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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사학사/데이비드 와트킨 지음(화제의 책)

    ◎고딕건축의 기원과 원리 자세히 다뤄 건축에 구현된 가치와 의미를 중심으로 세계의 건축역사를 고찰.케임브리지대학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지은이는 특히 독일 미술사학의 중요성과 영국의 독자적인 아마추어 건축사학의 전통을 높이 평가한다.미술사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하나의 아카데믹한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얻었다.18세기와 19세기 초 독일에서의 건축사는 주로 고딕연구를 중심으로 전개됐다.영국과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개신교신자인 헤겔이 로마 가톨릭 교리의 본질 혹은 정신이 고딕건축 안에 영원히 비장되어 있다고 본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젊은 날의 괴테 역시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 경의를 표하는 찬가 ‘독일의 건축예술에 대하여­에르비니 아 슈타인바흐의 성령에 바침’을 발표했다.괴테는 고딕을 ‘자연’과 공명하는 유기적인 건축양식으로 중요시했다.독일의 미술사가 빌헬름 보링거는 “고딕의 조형의지는 내면적으로 로마네스크 예술·메로빙거조 예술·민족대이동시대의 예술,다시 말해 북방 및 중앙유럽예술의 전과정을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은 고딕건축의 기원과 원리에 관한 다양한 시론들을 소개한다.영국의 지질학자인 제임스 홀 경은 고딕건축이 작은 가지로 된 오두막으로부터 차츰 발전해왔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또 가톨릭 사제인 존 밀너는 고딕이 사라센족 혹은 무어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이블린과 렌 이래의 견해를 부정했다.영국 프랑스 독일에서의 건축사학은 고딕에 대한 골동품 애호가들의 연구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우동선 옮김 8천700원.
  • 대동호 선장 공소기각 반발/일 우익단체 재판부 항의

    【도쿄 연합】 일본 나가사키(장기),히로시마(광도)시 등의 5개 우익단체는 18일 대동호 선장 김순기씨(35)씨에 대한 공소를 기각한 시마네(도근)현 마쓰에(송강)지방재판소 하마다지부에 항의문을 전달했다고 교도(공동)통신이 전했다. 이들 우익단체는 항의문에서 ‘한·일 어업협정이 일본 영해법에 우선하기 때문에 일본에 단속 및 재판관할권이 없다’는 이번 재판부 판결은 “일본의 영해설정권을 전면 부정한 것으로 도저히 받아 들일수 없다”고 비판했다.
  • 마쓰에법원 대동호선장 공소기각 판결문 요지

    일본 시마네(도근)현 마쓰에(송강) 지방재판소 하마다(빈전)지부의 대동호 선장 공소 기각 판결문 요지. “이번 사건의 해역은 96년 영해법개정으로 일본의 영해가 돼 원칙적으로 일본의 단속권과 재판관할권이 미치도록 됐다. 그러나 헌법 98조는 일본이 체결한 조약과 국제법규의 준수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들 조약과 국제법규는 성립 시점을 불문하고 항상 법률에 우선하는 효력을 갖는다.(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해 일본의 단속,재판관할권이 미치는가의 여부는 (한일)어업협정의 해석에 따른다. 한일어업협정은 연안으로부터 12해리까지를 배타적 어업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으로 지정하고 있다.한쪽의 국가가 (어업협정상의 배타적 어업관할권) 수역의 외측까지를 영해로 삼음으로써 조약의 효력을 무의미하게 한다면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한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따라서 이번 사건의 해역은 한일어업협정에 규정된 배타적 어업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의 외측에 있기 때문에 피고가 한국 어선으로 어업을 했다는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일본에 단속 및 재판관할권이 없다.
  • 일 법원,직선기선 불인정/“한·일 어업협정이 신영해법에 우선”

    ◎한국선박 나포는 불법판결… 대동호선장 공소기각 일본 시마네(도근)현 마쓰에(송강)지방재판소 하마다(빈전)지부는 15일 일본영해를 침범했다는 이유로 나포된 제909 대동호 선장 김순기씨(35)에 대한 공소를 기각,일본정부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직선기선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렸다.〈관련기사 3면〉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한·일 어업협정은 연안으로부터 12해리를 배타적 어업관할권이 미치는 수역으로 지정하고 있어 그 외측의 ‘신영해’내에서 조업을 해도 일본에 단속권은 없다”고 공소기각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한·일 어업협정은 올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본의 새영해법에 우선하기 때문에 일본에 재판관할권은 없다고 판시,일본이 한·일 협정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설정한 새로운 영해선을 적용,한국선박을 나포한 것은 불법이라는 한국측 주장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일본법원이 김선장에 대한 공소를 기각함에 따라 ‘직선기선 설정은 국제적인 규칙’이라고 주장해온 일본정부는 어려운 입장에 봉착하게 됐으며 특히 난항을거듭하고 있는 한·일 양국의 새로운 어업협정 교섭에도 적잖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마쓰에 지방검찰은 “이번 판결은 한·일 어업협정 등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받아들일수 없다”며 이날 즉각 항소했다.
  • 대동호 선장 김순기씨/일 검찰,징역6월 구형/벌금 12만엔 함께

