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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인구절벽 늦추려면 혁명 수준 대책 내놔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어제 육아기 부모는 임금 삭감 없이 2년간 1시간 단축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남편의 육아휴직 급여 상한액과 유급출산 휴가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합계출산율이 처음으로 1명 아래로 내려가고 출생아 수도 30만명 선이 붕괴될 것으로 보이는 등 ‘인구절벽’이 가시화되는 데 따른 조치다. 정부는 대책을 두고 ‘2040세대의 육아부담을 줄이는 식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했다. 이번 대책을 바라보는 젊은층의 시선은 역시 싸늘하다. ‘몇백만원 더 준다고 누가 애를 낳겠냐’는 것이다. 아빠의 육아휴직 급여는 기존 2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올렸지만, 휴직 뒤 첫 3개월에만 국한되면서 4개월 이후에는 120만원으로 쪼그라든다. 아빠들이 생계 부담에 육아휴직을 낼 수 없는 현실은 여전하다. 고용보험 미적용자에게 150만원을 더 준다지만, 그 수준으로 출산율이 높아질 리도 만무하다. 9000억원의 재정 투입 규모도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재정 당국이 소극적으로 예산 편성을 했다는 뒷말도 들린다. 이쯤 되면 정책 입안자들이 ‘저출산 속도를 늦추는 건 불가능하니 괜히 헛돈만 쓰지 말자’고 여기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다. 어제 발표된 ‘신혼부부 주거 지원 방안’도 향후 5년간 88만 가구의 신혼부부에게 공공주택 등을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34만 가구는 혜택에서 제외되고 재원확보 등에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현재 저출산은 결혼해 출산하면 양육과 교육에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데 남녀 젊은이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탓에 ‘애 낳으면 패가망신’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주거와 고용, 양육, 교육 등 분야별로 실효성 있으면서도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2013년 기준)에 그치는 저출산 지출 규모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처럼 3% 내외 수준으로 대폭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저출산 문제는 돈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엄마의 ‘독박육아’가 엄마·아빠의 공동육아로 전환되고, 취업과 승진 등에서 기혼 여성의 불이익이 없어지며, 여성 인권을 높이는 등 사회·문화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10월에 발표될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백약이 무효’였던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혁명 수준의 대안이 제시되길 기대한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예우이자 안전 문제로 1인실, 일반인과 달리 10여명 전담팀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예우이자 안전 문제로 1인실, 일반인과 달리 10여명 전담팀

    전직 대통령은 감옥 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을까. ‘범털’(죄수들의 은어로, 거물급 수감자) 중의 범털이라는 전직 대통령인데 일반인과 똑같은 대접을 받을 리는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인의 시각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나 형 집행에 관한 법률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감 기준은 없다. 하기야 대통령 구속을 전제로 규정을 만드는 것은 좀 우습기는 하다. 1인실을 주고 거실을 따로 주는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이지만 안전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법무부 관계자는 “다인실에 수감하거나 일반인과 만나게 하면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수 있어서 1인실에 두고, 일반인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운동시간과 이동시간을 잡는다”면서 “식사나 도서신청, 운동은 모두 똑같다”고 말했다.●여인숙과 모텔… 구치소마다 시설 차이 전직 대통령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독거실(독방)에 수감된다. 특혜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긴 수감생활에는 독방보다는 다인실(혼거실)이 낫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전직 대통령의 독방과 다인실은 천양지차다. 서울구치소 기준 4인실은 8.48㎡(1.35평), 6인실은 12.75㎡(3.86평)지만 보통은 1~2명씩 더 수감한다. 반면 전직 대통령은 13~22㎡ 안팎의 독실을 쓴다. 안양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21㎡(6.47평)와 22㎡(6.6평)의 독거실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10.08㎡(3평),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13.07㎡(3.96평)의 독방에 각각 수감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의 독방이 이 전 대통령 독방보다 작은 것은 임기를 마치지 못한 대통령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시설이 협소하고 오래된 구치소 여건상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는 게 교정 당국의 설명이다. 이 전 대통령이 있는 동부구치소는 2017년 신축 이전해 건물과 시설이 새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게다가 12층에 수감 중이다. ‘펜트하우스’에서 수감생활을 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2017년 3월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어서 두 전직 대통령을 한곳에 수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이 동부구치소에 수감되면서 혜택(?)을 본 것이다. 텔레비전과 샤워실, 화장실, 식탁 겸 책상, 싱크대, 청소용품, 사물함 등은 일반 수감자와 같지만, 다른 점은 혼자 쓴다는 것이다. 여인숙과 모텔의 차이쯤 될까. ●“716 이명박씨” “503 박근혜씨”로 불려 전직 대통령은 일반 수감자와 달리 전담팀이 꾸려진다. 대략 10~15명쯤 된다고 한다. 이들은 전직 대통령의 안전은 물론 각종 수발을 한다. 전직 대통령의 동향 등이 밖으로 잘 새어 나가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호칭은 수인번호를 부르는 게 원칙이지만, 대부분 ´716번 이명박씨’나 ‘503번 박근혜씨’처럼 수인번호 뒤에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 과거에는 오랜 수감생활로 친해지면 개인적으로 만나면 ‘각하’라는 호칭을 쓰기도 했단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감방 내에서도 통 크게 놀아서 교도관들로부터 인기가 제법 높았다고 한다. ●라면·간식 등 특별식사? 보는 눈이 많다 식사는 일반 수감자나 전직 대통령이나 같다. 영치금으로 간식 등을 사 먹을 수 있다는 점도 똑같다. 독방인 만큼 밤에 라면이나 다른 간식을 시켜 먹을 수 있지만, 이는 금기사항이다. 밤에 식사 수발 등은 같은 일반 수감자가 교도관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자칫 이들이 소문을 내면 특혜를 베푼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취침·운동·면회는 일반 재소자와 같아 재소자들은 오후 5시면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오후 9시면 취침을 해야 한다. 기상은 보통 오전 6시다. 전직 대통령이라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1일 45분이 기준이다. 면회도 장소변경 면회(특별면회)는 주 2회, 일반 면회는 하루 1회, 변호사 접견도 일반 재소자와 같지만, 일반인과 접촉을 피한다는 원칙에 따라 운동시간 등에서 혜택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sunggone@seoul.co.kr
  • [인사]

    ■국토교통부 ◇국장급 전보△종합교통정책관 박무익△항공정책관 진현환 ■국세청 ◇고위공무원 나급△광주지방국세청장 김형환△기획조정관 강민수△전산정보관리관 정철우△감사관 김창기△개인납세국장 권순박△조사국장 김명준△소득지원국장 박석현△서울청 조사1국장 임광현△서울청 조사2국장 한재연△서울청 조사4국장 임성빈△서울청 국제거래조사국장 김동일△중부청 성실납세지원국장 조정목△중부청 조사4국장 이청룡◇부이사관 전보△국세청 전산기획담당관 김대원△국세청 심사1담당관 박종희△대구지방국세청 조사1국장 장동희△국세청 민주원△국세청 오덕근△국세청 구상호△국세청 신희철 ■한국감정원 △감사실장 박석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진△감사조사담당관 오상규 ■신한은행 ◇부서장 이동△외국인투자사업부장 장기원△투자금융부장 장호식△글로벌사업본부 팀장(부서장대우) 이동호△글로벌사업본부 팀장(부서장대우) 윤기성△감사부 부장감사역(부서장대우) 조성환△한남동 금융센터 리테일지점장 공경택△인천중앙 금융센터 리테일지점장 김수경△태백지점장 김재건△여의도 대기업금융센터 기업지점장 겸 RM 우한상△글로벌사업본부소속 조사역(부서장대우) 조정훈
  • [생각나눔] 웃돈 받는 ‘담배 판매권’… 과한 규제냐 상권 보호냐

