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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폼페이오, 리용호에 반박…“北 전면 제재 해제 요구했다”

    폼페이오, 리용호에 반박…“北 전면 제재 해제 요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일 “북한이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대북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면서 ‘민수 경제를 위해 일부 제재에 대한 해제를 요구했다’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주장을 반박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필리핀을 방문 중인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마닐라 인근 파사이시티에서 필리핀 외교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의 영변 핵 시설 폐기와 관련해서도 “그들(북한)은 영변 핵시설에 무엇인가를 할 준비가 되어있다며 상당히 관대한 모습을 보였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내놓을 준비가 됐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리 외무상은 앞서 28일 0시 15분(한국 시각 새벽 2시 15분) 북한 대표단 숙소인 멜리아호텔에서 최선희 외무성 부상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현실적 제안을 제기했다”면서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 핵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 제재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해제하기를 요구한 유엔 안보리 제재는 석유·정유제품과 천연가스 등의 대북 판매를 제한하고 북한의 석탄·농산품·수산물 등의 수출을 금지하는 것, 또 각종 정밀기계류와 운송 수단의 대북 수출, 외국 금융기관의 대북 거래 등을 막아 북한의 대외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것을 포함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협상결렬 ‘블레임 게임’, 북미가 서로 질수 없는 이유

    협상결렬 ‘블레임 게임’, 북미가 서로 질수 없는 이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8일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하노이 공동성명의 도출에 실패한 가운데 ‘블레임 게임’(blame game)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비핵화 협상이라는 호랑이 등에 탔던 두 정상 중에 먼저 내린 쪽은 전세계의 비난과 함께, 국내에서 더 큰 정치적 역풍을 맞을 수 있고, 다음 번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북미 양측이 ‘블레임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사활을 걸수 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블레임 게임은 실패한 협상 뒤에는 반드시 따라올 수 밖에 없는 협상의 연장선이다. 지난달 28일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연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완전한 제재 해제를 원했다“며 “북한은 핵 프로그램 상당수를 비핵화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미국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는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결렬의 원인이 북한에게 있다는 의미다. 또 “이틀 뒤나 다른 때에 청문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이 중요한 시기에 증언회가 있었다는 것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코언은 거짓말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의 옛 변호사로 아킬레스건을 쥔 마이클 코언이 소위 ‘트럼프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대해 지난 27일(현지시간) 국회 공개 증언에 나섰던 점 역시 협상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고 시사한 것으로 읽힌다. 이튿날인 1일, 사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란과 잘못된 핵합의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거부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북한 등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거부했다. 미국 국민의 안전을 언제나 정치보다 먼저 둔다”고 트위터에 썼다. 전 정권의 정책을 지적하며 차별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리 외무상은 전날 자정에 멜리아 호텔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제1차 조미 수뇌상봉과 회담에서 공동인식으로 이룩된 신뢰 조성과 단계적 해결 원칙에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현실적 제안을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특히 인민 생활에 지장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아닌 ‘미국의 판깨기’였다는 의미다. 특히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1일 정상회담 결렬 소식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회담의 긍정적인 측면을 앞세워 전했다. 비핵화를 전제로 한 경제집중노선 채택에 대한 내부적 동요를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회담 의지를 더욱 강하게 밝혀 먼저 판을 깨는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도 읽힌다. 북한의 입장에서 먼저 판을 깬다면 다시 은둔의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크다. 반면 미국이 먼저 판을 깬다면 중국과 러시와의 대북제재 전선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역시 먼저 판을 깬다면 냉전의 마지막 산물로 세계 평화를 위한 한 축인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를 돕지 않았다는 비난을 국내외에서 받아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에도 불리하다. 이런 사정이 두 정상이 지속적으로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이유로 보인다. 다만, 당분간은 냉각기를 거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시도는 지속되겠지만 그간 정상이 직접 결정하는 톱다운 형식으로 비핵화 담판이 진행돼 온만큼, 결국 3차 회담 여부는 두 정상의 입에 달렸다. 하노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빈손’ 김정은, 2일 오전 귀국할 듯…난닝역엔 가림막 공사

    ‘빈손’ 김정은, 2일 오전 귀국할 듯…난닝역엔 가림막 공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실익은커녕 합의문조차 손에 넣지 못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조기귀국설이 나왔다. 1일 한 외교소식통은 “베트남을 공식 친선 방문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일정을 앞당겨 오는 2일 오전 귀국길에 오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베트남 정부가 발표한 일정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일 오전 10시 동당역에서 전용열차를 타고 북한으로 돌아간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 30분 베트남 주석궁 앞에서 의장사열 등 환영행사를 시작으로 응우옌푸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한다. 이후 응우옌쑤언푹 총리 등과 면담하고 오후 6시 30분 하노이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환영만찬에 참석한다. 2일 오전 9시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 묘에 헌화하고 귀국한다. 일각에서는 쫑 주석과의 회담 전에 김 위원장이 박닌성 옌퐁공단과 삼성전자 스마트폰 생산공장 등을 방문해 경제 시찰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전날 회담 결렬의 여파 때문에 경제 시찰이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오후 1시 20분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이날 오전 10시까지 숙소 멜리아 호텔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향후 대응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날 오전 12시쯤에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깜짝 기자회견을 하고 회담 결렬과 관련한 북한의 입장을 설명했다. 리 외무상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며 북측이 전면적 해제를 원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했다. 한편 김 위원장이 전용 열차로 평양에서 베트남에 갈 때 거쳤던 난닝 철도역에 가림막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난닝역은 김 위원장이 잠시 정차해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 일본 TV 카메라에 포착됐던 곳이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갑자기 난닝역에 가림막 설치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를 두고 베트남으로 건너간 김 위원장의 전용 열차가 다시 오는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하노이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시흥 3·1만세운동] 수암면 비석거리 성별·연령·계급 뛰어넘은 시흥 최대 만세운동지

