 시작될 렌터카 여행을 준비했다. 책을 펴고 오를리(Orly) 공항에서 노르망디 지역의 수도원 몽생미셸로 가는 길을 연구했다. 전날 5유로 주고 구입한 미슐랭(Michelin) 프랑스 전도를 펴고 고민하는 사이 어느 덧 날이 밝았다. 오전 일정은 에펠탑과 개선문. 식상하리만치 유명한 파리의 상징물이지만 빼놓을 수는 없었다. 오전 8시 에펠탑을 향했다. 에펠탑은 6호선 트로카데로(Trocadero)역과 비르아캥(Bir-Hakeim)역에서 내리면 갈 수 있다. 샤이요(Chaillot) 궁전도 구경하면서 내려갈 겸 트로카데로 역에서 내렸다. 멀리 샹드 마르스 공원과 에펠탑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1898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된 에펠탑은 높이 320m로 3개 층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 이어 샤를르 드골 에투알(Charles de Gaulle Etoile)역에서 내려 개선문을 본 뒤 콩코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샹젤리제 거리를 걸었다. 넓은 도로를 따라 유명브랜드 매장이 줄지어 있다. 오를리 공항을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센강을 따라 앵발리데(Invalides) 옆에 있는 에어프랑스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센강 유람선을 타는 바토뮤슈 승선장에는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유람선 관광에 나섰다. 센강과 어우러진 에펠탑의 풍경이 장관이다. 퐁데 앵발리드 다리와 알렉상드르 3세 다리, 앵발리드 공원을 지나자 정류장이 나타났다. 도보로 30분. 오를리행 버스는 30분마다 1대씩 있는데 1인당 8유로다. 차비는 기사에게 내면 된다. 시내 교통이 막혀 공항까지 40분쯤 걸렸다. ●렌터카를 몰고 시골 풍경속으로 오를리 웨스트 공항 허츠 렌터카 데스크에서 한국에서 예약한 바우처와 함께 국제면허증, 신용카드를 내밀자 손쉽게 수속을 끝냈다. 직원은 프랑스내 호텔 주소를 물은 뒤 “한번도 안 탄 새차를 빌려 주겠다.”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수속을 마친 뒤 터미널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렌터카는 이제 막 출고된 소형 벤츠. 타코미터(운행기록장치)에 36㎞라고 찍힌 갓 출고된 차량이었다.<ⓘ-8> 오후 1시30분. 무작정 공항을 빠져 나왔다. 낯선 곳에서의 운전, 낯선 차에 대한 불안감이 밀려왔다.‘괜히 빌렸다.’는 후회도 들었다. 렌터카 직원이 “공항을 나가 5분쯤 파리 시내쪽으로 가다가 ‘베르사이유’(Bersailles) 방향의 표지판이 보이면 그 길로 진입하라.”고 알려줬지만 긴장한 탓에 진입로를 놓쳤다.10여분쯤 헤매다 결국 차를 세운 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겨우겨우 고속도로에 오를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편도 3차로의 차선중 모든 차가 가장자리의 차선을 이용한다는 것. 추월할때만 1·2차선을 이용했다.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는 130㎞, 비가 올 때는 110㎞. 차들은 운전경력 15년인 나도 별로 내본적이 없는 170∼190㎞의 속도로 말그대로 쌩쌩 달린다. 어느 정도 운전에 익숙해지자 주변 경치가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널찍한 벌판에 젖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그림속의 풍경들이 계속 이어졌다. 긴장이 풀리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샤르트르 지방을 지나 고속 휴게소로 들어갔다.<ⓘ-9> 낯선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달린지 3시간. 국내에서 좋아하는 음악 CD 등을 가져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국도로 1시간쯤 달리자 오후 5시30분 몽생미셸에 도착했다. 널찍한 갯벌 사이로 난 긴 도로를 달리자 햇빛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는 웅장한 수도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도원 앞 주차장(주차료 4유로)에 차를 세운 뒤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성 내부 관람은 6시까지로 아쉽게도 입장이 마감됐다. 그렇지만 성안 마을 등은 돌아볼 수 있었다. 성안은 17세기의 마을 모습 그대로다. 고풍스러운 호텔, 식당, 매점, 기념품 가게 등이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살아있는 과거의 마을이다. 레스토랑 호텔인 ‘메르 풀라르’ 맞은편에 있는 유명한 비스킷 가게에 들러 버터와 우유가 듬뿍 들어간 ‘칼레트’ (9유로) 한상자를 샀다. 오후 8시쯤 성을 나와 숙소를 잡기로 했다. 다른 지역의 숙소는 서울에서 미리 예약을 했으나 이 지역은 렌터카 일정이 늦게 결정되는 바람에 숙소를 정하지 못했다. 몽생미셸에서 10분쯤 거리에 있는 성밖 마을에는 호텔들이 많았다. 그러나 차로 1시간을 달려 항구도시 생말로(St.Malo)에 도착했다. ●시골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 밤 9시. 생말로는 젊음의 활기가 넘쳤다. 해변에는 수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제트스키, 보트 등이 거친 물살을 가르며 달렸다. 숙소는 유스호스텔의 일종인 상트로 바트릭 바탕고 ‘오베르주 쥐네스’(Auberge de jeunesse). 건물이 아담하고 예쁜데다 해변 근처에 있어 인기가 높은 숙소다.2인실을 빌려 짐을 풀었다.(숙박료는 조식 포함 1인당 16.5유로). 방은 깨끗하고 넓었다. 직원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올 초부터 한국 배낭여행객들이 조금씩 찾고 있다.”며 2유로인 침대 커버를 무료로 건네줬다. 짐을 풀고 인근 ‘엘 파티오’(El Patio)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했다. 작은 피자와 시원한 생맥주 한잔으로 목을 축이자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 달아났다. 특히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고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피자집 아저씨의 미소는 두고두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음식값은 10유로. ⓘnformation center ⓘ-8 렌터카는 국내 대행업체에 전화로 예약하면 이메일로 바우처를 보내주는데 인쇄해서 가져가면 된다. 비용은 24∼27일(3박 4일) 72시간 빌리는데 89.59유로이며, 세금 등을 포함해 143유로 정도가 든다. 예약시 오토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 국제면허증은 각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면 당일 발급해 준다. 인지대 5000원. ⓘ-9 휴게소는 우리나라 비슷하다. 주유소를 거쳐 들어가면 대형 슈퍼마켓과 화장실, 레스토랑이 있다. 톨게이트도 우리나라 체계와 비슷해 입구에서 표를 뽑은 뒤 나갈 때 돈을 지불한다. ⓘ-10 프랑스의 운전에서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것은 ‘선진입차 우선’인 교차로. 우리나라와 같은 사거리에는 대부분 로터리가 있는데 왼쪽에 진입한 차가 없으면 들어갈 수 있다. ⓘ-11 고성 투어버스는 투르역 광장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출발하는 투어 차량이 있다. 반나절(5∼6시간), 하루코스(9시간) 등이 있는데 20∼40유로다. 입장료와 점심값은 별도다. ◆ DAY4 투르, 동화나라로 가는 길 ●생말로에서 투르까지 안개 낀 ‘그랑베 섬’(Rocheur du Grand Be)과 해안선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해변은 이른 아침부터 조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지는 해변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차를 몰고 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좁은 도로를 따라 가자 프랑스 최대의 항구답게 수백여척의 요트가 정박해 있고, 영국 등지로 떠나는 대형 여객선도 기적을 울리며 사람들을 불렀다. 오전 10시. 간단하게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루아르(Loire) 고성지역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속도로보다는 시골 국도를 달리고 싶은 마음에 국도를 따라 떠났다. 내리던 빗줄기도 점차 줄어든다.<ⓘ-10> 시골길은 무척 한적했다. 스쳐지나가는 하나하나의 풍경이 그림이다. 그래서 프랑스에 고흐, 고갱, 마티스 등 유명 화가들이 이곳에서 활동하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스쳤다. 대형 지도를 따라 가다 보니 수차례 길을 잃었지만 그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냥 주변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라발, 앙제시내를 거쳐 지나갔다. 기름이 거의 바닥이 가까워 온다. 주유도 하고 잠시 쉴 겸 다시 고속도로에 들렀다. 얼마쯤 달리자 휴게소다. 주유소는 셀프 주유다. 노랑, 파랑, 빨강 라벨의 주유기가 있어 어느 것을 넣어야 하나 잠시 고민. 근처에 있는 “주유원에게 어느 것을 넣어야 하느냐”고 묻자 ‘쉬페르 프르미에르’(Super Premiere)라고 쓰인 노란색 주유기를 가리켰다. 처음으로 직접 해보는 주유. 차의 주유기를 열고 넣자 45ℓ나 들어간다. 기름이 가득차면 저절로 멈춰 주유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기름값은 50유로로 따져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계산은 주유한 후에 중앙에 있는 계산원에게 가서 주유기 번호를 불러주면 된다. 투르로 향하는 길은 영화속에서나 봤음직한 전원 풍경 그대로다. 경치에 취해 차를 대놓고 쉬어가기를 여러번. 사나흘을 머물러도 좋을 듯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의 만남 오후 4시 ‘프랑스의 정원’으로 불리는 루아르 계곡에 접어들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1020㎞의 루아르 강을 따라 르네상스 시대의 왕후, 귀족들의 수많은 성이 흩어져 있다. 프랑스 전역에 약 5000개의 성이 있는데 이중 쉬농소·앙부아즈·랑제·앙제·블루아·쇼몽·슈베르니성 등 80여개가 이 곳에 있다.<ⓘ-11> 첫 목적지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무대가 된 위세(Uss)성. 투르시내에서 28㎞떨어진 곳으로 1485년에 건축됐다. 동화속의 성처럼 하늘로 솟아오른 첨탑이 주변 경치와 어울려 아름답다. 너무 조용해 정말 공주가 잠만 잘 수밖에 없었을 것처럼 고요하다. 사진은 성 앞에 있는 작은 강 뒤에서 찍는 것이 예쁘다. 사진을 찍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인근에 있는 아제 르 리도(Azay-le-Rideau)성으로 향했다. 성보다는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휴양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다. 점심은 인근의 ‘라망드’라는 식당에 들어가 오믈렛(8유로)으로 간단히 때웠다. 이어 빌랑드리(Villandry) 성으로 향했다.16세기 건축물로 르와르 고성중 가장 마지막에 곳.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 쉽지 않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고성 관광’ 안내 광고에 등장할 정도로 아름다운 성이다. 각종 야채가 있는 정원, 장식정원, 분수정원 등 정원이 특히 아름답다. 내부와 정원 관광은 8유로. 오후 7시. 투르 시내에 예약한 ‘홀리데이 인 호텔’에 들어갔다. 기차역 앞에 있어 찾기 쉬웠다. 주차장에 들어가려면 먼저 호텔 체크인을 한 뒤 가로막을 통과할 수 있는 비밀 번호를 받아야 하며, 주차료 7유로를 내야 한다. 식사는 역 앞에 있는 ‘로데옹’(L´odeon)이란 식당.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민물고기 요리를 파는 곳으로 가격은 15∼20유로. ◆ DAY5 작은 마을에 들러 고흐를 기리다 ●투르에서의 한적한 휴일 프랑스의 주말은 어떨까. 시민들의 휴일 생활을 엿보려 일요일마다 시청앞에 장이 서는 벼룩시장을 찾았다. 100여개의 노점에는 집에서 쓰던 소품이며, 책, 그림, 찻잔, 액자, 음악판과 CD 등 없는 것이 없다. 쓰던 물건이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예쁜 액자 하나를 사려고 물어보자 30유로. 새것에 비해 결코 싸지 않다. 시내를 빠져나오자 몽콩투르(Moncontour) 포도주 동굴 저장 지역이 나왔다. 파리로 향하던 중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난 이 곳의 경치 또한 아름답기 그지 없다.‘포도밭 산책로’라는 표지판을 따라 올라가보니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넓은 포도밭과 대형 저장고가 보였다. 마을 전체가 포도주를 생산하는 곳이다. 인근에 있는 ‘뱅 드 부브라이’라는 곳에는 바위산에 동굴을 뚫고 집을 지은 이색적인 마을. 바위산 위에 지은 돌탑과 그 아래 마을, 호텔 등 모두가 돌산과 연결돼 마을이 형성돼 있다. 렌트카로의 마지막 여행지인 파리시내 북쪽에 있는 조그만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파리 외곽도로의 교통 체증 탓에 5시가 넘어서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1890년 7월 고흐가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곳. 비록 이곳에서 고흐가 산 시간은 두달 남짓하지만 이 곳을 무대로 많은 그림을 남겼다. 고흐가 자취했던 ‘라부(Ravoux)의 숙소’(입장료 5유로) 등 골목 구석구석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고흐의 자취를 더듬어 갈 수 있도록 그림과 함께 안내판이 나온다. 그림을 그린 방향을 어림잡아 가늠해 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마을과 계단, 오베르 교회, 까마귀 들판 등을 그림의 소재를 돌아본 뒤 산중턱에 있는 고흐의 묘지를 찾았다. 동생과 나란히 묻혀 있는 묘지는 담쟁이 덩굴로 둘러싸여 있지만 다른 묘지들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오후 8시. 오를리 공항 근처 홀리데이 인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은 뒤 내일을 기약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 DAY6 니스 해변, 푸른 바다에 마음을 적시다 ●렌터카 여행을 마치고 렌터카를 반납한 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남프랑스의 니스(Nice)로 향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공항터미널로 향했다. 