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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2인자’ 앞 허리 세번 굽힌 시진핑…리커창 전 총리 애도

    ‘중국 2인자’ 앞 허리 세번 굽힌 시진핑…리커창 전 총리 애도

    지난달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한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의 영결식과 화장(火葬)이 2일 베이징에서 엄수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애도를 표했다. 신화통신은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간)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 국무원 전 총리인 리커창 동지의 시신이 2일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원에서 화장됐다”고 밝혔다. 중국중앙TV(CCTV)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리 전 총리 시신은 검은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쓴 채 흰색 침구 위에 누워 있었다. 시신은 붉은색 중국공산당 깃발로 덮인 상태로, 주변엔 화초가 둘렸다.시 주석은 오전 9시쯤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리 전 총리 시신 앞에서 세 차례 허리를 굽혀 조의를 표한 뒤 유족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리창 현 총리와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비롯해 왕후닝·차이치·딩쉐샹·리시·한정 등 당정 지도자들도 시 주석에 이어 묵념했다. 리 전 총리와 함께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계를 이끌었던 후진타오 전 주석은 추모 화환을 보냈다. 신화통신은 “당과 국가의 관련 지도 동지들이 차례로 (리 전 총리를) 송별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를 표했다”며 “당 중앙과 국가기관 관련 부문 책임 동지, 리커창 동지의 생전 친구, 고향 대표 또한 송별했다”고 설명했다. 중화권 매체들은 이번 장례가 지난해 말과 2019년 7월 각각 엄수된 장쩌민 전 주석, 리펑 전 총리의 영결식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전했다.1955년생인 리 전 총리는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공청단 제1서기와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 겸 성장, 랴오닝성 당위원회 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청단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내에선 비슷한 연배 가운데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그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기 전에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태자당(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시 주석을 밀어주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뒤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영향력이 갈수록 약해지자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 너무도 조용히 마무리된 中 리커창 장례식

    너무도 조용히 마무리된 中 리커창 장례식

    ‘중국 2인자’였던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의 장례식이 2일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열사묘역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이날 중국 당국은 리 전 총리의 화장식이 열린다고 공식 발표했을 뿐 시간이나 장소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리 전 총리 장례식을 앞두고 바바오산 혁명열사묘역 인근은 교통이 통제됐다. 도로에는 수십명의 경찰과 차량이 배치됐다. 사전에 허가된 일부 차량만 이동을 허용했다. 시민들은 바바오산역 인근의 육교나 도로 양쪽의 인도에서 리 전 총리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경찰은 시민들에게 “사진을 찍지 마라”, “육교에 머물지 말라” 등 경고했다. 앞서 홍콩 명보는 지난 1일 “리 전 총리 장례식은 리펑 전 총리의 장례식 수준에 맞춰 조용히 진행될 것”이라며 “리커창 전 총리의 부고와 리펑 전 총리의 부고가 완벽하게 똑같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최고지도자가 사망하면 장례위원회가 꾸려지고 각지에서 추모대회가 열린다. 홍콩과 마카오, 세계 각국 재외공관에도 빈소를 마련해 조문을 받는다. 반면 최고지도자가 아닌 고위 관료가 사망하면 별도 추도식이나 추모행사를 열지 않는다. 화장 당일 유체고별식만 진행된다. 리 전 총리의 장례식 역시 전례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중국 지도자들의 화장 관례는 저우언라이 전 총리 때부터 확립됐다. 마오쩌둥의 시신은 방부 처리돼 기념관에 안치됐지만, 나머지 지도자의 시신은 모두 화장됐다. 리 전 총리는 지난달 27일 오전 0시 10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특별기편으로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운구됐다. 장례식이 진행된 2일 중국의 관공서와 재외공관 등에 조기가 게양됐다.
  • 중국 핼러윈 참가자들 코로나 방역요원 복장으로 사회 비판

    중국 핼러윈 참가자들 코로나 방역요원 복장으로 사회 비판

    중국 상하이에서 ‘핼러윈 분장’을 통해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표출됐다고 로이터통신이 1일 전했다. 1년 전 코로나19 기간 2500만명의 상하이 시민들은 두달 반이 넘는 봉쇄를 경험했고, 방역정책에 항의하는 백지시위가 신장자치구 우루무치에 이어 두 번째로 벌어졌다. 핼러윈을 즐기는 사람들이 전날 늦게까지 상하이 중심부를 가득 메웠고, 일부는 중국의 엄격한 코로나19 규제를 조롱하는 의상을 입고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핼러윈 복장을 하지 않았지만, 괴물이나 슈퍼 히어로 같은 의상을 입은 사람들 외에 악명높은 코로나19 방역 요원 복장을 한 이들도 있었다. ‘다바이’(大白)로 불리는 방역 요원은 중국의 가혹한 ‘제로 코로나’ 3년을 상징하며, 특히 상하이 시민들에게 뼈아픈 상처이기도 하다.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다바이로 분장한 이들이 면봉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을 검사하려는 모습이 올라왔다. 이들의 모습은 중국 당국의 권력 남용과 통제를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미국의소리(VOA)는 짚었다.중국의 침체된 주식 시장을 설명하는 보드를 입은 남성과 역사적인 실업률과 씨름 중인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유명 작가 루쉰으로 분장한 남성도 있었다. 루쉰으로 분장한 남성은 경찰로부터 떠나라는 지시를 받기 전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말하라”고 촉구하는 작가의 작품을 낭송하는 장면이 동영상에 담겼다. 일부 참석자들은 지난해 제로코로나 반대시위의 핵심 상징인 빈 종이를 옷에 붙인 채 나타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의 검열 대상인 곰돌이 푸 분장도 있었다. 앞서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 동화 속 주인공 곰돌이 ‘푸’와 푸의 호랑이 친구 ‘티거’와 닮았다며 일부 네티즌들이 풍자 놀이를 시작한 이후 푸는 시 주석을 비하하는 반중의 상징 캐릭터가 됐다. 장례식에 놓이는 추모 화환으로 분장한 이와 그의 옆에서 “당신이 너무 보고 싶다”는 문구를 든 이도 있었다. VOA는 “이들의 분장이 최근 급사한 리커창 전 총리와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다”며 “이 두 사람은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고 소품은 압수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VOA는 “지난해 11월 말 중국 주요 도시 곳곳에서 ‘제로 코로나’ 반대 시위가 발생한 이후 1년간 이와 비슷한 규모의 단체 행동은 없었다”며 “지난 주말 시작된 상하이 핼러윈 거리 축제의 주제는 재미이지만 일부 분장은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밝혔다. VOA는 ‘중국판 인스타그램’이라 불리는 샤오훙수에서 핼러윈 관련 콘텐츠가 검열돼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핼러윈 축제 참석자들이 중국 경찰로부터 위협적인 가해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지만, 몇몇 지나치게 전복적인 의상을 입은 이들은 사진이 찍혔으며 일부는 호송당하기도 했다.
  • 눌러도 꺾이지 않는 리커창 추모 열기…中 베이징대 추모 메시지도