    [생각나눔] 웃돈 받는 ‘담배 판매권’… 과한 규제냐 상권 보호냐

    담배판매소 간 거리를 50m 이상 두도록 한 ‘담배사업법 시행규칙’ 자동 폐지가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규제 완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예정대로 폐지돼야 한다는 의견과 국민건강 보호를 위한 필수 규제로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담배소매인 지정기준을 ‘일몰 대상 규제’로 보고 2013년 이후 5년간 한시적으로 거리제한을 유지했다. 정부가 추가 연장하지 않을 경우 내년 1월부터는 모든 편의점이나 잡화점에서 담배를 팔 수 있게 된다. 담배사업법은 청소년을 보호하고 판매자의 독점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청 및 읍·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에서는 50m, 그 외 지역에서는 100m 안에 새로운 담배판매소를 허가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거리제한은 시장·군수·구청장 등이 별도 규칙으로 정할 수도 있다. 서울 서초구는 3년 전 전국에서 유일하게 100m 이상으로 확대했다. 정부는 당초 담배판매의 유통질서 확립, 탈세 방지, 소매인 간 과당 경쟁으로 인한 담배 소비 증가로부터 국민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규제 완화 차원에서 폐지할 때가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때문에 주무 부처인 기재부는 아직도 이 제도를 유지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과거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거리제한이 필요했지만 대기업 계열 편의점이 일반화된 지금 상황이 달라졌다”며 규제 철폐를 바라고 있다. 해외에서도 대부분 담배판매제도를 허가제로 엄격히 통제하면서 인구 및 거리에 따라 판매허가를 내주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우리나라보다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 12만 6000명에 달하는 기존 담배소매인들도 독점 영업이 불가능해질 것을 우려, 이 제도의 자동 폐지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청소년 및 소비자 보호 단체도 국민건강 보호를 이유로 거리제한 유지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거리제한을 유지하면 기득권 이익을 보호하는 모양새가 되는 게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전해졌다. 전국 곳곳에서 기존 판매점과 새로 판매점을 하려는 업소 간 다툼이 잇따른다. 허가권을 쥔 자치단체는 판매점 허가를 새로 받으려는 사람들과 방어하려는 기존 업주들의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 관계자는 “편의점은 담배판매권 여부에 따라 매출이 2배가량 차이가 나고 편의점을 팔 때 권리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또 자치단체들은 거리제한 등의 사실조사를 특정 담배판매자 단체에 맡겨 불공정시비를 낳기도 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시장·군수·구청장이 사실조사를 하기 곤란하면 관련 기관 또는 단체에 의뢰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담배판매인중앙회 산하 141개 조합에 이를 위탁했다. 기존 판매자가 신규 판매자의 영업을 찬성할 리 없기 때문이다. 실례로 강원 춘천시 강남동 한 복합건물에 편의점 영업을 준비하던 A씨는 지난 5월 시가 담배소매인 지정 예정 공고를 내자, 단독 응모했다. 그러나 시는 “타 편의점과의 거리가 ‘직선 20m’에 불과하다”며 불허가 처리했다. 시는 두 편의점 사이에 있는 도로의 직선거리를 쟀다. 반면 A씨는 “두 건물 양쪽에 횡단보도가 있고 황색 중앙선 실선이 그려진 도로라 실제 걸어 이동하는 동선의 길이로 판단하면 충분히 거리가 떨어져 있다”며 황당해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美·中 무역전쟁 디데이… 中 “선제공격 안하겠다”

    트럼프, 관세 철회 움직임 없어 전면전 땐 세계경제도 악영향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첨단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 폭탄’ 발효 하루를 앞둔 5일 중국은 ‘전의’를 다지면서도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가오펑(高峰)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이 관세라는 몽둥이를 휘두르며 협박하는 무역 패권주의에 대해 중국은 머리를 숙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오 대변인은 이어 “중국은 경제 세계화와 전 세계 산업구조에서 중요한 참여자로 많은 수출품이 외국 투자기업에서 생산된 것”이라면서 “미국이 발표한 대중국 관세 부과 명단 가운데 200여억 달러 규모의 제품은 중국 내 외국 투자기업들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이 중국에 관세 부과를 강행한다면 중국과 미 투자기업을 포함한 각국 기업에 관세를 매기는 셈”이라면서 “미국은 전 세계뿐만 아니라 자국에도 관세 폭탄을 발포하는 게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보다 시차가 12시간 앞서는 중국은 그러나 미국보다 먼저 관세를 부과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4일 오후 성명에서 “중국은 선제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미국보다 앞서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이 추가 관세 리스트를 발표하면 몇 시간 만에 같은 규모의 보복 관세 계획을 밝혀 이번에도 비슷한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4일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미국에 함께 대응하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총리는 “중국은 유럽연합(EU)과 다자주의를 수호하고 무역과 투자 자유화 및 편리화를 촉진하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는 6일(현지시간)부터 340억 달러(약 38조원) 규모의 중국산 제품 818개 품목에 25% 관세를 물리고, 추후 160억 달러의 284개 품목에 대해서도 관세 부과를 검토한다고 지난달 14일 밝혔다. 이에 중국도 미국산 일부 수입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즉각 시행 방침으로 맞대응했다. 워싱턴의 한 통상 전문가는 “‘G2’인 미·중 무역전쟁은 얽히고설킨 글로벌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의 수출이 10% 줄어들면 한국 등 아시아국가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평균 1.1% 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양 치던 섬, 인공 도시 되어 한강의 기적 일구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양 치던 섬, 인공 도시 되어 한강의 기적 일구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8회 여의도(여의도공원의 여름) 편이 지난달 30일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에서 진행됐다. 장맛비가 예고돼 있어 전날부터 행사 진행 여부를 걱정했지만 하늘이 도왔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가자들은 우산과 비옷으로 무장한 채 단 한 명의 ‘노쇼’도 없이 대기자 10명을 포함, 40명 전원이 출석했다. 간간이 비가 뿌릴 때마다 건물 안이나 다리 아래로 피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이날 국회의사당역에서 출발, 제헌 70주년을 앞둔 국회의사당과 헌정기념관을 둘러보고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 윤중제를 돌아서 순복음교회~한강공원~한국거래소~여의도지하벙커~여의도공원 코스를 2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건축 전공자답게 박정희 전대통령, 김현옥 전서울시장, 김수근 건축가 등 3인의 여의도개발 주역을 내세워 여의도의 형성과 건축 과정을 중심으로 코스를 꾸려 나갔다.화려한 정치·금융·방송의 도시 여의도에는 숨겨진 내력이 많다. 여의도는 한국 근대산업화의 표상이라 할 만한 도시다. ‘여의도 면적’(2.9㎢·약 87만평)이라는 기준이 모래밭을 인공 도시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한강의 기적’이란 여의도를 육속화한 한강개발계획의 다른 이름이다. 강남의 원조이자 선두주자인 여의도가 강남보다 뒤처진 것은 한남대교(제3한강교)가 1969년 12월 한발 앞서 놓인 탓이다. 강남을 기점으로 전국을 잇는 고속도로 시대의 개막이 강남시대를 낳았다. 여의도는 1970년 5월 마포대교(옛 서울대교)가 놓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또 1973년 소양강댐이 완공돼 한강 홍수 피해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 모래도시, 수중도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여의도와 밤섬은 한몸이었다. 여의도는 지금도 마포 쪽 본류와 영등포 쪽 샛강이 존재하는 섬이다. 여의도를 둘러싸는 윤중로가 인공적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둑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한강하류에 형성된 백사장 중에서 영등포 쪽 양말산과 서강 쪽 밤섬만이 홍수 때 잠기지 않는 언덕이었다. 고산자 김정호는 경조오부도에 여의도와 밤섬을 붙여 그려 놓고 ‘백사주이십리’(白沙周二十里)라고 표기했다. 20리를 면적으로 환산하면 170만평이다. 조선시대 밤섬에 관한 기록은 더러 있지만 여의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기 어렵다. 한성부(서강방 율도계)에 속한 밤섬과 달리 여의도는 경기도(금천현 하북면)였기 때문이다. 밤섬은 뽕나무와 약초를 키우면서 배를 만드는 사람들이 사는 풍족한 마을이었지만, 여의도는 제사에 쓸 양과 염소를 키웠다. 그러나 두 섬의 운명은 180도 바뀐다. 여의도가 주 섬이 되고, 밤섬은 폭파돼 여의도를 채우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여의도는 1968년 개발 이전까지 도시의 변방이었다. 일제강점기 경인철도 노선이 최단거리인 남대문~마포~여의도~인천 제물포로 연결되지 않고 남대문~용산~노량진~영등포~제물포로 우회한 게 결정적이었다. 1911년 경성부 연희면 여의도, 1914년 경기도 용강면 여율리, 1936년 경성부 여의도정, 1946년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동으로 행정구역이 계속 바뀌면서 시가지 확장 대상 지역에서 빠졌다. 경마장으로 쓰였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비행장이자 공군의 발상지라는 역사가 묻혔다. 오늘의 강남을 영등포의 동쪽에 있다고 영동이라고 부르던 시절 서울은 교통난, 주택난, 급수난에 빠진 ‘3난의 도시’였다. ‘건설이 종교였던’ 김 전 시장에게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서 택지로 활용하는 방안이 떠올랐다. 여의도와 마포, 영등포를 연결할 다리를 건설하고 한강의 남과 북에 제방도로를 만들어 홍수에 대비하면서 남은 강변에 택지를 조성한다는 아이디어였다. 서울의 얼개가 한강개발 3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이때 굳어졌다. 여의도의 면적은 126만평이었지만 영등포 쪽 샛강을 33만평 유지하고 한강본류를 1300m 강폭으로 유지하는 계획에 따라 87만평으로 줄어들었다. 샛강은 나중에 복개하기로 했다. 윤중제의 높이는 15.5m, 제방 너비는 21m, 길이는 7.6㎞였다. 한강 강폭 유지와 여의도 둑 쌓기를 위해 밤섬은 희생제물이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150달러이던 시절 110일 만에 모래도시가 탄생했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강남을 포괄하는 제2서울 건설 계획이 세워졌다. 박 전 대통령의 총애와 지원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은 공사가 진행 중이던 1968년 5월 5일, 12일, 21일 세 차례나 여의도 현장을 찾았다. 예고 없이 수행원도 없이 새벽에 나타난 일도 많았다. 김수근이 등장한다. 1966년 세운상가, 1967년 청계고가를 계획하고 설계한 김수근팀에게 여의도 설계를 맡겼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하는 제2서울을 건설하되, 제2서울 도심부에 건립되는 건물은 모두 10층 이상으로 높이고 시가지는 지하도나 육교가 없는 초현대적인 도시를 구상했다. 사대문 안 구도심~마포~여의도~영등포~인천을 연결하는 새로운 도시라인을 그렸다. 국회와 사법부, 시청, 외국공관을 여의도로 옮기려는 계획이었다. 1970년 4월 와우아파트 붕괴로 김현옥이 물러나고, 다음달 마포대교가 준공됐다. 허허벌판 여의도를 남겨 놓고 떠났다. 서울시는 공무원 봉급을 주기 어려울 정도로 재정난에 허덕였다. 새로 부임한 양택식 시장은 여의도 택지를 팔아 지하철을 건설하고자 했다. 명동공원, 서린공원 등 돈이 될 만한 것은 다 팔았다. 대한민국 아파트의 ‘시범’을 보일 여의도시범아파트를 대법원지구와 시청지구에 지었다. 여의도 땅을 팔아서 강남과 잠실, 도심재개발, 지하철 1호선 건설이 속속 이뤄졌다. 뼛속까지 군인이던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시장의 여의도 계획은 수용했지만 초현대식 입체 수중도시의 꿈은 공유하지 않았다. 중앙부 12만평에 ‘5·16광장’을 조성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비상시 군용 비행장으로 전용하기 위해 조성된 5·16광장은 여의도광장을 거쳐 1999년 여의도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여의도는 한국 현대사의 영과 욕이 담긴 기억저장소로 남았다. 글 사진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문희일 연구위원
  • [건강을 부탁해] “선크림 대신 ‘자차 겸용’ 화장품? 효과 낮다” (연구)

