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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절과 반목의 정치풍토 끊자](3)퇴임한 선진국 지도자들은

    [단절과 반목의 정치풍토 끊자](3)퇴임한 선진국 지도자들은

    대통령제인 미국과 프랑스, 의원내각제인 일본, 나름대로의 정치 구조 속에서 전직 지도자들은 활동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은 사회로, 전직 총리들은 의회로 복귀, 지도자 때 쌓은 경험을 환원하는 데 힘쓰고 있다. 국민들도 정치적 이념을 떠난 전직 지도자들의 이같은 행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면서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고 있다. ■ 미국 - 대통령 도서관 지어 지역문화 중심으로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대통령들은 현직에서 물러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거나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다. 미 대통령들이 퇴임을 준비하면서 예외없이 추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서관 겸 기념관 건립 계획이다. 자서전 집필을 통해 자신의 임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퇴임 후 주요 활동이다. ●카터, 아이티 분쟁 막아 노벨평화상 미국 대통령 도서관 겸 기념관 건립은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시작됐다. 현재 11개 대통령 기념관이 설립돼 있다. 올초 퇴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도서관 겸 기념관 건립이 완성되면 12개로 늘어난다. 제31대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는 뒤늦게 1962년 고향인 아이오와주 웨스트브랜치에 개관했고, 후버 대통령 이후 자신의 이름을 단 기념 도서관이 없는 대통령은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 한 명이다. 대통령 기념 도서관에는 대통령 재임 시절뿐 아니라 다른 공직에 있을 때 작성됐거나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모든 자료들과 서적들이 전시돼 있다. 자료들은 일반인 및 학자들이 자유롭게 열람, 연구하도록 공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 일반인들을 위한 각종 행사와 교육프로그램들을 운영, 역사의 산현장이자 지역사회의 사회문화 중심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전직 대통령들은 관심 분야에 따라 연구소를 설립,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 및 전 세계를 위한 사회봉사활동으로 퇴임 후 제2의 인생을 사는 전직 대통령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탯 운동을 시작했고 1982년 설립한 카터센터는 국제적인 사회봉사기구로 성장해 세계 30여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남북문제의 중재자로 나서는가 하면 아이티 무력충돌을 막는 등 국제적 분쟁해결사로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클린턴, 기후변화·교육·빈곤퇴치 앞장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역시 재임기간 못지않게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클린턴 재단’을 설립, 매년 전 세계 전·현직 국가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 회의를 개최해 기후변화, 교육, 보건, 빈곤퇴치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한다. 얼마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의해 아이티특사로 임명됐고, 수년전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에도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과 함께 피해현장을 직접 찾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퇴임 후 고향에서 일반 시민으로서의 삶을 향유하는 동시에 활발한 강연활동 및 사회봉사활동으로 경험과 지식을 자연스럽게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kmkim@seoul.co.kr ■ 프랑스 - 前대통령에 ‘살아있는 국가문화재’ 배려 │파리 이종수특파원│‘예우받으며 국가 원로로 활동’ 프랑스는 다양성의 나라라는 특징에 걸맞게 전직 대통령의 삶도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 후임 대통령의 예우를 받으며 자신의 국정 경험을 최대로 살려서 활동했거나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라크, 정적 미테랑에 ‘전임 예우’ 전형적인 사례가 자크 시라크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관계. 널리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평생의 정적이었다. 시라크는 미테랑에게 두번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아픔을 갖고 있다. 그러나 후임 대통령 시라크는 프랑스 제5공화국 최장수 대통령이었던 미테랑을 따뜻하게 대했다. 미테랑이 이전에 살던 파리7구의 아파트로 돌아가자 시라크는 에펠탑 근처에 전직 대통령 사무실을 마련해 줬다. “국가의 살아있는 문화재로 전 대통령이 사무실에서 여생을 보내며 회고록을 쓰는 등 후세에 교훈을 남기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배려한 것. 이에 힘입어 미테랑은 전립선 암을 앓으면서도 프랑스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과 시라크의 관계도 엇비슷하다. 시라크가 자신의 후임 대통령 후보로 사르코지 대신 도미니크 드 빌팽 당시 총리를 지지하면서 관계가 냉랭했다. 그러나 사르코지 역시 시라크에게 ‘전임 예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국무총리, 파리 시장, 대통령 등 33년 동안 공직생활을 한 시라크는 크고 작은 스캔들에 휘말렸다. 결국 대통령으로서의 면책 특권이 끝난 뒤 2007년 파리시장 시절의 공금 횡령 사건과 관련해 법원의 출석 명령을 받았다. 제5공화국 전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맛본 불명예였다. 그러나 이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참고인 자격으로 조용히 조사받았다. ●청백리 드골은 평화로운 시골 집으로 이런 전직 대통령에 대한 배려에 힘입어 프랑스의 전직 대통령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활동했다. 재직 중 파리에 아파트도 한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렴했던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시골 집으로 내려가 평화롭게 살았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퇴임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당연직인 헌법위원직을 마다하고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위해 지역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낙선후 헌법위원으로 일하면서 최근엔 악화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등 국가 원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있다. 시라크 전 대통령도 자신의 이름을 딴 공익 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74%로부터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vielee@seoul.co.kr ■ 일본 - 총리직 물러나면 평의원으로 의정활동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총리들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국회로 돌아간다.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총리 재직 전보다 경험이 많은 탓에 활동에 더 적극적이다. 의원내각제의 특징이다. ●다나카, ‘록히드사건’으로 유죄판결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최근 총리 재임 시절 힘썼던 행정 및 공무원개혁에,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아프리카 끌어안기에,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납치문제 등 안보 문제에 비중을 두고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 등은 정계은퇴를 했지만 정치 원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전직 총리들은 별다른 탈 없이 의원으로서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따져보면 일본의 정치구조는 ‘일본식’이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권정치’로 불린다. 돈과 떼어놓고서는 정치를 말할 수 없는 이유에서다. 실제 ‘정치와 돈’은 고질적인 문제다. 업계나 단체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족(族)의원’들이 존재할 정도다. 총리도 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1955년 자민당 출범 이래 역대 총리 가운데 검은 돈에 연루돼 사법처리된 인물은 다나카 가쿠에이(1972년 7월∼74년 12월) 단 한명이다. 총리 때 직권을 남용, 정치자금을 모은 의혹을 받고 사퇴했다. 또 총리 재직 때 전일본항공(ANA)에 압력을 행사, 록히드사의 비행기를 매입토록 한 뒤 200만달러의 뇌물을 챙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1976년 8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까지 받았다. 이른바 ‘록히드사건’이다.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의 국제담당 비서로 근무했던 김숙현 도호쿠대 조교수는 “자민당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94년 6월∼96년 1월) 기간을 빼고는 줄곧 집권해 왔다. 즉 총리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자민당의 정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며 자민당 체제에서의 ‘안전판론’을 지적했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조교수는 “총리의 권한이 대통령제에 비해 약하다. 당론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당의 견제에 제약도 적잖다.”고 강조했다. ●당론이 우선… 총리 권한행사 제약 일본의 경우 관료들의 텃세가 강한 탓에 총리나 각료가 바뀌어도 정책의 흔들림이 거의 없다. 정책의 일관성을 갖는 이유다. 자민당은 관료의 힘을 의식, 정치가 주도하는 행정을 만들기 위해 공무원 개혁을 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총리들은 내각의 지지율에 따라 임기가 결정되는 경향이 짙지만 ‘자민당의 안전판’ 속에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국회로의 복귀가 수월하다. hkpark@seoul.co.kr
  • [81회 아카데미] 숀 펜·케이트 윈슬렛, 오스카의 男女 (종합)