    [시흥 3·1만세운동] 수암면 비석거리 성별·연령·계급 뛰어넘은 시흥 최대 만세운동지

    온 국민이 대한의 독립을 외쳤던 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비폭력·평화를 표방한 전국적인 항일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며 민족 독립의 초석을 놓았다. 경기도 시흥은 3·1운동이 발생한 서울과 가까이 있어 시위 초기부터 열기가 고조됐다. 마을 곳곳에서 펼쳐진 단발적 만세 시위였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로 15일간 지속하며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흥시가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지사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수암면 비석거리에서 펼쳐진 시흥지역 최대 만세운동 1919년 3월 30일, 통문을 전해 들은 수암면 주민들이 수암리 비석거리로 모여들었다. 당시 스물여섯 청년이었던 윤병소(1893~미상) 지사는 이 소식을 듣고 수암리로 갔다. 그는 각 리에서 모인 2000여명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일본 경찰이 해산을 요구했지만 계속해서 면사무소 근처까지 진출하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수암면 비석거리에 울려 퍼진 ‘만세’는 시흥일대 최대 만세운동이었다. 이 지역은 현재 안산시 수암동이지만 군면통폐합 이전에는 시흥군 수암면이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시흥시 북부지역은 부천군 소래면, 중남부는 시흥군 수암면, 서남부는 군자면이 각각 설치됐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촉발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던 시기에 시흥도 만세 운동에 동참했다. 3월 24일 소래면 주민들의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수암면 비석거리와 군자면 장곡·선부·죽율리, 군자면 구장터 등 곳곳에서 독립의 열망이 피어올랐다. 윤병소 지사와 더불어 수암면 비석거리에서 투쟁 시위를 이끈 또 한 명의 위인은 바로 윤동욱(1891~1968) 지사다. 흥분한 군중들이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려 했지만 “독립하면 관공서는 국가의 재산이 되니, 국유재산을 털끝만큼이라도 상하게 하지 말라”며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독려했다. 그는 시위를 진압하러 온 순사 임건호에게 오히려 시위 동참을 촉구했으나 임건호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태형 90대의 가혹한 형벌을 받은 윤동욱 지사는 경찰 신문 과정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조선독립을 꾀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며 민족 자긍심을 높였다. ●일제에 맞선 군자면 김천복 지사 징역 1년형 선고로 옥고 해마다 시흥시 군자초등학교에서는 3·1절 기념행사가 열린다. 지금의 군자초등학교와 군자파출소 인근은 시흥의 3·1운동이 활발히 이뤄진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3월 29일 군자면 장곡리와 월곡리, 31일 군자면 선부리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4월 4일 거모리에 수백명이 운집하면서 확대됐다. 특히, 군자면 죽율리(현 죽율동)에 거주했던 김천복(1897~1968) 지사는 당시 군자면사무소 앞에서 만세 시위에 합류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를 이유로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군자면 구장터(서안산나들목 부근, 석곡산대장)도 기억해야 할 역사적 현장이다. 장현리에 거주하던 스무 살 서당 생도 권희(1900~1955) 지사는 그해 4월 7일 구장터에서의 만세운동 동참을 촉구하는 비밀통고를 작성했다. 장수산(1900~1981) 지사가 이를 마을 구장의 집 앞에 두고 주민들이 서로 돌려보게 하는 등 비밀리에 만세운동을 계획했지만,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모의는 무산됐다. 가슴에 품은 태극기를 펼치지는 못했으나 숭고한 그들의 정신은 영원히 남아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내년까지 장수산·윤동욱·권희·윤병소 지사 기념비 건립 시흥시는 시흥의 3·1운동을 돌아보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3·1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1995년 8월 15일 군자초등학교에 ‘독립운동 유적지’ 비를 건립한 이래로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에는 ‘시흥시 삼일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워 시흥지역 만세운동 참여자들의 고귀한 독립정신을 알리고 있다. 그날의 함성을 주도했던 독립유공자의 고귀한 희생도 기린다. 시는 지난해 7월 17일 시흥시 죽율동에 김천복 독립지사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장수산·윤동욱·권희·윤병소 지사의 기념비가 역사적 현장에 들어설 예정이다. 기념비에는 무력 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내던졌던 항일 열사 다섯 분의 애국정신을 기록한다. 2012년 윤동욱 지사 묘에서 처음 시작된 시흥시 3·1절 기념행사는 2013년부터 군자초등학교에서 진행 중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원년인 올해는 3·1절 기념식과 더불어 주민이 일상 속에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시흥지역 3·1운동 소책자 발간, 유적지 탐방, 독립유공자 힐링캠프 등 3·1정신을 이어가는 행사가 준비돼 있다. 시흥지역 3·1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찾는 여정은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시흥시는 독립유공자 유족들로 구성된 광복회 단체를 설립해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정기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또 시흥지역 3·1운동 기초조사를 통해 3·1운동 관련 문화 콘텐츠 개발에도 힘쓴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성별과 나이·계급을 뛰어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외쳤던 100년 전 그날의 함성이 오늘의 시흥을 만든 초석이 됐다”며 “시흥시는 역사를 기억하고 독립지사를 예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화단에서/나해철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화단에서/나해철

    화단에서 / 나해철 눈시울에 뜨는 그믐을 싸리 보라 꽃으로 가리우고 해마다 진 꽃들이 강 건너 외길을 하나 둘 세며 오는 강 마을 작은 등불을 보다 불빛 속에 숨진 꽃들을 일으켜 세워 자운영, 수수꽃다리 그해 시집가는 누님의 맨드람 얼굴도 빛나는 꽃잎을 펼치어 들고 자욱이 뿌려진 불꽃 아래 꽃, 송이끼리 아우러지는 다수운 慶事의 밭 눈시울에 뜨는 그믐을 꽃잎으로 가리우는 싸리, 뜨락에 고운 꽃보라, 기억의 겨울화단으로 늘 하나 둘 세며 오는 강 마을의 가물거리는 불빛이여 - 44년 전 스무 살이었던 청년이 있었다. 시를 사랑했던 청년은 의과대학에 갔다. 부모님의 뜻을 어길 수 없었다. 벚꽃이 환한 봄날 낡은 바바리코트를 입은 청년과 만났다. 우리 아버지가 어머니랑 연애할 때 입은 옷이야. 1940년대 초반의 옷. 그 옷을 입고 청년은 의과대학에 다니며 시와 연애했다. 어두운 시절 그는 내내 삶의 경사를 꿈꾸었고 마음속 강마을의 불빛을 셈하였다. 훗날 그는 세월호에서 숨진 304명의 영혼들을 위로하는 슬프고 아름다운 시집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을 냈다. 이 시는 청년이 스무 살에 ‘길목’이라는 동인지에 쓴 시다. 곽재구 시인
  • 日 아베 “트럼프 결단 지지” 中 왕이 “인내심 갖고 대화 지속해야”

    日 아베 “트럼프 결단 지지” 中 왕이 “인내심 갖고 대화 지속해야”