    [건강을 부탁해] “선크림 대신 ‘자차 겸용’ 화장품? 효과 낮다” (연구)

    최근 화장품 업계에서는 자외선 차단 효과와 피부 보정 효과 등을 모두 갖춘 ‘올인원’ 제품이 대세지만, 선크림 대신 이러한 화장품을 사용하면 실질적인 자외선 차단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왔다. 영국피부과협회(British Association of Dermatologists)는 최근 연례회의에서 선크림과 자외선 차단 겸용 화장품의 자외선차단 효과를 비교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자외선에 노출되면 피부암의 위험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시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화장품 업계에서는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는 보습크림이나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등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으며, 이는 더욱 간편한 메이크업을 선호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리버풀대학 연구진은 특수 카메라를 이용해 선크림과 자외선 차단 겸용 화장품의 효과를 비교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두 화장품의 SPF(자외선 차단지수)는 모두 30으로 동일했지만, 자외선 차단 효과는 달랐다. 자외선 차단 겸용 화장품은 선크림에 비해 자외선 흡수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선크림을 바른 얼굴이 자외선 차단 겸용 화장품을 바른 얼굴에 비해 훨씬 검게 보이며, 짙은 검은색으로 보일수록 자외선 차단 효과가 높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외선 차단 겸용 화장품이 선크림에 비해 피부에 더 얇게 발리는 특징이 있으며, 이것이 자외선 차단 효과를 떨어뜨린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사람들이 매우 쉽게 자외선 차단 효능을 비교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서 “SPF 효능이 있는 화장품도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긴 하지만, 그 효과가 선크림과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일반 화장품만 바르는 것보다는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는 화장품을 바르는 게 더 낫다고 추전한다”면서 “하지만 높은 자외선 차단 효과를 기대한다면 선크림을 바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피부암 등을 유발하는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선크림을 수시로 덧발라주고, 선글라스 등을 착용하라고 권장했다. 자세한 연구결과는 이번 주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린 영국피부과협회 연례회의에서 발표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여기는 중국] 키 작아 슬픈 여대생 …키 때문에 교원 자격증 취득 실패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선생님의 신장이 큰 영향을 미칠까? 중국의 한 여대생이 키가 작다는 이유로 교원 자격증을 얻는데 실패했다. 3일 중국 언론 서부망에 따르면, 중부 산시성 사범대학을 졸업한 여학생 리씨는 지난 달 중순 신체검사를 받은 후, 교원 자격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산시성 교육부는 해당 지역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서 여성 지원자들은 150cm, 남성 지원자들은 155cm 이상의 신장을 갖춰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리씨의 경우 키가 150cm보다 작은 140cm로 교육부가 요구하는 교원 자격 기준에 들지 못했다. 2014년 영문학 전공 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리씨는 “대학에서 보낸 4년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됐다.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할 경우, 학교와 맺은 등록금 면제 협정을 위반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대학은 4년 전에 이 사실을 알려줬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에 의하면, 특정 대학에서는 교육학을 이수하고 졸업 후 공립 학교 교사가 되겠다는 계약에 서명한 학생들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포함한 전액장학금을 지불하고 있다. 리씨도 이에 해당하는 학생이었다. 리씨의 소식을 접한 산시성 사범대학 대변인은 “대학 측이 해당 규칙을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는 교육부 지시에 따를 뿐”이라면서도 “리 외에도 매년 작은 신장 때문에 교원 자격증 취득에 실패하는 학생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 관계자 양씨는 “초중등 교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그 기준에 따라 이번 사례를 다룰 것이며 내년에는 그 규정을 낮추거나 폐지할 생각”이라며 “그 전까지는 다음해 입학생들에게 신장 규정에 대해 알리라고 대학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편 교원 자격을 갖추기 위한 필수 신장 규정은 중국 전역에서 통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각 지방마다 각자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 쓰촨성, 광시성, 장시성이 해당 규정 폐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임보라, 미니홈피 얼짱 시절 과거사진 공개 ‘인형 같은 외모’

    임보라, 미니홈피 얼짱 시절 과거사진 공개 ‘인형 같은 외모’

    임보라의 과거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지난 3일 방송된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에서는 스윙스 임보라 커플, 지오 최예슬 커플이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MC들은 임보라의 고향에 대해 질문했고, 임보라는 “전라북도 부안 출신이다. 그 중에서도 완전 시골인 ‘리’에서 살았다. 논밭이 펼쳐져 있다”고 설명했다. 임보라는 “당시 미니홈피 얼짱 출신이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과거 사진을 공개했다. 이를 본 패널들은 “인형 같다”, “귀엽다”, “부안에서 학교 다닐 때 읍내 좀 나갔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임보라는 과거 얼짱으로 유명했냐는 질문에 “학교 다닐 때 남자애들이 예쁘다고 얘기했다”고 답했다. 사진=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애프터스쿨 출신 리지, 연기자 ‘박수아’로 활동 본격 시작

    애프터스쿨 출신 리지, 연기자 ‘박수아’로 활동 본격 시작

    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리지가 ‘박수아’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연기자 활동을 시작한다. 3일 그룹 애프터스쿨을 탈퇴한 리지(27·박수영)이 배우로 전향, ‘박수아’라는 활동명으로 팬들을 만난다. 이날 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측에 따르면 “박수아가 옥수수 오리지널 드라마 ‘나는 길에서 연예인을 주웠다’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됐다”라고 밝혔다. 소속사 측은 “기존 박수아(리지)가 보여준 건강하고 활발한 이미지와 이번 극중 캐릭터인 여배우 진세라가 100% 일치를 이뤄 제작 관계자의 만장일치로 캐스팅이 됐다”며 “박수아만의 유니크한 매력이 살아 숨 쉬는 캐릭터로 극에 활약을 불어넣을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리지가 맡은 진세라는 주인공 슈퍼스타 강준혁(성훈 분)과 같은 SB 소속사 여배우로 강준혁과 함께 우연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물이다. 진세라는 감정기복이 심하지만 특유의 러블리한 매력으로 이번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 메이커로 활약할 예정이다.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만큼 섬세한 연기가 더해지면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막무가내 여배우 캐릭터를 탄생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리지는 애프터스쿨 활동 당시 시트콤 ‘몽땅 내사랑’(2011)을 시작으로 드라마 ‘아들녀석들’(2012) ‘앵그리맘’(2015) 웹드라마 ‘모모살롱’ 등 맛깔나는 연기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돌로 입지를 굳히며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본격 연기자로 나서는 ‘나는 길에서 연예인을 주웠다’는 하루살이 싱글녀 이연서가 우연한 사건으로 월드스타 강준혁을 길에서 줍게 되며 그려지는 본격 코미디 감금 로맨스다. 오는 9월 프리미엄 동영상 서비스 옥수수(oksusu)를 통해 단독 공개된다. 사진=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비디오스타’ 임보라 “스윙스와 결혼 생각 없어..평생 연애만”

    ‘비디오스타’ 임보라 “스윙스와 결혼 생각 없어..평생 연애만”

