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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손성진의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 여성 항일투쟁의 선봉… 김원봉만큼 조국 사랑했던 그녀

    “사랑이여/ 그대를 위해서라면/ 내 목숨마저 바치리/ 그러나 사랑이여/ 조국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내 그대마저 바치리”(헝가리 시인 페퇴피 산도르의 시)의열단장 김원봉은 고국이 해방되자 이역에서 숨진 아내 박차정의 유골을 가슴에 안고 귀국했다. 김원봉은 피 묻은 박차정의 속적삼을 친정 식구들에게 전하고 비통한 심정으로 고향인 경남 밀양 부북면 제대리 뒷산에 유골을 묻었다. 13년이란 짧은 세월이었지만 중국 땅에서 함께 투쟁한 동지이자 반려자였다. ●중국서 만난 김원봉과 13년간 항일독립운동 제대리에서 내려 농가를 지나 야산으로 들어가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니 띄엄띄엄 무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동묘지였다는데 나무와 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100m쯤 올라가니 박차정의 묘소가 나타났다. 마른 솔잎이 봉분을 뒤덮는 바람에 풀이 자라지 않아 메말라 있었다. 피 흘리며 싸우다 숨진 여성 독립운동가의 묘소로는 너무 초라했다. ‘약산 김원봉 장군의 처, 박차정 여사의 묘’란 비문만이 묘주(墓主)가 누구인지 알려준다. 묘소에서 멀리 너른 들녘이 보이고 밀양강이 굽이쳐 흐른다. 밀양강 바로 북쪽, 해천 옆에 남편 김원봉의 생가가 있었다. 그 위쪽 부북면 신작로에는 해방 후 귀국해 고향을 방문한 김원봉을 환영하는 인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찼었다.‘빨갱이’로 낙인찍힌 김원봉의 배우자란 딱지는 박차정의 공훈을 인정받는 데도 오랫동안 장애물이 됐다. 1995년에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박차정의 생가는 부산 동래구 칠산동 동래고등학교 담벼락 옆 동네 안쪽에 있다. 지금은 옛날 모습대로 깔끔하게 복원돼 드문드문한 관람객의 방문을 받고 있었다. 충절의 고향 밀양에서 태어난 약산(若山) 김원봉(1898~1958)은 어릴 때부터 반일 감정이 남다른 소년이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방황하던 김원봉은 대한광복회의 암살 활동에 충격을 받고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약산은 난징 진링대학에 입학한 이듬해 터진 3·1운동의 비폭력에 실망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암살·파괴활동이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 열혈 운동가들은 민중 속에 잠재한 폭력의 위력을 끌어내는 뇌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1919년 11월 9일 중국 지린성 반 아무개 농부의 집에 우국 청년 10명이 모였다. 밤샘 토론 끝에 김원봉을 의백(義伯·단장)으로 하는 의열단이 결성됐다. 조선 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친일파 거두 등을 ‘칠가살’(七可殺)로 규정, 처단의 목표로 삼았다. 단원들은 거사에 서로 가겠다고 싸울 정도로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첫 거사 모의는 그만 악명 높은 조선인 경찰 김태석에게 발각돼 윤세주 등 6명이 붙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최수봉의 밀양경찰서장 폭탄 투척, 김익상의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 암살 기도, 나석주의 동양척식회사 습격 등 잇단 의거를 감행했다. 헝가리인 마자알의 고성능 폭탄 제조법 전수와 의열단 정신을 명문화한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으로 의열단의 기세는 더욱 높아져 단원이 100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의열단원 김지섭은 화물선 석탄창고 속에서 열이틀을 지낸 끝에 일본에 도착해 황궁에 폭탄을 던졌다. 의열단원들의 잇단 항거는 일본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원봉에게는 김구 선생보다 많은 100만원(현재 가치 약 320억원)이란 막대한 현상금이 붙었다. 김원봉은 잠자리를 자주 옮겨 다니고 같이 사진을 찍고 나서는 원판을 회수하는 치밀함을 보이며 일경을 따돌렸다. 신출귀몰이었다. ●신출귀몰 약산, 김구 선생보다 현상금 더 붙어 5~6년 동안 수백건의 투쟁을 했지만 자금이 바닥나자 의열단의 활동도 주춤해졌다. 장제스가 교장으로 있던 황푸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약산은 군관학교에 다니던 조선 학생들을 가입시키면서 의열단 재건에 나섰다. 김원봉이 박차정을 만난 것은 이즈음이다. “천궁에서 내다보는 한 조각의 반월이/ 고요히 대지 위에 비칠 때(…)/ 옛 기억이 마음의 향로에서 흘러넘쳐서/ 비애의 눈물이 떨어집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1910~1944)이 18세 때 모교(동래 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교지에 발표한 시 ‘개구리 소리’다. 꿈 많은 문학소녀였던 박차정은 항일 정신으로 무장된 집안의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용한은 일제의 침략에 비분강개해 유서를 남기고 자결했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항일 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의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선출된 박차정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이어 1930년 1월에 서울 여학생시위사건을 배후에서 지도했다. 바로 ‘근우회 사건’이다. 두 번의 구금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해 몸은 거의 반신불수가 되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박차정을 중국으로 부른 사람은 의열단에 몸담고 있던 둘째 오빠 박문호였다. 박차정은 곧바로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합류했다. 1930년 3~4월쯤이었다.●독립투쟁·문학 공통관심… 사랑으로 발전 박차정은 등단을 권유받을 만큼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김원봉도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 등의 러시아 문학을 좋아했다. 독립투쟁과 문학이라는 공통의 목표와 관심사는 사랑으로 승화됐다. 두 사람은 1931년 3월 결혼했다. 김원봉은 난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장제스의 지원으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개설해 투사들을 양성했다. 이육사는 이 학교 1기 졸업생이었다. 박차정은 교관으로 힘을 보탰다. 김원봉은 일본의 침략이 격화되자 혁명세력의 통합을 위해 민족혁명당을 창당했다. 박차정은 그 산하에 난징조선부녀회를 만들어 당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을 규합해 항일투쟁을 독려했다. 약산은 중일전쟁 발발 후인 1938년 10월 10일 항일 무장부대인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약산은 의용대장이 됐고 박차정은 부녀복무단장을 맡았다. 의용대는 주로 일본군을 상대로 한 선전활동을 했고 총을 들고 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1939년 2월 박차정은 장시성 쿤륜관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크게 다치고 말았다. 그 후 조선의용대의 일부는 화베이지방으로 북상해 팔로군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 김원봉은 화베이로 가지 않고 임시정부에 합류해 광복군 부사령관, 임정 군무부장에 취임했다. 군무부장 취임 직후인 1944년 5월 27일 부상의 후유증이 깊어져 아내 박차정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김원봉은 광복을 맞아 근 30년 만에 귀국했으나 더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좌익 인사 김원봉에게 반대파의 백색테러와 암살 위협이 지속됐다. 미군정에 체포됐을 때 고문을 하고 수모를 준 경찰이 친일 앞잡이 노덕술이었다. 김원봉은 풀려난 뒤 너무나 분해서 사흘 동안 통곡했다고 한다. 김원봉이 월북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북한에서는 검열상과 노동상이란 고위직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는 1958년 숙청당하고 말았다. 남북 양쪽에서 버림받은 것이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좌우를 넘나들며 독립을 염원한 민족주의자였다.●약산 생가터엔 의열기념관… 서훈은 거부 당해 밀양 내이동 김원봉의 생가터에는 의열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그 앞에 흐르는 해천변에는 항일테마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준설 학예연구사는 “김원봉뿐만 아니라 박제혁, 최수봉, 강우규 의사 등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라면서 “의열단에 최초로 참여한 사람은 알려진 대로 13명이 아니라 10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약산 집안의 9남2녀 중 4형제는 6·25 때 보도연맹사건으로 총살당했다. 막내 김학봉(86)씨가 생존해 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입원 중이다. 김원봉에 대한 유족과 밀양시민들의 서훈 신청은 번번이 거부됐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통하는 길·공존하는 삶… 사람 품은 도시, 근대 문화를 낳다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통하는 길·공존하는 삶… 사람 품은 도시, 근대 문화를 낳다