    로이터 “美 제재 해제 꺼린 게 분명해” BBC “양국 여전히 중요한 변화 구축” 아베, 트럼프와 통화서 납치문제 부각 방중 北 리길성 만난 왕이 “호사다마”외신들은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불발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예의 주시했다. 일본·중국·러시아 정부도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AP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회담이 불발된 소식을 긴급 타전하며 양국 정상 차량이 회담장에서 각각 숙소로 “몇 분 만에 굉음을 내며 달아났다”고 냉담하게 끝난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전하며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명백한 진전이 되기를 희망했던 두 번째 정상회담이 외교적 실패로 끝났다”고 진단했다. 반면 BBC는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김 위원장과 험악한 설전을 이어 갔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회담은 여전히 양국 관계에 중요한 변화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로이터통신은 한반도 전문가 스테픈 해거드 미 샌디에이고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시간이 짧았고, 미국이 제재를 해제하기를 꺼린 것이 분명하다”는 옹호론을 전했다. 일본은 북미 회담 결렬 후 미일 정상 간 전화통화를 통해 양국 협력을 강조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후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결의 아래 안이한 양보를 하지 않고 동시에 건설적인 논의를 계속해 북한의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인 납치 문제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이 어젯밤 회담에서 내 생각을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 줬다”며 “다음에는 나 자신이 김 위원장과 마주 봐야 한다고 결의하고 있다”면서 북일 정상회담 의지를 보였다. 중국은 북미 회담이 합의 없이 끝났지만 북미 대화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는 입장을 보였다.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미 수십년이 된 한반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며 “지난 1년간 한반도 정세는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고 한반도 문제는 정치 해결의 올바른 궤도에 올랐다는 점에서 성과가 작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북중 수교 70주년 기념 활동 계획 상의차 중국을 방문해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을 만났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왕 부장은 “호사다마(好事多磨)라는 말이 있는데 쌍방이 신념을 갖고 인내심을 유지하며 대화를 계속하고, 이미 정한 목표를 향해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길 희망한다”면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함과 동시에 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해야한다”고 전했다. 리 부상의 방중으로 김 위원장이 귀국길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일현 중국 정법대 교수는 “북미 회담 결렬로 당장 김 위원장의 귀국길에 북중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은 작아질 것”이라면서 “다만 미국 견제를 위해 북한이 중국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비록 협상이 결렬됐으나 협상 자체가 중단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신호라고 봤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서로에게 유연성을 보이는 관행이 작동하지 않아 결렬된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고위인사들의 공식 발표 등을 보면 협상 과정이 중단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서울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환상영화 같다”던 두 정상, 영화처럼 오찬 취소 뒤 회담장 떠나

    “환상영화 같다”던 두 정상, 영화처럼 오찬 취소 뒤 회담장 떠나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사전 경고음 없이 갑자기 결렬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합의문 서명 없이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의 회담장에서 헤어지기 전까지, 양측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전날 오후 9시까지 140분간 약식 단독 정상회담 및 친교 만찬을 함께했던 양 정상은 28일 오전 8시 55분(베트남 현지시간) 메트로폴 호텔에서 다시 만나 2차 정상회담 이틀째 일정을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우리 만남을 회의적으로 보던 사람들도 우리가 훌륭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데에 대해 마치 환상영화의 한 장면으로 볼 것”이라면서 “그 사이 우리가 많이 노력해 왔고 이제는 이것을 보여 줄 때가 왔다. 훌륭한, 최종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회담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고 생각한다. 예단하지 않겠다”면서도 “나의 직감으로 보면 좋은 결과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는 김 위원장은 상기된 얼굴로 연신 침을 삼키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지만 양 정상은 전날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 갔다. ●트럼프 “서두르지 않겠다… 올바른 합의 중요”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우리가 앞으로 여러 해에 걸쳐 많이 만날 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나는 합의가 이뤄진 이후에도 함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어젯밤 만찬에서 매우 좋은 대화를 나눴고 만찬에 앞서서도 매우 좋았다. 또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매우 중요한 것은 우리의 관계가 굉장히 단단하다는 것이다. 관계가 좋으면 많은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반드시 오늘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 더 장기적으로, 그리고 일정 기간에 걸쳐서 우리가 김 위원장과 북한과 관련해 환상적인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은 경제 강국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쓰고, 말해 왔다. 나는 북한이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점이 바로 내가 돕기를 매우 고대하는 부분이다. 왜냐면 적절한 장소에서 약간의 도움만 주더라도 매우 특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며 협상의 대가로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나는 처음부터 내게 속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핵 로켓, 미사일 등 그 어떤 실험도 없었던 것에 매우 감사한다. 김 위원장과 저는 어젯밤에도 그것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김 위원장)가 원한다면 그가 말했던 것을 이야기하게 하겠다.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이야기) 할 필요는 없다”면서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부분과 관련해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진전시켜 왔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김 위원장과 이 나라(북한)에 대해 커다란 존경심을 갖고 있다. 북한은 다른 많은 나라가 경쟁하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북한은 이 같은 잠재력이 있다”면서 “서두르지 않겠다. 서두를 것 없다. 우리는 올바른 합의를 하기를 원할 뿐이다. 김 위원장과 나는 올바른 합의를 하기를 원한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올바른 합의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우리한테 시간이 귀중한데 편안한 시간 주시면 우리 이야기를 하겠다”며 취재진에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두 정상은 5분여의 모두발언을 끝내고 호텔 1층의 ‘르 클럽 바’에서 단독회담에 돌입했다. 전날 만찬 당시 원탁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던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단독회담에서도 마주 보는 대신 좌우로 앉아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단독회담은 예정보다 10분 빠른 오전 9시 30분에 끝났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회담을 마치고 호텔 내부 정원을 짧게 거닐었다. 신혜영 북측 통역관과 이연향 미측 통역관이 뒤따랐지만, 양 정상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 대화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언가 이야기하며 웃기도 했다. 양 정상은 정원에서 대기하던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만났다. 그리고 약 4분간 담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팔을 두드리며 대화를 이어 갔다. 폼페이오 장관도 김 위원장의 팔에 손을 대는 등 가벼운 스킨십을 했다. 이후 오전 9시 40여분부터 확대 정상회담에 돌입했다. 북측에서는 김영철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이 배석했고 미국 측 테이블에는 폼페이오 장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자리했다. ●金 질문세례 받자, 트럼프 “큰소리 말라” 배려도 확대 정상회담 도중 진행한 기자회견에서도 이상한 기류는 감지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전 세계로 생중계 중인 카메라 앞에서 취재진의 질문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는 비핵화 준비가 됐느냐는 첫 질문에 “그런 의지가 없다면 여기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 최고의 답변인 것 같다”며 치켜세웠다. 김 위원장은 바로 이어진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를 취할 결심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아마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답했다. 이번 회담에서 인권 문제도 논의하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민감한 질문이라고 판단한 트럼프 대통령이 끼어들어 “모든 걸 다 논의하고 있다”면서 “인권을 포함해 생산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나중에 기자회견을 할 것이다. 기자회견이 끝나면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좋고 오늘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 익숙하지 않은 김 위원장을 배려하기까지 했다. 그는 다소 공격적으로 질문하는 기자에게 “목소리 크게 하지 말라. 지금 나하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늘 관계는 역대 어느 때보다 좋다”며 김 위원장과의 친밀한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종전선언이 나올 것이냐는 물음에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궁극적으로 김 위원장과 그의 나라에 정말로 좋은 합의를 할 것”이라면서 “하루에 한 번의 만남에 우리가 그 일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속도조절론을 재확인했다. 이어 “나는 정말로 이 위대한 리더십(김 위원장)과 함께 북한이 매우 성공적인 나라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경제적으로 아주 특별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매우 좋은 논의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이 어디로 진행될지 지켜보자. 매우 매우 생산적인 논의를 해 왔다”고도 했다. 김 위원장의 “우리가 충분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할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1분이라도 귀중하니까”라는 발언을 끝으로 회담은 비공개로 전환됐다. ●트럼프 귀국 전용기서 “베트남에 감사” 트윗 애초 계획대로라면 확대 회담을 오전 11시 55분까지 끝내고 양측은 업무 오찬을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회담은 계획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계속됐다. 낮 12시 30분쯤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시간이 오후 4시에서 2시로 당겨졌다고 공지했고 김 위원장이 오후 1시 20분쯤 메트로폴 호텔을 빠져나와 숙소 멜리아 호텔로 떠났다. 비슷한 시간 트럼프 대통령 역시 JW메리어트 호텔로 향했다. 비록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양 정상이 얼굴을 붉히는 등 불편한 기류 속에 등을 돌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인스타그램에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끝내고 김 위원장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다. (워싱턴) DC를 향해 이륙!”이라는 글과 두 정상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한 김 위원장은 정면을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뒷모습이 잡혀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서로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귀국길 전용기에서 올린 첫 트윗을 통해 “이번 주 하노이에서 우리를 후하게 대접해 줘 감사하다. 멋진 베트남 국민들”이라며 베트남 정부에 감사를 표시했으나 북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한편 이날 확대회담에 배석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던 리수용 노동당 외교담당 부위원장은 베트남 경제 시찰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트남 매체 VN익스프레스는 리 부위원장이 오수용 경제담당 부위원장, 김평해 인사담당 부위원장 등과 함께 하노이의 통신회사 비엣텔, 농업과학원, 플라스틱 생산 공장 등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하노이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리용호 “민생제재 일부 해제땐 영변 모든 핵 영구 폐기 제안했다”

