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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 ‘리베이트 의혹’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 17시간 조사···혐의에 ‘묵묵부답’

    檢 ‘리베이트 의혹’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 17시간 조사···혐의에 ‘묵묵부답’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박선숙 국민의당 의원이 17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해 28일 오전 2시 45분쯤 청사를 나선 박 의원은 지친 표정으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말했다. 이날 왕주현 같은 당 사무부총장이 구속된 데 대해서는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 조사에서 어떤 부분을 집중 소명했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탔다. 박 의원은 전날 오전 10시쯤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하면서 “기대하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께 큰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하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사실관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리베이트 수수를 사전에 논의하고 지시한 혐의로 왕 부총장, 김수민 같은 당 비례대표의원과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왕 부총장은 홍보업체 브랜드호텔 관계자를 중심으로 꾸려진 국민의당 선거 홍보 태스크포스(TF)에 대가를 지급하려고 선거 공보물 인쇄업체 비컴과 TV광고 대행을 맡은 세미콜론에 광고계약과 관련한 리베이트 총 2억 1620여만원을 요구, TF에 이를 지급하게 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28일 구속됐다.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전까지 브랜드호텔 대표였으며 TF에도 참여한 김 의원은 지난 23일 소환 조사에서 국민의당이 아닌 업체로부터 대가를 받은 것은 왕 부총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총선 당시 당 사무총장이었던 박 의원이 왕 부총장의 범행을 몰랐을 리 없다고 보는 검찰은 박 의원이 이를 지시했거나 보고를 받고도 묵인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 부총장이 구속됨에 따라 검찰 수사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며 향후 관계자 조사 등을 통해 추가 사법처리 대상자가 나올지 주목된다. 검찰은 이날 조사결과를 토대로 박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檢,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 왕주현 사무부총장 구속

    檢,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 왕주현 사무부총장 구속

    국민의당 ‘선거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 김도균)는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왕주현(52) 국민의당 사무부총장을 구속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중 첫 구속 사례다. 서울서부지법 조미옥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사실이 소명되고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면서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28일 발부했다. 왕 부총장은 지난 27일 오전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 사실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새벽 서울 남부구치소로 이송되기 전 취재진 앞에 선 왕 부총장은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으며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다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심경을 묻는 질문에는 “착잡하다”면서도 “구속됐으니 재판 과정이 빨라질 것이며 좀 더 빨리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본인이 독자적으로 지시한 것인지, 혹은 당에서 지시한 것인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서 호송용 승합차에 올라탔다. 왕 부총장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수민 국민의당 비례대표의원이 대표로 있던 홍보업체 브랜드호텔의 광고·홍보 전문가들로 꾸려진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선거 홍보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이어 지난 3월부터 지난달까지 선거운동 관련 대가를 지급하려고 선거 공보물 인쇄업체 ‘비컴’과 TV광고 대행을 맡은 ‘세미콜론’에 광고계약과 관련한 리베이트 총 2억 1620여만원을 요구해 TF에 이를 지급하게 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를 받고 있다. 왕 부총장은 이후 리베이트로 TF에 지급된 돈까지 국민의당이 실제 사용한 선거비용인 것처럼 속여 선관위에 3억여원의 허위 보전 청구를 해 1억여원을 받아 편취한 혐의(사기)도 받고 있다. 이번 수사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고발한 당 인사는 왕 부총장을 비롯해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직전까지 브랜드호텔 대표를 맡은 김수민 의원, 선거 당시 사무총장 자리에 있던 박선숙 의원 등 3명이다.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전까지 브랜드호텔 대표였으며 TF에도 참여한 김 의원은 지난 23일 소환 조사에서 “국민의당이 아닌 업체로부터 대가를 받은 것은 왕 부총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총선 당시 당 사무총장이었던 박 의원이 왕 부총장의 범행을 몰랐을 리 없다고 보고 전날 오전 박 의원을 소환해 이번 범행을 지시했거나 보고를 받았는지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檢 ‘리베이트 의혹’ 박선숙 의원 17시간 조사…지시여부 추궁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같은 당 박선숙 의원이 27일 오전 검찰에 출석해 17시간에 걸친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28일 오전 2시 45분께 청사를 나선 박 의원은 지친 표정으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했다”고 말했다. 이날 왕주현 사무부총장이 구속된 데 대해서는 “지금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없다”고 말했다. 조사에서 어떤 부분을 집중 소명했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탔다. 박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께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하면서 “기대하고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께 큰 걱정 끼쳐드려서 죄송하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사실관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리베이트 수수를 사전에 논의하고 지시한 혐의로 왕 부총장, 김수민 의원과 함께 중앙선과관리위원회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왕 부총장은 홍보업체 브랜드호텔 관계자를 중심으로 꾸려진 국민의당 선거 홍보 TF에 대가를 지급하려고 선거 공보물 인쇄업체 비컴과 TV광고 대행을 맡은 세미콜론에 광고계약과 관련한 리베이트 총 2억1천620여만원을 요구, TF에 이를 지급하게 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이날 구속됐다.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전까지 브랜드호텔 대표였으며 TF에도 참여한 김 의원은 23일 소환 조사에서 국민의당이 아닌 업체로부터 대가를 받은 것은 왕 부총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바로 다음날 왕 부총장에 대한 영장을 전격 청구했다. 총선 당시 당 사무총장이었던 박 의원이 왕 부총장의 범행을 몰랐을 리 없다고 보는 검찰은 박 의원이 이를 지시했거나 보고를 받고도 묵인했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9일 사건 관련 업체를 압수수색하면서 본격화된 이번 수사는 이날 핵심 관계자 두 명이 각각 검찰과 법원에 출석하고 왕 부총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사건 성격이 당직자 개인의 일탈인지, 당 차원의 조직적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날지 여부가 이날 박 의원 조사 등 결과에 따라 갈릴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왕 부총장이 구속됨에 따라 검찰 수사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며 향후 관계자 조사 등을 통해 추가 사법처리 대상자가 나올지 주목된다. 검찰은 이날 조사결과를 토대로 박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檢,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 왕주현 부총장 구속(종합)

    국민의당 선거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김도균 부장검사)는 27일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같은 당 왕주현(52) 사무부총장을 구속했다. 이번 사건 관계자 가운데 구속된 사례는 왕 부총장이 처음이다. 서울서부지법 조미옥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피의 사실이 소명되고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검찰이 청구한 영장을 발부했다. 왕 부총장은 이날 오전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혐의 사실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남부구치소로 이송되기 전 취재진 앞에 선 왕 부총장은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에) 변화가 없으며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다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심경을 묻는 질문에는 “착잡하다”면서도 “구속됐으니 재판 과정이 빨라질 것이며 좀 더 빨리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본인이 독자적으로 지시한 것인지, 혹은 당 윗선과 상의했는지 등을 묻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서 호송용 승합차에 올라탔다. 검찰에 따르면 왕 부총장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홍보업체 브랜드호텔의 광고·홍보 전문가들로 꾸려진 TF를 만들어 선거 홍보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이어 3∼5월 사이 선거운동 관련 대가를 지급하려고 선거 공보물 인쇄업체 비컴과 TV광고 대행을 맡은 세미콜론에 광고계약과 관련한 리베이트 총 2억1천620여만원을 요구해 TF에 이를 지급하게 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를 받는다. 왕 부총장은 이후 리베이트로 TF에 지급된 돈까지 국민의당이 실제 사용한 선거비용인 것처럼 속여 선관위에 3억여원의 허위 보전 청구를 해 1억여원을 받아 편취한 혐의(사기)도 있다. 이번 수사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고발한 당 인사는 왕 부총장을 비롯해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직전까지 브랜드호텔 대표를 맡은 김수민 의원, 선거 당시 사무총장 자리에 있던 박선숙 의원 등 3명이다.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전까지 브랜드호텔 대표였으며 TF에도 참여한 김 의원은 23일 소환 조사에서 국민의당이 아닌 업체로부터 대가를 받은 것은 왕 부총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총선 당시 당 사무총장이었던 박 의원이 왕 부총장의 범행을 몰랐을 리 없다고 보고 27일 오전 박 의원을 소환해 이번 범행을 지시했거나 보고를 받았는지 등을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이 각각 범행에 얼마나 관여·가담했는지를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왕 부총장이 구속됨에 따라 검찰 수사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며 향후 관계자 조사 등을 통해 추가 사법처리 대상자가 나올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 [씨줄날줄] 브렉시트와 영국의 분화/구본영 논설고문