    한결 선선해진 서울 광화문의 한밤, 하수도 정비 공사 소리가 늘 같은 고요를 비집는다. 노숙자가 모로 누운 화강석 벤치, 한 칸 건너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인부들이 어둠 속에 잡담을 뿌린다. 어제는 가로등을 정비하더니, 맞은편에는 물청소차가 천천히 지난다. 폭염도 폭우도 갔나 보구나. 내일이 밝으면 또 몇 군데 크고 작은 시위가 있을 것이고, 이 가을에도 광화문 모서리에서 몇 구절 시구가 태어날 테지. 이 익숙한 도시의 밤 풍경은 150년 전 프랑스 제2제정 시대(1852~1870년) 파리에서 시작되었다.나폴레옹 3세의 독재 치하에서 오늘날 파리의 밑그림이 그려졌고, 당시 파리 시장(정확하게는 센(Seine) 구의 수장)을 맡았던 외젠 오스만의 과감한 개조 사업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편이다. 그 소개에는 언제나 시위대가 바리케이드를 못 치게 하려고 대로를 뚫은 독재의 조력자, 빈민가를 순식간에 철거하고 집세를 급등시킨 자본주의 첨병이라는 평가가 덧붙는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오스만이 잘못했다고 배웠어요. 노동자들을 쫓아내고 철거민을 만들고 부자들 좋도록 재개발을 했으니까. 그런데 요즘 돌이켜 보니까 당시에 오스만이라는 사람이 그나마 생각을 많이 했어요. 물론 오스만이 처음은 아니고, 나폴레옹 때부터 그런 구상을 했다고 해요. 파리를 유럽의 수도로 만들자. 나폴레옹 3세도 좋은 도시가 되려면 어떻게 돼야 하는가를 나름대로 연구했어요. 독재를 하면서 시위 진압하기 편하게 하려고 시작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거로 끝나지 않고 결국에는 좋은 도시가 되게 하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러나 여전히 찜찜하다. 독재자가 독재적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 좋은 도시일 수 있는가? 좋은 도시라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도시라면, 우선 통해야 돼.” 음, 스승의 가르침은 이렇게 간단한 것인가? 발자크와 위고의 소설에 등장하는 파리의 골목이라고 하면, 종로의 피맛골 같은 대로의 뒷골목을 상상하곤 하지만, 사실 1850년까지 파리라는 도시의 거의 모든 길은 평균 폭이 1~2m에 지나지 않았다. 4층 넘는 건물이 빽빽한 인구 백만의 도시에, 곧은 길이라고는 없이 구불구불하고 막다른 데다가 가장 넓은 도로라고 해 보았자 폭이 5m도 되지 않았으니 파리에는 오로지 골목밖에 없었다. 마차나 수레가 드나들지 못했다. 당시 한 보고서에 따르면 5㎡짜리 옥탑방 한 칸에 23명의 어른과 어린이가 바글바글 살면서 그 생활 오물과 폐수를 그냥 길 앞에 내다버렸으니, 하루 종일 해도 바람도 들지 않는 좁은 골목 환경이란, 사람들이 하수구 속에 사는 꼴이었다. 콜레라가 창궐한 것은 그 하수가 그대로 상수에 섞여들고 집들이 너무 다닥다닥했기 때문이다. 도시 생활을 견디지 못한 성난 민중들이 집앞 바닥 포장돌을 파내서 쌓으면 바로 기마대를 막을 수 있었으니 그것이 혁명기에 고안되었다는 바리케이드의 정체였다.파리를 개조해야 한다는 제안은 18세기부터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어떤 전제 군주도 손댈 생각 없었던 도심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 황제였다. 콩코르드 광장부터 루브르를 지나는 리볼리 가를 닦기 시작했지만 마치지 못했다. 나폴레옹의 실각으로 유년기를 유럽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보냈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은 자유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영국 런던에 머물면서 그 도시 경관에 크게 감동했다. 그가 1848년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초대 대통령에 당선된 데에는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의 향수에 더해 서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에 힘입은 바 컸다. 파리는 프랑스의 심장이고 위대한 도시라고 열을 올리며 불로뉴 숲을 런던 하이드 파크를 능가하는 공공 공원으로 조성하고 삼촌이 못 마친 리볼리 가의 연장 공사에 착수했지만 사업이 더뎠다. 임기 내에 공약을 이행하지 못할 형편이 되자 재선이 불투명해졌고 불안감에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종신을 선언한 나폴레옹 3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임 파리 시장을 찾는 것이었고, 그때 배짱과 열정에 충만한 오스만을 만났다. 1853년 취임 첫 주인 오스만에게 파리 지도를 펼쳐 보이며 “통하게, 통합되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 보라고 명했다.“오스만이 처음에 한 일이 동서하고 남북으로 대로를 십자(그랑 크로아제)로 내요. 이렇게 하면 도시가 고르게 발전되죠. 그다음에 동서남북 네 길 끝에 역을 연결하고 도시를 순환하는 대로를 내요. 모든 게 연결되도록 만든 거지.” 6년 만에 1단계 사업이 완료되자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환영했다.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에게 어째서 같은 건축가와 계속 작업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던 사업이 갑자기 순조로워졌는지 오스만에게 물은 적이 있는데, 자신만만하게 ‘시장이 다른 사람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대로는 정말 독재자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서 뚫은 것일까? 나폴레옹3세 치하 파리에서 진압할 만한 봉기는 일어난 적이 없었다(파리 코뮌은 정작 실각 후다). 오스만은 훗날 보수적 의회에서 예산을 따낼 명분으로 내세웠을 뿐이라고 변명한 바 있다. 실로 오스만은 치밀했다. 폭 20m가 넘는 대로는 시위꾼 노동자들이 우글거리는 불량 주택만 없앤 것이 아니었다. 교통 정체와 오물과 매연도 사라졌다. 거기에 인도가 생겼고, 빛과 바람과 가로수가 도로를 채웠다. 오스만의 파리 개조에서 더 중요한 것은 대로의 지하, 보이지 않는 데 있었다. “첫 번째, 위생이다. 그래서 파리의 하수도 계획이 선 거예요. 굉장히 잘한 거죠.”파리 인구 전체에 배분될 분량을 계산해 상수원을 끌어왔다. 새로 판 거대한 하수도는 가스등과 다음 세기에 지하철이 지날 관이기도 했다. 시에서 받은 제복을 입은 인부들이 매일같이 하수에 모인 빗물로 도로를 청소하고 수만 그루의 가로수를 다듬고 가스등을 켜고 끄는 도시 풍경이 처음 탄생했다. “두 번째, 도시에 빈 데가 많아야 된다. 사람들이 숨 쉴 수 있는 공원도 숲도 만들었죠. 관통하고 호흡하게 만든 거예요. 오페라 극장이며 에펠탑도 서는 건 그다음이죠.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의 파리가 탄생했습니다.” 오스만은 공원 울타리, 벤치, 신문 가판대, 공중 화장실, 광고판 같은 도시의 공공시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계하고 도시 전체에 고루 일관되게 적용했다. 그것은 상하수도처럼 시민 모두가 누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것은 가로변에 철거한 다음 새로 지은 건축물들이었다. 같은 길에 면한 건물들은 서로 주인이 달라도 모두 하나로 이어져 보이도록 짓게 했다. 실내에서야 아무리 개성적으로 호화판으로 살든, 대로변 외관에 건축주의 부를 뽐내는 조각품이나 맥락을 끊는 디자인은 엄격히 금했다. 외벽 마감은 인근에 흔한 석재로 통일하고, 같은 형태의 테라스 난간을 설치하게 했다. 모든 건물은 최소한 10년에 한 번씩 일제히 보수하고 청소해야 했다. 사소한 데까지 꼼꼼하고 일관된 규제 속에 지어져 ‘오스만 건축’이라고 불리게 된 이 건물들은 하나하나 튀지는 않지만 방문객을 파리의 장대한 원근법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그것은, 관광용 유물이 아니라 삶의 풍경이다. 대로변 건물의 2~3층은 가족이 많은 부유층의 아파트고, 5층이나 6층에는 독신자나 노동자, 학생들이 살았다. 도시 전체가 상가이자 동시에 주택가고, 빈부가 한 지붕 밑에 공존했다.파리 도심에는 고층 아파트가 없지만 인구 밀도는 1㎢당 2만명이 넘어 서울보다 훨씬 높다. 근대의 수도, 파리 시민들은 추리닝 차림으로 자가용을 끌고 외곽의 대형 쇼핑몰을 가는 대신에 차려입고 1층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은 가게들을 산책하며 쇼핑하고, 길이 끝나는 데서 저녁의 오페라를 즐긴다. 위정자의 영광을 향한 길이 아니었다. 오스만은 파리의 오래된 역사적 건축들이 돋보이는 각도로 새 길을 냈고, 도시의 구마다 고르게 크고 작은 녹지 공원과 광장을 조성했다. 이 대대적 사업을 순식간에 시행하기 위해서 권력을 등에 없고 법을 개정하고, 자본가의 도움을 빌어 투자 회사를 설립했으며 수만 명의 노동자를 동원했다. “일을 끊임없이 벌이고 세금 많이 걷으니까, 결국 오스만은 그래서 실각하죠. 자동차 시대를 예견했는지는 모르지만, 모던한 도시 계획인 거고, 유럽의 근대 도시가 여기서 출발하는 겁니다. 미국 시카고, 워싱턴, 바르셀로나, 빈…, 그런 대도시가 다 파리를 따르거든요. 그 기틀이 뭔지 자세히 봐야 할 거예요. 여러 사람을 괴롭혔지만 결과적으로 도시를 문화적으로 굉장히 성숙하게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불도저 김현옥 시장을 오스만하고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할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들은 한 세기 전에 오스만이 해 온 것을 비판도 하지만 새로 연구하고 근사하게 이어받아서 라데팡스를 만들었어요. 그러면 정도전이 만들어 놓은 서울이 확장될 때 우리는 무엇을 놓친 건가….” 르코르뷔지에를 위시한 모더니스트들이 비난을 퍼부은 오스만의 파리 개조가 왜 모던한 도시의 출발인가. 데이비드 하비는 모더니즘의 본질을 획일적 전통에 대한 ‘창조적 단절’이라고 말한다. 황현산 선생이 평생 연구했듯, 누구나 뻔히 공감할 완결된 서정성을 과감하게 뚫는 아이러니가 프랑스 상징주의의 모던한 시 정신이고, 그 정신이 제2제정기의 파리에서 태동했다. 1960년대 쿠데타 이후 반세기, 서울이 낳은 시와 도로를, 서울이 남긴 역사와 어둠을 지운 야경을 떠올려 본다. 격자 대로를 가도 가도, 600년 전 북악과 광화문에 맞먹을 비스타를 마주칠 일이라고는 없는 강남과 여의도에서 터전을 닦은 중산층은 이제 그들이 세운 도시를 깨끗이 철거하고 역사를 지우는 데 바쁘다. 폭염이 지나자 여기저기서 재개발과 폭등과 재생이 터져 겨루는 서울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기획 수류산방 조성룡 건축가·도시건축 대표 심세중 수류산방 편집장
  •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아비는 너희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아비는 너희에게 짐이 되기 싫었다