    리용호 “민생제재 일부 해제땐 영변 모든 핵 영구 폐기 제안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비핵화 조치美는 영변 外 ‘한 가지 더’ 끝까지 주장”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해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1일 새벽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측의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리 외무상은 1일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 외무상은 “이것은 조미(북미) 양국 사이의 현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 단계에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는 데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안전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 조치를 취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 조치로 제안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신뢰조성 단계를 거치면 앞으로 비핵화 과정은 더 빨리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회담 과정에 미국 측은 영변지구 핵시설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이런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노이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북미 ‘노딜’…제재 해제·비핵화 충돌

    북미 ‘노딜’…제재 해제·비핵화 충돌

    단독·확대 정상회담 뒤 돌연 업무오찬·공동 서명식 취소 트럼프 “제재가 쟁점”… 리용호 “전면 해제 요구 안했다”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진전시킬 하노이 공동선언 타결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북미 합의가 갑자기 결렬돼 국제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지난해 2월 북한 대표단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시작돼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1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진 한반도 정세가 극히 불투명한 국면에 빠져든 모습이다.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오전에 단독·확대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어 업무 오찬과 하노이 공동선언 서명식이 예정돼 있었으나 돌연 오찬이 취소되고 두 정상은 숙소로 복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숙소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매우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 김 위원장은 훌륭한 지도자이고 우리 관계는 매우 돈독하다”면서도 “옵션이 여러 개 있었지만 (합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결렬을 공식화했다. 직접적인 결렬 요인은 북한 비핵화 조치 수준과 제재 완화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가 쟁점이었다”며 “북한은 전체적으로 해제할 것을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보다 플러스알파를 원했던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 필요했다. 나오지 않은 것 중에 우리가 발견한 것들도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플러스알파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다”면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그 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이날 북한 대표단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회의중 1차 조미수뇌상봉회담을 이끈 신뢰조성과 단계적 해결 원칙에 따라 이번 회담에서 현실적 제안을 얘기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편 기자회견 후 미국에 돌아가기 위해 베트남을 출국한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안에서 서울의 문재인 대통령과 25분간 전화로 회담 내막을 공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를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표하며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타결 의지를 분명히 했고, 문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적극적 중재를 부탁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하노이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서울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뉴스분석]북미 협상 결렬 ‘네탓공방’ 왜?

    [뉴스분석]북미 협상 결렬 ‘네탓공방’ 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협의문 도출에 실패한 가운데 양측이 ‘네탓 공방’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낮 협상 결렬 이후 자신의 숙소인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북한이 완전한 대북제재 해제를 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이날 자정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부분적 해제를 요구했다” 고 반박했다. 양측이 진실게임을 벌이는 셈이다. 이를 두고 평화 무드를 깼다는 전세계적인 비난을 피하려는 조치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또 이날 협상결렬의 이유는 ‘대북제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대북제재 해제를 원했다. 전체 해제를 원했다”며 “그런데 그건 저희가 제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북한은 핵시설의 큰 부분을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저희가 모든 대북제재를 해제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영변 핵시설 폐기만을 대가로 대북제재 해제라는 통 큰 상응조치를 줄 수는 없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리 외무상은 이날 연설문에서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제1차 조미 수뇌상봉과 회담에서 공동인식으로 이룩된 신뢰 조성과 단계적 해결 원칙에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현실적 제안을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특히 인민 생활에 지장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주장 대로라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주민 생활과 연관된 대북제재의 일부를 해제하는 것을 대가로 영변핵시설을 완전히 폐기하고 폐기 검증도 받겠다는 제안을 했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과 다르다. 특히 리 외무상은 구체적으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지 않았고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서 2016년과 2017년에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핵시험과 장거리 로케트 시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을 문서 형태로 줄 수 있다는 용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통 큰 결단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문제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의 옛 변호사로 아킬레스건을 쥔 마이클 코언이 소위 ‘트럼프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대해 지난 27일(현지시간) 국회 공개 증언에 나섰다. 2016년 대선 때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해킹 이메일이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될 것이라는 계획을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부분이 컸다. 전날 두 정상의 약식 단독 회담에서 미국 기자가 관련 질문을 하자 이어진 친교 만찬에는 펜기자의 입장을 막기도 했다. 기자들의 항의에 1명의 입장을 허락했지만, 백악관 출입기자단 간사가 항의 성명을 냈다. 반면 북한 측이 협상 결렬의 책임을 미국 측에 지우려는 주장을 한 것일 수도 있다. 본래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영변핵시설 폐기+알파’ 이상의 비핵화 결단을 요구한 반면, 종전 및 평양 연락사무소 정도로 이미 예상가능한 상응조치를 거론함으로써 협상이 틀어졌던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뒷 얘기들이 많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노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하노이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리용호 긴급회견에 기자들 ‘멘붕’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리용호 긴급회견에 기자들 ‘멘붕’

