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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에 가볼만한 곳

    한국관광공사는 4월의 가볼 만한 곳으로 전남 나주와 경북 예천, 경남 사천, 전북 익산 등 4곳을 선정했다. # 고구려의 대륙혼, 나주벌에 되살아나다 예전부터 배로 유명했던 나주의 4월은 온통 순백의 배꽃으로 가득찬다. 영산포대교 아래 드넓은 유채꽃밭은 찬란한 황금빛으로 배꽃의 유혹에 화답한다. 특히 드라마 ‘주몽’의 촬영지였던 공산면 신곡리 ‘삼한지 테마파크’는 영산강과 나주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 수려한 풍광과 함께 드라마의 감동을 되살려 볼 수 있다. 아울러 백제에 앞서 강력한 세력이 나주 지역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반남고분군과 비자나무 천연보호림의 운치가 가득한 천년고찰 불회사는 나주여행에 문화의 향기를 더한다. 나주시청 관광기획팀 (061)330-8108, 삼한지테마파크 (061)335-7008. # 스크린 속 아련한 봄 향기를 좇다 경북 예천군 용문면의 상금곡리는 예로부터 금당(金塘)이라 불리던 곳. 마을 지형이 ‘물에 떠있는 연꽃’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예언서인 정감록은 이곳을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한 곳으로 적고 있다. 최근 들어서 용문면 일대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다. ‘영어완전정복(2003년)’과 ‘나의 결혼 원정기(2005년)’ 등을 촬영했던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마을부터 ‘그해 여름(2006년)’의 배경이 된 용문면 선2리 선리마을에 이르기까지 그 명성이 이어지고 있다. 영화뿐 아니라 최근 종영된 KBS 드라마 ‘황진이’의 촬영지였던 병암정도 용문면 성현리에 위치해 있다.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054)650-6395. # ‘항공우주박물관’에서 영화 속 그들을 만나다 경남 사천시 유천리의 항공우주박물관에는 영화 ‘웰컴투동막골’ 촬영에 사용된 C-123K 수송기와 B-29 중폭격기가 전시되어 있다. 연합군이 스미스를 구하기 위해 낙하산을 타고 동막골로 침투하는 장면이 C-123K 수송기 안에서 촬영된 것. 항공기 내부에는 마네킹으로 촬영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아쉽게도 B-29 중폭격기 내부는 공개하지 않는다. 사천의 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선진리성.1000여 그루에 달하는 수령 90년의 벚나무가 피워내는 꽃들이 사천만(灣)의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화사한 봄을 선사한다. 사천대교를 건너 자리한 비봉내마을은 1만여 평의 대나무숲이 있는 체험마을로, 가족이 함께 대나무를 이용해 다양한 놀이체험을 할 수 있다. 사천시청 문화관광과 (055)830-4225, 항공우주박물관 (055)851-6565. # 벚꽃 향연과 어우러진 서동요 등 촬영 세트장 여행 서동과 선화공주가 우선 떠오르는 백제의 고도, 전북 익산.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적에서 백제의 흔적을 읽는다. 찾는 이가 많지 않을 뿐, 익산 또한 흐드러진 벚꽃이 장관인 곳. 특히 보석박물관 옆 함벽정(지방문화재 자료 127호) 주변으로 피어난 벚나무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알려지지 않아 저 혼자 화사하게 피어난 벚나무는 고가(古家)를 뒤덮을 만큼 수령이 오래됐다. 이뿐 아니다. 드라마 서동요 촬영지(여산면 원수리 상양마을), 영화 홀리데이, 거룩한 계보(성당면 와초리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 등의 세트장이 흩어져 있다. 뱃길 끊긴지 오래된 곰개나루터에는 ‘웅어회’가 봄철 입맛을 잃은 사람들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위로 해가 질 때면 백제의 옛 영화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익산시청 문화관광과 (063)850-4124.
  • [종교건축 이야기] (24) 춘천 죽림동 성당

