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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고소하라” 온·오프라인 공동전선

    ‘나를 고소하라’‘조선일보 취재·인터뷰 거부운동’ 등 안티조선운동에서명한 지식인은 어떤 사람들일까.진보성향의 지식인 그룹이 주류를 이루고있는데 선도그룹은 언론학자들이다.그 면면을 보면,자신이 주도하고 있는 ‘인물과 사상’(월간·계간)을 통해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운동’을 전개해온 전북대 강준만 교수를 비롯해 김동민(한일장신대)·김서중(성공회대)·임동욱(광주대)교수 등이다.원로 언론학자인 한양대 리영희 교수도 여기에동참하고 있다. 학계에선 사회학 전공자들이 주로 서명에 참여했다.강정구(동국대)·김동춘(성공회대)·조희연(성공회대)교수 등을 꼽을 수 있다.이들이 소속된 진보적 학술단체인 민교협·학단협소속 교수들도 일부 서명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문인들 가운데는 시인 김정란씨(상지대 교수)와 노혜경씨가 초기 멤버.소설가 황석영씨는 5월말 조선일보 인터뷰 거부를 선언한데 이어 자신의 작품이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후보작에 뽑힌 것을 거부하는 글을 발표했다.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 박태순씨는 “75년 조선·동아의 기자 강제해직 당시 작가회의 전신인 자유실천문인협회가 조선·동아에 대한 기고거부를 선언한 적이 있는데 아직 그 선언이 유효하다”는 변과 함께 동참했다.이밖에 시인 허만하·최영철·변영태씨,소설가 김곰치·전명숙씨,문학평론가구모룡·김경복씨 등이 서명했다. 언론계에선 오동명(전 중앙일보)·정지환(월간 말)기자,법조계에서는 김칠준·김형태 두 변호사가 ‘나를 고소하라’에 서명했다.언론·시민단체는 성유보 민언련 이사장,참여연대 손혁재 협동사무처장 등이,그리고 재불 문화비평가 홍세화씨,자유기고가 진중권씨가 서명에 참가했다.‘우리모두’의 한관계자는 “서명운동이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진행중”이라면서 “조만간 서명자대회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佛 ‘르몽드‘ 한국어판 발간 임춘웅씨

    세계적으로 높은 성가를 얻고 있는 프랑스의 국제문제 전문지 ‘르몽드 디쁠로마띠끄’의 한국어판이 최근 첫 발간됐다.‘서본뉴스 코페레이션(사장임춘웅·전대한매일 이사)이 ‘월간신문’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펴내는 이 신문은 프랑스 원판을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전문가의 글을 추가해국내외의 고른 시각을 전하고 있다. 임 사장은 “세계를 미국 일변도에서 벗어나 균형을 갖고 살펴볼 수 있도록하겠다”고 말했다.다음은 임 사장과의 일문일답. ■이 신문의 한국어판 발행이 갖는 의미는. 이 신문은 유럽내 좌파입장에 서는 진보적 신문으로 보수일변도의 한국 언론풍토에 새로운 자극이 될 것이다.또 다양한 정보와 시각을 제공함으로써우리 언론이 갖는 편향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는데 일정한 역할을 할 것으로기대한다. ■창간호인 ‘8월호’는 얼마나 찍었나. 만부 정도 찍었다.정치학회 교수들과 전국 각 대학도서관 등에 배포했다.앞으로 5만부 정도를 제작해 국회,외교통상부,통일부 및 각종 연구소 등에 보낼 계획이다. ■한국 관련 소식이적은 편인데. 앞으로 9월호부터 한완상(상지대 총장) 한승주(고려대 교수) 리영희씨(한양대 명예교수)등 진보적 성향의 필진을 구성,한국면도 제작할 계획이다.전제지면의 6분의 1정도로 생각하고 있다.통일·외교문제 외에 국내정치는 싣지않는다는 것이 편집 방향이다. ■이 신문의 독자층은. 이 신문은 유럽에서도 논문인용과 어렵고 현학적인 문장 등으로 정평이 나독자층이 한정돼 있다.특히 서구사회가 외면해온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같은 제3세계에 대한 지면을 많이 할애해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읽히고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영향력 있는 소수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만들고있다. 최광숙기자 bori@
  • [네티즌 칼럼] 인터넷 ‘파이’와 지식인