    【도쿄 연합】 지난 6월 일본 시마네현 하마다시 앞바다에서 조업중 일본 해상보안청에 나포돼 외국인 어업규제에 관한 법률위반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한국어선 제909 대동호(68t) 선장 김순기(35)씨가 1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6월과 벌금 1백20만엔을 구형받았다. 선고공판은 오는 15일 있을 예정이다.
  • 일,좌초 러 유조선 기름피해 심각

    ◎이시가와·후쿠이현 해안 덮쳐 어민들 절망/강풍에 속수무책… 23년만에 최악 유출사고 일본 서부 해안에 검은 기름이 덮치고 있다.동해에 면한 일본 이시가와,후쿠이현은 지난 2일 새벽 2시51분 러시아 프리스코 트래픽사 소속의 중유운반 탱커 나호드카호(1만3천157t)가 동강나면서 새나온 기름과 잘려진 선수가 1주일만에 해안가를 덮치면서 지역 어민들이 절망에 휩싸이고 있다. 사고지점은 시마네현 오키섬 북방 100㎞ 지점이었다.사고 당시에는 겨울철 동해로 흘러들어가는 쓰시마난류의 영향으로 기름이 북상할 것으로 기대됐다.하지만 강한 서풍의 영향으로 새나온 기름이 동진을 거듭,이들 현 연안을 덮치게 된 것이다.또 선수 부분도 동쪽으로 표류,7일에는 후쿠이현 앞바다 암초에 얹히게 됐다.선수에는 2천800㎘의 중유가 담겨 있는데 7일 해상보안청에 의해 새로 중유가 흘러 나오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피해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는 지난 74년 세토나이카이에서 발생한 기름오염 사고 이래 최대의 해상오염사고로 기록되고 있다.전복,소라,돌김,새우,게 등 고급 해산물을 한창 걷어올릴 철을 맞아 끈적끈적하고 검은 기름덩어리들이 덮쳐오자 어민들은 『악몽이 현실로 나타났다』,『올해 일은 글렀다』면서 발을 구르고 있다. 피해가 커진 것은 지난 1주일 동안 전혀 손을 쓸 수 없었기 때문.겨울철 동해에 면한 일본 서부지역 해안은 바람이 세고 파도가 거세기 때문에 사고 선박을 처리하기도 어려웠다.선수 인양을 한차례 시도했지만 로프가 끊어지고 말았다.파도가 높아 오일펜스 설치도 무용지물.오일중화제는 다량을 준비하고 살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이제는 반경 200㎞의 해역에 기름이 번져 있어 처리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 해상보안청 등은 8일부터 중화제 살포와 기름흡입기 등으로 제거에 나서고 어민들은 양동이 등으로 기름덩어리를 떠내고 있지만 밀려드는 기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나호드카호는 기름유출 사고에 대비해 2억달러의 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하지만 피해액을 보상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 연세대 한글물결(동아리탐방)

