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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아빠가 ‘위너’? “아이들 외로움 공감...친구 되고파”

    우리 아빠가 ‘위너’? “아이들 외로움 공감...친구 되고파”

    인기 아이돌 그룹 위너(WINNER) 멤버들이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고백하며 ‘반달친구’ 촬영에 임하는 각오를 다졌다.  7일 공개된 JTBC ‘반달친구’ 4차 티저 영상에는 기존 티저 영상에서 볼 수 없었던 위너 멤버들의 진지하고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눈길을 끌었다.  영상에서 위너는 부모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각자의 어린 시절에 대해 담담히 털어놨다. 위너 멤버 남태현은 “엄마는 항상 일을 가셔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머니와 보냈다”고 말했다. 강승윤은 “어머니와 둘이 살았지만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밝혔다. 이승훈과 김진우는 생계를 위해 오랫동안 집을 비웠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거의 없다고 고백했다. 이어 멤버들은 “벌써부터 헤어질 때의 슬픔이 예상된다”며 “여기 오는 친구들은 그런 빈자리와 허전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8일 텐아시아에 따르면 ‘반달친구’는 ‘100% 사전제작’된다. ‘반달친구’ 관계자는 “오늘(8일) ‘반달친구’의 마지막 녹화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지난 보름간의 촬영 분량을 편집해 방송할 예정이며 추가 촬영은 없을 것”이라 밝혔다. 일반적으로 해외 촬영 없이 국내에서 촬영되는 예능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하루, 또는 이틀 정도 녹화를 진행한다. 반면 ‘반달친구’ 제작진은 지난달 21일부터 3주간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촬영을 진행했다. 제작진은 “위너와 출연하는 아이들의 진정성 있는 교감을 위해선 일정시간 꾸준히 함께 생활을 해야한다고 판단해 100% 사전 촬영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반달친구’는 ‘아이돌’ 위너와 4~7세 ‘아이들’이 우정을 키워가는 보름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는 23일 오후 9시 40분 JTBC를 통해 첫 방송된다. 이선목 인턴기자 tjsahr@seoul.co.kr
  • 증권사 32곳 “합리적 비판할 수 있어야”

    “기업가치 의견 다를 수 있어” 한목소리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이 최근 논란이 된 하나투어의 애널리스트 기업탐방 금지 압박에 대해 한목소리로 반기를 들었다. 국내 3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은 7일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을 내고 “상장사의 성장성 등 기업 가치에 관한 의견은 애널리스트는 물론 시장 참가자별로 다를 수밖에 없다”며 “다양한 시각의 리포트가 공표되고 리포트에 대한 백가쟁명식 토론과 합리적 비판이 있어야 건전한 투자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조사 분석자료는 투자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참고자료로 자본시장의 소중한 인프라”라고 덧붙였다. 리서치센터장들이 한목소리를 낸 건 지난달 30일 하나투어와 교보증권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 때문이다. 교보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생각처럼 안 되는 면세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시내면세점 개점이 미뤄지고 면세점 사업의 어려움 등을 근거로 하나투어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대폭 낮춰 예상했다. 목표 주가도 20만원에서 11만원으로 떨어뜨렸다. 공교롭게도 하나투어 주가는 전날 9만 600원에서 이날 8만 6000원으로 5.1%나 하락했다. 하나투어는 애널리스트에게 보고서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향후 회사 탐방을 금지하겠다고 통보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증권업계는 크게 반발했고, 일각에선 유사 사례 재발 시 모든 증권사가 해당 기업의 분석을 중단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도연 금융투자협회 자율기획부장은 “감정적 대응이 아닌 이성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업계가 의견을 같이했다”며 “향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단독] “알리안츠 ‘고금리 보험’ 부담에 유럽 회계 적용으로 헐값 매각”

    [단독] “알리안츠 ‘고금리 보험’ 부담에 유럽 회계 적용으로 헐값 매각”

    자본잠식·구조조정 실패 등 주장엔 반박 中 안방보험 인수합병 전 구조조정 단행 이명재 전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 사장은 알리안츠가 중국 안방보험에 35억원 헐값에 팔린 데 대해 7일 “고금리 보험상품과 유럽 회계기준에 발목 잡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자본잠식이나 구조조정 실패 등이 주된 요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알리안츠생명은 이날 안방보험으로의 인수합병 전에 구조조정을 단행할 뜻을 밝혔다. 올 2월 물러나 현재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는 이 전 사장은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저간의 ‘상황’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당초 알려진 매각가 2000억원대도 헐값이라는 시각이 많았는데 실제 매각가는 6분의1이다. 이렇게 충격적인 값에 판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매각가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얼마가 됐든 알리안츠그룹은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을 털고 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우선 제일생명(알리안츠생명 전신) 인수 때 떠안은 고금리 보험상품 부담이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고 경영을 압박했다. 운용자산이 15조원이라고 치자. 1%만 이자율이 떨어져도 투자수익 1500억원이 날아간다. 그런데 제일생명 때 공격적인 영업을 하면서 연 6~8%대의 고금리 확정형 장기 상품을 엄청 팔았다. 갈수록 들어올 돈은 줄고 나갈 돈은 늘었다. 재임 시절 이 수치를 계산해 보니 알리안츠가 향후 감당해야 할 금액이 무려 1조 4000억원이었다. 금리가 더 떨어졌으니 이 금액은 더 늘었을 거다. (안방보험이) 이 부채를 떠안고 가는 것인데 (35억원이) 헐값이라고 볼 수 있나. →유럽 회계기준 얘기는 뭔가. -유럽식 회계기준인 솔벤시II(유럽 보험사 지급여력제도)가 올해부터 시행됐다. 미래의 예상손실을 현재 자산가치에 미리 포함해 지급 준비금을 쌓아야 한다. 독일계인 알리안츠는 이 규제를 적용받는다. 알리안츠그룹이 한국 알리안츠생명을 자회사로 유지하면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대까지 증자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니라 시가 평가하는 이 방식은 국내에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라는 이름으로 2020년부터 도입된다. 한국 기업에는 아직 ‘내일의 문제’이지만 알리안츠에는 당장 ‘눈앞의 현실’이다. →그럼 다른 보험사도 알리안츠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4년 뒤 다른 보험사도 겪을 상황이다. 외국계인 PCA생명과 ING생명이 왜 매물로 나오겠는가. 그룹 입장에서는 저금리 기조에서 고금리 상품 역마진과 준비금 부족까지 수천억원이 넘는 이런 로스(손실)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갈아타기를 유도하거나 신상품 계약을 많이 따내는 등 더 노력했을 수도 있다. -제일생명은 두 번째로 오래된 보험사다. 그만큼 고금리 특판을 더 많이 팔았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도 10조원 가까운 부담을 안고 있다. 그만큼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인더스트리(산업)의 문제다. →일각에서는 강성 노조를 탓한다. 요스 라우어리어 새 알리안츠생명 사장은 전날(6일) 임직원 간담회에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는데. -지난 3년간 직원 수를 1700명에서 1100명으로 줄였다. 2008년 234일간의 장기 파업을 경험한 것도 맞지만 8년 전 일을 아직까지 걸고 넘어지는 것이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상품 포트폴리오도 변액과 보장성 중심으로 전환됐고 민원도 줄었다. 저금리로 회사가 저평가된 점이 가슴 아프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마스터스] 교포 대니 리, 1라운드 공동 2위… “첫날 대만족”

    [마스터스] 교포 대니 리, 1라운드 공동 2위… “첫날 대만족”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가 제80회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 첫날 1라운드에서 공동 2위에 오르며 상쾌한 출발을 했다. 대니 리는 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대회 첫날 1라운드에서 버디 6개에 보기 2개를 묶어 4언더파 68타를 기록했다.한편 지난해 우승자인 조던 스피스가 1라운드 단독 선두에 나섰다.AP·AFP·EPA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마스터스] 조던 스피스, 2타 차 단독 선두…대회 2연패 시동

    [마스터스] 조던 스피스, 2타 차 단독 선두…대회 2연패 시동

    조던 스피스가 7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0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첫날 1라운드에서 단독 선두로 나섰다.스피스는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기록하며 6언더파 66타를 쳤다.한편 뉴질랜드 교포 대니 리(26)가 4언더파 68타로 선두 스피스에게 2타 뒤진 공동 2위에 올랐다. AP·AFP·EPA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봄 통영, 백석의 달뜸과 한숨이 묻어 있는 곳

