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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원기회복’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 공화당 대통령후보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가 압도적인 남성 지지율에 힘입어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을 6%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23∼25일 미전국의 예상투표자 694명을 대상으로 후보별 지지도(오차범위 ±4%포인트)를 전화조사한 결과 부시 48%,고어 42%로 차이가 6% 포인트에 달했다. 6%포인트는 앞서 실시된 일부 여론조사에서 부시가 리드했던 폭보다 다소 크지만 올 대선이 1960년 존 F.케네디-리처드 닉슨 전 만큼 치열하기 때문에 대선일이 아직 약 6주나 남은 상황에선 고어가 재반전시킬 가능성은 있다. 이번 조사에서 남성지지율은 부시 56%,고어 34%로 부시가 무려 22%포인트나 앞선 반면 여성지지율은 고어 49%,부시 42%로 차이가 7%포인트에 불과,남성지지율이 부시 리드의 주요인이 됐다.
  • 美 역대 퍼스트레이디 42명

    미국의 역대 퍼스트 레이디는 모두 42명.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부인으로 ‘조용한 아내 조용한 인간’이기를 자처한 마사 워싱턴(1731∼1802)에서 남편의 ‘정치적 동반자’ 역할을 한 힐러리 클린턴(1947∼)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미국 퍼스트레이디사(史)에 획을 그은 사람으로는 새로운 퍼스트레이디상을 제시한 힐러리 여사가 단연 꼽힌다.클린턴 대통령의 두차례 선거과정에서의 활약은 물론,93년 백악관 의료보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국무장관 빰치는외교활동 등 강력한 퍼스트레이디상을 제시했고 상원의원에 출마,새 기록 창출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힐러리 못지 않게 국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퍼스트레이디들도 몇명 있다. 미 헌정사상 유일의 4선 대통령으로 기록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부인 엘리노어 루스벨트(1884∼1962) 여사가 대표적이다.힐러리가 자신이 목표로 하는 모델이라고 밝힌 엘리노어는 ‘마이 데이’라는 칼럼을 통해 남편에게 국정 조언을 했으며 남편이 사망한 뒤엔 미국의 유엔 대표로도 활약했다.48년 선거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러닝메이트 권유를 받기도 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 부인 에디스 갈트 윌슨 여사(1872∼1961)도 그 하나.그녀는 홀아비였던 윌슨 대통령과 결혼한 후 윌슨 대통령이 중병에 걸리자 대통령직의 상당 부분을 떠맡았다.백악관 자료실 그녀의 전기에는 ‘비밀의 대통령’‘정부를 움직인 제1의 여인’으로 불린 사실이 맨 처음에 기록돼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 부인 로잘린 여사(1927∼ )도 비교적 국정에 많이 관여한 케이스.정장 차림으로 백악관 동쪽 자신의 사무실에 모습을 자주 드러냈고대통령 최고위 보좌관과 맞먹는 급료를 받는 비서실장을 고용하기도 했다. 반면 조용한 내조형으로 꼽히는 퍼스트레이디는 조지 부시 대통령 부인 바바라 여사(1925∼).은빛 머리카락과 양반풍의 자세는 ‘만인의 할머니’란덕모(德母)의 이미지를 심어줬다.교양 활동을 백악관 생활중의 소일거리로삼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을 최고의 낙으로 여겼다. 알츠하이머병으로 병상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1923∼)도 “나의 인생은 레이건과 결혼하면서 시작됐다”고 전기에 밝힌 현모양처형. 제럴드 포드 대통령 부인 베티 포드는 오른쪽 가슴에 암세포가 발견된 뒤유방절제 수술을 받고 이를 일반에 공개함으로써 자신이 오랫동안 퍼스트 레이디의 귀감으로 삼았던 엘리노어 루스벨트 여사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재현해줬다.현재 마약 재활단체인 베티 포드 센터를 운영중이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부인 패티 닉슨 여사(1912∼1993)는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대통령 취임행사에 미국 사절로 참석하는 등 공식활동을 했으면서도 퍼스트 레이디로서는 전반적으로 조용한 은둔의 생활을 한 편이다. 마미 아이젠하워와 베스 트루먼 여사는 스포트 라이트를 받기를 꺼려 평범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치중했다. 31세 최연소 퍼스트레이디로 백악관 안주인이 됐던 재클린 케네디(1929∼1994)는 사생활을 지극히 중시하는 은둔형이었으나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이후 끊임없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면서 가장 드라마틱한 퍼스트레이디로기억에 남아 있다. 김수정기자
  • 고어, 부통령후보 리버만 지명

    공화당 전당대회 이후 조지 W 부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상승세를 타는 가운데 민주당은 14일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전당대회를 기회로 극적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 6일 CNN과 USA투데이,갤럽이 공동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부시에 17%포인트나뒤져 격차가 벌어진 앨 고어 부통령은 부시와의 지지율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추세를 바꾸지 못하면 11월 대선까지 그대로 밀려버릴 것이란 위기감을느끼고 있다. 그런 민주당에 LA전당대회야말로 현 판세를 바꿀 절호의 기회다. 존 F 케네디가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던 열세를 딛고 공화당의 강적 리처드 닉슨을 물리쳐 민주당 정권을 창출해낸 1960년 LA전당대회 때의 상황이 재연되기를 기대 하는 것이다. 당시 서부지역 LA에서 ‘뉴프론티어’를 캐치프레이스로 내건 케네디는 무려 9명이 경합한 LA전당대회 1차투표에서 차점자인 린든 B 존슨을 두배 이상의 표차로 이겨 대선 후보에 올랐다.이 여세로 그는 11월 선거에서 공화당의8년 아성을 깨고 민주당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특히 1952년 선거 이후 80년 레이건 대통령 때를 제외하고는 노동절(올해는9월4일)을 전후한 여론조사에서 승리한 사람이 대권을 잡았기에 민주당은 8월 중순의 LA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여론을 반전시키고 이를 승세로 굳히겠다는 계산이다. 부통령 러닝메이트 선정을 여론 집중의 기회로 삼는다는 전략인 고어 진영은 워런 크리스토퍼 전 국무장관 등과 고심끝에 7일새벽(현지시간)조셉 리버만 코네티컷주 상원의원을 러닝메이트로 최종결정하고 8일중 그에게 전화,동참을 제의할 방침이다. 에반 바이 인디애너주 상원의원등 4명을 놓고 고심했던 고어진영은 성스캔들을 일으킨 같은 당의 클린턴을 몰아부치던 도덕성과 함께 활발한 자유성향의 의정활동으로 무소속 성향의 표를 가진 리버만을 선정했다. 이와 함께 선거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강력한 지도자’라는 부시의 이미지가 잘못된 것임을 강조하는 한편 ▲클린턴과의 차별성 부각 ▲인간적 이미지 구축 ▲민주당 전통 주제 활용 등 부시와의 대결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전략도 마련했다. 전통적 민주당 표인 여성과 독립성향표까지 잠식당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은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지지율을 부시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패배라는 위기의식 아래 공화당 전당대회 이후 고어에 쏠리는 시선을 최대한활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 美 공화당 전당대회/ 후보지명 수락연설 분석