    [씨줄날줄] 브렉시트와 영국의 분화/구본영 논설고문

    스코틀랜드 노래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백파이프에 실려 오는 선율은 언제 들어도 애절하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반발한 스코틀랜드에서 독립 여론이 비등한다기에 다시 들어 봤다.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언 리 주연의 영화 ‘워털루 브리지’ OST로 들었을 때의 가슴 뭉클했던 정한(情恨) 그대로였다. 이 노래는 우리의 귀에도 익숙하다. 안익태의 곡이 나오기 전 애국가를 이 곡조에 따라 불렀지 않나. 물론 ‘올드 랭 사인’은 ‘즐거웠던 옛날’(the good old days)이라는 뜻의 스코틀랜드어다. 영국과 합치기 전의 옛날이 그리워진 건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독립 지지율이 59%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설마 했던 브렉시트가 현실화하자 영국이 사분오열 위기를 맞았다. 외신은 최소 2년은 소요될 영국의 EU 탈퇴 과정을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긴 이혼”에 비유했다. 그러나 영국은 ‘EU와의 이혼’에 앞서 스코틀랜드나 북아일랜드와의 이별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그러잖아도 스코틀랜드는 1707년 잉글랜드에 병합된 이래 끊임없이 독립의 불씨를 지펴 왔다. 켈트족이 다수인 데다 앵글로색슨계가 주류인 잉글랜드와는 경제적 이해도 엇갈린다. 영국의 금융업에 대한 EU의 과도한 규제가 브렉시트의 한 요인이었지만, 1·2차 산업 위주인 스코틀랜드는 62%가 잔류를 택했다. 투표 직후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제2의 독립 국민투표를 고려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설상가상일까. 주민 56%가 EU 잔류에 투표한 북아일랜드에서도 독립 움직임이 고개를 들었다. 자치정부 마틴 맥기네스 부수반은 아일랜드와 통일할지를 결정할 주민투표 실시를 예고했다. 100년 전까지 한 국가였던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는 종교는 가톨릭 대 신교로 갈려져 있으나 민족적 동질성을 갖고 있다. ‘아! 목동아’로 번안된, ‘오 대니 보이’(Oh! Danny boy)라는 민요의 애잔한 멜로디에 켈트족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영국의 국호는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북아일랜드가 독립하면 더는 ‘연합왕국’일 수 없게 되고, 스코틀랜드만 떨어져 나가도 ‘그레이트 브리튼’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까닭에 이 섬나라에 울려 퍼지는 ‘올드 랭 사인’과 ‘오! 대니 보이’ 노랫말이 영국인들에게는 사면초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영국 저명 인사들의 잇단 탄식이 그런 분위기를 방증한다. 가수 메리앤 페이스풀은 “우리는 극우에 현혹돼 인종차별적이었던 ‘리틀 잉글랜드’로 돌아갔다”고 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은 브렉시트에 더 진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금처럼 (투표 결과를 잔류로 바꿔 줄) 마법을 원한 적이 없다”고 했다니 말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인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1급(시·도선관위 상임위원) 승진△전라북도선관위 상임위원 백두성△경상북도선관위 상임위원 윤병태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부이사관 전보△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 정책조정팀장 류형석△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 갈등조정지원부장 최영진 ■농림축산식품부 ◇과장급 승진△규제개혁법무담당관 정아름△한국농수산대학 운영지원과장 이영길△국립종자원 경북지원장 김영만◇과장급 전보·휴직△운영지원과장 변동주△농기자재정책팀장 최봉순△축산정책과장 최명철△농림축산검역본부 동물약품관리과장 이명헌△농림축산검역본부 식물검역기술개발센터장 조장용△농림축산검역본부 세균질병과장 정석찬△농림축산검역본부 구제역진단과장 위성환△농림축산검역본부 조류질병과장 이희수△농식품공무원교육원 운영지원과장 이동흥△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고용휴직 윤광일 ■금융위원회 ◇부이사관 승진△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 박광 ■국민권익위원회 △비상임위원 이호용 ■방위사업청 ◇국장급 전보△기획조정관 홍일승△지휘정찰사업부장 강은호 ■교통안전공단 ◇본부장△도로교통안전 황병훈△경인지역 이성신△부산경남지역 서종석△호남지역 백안선◇지사장△강원 오종배△인천 김지우△경기북부 오순석△전북 조정조△제주 신명식◇센터장△교통안전교육 김동찬◇처·실장△재정회계처 송성국△자격관리처 송인길△인증검사실 이광범 ■선박안전기술공단 △경영지원실장 최현미◇지부장△인천 모승호△강원 박병우△목포 홍춘선△고흥 남정조△완도 박상원△통영 이동근△사천 심재문△제주 정재현 ■한국교직원공제회 ◇1급 승진△회원복지부장 박승진△부산지역본부장 김동리 ■강릉원주대 △강릉시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장 이원종 ■인제대학교 백병원 ◇상계백병원△암센터소장 유영진△인공신장실장 김상현◇해운대백병원△응급실장 박하영△로봇수술센터소장 박상현 ■SGI서울보증 ◇본부장 승진△허세준 권오권◇1급 승진△김경주 김삼열 이수영 류호숙 이광식 곽관해 허준혁 신진용◇본부장 전보△리스크관리본부 신보선△영남본부 허세준△강서본부 권오권◇부서장 전보△감사실 손영배△영등포지점 조재원△명동지점 김현태△동래지점 이주호△인천지점 김경주△서초지점 곽관해△을지로지점 백승훈△마산지점 최치영△영남보상지원단 최정효△역삼지점 민경의△이천지점 최병철△부평지점 조영인△천안지점 유교형△마포지점 배재현△신용보험지원3단 이종구△군산지점 이남수△부천지점 안종오△경주지점 이용인△춘천지점 강돈영△안산지점 양경주△강서신용지원단 정태주△중부보상지원단 손창기△경원본부 수석심사역 이기웅△구미지점 이택기△강북본부 수석심사역 전재길△영남본부 수석심사역 김남필△특별채권부 정종관△기업고객부 이윤근△대구신용지원단 이성용△심사부 수석심사역 김진우 ■코리안리재보험 ◇승진△재물보험2팀장 오세관◇전보△정산팀장 한종선△경영지원팀장 김용남△재물보험1팀장 이기성△기획실장 전현수△상품개발팀장 신현호△감사팀장 이시영△재무계리팀장 윤선길△글로벌사업팀장 이영배△리스크관리팀장 장지석△해상보험팀장 정우식△기술보험팀장 소병기 ■골든블루 △마케팅본부장 전무이사 박희준△생산본부장 상무보 김관태
  • ‘제2의 데뷔’ 브레이브걸스 “하이힐처럼 당당하게…”

    ‘제2의 데뷔’ 브레이브걸스 “하이힐처럼 당당하게…”

    그룹 브레이브걸스가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세 번째 미니앨범 ‘하이힐(High Heels)’ 쇼케이스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2016.6.27 연합뉴스 “여름이라서 걸그룹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그 속에서도 브레이브걸스만의 색깔과 매력으로 하이힐처럼 당당하게 살아남고 싶습니다.” (은지) 세 번째 미니 앨범 ‘하이힐’(HIGH HEELS)로 컴백한 브레이브걸스가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브레이브걸스의 복귀는 지난 2월 선공개한 싱글 ‘변했어’ 이후 약 4개월 만이며, ‘하이힐’은 두 번째 미니앨범 ‘리-이슈’(Re-Issue) 이후 무려 4년 만에 발표하는 미니 앨범이다. 브레이브걸스는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일지아트홀에서 컴백 쇼케이스를 열고 ‘하이힐’ 무대를 선보였다. “아무래도 당당한 여자가 컨셉트이니만큼 세상 모든 여자가 저희 노래를 듣고 더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윤) 팀의 막내 하윤은 타이틀 곡 ‘하이힐’에 대해 “도도하고 당당한 여자를 대표하는 게 하이힐”이라며 “그런 여자의 마음을 재밌게 압축해서 표현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하이힐’은 일렉 기타 사운드를 중심으로 경쾌한 리듬과 반복되는 브라스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이다. 그동안 브레이브걸스가 선보이지 않았던 대중적이면서도 섹시하고 발랄한 느낌을 담아냈다. 이밖에 ‘하이힐’ 앨범에는 신나는 리듬과 신스 사운드가 잘 어우러진 댄스곡 ‘헬프 미(Help me)’, 심플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선율의 알앤비(R&B) 곡 ‘왓에버’(Whatever), 기타 리프와 리버스 피아노가 어우러진 어쿠스틱 팝 ‘’만나지말걸‘ 그리고 지난 2월 선공개한 ’변했어‘ 등이 수록됐다. 지난 2011년 4월 ’아나요‘로 데뷔한 브레이브걸스는 데뷔 당시 작곡가 용감한형제가 키우는 걸그룹으로 주목받았으나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지난 2월에는 멤버 교체를 단행해 5인조에서 기존 멤버 3명이 나가고 새 멤버 5명을 영입해 7인조로 컴백했다. 새로 팀에 합류한 민영, 유정, 은지, 유나, 하윤은 기존 멤버인 유진, 혜란과 활동한다. 데뷔 6년 차를 맞는 걸그룹이지만 이번 컴백은 사실상 데뷔나 다름없는 셈이다. 원년 멤버 혜란은 “요즘은 신곡을 낸다 해도 음원 차트 진입이 쉽지 않고 음악 방송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면서 “’변했어‘ 이후로 욕심을 많이 버리고 활동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선을 다하되 욕심은 많이 부리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혜란은 이어 “’변했어' 활동 때는 음원차트 순위에 잠깐 들었다가 빠졌다”며 “오늘 음원이 나왔는데 70위권까지 들어간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꿈은 크게 가지라고 이번 활동은 더 나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성장해가는 브레이브걸스를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연합뉴스
  • [포토] 고개숙인 메시… 실축 후 대표팀 은퇴 선언

    [포토] 고개숙인 메시… 실축 후 대표팀 은퇴 선언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러더포드의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코파 아메리카’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에 실패한 후 고개를 숙이고 있다.리오넬 메시는 승부차기 끝에 칠레에 2-4로 패한 후 은퇴를 선언했다.EPA 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파고다, 오픽 릴레이 특강 개최