    봄 통영, 백석의 달뜸과 한숨이 묻어 있는 곳

    길은,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삶 사이에서 끝없이 이어졌다. 대처로 떠나는 자식의 발걸음이 잠시 떨리며 머뭇거렸음을, 옷고름 사이로 떨어진 어미의 눈물방울이 짭짜름했음을 동구밖 길은 아주 오래 기억했다. 동네를 감아 도는 그 길을 걸었다. 1930년대 중반 그 봄, 충렬사 돌층계에 주저앉으면 통영 앞바다가 훤히 펼쳐졌을 게다. 여황산자락 아래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이어진 집들을 지난 눈 속에는 쉴 새 없이 고깃배가 오갔고, 부푼 꿈을 안고 오는 이, 또 다른 꿈을 이고 타향으로 떠나는 이가 엇갈리는 낡은 선창이 비쳤을 테다. 하지만 사랑을 잃은 사내에게는 아름다운 통영의 풍경도 오롯이 아름답기 어려웠으리라. 한참 나중에 호사가들이 통영을 일컬어 ‘한국의 베니스’ 운운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칭송했지만, 스물넷 평안도 출신의 청년시인 백석(1912~1995)에게는 실연의 상처가 훨씬 컸을 수밖에 없었다. 백석은 사랑을 위해 멀리 남쪽 바다까지 헛걸음을 반복해야 했다. 한 번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다른 두 번은 사랑을 기억하며 가슴 먹먹함을 달래기 위해 찾았다. 그러나 한 번 떠난 사랑이 돌아올 리는 없는 법. 통영을 다녀왔던 길은 그의 작품 속 중요한 지역의 하나로 자리매김시키는 것으로 갈무리됐다. ●삼도수군통제영 복판 여황산 끼고 돌아 백석의 발길로부터 80년의 시간이 흐른 봄, 통영을 찾았다. 그가 시 ‘통영1’에서 묘사한 것처럼 통영 여황로에는 마침 ‘김 냄새 나는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부터 차들은 쉴 새 없이 오가고 있었고, 타관의 학생들을 실은 수학여행 버스들은 줄을 지어 여황로 길을 지나고 있었다. 여황로는 174m의 야트막한 여황산(艅山)에서 비롯된 이름의 길이다. ‘여황’은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임금이 아끼던 화려한 배로, 훌륭한 군세를 갖춘 큰 전선을 상징했다. 통영항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산세를 펼치고 있는 삼도수군통제영의 복판에 자리잡은 산이니 딱 걸맞은 이름이다. 통영시 북쪽 여황산 아래쪽으로 4113m 이어지며 문화동, 북신동, 명정동 등을 감싸고 돈다. 통영은 현대문화예술의 보물창고와도 같다. 특히 여황로 하면 일단 백석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여황로 충렬사 앞에는 백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통영2’라는 시다. 편의상 ‘통영1’, ‘통영2’라고 했지만 발표 당시 원래 제목은 모두 ‘통영’이었다. ‘통영2’는 그가 통영에 대해 쓴 시편 중 가장 길고 유려하며 음율을 잘 살렸다. 그는 ‘통영2’에서 이곳을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라고 했다. 또 ‘난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에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라고 노래했다. 사랑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여황로 길가에 앉아 한껏 달떠서 혼자 히죽거리는 백석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곧 깨지고 말 단꿈이었지만. 여기에 원체 아름다운 통영의 풍광까지 한눈에 들어왔으니 시인의 시심이 절로 우러났을 것임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백석 시비 앞 명정샘 박경리가 소설에 써 ‘난’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다. 막 문청을 벗고 등단해 시인이 된 그는 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통영 출신의 이화고녀 졸업반이던 박경련을 만나고, 첫눈에 반해 사귄다. ‘난’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는 박경련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통영을 찾았지만 걸음이 엇갈려 만남이 어긋나게 됐다. 난의 집이 충렬사 근처인 명정동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 사이 그의 직장(조선일보) 동료이자 친구였던 이가 난과 결혼을 해 버리고 말았다. 사랑과 친구를 함께 잃은 아픔 탓이었을까. 그는 그해 조선일보를 그만뒀다. 그리고 기생 자야(子夜·본명 김영한·역시 백석이 붙여준 애칭이다)를 만나 불 같은 사랑을 나눴고, 고향집 부모님의 성화에 다른 여인과 혼례를 치렀지만 다시 자야에게 돌아갔다. 1940년 자야마저도 떠나 고향땅인 신의주, 정주로 갔다. 그가 통영에 대해 직접 남긴 작품은 ‘통영 1, 2’ 외에 ‘남행시초2-통영’ 등 모두 세 편이다. 특히 ‘남행시초2-통영’ 시편 마지막에는 난의 외사촌 오빠인 ‘서병직씨에게’라고 적었다. 그를 통해 통영 장터며 선창 등을 둘러봤음을 알게 해준다. 백석이 들여다본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골 명정샘은 지금도 여황로 시비 앞에 있었다. 충렬사 문화해설사인 옥복주(47)씨는 “일(日)정과 월(月)정 두 개의 샘이 있어 명정(日+月=明井)이 됐다.”면서 “1670년 만든 이후 몇 년 전까지 330년 넘도록 식수로 썼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은 여전히 맑지만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통영2’ 중)을 찾을 수는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명정골은 통영이 고향인 박경리(1926~2008)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문장 속에도 그 흔적을 흩뿌려 놓았다. 박경리는 명정골에 대해 ‘고을 안의 젊은 각시, 처녀들이 정화수를 길어내느라고 밤이 지새도록 지분내음을 풍기며 득실거린다.’고 했다. 박경리의 생가는 여황로 충렬사 주차장 맞은편 바로 곁의 좁은 골목길인 ‘토영 이야길’을 따라가면 있다. 하지만 현재 다른 이가 살고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표지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남편과 사별한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에게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무려 5000통의 연서를 보냈던 유부남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사연이 남겨진 곳도 그리 멀지 않다. 유치환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보이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행복’ 중)고 노래했던 통영중앙우체국은 여황로에서 서문로를 따라 7~8분 남짓 내려오다가 세병로(청마거리) 오른쪽으로 접어든 뒤 3~4분쯤 걸어가면 있으니 그리 멀지 않다. ●지긋한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읊어 이른 아침 여황로 어귀에서 만난,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는 늙수그레한 중년의 김모(58)씨는 “그 사람들이야 먹고살만 하니까 그림도 그리고, 소설도 썼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뭐….”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면서도 유치환, 이영도의 ‘아름다운 불륜’이며, 시인 김춘수, 화가 김용주,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 박경리 등 통영 출신 예술가의 이름들을 줄줄이 들먹였다. 흔히 돈을 잘 버는 동네에서 ‘강아지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들 하는데, 통영이라면 ‘중늙은이 뱃사람도 시 한 구절, 소설 한 토막쯤 읊조린다.’는 말이 좋이 쓰일 법하다. 케이블카를 타고 후딱 오른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통영시내 쪽으로는 강구안길이며, 여황산이 보이고, 다도해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한산도, 매물도, 그리고 멀리 대마도까지 한눈에 푹 안긴다. 산과 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과분할 만큼의 통영이다. 이곳의 길 위에서 시집 한 권, 소설 한 권 옆구리에 끼고 그 옛 기억과 향취까지 가져간다면 더욱 어울릴 법하다. ● 역사의 보고 통영의 길들 동피랑·서문까꾸막… 토박이말 길이름 천국 통영은 바다의 왜적들과의 싸움, 그리고 평화에 대한 바람으로 다져진 곳이다. 통영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 역사의 현장으로 뚜벅뚜벅 들어감을 의미한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4년(선조 37)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겨 세운 뒤 ‘통영’이라는 지명이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통제영의 약칭에서 따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인 충렬사와 통제영의 일종의 객사 역할을 했던 세병관(洗兵館·세병로 27), 그리고 북포루(北樓) 등은 통영 출신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이고,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는 수학여행 필수 방문지다. 길 이름 역시 이러한 역사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리 없다. 세병로, 충렬로 등은 물론이고 통제영을 굳게 지키던 문들도 이름을 남겼다. 동문로(東門路)와 서문로(西門路)는 모두 옛 통영성의 4대문 가운데 하나였던 동문과 서문의 이름을 그대로 땄다. 두 문 모두 고갯마루의 정상쯤에 위치해 있었으니, 통영 토박이들의 말로 ‘동문까꾸막’(동문고개), ‘서문까꾸막’(서문고개)이라고 불렀던 길들이다. 북신로(北新路) 역시 통영성 북문 바깥에 새로 만들어진 마을길이라는 뜻이다. 또한 세병로와 여황로 사이를 잇는 갈림길인 운주길은 옛 통제영의 관아였던 운주당(運籌堂)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남해안대로에서 갈래져 나온 원문마을길은 통제영 입구였던 원문성(轅門城)에서 따온 마을 이름을 달았다. 이 밖에 통영을 찾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동피랑길은 정겨운 마을 벽화로 유명하다. ‘피랑’은 벼랑을 일컫는 통영 말이다. 통영시의 동쪽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배기로 통영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을 자랑한다. 통영성과 동포루(東樓)의 유적이 있다. 사진=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통영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강펀치 맞은 시진핑 ‘反부패’

    장가오리 사위·류윈산 며느리, 마오쩌둥 손녀사위도 유령회사 “고위층, 사망자 이름으로 차명계좌…홍콩서 돈세탁 뒤 해외로 빼돌려” 사상 최대 규모의 역외 탈세 폭로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가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권위를 흔들고 있다. 중국 당국은 현재 이와 관련된 모든 보도와 정보를 검열·삭제하고 있지만,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서방 언론의 폭로가 이어지면서 당과 지도부에 대한 중국 인민들의 냉소가 깊어지고 있다. 7일 현재 ICIJ 등이 밝혀낸 ‘파나마 페이퍼스’ 관련 중국 고위층은 모두 10명이다. 이들은 전·현직 지도자의 친인척으로,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의 도움을 받아 조세 회피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를 세우고 자금을 세탁하거나 숨겨 놓은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 중 3명은 현직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친인척이다. 특히 시 주석은 첫째 매형 덩자구이가 이번에 또 연루돼 곤혹스럽게 됐다. 시 주석의 큰누나 치차오차오와 덩자구이는 재산이 3억 7600만 달러(약 4361억원)에 이른다는 2012년 블룸버그 폭로 이후 부패 스캔들의 단골이 됐다. 덩자구이는 모두 3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시 주석이 공산당 총서기가 되기 직전인 2012년부터 휴면 상태에 들어갔다. 부부는 희토류 개발 기업, 부동산 투자업체, IT 기기 생산업체, 홍콩 부동산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총리 장가오리(張高麗)의 사위 리성포는 3개의 유령회사를 보유했다. 그는 유리 생산 그룹인 ‘신이유리’의 최고경영자(CEO)로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전시관 유리와 고속철 유리 공급을 따내기도 했다. 선전·이데올로기 담당 상무위원 류윈산(劉雲山)의 며느리 자리칭도 유령회사의 단독 주주였다. 류 상무위원의 아들은 시틱증권 부회장이며, 자리칭은 메릴린치 출신으로 투자자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손녀사위인 천둥성은 2011년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다. 마오의 유일한 외손녀인 쿵둥메이와 재혼한 천둥성은 중국 최대 경매회사와 거대 보험회사 타이캉, 택배업체 중자이지쑹을 가진 재벌이다. 이 밖에 자칭린(賈慶林) 전 전국정협 주석의 손녀 재스민 리는 미국 스탠퍼드대학에 재학 중이던 2010년 유령회사의 주주에 올랐다. 리펑(李鵬) 전 총리의 딸로 ‘전력 여왕’으로 불리는 리샤오린도 남편과 함께 버진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를 소유했다. 개혁·개방 초기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가 실각한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아들 후더화, 부패로 낙마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당서기의 아내 구카이라이,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의 동생, 톈지윈(田紀雲) 전 부총리의 아들도 스캔들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영국 BBC는 이날 홍콩 외환시장 브로커들의 말을 인용해 “중국 고위층의 검은돈은 대부분 홍콩에서 환전돼 빠져나간다”면서 “사망한 사람의 이름으로 차명 계좌를 만들고 조세 회피처에서 돈세탁을 거쳐 북미와 호주, 유럽의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간다”고 전했다. 지난해 이런 방식으로 중국에서 유출된 자금만 6억 5000만 달러(약 7500억원)로 추산됐다. 홍콩도시대학의 린허리 교수는 BBC에 “고위층이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는 것은 언제 부패가 발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산당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파나마 페이퍼스, 중국 지도층 정조준?…공산당 권위 흔들리나