    [81회 아카데미] 숀 펜·케이트 윈슬렛, 오스카의 男女 (종합)

    할리우드 배우 숀 펜과 케이트 윈슬렛이 아카데미 남녀 주연상을 차지했다. 지난 22일 오후 5시(현지시간) 미국 LA 할리우드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 81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밀크’의 숀펜과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의 케이트 윈슬렛이 남녀 주연상의 영광을 안았다. 숀펜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은 2004년 ‘미스틱 리버’에 이어 두번째로 올해에는 ‘레슬러’의 미키 루크’,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브래드 피트, ‘비지터’의 리처드 젠킨스, ‘프로스트 vs 닉슨’의 프랭크 란젤라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케이트 윈슬렛은 ‘레이첼 결혼하다’의 앤 해서웨이, ‘체인질링’의 안젤리나 졸리, ‘프로즌 리버’의 멜리사 리오, ‘다우트’의 메릴 스트립과 치열한 각축전 끝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대니 보일 감독의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감독상, 작품상, 각색상, 편집상 등 총 8관상에 오르며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앞서 개최된 골든글러브에서도 4관왕에 오르며 위력을 발휘했다. 남우조연상은 ‘다크나이트’에서 소름끼치는 연기를 보여준 故히스레저가 수상했다. 히스 레저의 이름이 호명되자 시상식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이 일제히 기립하며 그를 추모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하 각 부문별 수상작 및 수상작 ▶작품상 - ‘슬럼독 밀리어네어’▶감독상 -’슬럼독 밀리어네어’ 대니 보일 ▶남우주연상 - ‘밀크’ 숀 펜 ▶여우주연상 -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케이트 윈즐릿▶남우조연상 - ‘다크 나이트’ 히스 레저▶여우조연상 -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페넬로페 크루즈 ▶각본상 - ‘밀크’ 더스틴 랜스 블랙▶각색상 - ‘슬럼독 밀리어네어’ 사이먼 보포이▶편집상 - ‘슬럼독 밀리어네어’ 크리스 디킨스▶촬영상 - ‘슬럼독 밀리어네어’ 앤서니 도드 맨틀▶미술상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도널드 그레이엄 버트▶의상상 - ‘공작부인-세기의 스캔들’ 마이클 오코너▶분장상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레그 캐넘▶시각효과상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에릭 바바 등 4명▶음악상 = ‘슬럼독 밀리어네어’ A.R. 라흐만▶주제가상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자이 호(Jai Ho)’▶음향편집상 - ‘다크 나이트’ 리처드 킹▶음향효과상 -’슬럼독 밀리어네어’ 아이언 탭 등 4명▶외국어영화상 - ‘굿 바이’(일본)▶장편애니메이션상 - ‘월ㆍE’▶단편애니메이션상 - ‘작은 사각의 집’▶단편영화상 - ‘토이랜드’▶장편다큐멘터리상 - ‘맨 온 와이어’▶단편다큐멘터리상 -’스마일 핑키’▶얀 헤르슐트 박애상(공로상) - 제리 루이스 ▶고든 E. 소여상(과학기술상) -에드 캐트멀 사진=각 영화 스틸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英타임스가 꼽은 역대 ‘애주 정치가’는?

    나카가와 쇼이치 일본 전 재무상이 지난 14일 열린 G7(선진 7개국) 기자회견에서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결국 사의를 표한 가운데 영국 타임스가 술을 지나칠 정도로 좋아했던 역대 ‘애주 정치가’ 9명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전 대통령은 ‘애주 정치가’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보드카 마니아로 알려진 그는 재임 중에서 음주를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잦은 음주 때문에 술에 얽힌 실수담 또한 가장 많았다. 옐친 전 대통령은 공식석상에서 술 취한 모습을 종종 보였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격식을 차려야 할 외국 방문길에서도 술에 취해 국가에 불명예를 안기기도 했다. 그는 지난 1994년 아일랜드를 찾았을 때에는 술에 취해 제대로 비행기에서 내리지 못했고 예정된 정상회담도 펑크냈다. 또 독일을 방문했을 때도 술에 취한 듯 환영 군악대에게 다가가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옐친 전 대통령만큼이나 술을 좋아했던 정치인으로 미국 37대와 38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꼽혔다. 닉슨 전 대통령 역시 지우고 싶은 ‘술 실수담’이 전해진다. 나중에 알려진 기록에 따르면 4차 중동전쟁으로 국제사회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지난 1973년 닉슨 전 대통령은 술에 만취해 때마침 걸려온 영국 총리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이외에도 윈스턴 처칠 영국 전 총리도 대표적인 ‘술 마니아’였다. 그는 신문기자 시절 보어전쟁 취재를 가면서 포도주 36병, 스카치 위스키 18병, 브랜디 6병을 전선에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파티에서는 노동당의 베시 브래독 하원의원이 “당신 끔찍하게 취했군요”라고 말하자 “당신은 끔찍하게 못생겼소. 나는 내일 아침이면 (술에서)깨기나 하지”라고 맞받아친 일화가 있다. 다음은 타임스가 언급한 정치인 -Shoichi Nakagawa -George Brown -Boris Yeltsin -Aneurin Bevan -Winston Churchill -Richard Nixon -Kevin Rudd -H.H. Asquith -Charles Kennedy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부시 대통령, 임기 중 급격히 늙은 까닭은?

    부시 대통령, 임기 중 급격히 늙은 까닭은?