    눌러도 꺾이지 않는 리커창 추모 열기…中 베이징대 추모 메시지도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의 갑작스러운 별세를 두고 중국 당국이 사회적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운 가운데 시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의 물결을 이어가고 있다. 30일 중국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 따르면 ‘리커창 동지 서거’ 해시태그 조회수는 별세 당일인 27일 총 23억 5000만회를 기록했다. 이날까지 29억 7000만회 조회됐다. 이 해시태그로 작성된 글만 해도 64만 3000건에 달한다. 앞서 웨이보에선 관영 매체 일부 댓글이 막히거나 특정 해시태그가 “관련 법률·법규·정책에 근거해 이 화제의 내용은 표시되지 않는다”는 메시지와 함께 검열됐다. 이날은 ‘리커창 동지 서거’ 해시태그가 검색됐지만 검색 결과는 한산하게 인위적으로 정돈된 듯 보였다. 리 전 총리와 관련한 글은 대부분 27일 중국 당국이 발표한 부고문이나 정부 기관·관영 매체가 고인을 추모하며 올린 것 뿐이다. 더우인(틱톡) 등 다른 SNS에서도 상황도 이미 정리를 거친 것처럼 비슷했다. 반면 엑스(옛 트위터) 등 중국 외 SNS에선 시민들이 리 전 총리를 애도하는 의미로 놓은 조화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진들 가운데는 “인민의 좋은 총리”나 리 전 총리가 지난 3월 총리 퇴임을 앞두고 했다는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 등을 적어놓은 쪽지가 눈에 띄었다. ‘권력 집중’, ‘독재’ 등 노골적이고 과격한 단어로 현 정권을 비난하는 글귀도 섞여 있었다. 지방 매체의 반응도 관심을 모았다. 리 전 총리 별세 이튿날 중국의 거의 모든 신문은 1면에 고인의 흑백 사진과 중국 당국의 공식 부고문을 게재했는데, 광둥 지역 매체 남방도시보는 1면에 “리커창 동지 서거”라는 헤드라인만 달고 그 밑으로 거대한 나무 사진을 실었다. 광저우 매체 ‘신식시보’ 역시 나무 사진을 1면에 크게 넣었다. 이 사진들은 중국 SNS에서 화제가 됐다. 1989년 6·4 톈안먼 시위 당시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죽음을 추모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아주 큰 나무’라는 노래를 연상시킨다는 이야기가 네티즌들 사이에 돌았다. 중국 공산당은 1990년대 소련 붕괴에서 교훈을 얻어 중앙 매체 논조를 엄중하게 통제하는 반면 지역 매체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논조를 인정한다. 지역 민심을 정확히 청취해야 소련 붕괴와 같은 ‘파국’을 피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각에선 ‘소신파’ 이미지였던 리 전 총리에 대한 애도 분위기가 시진핑 국가주석 체제에 대한 불만을 일정하게 반영할 개연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편 그의 모교인 베이징대는 추모 메시지를 내놨다. 베이징대 신문인 베이징대 교보는 29일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공식 계정을 통해 ‘리커창 동문을 깊이 추모한다’는 제목의 글과 함께 리 전 총리와 관련된 글 두 편을 소개했다. 베이징대 교보는 리 전 총리 부고 소식을 전한 뒤 “베이징대 교수와 학생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리커창은 베이징대의 걸출한 동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978∼1982년 학부 법학과에서 공부했고 1988∼1994년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교보는 “그는 베이징대에서 학부생으로 공부하는 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학생들의 중추로 성장했고, 베이징대 신문과 잡지에 여러 차례 글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1980년 사회과학토론회에서 우수 논문으로 선정돼 교보에 실린 그의 논문과 베이징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서기로 활동하던 1982년 공청단 회의 개최 소식을 함께 게시했다.
  • “中, 리커창 추모열기 막는 듯…제2 톈안먼사태 우려”

    “中, 리커창 추모열기 막는 듯…제2 톈안먼사태 우려”

    중국 정부가 지난 27일 별세한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를 애도를 막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에 대한 추모 움직임이 ‘제2의 톈안먼 사태’로 번질 수 있다고 우려해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장기 집권과 경제 침체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현 지도부에 수 차례 쓴소리를 한 리 전 총리의 사망이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29일(현지시간) 프랑스의 ‘라디오 프랑스 인터내셔널’(RFI) 중국어판은 “리 전 총리의 별세가 ‘제2 톈안먼 사태’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자 당국이 추모 분위기 확산을 차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역사적으로 중국 지도자의 사망이 대규모 시위로 번진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1976년 저우언라이 당시 총리가 사망하자 청년층을 중심으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1989년 4월 개혁 성향의 후야오방 당시 공산당 총서기가 중난하이에서 소집된 중앙정치국 회의에 참석했다가 심장병 발작으로 돌연사하자 학생과 시민이 톈안먼 광장에 모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생겨났고 이는 6월 민주화운동으로 번졌다. 지난해 11월 말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해 대대적인 추모 열기가 젊은이들이 시진핑 지도부에 대한 반대 여론을 ‘백지 시위’로 표출했고, 중국 당국은 3년 가까이 유지하던 ‘제로 코로나’ 기조를 전면 해제해 이들을 달랬다. 현재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와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 목록에는 29일부터 리 전 총리 별세와 관련 소식이 등장하지 않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리 전 총리의 사망 관련 보도를 짤막하게 보도하는 등 추모 분위기가 커지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중국 여러 대학도 학생들에게 리 전 총리 추모 집회 금지령을 내렸다.리 전 총리의 고향인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옛 주택에는 28일부터 수많은 주민들이 꽃다발을 들고 찾아와 참배하고 있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1인 독주 체제가 강화된 상황에서도 한 번씩 소신 발언을 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골목을 메운 국화꽃 사이로 보이는 추모카드에는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다’, ‘(중국 전체 인구 가운데) 6억명의 월평균 소득이 1000위안 이하다’ 등 리 전 총리의 생전 발언이 적혀 있었다. 모두가 ‘경제와 민생 챙기기가 중국 공산당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그의 평소 소신 발언으로, 시 주석과 측근들의 자화자찬식 성과 홍보를 비판한 쓴소리이기도 하다. 르피가로는 “리 전 총리의 별세는 중국의 외교·국방부장(장관)이 면직되고 미중 긴장이 고조되는 ‘혼란의 시기’에 일어났다”며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 시 주석은 미묘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과거 라이벌의 장례식을 존엄하게 치르는 동시에 그것이 잃어버린 황금시대의 상징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中포털서 사라진 ‘리커창 사망’… 추모 열기 불편했나