    ‘80대 노모, 정신질환 앓던 40대 딸을 끈으로 묶은 채 한강 투신’, ‘70대 노부부 차 안에서 손 꼭 잡은 채 자살···암 투병 아내와 함께 떠나’.피의자가 사망한 탓에 통상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되는 ‘간병자살’은 제대로 된 기록조차 남지 않는다. 변사사건처리부 한 장에 간단명료하게 자살 등으로 분류되고 마는 죽음이다. 법적으로 유무죄를 따질 이유도 방법도 없는 까닭에 한 인간이 죽음을 결심한 이유 따윈 기록이 아닌 기억 속으로 묻힌다. 그나마 2006년 이후 현재까지 10여년간 언론이 기록한 간병자살 60건을 찾았다. 총 사망자 수는 111명. 이 중 17명은 동반자살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사실상 살인 피해자다. 89명은 함께 목숨을 끊었다. 5명은 환자를 남겨둔 채 돌보는 이들만 세상을 등진 경우다. 동반자살에 실패한 이들도 16명이다. 간병인이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봤던 경우도 적지 않다. 간병자살은 주로 ‘부부 간병’(31건, 51.7%)에서 발생했다. 부부 평균 연령은 69.1세였다. 대부분 ‘노노(老老) 간병’ 과정에서 죽음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이어 ‘자식을 돌보던 부모’(15건, 25%), ‘부모를 돌보던 자식’ (8건, 13.3%), ‘형제·자매’ (4건, 6.7%) 순이었다.“너희 엄마가 처음 병이 났을 땐 삶을 마감하는 게 좀 너무 이르다 싶어 몇 달 정도 지켜보다 결국 오늘까지 왔다. 너무 아파하고 나도 아파 같이 죽기로 했다.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구나. 미안하다.” 2013년 11월 23일 전남 목포시에서 80대 노부부가 남긴 유서다. 디스크 수술로 거동이 어려운 아내를 돌보던 남편은 본인마저 뇌졸중에 걸려 하반신이 마비되자, 식탁 위에 유서 한 장과 영정사진을 올려놓고 아내와 동반자살했다. 이처럼 간병 중 간병인도 병에 걸려 몸이 아픈 사례도 16건(26.7%)에 달했다. 특히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부모의 절절한 마음이 유서에 담긴 경우도 많았다. 간병하던 부모가 자식과 삶을 정리한 경우 지적·발달 장애 등 선천적 장애를 지닌 자녀를 간호한 경우가 대다수다. 부모 평균 나이는 48.2세, 자식 평균 나이는 17.2세였다. 2015년 7월 6일. 경기 의왕시 한 아파트 18층에서 30대 여성이 뇌병변장애를 앓던 7세 아들을 끌어안고 투신했다. 여성은 아들 치료를 위해 매일 대형병원을 돌고 또 돌았다. 차도가 없자 좌절했고, 자신이 떠나면 혼자 중증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 아들을 걱정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2014년 3월 13일엔 30대 부부가 5살짜리 자폐증 아들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부부 역시 발달장애 아이를 헌신적으로 아이를 돌봤지만, 나아지는 게 없자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간병의 고통으로 인한 우울증이 자살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간병인이 경제적 어려움에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21건(35%)에 이른다. 2013년 4월 24일 대구에서 쌍둥이 두 아들(7)과 연탄불을 피워 사망한 김모(43)는 사망 직전까지 뇌졸중인 아내를 돌봤다. 하지만 실직인 상태로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아내의 병원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그는 아내를 병원에 홀로 남겨둔 채 두 아들과 생을 마감했다. 간병인이 우울증에 걸린 경우도 12건(20%)에 달했다. 2014년 3월 2일 경기 동두천시 상패동 한 아파트에서 주부 윤모(37)씨가 성장장애를 앓던 아들(4)과 함께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해 숨졌다. 윤씨는 더디게 성장하는 아들을 돌보며 주변에 우울감을 호소했고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15㎡ 남짓 원룸에서 재혼한 남편과 아들을 낳았고, 일정한 수입이 없어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주머니에선 “미안하다”고 적힌 밀린 세금 고지서가 나왔다. 오랜 기간 홀로 간병을 담당해야 하는 현실에 좌절하는 경우도 많았다. 간병인이 홀로 환자를 돌본 경우는 41건(68.3%)에 이르렀고, 평균 간병 기간은 7년 8개월이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치매 수발 6년, 아내 목을 졸랐습니다

    [간병살인 154人의 고백] 치매 수발 6년, 아내 목을 졸랐습니다

    154명의 살인범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예외 없이 가족을 죽인 패륜 범죄자입니다. 치매에 걸려 자신을 잃어가는 아내, 급성뇌경색에 걸린 남편, 선천성 발달장애가 있는 자식까지 대상도 이유도 조금씩 다릅니다. 한때는 주변에서 희생적인 부모이거나 효자, 효부로 불린 이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끝모를 간병의 터널 속에서 가족은 무너졌습니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다른 가족 구성원의 삶도 나락으로 끌어내려 졌습니다. 밀려오는 중압감을 더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벼랑 끝에서 끈을 놓아 버린 사람들의 이야깁니다. 지금도 묵묵히 고통을 감내하는 대부분의 간병 가족을 우리 사회가 홀로 내버려 두지 말자는 뜻에서 8회에 걸쳐 아픈 기록을 시작하려 합니다.213명. 2006년부터 올해까지 ‘간병살인’에 희생(동반 자살자 포함)된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114명은 가족의 손에 생을 마감했다.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동반 자살을 선택한 이들은 89명이다. 환자를 남기고 자신만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도 10명이었다. 한 해에 16.4명, 한 달에 1.4명이 간병살인으로 목숨을 잃었다. 서울신문은 한국 사회 간병살인의 현주소를 짚어보고자 법원의 판결문 방문 열람 등을 통해 지난 10여년간 간병살인 관련 판결문을 모두 확보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부터 진행 중인 자살사망자 전수조사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이미 분석한 자살사망자 심리부검 289명 사례를 확인했다. 언론에 나온 기존 보도도 참고했다. 간병살인 가해자들도 직접 만났다. 직접 만나지 못한 경우 주변 친인척과 지인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간헐적으로 간병살인 관련 언론 보도를 분석하거나 판결문을 모아 보도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대규모로 분석한 적은 처음이다. ‘노노(老老)간병’의 그림자는 짙었다. 이를 증명하듯 간병살인(173건)도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했다. 2006~2010년은 10건 안팎이었지만 2011년 12건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10건 이상을 유지했다. 2013년과 2015년에는 최대 21건까지 증가했으며 올해는 7건을 기록 중이다. 물론 이는 집계 가능한 최소치다. 전문가들은 드러나지 않은 간병살인 건수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200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간병 스트레스’에 따른 범죄를 분류하고 있다. 2007~2014년 8년간 간병 스트레스에 따른 살인사건(미수 포함)은 371건에 이른다. 연평균 46건이며 매주 한 건꼴로 간병살인이 발생한 셈이다. 문제는 일본은 우리의 가까운 미래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고령사회(인구의 14%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에 진입했고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가 된다. 그러나 간병살인에 대한 통계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고민의 흔적이 담긴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평범하고 소심한 간병 가족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 군사안보지원사령부 1일 창설…기무사 시대 27년만에 마감

    군사안보지원사령부 1일 창설…기무사 시대 27년만에 마감

    국군기무사령부를 대체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1일 창설식을 하고 공식 출범한다. 기무사는 1991년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국군기무사령부로 간판을 바꿔 단지 27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경기 과천의 기무사 청사에서 이날 오전 열릴 안보지원사 창설식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개최된다. 지난 6일부터 부대 창설준비단장을 해온 남영신(학군 23기) 전 특전사령관(중장)이 초대 사령관을 맡는다. 남 중장은 창설식에서 송 장관으로부터 새로 만든 부대기를 전달받고, 사령관으로서 임무에 들어간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를 근본적으로 해편(解編)해 과거와 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그간 안보지원사 창설 작업이 진행돼왔다. 안보지원사 소속 인원은 2900여명이다. 이는 4200여명이던 기무사 인원을 30% 이상 감축하라는 국방부 기무사 개혁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안보지원사 창설준비단은 현역 간부 군인 위주로 750여명의 기무사 요원을 육·해·공군 원 소속부대로 돌려보냈다. 지난달 24일까지 원대복귀 조치된 인원 중에는 계엄령 문건 작성과 세월호 민간인 사찰, 댓글공작 등 이른바 ‘3대 불법행위’에 연루된 240여명도 포함됐다. 국방부는 “앞으로 안보지원사는 군 정보부대 본연의 임무인 보안·방첩 업무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매머드 등 되살리기 본격화…러, 멸종동물 복제연구소 만든다

    매머드 등 되살리기 본격화…러, 멸종동물 복제연구소 만든다

    매머드 등 아주 오래 전 멸종한 동물을 복원하기 위해 러시아가 4억 루블(약 65억 원)을 투자해 세계 정상급 복제연구소를 세우는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시베리아타임스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오는 9월 11일부터 13일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제4차 동방경제포럼에서 러시아 북동연방대(NEFU)가 이 같은 계획을 발표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태통령이 2015년 창설한 동방경제포럼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정치, 경제 협력을 통한 극동지역 개발을 목적으로 마련된 행사다. 매년 블라디보스톡에서 개최된다. 복제연구소는 ‘복제 연구의 메카’ 야쿠츠크에 세워질 예정이며 이미 지방 정부로부터 지원 약속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고(古)유전과학연구소(paleo-genetic scientific centre)로 명명된 이 시설은 현재 황우석 박사가 이끄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과도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 유전학자들의 연구를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야쿠츠크의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에는 오래 전 멸종한 여러 동물이 다수 묻혀 있다. 러시아에서 DNA 추출이 가능한 연조직을 보존한 채 발견된 홍적세와 충적세 동물 표본의 80%가 이 지역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홍적세는 250만 년 전 시작돼 1만 년 전쯤 빙하기 끝 무렵에 마감됐고 충적세는 정확히 1만1700년 전 시작돼 오늘날까지 이어져 현세로도 불린다. 새롭게 지어질 복제연구소에서는 매머드 외에도 털 코뿔소, 동굴 사자, 그리고 레나 말 등 오래 전 멸종한 동물을 되살리기 위한 연구가 진행된다. 이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인간의 질병과 싸우는 방법도 연구된다. 연구소 설립 계획을 주도한 레나 그리고리에바 박사는 “우리는 홍적세 동물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북동부의 정착민들에 관한 연구도 진행한다. 북부 인종은 고유한 유전 구조를 갖고 있다”면서 “이런 연구는 희귀 유전질환과 이를 진단하고 예방하는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깨물어보니 ‘꿀맛’… 20년 투혼의 ‘하늘 위 첫 金’