    “대통령 스트레스가 노화의 원인” 깊게 패인 주름살, 심하게 쳐진 눈 꼬리, 창백할 안색은 8년 임기를 마무리하고 있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현재 얼굴이다. 취임 전 사진과 비교하면 8년 후 모습이 아닌 18년 후 모습에 더 가까워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이 같은 질문에 미국의 한 연구팀은 ‘대통령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답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국정운영을 담당하는 대통령 직에 오른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 평균보다 더 노화가 빨리 진행됐다는 것. ‘리얼 에이지’(Real Age)의 저자 마이클 로이즌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역대 대통령들은 막대한 국정 운영 압박감을 받았으며 주변의 끊임없는 비판과 견제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설명한 뒤 “이러한 이유로 평균적으로 대통령들은 2배 더 빨리 노화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로이즌 박사 연구팀은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전과 임기 중 그리고 임기가 끝난 후의 건강기록에 대해 조사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 주장에 따르면 8년 임기를 마친 부시 대통령의 경우 실제로는 그 2배인 16년 노화가 진행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노화 뿐 아니라 심지어 수명에 까지 그 영향이 미친다는 것. 역대 대통령 중 사망한 대통령들의 수명을 살펴보면 평균수명(Life Expectancy)에 못 미치고 생을 마감한 경우가 많았다. 로버트 E 길버트 박사는 노스이스턴 대학교는 미국 초대 조지 워싱턴 전 대통령부터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까지 수명을 알아본 결과 36명 역대 대통령 중 무려 26명이나 평균에 비해 단명했다. 길버트 박사는 “테어도어 루즈벨트 전 대통령(1858~1919)은 같은 시대인 1850년대 태어난 남성들의 평균수명 보다 약 15년 가량 단명했다.”고 설명한 뒤 “대통령 직무와 노화에는 충분히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 반면 이 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한 과학자들도 다수 있었다. 예일 의학대학교 레오 쿠니 교수는 “역대 대통령이 막중한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추정할 수는 있지만 이를 근거로 평균 수명이나 노화 정도를 쉽게 단언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사진=boston.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워터게이트 제보 펠트 타계

    워터게이트 제보 펠트 타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사임을 가져온 ‘워터게이트’ 사건의 제보자 윌리엄 마크 펠트 전 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19일 보도했다.95세. 닉슨이 재선을 위해 불법 감청을 시도하다 적발된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WP)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그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kmkim@seoul.co.kr
  • [씨줄날줄] 캐롤라인 케네디/이목희 논설위원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인기 있었던 이유는 다양하게 설명된다.딸 캐롤라인이 그중 하나로 꼽힌다.케네디는 캐롤라인을 끔찍이 아꼈다.복잡한 여성편력에도 불구,케네디가 캐롤라인을 안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사진은 ‘화목한 가정’ 자체로 비쳤다. 재롱둥이 캐롤라인의 대중적 인기는 노래로도 이어졌다.유명가수 닐 다이아몬드가 ‘스위트 캐롤라인’이란 팝송을 만들어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닐 다이아몬드는 “궁핍했던 무명 시절 꼬마 캐롤라인이 멋진 승마복을 입고 조랑말 옆에 선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캐롤라인은 케네디가 대통령직을 향해 질주를 시작한 1957년에 태어났다.케네디가 1957,58년에 미국 전역의 도시를 돌며 강연한 횟수는 각각 150,300회에 달했다.그의 별명은 ‘뛰어다니는 청년’.캐롤라인이 가장 먼저 배운 말은 ‘아빠,비행기,자동차,구두’라고 한다.케네디는 어린 딸의 언어 감각에 부응하듯 노회한 리처드 닉슨을 꺾고 대통령에 오른다. 화려한 태생과 달리 캐롤라인은 교육·학술 분야에서 비영리 업무를 해왔다.그러나 버락 오바마와는 뜻이 통했던 걸까.이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오바마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힐러리 클린턴 진영을 패닉에 빠뜨렸다.캐롤라인은 오바마와 컬럼비아대 동문이다.가톨릭 신자로 소수파로 몰렸던 케네디,흑인으로서 생래적인 소수파인 오바마.변화·개혁의 기치,능수능란한 화술.케네디와 오바마는 닮은 점이 많았다.오바마가 처음 상원의원이 된 뒤 앉은 자리는 캐롤라인의 삼촌 로버트 케네디가 앉았던 곳이었다.캐롤라인의 지지에 힘입어 오바마는 ‘검은 케네디’를 외칠 수 있었다. 캐롤라인은 부통령후보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최근에는 힐러리의 입각으로 공석이 된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이 확정적이라는 보도가 잇따른다.마지막 변수는 힐러리 지지자들의 반대라고 한다.경선에서 캐롤라인에 일격을 당했던 아픔 때문일 것이다.미국 최고의 정치명문가 케네디가(家)와 흑인으로 새로 떠오른 오바마가의 결합.거기에 힐러리-클린턴가의 개입이 한편의 소설처럼 다가온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오바마 정부서 일하고 싶다” 이력서 폭주

    버락 오바마 정권 인수위팀 사무실 직원 50여명은 요즘 이력서에 파묻혀 지낸다.오바마 정부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이력서가 인수위 공식 홈페이지(www.change.gov) 등을 통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연방 정부가 임명할 수 있는 직원은 3300여명으로,지금까지 접수된 서류만 무려 30만건에 달한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무려 100대1에 가까운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셈이다.이 같은 오바마 정부의 ‘인기’는 8년 전 조시 부시 당선인과 비교된다.당시 이맘때 부시 정부에서 일하고 싶다며 인수위팀 문을 두드린 사람은 4만 4000여명이었고,취임식 직전까지 집계된 구직자수는 9만여명이었다.1968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당선 당시 오히려 인수위팀이 인명사전에서 7만여명의 명단을 뽑아 정부에서 일할 생각이 없냐는 편지를 보냈던 것을 생각하면 경쟁률은 놀라운 수치다. NYT는 오바마 정부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급증한 배경에는 공화당이 집권한 지난 8년간 연방정부에서 일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거 몰려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인수위팀은 구직자 폭증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백악관 선임고문 내정자인 데이비드 엑설로드는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이력서를 접수한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경쟁률이 100대1에 육박한 상황에서 취임식 직전까지는 구직 희망자가 지금의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그런 만큼 구직자들은 각종 연줄을 동원해 로비를 펼치고 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오바마 두 딸도 결국 사립학교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 부부가 결국 두 딸 말리아(10)와 사샤(7)를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 ‘시드웰 프렌즈’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오바마 당선인 부부가 취임한 후 초등학생인 두 딸을 공립학교에 보낼 것도 고려한 것이 알려지면서 최종 선택에 세간의 관심이 쏠려왔다. 미셸 오바마의 대변인 캐티 매코믹 렐리벨드는 21일(현지시간) “여러 학교를 검토한 결과 말리아와 사샤에게 가장 적합한 학교로 시드웰 프렌즈를 선택하게 됐다.”고 밝혔다.그는 또 “이번 학교 선정에는 경호와 프라이버시,그리고 학교 수준 등이 검토됐다.”면서 “미셸이 공립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 부부가 공립학교도 고려했지만,사립학교가 자녀들에게 가장 좋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말리아와 사샤는 현재 명문 사립 시카고대 부속 실험학교에 재학 중이다.  시드웰 프렌즈는 개신교 일파인 퀘이커교 계통의 명문 사립으로 유명인사 자제들이 많이 다닌 학교로 유명하다.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외동딸 첼시가 15년 전 이 학교에서 공부했다. 앨 고어 전 부통령의 아들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딸 트리셔도 이 학교 출신이며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의 손자도 현재 이 학교에 재학 중이다.시드웰 프렌즈의 한해 학비는 초등학교 2만 8442달러(4266만원),중학교의 경우 2만 9442달러(4416만원)에 이른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씨줄날줄] 거국내각/ 이목희 논설위원