    [필라델피아(미 펜실베이니아주) 최철호특파원]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조지 W 부시에게 주어진 과제는 앞으로 어떻게 지지도를 더 높이며 이를유지하느냐는 것.3일 부시의 후보지명 수락 연설은 그동안 여러 경로로 흘러나온 차기 공화당 정부의 정책방향을 한자리에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설 내용에 나타난 부시의 정책 방향은 무모하다할 정도로 보수주의자들만을 겨냥해왔다는 그동안의 비평을 의식,보수주의 형식을 빌리면서도 유화된 톤을 사용했다고 분석한다.그동안 공화당의 상징처럼 여겨지던보수주의에서 벗어나 신보수주의 내지는 적극적 보수주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부시가 앞으로 확보된 표를 잃지 않고 지지층을 넓히기 위해서는 공화당을중심으로 단합된 반민주당세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민주 성향의 독립층을 흡수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다. 다시 말하면 부시의 승패 여부는 이같은 신보수주의 붐을 얼마나 만들어내는가에 달렸다는 게 이들의 지적.부시는 일단 이같은 새 모델을 개척하려고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성공했다고 이들은 말한다. 연설 내용 가운데 낙태 반대나 기존 총기법 준수,사회보장제도의 수정 반대등 종래의 공화당 입장은 그대로였지만 그 순위가 가족중심 가치관과 교육내실 확충이란 주제보다 뒤에 쳐져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날 부시의 연설은 8년전 민주당 클린턴 후보의 연설과같은 느낌이라고 지적했다.보수의 톤을 낮추라는 주변의 지적에 따른 것으로전당대회 초점이 ‘강력한 국방’에서 ‘교육,사회보장’쪽으로 바뀔 것이라던 공화당 고위인사의 말이 들어맞았다는 얘기다. 공화당표의 확실한 신뢰를 바탕으로 앞으로 부시는 연설 내용에서 강조됐듯고어에 뒤지는 환경과 여성 문제,그리고 의료제도와 교육,사회보장제도를 중점 공략해 30%에 달하는 개혁 성향의 무소속 유권자를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hay@. *부시 수락연설…과거 실패사례 철저연구.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지명 수락연설은 지난 60년이후 40년간 행해진 역대 대통령 후보들의 수락연설에대한 집중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특히 대선에서 감표요인이 된 실패한 연설들을 집중적으로 연구,타산지석으로 삼았다.이중에는 부시 후보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전대통령도 포함돼있다. 3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부시 진영은 지난 5월부터 잡지사 기자 출신의 마이클 거슨이 중심이 돼 수락연설문 작성에 착수했다.수차례의 참모회의를 거쳐 16차례 이상 수정돼 지난주에야 최종 원고가 나왔다. 부시 측근들은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60년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모든 후보들의 수락연설을 연구했다. 부시 전대통령은 88년 첫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에서 “내 입술을 읽어라.세금인상은 없다”고 단언,집권에 성공했다.하지만 부시는 집권중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4년 뒤 이 말 한마디가 민주당의 빌 클린턴에서 백악관을내주는데 ‘기여’했다. 세금인상 관련 언급은 되도록 삼가라는 정치판의 불문율을 어겨 실패한 사례는 또 있다.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재선을 막으려고 나섰던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 후보는순진하게도 수락연설에서 세금인상을 언급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가장 큰 교훈은 64년 샌프란시스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행해진 배리 골드워터 후보의 수락연설. 그는 “자유수호에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며 정의추구에서 온건주의는 미덕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자”고 주장했고 이 연설은 공화당내 온건파는 물론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김균미기자 kmkim@
  • 클린턴 11월 베트남 방문

    [뉴욕 연합]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순 대통령선거가 끝난후 역사적인 베트남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고 미국의 보스턴 글로브가 20일보도했다.이 신문은 클린턴 대통령이 선거가 끝난 후 1주일내 베트남을 방문할 것이라는 사실을 백악관의 한 관리가 최근 확인했다고 밝혔다. 클린턴의 베트남 방문은 69년 리처드 닉슨 전대통령이 당시 월남의 수도 사이공을 방문한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다. 백악관은 클린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계획에 대해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있으나 양측간 사전조율 작업이 어느정도 진행돼 왔으며 대통령전용기인 공군 1호기 승무원에 대한 비자도 발급됐다고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백악관 관리들은 클린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이 지난 25년 넘게 적대적 관계였던 양국이 서로 화해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 한편 지난 13일 체결된 양국 무역협정을 바탕으로 관계정상화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2000 美 대선](2)부통령 후보