    파고다, 오픽 릴레이 특강 개최

    멀티캠퍼스(구 크레듀)가 주관하는 영어 말하기 시험 오픽이 최근 기업에서 바로 활용 가능한 ‘영어 말하기’ 실력의 척도로 인정받으면서 취준생들이 ‘필수’로 챙겨야 하는 스펙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취업 준비생들도 최근 기업들의 채용 트렌드에 맞춰 오픽 등급을 취득하기 위해 학원가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출제 경향이 주기적으로 조금씩 바뀌는 오픽의 특성상 기존에 출제되었던 문제의 파악은 응시자에게 핵심 정보가 된다. 이런 취준생들을 돕고자 파고다 어학원이 여름방학 대비 무료 오픽 최신 기출 릴레이 특강을 진행한다. 총 3차례 진행되는 이번 특강에서 참가자들은 기존에 출제됐던 오픽 문제 유형들을 볼 수 있게 된다. 파고다 어학원 오픽 대표 이현석 강사는 "여러 명의 현직 오픽 강사들이 직접 본 시험 세트를 특강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수험생들에게 시험에 대한 정확한 출제 경향을 알려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픽은 효율적인 준비 없이는 등급 취득이 매우 어렵다. 공학적인 문장 구조와 빅데이터에 가까운 기출문제 분석을 통한 적중률 없이는 수강생들이 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 강사의 수강생들은 오픽 레이터(채점관)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주는 문장 구조와 패턴을 보다 쉽고 효과적으로 본인의 이야기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고도의 훈련을 거친다. 때문에 수강생들은 최단기에 비교적 쉽게 등급을 취득하고 있다. 한편 종로 파고다 오픽 대표 JESSIE 리 강사는 "최근 오픽의 고득점 취득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가운데 이번 특강을 통해 최단기에 오픽 스펙을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려 한다”며 국내외 기업 취업 시 영어말하기의 평가 잣대로 가장 많이 쓰이는 오픽의 출제 유형과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고 준비한다면 단 10일 만에도 IH/AL과 같은 높은 등급 취득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15문항에 대한 자율형 답변을 요구하는 오픽 시험은 독학으로 대비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많은 말을 하고 나온 경우에도 기업 지원 조건에 미달인 IL 혹은 IM1 등급을 받는 응시자가 수두룩하다. 오픽에서 성공적인 등급을 취득한 응시생의 상당수가 학원이나 인강을 통해서 도움을 받았다고 답변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도입된 이래 오픽 응시 횟수만 110회가 넘는 이현석 강사의 ‘오픽의 신(紳)’팀 강사들은 실제 오픽 시험에서 출제된 방대한 문제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실제 수업 시간을 통해 준비한 문제들만 정확히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수강생들은 영어 실력에 비해 훨씬 높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이들 수강생들의 전언이다. 이번 여름 방학 대비 오픽 최신 기출 릴레이 특강은 ▲6월 28일(화) 19:00 강남 파고다 (이현석, JULY 김), ▲6월 29일(수) 19:00 종로 파고다 (JESSIE 리, 이현석), ▲6월 30일(목) 19:00 신촌 파고다 (ERIN 김, 이현석) 순으로 진행된다. 특강 별로 강사들이 각기 다른 내용을 다루게 되므로, 세 번의 특강에 모두 참석할 경우, 한 달 수업을 듣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파고다 어학원의 오픽 시장 점유율은 최근 온, 오프라인 시장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고다 오픽 릴레이 특강은 파고다어학원 특강 신청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김용태 의원 “혁신대표 되겠다”… 당 대표 출마 선언

    김용태 의원 “혁신대표 되겠다”… 당 대표 출마 선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이 27일 당 대표직에 도전장을 던졌다.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8·9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것은 김 의원이 처음이다. 김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뼈를 깎는 혁신으로 제2창당을 이뤄내고, 꺼져가는 정권 재창출의 희망을 살려내겠다”면서 “혁신 대표, 세대교체 대표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어 “총선에서 민심의 냉엄한 심판을 받고도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당을 대선에서 국민이 지지할리 만무하다”면서 “정권 재창출의 희망을 되살리려면 오직 한 길, 용기있는 변화와 뼈를 깎는 혁신의 길뿐”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먼저 “대선후보 조기 경선을 추진하겠다”면서 “내년 초부터 6개월 이상 장기 레이스를 통해 야당과 맞설 강력한 대선후보를 만들어내겠다”며 조기 경선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준다면 환영할만한 일이나 냉정히 볼 때 그분이 출마할지 안 할지 모른다”면서 “그분만 바라보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또 “삼권 분립의 헌법적 가치와 당헌·당규를 훼손하는 외부 또는 당내 특정 세력의 자의적 당권 개입을 원천 차단하겠다”면서 대표가 되면 6개월 내에 공천 제도를 전면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수직적 당청관계를 고치겠다”면서 “국정 집행과 결과에 공동책임을 지는 공생적 협력관계, 수평적 소통 관계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밖에 “전관예우로 표현되는 사법정의 문란, 수저 계급론으로 회자되는 양극화 심화로 삶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면서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불공정과 특권에 맞서 싸우고 양극화 해소를 위해 당의 정책 입법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대권-당권 분리 규정의 손질을 검토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서는 “비대위가 이를 재고해주기를 요청한다”면서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대선후보 재건 목표도 달성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비박(비박근혜)계 중도개혁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 의원은 18대 총선(서울 양천을)에서 원내에 입성해 같은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했다. 그는 같은 비박(비박근혜)계 수도권인 정병국 의원과 출마 선언 전에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또 유승민·이정현 의원과도 만나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홍상수·김민희 스캔들, 정부가 터뜨렸다?… 지독한 ‘음모론’

    홍상수·김민희 스캔들, 정부가 터뜨렸다?… 지독한 ‘음모론’

    “박유천 성폭행 의혹이랑 홍상수·김민희 불륜설을 정부가 고의로 터뜨린 거라던데…. 존 리 전 옥시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욕먹을까 봐 그랬대요. 정치나 정책 얘기보다 연예인 얘기에 귀가 더 솔깃해지니까 그러는 거겠죠.”-주부 조모(34)씨 “연예인 스캔들 정도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아픔이나 방위사업청이 1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사실들을 숨기기는 힘들 것 같아요. 연예인 사건의 파급력을 실제보다 너무 크게 보는 건 아닌가요.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제기되는 음모론, 이제는 지겨워요.”-회사원 이모(43)씨 최근 화제가 된 가수 겸 배우 박유천 성폭행 의혹, 영화감독 홍상수·배우 김민희 불륜설 등이 정부의 실책을 가리기 위해 터졌다는 ‘음모론’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한창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박유천, 김민희에 숨은 의혹’이라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반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때마다 제기되는 ‘음모론’에 질렸다는 이들도 많다. 전문가들은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음모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터진 연예인 기사의 배후로 지목되는 것은 ‘정부의 전기·가스 분야 단계적 민영화 발표’다. 존 리 전 옥시코리아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돼 불구속 기소한 것을 덮으려 했다는 소문도 있다. 홍상수·김민희 불륜설의 경우 신공항 발표가 김해공항 확장안으로 끝나면서 일부 지역 불만이 커지자 이목을 돌리기 위해 터뜨렸다는 말이 나온다. 연예인 스캔들이 정부 실책을 덮었다는 음모설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배우 이민호와 가수 수지의 열애설이 터진 2015년 3월에는 한국광물자원공사의 자원외교 비리 의혹을 덮으려 한다는 얘기가 돌았고 2013년 11월 검찰이 개그맨 이수근, 가수 탁재훈을 불법 도박 혐의로 수사하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불법 로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을 무마하려 한다는 말이 나왔다. 2011년 4월 가수 서태지·배우 이지아 이혼 소송 때는 BBK사건 특별수사팀이 언론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하자 이목을 돌리려 했다는 풍문이 돌았다. 각종 음모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이에 염증을 느끼는 경우도 늘고 있다. 회사원 김모(35)씨는 “실체도 없는 이야기를 마치 사실인 양 말하는데 무책임하다”며 “음모론의 끝이 늘 또 다른 음모론인 것도 지겹다”고 말했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실정치 공간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첨예하면 정권을 공격하는 음모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된다”며 “인터넷 게시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음모론에 촉매제 역할을 하는데 의혹을 믿고 싶은 욕구가 음모론을 더욱 크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음모론의 유행은 사회가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 주는 징후”라며 “지식인이나 언론이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의 기능을 상실하면 국민들 스스로 음모론을 만들면서 비판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유언비어를 처벌하는 등 근시안적인 방법으로 음모론을 잠재울 수 없다고 했다. 전 교수는 “정보가 소수에 의해 독점되지 않는 정보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국민들도 음모론을 가벼운 오락 수준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며 “정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SNS를 건전한 공론장으로 활용하는 합리적인 토론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가습기살균제, 비극의 22년 재구성] 옥시 英본사·정부 책임 손 못 대고 끝나는 檢수사