    김영삼(YS)정부 시절 노동부 장관을 지낸 남재희씨의 회고담. 민주노총을 합법화하자는데 여권 일부 인사들이 반대했다. 남 전 장관은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의 일화를 들이댔다. 존슨이 말썽 많은 인사를 입각시키려 하자 반대가 많았다. 존슨은 “그 말썽꾼을 텐트 안에 넣으면 오줌을 밖으로 눌 것 아니냐. 밖에 두면 안으로 갈겨댈 거고.” 존슨 다음의 미국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이다. 닉슨은 “예스맨으로만 정부를 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링컨 대통령처럼 ‘통합정치’의 멋을 부리려 했다. 하지만 월터 히켈 내무장관이 닉슨의 말을 믿고 “노”를 외치다가 일주일만에 잘리고 말았다. YS와 관련한 또 하나의 비화.6공의 황태자 박철언씨의 회고록에 따르면 1989년초 야당 총재인 YS가 물밑에서 거국내각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때 당장 성사되진 않았으나 1년 뒤 3당통합, 보수대연합의 배경이 되었다. 어느 나라건 국정이 어려우면 거국내각 주장이 나온다. 미국 경제가 크게 흔들리자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거국내각 구성을 예고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필두로 야권에서 거국 경제내각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박근혜·정몽준 의원 등 여권에서도 출신을 따지지 않는 전문가내각, 탕평내각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거국내각이 모양새는 좋다. 그러나 오줌을 밖으로 누라고 데리고 온 인사가 텐트 안, 그것도 핵심부를 향해 오줌을 갈길 수 있다. 링컨처럼 정적(政敵)을 제대로 이끌 리더십이 없다면 언제든 닉슨 사태가 난다. 특히 업무 중심이 아니고 정치구도를 감안한 야합이라면 나라가 더 어지러워진다. 이라크를 비롯해서 지구촌 곳곳에서 급조된 거국내각의 혼란상이 이를 증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직 대통령이 임기말 레임덕에 빠졌을 때 거국내각 비슷한 게 만들어진 적이 있다. 중립내각이란 이름으로 정파 초월을 내세웠으나 진정한 거국내각은 아니었다. 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적 거국내각은 무리하게 시도할 일이 아니다. 밀실거래는 더욱 안 된다.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심정으로 폭넓게 인재를 구하는 정도가 지금으로선 정답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킬링필드 비극의 전말

    킬링필드 비극의 전말

    3년8개월. 국민 5명 중 1명이 사라졌다. 거의 200만명에 달하는 숫자였다. 이들을 숙청과 기아로 내몬 것은 바로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이었다. 영국의 더 타임스,BBC방송의 해외통신원 출신으로 중국·캄보디아 전문가인 필립 쇼트는 ‘폴 포트 평전-대참사의 해부’(이혜선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에서 1975~1979년 대학살을 주도한 크메르루주 정권의 1인자 폴 포트를 조명한다. 단순히 폴 포트의 생애만이 아니라, 캄보디아 전역을 킬링필드로 만든 비극의 역사 전반을 냉철한 시각으로 해부한다. ●평등주의 추구하던 청년이 돌변한 이유는? 책은 ‘평등주의’ 이상향을 꿈꾸던 젊은이가 어떻게 인류 최악의 참사를 일으키는 무시무시한 지도자로 변해 갔는지를 추적해 나간다. 이를 위해 저자는 1950년 파리 유학 시절 폴 포트를 처음 정치세계로 이끈 켕 반삭을 비롯해 크메르루주 핵심 인사들의 증언을 직접 듣고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 관련국들의 기밀자료를 찾아다녔다. 이로써 베일에 싸여 있던 폴 포트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은 물론 아시아 전체의 역사적 맥락에서 킬링필드라는 비극을 규명해낸다. 저자에 따르면, 폴 포트는 온순하면서도 유머가 넘치고 지적이면서도 자신을 숨기려 한 신비주의자다. 이런 인물이 당내 베트남파와 정적들을 무차별적으로 제거하는 폭력성의 극치를 보이게 된 것은 혁명 완수에 대한 자기 과신과 조급증 때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어찌됐건 이렇게 해서 폴 포트의 캄보디아는 히틀러의 독일, 마오쩌둥의 중국, 스탈린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깨지면서 점차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변해갈 수밖에 없었다. ●승려와 지식인층도 참사의 ‘조연´ 하지만 사실 폴 포트 정권의 잔혹성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스탈린과 레닌으로부터 전수받은 폭력적 이념, 봉건적 전통질서에서 근대 국가로 발돋움하는 길을 막은 전 시아누크 정권의 부정부패, 권력자에게 절대복종하는 캄보디아 사회의 원칙 등이 근저에 깔려 있다. 저자는 “크메르루주의 만행을 머나먼 열대국가의 특수한 봉건문화 탓으로 돌리는 것은, 몇몇 지도자들의 비뚤어진 성격을 탓하는 것과 똑같이 안이한 답변”이라고 못박는다. 폴 포트가 최고기획자였으되, 승려와 지식인층을 비롯한 캄보디아인 수백만명이 크메르루주에 협력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지난 2006년 캄보디아 국제전범재판소가 설립됐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미국의 양심’ 노엄 촘스키 MIT 교수는 “1970년대 초 캄보디아 농촌에 대한 집중 포격을 지시했던 사람도 전범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며 리처드 닉슨 대통령 등 당시 미 고위 정부관료들의 책임론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킬링필드의 주도자들과 국제기구 및 단체의 구호사업을 차단했던 사람들은 지난 2003년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 폴 포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을 뿐이다.2만 39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인종 벽을 넘다-美 오바마 시대] 한미관계·북핵문제 정통

    지한파(知韓派)로 알려진 조지프 바이든(65) 부통령 당선인은 관록의 6선 정치인이다.1972년 29세의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36년 동안 상원에서 활동하며 외교위원장과 법사위원장 등을 지냈다. 상·하원을 통틀어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로 한·미 동맹 관계, 북핵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두 나라 사이의 현안에도 정통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부통령의 중요성은 대통령 유고시에 드러난다.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사퇴, 혹은 탄핵을 당하면 부통령은 대통령직을 대행하거나 승계하게 된다.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퇴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제럴드 포드 등 모두 9명의 현직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도 부통령은 1순위로 권한대행을 맡는다. 부시 정부의 딕 체니 부통령은 2002년과 2007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수술을 받았을 때 잠시 대통령직을 넘겨받았고,1985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조지 부시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권한을 잠시 대행한 적이 있다. 부통령이 되면 미국 헌법에 따라 자동으로 상원의장 자격이 주어지며, 상원 표결 결과 동수일 경우 상원의장이 결정권한(Tie Breaking Vote)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부통령직의 매력은 차기 대권 도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는 데 있다.1988년 아버지 조지 부시를 포함해 부통령직을 수행하며 대통령에 당선된 경우도 4차례나 있다. 바이든은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튼에서 태어나 델라웨어대,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졸업했다.27세에 변호사가 됐고 28세에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2008 美 대선 D-1] 역대 대통령 42명 평가순위