    스윙스의 여자 친구이자 SNS에서 ‘퍼플 언니’로 유명한 임보라가 ‘비디오스타’에 출연한다. 3일 방송되는 ‘비디오스타’ 100회 <비스 백회유익특집! 우리 사랑 100℃> 편에서는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스윙스, 임보라 커플과 지오, 최예슬 커플이 출연한다. 100회를 맞아 자축하던 MC들은 커플 게스트 소식에 돌변, 더욱 독하고 강력한 입담을 뽐낼 예정이다. 임보라는 도도하고 세련된 외모와는 달리 전라북도 부안의 한 ‘리’에서 멧돼지와 함께 산 시골 아가씨임을 밝혀 관심을 모았다. 이어 그녀는 19살 때 서울에 상경해 처음으로 M 패스트푸드점을 가봤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친구가 그 사실을 비밀로 해줬다”고 밝혀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또한 학창 시절 미니 홈피 얼짱 출신이었던 임보라의 과거 사진이 공개되어 이목을 끌기도 했다. 사진을 본 MC들은 학생 때부터 인형같이 예쁜 임보라의 외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 하지만 임보라는 친구들로부터 “깬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밝혀 궁금증을 자아냈다. 한편 이날 임보라가 스윙스와 만난 첫날 스윙스에게 3번의 고백을 받았고, 그 고백을 모두 거절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MC들의 놀라움을 샀다. 4번의 고백 끝에야 스윙스의 마음을 받아줬다는 임보라는 스윙스를 선택한 이유를 전하며 스튜디오를 훈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임보라가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으며, 스윙스와 “평생 연애하자”고 이야기한 사실을 밝힌 것. 모두를 놀라게 한 보스 커플의 결혼과 연애에 대한 의견은 7월 3일 화요일 오후 8시 30분에 ‘비디오스타’를 통해 공개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거침없는 필력의 문장가… 20대에 주몽 노래한 ‘동명왕편’ 남겨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거침없는 필력의 문장가… 20대에 주몽 노래한 ‘동명왕편’ 남겨

    “시문(詩文)을 지을 때에는 옛사람의 격식을 따르지 않고 거침없이 종횡으로 치달려서 그 기세가 끝도 없이 크게 펼쳐졌으며, 당시 조정의 중요한 문서는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려사’ 이규보열전)고려사에 실린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문장에 대한 평가다. 짤막하지만 시와 문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벼슬을 그만둔 후에도 외교 문서 작성을 도맡은 이에게 걸맞은 찬사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규보가 살다 간 시기 고려는 무신 정권과 대몽 항쟁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내우외환이 겹친 상황이었다. #긴 기다림 끝 명예 얻었으나… 그의 인생 역시 거침없는 글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일찍부터 문재를 드러냈지만 과거에 몇 차례 낙방했다. 23세에 급제한 후 주변의 추천과 자신의 구직 노력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임용되지 못했다. 32세인 1199년 6월 비로소 전주목 사록으로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듬해 12월 모함을 받아 파직당하고 개경으로 돌아왔다. 1202년 경주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병부 녹사 겸 수제원으로 종군해 1204년 3월 개선하는 군대와 함께 개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논공행상에서 제외됐다. 이후 해마다 첫 번째로 추천을 받고 칭찬하는 이도 많았으나 관직을 얻지 못했다. 1207년 한림이 된 이후에야 중앙 여러 관직을 거치며 오랫동안 국가의 문장을 담당했다. 재상의 반열인 종1품까지 승진해 1237년 70세로 치사했다. 63세에 잠시 부안의 위도로 귀양 간 일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탄한 관직 생활을 했다고 할 만하다. 이규보의 관직 진출과 승진에는 당대의 권력자인 최충헌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한림이 되기 전 최충헌이 모정(茅亭)을 짓자 이인로 등과 함께 불려가 ‘모정기’를 지었다. 이보다 앞서 1199년 첫 관직에 임용되기 전에도 최충헌의 집에 불려가 시를 지었다. ‘동사강목’에서는 최충헌과 관련된 이규보의 이러한 행적에 관해 “최씨에게 아첨해 사론의 죄를 얻었다”고 평가한다. 이규보 생전에 ‘권력자에게 아부했다’는 비방과 조소가 뒤따르는 계기가 됐다.#천마산의 백운거사 이규보는 18세 때 53세의 오세재와 망년지우가 돼 이인로, 오세재, 임춘 등과 ‘칠현’(七賢)이라 자칭하며 모인 죽림고회에 동참해 시와 술에 침잠했다. 과거에 급제했지만 곧바로 관직에 나가지 못한 이규보는 부친상을 계기로 천마산에 은거해 ‘백운거사’(白雲居士)라 스스로 호를 지었다. ‘백운거사어록’에서는 “거문고와 술, 시 세 가지를 매우 좋아해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하고 싶지만, 좋아하기만 하고 잘하지 못하므로 백운의 장점을 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규보는 운(韻)을 부르자마자 나는 듯이 붓을 달려 시를 짓는 것으로 유명했다. 술에 취하면 시는 더욱 거침없어져 ‘만취한 채 한 식경도 되지 않아 지은 장편 율시에 한 글자도 고칠 것이 없다’는 제목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이는 남다른 재능과 축적된 지식이 없으면 불가능한 솜씨로, 한림별곡에 ‘이정언 진한림 쌍운주필’(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로 남아 있다. 훗날 술 마시고 하는 시 짓기 내기는 쓸모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고, 젊은 날에 지은 시 300수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의 시와 술에 대한 감출 수 없는 사랑은 곳곳에 드러나 있다. 술이 없으면 시도 내키지 않고 시가 없으면 술도 시들해 시와 술이 모두 좋으니 서로 걸맞고 서로 있어야 하네 손가는 대로 시 한 구 짓고 입 당기는 대로 술 한 잔 마셨지 -‘우연히 읊다’ 나이 벌써 일흔을 넘었으며 벼슬 또한 삼공에 올랐으니 이제는 시 짓기를 버릴 만도 하건만 어찌하여 아직도 그만두지 못하는가 아침에는 귀뚜라미처럼 노래하고 밤에도 부엉이처럼 읊노라 -‘시벽’#주변에 미친 세밀한 눈길 이규보의 시 가운데에는 가족과 주변 사물을 노래한 것이 많다. 대상에 대한 애정과 세밀한 관찰 결과가 담뿍 담겼다. 그의 시선은 사랑하는 가족은 물론 무거운 짐을 지고 매를 맞는 소, 거미줄에 걸린 매미, 고양이, 쥐 같은 동물이나 밤이나 햅쌀 같은 식물 그리고 몽당붓이나 깨진 벼루에도 고루 향했다. 이는 아무래도 오랜 기간 은거하며 유유자적하는 시인의 시선이 가까운 곳에 미친 결과가 아닐까. 밤을 노래한 시에서 ‘밤은 사람에게 유익한 과일인데 밤을 노래한 시가 적어서 짓는다’고 창작 동기를 밝혀 놓기도 했다. 잎은 여름철에 돋고 열매는 가을철에 익네 방울 틈처럼 쩍 벌어지면 윤기나는 알밤 감싸고 있네 제사상에 대추와 함께 올라가고 신부의 폐백에 개암과 함께 놓였네 오는 손님 대접만 하는가 우는 아이도 그치게 하지 -율시 사람은 하늘이 만든 물건 훔치는데 너는 사람이 훔친 것을 훔치누나 다 같이 먹고살려 하는 일이니 어찌 너만 나무라랴 - 쥐를 놓아주다#역사로 남은 시 천마산에 은거하던 20대의 이규보는 주몽의 사적을 노래한 ‘동명왕편’ 등 장편 시를 남겼다. 동명왕편 서문에서 이규보는 “더구나 동명왕의 일은/중략/실로 나라를 창시한 신기한 사적이니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후인들이 장차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므로 시를 지어 기록하여…”라고 구체적인 창작 동기를 언급했다. 또 ‘구삼국사’의 ‘동명왕본기’를 주석으로 밝혀 지금은 전하지 않는 구삼국사의 존재를 확인하고 일부나마 내용을 볼 수 있는 것도 그의 역사의식 덕분이다. ‘명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다. 살 때보다 팔 때 더 받은 집값을 돌려준 노극청의 이야기를 기록한 ‘노극청전’이나 나룻배를 타면서 겪은 일을 적은 ‘주뢰설’은 청렴과 탐욕으로 대비되는 당대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 경종을 울리려는 생각의 발로다. 산문뿐만 아니라 보고 들은 일을 소재로 지은 시들도 이규보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 준다. 화계에서 찻잎 따던 때를 이야기하세 관리들 집집마다 늙은이 어린이 되는 대로 찾아내어 높은 봉우리 깊은 골짜기 아슬아슬 손을 뻗어 멀고 먼 서울까지 등짐 지고 날랐다네 이것이 바로 만백성의 고혈이라 수많은 사람 피땀 흘려 예까지 이르렀네 … 그대 훗날 간원에 들어가거든 부디 내 시의 은미한 뜻 기억하게나 산과 들 불살라 차 공납 금지한다면 남녘 백성 편히 쉼이 이로부터 시작되리 -손한장이 다시 화답하기에 차운하여 기증하다 정영미 한국고전번역원 출판콘텐츠 실장■ 동국이상국집은 현전 본은 日서 구해 영조때 간행… 2000여 수의 시·표전·교서 수록 1241년 완성돼 그해 8월에 간행에 착수했지만, 이규보는 9월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이함이 시문을 추가하고 ‘연보’, ‘묘지명’ 등을 더해 12월 53권 14책으로 간행됐다. 1251년 손자 이익배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중간했다. 조선 시대에도 몇 차례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전하는 본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잃어버린 것을 일본에서 구해 와 지금 다시 간행했다’는 내용이 ‘성호사설’에 기록됐다. 영조 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0여수의 시와 왕명을 받아 지은 표전, 교서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수록됐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서사시 ‘동명왕편’, 가전체의 ‘국선생전’과 ‘청강사자현부전’, 시화 ‘백운소설’ 등이 있다. 또 재조대장경 판각 경위를 밝힌 ‘대장각판군신기고문’과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간행했다는 사실을 전하는 ‘신서상정예문발미’ 등 중요한 사실을 전하는 글도 포함됐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 원문 이미지와 텍스트, 번역문을 이용할 수 있다.
  • [그때의 사회면] 슬픈 보릿고개/손성진 논설고문