    146명 사망·1528명 피해에도 정부·학계·언론 ‘경고등’ 못 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146명(정부 집계·316명 판정 대기 중)의 사망자를 포함해 1528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정부, 학계, 언론 등은 경고등을 켜지 못했고 검찰도 피해가 보고된 지 5년이 지나서야 수사 결과를 내놓게 됐다. 이번 주에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옥시 영국 본사의 책임이나 정부의 책임까지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1994년 11월 SK케미칼의 전신 ㈜유공이 첫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 메이트’를 만들어 판매한 이후 22년간의 과정을 짚어 봤다. 2011년 4월부터 5월까지 벌어진 임신부 연쇄 사망 사건이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임신부 4명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급성 폐질환으로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8월 보건복지부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가습기 살균제가 폐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또 11월에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이 폐 손상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들 물질이 함유된 옥시싹싹을 비롯한 6개 제품에 대해 수거 명령도 내렸다. 하지만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의 유해성은 확인하지 못했다. CMIT 및 MIT가 함유된 제품에 대해서는 사용 자제 및 판매 중단을 권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정부의 시스템도 곳곳이 구멍이었다. 유공은 1996년 PHMG를 카펫 항균제로 개발해 환경부에 신고했지만 옥시는 2001년 PHMG를 넣은 가습기 살균제를 시판했다. 환경 당국은 가습기 살균제로 둔갑한 PHMG에 대해 안전 인증 검사를 하지 않았다. 산업자원부는 2007년 일부 가습기 살균제에 국가통합인증(KC)까지 해 줬다. ‘1차 경보’는 2008년 발령됐다. 서울아산병원 등 대형 병원의 소아호흡기 교수들이 원인 불명의 폐 손상 환자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2008년 질병관리본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며 감염성은 아니라는 선에서 조사를 접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 서울아산병원 등에서 다시 산모들의 집단 이상 증세를 보고한 ‘2차 경보’가 울린 뒤 정밀 조사에 착수,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의 직접 원인”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검찰 수사 결과 옥시, SK케미칼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가 내부적으로 유해성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유공은 1996년 PHMG를 카펫 항균제로 신고하면서 제조신고서에 사고 시 응급조치 사항으로 ‘흡입 시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길 것, 섭취 시 물로 입을 씻어 내거나 충분한 물을 마셔 토해 낼 것’이라고 적었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도 이 사실을 조작·은폐하기 위해 서울대 조모(56) 교수에게 연구용역비 2억 5200만원과 자문료 1200만원을 줬고, 호서대 유모(61) 교수에게 자문료 2400만원을 건넸다. 검찰은 올해 1월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집중 수사에 돌입했다. 지난 22일까지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고 가습기 살균제를 개발·판매해 181명에게 피해를 입힌 혐의로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를 포함해 6명을 구속했다. 2005년 6월부터 5년간 옥시 최고경영자로 재직한 존 리(48) 전 대표는 불구속 기소했다. 옥시 영국 본사의 책임을 규명하지 못했고 환경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의 책임을 묻지 못했다는 점은 수사의 한계로 지적된다. 가해업체 책임자 등 20명 안팎을 재판에 넘기는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가습기살균제, 비극의 22년 재구성] 아버지는 “정부 ‘無害’ 인증 믿어야지” 호통…이제 느껴요, 힘있는 사람 부모가 죽었어도 이랬을까

    [가습기살균제, 비극의 22년 재구성] 아버지는 “정부 ‘無害’ 인증 믿어야지” 호통…이제 느껴요, 힘있는 사람 부모가 죽었어도 이랬을까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가 5개월 만에 마무리돼 최종 수사 결과 발표만을 앞두고 있다. 2011년 5월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망이 처음 공식 확인된 뒤로 사망자 146명을 포함해 530명(정부 집계·2016년 6월 현재)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입었다. 살균제를 개발·판매한 관계자 20여명은 구속되거나 기소됐다. 이것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끝난 것일까. 가족을 잃고 건강을 해친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국민 건강보다 이윤을 앞세운 기업의 윤리 부재가 빚어낸 비극 앞에서 남아 있는 우리도 안전할 수는 없다. 이들의 고통을 함께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을 상·중·하로 나눠 재조명한다. 지난 21일 서울시청 시민청 가습기 살균제 희생자 추모 전시 공간에서 만난 김미란(41·여)씨는 피해자, 의사, 정부를 포함해 우리 사회의 모두가 무지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아버지 김명천씨는 2008년 가을 무렵부터 뚜껑이 빨간 용기에 담긴 살균제를 가습기 물에 타서 사용했고, 결국 2010년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5년간 폐는 서서히 굳어 갔고, 지난해 10월 폐기능이 정지되면서 사망했다. 최근 검찰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그는 462명(판정 대기자 포함)이나 사망했는데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를 처벌하고, 정부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 고(故) 김명천씨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과 아픔의 이야기를 김씨의 진술을 통해 재구성한다. -2008년 10월 경기 안양의 부모님 집에 갔더니 아버지가 옥시 가습기 살균제(이하 살균제)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저와 언니는 결혼해 독립했고 부모님은 남동생과 살았죠. 기업들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며 살균제를 광고했죠. 빨간 뚜껑이 특징적이어서 옥시 제품인 것을 기억해요. 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씩 가습기 물을 갈았는데 그때마다 빨간 뚜껑에 살균제를 채워서 물에 넣는다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건강을 무엇보다 중시하셨습니다. 살균제도 그래서 쓴 거예요. 당시 연세가 61세였는데 담배와 술도 안 했어요. -아버지는 2008년 가을부터 2009년 봄까지 살균제를 넣어 가습기를 사용했고, 2010년 초부터 숨이 가쁘다며 잔기침을 시작했어요. 어머니와 자주 산에 갔는데 예전과 달리 아버지가 오히려 어머니에게 뒤처졌어요. “숨이 차니 쉬었다 갑시다”라는 말을 너무 자주 해서 이상했죠. 6개월이나 증상이 계속돼 인근 내과에 갔더니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어 보고는 바로 대학병원에 가라고 하더군요. 대학병원에서 원인 미상 간질성 폐질환이라고 진단했어요. 쉽게 말해 폐가 섬유화되는 건데 당시 뉴스에서 원인은 모르지만 영아와 산모가 이름 모를 폐질환으로 사망한다는 소식을 전할 때였어요. 증상은 비슷하지만 성인 남성이니까 다른 병인가 보다 했죠. -2010년 7월 한 달간 대학병원에 입원하면서 조직검사를 했어요. 하얀 물질이 폐를 막아서 숨을 못 쉬는 거라고 하더군요. 옆구리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넣어 폐에 있는 노폐물을 뺐는데 실제로 피고름이 나왔죠. 아버지는 퇴원한 뒤에도 산소캔으로 버티기 시작했어요. 숨이 차면 멈춰 서 산소캔으로 폐에 산소를 공급하는 식이었어요. -“감기가 가장 무서우니 무조건 병원에 와야 합니다. 평지를 걸을 때 정상인이 에베레스트산에서 뛰는 것과 같은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의사는 면역억제제와 거담제(가래를 없애는 약) 등 스무 종류의 알약을 처방해 줬어요. 아버지는 매일 달력에 컨디션과 먹은 약, 음식 등을 기록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2011년 초 부모님이 서울 금천구로 이사 간 뒤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살균제를 쓰고 있었어요. 환자니까 가습기를 더 열심히 사용했던 것 같아요. -“아빠 살균제 안 쓰는게 좋겠어요. 애경 제품을 사용해 봤는데 잘 때 누가 입을 막은 것처럼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여러 번 깼어요.” 1월 말에 아버지에게 제 경험담을 말씀드리며 살균제를 버리자고 했어요. 살균제가 원인 미상의 폐질환을 일으킨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인데 저는 가습기만 틀면 눈앞이 흐려져서 텔레비전 화면이 뿌옇게 보이고, 음식을 하려고 가스불을 켜면 파란색 불이 빨간색으로 변했죠. 과학적으로는 잘 몰랐지만 신랑도 잔기침을 했어요. 알레르기 비염인 줄 알았는데 가래가 덩어리로 나왔죠. 뭔가 이상해 10번 정도 살균제를 쓰다가 본능적으로 가습기 자체를 쓰지 않았어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래. 다 검사해서 나온 제품이고, 99.9% 안전하다고 정부 마크도 있지 않으냐.” 아버지가 오히려 역정을 내셨어요. 언론에서도 한창 가습기에 세균이 많다고 하던 때라 반박할 말이 없었죠. -두 달 뒤인 2011년 3월 어느 날 미상의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이라는 뉴스를 봤어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죠. 기가 막혔어요. 아버지 집에 있던 살균제를 모두 버렸어요.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시점이었죠. -2013년 폐는 더 악화됐고 산소캔으로도 숨을 쉬기 힘들어 산소발생기를 빌렸어요. 그해 3월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가피모)에 피해 신고를 하고 병원에서 서류를 떼다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냈습니다. ‘환경 조사’라는 게 필요하다며 50여장의 서류가 오더군요. 서울아산병원에서 지금껏 받은 검사를 전부 다시 받아야 했고, 방의 도면부터 살균제를 쓴 과정까지 상세하게 적어야 했어요. 산소발생기가 없으면 병원까지 가는 것도 힘든데 그 긴 검사를 어떻게 받겠어요. 무엇보다 아버지 스스로 거부했어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결국 아무것도 못 받는다. 나서지 말아라.” 그땐 피해자 등록을 거부하는 아버지가 너무 답답했죠. 하지만 요즘 검찰 수사 결과를 보니 알겠어요. ‘아, 아버지 말이 맞았구나.’ -이후 아예 누워서 주무시지도 못했어요. 누우면 숨이 차니까 항상 구부리고 앉아 자는 둥 마는 둥 하셨죠. 2015년 3월 1일 호흡곤란으로 쓰러지셨고 병원에서 ‘폐기능이 상실됐고 한 달 정도 살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런데도 돈 아깝다며 집에 설치한 산소발생기도 아끼라고 했어요. 구두 밑창을 매번 갈아 신을 만큼 평생을 검소하게 산 아버지는 그만한 것도 자신을 위해 쓰지 못했죠. 그때 폐섬유화를 늦춘다는 수입 약이 나왔는데 보험 적용이 안 돼 월 200만원이었어요. 서민들은 엄두도 못 냈죠. -임종이 가까워 오자 화장실을 가려고 살짝만 움직여도 산소 포화도가 68%(정상 95~100%)로 떨어졌어요. 산소를 공급해도 폐가 받아들이지 못했죠. 산소가 부족하니 손톱은 파랗게 변했고, 산소호흡기를 입에서 뗄 수 없어 유동식도 순간적으로 먹어야 했어요. 아버지가 말했어요. “나는 지은 죄가 없는데, 남의 눈에 피 흘리게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됐지?” -물 한 잔 달라 하신 게 마지막 말이었어요. 지난해 10월 7일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 드렸습니다. 허망하더군요. 억울하고 또 억울했어요. -뉴스를 보니 2015년 12월 말 3차 접수가 끝난다고 해서 부랴부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전화해 피해자로 접수했어요. 생전에는 그렇게 많은 서류가 필요했는데 사망진단서만 내면 된다더군요. 750명의 피해자가 접수했고 결과는 올해 9월에 나온답니다. 그렇지만 걱정은 여전해요. 산모나 영아와 달리 장년층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요. 이전까지 폐질환도 없었고 독감과 위궤양으로 병원에 간 게 전부인 분인데 말이죠. 2008년과 2009년에 살균제를 사며 받은 영수증도 당연히 지금 남아 있을 리 없죠. -무엇보다 정부는 살균제로 인해 폐섬유화 외에 다른 질병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줘야 해요. 주위 피해자들을 보면 비염, 천식, 기형아, 자폐증 등 많은 증상이 있어요. 혈관이 안 좋은 사람도 있고요. 피해자들에게 평생 어떤 병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옥시 측이 내놓은 1억 5000만원의 보상안은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도 짧게 살균제를 썼지만 비염과 축농증이 생겼어요. 저 역시 피해자 4차 등록을 했는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피해를 입은 수많은 사람이 있을지 몰라요. -아버지는 항상 가훈처럼 “아무도 믿지 마라. 국가도 광고도 믿지 마라”고 했었죠. 나중에 아버지는 “내가 왜 유독 그걸(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 믿었을까”라고 수없이 말했어요. 사망자만 462명이에요. 권력 있는 사람의 자식이나 부모가 죽었다면 5년이나 잊힐 수 있었을까요.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5년 전에 이미 다 알려져 있던 거예요.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거죠. 정부가 저소득층 피해자에 대해 지원한다는 게 조금 달라진 거죠. 징벌적보상제도는 19대 국회 때 폐기됐잖아요. 피해자들은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옥시 홈페이지에는 6번이나 사과를 했다고 게시돼 있어요. 한마디로 세계적으로 호구가 된 것 같아요. 영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도 옥시가 이렇게 나왔을까요. -아버지를 잊지 못해 지금도 가끔 아버지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합니다. 이제는 모르는 외국인이 받지만요. 5년간 질질 끄는 동안 피해자들이 사망하고 살균제를 구입한 영수증도 없어졌겠죠. 그러나 이제 와 입증이 어렵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국회 청문회에서만은 검찰 조사와 같이 실망스러운 결과가 도출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가습기살균제, 비극의 22년 재구성] “‘싸워도 소용없다’며 돌아가신 부친…살균제 檢수사 보니 그 말씀 맞아”