    2차 북미정상회담이 충격 속에 결렬된 지 반나절이 지난 1일 오전 12시(현지시간) 북한 측이 깜짝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회견 장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 근처는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고 회담 결렬이 북한의 완전한 제재 해제 요구 탓이라고 언급하자 전세계가 북한의 반응에 주목했지만 북한은 반나절 가량 침묵을 지켰다. 이후 하노이에 파견된 내외신 취재진이 정상회담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갔을 새벽 시간에 북한 측은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한다고 깜짝 발표하면서 기자들은 부리나케 회견 장소인 멜리아 호텔로 집결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회견 장소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숙소인 멜리아 호텔 근처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멜리아 호텔 앞 도로의 한 블록 거리를 현지 경찰이 통제하며 기자뿐만 아니라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회견 사실을 미리 접한 기자들과 멜리아 호텔에 묵었던 기자들은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이에 기자들 20~30명이 거리 통제를 위해 설치된 펜스 앞에서 하릴없이 대기했고, 한 기자가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을 생중계하는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틀자 이를 취재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일부 기자는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리용호 외무상의 음성을 녹음하거나 녹화하기도 했고, 일부 기자는 스마트폰을 취재하는 기자들을 촬영하며 취재 열기를 취재하기도 했다.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기자들은 근처 건물의 차양 밑으로 피하며 기사를 작성하고 전송하기 시작했다. 멜리아 호텔을 경비하는 경찰들이 일부 매체 기자는 호텔로 들여보내고 다른 매체 기자는 출입을 통제하자 기자들이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은 전 세계인의 아쉬움 속에 결렬로 끝났지만 2차 정상회담의 후폭풍은 하루가 지나도 계속되는 모습이었다. 한 드라마의 명대사인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가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하노이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북한, 심야회견서 “제재 전면해제 요구 안해”…美측 주장 적극반박 왜?

    북한, 심야회견서 “제재 전면해제 요구 안해”…美측 주장 적극반박 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 오전 12시(현지시간) 10분, 이례적인 심야 기자회견을 한 데에는 끝내 ‘노딜’(합의 없음)로 끝난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북측의 입장을 충분히 알리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전날 오후 11시 40분쯤 리 외무상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투숙 중인 베트남 하노이의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30여분 뒤 리 외무상은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오전 1시 20분쯤 이번 회담에서 양국이 합의문 작성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자신의 숙소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 조치 수준과 제재 완화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회담을 결렬했다고 밝혔다. 그는 “제재가 쟁점이었다”며 “북한은 전체적으로 해제할 것을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변 핵시설보다 플러스알파를 원했던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 필요했다. 나오지 않은 것 중에 우리가 발견한 것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 및 북한과 계속 좋은 친구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 외무상은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먼저 북측이 전면적 해제를 원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2017년 채택된 5건, 그중에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우리의 제안은)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 경제와 인민 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영변 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라면서 “이것은 조미(북미) 양국 사이의 현 신뢰 수준을 놓고 볼 때 현 단계에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라고 강조했다. 리 외무상은 “그러나 회담 과정에 미국 측은 영변지구 핵시설폐기 조치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며 “현 단계에서 우리가 제안한 것보다 더 좋은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는 이 자리에서 말하기 힘들다. 이런 기회마저 다시 오기 힘들 수 있다. 우리의 이런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며 앞으로 미국 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 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배수의 진을 쳤다. 회담 결렬에서부터 기자회견까지 11시간 가까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리 외무상이 이날 기자회견을 하기까지 김 위원장 및 북측의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리 외무상은 취재진의 질문을 받지 않고 회견을 마쳤다. 하노이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리용호 “트럼프에 모든 대북제재 해제 요구 안했다”

    리용호 “트럼프에 모든 대북제재 해제 요구 안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협의문 도출에 실패한 가운데 이날 자정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긴급 입장문을 발표했다. 리 외무상은 김 위원장의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차분하게 준비한 글을 읽어내려갔다. 특히 그는 “우리는 실현 가능한 제안을 했다”며 “모든 제재를 없애달라고 하지 않았고, 부분적 제재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협상 결렬 뒤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모든 제재를 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힌 것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또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특히 인민 생활에 지장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을 제안했다고도 했다. 포괄적 비핵화 대신 민생과 관련된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면서 국내에서 역풍을 받지 않을 완전한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외려 소위 ‘노딜’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이번 회담의 결렬에 대한 책임 소재에 따라 국제적 비난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 간에 반목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음은 리 외무상의 일문일답 안녕들하신가. 이번 2차 조미 수뇌상봉 회담 결과에 대한 우리 입장을 알려드리겠다. 우리는 질문은 받지 않겠다. 조미 당국의 수뇌분들은 이번에 훌륭한 인내력과 자제력을 가지고 이틀간에 걸쳐서 진지한 회담을 진행하셨다. 우리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제1차 조미 수뇌상봉과 회담에서 공동인식으로 이룩된 신뢰 조성과 단계적 해결 원칙에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현실적 제안을 제기했다.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특히 인민 생활에 지장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서 2016년부터 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조미 양국 사이의 현 신뢰 수준을 놓고 볼때 현 단계에서 우리가 내짚을 수 있는 가장 큰 보폭의 비핵화 조치이다. 우리가 비핵화 조치를 취해나가면서 보다 중요한 문제는 원래 안전담보 문제이지만, 미국이 아직은 군사 분야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 보고 부분적 제재 해제를 상응조치로 제기한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우리는 미국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서 핵시험과 장거리 로케트 시험 발사를 영구적으로 중지한다는 확약도 문서 형태로 줄 용의를 표명했다. 이 정도의 신뢰 조성 단계를 거치면 앞으로 비핵화 과정은 더빨리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회담 과정에 미국측은 영변 지구 핵 시설 폐기 조치 외에 하나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으며 따라서 미국이 우리의 제안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앞으로 이보다 더 좋은 합의가 이뤄질 수 있겠는지는 이자리에서 말하기 힘들다. 이런 기회마저 다시 오기 힘들 수도 있다. 완전한 비핵화로의 로정에는 반드시 이러한첫 단계 공정이 불가피하며 우리가 내놓은 최적의 방안이 반드시 실현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의 변화도 없을 것이요 앞으로 미국측이 협상을 다시 제기해오는 경우에도 우리 방안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노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카슈미르 영토 분쟁이 인파 갈등