    파나마 페이퍼스, 중국 지도층 정조준?…공산당 권위 흔들리나

     ‘파나마 페이퍼스’의 유출은 중국 지도부에 대재앙으로 다가올까.  부패척결을 앞세운 중국 지도부의 친인척들이 파나마 최대 로펌 ‘모색 폰세카’가 관리해 온 고객 명단인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스에 대거 이름을 올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중국 사회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파나마 페이퍼스로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의 반부패 운동의 ‘이중잣대’가 드러났다”고 비난했지만 중국 정부는 “근거없는 모함”이라며 보도를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파나마 페이퍼스가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운동에 대한 중국 국민들의 냉소를 강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파나마 페이퍼스를 검증한 결과, 이날 추가로 중국 지도부의 연루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가디언은 최소 8명의 전·현직 지도부의 친족이 포함됐다고 추정했다.  거론된 명단을 보면 마오쩌둥에서부터 시진핑, 후야오방까지 중국 공산당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다.  현직 최고 지도부 가운데는 시 주석을 비롯해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 가운데 3명의 친족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세워진 유령회사의 주주로 확인됐다. 중국 역사상 최대 민주화 운동인 천안문 사태를 유발한 후야오방의 친족도 명단에 포함됐다.  서열 5위인 류윈산 공산당 상무위원은 며느리가 조세피난처의 페이퍼 컴퍼니에서 임원을 맡고 있었다. 서열 7위인 장 가오리 부총리는 사위가 주주로 이름을 올린 회사가 3개나 거론됐다.  건국의 시조로 불리는 마오쩌둥은 손녀사위가 2011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다. 이 손녀사위는 지금도 중국 금융권에서 ‘큰손’으로 불린다.  후야오방의 경우는 의외로 꼽힌다. 누구보다 정치개혁을 주창한 인물이지만 그의 아들 후덴화는 버진아일랜드에 2003년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아버지가 공산당 총서기였던 시절 살았던 중국의 집주소를 이용해 페이퍼 컴퍼니를 등록했다가 덜미가 잡혔다.  리펑 전 총리의 딸과 사위도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해 유럽에서 중국으로 중개무역을 하며 거액을 챙겼다. 쩡칭홍 전 중국 부주석과 한때 중국 상무위원회 서열 4위였던 지아칭린의 친족도 조세도피처에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중국은 지도층 뿐만 아니라 재벌 등이 이번 파나마 페이퍼스에 대거 연루되면서 중국식 자본주의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부 권력층의 부의 탐닉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고 WSJ는 지적했다.  앞서 ICIJ는 시 주석의 매형인 덩 쟈구이가 모색 폰세카를 통해 3개의 유령회사를 소유해 왔다고 폭로했다. 이 회사들은 시 주석이 공산당 서기가 되었던 2012년 무렵까지 모두 해산되거나 휴면에 들어간 상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리키 파울러-저스틴 토머스 연속 홀인원 진기록

    리키 파울러-저스틴 토머스 연속 홀인원 진기록

      리키 파울러와 저스틴 토머스(이상 미국)가 제80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파3 콘테스트’에서 연속 홀인원을 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파울러와 토머스는 7일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열린 파3 콘테스트에 디펜딩 챔피언 조던 스피스(미국)와 한 조를 이뤄 참가했다. 먼저 홀인원을 기록한 선수는 토머스. 4번홀에서 친 티샷은 홀보다 조금 뒤에 떨어진 후 내리막을 타고 굴러 내려와 홀컵으로 떨어졌다.  이어 파울러가 친 티샷도 토머스와 비슷한 곳에 떨어진 뒤 홀로 빨려 들어가면서 관중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마지막 티박스에 선 스피스는 홀인원에 성공하지 못했다. 스피스는 “세 사람 연속 홀인원 샷을 한다는 것은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며 “오늘은 갤러리로 지켜만 봐도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만 80세인 게리 플레이어(남아공)도 7번홀에서 티샷 한 번으로 볼을 홀에 넣었다. 그의 홀인원은 파3 콘테스트 역사상 최고령 선수가 한 것으로 기록됐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의 파3홀 9곳에서 열리는 이 이벤트에서 우승자는 지미 워커(미국)였다. 그는 2번홀 홀인원을 앞세워 8언더파 19타를 쳐 공동 2위 크레이그 스태들러, 키건 브래들리(이상 미국·5언더파 22타)를 따돌렸다. 마스터스에서는 파3 콘테스트 우승자는 본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는 터라 그의본 대회 우승 여부도 눈길을 끌게 됐다.  한편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19)가 이날 파3 콘테스트에 재미교포 케빈 나(33·나상욱)캐디로 변신해 등장, 시선을 모았다. 지난주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 1인자의 위치를 확고히 한 리디아 고는 대회가 열리지 않는 이번 주에 오거스타 골프장을 찾았다. 리디아 고는 지난주 우승 때 “남자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파3 콘테스트에도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 같은 인생…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만화 같은 인생…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