    中포털서 사라진 ‘리커창 사망’… 추모 열기 불편했나

    지난 27일 갑작스레 별세한 리커창(68) 전 중국 국무원 총리를 향한 애도의 물결이 대륙 전체로 퍼지고 있지만 중국 내 인터넷에서 그의 사망 소식은 검색어 순위에서 사라졌다. 관영매체들도 공식 부고 소식만 전할 뿐 추가적인 의미 부여는 삼가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 등 최고 권력의 독주를 견제하며 친서민 행보를 보인 그에 대한 향수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9일 대만 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리 전 총리가 유년기를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 지역은 지난 27일부터 중국 전역의 추모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생가가 자리잡은 훙싱루 80호 골목에는 추모 행렬이 200m 넘게 이어졌다. 골목을 메운 국화꽃 사이로 보이는 추모카드에는 ‘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다’, ‘(중국 전체 인구 가운데) 6억명의 월평균 소득이 1000위안 이하다’ 등 리 전 총리의 생전 발언이 적혀 있었다. 모두가 ‘경제와 민생 챙기기가 중국 공산당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그의 평소 소신 발언으로, 시 주석과 측근들의 자화자찬식 성과 홍보를 비판한 쓴소리이기도 하다. 리 전 총리 사망 발표가 나온 지난 27일부터 그의 부고 소식은 중국 대표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실시간 검색어 1∼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날부터 관련 소식이 검색어 순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시진핑은 왜 현대화 대규모 농업을 관철하는가’, ‘왕이 외교부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면담’ 등 뉴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리커창 동지 영정’과 ‘리커창 동지 부고’가 각각 검색어 순위 1·2위에 올랐고, ‘리커창 동지가 세상을 떠났다’ 해시태그가 22억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날부터 리 전 총리 추모 관련 내용이 사라졌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노점 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 약자 편에 섰던 그에 대한 추모 분위기 확산이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당국이 언론 통제에 나섰다는 추측이 나온다. 이를 반영하듯 중국중앙(CC)TV의 저녁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신원롄보는 당일 뉴스 시작 14분 뒤에야 리 전 총리 부고 소식을 전했다. 관영 인민일보와 신화통신도 공식 부고만 소개했을 뿐 생전 활동이나 업적 등을 소개하는 기사는 내지 않았다. 중국 다수 대학들은 ‘리 전 총리를 추모하는 집회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은 베이징 지도부에도 큰 충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은 사망 소식이 처음 발표되고 10시간이 넘은 27일 오후 6시 30분쯤에야 공식 부고를 내놓았다. 부고는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이자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인 리커창 동지가 서거했다”고 전했다. 그는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수영을 하다가 심장마비로 27일 0시 10분쯤 숨을 거뒀다. 시신은 27일 밤 전용기를 통해 베이징으로 운구됐다. 국가급 지도자 장례 절차에 따라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묘지에서 시신을 화장하고 시 주석 등 정치국 상무위원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거행된다.
  • 中 경제개혁 이끈 실용주의 총리…시진핑 권력 집중에 존재감 상실

    中 경제개혁 이끈 실용주의 총리…시진핑 권력 집중에 존재감 상실

    지난 27일 세상을 떠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68)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1·2기였던 2013~2022년에 중국 경제 사령탑을 맡았다. 온건 개혁 성향의 실용주의자로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자리를 이어받을 ‘후계자’로 주목받았지만, 시 주석의 영향력에 밀려 존재감을 상실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리 전 총리는 1955년 7월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수한 학업 성적을 자랑해 수재로 유명했다. 197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다른 지식인들처럼 농촌으로 하방됐다가 1977년 대학 입학시험이 부활하자 베이징대 법학과에 합격했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미국 유학을 준비했지만 공산당이 그를 놔주지 않았다. 베이징대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서기로 임명돼 현실 정치에 발을 들였다. 1993년에는 38세 나이로 공청단 최고위직인 중앙서기처 1서기(장관급)로 승진했다. 공청단 출신으로 당시 정치국 상무위원이던 후진타오가 그를 챙겼다. 리커창은 1998년 허난성으로 가 성장과 서기에 오르며 지방행정 경험을 쌓았다. 이후 랴오닝성 서기로 근무하며 승진가도를 달렸다. 리커창은 후진타오가 점찍은 차기 국가주석 ‘1순위’였다. 당시만 해도 시진핑 당시 저장성 서기의 존재감은 미약했다. 그러나 2007년 10월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예상을 뒤엎고 시진핑이 서열 6위(국가부주석), 리커창이 서열 7위(부총리)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입성했다. 이는 2013년부터 시진핑이 국가주석을, 리커창이 국무원 총리를 맡는다는 의미였다. 이를 두고 후진타오·리커창으로 이어지는 공청단 세력을 견제하려는 ‘태자당’(세습정치세력)과 ‘상하이방’이 연합해 시진핑에 힘을 실어준 결과라는 해석이 나왔다.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의 5세대 지도부를 뜻하는 ‘시리 조합’(習李組合·시진핑과 리커창 체제)은 2013년 3월 공식 출범했다. 중국에서 국가주석은 정치·외교 분야를, 총리는 경제 분야 주도권을 쥐고 정책을 결정한다. 회사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각자대표 체제다. 리커창은 ‘리코노믹스’(리커창 경제정책)로 불리는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모델이 한계에 달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리 총리 정책의 핵심은 크게 인위적 경기 부양 지양과 부채 감축, 구조 개혁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평소 그는 “손목을 잘리는 아픔을 느끼는 경제 구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점차 둔화하고 증시가 붕괴하는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그의 입지가 좁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시 주석을 중심으로 권력이 집중돼 리커창은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다. 사실상 각자대표 체제가 무너졌다.그럼에도 그의 소신 있는 발언은 외신에서 화제가 됐다. 베이징 지도부가 ‘중국에서 빈곤이 사라졌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던 2020년 3월 “중국 국민 6억명 이상이 한 달에 1000위안(약 17만원)에 못 미치는 소득을 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에는 광둥성 선전에서 ‘개혁·개방 설계사’ 덩샤오핑 동상 앞에 헌화하면서 “창장과 황허는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는 말로 개혁·개방 의지를 다졌다. 제로 코로나 심화로 중국의 개혁개방 기조가 후퇴한다는 우려가 나오던 때였다.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공작보고를 마지막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그는 국무원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며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고 격려했다. 인민을 위해 성실히 복무할 것을 당부한 말이지만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중국 최고 지도부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도 나왔다. 리 전 총리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을 네 차례 방문했다. 첫 번째는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때인 1995년이다. 랴오닝성 당 서기 시절인 2005년에도 방한해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 등을 만났다. 2011년 10월 부총리 시절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예방했다. 국무원 총리로 재직하던 2015년에도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 中 포털사이트서 사라진 ‘리커창 사망’…“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재조명되는 그의 ‘쓴소리’