    ◎캠퍼스 한문·외래어 추방 「언어혁명」의 주역/룸메이트→방짝 칵테일→섞음술 등/일상용어 순우리말 보급 20년 신세대 사이에 순 우리말과 순 한글이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연세대학교 동아리 「한글물결」은 순우리말 보급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다. 한글물결은 지난 76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3개 학교가 모인 「국어운동학생회」를 모태로 탄생한 동아리. 이들은 먼저 동아리에서 사용하는 용어부터 순 우리말로 바꾸기 시작,동아리의 회장을 「으뜸빛」이라고 부른다. 으뜸빛 권대일군(20·경제학과2)은 『「빛」이라는 단어는 「어떤 부서의 장」을 일컫는 고어』라고 말한다. 기존의 동아리들이 사용하던 학술부·홍보부·편집부·회계 등의 용어를 배움빗·알림빗·엮음빗·살림빗으로 바꾸어 쓰고 있다.「빗」이라는 단어는 「옛날 관청의 한 부서」를 일컫는 말이었다는 것이 권군의 설명이다. 이들은 무분별한 외국어사용에도 반기를 들고 나섰다.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룸메이트라는 말을 「방짝」으로 바꿨다.뜰잔치(가든파티),헹굼비누(린스),매무새인형(마네킹),깡동치마(미니스커트),섞음술(칵테일) 등도 매주 연세대 민주광장 자유게시판을 통해 학생에게 전파한 용어다. 한글물결은 순 한글이름을 보급하기 위해 「한글이름큰잔치」를 매년 한글날 갖는다. 올해 한글날의 수상작은 늘다옴(끝까지 다하다)과 미리마지(은하수를 맞이하다) 등이다.지금까지 수상작으로 해울(아침해가 뜰 때 풀잎에 맺힌 맑은 물방울),슬아(슬기롭고 아름답게),하랑(하늘과 함께),찬울(가득한 울타리) 등이 있다. 일반 공모부문에서는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인 「가리사니」를 신문의 사설 대신 사용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밖에 외국어일색인 화장품이름에 순 한글을 사용하자는 운동도 펼쳐 미르에타(용을 타고 내려오는 자태),세레라미(세모 네모 동그라미),소네꿈(손에 꿈을 담아드려요) 등을 창작하기도 했다.〈강충식 기자〉
  • 정보가 숨쉬는 광고 「인포머셜」/첨단 아이디어로 네티즌 유혹

    ◎애니메이션 아이콘으로 처음부터 “눈길”/LG반도체 신데렐라·칼 루이스 등 특사 등장/대우 「만화로 보는 세계경영」… 자연스런 PR/검색자 급증… 광고매체 영향력 커 기업들 몰릴듯 「정보인가 광고인가」. 올들어 국내 인터넷상에서 처음 등장한 상업광고를 놓고 네티즌들의 논쟁이 뜨겁다.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http://www.seo­ul.co.kr)에 올라 있는 LG반도체의 제품광고와 대우그룹의 이미지광고는 국내 인터넷 광고의 효시로서 광고업계 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그 성격을 놓고 의견이 분분히다. 위 광고들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관심이 높은 정보(information)와 광고(Commerci­al)을 합성한 「인포머셜」에 속한다. 대우그룹의 이미지광고와 LG반도체의 제품광고는 기존 매체에서는 불가능했던 특수기법을 활용,애니메이션 아리콘과 재미있는 내용 전개로 눈길을 끈다. 광고대행사 선연이 제작한 대우구릅 이미지광고는 종래의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방식에서 탈피한 것. 소비자도 참여한 가운데 「세계경영」이라는 대우의 기본전략을 알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만화로 보는 세계경영」,「세계경영 퍼즐게임」 등은 소비자들의 흥미를 갖고 광고를 검색하는 동안 대우라는 기업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대표적인 코너. 또 매일 새로운 자료를 올려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검색을 유도하고 있으며 대우시네마네트워크에서 제공하는 「이달의 DCN특선」 코너도 마련,생생한 비디오로 명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광고는 인터넷의 멀티미디어 환경과 쌍방커뮤니케이션을 최대한 활용한 것. LG반도체 광고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한 아이콘으로 첫머리부터 눈길을 모은다. 이 광고는 아이콘만 보고도 제품의 우수성을 알아 차릴수 있도록 꾸며졌다. 신분상승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신데렐라,88 서울올림픽으로 더욱 유명해진 세계 최고 스프린터 칼 루잇,불가능이 없는 만능의 맥가이버를 등장시켜 자사 제품의 우월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온라인 광고는 앞으로 기업들이 갈수록 선호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사용자가 많이찾는 사이트가광고매체로서 막가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학생 광고동아리 연합호 회원인 김영인씨(한국외국어대 2년)는 『움직이는 광고아이콘이 재미있어 자주 검색하다가 반도체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그냥 지나차기 쉬안 신문광고에 달리 인터넷광고는 아이콘의 상징성에 이끌려 검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회원들의 관심이 무한한 아이디어를 수용할 수 있는 인터넷광고 쪽으로 기울고 있다』면서 『신문이나 잡지 등 인쇄매체를 대상으로 한 기존의 광고는 예비광고인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LG애드 전략기획팀 손승현 차장은 『인터넷광고는 24시간 지속되는 연속성이 가장 큰 특징이어서 생명력을 지니려면 항상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꾸며야 한다』며 『앞으로 광고효과가 어느 매체보다 클것』이라고 내다봤다. 뉴스넷에 광고가 게재된 이후 인터넷 광고가 진가를 발휘하자 다른 전자신문들도 속속 상어광고를 싣고 있다. 선연 뉴미디어팀 김지욱 대리(32)는 『인터넷광고 효과는 국내뿐 아니라전세계로 파급되기 때문에 광고대행사들이 앞다퉈 이에 대비한 조직 신설을 서두르고 있다』면서 『앞으로 광고대행사의 세력판도는 인터넷광고시장 점유율에 좌우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동북아 자치단체협」 첫 출범/경주서 “상호교류 협력” 선언