    [2008 美 대선 D-1] 역대 대통령 42명 평가순위

    미국 역대 최고, 최악의 대통령은 누구일까.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둔 가운데 영국 일간 더 타임스가 자사 패널들에게 의뢰해 미국 역대 대통령 42인의 공적을 평가한 순위를 31일(현지시간) 내놨다. 부동의 1위는 남북전쟁의 영웅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차지했다. 최초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으로 남북전쟁에서 남부동맹을 이기고 북부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의 노예해방선언으로 400만 흑인노예들은 자유의 몸이 됐다. 무엇보다 전쟁 뒤 미국을 단결케 하고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국가 기초를 닦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더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특파원인 크리스 아이레스는 “그가 역대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2위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무당파로 독립 전쟁에서 영국을 패배시켰다. 워싱턴은 ‘영감의 용병술’로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3위는 12년간 재임한 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공황 시절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뉴딜정책으로 미국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4위는 토머스 제퍼슨으로 전 대통령 통틀어 가장 똑똑했다는 찬사를 받았다.5위인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테디’란 애칭으로도 유명했다. 당시 최연소인 42세에 당선된 뒤 소속 공화당은 한층 진보적으로 변모했다. 6위에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올랐다. 제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사령관 출신으로 전후 뉴딜 정책을 계승했다. 존 케네디는 11위로 10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다. 쿠바 미사일 위기, 피그만 사태, 베트남 전쟁 등 외교정책 면에서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다. 그러나 “시민권, 우주탐사에 대한 수사적인 연설들이 ‘로맨스’를 부활시켰다.”고 패널들은 밝혔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20위로 중간을 지켰다. 민주당의 증세 압력에 굴복해 감세정책을 지키지 못한 귀머거리 정치인이란 악평을 받았다. 빌 클린턴은 너무 많은 공약을 남발해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23위에 랭크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민주당 출신으로 재임에 성공한 첫 대통령이다. 그러나 그는 의료개혁법을 통과시키지 못했고, 두 번째 임기는 르윈스키 스캔들로 얼룩졌다.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은 37위로 기록되는 수모를 당했다.9·11테러로 연임 기회를 맞았지만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잘못 대처한 데 이어 금융시장 붕괴로 국내외에서 뭇매를 맞았다. 평가단은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이라크를 침략했고 전쟁을 재난의 수준으로 끌고 가 미국이란 이름을 진흙창에 처박았다.”고 혹평했다. 공동 37위인 리처드 닉슨의 평가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사례다. 베트남 전쟁을 끝내고 중국, 옛소련과 동구권 외교를 성사시켜 50개주 중 49개 주에서 승리하며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연임 2년 만에 민주당 본부 건물을 도청한 사건인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불명예 퇴진해야 했다. 더타임스는 “닉슨이 스캔들 하면 으레 ‘게이트’란 접미사를 붙이는 단어상의 변화도 가져왔다.”고 전했다. 불명예의 전당인 42위는 제15대 제임스 뷰캐넌이었다. 남북전쟁을 막지 못한 주범으로 지목됐다. 그는 노예제를 놓고 남·북부가 대치하자 “탈퇴는 불법이지만, 이를 막는 것도 불법이다.”며 남부주들의 탈퇴를 방치했고 결국 전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美대선 D-1] “누가 되든 亞 중시정책 펼것”