    [가습기살균제, 비극의 22년 재구성] “‘싸워도 소용없다’며 돌아가신 부친…살균제 檢수사 보니 그 말씀 맞아”

    5년 투병 부친 잃은 김미란씨 “가습기 살균제로 고통받다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싸워도 소용없다’고 하셨는데, 검찰 수사를 보니 그 말씀이 맞는 모양입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시청 시민청 가습기 살균제 희생자 추모 전시 공간에서 만난 김미란(41·여)씨는 “아버지가 2013년 피해자 접수를 하려고 하자 ‘계란으로 바위 치기니 그만두라’고 했다”면서 “올해 초 수사를 시작하는 검찰을 보며 아버지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옥시 본사도 수사하지 못하고, 정부는 여전히 폐섬유화 외에 기형, 정신장애, 혈관질환 등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정하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유아·산모 외 1·2등급 피해자 안돼 김씨의 아버지 김명천씨는 지난해 10월 68세의 나이에 폐섬유화로 세상을 떠났다. 딸 김씨는 2011년 초 가습기 살균제가 몸에 좋지 않다며 사용을 만류하던 자신에게 아버지는 ‘정부가 인증하고 99.9% 인체에 무해하다는데 믿으라’고 호통을 쳤다고 전했다. 그는 “아무것도 믿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믿은 가습기 살균제가 죽음을 불러올 줄이야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며 “아버지도, 나도, 의사도, 사회도 모두가 무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2008년과 2009년 가을·겨울에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2010년 초 잔기침이 시작됐고, 그해 7월 원인 미상의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며 “2011년 3월 진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고, 5년간 숨이 차 눕지도 못하는 긴긴 투병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제 기댈 곳은 국회 청문회뿐 김씨는 지난해 말 아버지에 대해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록을 신청했지만 걱정은 여전하다. 폐섬유화가 빠르게 진행된 유아나 산모를 제외하고 노인이거나 서서히 병이 진행된 경우 1·2등급 피해자로 선정되기 힘들다는 얘기 때문이다. 그는 “2008년 영수증이 지금 있을 리도 없고, 당시 주치의마저 유아나 산모가 아니어서 아버지가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니라고 한다”며 “자신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를 수 있고, 나중에 이들이 어떤 병을 앓게 될지 모르는데 이런 허점을 아는지 옥시는 그저 1억 5000만원의 보상안으로 책임을 다한 것처럼 나온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부와 검찰이 무책임하게 보인다. 이제 기댈 곳은 국회 청문회뿐”이라며 2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국회로 향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성별 검사 못 받아요” 인도 여자육상 선수 찬드 리우행 확정

    “성별 검사 못 받아요” 인도 여자육상 선수 찬드 리우행 확정

    성별 검사 끝에 남성이란 판정이 내려져 여자선수로 대회에 나설 수 없었던 인도의 스프린터(육상 단거리선수) 두티 찬드(20)가 오는 8월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나선다. 찬드는 최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린 G 코사노프 메모리얼 육상대회 여자 100m 예선에서 11초30을 뛰어 리우 출전 기준기록을 충족시켰다고 영국 BBC가 26일 전했다. 그녀는 성별 검사 결과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검출치가 너무 높다는 이유로 2년 동안 여자선수로 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는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2011년 도입한 ‘안드로겐 과다혈증(hyperandrogenism)’ 규정을 적용받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지 1년 만에 올림픽 기준기록을 통과했다. 그녀는 “정말 기쁘다”며 “힘겨운 시절들이었으며 내 힘든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아 정말 행복하다. 내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기를 바란 모든 인도인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당신들의 기도가 제 값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IAAF의 안드로겐 과다혈증 규정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육상 선수 카스터 세메냐(25)가 성별 검사에 항거한 지 5년 만에 제정됐다. 당시 IAAF는 세메냐가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여자 800m를 우승한 뒤 논란이 일자 성별 검사를 의무화하고 여성 선수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남성보다 적어야 한다는 규정(리터당 10나노몰)을 신설하는 등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2010년 7월 핀란드 지역 육상대회를 시작으로 같은 해 남아공올림픽 800m 은메달을 따는 등 꾸준히 국제대회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다섯살 연상의 대표팀 여자 선배와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리우올림픽의 400m와 800m, 1500m 출전 기준기록을 모두 통과한 세메냐는 400m와 800m에 동시에 나설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떤 종목에 출전할지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지난 주말 아프리카육상선수권에서 금메달 7개를 휩쓴 뒤 ”아직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둘다 출전하고 싶기도 하지만 코치에게 달려 있다. 난 800m를 달리는 게 훨씬 편하다“라고 말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춘천대첩을 아시나요?