    이 시대에 지식인들의 값어치는 얼마쯤 될까? 강준만 홍세화 김규항 진중권노혜경 백낙청 리영희 황석영….같은 실천하는 지식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적고 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들여다본다.그 이름들 옆으로는 무언가 큰 힘이 관류하고 있는 듯하다.실천하는 지식인들은 가만히 강당에 안주하거나 입과 글을 아끼는 지식인들과는 다르다.그들은 동료를 귀찮을 정도로따라 다니며 태도 표명을 요구하고 가끔씩은 은근히 양심을 찔러보기도 한다. 70·80년대에 지식인은 거리에서 독재권력과 맞부딪쳐 싸웠다.하지만 그후많은 지식인이 권력에 동승하면서 이름값을 하지 못한 채 기성사회에 안주하고 해묵은 것들에 매몰되기 일쑤였다.새 천년이 시작된 지금도 지식인 사회의 표면은 그렇게 발전적이지 못한 것 같다.대학은 여전히 밥그릇 싸움이나하고 있고,언론계도 냉전과 정치권의 이해에 걸려 제목소리 대신 이미 갖고있는 권리를 앞으로도 계속 누리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에선 이미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이 땅에 새로운 지식인의 시대가 오고 있는 점이다.그동안 한국의 지식인은 고립되고흩어져 있었다.구심점이 될 하나의 수단을 가지지 못했다.학회나 협회도 이익집단으로만 기능했다.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용틀임이 일어나고 있다.예전에는 지식인이 발언하면 단순히 경청하거나 분개하는 수준에 그치던 국민이지금은 먼저 결집해서 지식인을 불러내고 있다.그것은 인터넷으로 가능하게됐다.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는 지식인들은 강당에 처박혀 있거나 이론의 정체가역력한 지식인들에게 논쟁을 하자고 말을 시킨다.인터넷으로 출발하는 논쟁은 오프라인으로 넘어가고 다시 온라인으로 되돌아온다.또 네티즌의 평가가잇따라 내려진다.이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지식인은 경쟁적으로 인터넷으로들어오고 있다.네티즌에게 호명받지 못하는 지식인들은 네티즌에게 일방적으로(?) 도덕성과 용기를 검증받고 있다.새로운 신용이 형성되고 변방에서 새로운 힘이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지식인의 장기는 제 잘난 체이며,특기는 분열하기이고,잘하는 짓은 혼자 놀기다.그러나 새로운지식인 시대에는 지식인들은 서로 협력하고 경쟁할수밖에 없게 됐다. 왜냐 하면 인터넷 파워라는 파이는 혼자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이다.예전에는 언로를 독점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권리를 본래부터 갖고 마음대로 쓰면서 사회의 진로를 제 마음대로 농락하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지만 이제는 네티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된것이다. ‘안티조선’운동도 바로 그 연장선 상에 있다.특정 언론의 논조가 한국 사회의 미래 비전에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네티즌이 거대 권력기관이 된언론사를 매일 비판하고 있다.예전 같았으면 외면하고 말 일이었다.제풀에쓰러지겠지 하며 덮어두면 그만이었다.지식인조차 외면했다.그러나 이제는조선일보가 반응하고 지식인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인터넷 인구는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2002년 후 IMT2000이 일상화되면 3,500만 인구가 24시간 인터넷 세계의 가족이 된다.파이는 거대해지고 있다.네티즌들은 도처에서 기성 지식인들을 향해 도발하고 있다.과거의 신문,잡지,방송 등을 장악했던지식인 권력은 약화하고 있다.그 대신 네티즌이 개척해가는 모럴,유행,교양이 들어차고 있다.그 대열에 함께 나선 지식인들로 인터넷은 더욱 달궈지고 거대한 소용돌이가 인다.이 태풍과도 같은 흐름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종전의 지식권력들은 인터넷에서 함께 배우고 각성하거나 아니면 도태하고 처참하게 낙오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새로운 인터넷시대에 지식인은 곧 네티즌이기 때문이다.인터넷에 들어와서 시그널을 보내지않는 과거의 독점적 지식권력은 이제 패퇴한다.또한 과거의 목소리를 되풀이하는 사람들도 세상의 진전 앞에 무참하게 망신을 당할 것이다.이젠 네티즌으로부터 깨달아야 한다. drkim@simplexi.com