    지난 1일 서울 도봉구 삼양로 캠퍼스에서 만난 이원복(70) 덕성여대 총장은 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의 주인공을 닮아 있었다. 깔끔한 인상이 그랬고, 빠르고 정확하고 군더더기 없는 화법이 또 그랬다. 그는 50년 이상 만화를 그려 왔지만, 정해진 마감 시간을 어겨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첫 어린이 신문 연재로부터 55년째를 맞은 그의 만화와 인생 얘기를 들어 봤다. -“원복이라고 했지? 네가 만화를 그렇게 잘 그린다며? 어디 실력 좀 한 번 볼까?” 친구 아버지가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를 탁자 위에 올려 놓으셨다.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찾아간 서울 종로구 중학동의 소년한국일보 편집국. 1962년 당시 나는 경기고 1학년이었고, 친구 아버지는 그 어린이 신문의 주간이셨다. 아들로부터 ‘교내 학보에 만화 그리는 친구’라고 소개받은 그분은 내가 즉석에서 그린 만화를 보시더니 꽤 만족해하셨다. “우리 신문에 만화 연재해 볼 생각 없니?”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나에게 다른 대답이 있을 리 없었다. 친구 아버지는 당시 유명 언론인이자 수필가, 아동문학가로 활동했던 조풍연(1914∼1991) 선생이셨다. 조 선생은 한국일보에서 문화부장, 사회부장 등을 지내고 이태 전 소년한국일보가 창간될 때 초대 주간으로 왔다. -그때부터 학교 수업이 끝나면 무조건 만화를 그렸다. 솔직히 만화를 ‘그리는’ 것은 아니었고, 미군 부대에서 나와 돌아다니던 명작만화들을 ‘베끼는’ 일이었다. 원본 만화 위에 습자지를 대고 그 아래 비치는 그림의 선을 따라 본을 뜨는 게 나의 일이었다. 내가 작업을 마치면 영어 번역자가 만화 속 말풍선에 한글 대사를 집어넣었다. 나의 첫 연재물은 월터 스콧의 소설을 만화로 만든 ‘아이반호’였다. 이어 ‘엉클 톰스 캐빈’, ‘마르코 폴로’ 등을 차례로 그렸다. -아무리 베낀 그림이라고는 해도 나의 손끝을 떠난 그림들이 많은 학생들이 보는 신문에 실린다는 건 고1 학생에겐 꽤 자부심 가질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를 기쁘게 했던 건 찢어지게 가난한 고등학생의 손에 쥐여진 노란 봉투였다. 처음 받은 돈이 3000원이었는데, 그 돈은 온전히 내 마음대로 처분했다. 1000원을 떼어 형에게 주고, 남은 돈으로 영한사전 한 권 사고 대한극장에서 영화 ‘벤허’를 봤다. 그랬는데도 몇백원이 남았다. 만화가 내 생계수단이 된 출발점이었다. -내가 다섯 살 때 6·25가 터졌는데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 집은 대전에서 꽤 부유하게 살았다. 아버지가 고무신 공장을 운영하면서 시내에 큰 여관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그것들은 모두 폐허가 돼 있었다. 아버지는 이것저것 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되는 일이 없었다. 서울에 가면 좀 나아질까 해서 7남내 중 막내인 내가 열 살 되던 1955년 가족을 데리고 마포에 정착했다. 하루 세 끼를 다 먹을 수 있는 날은 거의 없었다. 코딱지만한 월세방에 부모님과 4형제가 누우면 몸을 뒤집기도 버거웠다. 우리 7남매 중에 큰누나가 결혼해 부산에서 형을 데리고 살고, 둘째 누나가 돈 벌러 지방에 내려가 있지 않았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한데에서 잠을 자야 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되는 일 없기는 서울이나 대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와중에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옷수선으로 생계를 꾸렸는데, 대전의 부유한 가문 출신이 갑작스럽게 고생을 만난 탓인지 서울에 올라오고 얼마 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셨다. 실의에 빠진 아버지는 몇 년 뒤 낙향하셨고, 내가 스무 살 되던 해 돌아가실 때까지 서울에 올라오지 않으셨다. -부모님은 경제적으로는 7남매에게 물려주신 게 없었지만, 약간의 재능은 주셨다. 대체로 공부 머리가 좋은 편이었고,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그림에 대한 재능까지 내려 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내 그림 실력은 유명했다. 너댓 살 때부터 영화 같은 걸 보고 나면 그것들을 똑같이 따라 그리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동대문국민학교에 전학했는데, 공부는 늘 1등 아니면 2등이었다. 어렵지 않게 경기중학교에 들어갔는데, 2학년 때 미술반에 가입했다. 부잣집 아이들은 외제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난 그걸 살 돈이 없었다. 얼마 후 미술반을 나왔다. -점심이면 식모 아주머니가 자가용차를 타고 와서 따뜻한 도시락을 전달해 주고 가는 애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점심을 굶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절대빈곤의 시대. 내가 사는 동네에 오면 다 우리 집 수준이었다. -고1 때부터 신문에 만화를 연재했으니 학업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전체 석차가 중하위권에 머물렀지만, 내가 경기고 학생이라는 데서 오는 대학입시의 자신감, 이런 것은 좀 있었다. (실제로 우리 경기고 61회 동창 480명 중에 360명이 서울대에 들어갔다) “내가 만화 그리느라고 시간을 빼앗겨서 그렇지, 공부에만 전념하면 서울대 의대는 충분히 갈수 있을 거야.”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정한 목표였다. 하지만, 우연히 병원에서 피투성이가 돼 있는 환자를 보게 됐는데,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바꾼 장래 희망이 건축가였다. 당시 나에게 건축가는 T자와 제도기를 들고 폼 잡고 앉아 ‘언덕 위의 하얀 집’을 그리는 직업이었다.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직업으로서 만화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자만했던 걸까, 대학에 낙방을 하고 말았다. -재수를 해서 1966년 서울대 건축학과에 들어갔다. 세계의 유명한 거장들처럼 나만의 랜드마크를 하나 만들겠다는 야심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 ‘수업 첫날부터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수학 미적분이라니….’ 의지가 차츰 꺾이더니 얼마 후에는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다. “나는 좀 어려울 것 같아. 오늘 수업 그냥 빠질란다. 대신에 이따가 저녁에 내가 술 한 잔 살게.” 수업에 빠지는 날이 늘어갔다. 하루 종일 기숙사에서 만화를 그리고 빨리 어둠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달디 단 술이 나와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그곳으로 달려나갈 생각뿐이었다. 만화를 그리다 보니 수중에 돈이 좀 있었다. 그 시절, 나와 안 노는 친구는 있었어도, 나를 알면서 내가 사는 술을 안 마신 친구는 없었을 것이다. -대학생이 돼서는 나름 나만의 그림체와 스토리를 갖게 됐다. 순수한 나의 창작 만화를 그려 소년한국일보에 연재했다. 명랑만화, 스포츠만화, 순정만화 등 분야도 다양했다. ‘야망의 그라운드’, ‘미니 바람 꽃구름’, ‘사랑의 학교’, ‘자마곰 삼형제’ 같은 작품이 그 시절 내 대표작인데, 신문사에서 편집국 한쪽에 내 자리를 따로 만들어 줬을 정도였다. 사실 신문사 입장에서는 적당히 인기 있는 원고 넘겨주지, 마감시간 또박또박 잘 지키지, 원고료 많이 줄 필요 없지 나 같은 보물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한창 때는 소년한국일보에 작품 3개를 동시에 싣기도 했는데, 그걸 다 ‘글·그림 이원복’으로 할 수가 없어서 ‘이상권’, ‘성창경’ 같은 친구들 이름을 필명으로 쓰기도 했다. 상권이나 창경이는 자기 이름이 공짜로 신문에 나가는 것도 모자라 나한테 술까지 얻어먹는 호사를 누렸다. -결국 나는 만화가 생활 때문에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장을 따지 못했다. 1972년 군대에 들어가 1975년까지 만화만 그렸는데, 그러는 사이 형들은 ‘형제들의 다짐’을 속속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둘째 형을 제외한 우리 형제들은 1966년 첫째 형(이정복·86·전 한양대 교수)이 독일로 철학을 공부하러 간 뒤 약속을 한 게 있었다. 우리도 학비가 무료인 독일로 유학을 하되 먼저 간 형이 바로 아래 동생의 초기 정착금을 위해 1년간 돈을 벌자는 거였다. -셋째 형(이창복·80·전 한국외국어대 부총장)이 쾰른대에 독문학을 공부하러 갔다. 형은 대학 입학을 1년 동안 미루고 식당에서 일해 넷째 형(이정춘·74·전 한국언론학회장)에게 비행기 티켓을 보내 주었다. 넷째 형은 독일 뮌스터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해 나중에 중앙대 교수가 됐는데, 나 역시 그 형의 덕을 보았다. 1975년 뮌스터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했다. -독일에 도착한 날부터 유럽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창작한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을 ‘새소년’에 6년간 연재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전편인 셈이다. 그런데 너무 초기에 그린 만화여서 나중에 보니 오류가 많았다. -여행과 독서는 내 창의력의 밑천이자 큰 자산이었다. 사람들은 내 유학생활이 꽤 어려웠을 것으로 알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다른 유학생들이 5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았다면 난 100만원을 쓰고 살았다. 한국에 그려 보낸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 원고료 덕이었다. 폐차 직전의 자동차를 1000달러쯤 주고 사서 1만∼2만㎞ 정도 달리고 버렸다. “내가 여기를 언제 또 올 수 있겠나.” 이곳저곳 다니는 게 즐겁기도 했지만, 내 인생과 내 청춘에 대한 의무감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독일 유학 중에 잠시 한국에 나왔다가 당시 김수남 소년한국일보 사장을 만났다. 그때는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이 끝나 있던 상태였다. 다시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자고 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어때?”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제목은 이렇게 탄생했다. 1981년 10월부터 1986년까지 소년한국일보에 5년여에 걸쳐 총 1376회를 연재했다. 이듬해인 1987년 그걸 묶어 책으로 만드니 6권(먼나라 이웃나라 유럽편)이 나왔다. 2012년 전체적으로 새로 그려 재발간을 하고 2013년 스페인편까지 완성했다. -잠시 귀국해 덕성여대 교수 임용을 확정 짓고 1984년 5월에 짐을 싸기 위해 독일에 다시 들어갔는데, 스물세 살의 한국 여학생이 언론학을 공부하기 위해 우리 마을에 와 있었다. 당시 나는 서른 여덟이었다. 3개월간 교제를 했다. 그녀는 유학을 포기하고 15세 연상인 나와 한국으로 돌아와 이듬해 결혼했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국내에서만 1700만부가 팔렸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글로벌화라는 세계적인 기조의 순풍을 잘 탄 것 같다. 우리나라에 유럽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것도 책의 인기를 높여 주었다. 유럽편의 내용들은 상당 부분 내 삶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 자체다. 그렇지 않은 중국편과 일본편을 위해서는 공부를 위해 각각 20회와 50회 이상 현지를 다녀왔다. 미국은 1999년 방문교수로 가서 살았던 게 도움이 됐다. -교수를 하는 동안 외부 활동을 주로 했다. 정작 덕성여대를 위해 기여를 못한 게 아쉬워 지난해 3월 총장직을 맡았다. 선거 공약으로 ‘남녀공학 전환’을 내세웠고 장기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젊어서는 ‘기러기 아빠’였는데, 나이가 들면서 지금은 ‘독거 노인’이 됐다. 얼마 전 서울 잠실의 우리 집으로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왔다. 요즘 혼자 살다가 변사하는 노인이 많아서 현황 파악을 하겠다고 했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내 현실인 걸 어쩌겠나. 내 건강의 비결은 운동을 전혀 안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가장 정밀한 기계이기 때문에 아껴 쓸수록 오래 쓴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것인데, 최대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이원복 덕성여대 총장은 우리나라 교양 만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글로벌 시대 지구촌 각국의 이야기를 만화로 풀어내 한국인의 국제적 시야를 넓혔다는 평을 받는다. 55년의 만화 경력에 더해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독일 뮌스터시·코스펠트시 초청 개인전을 가졌고, 권위 있는 2009 볼로냐 국제 일러스트전에서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에 선정됐다. ▲1946년 대전 출생 ▲경기중, 경기고, 서울대 건축공학과(수료), 독일 뮌스터대 서양미술사·시각디자인 석사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 석좌교수, 제10대 총장 ▲한국 애니메이션 만화학회 회장,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 ▲‘먼나라 이웃나라’, ‘가로세로 세계사’, ‘와인의 세계·세계의 와인’, ‘만화로 떠나는 21세기 미래여행’, ‘세계사 산책’ 등 저서 다수
  • 에루페 귀화 끝내 발목 잡은 ‘약물’

    에루페 귀화 끝내 발목 잡은 ‘약물’

    케냐 출신 마라토너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왼쪽·28·청양군청)의 한국 국적 취득이 결국 좌절됐다. 대한체육회는 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제1차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고 육상선수 에루페의 특별 귀화 추천을 심의한 결과 부결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함께 심의 대상에 오른 미국 출신 여자농구 선수 첼시 리(오른쪽·27·KEB하나은행)는 특별 귀화 추천 대상자로 선정됐다. 에루페의 귀화 추천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2년 도핑 이력 때문이다. 당시 에루페는 도핑 테스트 양성 반응으로 2년 출전 금지 처분을 받았고 지난 1월 특별 귀화 추천 심의에서도 이 탓에 추천이 보류됐다. 그때 에루페는 “말라리아 치료 목적으로 쓴 약물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체육회는 “그의 주장을 입증할 추가 자료 검토가 필요하다”며 결정을 미뤘다. 이날 체육회는 “치료 목적으로 이 약을 쓰겠다고 미리 신청할 수 있는 ‘치료목적 사유 면책특권 제도’가 있음에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국제육상경기연맹으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았을 때도 이의신청을 할 수 있었지만 이도 하지 않았다”며 에루페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체육회는 “에루페 귀화 추천에 대한 재심의는 없다”면서 “정말 귀화하고 싶다면 특별귀화가 아닌 일반귀화 신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에루페는 지난달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5분 13초의 국내 대회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다. 특별 귀화가 이뤄질 경우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별 귀화 추천이 확정된 여자농구 선수 첼시 리는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국 국적을 최종 획득한다. 체육회에서 추천한 선수가 법무부 국적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경우는 아직 없다. 첼시 리는 오는 6월 프랑스에서 열리는 리우올림픽 최종 예선에 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할머니가 한국계로 알려진 그는 2015~16시즌 여자프로농구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득점, 리바운드 등 6관왕을 차지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가계부는 말해준다, 당신의 성격과 행복을!(연구)