    깨물어보니 ‘꿀맛’… 20년 투혼의 ‘하늘 위 첫 金’

    이다겸·백진희·장우영 ‘환상 호흡’ 마지막 라운드서 2명 임무 실패해 위기 5R 점수 합산 후 간발의 차로 日 꺾어 AG 첫 채택서 금 1·은 2·동 2 성과한국 패러글라이딩이 첫 출전한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빛 비행’을 했다. 이다겸(28), 백진희(39), 장우영(37)이 호흡을 맞춘 여자 대표팀은 29일 인도네시아 푼착 구눙마스에서 끝난 크로스컨트리 여자 단체전에서 5라운드 비행 총점 4924점을 얻어 4851점에 그친 일본을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패러글라이딩 크로스컨트리는 목표지점 몇 곳을 정확하고 가장 빨리 도는 순으로 순위를 가리는데 팀당 5차례 비행한다. 각팀 세 명의 선수가 출전해 2개의 높은 점수만을 합산한다. 금메달 수확 과정은 극적이었다. 한국은 전날까지 4라운드 합계 4339점으로 일본을 320점 차로 따돌리고 1위를 달렸다. 정밀착륙 전문인 이다겸이 904점을 얻어내 일본을 2위로 밀어내고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29일 마지막 5라운드에서 크로스컨트리 전문인 백진희와 장우영이 미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일찍 낙하해 고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이다겸만 마지막까지 남아 461점을 받았다. 이에 견줘 일본은 백진희와 장우영보다 오래 비행했다. 대표팀은 포기했다. 그런데 비행을 모두 마친 뒤 5라운드 점수 계산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한국이 585점을 획득하고, 일본은 832점으로 한국과의 격차를 247점으로 줄이는 데 그쳤다. 일본이 5라운드를 잘 치렀지만, 4라운드까지 한국에 뒤진 320점을 극복하지 못한 것. 결국 73점이라는 간발의 차이로 한국은 일본을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금메달을 단념했던 한국 선수들은 우승 소식에 포옹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최종인 대표팀 감독은 “일본의 막판 추격이 워낙 거세 역전을 걱정했지만 우리가 집중력을 발휘해 정상에 올랐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메달을 기대한 남자대표팀은 아쉽게 4위로 밀려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전날까지 3위를 달린 김진오(51), 임문섭(35), 이철수(46), 이창민(34), 이성민(32)의 대표팀은 5차 비행합계 1만 163점을 얻어 일본(1만 1391점), 네팔(1만 1364점), 인도네시아(1만 873점)에 이어 4위에 머물렀다. 남자 단체전은 팀당 5명의 선수가 출전, 높은 점수 4개를 합해 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로써 한국 패러글라이딩은 정식종목이 된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의 풍성한 메달 기록을 남기며 대회를 마감했다. 이날 크로스컨트리에 앞서 정밀착륙 남녀 개인·단체전에서 한국은 은메달과 동메달 2개씩을 수확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속전속결’ 나프타 협상… 美, 캐나다 압박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28일(현지시간) 캐나다와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상에 대해 합의가 안 되면 캐나다가 빠진 멕시코와의 양자 합의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므누신 장관은 이날 미 경제매체인 CNBC방송에 출연해 “캐나다와의 ‘무역 딜’이 곧 이뤄질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미국은 멕시코와의 합의를 더 진전시킬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의 목표는 캐나다를 조속히 합류토록 하는 것”이라며 “이번 협상은 미국 기업들의 무역을 늘리는 일이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캐나다와의 협상을 시작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31일을 협상 마감 시한으로 정하고 캐나다를 압박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캐나다산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과 캐나다 간의 협상에서 최대 쟁점은 5년마다 재협상해 협정을 연장하지 않으면 자동폐기하는 ‘일몰조항’이다. 트럼프가 요구하고 있는 유제품 무역장벽 해제와 관련해서도 캐나다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 “모두가 승리하는 협상을 하겠다”면서도 “나프타 협상에서 낙농가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므누신 장관은 캐나다와의 협상을 마친 뒤에는 유럽연합(EU) 및 중국과의 협상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입장은 매우 명료하다. 우리는 중국 시장 접근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호혜적인 무역을 필요로 하고 있다”면서 “이런 이슈들은 주요 7개국(G7) 동맹들이 우리와 동의하는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상가 투자, 앵커 테넌트 주목해야” 多 갖춘 당진 시청 앞 ‘시네마타워’ 분양 예고

    “상가 투자, 앵커 테넌트 주목해야” 多 갖춘 당진 시청 앞 ‘시네마타워’ 분양 예고

    근래 상가 분양시장에서 뛰어난 집객력을 지닌 앵커 테넌트(Anchor Tenant)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앵커 테넌트’란 대중을 유인하는 인지도 높은 점포를 일컬으며 영화관을 비롯해 백화점, 대형 할인마트, 키즈테마파크, 대형서점 등이 해당된다. 상가 내 앵커 테넌트는 건물의 가치 상승과 더불어 임대 수익까지 견고하게 지킬 수 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설의 입주가 초기 상권 활성화와 확대를 좌우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앵커 테넌트가 상가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척도로도 여겨지면서 임대료와 분양가뿐만 아니라 후속 임차인의 질도 결정하는 역할을 하며 안정적인 고정 수요층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앵커 테넌트가 들어서는 신규 상업시설에 많은 시선이 향하는 가운데 충남 당진에서는 선호도 높은 앵커 테넌트 중 하나로 꼽히는 롯데시네마 8개관의 입점이 확정된 당진 유일의 독점적 상가 ‘시네마타워’가 오는 9월 7일 홍보관 오픈을 앞두고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수청동 1041, 1042 일원에 들어서는 시네마타워는 대덕수청지구 일반상업지역 최중심 상권에 위치한 가운데 대덕수청지구, 수청 1, 2지구 유일의 시네마 입점상가의 독점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 게다가 대규모 집객력을 갖춘 롯데시네마 외에 스타벅스의 입점도 예정돼 있어 365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 공실률을 낮춘 임대수익 창출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진 시네마타워는 지하 5층~지상 10층 규모의 근생시설과 문화 및 집회시설로 구성된다. 외관부터 규모에 이르기까지 당진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상업시설로 부상하면서 수청 1, 2지구의 개발에 따른 투자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신규 상가의 경우 향후 창출 가능한 권리금 수익까지 기대 가능해 입지 선정에 까다로운 잣대를 지닌 대형 프랜차이즈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당진시 최초로 전 층 중앙 에스컬레이터가 설계돼 상가 접근성을 극대화한 당진 시네마타워는 영화관 입점을 고려해 158대의 주차가 가능한 주차진입로 7m광폭설계의 자주식 주차 공간이 계획됐으며 복합몰 MD플랜을 적용, 하루 종일 머물며 즐기는 복합 쇼핑∙문화 콘텐츠를 완비했다. 또한 여성 쇼핑존 특화 MD 구성을 통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층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당진신도시 수청 1, 2지구 상권의 최중심지에서 만날 수 있는 당진 시네마타워는 수청지구 직접주거 중심상가로 사업지 옆 보행전용통로 및 중앙광장과 연결돼 유동 인구 흡수에 유리하며 광역 수요가 몰리는 새로운 소비 1번가의 중심으로써 상권 확대가 빠르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분양 관계자는 “중앙광장과 연결되는 당진 핵심상권에서 선보이는 당진 유일의 독점상가로써 올데이 쇼핑∙문화∙여가∙편의 테마의 트렌디한 공간이 될 것”이라며 “최근 당진시 상가 투자자의 대부분이 수도권 거주자인데다 CGV 주변 상가주택 매입도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당진 시네마타워의 분양 역시 지역민과 수도권 투자자들의 많은 관심 속에서 조기에 마감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9월 7일 오픈 예정인 당진 시네마타워의 분양관은 충청남도 당진시 시청2로에서 운영될 예정이다. 관련 정보 확인 및 문의는 홈페이지 또는 대표전화로 하면 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성신여자대학교, 논술우수자 첫 실시, 수능최저기준 유일 적용

