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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감기약 대신 양파 해장국 대신 양파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감기약 대신 양파 해장국 대신 양파

    양파의 영어 명칭은 어니언(Onion)이다. 라틴어의 unio(단일, 하나)에서 유래됐다. ‘하나의 구슬 모양’을 뜻한다. 다른 뜻인 ‘커다란 진주’도 양파의 모양에서 따왔다. 중국에서는 호총(胡蔥)이라는 단어가 당나라 초기 문헌에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옥총(玉?)이라 쓰고 다마네기(たまねぎ)라고 읽는다. 우리나라에서는 1906년 뚝섬 원예모범장(농촌진흥청의 전신)에 처음 도입돼 시범 재배됐다. 명칭도 일본의 명칭인 다마네기를 그대로 따왔다. 총(?) 대신 우리 말인 ‘파’를 사용하면서 ‘옥파’, ‘둥근파’ 등으로 쓰이다가 서양에서 들어온 파라는 뜻으로 양파로 호칭되고 있다. 양파는 기원전 5000년경 근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인류의 식탁에 처음 올라왔다. 이 지역 청동기 유적에서 대추야자, 무화과와 함께 양파의 흔적이 발견됐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200년경부터 서양부추, 마늘 등과 함께 재배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강조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운동선수들이 많은 양의 양파를 날로 먹거나 주스로 마셨다. 구약성서 민수기 11장에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파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그리스와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군사들에게 많은 양의 양파를 먹여 체력을 보강시켰다고 전해진다. 양파는 동서양의 음식에 두루 쓰이는 식재료다. 다지거나 썰어서 양념 형태로 조리에 이용하거나 샐러드 등의 생식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고기의 비린내를 제거하는 데 효과적이고, 기름이 많은 요리에도 자주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양파김치 뿐 아니라 구이나 찜 등에 부재료로 많이 이용된다. 양파를 썰면 눈물이 나곤 한다. 이는 양파를 썰면 세포에 따로 분리돼 있던 최루성 물질과 이를 최루성 물질로 바꾸는 효소가 서로 반응해 ‘프로페닐스르펜산’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에서는 눈이 작아 고민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양파를 많이 썰게 해 눈물을 흘리다 보면 눈이 커진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지고 있다. 눈물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양파를 찬물에 잠시 담가두거나 양파를 썰 때 양초를 켜 놓으면 된다. 양파와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는 ‘중국인 역설’이다. 중국인들은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지만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심장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전문가들은 그 비결로 양파를 꼽는다. 양파는 중국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채소다. 양파가 동맥경화증을 일으키는 만성 염증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양파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스위스의 양파즙에 꿀을 섞어 만든 ‘허니 어니언’, 핀란드의 다진 양파를 우유와 함께 끓여내는 ‘양파우유’ 등이 감기 예방식으로 애용된다.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프랑스의 대표 관광지인 파리 레알지구의 시장에서는 양파수프를 해장용으로 내놓는다. 버터에 볶은 양파와 치즈가 들어간 수프다. 양파 속의 글루타티온 유도체 성분이 간의 해독 기능을 강화시켜 숙취 해소에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 日자민당 정조회장 취임 첫날 “고노담화는 허위… 수정해야”

    지난 3일 출범한 제2기 아베 신조 내각 각료와 자민당 주요 인사들의 역사 인식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의 신임 정무조사회장으로 임명된 이나다 도모미 전 행정개혁담당상은 지난 3일 민영방송인 BS후지에 출연, 고노 담화에 대해 “허위로 인해 국가의 명예가 세계에서 실추되고 있는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명예 회복을 위해 (담화를)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4일 보도했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정하는 입장인 그는 2007년 6월 미국 하원 외교위의 군위안부 문제 결의안 채택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에 일본군과 정부가 군위안부 동원에 개입한 증거가 없다는 내용의 전면 광고를 게재한 여야 의원 45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자민당 정조회장은 정부의 법안을 사전 심의하고 각계의 입장을 정책에 반영하는 정무조사회의 수장으로 내각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 극우적 성향의 이나다가 취임한 만큼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보가 가속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야마타니 에리코 신임 납치문제 담당상은 2009년 2월 22일 제4회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에 국회의원으로는 처음 참석해 독도 반환을 주장했다. 다케시타 와타루 신임 부흥상도 한국 국회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다케시마가 속한 시마네 현 국회의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새 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새 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주제를 경쾌하게 터치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통찰력과 풍부한 감성을 담은 작품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아 온 우디 앨런 감독. 2012년 다양성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36만 관객을 동원한 ‘미드나잇 인 파리’를 비롯해 ‘로마 위드 러브’ ‘블루 재스민’ 등으로 꾸준히 팬들을 만나 왔다. 그가 새로 내놓은 작품 ‘매직 인 더 문라이트’(20일 개봉)는 마술사와 심령술사의 마법 같은 사랑 이야기다. 같은 소재라도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듯 다소 진부할 듯한 소재도 감독의 노련한 연출을 거쳐 독특한 색감의 영화로 빚어졌다. 영화는 재즈 시대였던 1920년대를 배경으로 빈센트 반 고흐,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 에두아드 마네, 파블로 피카소 등 20세기 초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남부 프랑스의 자연 경관을 스크린에 펼쳐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낸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1928년 유럽을 사로잡은 중국인 스타 마술사 웨이링수의 마술쇼장으로 안내한다. 모두가 중국인으로 감쪽같이 속고 있지만 그의 진짜 정체는 스탠리(콜린 퍼스)라는 이름의 영국인이다. 남들에게 마법과 환상을 주는 세계 최고의 마술사이지만 정작 자신은 의심 많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다. 어느 날 동료 마술사로부터 남부 프랑스의 한 가문을 사로잡은 심령술사 소피(에마 스톤)의 이야기를 들은 스탠리는 그녀가 가짜임을 확신하고 정체를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소피를 만난 스탠리는 산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읽고 죽은 이의 영혼을 불러내는 소피의 능력을 목격하고는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영화는 차가운 이성에 갇혀 살던 스탠리가 어떻게 틀을 깨고 사랑에 빠지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극 중 스탠리의 대사처럼 약혼자까지 있는 그가 4차원 심령술사에게 끌리는 것은 “상식과 이성을 넘어선 설명 불가능한 감정”이다. 감독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법 같은 것이 바로 사랑이고 때때로 우리 삶에 그런 착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에둘러 말한다. 여섯살 때 마술가게를 구경한 경험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는 우디 앨런 감독에게 마법과 환상은 빼놓을 수 없는 영화적 테마다. 그는 영화 ‘스쿠프’(2006)에서 자신이 직접 마술사 캐릭터로 출연하기도 했고 ‘제이드 스콜피온의 저주’(2001), ‘환상의 그대’(2010) 등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놓인 캐릭터를 통해 엉뚱하고 기발한 판타지를 그렸다. 이번 작품에서는 4차원 심령술사 소피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에게는 전개가 허술하고 밋밋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음악, 영상과 함께 보는 감독의 전작들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 공산은 적다. 특히 콜린 퍼스의 안정된 연기와 톡톡 튀는 에마 스톤의 상반된 연기를 보는 맛도 쏠쏠하다. 12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광복 69주년, 우리 땅 독도 지킬 수 있을까? (上)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광복 69주년, 우리 땅 독도 지킬 수 있을까? (上)