렌트카 반납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오전 11시 공항으로 출발했지만 반납은 열쇠를 건네 주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12> 비행기는 오후 3시. 공항 방침상 짐을 보관해 주는 장소나 라커가 따로 없기 때문에 출발 시간까지 무작정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가 1시간30분이나 연착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3∼4시간 걸리는 떼제베(TGV)를 이용하는 것는 건데 아쉬움이 든다. ●가슴을 열어주는 니스해변 오후 6시 ‘리비에라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은 니스에 도착했다. 국제 영화제로 유명한 칸느와 함께 지중해를 바라보는 꼬뜨다쥐르 지방의 중심도시.4번홀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선 버스’(요금 4유로)에 올랐다. 니스 해변을 따라 가는 버스에서 보는 풍광이 눈을 사로잡는다. 공항에서 해변까지는 약 6㎞.20분 정도 걸린다. 리비에라(Nice Riviera) 호텔에 짐을 푼 뒤 곧바로 해변으로 향했다. 그냥 물속으로 뛰어 들고 싶을 정도로 푸르다. 그 속에서 흘러가는 여유로운 시간. 호텔에서 마세나광장에서 해변으로 가면 활모양으로 뻗은 해안을 따라 화려한 호텔들이 즐비하다.<ⓘ-13> 프롬나드데장글레(영국인의 산책로)는 해안을 따라 3.5㎞에 걸쳐 계속되는데 해변은 형형색색의 파라솔과 데크체어로 채워져 있다. 밤 9시가 넘도록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긴다. 볼거리도 많다. 마세나 광장 등지에서는 음악공연과 길거리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길거리에 동상처럼 서있는 각종 캐릭터 모형은 실제 사람으로 관광객들이 돈을 넣으면 슬쩍 움직인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가다보면 약간 높은 바위산이 보이는데 이곳이 빠끄 드 샤또라고 불리는 ‘성터공원’이다. 해안선과 옛항구 등 니스의 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전망대 엘리베이터(편도 0.7유로)가 있다. 맛집은 마세나 광장 인근에 있는 지중해 요리 전문점 방돔(Le Vendome)에서는 원조 홍합요리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9유로. ◆ DAY7 칙칙폭폭, 지중해를 끼고 달리다 ●기차를 타고 지중해를 따라 기차를 타고 지중해의 쪽빛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것만큼 시원한 것이 있을까. 맑게 갠 하늘, 검푸른 지중해의 먼 바다, 수영복 차림으로 바닷가를 거니는 연인들…. 니스에서 칸, 툴롱, 마르세유, 아를, 아비뇽을 거쳐 계속되는 철로변의 풍경은 마치 영화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굳이 어느 도시에 내리지 않아도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광만 보아도 가슴이 시원하다. 이렇게 기차 여행이 시작됐다. 호텔에 큰 짐을 맡긴 뒤 니스빌 역으로 갔다. 한국에서 끊어온 3일짜리 프랑스철도 자유 티켓으로 첫 목적지인 아를(Arles)로 향했다. 시간표는 각 역마다 비치돼 있다. 직접 가는 편도 있지만 대부분 마르세유(Marseille)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가야 한다. 오전 9시 니스역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가는 길은 영화의 도시 칸 등을 지나가는데 주변 풍광이 아름답다. 마르세유엔 11시26분, 아를에는 오후 1시51분에 도착했다. 기차는 영화에서 보는 왜건형 칸막이방. 한 방에 6명이 마주보고 앉아서 간다. ●작지만 예쁜도시 아를과 아비뇽 론강(Le Rhone)을 끼고 있는 아를은 작지만 기원전 1세기 로마시대의 유적 등 볼거리가 많은 도시다. 아를 역에서 걸어서 라마르틴 광장을 거쳐 내려가면 카발르리몬, 원형투기장, 고대극장, 생트로핌 교회, 반고흐 카페, 반고흐 다리 등 볼거리가 많다.3세기 초엽 만든 생트로핌 교회는 로마네스크 미술의 견본으로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장소다. 반 고흐가 요양을 했다는 아를 요양원에서는 이젤을 펴놓고 예쁜 정원을 그림에 담는 화가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반고흐 다리는 시내에서 직접 가는 버스가 없다. 바리올(Barriol)행 1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20분 정도를 걸어야 볼 수 있다. <ⓘ-14> 오후 6시 아를 역으로 돌아와 인근 도시 아비뇽(Avignon)으로 향했다. 기차로 17분.14세기 교황청이 이 곳으로 이전해 오면서 세계 교회의 중심지가 됐다.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교황청 광장 주변 카페들이 예쁜데 로셰 데 돔 공원에서 바라본 론강의 경치가 압권이다. 공원에서는 ‘생베네제’ 다리가 보이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멜로디인 ‘아비뇽 다리위에서’라는 동요의 무대가 된 곳이다.12세기 지어졌으나 17세기 홍수로 소실돼 지금은 반쪽만 남아있다. <ⓘ-15> ◆ DAY8 섬섬옥수, If I were a bird ●하늘 빛을 담은 프리울섬 마르세유 항구에 있는 어시장은 어촌 마을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갓 잡아 올린 정어리와 도미 등 각종 생선을 판매하는 어부들과 아침 찬거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마르세유는 프랑스에서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BC 600년전 그리스인들이 세운 항구도시다. 마르세유에서는 한번쯤 여객선을 타고 인근섬 여행을 떠나도 좋다. 아침 일찍 항구의 ‘벨주부두’에 있는 마르세유 여객선 터미널(www.answeb.net/gacm)을 찾았다. 이 곳에서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가 됐던 ‘이프섬’(Ile D´If)으로 가는 배가 떠난다. 왕복 10유로. 오전 9시부터 1시간 단위로 배가 출발하는데 만선이면 시간에 관계없이 출발한다. 이프섬은 배로 10여분 남짓 걸린다. 여객선의 종착지는 이프섬에서 10분쯤 더 떨어진 ‘프리울 섬’으로 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성이다.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은 사막을 연상케 한다. 섬에 내려 순회 코끼리 열차(왕복 3.5유로)에 올랐다. 차로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30분쯤 걸리는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황홀하게 만든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해수욕장이 있는데 쪽빛 물빛 그자체다. 가는길에 있는 해수욕장은 2∼3일쯤 푹 쉬다가고 싶게 만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오전 11시30분 배를 타고 서둘러 섬을 나왔다. 기차를 놓쳐 바로 직후 있는 테제베를 예약했다. 일반 철도는 그냥 타도 되지만 테제베는 예약이 필요하며, 따로 수수로(1.5유로)를 내야한다. 그래도 프랑스 대표 철도인 테제베를 타본다는 기대감에 표를 끊었다. 그러나 니스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50분. 일반열차가 2시간10분 걸리는 것에 비해 이 구간에서만은 시속 300㎞이상으로 달린다는 테제베가 오히려 일반 고속열차보다 느리다. 자리도 일반열차에 비해 불편하다. ⓘnformation center ⓘ-12 렌터카 반납시 우리나라와 달리 꼼꼼하게 체크하거나 묻는 일이 없다. 기름이 부족하거나 렌트 시간을 초과하면 미리 100유로 정도 임치해 놓은 돈에서 제하고 돌려준다. ⓘ-13 공항 등 프랑스의 공공장소에서는 노인과 장애인, 임산부, 유아 등에 대한 우대가 특별하다. 줄을 서지 않고 우선적인 서비스를 받는다. ⓘ-14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계절이 분명한데 남프랑스는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에는 덥지만 건조해 지내기 쉽고, 겨울에도 온난하다. ⓘ-15 프랑스 철도 예약을 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여행 계획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철도 패스중 적합한 것을 골라야 한다. 패스를 이용하는 국가 수에 따라 요금이 천차만별이다. 유럽 전지역을 돌아다니려면 유레일 패스가 유리하지만 프랑스 등 특정 국가만을 여행하려면 프랑스 패스를, 프랑스와 인근 국가 3∼5개국을 이용하려면 유레일 셀렉트 패스를, 프랑스와 이탈리아 2국가만 여행하려면 프랑스-이탈리아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저렴하다. 프랑스 철도패스는 1등석 성인이 299달러이며,2명 이상 여행할 경우 세이버 티켓을 끊으면 15%정도 저렴하다. 나머지 패스의 경우 1개국을 추가할 때마다 7만∼10만원정도 요금이 올라간다. 특히 철도패스에는 센강 유람선, 박물관 할인 등 보너스 할인 혜택이 있으므로 꼼꼼하게 살펴보면 좋다. 모든 패스로는 해당국가 테제베와 일반 철도 모두를 탈 수 있는데 테제베를 타려면 반드시 미리 예약을 해야 하며, 예약비로 1.5∼8유로 정도를 내야 한다. 일반 철도는 예약없이 기차역에 나가 오는 기차를 그냥 타면 되는데 3일권의 경우 한달동안 3일을 탑승 횟수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다. ◆ DAY9 포도주·풍경, 프로방스의 유혹 ●프로방스 철도에 몸을 싣고 아침 일찍 ‘살레야 광장’으로 향했다. 아침에는 과일, 야채 판매상과 꽃시장, 기념품 가게 등이 들어서 서민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니스의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쇼핑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중심부에 대형 할인점과 백화점, 전문점 등이 즐비하다. 생필품은 물론 고급 브랜드부터 저가 브랜드까지 다양한 품목을 갖췄다.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없는 프랑스 전통 치즈와 포도주, 과자 등 각종 먹을거리를 맛봐도 좋다. 낮 12시 호텔에서 얻은 정보를 이용해 코드다쥐르 지방의 웅대한 산악풍경을 볼 수 있는 프로방스 철도(www.trainprovence.com)에 올라보기로 했다. 철도역은 니스역에서 북쪽으로 약 400m,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데 하루 4차례 정도 기차가 운행한다.<ⓘ-16> 철로가 단선이라 교행이 어려운데다 철로가 오래돼 수리를 자주해 역에 도착하면 돌아가는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 기차는 두칸짜리 아담한 기차지만 100년의 역사를 가진 전통 기차다. 기차역에서 프랑스철도 티켓을 보여주면 50% 할인해 준다. 디뉴까지는 150㎞로 3시간10분이 걸리는데 시간이 없어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앙트르보(Entrevaux)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17세기 요새마을 앙트로보 앙트로보까지는 크고 작은 13개의 기차역을 지나는데 1평 남짓한 간이역도 많다. 기차는 바르강 계곡을 따라 달리는데 깎아지른 듯 세워진 바위산과 계곡, 산허리에 매달린 자그마한 마을 등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차창밖으로 매력적인 마을이 즐비하다. 이날도 철로에 이상이 생겼다. 오래된 철로라서 수리중이라는 차장의 말에 따라 중간에 내려 2∼3개 역을 버스로 갈아타고 갔다. 바위산 단면들은 지층이 지리책에 나온 사진처럼 그대로 보아도 멋있다.2시간 걸려 도착한 앙트르보는 17세기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바위산 정상에 있는 요새도시가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든다. 성을 휘감고 올라가는 길이 이채롭다. 그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고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고성문이다. 강에는 마을 아이들이 수영을 즐기고, 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다. 고성을 들어가는 길에 입장료를 따로 받는 사람이 없어 입장료 자판기에 돈을 넣고 3유로짜리 코인 티켓을 끊은 뒤 회전문에 넣으면 들어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그렇지만 건너보이는 마을 전경이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쁘다. 정상에는 각종 방과 감시탑, 감옥 등 전형적인 성이다.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된다. ◆ DAY10 마지막 시간은 마티스와 함께 ●니스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이제 막 적응이 됐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후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오전에는 호텔에 짐을 맡기고 마티스 미술관과 샤갈 미술관을 돌아보기로 했다. 마티스 미술관까지는 17번 버스(1.20유로)를 탔다. 가는 길에 검표원들이 버스를 가로 막고 표검사를 했다.<ⓘ-17> 마티스 미술관(입장료 4유로)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인근 시미에 지구에 있는 로마시대의 투기장과 원형극장, 목욕탕 등 유적들이 더 볼만하다. 이어 걸어서 20분정도 떨어진 샤갈미술관(입장료 4.5 유로)에는 구약성서 이야기를 묘사한 17장의 연작 유화 등 450점이 전시돼 있다. 오후 2시 공항으로 출발, 아쉬웠던 여행이 끝났다.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 탔는데 편도 요금은 25유로. 힘들었지만 즐거웠던 프랑스. 일상에 찌들어 쫓기듯 살아온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유익한 여행이었다. ⓘnformation center ⓘ-16 기차는 니스에서 알프스 온천마을인 디뉴(Digne)까지 운행한다. 니스에서 오전 06:42,09:00,12:43,17:00에 출발하고, 디뉴에서는 07:00,10:33,13:58,17:25분에 출발한다. ⓘ-17 버스 티켓을 기사에게 구입하면 꼭 버스에 비치된 개찰기(콩포스테·Composter)에 표를 체크해야 한다. 그래야 표에 시간이 찍히고 이후 표가 1시간 정도 유효한데 만일 이를 하지 않고 있다가 검표원에게 걸리면 ‘무임승차’에 해당하는 벌금을 문다. 무임승차하다 걸리면 30배의 벌금을 물게 된다. ⓘ-18 관광지와 호텔 주변은 소매치기 등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크게 위험하지 않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구급차(19), 소방서(18), 주 프랑스대사관(01.47.53.01.01), 한국관광공사(01.45.38.71.23), 대한항공(01.42.97.30.80)으로 연락하면 된다.
  • 3인3색 특이한 여름 아르바이트