    ◎한·중·일·러 4국 29개 시도 참여 【경주=한찬규 기자】 우리나라와 중국·일본·러시아 등 4개국 29개 자치단체로 구성된 「동북아지역 자치단체연합」(NEAR)이 공식 국제기구로 출범했다. 자치단체로 구성된 국제기구가 창설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경북도를 비롯 중국 하남성·러시아 이르쿠츠크주·일본 시마네현 등 4개국 지방정부 최고 책임자가 참석한 가운데 12일 경북 경주시 힐튼호텔에서 열린 「96동북아 자치단체회의」에서 지방정부대표들은 『상호간의 교류·협력을 통한 공동발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 동북아 자치단체로 구성되는 국제기구를 창설한다』는 요지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또 이 회의의 명칭을 동북아시아 지역 자치단체연합으로 정해 2년마다 개최하며 회원 자치단체 대표로 구성되는 최고 의결기관인 총회의 의장은 총회를 개최하는 자치단체장이 차기 총회전까지 맡기로 결정,초대의장으로 이의근 경북지사를 선출했다.
  • 1888년 일 육군성 제작 「전국지도」 독도 일본령표기서 제외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명치시대 중앙정부가 제작한 일본전국지도인 「집제20만분1도」에 독도가 일본령으로 전혀 표기돼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14일 밝혀졌다. 일본 명치17년(1884년)이후 전국 측량과 지도제작에 있어 명실상부한 국가 최고기관이 된 육군성 참모본부 측량국이 1888년 제작한 이 지도의 마쓰에(현재의 시마네현)와 사이고(서향·현 오키제도)지역 지도에는 독도가 포함돼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대 백충현 교수는 『집제 20만분1도에 독도가 빠져 있음을 확인한 것은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면서 『당시 일본이 독도를 자국영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전국지도 제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백교수는 이어 『일본이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이미 독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조선영토라는 점을 인정했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막부정부에 이어 명치정부도 독도를 전혀 자국영토로 인식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집제20만분1도」는 명치유신후 반란군과 여러차례 전쟁을 치른 명치정부가 정확한 지도제작의 필요성을 절감,육군성 측량국을 발족시키면서 수년간에 걸쳐 지방별로 차례차례 제작한 지도로서 당시로서는 일본 전국지도의 기본이 됐던 중요지도다.
  • 독도와 대마도/한일관계사연구회 지음(화제의 책)

    ◎한일 영토인식의 편차 재검토 한·일 양국간 영토인식의 편차를 역사적으로 재검토한 책.「세종실록지리지」「숙종실록」등 한국측 사료와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태정관 지령」등 일본측 사료를 두루 검토,당시 우산도·송도 등으로 불리던 독도가 조선과 일본 양국 모두에 의해 조선 영토로 인정되었음을 밝힌다.또 일본은 독도의 군사적 가치에 눈독을 들여 「외국영해수산조합법」(1902년)을 제정,울릉도를 강제점령했으며 1905년에는 「시마네현고시」를 공포해 독도를 일본영토에 편입시켰다는 주장도 펼친다. 대마도 문제와 관련,이 책은 대마도는 고려 중엽부터 진봉관계에 의해 우리나라에 종속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조선측에서 대마도인들에게 관직을 제수했던 수직인제도도 양국관계를 규명하는 생생한 사례로 제시된다.이러한 종속관계는 대마도의 외교권이 메이지 정부에 의해 박탈될 때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이 지은이들의 견해.이밖에 조선시대에는 대마고토의식,대마번병의식,대마속주의식 등이 팽배했을 정도로 「대마도는 조선땅」이라는 인식이 확고했다는 점도 밝힌다.이런 맥락에서 볼 때 대마도가 조선땅이라는 주장은 일본이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강변하는 데 비하면 역사적으로 훨씬 연원이 깊고 입증자료도 풍부하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지성의 샘,1만원.
  • 3년이상 정주외국인 일 사민당 입당 허용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사민당은 25일 「정주외국인에 대한 입당 규정」을 마련해 이날부터 18세이상으로 일본에 3년이상 정주하는 외국인의 입당을 허용키로 했다. 신당 사키가케가 도쿄와 시마네현 등 일부 지역에서 정주 외국인의 입당을 허용하고 있으나 당규로서 전국에 걸쳐 외국인 입당을 인정하기는 사회당이 처음이다.
  • 통계자료로 본 오늘의 북한/평통,분야별 현황 공개