  • 北서 통보한 8·15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서울·경기)

    표 보는 법=이름,성별,나이,본적지,헤어질 당시 주소,헤어질 당시 직장 직위,남쪽 가족 이름 및 관계 순으로 정리 [서울] ■리기명 남,70,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4-264,서울 동대문구 신당동,한양공대 건축과 학생,리무욱(부),정예분(모),기영 기봉 기남 기화(형제),리재홍리재영(처남) ■림순응 남,65,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서울 공업학교학생,림승택(부),김음분(모),춘응 영숙 원응(형제),무성(조카) ■로 남 남,68,충남 홍성군 홍주면 대교리,경기 양주군 의정부면 의정부리,의정부면 양주국민학교 교원,로제순(부),리춘홍(모),삼 강 미도(형제),제윤(삼촌),수친 룡식(4촌) ■로영근 남,68,서울 용산구 이태원,강원 영월군 영월읍,영월화력발전소 건설장 노동,로춘식(부),백안순(모),귀손 영구 영순 영자(형제),옥린 옥란(조카) ■문양옥 여,67,경남 거창군 거창면 동리,서울 종로구 숭인동,숙명여자중학교 학생,문윤상(부),신숙재(모),경자 종옥(형제),괴상(삼촌),무원(4촌),신명숙(이모) ■전기홍 남,68,서울 성동구 상왕십리,서울 영등포구대방동,성남중학교 학생,전한갑(부),박예분(모),기춘 기송 기옥 기남 기태 기륭(형제) ■조진용 남,69,서울 부여군 임천면,서울 종로구 동승동,서울대학교 법과대학 1년 학생,조석영(부),정선화(모),진만 진수 진회 진열(형제),재영(삼촌) ■임재혁 남,66,서울 동대문구 용두정 199,서울 중구 충무로1가,북양상점먹공장 노동자,임휘경(부),최경희(모),창혁 정혁 봉혁 부자 명자(형제),최봉주(외삼촌) ■김동진 남,74,서울 종로구 명윤동,서울 동대문구 안암동,서울 고려대학교 경제학부 학생,김복길(부),정복순(모),동만 동순 경순 경자(형제),동호 동욱(4촌) ■김영황 남,69,서울 종로구 충신동,서울 중구 필동,동국대학교 문화부 학생,김윤택(부),박옥령(모),리성숙(형수),김우현(조카),장재원 장정민 장정엽 장정모(이모4촌) ■리영수 남,66,서울 영등포구 본동,서울 용산구,서울 교통학교 학생,리복성(부),김봉자(모),영호 인길 순길 인순(형제),영숙(4촌누이) ■김옥배 여,62,서울 종로구 가회동,서울 종로구 계동,서울 종로구 창덕고등여학교 학생,김현도(부),정길순(모),유광 숙배 영배(형제),안교준(시아버지),황성래(시어머니) ■박 섭 남,74,경북 상주,서울 서대문구 동소문동,극단 ‘신향’ 배우,박창례(부),김간란(모),병련(동생),김순경(처제) ■김 득 남,68,경기 인천시 송림동,경기 인천시 서림동,인천시 인천동산중학교 학생,김림(부),하정일(모),석 복 의형 말형(형제),김욱(4촌) ■홍신희 남,68,서울 종로구 사간동,서울 중구 본정,서울 금성제약회사 노동자,홍붕식(부),리영주(모),백희 규희(4촌),기웅 기천 기문(5촌조카),리택주(외3촌) ■김용현 남,70,서울 종로구 다동 99,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신공덕리,서울대학교 공과대학 2학년 학생,김성동(부),최영희(모),김익동(삼촌),기현 옥현 정남 복현(4촌),최광섭(외4촌) ■리상규 남,65,서울 중구 서사은정,서울 종로구 교동,경기도청 이발소 견습공,리수봉(부),리수환(삼촌),금배 은배(4촌) ■리명호 남,63,서울 마포구 공덕동 122,서울 용산구 원효로2가,원효로 중학교 학생,리중환(부),리남영(모),길호 청자(형제),호경(4촌),노마(고모),손창학(고모부),손규수(고모4촌) ■리원상 남,60,경북 칠곡군 왜관면,경기 서울 성동구,경기 서울 청구국민학교 학생,리영욱(부),리소조(모),일상 영자(형제),리순히(고모),리순(고모부),리경조 리애성(이모) ■주영섭 남,68,서울 종로구 청진동,서울 종로구 계동,휘문중학교 학생,주병한(부),홍갑희(모),경자(누이) ■윤경순 여,72,서울 종로구 연건동,서울의학대학병원 약국처방 검열원,윤태형(부),고춘경(모),완 근(형제),태협(삼촌),용 용순 수옥(4촌) ■김영숙 여,68,서울 종로구 혜화동 32,서울 동대문구 안암동,서울 동대문구 성신여자중학교 학생,김한순(부),신경순(모),정숙(언니),김우일 김승일(조카),신호열 신호영(외3촌) ■조성명 남,64,서울 상주군 낙동면 운곡리,서울 영등포구 대방동,서울 공업중학교 학생,조형면(부),전씨(모),성대(동생),성욱(4촌),이연(3촌) ■서윤만 남,72,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서울 종로구 낙원동,서울 종로구경교자동차수리공장 노동,서승복(부),리백분(모),일영(누이),천금복(매부),리장제(이모4촌) ■주영훈 남,69,서울 종로구 관훈정 161,서울종로구 명륜동,서울 동국대학교 정치경제학부 학생,주진환(부),문경자(모),영관 영인 영희 