    [그때의 사회면] 슬픈 보릿고개/손성진 논설고문

    1957년 5월 어느 날 서글픈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렸다. 경남 거창발 기사의 내용은 양식이 떨어진 농민들이 ‘재강’, 즉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를 얻으려고 양조장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동아일보 1957년 5월 5일자). 기사는 군내 1만 5000여 가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8000여 가구의 농민들이 전년도의 흉작으로 양식이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 세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보릿고개 풍경이다. 읍내 양조장마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있고 40~50리(16~20㎞)나 떨어진 곳에서 찾아온 농민들도 있다는 절박한 사정이 기사에 담겨 있다. 급기야 농민들에게 재강을 균등하게 배급했다고 한다. 재강에 물을 타 모주를 빼낸 것을 술지게미라고 한다. 재강은 물론 술지게미에도 알코올 성분이 남아 있어서 먹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아이들이 보릿고개 시기에 흔했다. 보릿고개는 한국전쟁 직후에 참혹할 정도로 심했다. 전쟁으로 농토가 황폐화됐고 남자들은 징병을 당해 농사지을 사람이 부족해서 쌀 수확량은 크게 떨어졌다. 가뭄과 병충해로 인한 흉년이 겹치면 보릿고개는 절정에 이르렀다. 봄이 되면 양식이 떨어져 농민의 80%가 거의 굶어 죽을 처지에 놓였고 실제로 굶어 죽는 사람들도 많았다. 농민들에게 오뉴월은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시간이었다. 익지 않은 생보리라도 일찍 베어내 먹는 것은 오히려 사치였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고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목숨을 보전해야 하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졌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1953년 4월 기사에 그런 내용이 있다. 경남 하동의 어느 마을에서 남녀 주민들이 모여 식량 대용으로 쓸 소나무 껍질을 벗기는 사진과 함께 아사 상태의 마을 사정을 전했다(※사진※ㆍ동아일보 1953년 4월 5일자). “초식으로 연명하는 군민들의 얼굴은 전부 퉁퉁 부어 환자 아닌 환자가 되고 있다”고 썼다. 오래 굶어 살가죽이 들떠서 붓고 누레지는 병을 부황병이라 했다. 농토가 부족한 울릉도나 흑산도 등 섬 주민의 고통은 더 컸다. 울릉도는 주로 오징어를 잡아 쌀을 사 먹는데 오징어가 안 잡히는 해는 대책이 없었다. 해초나 산나물을 강냉이와 끓인 멀건 죽을 먹었다. 산마늘의 다른 이름인 명이나물은 보릿고개 때 명(命·목숨)을 이어 주는 나물이란 뜻으로 울릉도 주민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1959년에 흉어(兇漁)가 들어 고립된 울릉도 주민들이 아사 직전에 내몰렸는데 세계 구호단체들의 긴급 식량 지원으로 아사를 모면했다(경향신문 1959년 2월 24일자). 정부는 쌀 증산을 독려하고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을 들여오며 혼분식을 권장했지만 1970년대 말에서야 식량 자급자족을 이루어 기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교육개혁 리포트-대한민국 중3] 수능파 “학종, 우연성 큰 복불복”… 학종파 “수능, 과정 아닌 결과”

    [교육개혁 리포트-대한민국 중3] 수능파 “학종, 우연성 큰 복불복”… 학종파 “수능, 과정 아닌 결과”

    수능과 학종 사이… 심층 그룹인터뷰로 살펴본 부모 속마음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 제도는 ‘몸통(교육 제도)을 흔드는 꼬리’다. 철옹성 같은 대학 서열화 구조 속에서 유명대 졸업장은 인생 성공의 ‘보증수표’로 여겨진다. 입시가 교육의 전부가 된 이유다. 현재 교육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2022학년도 입시 제도 개편안 마련이다. 수능 위주 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율 조정이 핵심 안건이다. 2지선다의 단순한 객관식 같지만 부모와 교사, 대학 등의 첨예한 입장 차 속에 고차방정식이 돼 버렸다. 서울신문의 ‘교육개혁리포트 대한민국 중3’ 2편에서는 수능 전형과 학종 전형을 지지하는 학부모를 4명씩 만나 심층그룹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한 결과를 정리했다. 두 집단 부모들은 각자 경험에 기대어 학종 또는 수능 전형을 옹호했지만, 각 전형이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알고 있었다. 상대가 왜 특정 전형을 선호하는지 심리적 동기를 정확히 읽고, 이해해 보려고 노력할 때 입시 난제 해법을 찾는 길이 열릴 듯하다. 참가자들이 신분 공개를 꺼려 사는 지역에 따라 수능 지지자는 강남맘(중3·대학2 자녀 부모)·성남맘(고3)·대구맘(중3·초4), 양천맘(고3·고1)으로 표기하고, 학종 지지자는 분당맘(중3), 중랑맘(고2·중1), 일산맘(중2·초6), 목동맘(고3·중3, 모두 40대)으로 지칭한다.수능파 속마음 서울신문 취재팀이 만난 수능 지지 학부모(수능파)들이 체감하는 한국은 약육강식의 ‘경쟁 사회’다. 이 땅에서 수십년 살며 몸소 체험한 바다.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이라는 청년실업률이나 청년층이 ‘N포 세대’(돈이 없어 연애·결혼·출산·내집마련 등 많은 것을 포기하는 세대)로 전락했다는 등의 뉴스를 보면 확신이 더해진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능력’이 있어야 한다.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학력은 확실한 능력이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주요대 학벌의 힘은 여전하다. “좋은 대학에 가도 취직이 안 될 수 있지만, 선택의 폭은 넓어질 것”(성남맘)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 때문에 입시는 그저 ‘잘되면 좋은’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는 승부다. 이런 수능파 부모들에게 학종은 매우 큰 ‘부담’이다. 우선 입시는 노력한 만큼 공정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학종은 ‘우연성’이 너무 크다. 투자한 노력·시간에 비례해 꽤 정직하게 성적이 보장되는 수능과 다르다. 우연의 개입을 막으려면 내신 교과 성적과 수상 실적 등 비교과 기록까지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심리적·재정 부담이 심하다. “우리 부부는 전문직인데도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아요. (학생부 관리법을) 차라리 모르면 속 편했겠죠. 고교 입학 직전 학종 컨설팅을 시작해서 3년 내내 학생부를 관리해야 해요. 물론 돈 들죠. 하지만 이걸 혼자 하는 학생이 0.5%나 될까요?”(강남맘) 수능파 학부모들에게 일부 교사는 불신의 대상이다. 학종에서는 교사가 아이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얼마나 신경 써 작성해 주느냐에 따라 입시 당락이 갈리는데 무신경해 보일 때가 많다. “교사는 내가 고를 수도 없고 복불복이 너무 심한데 그 피해는 왜 전부 고3인 내 아이가 봐야 하느냐”(양천맘)는 분노와 하소연이 쏟아진다. 아이와 함께 수험 생활을 하며 직간접적으로 확인한 학종 관련 부정행위는 불신을 더욱 깊게 한다. “우리 애 학교에서는 전교 1등한테 교내상을 수십개 몰아줬대요. 딸이 나중에 저한테 어두운 표정으로 말하더라구요. ‘(상위권 학생들이 속한) 심화반은 봉사 점수 같은 것만 좀 몰아주는 줄 알았는데 은근히 내신 문제도 찍어준다’고요.”(강남맘) 교사들이 출제하는 중간·기말고사 문제도 수능과 비교하면 여간 마뜩잖다. 아이들의 등급을 가르기 위해 문제를 말도 안 되게 꼬아 낸다. 게다가 “내신 교과 등수는 1학년 1학기 성적이 3학년 때까지 뒤집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성남맘)는 생각이 든다. “영어는 문장의 세미콜론까지 외워 써야 해요. 수행평가에서는 삼각함수, 로그함수를 실생활에 연계할 수 있는 방안을 보고서로 써서 내래요. 이걸 아이가 어떻게 해요. 결국 많은 강남 아이들이 학원 도움을 받죠.”(강남맘) 하지만 교사를 정면 비판하기는 부담스럽다. “학교에 교사의 자질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제보한 학부모를 색출한다”(양천맘)는 얘기까지 돈다. 수능파 부모들도 처음부터 학종을 미워한 건 아니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대입에 반영하려는 취지는 훌륭하다. 다만 한국처럼 입시 경쟁이 치열하고, 신뢰 수준이 낮은 사회에서는 절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는 제도다. 그래서 “현재 20% 수준인 수능 전형 비율이 40~50% 수준까지는 올라가야 한다”(대구맘)고 생각한다. “저는 극단적으로 학벌 위주, 경쟁 위주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학종 아니라 학종 할아버지가 와도 똑같은 짓(부모 개입·사교육 의존 등)을 할 수밖에 없다고 봐요.”(성남맘) 수능 지지 부모들이 가진 공통점 중 하나가 자녀와의 관계다. 이들은 정서적 유대감이 무척 강하다. 부모는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다. “아이가 (학종에 불리한) 지금 학교에 온 걸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어요. 고3이 되면 ‘내 잘못이구나, 내 오판 탓에 아이 인생이 망가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까 봐 걱정이에요. 경쟁 사회인데. 왜 이런 대입 제도를 엄마와 아이들한테 전가시키는지 참을 수가 없어요.”(양천맘)학종파 속마음 학종 지지 학부모(학종파)는 심층인터뷰에서 ‘과정’과 ‘맥락’을 자주 강조했다.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이며, 그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분당맘)는 얘기다. 유명대 입학은 학습 과정에서 얻을 수도, 혹은 얻지 못할 수도 있는 결과물로 보려 했다. “시험 이외의 모든 상황이 역경이고, 이를 스스로 해결하는 게 자기주도적 학습 과정이죠. 요즘은 복합 문제 해결 능력이나 시련이 교육적으로 오히려 필요해요.”(일산맘) 학종은 ‘과정’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수능보다 나은 입시 도구라고 생각했다. “학종도 모순에 차 있지만, 과정 평가(학종)와 결과 평가(수능)는 차이가 있죠. 수능 애들은 스토리가 없어요.”(중랑맘)라는 말에는 학종파 부모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겼다. 교사는 내 아이의 ‘과정(맥락) 있는 배움’을 돕는 파트너다. 신뢰해야 한다. 중학생인 아이가 성적 잘 받는 법을 묻는다면 “네 주변에서 교육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학교 선생님이니까 선생님께 물어보라”(중랑맘)고 조언한다. 교사들의 무관심 탓에 일반고 학생 등이 학종 전형에서 피해를 본다는 주장도 동의하지 않는다. “한 학교의 교사 전체가 모두 무관심하기는 어려워요. 1~2명이 먼저 시작하고, 학교만의 데이터가 만들어지면 선순환으로 향하기 시작해요.”(중랑맘) 학종을 ‘금수저 전형’(사교육에 의존할 수 있는 고소득층에 유리하다는 뜻), ‘깜깜이 전형’(당락의 이유가 불명확한 부정한 전형)이라고 비판하는 건 예외적인 사례를 너무 부풀려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교 1등에게 수상 실적 몰아주기, 교사가 엄마에게 학생부 작성 맡기기 등은 흔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학종파 부모도 입시 결과를 두고 완전히 초연하지는 못하다. “학종은 교과 성적과 스토리(비교과 기록)를 함께 챙겨야 한다”(일산맘)는 점에서 부담이 큰 전형이다. “부모로서 너무 이상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에 수긍할 때도 있다. 하지만 시대 흐름을 볼 때 결국 학종에 담긴 철학이 맞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예전의 룰(수능 잘 봐서 좋은 대학 가면 안정적인 삶을 누린다는 암묵적 규칙)이 통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엘리트 교육의 한계는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줌아웃해 보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다 서울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줌인해서 우리 주변을 보면 결국 정성적 부분이 훌륭한 사람이 존경받고, 행복하죠.”(중랑맘) 학종파 부모들은 공동체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했다. 주변 아이들의 행복도가 곧 내 아이의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컨대 핵전쟁이 나고 환경이 다 파괴됐는데 우리 애만 방탄복 입고 살아남는다면 그건 사는 게 아니죠. 이웃 아이들은 내 아이에게 환경 같은 존재죠.”(중랑맘) 학종파 부모가 수능파 부모와 다른 또 하나의 지점은 자녀와의 관계 설정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딸이지만, “아이 인생의 80~90%까지 책임지고 싶지 않다”(일산맘)고 생각한다. 피아노 학원 등을 보낼 때도 체험해 볼 기회를 주고, 레슨을 받을지는 본인이 정하도록 한다. “‘저걸 안 해도 행복하다’고 하면 시키지 않는다”(목동맘)는 것이다. 누군가는 “부모로서 직무유기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다. 이에 대해 “아이에게 어려운 선택권을 주되 그 선택을 존중하고, 결과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오로 옆에서 지켜줄 것”이라는 입장이다. “(아이가) 선택을 후회해도 받아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후회 없는 인생이 있겠어요?”(일산맘)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지금, 이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지금, 이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