    3인3색 특이한 여름 아르바이트

    “넌 휴가 가니?난 알바 간다.” 돈도 벌고 특별한 체험까지 하는 일거양득의 이색 아르바이트로 한 여름을 나는 사람들이 있다. 찜통 더위를 한방에 날려버리는 놀이공원의 처녀귀신 아르바이트부터 파티나 모임의 동반자로 나선 계약 애인, 연기자가 아니면서 뮤지컬 무대에 서는 아르바이트까지 특별한 인생 경험을 하고 있는 3인의 2030 ‘알바생’을 만나봤다. # 놀이동산 처녀귀신 최은화씨 “무섭지 않으면 저 월급 못 받아요.”최은화(21·여)씨의 하루는 ‘어떻게 하면 더 무섭게 보일까.’하는 고민으로 시작한다. 서울랜드의 ‘귀신동굴’에서 일하는 최씨의 역할은 처녀귀신. 오전 10시부터 밤까지 하루 12시간 동안 40∼50차례 출몰, 공포체험을 위해 동굴을 찾은 사람들을 놀래키는 게 일이다. 최씨는 놀이기구를 관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지난달부터 처녀귀신으로 ‘전직’을 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사전 작업은 분장. 창백하게 보이기 위해 흰색의 특수 화장품을 얼굴 전체에 바른 뒤 마스카라와 새빨간 립스틱으로 최대한 공포심을 일으키도록 연출한다. 분장에만 1시간 이상 걸린다. 처녀귀신은 무엇보다 연기력이 중요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마네킹처럼 숨을 죽이다가 한순간 공포심을 자아내야 한다. 자질구레한 부상도 많다. 무섭다고 꼬집는 관객부터 발로 차거나 물병으로 때리는 사람까지 있다. 최씨는 “사람들을 서늘하게 만드는, 올 여름 가장 시원한 아르바이트”라면서 “종일 서 있어서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와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색 체험”이라고 말했다. 시간당 급여는 4000원. # 애인 등 역할대행 김지민씨 지난 6일 김지민(31·여)씨는 광주까지 아르바이트를 위해 출장을 다녀왔다. 한 의뢰인의 요청으로 회사 모임에 애인인 척 동행을 했다. 김씨의 일은 ‘역할 대행’. 결혼식장의 신부 친구인 척 연기하는 하객 대행부터 애인으로 파티나 모임에 같이 참석하는 역할 등 인생이 일종의 연기이자 드라마가 된다. 김씨의 본업은 병원 간호사다.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는 재미있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결혼식 하객 대행으로 6차례, 애인 대행으로 4차례 나선 김씨의 일은 꽤 우아하다. 하객 대행은 호텔 뷔페에서 식사를 한 뒤 신부측 친구인 척 사진을 찍으면 일이 끝난다. 일당은 4만원 안팎으로 쏠쏠한 편이다. 결혼식 하객 대행은 봄·가을이 가장 많고 지방으로 출장 가면 벌이도 2배로 뛴다. 애인 대행은 거의 파티나 모임 동반이 많다. 반드시 의뢰인과 30분 전에 미리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신상을 파악해야 한다. 진짜 애인인 것처럼 실수없이 연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인 대행은 뛰어난 연기력뿐만 아니라 곤혹스러운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침착함이 중요하다. 여자 친구가 없는 미혼자가 커플로 참석하는 자리나 때때로 결혼을 압박하는 부모님에게 애인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옛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새로 사귄 여자 친구로 등장해 어색한 3자 대면을 하고,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구애하는 여자의 친구 역할을 할 때도 있었다. 역할이 ‘고난도’여서 한번 대행에 10만원 안팎의 비교적 많은 돈을 받는다. 김씨는 “가끔 ‘작업성 멘트’를 은근히 건네는 의뢰인도 있지만 정중하게 거절한다.”면서 “의뢰인에게 역할 대행자의 신상이 전혀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현재 역할 대행 알바를 위해 업체에 등록한 사람은 3만여명. 대부분 직장을 가진 20,30대로 ‘투잡스족’이 압도적으로 많다. 대행업체 사장 김희중(34)씨는 “부모·하객·자녀·애인·가사 등 다양한 역할 대행이 있다.”면서 “의뢰인이 인터넷에서 대행인의 사진을 본 뒤 직접 선택해 자신의 상황에 맞는 역할을 부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 뮤지컬 식인식물 조종사 이문석씨 지난 4월 제대한 이문석(24)씨는 뜻깊은 여름을 보내고 있다.5월부터 석달 동안 뮤지컬 무대에 섰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는 이씨지만 군에서 막 제대한 그가 뮤지컬 배우로 무대에 설 수는 없었다. 그는 무대에 출연한 알바생이다. 이씨가 출연한 작품은 오프-브로드웨이 최고 흥행작의 하나인 코믹호러 뮤지컬 ‘리틀샵 오브 호러스’다. 사랑하는 여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식인식물에 자기 영혼을 팔기로 계약한 빈민가 꽃집 점원 이야기다. 이씨는 이 작품에서 식인식물 모형을 조종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람을 잡아 먹을수록 점점 커지는 식인식물은 이씨 덕에 생동감있게 표현됐다. 알바생이지만 이씨 역시 다른 배우들과 함께 혹독한 연습을 거쳤다. 첫 공연 전 2주 동안 하루 12시간씩 연습했다. 알바생 4명이 교대로 식인식물을 조종했지만 실력을 인정받은 이씨는 혼자서 55분 분량의 1막 전부를 조종한다. 일당은 5만원. 이씨는 “비록 얼굴은 보이지 않아도 처음으로 뮤지컬 무대에 선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지만 관객의 박수가 터져 나올 때마다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 아르바이트 경력만들기 방법 ●진로를 빨리 정해 관련 아르바이트를 온라인 등을 통해 탐색해라. ●취업 관련 분야의 아르바이트는 방학전에 선점하라. ●아르바이트에 전념해라. ●무상으로라도 일할 각오를 해라. 안동환 김준석기자 sunstory@seoul.co.kr
  • ‘독도는 한국땅’ 고교생 서명 36만명 받아

    ‘독도는 한국땅’ 고교생 서명 36만명 받아

    “너도 나도 공부하느라 바쁘다고 모른 척하면 누가 독도를 지키나요.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죠.”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고3 수험생이 ‘독도는 우리땅’ 서명운동을 벌여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한영외고 이정우(18)군.5개월 남짓한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전국 495개 고교에서 무려 36만여명의 서명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자극받아 이군이 서명운동을 시작한 것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올 3월. 역사교과서 왜곡 등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이군은 일본 내 신보수주의자들의 행태에 치를 떨며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부모님·학교·친구들 삼박자 지원 수많은 학생의 서명을 이끌어 낸 밑바탕에는 이군 부모와 학교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잠잘 시간도 부족한 고3이었지만 서명운동의 취지에 공감한 학교측은 ‘나라사랑 한영회’라는 교내 동아리를 만들어 독도지키기 운동의 ‘중앙본부’를 꾸릴 수 있게 해줬다. 또 서명운동 제안문을 찍어낼 때는 인쇄업에 종사하는 어머니의 친구로부터 ‘스폰서’를 받기도 했다.3000여 학교에 우편물을 보내는 데 든 50만원은 자신이 모은 용돈으로 충당했다. 이군은 “처음에는 어린 학생이 뭘 아느냐며 서명운동을 비웃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서명과 함께 받은 ‘나도 한마디’ 의견란을 보면서 모두 나와 같은 ‘작은 애국자’라는 생각에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독도역사 영어로 번역 세계에 알릴 것” 내년 미국 유학을 목표로 하는 이군은 ‘독도 지키기 2라운드’를 준비하고 있다. 독도에 대해 잘 모르는 한국인 3,4세들에게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알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도 바쁜 시간을 쪼개 ‘독도수호대’에서 인턴과정을 밟고 있다. 이군은 “독도의 역사를 영어로 번역해 외국에 알릴 것”이라면서 “서명에 동참한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여담여담] 한국 패션, ‘디자인’이 없다/최여경 주말매거진We팀 기자

    요즘 패션계는 바쁘다. 몸은 한창 더위를 느끼고 있지만 패션계는 이미 서늘한 가을을 준비하며 곳곳에서 두꺼운 옷을 입고 올 가을·겨울 패션을 보여준다. 기자에게는 새로운 패션을 느낄 수 있는 기회라 반갑고, 톡톡 튀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어 즐겁다. 한 수입 남성복 브랜드는 1960년대 이탈리아영화 스튜디오처럼 꾸민 곳에서 자유로운 클럽파티를 열며 가을·겨울 스타일을 선보였고, 또다른 진 브랜드는 서부영화에 나올 법한 커다란 트럭으로 만든 무대에서 패션과 맥주, 록이 어우러진 파티를 열었다 . 또 세계적인 스포츠웨어 업체는 스포츠브랜드답게 피트니스클럽에서 섹시하면서도 활동적인 스포츠룩을 선보였다. 그러나 가을시즌을 겨냥한 행사를 연 토종 브랜드는 극소수다. 우리나라 패션디자인의 현실이 오버랩되며 갈증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많은 패션회사에서 디자이너를 채용할 때 그의 감각보다는 ‘체형’을 중시한다는 말을 디자이너 출신인 L씨에게서 들었다. 심하게 말하면 디자이너보다는 ‘마네킹’을 원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디자이너 출신의 S씨는 이렇게 털어놨다.“키 크고 날씬한 사람은 성인 브랜드에, 키 작고 아담한 사람은 아동 브랜드로 채용된다.” 버젓이 브랜드를 가진 패션회사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그 관행은 계속된다. 시즌에 앞서 잡지와 해외브랜드 컬렉션집을 독파하고, 지령이 떨어진다.“이번 스타일은 이런 거니까 비슷하게 만들자.” 독창적인 옷을 만들고 싶은 디자이너들에게는 힘빠지는 순간이다. 색다른 디자인을 내놓으며 호기를 부리면 돌아오는 답은 하나다.“이런 디자인 내놨다가 매출 안 나오면 어떻게 할건데?” 결국 능력을 펼치지 못한 채 환멸을 느끼며 업계를 떠나는 사람도 있단다. 기업은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돈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해가 된다. 그러나 한국의 패션회사는 디자인 카피회사가 아니다. 매출을 단순비교해 퇴출 브랜드와 존치 브랜드를 골라내고, 명품 브랜드의 디자인을 베껴 단추 하나 더 달고, 주름 하나 더 잡아 내는 것은 곤란하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한국의 톰 포드, 마크 제이콥스를 키울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최여경 주말매거진We팀 기자 kid@seoul.co.kr
  • [종전 60년 수교 40년 韓日 여론조사 ②]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