    [종교건축 이야기] (24) 춘천 죽림동 성당

    강원도 춘천 시내의 언덕 지대인 약사리 고개에 우뚝 선 죽림동 주교좌성당(등록문화재 54호·죽 림동 38)은 춘천 천주교 신앙의 못자리이다. 신도들이 자생적인 신앙의 싹을 틔워 공소·본당에서 주교좌성당까지 이끌어냈고 그 과정에서 숱한 희생이 따랐다. 지난 1990년 후반까지만 해도 4000여명이 미사에 참석할 만큼 교세가 컸던 본당. 개발 바람이 불어 인근 지역에 아파트 단지들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신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지금은 ‘주교좌성당’의 명맥만 근근이 이어가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신앙의 태동기부터 고난의 신앙 역정을 모두 견뎌내고 묵직하게 선 ‘맏형’격 신앙터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죽림동 성당의 역사는 1920년 본당으로 설립된 곰실 공소로부터 시작된다. 당시만 해도 강원 중심 본당인 횡성 풍수원 성당의 신부가 이 지역의 작은 공소들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 죽림동 성당에서 동쪽으로 5㎞ 떨어진 외딴 곳의 곰실 공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신도가 늘어나면서 본당 설립을 요청했고 마침내 1920년 본당이 설립돼 당시 풍수원 성당의 보좌였던 김유용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모셔왔다. 이후 신도들은 춘천 시내에 성당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함께 가마니를 짜고 짚신을 삼아 내다 팔았다고 한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지금의 성당 아래 골롬반의원 터와 아랫마당, 수녀원 터를 사들여 성당을 세운 게 1928년 5월이다. 지금의 성당은 이 부지에 보태 1939년 서울(경성)대목구에서 춘천 지목구가 분할되면서 부임한 구인란(Quinlan) 주임신부와 신도들이 약사리 고개 언덕의 도토리 밭을 추가로 매입해 마련한 것이다. 그 때만 해도 성당 모양새만 갖췄지 구조며 성물은 변변치 못했던 것 같다. 결국 1941년부터 새 성당을 지을 계획을 세웠는데, 성당 벽의 라틴어 초석이 말해주듯 일제의 살벌한 감시와 박해로 8년 뒤인 1949년 4월5일에야 착공할 수 있었다. 전남 광주의 ‘자’씨 성을 가진 화교 기술자가 설계와 건축을 맡았다. 홍천 발산리 강가에서 석재를 날라다 외벽을 모두 쌓고 동판 지붕까지 얹어 내부공사를 하던중 6·25전쟁이 터졌다. 한쪽 벽이 모두 무너지고 사제관이며 부속건물이 대파되었는데 전쟁 중에도 복구작업을 벌여 1956년 6월 마침내 주교좌 성당 축성식을 가질 수 있었다. 이후 교구 설정 60년을 맞은 1998년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와 가톨릭 미술가회 작가들이 힘을 모아 제대며 내부 성물들을 새롭게 꾸몄는데, 물론 외벽이며 골격은 그대로 유지한 채였다. 성당은 명동성당의 옛 십자가와 똑같은 모습의 십자가와 종탑을 갖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이 작은 십자가는 서울대교구에서 갈라져 출발한 교구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성당에 들어서려면 둔중한 청동 문을 지나야 하는데 성당 건립을 관할했던 성골롬반외방선교회를 기리는 한 쌍의 아일랜드풍 십자문양이 새겨져 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는 주로 강원과 호남 지역을 관할했는데 죽림동성당에서도 1939년부터 30년간 모두 11대에 걸쳐 이 선교회 소속 신부가 주임을 맡았다. 지금도 성당 입구엔 이 선교회 소속 수녀원이 있으며 성당 아래쪽 병원의 이름도 여전히 ‘성골롬반 의원’. 지역 주민들에게 ‘성당 병원’이라 불리는 이색 공간이다. 고풍스러운 외벽과는 달리 내부는 현대식으로 가꿔져 대조를 이룬다. 양쪽 벽을 두른 정감어린 예수 고행 14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이 성당의 핵심은 역시 감심과 화강암 제대, 독경대, 주례석, 촛대로 구성된 중앙 제대 공간. 한국 천주교계에서 성미술과 전례에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정평난 장익 주교와 가톨릭 미술인들이 뜻과 품을 모은 작품들이다. 요즘 새로 짓는 성당들이 모두 이곳에 와 그야말로 ‘한 수 배워간다’는 바로 그 이름난 전례공간이다. ‘파격의 아름다움’을 뒤로 한 채 성당 뒤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이내 낯선 광경을 만나게 된다. 이 성당에 몸을 담았거나 강원 지역에서 희생된 내외국인 성직자 유해 16구를 모신 성직자 묘역이다. 성당 본당에 바로 붙여 묘지를 쓴 흔치 않은 곳이다. 묘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전쟁기 북한으로 끌려가다 순교한 신부들. 전쟁 발발 당시 보좌신부였던 프란치스코 신부와 라바드리시오 신부, 고안당 신부, 진야고보 신부의 이름이 눈에 띈다. 외국인 신부들 틈에 나란히 누운 한국인 이광재 신부는 원산까지 끌려가 어느 방공호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춘천교구는 해마다 11월 첫 주간을 ‘위령의 달’로 정해 이 ‘죽음의 행진’에서 희생된 사제들의 넋을 위로한다. 이 ‘위령의 달’ 행사에는 춘천 지역 사제와 신도들이 모두 모인다고 한다. 6·25 전쟁 중 주요 인사들이 쇠사슬에 손이 묶인 채 북한으로 끌려간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서 기독교계도 숱한 희생자들을 냈다. 당시 교황 사절을 비롯해 외국인 사제와 수녀, 개신교 목사 수백명이 평안북도 산골에 강제수용돼 34개월간 포로생활을 했는데 적지 않은 인물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이 성당이 건립될 때 주임으로 있었던 구인란 신부도 미사 도중 끌려갔으나 기적적으로 돌아와 주한 교황청 대사를 지낸 뒤 1955년 초대 춘천 대목구장에 부임했다고 한다. 죽림동 성당과는 아주 질긴 인연을 가진 인물인 셈이다. 이 묘역 바로 뒤편에는 기이한 십자가가 나무에 기대어 서있다. 지난 2000년 대희년 6월25일 춘천교구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전국대회’를 열면서 제단에 설치했던 십자가다. 동해안 지역을 휩쓴 화마로 불 탄 소나무에 북한의 주목나무를 엮어 만든 것으로 분단 교구의 아픔과 신도들의 통일 염원이 서려 있다. 지금 죽림동 성당에 적을 둔 신도는 1600명. 대부분 오래도록 이 성당을 다닌 나이 든 세대들이다. 지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3800명이 성당을 다녔다고 한다.2000년대 들어 춘천 지역엔 17개의 성당이 새로 생겨나 애막골, 퇴계동, 수무숲 성당같은 곳엔 신도 수가 3000명을 넘는다. 지난 2003년부터 주임을 맡고 있는 김현준 신부는 “지금 죽림동 성당은 옛날의 교세와 모습과는 크게 다르지만 신도들의 자생적인 믿음에서 출발해 신앙 공간을 일군 흔치 않은 성당으로 한국 교회사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kimus@seoul.co.kr ■ 죽림동 성당·춘천교구 ‘밀알’ 엄주언 죽림동 성당과 천주교 춘천교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지역에 신앙의 싹을 틔워 성당을 세워놓은 밀알인 엄주언(말딩·1872∼1955)이다. 한국의 천주교가 외국 선교사의 전교없이 자생적으로 이루어진 특징을 갖는다고 할 때 춘천 지역이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그 한 가운데 바로 엄주언이 있는 것이다. 춘성군 장학리 노루목에서 태어난 엄주언은 19살때 우연히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천주교와 연을 맺었다. 맏형과 함께 천주교 발상지인 광주 천진암을 찾아 움막생활을 하면서 가족 모두가 영세하도록 인도했지만 정작 고향에서는 ‘천주학쟁이’로 몰려 따돌림과 온갖 수모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화전을 일구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감화된 주민들이 차츰 모여들었으며 죽림동 성당의 모태인 곰실 공소를 마련해 예절을 보기에 이른 것이다. 곰실 공소가 본당으로 설립된 것도 순전히 엄주언의 공이다. 풍수원 성당과 서울의 명동 성당을 오르내리며 상주사제 파견을 간청한 결실이다. 본당 설립후 신도들의 애련회를 조직해 춘천 시내로 진입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나서 결국 성당 터를 구입했으며 여기에 6대 춘천 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구인란 신부가 인근 밭을 매입해 지금의 죽림동 성당을 세우게 된 것이다. 성당 입구의 사제관과 연결된 말딩회관은 바로 춘천교구가 그의 공을 기려 지난 1997년 건립한 곳으로 춘천 지역 천주교계의 핵심 공간으로 통한다.
  • 예수님은 일본여자와 살았다고