    더 스미스(The Smiths)는 198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록 밴드다. 이들은 라디오헤드와 오아시스 등 후배 뮤지션에게 많은 음악적 영향을 끼쳤는데, 그 중심에 더 스미스의 보컬과 작사를 맡았던 모리시가 있었다. 그에게는 ‘브릿팝의 셰익스피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만큼 모리시가 지은 가사가 문학적이었다는 뜻이다. 이 영화의 제목 ‘잉글랜드 이즈 마인’도 그가 쓴 가사에서 빌려 왔다. ‘여전히 아파’(Still ill)라는 곡이다. “오늘 나는 선언할 거야. 삶은 그저 빼앗아갈 뿐이고 가져다주는 건 없다고. 잉글랜드는 내가 사는 나라야(England is mine). 나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야지. /…/ 우리는 더이상 낡은 꿈에 매달릴 수 없어.”이처럼 모리시는 당시 영국 사회의 엄숙주의에 반감을 담은 노래에도 서정적인 가사를 붙이기로 유명했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바로 이런 그를 조명한 영화다. 한데 이 작품은 더 스미스로 명성을 떨치기 이전의 모리시, 그러니까 스티븐으로 불리던 그의 데뷔 전 시절만 다룬다는 점이 독특하다. 비유하자면 이 영화는 팔랑팔랑 나는 나비의 전성기가 아니라, 꾸역꾸역 기면서 하루빨리 나비가 되기를 바랐던 유충의 고난기와 같다. 1970년대 맨체스터에 살던 청년 스티븐(잭 로던)의 생활은 어땠나. 그는 항상 공책에 뭔가를 끄적거린다. 예컨대 나중에 더 스미스의 가사로 승화된 다음과 같은 문장 말이다. “인생은 그 따분함으로 볼 때 피할 만하다.” 스티븐은 자기 처지에 불만이 많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가 스스로를 음악에 관한 ‘무명의 천재’로 여기는 데 비해,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사무 보조인 탓이다.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직장을 다니는 스티븐. 그러다 보니 업무를 열심히 할 리 없다. 지각은 자주, 결근은 종종, 태업은 눈치껏 한다. 그런 그에게 상사가 분통을 터뜨리며 말한다. “왜 남들처럼 할 수 없나?” 상사의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티븐은 ‘남들처럼’ 이미 주어진 세계에 잘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만의 온전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예술적 기질로 충만했으니까.아티스트 린더(제시카 브라운 핀들레이), 기타리스트 빌리(애덤 로렌스) 등과 친구가 되면서 스티븐은 본인이 진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점점 깨닫는다. 그는 밴드에 합류해 무대에 서기로 한다. 물론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과 이후의 상황은 그에게 마냥 우호적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결말 부분이 비약으로 느껴지기도 하나) 스티븐이 모리시가 되기 위해서는 더 긴 고통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렇게 보면, 마크 길 감독은 이 작품에서 ‘새로운 꿈을 꾸는 계속적인 의지’를 강조하는 듯하다. 이는 세속적 성공의 추구와는 무관하다. 다만 “더이상 낡은 꿈에 매달릴 수 없는”, 도무지 평범하게 살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조선 최대 필화사건 일으킨 소설 ‘설공찬전’ 쓴 채수의 정자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조선 최대 필화사건 일으킨 소설 ‘설공찬전’ 쓴 채수의 정자