    카슈미르 영토 분쟁이 인파 갈등

    지난 26~27일 사실상 ‘핵보유국’끼리 공습을 벌이며 갈등의 소용돌이속으로 빠져든 인도와 파키스탄의 70년 분쟁 중심에는 카슈미르 영토분쟁이 있다. 현재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아자드 카슈미르)과 인도령(잠무 카슈미르)으로 분단돼 있다. 당초 이 지역은 힌두교를 신봉하는 봉건 지배자와 대다수 무슬림을 다스려 왔다. 영국 식민지를 겪은 뒤 1947년 인도·파키스탄으로 분리됐다. 인도가 지배하고 있는 잠무 카슈미르 지역의 대다수 구성원도 무슬림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주민들은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인도보다는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으로 귀속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 점이 끊이지 않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 수립 이후 끊임없이 무슬림 과격세력들이 무력 봉기를 일으키면서, 인도에서 분리 독립을 시도했다. 인도는 이 때마다 파키스탄이 뒤에서 사주하고 이 같은 무력 봉기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고 비난하면서 파키스탄과 대립해 왔다. 이번 양국 충돌도 지난 14일 잠무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인도 경찰 40여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인도는 늘 그러하듯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선언했고, 파키스탄 정부는 자살폭탄 테러와는 무관하다며 “증거를 보여달라”고 반박하면서 대립했다. 종족 구성상 카슈미르가 파키스탄에 귀속되는 것이 순리라고 보는 시각이 크다. 그러나 인도라고 영토를 순순히 내놓을 리도 없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이 지역을 통치하던 봉건 지배층들은 힌두교도들이어서 인도도 양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초 독립 초기인 1947년 10월 카슈미르를 지배하던 힌두교 지배층은 인도에 붙으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무장세력들이 잠무 카슈미르의 핵심 도시인 스리나가르를 침공하면서 양국의 70년의 갈등의 불이 붙었다. 당시 카슈미르 봉건 지배자이던 마흐라자 하리 싱은 곧바로 인도에 지원을 요청했고, 분쟁은 이듬해 인도와 파키스탄 간 첫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그 뒤 두 나라는 유엔 중재로 한발 뒤로 물러났고,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인 아자드 카슈미르와 인도령인 잠무 카슈미르로 분단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도는 주민투표를 통해 잠무 카슈미르의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미루다가 잠무 카슈미르를 인도 연방의 하나로 편입해버렸다. 그 뒤 파키스탄은 1965년 수천 명의 게릴라를 앞세워 2차 전쟁을 일으켰다. 카슈미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양측은 1947년의 휴전선을 사실상 국경인 정전 통제선(LoC)으로 교체해 유지해 오고 있다. 이번 갈등이 주목받은 것 중 하나는 양측이 48년 동안 지켜오던 LoC를 침범하면서 서로를 공격했다는 점이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기후변화의 재앙이 덮친 美 서부...산불에 이어 이번엔 폭우와 폭설

    기후변화의 재앙이 덮친 美 서부...산불에 이어 이번엔 폭우와 폭설

    1년 내내 온화한 기후로 유명했던 캘리포니아주 등 미국 서부지역이 때아닌 폭우와 폭설로 수천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등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북부에는 연일 계속되는 폭우로 하천이 범람했고, 지난해 산불로 지반이 연약해진 벤츄라 카운티 등에는 산사태 가능성에 주민 대피가 이어졌다. 또 시에라 네바다 일부 지역에는 폭설과 함께 겨울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북부 소도시 게르네빌은 인근 러시아강이 범람하면서 ‘작은 섬’이 됐다고 소노마 카운티 보안관 사무실이 발표했다. 스펜서 크럼 보안관은 “지금 현재 아무도 게르네빌로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다”면서 “바로 근처 마을 몬테 리오도 홍수로 고립됐고 모든 진입도로는 침수됐다”며 신속한 대피를 당부했다. 최근 며칠 동안 폭우가 계속되면서 인근 마을들이 침수되고 러시아강 수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기상청은 ‘러시아강의 수위가 25년 만에 최고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시에라 네바다 산악지대에서는 폭설이 쏟아져 스티브 벌록 주지사가 태평양 북서부 해안에서 몬태나에 이르는 이 지역에 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벌록 주지사는 영하의 혹한 속에서도 끊기지 않고 난방용 연료를 공급하도록 하는 명령에 서명했다. 현재 오리건주에서 몬태나주에 이르는 주요 도로는 폭설로 길이 막혀 주요 도로와 학교가 폐쇄됐으며, 쓰러진 트럭과 나무들이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시에라 지역의 눈사태로 새크라멘토에서 네바다 리노행 암트랙 철도 운행도 중단됐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5G급 태세전환” ‘리갈하이’ 진구, 배우고 싶은 웃음유발 포인트