    예수님은 일본여자와 살았다고

    한 여름밤의 꿈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인류 구원의 은인으로 널리 숭앙받고 있는「예수·그리스도」가 일본을 두번이나 방문, 일본에서 살았으며, 십자가상에서 죽은「예수」는「예수」가 아니라 그와 쌍둥이 처럼 닮은 동생이다. 예수는 106세를 살고 일본에서 죽었으며, 일본과「유대아」사이를 오가는 동안에 인도에서 석가의 불교 정신도 닦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아주 그럴 싸하게 그리고 신학자들의 증명까지 곁들여가면서 일본에 번지고 있다. 십자가(十字架) 부정설 나오자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관심을 모으게 된 것은 5년전 미국의 신학자「스코필드」박사가「나자렛·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죽지 않았다는 저서를 발표,「베스트·셀러」가 된 뒤 그 내용과 일본고대의 전설이 일치되는 점이 많다는데서 비롯된 것. 그는 책 속에서 어리석은「로마」인들이 십자가상의 처형과 부활을 꾸민 한「현인」의 꾀에 넘어가 속은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이 자체만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켰던 것인데, 이 저서를 모르는 일본 북부 주민들은 이와 유사한 전설을 알고 있으며 믿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의「예수」에 관한 전설은「예수」의 소년시절과 성년시절 사이의 시간적인「갭」에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진원지는 일본 본토 북부지방「아오모리」현「미사와」남쪽 10「마일」지점에 있는「하지오네」마을이다. 예부터 성지(聖地)로 알려져 이 지방은 예로부터 성지로 알려진 곳이다. 언제부터 이 곳이 성지가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예수」가 왔다는 전설은 2천년 전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이에 의하면 예수는 해뜨는 나라 일본을 두번이나 방문한 것으로 되어있다. 이야기는「예수」가 21세때 일본에 왔으며 그의 목적은 물론 종교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예수」가 꼭 일본을 방문해야만했던가? 그것은 일본의「신도이즘」을 알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예수」는 일본에서 10년이상 머물렀으며 34세에「유대아」로 돌아갔지만「유대아」에서는 별로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로마」사람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예수」와 아주 쌍동이처럼 닮은 동생「이시키리사」를 잡아갔으며「예수」는 피신, 다시 일본으로 왔다는 것. 계속해서 이 전설은「예수」가 「하지오네」지방의「하다로」「하바기리」등 촌락을 다니며 설교를 했으며,「예수」의 유적으로 주장된 흔적이 이 지방 곳곳에 남아있다. 이 지방 동부에는「오니가추」라 불리는 성지가 있는데, 이는 거대한 이방인이 상륙한 곳이란 일본말이다. 그리고 이 전설은 또 「예수」가「미요꼬」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일본 처녀와 결혼했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난 세 아이의 첫 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사와구찌」씨가 지금도 이 지방에 살고 있다. 중동의 풍습과 닮아 그는 일본인보다는「유대」인을 더 닮았다는 것이 보는 이의 인상이며, 가내 보물로 전해 내려오는「유대」의 휘장까지 갖고있다는 것. 아뭏든 전설은「예수」가 1백6세에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죽음을 했다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이 전설을 한층 신비스럽게 해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다. 이 지방 여인들은 중동에서의 습관처럼 얼굴에「베일」은 가리고 다니며 어린 아이의 머리에 재를 뿌리는 습관이 있다. 정확한 근거 없으나 이같은 전설은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또 침소봉대되어 전해지고 있는데「요꼬하마」신학교를 졸업한「기꾸·야마네」여사는 이 문제를 연구, 동방에서의 빛이란 책자를 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녀가 내린 결론도「예수」가 일본에 왔다는 것. 그녀는 학문적으로 이를 연구, 이상의 사실을 구체적으로 정립시키고 있다. 물론 정확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12세때「예수」가 진리를 찾아 부모를 떠나서부터 다시「유대아」로 돌아올 때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예수」가 집을 나온 것은 동방의「인도」에서 수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 인도에서 그는 불교의 원조 석가의 수도방법을 배웠을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전설아닌 전설로서 이렇게해서「예수」의 일본방문 전설은 전설 아닌 전설처럼 그럴듯하게 새끼를 치며 번져가고 있는데, 그러면「예수」가 일본에서 죽었다면 그 무덤이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그런데 이 전설은 거의 완전무결하게 의문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수상스러울 지경. 실제로 일본에는「예수」의 무덤으로 주장되는 무덤이 있으니 말이다. 이 지방의「신고」마을엔 불교사원이 있고 여기에「예수」의 무덤이란 무덤이 지금도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의 진위를 밝히는 것은 영원한 숙제라는 것. [선데이서울 70년 7월 12일호 제3권 28호 통권 제 93호]
  • “7000만 동포가 뒤에 있어 든든”

    “우린 5명에 불과하지만 우리 뒤에는 7000만명이 있는 만큼 전혀 외롭지 않습니다.” 24일 열리는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竹島ㆍ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행사 규탄을 위해 방일하는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명예이장 최재익(52)씨의 각오다. 방일 채비에 바쁜 최씨를 20일 전화로 만났다. 그의 휴대전화 컬러링은 여전히 ‘독도는 우리땅’이었다. 최씨 등 독도수호전국대 회원 5명으로 이뤄진 항의단은 24,25일 양일간 시마네현 한복판에서 ‘독도강탈음모 규탄대회’ ‘다케시마의 날 폐지 촉구 시가행진’ 등을 벌인다. 미니 항의단이지만 최씨는 “우리 뒤에 동포들이 있다.”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최씨는 2005년 시마네현에서 다케시마의 날 조례가 통과될 때 현(縣) 청사에서 할복을 시도하다 현지 경찰에 연행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올해는 투쟁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당시엔 감정이 앞서 격한 행동을 했지만 너무 강경하게 비쳐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항의단은 스미다 시마네현 지사에게 독도 영유권 토론회를 제의하고, 시마네현 주민들을 상대로 역사왜곡에 따른 독도 편입의 부당성을 홍보할 계획이다. 이미 일어판 책자도 만들어 놓았다. 양식과 상식이 있는 일본 국민을 직접 상대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행사장에서 애국가 제창, 일제강점기 순국선열을 위한 묵념, 규탄서 낭독, 만세삼창 등의 행사는 가질 계획이다. 최씨는 “일본은 1905년 독도를 시마네현으로 편입시킬 때 우리가 묵시적 동의를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항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독도 사랑은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 때 싹텄다. 독도가 우리 수역이 아닌 중간수역에 놓이면서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에 따라 1999년 12월31일 부모님, 부인, 아들 등 가족 전원의 본적을 독도리 산 30으로 옮기고 독도수호전국연대 대표의장을 맡았다. 이어 2004년 2월에는 독도에 호적을 둔 주민들의 투표로 독도 명예이장에 뽑혔다. 현재 독도에 호적을 둔 사람은 모두 615가구,2057명에 달한다. 23일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통해 방일하는 최씨는 “일본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매년 시마네현을 찾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씨의 입국이 순조로울지는 미지수다. 지난해에는 시마네현 요나고공항에서 3시간30분이나 이유 없이 붙들려 있었다. 6대 서울시의원(2002∼2006)을 지낸 최씨는 “일본에 다녀온 후에는 전국의 초·중등학교 학생을 상대로 독도를 제대로 알리는 ‘독도교육’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바그다드 폭탄테러 200여명 사상

    이라크가 또 다시 피로 물들었다. 12일 바그다드 시내의 쇼르자 시장에서 두차례 연쇄적으로 폭탄이 터져 46명 이상이 숨지고,150명이 부상했다. 앞서 한시간 전에는 이곳에서 1㎞ 정도 떨어진 밥 알 샤르키 시장에서 가방에 든 폭탄이 터져 10여명이 사망했다. 영국 BBC 방송은 이날 폭탄테러가 이라크 내 종파 분쟁의 출발점이 됐던 시아파 성지 알아스카리 성지 폭파 사건 1주년(이슬람력 기준)이 되는 날이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수니파를 겨냥한 시아파 무장조직의 공격일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고 있다.방송에 따르면 이날 첫 테러는 오전 11시50분께(현지시각) 바그다드 밥 알샤르키 지역의 사람이 붐비는 도매시장에서 일어났다. 이어 1시간 뒤 폭탄을 실은 자동차 2대가 인근 쇼르자 시장으로 돌진, 폭발하면서 큰 인명피해를 냈다. 목격자들은 수니파 주민이 주로 사는 현장 부근의 건물과 가게까지 무너졌을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으며, 피해자들의 피와, 의류시장 마네킹들의 파편이 뒤섞여 엽기적인 비극적 장면이 연출됐다고 전했다. 이날 테러가 발생한 뒤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정부에 대한 바그다드 시민들의 원성 또한 높아지고 있다. 쇼르자 시장의 한 상인은 “10만달러 어치가 불에 타버렸다. 그런데 관리들은 사무실 의자에 붙들고 앉아 꼼짝않고 있었다.”면서 이라크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100만弗 만찬’