영애(형제) ■서병옥 여,66,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경기 서울시 서대문구 홍제동,서울여자상업중학교 학생,서상용(부),남경의(모),병서 병상 병희 병숙(형제),서경원(아저씨),서상욱(조카) ■김재호 남,65,서울 마포구 엽리동,서울 서대문구 만리동,서울 서대문구균명중학교 학생,김재호(부),차경희(모),재만 재환 재순(형제),차경상(외삼촌) ■강옥순 여,64,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노동,강양우(부),어인숙(모),신하(오빠),신호(4촌),어문호(외3촌),어일우 어일순(외4촌) [경기] ■김응용 남,61,경기 강화군 강화면 갑곶리,경기 강화군 강화읍,경기 강화군 강화공립국민학교,김오순(부),배순자(모),대용 명숙(동생),복실(고모),기철(삼촌),운용(4촌) ■김윤흠 남,82,경기 인천 금곡동,경기 인천시,경기도 인천시 부두 노동자,김중히(부),심사신(모),순흠 연순 옥녀 순분(형제) ■김상렬 남,69,경기 부천군 용유면 남북리,경기 인천시 화수동,경기 인천시 영화중학교 학생,김동빈(부),최씨(모),종렬 광렬 승렬 경렬(형제) ■김홍래 남,67,경기 용인군 남사면 아곡리,경기 부천군 소사면 개봉리,경기 부천군 소사면 개봉리 농업,김부성(부),리옥기(모),형식 형기 형덕 형무(형제),형태 형묵(4촌) ■고천식 남,66,경기 고양군 은평면 불광리,서울 서대문구,서울중학교 학생,고영원(부),김복님(모),준자 은자 광자(4촌),김형기(외4촌),박희진 박수진(고모4촌) ■리종원 남,71,충남 천안군 성환면 용곡리,서울 종로구 수송동,서울 조선전기공업중학교 교원,리택영(부),남인(모),종배 종균 종한(형제),지윤 성렬경은(조카) ■리호범 남,72,경기 부천군 오정면 고강리,서울 종로구 사직동,서울 종로구 윤히구 자동차수리공장 수리공,리계로(부),윤계재(모),락범 치범 원범 오범(형제),재영 재호(조카) ■리수권 남,69,경기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서울 용산구 체신학교 학생,리귀학(부),리귀희(모),수영 수종 수렬(형제),명운 명범(조카) ■리상순 남,66,경기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경기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 농업,리현준(부),장순이(모),호순 성순 정순 자순(형제),창순 완순(4촌동생) ■민창근 남,67,경기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인천시 만석동,인천 동양방직공장 준비직장 수리공,민억석(부),리영희(모),정숙 정옥 정림 정자 정순 정애(형제) ■박봉옥 여,72,경기 인천부 송현정,경기 인천시 관동,경기 인천시 대동석유주식회사 타자수,박창희(부),김일남(모),홍영애(딸),기옥(동생),인옥 상옥 인웅(4촌동생),원배(외삼촌) ■박두원 남,68,경기 수원군 양감면 송산리,경기 수원군 양감면 송산리 농업,박용복(부),우씨(모),규원 순원(형제),충원(4촌) ■박상업 남,68,경기도 평택군 오성면 학현리,경기도 평택군 오성면 안중리,안중고등공민학교 학생,박태원(부)남씨(모),상룡 상덕 상무 상희 (형제) ■변태식 남,67,경기도 경성부 당주동 74,서울시 종로구 화동,경기 중학교학생, 변영은(부)김용은(모),관식(형제),희창(조카),충식 천식 대식 인식(4촌) ■심혁진 남,62,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경기도 김포군 양서면 방화리,농업,심영식(부)리아지(모),심혁정 갑순(형제),천기 수기(조카) ■조재식 남,66,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후리,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하품리,여주 금사고등공민학교 학생,조상길(부)간난(모)재수 재덕 재연 재금 재분(형제) ■최상길 남,68,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가산리,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가산리,농업,최성옥(부)리보금(모), 상원 상춘 삼숙 상화(형제),상철 상녀(사촌) ■최영식 남,64,경기도 고 양군 숭이면 미아리,서울 종로구 청운동, 청운동 경기상업중학교 학생,최영묵(부), 리부전(모),규식 관식(형제) 성호 성희(조카) ■안순환 남,65,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초일리,경기도 광주군 서부면 초일리,농업,안병홍(부), 리덕순(모),순옥 민환 문환 윤환 인환(형제) ■안인택 남,66,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양주군 대청관 노동자,안경삼(부), 모숙자(모), 인수 우삼(형제), 정돈(삼촌), 인철(사촌) ■유장순 남,68,경기도 강화군 화점면 이강리,경기도 강화군 화점면 이강리,농업,유정봉(부)장음전(모),병숙 정남 정옥 정례(형제) ■황하익 남,71,경기도 강화군 화점면 부근리,서울 영등포구 노량진동,서울동양대학 학생,황우일(부), 김정민(모), 계익 동익 효익 선익(형제),영식(조카) ■홍응표 남,64,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상암리 수상동,경기도 고양군 은평면상암리,상암리 학생,홍영근(부),윤씨(모),양순(형제),삼녀 추녀(4촌)