    성신여자대학교, 논술우수자 첫 실시, 수능최저기준 유일 적용

    이번 수시모집에서 전체 선발인원 2219명 중 71%인 1586명을 선발한다. 학생부종합전형 608명, 교과우수자 257명, 논술우수자 311명, 그 외 특기자 및 실기전형으로 267명을 뽑는다. 정원 외 전형은 농어촌학생 68명, 특성화고교출신자 30명, 특성화고 등을 졸업한 재직자 전형 40명이 선발된다.올해는 학생부종합전형 내 특성화고교출신자전형을 학교생활우수자전형으로 통합했다. 또 고교 교육과정과의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예체능실적우수자 전형은 폐지됐다. 기존에 실기전형으로만 선발해 왔던 뷰티산업학과는 학생부종합전형인 학교생활우수자전형 모집단위에 추가됐다. 논술우수자전형은 이번 수시에서 처음 실시된다. 총 100분 동안의 계열별 논술고사를 실시한다. 인문계열은 고등학교 교육과정 중 국어와 사회교과에 근거한 통합교과형 논술로서 4~5개의 제시문을 읽고 2개 내외의 문항에 대하여 각 800~1000자 분량을 서술하게 된다. 자연계열은 고등학교 수학교과 교육과정에 근거한 수리논술로서 각 2~3개의 세부 문제로 구성된 4개 내외의 수학 문제를 출제할 예정이다. 논술우수자전형은 수시모집 전형 중 유일하게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적용된다. 국어, 수학(가·나), 영어, 탐구(1과목)의 4개 영역 중 상위 2개 영역의 합이 인문계 5등급 이내, 자연계 6등급 이내에 들어야 한다. 원서접수는 9월 11~14일. 제출서류 마감일은 9월 17일이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ipsi.sungshin.ac.kr) 참조. (02)920-2000.
  • “홀로코스트 희생자 이름을?” 암스테르담 빵집 이름 바꾼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이름을?” 암스테르담 빵집 이름 바꾼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빵집이 다락방에 숨어 살다 끝내 나치수용소에 수감돼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안네 프랑크의 이름을 따서 간판을 ‘안네 앤드 프랑크’로 달아 개업했다. 하지만 엄청난 비난이 쏟아져 결국 가게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고 영국 BBC가 27일(현지시간) 전했다. 로베르토로만 알려진 주인은 “내가 봐도 좋은 이름인 것 같다”면서 “내게도 영웅이라” 가게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트위터에서는 가차 없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치 홀로코스트의 희생자 이름을 그렇게 함부로 가게 이름으로 사용하게 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트위터리언 드러케 토스탄드는 “주인들의 이름이 안네와 프랑크이더라도 여전히 놀라운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빵집 근처에 있는 안네 프랑크 하우스(안네 프랑크가 숨어 지내던 다락방이 있던 건물)는 암스테르담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명소다. 2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를 점령한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어떻게 박해했는지를 기록한 곳이다. 로베르토는 결국 현지 언론들에 가게 이름을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상황을 좋게 보려 하고 있다. 난 누구를 해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이며 그녀는 1945년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티푸스에 감염돼 세상을 떴는데 얼마 되지 않아 영국군에 의해 해방됐다. 수천 구의 시신이 발견됐고 이들 중 상당수 유대인은 다른 나치 수용소에서 걸어서 이감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이해찬 ‘협치’ 시동… 첫 행보로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

    이해찬 ‘협치’ 시동… 첫 행보로 이승만·박정희 묘역 참배

    李 “평화·공존의 시대로 가는 길목” 野 4당 대표·원내대표 예방 강행군 첫 최고위…당정청 협력 강화 속도이해찬 신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처음으로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보수야당에 협치의 손을 건넸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박주민·박광온·설훈·김해영·남인순 최고위원과 함께 장대비를 맞으며 김대중·김영삼·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순으로 묘역을 찾았다. 이 대표는 참배 후 “그동안 분단 70년을 살아 왔는데 이제 분단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가는 길목에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두 분에게도 예를 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민주당 대표로서 처음으로 두 대통령 묘역을 찾은 바 있지만 재야 운동권 1세대에 강성으로 분류되고 대권 도전 계획이 없는 이 대표는 참배를 건너뛸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야당과 최고 수준의 협치를 약속한 만큼 전직 대통령 묘소를 두루 참배했다. 이와 함께 이 대표는 문희상 국회의장,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예방에 이어 야 4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모두 예방하는 강행군을 이어 갔다.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와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원팀’을 이뤘지만 10년 만에 여야 대표로 마주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이 대표는 “예전에 청와대에 계실 때 당·정·청 회의를 많이 했지 않으냐. 그런 마음으로 하시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그때는 당·정·청 회의지만 여야 간 대화를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이 대표는 한국당 외에도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지도부를 잇달아 찾아 민생경제 활성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입법에 관한 협조를 구했다. 이 대표는 이에 앞서 국회에서 주재한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경제연석회의 신속 가동, 당·정·청 협력 강화, 여야 5당 대표 연석회의, 민주정부 20년 집권 플랜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특히 이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당·정·청이 하나가 돼서 속도감 있게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 대표는 전날 이낙연 국무총리,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비공식 만찬을 한 자리에서 고위 당·정·청 정례화를 언급한 데 이어 이번 주 내로 고위 당·정·청 회의를 갖기로 했다. 이와 관련, 다음달 1일 당 소속 의원과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해 문 대통령과 함께 청와대에서 오찬을 한 뒤 당·정·청 전원협의회를 연다. 청와대 수석비서관만 참석했던 지난해와 달리 모든 부처 장관이 참석해 이해찬 지도부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청주 신도심에 우뚝… 청약 1순위로 인기리 마감

    청주 신도심에 우뚝… 청약 1순위로 인기리 마감

    HDC현대산업개발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일대에 공급하는 ‘청주 가경 아이파크 3단지’가 평균 5.3대1의 청약 경쟁률로 1순위 마감됐다고 밝혔다. 최고 경쟁률은 35.08대1이었다. 인기 비결은 청주시 도심권에 위치해 있는데다 도시개발사업으로 조성돼 미니 신도시급으로 개발되기 때문이다. 단지가 들어서는 가경동 서현2지구는 청주의 신도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주변에 도로가 잘 구축돼 있어 청주시 어디든 쉽게 이동이 용이하다. 청주 제2순환로를 통해 산업단지 출퇴근이 수월하며, 중부고속도로 서청주IC와 경부고속도로 청주IC를 통해 수도권 및 다른 권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경덕초, 경덕중, 서현중, 서원고, 충대사대부설중·고 등 우수한 학군도 인근에 밀집해 있다. 또 SK하이닉스와 LG화학, LS산전, 해태, 정식품 등이 입주해 있는 청주산업단지, 청주테크노폴리스가 차량으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지하 3층~지상 29층, 8개동, 전용면적 84~144㎡ 총 983가구로 구성된다. 전용면적별로는 84㎡A 397가구, 84㎡B 152가구, 84㎡C 86가구, 105㎡ 335가구, 144㎡ 13가구 등으로 이뤄진다. 견본주택은 흥덕구 가경동 243번지에 있다. 입주는 2021년 5월 예정이다.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표류하는 지방분권<1>] 靑, 돈줄 쥔 기재부 반대에 전전긍긍… 첫발도 못 떼는 재정분권

    [표류하는 지방분권<1>] 靑, 돈줄 쥔 기재부 반대에 전전긍긍… 첫발도 못 떼는 재정분권

    3개월 시간 압박… 밀실논의 부작용 더해 행안·기재부 파워게임 속 靑 수정안 후퇴 ‘동력상실’ 재정개혁특위 난맥상과 닮은꼴 일각선 “靑이 책임지기 싫어 떠넘기는 것” 정부가 재정분권 적용 시기와 규모를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부처 간 협력, 담당 공무원들의 의지, 청와대의 정책 조율 등 3대 요인의 부재가 원인으로 꼽힌다. 규제 혁신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이 지방분권 추진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26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지난해 대선 직후 문 대통령의 지방분권 공약을 논의하는 임무를 국무조정실이 맡았다. 하지만 반년 가까이 진척이 없자 지난해 11월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산하에 범정부 차원의 재정분권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당초 청와대가 주도해야 할 사안이었지만 재정분권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를 아우르기엔 역부족인 국무조정실과 TF에 논의를 맡긴 것 자체가 패착이었다. 기재부와 행안부의 시각차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올해의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지난 2월 재정분권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TF는 3개월밖에 안 되는 촉박한 마감 시한에 쫓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익명을 요구한 갈등관리 전문가는 “이해관계가 복잡한 갈등 사안을 다룰 때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접근해야 한다는 갈등관리의 기본원칙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TF 논의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에 따르면 기재부가 제기한 안건 중 ‘2월까지 결론 내야 하는데 그 문제까지 논의할 시간이 없다’며 거부당한 게 많았다.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지방세를 지방자치단체별로 어떻게 배분할지도 이렇다 할 논의 없이 행안부에 맡기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TF 권고안을 청와대에서 검토할 때 기재부가 ‘TF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반박하기 쉽지 않았다. 결국 TF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을 청와대가 다시 다루게 됐고, 그 과정에서 기재부가 제기한 의제가 많이 반영되면서 재정분권 자체가 후퇴하게 됐다”고 말했다. TF는 지방세와 지방교부세를 늘리고 국고보조사업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중 지방소비세 확대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부가가치세의 11%인 현행 지방소비세율을 20%로 올리면 6조 4000억여원, 30%로 올리면 7조 7000억여원의 지방 이전 세수가 생긴다. 하지만 지방소득세에 대해 TF와 행안부는 비례세화를 주장하는 반면 기재부는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지방소득세는 현재 과세표준에 따른 소득세율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방소득세로 지자체에 추가 납부한다. 과세표준 1200만원 이하는 국세 6%와 지방소득세 0.6%를 내고 과세표준 1억 5000만원 초과는 국세 38%와 지방소득세 3.8%를 내는 식이다. TF에선 지방소득세를 비례세 방식으로 바꾸자는 입장이다. 만약 지방소득세에 비례세율 6.6%를 적용한다면 과세표준에 상관없이 6.6% 세율이 일괄해서 지자체 세입이 될 수 있다. 기재부가 관리하는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도 논란의 대상이다. TF에선 균특 가운데 지자체가 자율 편성한 뒤 포괄보조 방식으로 지원하는 지역자율계정은 지자체에 이관하도록 결론을 내렸지만 이 역시 청와대 수정안에서 백지화됐다. 올해 균특 규모는 9조 9000억원이고 이 중 지역자율계정은 5조 3000억원 수준이다. 한 관계자는 “기재부에선 대통령의 ‘연방제 수준’ 발언에 착안했다”면서 “연방제는 지자체 권한도 커지지만 책임도 커지는 구조라는 논리다. 그걸 활용해 지방소비세를 일부 인상하는 대신 내국세의 19.24%를 지방에 이전하는 지방교부세를 확대하고 국고보조사업을 축소하자는 당초 TF 결론을 뒤바꿨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국고보조사업 축소를 외면하는 것은 재정분권 개혁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밀실 논의’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TF는 지난해 11월 구성된 뒤 토론회 한 번 제대로 연 적이 없다. 자치분권위와 TF 관계자들이 4월에 권고안을 청와대에 제출한 뒤에도 논의 과정은 물론이고 향후 계획조차 깜깜무소식이다. 한 TF 관계자는 “지자체와 지방재정학자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대답해 줄 게 하나도 없다”고 털어놨다. 재정분권TF를 둘러싼 논란은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발생했던 난맥상과 닮은꼴이다. 재정개혁특위 역시 위원장 선임이 늦어지면서 반년 가까이 허비한 끝에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지난 4월에야 구성했다. 특위는 지난 7월 종합부동산세 개편과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등 권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권고안 발표 하루 만에 청와대와 기재부가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를 백지화시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청와대가 책임지기 싫으니까 떠넘기는 것”이라면서 “공론화를 제대로 하려면 정부 방침과 다른 결론이 나왔을 때는 결정을 미뤄서라도 더 깊이 숙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교수도 “중앙정부 관료들은 자기들이 가진 막강한 기득권은 손도 못 대게 하면서 입만 열면 기득권 타파와 규제개혁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유체이탈’ 아니냐”고 꼬집었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계룡건설, ‘앞산 리슈빌 & 리마크’ 브랜드 아파트 가치 누려볼까