    -독도까지 ‘불과 5분’ 오키제도에 자위대 전진기지...야욕 노골화 지난 12일 일본 유력일간지 요미우리신문은 집권 자민당이 ‘특정국경낙도 보전 및 진흥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을 마련해 올 가을 의회에서 발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자민당은 이 법안이 일본의 안보와 해양질서 유지를 위한 법안이라고 주장하면서 10여 개의 섬에 자위대가 사용할 수 있는 항만과 비행장 시설을 정비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우리 땅 독도에서 불과 158km 떨어진 오키(隱岐) 제도에 이러한 시설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서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 정부가 특정국경낙도로 지정해 군사시설을 세우려고 하는 곳은 오키 제도이다. 일본이 독도의 관할구역이라고 억지 주장을 펴고 있는 혼슈 시마네현(島根縣)에 딸린 제도로 4개의 큰 섬과 18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도고(島後)섬에는 길이 2,000m, 폭 60m의 활주로를 보유한 3등급 공항인 오키 공항이 건설되어 있다. 인구가 적고 관광객이 많지 않지만, 일본은 지난 1965년에 이 섬에 공항을 건설한 이후 지속적으로 활주로와 공항 시설 확장공사를 진행해 왔다. 오키 제도 전체 섬 지역의 주민은 1만 5천여 명을 조금 넘고, 오키 공항이 위치한 도고섬의 면적 약 242㎢에 불과하다. 관광객 역시 1년에 15만 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다. 울릉도 면적이 약 73㎢, 인구는 약 1만 명에 연간 관광객이 약 40만 명 수준인 것을 감안했을 때 과연 이 섬에 공항을 짓고 확장까지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일인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섬에 취항 중인 노선은 일본에어커뮤터(Japan Air Commuter)의 78인승 여객기 하루 한 편이 전부다. 이용객 숫자가 형편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지난 2006년 오키 공항의 활주로를 확장하고 공항 신청사까지 개관했다. 이 때문에 현재는 기존의 구청사 자리와 공항 북부 지역이 공터로 남겨져 있는 상태이며, 새로운 활주로가 건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965년에 만들어진 길이 1,200m, 폭 45m의 활주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 해군과 공군이 이용하는 포항이나 목포 비행장보다 훨씬 큰 규모다. 일본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길이 2,000m와 60m 폭의 활주로에는 F-15J나 F-2A 등 일본 항공자위대의 모든 전투기들이 이착륙할 수 있다. 심지어 크기로 결정되는 항공기 등급상 C등급(항공기 주 날개 폭 24~36m, 착륙바퀴 폭 6~9m)에 해당하는 P-3C나 최신예 P-1 해상초계기도 운용이 가능하다. - 대형 간판들 ‘돌아오라 다케시마 섬과 바다!’ 섬뜩 일본이 독도 침공을 결심할 경우 이 비행장에는 활주로와 신공항 청사 주변의 주기장과 택시웨이(Taxiway) 외에도 과거 활주로로 쓰던 예비 활주로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이 곳에 50대 가까운 전투기를 준비해 놓을 수 있다. 이 섬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불과 158km. 여기서 F-15 전투기가 이륙하면 순항 속도로 느릿느릿 가도 9분, 서두르면 5분 안에 도달 가능한 거리다. 독도까지 불과 5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자위대의 전진 기지가 들어선다는 얘기다. 이미 이 섬의 ‘독도 탈환 전진기지화’ 작업은 ‘구호’ 작업부터 시작되고 있다. 오키 공항은 물론 섬 곳곳의 도로와 도고섬 최대의 항구인 사이고(西郷)항에는 여객터미널 입구에서부터 주요 길목마다 ‘돌아오라 다케시마 섬과 바다!’ 또는 ‘다케시마 영토권 확립과 어업의 안전조업 확보를!’,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 등의 대형 간판들이 들어서고 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현지 지방자치단체의 소행이지만, 지방자치단체가 독도 탈환 구호를 부르짖고 중앙정부와 집권당은 그곳에 독도 침탈을 위한 전진기지를 짓고 있으니 손발이 착착 들어맞는 이들의 침략적 본성 앞에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럼 우리도 울릉도에? 일본은 경제성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50년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오키 제도에 공항을 건설하고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이제는 전방 추진 비행장으로 운용하기에 손색이 없는 규모와 제반 시설을 만들어 놨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30년 전부터 ‘독도는 우리 땅’ 노래만 주구장창 불렀을 뿐 정작 일본이 칼자루를 빼들고 독도를 빼앗으려 할 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하는 데에는 대단히 인색했다. 경상북도와 울릉군이 울릉도에 공항 건설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는 그때마다 경제성이 없다며 공항 건설 요구를 반대해 왔다. 그러던 중 2011년 1월 국토해양부의 제4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공항 건설 사업이 포함되어 사업 착수 예산이 반영되자 야당은 ‘형님 예산’이라며 사업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울릉공항 건설 사업을 관철시킨 것은 정윤열 전 울릉군수와 당시 울릉군 의회 의장이었던 최수일 현 울릉군수, 그리고 김관용 경북지사였다. 이들은 KDI와 국토해양부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길이 1,100m, 폭 30m 크기의 활주로를 갖는 사업비 4,932억 원 규모의 울릉공항 건설 사업을 관철시켰다. -F-15K 전투기도 운용 못하는 ‘반쪽’ 활주로 지자체장들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울릉공항 건설 사업은 시작되었지만, 울릉공항은 처음부터 공항 건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중앙정부의 의지 부족 때문에 소형 여객기 정도만 운항이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울릉공항 규모의 활주로는 F-15K 전투기나 P-3C 대잠초계기 운용은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꿈도 꿀 수 없다. 또한 무장을 장착했을 때 최소 1km 이상의 이착륙 거리가 확보되어야 하는 F-16 전투기 운용도 제한된다. 결국 이 공항에는 해군이 도입할 예정인 S-3B 해상초계기나 공군의 경공격기인 FA-50 정도만이 운용 가능하다. 독도에서 불과 90km 떨어진 울릉도에 공군 전투기 운용이 가능한 규모의 비행장이 건설될 경우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에 대한 억제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일본정부가 적자를 감소하면서까지 오키 제도에 공항을 건설하고 확장해온 것이 독도를 염두에 둔 준비 작업이었던 것처럼 울릉공항 역시 경제성 유무를 떠나 안보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독도를 빼앗겨 잃게 되는 독도 주변의 천연자원과 막대한 어족자원의 경제적 가치는 울릉공항의 적자 수준으로 논할 단위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국책연구기관은 근시안적인 경제적 효과만을 보고 있고, 정치권은 정쟁에 눈이 멀어 오랜 시간 울릉공항 건설의 발목을 잡아왔고, 그 사이 일본은 울릉도 코앞에 독도 침탈을 위한 전진기지를 착착 건설하고 있다. 독도는 섬이다. 이 섬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창은 해군이고, 방패는 공군이다. 독도와 10분 거리에 비행장이 있는 일본과 그렇지 못한 우리나라 사이에 독도를 두고 교전이 벌어질 경우 얼마나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지 정치권과 KDI는 모르는 것 같다. <계속> 이일우 군사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힐링캠프 이지아, 본명 나이 공개 “송창의와 동갑” 서태지·정우성 러브 스토리는?