    가계부는 말해준다, 당신의 성격과 행복을!(연구)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수많은 연구가 있어도 대부분 사람은 자기 은행계좌의 잔액 뒷쪽에 ‘영’(0)이 더 붙어 있는 것을 싫어할 리는 없다. 그런데 생활에 필요한 돈이 있고 없음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행복감은 더 많은 여윳돈이 있을 때 생길 수 있는데 이는 그 많고 적음이 아니라 실제로 돈을 어디에 쓰느냐에 달려 있으며 개인의 성격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영국인 625명의 실제 은행 거래내용 7만6863건을 분석, 6개월간의 거래내용 최소 500건을 소비 범주 59분야로 분류했다. 그리고 그 거래내용의 익명 제공에 동의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성격과 행복에 관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또 연구진은 각 개인의 성격을 심리학 연구에서 널리 쓰이는 ‘빅파이브’(Big 5) 성격 특성으로 분류해 어떤 소비 범주를 주로 사용하는지 비교 분석했다. 참고로 빅파이브는 개방성(Openness), 성실성(Conscientiousness), 외향성(Extraversion), 우호성(Agreeableness), 신경증성(Neuroticism)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외향성이 큰 사람들은 술집 등 유흥에 지출하는 것에 선뜻 동의했으며 성실성이 큰 사람들은 기부금이나 반려동물 및 그 용품에 쉽게 지갑을 열었다. 반면 성실성이 큰 사람들의 주로 쓴 소비 범주는 보험이나 건강, 운동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들 참가자의 실제 구매와 빅파이브를 사용한 성격을 비교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에 맞는 분야에 돈을 더 많이 지출하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외향성이 매우 큰 사람은 반대로 내향성이 큰 사람보다 매년 술집에서 한 사람당 약 52파운드(약 8만4000원)를 더 썼다. 이와 비슷하게 성실성이 매우 큰 사람은 성실성이 낮은 사람보다 매년 건강과 운동에 한 사람당 약 124파운드(약 20만2000원)를 더 썼다.  전반적으로 이 분석에서는 자기 성격에 맞는 지출에 돈을 더 쓴 사람들이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격과 소비를 일치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개인의 총수입이나 총지출의 크고 작음보다 개인의 행복에 더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또 연구진은 사람들에게 서점이나 술집에서 쓸 수 있는 쿠폰 하나씩 주고 행복감을 비교한 두 번째 실험을 통해 이번 결과를 뒷받침했다. 술집에서 지출해야 했던 외향성이 큰 사람들은 같은 지출을 한 내향성이 큰 이들보다 더 행복감이 컸다. 이는 반대로 서점에서 지출해야 했던 내향성이 큰 사람들은 역시 같은 지출을 한 외향성이 큰 이들보다 더 큰 행복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이끈 산드라 마츠 심리학 박사과정 연구원은 “우리 연구결과는 우리가 개인으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분야에 돈을 쓰는 것은 올바른 직업과 올바른 이웃, 심지어 올바른 친구와 배우자를 찾는 우리의 웰빙에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소비와 행복의 연관성에 관한 더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는 연구를 함으로써 매일 우리는 소비의 작은 선택을 통해 행복을 찾는 방법에 관한 더 개별화된 조언을 제공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조 글래드스턴 케임브리지대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연구원은 “기존 연구에서는 돈과 전반적인 웰빙 사이의 관계가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우리 연구는 실제 은행 거래내용을 조사함으로써 자신의 성격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에 지출해 심리적 욕구를 만족하면 행복이 커질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검색을 기반으로 하는 추천 엔진을 사용하는 인터넷 가맹점 등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각 회사는 고객의 웰빙 개선을 위한 제품과 서비스를 추천하는 데 이번 정보를 사용할 수 있으며 고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소비와 성격의 상관관계  ■ 개방성(Openness) 낮은 연관성: 교통범칙금, 대출금 높은 연관성: 엔터테인먼트, 미용, 화장품  ■ 성실성(Conscientiousness)  낮은 연관성: 도박, 장난감, 취미 높은 연관성: 보험, 건강, 운동  ■ 외향성(Extraversion) 낮은 연관성: 보험, 회계사 비용 높은 연관성: 엔터테인먼트, 여행  ■ 우호성(Agreeableness) 낮은 연관성: 교통범칙금, 도박 높은 연관성: 기부금, 반려동물  ■ 신경증성(Neuroticism) 낮은 연관성: 문구류, 호텔 높은 연관성: 교통범칙금, 도박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이도운의 빅! 아이디어] 4·13 이후의 청와대와 김무성, 반기문

    [이도운의 빅! 아이디어] 4·13 이후의 청와대와 김무성, 반기문

    청와대는 4·13 총선이 끝나면 노동개혁 등 정부가 미뤄 둔 정책 과제들을 완수하는 데 집중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2017년 대통령 선거를 향해 달려갈 텐데, 여권에서 관심 있게 바라볼 대목이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상호 관계다. # 청와대와 김무성, ‘아직’ 건너지 않은 강 김 대표는 지난달 30일 관훈토론회에서 사실상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총선 직후 대표직 사퇴와 저서 출간 계획을 밝혔고, “권력을 다룰 줄 안다”고 차별화된 경쟁력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총선 공천 과정에서 당내 세력을 확실하게 다졌다. 공천자 가운데 50명 정도가 김 대표 지지자로 분류된다. 이 정도면 독자적으로 대선전을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껄끄러운 관계라는 것은 여전히 큰 걸림돌이다. 공천 과정에서 청와대와 김 대표는 “함께 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 대표는 관훈토론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강을 아직 건너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청와대는 ‘아직’이라는 단어에 주목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건너겠다는 뜻인가? 정치는 생물과 같다. 청와대와 김 대표의 관계가 껄끄럽다고 친박 전체와 김 대표 간의 관계가 계속 나쁘란 법은 없다. 이번 총선 공천의 최대 수혜자는 친박의 대표 주자인 최경환 의원과 김 대표라는 말이 나온다. 필요하면 양자가 협력하는 그림도 배제할 수는 없다. # 김무성과 반기문, 경쟁과 협력의 갈림길 지난해 7월 30일 워싱턴에 이어 뉴욕을 방문한 김무성 대표 일행이 유엔본부에서 반 총장과 만났다. 잠재적인 여권 차기 주자 간의 만남이어서 관심이 집중됐지만, 회동은 그저 무난하게 끝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당시 면담에서 반 총장은 김 대표를 앞에 두고 박 대통령을 두 차례나 ‘칭송’했다. 또 김 대표 측의 발표와는 별도로 유엔 사무국에서도 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반 총장 측으로서는 김 대표를 환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묶음으로 엮이지 않도록’ 경계도 했다고 봐야 한다. 김 대표는 줄곧 대선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반 총장이 실제로 국내 정치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김 대표 측에서 반 총장의 의중을 타진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반 총장 측이 거기에 응했을 가능성은 없다. 김 대표는 관훈토론회에서 반 총장에게 “정체성 맞는 정당을 골라 당당하게 선언하고 활동하라. 새누리당은 환영하지만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 도전해야 한다. 들어오시면 얼마든지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경쟁과 협력의 메시지가 6대4 정도인 것 같다. # 청와대와 반기문, 늘 즐겁진 않겠지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줄곧 국제무대에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가 꽤 쌓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청와대와 반 총장 측 관계가 늘 아무런 문제 없이 가는 것은 아니다. 새해 첫날 청와대는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면서 반 총장이 한·일 간 위안부 합의에 대해 평가한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것이 양자 간의 합의에 의한 공개인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한 친박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반기문 대통령에 친박 총리’ 얘기를 꺼냈다가 좀 머쓱해졌다고 한다. 설령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임기 중반에 차기가 거론되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다. 반 총장은 지난 2일 재외국민 투표를 하면서 “대한민국의 상황이 위중하다. 나라를 잘 이끌어 갈 지도자를 뽑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정치에 반 발자국쯤 들어온 것 같다. 반 총장은 5월 말 방한할 예정이다. 총선이 끝나고 정치권이 재편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될 것이다. 특히 친박 측에서는 반 총장이 이번 방문 기간 중에 박 대통령을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주고받을지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5월은 너무 빠르지 않을까. 반 총장의 투표 메시지를 감안할 때, 하반기로 접어들면 어떤 식으로든 국내 정치와 관련한 메시지들이 나오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장
  • 연분홍 수놓은 힐링 산길… 서해 절경의 파노라마