  • 문화재 파손막은 리영희교수 조계종서 표창 받는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6·25전쟁중 강원도 양양 신흥사의 문화재 파손을 막은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에게 오는 8월9일 백담사에서 열리는 만해상시상식때 표창장을 수여키로 했다. 리교수는 1951년 전쟁 당시 보병11사단 9연대 중위로 설악산 전투에 참가해소실될 뻔한 신흥사 극락보전과 경판 등 성보(聖寶)를 구한 공을 인정받아표창받게 됐다고 총무원측은 밝혔다, 총무원측에 따르면 리교수는 38도선을 넘어 북진하던중 신흥사에서 병사들이 몸을 녹이기 위해 불경 목판을 뽀개 불을 피우는 것을 보고 부연대장에게달려가 병사들이 즉시 불을 끄고 경판을 회수하도록 명령을 내리도록 했다. 리교수는 당시 타다남은 경판조각을 모두 주워 법당 좌측 판고에 차근차근꽂아놓게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영희 교수는 이와관련 한 불교계 신문에 기고한 글을 통해 “당시 많은장병들이 38도선을 넘으면서부터 점령지라는 의식이 앞서 모든 것이 파괴와노획의 대상처럼 비치는 성 싶었다”며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까닭은 6·25전쟁에서 국군이 들어가는 곳마다 무차별적으로 파괴를 일삼는것에 대한 젊은 장교의 정의감에서였다”고 회상했다. 김성호기자
  • 제4회 만해상 수상자 발표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조계종 총무원장 서정대)가 제정한 만해상 심사위원회(위원장 李壽成)는 5일 제4회 만해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수상자는 △만해실천상 리영희(李泳禧·한양대 명예교수) △만해평화상 스테판 린튼 유진벨재단 이사장 △만해시문학상 오세영(吳世榮·시인·서울대교수) △만해학술상 신용하(愼鏞廈·서울대 교수) △만해예술상 신응수(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만해포교상 사단법인 ‘좋은 벗들’(이사장 법륜스님) 등이다. 이들에 대한 시상식은 오는 8월 9일 설악산 백담사 만해학교에서 열리는 제2회 만해축전 행사장에서 개최되며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1,000만원과 순금 만해 메달이 수여된다. 장택동기자 taecks@
  • 네티즌, 유명인사 ID도용 ‘말썽’

    네티즌들이 유명인사들의 ID를 도용해 사이버공간에 무책임한 글을 마구 올리는 등 물의를 빚고 있다.지난 5월 16일자 안티조선 ‘우리모두’사이트에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의 이름으로 올라온 글은 조 편집장이 쓴 글이 아닌것으로 밝혀졌다.[대한매일 5월24일자 17면 보도 참조] 이 글은 평소 이 사이트에 자주 글을 쓰는 한 네티즌이 올린 것으로,조 편집장의 평소 지론과어투를 빼닮아 다른 네티즌들도 깜빡 속았다는 후문이다.조 편집장은 “누가 내 이름을 도용하여 글을 올린 것 같다”면서 “당사자의 사과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월에는 ‘우리모두’ 사이트에 참여연대 김기식 실장의 이름으로 된 글이 올라온 적이 있는데 이 역시 김 실장의 이름을 도용한 것으로 밝혀졌다.최근에는 한양대 리영희 교수의 이름으로 리 교수를 비방하는 글이이 사이트에 올라온 적도 있다.