    힐링캠프 이지아, 본명 나이 공개 “송창의와 동갑” 서태지·정우성 러브 스토리는?

    힐링캠프 이지아, 본명 나이 공개 “송창의와 동갑” 서태지·정우성 러브 스토리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배우 이지아가 서태지와 결혼 당시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었다고 고백해 화제다. 이지아는 지난 11일 방송된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서태지와의 결혼, 연예계 데뷔, 정우성과의 만남과 이별 등 과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지아는 우선 자신의 본명을 밝혔다. 이지아는 “이지아라는 이름은 우선 가명이고 성은 김씨다. 원래 이름은 김상은이었고 지금은 김지아로 개명을 했다. 나이는 배우 송창의와 동갑이라고 예전에 기사가 나갔었는데 맞다”고 설명했다. 송창의는 1979년생이다. 아울러 이지아는 “16세 때 LA 한인 공연에 왔었던 그분(서태지)을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이어 “(서태지의) 열혈 팬은 아니었다. 그건 와전된 것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연예인과 숨겨진다는 건 바위 뒤에 몸 숨기는 것과 다르더라. 힘겨웠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선택한 사랑은 산에서 내려오는 다람쥐에게도 들켜선 안되는 거였다. 더 이상 혼자일 수 없이 혼자였다. 혼자인 게 익숙해질 정도가 되니까 이게 독이라 생각했다. 그건 너무 멀리 갔을 때였다”고 토로했다. 이에 MC들이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냐”고 묻자 이지아는 “내가 정말 큰 불효를 저질렀다. 가족들과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지아는 “약 7년 정도 뒤에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7년 만에 찾아뵀다. 그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은 그 분이 그렇게 해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난 그게 제 사랑을 지키는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지아는 “촬영장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정우성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줬다. 첫 눈에 반한 것은 아니지만, 8개월 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 같다”고 전 연인 정우성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MC 이경규가 “궁금한 것은 그 분(정우성)은 이지아의 비밀(서태지와의 결혼)을 알았냐는 것이다”라고 묻자 이지아는 “함께 파리에 갔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거리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 때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지아는 “힘들게 모든 것을 얘기했다. 그런데 그분(정우성)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도 10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어’라고 반응을 하더라. 그게 고마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네티즌들은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참 파란만장한 삶이네”,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드라마에 출연할 것이 아니라 본인 얘기가 드라마네”,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정우성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지아 16살, 서태지 결혼 스토리 밝혀…본명·나이도 공개

    이지아 16살, 서태지 결혼 스토리 밝혀…본명·나이도 공개

    이지아 16살, 서태지 결혼 스토리 밝혀…본명·나이도 공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배우 이지아가 서태지와 결혼 당시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었다고 고백해 화제다. 이지아는 지난 11일 방송된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서태지와의 결혼, 연예계 데뷔, 정우성과의 만남과 이별 등 과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지아는 우선 자신의 본명을 밝혔다. 이지아는 “이지아라는 이름은 우선 가명이고 성은 김씨다. 원래 이름은 김상은이었고 지금은 김지아로 개명을 했다. 나이는 배우 송창의와 동갑이라고 예전에 기사가 나갔었는데 맞다”고 설명했다. 송창의는 1979년생이다. 아울러 이지아는 “16세 때 LA 한인 공연에 왔었던 그분(서태지)을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이어 “(서태지의) 열혈 팬은 아니었다. 그건 와전된 것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연예인과 숨겨진다는 건 바위 뒤에 몸 숨기는 것과 다르더라. 힘겨웠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선택한 사랑은 산에서 내려오는 다람쥐에게도 들켜선 안되는 거였다. 더 이상 혼자일 수 없이 혼자였다. 혼자인 게 익숙해질 정도가 되니까 이게 독이라 생각했다. 그건 너무 멀리 갔을 때였다”고 토로했다. 이에 MC들이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냐”고 묻자 이지아는 “내가 정말 큰 불효를 저질렀다. 가족들과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지아는 “약 7년 정도 뒤에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7년 만에 찾아뵀다. 그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은 그 분이 그렇게 해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난 그게 제 사랑을 지키는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지아는 “촬영장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정우성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줬다. 첫 눈에 반한 것은 아니지만, 8개월 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 같다”고 전 연인 정우성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MC 이경규가 “궁금한 것은 그 분(정우성)은 이지아의 비밀(서태지와의 결혼)을 알았냐는 것이다”라고 묻자 이지아는 “함께 파리에 갔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거리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 때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지아는 “힘들게 모든 것을 얘기했다. 그런데 그분(정우성)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도 10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어’라고 반응을 하더라. 그게 고마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네티즌들은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참 파란만장한 삶이네”,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드라마에 출연할 것이 아니라 본인 얘기가 드라마네”,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정우성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지아 16살 첫만남 서태지 결혼 스토리…베일에 싸여있던 본명·나이도 공개