    中 포털사이트서 사라진 ‘리커창 사망’…“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재조명되는 그의 ‘쓴소리’

    지난 27일 갑작스레 별세한 리커창(사진·68)전 중국 국무원 총리를 향한 애도의 물결이 대륙 전체로 퍼지고 있지만 중국 내 인터넷에서 그의 사망 소식은 검색어 순위에서 사라졌다. 관영매체들도 공식 부고 소식만 전할 뿐 추가적인 의미 부여는 삼가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 등 최고 권력의 독주를 견제하며 친서민 행보를 보인 그에 대한 향수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9일 대만 중앙통신 등에 따르면 리 전 총리가 유년기를 보낸 안후이성 허페이 지역은 27일부터 중국 전역의 추모객들로 장사진이다. 생가가 자리잡은 훙싱루 80호 골목에는 추모 행렬이 200m 넘게 이어졌다. 골목을 메운 국화꽃 사이로 보이는 추모카드에는 ‘창장(양쯔강)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다’, ‘(중국 전체 인구 가운데) 6억명의 월평균 소득이 1000위안 이하다’ 등 리 전 총리의 생전 발언이 적혀 있었다. 모두가 ‘경제와 민생 챙기기가 중국 공산당의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는 그의 평소 소신 발언으로 시 주석과 측근들의 자화자찬식 성과 홍보를 비판한 쓴소리이기도 하다. 리 전 총리 사망 발표가 나온 27일부터 그의 부고 소식은 중국 대표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실시간 검색어 1∼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날부터 관련 소식이 검색어 순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시진핑은 왜 현대화 대규모 농업을 관철하는가’, ‘왕이 외교부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면담’ 등 뉴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리커창 동지 영정’과 ‘리커창 동지 부고’가 각각 검색어 순위 1·2위에 올랐고, ‘리커창 동지가 세상을 떠났다’ 해시태그가 22억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날부터 리 전 총리 추모 관련 내용이 사라졌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노점 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 약자 편에 섰던 그에 대한 추모 분위기 확산이 정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당국이 언론 통제에 나섰다는 추측이 나온다.이를 반영하듯 중국중앙(CC)TV의 저녁 메인 뉴스 프로그램인 신원롄보는 당일 뉴스 시작 14분 뒤에야 리 전 총리 부고 소식을 전했다. 관영 인민일보와 신화통신도 공식 부고만 소개했을 뿐 생전 활동이나 업적 등을 소개하는 기사는 내지 않았다. 중국 다수 대학들은 ‘리 전 총리를 추모하는 집회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은 베이징 지도부에게도 큰 충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공산당은 사망 소식이 처음 발표되고 10시간이 넘은 27일 오후 6시 30분쯤에야 공식 부고를 내놓았다. 부고는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이자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인 리커창 동지가 서거했다”고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통상 베이징은 와병 중인 당 지도자의 부고를 미리 준비하는데, 리 전 총리 부고는 준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는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수영하다가 심장마비로 27일 0시 10분쯤 숨을 거뒀다. 시신은 27일 밤 전용기를 통해 베이징으로 운구됐다. 국가급 지도자 장례절차에 따라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묘지에서 시신을 화장하고 시 주석 등 정치국 상무위원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거행된다.
  • 中 SNS, 리커창 추모 물결… 관영매체는 조용

    中 SNS, 리커창 추모 물결… 관영매체는 조용

    리커창 중국 전 국무원 총리 별세 소식에 많은 중국인이 온오프라인으로 애도의 뜻을 표명하고 있다. 다만 당국은 수위 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는 28일 오전 ‘리커창 동지 영정’과 ‘리커창 동지 부고’가 각각 검색어 순위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리커창 동지가 세상을 떠났다’라는 해시태그(#)는 전날 저녁까지 22억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리 전 총리가 어린 시절 살았던 안후이성 허페이시와 추저우시 일대엔 28일 새벽까지 중국인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방금 아이와 함께 꽃을 놓고 왔는데, 정말 많이 울었다”며 “그는 우리의 자랑”이라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도 리 전 총리를 향해 ‘인민의 총리’라고 부르며 “그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중국 관영매체들은 리 전 총리 별세 소식을 확산시키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인민일보, 신화통신, 환구시보 등 주요 관영매체들은 전날 오전 8시쯤 리 전 총리가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소식을 전한 중국중앙TV(CCTV) 발표를 인용해 종일 단신으로 내보냈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정치협상회의가 공동으로 부고를 발표하자 다시 부고 소식만 전하고 있다. 인민일보의 경우 28일 신문 1면에 리 전 총리의 부고 소식을 전했지만, 그의 생전 활동이나 업적 등을 소개하는 별도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당국의 의중을 100% 반영하는 중국 관영 매체 특성상, 추모 분위기 확산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대만 정부는 전날 행정원 대륙위원회 명의로 리 전 총리의 유가족에게 애도 뜻을 표했다.
  • 리커창 전 中 총리 사망 소식에 대만인들 관심...왜? [대만은 지금]

    리커창 전 中 총리 사망 소식에 대만인들 관심...왜? [대만은 지금]