    막바지에 이른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중 누가 당선되든 정치와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아시아 중시 정책이 기대된다고 호주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1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에서 어린시절 4년을, 매케인은 베트남에서 포로로 5년 반을 지냈다. 이 시절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어도 아시아의 문화를 직접 접했다. 이런 가운데 마이클 매코넬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지난달 30일 테네시주 내슈빌에 모인 정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가들의 경제가 급성장해 2025년쯤 다극화 정세를 이룰 것”으로 전망하면서 “지구촌의 부와 경제권력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움직이는 것은 근대 이후 최초”라고 말했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아시아 경험은 외교정책이 기존의 편협한 미국 정치인과는 다르게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기대로 발전하고 있다. 두 사람의 외교노선은 대서양과 유럽 지향적인 미국 주류사회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와 태평양에 가장 근접했던 이들은 1960년 미 대선에서 맞붙어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다.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으로 1년 남짓 태평양 등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과는 접촉이 거의 없어 아시아와의 문화 교류는 사실상 전무했다. 오바마는 어머니 앤 던햄(24)이 인도네시아 대학생 롤로 수토르와 재혼하면서 6세 때인 1967년 그를 인도네시아로 데려갔고, 수도 자카르타 외곽에서 살았다. 오바마는 인도네시아 생활 이후 미국의 주(州)라고 하지만 태평양의 섬인 하와이에서 10대를 보냈다. 오바마는 아시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그의 참모 수잔 라이스는 “오바마는 21세기 미국의 안전이 아시아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부시 행정부의 단편적 중동정책의 부작용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무슬림 국가에서 살았던 경험을 들며 “무슬림과 화해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전세계 무슬림 지도자들과 회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매케인은 오바마가 인도네시아로 이사갈 당시 베트남에서 전쟁포로로 붙잡혔다. 미 해군 조종사였던 그는 1967년 10월 베트남 수도 하노이를 폭격하러 가다가 격추당했다. 소위 ‘하노이 힐튼호텔’로 불리는 포로수용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매케인은 “중국과 인도를 세계문제에서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야 한다.”면서 그의 포로 경험에 비춰 북한과 미얀마의 수감자들의 인권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2008 美 대선 D-6] 점점 굳어지는 오바마 대세론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이기철기자|미국 대통령 선거를 한주일 남겨둔 28일 미국 언론에서는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흑인 대통령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던 백인 유권자의 상당수가 오바마 대세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로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다. ABC 방송은 27일(이하 현지시간)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패배하는 이유 5가지를 제시했다.▲매케인이 ‘워터케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보다 더 인기없는 현직 대통령과 같은 정당 소속으로 ▲매버릭(당리당략을 초월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관리하는 데 실패했으며 ▲러닝 메이트로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낙점한 데다 ▲대통령 후보 TV토론을 잘못했고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 문제에도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는 것이다.●美당국 “오바마 암살기도 저지” 미 정부 당국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 오바마에 대한 암살 기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테네시주에서 오바마를 암살하고, 흑인 102명을 살해하려던 계획을 저지시켰다는 것이다. 미 당국의 관계자는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로 알려진 ‘신나치주의’ 스킨헤드족 2명이 총기 판매상을 털어 흑인 고교를 대상으로 연쇄 살인행각을 벌이려 했으나 무산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차량으로 오바마에 돌진한 다음 총을 쏠 계획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관계자는 연쇄 살인의 마지막 대상으로 오바마를 겨냥하고 있었으나 “오바마를 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믿지 않았다.”고 덧붙였다.●오바마 오른팔 엑설로드 거취 주목 오바마가 선거에서 이기면 선거총책 데이비드 엑설로드의 ‘중용설’이 파다하다. 엑설로드 기용 여부는 오바마의 통치 스타일과 정치 전략의 성격과 방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는 시카고의 컨설팅회사에서 활동하면서 2004년 오바마의 상원 선거 운동을 도왔고, 이런 인연으로 2007년 1월부터 오바마 진영의 핵심 선거전략가로 일해 왔다. 특히 인터넷 선거운동에 주력,30대 이하 유권자 사이에서 외연을 넓혔고, 개미군단 유권자들의 십시일반 선거자금 기부를 견인해 냈다. 하지만 행정부 직행은 조지 부시 대통령의 핵심 선거참모 칼 로브 전 백악관 정치고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로브는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으로 일하면서 행정에 정치를 끌어들였다는 비판을 받아 부시 대통령에게 오히려 짐이 됐다.●우편투표도 급증할 듯 다음달 4일 치러질 선거에서 투표소 대신 우편투표를 선택하는 유권자가 크게 늘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7일 캘리포니아 주민의 40%가량이 우편투표를 할 것으로 예상했다. 캘리포니아 유권자는 2000년 대선에서 24%, 2004년 대선에서 32%가 우편투표를 했다. 현재 미국의 28개 주에서 질병과 주소지 부재 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어도 우편투표를 할 수 있다. 일각에선 “ 우편투표가 편리하지만 비밀투표 원칙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투표조작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오바마가 살던 인도네시아 집값 5배 껑충 오바마가 유년 시절에 인도네시아에서 살던 주택의 가격이 무려 다섯배나 치솟았다. 현지 일간 콤파스는 28일 오바마 가족이 하와이로 이주하기 전인 1970년부터 1971년까지 세들어 살던 자카르타 멘탱의 주택이 시가보다 다섯배 높은 1500억루피아에 사겠다는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인 1939년 지어진 이 가옥은 타타 아부바카르(78)의 소유로 1200㎡ 대지에 넓은 앞 마당과 주인이 살고 있는 본채와 오바마가 살았던 별채로 구성돼 있다. 오바마의 가족이 사용했던 나무소파와 장롱 등 일부 가구가 아직도 잘 보존돼 있다. 자카르타 주정부는 지난 8월 이 주택을 50년 이상 된 가치있고 보존이 잘된 건축물로 평가해 문화재로 지정했다.chuli@seoul.co.kr
  • 대통령 유고땐 권한대행 1순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부통령은 대통령이 사망하거나 사퇴 혹은 탄핵되는 등 유고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 권한승계 1순위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 43명 가운데 지난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퇴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의 뒤를 이은 제럴드 포드 등 9명의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또 대통령이 일시적으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부통령은 1순위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다. 현재의 딕 체니 부통령은 지난 2002년 6월29일과 2007년 7월21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수술을 받을 때 잠시 대통령직을 넘겨받았다. 지난 1985년 7월13일 당시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조지 부시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권한을 잠시 대행했다. 특히 부통령은 유사시 대통령직을 승계하기 때문에 자격조건은 대통령과 같다. 태어날 때부터 미국 시민권자여야 하며,35세 이상으로 미국에 14년 이상 살아야 한다.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 헌법은 대통령과 부통령이 모두 같은 주 출신이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은 두번까지만 연임할 수 있지만 부통령에겐 그런 제한규정이 없다. 부통령이 되면 차기 대권 도전에 유리하다. 부통령에서 대통령이 된 사례는 1988년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등 4명이나 된다. 부통령이 되면 미국 헌법에 따라 자동으로 상원의장 자격이 주어진다. 상원 표결 결과 동수일 경우 상원의장 즉 부통령이 결정권한을 갖는다. 부통령은 대통령이 할애한 업무를 담당하게 되지만 헌법에 의해 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부여된 행정적 권한은 없다. 따라서 부통령의 역할과 영향력은 대통령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딕 체니 부통령의 경우 조지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졌으며, 앨 고어 전 부통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외교정책 및 환경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조언자였다. kmkim@seoul.co.kr
  • [월드이슈] 유권자 ‘땀만 흘리던 닉슨’에 실망… 케네디로 변심

    [월드이슈] 유권자 ‘땀만 흘리던 닉슨’에 실망… 케네디로 변심

    ■대선 향배 가늠하는 TV토론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간 TV토론은 9월26일 오후 9시(미 동부시간) 미시시피대학에서 첫 테이프를 끊는다.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의 보도국장으로 베테랑 앵커인 짐 레러가 90분동안 진행한다. 타운미팅 방식의 두번째 토론회는 10월7일 테네시주 내슈빌의 벨몬트대학에서 NBC의 톰 브로커가, 마지막 TV토론은 선거를 3주 앞둔 10월15일 뉴욕 헴스테드의 호프스트라대학에서 CBS의 일요시사토론 진행자인 밥 시퍼가 각각 진행을 맡는다. 1960년 존 F 케네디 민주당 상원의원과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의 사상 첫 TV토론은 두 후보의 운명을 갈라놓았다.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된 토론은 화면에 나타난 이미지의 위력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라디오를 청취한 유권자들은 닉슨에 높은 점수를 줬지만,TV를 시청한 유권자들은 말을 더듬고, 땀을 줄곧 훔쳐내는 닉슨이 졌다고 평가했다. 당시 1억 7900만 인구의 3분의1인 6600만명이 TV로 토론을 지켜보며 지지후보를 결정했다고 해도 좋았다. 이후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지미 카터 전 조지아 주지사의 TV토론이 재개될 때까지 3차례 대선은 TV토론 없이 치러졌다. 린든 존슨은 토론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사상 첫 토론에서 ‘피해’를 본 닉슨 역시 TV토론을 거절했다.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후보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이후에는 대선 후보들의 합의에 따라 1∼3차례 TV토론이 열려 승세를 굳히거나 판세를 역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1988년 토론에서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는 범죄, 특히 사형제도에 대한 리버럴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 역풍으로 작용해 공화당의 조지 H 부시에게 밀리는 전기가 됐다. TV토론은 토론 내용보다 말 실수나 행동에 화제가 집중되는 사례도 종종 있다. 하지만 대선 후보들이 한자리에서 주요 현안에 대한 차별화된 생각을 유권자들에게 직접 설명하는 유일한 자리인 만큼 대선의 향배를 결정하는 가늠자 역할을 해오고 있다. kmkim@seoul.co.kr
  • ‘핑퐁 외교’ 주역들 37년만의 재대결