    속리산에서 흘러내린 이안천이 내려다보이는 경북 상주의 기장리 언덕에는 쾌재정(快哉亭)이 있다. 조선 초기 문장가 나재(懶齋) 채수(蔡壽·1449~1515)가 벼슬길에서 물러난 뒤 부인 안동 권씨 고향에 정착해 지은 정자다. 상주와 점촌을 잇는 경북선 철도가 시내를 건너고 있어 급할 것 없이 달려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채수라면 ‘설공찬전’(薛公瓚傳)이라는 소설을 써서 조선 최대의 필화 사건을 일으킨 인물이다. 쾌재정은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자주 찾았다는 중국 쉬저우(徐州)의 정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채수와 쾌재정에 얽힌 이야기는 문장과 글씨에 두루 뛰어났던 남곤(1471∼1527)이 지은 나재 무덤 앞 신도비 비문에 보인다.‘병인년(1506년) 반정 때 공이 공신의 맹약에 참여해 관례에 따라 가정대부로 승진하고 인천군에 봉해졌다. 그런데 동료 벼슬아치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나고 주변에 없는 것을 보고 탄식하여, 이내 가족을 데리고 남쪽으로 돌아가 아무런 욕심 없이 스스로 즐기며 살았다. 사는 집 남쪽에 뚝 끊긴 산봉우리가 흐르는 물가에 자리잡았는데, 그곳에 작은 정자를 지은 다음 편액을 쾌재(快哉)로 붙여 놓고 날마다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면서 다시금 세상의 조그만 일도 마음에 두지 않은 채 여유롭게 노닐며 천수를 마쳤다’이렇듯 나재는 중종반정에 가담해 공신의 반열에 올랐지만 곧바로 낙향했다. 야사에는 여기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반정을 주도한 박원종은 “오늘 일은 덕망 높은 선비로 무게 있는 인물이 없어서는 안 될 터이므로 채수를 청해 오라”고 했다. 누군가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박원종은 “오지 않으면 목이라도 취해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채수의 사위 김감은 위협을 감지해 부인으로 하여금 장인을 만취토록 하여 대궐문 앞에 데려갔고, 나재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거사에 이름을 올렸다. 나재는 쾌재정에서 글을 쓰곤 했다. ‘늙은 내 나이 예순일곱인데, 지난 일 생각하니 아득히 멀구나’로 시작하는 한시 ‘쾌재정’도 그렇게 태어났다. 나재가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긴 것도 쾌재정에서 지은 소설 ‘설공찬전’ 때문이다. 귀신이 주인공인 이 작품은 죽은 이의 혼령이 현실 세계에 나타나 저승 세계의 소식을 전한다는 이야기다.하지만 ‘설공찬전’은 한동안 제목만 남아 있는 소설이었다. 조정의 공론으로 ‘설공찬전’을 모두 거두어 불살랐기 때문이다. 1511년(중종 4년) 사헌부는 “‘설공찬전’은 화복(禍福)이 윤회(輪廻)한다는 논설로, 매우 요망한 것인데 안팎이 현혹되어 문자로 옮기거나 언어(諺語)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킨다”며 채수를 탄핵했다. ‘언어’는 곧 한글이니 그만큼 인기가 높았다는 뜻이다. 사헌부는 ‘정도(正道)를 어지럽히고 인민을 선동한 율(律)’을 들어 채수를 교수(絞首)에 처해야 한다고 주청했다. 그런데 훗날 영의정을 지낸 만보당 김수동(1457~1512)의 변호가 흥미롭다. 그는 “형벌과 상은 중용을 지키도록 힘써야 한다”면서 “이 사람을 죽여야 한다면 ‘태평광기’나 ‘전등신화’를 지은 자들도 모조리 베어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태평광기’는 송나라 태종의 명으로 정통 역사책에 실리지 않은 기록과 소설을 500권에 모은 중국 역대 설화집이다. ‘전등신화’는 명나라 구우의 소설로 조선에서도 필독서가 됐다. 매월당 김시습이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금오신화’를 쓴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죄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죽이는 것은 지나치다’는 중종의 뜻에 따라 채수는 파직에 그쳤다.‘설공찬전’이 정치적 탄압을 받은 결정적 이유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일 것이다. 설공찬이 전하는 저승 소식의 일부다. ‘이승에서 비명에 죽었어도 임금에게 충성하여 간하다가 죽은 사람이면 저승에서도 좋은 벼슬을 하고, 비록 여기서 임금을 했더라도 주전충 같은 반역자는 다 지옥에 들어가 있었다.’ 주전충(852~912)은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 때 잔당을 평정해 실력자로 떠오른 뒤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양나라를 세운 인물이다. 중종 임금부터가 가습이 뜨끔했을 것이다. ‘설공찬전’이 다시 햇빛을 본 과정은 이렇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96년 이복규 서경대 교수에게 이문건(1494~1567)이 지은 ‘묵재일기’의 내용을 살피고, 뒷장에 적힌 한글 기록도 검토해 달라고 의뢰한다. 이 교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일부가 그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설공찬전’, 그것도 한글본이었기 때문이다. “언어(諺語)로 번역하여 전파함으로써 민중을 미혹시킨다”는 사헌부의 탄핵 내용 그대로였다. ‘셜공찬이’라는 한글 제목 아래 3472자가 남아 있었다. 필사를 도중에 중단해 전체 분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이렇게 ‘설공찬전’은 허균의 ‘홍길동전’을 제치고 한글로 적힌 최초의 소설이 됐다. 쾌재정은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상주 나들목에서 멀지 않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3번 국도를 타고 문경 방향으로 북상하다 이안교차로에서 왼쪽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을 수 없으니 ‘상주시 이안면 가장리 230-1’이라는 주소를 이용해 찾아가는 것을 권한다. 지금의 쾌재정은 18세기 중반 중건한 건물이다. 벌판 가운데 솟은 봉우리에 있으니 거칠 것 없는 시야를 자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무와 풀에 둘러싸여 주변 풍광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안천 건너에서 바라봐도 지붕의 모습만 어렴픗하다. 채수의 무덤은 쾌재정 남쪽의 공검면 율곡리에 있다.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나재채수신도비’를 치면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율곡리 길가에는 최근 것으로 보이는 신도비도 있다. 옛 신도비가 풍우에 시달려 비문을 읽을 수 없게 되자 1996년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고 한다. ‘셜공찬이’의 발굴이 계기가 됐음을 짐작케 한다. 북쪽 야산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옛 신도비의 비각이 보인다. 비석은 당당한 모습이다. 상주에 남은 신도비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인상적인 것은 신도비의 받침돌이다. 대개 거북이 모양인데, 독특하게도 사자다. 커다란 비석을 등에 이고 있는 사자의 모습은 귀엽기만 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무덤이다. 채수의 위패를 모신 임호서원은 무덤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 너머 동쪽에 있다. 역시 ‘상주시 합창읍 신흥리 377’이라는 주소로 찾아가는 것이 좋다. 서원은 1693년 함창 서쪽 10리 입암산 아래 검암서원으로 출발했다. 1871년 대원군이 훼철한 것을 1988년 지금 자리에 다시 세웠다. 간소한 데다 연륜도 짧은 만큼 서원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기는 어렵다. 사당에는 경현사(景賢祠)라는 편액이 붙었다. ‘설공찬전’의 배경은 전북 순창이다. 학계는 나재가 순창 설씨 족보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을 섞은 것으로 보고 있다. 설공찬의 증조할아버지로 나오는 설위는 대사성을 지낸 세종시대 실존 인물이다. 하지만 설공찬이라는 이름은 족보에서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중종실록에는 채수에 대한 탄핵 과정에 검토관 황여헌의 “설공찬은 채수의 일가이니, 반드시 믿고 혹하여 지었을 것”이라는 발언이 실려 있다. 설공찬은 채수의 친척인 실존 인물이었고, 소설 또한 체험담에 근거했을 수 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순창군은 순창 설씨 집성촌이 있는 금과면에 ‘설공찬문학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국토부 “진에어 면허 취소는 청문절차 후 판단”

    국토부 “진에어 면허 취소는 청문절차 후 판단”

    국토교통부가 미국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를 불법으로 등기이사에 올린 진에어에 대한 처리 방안을 내달 이후 결정하기로 했다. 대신 국토부는 진에어의 불법 외국인 임원 등기를 방치한 당시 담당 공무원 3명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김정렬 국토부 2차관은 29일 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진에어 처리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청문과 이해관계자 의견청취 등 관련 절차를 더 진행하고서 최종 결론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당초 진에어에 대한 처분을 이날 결정하겠다고 예고했으나 최종 결론은 결국 내달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청문에는 보통 2개월 이상 소요된다. 항공법령은 국가기간산업인 항공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인이 국적 항공사의 임원이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시 면허를 취소하게 돼 있다. 조 전무는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나 이후 한국 국적을 포기한 미국인으로 공식석상에서 미국식 이름인 ‘조 에밀리 리’를 쓴다. 진에어에 대한 처분은 면허취소냐 아니냐의 사안인데, 법무법인의 법률 자문도 받았으나 아직 핵심 쟁점에 대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외국인의 불법 이사 등기는 면허 결격사유에는 해당하지만 이미 조씨가 등기이사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지금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느냐가 쟁점이다. 그리고 외국인인 조씨가 진에어를 실제적으로 지배했느냐에 대한 판단도 아직 내려지지 못했다. 현행법에서 외국인이 항공사의 주식을 2분의 1 이상 소유하거나 실제로 경영에 참여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역시 면허취소 대상이 된다. 국토부는 지금까지 진에어 이사회 회의록 등 내부 서류를 검토했으나 추가로 확인해봐야 할 사안이 많다는 입장이다. 김 차관은 “법리 검토 결과 과거 외국인 등기이사 재직으로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는 의견과 결격사유가 이미 해소돼 현시점에서 취소는 곤란하다는 상반된 견해가 도출됐다”고 말했다. 이에 법적 쟁점에 대한 추가 검토와 청문, 이해관계자 의견청취 및 면허 자문회의 등의 법정 절차를 거치면서 면허 취소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진에어가 과거 미국 국적자인 조씨가 등기이사 지위를 유지하도록 방치하거나 불법 행위를 확인하지 못한 당시 담당자들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2013년과 2016년 수차례 진에어 면허 변경 신청이 이뤄졌는데, 공소시효 등을 감안해 2016년 2월 대표자 변경 신청 접수를 처리한 담당 과장과 사무관, 주무관 등 3명이 수사의뢰 됐다. 김 차관은 “항공운송면허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외국인 등기 임원이 진에어에 재직하는 동안 면허변경 업무를 처리하면서 이를 확인하지 못한 관련자는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해 수사의뢰했다”고 밝혔다.2014년 ‘땅콩회항’ 후속조치로 대한항공에 권고한 5대 개선과제 중 일부 과제가 완료되지 않았음에도 완료된 것으로 과제 관리를 소홀히 한 담당자는 징계할 방침이다. 국토부 공무원의 해외 출장시 좌석 편의를 받았다는 의혹의 사실 여부는 감사에서 확인되지 못했다. 김 차관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항공사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안전 관련 법령준수를 확인하기 위해 최근 1개월간 모든 항공사에 대해 안전점검을 했으며, 안전관리가 미흡한 회사에 대해서는 장비와 인력 등 분야별 특별점검을 하고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 등의 조치를 하기로 했다. 또 대한항공이나 진에어와 같이 ‘갑질’, ‘근로자 폭행’ 등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는 항공사에 대해서는 운수권(노선운항권) 배분 시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운수권 배분규칙’에 사회적 기여도(100점 만점에 5점)를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슬롯(운항시간대) 배분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항공사업법령 개정도 추진한다. 항공운송사업 면허 관리부터 안전사고 및 운항감독까지 국토부의 내부 운영체계도 대폭 재정비한다. 면허 담당자의 교육을 강화하고 책임 소재를 현 과장에서 실국장 등 고위공무원으로 상향하는 한편, 면허정보 상시 점검 및 파악을 위한 면허관리시스템을 구축해 공개할 예정이다.항공사의 갑질 근절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과 함께 ‘항공산업 체질개선 종합대책’도 추진한다. 공정위 주관으로 항공사의 불법·부당 거래를 점검하고, 복지부(국민연금)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내달 중 도입하고서 기금운용위원회 논의를 통해 기업·주주가치를 훼손한 기업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할 방침이다. 고용부는 합리적인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직장 내 괴롭힘 근절 종합대책’을 시행할 계획이다. 국토부는 항공사 경영간섭이나 갑질, 폭행을 근절하기 위해 대표이사와 등기임원의 자격과 경력제한 기준을 신설하기로 했다. 김 차관은 “이번 대한항공·진에어 사태를 환골탈태의 계기로 삼아 법령해석 미숙, 부주의, 관행적인 업무처리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항공산업의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바람직한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유민의 노견일기] 아버지의 빈자리…그 아픔을 위로해 준 ‘두리’