    공식 집계만 5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낸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 터전을 잡기 시작한 이래 가장 치열했고 가장 처참했던 전쟁이었다. 미·소 냉전 구도 속에서 김일성의 야욕과 이승만의 오판이 불러온 이 전쟁은 삼천리금수강산을 잿더미로 만들고 막대한 사상자를 냈지만, 66년이 흐른 오늘까지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북한은 개전 초기 있었던 어떤 한 사건만 없었다면 계획대로 수도권 일대에서 국군의 주력부대를 전멸시키고 파죽지세로 남하해서 UN군이 개입하기 전에 부산을 점령해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전쟁 발발 당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대단히 컸고, 서부전선에서 국군 방어선의 붕괴 속도는 김일성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북한군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뒤 서울에 무려 3일이나 틀어 박혀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이 3일이라는 시간 동안 국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후퇴하여 방어선을 다시 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북한은 부산 점령에 실패하고 다 이겨놓은 전쟁을 망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개전 초기 북한군의 발목을 잡았던 그 사건이란 무엇일까? 준비된 北, 방심한 南 전쟁 발발 하루 전인 6월 24일 북한군 전 부대에 하달된 ‘조선인민군 전투명령 제1호’에는 북한의 남침 작전 계획이 소상히 기재되어 있는데, 이 작전의 요지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서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서부전선을 맡은 제1군단이 개성-동두천-포천 일대에서 38선을 돌파해 공격을 개시하면, 중부전선의 제2군단이 춘천을 통해 밀고 내려와 그대로 이천-용인-수원 일대까지 진출해 제1군단에 쫓겨 후퇴하는 ‘남조선 괴뢰군’을 포위해 섬멸시키고 그 이후 사실상 무주공산이 되는 남한 전역을 신속하게 점령해서 일찌감치 전쟁을 끝내겠다는 것이 김일성의 구상이었다. 이 작전은 강력한 화력과 우수한 기동력이 생명이었는데, 김일성은 이를 위해 소련에 대량의 화포와 전차, 그리고 전투기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고, 스탈린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소련은 전쟁 직전까지 북한에 대량의 무기를 제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걸작전차라 불렸던 T-34/85 전차 242대와 YAK-9 전투기 200여 대, 각종 화포 1,100문 등이 그것이었다. 당시 북한군은 너무도 막강했다. 당시 북한군에는 중국 공산당 팔로군에 소속되어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고 돌아온 병력도 많았고, 해방 직후 소련군에게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무기와 장비의 수준도 훌륭했다. 반면 우리 국군은 너무도 보잘 것 없었다. 실전 경험이 있는 장병도 드물었고, 체계적인 훈련도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변변한 무기도 없었다. 당시 미국은 북진 통일을 부르짖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반감과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 때문에 남한에게 제대로 된 무기 제공을 상당히 꺼렸다.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242대의 전차와 1,100문이 넘는 화포를 제공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수 만대의 전차가 잉여 물자로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단 1대의 전차도 주지 않았다. 수백만정의 소총과 권총 재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남한에 제공하는 것을 꺼려했다. 이 때문에 M1 소총 등 미국제 장비로 무장한 부대는 전방 일부 부대에 불과했고, 후방 부대들은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총기와 탄약, 장비들을 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을 정도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는 극심했다. 사실 소련의 대규모 원조와 북한의 전쟁 준비 사실을 우리 정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북한의 기습 남침에 어느 정도 대응할 기회는 있었다. 1949년 육군본부 정보국은 북한이 1950년 봄 대대적인 남침 전쟁을 기획하고 있다는 정보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고, 당시 소령 계급을 달고 육군본부 정보국 전투정보과장을 맡고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군이 38선 일대에 집결을 완료했고, 남침이 임박했으니 대비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전쟁 하루 전날 작성해 군 수뇌부에 보고하는 등 북한군의 남침 준비 사실을 소규모 병력 이동까지 세세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 수뇌부는 전쟁 발발 하루 전 비상경계를 해제했고, 사단장급 지휘관들을 육군본부 주최 파티에 초대하는가 하면, 전체 병력의 반 이상을 농번기 대민지원에 내보내는 등 스스로 사실상 무장해제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렸다. 이렇듯 6.25 전쟁은 시작 전부터 북한이 이길 수밖에 없는 ‘다 이겨놓은’ 전쟁이었다. 청성부대의 춘천대첩 6월 25일 새벽 4시, 38선을 넘어 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은 김일성이 하달한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북한군은 대량의 화포와 강력한 T-34 전차를 앞세워 남한의 방어선을 유린했고, 수도권 북부 지역을 방어하던 우리 국군 부대들은 처절하리만치 온 힘을 다해 저항했으나,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전선은 무너졌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우리 국군 부대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한강 이남으로 패퇴했다. 이때 만약 ‘작전명령 제1호’에 따라 북한군 제1군단이 한강을 건너 남진을 계속하고 중부전선에서 춘천을 관통한 북한군 제2군단이 이천-용인-수원 방면을 통해 서울 남쪽에 나타났다면 우리 국군은 완전히 포위되어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남쪽에 북한군 제2군단은 나타나지 않았고, 일찌감치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 제1군단은 작전계획에 따라 제2군단을 기다리느라 한강 이북에서 무려 3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만 했다. 이 3일 동안 우리 국군은 패퇴한 부대들을 모아 전력을 재정비한 뒤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결국 이로 인해 북한의 속전속결 전략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군 제2군단이 포위망을 만들지 못했던 이유는 당시 춘천 일대를 방어하고 있던 국군 제6사단 청성부대에게 사실상 패배나 다름없는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주춤하며 방어선을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중부전선 철원 일대를 철통방어하고 있는 청성부대는 당시 국군 모든 부대 가운데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다. 특히 전쟁 발발 2주 전 사단장으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은 대단히 유능한 명장(名將)이었고, 예하 7연대장을 맡고 있었던 임부택 중령 역시 매우 뛰어난 지휘관이었다. 특히 임부택 중령은 전쟁 발발 1년 전부터 38선 정면의 적 2군단이 남침할 경우 춘천-가평 일대를 주요 공격 루트로 활용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일대의 주요 고지와 능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다. 임 중령은 육군본부에 방어진지 구축에 필요한 예산과 자재를 지원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을 설득해 이들의 도움으로 전쟁 발발 1개월 전에 완벽한 방어진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새로 부임한 김종오 대령 역시 전쟁이 임박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사단의 모든 포병전력을 북한군이 주력 침투로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춘천 일대에 배치하는 한편, 이 일대에서 북한군의 파상 공세를 상정한 방어 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이러한 훈련이 실시되던 6월 초·중순은 농번기였고, 육군본부에서도 장병들의 외출·외박을 지시하고 있었으나 김 대령은 사단장 직권으로 외출·외박을 취소하고 대부분의 사단 병력을 영내에 대기시키며 임박한 전쟁에 대비했다. 6월 25일 새벽, 북한군 제2군단은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앞세워 춘천 일대로 밀고 들어왔다. 북한군은 큰 무리 없이 춘천을 점령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첫 전투였던 춘천-홍천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대패했다. 당시 춘천으로 밀고 내려온 제2군단은 제2사단, 제12사단, 제15사단 등 3개의 보병사단과 T-34/85 전차와 SU-76 대전차자주포 등으로 무장한 제603모터사이클연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병력은 청성부대의 3배가 훨씬 넘었고, 전차는 물론 강력한 포병의 지원까지 받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군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2군단의 선봉으로 투입된 제2사단은 SU-76 대전차자주포를 앞세워 임부택 중령이 이끄는 제7연대 정면으로 파상 공세를 가했다. 그러나 7연대는 청성부대 예하 부대 중에서도 가장 전투준비가 잘 되어 있는 부대였고, 청성부대는 7연대 작전지역에 사단의 모든 포병화력을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전투준비가 되어 있기는 춘천 시민들과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빗발치는 적 포탄과 총탄을 뚫고 청성부대 장병들에게 포탄과 식량을 날라다 주었다. 민·군이 합심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한 결과, 기세 좋게 쳐들어온 북한군 제2사단은 7연대를 상대로 졸전을 거듭하며 하루 만에 전체 전투력의 40%를 상실하고 패퇴하며 사실상 부대가 사라졌다. 당황한 북한군 제2군단장 김광협 중장은 인제 방면으로 진격해 들어가던 제12사단을 춘천에 투입했다. 북한군 제12사단 전면에는 함병선 대령이 이끄는 제2연대가 있었는데, 김종오 사단장은 제12사단 병력이 움직이자 민병권 중령의 제19연대를 투입, 제2연대와 함께 북한군 제12사단에 맞서게 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제2연대를 집중 공격했지만, 제2연대는 압도적인 우위의 적과 맞서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북한군에 역습을 가하며 치고 빠지는 공격을 반복해 북한군의 진을 빼놓았다. 춘천 일대에서 벌어진 3일간의 전투에서 청성부대는 407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북한군 제2군단은 6,900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당초 제2군단은 일찌감치 춘천을 돌파해 이천-용인-수원을 거쳐 서울 이남에서 국군 주력부대를 포위해 궤멸시키는 것이 핵심 임무였지만, 춘천에서 3일간 발이 묶인 것은 물론, 주력부대가 사실상 궤멸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제2군단의 패전 소식에 김일성은 격분했다. 김일성은 즉각 제2군단장, 제2사단장, 제12사단장을 해임 및 숙청하고, 전투력을 집중해 춘천을 점령할 것을 지시했지만, 춘천을 방어하던 청성부대를 후퇴시킨 것은 북한군이 아니라 육군본부였다. 육군본부는 서울 함락 직후 김종오 사단장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모든 부대가 후퇴한 마당에 청성부대 혼자 고립되어 춘천 일대에 남아 있으면 적에게 포위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북한군 제2군단은 후퇴하는 청성부대를 집요하게 공격했지만, 청성부대는 전력을 온전히 보존하며 피난민들까지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후방으로 후퇴했다. 흔히들 6.25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전투는 맥아더 장군과 UN군의 인천상륙작전이었다고들 평가한다. 지금도 9월이 되면 곳곳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열리며, 작전을 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을 영웅으로 기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개전 초기 압도적인 전투력 열세 속에서도 청성부대가 거둔 ‘춘천대첩’이 없었다면 국군은 궤멸을 면치 못했을 것이고 UN군이 증원 오기도 전에 전쟁이 끝나 인천상륙작전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개전 초기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을 구한 이 ‘춘천대첩’에 대해 이제는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이일우 군사 전문 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finmil@nate.com
  • 영화 비평으로 접근한 조선영화史