    [종전 60년 수교 40년 韓日 여론조사 ②] 일본 하면 떠오르는 것

    ■ 연상 이미지와 배울점 광복 60주년을 맞았지만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부정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일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국주의’라는 응답이 27.5%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일본문화’(12.7%),‘강대국’(9.7%),‘독도문제’(7.3%) 등 순이었다. 일본과 관련된 이미지 중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긍정적인 것들을 크게 앞섰다. 제국주의에 이어 ‘나쁘다.’(13.6%),‘역사왜곡’(3.2%),‘종군위안부’(2.3%)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42.6%에 이르렀다. 반면 ‘강대국’(12.7%),‘국민성이 좋다’(7.1%) 등 긍정적인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문화’(12.7%),‘인접국가’(3.8%),‘섬나라’(2.8%) 등 중립적 이미지는 19.8%를 차지했다. 특히 20대는 ‘일본문화’(27.6%)를 가장 많이 꼽아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일본 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30대 이상은 ‘제국주의’를 많이 들었는데,30대 23.6%,40대 27.6%,50대 33.8%,60대 42.2%,70대 이상 40.8% 등 나이가 많을수록 ‘일본=제국주의’를 떠올렸다. 직업별로도 ‘일본문화’(31.5%)를 꼽은 학생을 제외하고는 농립어업(34.9%), 자영업(31.8%), 가정주부(31.5%), 무직(40.7%) 등 대부분이 ‘제국주의’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이처럼 일본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훨씬 많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다수인 68.5%는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배울 점이 없다.’는 답은 26.4%에 불과했고,‘배울 점이 매우 많다.’는 적극적인 답도 14.0%에 달했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는 답은 특히 대학재학 이상의 고학력층(79.0%), 고소득층(81.7%), 화이트칼라(79.6%) 일수록 많았다.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으로는 ‘과학기술’(19.0%)을 가장 많이 꼽았고,‘근면성실성’(16.4%)과 ‘시민의식’(15.9%) 등 선진의식을 드는 비율도 높았다. 이어 ‘경제력’(11.5%) ‘문화우수성’(8.2%),‘친절성’‘애국심’(각각 6.6%) 등을 배울 점으로 들었다. 배울 점으로 과학기술과 경제력 등 물질적 측면 외에도 근면성실, 문화우수성 등 인적·문화적 측면이 많다는 것은 그간의 한·일간 인적·문화적 교류 확대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특히 여성들은 ‘근면성실’(20%)을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으로 가장 많이 꼽은 반면, 남성은 가장 많은 21.8%가 ‘과학기술’을 배울 점으로 선택했다. 세대별로도 차이가 뚜렷했다.20대(28.7%)와 30대(19.3%)는 일본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답한 반면 40대(18.2%)부터 70대이상(27.6%)까지는 일본에서 배울 점으로 ‘근면성실’을 가장 많이 꼽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노대통령 대일 정책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문제해결 방식에 대해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은 그저 그렇다는 식의 중립적인 태도를 보였다. 설문 대상의 47.2%가 ‘보통’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보통이다.’를 제외하고는 긍정적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2배 정도 높았다.‘잘하고 있다.’는 반응은 16.2%에 불과했지만 ‘잘못하고 있다.’는 대답은 31.1%나 됐다. 노 대통령의 대일 강경책이 일본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한 여론을 반영했음에도 불구, 노 대통령의 이같은 태도가 ‘점수’를 얻지 못한 것은 의외였다. 연령별로는 20,30대가 후한 평가를 내렸다. 반면 40∼60대는 젊은층에 비해 ‘잘못’ 쪽에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노 대통령의 지지층이 20,30대에 집중돼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응답자들의 기존 편향성이 이 문제에도 그대로 투사됐다고 할 수 있다. 30대의 20.7%,20대의 17.5%가 ‘잘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40대와 50대는 14%,60대는 14.7%가 각각 ‘잘하고 있다.’는 데 점수를 줬다. 반면 50대의 38.2%,60대의 36.3%,40대의 34.2%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연령대별 선호가 두드러진 셈이다. 그러나 학력·소득·직업·지역·도시규모·출신지에 따른 차이는 외교문제란 특성 때문인지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소득별로는 고소득층이 중산층보다 2.5%포인트, 저소득층보다는 3.5%포인트 더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출신지역별로는 제주(36.4%)가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이는 제주와 제주 출신들이 여행업, 무역 등 일본인 대상의 생업 종사 비율이 높고 접촉이 비교적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취임 초 노 대통령의 전향적인 태도에도 불구, 한·일관계 진전 방향의 괴리, 강경책에 따른 한·일관계 악영향 우려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직업별로는 화이트칼라(31.8%)보다 블루칼라(45.2%) 종사자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한·일관계를 언급하면서 일본측에 더이상의 사과나 사죄를 언급하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두 나라 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며 호의를 보였다. 그러나 그뒤 좋은 결과는커녕 한국인들의 민족 감정과 자존심을 훼손하는 일본의 행동이 잇따라 돌출, 노 대통령의 정책에 의구심이 들게 했다. 시마네현 의회의 지난 2월 ‘다케시마 날’ 제정조례 통과, 과거역사를 미화하는 후소샤 역사교과서 검정통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따른 한국인의 대일감정 악화 등이 악재로 작용했다. 반면 노 대통령이 국가원수로는 외교사상 유례없이 직설적 발언을 구사하며 강경한 태도로 바뀐 것도 일부 계층에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교 관행과 금기를 깨고 일본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노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한·일관계의 미래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과거사 문제 대다수 한국 국민들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보상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먼저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과와 피해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61.2%),‘동의하는 편이다.’(26.4%) 등 동의한다는 의견이 87.6%로 나타났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3.1%에 불과했다. 특히 일본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한국 내 일본 우호 계층에서도 동의한다는 의견이 88.2%에 달한다는 점은 일본 정부가 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이어 ‘일본이 과거 한국 식민통치에 대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사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89.7%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연령별로는 40대(92.1%), 직업별로는 블루칼라(96.2%), 지역별로는 읍면지역(55.7%)에서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이는 일부 일본 정치인들이 과거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고 미화하는 발언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고, 일본 정부 차원의 성의있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한·일관계 발전을 위한 당면과제에 대해 응답자의 과반수 이상인 56.1%가 ‘독도, 종군위안부, 역사 교과서 등 과거사 문제 해결’을 지적했다. 특히 20대(61.8%), 30대(60.2%)가 60대(54.9%),70대 이상(52.1%)보다 많았다. 양국 관계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세대가 과거사 문제를 더욱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 ‘경제협력 강화’(15.4%),‘문화교류 확대’(10.3%),‘우방으로서 외교문제 공동대처’(10.6%) 등에 대해서도 골고루 언급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한국인들은 한·일관계에 있어 과거사 문제에 비중을 두면서도 경제와 외교, 사회문화 등 실리적 이해관계 역시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국교정상화후 잘된점·못된점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간에 가장 잘된 일로 ‘모르겠다.’는 응답이 36.3%로 가장 많았다.‘없다.’는 답도 14.4%에 달해 한국인 2명 가운데 1명은 지난 40년간 한·일 간에 잘된 일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아 주목을 끈다. 그래도 가장 잘된 일로 꼽은 것은 ‘교류확대’(21.2%),‘경제협력’(12.7%),‘월드컵 공동개최’(10.4%),‘한류붐’(3.1%) 등이었다. 특히 일제 식민치하를 몸소 겪은 70대 이상은 국교 정상화 이후 잘된 일이 ‘없다.’는 대답이 25.4%를 차지, 전국 평균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모른다.’는 응답도 42.3%로 모든 연령층 가운데 가장 많았다. 한·일간 잘된 일에 대해 이처럼 무응답 비율이 높은 것은 최근 독도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된 탓으로 보인다. 즉 잘된 일이 있다 해도 이를 부정하려는 감정적 태도가 앞서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양국간 교류확대를 가장 잘된 일로 평가한 것은 한·일관계의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겠다. 국교정상화 이후 잘못된 일로는 가장 많은 22.3%가 ‘독도문제’를 꼽았다. 한국 국민들은 한·일관계 40년을 평가하면서 최근 불거진 문제를 가장 잘못된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어 잘못된 일로 ‘과거사 청산’(16.4%),‘역사왜곡’(15.7%),‘일방적인 정치외교’(2.4%) 등을 지적했다.‘모른다.’거나 ‘무응답’은 31.3%,‘없다.’는 6.3%를 차지했다. 70대 이상은 ‘독도문제’(22.5%) 못지않게 잘못된 일로 ‘과거사 청산’(18.3%)에 큰 비중을 뒀다. 반면 20대는 ‘과거사 청산’(11.5%)보다 최근 현안인 ‘독도 문제’(24%)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美역할 평가 국민들의 다수는 한·일관계에 있어 미국의 역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일관계에 미국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응답(46.5%)이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응답(16.8%)보다 약 3배 높게 나타났다.‘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응답은 25.8%였다. 모든 연령대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앞섰는데 특히 반미감정이 상대적으로 강한 20대(53%),30대(53.3%)에서 높았다. 성별로는 남성(51.1%)이 여성(42%)보다 미국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학력별로는 대학재학 이상의 고학력층(55.1%)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높게 나타났다. 소득별로는 고소득층(53.9%)과 중산층(50.5%)에서 부정적 평가가 50%를 넘어섰다. 직업별로는 학생(56%)과 화이트칼라(54.6%)층에서 부정적인 평가가 높게 나왔다. 이외에 도시규모별로는 읍면지역 거주자(56.6%)가 대도시나 중소도시 거주자보다 한·일관계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출신지역별로는 강원(54.9%)과 제주(54.6%)가 부정적인 평가가 높았고, 이북 및 기타 지역은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33.4%)가 부정적 평가(33.3%)를 근소하게 앞섰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과거 전통적인 한·미·일 안보 공동체제에서 벗어나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동북아 안보에 탄력적으로 대처한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구상은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미·일 간에는 이해와 협조가 잘 되고 있으나, 한국의 입장이 미·일과 달라 고립되는 양상이 반복됨으로써 이를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여졌다. 결론적으로 한국 국민들은 미·일 동맹체제의 강화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한·일 공동 국민여론조사 원본 자료 보기
  • 서울연가 (1)광화문 거리