    연분홍 수놓은 힐링 산길… 서해 절경의 파노라마

    진달래 군락 30만㎡… 압도적 규모 자랑 코스 5개… 가족·연인 등산 나들이 인기 분재 전시·화전 만들기 등 체험행사 다양 초지진·전등사 등 주변 유적·명승도 볼만 진달래는 개나리와 함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나무다. 한국의 산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져 있지만, 제대로 만끽하려면 군락지를 찾아야 한다. 연분홍색 진달래꽃은 집합될수록 강력하다.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 군락지는 봄날을 환희의 아우성으로 물들이기에 충분하다. 수도권에서 봄철 꽃축제의 백미 중 하나는 인천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축제다. 문화재의 고장인 강화군은 축제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진달래축제만큼 관심을 끄는 것은 없다. 전국적으로도 명성이 퍼져 매년 이맘때면 무르익어 가는 봄의 정취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올해로 8회째인 이 축제는 오는 12일부터 26일까지 고려산 일대에서 열린다. 다른 지역의 진달래축제가 대개 평지에서 개최되는 것에 비해 강화 진달래축제는 해발 436m 정상에서 열린다. 고려산 정상 앞 비탈에는 잡목이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다. 정상에서 능선 북사면을 따라 355봉까지 약 1㎞를 연분홍으로 물들인다. 마치 연분홍 안개가 피어오른 듯하다고 할까. 고도에서 꽃이 피기 때문에 더욱 진한 색깔의 잔달래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축제 기간에는 꽃의 색도나 크기가 절정을 이룬다. 도시의 복잡함과 스트레스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꽃 감상뿐만 아니라 눈을 들어 북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북한 개성의 송악산이 선명한 자태를 드러낸다. 진달래 군락이 배치된 형상을 보면 장소에 따라 삼각형 또는 역삼각형을 이뤄 마치 사람이 일부러 심어 놓은 듯하다. 면적도 30만㎡에 달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산에 있는 진달래 군락과 비교하면 규모에서 압도한다. 이러한 위용 덕분에 매년 축제 기간에 10만∼15만명이 다녀간다. 정상 능선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등산로가 있어 이 길을 걸으며 편하게 진달래 군락을 감상할 수 있다. 꽃을 좀더 가까이서 보려면 등산로 곳곳에 조성된 샛길을 이용하면 된다. 이곳에는 포토존도 있어 추억을 담기에 안성맞춤이다. 때문에 연인과 가족이 함께하는 봄나들이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19~21일 꽃 활짝 예상… 올해 20만명 찾을 듯 지난해 진달래축제에 참석했던 유모(36·인천 연수동)씨는 “400m가 넘는 고려산 천지를 분홍색으로 수놓은 듯해 울림이 컸다”면서 “올해도 가족과 함께 찾아가 지친 마음을 달래고 인근 관광지도 둘러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화군 관계자는 “고려산 진달래축제는 수도권 주민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거리에 있어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면서 “올해는 방문객이 20만명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화도는 위도가 높아 다른 곳보다 진달래가 조금 늦게 피는데 올해는 오는 19∼21일쯤 꽃이 만개할 것으로 보인다. 진달래 군락지로 가는 코스는 다양하다. 대략 5가지로 분류된다. 1코스는 백련사~군락지, 2코스 청련사~군락지다. 또 3코스 고비고개~군락지, 4코스 적석사~군락지, 5코스 미꾸지고개~군락지다. 빠르고 편하게 오르려면 1코스를 택해야 한다. 48번 국도변에서 출발해 백련사를 거쳐 정상에 이르는 코스로, 축제 기간에 찾는 관광객들은 대개 이 길을 택한다. 대신 교통혼잡과 포장도로를 통해 산을 오르는 밋밋함을 감수해야 한다. 번잡함을 피하려면 2코스나 3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4코스와 5코스는 군락지까지 가는 길이 2배가량 길다. 고려산 진달래축제는 등산을 겸한다는 장점이 있다. 제대로 등산을 즐기려면 고촌4리에서 진달래 군락지로 오르는 길을 권하고 싶다. 마을회관부터 동네 길을 걷다가 인가가 드문 지점부터 시작되는 등산로를 통해 정상으로 오르면 된다. 그곳에서 진달래를 감상한 뒤 서쪽 낙조봉으로 이어지는 4㎞가량의 능선을 타면 색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오솔길로 된 이 등산로는 주변 경관이 아기자기한 데다, 정상 군락지만은 못하지만 길 좌우에 진달래가 풍성하게 피어 있다. 능선을 오르내리는 경사 또한 적어 마치 둘레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능선 중간에는 21기의 고인돌군(群)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곳 고인돌은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 고도보다 200여m 높은 곳에 있어 이채롭다. 옛날에는 기중기 같은 중장비가 없었는데 어떻게 수톤에 달하는 돌을 이곳으로 옮겼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낙조봉에 오르면 교동도 일대의 강화 앞바다, 영종도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다와 이어지는 한강, 임진강, 예성강 등도 한눈에 들어온다. 낙조봉에서 적석사 쪽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3대 낙조 조망대인 낙조대가 나온다. 동해안 정동진의 반대쪽에 있다고 해서 ‘정서진’으로도 불린다. 여기서 바라보는 서해 석양은 ‘강화 8경’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4코스에 고인돌 21기… 국내 3대 낙조 조망대도 진달래축제와 관련된 부대 행사는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고인돌공원에서 열린다. 특히 이번부터는 행사의 주관을 민간에 위탁해 다채로운 행사를 예고하고 있다. 관련 프로그램으로는 진달래분재 전시, 진달래화전 만들기, 진달래 엽서전 등의 체험전과 아마추어 밴드를 중심으로 한 버스킹 페스티벌, 먹거리장터 등이 준비돼 있다. 강화도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부스도 운영된다. 강화군은 축제 기간에 교통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임시버스를 배치하고 임시주차장 9곳도 운영할 계획이다. 진달래축제를 찾은 김에 강화도에 산재한 볼거리와 먹거리를 섭렵하는 것도 또 다른 포인트다. 강화해안도로는 문화재를 끼고 형성돼 있어 드라이브 자체가 문화재 관람이다. 강화읍 대산리~길상면 섬암교 구간(21.1㎞)으로 조선 말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지은 덕진진, 초지진, 갑곶돈대, 용진진, 광성보, 연미정 등을 선을 잇듯이 연결한다. 강화읍 풍물시장은 할머니들이 산에서 캐온 봄나물과 각종 농작물이 풍성해 옛날 장터를 연상시킨다. 아르미애월드(불은면 삼성리)는 강화약쑥 테마공간으로 다양한 약쑥 제품을 팔고 약쑥을 이용한 체험장, 도자기체험실 등을 운영한다. ●석모도·초지리 매화마름 군락지도 찾아볼 만 최고(最古)의 절인 전등사와 보문사도 찾아볼 만하다. 전등사는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건립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절로 알려졌다. 보문사는 외포리 선착장에서 여객선으로 10여분 거리에 자리잡은 석모도에 있는데 우리나라 3대 기도성지로 꼽힌다. 강화갯벌은 독일·네덜란드 연안 갯벌과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평가된다.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등 세계적인 희귀 조류의 서식지다. 초지리 매화마름군락지는 국내에서 가장 작은 람사르습지(3000㎡)로 멸종 위기에 처한 매화마름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조성했다. 볼거리의 궁합은 먹거리다. 강화도의 상징이 땅에서는 인삼, 순무라면 바다에서는 밴댕이다. 남쪽에서부터 연안을 따라 올라오는 밴댕이는 맛이 광어, 우럭에 뒤지지 않는 데다 값도 저렴하다. 갯벌장어는 갯벌을 막아서 만든 어장에서 생산된다. 흙냄새와 비린내가 거의 없는 데다 고소하고 담백한 맛은 양식장어와 비교할 수 없다. 자연산보다 맛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육질과 맛을 비교할 때는 소금구이로 확인해야 한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화제영상] 플로리다서 소 잡아먹은 4.6m 거대 악어 포획

    [화제영상] 플로리다서 소 잡아먹은 4.6m 거대 악어 포획

    소 잡아 먹은 거대 악어 사진이 네티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데일리뉴스는 지난 2일 플로리다 주(州) 오키초비 아웃웨스트 농장에서 소를 잡아먹은 거대 악어가 포획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에는 목장주 리 라이트세이와 악어사냥 전문가 브레이크 고드윈이 잡은 거대 악어가 체인에 목을 매단 채 트랙터에 걸려 있다. 리의 아들이 악어의 뒷다리를 잡고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리와 브레이크는 연못가로부터 6m 떨어진 물에서 악어를 발견했다. 리는 즉시 총으로 악어를 죽인 뒤 트랙터를 이용해 악어를 물 밖으로 끌어냈다. 이날 잡힌 악어는 몸길이 4.6m, 몸무게 363kg으로 플로리다에서 발견된 가장 큰 악어로 알려졌다. 리는 지역언론 폭스113과의 인터뷰를 통해 “악어 발견 당시 물속에서 우리 농장의 죽은 소를 발견했다”며 “농장 가축들이 목을 축이려 연못에 가기 때문에 악어를 사냥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리를 도와 함께 악어를 사냥한 브레이크는 “야생에 이 악어처럼 큰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며 “사냥은 우리 삶의 방식이며 우리는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웃웨스트 농장은 사냥한 악어 고기를 기부할 계획이며 박제한 악어를 사냥쇼에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영상= Outwest Farms facebook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핫뉴스] [영상] 영국 템스강서 정체불명 거대 생명체 포착 ▶[핫뉴스] 코브라 vs 독수리 싸움의 승자는?
  • 푸틴·메시·청룽 ‘검은돈’ 의혹… 시진핑 매형도 유령회사

    푸틴·메시·청룽 ‘검은돈’ 의혹… 시진핑 매형도 유령회사

    푸틴 측근, 2조원 이상 자금 숨겨 “그의 허락없이 모을 수 없는 액수” 캐머런 英총리 부친도 탈세 의혹 파나마 로펌 문건 1150만건 분석 “고객들 소송 방지 위해 기록 삭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 영화배우 청룽(成龍) 등 ‘월드스타’들이 막대한 은닉 재산을 국제적 법률회사를 통해 관리해 온 정황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이런 사실은 유명인들의 조세 회피를 돕는 국제적 네트워크가 있음을 알려 주는 비밀 문건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비영리 탐사보도단체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3일(현지시간) “파나마 법률회사 ‘모색 폰세카’의 내부 자료를 분석해 전·현직 국제 지도자와 사업가, 범죄자,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들의 조세 회피 증거를 보여주는 1150만건의 기록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차이퉁이 1977∼2015년 모색 폰세카가 연루된 조세 회피처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 입수한 자료는 용량만 2.6TB(테라바이트)에 달해 신문사 한 곳에서 분석하기에 너무 방대했다. 문건에 드러난 조세 회피를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만 24만개가 넘는다. 쥐트도이체차이퉁은 ICIJ에 협업을 요청했고, 전 세계 109개 언론사가 함께 참여해 1년가량 공동 작업에 나섰다. 한국에선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가 참여했다. ●아이슬란드 총리, 채권 수백만弗 수익 이번 문건에는 전·현직 정상 12명을 포함한 세계 각국 정치계 인사 140명이 포함돼 있어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시그뮌뒤르 다비드 귄뢰이그손 아이슬란드 총리는 2009년 의회 입성 당시 버진아일랜드 소재 회사를 갖고 있다 몇 달 뒤 부인에게 1달러를 받고 회사를 팔았다. 이 회사는 2008년 금융위기로 무너진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채권 수백만 달러어치를 갖고 있었다. 금융위기 당시 은행들을 압박하는 채권자들에게 “썩은 고기를 파먹는 대머리 독수리(벌처)”라고 비난했던 그가 뒤로는 은행 채권을 사들여 투자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측근들과 관련된 기업과 은행 등에 숨겨진 자금이 최대 20억 달러(약 2조 3460억원)에 달했다. ICIJ는 “푸틴의 이름이나 그의 역할 등이 직접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자금은 푸틴의 허락 없이는 모을 수 없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아버지인 이언 캐머런은 2010년 별세할 때까지 운영한 펀드 ‘블레어 홀딩스’의 세금을 영국에 내지 않기 위해 파나마에 이 펀드를 등록했다. ●리펑 前 중국총리 딸도 유령회사 소유 기회 될 때마다 ‘부패 척결’을 외치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매형 덩자구이(鄧家貴)도 버진아일랜드 소재 회사 2곳을 보유하고 있었다. 리펑(李鵬)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도 리 총리 재임기(1987~98년)에 버진아일랜드에 회사를 설립해 소유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적 축구 선수로 꼽히는 아르헨티나 출신 리오넬 메시와 영화배우 청룽, ‘인도의 여신’으로 불리는, 1994년 미스월드 출신 배우 아이슈와라 라이도 모색 폰세카의 주요 고객으로 밝혀졌다. ICIJ는 “모색 폰세카가 관리한 회사가 전부 불법적인 목적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으며 파나마 같은 조세 회피국에 회사를 설립한 것도 불법은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모색 폰세카의 고객 중에는 피라미드 사기꾼과 마약 거상, 조세 회피범 등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모색 폰세카가 고객들이 미국에서 송사에 휘말리지 않도록 컴퓨터 등에서 각종 기록을 철저히 지워 왔고 서류상 날짜도 주기적으로 고쳐 온 것으로 드러난 만큼 탈세 의도를 의심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영국 BBC방송도 “이번에 공개된 문건들을 살펴보면 (부호들이) 돈의 실제 소유주를 철저히 숨기고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도 감추며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조세 피난처를 악용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인도 총리로 6년 만에…모디, 사우디서 협력 강화