    지난 27일 오전 중국 관영언론 CCTV가 리커창 중국 전 총리가 이날 0시 10분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전하자 대만 언론들은 그가 걸어온 길을 재조명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대만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불과 7개월여 전에 퇴임한 리 총리의 나이는 향년 68세였다. CCTV는 중국 공산당 17, 18, 19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전 국무원 총리였던 그가 최근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가 26일 돌연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했다고 전했다. 해당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대만 토론사이트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대만 네티즌들은 대부분 "너무 갑작스럽다", "심장마비 당한 건가", "개혁개방파는 반드시 죽는다"는 등의 댓글을 쏟아냈다. 대만 언론들은 그의 일대기를 되돌아보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른 경제 사상에 주목했다. 1955년 7월 중국 안후이성 딩위안에서 태어난 리커창은 베이징대학교 법학과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76년 5월 공산당에 입당했다. 리커창은 중국 문화대혁명의 혼란기가 끝난 뒤 처음으로 중국내에서 키워진 지식인 중 하나로 꼽히는데, 중국 공산당 창당 이후 역대 총리 중 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인물이기도 했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으로 여기서 그는 중요한 리더가 된 뒤 허난성과 랴오닝성 등 두 곳에서 현지 정치 경험을 쌓았다. 2013년 리커창은 총리직을 맡게 됐다. 중국은 당시 오랫동안 두 자릿수 성장에 이별을 고했지만 경제 전망은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중국의 실물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총리직에 오른 리커창은 자신만의 경제정책을 펼치고자 했다. 권력과 이익을 시장에 위임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어떠한 경기 부양책도 도입하지 않고 부채 축소, 구조개혁 등을 해야 한다는 소위 '리커창의 경제학'은 인기를 끌었다. 그가 총리에 오른 후 한 연설들에서는 '행정 합리화와 권한 위임', '합리적 범위', '구조 조정', 개혁 촉진', 민생 증진'이 키워드로 등장했다. 이를 종합해 보면 최소 경제 만큼은 '권력과 이익을 시장에 위임한다'는 그의 경제 사상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개혁노선은 결국 실행에 난항을 겪었다. 그의 총리 취임 후 나왔던 '시진핑-리커창 체제'라는 말은 중공 제19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사라졌다. 경제 정책의 주도권은 시진핑을 핵심으로 한 시진핑 세력으로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권력 분배 대신 권력 집중 현상이 나타나면서 국무원은 사실상 명령을 받는 기관이 되었다. 리커창은 개혁개방 이후 권력이 가장 약했던 중국 총리라고 평가 받는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중국에는 6억 명의 중저소득층 이하 인구가 있다", "월급이 1천 위안(18만7천 원)도 안 된다"는 등 진실을 말했다. 더욱이 중국은 코로나19 대유행에 제로코로나 정책을 시행하면서 중소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소비자 신뢰도도 추락했다. 이에 외부 세계는 중국 경제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가 퇴임하기 전인 2022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3%에 불과했고, 이 정책의 여파는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모양새다. 또한 지난해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칠상팔하'(67세는 지도부에 들어갈 수 있지만, 68세는 안 된다)라는 불문율이 깨졌다. 리커창은 연령 제한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그를 비롯한 그의 청년동맹파는 결국 중공 핵심 세력 목록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올해 3월 중국 양회를 기점으로 리커창은 중공의 정치 무대에서 물러나며 한 시대를 마감했다. 10년간 총리직을 맡은 리커창에게 주어진 퇴임사 시간은 고작 1시간 뿐이었다. 그는 여기서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세상 떠나 ‘할말은 했던 2인자’ BBC “사망 소식 경시”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세상 떠나 ‘할말은 했던 2인자’ BBC “사망 소식 경시”

    올해 3월 퇴임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68세, 상대적으로 한창 나이에 허망하게 삶을 접었다. 중국중앙(CC)TV는 이날 오전 8시(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최근 상하이에서 쉬고 있던 리커창 동지에게 26일 갑자기 심장병이 발생했고, 응급조치도 소용없이 27일 0시 10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관영 신화통신은 리 전 총리의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전했다. 이날 오후 6시 30분에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정치협상회의 공동 명의로 낸 부고를 통해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인 리커창 동지가 서거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정은 “그의 서거는 당과 국가의 중대한 손실”이라며 “우리는 비통함을 힘으로 바꿔 그의 혁명정신과 숭고한 품덕, 우량한 작풍(업무 태도)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로 더 긴밀하게 단결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 관철해야 한다”며 “리커창 동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중국 당정은 오전 8시 별세 소식 발표 후 “곧 부고를 내겠다”고 했지만 10시간이 넘게 부고와 입장문이 나오지 않자 서방 매체 등 일각에선 중국이 리 전 총리의 죽음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뒤늦게 나온 2511자 분량의 부고문에는 젊은 시절부터 최근까지 리 전 총리의 업적이 상세히 설명됐다. 중국 당정은 특히 “세계적 변화의 가속화와 코로나19의 충격, 국내 경제 둔화 등 다중의 도전에 직면해서도 ‘안정 속에 진보를 추구한다’는 기조 하에 새로운 발전 구도를 만들고, 양질의 발전을 이끌었다”며 “탈(脫)빈곤과 농촌 진흥 전략 추진으로 빈곤 퇴치 성과를 늘렸다”고 평가했다. 1955년생인 리 전 총리는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와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 겸 성장, 랴오닝성 당위원회 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청단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내에선 비슷한 연배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고,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기 전에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시 주석을 밀어주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뒤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는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 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 총리는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 당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명의 월 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8만원)밖에 안 되며, 1000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말해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 주석이 업적으로 꼽고 있는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전국 화상회의를 열어 10만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심각하다고 발언하며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 주석에 권력이 한층 집중되면서 리 전 총리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해졌다. 그는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리 전 총리는 퇴임 후 중국 경제 회복 둔화 속에 오히려 더 인기가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 8월 말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에 올라온 리 전 총리의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굴 방문 영상을 보면 수백명의 관광객이 “총리님,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맞는 장면이 나온다. 별세 소식이 알려진 이날 중국 SNS 웨이보에서는 오전부터 종일 ‘리커창 동지 서거’ 해시태그가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누리꾼들은 추모 의미를 담은 붉은 촛불 이모티콘과 함께 “너무 갑작스럽다”거나 “믿고 싶지 않다”, “침통한 마음으로 리커창 총리를 애도한다”, “편히 가세요” 등 메시지를 작성했다. “인민의 좋은 총리,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 같은 반응도 많았다. 한국 정부는 “리커창 전 총리가 한국의 가까운 친구로서 한중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그의 영면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도 깊은 애도와 추모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일본 정부도 추도 입장을 발표했다.영국 BBC 방송은 리 전 총리가 “빈부격차를 줄이고 저렴한 주택 제공에 초점을 둔 정책으로 덜 혜택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로 명성을 얻었다”며 “시 주석에 의해 결국 배제됐지만 경제정책 면에서는 실용주의로 인기있는 지도자였다”고 보도했다. 이어 리 전 총리가 재임 시 “시 주석에 충성하는 그룹에 속하지 않은 유일한 현직 고위 관료”였으며 “최근 몇년 동안 중국 최고 지도자들 사이에서 고립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도 “엘리트 경제학자인 리 전 총리는 ‘리코노믹스’(리커창+이코노믹스)로 불리는 접근방식 아래 더 개방적인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공급자 측면의 개혁을 옹호했으나 이는 완전히 실행되지 못했다”고 평했다. 로이터는 이어 “궁극적으로 리 전 총리는 국가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진핑의 선호에 굴복해야 했고 시진핑이 요직에 자기 사람들을 앉히면서 리 전 총리의 권력 기반은 약해졌다”고 짚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 전 총리의 합리적인 정책 결정은 시진핑의 정치화된 통치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부드럽게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관료주의를 없애겠다며 사업 등록 기간을 대폭 단축한 것과 같은 리 전 총리의 성과는 시 주석의 반기업 정책으로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리 전 총리가 “자유시장과 중국의 더 빈곤한 시민들을 옹호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며, 시진핑 독재 부상으로 밀려난 정치적 대안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외신들은 영어에 능통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해온 리 전 총리가 중국 지도부 안에서 미국 등 서방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목소리를 대변했다고도 평가했다. CNN은 “중국과 서방 국가의 관계가 갈수록 경색되던 시기에 중국과 세계의 다른 접근법을 대변하는 인물로 여겨졌다”며 리 전 총리가 2021년 3월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미국이 공통의 이익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일화를 전했다. 로이터는 일부 중국 지식인과 자유주의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자유주의 경제 개혁의 등불이었던 리 전 총리의 별세가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도 싱크탱크 카네기차이나의 비상주 학자 이언 총을 인용해 “리 전 총리의 죽음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 내에서 눈에 띄는 온건한 목소리의 상실을 의미한다. 아무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며 “이는 아마 시 주석의 권력행사에 대한 제약이 더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고 전했다. 외신들은 중국 당국이 리 전 총리의 사망을 축소해 전달하고 인터넷에서 리 전 총리 관련 내용을 검열하는 상황에 주목했다. BBC는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관영 언론들이 리 전 총리의 경력에 대한 공산당의 평가를 나타내는 공식적인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는 등 사망 소식을 경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9년 리펑 전 총리 사망 때 “탁월한 당원, 오랜 기간 검증받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 군인이자 뛰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지도자”라는 찬사를 쏟아낸 것과 대조된다는 것이다. BBC는 그러면서 “중국 전직 지도자들의 죽음은 과거에도 시위를 촉발한 적이 있다”며 “지난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했을 때 애도 목소리도 시진핑 주석에 대한 미묘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전했다. WSJ도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서 리 전 총리 사망 관련 댓글이 검열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과거 중국 고위 관리들의 사망 때 대중의 애도 움직임이 현직 지도자를 겨냥한 대규모 시위로 발전한 적이 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도 그해 4월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애도하는 집회에서 시작됐다”고 짚었다.
  • 정부, 리커창 前 중국 총리 별세에 애도… “한중관계 발전에 큰 기여”