    서울연가 (1)광화문 거리

    ‘거리와 추억은 동의어?’고도(古都) 서울은 골목마다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고궁의 돌담길 처마 밑에서, 휘황찬란한 강남의 가로등 아래서 시민들은 사랑을 속삭여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서울인은 22일자부터 ‘서울 연가(戀街·사랑의 거리)’시리즈를 매달 한번꼴(3주에 한번)로 내보낸다. 연인들에게는 놓쳐서는 안 될 데이트 장소이며, 나이든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장소가 될 것이다. 시리즈의 첫회로 ‘광화문 거리’를 소개한다. 사랑과 추억의 거리로 들어가 보자. 덕수궁 돌담길 서울 시내에서 가장 유서 깊은 산책 코스이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300m 남짓한 산책로가 나온다.1차선 도로로 차들도 지나지만 행인이 더 많다. 정동교회부터 경향신문사 사옥까지 이어지는 정동길은 누구와 걸어도 좋다. 덕수궁 돌담길은 낮보다는 밤에 더욱 빛난다. 도로 양 옆 산책로의 가로수와 벤치가 가로등 불빛에 제 모습을 드러낼 즈음 연인들의 사랑도 깊어 간다. 수백년 역사를 품은 덕수궁 담장 옆을 거닐며 영겁(永劫)의 사랑을 속삭여 보자. 그러나 덕수궁 돌담길을 거닌 연인들은 헤어진다는 속설도 있다. 서울광장 지난해 5월 개장 이후 명물로 떠올랐다. 서울시청 앞 2000여평의 원형 잔디 광장이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주변 직장인과 연인들은 물론 가족 단위로 나들이 나온 모습을 볼 수 있다. 플라자 호텔 맞은편 분수대도 볼거리. 광장 북쪽으로 매주 토요일 늦은 오후 ‘일상의 여유’ 공연이,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하루 세 차례 왕궁수문장 교대의식도 열린다. 청계광장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 청계천 시점부 740여평 규모. 청계천 물이 시작되는 광장분수는 촛불과 원형의 두 분수가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한다. 폭포 양 옆에는 전국에서 돌을 가져온 ‘8도석’을 깔았다. 반도체발광소자(LED)를 설치, 밤이면 빛과 물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파이낸스빌딩과 서울신문사 화장실을 심야에도 이용할 수 있다. 성곡미술관 광화문 구세군회관 왼쪽 길로 300m 올라가다 보면 만난다. 쌍용그룹 창업주 성곡 김성곤의 옛 저택에 자리잡은 자연친화형 미술관이다.100여종의 나무들이 숲을 이룬 조각공원이 일품이다. 나무와 잔디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조각품이 군데군데 숨어 있다. 성곡미술관 찻집도 빼놓을 수 없다. 야외 테라스에서 에스프레소에 입술을 적시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럽게 추억속으로 빠져든다.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대표적인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고풍스러운 성당 주변을 거닐며 커피 한잔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수요일 정오에 열리는 ‘주먹밥 콘서트’는 많은 이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다. 맛난 주먹밥에 포크,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 정동공원 사실 정동 전체가 ‘공원’이다. 그러나 정동에는 작은 공원 두개가 있다. 배재빌딩 옆 배재공원과 옛 러시아공사관 탑 아래의 정동공원. 둘 다 잘 알려지지 않았다. 모두 규모가 작지만 운치는 여느 공원 못지 않다. 연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자료실 시청 앞 무교동 골목 입구 금세기빌딩 8층. 인권 관련 단행본 1만여권, 영상자료 700종, 각종 일간지, 인권 특화신문 등을 무료로 볼 수 있다. 고도근시 등 시각 장애인을 위한 독서확대기, 점자프린터 등도 갖추고 있다. 한 달에 100여명이 방문해 비교적 한산하다.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에 이용할 수 있다.2125-9680. 영국문화원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흥국생명 2층에 있다. 자투리 시간에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영어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 각종 간행물,CD,DVD 등을 통해 영국의 생활방식, 문화, 영국유학에 관한 정보도 접할 수 있다. 하루 이용료는 3000원. 연회비는 3만원이다.3702-0600. 서울역사박물관 경희궁 옆에 자리잡고 있다. 1년 내내 볼만한 기획전시가 끊이지 않는다. 다음달 21일까지는 남북의 고구려 유물을 볼 수 있는 ‘대륙의 꿈 고구려’전이 열린다. 기증품을 중심으로 한 상설전시도 둘러볼 수 있다.724-0114.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다같이 마시자 부라보! 밀워키는 광화문 일대에서 손님들에게 신청곡을 받아 곡을 틀어주는 유일한 곳이다.LP판이 3000여장 있는 데다 없는 노래를 신청하면 주인 박용훈(37)씨가 수시로 LP판을 사다놓는다.LP판의 아버지뻘인 SP판을 재생하는 축음기와 비틀스·롤링스톤스 등의 포스터도 있다.774-3886. 프레지던트 호텔 개나리 바에서는 오후 6∼8시 생맥주 500㏄를 1970원이라는 ‘호텔스럽지 않은’ 저렴한 가격에 판다.3705-4221. 패밀리 레스토랑과 맥주집이 결합된 아사히(776-8986)와 타임아웃(3783-0233)도 세련된 인테리어로 여성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 이두걸 기자 “허름하지만 맛은 최고 점심한끼 제대로 먹자고요” 이남장(광화문점) 설렁탕 육수를 48시간 동안 끓여 내놓는다. 일년에 설과 추석 이틀을 빼고 주방장 가마솥이 끓고 있다. 김치에 설렁탕 육수를 양념으로 넣은 ‘탕국물 숙성김치’가 설렁탕의 담백한 맛을 살려준다. 푸짐한 양의 고기는 주인장 인심을 가늠케 한다.1인분 7000원.3210-3335. 리북손만두 접시만두(6000원)를 주문하면 어른 주먹만 한 만두 3개가 나온다. 투박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사골국물과 멸치액젓을 가미한 시원한 김칫국물에 밥을 넣은 김치말이밥(6000원)은 여름 별미로 꼽힌다.776-7350. 가미 서너평 공간에 20석 남짓한 조그만 식당이지만 양만큼은 푸짐하고 맛 또한 정갈하다. 메밀국수 정식(메밀국수+초밥)이 6000원, 오뎅백반, 우동 등이 5000원.737-1678. 깡장집 된장을 오래 졸여 얼큰하고 걸쭉한 ‘깡장’(일명 강된장)에 밥을 비벼 먹으면 환상적이다. 양파·돼지고기·풋고추·오징어를 잘게 다져 걸쭉하게 끓인 된장찌개를 양푼에 비벼 먹는다.4000원.720-6152 터줏골 메뉴가 북어국(5000원) 하나이기 때문에 식당에 들어서면 묻지도 않고 음식을 내온다.1968년 자리잡은 뒤 우유처럼 뽀얀 국물이 술에 괴로워하는 회사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북어는 강원도 진부령 덕장에서, 마늘은 충주에서, 검정콩은 음성산을 사용한다.777-3891. 용금옥 80년대 남북 회담 때 참석한 북한 인사가 ‘용금옥이 아직도 있느냐.’고 물어봤을 정도로 6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추어탕집이다. 통미꾸라지에 양지살·내장·유부·계란 등을 함께 넣고 끓여 칼칼한 국물 맛이 우러난다. 추탕 8000원, 미꾸라지볶음 1만 5000원.777-1689. 광화문집 26년째 김치찌개를 끓여온 이름난 집이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아온다. 큼직하게 썬 돼지 목살과 신김치, 흰 두부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푸짐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계란말이까지 함께 하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모두 5000원. 공기밥 1000원.739-7737 ■ 김유영 기자 “연인을 위한 데이트 장소 추천합니다 분위기 짱 맛도 짱” 이빠네마 브라질 정통 숯불바비큐인 ‘추라스카리아’ 레스토랑이다. 브라질 주방장이 꼬치에 꽂은 고기를 직접 가져와 썰어준다. 소안창살, 칠면조, 양갈비 등 다양한 고기를 ‘마르카도르’(목각)를 거꾸로 놓을 때까지 무제한 갖다준다. 참숯으로 기름을 빼 노린내를 줄였다. 점심 1만 6000원, 저녁 2만 4500원.779-2757. 우드 앤 브릭(Wood&Brick)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이탈리아 식당이다. 식당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데다 가게 앞에 노천카페를 운영해 광화문거리를 내다보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주방장은 신라호텔 출신인 박현진씨다.735-1157. 스패뉴(Spanew) 도넛가게를 하던 아버지의 가게터를 물려받아 사장인 강근영(35)씨가 주방장을 겸해 피자·파스타 등을 만든다. 수시로 재즈와 와인이 있는 스탠딩파티를 열기도 한다. 넓지 않은 좌석(40석)이 오히려 유럽식 카페를 연상케한다. 사장이 공들여 개발한 샐러드피자(1만 4000원)도 잘 팔린다. 점심 세트 2인기준 2만 2800원.755-4033. 카페 이마(Cafe iMa) 소시지·밥·젓갈을 한접시에 담은 ‘이마 라이스’(8000원)와 빵에 생크림·과일을 얹은 ‘와플 위드 에브리씽’(1만원)이 유명하다. 평일 점심에는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다.20·30대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2020-2088. 에비뉴 원 (AVENEW 1) 커다란 통유리창, 높은 천장, 심플한 인테리어가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콤한 맛의 해물아마트리치아나(1만 3000원)와 오전 10시부터 파는 샌드위치(테이크 아웃시 10% 할인)도 인기다. 점심 메뉴는 1만 5000원. 주말 아침 브런치를 갖기에도 좋다.738-2563.
  • [블루버드의 냠냠 다이어리] 김치비빔국수

    [블루버드의 냠냠 다이어리] 김치비빔국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이지요. 입맛도 없는데다 덥기까지 하니 주부님들은 주방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어지는 계절입니다. 그~래서~!입맛없는 여름이면 밥보단 시원한 면종류 생각이 더 간절해지죠. 오늘은 그래서 시원하고 입맛 살리는 음식으로 준비해 봤답니다. 새콤달콤 김치비빔국수!!이름만 들어도 입속에 침이 고이지 않나요?ㅎㅎㅎㅎㅎ^ㅡ^ 재료준비:(1인분)신김치 한줌, 소면한줌, 오이 1/3개, 구운김 조금, 양파 1/4개, 깻잎 3장, 설탕 1큰술, 고추장 1/2큰술, 식초 1큰술, 통깨 1큰술, 참기름 1/2큰술 1. 신김치는 잘게 다져 참기름, 설탕 넣고 조물조물 버무려 두세요. 2. 깻잎, 양파, 오이는 깨끗이 씻어 잘게 채썰어 주세요(잘게 채썰어야 소면과 잘 섞인답니다.) 3. 구운 김도 잘게 잘라 준비해 두고 소면을 끓는 물에 삶아 건져 찬물에 헹궈 체에 받쳐 두세요. 4. 건져둔 소면 그릇에 잘게 썰어둔 신김치를 담고 고추장과 식초, 통깨를 넣어 잘 비벼주세요. 5. 잘 비벼둔 소면 위에 오이, 양파, 깻잎, 김을 얹어 주면 끝!!! 싱거울 수도 있으니 고추장과 설탕 식초는 기호대로 추가하셔요∼. 더워서인지 도통 입맛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 즐겨 먹던 비빔면이 생각나 낮에 혼자서 후딱 해치웠답니다. 얼마나 맛있던지…ㅎㅎㅎㅎ ■ 블루버드의 조잘조잘 장마와 겹쳐 후텁지근하기까지…. 간단한 점심 한 끼 차려 먹기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지요. 그래도 주부가 건강해야 온가족이 건강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이렇게 맛나고 간단한 음식으로 점심 한 끼 해결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본격적인 장마네요. 비가 억수같이 온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요즘이죠. 한동안 뜨거운 볕에 짜증도 나곤 했었는데…. 며칠째 계속되는 빗속에 빨래가 바싹 마르던 그 따가운 햇살이 금세 그리워지네요. 사람 맘이란 게 참 간사하죠? ㅋㅋ 어릴 적 저희 엄만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학교를 찾아오신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한두 번 학교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나중엔 어련히 안 오시겠거니 하며 집으로 비를 맞고 걸어온 적이 참 많았어요. 그때는 참 서운하기도, 서럽기도 했었는데…. 그 덕에 여자아이치곤 강하게 자랐다는 소릴 많이 듣는 게 아닌가 싶네요. 가끔은 일부러 비를 맞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해요. 요즘 어머니들은 아이가 비를 맞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듯 비오는 날이면 학교 앞은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들과 차량으로 북새통이더군요. 조금은 아이에게 모진 부모가 되는 것 또한 교육의 한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TV를 켜면 날씨만큼이나 안 좋은 소식들이 가득하지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우울한 소식이 걷히고 밝고 맑은 소식들이 들려오면 차암~ 좋겠습니다.
  • 일상속의 아이러니 특유의 문체로 다뤄