    ◎식량­생산량 수요의 절반 수준/군사력­정규·예비군 남한의 1.6배/당간부 횡포·생활고 풍자 은어 성행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18일 최근 북한의 분야별 현황 등을 「북한의 오늘」이라는 자료를 통해 공개했다.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식량◁ 북한의 식량수요는 연간 6백50만∼6백70만t에 이르지만,생산량은 90년 4백82만t,91년 4백43만t,92년 4백27만t,93년 3백88만t 등으로 감소해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보일 수밖에 없다. 식량배급 기준은 직위에 따라 다르다.특수군인(경보병)과 중노동자는 8백g,노동당과 정부기관의 간부,군인은 7백g,일반노동자와 사무원,대학생은 6백g,고등중학생 5백g,인민학생 4백g,부양가족등 무직자 3백g,유치원 이하 3백∼1백g등이다.당과 정부 간부가 받는 식량은 1백% 흰쌀이다.또 특수군인의 경우 백미와 잡곡이 7대3이며,나머지는 쌀과 잡곡이 2대8이다. 매월 15일 각 직장에서 배급하는 카드로 「전쟁비축미」로 2일분을 뺀 13일분의 식량을 받도록 되어있다.그러나 실제로는 13일분에서도 다시 「절약미」 명목으로 10%가공제되며,평양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그나마도 원활치 않은 실정이다. ▷군사력◁ 북한의 정규군은 1백4만명,예비전력은 6백61만7천명으로 우리의 정규군과 예비군에 비해 각각 1.6배씩 많다.물론 국민총생산(17.8대 1)등 기본적인 경제기반은 우리가 월등히 앞선다.지난해 군사비는 우리가 1백30억달러로 북한의 56억달러보다 많다. ▷화학무기◁ 북한은 60년대부터 독자적으로 신경·수포·질식·혈액작용제등 화학무기를 개발해왔다.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 생산시설은 신의주·만포 등 8개소,연구시설은 흥남등에 3개소,저장시설은 사리원등에 6개소가 있다.화학무기 발사수단은 박격포·야포·방사포등과 미사일·항공기·지뢰 등 다양하게 개발돼 있다.특히 AN―2,IL―28기와 전폭기를 사용한 대규모 살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은어◁ 당정간부의 횡포를 풍자하고,생활고를 반영하는 은어들이 계속 성행하고 있다. ▲고도=키가 작은 김정일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을 비꼬는 말. ▲김인백 동무=김일성은 인간 백정이다는 말을 줄인것. ▲다마네기 정책=당국의 정책이 너무 구태의연하여 아무리 벗겨도 내용이 같다는 말. ▲콩사탕=공산당이란 발음을 변형시킨 말.콩사탕 때문에 입맛 버렸다는 말은 공산당 때문에 일생을 잡쳤다는 뜻. ▲무 3형제=무 한가지로 만든 무국 무김치 무찐지 등 3가지 반찬. ▲떼레비 깍쟁이=TV가 있는 집 아이들이 보여주지 않을 때 하는 말. ▲3백%=처녀가 시집가면 직장,가정,남편과의 관계에서 모두 1백%를 해야 한다는 뜻. ▲구들공사=자식을 많이 낳아야 배급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많이 해야 한다는데서 생긴 말. ▲공동변소=외국인이나 해외여행자를 상대로 매춘행위를 하는 여성.〈이도운 기자〉
  • 「독도」 분리협상 불용/일 시네마현 지사

    【도쿄 연합】 독도를 행정구역상 형식적으로나마 관장하고 있는 일시마네(도근)현 스미타 노부요시(징전신의) 지사는 6일 독도 영유권 문제와 어업협상을 분리해 협상키로 앞서 한­일 정상이 합의한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 1백58조원의 1백58조 배로도 안될…(박갑천 칼럼)