    영화 비평으로 접근한 조선영화史

    조선영화란 하(何)오/백문임 외 3명 지음/창비/780쪽/4만원 한국에서 영화의 역사가 시작된 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추정된다. 하지만 당시의 영화계 풍경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당시 제작된 ‘활동 사진’(영화)이나 관련 자료들이 거의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한매일신보’ 등의 신문과 몇몇 잡지에 게재된 영화비평을 통해 당시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영화비평을 분석틀 삼아 조선영화사(史)를 발굴해내는 것도 분명 나름의 의미가 있는 작업일 터다. 새책 ‘조선영화란 하(何)오’는 바로 이 같은 접근방식에 천착한 책이다. 1910년대부터 해방 이전까지 쓰여진 조선영화 비평문을 선별해 당시 영화계 만화경을 그려내고 있다. 그 덕에 해설서이면서도 자료집의 역할까지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예컨대 고한승은 ‘신(新)영화 <아리랑>을 보고’(1926년, 대한매일신보)란 비평을 통해 “조선키네마의 초특작이요, 소위 1만 5천원의 촬영비를 들여 제작했다는 조선영화 ‘아리랑’이 촬영기술이라든지 감독술에서 독창적 성공은 없어도 대체로 흠잡을 곳이 없는 가작(佳作)”이라면서도 “한 장면씩 떼어놓고 보면 좋으나 한 개의 영화로 볼 때 연락(聯絡)이 못 된 곳이 결함”이라며 꼬집는다. 훗날 나운규는 조선영화 제1호(1936년 11월)에 “조선영화는 난관을 맞았다. 시대는 변했고 관객도 달라졌다. 영화가 문화사업의 하나라면 민중을 끌고나가야 된다. 백 리 앞에서 기를 흔들면 보이지 않으니 언제나 우리는 민중보다 1보만 앞서 기를 흔들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다. 당시 영화인들의 고민이나 현 영화인들의 고민이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책엔 모두 55편의 글이 실렸다. 편저자 4명이 조선영화사의 윤곽을 그리는 데 핵심적이라고 판단한 비평문들이다. 비평을 쓴 이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소설가 심훈, 시인이자 비평가인 임화, 소설 ‘태평천하’의 작가 채만식, ‘문장강화’의 저자이자 소설가 이태준 등 저마다 당대에 필력을 자랑했던 지식인들이다. 책은 각 영화비평문들을 초기영화, 변사, 사회주의 영화운동, 토키(발성영화), 기업화론, 전쟁과 국책(國策) 문제 등 14개 주제로 나눠 구성했다. 주제마다 편저자의 해제와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목록을 실었고, 당시 조선영화의 생산과 수용 현장을 살필 수 있는 신문, 잡지 기사를 스크랩으로 덧붙였다. 영화 장면과 제작, 상영 현장, 영화인들을 담은 150점 정도의 사진도 첨부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참전용사 자서전 만든 고딩들… “내신보다 내실” 수재들의 선택… 2살 한민고, 발랄하게 Go Go!

    참전용사 자서전 만든 고딩들… “내신보다 내실” 수재들의 선택… 2살 한민고, 발랄하게 Go Go!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지요. 내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네요.”(6·25 참전용사 엄봉용씨) 지난 23일 경기 파주시의 백마부대 2만여평 부지에 자리잡은 군인 자녀들을 위한 기숙형 학교인 한민고등학교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6·25전쟁 66주년을 맞아 학교 인근의 참전용사 4명을 모시고 ‘6·25전쟁 참전용사 자서전 발간 기념식’을 개최했다. 조선영(89), 장오봉(86), 엄봉용(82), 김구현(85)씨 등 총 4명의 참전용사가 주인공이었다. 두 달 전 심장수술을 받아 입원한 김씨를 대신해서는 부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해 자서전을 발간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20여명의 학생들은 이날 본 행사에 앞서 참전용사들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 프로젝트는 해가 갈수록 생존한 6·25 참전용사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한 한민고 학생들이 자서전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 지난 1년여 동안 진행됐다. 참전용사들은 한 명 한 명 소감을 얘기하며 전쟁 당시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했다. 조씨는 “전투라는 건 한도 끝도 없지만 일주일 내내 자지 못해도 조금도 졸지 않았다. 그런 쓰라린 고통 속에서 전투를 했다”고 전했다. 김씨 대신 참석한 부인은 “남편이 참전했을 당시 총탄 3발을 맞은 흉터가 지금도 그대로 있다. 당시에 소대를 살리겠다고 양말을 벗어서 상처를 꽉 동여매고 십리 길을 뛰어서 인민군이 있는 장소를 알리자마자 기절했다고 한다. 일주일 만에 깨어났는데 한 달 휴가를 받고 집에 와서 저와 선을 본 뒤 바로 결혼을 했다”고 회고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는 한민고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2014년에 개교한 이 학교는 아직 1회 졸업생도 배출하지 않은 신생 고등학교다. 후기 일반고이면서도 자사고 또는 특목고의 성격을 지닌 학교다. 군인 자녀가 70%이고 경기도에 거주하는 일반인 자녀가 30%다. 특히 학생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술·담배와 폭력, 불건전한 이성교제 등을 3금(禁)으로 정해 실천하고 있다. 휴대전화 사용은 금지돼 있지만, 층마다 ‘카카오톡’과 영상 통화가 가능한 다기능 영상 공중전화기가 설치돼 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전교생이 오전 6시에 기상을 해 6시 10분까지 운동장에 모여 국가와 부모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30분간 체조와 달리기를 한 뒤 하루를 시작한다. 군인 자녀들이라서 군대식 교육이 익숙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민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얘기를 듣고 난 뒤 이런 편견은 한순간에 깨졌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만족도가 전국 1위라는 게 이 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의 자랑이다. 한민고는 중학교 때 전교 1, 2등을 하던 전국 최고 성적의 중학생들이 모인 신생 명문고다. 김형중 교사는 “학생들 성적은 전국 평균 8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4년 개교 당시 일반 학생들의 입학 성적은 경기도교육청 내신성적 산출 기준으로 평균 197.5점(200점 만점), 군자녀 학생들은 193.7점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학교가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비결은 뭘까. 교사와 학생들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난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을 제1순위로 꼽았다.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를 비롯한 27명의 ‘한민고 서울대 멘토단’이 교육과정에 참여해 창의성을 배가했다. 가장 특별한 수업은 개교 이래 6개월 만에 자체 개발한 ‘융합수업’이다. 이 수업은 여러 선생님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 교과목의 관점에서 설명함으로써 기존 교과목 간의 벽을 허무는 수업이다. 박정민(18)양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여러 과목 선생님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는 방식인데, 다른 학교에서도 참관 올 정도로 히트를 친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1인1기’도 자랑할 만하다. 문화인의 소양을 키우기 위해 학생 1명당 악기를 1가지씩은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한바다(18)양은 “외부 강사를 초빙해 1주일에 두 번씩 악기를 배우는데, 각자 악기를 맡아 공연을 하기도 한다”면서 “해외 배낭여행을 간 아이들이 6·25참전용사비 앞에서 직접 작사·작곡한 ‘못다 부른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학년 학생들은 6박7일간 국내로, 2학년 학생들은 같은 기간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는 것도 이 학교만의 강점이다.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주제를 선택해 경쟁을 통해 최종 주제를 선정, 해외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 뒤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김 교사는 “학생 전원이 해외로 배낭여행을 가는 학교는 우리 학교가 유일하다”고 자랑했다. 학생들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 밤을 제외하고는 휴일과 공휴일에도 집에 가지 못한다. 학교에서 공휴일과 휴일에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말특강프로그램인 ‘아낌없이 주는 한민’에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 가수 인순이 등 유명인사들이 초빙됐다. 한민고 교사들의 교원 선발 경쟁률은 최고 80대1을 기록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최고 수준의 교사들을 갖춘 것도 한민고의 장점이다. 학비는 기숙사와 방과후학교 등 제반 비용을 모두 포함해 연간 1100만원이다. 하지만 신설 학교인 데다 1회 졸업생도 배출하지 못한 학교에 자식을 보내기로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듯하다. 전교 1등을 하던 학생들일지라도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기숙형 학교에서는 성적이 떨어질 우려도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내신 성적에서 상당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에 대해 김려원(18)양의 어머니 정유경(45)씨는 “군인이었던 아빠 때문에 아이가 중학교까지 무려 11번을 이사했고, 결국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더이상 이사 가기 싫어해 아빠가 전역을 했다”면서 “그런데 아이가 사교육을 할 수 없는 한민고를 가겠다고 해서 갈등도 많았지만 지금 너무 만족해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박기성(18)군의 어머니 강성아(45)씨는 “아이가 졸업을 하고도 3년을 더 다니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학교”라며 흐뭇해했다. 이해선(18)양의 어머니 김은주(52)씨는 “대학 진학 실적만으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일반고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과 인성을 배운다”고 했다. 과학영재학교인 경기과학고의 교장을 지내고 한민고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 전영호 교장은 “나라사랑 정신과 함께 인성과 창의 교육이 학교 교훈”이라면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세간의 편견과 법적 미비 등으로 인해 한민고의 미래가 불확실한 것은 사실이다. 2010년도 2월 국방부에서 학교 설립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졌고 군인복지기본법으로 학교 설립 근거가 마련됐다. 당시 550억원의 국방부 예산이 투입돼 학교를 설립했지만, 이후 학교 운영과 관련해 법제처에서 제동을 걸고 있다. 19대 국회에 제출된 군인복지법에 학교 운영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었으나 회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재는 학부모·법인이 75%, 교육청이 25% 비율로 운영비와 교원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에서 법적 미비로 법정부담금(교원 4대 보험 등)을 지원하지 못하면 교육청 산하로 바뀌게 된다. 한민고 설립 과정에 참여한 학교법인 한민학원 이재봉(육군 대령 출신) 사무국장은 “군인들은 명령에 따라 갑자기 이사를 가는 등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데 자녀들이 무슨 죄가 있나”라면서 “군인 자녀에 대한 기숙형 학교 설립 및 지원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 사진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맷 데이먼 ‘제이슨 본’, 퍼펙트 컴백 영상 공개!