    ‘회색 눈사람’ ‘하나코는 없다’의 작가 최윤(52·서강대 프랑스문화과 교수)씨가 소설집 ‘첫 만남’(문학과지성사)을 냈다. 장편 ‘마네킹’ 이후 2년 만, 소설집으로는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 이후 6년 만이다. 계간지에 실렸던 단편 7편과 미발표 신작 1편 등 8편을 묶었다. 수록작들은 지리멸렬한 일상의 반복과 그 안에서 버둥대는 개인의 실존에 오감을 활짝 열어둔 작가 특유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가 개인의 삶의 기억이 유난히 많이 들어간 이번 작품집에 대해 그는 “할 얘기가 하나도 없는데 입을 열면 말이 쏟아져 나오고, 써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책상 앞에 끌려가 앉아 쓰기 시작하면 글이 스스로의 작동법칙에 따라 연결돼 나오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집 앞’은 화자인 ‘나’가 세살 위 언니 ‘K’에게 쓰는 편지글 형식이다. 내가 아홉살 되던 무렵, 집 문턱을 넘어 가족의 일원이 된 ‘K’는 나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에게 늘 불온한 존재다. 직업 여행가로 세상을 떠돌던 ‘K’는 서른 살 기념으로 사막여행을 제안하고, 여행 도중 사막 한복판에 나를 버려두고 가버린다. 고통스럽게 기억을 더듬던 화자는 결국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뒀던 명제를 꺼내든다.‘K, 너를 사랑한다’. ‘밀랍 호숫가로의 여행’은 부부 약사로 순탄한 결혼생활을 해오던 중년여성이 맞닥뜨리는 삶의 위기를 다룬다. 어학연수를 떠났던 딸아이는 행방불명되고,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까지 선고받은 나는 남편으로부터 혼외정사로 아이가 있다는 고백까지 듣게 된다.“뒤늦게 나는 기쁨과 고통은 별개로, 그렇기에 서로 상관하지 않고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다.”(87쪽) 미발표작 ‘파편자전-익숙한 것과의 첫 만남’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의 색채가 짙다.‘나’는 십수년 전 파리의 한 정신분석자와의 면담을 떠올리며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개인적 삶의 이미지들을 탐색한다. 가족, 개, 노래, 어머니, 우표로 이어지는 기억의 파편들은 글쓰기의 욕망 혹은 쾌락으로 전이된다.8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현대미술의 향수] (3)클림트가 그려낸 ‘벌거벗은 진실’

    [현대미술의 향수] (3)클림트가 그려낸 ‘벌거벗은 진실’

    오스트리아에서는 클림트의 작품을 손쉽게 접하게 된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만이 아니라 마치 오스트리아 ‘공식상표’인양 갖가지 복제화와 상품의 형태로 전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빈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열린 (벌거벗은 진실)전을 계기로 그의 여성적이고 관능적인 작품세계가 사람들에게 주는 기쁨의 의미를 찾아본다. #1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작품 중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키스)(1907-8)는 굳게 포옹하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커다란 정사각형의 화면을 가득 채운 그림이다. 연인을 다룬 그림이야 미술사 속에 넘치도록 많지만,(키스)의 연인은 특별하다. 비잔틴 모자이크에서 신성함의 표지였던 황금빛 반짝임이 여기서는 에로틱한 황홀경의 시각적 표현이 되었고, 평범할 수도 있었을 연인의 결합이 거의 신성에 버금가는 가치를 획득한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근원적 합일을 통해 영원한 화해와 조화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메시지는 정치, 사회, 문화의 격변기였던 클림트의 시대는 물론이고, 모든 것이 분절되고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까지 그의 작품이 국적과 연령을 초월하여 사랑 받는 까닭일 것이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회화적 자부심 지금 빈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벌거벗은 진실)(5월13일-8월22일)전은 클림트가 활동했던 1900년 무렵의 오스트리아 회화와 드로잉 180여 점을 전시한 대규모 전시이다. 큐레이터 토비아스 나터의 전시 기획안을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쉬른 미술관에서 받아들여 준비하면서 레오폴드 미술관이 합류했다. 두 미술관이 오랜 준비단계를 거쳐 유럽 각국은 물론이고 미국, 일본의 미술관과 개인소장자들의 도움으로 준비한 작품들은 먼저 쉬른 미술관에서 성황리에 전시를 마치고(1월28일-4월24일), 레오폴드 미술관으로 옮겨왔다. 레오폴드 미술관의 넓은 지하전시장에 7개의 소주제로 나누어 전시된 작품들은 마치 전체 주제를 한 눈에 보여주려는 듯 긴밀한 짜임새로 구성되어 전시 기획자들의 세심함이 두드러진 전시였다.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그리고 다른 스캔들’이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전시의 출발점은 클림트이다. 클림트는 오스트리아의 회화적 자부심과 결부된다. 빈 근교에서 태어나 계속 빈에서 교육받고 활동한 그가 파리, 로마 등에서 인정받고 국제적 명성을 획득한 덕분이다. 모차르트, 슈트라우스, 쇤베르크 등 걸출한 음악가를 배출한 오스트리아는 무엇보다 ‘음악의 나라’이고, 미술 장르 중에서는 건축 쪽이 강세를 보인다. 적어도 클림트 이전의 오스트리아 회화는 국제적 흐름과는 단절된 채 과거의 영광과 전통을 되뇌는데 급급한 수준이었다. 물론 클림트가 국제적 명성만으로 오스트리아 대표화가의 역할을 얻은 것은 아니다. ●자위·임신등 금기로 여기던 소재 끌어내 1897년 클림트를 중심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결성한 빈 분리파는 오스트리아 미술이 자기만족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새로운 미술전통을 추구함으로써 현재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벌거벗은 진실)이라는 전시 제목도 위선적인 치장에 가려진 ‘진실’을 벌거벗은 여인으로 형상화한 클림트의 (누다 베리타스)(1899)에서 따온 것이다.‘인간의 벗은 몸’과 ‘공적인 전시공간’을 중심으로 1900년대 보수적인 빈 사회의 권위에 도전했던 젊은 예술가들의 반항과 그들을 향한 당시 사람들의 거센 비난에 초점을 맞춘 전시에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전시작품들도 성과 욕망, 동성애, 자위, 임신, 어린 소녀의 누드 등 당시의 도덕관이 금기로 여기던 소재를 내세운 것들이다. 그 중에는 상대적으로 허용의 폭이 넓어진 오늘날 볼 때 그리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이는 작품들도 있지만, 몇몇 작품들, 특히 클림트의 에로틱 드로잉이나 실레를 감옥에까지 가게 했던 에로틱 수채화와 드로잉들은 아직도 전시실이 아닌 공공 장소에 걸어두거나 전시 포스터로 사용하기 힘든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이한 점은 1층 중앙홀에 클림트의 그림 세 점을 복제하여 걸어둔 일이었다.1894년 국가의 주문으로 클림트가 제작에 착수한 이 그림들은 스케치 단계에서부터 거의 10년간 오스트리아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이후 빈의 미술흐름을 바꿔놓았다고 평가된다. 원작은 1945년에 소실되어 흑백사진자료로만 남았는데, 이 그림들이 흑백이긴 하지만 실제 크기로 복제되어 함께 전시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불에 타서 망각 속으로 사라진 그림을 굳이 전시장으로 불러들인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또 다른 망각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클림트, 실레, 코코슈카 등이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사랑 받게 되면서 그들의 작품이 불러일으켰던 사회적 논쟁과 갈등이 잊혀지고 있는 것이다. 레오폴드 미술관에서는 (벌거벗은 진실)전과 별도로,1층 전시장에서 방대한 소장품 중 선별한 작품들로 (1900년대의 빈)전(3월25일-8월30일)을 진행하고 있다. 개인소장품이었다가 최근 레오폴드 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클림트의 (죽음과 삶)(1916), 그의 풍경화들, 콜로만 모저, 요제프 호프만, 오토 바그너 등 빈 분리파와 빈 공방 주역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900년대의 빈)전까지 둘러보고 전시장을 나서자 마치 100년 전의 세계에서 순식간에 현재로 뽑혀온 듯 현기증이 난다. 우화와 신화의 베일을 벗기고 꾸밈없는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던 클림트와 불멸의 반짝임 속에 꿈결같은 충만의 세계를 보여주었던 클림트 사이의 간극 역시 이 현기증을 더해준다. 하지만 클림트 작품의 매력은 바로 이 간극 속에 있다. 헐벗은 현실에 대한 자각과 불만이야말로 조화로운 구원의 세계를 더 갈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갈망은 어떻게 성취되는가. 바로 예술과 사랑의 만남을 통해서, 클림트 식으로는 ‘전 세계를 위한 키스’를 통해서. #2●빈의 이질적 건물 대화나누듯 마주서 빈은 신기한 도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루프레흐츠 성당, 고딕 양식의 슈테판 성당, 바로크 양식의 칼스 성당 등의 역사적인 건축물, 유겐트스틸의 선두주자 오토 바그너의 기하학적 건물들, 장식과잉의 역사주의 건축에 반발한 아돌프 로스의 금욕적인 건물들이 시내곳곳에 뒤섞여 있다. 물론 웬만한 유럽도시는 다양한 양식의 건물이 혼재하기 마련이지만, 빈에서는 유독 서로 이질적인 건물들이 대화라도 나누는 듯 마주보고 있다. (벌거벗은 진실)전에서 1900년대 가장 소란스러웠던 건축스캔들의 사례로 다루었던 로스의 ‘벌거벗은 건물’은 황제가 생활하는 화려한 왕궁에서 내다보이는 곳에 지어졌다. 두 건물은 지금도 서로를 비난하고 있을 것이다. 한편 1985년에는 빈의 상징 성 슈테판 대성당 바로 앞에 한스 홀라인의 하스하우스가 들어섰다. 현대판 성채 같은 하스하우스의 유리로 된 전면에 성 슈테판 대성당이 비치는 광경을 보면 마치 현대의 신(하스하우스 안에는 쇼핑센터와 식당, 카페 등이 있다)과 과거의 신이 서로 의지하면서 다독이는 느낌이 든다. 이질적인 두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빈의 명물이 되어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지 않는가. 바로 이런 도시이기에 훈데르트바서 같은 건축가가 태어날 수 있었나보다. 바르셀로나가 가우디를 배출했다면 빈에는 훈데르트바서가 있다. 서로 가까운 곳에 위치한 훈데르트바서하우스(1985)와 쿤스트뮤지엄빈(1991)을 찾았다. 공동주택이어서 거주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바깥에서만 봐야하는 훈데르트바서하우스와 달리 쿤스트뮤지엄빈은 화가이기도 한 훈데르트바서의 환상적인 회화작품들이 상설 전시되어 있어 여러모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물론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건물에 대한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미술관 건물 자체이다. 제각기 다른 모양의 창틀, 건물 곳곳에 넘쳐나는 알록달록한 색채, 다양한 곡선을 만들며 점점이 박힌 서로 다른 크기의 총천연색 타일, 그리고 가장 놀라운 부분인데 벽도 바닥도 천장도 모두 평평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동화의 세계나 아이의 꿈속에서 꺼내다 찌그러진 성 같기도 하고 서툰 요리사가 망쳐놓은 화려한 케이크 같기도 하다. 이런 건물은 자연에는 직선이 없으며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신념에서 나왔다. 그래서 훈데르트바서의 건물은 그 자체가 화려한 꽃밭인가 보다. 이건 비유적인 의미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건물 지붕에 잔디를 깔고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꾸몄고, 건물 안에도 자연을 형상화한 타일모자이크 뿐 아니라 실제 자연을 끌어들였다. 이 자연에는 나무와 물, 그리고 아이들이 포함된다. 쿤스트뮤지엄빈의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주눅들고 긴장해야하는 공간이 아니라 편안하게 머물면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된 미술관을 보면, 건축가의 철학이 건물 외관뿐 아니라 그 운영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문명주의자에 환경운동가이기도 한 훈데르트바서의 건물은 다른 형태의 대화를 꿈꾼다. 다른 건물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대화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이 대화는 어쩌면 생활과 예술의 결합을 추구했던 빈 분리파와 빈 공방의 의지를 확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성림 작가
  • “주유마일리지 최초 도입 6개월새 매출 두배 올려”