    정부, 리커창 前 중국 총리 별세에 애도… “한중관계 발전에 큰 기여”

    정부는 27일 별세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명했다. 외교부는 “정부는 리커창 전 총리가 한국의 가까운 친구로서 한중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그의 영면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도 깊은 애도와 추모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리 전 총리는 1995년 중국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2005년 랴오닝성 당서기, 2011년 국무원 상무부총리, 2015년 국무원 총리 등을 지내며 네 차례 방한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조전 발송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으며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장례식 참석 여부와 관해서는 중국 측에서 아직 관련 사항을 발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별세했을 때 관례에 따라 외국 정부, 정당 및 해외 우호 인사들의 조문 대표단을 초청하지 않았다.
  • 중국 CCTV “리커창 전 총리, 심장병으로 오늘 사망”

    중국 CCTV “리커창 전 총리, 심장병으로 오늘 사망”

    올해 3월 퇴임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사망했다고 중국중앙TV(CCTV)가 보도했다. 향년 68세. CCTV는 “리커창 동지에게 26일 갑자기 심장병이 발생했고, 27일 0시 10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며 “부고를 곧 낼 것”이라고 전했다. 1955년생인 리 전 총리는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와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 겸 성장, 랴오닝성 당위원회 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청단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 내에선 비슷한 연배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고,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뒤인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한때 시 주석의 경쟁자이기도 했던 리 전 총리는 재임 기간 서열 2인자로서 중국 정부를 향해 여러 차례 쓴소리하며 소신 행보를 보였다. 시 주석의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 작년 4월 코로나19 확산과 엄격한 방역 통제로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 등이 전면 봉쇄돼 경제가 충격을 받자 “과도한 방역으로 물류가 차질을 빚고, 농업 인력과 농자재 이동 통제로 곡물 수확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소신을 밝힌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 주석에 권력이 한층 집중되면서 리 전 총리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해졌고, 그는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때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민생을 챙겼던 리 전 총리에 대한 중국인들의 향수는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속보] 중국 CCTV “리커창 전 총리 사망”

    [속보] 중국 CCTV “리커창 전 총리 사망”

    지난 3월 퇴임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이 보도했다. 향년 68세. CCTV는 “리커창 동지에게 26일 갑자기 심장병이 발생했고, 27일 0시 10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며 “부고를 곧 낼 것”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경쟁자였던 리 전 총리는 재임 기간 서열 2인자로서 중국 정부를 향해 여러 차례 쓴소리하며 소신 행보를 보였다. 시 주석의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 때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민생을 챙겼던 리 전 총리에 대한 중국인들의 향수는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 [단독] 4년 전 국방대화서 ‘3대 조건’ 꺼낸 中… 사드 철수까지 요구했다