    * 대선후보 약점 보완… 표 흡입력 초점.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대선후보로 일찌감치 결정된 민주·공화 양당 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는 현재 부통령 후보감 선정에온 신경을 쏟고 있다. 고어 진영은 상대당인 공화당이 오는 7월31일 전당대회를 개최하기 이전까지 부통령 후보를 선정,‘민주당 바람’을 먼저 일으킨다는 방침하에 엄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부시 진영 역시 딕 체니 전 국방장관이 나선 부통령선정위원회가 이미 한달가량 인선작업을 벌여 현재 20여명으로 압축,본인들과 접촉중이다. 미 대선에서의 부통령직은 행정체계에서의 의미와는 좀 다른 것을 함축하고있다. 정부조직상 부통령은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의미와 가부동수 때를 제외하고는 투표권이 없는 상원의장을 겸직,의회와의 관계를 원활히 하는데 뜻이있다. 또 63년 케네디 대통령 저격이후 대권을 이은 린든 존슨이나,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후임 제럴드 포드처럼 대통령 유고시권한대행이란 중요성을 갖기도 한다. 이미 초대 워싱턴 대통령 당시 부통령을 맡았던 존 애덤스는 “나는 부통령이다.즉 무(無)인 셈이다.그러나 나는 또한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부통령직을 잘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러나 대선에서의 부통령직은 대통령 후보 이미지를 보완하고,표 흡인력이 높아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가란 측면에 더초점이 주어진다. 정치축제 성격이 더욱 강해진 대선전에서 축제무드에 신명을 더할 수 있는인사로서 고려되는 측면이 강한 것이다. 때문에 부통령이 될 인물은 대선 후보의 모든 것을 고려,보완관계를 이뤄야 한다.러닝 메이트란 개념이 여기서잘 드러난다. “부통령은 정치경력이나 성향,지역적 안배,혹은 성별 안배 등도 중요하지만 이외에 대통령 후보의 키,몸무게,생김새 등 모든 면에서 보완관계를 갖춰야 한다”고 미 기업연구소 노만 온스타인은 말한다. 동부 정치가문출신의 케네디가 남부 선벨트지역 신흥세력인 존슨을 택한 것이나 카우보이를 흉내내던 레이건이 전형적인 양키풍 정치가인 부시를 러닝메이트로 선정한 것은 좋은 예이다. 그런 보완관계를 포함한인물집단으로는상원의원이란 인력 풀(Pool)이 있다. 워싱턴의 정치는 물론 선거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지역적인안배를 고려할 수 있는 엘리트 집단인 상원의원은 이 때문에 종종 부통령 후보직군으로 봉사(?)해왔다. 2차대전 이후 모두 13차례 대선을 치르면서 민주당은 모두 11차례,공화당은 6차례나 러닝메이트를 상원에서 선정했다.이 결과 상원의원 정수 100명 가운데 20%는 언제나 러닝메이트 대상에 올랐던 사람들이며 항상 잠재적인 후보들이다. 고어와 부시 두 후보가 러닝메이트 선정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예비선거가 시들해지면서 잃은 대선열기를 다시 고조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러닝메이트를 잘못 선정해 표를 잃은 경우도 있다. 92년 선거에서조지 부시 후보가 바로 그 케이스.당시 부시는 더 많은 표를 가졌던,칙칙하게 생긴 존 덴포스 상원의원 보다 대중적인 용모를 가졌던 댄 퀘일을 선정,전당대회 분위기는 띄웠지만 중부지역 보수표를 대거 잃은 뒤 클린턴에 패배했던 것이다. hay@. *美 부통령 어디서 많이나왔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뉴욕주가 미국내에서 가장 많은 모두 8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으로 소개됐지만 부통령 역시 가장 많이 배출했다. 제3대 토머스 제퍼슨과 제4대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의 부통령을 잇달아 지낸 조지 클린턴을 비롯,제5대 제임스 먼로 대통령 시절의 데니얼 톰킨스등 부통령 8명이 뉴욕주에서 출생했다. 뉴욕주가 이처럼 미국에서 가장 정치위상이 높은 주로 간주되는 반면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 DC에서는 현직 부통령 앨 고어 단 한명만이 출생,이곳은정치인이 태어나는 곳이 아니라 지역대표가 모인 곳이라는 면모를 드러낸다. 미 역사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부통령이 된 사람은 존 브레킨리지. 제15대제임스 부캐넌 대통령시절 부통령이 된 그는 36세였으며, 아직 그의 최연소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최고령으로 부통령이 된 사람은 제33대 대통령때의앨빈 버클리로 그의 나이는 당시로선 기념비적인 71세였다. 공교롭게도 가장 젊은 부통령과 가장 나이많은 부통령 두 사람은 모두 켄터키주 출신으로 동향이었다. *러닝메이트 누가 될까.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85년부터 상원의원이었던 앨 고어 진영은 정치면에서 이미 뿌리를 내린 덕분에 지역적 안배를 우선차원으로 고려해 부통령 후보를 고르고 있다. 선정책임자는 80년부터 인연을 맺어온 외교안보통으로 당선시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이 확실시되는 의회보좌관 출신 레온 포이스와 딕 더빈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클린턴으로 인한 도덕적 상처가 컸던 고어 진영은 이 점에 염두를 두고 깨끗한 정치엘리트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초점권에 든 인물로는 플로리다주 정치명문가 출신의 3선 상원의원으로 고어의 플로리다 선거유세를 안내했던 봅 그레엄(64)이 유력하다는 분석. 또 젊고 패기있어 예전의 고어라는 별명의 인디애너주 에반 바이 상원의원(44)과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 낸시 펠로시,그리고 에너지 장관으로 고어와 절친한 빌 리처드슨도 물망에 올라있다. 다이앤 파인시타인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이 여성으로서 고려됐었으나 그녀의 남편이 중국과 사업을 해 중국측의 선거자금이 문제가 된고어가 피했다는 후문. 워싱턴 기반이 약한 부시는 좀더 상원의원쪽에서 후보를 골라야 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딕 체니 전 국방장관이 중심이 된 러닝메이트 선정책임자들은 최근 들어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한때 러닝메이트로 고려했었던 미주리주 출신존 덴포스 전 상원의원(63)을 거론하며 여론향배를 점검한다. 부시보다 10살이 더 많은 성공회 신부인 덴포스는 침착한 보수주의자로서정통 중서부 미국인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한때 흑인이면서 성실한 두뇌파인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이 강력히 떠올랐지만 본인이 사양,차기 국무장관으로 낙점됐다. 펜실베이니아주 톰 리지와위스콘신주 토미 톰슨,그리고 미시건주 존 앵글러 등 주지사군과 존 케이식하원의원,조지 보이노비치 오하이오주,척 헤글 네브라스카주 상원의원 등도거론된다.
  • 아사드 별세 이후의 중동 전망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사망은 중동평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전문가들은 일단 단기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고 보고 있다. 30여년간 이스라엘이 익숙하게 상대해온 중동 맹주가 급작스레 사라짐에 따라 평화협상의 장래에는 불확실성이 가중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사드 대통령은 누구보다 노련한 이스라엘 통으로 평화협상 타결에 강렬한의지를 불태워온 인물. 그는 평화의제를 둘러싼 이스라엘과의 담판에서 번번이 강경론과 유화책을 적절히 구사하는 탁월한 협상력을 보여줘 레바논은 물론,전체 아랍권으로부터 존경받아왔다.그의 사망은 이같은 강력한 리더십의진공상태를 의미한다. 누가 집권하든 대 이스라엘 협상에서 아사드만한 정치력을 보여주기는 당분간 불가능할 전망이다.때문에 상당기간 중동평화협상은 답보상태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아사드는 최근 골란고원 문제와 관련,이의 전면반환을 요구하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그의 후계자가 갑작스레 대 이스라엘 유화론으로 선회하기란 어려울수밖에 없다.아사드가 후계자로 찍은 아들 바샤르는 시리아 정가에서의 취약한 영향력을 군부와 국민지지로 메워나가야 하는 상황이므로 이스라엘에 대해 상당기간 비타협적인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 이와 관련,미국의 중동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중동평화협상 재개일정의 차질을 우려하고 나섰다.탤코트 실리 전 시리아주재 미국 대사는 “아사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내부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지도자였기 때문에 그의 사망은 심각한 타격”이라고 말했다.리처드 머피 전국무부 근동담당 차관보도 권력공백 등으로 인해 시리아가 상당기간 혼란에빠져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아사드의 사망이 평화협상의 기조를 뒤흔들 수는 없을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요르단 후세인 국왕의 사망을 기점으로 몰아닥친 세대교체 바람을 평화협상에 플러스 요인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상대적으로 이스라엘과의 분쟁 역사에서 자유롭고 서구친화적인 인물들로 중동의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대이스라엘 접근도 보다 유연성을 띌수 있으리라고보이기 때문이다.이스라엘 측에서는 아사드 대통령의 사망 이후 양국간 평화협상이 수개월 연기되더라도 시리아에 새로운 지도체제가 확립되면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손정숙기자 jssohn@. * 아사드 대통령 재임 주요 연표. ◆70년 11.13 국방장관이던 아사드,쿠데타로 집권. ◆71년 3.12 아사드 대통령 취임. ◆73년 10.6 67년 이스라엘에 빼앗긴 영토 회복 위해 시리아가 시나이 반도 및 골란고원 기습공격.11월 11일 휴전. ◆74년 6.15 리처드 닉슨 미국대통령 시리아 방문.67년 단절된 양국 외교관계 회복 선언. ◆76년 4.12 레바논 사태 개입. ◆77년 12.5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이스라엘 방문으로 시리아-이집트 외교관계 단절.양국관계 12년 후 회복. ◆80년 10.10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시리아의 이란 지지로 시리아-이라크국교단절.82년 4월 이라크 국경 폐쇄. ◆81년 12.14 이스라엘,점령지 골란고원 점령. ◆83년 6.24 시리아,아사드와 불화빚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추방. ◆2000년 5.24 이스라엘,남부레바논서 철수. *아사드 별세 이모저모. [예루살렘·카이로·워싱턴·베이징 외신종합] 레바논과 요르단,이란 등 아랍국가들은 10일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일제히 애도성명을 내는 등 대대적으로 애도했다.또 미국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아사드 대통령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그의 중동평화 노력을 치하했다. ◆에밀레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은 애도 전문을 통해 아사드 대통령이 자신과 전화통화를 하던 도중 사망했다면서 “그의 죽음은 레바논에 ‘엄청난 재난’”이라고 애도.레바논은 이날 1주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의 TV와 라디오방송들도 이날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아사드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일제히 긴급 뉴스로 보도.에후드 바라크 총리는 성명에서 “시리아 국민들의 슬픔을 이해한다”면서 “우리는 시리아와 평화협정을 이룩하기 위해 애써왔으며 새 지도부가 누구든 같은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라고강조. ◆외국 국가원수로는 마지막으로 지난 21일 아사드 대통령을 면담한 압둘라요르단 국왕 역시 아사드 대통령의 후계자인 바샤르 아사드에게 전화를 걸어위로의 뜻을 전하고 40일간의 애도기간을 선포.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아사드 대통령이 중동의 평화를 보지 못하고 숨졌지만 중동평화를 위한 그의 노력과 낙관적 전망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것”이라며 애도.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와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도 이날 아사드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모리 총리는 “시리아 국민들이 슬픔을 극복하고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시리아 발전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를 희망한다”고 애도. 장주석은 “그의 죽음은 시리아의 큰 손실이며 중국으로서도 존경할만한 친구를 잃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 ◆한편 미국의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사설에서 아사드 대통령을 전혀덕(德)을 갖추지 못한 무자비한 전제군주였다고 힐난해 눈길.이 신문은 “아사드 대통령은 비타협주의적 태도로 이스라엘을 적대했으며 테러리즘을 지원하는 등 대개는 부정적인 면모를 보였다”고 혹평.
  • 사이먼 전 美재무장관 사망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제럴드 포드 행정부 2대에 걸쳐 재무장관을 역임했으며 70년대 발생한 석유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윌리엄 사이먼이 3일 사망했다고 NBC 방송이 보도했다.향년 72세.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 거주하고 있던 사이먼의 사망원인은 폐 섬유증에 따른 합병증인 것으로 알려졌다. 73년 2월 당시 닉슨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부장관으로 임명된 사이먼은 곧바로 대통령 직속 석유정책위원회 위원장을 겸임,당시 석유위기를 수습하는데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에너지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74년 4월 조지 슐츠 장관의 후임으로 재무장관에 오른 뒤 같은해 출범한 포드행정부에서도 재무장관으로 재직한 사이먼은 77년 1월 포드 행정부의 퇴진과 함께 공직사회를 떠나 민간업체의 자문역으로 활동했으며 투자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올림픽위원회(USOC)의 위원으로 30여년간 활동했으며 USOC위원장으로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91년에는 올림픽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뉴욕 AP 연합
  • [2000 美 大選](1)대통령의 권한