    1993년 서울 압구정동의 새서울주유소. 이곳에서 기름을 넣으면 1500원짜리 양말이 공짜였다. 한번 더 넣으면 스카프, 종이카드 위의 60번을 다 채우면 무료 온천 숙박권이 나왔다. 사은품이라고 해봤자 200원짜리 휴지 하나가 전부이던 시절에, 그것도 주네 마네하며 승강이가 벌어지던 당시로써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업계 최초로 ‘주유 마일리지’를 도입,6개월 만에 매출을 두배로 끌어올린 이가 지금의 권기연(40) 새서울그룹 대표이사 사장이다. 한동안 조용하던 그가 최근 강원도 양양의 골프빌리지 조성과 수입차 딜러 가세로 다시 한번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양양국제공항에서 클럽하우스까지 도보로 3분 거리인 골든비치CC(가칭·27홀)는 ‘비행기에서 내려 걸어가는 국내 최초의 골프장’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린에 골프텔(50실)과 콘도미니엄(100실)까지 갖춰 동해안 최고의 골프 빌리지로 조성한다는 게 권 사장의 꿈이다. 오는 9월 회원권을 분양한다. 서울에서 너무 멀지 않느냐는 지적에 권 사장은 “동서고속도로가 완공되면 불과 1시간30분 거리”라며 자신있어했다. 그의 핸디는 10. 얼마전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일본 닛산차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 공식딜러로도 선정됐다.“강남 터줏대감이라 누구보다 강남사람들의 심리를 잘 안다.”는 그는 “새달 1일부터 본격 시판에 들어가 연말까지 700대, 내년에는 1800대를 팔 계획”이라고 밝혔다.입사 당시 300억원에 불과하던 회사 매출을 지난해 5개 계열사(㈜양양공항컨트리클럽,SS모터스, 호텔 덕구온천,㈜새서울석유,㈜새서울정보통신) 1000억원으로 불려 놓은 그인 만큼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는 경상북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천리건재상’집 막내아들이다. 동네이름(안동시 천리동)에서 상호를 딴 그의 아버지(권영복·현 그룹 회장)는 1977년 서울 개봉동에 사실상 그룹의 모태가 된 대원주유소를 인수하면서 서울로 사업기반을 옮겼다. 이듬해 압구정동에 새서울주유소를 냈다. ‘주유소 재벌’에서 정보통신·골프장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한 것은 스물여덟살의 젊은 2세가 경영에 합류하면서부터. 권 사장은 “자식들 중에 공부를 제일 못해서”라고 설명했지만 “3형제중에 사업가 소질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주위의 얘기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나와 쌍용자동차에서 1년쯤 샐러리맨 생활을 한 그는 93년 과장으로 ㈜새서울석유(주유소 운영업체)에 입사했다. 처음 석달간은 기름만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주유 마일리지’를 도입하게 됐을까.“기름넣으면서 보니까 완전 배짱장사라더구요. 뭔가 고객들을 재미있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마진의 일부를 돌려주는 방안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그러나 사은품값만 한달에 몇천만원이었다.“철없는 2세가 사업을 말아먹으려 한다.”며 임직원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아버지(당시 사장)도 못마땅해했다.“마일리지를 도입한 지 두달 만에 매출이 엄청나게 치솟으면서 갈등이 싹 해결됐다.”는 권 사장은 이때부터 ‘오너 아들’이 아닌 ‘장사꾼’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결국 입사 3년 만에 사장이 됐다. 주유원들을 전부 이끌고 일본 MK택시로 ‘친절연수’를 떠날 만큼 직원들 투자에도 적극적인 그는 5년내 매출 1조원대 돌파라는 새로운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내년 예상 매출액은 2500억원이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日외상 서면 인터뷰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는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의 반환과 관련,“신사측은 남북간에 반환처에 관한 공식적인 합의를 하고 일본 정부에 외교채널을 통해 요청하면 반환할 용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남북의 정부당국이 조속히 조정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북관대첩비는 일제에 의해 100년 전 약탈돼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온 임진왜란 승전비로, 정부가 반환협의를 위해 북측에 문화재회담을 제의해 놓은 상태다. 마치무라 외상은 한·일정상회담을 앞둔 16일 서울신문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현재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대해서는 “한국측이 현 상황인 채로 관세협상을 개시하는 데 신중한 자세”라면서 한국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한·일관계 ▶한·일 우정의 해인 올해 초 독도문제가 발생했다. 독도문제로 양국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상했는가. -2005년은 아직 반환점에 오지 않았다. 양국간의 교류를 이어감으로써 우정의 해를 보낸 양국민이 올해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단히 의미가 깊은 한해였다.”고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20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한이 예정돼 있다. 한·일 관계개선에 좋은 복안이라도 있는가. -올해 전반부는 양국관계가 곤란을 겪었다. 양국이 이런 곤란을 뛰어넘어,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의 공동성명에 있는 것처럼 ‘동북아시대를 향한 한·일협력’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양국간에 더한층 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관계를 한때의 긴장상태에서 평정한 상황으로, 나아가 양국의 우호협력을 한층 확고하게 하는 좋은 기회다. 지난달 도쿄에서 ‘한반도 출신 옛 군인·군속 및 민간징용자 등의 유골문제에 관한 한·일협의’를 여는 등 개별적인 문제에 대해 착실히 대응하는 것도 그러한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항구적인 무비자 전환 같은 성과를 기대해도 좋은가. -일본 각지에서 ‘가깝고 가까운 나라’로부터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기회에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의 비자면제(아이치 만국박람회 기간 중 시한부)의 성과를 바탕으로 항구적 면제에 대해 검토하겠다. ▶한·일 FTA에 대해 일본 정부는 어떤 로드맵을 갖고 있나. -협상 재개에는 서로 유연성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 두 정상간에 확인된 연내 실질합의를 향해 계속해서 한국과 협력해 갈 생각이다. #역사문제 ▶(주변국 침략과 관련해)일본은 독일보다 사과를 더 했다고 발언했는데, 지금도 그런 생각인가. -일본은 전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나 한·일기본조약 등에 따라 국가간 배상 등의 문제를 일괄처리했으나, 독일은 동서로 분단돼 있어 우리같은 국가간 배상문제 등을 일괄처리할 수 없었다. 전혀 다른 상황인 일본과 독일의 대응을 단순히 비교해 평가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어떻게 보는가. -총리 본인이 설명한 대로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은 사람에 대해 경의와 감사를 표하는 것으로 참배 때마다 ‘부전(不戰·전쟁을 하지 않는다)’을 맹세하고 있다. 군국주의의 미화나 A급 전범을 위한 참배는 아니다. #국제관계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양국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되는 일은 국제사회, 동북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일본과 여러 가지 공통의 이해를 갖고 있는 한국에 있어서도 큰 이익이 될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이해와 지지를 해주도록 부탁하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시아 균형자론’을 밝혔는데, 한국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의 실제 외교정책 운영에 있어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 같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관한 중요한 과제에 대처해 가기 위해서는 일본, 한국 및 미국의 긴밀한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 정부 스스로가 ‘균형자론은 어디까지나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한 것’임을 밝힌 점에 유의하고 있다. #북한 문제 ▶북핵문제가 악화될 경우 미국이 무력행사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일본은 미국의 무력행사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관계국이 6자회담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중시해 왔다.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위해 한·미·일을 포함한 모든 관계국이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북핵문제의 악화를 상정해 관계국의 구체적인 대응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북·일 수교협상의 재개 전망이 불투명하다. 오히려 대북 제재의 목소리가 일본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북 협상의 조건은 무엇인가. -납치문제와 관련해 북한으로부터 성실한 대응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본으로서는 생사가 불분명한 납치피해자와 관련해 생존자의 즉시 귀국 및 진상규명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과 동시에 일본과의 대화에 응하도록 촉구해 가겠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정부 “우리땅… 거론땐 단호대처” 한·일 양국이 20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제 선정 작업에서부터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의 시각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도 문제의 경우 정부는 지리적·역사적·국제법적으로 분명한 우리나라 영토인 만큼 의제로 논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한 입장이다. 반면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주요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은 지난 14일 열린우리당의 인터넷방송에 출연,“이번 정상회담 의제는 첫째 야스쿠니 문제, 다음에 역사왜곡, 세번째 독도문제”라면서 “특히 독도문제는 명백하게 우리 영토가 분명하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고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영유권 문제에 대해 시비를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장관의 발언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가 먼저 독도 문제를 얘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일본측이 문제를 제기하면 단호하게 받아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교과서 역사왜곡과 관련, 정부는 이번에 정식의제로 올려 일본의 무성의를 분명히 따지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일본은 가능하면 의제에서 제외했으면 하는 의사를 보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도 우리 정부는 중요 의제로 다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 장관은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인터넷방송에서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검토를 약속한 대로 제3의 추도시설 문제를 검토하도록 정상회담에서 강력히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상연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마치무라 외상 ‘왜곡 교과서’ 검정때 문부상 역임 마치무라 노부타카(60) 외상은 중의원 7선의 집권 자민당 내 중진이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 통상산업성에 들어가 13년간 공직생활을 했다.1983년 정계에 입문해 중의원에 첫 당선된 뒤 우리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해당되는 문부상을 두 차례 지냈으며, 외무성 정무차관과 자민당 간사장 대리도 역임했다. 2001년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때 문부과학상이었다. 지난해 9월 개각의 외교·안보팀 개편 때 외상으로 발탁됐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의 과제를 떠안고 있으나 역사왜곡 교과서 파동, 독도, 야스쿠니 참배 문제 등이 겹쳐 유엔에서의 영향력이 큰 중국, 한국의 반발로 벽에 부딪힌 상태다. 역사왜곡 시정을 요구하는 국회 대표단이 일본을 방문했던 지난 4월 “한국인에게 대단한 아픔을 드린 데 반성한다.”고 밝히고 5월 뉴욕의 유엔개혁회의에서는 “일본은 역사를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있지만 독일보다 훨씬 여러 번, 더 많이 사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4월 일본 NHK에 출연해 “한국과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다니 이런 바보같은 일도 없다.”고 말해, 외교통상부가 “매우 유감스러운 발언”이라고 강력 항의하는 공식논평을 낸 바 있다.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최근 한일분쟁 일지 ▲2월22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다케시마의 날’ 조례안 상정. ▲2월25일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 “독도는 일본 영토” 발언. ▲4월5일 일본 문부성, 왜곡 교과서 검정. ▲5월11일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한국과 북핵 정보 공유 불가” 발언. ▲6월1일 신풍호 한·일 경비정 대치 사건. ▲6월11일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상,“종군위안부라는 말은 원래 없었다.”발언.
  • “꼭꼭 숨어라 과학 보인다”