    “5G급 태세전환” ‘리갈하이’ 진구, 배우고 싶은 웃음유발 포인트

    ‘리갈하이’ 진구에게 배워 보고 싶은 웃음 유발 포인트가 있다. 바로 5G 통신망도 못 따라가는 재빠른 태세전환이다. JTBC 금토드라마 ‘리갈하이’(극본 박성진, 연출 김정현, 제작 GnG프로덕션, 이매진 아시아)에서 고태림(진구)은 상황에 따른 태도 변화가 빠르다. 어떨 때는 오만한 고집불통 같지만, 이럴 때는 또 융통성 갑이다. 뻔뻔해 보일지라도 유연한 대처법은 그가 고액을 벌어들이는 승소율 100% 변호사가 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번 모아봤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재빠르게 태세를 전환시킬 수 있는지. 지난 방송에서 ‘저작권 소송’을 의뢰한 록밴드 ‘자폭하는 영혼’의 소피아(현쥬니)와 안토니오(강두). 고태림은 “기껏 아이돌 노래 한 곡으로 무슨 소송? 겨우 애들 코 묻은 돈 몇 푼 벌자고 매달리는 하찮은 사무소가 아니야! 여긴!”이라며 내쫓으려 했다. 하지만 “판매량만 수백 만장이라고 들었는데”라는 서재인의 말을 듣고 태도를 바꿨다. “뭐 이런 거지 같은 데”라며 나가려는 소피아와 안토니오를 “이번만 특별히 맡아보도록 하지”라며 막아선 고태림. “록 스피릿을 시험한 거지, 난 진짜 로커가 아니면 의뢰받지 않는 주의라”라는 이유를 대면서. 여기서 포인트는 상대에 따라 매우 적절한(?) 태세 전환의 근거를 대면서 자연스럽게 합리화를 도출해내는 것. 여기에 재빠른 판단력이 더해지면 큰돈도 벌 수 있다. 언더그라운드 록밴드에게 고태림이 원하는 수임료를 지급할 능력이 있을 리 만무. 고태림은 “50만 원 정도는 낼 수 있다”는 소피아를 “농담도 작작하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피고) 제임스박의 명성 때문에 화제가 될 거고, 앞으로 연예계 인사들의 수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라고 사무장 구세중(이순재)이 거들자, 고태림은 눈과 머리를 동시에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놓은 번뜩이는 아이디어. 착수금은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승소하면 금액의 절반을 성공보수로 받겠다는 것. 이들이 내세운 손해배상액은 수입의 70%, 약 29억5천만 원이었다. 이렇게 ‘저작권 소송’을 수임한 고태림은 아이돌 ‘스윗걸즈’의 노래가 표절임을 주장하며, 작곡가 제임스박과 디팍스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재판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대측 변호사인 B&G 로펌의 강기석(윤박)의 언론 플레이로 여론이 부정적으로 들끓었고, 급기야 팬들의 테러를 당했다. 이에 구세중과 함께 서재인의 집으로 피신한 고태림.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아침 인사를 하는 서재인에게 싸구려 쇼파, 좁아터진 공간, 그리고 바퀴벌레도 돌아다니는 “비천한 집”이라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때마침 명망있는 판사였던 송교수(김호정)가 등장했다. “(서재인과)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라는 구세중의 설명에 고태림은 현명하게 태세를 전환했다. “자세히 보니 제법 운치 있는 집이었군요. 푹신푹신한 쇼파에 아담한 공간, 벌레들도 기어다니는 환경 친화적인 구조까지”라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자신의 독설도 그럴싸하게 포장할 수 있는 고태림의 능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리갈하이’ 매주 금,토요일 밤 11시 JTBC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20회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송성환 어머니·친형 인터뷰 일시: 1999년 2월 15일 장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271-5 장간란 씨 자택 대담: 장간란(전사학생 송성환 어머니) 송종환(전사학생 송성환 친형) 이경종(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송성환은 전쟁 중에 전사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와 친형의 인터뷰로 대신합니다.친동생 송성환에게 부모·집 지키라고 당부 6·25사변 때 나(송성환의 친형 송종환)는 철도공무원으로 철도국에 다녔다. 1950년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우리 인천이 또다시 북한괴뢰군에 점령당할 위기에 몰리자, 그해 12월 초에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소집통지서가 나한테 왔다. 1950년 12월 17일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에 모인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과 같이 남하하였다. 나는 남하하는 전날 밤 내 동생 성환이에게 너는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 모시고 집을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하루 50㎞씩 걸어 국민방위군 수용소 도착 1950년 12월 17일 날 나는 인천에서부터 걸어서 내려가서 이듬해 1951년 1월 3일이 되어서야 경상남도 통영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때 하루에 120리(약 50㎞) 길을 걸었을 때도 있었는데 내려가는 도중에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때 굶거나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문경새재도 걸어서 넘어갔으며, 고생고생하며 경상남도 통영에 도착하였다. 그때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까 그곳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제3 수용소였으며 그곳이 마지막 집결지였다. 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친동생 송성환 만나 그때 막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도착하였는데 “형”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까 거기에는 생각지도 않게 내 동생 송성환이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고 물으니까 동생 성환이가 “형이 인천에서 내려간 이튿날 친구들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하여 여기 통영까지 오게 되었는데 와서 보니까 인천에서 떠난 국민방위군(제2국민병)이 여기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형님이 이곳에 오지 않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때 이러한 내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성환이는 자기가 갖고 있던 양담배 채스타 한 갑과 끼고 있던 은반지를 내게 빼 주면서 “형, 나는 아직 쓸 돈이 남아 있으니까 염려 말고 이것 받아요. 우리들은 곧 부산에 있는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들어가니까 형 몸조심하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친동생 송성환이 준 은반지 팔아 밥 사 먹어 그때 나도 동생에게 “군에 입대하더라도 몸조심하고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때 내 동생이 준 은반지를 팔아서 허기를 달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통영 방위군 제3 수용소(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3월까지 수용되어 있다가 제주도로 건너가 육군 제1 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받고 060 군번을 받고 육군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육군 보충대를 거처 강원도 전투지역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5사단장은 민기식 준장이었다. 그때 내가 간 전투부대가 5사단 27연대 2대대였다. 이때 3대대에는 인천학도의용대로 인천에서부터 같이 온 내 아우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그때 우리 5사단이 속해 있는 군단이 포위되면서 후퇴할 때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다. 인제 전투에서 당한 손 부상으로 명예제대 그때 포위당해 매일 걸어서 후퇴하는데 며칠 몇 밤을 잠을 못 자고 후퇴만 하니까 그때는 ‘잠 한번 실컷 잤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었다. 그때 내가 인제 전투에서 손에 부상 당해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인데 며칠을 후퇴하면서 전투하느라 씻지를 못해 손을 치료해야 하는데 손에 때가 많이 묻어 있어 간호사한테 손 내밀기를 주저한 일이 있었다. 그 후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그 해 1951년 10월에 그 부상으로 인하여 나는 상이 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친동생 송성환의 전사 사실 뒤늦게 알아 이렇게 제대를 하여 인천 집에 돌아와 보니까 내 동생 성환이의 전사통지서가 와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생 전사통지서를 받으신 우리 아버지께서 낙담하시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속이 상하셨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전사한 동생 때문에 한이 되시어 상심하시다가 동생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2년 뒤 44세의 젊은 나이에 그만 세상을 하직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5사단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서 거의 같은 날에 동생은 전사하고 나는 부상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제대한 후에야 알게 되었으며 제대하기 전 5사단에 있을 때 내 동생 친구들은 동생이 전사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한테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송성환 어머니 “전사 아들 생각 때마다 눈물” 우리 성환이는 6년제 공립 인천공업중학교 3학년이었던, 사변 나던 해(1950년) 겨울 집을 떠날 때 전쟁에 나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떠났어…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는데 전쟁놀이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시늉을 할 때는 쓰러지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면서 쓰러지곤 하였는데 끝내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전쟁터에서 쓰러져 전사했어. 49년 전에 전사한 아들이지만, 그 전사한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요.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21회 계속 ■ 참전기 20회를 마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중학교 3학년 16살에 자원입대 후 참전하여 전사한 아들을 49년간 그리워하면서 슬퍼한 어머님의 눈물이 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현장 행정] 서대문형무소의 슬픈 수형기록, 기억하리