    ‘100만弗 만찬’

    한끼 만찬을 차리는 데 무려 100만달러(약 9억 4000만원)나 들어간 초호화 행사가 10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서 열였다고 영국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이 11일 보도했다. 최상위 미식가와 호사가를 위한 특별 만찬에는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온 15명의 지불 고객과 25명의 초대손님이 참석했다. 한 사람당 2만 5000달러에 이르는 이날 만찬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미슐랭 별점 3개짜리 레스토랑에서 초빙된 요리사 6명이 준비했다. ‘식도락의 대가들’이란 만찬 타이틀에 걸맞게 이날 등장한 10여가지 코스 요리의 모든 재료는 세계 각국에서 공수됐다. 푸아그라(거위의 간), 굴, 바닷가재, 캐비어 등의 요리에 ‘20세기 가장 위대한 와인’으로 꼽히는 1961년산 샤토 팔머를 비롯해 로마네 콩티 등 최고급 와인이 곁들여졌다. 와인 비용만 2억원 가까이 된다. 만찬 참석자 명단에는 마카오의 카지노 사장, 타이완 호텔 재벌을 비롯한 세계 상류층들이 포함됐다고 방콕 스테이트타워 레부아호텔 관계자가 귀띔했다. 이들은 신분노출을 막기 위해 65층에 있는 식당까지 비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이동했다. 한편 이날 수익금의 대부분은 태국 왕이 설립한 지방 발전기금 등 2개 자선단체에 기부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신나는 과학이야기] 발바박은 왜 아치형일까?

    [신나는 과학이야기] 발바박은 왜 아치형일까?

    여행 삼아 다녀온 스페인에서 건물, 길, 다리, 수로 등 로마의 흔적이 남겨진 건축물을 자연스럽게 보게 됐다. 역사는 변했지만 로마 건축의 기본적 구성요소인 아치형의 아름다운 건축물의 흔적은 그대로였다.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비롯해 종교적 색채가 묻어 있는 수도원, 대성당은 그 겉모습과 내부가 다양한 아치의 형태와 윤곽을 보여줘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아치는 볼트, 돔과 같이 로마의 건축가들이 빈공간의 주위를 둘러싸는 형태로 거대한 부피의 실내 공간을 확보하고자 했던 건축공학 기술이다. 고딕 건축과 로마네스크 양식인 아치 형태들의 공통점은 개구부(開口部)를 연결하는 독창적인 방법에 있다. 두 기둥 사이를 지나는 하나의 석조 수평부재 대신에 아치는 작은 쐐기 모양 돌들을 곡선으로 개구부에 쌓아 올림으로써 더 먼 거리를 가로지를 수 있었다. ●아치 모양이 어떻게 힘을 효과적으로 견딜까? 사다리꼴 나무토막의 좁은 쪽을 아래로 한 후 서로 연결하여 만든 아치 구조물을 만들어 보면 아치 구조에 하중이 걸릴 때 중력 방향으로 가해진 힘과 아치 구조 자체의 무게는 두 방향으로 나누어진다. 이 힘은 다시 아치 구조물 사이를 밀어주는 접합력과 지지대를 향하는 지지력으로 작용하므로 아치구조는 안정적이 된다. 즉 힘의 분산이 효과적으로 일어나면서 안정적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아치 모양의 구조물을 위에서 누르는 힘으로 부수려면 매우 큰 힘이 필요하며, 반대로 안에서는 비교적 쉽게 깰 수 있다. 따라서 아치 구조는 자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데에 비중을 두는 다리, 혹은 건물 입구에 많이 이용된다. 현대의 아치는 철근 콘크리트나 철강을 재료로 하여 아치형을 더욱 크고 멀리 만들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아치는?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부분에서 아치형의 구조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의 동대문과 남대문을 비롯해 방화대교와 성산대교 등 한강다리에서도 볼 수 있는 아치형은 힘을 효율적으로 분산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다리 위로 수많은 자동차들이 지나가도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경주 불국사의 금문교 역시 아치형 다리로 아랫부분은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또 경주의 석빙고도 전통적인 얼음저장고로 아치 구조의 빙실을 만들어 기둥을 없앰으로써 출입구를 통한 열손실을 막았다. ●발바닥은 왜 아치모양일까? 아치 모양은 사람의 발바닥 뼈, 갈비뼈, 파충류나 날달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체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발바닥은 평면이기보다는 아치형으로 생겨야 몸의 전체 하중을 균형적으로 잘 분산해 견디기 쉽다. 박지성 선수나 이봉주 선수처럼 평발에 가까운 사람은 아치형의 발보다는 이런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걷는 것 자체가 아주 피곤하다. 평발은 그만큼 발이 바닥에 많이 닿기 때문에 몸무게의 분산이 효과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 이런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면서 극적인 결과를 얻었기에 두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냄이 마땅하다. 우리 몸을 이루는 뼈 안쪽이 파이프처럼 구멍이 뚫어져 있는 것과 등뼈가 구부러져 있는 것 등도 우리 몸을 효과적으로 지탱해 주기 위한 것이다. 인체도 과학적인 구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은주 숭인중학교 교사
  • [Local] 독도 입도 하루 1880명으로

    경북 울릉군은 다음 달 22일부터 하루 400명으로 제한하고 있는 독도 입도인원을 1880명으로 대폭 확대한다고 24일 밝혔다. 당초 3월초에 시행키로 한 것을 앞당긴 것으로 일본의 시마네(島根)현이 2월24일에 개최할 것으로 알려진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표기)의 날’ 선포 기념식에 항의하기 위한 조치이다. 이에 따라 울릉군은 이달말까지 동도 접안시설(1880㎡) 선착장과 방문객 탐방로 등에 안전시설 설치를 마무리한 뒤 입도객 확대 시부터 관리요원 2명을 고정 배치하기로 했다. 한편 정부는 2005년 3월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자 대응조치로 그동안 금지해 온 일반인에 대한 독도 입도를 전면 개방했다.
  • [책꽂이]