    대통령 후보를 확정짓는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대회가 두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지난 3월 ‘슈퍼 화요일’ 이후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민주,공화 양당후보로 일찌감치 결정되면서 선거열기가 다소 시들해진 게 사실이다.하지만 양당이 사실상의 본선 레이스에 돌입하며 전방위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다.미대통령선거의 여러 특징과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43번째 미국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전이 치열하게전개되고 있다.미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권한을 가지며, 왜 이를 위해 온 나라가 여기에 매달리며 선두다툼을 벌이는 것인가. 4로 나눠 떨어지는 해의 11월 첫일요일 다음 화요일에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다음해 1월 20일 취임하는 미 대통령은 호칭에서 대통령(President)외에최고책임자(Chief Executive Officer)로 불린다.입법,사법,행정의 3권분립체제위에 성립된 미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란 뜻이다. 1700년대 말 32세의 알렉산더 해밀튼과 36세의 제임스 매디슨이 작성한 연방주의 논문에 의해 기초가 다져진 미합중국 대통령직은 말도 많던 13개주분권체제에서 시작한 탓에 강력한 대통령직을 만들어냈다. 취임선서 이후 정오부터 시작되는 대통령의 권한은 행정권한 외에도 입법상권한을 비롯,사법권한,외교권한 등 방대한 권한을 갖는다. 행정권한은 말그대로 행정부내 규칙,규정,지시 등을 내리고 연방기관에 대해 법으로 구속력을 갖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또한 민병대를 포함한 군최고사령관직을 수행하며,전쟁선포는 물론 비상시국가 경제통제권한과 300여만명의 공무원 가운데 약 3,000명을 임명하는 권한도 갖는다. 1856년 취임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이래 더욱 강화된 외교권한은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2차대전중 연합국지도자 회의 등으로확대됐으며,국가원수가 만나 국가간 정치는 물론 경제,법률조인등 방대한 권한을 포함하는 쪽으로 확대됐다. 사법부 쪽으로는 연방판사의 임명을 비롯해 사면권과 함께 형기단축,벌금인하란 강력한 권한도 갖는다.최근 주목되는 권한은 핵 사용 명령권.국가 종식이란 극단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핵공격명령을 내릴 수 있는 핵가방은 항상 대통령과 함께 동행하며 국가방위의 최초이자 최후의 권한을 담고 있다. 그러나 막강한 미 대통령의 권한은 강력한 만큼 의회의 강력한 견제를 받으며 마찰이 생길 경우 법원으로부터도 제한을 받기도 한다.주정부 공무원이었던 폴라 존스양 성추문 사건과정에서 불거진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를 부인,사법방해와 위증죄가 드러났던 클린턴은 의회로부터 탄핵의 궁지에 몰렸듯,대통령은 연방법 제2조 4항에 의해 상하양원 각각 3분의 2찬성으로 탄핵될 수 있다. 또한 모든 법안은 의회입법으로 처리되게 돼있어 클린턴 행정부와 알력을빚은 의회는 모두 3차례에 걸쳐 예산안 처리를 거부,행정부 폐쇄라는 극단현상을 낳았는데 이 역시 견제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지난 49년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의회가 입안한 법률안을 거부했음에도 의회가 3분의 2찬성으로 다시 입법화시킨것이나,이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체결했음에도 의회가 비준을 거부,국제연맹에 가입할 수 없다고 밝표한 것 등은 견제의 좋은 본보기다. 막강한 미 대통령의 가장 극단적인 견제는 바로 임기이다.초대 워싱턴이 3기 연임 권유를 물리치고 ‘고별사’를 남긴 채 물러난 이후 3기 이상 연임불가가 불문률로 굳어졌었다. 그러나 1933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2차대전 과정에서 45년 사망시까지 4기를 연임했으며,전쟁이후인 51년 의회는 수정헌법 22조로 법조문에 연임불가를 정식 규정했다. hay@. [워싱턴 최철호특파원]미국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은 어디일까. 빌 클린턴 대통령이 아칸소주에서 탄생,아칸소주는 그의 기념관을 건립하는등 분주하지만 뉴욕주는 무려 지금까지 8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8대 마틴 밴버렌,13대 밀라드 필모어,21대 체스터 아더,22대 그로버 클리브랜드,26대 테어도어 루즈벨트,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34대 드와이트 아이젠아워,37대 리처드 닉슨이 모두 뉴욕주 출신.오하이오주도 9대 윌리엄 해리슨을 비롯,19대 러더포드 하이스,20대 제임스 가필드,25대 윌리엄 맥킨리,27대윌리엄 태프트,29대 워렌 하딩 등 6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초대 워싱턴을 낳은 버지니아는 3대 토머스 제퍼슨,4대 제임스 매디슨,5대제임스 먼로,12대 제커리 테일러 등 주로 미 역사 초기 5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이어 메사추세츠주가 2대 존 애덤스와 6대 존 퀸시 애덤스,30대 캘빈쿨리지,35대 존 F.케네디 등 4명을 배출했다. 남부지역에서는 대통령이 잘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테네시 주는 7대 앤드류 잭슨을 비롯,11대 제임스 녹스 포크,17대 앤드류 존슨 등 3명의 대통령이 나왔다.인구가 가장많은 캘리포니아에서는 31대 허버트 후버와 40대 로널드 레이건 등 2명이,그리고 일리노이주 역시 16대 애이브러햄 링컨과 18대율리시스 그랜트,그리고 텍사스 주에서도 36대 린든 존슨과 41대 조지 부시등 2명을 배출했다. 이밖에 앨라배마 노스·사우스캐롤라이나,미주리,뉴멕시코,애리조나,오클라호마,와이오밍,노스·사우스다코타,워싱턴,미시건,캔사스,콜로라도,네바다,미네소타,델라웨어,매릴랜드,메인,웨스트 버지니아 등의 주는 단 한명의 대통령도 배출하지 못했다.
  • 베트남 통일 25주년/ (하)미국의 상처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어느 전쟁이나 그렇겠지만 미국에게 특히 베트남 전쟁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정신적·육체적 상처를 남긴 뼈아픈 전쟁이었다. 호치민의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린든 B.존슨이 군사개입을 시작한 베트남 전쟁은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 동원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에게 잊지못할 상흔만 남겼다. 1955년 미군 고문단이 베트남 땅을 밟은 이래 65년 첫 전투병력이 들어가개전,75년 4월29일 미대사관철수 때까지 1,500억달러를 쏟아부었고 5만8,000명이 희생됐건만 결국 패전의 쓴맛을 봐야 했다. 남북전쟁이 미국의 완전한 통일체 국가형성에 기여하고 세계 1·2차 대전이미국에 부를 가져다 주었다면 베트남전은 정치권력의 부정적 속성과 지방정부의 중앙통제 반발,군산복합체의 상업주의,이에 따른 국내여론 분열과 충돌등 미국의 환부를 여지없이 드러낸 전쟁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미국이 받은 상처 가운데 가장 큰 것은 1,2차대전 승전국으로 미국 제일주의를 과시하던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이후 걸프전 승전때까지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것이라고 역사가 피터 쿠즈니크는 지적했다. 54년 베트남군은 디엔비엔푸 지역 침공으로 프랑스군 3,000명,베트남군 8,000명의 전사자를 내고 제네바조약을 끝으로 식민지배를 종식시켰다.하지만이때 맺은 조약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또 하나의 현실,즉 냉전 대결장으로인도하고 있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자유세계와 소련·중국이 중심이 된 공산주의와의 갈등은한반도의 38선 같은 ‘이념의 국경’ 북위 17도선을 그었고, 한국전에서 끝장을 보지 못한 냉전 강대국들은 베트남에서 재대결을 준비해야 했다. 혁명의 대상인 남쪽으로의 진출을 위해 캄보디아를 통한 루트를 만든 뒤 미군을 공격한 북베트남의 호치민을 단죄한다는 명분에 4명의 미국 대통령은울창한 열대우림 땅속으로 숨은 ‘보이지 않는 적’ 베트콩과 숨바꼭질하며베트남 전쟁이라는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를 주창했던 드와이트 아이젠아워,프론티어 주창으로 미국의 힘을 적극적으로 내세웠던 존 F.케네디,그의피살로 대권을 인수받은 뒤 차기를 노린 린든 B.존슨,종전이란 국민들과의 약속을 어겨가며 확전에 열을 올렸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등 역대 4명의 대통령은 그들의 미국내 업적에도 불구하고 모두 베트남전으로 비난받아야 했다. 미 대통령들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베트남전쟁에 M16 자동소총,신형제트전투기,각종 장갑차량,‘에이전트 오렌지’ 고엽제 등 물량공세로 대응했지만 결과는 전례없는 미군의 인명피해에 불과했다.미국은 베트남전장과 국내반전여론이라는 2중 전선에 시달리면서 전략부재를 드러내야 했다. 존슨은 매일 아침 신문과 TV화면을 통해 죽어나가는 미군 모습이 생생하게전달되는데도 불구하고 승전 홍보를 강조하다 여론에 부딪혀 “차기 대권도전을 포기한다”고 선언해야 했다.닉슨은 비등한 반전 여론 와중에 폭로된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했다. 반전 여론은 70년 오하이오주 켄트대학의 반전론자 학생 4명이 경찰총에 숨진 사건으로 정점에 달했고 미국은 결국 75년 4월 베트남 철수와 함께 씁쓸하게 고향으로 돌아왔다. hay@. *한국에 남긴 교훈. 한국과 베트남은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으로 나라가 두 동강 나 전쟁을 치렀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통일을 이뤘지만 한국은여전히 북한과 대치중이다.통일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이겪고 있는 각종 후유증은 한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베트남은 인구 7,800만명중 전후 세대가 50%를 넘는다.이들은 돈에 대한 생각이나 의식구조가 전쟁을 겪은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달라 세대간 갈등이현안으로 떠오를 정도다.한국의 경우 전후세대가 인구의 80% 가량을 차지한다.올해로 종전 50년을 맞는 한국은 분단의 역사가 긴 만큼 세대간 인식의골도 깊다. 남북간 개발의 불균형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베트남은 뒤늦게 북부개발에 나섰지만 베트남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외국자본 유치도 난관에 부딪쳤다.남에서는 북부를 살리기 위해 남의 희생을 강요하고있다는 불만과 함께 남의 제한된 ‘번영’마저 잃을까 불안해한다. 호치민시(옛 사이공)를 중심으로 남부는 86년 경제개혁 정책을 표방하면서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특히 97년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경기가 악화되면서 이들은 순식간에 극빈층으로 추락했다.범죄와 마약,매춘 등 사회문제가 심각하다.교통망과 상하수도 시설등사회간접자본시설은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남북간 경제격차는 날로 심화돼지난해 상반기 남부의 수출은 22% 증가한 반면,북부는 15% 감소했다. 상호불신과 감정의 앙금도 여전하다.북부인들은 전쟁통에 가족과 재산을 잃은 책임을 남부인에 돌리며 원망섞인 눈초리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최근 중앙정부내 고위직에 남부인의 진출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남부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공직과 공기업에서 득이 되질 못한다. 한국의 경우 통일에 따른 경제적 손실에 대한 우려는 더욱 크다.베트남의교훈을 거울 삼아 남북의 균형개발과 이질감 해소 등 장기적인 민족화합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김균미기자 kmkim@. *베트남 근대사 주요 일지. ◆1859 프랑스군 사이공 점령◆1930 베트남 공산당 결성◆459.2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선언◆45 9. 미·프랑스 연합군 베트남 진주◆54 제네바협정서 17도선 남북 분단◆55 남부에 미국지원 응오 딘디엠 정부 출범◆60 베트콩 월남민족해방전선 수립◆65 2 미국의 북폭개시,베트남전 시작. ◆68 9 호치민 사망◆73 1 파리 휴전협정 조인.3월 미군 마지막 철수◆75 4. 29 미대사관 철수◆75 4.30 월남 패망.통일◆76 7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건설◆86 6차전당대회서 도이머이 경제정책 도입◆92 12.22 한국과 수교◆95 7.12 미국과 수교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3)닉슨 마오쩌둥 회담