    이지아 16살 첫만남 서태지 결혼 스토리…베일에 싸여있던 본명·나이도 공개

    이지아 16살 첫만남 서태지 결혼 스토리…베일에 싸여있던 본명·나이도 공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배우 이지아가 서태지와 결혼 당시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었다고 고백해 화제다. 이지아는 지난 11일 방송된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서태지와의 결혼, 연예계 데뷔, 정우성과의 만남과 이별 등 과거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지아는 우선 자신의 본명을 밝혔다. 이지아는 “이지아라는 이름은 우선 가명이고 성은 김씨다. 원래 이름은 김상은이었고 지금은 김지아로 개명을 했다. 나이는 배우 송창의와 동갑이라고 예전에 기사가 나갔었는데 맞다”고 설명했다. 송창의는 1979년생이다. 아울러 이지아는 “16세 때 LA 한인 공연에 왔었던 그분(서태지)을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이어 “(서태지의) 열혈 팬은 아니었다. 그건 와전된 것이다. 온 국민이 다 아는 연예인과 숨겨진다는 건 바위 뒤에 몸 숨기는 것과 다르더라. 힘겨웠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선택한 사랑은 산에서 내려오는 다람쥐에게도 들켜선 안되는 거였다. 더 이상 혼자일 수 없이 혼자였다. 혼자인 게 익숙해질 정도가 되니까 이게 독이라 생각했다. 그건 너무 멀리 갔을 때였다”고 토로했다. 이에 MC들이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냐”고 묻자 이지아는 “내가 정말 큰 불효를 저질렀다. 가족들과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지아는 “약 7년 정도 뒤에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7년 만에 찾아뵀다. 그 당시에는 그런 상황이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은 그 분이 그렇게 해주길 원했기 때문이다. 난 그게 제 사랑을 지키는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지아는 “촬영장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때 (정우성이)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줬다. 첫 눈에 반한 것은 아니지만, 8개월 간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진 것 같다”고 전 연인 정우성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했다. MC 이경규가 “궁금한 것은 그 분(정우성)은 이지아의 비밀(서태지와의 결혼)을 알았냐는 것이다”라고 묻자 이지아는 “함께 파리에 갔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거리에서 데이트를 했다. 그 때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지아는 “힘들게 모든 것을 얘기했다. 그런데 그분(정우성)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도 10년 동안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어’라고 반응을 하더라. 그게 고마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네티즌들은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참 파란만장한 삶이네”,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드라마에 출연할 것이 아니라 본인 얘기가 드라마네”, “힐링캠프 이지아 서태지 정우성, 정우성이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전세계 수십만명 反이스라엘 시위

    이스라엘의 가자 공격에 반대하는 각국 수십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섰다. 9일(현지시간)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이란의 테헤란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열고 이스라엘의 작전을 비난하고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의 점령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영국 런던에서는 15만명이 운집해 옥스퍼드 거리를 행진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이라고 쓴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이스라엘의 공격은 학살”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BBC 본사에서 출발, 미 대사관을 거쳐 하이드파크까지 행진했다. 시위대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유럽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프랑스의 파리에서도 수천명이 모여 팔레스타인 국기로 감싼 마네킹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독일 베를린에서도 1000여명이 거리를 행진했다. 케이프타운에서도 인종차별 반대 단체 지도자들을 포함한 수천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테헤란의 팔레스타인광장에는 수백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모여 “이스라엘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한편 가자지구로 가서 부상당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치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집트 카이로에서 가자지구 전투 종식을 논의해 온 팔레스타인 협상단이 10일 새롭게 72시간의 휴전에 돌입하자는 이집트의 제안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지난 주말 협상단을 철수시켰으며, 이날도 공습을 계속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 현장검증 모습 보니..‘말이 안나올 정도’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 현장검증 모습 보니..‘말이 안나올 정도’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 지난 7일 28사단 윤모 일병이 기도가 막혀 숨졌다는 육군의 발표와는 달리 가해자들의 폭행으로 숨졌고 병원 이송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고 군 인권센터가 주장했다. 윤일병 사망 사건을 최초 폭로한 군인권센터는 “윤 일병이 가해자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과정에서 의식을 잃었고, 이어 의식 소실에 의한 기도폐쇄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앞서 군 당국은 윤 일병의 사망 원인을 ‘음식물로 인한 기도폐쇄에 따른 뇌손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군인권센터는 이날 “사건 당일 윤 일병은 주범 이모 병장에게 머리를 수차례 맞은 뒤 갑자기 물을 마시게 해달라고 애원했고, 물을 마시러 가다가 주저앉아 오줌을 싼 후 의식을 잃었다”며 “가해자들의 구타 행위와 윤 일병의 사인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만큼 군 검찰관은 공소장을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 소식에 네티즌은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진짜 살인자가 따로 없네”,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엄벌에 처해야 한다”,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악마네”,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말도 안되는 사건”,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아들 군대 보내기 무섭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방송 캡처 (윤일병 직접사인 구타) 뉴스팀 chkim@seoul.co.kr
  • ‘체조요정’ 코마네치 그녀는 왜 조국을 등졌을까?

    ‘체조요정’ 코마네치 그녀는 왜 조국을 등졌을까?

    지난 1976년 7월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장. 당시 키 153cm에 불과한 14세 소녀가 이단 평행봉을 나비처럼 날아오르다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 순간 전광판에 새겨진 점수는 10점 만점에 단 1.00. 심판을 포함 모든 관중들이 당황했지만 이는 9.99점 까지만 표기되는 전광판의 오류였다. 10점 만점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점수였기 때문이다 바로 영원한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52) 전설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38년.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최근 영국언론이 코마네치의 사연과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조만간 BBC에서 방영되는 체조관련 한 프로그램에 심판으로 그녀가 참여하기 때문이다. 체조요정이라는 타이틀로 부와 명성을 한 몸에 누리며 살았을 것 같은 그녀지만 남들은 모르는 그녀 만의 아픔은 있었다.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코치 생활을 이어갔던 그녀는 루마니아의 ‘보물’이 됐지만 반대로 정부의 혹독한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특히 당시 루마니아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치하. 코마네치는 “커피 한잔도 내 마음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면서 “내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그들(정부)도 모두 알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숨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던 그녀는 결국 조국을 떠날 결심을 하지만 문제는 생이별하게 될 가족이었다. 코마네치는 “내가 망명한다는 것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해 차마 이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면서 “엄마가 심장마비에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며 눈물지었다. 이어 “오빠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더니 나에게 ‘다른 곳으로 가서 네 인생을 찾아라’라고 충고해줬다” 면서 “망명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가는 것이 옳다라는 외침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마치 현재 탈북자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대목. 결국 그녀는 1989년 다른 6명의 체조선수와 함께 헝가리 국경을 넘은 후 오스트리아를 거쳐 미국 대사관의 문을 두드려 꿈에 그리던 자유를 찾았다. 이후 그녀는 여러 광고 등에 출연하며 많은 돈을 벌었고 1996년 체조선수 출신인 버트 코너와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결혼했다. 망명 후 처음으로 고국으로 돌아가 뜻깊은 결혼식을 올린 것. 당시 루마니아 언론은 1만명의 시민들이 회사도 가지않고 결혼식장에 찾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사랑’의 뮤지컬 음악 들어 보세요