    ●지구(제임스 루어 엮음, 김동희 등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푸른 행성’ 지구의 모든 것을 담은 지구 대백과사전. 지구의 탄생에서 인류의 등장까지, 해저 수천m의 마리아나 해구에서 성층권 너머 대기권 꼭대기까지, 열대우림 지대에서 남·북극의 빙하지대까지 폭넓게 다룬다. 지구과학 정보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꼭 필요한 환경과학적인 교양을 제공하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백과사전과 도감출판의 명가인 영국 돌링 킨더슬리 출판사가 자체 역량을 총동원해 만든 대작.2000개에 달하는 그림과 사진 자료가 이해를 돕는다.5만 9000원.●낙랑군 연구(오영찬 지음, 사계절 펴냄) 한국 고대사에서 낙랑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시기적으로 한정돼 있고 일부 지역에 국한된다. 하지만 그 역사적 위상은 한국 고대사 전반을 규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낙랑군은 삼한과 삼국의 정립과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고조선의 강역과 연계돼 대륙을 지배한 한국 고대사의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그러나 낙랑군에 관한 연구는 낙랑군을 중국의 식민지로 파악한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과 문헌사료의 부족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 책은 낙랑군이 중원의 지배와 한반도의 토착적 영향력이 교차하고 융합한 공간이었음을 밝힌다.2만 5000원.●인상주의자 연인들(제프리 마이어스 지음, 김현우 옮김, 마음산책 펴냄) 초기 인상파 화가인 마네와 모리조, 드가와 커샛의 전기를 ‘따로 또 함께’ 다룬 책.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확신했지만 주류 제도권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좌절을 겪은 마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완벽한 작품을 추구한 드가. 부르주아 여성의 유복한 삶과 예술 사이에서 갈등을 겪은 모리조. 미국 태생으로 파리로 건너와 이방인으로 적응해야 했던 커샛. 마네와 모리조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은밀하게 지속시켜 나갔던 데 비해, 커샛과 드가는 지적·감정적 교류는 나눴지만 끝내 거리를 유지했다.1만 8000원.●일본 친구들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김진현 지음, 한길사 펴냄) 한국과 일본이 발전지향적인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한 방안을 제시. 자신을 ‘글로벌리스트로서의 일본통’으로 규정하는 저자(세계평화포럼 이사장)는 양국 관계개선의 열쇠는 일왕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 보수세력이 변해야 하는데, 이들의 변화를 평화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권위는 일왕만이 갖고 있다는 것. 백제 황실과 일본 황실간의 우호적인 교류와 도쿠가와 바쿠후 시절의 ‘일시적’ 평화관계는 있었지만 한국과 일본이 진정한 의미의 파트너십은 가져본 적이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2만원.●글로벌 영어 미래는 있는가(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황선혜 등 옮김, 경문사 펴냄) 영어는 세계 각 지역의 토착언어와 융화되면서 새로운 영어를 탄생시켰다. 싱가포르의 싱글리시, 필리핀의 타글리시, 스페인의 스팽글리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에보닉스 등이 그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변종 영어의 출현은 자연스러운 언어성장 현상이지만 국제사회에서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국제표준구어체영어’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세계어’로 군림하는 영어의 허실을 밝힌 책.1만 2000원.
  • 철새 3종 이동경로 첫 규명

    철새 3종 이동경로 첫 규명

    한반도 남서부를 거쳐 가는 노랑발갈매기와 쇠개개비, 알락꼬리쥐발귀 등 철새 3종의 이동 경로가 처음으로 밝혀졌다. 26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 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몽골에서 방사한 노랑발갈매기가 같은 해 12월 홍도에서 발견됐다. 이 새는 번식지인 몽골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한반도 남서부로 무려 2470㎞를 이동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쇠개개비는 2004년 10월 일본 시마네현에서 방사한 뒤 9일 만에 홍도에서 포획돼 한반도를 거쳐 중국으로 1460㎞ 이상 이동하는 사실이 관찰됐다. 또 2001년 8월 일본 미야기현에서 방사한 쇠개개비 1마리가 올해 5월 홍도에서 발견돼 이 새의 수명이 최소 4년 9개월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알락꼬리쥐발귀는 지난 8월 일본 아오모리현에서 날아 열흘 만에 홍도에서 발견됐다.1500㎞ 이상 거리를 10일 만에 날아 하루 평균 150㎞ 이상 비행한 것으로 추정됐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김석의 Let’s wine] 레드와인용 포도 품종 4가지

    [김석의 Let’s wine] 레드와인용 포도 품종 4가지

    혹자는 와인을 보고 미스터리 게임 같다는 말을 하곤 한다. 파고들수록 더 어려워지기도 하며 그 존재를 쉽게 걷잡을 수 없어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미스터리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실마리는 아주 간단한 곳에 있다. 바로 포도다. 대부분의 와인은 순수하게 포도로만 만들어 지기 때문에 포도 품종에 따라 와인의 스타일부터 색, 맛, 향, 품질까지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쉽게 예를 들어 과육이 풍부하고 당도가 높은 대구 부사와 알맹이가 작고 단단한 산도가 강한 빨간 국광은 특성이 확연하게 다르다. 이 다른 특성을 지닌 사과로 술을 담그면 당연히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와인 역시 마찬가지. 이렇듯 와인에 주로 사용되는 유명한 포도 품종을 몇 가지만 기억해두어도 초보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에서 재배되고 있는 수만 가지의 많은 포도 품종들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랑을 받고 있는 레드 와인용 포도 품종에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포함한 4가지를 들 수 있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은 레드 와인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품종으로 알맹이는 우리가 먹는 포도의 절반 크기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이 원산지이며, 워낙 두꺼운 껍질덕에 진한 색상과 텁텁한 타닌이 많이 나온다. 출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와인들은 강하고 거칠게 표현될 수 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부드럽고 매끈하게 변하는 왕다운 면모를 지닌 품종이다. 농익은 과일향과 복합적인 향을 품은 우수한 품종으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품종이기도 하다. 메를로(Merlot)는 껍질이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두껍지 못하고 알맹이의 크기는 약 2배 가까이 더 크다. 즉, 포도 과육의 양이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많기 때문에 와인으로 만들어졌을 때의 컬러는 좀 더 연하게 표현된다. 적은 타닌으로 부드러운 여성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어 ‘마담 메를로’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와인 초보나 여성들에게 어필하는 품종이다. 단일 품종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카베르네 소비뇽과 섞었을 때 훌륭한 하모니를 보여 전통적으로 보르도 지역에서는 이 두 품종 중심으로 2∼3가지 품종을 더 해 와인을 만들어오고 있다. 피노 누아르(Pinot Noir)는 재배나 양조가 까다롭지만, 제대로 나오면 매우 섬세하고 매혹적인 맛과 향이 훌륭한 와인으로 탄생한다. 껍질이 얇아서 와인의 색상도 연하고 타닌도 적지만 우아함과 섬세함에서는 따라 올 수 있는 품종이 없다. 세계 최고가의 와인인 ‘로마네 콩티’도 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이 원산지이며, 최근에는 미국의 오리건을 비롯하여 뉴질랜드 등지에서 색다른 특성을 지닌 피노 누아르가 많이 재배되고 있다. 쉬라(Syrah)는 프랑스 론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포도다. 호주로 전해지면서 쉬라즈 (Shiraz)로 이름이 변경되어 불려지며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 못지않은 진한 색상, 강한 타닌, 높은 알코올이 특징이다. 호주의 대표 품종으로 자리잡은 쉬라즈는 경쾌함을 바탕으로 마시기 쉬운 편한 와인으로 인정 받고 있다. 한국주류수입협회 와인총괄 부회장(금양인터내셔널 상무)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엄마 얼굴 가슴에 담고…