    *72년 美·中정상회담. 1972년 2월21일 아침 중국 베이징(北京) 수두(首都)공항.20여년동안 쌓인적대감을 버리고 2만5,000㎞를 날아 중국 대륙의 땅을 처음 밟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조금 어리둥절했다.황금시간대 생중계되는 미 TV를 통해‘세계 평화의 전도사’로 비쳐지던 자신의 이미지를 높여줄 베이징의 환영인파는 고사하고 환영 플래카드 하나 내걸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항에는 저우언라이(周恩來)총리의 환영인사와 의장대의 간단한 의전행사만 있었다.베이징 디아오위타이(釣魚臺) 영빈관을 향해 차량행렬이 지나갈때도 톈안먼(天安門) 광장과 베이징거리는 텅비어 있었다. 이날 오후 닉슨은 중난하이(中南海)로 마오쩌둥(毛澤東)을 만나러 갔다.약간 초췌한 모습의마오는 닉슨을 반갑게 맞았다.“반동집단이 미국과의 공식 접촉을 강력히 반대했다”며 환영에 신중했던 점을 설명한 마오는 “미 대선기간 내내 당신이 투표에서 이기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고 덕담을 건넸다.닉슨은 삭막한 첫 소감을 뒤로 한 채 “한 국가를 움직였고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마오를 추켜세웠다. 미·중 정상 첫 회담은 이처럼 의례적인 만남에 불과했지만,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한 이후 처음으로 ‘죽의 장막’을 걷어젖히고 국제무대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닉슨이 만리장성 등을 둘러보는 동안 미·중 협상자들은 긴 시간의 비밀회의를 통해 타이완의 지위 등 중요한 외교적 사안을다듬었다.그 결과 2월 28일 미·중은 ‘상하이(上海)공동선언’을 통해 ▲영토와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 등 평화 5원칙을 천명한 뒤,관계 정상화 합의의 상징으로 팬더 한쌍과 사향소를 교환했다. 40년대 후반부터 국공내전 및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적대국이 된 미·중관계가 해빙되기 시작한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날로 커가는 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공통의 이익분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특히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는 돌파구를 찾으려했다.중국은 50년대말 이념갈등과 69년 헤이룽장(黑龍江)성 전바오다오(珍寶島)의 중·소 무력충돌 사건 등으로 대(對)소련관계가 악화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소련견제 카드로 활용하고자 했다. 두나라는 이전부터 관계정상화로 가는 수순을 차근차근 밟았다.71년 4월10일 베이징 공항에 도쿄발 루프트한자 비행기에서 낯선 미국인 15명이 내린게 첫 사례로 꼽히고 있다.이들은 중국을 공식 방문한 최초의 미국인들로 미·중관계를 복원 물꼬를 튼 ‘핑퐁외교’의 주역들이다.3월말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중이던 중국 대표팀이 미국 대표팀에 초청할 뜻을 전달하자,두차례 비밀 접촉끝에 전격 이뤄졌다.이후 미국은 20년넘게 지속돼온 대중국 무역금지 조치를 해제,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면서 본격 대화에 나섰다.헨리 키신저 미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저우 총리와 만났고 그해 7월 15일 닉슨이 72년 5월 이전에 중국을방문한다고 발표했다.이어 10월 중국은 유엔총회에서 회원국들의 압도적인지지를 받아 유엔 가입을 실현,타이완(臺灣)은 국제정치 무대에서 축출됐다. 김규환기자 khkim@. *막후협상 두 주역/ 키신저 당시 美안보담당 보좌관. 헨리 키신저 당시 미 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77)은 데탕트(긴장완화)의 흐름을 주도하며 당대를 풍미한 국제외교가의 스타중 스타.안보담당 보좌관·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국무장관 등 미 행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1923년 독일 퓌르트에서 태어난 그는 38년 미국으로 이주,뉴욕 시립대학 회계학과를 졸업했다.54년 하버드대학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로 활약하며 미국 방위연구계획을 입안한 주역이다. 아이젠하워·케네디·존슨 행정부를 거치며 안보문제 고문으로 활약한 키신저는 57년 ‘핵무기와 외교정책’을 출판,미국 전략정책의 최고 권위자로 떠올랐다. 68년 닉슨 대통령에 의해 안보담당 보좌관에 임명된 그는 중국·소련·베트남·중동 등지에서 데탕트 흐름을 추진,외교적 성공을 거두고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성사시켜 닉슨 행정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부상했다.71년4월 핑퐁외교 이후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미·중관계 정상화를 이끌어내는막후 주역으로 활약했다.77년 국무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국제고문·작가·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다. *周恩來 당시 中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1898∼1976) 당시 중국 총리는 외교부장을 겸임하며 20세기 중국의 가장 위대한 협상가로 꼽힌다.세부사항을 파악하는 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그는 실용적이고 친화력과 설득력이 있는 화술로 협상 당사자를 사로잡았다. 장쑤(江蘇)성 화이안(淮安)에서 출생한 저우는 근로 장학생으로 프랑스에유학하는 동안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평생을 공산주의자로 보내겠다고 결심했다. 27년4월 중국 공산당 정치국위원으로 선출된 그는 장정(34년10월∼35년10월)기간동안 당기구 통제권을 장악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지도력을 보좌했다. 장정으로 공산당 근거지를 확보한 이후 국공내전 등의 협상테이블에서 우아하고 섬세한 화술로 협상에 임함으로써 탁월한 외교 협상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저우는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이후
  • [2000 美 대통령 선거] 브래들리·매케인 ‘아름다운 퇴장’