    1971년 미국과 중국 핑퐁 외교의 주역들이 재대결로 이념의 장벽을 무너뜨린 그 때의 뜻을 되새겼다. 이들은 12일(현지시간) 37주년을 기념해 미 37대 리처드 닉슨(1913∼94) 대통령의 고향에 모였다. 캘리포니아주 요바 린다에 위치한 ‘리처드 닉슨 도서관 및 생가 기념관’이 그곳이다. 미 올림픽위원회(USOC) 위원장을 지낸 스티브 불(67) 전 닉슨 대통령 보좌관이 행사를 마련했다. 경기장에는 조지 워싱턴 미 초대 대통령과 190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26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대형 사진이 내걸려 관람객 200여명을 맞았다. 빨간 옷을 차려입은 중국 댄서들의 춤과 기예단의 시범공연, 화려한 용 가장행렬이 출발을 알렸다. 당시 미국 국가대표 조지 브레스웨이트(73)와 중국 량거량(梁戈亮ㆍ58)이 맞붙었다.5판 3선승 경기는 량의 3대1 승리로 끝났다. 두 사람은 공이 네트에 살짝 걸쳐 쑥스럽게 점수를 따내는 장면에선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며 여전한 우정을 뽐냈다. 베이징대 교수인 량은 AP에 “핑퐁 외교는 작은 탁구공 하나로 커다란 지구촌을 움직인 사건이었다.”면서 “그동안 중국에도 많은 변화가 따랐다. 쓰촨 대지진 때 보여준 국민결집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전미탁구협회(USATT) 부회장 출신인 브레스웨이트는 “스포츠 선수들이 한 지붕 아래에서 만나면 서로 경쟁하더라도 친선을 다진다.”며 “하지만 정부끼리 마주치면 서로 속고 속이는 등 정치적으로 변하고 만다.”고 화답했다. 핑퐁 외교란 1971년 4월 일본 나고야 세계탁구대회에 출전한 미 대표단 15명과 기자 4명이 중국을 방문,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와 만나고 베이징·상하이·광저우를 순방함으로써 ‘죽(竹)의 장막’으로 둘러싸였던 중국과 그 적성국 미국의 교류에 징검다리를 놓은 사건이다. 그해 7월 헨리 키신저 보좌관의 극비 방중에 이어 이듬해 2월엔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68혁명 40돌] (4) 미국의 1968년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역사가들은 1968년을 모든 것을 바꿔놓은 한 해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1968년이 미국 정치·사회·문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또는 여성 대통령이 등장할 가능성이 점쳐지는 2008년.‘변화’가 대통령 선거의 화두로 떠오른 2008년을 격동의 시기였던 1968년과 비교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색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2008년 미국에서 1968년 미국의 그림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68혁명을 촉발시킨 베트남전 대신 그 자리를 이라크전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1960년대 이후 드물게 활발하게 정치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20대가 과연 기성 정치를 바꿔놓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반전시위·유력 정치인 암살…美역사 흐름 바꿔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버락 오바마는 1960년대와의 차이를 강조한다. 기존의 정치인들, 정치문화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오바마 의원이 비록 68세대에는 속하지 않지만 그에게서 1968년 대선 경선 유세과정에서 변화를 강조했던 로버트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떠올린다. 1968년 대학생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미국의 대표적인 68세대이다. 베트남전 반대와 여성운동·민권운동에 앞장섰던, 기존 질서에 반항했던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는 베트남전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해군 장교로 베트남 전에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6년간 포로생활을 했다. 이처럼 민주·공화당의 미 대선 후보들은 1968년과 밀접한 관계들이 있다. 이번 대선은 흑백·남녀대결이라는 역사적·상징적 의미가 크다.1968년이 40년간 미국 사회에 미친 영향과 한계를 평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흑백과 성 차별의 벽을 극복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기에 더욱 관심이 높다. 1968년은 연초부터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잇따라 터졌다. 베트남전쟁의 흐름과 여론을 180도 바꿔놓은 ‘테트 대공세’(북베트남·베트콩의 음력 정월 기습 대공격)와 반전시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대선 출마를 선언한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유혈폭력사태로 얼룩진 민주당 시카고 전당대회,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 당선. 그리고 상업주의와 성의 상품화에 반대하며 속옷을 불태우며 미스 아메리카 반대 시위를 벌였던 여성운동가들. 뉴욕 컬럼비아대 점거농성 사건 등등. 브루스 슐만 보스턴대 역사학 교수는 미 국립라디오방송(NPR)과의 인터뷰에서 “1968년은 미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케네디와 킹 목사의 암살과 폭력시위로 1960년대 피어오르던 평화적인 개혁에 대한 희망은 산산조각났다고 했다. 킹 목사의 암살은 미국 소수민족들에게 새로운 자각을, 각성을 가져왔다고 슐만 교수는 평가한다. 더 이상 다민족·다인종이 용광로에서 섞여 하나인 양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민족적·문화적 자각을 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문화가 전성기를 맞게 되고, 아메리칸 인디언, 아시아계, 히스패닉 등 다문화가 발전하게 된다. 문화적으로는 정치와 대중문화의 결합이 본격화된다. 닉슨은 대선 후보로는 처음으로 TV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정치와 대중문화의 벽을 허문다. ●같은 20대지만 올해 오바마 세대는 다른 특징 올해 미국 대선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20대 젊은층의 높은 관심과 참여다. 그동안 정치적 무관심층으로 분류됐던 20대는 올해 대선에서 변화의 선두주자인 민주당의 오바마를 열렬하게 지지하며 적극적으로 선거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40년 전 미국사회와 문화의 변화를 외쳤던 선배들의 맥을 잇고 있지만 차이점도 극명하다. 1968년 당시 컬럼비아대 반전시위를 주도했던 마크 러드와 로버트 프리드만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과 같은 68세대와 2008년 ‘오마바 세대’는 이상주의와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전술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68세대는 기존 체계와의 대결을 통해 변화를 추구한 반면 오바마 세대는 기존 질서와 체계 내에서의 변화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같은 차이의 근본 원인을 시대상황의 변화에서 찾고 있다.1968년 당시에는 징병이라는 엄연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2008년에는 이라크전에 징병당할 가능성이 없는 만큼 절실함이 덜하다는 것이다. ●보수·진보의 갈등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과제 68혁명은 민권운동과 여성운동 등 미국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보수·진보간 첨예한 갈등이라는 부정적인 결과가 낳았다. 이같은 갈등, 분열적인 양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과제로 남아 있다. 68세대와는 달리 2008년 오바마 세대는 충돌·대치를 통한 변화보다는 체제 속 변화를 표방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변화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같은 분석 틀의 옳고 그름을 오바마 세대가 오는 11월 대선과 이후 미국사회의 방향을 통해 입증해보일 것으로 평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kmkim@seoul.co.kr ■ 직업은 달랐지만 치열하게 살았다 그해 4월 컬럼비아대 시위 지도자의 12일 |워싱턴 김균미특파원|1968년 4월23일부터 7일 동안 미국 뉴욕의 명문 컬럼비아대학에서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학교 건물을 점거하며 시위를 벌였다. 대학측이 할렘 인근의 공원에 체육관을 지으려는 것을 인종주의 문제로 판단해 학생들이 실력행사에 나섰다. 저변에는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반전 메시지가 강했다. 단식투쟁, 대학건물 점거, 경찰의 강제해산으로 이어진 컬럼비아대 사태는 당시까지는 최대 규모의 학생시위였고, 이후 다른 대학 시위의 모델이 됐다. 당시 스무살이 갓 넘었던 컬럼비아대학 시위 주도자들은 어느새 환갑이 훌쩍 넘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전문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위 주도자 4명의 어제와 오늘을 추적한 기사를 실었다. 마크 러드(60)는 당시 반전 시위를 주도한 미국 최대 대학생 조직인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맹’의 컬럼비아대 학생회장이었다. 대학시위 이후 미국에서 혁명을 꿈꾸는 ‘웨더 언더그라운드’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다 탈퇴,7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뉴멕시코 핵폐기물 처리, 쓰레기처리장 건립 반대운동과 이라크전 반대 운동 등에 참여하고 있다. 뉴멕시코주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은퇴했다. 로버트 프리드만(60)은 당시 컬럼비아대학 신문인 컬럼비아 스펙테이터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이후 빌리지 보이스 편집장을 거쳐 월스트리트저널과 경제잡지 포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블룸버그통신의 국제경제뉴스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1968년 당시 시위 속보 뉴스레터를 제작하고 시위대간에 연락책을 맡았던 낸시 비버만(여·60)은 하버드대와 뉴욕대, 뉴욕시립대에서 법률을 강의하다 현재 뉴욕에서 여성을 위한 주택과 경제개발회사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레이먼드 브라운(61)은 현재 뉴저지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수단 다르푸르 피해자들을 변호하고 있으며, 법률 관련 TV프로그램을 진행한다. kmkim@seoul.co.kr ■ 1968년 미국의 주요 사건 ▲1.30 테트 대공세(북베트남·베트콩의 음력 정월 기습 대공격) ▲3.16 미군, 베트남 미라이 대학살, 로버트 케네디 민주당 대선 후보 출마 선언 ▲3.31 린든 존슨 미 대통령 재출마 포기 선언 ▲4.4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4.23∼30 미 컬럼비아대학생 점거시위, 반전시위로 확대 ▲6.5 로버트 케네디 암살 ▲8.22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반전시위대와 경찰 유혈충돌 ▲9.7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반대시위,2차 페미니즘 운동의 시작 ▲11.5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 미 대통령 당선 ▲12.24 유인 우주선 아폴로 8호, 사상 처음으로 달 주위 공전 성공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요요는?…1500만원 훌쩍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요요는?…1500만원 훌쩍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요요는 얼마일까? 세계 최고가 물품을 소개하는 사이트 ‘most-expensive.net’에 따르면 경매를 통해 1만 6029달러(약 1590만원)에 판매된 요요가 현재까지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요요가 비싼 이유는 두 유명인사와 관련이 있기 때문. 미국의 전설적인 컨트리 뮤지션 로이 어쿠프(Roy Acuff)의 자산 경매에서 판매된 이 요요에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유명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사인이 있다. 로이 어쿠프는 무대에서 요요 공연을 선보였는데 영부인의 생일축하 자리에서 닉슨 전 대통령과 함께 요요를 던지는 사진은 당시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이 행사 후 닉슨 대통령은 요요에 사인을 해 로이 어쿠프에게 선물했고 이 요요가 경매에서 1500만원 넘는 가격에 낙찰되면서 ‘세계 최고가 요요’ 기록을 갖게 됐다. 한편 현재 구입 가능한 최고가 요요는 미국의 요요회사 던컨(Duncan)의 ‘골드 퓨전’ 모델로 가격은 250달러(약 24만8000원)다. 전투기 제작에 쓰이는 것과 비슷한 품질의 알루미늄을 사용했으며 정교한 볼베어링 축을 이용해 회전력을 높였다. 요요 회전 지속시간 세계기록도 이 제품을 사용해 세워졌다. 사진=닉슨 전 대통령과 로이 어쿠프(사진 위), 던컨사 골드퓨전 (most-expensive.net)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기철의 플레이볼] 마빈 밀러와 메이저리그