    일본에는 「땅 끌어당기기」신화가 있다.일본의 땅뺏기버릇은 그런 신화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한다.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신화다. 옛날 지금의 시마네켄(도근현)동 쪽 이즈모(출운)라는 나라에 야쓰카미즈오미쓰누노미코토(팔속수신진야명)라는 신이 있었다.나라를 둘러보고 조붓하다 생각하면서 늘릴 마음을 먹는다.바다저쪽은 신라땅.거기 길게 뻗쳐있는 곶에 밧줄을 걸어 잡아당긴 곳이 지금의 히노미사키(일어기),때려박은 말뚝이 산베산(삼병산),밧줄이 오야시로마치(대사정) 서쪽 해안으로 되었다.같은 방법으로 이웃나라(고지,좌기,농도)땅도 끌어당긴다.그렇게 면내어 넓힌 땅이 지금의 시마네반도라 한다. 신화에는 그 겨레의 마음이 어린다.섬나라여서 남의 땅에 개염부리는 걸까.그 괴상한 이름의 신은 신라땅부터 당겨갔다.신화의 발상지가 지금의 시마네켄이라는 점이 또 흥미롭다.오늘날의 땅뺏기라 할수있는 독도영유권 주장도 이른바 「시마네켄고시」라는 것으로써 하고있지 않은가.시마네켄은 예나 이제나 땅뺏기 전초기지로구나 싶어진다.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조선총독부 통계연보」등 일본쪽 자료를 바탕으로해서 만든 논문이 나왔다.「식민지배기간 일본정부 수탈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그에 의할때 인력수탈·물자수탈·자금수탈…등을 합치면 요새 우리돈으로 1백58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다.하지만 결코 돈으로 갚아낼수 없는 수탈도 있다.그것은 35년 강점기간동안 입힌 마음의 생채기.온겨레가 기죽어 오금을 못편 세월이었다.그들의 땅뺏기에 맞서 싸우다 죽은 사람은 얼마인가.그 고결한 죽음을 돈으로 장사웃덮기할 수 있겠는가.멀쩡한 젊은이들 끌어다가 총알받이 만들었을때 흘린 유족의 눈물을 돈으로 갈음해낼수 있겠는가.이른바 「정신대」로 끌려가 한살이를 망친 여성의 한을 돈으로 탕감해 낸다고 할수도 없다.1백58조원의 1백58조배로도 보상해낼수 없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돈이 앞서가면 모든 길이 열린다』(셰익스피어 「윈저궁의 바람둥이 아낙네들」)고 했다.『황금이 말문을 열때 혀는 힘을 잃는다』는 말과 맥이 같다.그러나 돈으로만 따지려들때 『입에 이길수는 있을지 몰라도 마음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장자」잡편:천하).할퀴여찢긴 마음이 어찌 돈으로 아물겠는가. 그걸 아물리는 길은 참마음의 뉘우침뿐이다.하건만 저들은 어떤가.지금 오히려 독도에 밧줄걸어 영차 영차하려 하지않는가.
  • 일 지도도 독도 한국땅 표기/조선총독부 발행… 죽도로 기록

    ◎서지학자 이종학씨 「일 교과서부도」 공개 일제 치하 조선총독부가 간행한 조선지도에도 독도가 한국땅으로 명시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지학자 이종학씨(70)는 24일 1914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일본지리교과서부도」속의 지도에 독도가 죽도라는 이름으로 조선령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씨가 이날 공개한 「일본지리교과서부도」의 「중부조선」편에는 일본해로 표기된 북위 38도선 아래 동해상에 죽도가 표기되어있다.일본은 1905년 일방적으로 독도를 일본령에 편입시키면서 독도를 죽도로 명명했기 때문에 이는 독도를 한국땅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또한 1905년 일본에서 발행된 관보와 신문들을 공개하고 『일본은 1905년 2월22일자 시마네현보를 통해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했다고 고시했지만 그이후 일본에서 발행된 1백여개의 관보와 신문들은 모두 독도를 리안코르도로 표기,한국땅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해 2월22일 이후 발행된 산음신문과 대판조일신문등 신문들이 독도를 리안코르도로 썼으며 5월29일과 30일 발행된 관보는 러·일전쟁중 일본 연합함대사령관이 보내온 승전소식을 싣고 있는데 여기서도 독도를 이처럼 표기했다는 것이다.리안코르도는 1849년 프랑스함대가 독도를 지나가면서 붙인 이름으로 당시 제3국에선 모두 독도를 이처럼 표기했다.
  • 20세기초 일 어부도“독도는 조선땅”인식/일 시마네현지 기록발표