    “싸움에서 2등은 없다.” 미 대선전에 나섰던 민주당의 빌 브래들리 전 뉴저지주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존 매케인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이 7일의 ‘슈퍼 화요일’ 결과에 깨끗이승복할 것으로 보인다.-‘아름다운 퇴장’이 예상된다. 양당 대선후보 지명전을 앞둔 경선의 최대 분수령이었던 ‘슈퍼 화요일’예비선거과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패배한 이들은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에 퍼붓던 인신공격을 중단하고 승자를 축하하는 한편 사퇴를 곧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패배는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이 먼저 인정했다.그는 7일 밤 패배가 확실해지자 뉴욕에서 고어에게 직접 축하전화를 걸었다.그는 뉴저지주 고향으로돌아가서 ‘상황’을 판단하겠다고 고어에게 전했다.많은 지지자들에게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고어의 승리를 주지시키고 그간의 지지에 고마움을 표시했다.그는 민주당의 16개 지역 예비선거 및 코커스에서 전패(全敗)했다. 브래들리 선거운동 본부 관계자는 9일(현지시각) 경선 후보 사퇴와 함께 고어 지지를 선언할 것이라고 밝혔다.향후 진로와 관련,고어의 러닝 메이트(부통령후보)가 될 것이라는 게 유력하다. 매케인도 패배를 인정하고 있다.그는 7일 밤 웨스트 할리우드 선거본부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면서 부시의 승리를 축하했다.앞으로 며칠간패배요인을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덧붙였을 뿐 부시에 대한 비난은 한마디도내뱉지 않았다. 매케인은 선거운동은 계속될 것이라는 말로 지지자들을 안심시켰지만 9일중 경선에서 사퇴할 것이라고 CNN과 AP가 매케인 선거운동본부 관계자의 말을인용,보도했다. 승자인 고어나 부시도 큰 그릇임을 입증해보였다.고어는 “브래들리를 존경한다”는 말로,부시는 “매케인의 신념을 존중한다”는 말로 그들을 위로했다.당내 화합강화의 지름길을 안다는 뜻이다. 패배에도 불구하고 브래들리나 매케인도 얻은 것은 많다.최대 수확이라면정치적 입지강화다.당내 비주류였던 브래들리나 매케인은 ‘정치개혁’과 ‘선거자금법 개혁’을 들고나와 주류정치판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패배에도 불구하고 정치생명 유지기반은 확고히 닦은 셈이다. 박희준기자 pnb@. *퍼스트 레이디 후보 티퍼 고어-로라 부시. 2000년 미국 대선이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조지 W.부시 텍사스 주지사로 압축되면서 퍼스트 레이디 후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티퍼 고어와 로라 부시 모두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정치 명문가의 며느리가됐다는 것과 정치 지향적이기보다 ‘전통적인 안주인’임을 자처한다는 것이공통점이다. ◆티퍼 고어. 앨 고어 부통령 부인인 티퍼 고어(52)는 고어 부통령의 선거유세에 없어서는안될 인물. 몇년전만해도 대중앞에 나서길 꺼려했던 그녀는 어느새 고어 선거진영의 ‘치어 리더’로 변신,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사교적이고장난을 좋아하는 그녀는 딱딱하고 모범생 인상을 주는 남편의 이미지를 보완하고도 남는다. 보일러와 배관 제품 납품업을 하던 아버지와 우울증 병력을 갖고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가 4살때 이혼한 뒤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외할머니집에서 성장했다.앨 고어와는 한살 차이로 남편의 고등학교 졸업파티에서 처음 만나 1970년 결혼했다.보스턴 대학과 테네시주에 있는 조지피바디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앨 고어와 함께 잠시 테네시안지의 사진기자로 일했다. 그녀의 주요 관심사는 가족과 집없는 부랑자 및 정신이상자들의 복지다.클린턴 대통령의 정신건강정책 자문위원인 그녀는 89년 아들이 교통사고가 죽음직전에 이르렀을 때 심한 우울증에 빠져 약물치료를 받은 사실을 지난해 공개,충격을 던졌다. 1남3녀을 둔 그녀는 작년에 외할머니가 됐다. ◆로라 부시. 초등학교 사서 출신인 로라 부시(53)는 지난해 남편이 대선출마 의사를 밝히자 공개적으로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을 만큼 정치와는 담을 쌓았던인물이다. 남편 내조와 쌍둥이 두딸 양육에 전념해온 ‘전통적인 주부’로 언론과의접촉을 극히 꺼려왔던 그녀가 하루에도 수천명과 악수를 나누고 대중연설을거뜬히 해내는 대통령 후보 부인으로 바뀌었다.그녀는 하루에 최고 32개 매체와 인터뷰를 할 만큼 왕성한 유세활동을 펴고 있다.텍사스 출신으로 31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남편 조지 부시를 바베큐 파티에서 만나 석달만에결혼을 했다.신혼여행은 하원의원 선거유세를 하면서 보냈다.부시 스스로 로라에게 청혼을 한 것이 자기 인생에게 가장 잘 한 결정이라고 인정할 정도로로라는 정치인 부시에게 가장 큰 자산이다. 초등학교 교사답게 어린이와 문맹퇴치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유세중에학교를 즐겨 찾는 그녀는 항상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동화책을 갖고 가 아이들에게 읽어주곤 한다.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남편 조지를 진정시키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균미기자 kmkim@. *고어·부시 일문일답.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사실상 앨고어 부통령과 조지 W.부시 텍사스 주지사로 결정되면서 두 후보의 인간됨에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이 소개한 두후보와의 일문일답은 이들의 사람됨과 생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정치적 사고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고어:부친(앨 고어 1세전상원의원). 부시:부친(조지 부시 전대통령)과 레이건 전대통령,그리고 윈스턴 처칠,애이브러햄 링컨 등 많은 사람. ■가장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은. 고어:리처드 닉슨 전대통령. 부시:빌 클린턴 대통령. ■미 정치의 가장 큰 업적은. 고어:민권,의료제도,사회보장제도,그리고 지금의 경제호황. 부시:냉전 승리. ■반면 미국의 실책은. 고어:베트남전쟁. 부시:의존하는 문화의 발생. ■미 경제호황의 큰 저해요인은. 고어:핵확산과 인종갈등,기후변화. 부시:부적절한 미국아동 교육. ■가장 존경하는 외국지도자 2명과 그 이유는. 고어:윈스턴 처칠 전영국수상과 넬슨 만델라 전남아공화국 대통령.처칠은 세계를 구했고 만델라는 1만일 투옥 뒤에도 구속자를 용서했다. 부시:에르네스토 곤잘레스 멕시코 대통령과 에두아르드 세바르드나제 옛 소련 외무장관.곤잘레스는 멕시코의 정치와 자유의 신장에 기여했고,세바르드나제는 그루지아 독립의 주역이다.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은. 고어:퓨처라마.(공상과학 드라마)부시:TV 볼 시간이 없었다. ■여가 시간엔 무엇을 하는가. 고어:하이킹과 그림을 그린다. 부시:낚시와 조깅을 즐긴다. ■정치가가 아니었다면. 고어:작가로 글을 썼을 것이다. 부시:구단 운영을 좋아했기에 구단주가 됐을 것이다.
  • 美·中 외교재개 상징, 판다곰 ‘씽씽’ 안락사