    [단독] 4년 전 국방대화서 ‘3대 조건’ 꺼낸 中… 사드 철수까지 요구했다

    “3불(不) 1한(限)이라는 중국 언론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1한을) 요구받은 바 없다”(2017년 11월 27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 중) 한중 간 사드 갈등을 봉인한 2017년 10월 31일 ‘한중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 발표와 동시에 불거진 ‘3불’과 달리 보다 본질적인 내용에 해당하는 ‘1한’이 부각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발표 직후 중국 공산당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사설에서 ‘1한은 현재의 사드 시스템 사용에 제한을 두어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을 해치는 것을 피하는 걸 지칭하는 말이다. 10월 말 한국 측이 중국 측에 제시한 약속’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국내에선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중국 당국에서 1한을 공식 언급한 것은 지난해 8월이 처음이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이 한중 외교장관회담 이후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정부는 대외적으로 3불 1한을 선시(宣示·사람들에게 널리 알림)했다”고 밝히면서다. 4일 여권 고위관계자와 외교 고위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18년 국방당국 간 채널에서 군불을 지피다가 10·31 협의 이후 2년이 지난 2019년 10월부터 명시적으로 ‘세 가지 조건’을 들고 나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사드 갈등으로 중단됐다가 5년 만에 재개된 제5차 한중 국방전략대화에서 중국 측이 ▲3불 1한 관련 지난 2년간 이행현황 통보 ▲사드 영구배치 방지를 위한 미국 측 설득 노력 ▲양국 기술전문가 정례회의 개최 등 3가지 조건을 거론한 것이다.중국은 이듬해 1월 제18차 한중 국방정책실무회의에서 세 가지 조건을 거듭 요청했고, 2021년 3월에 열린 19차 국방정책실무회의에서는 급기야 사드 철수를 포함해 한국이 타당한 결정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여권 고위관계자는 “중국이 압박한 3가지 조건은 미래 사안에 해당하는 ‘3불’은 합의의 영역에 묶어 두되, 성주 기지의 운용을 제한하고 궁극적으로는 이미 배치된 사드를 철수시킬 목적임이 분명히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표현은 ‘단계적 처리’다. 2017년 10·31 협의 직후인 11월 13일 문재인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의 회담에서 리 총리가 “(사드의) 단계적 처리에 합의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자칫 단계적으로 진행해 이미 배치된 사드까지 철수하는 데 한중이 합의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표현이었다. 논란이 일자 외교부는 “중국의 영어 번역 표현은 단계별(step by step)이 아닌 현 단계에서(in the current stage)”라며 부인했다. 여권에서는 문재인 정부 당시 10·31 협의 외에 한중 간 ‘이면 합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그렇기에 중국 측에서 세 가지 조건까지 꺼내 우리 정부를 압박할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것이다. 동시에 3불은 ‘합의’나 ‘약속’이 아닌 ‘입장’일 뿐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일관된 주장 또한 사실이 아니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3불이란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 안 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2019년부터 중국이 3불 1한을 넘어서 3가지 조건을 지속적으로 압박한 것은 물론, 2021년 한중 국방당국 간 채널에서 사드 철수 언급까지 나온 만큼 향후 정치적·외교적 파장은 불가피해 보인다.
  • “中 리커창 퇴임 계기 영문학자 부인도 관심”

    “中 리커창 퇴임 계기 영문학자 부인도 관심”

    리커창(67) 중국 국무원 총리가 퇴임하면서 저명 영문학자인 부인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9일 보도했다. 리 총리의 부인 청훙(65)은 베이징 수도경제무역대 외국어과 교수로 중국에서 미국 자연주의 문학 전문가로 통한다. SCMP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인인 가수 펑리위안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리커창의 부인 청훙도 이력 면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며 “청훙은 뛰어난 인재이며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을 맞아 중국에서 많은 이들이 그의 조용하지만 효과적인 역할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청훙은 중국 최고의 미국 자연주의 문학 연구가로 해당 분야 책을 두 권 집필하고 여러 영어책을 중국어로 번역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도경제무역대는 홈페이지에 청훙을 ‘저명한 학자’이자 학술위원회 위원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최고 교수 톱10’에 선정됐다. 리커창이 2013년 3월 총리로 임명된 뒤 그는 남편의 해외 방문에 종종 동행했다. 많은 중국 매체가 그의 지적인 배경과 우아한 성품을 칭송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리 총리가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갈등으로 실권이 약해지면서 최근 몇 년간 청훙도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대중의 눈에 띈 것은 지난해 11월 리 총리의 캄보디아 방문에 동행했을 때다. SCMP는 “리 총리가 퇴임하면서 청훙은 의심할 여지 없이 새로운 삶을 맞게 된다”며 “이는 가족을 중시하는 그에게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청훙에 대한 관심은 리 총리가 최근 정부 부처를 돌며 고별사를 하는 영상이 중국 인터넷에서 검열되는 상황과 맞물리고 있다. 앞서 지난 5일 SCMP는 리 총리가 퇴임을 앞두고 국무원과 재정부 등 정부 부처를 돌며 인사하는 영상이 중국 인터넷에 올라왔지만 많은 영상이 삭제됐다. 다만 유튜브나 트위터 등 해외 소셜미디어에서는 퍼져 나가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은 리 총리가 지난 2일 국무원 판공청 직원 800여명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라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 리커창 中 총리 마지막 발언은? “사람이 하는 일 하늘이 본다”

    리커창 中 총리 마지막 발언은? “사람이 하는 일 하늘이 본다”

    10년 임기를 마치고 야인(野人)으로 돌아가는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정부 부처 고별사로 한 발언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고 대만 중앙통신이 6일 보도했다. 통신은 “리 총리가 지난 2일 국무원 판공청 직원 800여명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연설한 영상이 트위터를 통해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리 총리의 고별 투어 영상은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 시스템인 ‘만리방화벽’에 의해 차단됐지만 이미 유튜브나 트위터 등 해외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번지고 있다. 영상에서 리 총리는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보고 있다’(人在做天在看)고 한다. 국무원 동지들이 그간 헌신적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하늘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누리꾼들은 ‘삼국지연의’ 제갈량이 유비 사후 8번째 북벌에 나서면서 남긴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는 발언에 주목했다. 표면적으로는 ‘음지에서 묵묵히 일하면 언젠가는 제대로 평가받게 된다’며 자신과 동고동락한 국무원 관계자들을 격려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장악한 시진핑 국가주석 등 최고 지도부의 독주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중국에서는 보통 이 표현을 상대에게 경고할 때 쓸 때가 많아서다. 누리꾼들은 “퇴임하면서 남긴 의미심장한 발언”이라거나 “누구를 두고 말하는 것이냐”는 등 반응을 보였다. 시 주석의 경쟁자였던 리 총리는 재임 기간 중국 서열 2인자로서 중국 정부를 향해 여러 차례 쓴소리하며 소신 행보를 보였다. 그는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폐막 기자회견에선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명은 월수입이 1000위안(약 19만원)에 불과하다”고 토로했다. 시 주석이 제창한 ‘샤오캉(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이 미흡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지난해에는 10만명이 넘는 공직자들이 참석한 화상회의에서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며 중국 당국이 시 주석의 최대 치적의 하나로 삼아온 ‘제로 코로나’를 직격하기도 했다.
  • ‘반란표 나올까’…中 전인대, 10일 시진핑 국가주석 3연임 확정