    ◎정부에 “렵어위해 임대” 청원/“일 측이 10리 더 가깝다” 거짓 측정도 드러나 【도쿄=강석진 특파원】 20세기초 독도를 일본땅에 편입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일본인조차 당시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발견됐다. 일본명 다케시마인 독도를 관할한다고 하는 일본 시마네현 교육회(교육위원회)가 1923년 펴낸 시마네현지는 『1903년 호키출신의 나카이 요사부로(중정양삼랑)가 이 섬(리앙쿠르바위·프랑스의 리앙쿠르호가 독도를 발견,붙인 이름)의 어렵을 기해 일장기를 세웠다.다음해 각 방면으로부터 경쟁어렵이 있었다.여러가지 폐해가 있었다.이에 나카이는 이 섬을 조선영토라고 생각해 상경해서 농상무성에 말해 대하(조선으로부터) 빌려서 이용하도록 허용함)청원을 냈다』고 말해 당시까지 나카이처럼 독도를 이용하려던 일본인조차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으로 편입한 후 관찬자료에서 일본인조차 독도를 조선령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은 매우 드문 케이스다. 시마네현지는 이어 『일본 해군수로부가 리앙쿠르바위(독도)의 소속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한·일 양국으로부터의 거리를 측정했다』고 적어 당시 일본정부는 독도를 자국령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지에 따르면 일본 해군수로부가 측정한 결과 일본쪽이 10리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 당시 일본이 독도를 자국령을 편입하기 위해 엉터리로 측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지는 6백90쪽 제5장 독도편 첫머리에 일본령 오키섬에서 85리,조선령 울릉도에서 50리라고 기술해놓고 있다. 현지는 그뒤 나카이가 다시 독도의 영토편입과 대하를 내무·외무·농상무성 3성에 청원했으며 이에 일본정부는 독도를 1905년 2월22일 자국령에 편입시켰다고 기술,독도의 영토편입조치가 엉터리측정에 근거해 일방적 조치로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지에는 일본정부가 독도의 영토편입에 대해 조선정부와 협의한 흔적은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 분토지언… 역시 왜구의 핏줄인가(박갑천 칼럼)

    『도자이,도자이!』하고 외치는 일본말이 있다.가령 술자리에서도 누군가 일어나서 『조용조용,자,지방방송들 끄고 날 좀보소』하는 뜻으로 쓴다.가부키(가무기:연극)와 스모(상복:씨름)등에서 나온 말이다.웅성웅성 잡담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진행자가 외쳤던 소리.「도자이」는 동서라는 뜻이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쳐있는 구경꾼 여러분』하는 말을 줄인 셈이다. 지구촌 구석구석의 일들이 금방 전파를 타는 세상이기는 하다.그래도 지구촌에 대고 계속 『도자이,도자이』 외치고 싶어지는 심정이다.이쪽 입술에 눈길들이 모아지면 『동네방네 사람들아,독도를 자기네 영토라 억지쓰는 일본사람들의 야살스런 분토지언 들어보소』하고 이을생각.분토지언이란 말은「춘추좌씨전」(양공14)에 나온다.「썩은 흙같은 말」이니 이치에 닿을리가 없다.터무니없는 개다리질이다.저퀴들어 마땅할 넋나간 소리다.「맹자」(등문공상)에 나오는바 왜가리같이 흉악한 소리 내뱉는 남쪽오랑캐의 말(남만격설)이 곧 분토지언.사람이 제정신으로 할수 없는 괴 불알 앓는 소리다. 엉뚱한 일을 가지고 떠세하며 말썽일으키는 분대질이 꼭 과붓집 수코양이 같지않은가.이는 그 조상들이 바다를 갈고다니는 왜구(위구)로 이름을 떨쳤다는 반증일 뿐이다. 이런 그들의 생트집은 우리로 하여금 한번 더 대마도를 생각하게 한다.「패관잡기」뿐아니라 「지봉유설」(병정부)에도 대마도는 신라땅이었는데 언제부터 왜놈들이 차지하게 되었는지 알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마도를 거점으로한 왜구가 하도 극성을 부리니까 조선조 세종원년 정벌에 나선다.그러고서 이듬해 정월 경상도관할로 편입한다고 도주에게 통고한다.안방에서 활개치듯한 이른바 시마네켄(도근현)고시라는 것에 비기자면 얼마나 어연번듯한 「영토확인」인가.옛날의 내땅을 내것으로 한다는 뜻이었으리라.그런일 말고도 일본이 「대마」를 「쓰시마」라 읽는 것부터가 「조선식」.「두섬」의 일본식 발음이기 때문이다.대마도는 위아래 두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1909년 간도협약으로 간도를 청에 넘겨준 것이 우리 외교권을 뺏은 일제였다(양태진 「한국변경사연구」).그 일만 생각해도 한이 서리는 판에 『심심한데 좌수볼기나 치자』는 식으로 남의 가랑이 그러안으면서 제 가랑이라니.『개구리새끼는 개구리』라는 그들의 속담이 있다.『왜구의 핏줄은 왜구』와 통하는구나 싶어진다.
  • 인니 사부섬 콜레라 창궐/1,081명 감염… 38명 숨져