    지난 72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기념,마오쩌둥(毛澤東)주석이 미국에 선물한 판다곰‘씽씽’이 28일 워싱턴 국립동물원에서 숨을거뒀다. ‘향년'28세.세계 최장수 판다로 천수를 누린 셈이다.씽씽은 암컷인 링링과함께 지난 72년 4월 미국에 도착한 뒤 ‘판다외교'란 단어를 탄생시키며 미·중 외교 재개의 상징이돼왔다.29일 뉴욕타임스등 미언론들은 씽씽의 특집을게재하는 등 조문분위기에 한창이다. 지난 92년 짝인 링링이 심장질환으로 급사한 뒤 외롭게 살아온 씽씽은 그동안 고령에 따른 신장질환과 류머티즘 등으로 고생했으며 2년전에는 암에서회복되기도 했다.국립동물원측은 지난 주 씽씽의 병세가 급속히 악화돼 괴로워하자 안락사시키기로 결정,약물을 주사했다고 밝혔다. “씽씽이 사망한 것을 알려드리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게시문이 붙은 씽씽의 텅빈 우리 앞에는 조화와 카드가 가득히 쌓이고 있다.주미 중국 대사관은 “판다의 소생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국립동물원측에 사의를 표명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링링과 씽씽은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후사를 잇지 못했다.83년과 89년사이 새끼 5마리를 낳았으나 생후 5일안에 모두 잃고 말았다.국립동물원측은 현재 보관중인 링링과함께 씽씽의 가죽과 뼈를 박제로 만들어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할 계획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美서 ‘세기의 편지들’ 출간

    지난 100년간 미국의 저명인사나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쓴편지가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워싱턴 포스트는 21일 리사 그룬왈드와 스티븐 J.애들러가 함께 펴낸 총 676쪽의 이 서간집 ‘세기의 편지들’의 주요내용을 소개했다. ■1971년 2월9일(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백악관 비서실장인 H.R.홀더만이 부하직원 알렉산더 버터필드에게 보낸 메모)= 대통령은 공식만찬 때마다 헨리키신저(당시 국가안보보좌관)가 글래머 여성옆에만 앉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습니다.키신저는 지적인 상대를 옆에 앉혀야됩니다. ■1964년 8월25일(린든 B.존슨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출마를 머뭇거리자 부인 버드 여사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 당신은 트루먼이나 루스벨트,링컨 못지 않게 용기를 지닌 남자예요.당신은 내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인내심과 결단력을 보여왔어요.지금 당신이 물러난다면 조국에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예요. ■1969년 12월3일(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아칸소대학 재학중 ROTC에 지원했다가 학군단장에게 ROTC지원을 취소하고징병 대상자로 다시 분류해 달라고부탁하는 편지.징병 대상자로 분류되면 징집면제가 된다는 사실을 안 뒤였다)= 홈즈 대령님,ROTC지원과 함께 대령님이 징집 연기서를 징집위원회에 보낸후 고통과 함께 자존심과 자신감의 상실이 엄습해 왔습니다.몇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채 지쳐 떨어져 잠들 때까지 책을 읽었습니다.저는 군에가고 싶습니다. ■1939년 8월2일(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가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에게 핵무기의 위험성에 관해 경고한 편지)= 핵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실험이 성공함으로써 매우 강력한 핵폭탄이 개발될 것이라는 점을 상상할 수있습니다.이런 폭탄 한개만으로도 항구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습니다.(중략)행정부와 물리학자들간에 상시 접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창구를 마련하는것이 바람직합니다. ■1972년 11월3일(워싱턴 포스트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가 워터게이트스캔들 보도로 백악관의 압력이 가중되자 닉슨 대통령의 보좌관인 존 얼리크먼에게 보낸 편지)=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에 관한 음해중에서돌의원의 주장은 나의 심기를 가장 불편하게 했습니다.포스트의 시각이 내가 대통령을 ‘미워한다'는 사실에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사설과 보도가 발행인의 사적인 감정과 성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음해도 있습니다.포스트 기사는 내 개인적인 감정을 반영한 것이 아닙니다. ■1964년 11월20일(윌리엄 설리번 FBI 국장보가 익명으로 써서 마틴 루터 킹목사 부부앞으로 보낸 편지. 다른 여성과 정사중인 킹목사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가 함께 전달됐다)= 킹,당신의 천한 신분을 생각해 미스터나 목사,박사 따위의 호칭은 붙이지 않겠소.당신 스스로 자신이 사기꾼에다 우리 흑인 모두에게 큰 짐이 되고 있음을 알 것이오.다른 모든 사기꾼들과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종말이 다가오고 있소이다. 이경옥기자 ok@
  • “69년 달탐험 무모”…승무원 우주미아 될뻔