    계룡건설, ‘앞산 리슈빌 & 리마크’ 브랜드 아파트 가치 누려볼까

    계룡건설의 ‘리슈빌’ 브랜드 아파트가 주택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2016년 공급한 ‘고양 향동 리슈빌’과 ‘광주 용산지구 리슈빌’ 모두 8.1대 1과 33대 1이라는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계약을 100% 완료 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공급에 나선 ‘시흥 장현 리슈빌’도 전주택형이 순위 내 마감을 하며 정당계약 2주만에 완판 되는 등 분양 시장에서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기는 ‘리슈빌’ 브랜드만의 우수한 상품성과 브랜드 가치 때문으로 분석된다.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브랜드 가치로 향후 미래가치도 기대해 볼 수 있어 수요자들이 많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매매시장에서도 ‘리슈빌’ 브랜드 단지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KB부동산 시세자료에 따르면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일대의 ‘부산 센텀 리슈빌 1단지’의 전용면적 84.45㎡는 지난해 10월 평균 매매가 4억6,250만원에서 4억9,500만원(7월 기준)으로 10개월간 3,250만원(7.03%) 올랐다. 이는 같은 기간 해운대구 아파트 매매가가 2.05%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이렇다 보니, 계룡건설이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959-2번지 일대에 짓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앞산 리슈빌 & 리마크’에도 수요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단지는 계룡건설의 주택 브랜드인 ‘리슈빌’로 공급돼, 임대 아파트에서 보기 드문 특화설계와 커뮤니티 시설 부문을 강화했다. 설계 부문에서는 채광율과 공간 활용도가 높은 남향 위주의 판상형 맞통풍 구조로 설계했다. 여기에 국공립 어린이집, 북카페, 주민운동시설, 경로당 등 커뮤니티 시설을 고루 갖춰 입주민들의 주거 편의성을 높였다. 계룡건설 분양 관계자는 “리슈빌 브랜드 단지들은 차별화된 특화설계와 마감재 등을 적용해 수요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라며, “특히 대구 남구 대명동 일대에 들어서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앞산 리슈빌 & 리마크’는 이달 진행한 일반공급 청약에서 최고 2.3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 만큼 계약까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대명동 일대에 20년만에 공급되는 새 아파트인 계룡건설의 ‘앞산 리슈빌 & 리마크’가 수요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새 아파트 공급에 대한 대기수요가 풍부한데다, 주변 생활여건도 편리해 장점을 두루 갖췄다. 우선 ‘앞산 리슈빌 & 리마크’는 교통이 편리하다. 지하철 1호선 안지랑역과 대명역이 단지와 가까운 더블역세권 단지다. 버스노선도 다양해 시내외로 이동이 수월하다. 남구 중심에 위치해 생활 인프라도 풍부하다. 단지 바로 앞에는 남구의 유일한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위치해 있으며, 대명시장, 안지랑 곱창골목, 앞산 카페거리 등과도 가깝다. 또, 단지와 맞닿아 있는 대명초를 비롯해 남명초, 남도초 등이 단지 인근에 위치해 교육시설을 도보로 이용가능하다. 특히, 단지 내에는 전문 보육강사를 갖춘 국공립 어린이집이 조성될 예정이어서 자녀를 둔 수요자들의 선호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단지 인근에는 두류공원과 대덕산, 앞산, 앞산 빨래터공원 등이 위치해 쾌적한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다. ‘앞산 리슈빌 & 리마크’는 1단지와 2단지로 조성되며, 1단지는 지하 2층~지상 7층, 8개동, 전용면적 59~84㎡, 299가구다. 2단지는 지하 2층~지상 7층, 3개동, 전용면적 49~84㎡, 110가구로 구성돼 총 409가구 규모로 지어진다.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이사 걱정 없이 8년간 장기거주 할 수 있으며 임대료는 주변 시세대비 저렴하다. 취득세 및 재산세 부담이 없고 세액공제를 통한 절세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한편, ‘앞산 리슈빌 & 리마크’는 지난 17일 일반공급 청약접수를 진행해 특별공급을 제외한 327가구 모집에 473명이 청약해 평균 1.45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최고 청약경쟁률은 전용 59㎡A타입으로 46가구 모집에 108명이 청약해 2.35대 1의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일반공급 당첨자 발표는 오는 22일(수) 이뤄지며, 계약은 이달 27일(월)부터 29일(수)까지 3일간 실시할 계획이다. 분양 홍보관은 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1037-4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입주는 2018년 11월 예정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대구역센트럴자이 상업시설, 2년전 확정분양가 입찰 없는 추첨 각광

    대구역센트럴자이 상업시설, 2년전 확정분양가 입찰 없는 추첨 각광

    대구역 센트럴자이 상업시설에 마트, 까페, 학원 등이 속속 입점하고 있는 가운데 회사보유분 상가 10여개를 입찰이 아닌 확정분양가 추첨방식으로 공급에 나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GS건설이 최근 침체된 경기를 고려하여 실수요 자영업자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2년전 확정분양가 그대로 인상분 없이 공급하고 있어, 인근 상가대비 합리적인 분양가로 분양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 상업시설은 계약면적기준 1층 상가가 3.3㎡ 당 1,649여만원~2,085여만원, 2층 상가가 372여만원~724여만원, 3층~4층 상가가 352~409여만원으로 최근 분양한 남산동 J상가(1층 계약면적 3.3㎡ 당 최고 4100만원대, 2층 상가 1,770~1,990만원대), 칠성동 O단지내상가(1층 계약면적 3.3㎡ 당 최고 4980여만원, 2층 1400여만원) 분양가 대비 30~40% 낮은 가격이다. 부동산전문가는 “1,245세대 대단지 아파트 고정고객과 3천여평 공원을 바로 앞에 둔 공세권 상가를 이런 가격으로 분양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라며, 내 상가 마련을 꿈꾸는 자영업자와 노후대비를 위해 소규모 투자로 안정된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시 중구 수창동 173번지에 조성된 대구역센트럴자이 상업시설은 80개호실 2,580여평으로 단순히 단지내 상가를 넘어 공원을 마주한 공세권 스트리트 몰 상권으로 주목받고 있다. 단지 서쪽 10,562㎡(3,195평) 규모 수창공원 전망의 스트리트상가와 단지동쪽 서성로변 일반단지내상가로 구성된 대구역 센트럴자이 상업시설은, 대부분의 상가가 공원뷰를 확보하여, 창가자리에서 영구 공원전망을 누릴 수 있어 2,3,4층 상가들도 타상가 대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장을 확인한 한 투자자는 “2층에서 공원을 바라보니 마치 유럽의 어느 스트리트 상가 같다”며, “이 상권은 소문나면 대구에서 상징적인 상권이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대구역 센트럴자이 상업시설은 이미 입주 완료한 1,245세대 대단지 아파트를 백그라운드로 두고, 앞으로 1만562㎡ 공원을 마주하는 상가로, 단순한 단지내 상가나 공원인근 상가를 넘어 고정고객과 유동고객을 모두 불러들이는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한, 수창공원에는 어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물놀이시설이 있어, 동반하는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상가고객으로 유입되며, 젊은 예술인과 가족단위 관람객이 찾아드는 대구예술발전소가 인접해 청년 및 가족고객들이 자연스럽게 대구역 센트럴자이 상업시설로 유입되고 있다. 더불어 3호선 달성공원역과 1호선 대구역의 더블역세권에다 동성로, 서문시장, 현대백화점, 달성공원, 약령시, 쥬얼리특구 등 사람이 모이는 생활, 문화, 쇼핑의 중심에 있어 유동인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확보한다. 상가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유럽형 테라스설계로 트랜디하고 수려한 외부 마감은 지금까지 대구에서 볼 수 없었던 상가 디자인으로 아파트 분양당시부터 관심이 집중되었다. 엔틱하고 빈티지한 고급스러운 내부마감과 냉난방시스템, 환기시스템, 높은 층고 등으로 인테리어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최고시설로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미리 갖추었다. 인근 공인중개사 대표는 “최근 아파트규제가 갈수록 심해져 투자자들의 관심이 상가로 쏠리고 있다”며, “대구역센트럴자이 상업시설은 대단지 아파트와 공원상권을 모두 확보하는 보기 드문 상가로 가격조건도 착해 관심 있으신 분은 서둘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역 센트럴자이 상업시설은 회사보유분에 대해 9월초, 확정분양가 청약 후 추첨방식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태풍 솔릭 영향 전국 8688개교 휴업…“피해는 경미한 수준”