    ‘극과 극은 통한다.’미술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온 계기로는 16세기 원근법 도입,19세기 카메라 발명,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 과학이론의 발달,20세기 후반 컴퓨터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즉 인간 감성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미술작품이 이성의 산물인 과학기술과 맞물려 진보를 거듭한 셈이다. 세계적인 명작 속에 녹아있는 과학을 들여다본다. ●기하학을 모르면 화가도 아니다 15∼16세기 르네상스시대 초기에 활동한 화가 지오토의 ‘죄없는 학살’은 3차원적 깊이감, 즉 원근법을 살린 최초의 작품이다. 기존의 미술작품은 대다수 문맹자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돼 오로지 신에 대한 신앙심을 표현했을 뿐, 사실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오토의 원근법은 초보적인 수준이었으며 자로 잰 듯한 수학적 원근법은 마사초에 의해 제시됐다. 이후 르네상스시대에는 원근법이나 비례법 등 기하학의 원리를 모르고는 화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크게 미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이같은 기하학적 원리를 절묘하게 활용, 예수와 12명의 제자를 효과적으로 배치해 구성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 ‘모나리자’에서는 기존의 정밀한 선을 활용한 원근법 대신 사물의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해 원근감을 표현하는 공기원근법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모나리자의 신비감이 더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원리가 미술작품 전체를 지배한 것은 아니다. 수학적 원근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프란체스카의 ‘성스러운 대화’의 경우 그림 중간에 위치한 달걀이 원근법에 맞지 않게 크게 그려졌다. 이는 성모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됐다는 성스러운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풀이된다. 즉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때론 과학을 희생시키기도 한 것이다. ●미술가의 눈은 곧 과학자의 눈 17세기 바로크시대에 접어들면서 화가들은 선과 색채 대신 빛과 어둠이 주는 광학적 효과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는 ‘의심하는 도마’ 등에서 빛을 극적으로 활용해 인간의 심리상태까지 묘사했다. 이어 램브란트의 ‘야간순찰’도 작품에 역동감을 불러오는 매개체로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이 작품이 명작으로 손꼽히지만 당시에는 작품 외적인 요소 때문에 램브란트가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순찰대원들의 얼굴은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한 후원자들이었으나 그림이 완성된 후 얼굴이 어둠에 가려 제대로 드러나지 않자 후원금을 돌려달라는 소동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평가를 받는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 소녀’도 빛이 들어오면서 뺨과 콧날의 선을 투명하게 처리해 해체함으로써 특별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이처럼 빛을 포함한 외부세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은 18세기말 영국 풍경화에서 꽃을 피운다. 자연의 현장감을 살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과학자의 눈을 빌려 대기의 흐름까지 그림에 표현했다. 영국 풍경화의 대부 컨스터블과 영국 최고의 국민화가로 추앙받는 터너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과학이 어려워지면 미술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19세기 카메라의 발명은 이같은 화풍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동시에 인상주의를 비롯한 근·현대미술을 낳는 씨앗이 됐다. 마네의 ‘오페라 홀에서의 가면무도회’에서는 16세기 이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던 원근법이 파괴됐다. 이는 2차원적인 평면에 3차원의 공간을 표현할 수 없다는 회의에서 출발, 미술의 본질을 추구하겠다는 의도였다. 모네는 ‘노적가리 연작’ 등의 작품을 통해 빛에 의해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모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와 색채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한 장소에 14개의 캔버스를 놓고 동시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 세잔의 ‘생 박토아르 산’에서는 한쪽에서만 들어오는 빛, 한 지점에서만 바라보는 시점 등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미술에서 고정관념에 대한 의문과 파괴 현상은 20세기 초반 각종 과학이론이 발표되면서 더욱 증가했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달리의 ‘기억의 고집’에서 등장하는 늘어진 모양의 시계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영향을 미쳤다. 즉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시간의 속성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또 입체주의 화가인 파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X-레이의 등장으로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해지자 사물을 기하학적으로 해체,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이처럼 과학의 영향을 받는 미술은 20세기 후반 컴퓨터 등 이미지를 시각화할 수 있는 기술이 보급되면서 과학과 미술의 경계가 사라지기도 했다. 광학적인 착시효과를 이용한 옵티컬아트의 경우 과학이 곧 미술이라는 사조도 만들어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아인슈타인처럼 새로운 과학적 비전을 제시하는 과학자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이 앞으로 예술가로 성장한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 도움말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국민대 미술학부 겸임교수)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심폐소생술 배우세요”

    대표적인 응급조치술인 심폐소생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서울시소방방재본부는 9일부터 대치동 서울무역센터 ‘2005건강엑스포’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포함한 ‘119구급·소방안전교육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7일 밝혔다. 이번 교육은 12일까지 서울무역센터 제2관과 야외주차장에서 동시에 이뤄진다.119구급대원이 방문자에게 실습 마네킹을 이용해 심폐소생술을 직접 교육하고, 심실제세동기와 심실압박기 등 구급장비를 전시·소개할 예정이다. 또 야외주차장에서는 이동체험 운영팀이 이동체험차량을 활용해 방문자들에게 소방안전 체험 교육도 실시한다. 소방방재본부 관계자는 “뇌졸중이나 심장마비로 사람이 쓰러진 뒤 5분 이후부터 뇌 손상이 시작된다.”면서 “시간이 지체되면 회복 뒤에도 후유증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응급조치술을 배우면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스스로 보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균형자론 日도 겨냥한 것”

    청와대가 31일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에 ‘일본’을 추가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준 뒤 균형자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들면서 “동북아 균형자론은 군비를 합법화·강화하는 일본의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일 때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태영 청와대 부속실장도 이날 국정일기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은 100년전 우리 역사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역사를 거꾸로 가는 일본에 대한 심각한 우려라는 두가지 축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독립기념관 방문(2월27일), 시마네현 의회의 조례제정안 제출(2월22일), 주한 일본대사의 망언 등을 동북아균형자론 구상의 출발점으로 소개했다. 6월 말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굳이 동북아균형자론이 일본을 겨냥하고 있다고 밝힌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교과가 독립해야 할 이유/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2003년 여름, 우리는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려 한 충격적인 사태에 접했다. 역사학계를 비롯해 정부·정치권·시민단체, 그리고 전 국민의 뜨거운 비판 열기에 놀라, 현재 중국은 주춤한 상태다. 우리는 고구려연구재단을 발족해 고구려 역사를 비롯한 북방사의 학술적 체계화에 주력하고 있다. 일찍이 1982년부터 시작된 일본 역사교과서의 식민지배 미화는 급기야 올 봄 극우적 ‘새로운 역사교과서’(후쇼사 판)를 탄생시키고, 이에 더하여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조례 제정으로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정부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을 상설기구로 설치해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21세기 탈민족주의적 동아시아 평화를 추구하는 ‘동아시아 담론’을 다듬던 학계는 된통 벼락을 맞은 셈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 동북아 공동체를 옹호하는 목소리는 잦아들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동아시아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중·일 삼국의 학계와 시민단체가 수년의 공동작업 끝에 공동역사교과서 ‘미래를 여는 역사’를 간행하게 된 것은 아주 소중하다. 교육인적자원부도 역사분쟁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들끓는 여론에 대한 응급처방으로 지난해 가을, 학계와 시민단체를 모아 ‘국사발전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물론 학계의 전반적인 중론은 ‘국사’ 교육의 강화가 아니라 동아시아사·세계사를 포함하는 ‘역사’ 교육의 재구성이 시급하다는 데 모아졌다. 이를 위해서는 국사와 세계사가 ‘사회 교과’에 편입돼 있는 현 교육과정을 수정해야 한다. 미군정 때 수입된 미국식 사회과는 민주시민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데, 민주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미국의 역사를 사회과의 일환으로 교육하는 것은 그 나라의 특수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타율적 근대화의 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전통 내지 전근대와, 근·현대의 연속성은 두드러지지 못하다. 사회교과에서 우리의 역사적 연원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경제 중심의 사회과 교육과정에서, 고구려 역사에까지 소급하는 역사교육과 호흡을 같이할 수 있는 공간은 매우 협소하다. 국사와 세계사가 사회교과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역사를 전공하지 아니한 사회과 교사가 중학교 국사의 40% 이상, 세계사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현실은 교육의 전문성을 유린하는 처사다. 남아도는 교사의 수급조절을 위해 교련·실업·제2외국어 담당 교사가 2회에 걸친 방학 중 연수만으로 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칠 수 있게 한 조치는 더욱 충격적이다. 또한 현재처럼 ‘국사’ 교과서만이 ‘사회’ 교과서와 별도로 제작되는 방식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발주해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사로 규정하려는 시도나 일본이 역사교과서를 왜곡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우리의 역사교육이 나만을 자랑하는 국수적 자아도취에서 벗어나지 못한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지난 5월6일 교육부가 ‘역사’를 사회 ‘교과’의 한 ‘과목’으로 독립시킨다고 하여 마치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교육과정과 교사 양성은 사회과 체제로 그대로 둔 채, 현재 사회 교과 안에 독립교과서로 돼 있는 ‘국사’ 교과서에 세계사를 포함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사회과로부터 역사교과는 ‘교과’로서 분리 독립돼야 한다.‘한국을 중심에 둔 동아시아’‘세계사와 비교된 한국사’ 교육을 위해 하루속히 한국사·동아시아사·세계사 통합체제로서의 ‘역사’ 교육이 독립적으로 실시돼야 한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을 옹호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교육이 변해야 한다. 이영호 인하대 한국사 교수
  • [MLB] 구대성 ‘양키스’ 농락

    ‘미스터 쿠(Koo)’의 투타에 걸친 ‘원맨쇼’가 셰이스타디움에 운집한 5만 5800명의 뉴요커들을 광란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구대성(36·뉴욕 메츠)은 22일 열린 뉴욕 맞수 양키스와의 경기에 7회 구원등판,1과 3분의1이닝 동안 삼진 3개를 솎아내며 퍼펙트로 틀어막았다. 타석에서는 데뷔 첫 안타인 2루타에 이어 여우 같은 주루플레이로 첫 득점까지 성공시켜 홈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방어율은 3.37(종전 3.75)로 좋아졌고, 타율은 2타수 1안타로 .500. 구대성은 7회초 무사1루에서 선발 크리스 벤슨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2루 도루 실패 뒤 12개의 홈런포로 올시즌 ‘회춘’한 티노 마르티네스와 호르헤 포사다를 거푸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7회를 완벽히 봉쇄한 구대성에게 8회까지 맡기기 위해 윌리 랜돌프 감독은 대타를 올리지 않고 구대성을 그대로 내보냈다.2-0 간발의 리드에서 상대는 ‘빅유닛’ 랜디 존슨. 지난 7일 빅리그 첫 타석에서 홈플레이트와 멀찍이 떨어져 스탠딩 삼진을 당해 ‘가십’에 올랐던 구대성을 상대로 존슨은 3구째 147㎞의 강속구를 뿌렸고, 마네킹처럼 서 있던 구대성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아갔다. 타구는 중견수를 훌쩍 넘겨 담장 앞까지 굴러갔고, 셰이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홈팬들은 ‘쿠∼’를 연호하며 후끈 달아올랐다. 정작 ‘구대성 쇼’의 하이라이트는 이때부터. 호세 레이예스의 1루쪽 번트 때 일찌감치 스타트를 끊어 3루에 안착한 구대성은 그 순간 포수가 미처 홈으로 돌아오지 않은 사이 홈으로 돌진했고 깜짝 놀란 1루수가 공을 뿌렸지만 몸을 틀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홈플레이트를 찍었다. 구대성은 8회에도 로빈슨 카노를 4구만에 삼진으로 낚은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메츠의 7-1 승리. 한편 최희섭(LA 다저스)은 LA 에인절스와의 홈경기에 2번타자 겸 1루수로 선발출전,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발언대] 일본 청소년에게 우리 참모습 보여주자/지일현 한국관광공사 해외진흥본부장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은 사상 최대인 244만명으로 한류의 열기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올해 3월까지도 25%가 늘어난 64만명이 방문, 올해 목표인 300만명이 무난히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로 급격히 위기를 맞았다. 그동안 수학여행으로 이루어져 왔던 한·일간 학생 교류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작년에는 일본의 198개 각급학교에서 2만 8000명의 청소년이 우리나라를 찾아왔으나, 올해는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 학교의 학부모회나 학교당국이 일본 학교와의 교류 중단을 선언하는가 하면, 반일시위 장면이 일본 매스컴에 방영되면서 일본 학교당국이나 학부모회가 방한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양국 국민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양국 청소년 교류는 진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 청소년의 한국 수학여행과 학교간 교류는 친한(親韓)인사를 늘려가는 미래지향적 프로그램이다. 실례로 수학여행을 다녀간 일본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한국 수학여행 감상문 콘테스트’에는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 가졌던 무지와 편견이 이해로 바뀌었다.”는 감동적인 사연이 많다. 수학여행단 교류는 국제적 감각을 갖춘 우리 인재를 양성한다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이웃이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몰라도 한·일 청소년간의 대화와 교류는 서로가 진정한 이웃이 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지난 12일에는 양국 민간관광업계 대표들이 모여, 교류와 협력의 활성화를 위한 공동선언을 했고, 다음달 초에는 한·일 관광장관 접촉이 계획되어 있다. 또한 6월말에는 한·일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어, 양국간 교류증진의 일대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2005년 한·일공동방문의 해가 퇴색하지 않도록 한·일 청소년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지일현 한국관광공사 해외진흥본부장
  • [국제플러스] 日사학자 “日 독도영유권 주장은 허구”

    일본 원로 사학자가 독도가 일본 고유 영토라는 외무성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한 논문을 월간지에 발표했다. 나이토 세이추(內藤正中ㆍ76) 일본 시마네대학 명예교수는 9일 발매된 월간 ‘세계’ 6월호에 기고한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일본 정부의 주장은 허구라고 밝혔다. 나이토 교수는 먼저 외무성 홈페이지의 ‘독도 영유에 관한 역사적 사실’에는 “에도시대 초기(1618년) 호키항의 오야, 무라카와 양가가 막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독도에서 어업을 했다.”고 돼 있으나 ‘호키항’이라는 항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울릉도와 독도를 막부로부터 배령(拜領)했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봉건사회에서 막부가 섬을 나눠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1696년 막부가 울릉도 도항을 금지했지만 독도에 대한 도항은 금지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울릉도가 조선령인 이상 그 부속으로 보이는 독도도 조선령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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