    [브뤼셀 연합]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아폴로 11호 승무원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은 영원한 우주의 미아가 될뻔했다. 이들은 달착륙선이 이륙하는 데 실패할 경우 지구와의 교신마저 끊긴 채 죽어가도록 짜여진 계획에 따라 모험을 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영국의 BBC방송이 10일 보도했다. BBC 방송은 미국립 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자료를 통해 당시 미국립우주항공국(NASA)은 달착륙선이 달표면에서 재이륙할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한 모험을 감행했으며 우주인들은 사전에 이를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NASA와 미국 정부가 마련한 긴급상황 대처 계획은 달착륙선이 이륙에 실패할 경우 지구와의 통신을 차단하고 우주인들을 그대로 방치해 숨이 끊어지거나 자살토록하고 있다.물론 구조 계획은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평화롭게 달 탐사에 나선 우주인들이 달에서평화롭게 영면토록 운명이 정해졌다.용감한 우주인들은 구조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희생에 인류의 희망이 있다는 점을알고 있다”는 내용의 애도 연설문을 전세계 시청자들 앞에서 읽어내려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1969년 7월 20일 달 표면 고요의 바다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은 22시간 동안 머문 뒤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지구로 귀환했고 이후 닉슨의 우울한 연설문은 30년동안 비밀에 봉해졌다. 또 닉슨은 우울한 연설문을 읽는 대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우주인들을 축하해 줄 수 있었다.
  • 美 특별검사제 존폐론 첨예 대립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클린턴 탄핵재판 이후 특별검사제 폐지주장이 거세게 이는 가운데 미상원은 24일 특별검사제의 존속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청문회를 시작했다. 특별검사제는 지난 73년 리처드 닉슨 전대통령 행정부의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을 계기로 법제화됐으며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에 주안점을 두고있다. 5년간 한시법인 미국의 특별검사법은 지난 94년 재발효돼 오는 6월 30일 시한이 만료된다.그 이전에 재연장여부를 결정해야하지만 현재 존속여부를 놓고 공화,민주당간 의견이 팽팽히 맞서있어 큰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성추문 조사와 대통령 탄핵재판 이후 특별검사제도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스타검사는 무려 4,000만달러의 예산을 들이면서 클린턴에 대한 수사를 벌였으나 얻은 것은 미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회의뿐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가장 큰 맹점은 한번 특별검사를 임명한 뒤에는 특별검사의 행동이 적절한지,혹은 수사에 대한 비용이 적절한지에 대해 전혀 견제할 방도가 없다는 점으로 지적돼고 있다. 최근 리노법무장관이 클린턴 대선자금과 관련,특별검사를 임명하라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한 것 역시 특별검사제의 실효성을 의심케한 요인이 됐다. 정치권력자들의 마음에 따라 특별검사가 임명되며,한번 임명되면 견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고위공직자 부패척결의 화신으로 주목받던 특별검사제가 이제 서서히 본고장이자 주무대인 미국에서 그 인기의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 현직 대통령 3명 ‘불명예’/美 의회 탄핵사

    ◎존슨,상원서 1표차 부결/닉슨,하원 표결직전 사임 【워싱턴 연합】 미 역사상 의회는 3명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를 진행했다. 17대 앤드루 존슨(1865∼1869년),37대 리처드 닉슨(1969∼1974)에 이어 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1993∼현재) 등 3명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의회의 탄핵소추를 당해 대통령직에서 해임된 현직 대통령은 한 사람도 없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로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루 존슨은 의회의 다수파였던 공화당의 강경파와 대통령의 거부권과 공직 임면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됐으나 상원에서 1표차로 부결돼 위기를 넘겼다. 지난 74년 워터게이트 불법도청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닉슨 대통령은 하원 법사위원회가 탄핵안을 의결한 뒤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표결되기 직전중도 사임했다.
  • 美 하원 클린턴 탄핵안 17일 표결/共和,견책안 상정 봉쇄하기로

    ◎헌정 사상 3번째… 클린턴은 “사임할 뜻 없다” 밝혀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예루살렘 외신 종합】 중동을 방문중인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13일 하원 법사위가 위증 및 사법방해,권력남용 등의 혐의로 자신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켰음에도 불구,사임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회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에게 “사임할 뜻이 없고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고 밝히고 “전 백악관 인턴직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위증을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중동방문 직전 그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으나 거짓말을 하거나 죄를 범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미 하원 법사위는 12일 헨리 하이드 위원장 주재로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사유 4가지중 마지막 항목인 권력남용 혐의를 표결에 붙여 찬성 21 반대 16표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탄핵안은 오는 17일 하원 본회의에 표결에 붙여질 예정이다. 미 하원 법사위가현직 대통령을 해임하기 위해 탄핵사유를 인정하고 탄핵안을 하원 전체투펴에 넘기기로 한 것은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과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이어 세번째다. 공화당은 이와 함께 17일 하원 본회의에서 클린턴에 대한 탄핵안을 심의할 때 민주당의 견책 동의안 상정을 봉쇄하기로 결정,견책처리는 사실상 무산됐다. 하원 법사위의 이같은 결정은 대통령으로서 저지른 잘못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달성하고 비록 상원부결이 확실하고 여론이 등을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탄핵안을 가결시켜 행정부 견제라는 의회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는 실리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높은 지지도를 등에 엎은 클린턴 대통령이 법사위원장이 보낸 81개 항목의 질문서에 성의없는 답변을 하는 등 법사위를 거의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그에게로 돌아선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것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 클린턴 탄핵안 표결 초읽기

    ◎하원 법사위,오늘까지 청문회 열어 가결할듯/본회의 회부땐 대통령 사상 2번째/백악관,무죄 입증 총력방어 나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의회 탄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원 법사위는 8일부터 이틀 일정으로 탄핵 청문회를 열어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11월 3일 중간선거’에서 클린턴의 민주당이 사실상 승리를 거두면서 클린턴 탄핵은 무산되는 듯했다.그러나 최근 불법 선거자금 문제가 불거진데다 의회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가 문제화되면서 탄핵 가능성이 또다시 높아졌다. 하원 법사위가 탄핵안을 통과시켜 본회의에 넘길 경우 클린턴은 사상 두번째로 하원의 탄핵 표결대상이 된다. 하원의 탄핵 표결 1호는 1868년의 앤드루 존슨 대통령.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74년 법사위가 탄핵안을 가결하자 자진 사임,하원 전체회의의 표결로 이어지진 않았다. 백악관은 현재 변호인단 외에도 역사 및 헌법 전문가들까지 동원,총력방어에 나서고 있다. 조 록하트 백악관 대변인은 7일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사실과 법률’에 입각해대통령의 무죄를 강력히 옹호할 것이라면서 “청문회에는 대통령을 대신해 변호사들이 참석,무죄입증의 증거들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 의원을 중심으로 하원 법사위 역시 단호하다.지난주부터 사법 방해와 권력남용 혐의로 대통령 탄핵 초안 마련에 들어갔다. 헨리 하이드 법사위원장은 “그동안 대통령측에 무죄입장에 관한 확실한 증거 제출을 요구해왔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며 지금껏 조사위원회 활동에서 보여준 클린턴 대통령의 불성실한 태도를 비난했다. 한편 재닛 리노 미국 법무장관은 이날 96년 불법 대선자금 의혹과 관련,클린턴 대통령의 범법행위 여부 조사를 위해 공화당이 집요하게 요구해온 특별검사제 도입을 거부,탄핵공방에 임하는 클린턴 대통령측의 어깨를 훨씬 가볍게 해줬다.
  • “클린턴 성추문 조사방해 권력남용”/스타검사,탄핵 청문회서 증언

    ◎美 하원법사위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는 19일 빌 클린턴 대통령이 특별 검사팀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했다고 밝혔다. 스타검사는 이날 하원법사위원회가 연 클린턴 대통령 탄핵 청문회에 출석, “클린턴 대통령은 97년 12월17일부터 지난 8월17일까지 진실과 거짓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거짓을 선택했다”면서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감추기 위한 수단으로 정부와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했다”고 강조했다. 현직 대통령 탄핵을 위한 청문회가 열리기는 지난 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터 사건이후 24년만에 처음이다. 스타 검사는 청문회에서 2시간 동안 증언한뒤 약 30분 동안 법사위원들의 신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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