    태풍 솔릭 영향 전국 8688개교 휴업…“피해는 경미한 수준”

    태풍 ‘솔릭’이 한반도를 빠져나간 24일 전국 8688개 학교가 휴업을 했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이날 오전 9시 현재 전국 31개교(초 16교, 중 9교, 고 5교, 특수 1교)에서 피해가 접수됐다”면서 “피해는 강풍에 따른 외부마감재 일부 손상 등 경미한 수준에 그쳤다”고 밝혔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피해 내용은 강풍으로 인한 지붕 마감재, 연결 통로, 울타리, 창호 파손 등 건물 외부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학교 지역은 태풍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던 제주에서 24개교로 집중됐고, 전남 7개교였다.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날 9시 기준 태풍 솔릭의 피해를 우려해 전국의 유·초·중·고등학교 8688곳은 휴업했다. 전날에는 1795개교가 휴업했고 2880개교가 등하교시간을 조정해 태풍 피해에 대비했다. 각 시·도교육청은 휴업을 결정한 학교에서도 맞벌이 부부들의 돌봄 공백 등을 우려해 유·초등학교 돌봄교실은 대부분 정상적으로 운영했다. 유치원 돌봄교실은 전국 유치원이 정상운영했고, 초등학교 돌봄교실은 강원·전북·충북 지역을 제외한 모든 학교가 정상운영하거나 학교장 재량에 따라 운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주말에 태풍에 따른 피해 복구가 완료되면 다음주 수업은 지장없이 운영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이날 교육부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 이번 태풍으로 재해가 발생한 학교에 대하여 재해특교지원 등 재해복구에 총력을 기울여 학교가 빠르게 정상화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태풍 솔릭 큰 피해 없이 전북 통과

    제19호 태풍 ‘솔릭’이 전북지역에는 큰 피해를 주지 않고 통과했다. 24일 전북도에 따르면 전날 밤 부안군 위도 갈매여에 초당 25.7m의 강풍이 불었다. 군산 옥도면 말도에서는 전날 오후 8시 48분쯤 최대 풍속 초속 24.2m의 강풍이 측정됐다. 초속 23.3m의 강풍이 새만금을 덮치기도 했다. 강풍 때문에 전주와 군산, 부안에서 가로수 5그루가 넘어졌고, 군산 한 원룸 건물에서는 외벽 마감재가 떨어졌다. 지리산 뱀사골 154㎜, 무주 덕유산 128㎜ 등의 강수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전까지 초당 10∼20m의 강풍이 불 것으로 전주기상지청은 내다봤다. 기상지청은 “비는 소강 상태를 보이지만, 오전 내내 강한 바람이 불겠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현재 도내 20개 공원탐방로와 야영장이 일시폐쇄됐고, 항공기와 여객선 운항도 통제 중이다. 도내 1307개 학교는 이날 하루 휴업했다. 이번 태풍으로 인한 인명피해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전북도 관계자는 “태풍이 비교적 큰 피해 없이 전북을 지나갔으나 재산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비상대응체제를 유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명품 오페라의 향연 달구벌서 느끼세요