    ‘반란표 나올까’…中 전인대, 10일 시진핑 국가주석 3연임 확정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10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과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선출되며 ‘원톱 체제’를 굳힌다. 세계의 관심은 단 1표라도 반대나 기권 등 이탈표가 나오느냐다. 6일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인민정치협상회의) 프레스센터에 따르면 전인대는 오는 10일 제3차 전체회의를 열고 시 주석을 국가 주석과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 재선출한다. 전인대 대표들이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이지만, 시진핑 1~2기에서 100% 가까이 찬성표가 나왔던 사실을 고려하면 그의 3연임은 기정사실이다. 베이징 지도부의 고민은 ‘시 주석의 3연임을 만장일치로 추인할 수 있느냐’ 여부다. 그가 처음 국가 주석에 선출된 2013년 투표에서는 3000명 가까운 대표 가운데 반대 1표, 기권 3표가 나왔다. 2018년에는 만장일치로 재선출됐다. 10일 투표에서 일부 이탈표가 나온다면 ‘시 주석의 장기집권에 기층 세력의 불만이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날 전인대는 국가 부주석과 전인대 상무위원장도 선출한다. 부주석에는 한정 전 상무위원이 내정됐고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리잔수 상무위원이 맡는다. 다음날 열리는 제4차 전체회의에서는 리커창 국무원 총리의 후임을 결정하는 투표도 이뤄진다. 새 총리에는 중국 공산당 서열 2위 리창 상무위원이 내정됐다. 이번 전인대는 시진핑 사상 강화에도 주력한다. 전인대가 지난 5일 심의에 착수한 입법 개정안에 따르면 법안 발의 시 지도 이념으로 삼아야 할 이론·사상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이 추가됐다. 현행법에는 ‘헌법 준수’가 ‘공산당 영도’를 앞서지만, 개정안은 공산당 영도가 먼저 등장한다. 당의 지도력은 커지고 국무원 위상은 작아지는 ‘강당약정’(强黨弱政) 기조를 그대로 반영했다. 전인대는 13일 폐막식을 가친 뒤 리창 신임 총리가 첫 기자회견을 연다. 상하이 당서기로 지난해 3개월간 2600만명이 사는 중국 제1의 경제도시에 코로나19 봉쇄령을 시행했던 리창이 중국 경제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 中, 국방예산 4년來 최고… 최악 재정난에도 ‘강한 군대’ 키운다

    中, 국방예산 4년來 최고… 최악 재정난에도 ‘강한 군대’ 키운다

    중국이 지방정부 재정난 등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올해 국방예산을 지난해보다 7.2% 늘리는 강수를 뒀다. 2019년 이래 4년 만의 최고치다. 대만해협 등에서 펼쳐지는 미일 동맹과의 군사 대결 강화 흐름에 적극적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다. 중국 재정부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4기 1차 전체회의에서 ‘2023년 예산안’ 발표를 통해 “국방비 지출을 1조 5537억 위안(약 293조원)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국방예산 증가율 7.2%는 2019년(7.5%) 이후 4년 만의 최고치로 지난해 증가율 7.1%보다 약간 높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로만 볼 때 중국의 국방예산 증액 폭이 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016년 이래 ‘한 자릿수 국방예산 증가율’ 관례도 지키고 있어 올해 증액률을 이례적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올해 국방예산 증액률이 주목받는 것은 지금 중국이 최악의 재정난을 겪는 상황에서 내놓은 수치여서다. 최근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공안(경찰)청은 우리 돈 9000여만원의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 예고 최후통첩을 받고서야 뒤늦게 납부해 논란이 됐다. 상당수 지방정부 공무원들이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는다는 이야기는 더이상 비밀도 아니다. ‘제로 코로나’ 방역 장기화와 과도한 부동산 규제 등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책 실패로 지방정부의 재정이 바닥난 탓이다. 그럼에도 시 주석은 ‘지방정부 살리기’보다 ‘국방력 증강’을 우선순위로 삼았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미국과의 항전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는 그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발표는 ‘0.1% 포인트라도 증액률을 높여 미일 동맹에 맞설 군사력을 갖추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이를 반영하듯 리커창 총리는 이날 전인대 업무보고에서 “대만 독립 반대·통일 촉진의 기조를 견고하게 유지하고 양안 관계의 평화로운 발전과 평화통일 프로세스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인민대표의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대만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군대가 전투 준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대만 정부는 “중국은 대만인들이 중화민국의 주권·민주주의·자유를 고수하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 中 ‘5% 안팎’ 성장…‘고난의 행군’ 간다

    中 ‘5% 안팎’ 성장…‘고난의 행군’ 간다

    中 ‘시주석 경쟁자’ 리커창 환호 불편했나… ‘고별 영상’ 삭제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이 ‘위드 코로나’ 원년인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를 ‘5% 안팎’으로 제시했다. 1991년 이후 32년 만의 최저치다. 미국과의 갈등 심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등으로 인한 ‘고난의 행군’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5일 리커창 국무원 총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4기 1차 전체회의에서 2023년 국내총생산(GDP) 목표를 5% 안팎으로 설정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는 1991년(4.5%) 이래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영향으로 목표치를 내놓지 않은 2020년을 빼면 가장 낮다. 지난해 양회 때 제시한 2022년 목표치 ‘5.5% 안팎’보다도 떨어졌다. 중국 정부는 1990년 처음 연간 국민총생산(GNP) 성장률 목표를 내놨고 1994년부터 GDP로 바꿔서 발표하고 있다.당초 시장 일각에서는 ‘제로 코로나’ 정책 폐기에 따른 경제활동 정상화와 지난해 예상 밖 저성장에 따른 기저효과 등을 감안해 ‘올해는 6%대도 가능하다’는 예상이 나왔다. 그러나 리 총리의 이날 발표는 사실상 ‘4%대 후반도 열어 놓는다’는 뜻이어서 중국 낙관론자들의 전망에 크게 못 미친다. 지난해 중국은 3월 양회에서 ‘5.5% 안팎’을 경제성장 목표로 제시했지만 3.0% 달성에 그쳤다. 과도한 제로 코로나 기조 고수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이 겹친 결과다. 올해는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로 경제 환경이 개선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럼에도 목표치를 매우 보수적으로 설정했다. 우선 미국의 대중 기술 수출 압박이 갈수록 심해져 중국의 미래 산업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규제 중인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뿐 아니라 미국의 주요 공급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제품으로 범위를 넓힐 가능성을 일부 계산한 것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담았다. 내심 러시아의 편에 서 있는 베이징은 ‘러시아가 궁지에 몰리면 그간 지켜 오던 중립 기조를 깨고 모스크바에 무기를 지원할 것’으로 의심을 받는다. 이런 ‘최악의 상황’도 어느 정도 반영해 성장률 전망치를 설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제적 타격을 감수하더라도 미국에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는 속내다. 한편 리 총리는 이날 전인대 업무보고를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시장주의자’로 알려진 리 총리가 정부 부처를 돌며 고별인사를 나누면서 중국 경제 개혁 필요성을 역설하자 직원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들이 인터넷에서 검열돼 삭제되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타전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최대 경쟁자’였던 리 총리가 권좌에서 물러남에도 좋은 평판을 받는 현실을 불편해하는 세력이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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