    |도하(카타르) 임일영특파원|일곱 살 때 집을 나간 엄마, 홧김에 자주 술을 마시다 3년 뒤 세상을 떠난 아빠. 거친 세상의 한복판에 남동생과 단 둘이 남았지만 ‘소녀 가장’ 배물음(17·광주체고2)은 울지 않았다. 대신 결심했다. 언젠가 엄마를 꼭 찾겠다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체조 선생님의 눈에 띄어 운동을 시작한 물음이에겐 꿈이 하나 더 생겼다. 루마니아의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 같은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 타고난 유연성과 탄력을 지닌 물음이는 함께 체조를 시작한 동생 가람이와 서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실력이 쑥쑥 늘었다. 광주체중 2학년 때 소년체전 2관왕, 고교 1학년 때 KBS배 전국대회 3관왕, 지난해 전국체전 2관왕을 휩쓰는 등 국내에선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연스럽게 지난해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생애 첫 아시안게임 무대까지 나섰다. 5일 새벽 도하아시안게임 여자체조 개인종합 결승전이 벌어진 어스파이어돔에 들어선 순간 물음이의 심박동은 빨라졌다. 중국의 헤닝과 주주루, 북한의 홍수정, 일본의 오시마 교코 등 아시아의 쟁쟁한 선수들이 눈앞에서 몸을 푸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첫 종목인 이단평행봉 마지막 착지 과정에서 바닥에 무릎이 닿는 실수를 해 12.950의 낮은 점수를 받았다. 경험 부족이 문제였다. 평균대(13.750)를 무난하게 넘긴 물음이는 주종목인 마루(14.100)와 도마(13.400)에서 빼어난 점수를 받았지만 깜짝 쿠데타를 일으키기엔 조금 늦었다. 결국 종합점수 54.200으로 출전선수 19명 가운데 7위. 하지만 물음이는 경기를 마친 뒤 민아영 코치에게 달려가 “선생님!별로 안 떨리던 걸요. 자신있게 했는데….”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민 코치는 “담이 큰 편이에요. 첫 아시안게임인 점을 감안하면 자기 실력의 80∼90%는 해낸 걸요. 다만 노련미가 부족해 좀 아쉽네요.”라면서 “평균대 결승에선 5등 이상 입상을 노려볼 만합니다.”고 말했다. 물음이는 6일 밤 10시30분 8명의 요정들이 겨루는 평균대 결승에 출전한다.“아시안게임 개인종목 결승에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엄마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도 기억하고 있거든요.”라고 호소했던 물음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한 셈. 열일곱 소녀의 당연한 소원이 도하에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argus@seoul.co.kr
  • 독도 영유권 주장 허구 입증 日本지도 4점 최초 공개

    독도 영유권 주장 허구 입증 日本지도 4점 최초 공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입증하는 일본 문부성 발행 지도 등 4점이 최초로 공개됐다. 영남대 독도연구소는 24일 영남대 국제관회의실에서 개최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와 독도’ 국제 학술회의에서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허구성을 입증하는 자료를 공개했다. 이들 자료는 1929년부터 1940년까지 발간된 ▲최근 일본지도 ▲개정 최신 일본역사지도 ▲신일본도첩 등 지도 3점과 ▲최근 조사 일본 분현 지도와 지명총람 등으로, 최근 영남대 도서관 등에서 찾아낸 것이다. 이 가운데 1929년 일본 출판사인 산세이도(三星堂)에서 문부성 검인정 교과서로 발행한 ‘최근 일본지도’와 1933년 후산보(富山房)에서 간행한 역시 문부성 검인정 교과서인 ‘개정 최신 일본 역사지도’는 시마네(島根)현의 관할을 오키(隱岐)섬으로 국한했고, 독도는 표기돼 있지 않다. 또 1934년 도코(刀江)서원에서 출판한 ‘신일본도첩’에도 시마네현에 속하는 섬이 오키 섬뿐임을 명확히 표기하고 있다. 1940년 국제지리협회에서 출판한 ‘최근 조사 일본 분현 지도와 지명총람’에도 일본 영토로서의 독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 따라서 이들 자료는 일본이 ‘1905년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면서 시마네현에 편입시켰다.’는 일본측의 주장이 허구라는 것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독도는 울릉도에서는 동남방 92㎞ 지점에 있고, 시마네현의 오키 섬으로부터는 160㎞ 지점에 있어 울릉도에서보다 훨씬 멀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독도·교과서·FTA문제’ 日태도 비판

    재계 원로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일본 재계 지도자들을 향해 모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독도, 역사 교과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민감한 현안을 두루 언급했다. 조 회장은 2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일 재계회의에서 ‘동아시아 공동번영을 위한 한·일협력 강화’ 주제 발표자로 나서 이같이 말했다. 조 회장은 “시마네현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을 제정해 독도 문제를 촉발한 것을 두고 일본 정부는 지방정부 차원의 일이라고 의미를 축소하려고 했지만 독도를 한국 영토로 믿고 있는 한국인들은 영토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94주 연속 당첨 로또명인이 인정한 비법

    대박로또 시스템 분석법 100억 당첨부른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94주 연속 당첨 기록을 세운 ‘로또명인’이 소개돼 화제를 모았다.일본 시마네 현에 사는 후나츠 사카이씨(55)가 주목을 받은 것은 그의 당첨 비결.그는 가장 먼저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하면 당첨번호가 보인다’고 조언했다.최근 6개월간의 1등 당첨번호를 분석한 그는 번호별로 당첨횟수를 기록한다.그다음 지난주 1등 당첨번호를 각 게임에 표시한뒤 분석한 6개월동안 다중 출현 번호과 미출현 번호를 조합해 기입하는 것이다. 로또당첨번호예상서비스인 대박로또는 “로또명인에서 보듯 데이터분석법이 가장 효과적인 로또당첨 비결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개인보다 전문기관의 과학적 분석법을 활용하는 것이 고당첨을 높이는 비법”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로또명인 후나츠씨는 지난 2001년부터 2005년 9월까지 94주 연속 당첨 행운을 안았으나 아직 1등 당첨은 없다.2등 당첨은 1회,3등은 1회,5등 당첨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특히 한국 로또에 도전했던 후나츠씨는 방송에서 “데이터가 부족해 실패했다”며 일본으로 돌아갔다. 200회를 넘긴 국내 로또를 첨단 시스템 분석법을 이용해 100억 당첨금을 예측하는 대박번호는 ARS ‘060-700-9060’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 94주 연속 당첨 로또명인이 인정한 비법

    대박로또 시스템 분석법 100억 당첨부른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94주 연속 당첨 기록을 세운 ‘로또명인’이 소개돼 화제를 모았다.일본 시마네 현에 사는 후나츠 사카이씨(55)가 주목을 받은 것은 그의 당첨 비결.그는 가장 먼저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하면 당첨번호가 보인다’고 조언했다.최근 6개월간의 1등 당첨번호를 분석한 그는 번호별로 당첨횟수를 기록한다.그다음 지난주 1등 당첨번호를 각 게임에 표시한뒤 분석한 6개월동안 다중 출현 번호과 미출현 번호를 조합해 기입하는 것이다. 로또당첨번호예상서비스인 대박로또는 “로또명인에서 보듯 데이터분석법이 가장 효과적인 로또당첨 비결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개인보다 전문기관의 과학적 분석법을 활용하는 것이 고당첨을 높이는 비법”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로또명인 후나츠씨는 지난 2001년부터 2005년 9월까지 94주 연속 당첨 행운을 안았으나 아직 1등 당첨은 없다.2등 당첨은 1회,3등은 1회,5등 당첨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특히 한국 로또에 도전했던 후나츠씨는 방송에서 “데이터가 부족해 실패했다”며 일본으로 돌아갔다. 200회를 넘긴 국내 로또를 첨단 시스템 분석법을 이용해 100억 당첨금을 예측하는 대박번호는 ARS ‘060-700-9060’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 94주 연속 당첨 로또명인이 인정한 비법