    [김유민의 노견일기] 아버지의 빈자리…그 아픔을 위로해 준 ‘두리’

    초등학교 5학년 철부지 소녀는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아버지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정든 집을 떠나야 했고, 집안일만 하시던 어머니가 일터로 나가셨습니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습니다. 가족은 웃음을 잃어갔습니다. 아버지의 빈자리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옅어지지 않는 슬픔이었고, 그래서 무척 외로웠습니다. 그렇게 하루, 석 달이 지난 2001년 여름 예상치 못한 선물이 찾아왔습니다. 비가 무척이나 많이 오던 어느 날 동그랗고 커다란 눈, 까만 코, 바둑무늬의 털을 한 시추 ‘두리’를 만난 것입니다. 나란 존재를 아무 조건도 없이 진심으로 대해주는 생명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위로였습니다. 일터에 나가신 어머니 품이 수시로 그리웠던 초등학생 때 녀석이 온몸으로 반겨주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늦은 밤까지 공부하던 수험생 때는 독서실 앞에 마중 나온 엄마와 두리의 모습이 하루를 다독여주는 행복이었습니다. 취업에 쓴맛을 봤을 때도, 입사 후 힘든 시간을 겪을 때도 변함없는 위로였습니다.그랬던 두리가, 눈 깜짝할 사이 노견이 되었습니다.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고, 관절이 아파 걷기도 힘들어했습니다. 목에 생긴 종양은 녀석의 작은 몸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두리의 기억 속에서 가족들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좋아하던 육포도 먹지 않고 누워만 있는 모습을 보며 가족 곁을 떠날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3월의 어느 날. 두리는 가족 곁을 떠나 하늘의 천사가 되었습니다.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겨왔듯이 이번에도 씩씩하게 이겨낼 거라고 믿었는데 더 이상은 힘들었나 봅니다. 두리는 가족이 조금이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참고 견뎌주었던 것 같아요. 가족의 삶이 조금이라도 안정됐을 때 가려고…. 29년의 시간 중 17년을 함께 했습니다. 두부, 두레, 두부룽, 두레롱, 두지.., 애칭도 정말 많았습니다. 힘들 땐 두리 앞에서 펑펑 울고, 기쁠 땐 꼭 껴안고 감정을 나누었습니다. 그 시간들 안에서 우리는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진짜 친구이자 가족이었습니다. 유난히도 따뜻하고 포근했던 녀석을 다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가족들에게 행복을 주던 막내 두리가 하늘에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할 거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견뎌봅니다. 2001년 6월 29일. 선물처럼 두리가 우리 집에 왔던 날로부터 정확히 17년이 흐른 오늘. 매년 이 날을 온 가족이 축하하고 기념했는데, 올해는 두리가 곁에 없습니다. 슬프지만 함께한 날을 잊지 않고 싶어서, 우울해하는 가족에게 위로가 될까 싶어서 이렇게 두리의 이야기를 전해봅니다.“두리야, 늘 가족의 곁을 지켜주고 웃음을 줘서 고마워. 함께라서 정말 행복했어. 잊지 않을게. 너와 함께한 시간들. 사랑해.” - 두리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제45회 서울보훈대상] 슬픔 딛고 지역에 헌신·봉사…당신이 애국자입니다

    [제45회 서울보훈대상] 슬픔 딛고 지역에 헌신·봉사…당신이 애국자입니다

    최근 한반도 정세와 우리 안보 환경은 큰 변화를 맞이하였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가 경색 일로를 걸었고, 군사옵션이 거론될 정도로 북·미 관계는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형성된 평화·대화의 흐름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점점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세계 평화와 한반도 정세 안정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국민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기치 아래 과거의 묵은 감정을 청산하고 평화적인 노선을 취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칫 ‘평화’라는 단어 자체가 부여하는 안락함과 달콤함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자유는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들의 피와 눈물에 의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이 물려준 이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호국 보훈의 가치를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어느덧 45회를 맞은 ‘서울보훈대상’은 국가를 위해 공헌 및 희생을 하신 분들을 발굴·포상함으로써 그분들이 대한민국의 자긍심이 되고 영예가 됨을 널리 알렸습니다. 또 호국 보훈 의식의 싹을 틔우고 확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올해 선정된 분들을 살펴보면 국가 안위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거나 가족을 잃는 등 커다란 아픔이 있었지만 오히려 국가와 지역사회에 헌신하고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앞장서서 봉사했습니다. 우선 6·25 전쟁의 참전유공자로서 고령임에도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 의식으로 현충시설 정화 및 봉사 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또 음지에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특수임무 유공자로서 나라 사랑 활동, 비정부기구(NGO) 재난 구조 활동, 보훈 활동으로 사회 발전에 기여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공상군경으로서 나라사랑 정신을 함양하고 보훈 선양 활동으로 보훈 문화 확산에 기여한 분이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세계 평화를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하였고 이후 국가유공자 복지 향상과 나라사랑 정신 확산에 진력하신 분도 선정됐습니다. 전몰군경 유족으로서 어렵고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보훈 문화의 확산과 나라 사랑·애국정신을 고양하고, 독거·고령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나눔을 실천하신 분까지 한분 한분이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간 갈등과 반목으로 혼란했던 대한민국은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국민 모두가 하나 된 모습으로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열어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전열을 가다듬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아울러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억하고 그분들에게 감사하며 유족들을 따뜻이 보살피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를 지킬 의지와 수단이 없는 민족이나 국가에게 평화와 안정이 거저 주어질 리 없고, 평화와 통일의 시대는 지난 역사를 아는 만큼 앞당겨질 것이기 때문입니다.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선열들의 호국 의지와 나라 사랑 정신을 본받아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향기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되새겨 보고, 그 고귀한 정신을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 받들고 키워 나가야 합니다. 끝으로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신 수많은 애국선열과 국가유공자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박제광 건국대 박물관 학예실장
  • 세종, 연기비행장 폐쇄…조치원에 통합 이전

    소음 등으로 주민 반발을 불러온 세종시 연기비행장이 폐쇄돼 조치원비행장에 통합된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28일 브리핑을 열고 “연기비행장이 시민 민원을 유발하고 도시 발전을 크게 저해했다”며 이렇게 발표했다. 연기비행장은 정부세종청사를 낀 신도시 6생활권과 인접해 신·구도심 균형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47년 전 만들어진 헬기 전용 작전기지다. 비행장 폐쇄의 결정적 이유는 이곳에 주둔하던 32사단 항공대 해체 때문이다. 이후로 비행장은 육군항공학교에서 비행훈련 장소로 사용해 왔다. 연기비행장은 부지 7300㎡에 500m의 활주로를 보유하고 있다. 조치원비행장도 거센 민원에 휩싸이긴 마찬가지다. 항공부대가 항공작전기지로 사용 중이다. 연서면 월하3·4리 마을과 불과 30m밖에 안 떨어져 주민들이 극심한 소음 피해를 호소해 왔다. 부지 43만㎡에 1㎞짜리 활주로가 건설돼 있다. 월하 3·4리 주민들은 소음 피해에 더해 비행안전구역 지정에 따라 건축물 고도 제한 등으로 재산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전을 요구하면서 2013년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주민과 국민권익위, 국방부 등이 연기비행장 폐쇄를 합의한 것이다. 이들은 소음의 원인인 방향을 15도 튼 새 활주로를 건설해 마을 쪽으로 향하던 이륙지점을 멀리 떨어뜨리는 방법 등을 통해 주민 피해를 줄이기로 했다. 연기비행장 폐쇄 및 조치원비행장 정비 사업은 2021년 끝낼 계획이다. 시와 국방시설본부는 이런 내용으로 다음달 합의 각서를 체결한다. 이 시장은 “연기비행장 부지를 국방부에서 양여받아 완충녹지, 도로 등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세종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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