    서울시합창단은 오는 7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다양한 뮤지컬 음악으로 꾸민 ‘신나는 콘서트 시즌3’를 개최한다. ‘신나는 콘서트’는 시대를 넘나드는 연주 활동을 펼치는 서울시합창단이 2012년부터 선보인 대중적인 합창 콘서트. 올해는 ‘사랑’을 주제로 뮤지컬 음악을 선정했다. 공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곡은 ‘렌트’의 ‘시즌 오브 러브’로, 사랑이야말로 시간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서머 타임’(포기와 베스)에서는 자식을 위해 꿈 같은 자장가를 부르는 부모의 사랑을 전한다 ‘겟세마네’(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세상의 마지막 밤’(미스 사이공), ‘리슨’(드림걸즈) 등 작품의 절정을 장식하는 25곡을 준비했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엄기영이 객원지휘자로 나서고, 서울시뮤지컬단 수석단원 출신인 배우 곽은태가 연출을 맡았다. 방학을 맞은 청소년들은 전석 1만원에 관람할 수 있다. 3만원. (02)399-1114.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탈북자 연상 ‘체조요정’ 코마네치의 아픈 사연

    탈북자 연상 ‘체조요정’ 코마네치의 아픈 사연

    지난 1976년 7월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체조경기장. 당시 키 153cm에 불과한 14세 소녀가 이단 평행봉을 나비처럼 날아오르다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 순간 전광판에 새겨진 점수는 10점 만점에 단 1.00. 심판을 포함 모든 관중들이 당황했지만 이는 9.99점 까지만 표기되는 전광판의 오류였다. 10점 만점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점수였기 때문이다 바로 영원한 체조요정 나디아 코마네치(52) 전설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38년.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최근 영국언론이 코마네치의 사연과 인터뷰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조만간 BBC에서 방영되는 체조관련 한 프로그램에 심판으로 그녀가 참여하기 때문이다. 체조요정이라는 타이틀로 부와 명성을 한 몸에 누리며 살았을 것 같은 그녀지만 남들은 모르는 그녀 만의 아픔은 있었다.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코치 생활을 이어갔던 그녀는 루마니아의 ‘보물’이 됐지만 반대로 정부의 혹독한 감시와 통제를 받았다. 특히 당시 루마니아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치하. 코마네치는 “커피 한잔도 내 마음대로 먹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면서 “내가 누구와 이야기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그들(정부)도 모두 알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숨도 마음 편히 쉬지 못했던 그녀는 결국 조국을 떠날 결심을 하지만 문제는 생이별하게 될 가족이었다. 코마네치는 “내가 망명한다는 것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해 차마 이 사실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면서 “엄마가 심장마비에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며 눈물지었다. 이어 “오빠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더니 나에게 ‘다른 곳으로 가서 네 인생을 찾아라’라고 충고해줬다” 면서 “망명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가는 것이 옳다라는 외침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마치 현재 탈북자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대목. 결국 그녀는 1989년 다른 6명의 체조선수와 함께 헝가리 국경을 넘은 후 오스트리아를 거쳐 미국 대사관의 문을 두드려 꿈에 그리던 자유를 찾았다. 이후 그녀는 여러 광고 등에 출연하며 많은 돈을 벌었고 1996년 체조선수 출신인 버트 코너와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결혼했다. 망명 후 처음으로 고국으로 돌아가 뜻깊은 결혼식을 올린 것. 당시 루마니아 언론은 1만명의 시민들이 회사도 가지않고 결혼식장에 찾아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 뿌려달라 했더니…” 끔찍한 악행의 종점 ‘시멘트 암매장’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 뿌려달라 했더니…” 끔찍한 악행의 종점 ‘시멘트 암매장’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 뿌려달라 했더니…” 끔찍한 악행의 종점 ‘시멘트 암매장’ 지난 5월 경찰에 구속된 경남 김해 여고생 살해 사건의 피의자인 또래 여중생들의 잔혹한 범행수법이 재판과정에서 알려져 주변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이들은 숨진 여고생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몸에 끓는 물을 붓는 것은 물론 휘발유를 이용해 시신을 훼손하고 나서 암매장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창원지방검찰청은 지난 5월 여고 1학년 윤모(15)양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살인·사체유기 등)로 양모(15), 허모(15), 정모(15)양 등 여중생 3명과 윤양을 유인해 성매매를 시키고 시신 유기를 방조한 김모(24)씨를 구속기소했다. 이들과 공모한 이모(25), 허모(24)씨, 또 다른 양모(15)양 등 4명은 대전지방검찰청에서 구속기소했다. 재판에 넘겨진 이들에 대한 1심이 진행되면서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을 통해 이들의 충격적인 범죄행각이 드러났다. 4일 창원지검에 따르면 공소장에는 여중생 3명과 범행에 가담한 이씨 등의 잔혹한 범행이 담겨 있다. 이들은 지난 3월 15일 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윤양이 김씨를 따라 가출하자 부산의 한 여관에서 함께 지내며 성매매를 강요해 받은 화대로 생활을 이어갔다. 윤양 아버지가 가출신고를 한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3월 29일 윤양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성매매 강요 사실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다음날 윤양을 울산의 한 모텔로 다시 데려갔다. 이들은 윤양에게 다시 성매매를 시키다가 4월 4일 모텔 내 컴퓨터를 이용, 페이스북에 접속한 윤양을 자신들의 위치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씨 등 남성들은 윤양과 여학생들을 번갈아가며 1대 1 싸움을 시키고 구경하거나 윤양을 집단적으로 폭행했다. 냉면 그릇에 소주 2병을 부어 마시도록 하고 나서 윤양이 구토하면 토사물을 강제로 먹이기도 했다. 윤양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을 뿌려달라’고 부탁하자 윤양의 팔에 수차례 끓는 물을 붓기도 했다. 윤양 몸 곳곳에 상처가 났는데도 ‘앉았다 일어서기’ 벌을 100회씩 시켰고 윤양이 집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때렸다. 그러다 4월 10일 윤양은 대구 한 모텔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 웅크려 급성 심장정지로 숨졌다. 이들은 숨진 윤양의 시신을 유기하기로 하고 다음날 경남 창녕군 대지면의 한 야산으로 갔다. 남성들은 윤양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시신 얼굴에 뿌리고 불을 붙여 그을리게 하고 나서 시멘트를 반죽해 시신 위에 뿌리고 돌멩이와 흙으로 덮어 암매장했다. 윤양을 암매장한 남성들은 대전에서 양양에게 성매매를 시키려다가 성매수 남성이 양양이 ‘꽃뱀’이라고 의심하자 해당 남성을 살해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창원구치소와 대전구치소에 각각 수감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은 집에서 나간 딸이 연락되질 않는다는 윤양 부모의 신고를 받고 수사를 시작, 지난 5월 2일 이들을 붙잡았다. 잔혹한 범행수법에 충격을 받은 피해자 윤양의 가족은 생업도 포기한 채 창원과 대전을 오가며 피고인들의 처벌을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지검 김영대 차장검사는 “범행수법이 잔혹해 이들에 대해 법정최고형을 구형하는 등 엄벌에 처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네티즌들은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얼마나 때렸으면 급성 심정지가 됐나”,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뜨거운 물 붓고 성매매 시키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걸 안보내고 이건 인간이 아니다”,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성매수남까지 유혹해서 살해하다니 이건 완전히 연쇄살인마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토사물 먹게 하고 뜨거운 물 부어” 살해 뒤에도 충격적 진실 드러나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토사물 먹게 하고 뜨거운 물 부어” 살해 뒤에도 충격적 진실 드러나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토사물 먹게 하고 뜨거운 물 부어” 살해 뒤에도 충격적 진실 드러나 10대 4명과 20대 3명이 여고생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시신까지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던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의 전말이 드러났다. 4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재 재판에 넘겨져 1심이 진행 중인 피고인들은 여고생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토사물을 먹게 하고, 끓는 물을 몸에 붓는 등 입에 담지 못할 학대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창원지방검찰청 형사2부(부장 신명호)는 지난 5월 여고 1년생 윤모(15)양을 폭행·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양모(15), 허모(15), 정모(15)양을 구속 기소했다. 이모(25), 허모(24), A씨(24)와 B(15)양 등은 같은 혐의로 대전지방검찰청에서 구속 기소했다. 한국일보가 보도한 창원지검의 공소장에 따르면 양양과 허양, 정양 등은 김해 지역 중학교 선후배 사이인 이씨 등과 자주 어울렸다. 피해자 윤양은 허씨의 친구 김씨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지난 3월 15일부터 윤양의 지옥이 시작됐다. 피고인들은 윤양을 부산의 한 여관에 데려갔고, 인터넷으로 ‘조건만남’ 대상을 물색해 그에게 성매매를 강요했다. 김씨 등은 이 화대로 생활을 꾸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윤양의 아버지가 가출신고를 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성매매 강요 사실을 알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그달 29일 윤양을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다음날인 30일 다시 윤양을 찾아가 그를 울산의 한 모텔로 데려갔다. 윤양은 여기서 다시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이들은 윤양이 모텔 내 컴퓨터로 페이스북에 접속하자, ‘위치를 노출했다’며 윤양을 때렸다. 이때부터 피고인 7명은 윤양을 감금하고 조를 짜서 그를 학대했다. 이씨 등 남성들은 윤양과 여학생들을 싸움붙이고 구경했으며, 윤양을 무차별적으로 때렸다. 냉면 그릇에 소주 2병을 부어 윤양에게 마시도록 한 후, 윤양이 토해내면 그것을 다시 핥아먹게 하기도 했다. 폭행을 당하던 윤양이 “너무 맞아 답답하니 물을 좀 뿌려달라”고 부탁하자 한명은 윤양의 팔에 끓는 물을 붓기도 했다. 몸이 만신창이가 된 윤양이 “집에 가고 싶다”고 얘기하면 이들의 학대는 더 심해졌다. ‘앉았다 일어서기’ 벌도 시키고, 구구단을 외우게 하고 답하지 못하면 때리는 등 학대를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죽으면 누구를 데려갈 것이냐”고 묻고 윤양이 답을 하면 지목된 학생이 윤양을 폭행하기도 했다. 한 여학생은 보도블록으로 윤양을 내려치기도 했다. 결국 4월 10일 오전 0시 30분, 윤양은 대구의 한 모텔 인근에 주차된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서 급성 심장정지로 숨졌다. 하지만 피고인들의 만행은 그칠 줄 몰랐다. 그들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윤양의 시신을 산에 묻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4월 11일 경남 창녕군의 한 과수원으로 갔다. 남성 일행 3명은 윤양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다. 3일 뒤 남성 3명과 여학생 2명이 모여 시신을 경남 창녕의 한 야산에 묻었다. 시멘트를 반죽해 시신 위에 뿌리고, 돌멩이와 흙으로 시신을 덮어두기도 했다. 피고인 중 일부는 윤양을 매장한 뒤 또 살인을 저질렀다. 이들은 조건만남을 빙자해 40대 남성을 모텔로 유인한 뒤 돈을 뜯으려다 반항하자 마구 때려 남성을 숨지게 했다. 현재 양양과 남성 3명은 대전구치소에, 허양 등 3명은 창원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네티즌들은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어떻게 어린 여고생을 저렇게 가혹하게 고통을 주고 살해까지 할 수 있지?”,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완전히 살인마네”,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 사람을 계속 죽이는 저런 사람은 사형시켜야”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셔터소리와 사랑에 빠진 사진작가 조선희의 인생