    [현장 행정] 서대문형무소의 슬픈 수형기록, 기억하리

    “2010년 구청장에 오른 직후부터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독립민주축제를 개최하는 등 역사를 기리는 데 꾸준히 힘썼죠. 하지만 여전히 독립지사들이 정당한 예우를 받지 못하고 잊혀지기 일쑤라고 해요. 이들의 정신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이어 가야 우리의 미래도 평화로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청장은 지난 19일 독립문 옆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개막식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대문구가 문화재청과 손잡고 이날부터 오는 4월 21일까지 형무소 10옥사와 12옥사에서 진행하는 이번 전시는 올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항일독립유산을 국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전시에서는 3·1운동 당시 사용됐던 다양한 태극기와 유관순(1902∼1920) 열사의 훈장을 비롯해 임시정부 성립 축하문, 애국공채,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에서 치러진 일왕 생일 행사 때 터트린 윤봉길(1908~1932) 의사 폭탄, 건국강령초안 등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규채(1888∼1947) 지사와 김구(1876~1949) 선생의 독립운동 일대기도 별도로 전시됐다. 당시 3·1운동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애국선열 1014명의 수형기록카드도 공개됐다. 이날 독립유공자 후손 20여명과 함께 전시를 관람하던 문 구청장이 10옥사에 마련된 수형기록카드를 보며 “3·1운동 무렵 서대문형무소 수감자만 3000여명에 이르는데, 이 중 관련 죄목으로 수감된 1014명을 추려내 기록을 분석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참석자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기록카드 속 얼굴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서대문구는 지난 25일 이들의 수형 기록을 엮어 1300여쪽짜리 자료집을 펴냈다. 3·1운동 수감자만을 대상으로 단독 자료집을 발간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황해도 수안군 등 이북지역 출신 수감자 230명의 기록을 포함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지역 3·1운동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이 밖에도 서대문구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부터 매월 셋째 주 화요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강의실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2019 이달의 독립운동가 교양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오는 6월까지는 3·1독립선언기념탑 진입로 양쪽에 독립지사의 족적을 새기는 ‘풋프린팅 메모리얼 로드- 당신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공간 조성도 추진할 예정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내에도 추모 공간이 마련된다. 문 구청장은 “우리 역사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한편 자료를 발굴·분석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향후 3·1운동이 갖는 평화시위의 의미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게 목표”라며 입을 앙다물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WP “트럼프, ‘관습파괴 전략’ 가장 좋은 방식일 수 있어”

    WP “트럼프, ‘관습파괴 전략’ 가장 좋은 방식일 수 있어”

    “미국내 일부 북한 전문가들 트럼프 옹호 합의 이르려고 서두르는 것은 위험 요인” 샌더스 “北서 핵무기 얻어내면 좋은 일” 힐러리 “비핵화 이뤄질지 상당히 의심” 리처드슨 “향후 상세한 협상 틀 마련을”전통적 외교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옹호론이 미 일부 외교전문가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P는 “트럼프의 북한 전략이 일부 전문가를 설득시키고 있다”면서 “북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이 지금 가장 좋은 경기 방식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조엘 위트, 로버트 칼린,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등 트럼프 대통령의 활동을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직감적 본능에 따라 ‘외교정책 규정집’을 찢어버리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향이 협상에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으로 이번 회담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WP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했다고 분석했다.WP는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에 이르려고 서두르는 것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위험 요인”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함께 전했다. 마이클 오슬린 미 후버연구소 연구위원은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을 통해 “백악관은 비핵화 대신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 정계에서도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옹호론과 비관론이 오갔다. 2020년 미 대선 출마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왼쪽·무소속·버몬트주) 상원의원은 이번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만약 김 위원장의 손에서 핵무기를 얻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고 CNN이 이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저격수’로 통하는 샌더스 의원은 타운홀 미팅에서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잔인하고 무책임한 독재자의 수중에 있는 핵무기는 나쁜 생각이고,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대면 만남을 통해 그 나라(북한)에서 핵무기 제거에 성공할 수 있다면 그건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난 대선 경선에서 샌더스 의원과 경쟁했던 힐러리 클린턴(가운데) 전 미 국무장관은 팟캐스트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무엇을 주장하든 그것이 실제 이뤄질지 의심스럽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의 관심을 받기 위해 비핵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비판했다. 폭스뉴스도 이날 정상회담 의제를 놓고 실무협상을 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너무 앞서 나가 백악관 매파 등 정부 관료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여러 차례 대북 협상에 나섰던 빌 리처드슨(오른쪽) 전 미 뉴멕시코 주지사는 이날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협상을 선호하는 것을 고려할 때 정상회담은 2∼3개월에 한 번씩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김정은·트럼프 “회담 성공 확신” 하노이 의기투합

    김정은·트럼프 “회담 성공 확신” 하노이 의기투합

    260일 만에 만나 웃으며 악수…北 리용호·美 폼페이오 등과 ‘3+3 만찬’ 김정은 “많은 고민·노력·인내 필요” 트럼프 “北 경제대국 성장 잠재력” 트럼프, 종전선언 묻자 “지켜보자”…비핵화 후퇴 질문엔 “아니다” 선그어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개월 만에, 정확히는 260일 만에 다시 손을 맞잡았다. 지난해 1차 회담 후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커진 회의론을 뚫고 1박 2일 일정의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나선 것이다. 위기마다 톱다운으로 기회를 만들어 낸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28일 두 정상이 채택할 ‘하노이 공동선언’에 예상보다 진전된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그에 따른 미국의 상응 조치가 담길지 주목된다. 두 정상은 27일 6시 28분(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나 악수를 나눈 뒤 환담, 약식 단독 회담, 친교 만찬 순으로 140분간 첫날 일정을 진행했다. 원래 계획(125분)보다 15분 늘어났다. 두 정상은 서로를 ‘트럼프 각하’, ‘위대한 지도자’라 부르며 각별히 존중했다. 환담에서 김 위원장은 지난 8개월여를 떠올리며 “생각해보면 어느 때보다도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던 기간이었던 것 같다”며 “이번에 보다 모든 사람이 반기는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거라고 확신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해 첫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결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북미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경제성장의 ‘야심 찬 포부’를 실행하는 데서 어려움이 컸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이번 회담에서 예상보다 큰 비핵화 결단을 내놓을 것임을 암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과 함께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특히 베트남에서 이렇게 레드카펫을 깔아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엄청나게 무한한 경제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다. 그런 일(경제 발전)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돕기를 고대한다. 우리가 그 일을 도울 것”이라고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재진이 종전선언을 할 것이냐고 묻자 “지켜보자”고 답했고, 비핵화가 후퇴하느냐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공식회담이 열리는 28일 중에 기자회견을 열 것임을 예고했다. 한국전쟁 종전, 미군 전사자 유해 반환,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 영변 핵시설 동결, 대북제재 완화 등의 부문에서 일정 성과를 거둘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두 정상은 저녁 6시 40분쯤부터 통역만 두고 단독 회담을 했다. 양측 실무협상팀이 새해 초부터 협의를 거듭하며 만들어 온 하노이 공동선언에 대해 두 정상이 가장 핵심적인 ‘마지막 터치’를 한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김 위원장은 7시 7분부터 이어진 친교 만찬의 모두발언에서 “30분 제한시간 동안에 오늘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밝혔다. 만찬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등이 함께 자리를 했다. 외교소식통은 “만찬에 폼페이오 장관과 리 외무상이 들어간 것은 외교적 화법으로 정리해야 할 톱다운 협상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두 정상이 만찬을 가진 것은 처음이다. 두 정상은 28일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 정상회담과 확대 정상회담, 오찬을 함께 한다. 오후에 회담 결과물을 담은 ‘하노이 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공표할 전망이다. 하노이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하노이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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