    대박로또 시스템 분석법 100억 당첨부른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94주 연속 당첨 기록을 세운 ‘로또명인’이 소개돼 화제를 모았다.일본 시마네 현에 사는 후나츠 사카이씨(55)가 주목을 받은 것은 그의 당첨 비결.그는 가장 먼저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하면 당첨번호가 보인다’고 조언했다.최근 6개월간의 1등 당첨번호를 분석한 그는 번호별로 당첨횟수를 기록한다.그다음 지난주 1등 당첨번호를 각 게임에 표시한뒤 분석한 6개월동안 다중 출현 번호과 미출현 번호를 조합해 기입하는 것이다. 로또당첨번호예상서비스인 대박로또는 “로또명인에서 보듯 데이터분석법이 가장 효과적인 로또당첨 비결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개인보다 전문기관의 과학적 분석법을 활용하는 것이 고당첨을 높이는 비법”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로또명인 후나츠씨는 지난 2001년부터 2005년 9월까지 94주 연속 당첨 행운을 안았으나 아직 1등 당첨은 없다.2등 당첨은 1회,3등은 1회,5등 당첨은 셀 수가 없을 정도다.특히 한국 로또에 도전했던 후나츠씨는 방송에서 “데이터가 부족해 실패했다”며 일본으로 돌아갔다. 200회를 넘긴 국내 로또를 첨단 시스템 분석법을 이용해 100억 당첨금을 예측하는 대박번호는 ARS ‘060-700-9060’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5)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 횡성 풍수원성당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15)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앙촌’ 횡성 풍수원성당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2리 두메산골에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풍수원 성당(주임신부 김승오·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 고딕·로마네스크풍 건물이 명동성당을 축소해 옮겨놓은 듯 빼닮았지만 의자 없는 맨 마룻바닥과 간결한 내부가 100년 전 건립 때의 모습 그대로다. 자연과 잘 어울리는 고즈넉한 외양 때문에 일반인들에겐 이런저런 드라마와 영화 촬영의 단골로 애용되는 아름다운 공간이면서 한국 천주교사의 한 획을 그을 만큼 중요한 종교적 위상을 지닌 곳. 신앙촌을 터전으로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강원도 경상도 등 한국 동부 지역의 천주교 성당과 교인을 총괄했던 ‘동부 전교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지금은 번듯한 국도가 성당 앞을 지나고 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좁은 비포장 길이 이 지역 유일한 통로였을 만큼 성당이 들어선 자리는 첩첩산중의 벽지다. 산중의 외딴곳이어선지 인근 경기도를 비롯한 외지에서 박해를 받은 천주교 교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살았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도 자연스레 천주교 전교의 주요 거점으로 삼았을 것으로 보인다. 1888년 강원도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어 르메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파견됐지만 성당이 건립된 것은 2대 주임인 정규하(1863∼1943년)신부가 재직하던 1907년이었다. 정규하 신부는 김대건·최양업에 이어 1896년 서울 중림동성당에서 서품을 받은 한국 세번째 신부. 풍수원성당 역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지금까지 교인들 사이에 회자된다. 사제 서품을 받아 바로 풍수원 본당에 부임했으며 선종 때까지 47년간 이곳을 지키며 신자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 신부 사목 기간중 풍수원 성당은 총 12개 군을 관할하는 중심성당으로 성장, 지금의 춘천·원주 교구의 모태가 되었다. 한국에선 7번째로 지어진 고딕·로마네스크 양식의 풍수원성당은 바로 정규하 신부의 뜻을 따른 신자들이 고생스럽게 품을 팔아 일군 성과였다. 건립기금은 강원도 지역 몇몇 지주와 신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6000원. 중국인 벽돌공들이 벽체를 쌓았지만 산에 올라 나무를 베어 오고 성당 인근의 가마에서 직접 벽돌을 구워 나른 것은 모두 한국인 신자들이었다. 성당 건립 소식을 들은 양양, 강릉의 신자들은 보름씩이나 걸려 태백산맥을 넘어와 일손을 보탰다고 한다. 본당 건물 자체는 120평 규모로 아담하다. 정문과 함께 양측 벽에 각각 1개씩 출입문을 내었는데 지금도 신자들은 이 문을 사용하고 있다. 건물 외양처럼 내부도 명동성당을 아주 닮아있긴 하지만 제대며 성물 등 구조물은 간결하고 소박하다. 제대를 중심으로 6개씩 좌우로 늘어선 기둥은 예수 부활을 증거하는 12사도의 상징. 처음엔 나무로 세웠으나 나중에 석조로 교체되었다. 바닥은 처음 그대로 의자(장궤)없는 맨 마룻바닥인데 둥근 아치형 천장과 썩 잘 어울린다. 제대 뒷부분 벽에 화려하지 않게 설치된 3개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성당 안으로 들이는 은은한 빛이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제대 오른쪽 마리아상에 얽힌 사연도 흥미롭다.6·25전쟁중 이 지역에서 전투가 치열했는데 간절히 기도해 부대원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군 장교가 나중에 귀국해 비행기로 공수해 왔다고 한다. 성당 왼쪽에 성당을 바라보며 서있는 2층짜리 유물전시관은 전국의 신자와 순례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성지.1912년 사제관으로 만들어 써오다가 1997년 대대적인 단장을 거쳐 320점의 초기 유물들을 모아 놓았다. 성당 건립자인 정규하 신부의 유품을 비롯해 초기 사제들이 미사때 쓰던 촛대와 의식복, 흙으로 빚은 십자가, 율무묵주, 성합, 기도서들을 눈여겨보면 이곳이 예사로운 곳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사제관 왼편 나지막한 동산에 조성한 십자가의 길도 꼭 둘러봐야 할 공간. 지난 2002년 판화작가 이철수씨가 예수 최후의 고난상들을 동판화로 제작한 14처를 음미하며 정상에 오르면 잘 꾸며진 묵주동산을 만나게 된다. 나란히 선 큰 십자고상과 마리아상 앞에 축구공 크기만 한 묵주알들이 빙 둘러 박혀 있는 게 특이하다. 횡성군과 원주교구는 요즘 풍수원 성당의 역사적 가치를 인근 자연과 연계해 천주교 복합성지에 담아내려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100억원을 들여 대지 78만평에 6만 8000평 규모의 ‘바이블 파크’를 조성하는 것이다. 예정대로 완공된다면 내년 말까지 풍수원 성당을 중심으로 수목원과 피정의 집, 미술관, 정규하 신부 동상, 천국동산, 가마터 등이 들어서게 된다. 풍수원 성당 김승오(54) 주임신부는 “한국 동부지역 전교의 중심지로 우뚝 섰던 초기의 위상에선 멀어졌지만 초기 모습을 고스란히 갖춘 채 고난했던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소리없이 증거하는 핵심적인 성지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천주교계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천주교 최초의 신앙촌은 한국엔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 살았던 교우촌이 여럿 있지만 풍수원 성당 일대는 가장 먼저 형성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앙촌이다. 초기의 큰 성당들이 주로 대도시에 들어섰던 것과 달리 험한 산골짜기에 커다란 풍수원 성당이 세워진 것은 바로 이 신앙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초는 1800년대 초 경기도 용인에 살던 40여명의 신자들이 신유박해를 피해 이 지역으로 피신해온 것. 당시 신자들은 피신처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용인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골인 이 지역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터를 잡은 신자들은 다른 지역의 교우촌과 마찬가지로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우며 연명했다. 단 한 사람의 성직자도 없이 두려움에 떨며 80여년간 신앙심을 지키던 신자들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 의해 이곳에 강원도 최초의 본당이 설정된 1888년에야 자유로운 신앙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한때 전국에서 모여든 신자들로 붐볐으나 차츰 흩어져 살게 되었으며 6·25전쟁을 겪으면서 북한에서 넘어온 난민 중심의 교우촌으로 거듭났다. 이후 신자들의 크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으나 30여년 전 도로와 마을 정비사업을 거치면서 많은 가구가 떠났다. 지금 성당 앞에 비슷한 형태로 모여있는 주택 40여채는 30여년 전 정비사업을 하면서 들어선 것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모두 천주교 신자들.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신앙촌 성격이 강한 때문인지 지금 횡성군 서원면 일대 주민 2300명중 신자가 850명에 이를 정도로 천주교 세가 강하다. 물론 풍수원 주민은 모두 천주교 교인들이다.
  • [seoul in] 구조·응급처치 교육 실시