    셔터소리와 사랑에 빠진 사진작가 조선희의 인생

    아리랑TV의 간판 토크쇼 ‘디 이너뷰’(The Innerview)가 29일 밤 7시에 톱스타들을 앵글에 담아온 사진작가 조선희씨를 만나 그녀의 성공 비결을 들어본다. 1971년 경북 왜관에서 태어난 조 작가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카메라를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었다. 대학 때 우연히 사진 동아리에 들어갔고, 카메라 셔터 소리에 반해 사진을 평생 직업으로 삼게 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그가 사진작가에 도전하기까지의 사연, 스타들을 촬영하는 과정에서의 숨겨진 이야기 등이 다양하게 소개된다. 대학 졸업 후 모델을 쓸 돈이 없었던 그는 지인에게 소개받은 남자 무용수를 폐광촌에 데려가 누드 사진을 찍은 뒤 편지 한 장과 함께 무작정 김중만 사진작가에게 보냈다. 이를 계기로 그녀는 김중만 작가 옆에서 제대로 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전문 사진작가로 그는 20년간 배우, 영화 포스터, 광고 등 인물 사진 위주의 작업을 해 왔다. 사진 전공자가 아니어서 몇 배더 힘들었지만,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창조적인 결과물을 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를 스타 작가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은 배우 이정재의 사진 한 장이었다. 잡지 창간호에 실릴 이정재의 사진을 맡아 사전 만남과 장소 답사는 물론이고 촬영에만 12시간을 공들였다. 그 사진을 계기로 그는 이후 8년간 이정재의 화보를 전담했다. 스타들을 앵글에 담는 동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배우 정우성을 화학냄새 진동하는 마네킹 도색 상자에 몰아넣었던 사연, 카메라 앞에서 스타들의 마음을 열리게 하는 비법 등이 공개된다. 시청자들을 위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을 때의 요령도 귀띔해준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장범준-송지수 득녀, 93년생 엄마 탄생 ‘장범준 군 입대 미룬 이유?’