    인도 총리로 6년 만에…모디, 사우디서 협력 강화

    취임 후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왼쪽) 인도 총리가 3일(현지시간) 리야드에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과 회담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인도 총리가 사우디를 방문한 것은 2010년 이후 6년 만이다. 리야드 AFP 연합뉴스
  • 해외여행 | 교류交流에 대하여-조선통신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해외여행 | 교류交流에 대하여-조선통신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교류交流에 대하여 조선통신사의 흔적을 기록하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사실에 의도를 개입시킨 ‘불순한 장난’이라면, 그 장난을 가능케 하는 원인은 역사에 대한 무지無知에 있다고 생각했다. 무지를 지知로 바꾸는 첫 번째 행동은 기록하는 것이다. 한양에서 에도까지 왕복 4,000km를 오갔던 조선통신사, 그 흔적을 기록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나는 잠시 부끄러웠다 강우량 많다는 도시답게 닛코日光에 들어서자 눈발이 날렸다. 눈은 온천마을의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더 도드라지게 해주는 소품 같았다. 기누가와鬼怒川 온천은 소박하면서 깨끗했다. 다음날 아침에도 눈은 그치지 않았다. 조선통신사 숙소 터가 있다는 이마이치今市 객관으로 가는 날이었다. 통신사 300명을 포함해 일본인 경호원까지 약 2,000명이 이틀 동안 머물렀다는 숙소는 지금 유적비 하나만 남아 있다고 했다. 안내원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못 갈 수도 있다며 염려했다. 그러나 고작 기념비 하나 세워져 있는 곳이라니 설령 가지 못한다 해도 크게 낙담할 건 없다 싶었다. 점심 무렵 눈은 멎었고 가이드는 낭보라며 일정대로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버스는 황량한 공터에 취재진을 내려 줬다. 유적비가 있는 풀밭 속까지 누군가 애써 눈을 치운 흔적이 선명했다. ‘닛코 조선통신사 연구회’의 야나기하라 가즈오키씨가 일정이 취소될까 노심초사하며 오전 내내 낸 길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노신사는 차분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유적비를 설명했다. 통신사의 최종 목적지는 천황이 있는 에도(江戸, 현재의 도쿄)였지만 1636년 4차 통신사 300명은 도쿄에서 150km 떨어진 닛코까지 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신으로 모신 도쇼구東照宮, 동조궁를 보여 주고 싶은 막부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그것을 위해 일본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약 100억원을 들여 임시 숙소를 지었다. 지금은 그 터에 기념비를 하나 세웠다. 2007년 조선통신사 400주년을 기념해 600만엔의 모금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조선통신사보다, 기념비보다, 이것 하나를 보여 주기 위해 전날부터 일기예보를 점검하고 오전 내내 홀로 눈을 치웠을 야나기하라씨의 열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가 더 궁금했다. 직업적 책임감이라기엔 그의 눈빛과 음성과 분위기가 연출 없이 정직했다. 그것은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에게서 나오는 형형함이었다. “당신에게 조선통신사는 어떤 의미냐”고 물었다. 그는 “스승과 대마도를 가서 우연히 조선통신사 관련 자료를 접하게 되었고 스승이 돌아가신 후 깊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답했다. “지금의 한류처럼 당시의 조선통신사는 한시, 서도, 문화, 그림 등을 일본인들에게 전파해 준 공로가 분명히 있다”는 말도 강조했다. 그는 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사건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고 보존해서 타인에게 보여 주려는 것이 눈 속의 길을 만들어 낸 힘이었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한국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쟁점이 사실에 의도를 개입시키면서 발생하는 ‘불순한 장난’이라면 역사에 있어 무지無知는 그 장난을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무지를 지知로 바꾸는 첫 번째 행동은 기록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보존이며 세 번째는 관심이다. 조선통신사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관심이 일천하다는 이유로 나는 기록을 일구는 노인 앞에서 잠시 부끄러웠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 일본을 통일하고 250년 지속된 에도 막부 시대를 연 초대 쇼군將軍.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으로 단절되었던 조선과의 무역을 재개하기 위해 1607년 조선에 먼저 국서를 보냈고, 이후 조선이 제시한 제한적 무역조건 아래 조선통신사의 길이 열렸다. 조선통신사의 장대한 여정 조선시대에 12번의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다.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으면서 활성화됐다. 일본은 조선의 앞선 문화를 통신사를 통해 접하고 싶었고 조선은 일본의 재침략 의도를 점검하면서 조선인 포로를 생환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양국이 믿음信으로 소통通하자 해서 통신通信사가 되었다. 정사(당상관급), 부사, 종사관 3사가 인솔하며 군관, 역관, 의원, 화원(화가), 마상재(달리는 말 위에서 무예를 하는 사람), 소동(심부름꾼 아이) 등이 따라갔다. 약 300~500명으로 구성됐다. 한양에서 에도까지 왕복 4,000km 거리를 수로와 육로로 이동했다. 8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현해탄 건너기도 쉽지 않았으니 차출된 사람은 유서를 쓰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무사귀환을 빌며 해신제를 지냈다. 행렬은 일본 사무라이 호위무사까지 800명이 넘었다. 도로를 닦고 숙소를 짓고 배를 만들고 하는 준비기간만 반년이었다. 한 번 통신사를 맞이하는 데 일본의 1년 국가 예산을 모두 쏟아 부을 정도(NHK 보도에 따르면 현재 가치로 약 1,000억엔한화 약 1조750억원)였다니 일본 입장에서도 무척 큰 외교행사였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고립된 섬나라 일본은 중국의 앞선 문명과 조선 고유의 문명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통신사를 적극 환영했다. 남의 것이라도 좋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본인 특유의 실용주의良いとこ取り, 이이 토고 토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반면 조선통신사는 그러지 못했다. 침략전쟁을 겪고 얼마 후였으니 마음에 꽃바람이 불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유교국가 조선의 눈에 일본 문화는 계통 없는 잡스러움이 아니었을까. 통신사로 참석했던 김인겸과 신유한은 <일동장유기1764년>와 <해유록1719년>에서 오사카를 본 후 도시의 발전된 문명을 놀라워하면서도 오랑캐의 번영을 원망하고 애석해하는 것에 기운을 더 쏟았다. 게다가 대다수 도공 포로는 조선으로 돌아가는 대신 장인 대우를 받는 일본에 남기를 원했다. 돌아가면 죽는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많이 주고 덜 가져온 탓인지 한국에서 조선통신사의 역사적 의의는 많이 노출되지 못했다. 다행히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한일 양국이 조선통신사 관련기록물 111건 333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조선통신사 기록에 대한 핵심적 정리다. 한성(지금의 경기도 광주)-동래(부산)-이즈하라(대마도)-시모노세키-아카시-사카이-교토-나고야-하마마쓰-에도(도쿄)-닛코로 이어지는 통신사의 여정. 그중 이번 취재지였던 도쿄와 닛코 주변의 흥미로운 관광지 몇 개를 더한다. “일본은 중국의 앞선 문명과 조선 고유의 문명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통신사를 적극 환영했다. 남의 것이라도 좋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본 특유의 실용주의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도쇼구를 자랑하고 싶었던 막부와 스토리텔링 한국 여행객에게 일본의 신사神社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역사적으로는 신사참배의 부정적 이미지가 있고 이념적으로는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자 예우를 기억한다. 그러나 일본 여행을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신사이며 사당이다. 신사를 중심으로 한 사당 문화가 일본인의 종교이며 생활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종교, 신도神道는 일본의 토착 신앙에 유교와 불교를 혼합한 것이다. 비록 그 발원의 과정에서 태양신을 덴노(천왕)의 조상신으로 둔갑시키고 태양신의 아들 덴노에게 충성을 다해 섬기라는 정치적 오염의 혐의도 받고 있지만 일본의 신사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와 정신과 일상을 응축해 놓은 곳이다. 닛코의 가장 대표적인 신사가 도쇼구東照宮, 동조궁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시신이 이곳에 있다. 그의 손자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가 1636년에 금 56만8,000냥이라는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현재의 규모로 호화찬란하게 증축했다. 에도 막부는 이것을 통해 막부의 권위를 통신사에게 과시하고 싶어했다. 4차, 5차, 6차 통신사를 이곳으로 초대한 이유다. 도쇼구에 들어서면 우측에 보이는 종은 5차 통신사의 선물이다. 도쿠가와 무덤 앞에는 통신사가 전달한 삼구족(화병, 향로, 촛대)이 놓여 있다. 이것이 조공이냐 하사냐 하는 것을 두고 양국이 대립했다. 그 첨예한 갈등 때문인지 설명문 하나 붙어 있지 않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도쇼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다. 보물도 많고 예술품도 많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야기가 많다. 울창한 삼나무의 호위를 받으며 점점 좁아지는 계단을 오르면 신사의 입구인 도리이鳥居가 나온다. 도쇼구의 도리이는 일본에서 가장 큰 돌로 만들어졌다. 높이 9m. 기둥둘레 3.6m. 재미있는 것은 도리이 하단부에 조각된 연꽃 문양이다. 신불습합神佛習合, 불교를 믿는 게 신도를 믿는 것이라는 일본의 혼합주의 종교관을 도리와 연꽃 문양에서 본다. 기도할 때 ‘하느님 부처님(카미사마かみさま, 호토케사마ほとけさま)’을 찾는 것도 같은 정서다. 이런 모습 때문에 저들은 도쇼구를 일컬어, 불교의 사원과 일본의 신사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축의 백미라고 말한다. 입구를 지나면 정문인 요메이문陽明門이 나온다. 닛코를 보지 않고 미美를 논하지 말라는 말이 이곳에서 나왔다. 그 화려한 문의 외경과 더불어 흥미로운 것은 원숭이를 거꾸로 조각한 의도다. 완벽함보다는 허술함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일본의 철학을 또 여기서 본다. 원숭이를 통한 스토리텔링은 경내의 마구간에서 절정을 이룬다. 부모가 아들에게 해주는 인생 이야기가 8개의 원숭이 이야기로 마구간에 조각돼 있다. 연애, 결혼, 임신과 희로애락이 그 안에 다 담겨 있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산자루三猿·さんざる다. 유년기에는 세상의 나쁜 것을 보지 말고(미자루), 듣지 말고(키카자루), 말하지도 말라(이와자루)는 부모의 말에 원숭이는 눈과 입과 귀를 막고 있다. 또 하나 유명한 것이 있다. 잠자는 고양이(네무리네꼬眠り猫) 조각이다. 히다리진 고로 左甚五郞의 작품이며 고양이 뒤의 참새 조각과 더불어 공존과 평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명성에 비해 잠자는 고양이의 실체는 벨기에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보다 더 작게 숨어 있다. 기대감이 무너지는 의외성도 여행의 즐거움이라면 그 의도는 200% 성공한 셈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과 그 앞의 삼구족을 보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힘이 든다고 생각할 때, 도쿠가와의 유훈 하나를 만난다. “인간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 된다.” 고구려인을 신으로 모신 일본 신사 일본의 야요이 시대BC200~AD300에 한반도에서 사람들이 현해탄을 넘어갔다. 일본은 이들을 도래인渡來人, 도라이진,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도래인은 일본 열도에 농경과 금속기 사용법을 전파하면서 큰 변혁을 선물했다. 두 번째 도래인은 5세기 백제 유민들이다. 일본에 제철기술을 전수했고 바느질과 비단, 소와 말을 보급했다. 7세기에 이르러 도래인 수는 토착 일본인인 조몬인보다 훨씬 많아졌다.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7세기 일본 인구 540만명 중 80% 가량이 한반도에서 이주한 이들이었다”라고 말한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했다. 이제는 고구려인들이 도래인이 되어 일본으로 갔다. 2년 전 외교사절로 일본에 간 약광若光은 ‘왕’이라는 성性을 받았다. 716년, 7개 지방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인 1,799명이 무사시노 지방으로 이주해 고려군을 창설했다. 일본에서는 고구려인을 고마비토高麗人, 고려인라고 불렀다. 약광은 초대군장이 됐다. 오늘날 가나가와현 오이소에는 고려산이 있고 주소에도 고려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초기 고구려인이 정착했던 지역이다. 고구려인은 고려사라는 절도 세웠다. 지금 그 절은 다카쿠高來 신사가 되었다. 일본 거리의 표지판에서 문득 고려라는 지명을 만나니 신기하고 반갑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좀 더 선명한 고구려인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다면 고마군의 중심지인 사이타마현 히다카日高시를 가면 된다. ‘고려강高麗川, 고마가와’이 있고 ‘고려역高麗驛, 고마에끼’이 있다. 약광을 신으로 모신 고마신사高麗神社도 있다. 산악·하천·호수·늪·민속신·실존인물·전설인물 등이 모두 신이 되는 신도의 나라 일본에서, 고구려인 약광도 신이 되었다. 우수한 문화를 일본에 전하고 무사시 지역을 개척한 공로였다. 고마신사 입구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서 있다. 한일국교 40주년을 맞아 민단(재일동포)이 기증한 것이다. 고구려인을 신으로 모시고, 그 후손들이 터를 이루고 살고 있으며, 신사 입구엔 한국의 조각물이 서 있으니, 한국 여행객들은 여느 신사와 다른 친숙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의 정치인, 연예인 등도 방문 기념으로 나무와 명판 등을 남겼다. 고구려인으로서 신의 반열에 오른 탓일까? 요즘 약광은 출세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등 6명의 역대 총리가 이곳을 참배한 뒤 총리대신 또는 국무대신에 올랐다고, 관계자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자랑을 한다. 뒤로 돌아가면 400년 전에 지어진 고려씨의 구주택이 있다.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다. 고마신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쇼텐인聖天院, 성천원이란 절이 있다. 일본식 정원이 잘 다듬어져 있고 한국의 대웅전을 닮은 사당도 웅장하다. 쇼텐인 뒤쪽 고마산 중턱에는 ‘고구려 성지’도 있다. 성지 우측으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신라의 태종무열왕, 백제의 왕인 박사, 고려의 정몽주, 조선의 신사임당 상像이 모셔져 있다. 2차 대전 때 징용되어 돌아가신 무명의 조선인 위령탑이 있어 더 특별하다. 남북한 재일동포들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 Travie writer 윤용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 www.jroute.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우승에 빠진 19세…리디아 고, 주따누깐 제치고 ANA인스퍼레이션 막판 역전 우승