    은평구(구청장 노재동) 가정이나 직장에서 응급상황 발생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27일 오후 2시 보건소 3층 건강증진실에서 구민들을 대상으로 ‘제2차 구조 및 응급처치교육’을 실시한다. 교육에는 은평소방서 응급구조사 3명이 일상생활에서 발생하기 쉬운 응급상황시 대처법과 심폐소생술 이론 등을 강의하고, 실습용 마네킹을 이용해 직접 실습한다. 보건소 의약과 350-1685.
  • 칭짱철도에 열린 티베트 사람들

    칭짱철도에 열린 티베트 사람들

    티베트 사람을 만나거든 이름을 물어볼 일이다. 기분까지 좋아지곤 한다. 다만 한자로 적힌 이름으로는 그 뜻을 알기 어렵다. 표음 문자인 티베트어를 한자로 음차한 때문이다. 대개는 성(姓)이 없이 나뉜 두마디 음절이 각각 아름답고 좋은 뜻을 담게 마련이다. 현지에서 만난 공무원들의 이름을 예로 들면 이렇다. 니마츠런(尼瑪次仁)에서 니마는 ‘태양’이고 츠런은 ‘장수(長壽)’를 뜻한다. 뤄쌍랑제(羅桑朗杰)의 뤄쌍은 ‘지혜’를, 랑제는 ‘맞서 이길 수 없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자시바이전(札西白珍)은 ‘길상(吉祥)스러운 백련화(白蓮花)’를 가리킨다. 이름에 자주 등장하는 거쌍(格桑)은 ‘즐거운 날’이다. 라싸(拉薩) 이지운특파원 jj@seoul.co.kr # 이름만큼 삶도 행복할까 티베트인의 삶도 이름만큼이나 행복하고 아름다울까. 수도 라싸 한 구석에 있는 ‘라모체 사원(小昭寺)’은 그 일면을 확인시켜 줄지 모르겠다.‘간절함’에 관한 한 라모체는 티베트의 상징 부다라(布達拉)궁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짧은 순간이나마 석가모니상에 손을 얹어 기도하고 돌아서며 짓는 순례자들의 표정은 실로 신심(信心)의 극치…. 이 순간을 위해 길게는 수개월을 걸어서 라싸를 찾은 이들이다. 티베트 불교의 성지(聖地) ‘조캉 사원(大昭寺)’ 주변에서 온 몸을 던지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무리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칭짱철도 시닝에서 라싸까지 이르는 차창밖 ‘풍경화’와 그 풍경화 속의 사람들은 너무도 뚜렷이 대비된다. 이어지는 설산(雪山)과 끝없는 초원,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크고 작은 호수들…. 풍광은 그림같으나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누가봐도 고단해 보인다. 설산 밑의 벌판에 덜렁 지어진 흙벽돌 집은 초원의 바람조차 막기 어려워 보인다. 어정쩡한 도시 노동자의 복장을 한 중·장년의 남녀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해발 5072m의 탕구라산역 주변에서도 공사를 한다. 관광객들은 숨조차 쉬기 힘들어하던 곳이다. 티베트인 아니면 산소마스크를 끼고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티베트자치구 성도인 라싸라고 별다르지 않다.100일도 안돼 보이는 아이를 품에 안고 구걸에 나선 20대 젊은 여성은 유별난 기억을 남겼다. 워낙 갓난 아이였던 탓에 ‘유아 마네킹’을 들고 구걸에 나선 줄 알았다. 쓴 웃음을 지으며 아이의 볼을 만져보는 순간, 살아있는 생명임을 알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적선(積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일부지역 아직도 일처다부제 물론 이들의 생활 이면에는 이방인이 판단하기 어려운 또 다른 면이 많다. 르카저(日喀則)처럼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일처다부제가 남아 모계(母系) 사회가 유지되고 있기도 하고, 시체를 토막내 독수리에게 던지는 천장(天葬)이 행해지는 곳이 티베트이다. 여전히 한 건물 안에서 사람과 가축이 동거(同居)하는 일도 흔하다. 최근 티베트 자치주가 유목민 거주 정책의 한 방편으로 주택 개량을 유도하면서 ‘티베트식으로 짓되, 사람과 가축이 다른 건물에 살 것’을 전제 조건으로 내놓았을 정도다. 라싸 외곽 한 마을에서 들른 개조된 집들은 과연 사람과 짐승이 별거 중이었다. 그러나 집집 대문마다에 얹혀진 뿔달린 야크의 머리는, 유목민과 가축의 잠자리를 떼어놓는 일이 ‘위생’ 측면 말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문을 갖게 한다. 야크의 머리는 집안을 보호하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상징물이다. 어찌보면 천장(天葬)도 윤회로서의 의미 외에, 자신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새나 들짐승과의 공생(共生)과 동거를 전제로 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 점심때 퇴근했다 오후 3시 다시 출근 무엇보다 티베트가 외지와 다르다는 점을 가장 피부에 와닿게 하는 것은 ‘태양’이다. 사진 전문가들은 “사진은 기술이 아니라 역시 햇볕”이라고 찬사를 보내며 셔터를 눌러댄다. 얼굴에 얼음 든 듯한 티베트인의 빨간 광대뼈는 햇빛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금도 티베트 사람들이 점심 식사와 함께 퇴근했다가 오후 3시에 다시 출근하는 것을 놓고 ‘한낮의 태양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표준시간을 베이징에 두다보니 실제보다 빨라진 출근시간을 조정하기 위한 정책적 고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들에게 지난 7월 개통된 칭짱철도는 많은 것을 실어나르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한류(韓流)도 그 가운데 하나다. 라싸대학에서 공부 중인 한국인 신정민·공미옥 부부는 “드라마를 본 현지 주민들이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시내 소매점의 한 종업원들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기자를 가리키며 ‘한국 사람’이라고 귀엣말을 주고받는다. 티베트에 가거든 티베트 사람들의 해맑은 표정을 사진기에 많이 담아둘 일이다. 칭짱철도가 티베트 사람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비교가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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