    명품 오페라의 향연 달구벌서 느끼세요

    열여섯 번째를 맞는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다음달 14일부터 10월 21일까지 대구오페라하우스 등 대구 일대에서 열린다. 23일 대구시에 따르면 이번 축제 주제는 지난해와 같은 ‘오페라 & 휴먼’이다. 여기에 ‘영원한 오페라 꿈꾸는 사람’이라는 부제를 더했다. 70년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오페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한다는 의미다.축제의 메인 포스터는 인류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종합예술 오페라가 가진 불멸성을 표현하기 위해 붉은색을 상징 색으로 사용하고, 오페라가 실제로 펼쳐지는 공간인 오페라하우스를 비주얼화해 ‘대구오페라하우스’의 가치와 의미를 강조했다. 또 대구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 ‘달성습지’, ‘진골목’, ‘금호강과 산격대교’, ‘3·1 만세운동길’ 등을 담아 축제 때 대구를 방문하는 외지인들에게 대구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보여 주고자 했다. 세계 유명 예술 페스티벌들이 관광과 연계해 발전했다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대구만의 관광 명소를 포스터에 반영한 것이다.이번 축제에서는 ‘돈 카를로’ 등 메인 오페라 4편과 ‘버섯피자’ 등 소극장 오페라 4편이 무대에 오른다. 개막작 ‘돈 카를로’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성기를 이룬 베르디의 중기 최고 걸작이자 심리극이다. 16세기 무적 함대를 이끌고 스페인 전성시대를 열었던 필리포2세와 그의 아들 돈 카를로 등 실존 인물의 삶과 사랑, 죽음에 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 개최 기념 5막으로 만들어졌으며, 1884년 밀라노 라스칼라극장에서 4막 구성으로 다시 선보였다. 이번에 선보일 작품 역시 4막의 이탈리아어 판이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이 작품을 위해 90명의 오케스트라, 60명의 합창단을 투입해 오페라 애호가들에게 대작 오페라의 감동을 제대로 전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휘는 펠릭스 크리거, 연출은 이회수씨가 맡았으며, 주역인 필리포2세 역은 베이스 연광철, 그의 아들인 돈 카를로 역에 테너 권재희, 엘리자베타 역에 소프라노 서선영, 로드리고 역에 바리톤 이응광, 에볼리 역에 메조소프라노 실비아 멜트라미 등 현재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성악가들이 대거 포진됐다. 다섯 주인공 사이의 엇갈린 사랑과 배신, 오해와 비극을 치밀하게 그려 냈다. 다음달 28일 공연되는 창작 오페라 ‘윤심덕, 사의 찬미’는 영남오페라단과 대구오페라하우스 합작이다. 작곡자는 진영민 경북대 교수이며, 연출자는 극단 한울림 정철원 대표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연인 김우진과 함께 바다에 투신해 생을 마감한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짧은 삶과 일제강점기 억압된 사회에서 나라와 예술에 헌신한 홍난파, 홍해성, 채동선 등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녀의 대표곡 ‘사의 찬미’를 바탕으로 펼쳐진다.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위한 대구 순회공연 장면 등 근대 대구의 모습을 담아내는 점도 볼거리다. 소프라노 이화영, 조지영이 윤심덕 역에 캐스팅돼 대한민국 오페라 70주년 역사에 의미 있는 작품을 함께하게 되며, 김우진 역에 테너 김동원·노성훈, 홍난파 역에 바리톤 노운병·구본광 등 대구 지역을 대표하는 성악가들이 포진해 있다. 이 작품은 2018년 대구문화재단 집중기획 지원작이기도 하다.세 번째 무대에 오르는 메인 오페라 ‘유쾌한 미망인’은 즐겁고 경쾌한 왈츠로 축제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어 줄 빈 오페레타의 결정판으로, 작곡가 레하르를 백만장자로 만든 작품이다. 오페레타는 오페라와 비슷하지만 낭만적이고 재미있는 줄거리, 대사가 많고 화려한 춤이 등장해 오락성이 강하다. 프랑스 안의 가상국가인 폰테베드로를 배경으로 옛 연인 다닐로 그리고 부유한 미망인 한나와 그녀에게 청혼하는 남자들 사이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경쾌한 왈츠가 극 전반을 흐르며, 아리아 ‘빌랴의 노래’에서는 이국적이고 신비롭게, 이중창 ‘입술은 침묵하고’에서는 사랑스럽고 달콤하게 이어지는 관현악의 다채로운 선율 역시 매력적이다. 오페레타의 본고장 오스트리아 뫼르비슈 오페레타 페스티벌이 준비한 이번 무대는 오페레타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선보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70년 전 대한민국 오페라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자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베르디 최고의 인기작이다. 향락과 유흥에 젖어 살던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진정한 사랑과 연인을 위한 자기 희생을 담은 비극이지만, ‘축배의 노래’, ‘언제나 자유롭게’ 등 유명 아리아들을 감상할 수 있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국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이끄는 리신차오가 지휘를, 이탈리아 연출가 스테파니아 파니기니가 연출을 맡았다. 비올레타 역에 소프라노 이윤경과 이윤정이, 알프레도 역에 테너 김동녘과 이상준이 함께하며, 바리톤 김동섭과 김만수가 제르몽 역을 담당한다. 이번 축제에서 소개될 각 오페라의 오케스트라는 디오오케스트라가, 합창은 메트로폴리탄오페라콰이어가 맡고 있다. 이 두 단체는 대구오페라하우스 상주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주말에 선보이는 메인 오페라와 달리 주중에는 소극장오페라가 편성돼 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별관 소극장인 카메라타, 북구 어울아트센터, 달서구의 웃는얼굴아트센터 등에서 공연된다. 특히 ‘빼앗긴 들에도’의 경우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상화를 소재로 한 창작 오페라로 10월 16일과 17일 대구 중구에 소재한 이상화 고택에서 공연되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다음달 18일에는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독일 베를린 도이체오페라극장의 합작 무대인 오페라 콘체르탄테 ‘살로메’가 공연된다. 오페라 콘체르탄테는 콘서트오페라라고도 부르는 연주회 형식의 오페라다. 오케스트라를 무대에 배치하고 성악가들이 한 편의 오페라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콘서트처럼 연주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시민 누구든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채롭게 준비돼 있다. 다음달 7일 저녁 7시 30분 수성못 야외무대에서 ‘미리 보는 오페라 수상음악회’를 개최한다. 유명 오페라 아리아는 물론 영화음악과 대중가요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광장오페라’도 눈에 띈다. ‘광장 오페라’는 오페라 ‘라 보엠’ 2막의 배경이 되는 ‘모무스 카페’를 실제 광장에 재현해 공연을 펼친다. 발코니 등 주변 시설들을 활용하고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함께 어우러져 ‘오페라란 재미있는 것’임을 효과적으로 알릴 것으로 기대된다. 21, 22일에는 대구삼성창조캠퍼스 야외광장에서, 10월 13일에는 롯데아울렛 이시아폴리스에서 펼쳐진다. 또 메인 오페라를 감상하기 전에 관련 작품에 대해 전문가의 해설을 들을 수 있는 무료 강연 프로그램으로 ‘오페라 오디세이’를 준비하고 있다. 축제의 대단원을 함께할 폐막 콘서트와 오페라대상 시상식은 10월 21일 오후 5시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다. 이번 축제는 여느 해에 비해 한 달여 빠른 9월에 시작한다. 해외 극장의 비시즌 기간인 9월에 축제를 시작함으로써 해외에서 활동 중인 훌륭한 아티스트들을 초청하는 데 유리하고 질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추석을 축제 가운데 두고 대구를 찾는 외지인들에게 축제를 소개하며 오페라를 관람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배선주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는 “유럽의 대표적인 오페라 축제들과 마찬가지로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매력적인 관광 상품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서 “대구만의 브랜드 상품으로 창작 오페라가 활성화돼야 한다. 오페라 애호가는 물론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붉은 벽돌 마을…수제화거리…7080 뚝섬의 추억을 거닐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붉은 벽돌 마을…수제화거리…7080 뚝섬의 추억을 거닐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5회 성수동(서울숲 밤마실) 편이 8월의 셋째 주말인 지난 18일 진행됐다. 절정을 향해 치닫던 여름이 거짓말처럼 선선한 가을로 바뀐 이날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성수동에 몰렸다. 정원 초과로 결국 몇 분은 오디오 가이드시스템 없이 해설자의 육성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이날 투어는 집결 장소인 분당선 서울숲역 3번 출구를 출발, 116개의 컨테이너로 조립된 언더스탠드에비뉴를 거쳐 옛 뚝섬경마장을 상징하는 기마상과 갤러리아 포레 주상복합아파트가 보이는 서울숲 바닥분수에서 서울숲 조성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들으면서 시작했다. 답사단은 성수동의 새 명물로 떠오른 붉은 벽돌마을을 걸어 공씨책방~웅덩이마을~수제화거리~카페거리를 거쳐 서울경찰기마대에서 짧지만 긴 일정을 마무리했다. 해설을 맡은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철저한 사전준비로 서울의 핫플레이스 성수동 투어를 이끌었다. 특히 종착지인 서울경찰기마대에서 마구간을 공개하는 깜짝 선물로 참가자들을 감동시켰다. 설문조사에서 “웅덩이마을이나 붉은 벽돌 마을, 공씨책방, 경찰기마대 같은 예상치 못한 곳을 경험한 소중한 밤마실” 이라는 소감이 쏟아졌다.뚝섬은 섬이 아닌 섬이다. 중랑천과 청계천이 합류해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만들어진 퇴적평야지대이다. 3개의 하천이 가로지르며 3면을 둘러싸다 보니 마치 섬처럼 보인다. 조선시대 이 지역을 도성 밖 동교(東郊) 혹은 살곶이다리 밖 교외라는 뜻에서 전교(箭郊)라고 불렀다. 동국여지승람에 “동쪽에서 흐르는 한강이 둘러 서쪽으로 흐르고, 북쪽 중랑천이 서쪽에서 흐르는 한강과 합하는 중간에 있으므로 자연히 평야가 형성됐다”고 적혀 있다. 한양의 열 가지 명승지를 노래한 ‘경도십영’(京都十詠)에도 봄이면 살곶이벌을 찾는다는 내용의 ‘전교심방’(箭郊尋訪)이 꼽혔다.동교는 전국에서 사육한 4만~5만 마리의 말 중 ‘서울로 보낸’ 준마만을 키우던 국립목장이자 왕의 사냥터, 군대 사열 장소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에서 성종까지 100년 사이 151번이나 찾았을 정도로 조선 초기 역대 왕이 즐겨 찾는 장소였다. 뚝섬의 랜드마크는 단연 살곶이다리(箭串橋)다. 1420년 세종 때 공사에 들어갔으나 1483년 성종 때 완공됐다. 왕은 당시 가장 긴 돌다리에 ‘제반교’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1938년 성동교가 개설돼 사용가치를 잃고 방치되기 이전까지 서울에서 아차산 아래 뚝섬, 강 건너 광주를 잇는 교통의 요로였다. 이태원, 홍제원, 보제원과 함께 4대 관용숙소인 전관원(箭串院)이 자리했다. 한양인 듯 한양이 아니고, 섬인 듯 섬이 아닌 뚝섬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수도시설인 뚝도수원지(수도박물관)로 장소의 관성이 이어졌다. 경기 고양군과 양주군에 속했던 이 지역이 일제강점기 서독도리(성수동1가)와 동독도리(성수동2가)로 서울에 편입된 이후 대변화가 휩쓸고 지나갔다. 이 시기 뚝섬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시설물은 ‘기동차’였다. 1930년 왕십리~뚝섬 간 4.3㎞를 달렸다. 1934년 동대문~왕십리 간 별선을 놓으면서 동대문~뚝섬 구간이 완성됐다. 전성기 총 37대까지 운행된 기동차는 1960년대 중반 폐지될 때까지 뚝섬 주민들의 발이자 채소 수송수단으로 이용됐다.기동차의 진가는 뚝섬유원지용 피서열차로 애용되면서 발휘됐다. 동뚝섬역에서 600m 떨어진 한강가에 유원지와 수영장, 어린이놀이터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강수욕과 뱃놀이의 추억은 1986년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사라졌지만 옛 뚝도공립보통학교(경동초등학교) 자리에 뚝섬유원지의 여름경찰서가 있었다. 1960~70년대 여름철이면 하루 10만명, 절정 때는 20만명의 행락객이 몰려들었다. 70척의 놀잇배가 뚝섬유원지를 오갔다. 그 시절 서울의 여름 피서는 뚝섬유원지가 책임졌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60년대 초부터 무, 배추, 토마토 등 채소 재배지에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구로공단처럼 국가 주도 산업단지가 아니라 도심의 제조업체들이 교통이 편리하고 땅값이 싼 성수동으로 옮겨온 것이다. 1971년 당시 성수공단에 입지한 제조업체는 모두 671개로 서울 전체의 20%를 넘을 정도였다. 무허가 공해업소에서 쏟아내는 폐수로 인한 수질 악화 등 공해 문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결국 30년을 넘기지 못했다. 도시형 전통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수제화, 인쇄, 자동차정비업 중심으로 지역경제가 재편됐다.왜 성수동에 신발업체가 모였을까. 지하철 2호선 라인인 성수역과 화양역 사이에 봉제공장이 많았다. 피혁, 의류, 가방공장이 따라 들어왔다. 봉제산업이 피혁산업과 제화산업으로 연쇄효과를 낳은 셈이다. 1996년부터 2000년 사이 서울에서 설립된 제화업체의 절반이 성수동에 입지한 게 이를 방증한다. 본래 서울의 수제화는 염천교와 명동에서 살롱화라는 이름으로 발달했다. 70년대 후반 명동에만 100개가 넘는 수제화 업체가 있었다. 50년대부터 신발공장이 들어선 염천교는 구두백화점, 신발만물상 수준이었다. 기성화시대로 접어들면서 국내 양대 제조업체인 금강제화와 에스콰이어가 금호동과 성수동 시대를 마감하고 서울을 떠났지만 하청업체들은 남았고, 이들이 80년대 성수동으로 모여든 게 성수동 수제화 역사의 시작이다. 성수동은 우리나라 구두제작업체의 중심지가 됐다. 2000년대 중반 구두제작업체의 44.4%, 구두 부분품 및 재단제품 제조업체의 58%가 성동구에 몰렸다. 성수동에 구두제작업체의 86%, 구두 부분품 및 재단제품 제조업체의 70%가 집중된다. 구두뿐 아니라 다양한 패션제품으로 폭이 넓어졌다. 2013년 현재 성동구의 섬유 및 의류제조 업체는 380개, 자동차정비업은 190개, 구두제조 관련 업체는 650개에 6000여명의 종사자가 몰려 있다. 성수동은 명실상부한 수제화의 메카이다. 뚝섬은 1950년 성동구로 편입되면서 성수동(聖水洞)으로 이름을 바꿨다. 성수동은 성덕정(聖德亭)이라는 왕이 머물던 정자에서 ‘성’(聖) 자를 따고 뚝도수원지에서 ‘수’(水) 자를 딴 합성 지명이다. 지명은 바뀌었지만 뚝섬의 정체성인 목장과 수원지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1954년 경마장이 뚝섬으로 옮겨온 것은 말 목장이던 뚝섬이라는 장소의 관성이 살아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1958년 마장동에 우시장이 들어서고 뒤이어 도축장까지 들어와 가죽을 다루는 수제화 집적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하게 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현대의 이동수단인 자동차를 수리하는 정비공장들이 대거 성수동에 둥지를 튼 것도 ‘말(馬)의 고향’이라는 600년 이어진 장소의 관성 탓은 아닐까.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여름야행 5=양화진(한강 밤풍경) ●일시: 8월 25일(토) 오후 6~8시 ●집결장소: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7번 출구 앞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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