    【자카르타 AFP 연합】 인도네시아 동부의 사부섬에서 콜레라가 창궐,38명이 숨졌다고 안타라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누사텡가라주 에디 라마네파 보건국장의 말을 인용,콜레라에 감염된 환자들이 현재 1천81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 「독도망언」은 식민주의 오만(특별기고)

    최근 일본 정부의 수상과 외상은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망발을 감행했다.그리고 독도가 자신의 영토임은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사실임을 강변하고 있다.이와 같은 강변이 전혀 근거가 없는 망언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를 다시금 확인해보고,그 국제법적 문제점도 아울러 살펴보아야 한다. ○역사적 연고 확실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는 확실한 것이다.원래 독도는 울릉도에 딸린 섬이다.울릉도는 이미 6세기초 신라시대때부터 한반도의 역사에 편입되기 시작했다.그러나 독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15세기에 편찬된 「고려사」의 지리지의 울진현에 관한 설명에서 시작된다.이 기록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고문헌 내지 고지도에서 독도는 울릉도와 확연히 구별되어 우산도 삼봉도 자산도 가지도 등으로 기록되어 왔다.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지명이 변동되는 사실은 항용 있어온 일이며,독도의 명칭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예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울릉도 주민들은 바위섬인 이곳을 「돌섬」 또는 돌(석)의 방언에 따라서 「독섬」으로 불러왔다. 여기에서 독도라는 오늘날의 명칭이 유래됐다.1900년 구한국 정부에서 지방관제를 개칭하여 이 곳에 군을 설치하고,그 관할 구역으로 울릉도 전도와 「석도」를 명시했다.이 석도는 「돌섬」의 한자 표기였다.그리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불리는 독도는 「독섬」이라는 방언 명칭에서 각기 그 음과 뜻을 취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이와 같은 과정을 살펴보면 독도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연고권은 확고부동한 것이며,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편 일본의 시마네현은 1905년 2월에 고시 40호를 통해서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로 명명하고 자신의 관할구역으로 비밀스럽게 편입시켰다.이 편입 조처는 일본 내각이 1905년 1월에 단행한 독도에 대한 영토 편입 결정을 따른 것이었다.대한제국 정부는 이와 같은 사실을 1906년 4월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이에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그해 5월 독도가 대한제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했다.그렇지만 당시는 이미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에 접수된 이후이므로 독도문제에 관한 일본과의 외교적 교섭은 불가능했다.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한제국 정부는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독도에 대한 고유한 권리를 천명하는 데에 그쳤다. ○이르조선영토 표기 1905년 이전에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일본도 인정해 왔다.일본의 대표적 지리학자였던 하야시(임자평)가 1785년에 제작했던 「삼국통람도설」에는 독도를 조선의 소유로 표시했다.일본이 개항한 이후 명치 연간에 육군성에서 제작한 군사지도에서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로 분명히 표기되어 있다.한편 1877년 일본 명치 정부의 최고 각료의견기관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었다.여기에서 제시된 몇몇 사례 이외에도 1905년 이전 일본에서 독도가 조선의 소유임을 인정했던 기록들을 더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이처럼 일본의 조야에서는 독도에 대한 조선의 역사적 연고권을 인정해왔다. 한편 일본 정부는 독도가 자신의 영토라는 사실이 『국제법적으로도 명확한 사실』이라고 강변하고 있다.그들이 이와 같은 억지 주장을 내세우는 근거는 이른바 국제법상의 영토 획득 방식인 무주지에 대한 선점의 법리에 있다.그러나 독도는 결코 무주지가 아니라 엄연히 조선왕조의 영토 중 일부였고,종전에는 일본 자신도 이를 인정해 왔었다.울릉도 및 그 부속도서에 대한 신라시대 이래의 역사적 연고권은 분명한 사실이다.백보 양보한다 하더라도 대한제국 정부에서는 이미 1900년에 독도를 자신의 영토에 분명히 편입시켰다.그러므로 독도에 대한 시마네현의 고시는 무주지에 대한 선점이 될 수 없으며,제국주의적 영토 약탈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일본이 1905년 이곳의 영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한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었다.즉 일본은 제국주의적 팽창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러일전쟁을 일으켰다.일본은 러시아와의 해전을 앞두고 동해 일원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비로소 제기하게 되었다.그러므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설정은 그들의 제국주의 침략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반성없는 일 태도 일본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독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 정책에 대한 청산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그리고 이는 지난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는 방자한 자세임에 틀림없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망발에 대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 그릇됨을 바로잡도록 해야 한다.독도는 엄연히 우리의 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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