    장범준-송지수 득녀, 93년생 엄마 탄생 ‘장범준 군 입대 미룬 이유?’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송지수 득녀’ 지난 4월 결혼식을 올린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의 아내 송지수가 26일 자연분만으로 여자 아이를 출산했다. 송지수는 오전 11시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으로 3.92kg의 딸을 낳았다. 장범준 송지수 부부의 측근은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며 “장범준이 송지수의 곁을 지켰다”고 전했다. 지난해 12월, 장범준은 군 입대 계획을 미루고 결혼을 서두르게 된 데에 아이가 생겼음을 솔직하게 밝혀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임신 8주차였던 송지수는 임신 6개월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렸다. 한편 장범준은 김형태, 브래드와 함께 버스커버스커의 멤버로 ‘벚꽃엔딩’ ‘여수 밤바다’ 등의 히트곡을 탄생시켰다. 현재 장범준은 솔로 앨범 발매를 목표로 작업 중이다.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송지수 득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송지수, 결혼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송지수, 엄마 아빠 닮아 아이가 순하게 생겼을 듯”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송지수, 장범준 앨범도 빨리 나왔으면”,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송지수 득녀..진짜 젊은 엄마네”,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송지수 득녀..젊으니까 건강하게 나았을 듯”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버스커버스커 장범준-송지수 득녀) 연예팀 chkim@seoul.co.kr
  • 급진 이슬람 ISIS, 상점 마네킹 얼굴에도 ‘베일’

    급진 이슬람 ISIS, 상점 마네킹 얼굴에도 ‘베일’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S)가 최근 통치 지역 내 상점 주인들에게 진열된 마네킹 얼굴에 베일을 씌우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ISIS의 급진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이 조치는 최근 자신들이 장악한 모술 지역 상점 주인들에게 최후 통첩 형태로 전달됐다. ISIS 측이 모든 마네킹 얼굴을 가리라고 지시한 것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기반한 통치를 하기 때문이다. ISIS 통치 지역에서는 남녀를 엄격히 분리해 교육시키는 것은 물론 여성은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리는 베일을 착용해야 한다. 이같은 엄격함이 그대로 마네킹에까지 적용된 것. 그러나 ISIS의 마네킹 얼굴 가리기 조치는 그야말로 ‘약과’에 불과하다. 최근 ISIS 측은 모술 지역 기독교인들에게 개종할 것을 강요하고 있으며 세금을 내지 않으면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략 5000명의 기독교인들은 지난달 인근 마을로 도망쳤으며 현재 남아있는 사람은 200명 안팎이다.   국제인권단체들은 “ISIS가 이라크 지역의 절반을 장악한 후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하고 있다” 면서 “소수 민족과 소수 종교인들의 흔적을 깡그리 지우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사실상 내전 상태로 치달은 이라크 사태는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뿌리깊은 갈등에서 야기됐다.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 정부가 2003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시아파가 이라크를 통치하게 됐으나 미군 철수 이후 수니파의 반격이 이어졌고 결국 이번 사태로 내전 위기에 놓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끼리끼리’문화는 싫어 수많은 시도 좋아 백발 작가는 작업중

    ‘끼리끼리’문화는 싫어 수많은 시도 좋아 백발 작가는 작업중

    “2010년 다시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요. ‘이렇게까지 홀대받으며 꼭 한국에서 활동해야 하느냐’는 (재미교포인) 아내의 성화 탓이었죠. ‘끼리끼리’ 학연이 지배하는 한국 미술계에서 고졸 출신인 제가 버티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을 무렵입니다. 미국에서 살 집과 잡일을 구하다 닷새 만에 돌아왔어요. 이런 식으로 도망칠 수 없다는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해외선 모셔가는 작가인데 국내선 홀대 이렇게 극과 극의 평가가 엇갈린 작가가 또 있을까. 시대정신과 감수성으로 무장한 작가에게는 지금도 ‘천재’ 혹은 ‘정신 나간 사람’이란 엇갈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은 수억원의 그림값을 쳐주며 모셔갔지만,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은 500만원 그림값도 비싸다며 40%나 깎으려 들더라”고 고백한 김구림(78) 화백이다. 2012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열린 ‘어 비거 스플래시’(A Bigger Splash)전은 꺼져가던 김 화백에 대한 국내 미술계의 관심을 되살렸다. 데이비드 호크니, 구사마 야요이, 신디 셔먼, 잭슨 폴록 등 내로라하는 20세기 현대미술사의 거장들과 함께 ‘김구림’이란 이름 석 자가 올랐다. 작가는 1969년 여성의 몸에 붓으로 그림을 그렸던 ‘보디 페인팅’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들을 내놓았고 호평받았다. 이후 개인화랑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15년간 미국서 활동하다 2000년 귀국전 애초부터 그는 국내와 인연이 적은 ‘해외파’였다. 대구 ‘촌놈’이 무작정 상경해 1960~1970년대 한국 전위예술의 획을 그은 ‘제4집단’을 결성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그뿐이었다. “행위예술, 비디오아트, 대지미술 등을 넘나들 때 주간지마다 제 전담기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에선 종종 작품 전시조차 거부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꽃무늬 탁자보와 사람들이 앉았던 방석을 늘어놓은 독특한 판화작품이 찬사를 받으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판화전이 계기가 됐다. “이대로 안주하지 않겠다”며 1985년 도미한 작가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15년간 거주하며 예술세계를 펼쳤다. 백남준과 2인전을 연 것도 이즈음이지만 세월이 흐르며 국내에선 완전히 잊혔다. 향수병이 도질 무렵, 옛 문예진흥원(아르코)이 대규모 개인전을 제안했다. 2000년 10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옛 문예진흥원 미술관에서 열린 귀국전에는 ‘김구림이 대체 누구냐’며 사람들이 몰렸고, 전시공간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김 화백은 말했다. ●“반짝 관심에 매년 전시 열어도 몰라” 그러나 그때뿐. 김 화백에 대한 국내 화단의 관심은 반짝이다 금세 사라졌다. 그래서 작가는 지금도 고독하다. “매년 전시를 열었지만 사람들이 몰랐을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플레이스막에서 열린 설치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진 작가나 기웃거릴 대안공간에서 대표작인 ‘음양시리즈’를 선보였다. 작은 배를 전시공간에 갖다놓고 물을 채운 뒤 마네킹의 머리와 팔, 모형 뱀과 사과를 함께 놨다. 관람객들이 “동명이인인 20대 작가 김구림의 작품이냐”고 물을 정도였다. 작가는 지금 종로구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 지하에서 2000년대 이후 회화와 콜라주를 아우르는 160점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다음달 24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성형천국을 꼬집는 도발적 풍자물로 가득하다. 작가는 “서울 강남역에서 마주한 한국 사회의 단면이 여성 누드와 얼굴로 채워진 이런 작품들을 만들게 했다”고 말했다. 모형 손가락 뼈가 붙은 작품은 아직 사인조차 하지 않은 최신작이다. 젊은 시절 읽었던 논어 등 동양사상서들은 속이 파인 채 거친 욕망을 표현한 ‘진한 장미’시리즈로 탈바꿈했다. ●구상했던 수많은 설치 작품 시도해 보고파 머리와 눈썹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노 작가는 몇 가지 고백을 덧붙였다. “본명은 ‘김종배’예요. 미술계 선배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개명했죠. 20대 때는 대구에서 바이크 선수로 이름을 날렸어요. 사고로 지금도 오른쪽 갈비뼈 한 대가 없죠. 재미교포인 (두 번째) 아내와는 미국에 살던 시절, LA 폭동을 피해 잠시 거처를 빌렸을 때 16살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인연을 맺었어요. 아들부터 낳고 합쳤는데, 여태껏 결혼식을 못 올렸죠. 1남 1녀 중 딸은 영국 골드스미스미대에서 제 뒤를 이어 미술 공부를 하고 있죠.” 그는 “지금도 예전에 구상했던 수많은 설치 작품들을 시도해 보고 싶지만 돈이 발목을 잡는다. 어떤 미술관이든 도와만 준다면 덩실덩실 춤을 출 것”이라고 되뇌었다. 글 사진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할로윈 인형인 줄 알았다”...시신을 토막내 버려