    맷 데이먼 ‘제이슨 본’, 퍼펙트 컴백 영상 공개!

    맷 데이먼 주연의 액션 블록버스터 ‘제이슨 본’ 퍼펙트 컴백 영상이 공개됐다. 공개된 영상에는 제이슨 본(맷 데이먼)이 새로운 국면에 처하게 된 상황을 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 “맙소사, 제이슨 본이잖아!”라며 놀라는 요원의 대사는 그의 등장을 기대케 한다. 거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로 프랑스의 국민 배우 뱅상 카셀과 연기파 배우 토미 리 존스 등 최고 스타들의 매력적인 연기를 엿볼 수 있다. 영화 ‘제이슨 본’은 맷 데이먼의 컴백과 더불어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의 재회로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맷 데이먼은 직접 각본에도 참여하는 등 작품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제이슨 본’은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알게 된 ‘제이슨 본’이 다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액션블록버스터다. 오는 7월 28일 국내 개봉. 사진 영상=UPI코리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인구 증가 1위 ‘힐링 양평’ 뒤엔 건강 농산물 보증서는 군수님

    [자치단체장 25시] 인구 증가 1위 ‘힐링 양평’ 뒤엔 건강 농산물 보증서는 군수님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날 아침 하얗게 질린 아내의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너무 미안합니다.” 김선교 경기 양평군수는 47세였던 2007년 1월 ‘정치를 해야겠다’는 굳은 마음을 먹고 양서면장(사무관)직을 내던졌다. 지방직 공무원으로는 가장 높은 국장급(서기관)까지 쉽게 오를 수 있었지만 안정적인 평범한 삶보다는 뭔가 큰 뜻을 펼치고 싶었다. 미리 어머니께 알리고 아내와 상의해야 했으나 반대할 게 너무도 뻔해 퇴임식 당일 아침에야 털어놨다. 요직을 두루 거치며 잘나가던 그였지만 막상 출마를 한다고 하자 현실은 섭섭하리만치 냉혹했다. 넓은 군청 강당이 아닌 초라하고 좁은 면사무소 회의실에서 퇴임사를 하게 됐다. 오기로 꼭 잡은 마이크에 대고 왜 군수에 출마하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 힘줘 꼭꼭 눌러 밝히자 청중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여당 말뚝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양평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이후 내리 3회 연속 군수에 당선됐다. 김 군수의 하루는 남보다 훨씬 빠른 오전 3시 30분에 시작한다. 지난 16일도 마찬가지였다. 컴퓨터로 밀린 결재를 하고 군민과 직원들이 보낸 이메일을 읽고 회신을 하다 보면 5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부지런한 행정을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다. 김 군수는 지금 사는 옥천면 신복리 후평마을 토박이다. 100여 가구에 이르는 광산 김씨 집성촌이었으나 전원마을로 인기를 끌면서 외지인이 크게 늘어 400가구가 됐다. 그가 군수에 당선됐던 2007년 말 양평군 인구는 8만 7874명에 불과했으나 지난 3월 8일 현재 2만 2146명이 늘어나 11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2013년 시로 승격된 여주시는 2007년 10만 6926명이었으나 같은 기간 4382명 증가하는 데 그쳐 3월 현재 11만 1308명에 불과하다. 양평군의 최근 5년간 인구 증가율은 전국 77개 군 단위 지역에서 1위다. 김 군수는 “수도권 인근이란 지리적 이점과 더불어 그동안 일군 건강·힐링 고장 이미지가 한몫했다”고 말한다. 그는 평소 농촌 비중이 높은 양평군의 살길을 ‘저출산 고령화 극복’으로 진단했다. 아이 키우기 좋은 고장, 노인 일자리가 풍부한 지역, 안전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야 인구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행복공동체 만들기 사업’ 등 다양한 시책에 역점을 두고 군정을 이끌어 왔다. ●10년 싸워 얻은 중부내륙 양평IC 올해 말 개통 남한강변을 한 바퀴 돌아보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오전 8시 직접 운전해 출근한다. 일찌감치 서류상 업무를 처리했기 때문에 오전부터 현장을 찾는다. 이날도 남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강상면 병산리 중부내륙고속도로 양평나들목(IC) 건설 현장을 둘러봤다. 설계에 없던 나들목이다. 중앙정부를 상대로 10년을 싸운 끝에 얻어낸 성과물이다. 김 군수는 “국토교통부를 한 50회는 다녀온 것 같다. 그만 오라고 하더라”면서 웃었다. 올해 말 개통하면 고속도로 이용이 편해져 양평읍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리를 따지는 성격은 군 행정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종합운동장은 당초 485억원 이상을 투입해 양평읍 외곽에 1만 2000석 규모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7000석 규모로 축소해도 군민체육대회를 치르기에 충분할 것이란 판단이 들자 규모를 과감히 축소했다. 공사비도 200억원 아꼈다. 여유 부지에는 교육청, 우체국, 경찰서,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유치해 행정타운으로 만들고 호텔 등도 유치하기로 했다. 오전 8시 40분 집무실에서 열린 국·담당관 회의는 전원도시답게 곧 출하하는 수박과 감자 등 친환경 농산물을 어떤 가격에 얼마나 수매할 것인지 등이 주요 안건이다. 오후에는 생산자 단체들과 감자 수매와 관련한 협상도 해야 한다. 김 군수가 양평(지방)공사 김영식 사장을 급히 불렀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금액에 수매할 경우 예상되는 손실이 얼마인지 물었다. 8100만원이라고 했다. 김 군수가 친환경 인증농가들에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며 특상품 감자 수매가를 농민들이 요구하는 ㎏당 1300원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대신 판로가 불투명한 200t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당 1250원 이상은 곤란하다고 했다. 독하게 마음먹고 오후 5시 ‘친환경 감자 수매가 심의위원회’ 회의에 나섰지만 감자 생산자 단체들의 입장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김 군수가 수매 후 판매에 책임을 지겠다며 생산자 단체 입장을 전부 수용하자고 김 사장을 설득했다. 김 사장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지난해 양평공사 손익을 겨우 맞췄는데 그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양평군은 2005년 전국 최초 ‘친환경 특구’로 지정돼 쌀·감자·양파·마늘 등 10개 핵심 농산물의 농약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생산한 농산물뿐 아니라 토양에서도 농약이 절대 검출돼서는 안 된다. 친환경농업과 이윤근 과장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보다 더 엄격하게 관리한다”고 말했다. 우렁이를 이용한 유기농법으로 생산하는 양평쌀의 경우 포대 표면에 생산자 이름과 친환경 인증번호뿐 아니라 “양평군수가 품질을 보장합니다”라는 글귀를 큰 글자체로 명시했다. 만약 유통한 쌀에서 농약이 검출되면 김 군수가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농약 및 비료 사용을 엄격히 금하는 대신 양평군이 해당 농산물을 전량 수매한 후 판매를 대행한다. 농민들은 중간 유통 단계를 거치지 않아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고 판매에 부담이 없다. 양평군은 면마다 사회적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어 농산물 10대 품목을 특화 재배하도록 지원한다. 농산물 10대 품목을 수매하는 지자체는 전국에서 양평군뿐이다. 양평군에 5인 이상 기업은 91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장류·인삼 가공·과자류 생산·산나물 가공 판매업체가 대부분이다. 양평군이 유기농 재배와 농산물 10대 품목 수매의 고육책을 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을 현안 논의하는 주민대표 회의도 참석 오찬을 끝낸 김 군수가 잠시의 휴식도 없이 국기게양대가 새로 세워진 물안개공원을 찾았다. 일제 치하 때 만세운동이 크게 일었던 양평읍에서는 마을 곳곳에 태극기가 물결치고 있다. 공원 가장 높은 곳에 새로 세워진 국기게양대에 박명숙 군의회 의장 등과 함께 대형 태극기를 게양했다. 오빈2리를 비롯해 8개 마을을 돌아보자 오후가 금세 지났다. 저녁 식사 후 퇴근하나 싶었으나 김 군수는 마을별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주민대표들과의 회의가 있다며 백안2리 마을회관을 찾았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깔끔한 주거 환경이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밤은 깊어 가는데 꼭 보여 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김 군수가 25일 야간 개장하는 세미원으로 잡아끌었다. 세미원은 양평군이 2004년 5월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서면 용담리 두물머리에 만든 자연정화공원이다. 은은한 조명을 받고 막 피어오르는 백련, 홍련이 환상적이다. 이훈석 대표이사가 6년을 쫓아다닌 끝에 국토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설치한 열수주교(배다리)는 그 하나로도 훌륭한 야간 산책로였다. 연인원 175만명이 찾는 세미원은 포천시가 폐석산을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시킨 포천아트밸리, 광명시가 폐광을 사들여 세계적인 동굴테마파크로 만든 광명동굴과 더불어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창조경제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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