    미국 스포츠계 영향력 순위를 꼽으면 항상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대표인 돈 피어가 버드 셀릭 커미셔너보다 앞에 나온다. 노조 대표가 이렇게 막강해진 것은 절대적으로 마빈 밀러의 공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백만장자로 만든 최고의 공로자이지만 200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데 실패했다. 다만 2003년에는 44%의 찬성표밖에 얻지 못했는데 지난해 64%로 높아진 것이 위안거리였다. 같은 시대에 커미셔너로 일했던 보위 쿤은 25%에서 17%로 찬성표가 오히려 줄었다.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려면 75%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투표인단에 구단 경영진이 포함되고 이들에게 노조 대표 밀러의 역할은 원수처럼 보이는 게 표로 나타된 셈이다. 밀러의 업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물론 자유계약선수 제도를 만든 일이다. 하지만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여러 일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야 했다.1966년 미국 철강노조의 경제분석관으로 일하던 그를 노조 대표로 영입하면서 선수들이 상임 변호사로 추천한 인물이 전직 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이었다. 그의 정치적 입김을 이용하려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밀러는 닉슨이 선거에나 신경 쓰지 선수들을 위해선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자리를 걸고 반대했다. 실제로 닉슨은 대통령 선거에 모든 시간을 쏟았고 밀러가 철강 노조에서 데려온 젊은 변호사 딕 모스가 오히려 해박한 법률 지식을 활용해 선수노조가 자리를 잡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 채용 다음으로 그가 신경을 쓴 분야는 선수들의 자립심과 단결력을 키우는 일이었다. 일부 선수 대표들과 구단주들은 올스타전 수입 가운데 15만달러를 선수노조 예산으로 쓰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밀러는 이럴 경우 선수노조의 독립성을 해치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대신 수입원으로 발굴해 낸 것이 코카콜라와 맺은, 병뚜껑에 선수 사진을 넣는 계약이었다. 또 야구카드 제조사와의 계약을 성사시켜 선수노조의 운영자금으로 충당했다. 현재는 수익 증대를 위해 메이저리그 마케팅 전담 회사인 MLBP가 대행하고 있다. 이런 수익원 확보가 가능했던 이유는 메이저리그가 계속해서 이익을 냈고 선수노조는 이익의 분배를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프로야구처럼 통상 지출이 수입의 10배를 차지하는 구조에서는 초상권 등의 수입 분배를 유리하게 하면 결국 연봉이 줄어든다. 구단이 선수에게 더 많이 분배해준 만큼 계열기업이 추가로 지원금을 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적자구조가 해결되지 않는 한, 마케팅 수익을 두고 일어나는 분쟁은 부질없는 일이 되고 만다. 최소한 수입이 비용의 절반을 넘어서야 어느 정도 분배 요구가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다. 따라서 지금은 분배보다 성장이 필요한 때다.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cobb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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