    “할로윈 인형인 줄 알았다”...시신을 토막내 버려

    사람을 마네킹으로 착각한 황당 사건이 또 발생했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빈 집을 치우던 두 남자가 차고에서 발견한 시신을 토막내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레기통을 비우던 환경미화원들이 버려진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에 알리면서 사건은 뒤늦게 경찰에 신고됐다. 경찰에 따르면 시신은 33세 청년의 것으로 확인됐다. 사인은 자살로 추정됐다. 헤르난도 카운티 경찰은 “발견된 시신이 마치 미이라처럼 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시신을 발견한 청소업체 직원 2명은 세입자가 나간 빈 집을 치우다 차고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시신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두 사람은 시신을 마케팅으로 착각했다. 두 사람은 “세입자가 장난으로 차고에 할로윈 인형을 버리고 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시신을 쓰레기로 착각한 두 사람은 시신을 토막내 쓰레기통에 던졌다. 플로리다에서 시신을 마네킹으로 착각한 사건은 올 들어 두 번째다. 지난 4월 플로리다 피터즈버그에서도 아파트관리인이 96세 노인의 시신을 마네킹으로 착각하고 쓰레기로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관리인은 만우절 장난인 줄 알고 시신을 버렸다. 사진=자료사진 손영식 해외 통신원 voniss@naver.com
  • [특파원 칼럼] 현해탄 너머의 ‘먹고사니즘’/김민희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현해탄 너머의 ‘먹고사니즘’/김민희 도쿄 특파원

    지난 수요일. 일본의 관청이 밀집한 가스미가세키를 걷고 있었다. 네모 반듯한 건물 사이로 ‘탈원전 텐트’라는 간판을 단 천막 하나가 빼꼼히 보였다. ‘센다이 원전을 가동하지 말라’고 휘갈겨 쓴 붓글씨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날은 마침 원자력규제위원회가 가고시마현에 있는 규슈전력 센다이원전의 안전대책이 새로운 규제 기준에 적합하다는 보고서 초안을 낸 날이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처음으로 원전이 재가동될 수 있는 첫 걸음을 뗀 것이었다. 텐트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무슨 말을 할까. 호기심이 생겨 다가갔다. 원전 재가동뿐 아니라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무기수출 3원칙 폐기 등 아베 총리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정책을 다 추진하고 있다고 그는 일갈했다. 아베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지지율의 배경에는 ‘아베노믹스’가 있다고 했다. 경제가 살아나서 자신들의 살림살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모두들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만 살린다면 뭘 해도 좋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아베노믹스는 일부 돈 있는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는 정책이니 ‘낙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그의 말이 이어지는 30분 남짓 그 텐트를 방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무력감을 느낄 법도 했다. 왕년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나서 ‘탈원전’을 외쳐도, 총리 관저 앞에 1만명이 모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반대해도 아베 총리는 견고하다. 아베 총리의 뒤에는 말 없는 다수가 버티고 있는 탓이다.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기시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국과 일본의 ‘먹고사니즘’은 닮은꼴을 하고 있었다. IMF위기를 기화로 빠르게 퍼진 한국의 양극화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블랙홀처럼 먹어 삼킨 ‘먹고사니즘’을 탄생시켰다. 가뜩이나 교육, 육아처럼 국가가 할 일을 개인이나 가족이 대신 하는 것에 익숙한 한국의 문화에서 ‘먹고사니즘’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이라는 야만적인 룰을 더욱 깊숙이 체화시켰다. 공공선이나 인권 같은 모든 사회적 담론은 점점 빈약해지고, 중요한 잣대는 ‘나에게 손해가 되는지’가 돼 버렸다. 가혹한 노동환경에 시름하는 노동자도 사회적 안전망 밖에서 연명하는 사람들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들이다. 만약 그런 이들이 나의 안녕에 손해를 끼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먹고사니즘’의 신봉자들을 무조건 비난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그들의 부박함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든 한국 사회의 정치적 빈곤함이다. 1년 남짓 생활하면서 일본이 부러웠던 것은, 아직 한국처럼 각자도생·약육강식의 논리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20년간 계속된 디플레이션하에서 많이 무너졌다지만 ‘다함께 살자’는 일본의 공동체 의식은 아직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도쿄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공사 현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였다면 마네킹으로 대체했을 안전 요원이 일본에는 대여섯명이나 있다. 일본은 적은 봉급의 비정규직일지라도 가능한 일자리를 나누고 또 나눈다. 비용 절감이 사람보다 우선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랬던 일본도 이제는 변해가는 것일까. 조금 씁쓸해졌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퇴근길의 직장인들은 바쁜 걸음으로 텐트를 지나치고 있었다.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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