    우승에 빠진 19세…리디아 고, 주따누깐 제치고 ANA인스퍼레이션 막판 역전 우승

    3년 전의 ‘데자뷔’(기시감)가 엄습했다. 스코어보드 맨 위에 올라 있는 자신의 이름을 본 것일까. 15번홀(파4)부터 아리야 주따누깐(21·태국)의 퍼트 거리가 갑자기 짧아졌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는 방증이었다. 주따누깐은 13언더파로 3홀을 남긴 상태에서 2위 그룹에 2타를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흔들리기 시작한 주따누깐은 16번홀(파4) 3퍼트로 한 타를 잃더니 17번홀(파3)에서는 아이언샷이, 18번홀(파5)에서는 티샷이 말을 듣지 않고 공을 해저드로 보낸 끝에 결국 3개홀 연속 보기로 무너졌다. 3년 전 자신의 조국인 태국에서 열렸던 혼다 타일랜드 LPGA에서의 참변을 다시 겪어야 했다. 그는 당시 대회 4라운드 17번홀까지 단독선두를 달리며 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LPGA 투어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는 듯했다. 그러나 페어웨이 벙커에 빠진 두 번째 샷을 세이브하지 못하고 트리플 보기를 범해 다 잡은 우승컵을 박인비(29·KB금융그룹)에게 넘겨준 뒤 언니 모리야의 품에 안겨 펑펑 눈물을 뿌렸다. 이번에는 리디아 고(19·뉴질랜드)였다. 스코어카드를 보면 군더더기 없이 버디만 3개. 더욱이 20야드 이상 먼 거리의 파퍼트를 쏙쏙 집어넣으며 고비를 넘긴 끝에 연장이 예상되던 마지막 18번홀 깃대 50㎝ 옆에 붙는 세 번째 샷 단 한 방으로 나흘간의 72홀 승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종 성적은 12언더파 276타. 타고난 승부사 기질, 얼음장 같은 멘털. 만 19세 생일을 며칠 앞둔 아직은 10대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과연 세계 1위였다. 제주 출신의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가 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 미션힐스 골프클럽 다이너쇼 코스(파72·6769야드)에서 끝난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하면서 가장 어린 나이에 메이저 2승을 올린 선수가 됐다. 지난해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첫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올린 리디아 고는 1997년 4월 24일생이다. 두 번째 메이저 정상에 선 이날 그의 나이는 만 19세 생일을 스무하루 남긴 날이었다. 종전 최연소 메이저 2승 기록은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세운 20세 9개월이다. 올 시즌 두 번째이자 LPGA 투어 통산 12승째로 상금 39만 달러(약 4억 4700만원)를 챙긴 리디아 고는 시즌 상금 100만 달러를 넘어서며 선두 다지기에 나선 건 물론 평균타수(68.625타) 등에서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리디아 고와 동반플레이를 펼쳤던 ‘루키’ 전인지(22·하이트진로)는 어렵사리 버디 퍼트에 성공했지만 앞서 샌드 웨지로 띄운 세 번째 샷을 깃대 50㎝ 옆에 바짝 붙인 리디아 고의 타수를 따라잡기에는 한 타가 부족했다. 리디아 고는 “캐디의 조언대로 ‘투온’을 노리지 않고 두 번째, 세 번째 샷을 8번 아이언, 샌드웨지로 공략했다. 다소 짧은 느낌이었는데 그린이 딱딱했던 덕에 핀 바로 옆에 붙더라. 마지막 홀 버디는 언제나 기분이 좋은 것”이라며 캐디인 제이슨 해밀턴, 어머니 현봉숙씨, 언니 등과 함께 ‘포피스 폰드’에 뛰어들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셔틀콕 ‘리우행 전쟁’…대표팀 말레이시아오픈 출격

    “리우행 티켓을 잡아라.” 한국 배드민턴 대표팀이 5일부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말라와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말레이시아오픈 슈퍼시리즈 프리미어에 출전한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출전자 확정을 앞두고 열리는 가장 큰 대회여서 각국 선수들은 총력을 다짐하고 있다. 리우올림픽 출전선수 명단은 다음달 5일 발표되는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랭킹으로 가려진다. 단식은 16위, 복식은 8위 안에 들어야 한다. 국가별로는 최대 2명(2개조)까지만 출전이 허용된다. 남자복식 세계 1위 이용대(삼성전기)-유연성(수원시청)은 일찌감치 리우행 티켓을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남은 티켓 1장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고성현-신백철(이상 김천시청)과 김사랑-김기정(이상 삼성전기)이 티켓을 다툰다. 고성현-신백철은 현재 랭킹 4위로 김사랑-김기정(7위)에 앞서 있다. 여자복식 세계 6위 정경은(인삼공사)-신승찬(삼성전기)과 7위 장예나(김천시청)-이소희(인천국제공항)는 리우 출전권 굳히기에 나선다. 남녀 단식의 손완호(김천시청·10위)와 성지현(새마을금고·4위)은 출전 티켓을 사실상 확보했다. 그러나 이동근(새마을금고·17위)과 배연주(인삼공사·13위)는 혼신을 다해 더 많은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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