한 네티즌은 “다른사람의 이름을 도용하여무책임한 글을 남발하는 행위는 명예훼손 차원을 넘어 범죄행위”라고 지적하고 “사이버공간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만큼 그에 버금가는 예절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시인 노혜경씨는 “해당인물의 평소 주장과 다른 내용이면 ID도용임을 바로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면서 “ID가 도용된 사실을 알면 바로 항의하는 등 자기이름지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 민족화해협, 남북정상회담 원로간담회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23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종홀에서이강훈(李康勳) 광복회 고문,김성수(金性洙) 성공회 주교,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강만길(姜萬吉) 민화협 상임의장 등 39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북정상회담의 방향제시를 위한 원로간담회(사진)’를 개최했다.강 의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번 정상회담은 우리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민족적 대사건으로 역사적 전환기”라고 규정하고 “각계 원로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한다”고 말했다. 토론에서 손장래(孫章來) 현대정공 고문은 정부에 건의할 ‘원로간담회 취지문’에 “북측 배려차원에서 7·4 공동성명을 언급해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박광원(朴光源) 통일민주협의회 회장은 “통일이 절실함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이문영(李文永) 경기대 석좌교수는 정상회담에서 남북의상호인정과 상호이익을 강조했으며 송월주(宋月珠) 전 조계종 총무는 전국민적 지지와 관련단체,정부간 협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광주민주항쟁 왜곡 보도 많았다”

    언론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5·18 당시 우리 언론은 당시 광주민중항쟁을 왜곡,보도했다”는 뼈아픈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 15일 언론재단과 기자협회는 광주전남기자협회(회장 임영호·광주CBS정치행정팀장)와 공동으로 ‘5·18 민중항쟁에 관한 왜곡보도와 그 후 20년’이라는 주제로 제6회 기자포럼을 개최했다.이날 토론회에서는 80년 5월과그 이후 ‘광주민중항쟁’과 관련한 국내언론의 왜곡보도 실태가 낱낱이 공개됐으며,이에 따른 언론의 사죄와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행사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리영희 한양대 교수는 “광주항쟁 당시소수 기자들의 저항도 있었지만 저항과 비판,민중의 방패로서의 언론은 그날로 끝났다”고 지적하고 “‘군사정권 치하’라는 당시 상황은 언론의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성 5·18기념재단 기획위원장은 서울지역 신문의 기사 70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분석에 따르면,당시 언론보도 가운데 5·18에 대한 ‘왜곡보도’가 41.4%로 가장많았고,‘사실보도’ 25.7%,‘어느 정도 사실보도’ 21.4%,‘보도 않음’ 11.4%순으로 나타났다. 또 80년 이후의 보도를 분석한 송정민 전남대 교수는 ▲광주항쟁은 시위·추모의 틀로 범주화 됐고 ▲이 때문에 항쟁의 원인,학살책임자 등의 문제가가려졌으며 ▲결국 5공∼문민정부 하에서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지적했다.송 교수는 또 “광주항쟁을 데모 전문가들의 집단행위 또는 제사의식으로 만들어버린 언론은 보도행태에 대한 최소한의 자성이라도 있어야 한다”며 언론계의 진지한 반성을 촉구했다.한편 지난 12일 순천향대에서 열린언론학회 학술행사에서 이민규 순천향대 교수는 “79년 10월 27일부터 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 24일까지 총448일간 계엄당국이 검열한 기사는 27만 7,906건이며 이 가운데 9.8%인 총 2만7,058건이 전체 혹은 부분 삭제됐다”면서“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당시 언론인들이 광주항쟁의 진실을 보도하려고 노력했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정운현기자 **
  • 올 곧은 元老 12人의 인생과 학문

    흔히 우리사회에는 원로가 없다고 한다.왜 없을까마는 배우고 닮을만한 표상이 많지 않다는 뜻일게다.그러나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학문적 업적은 물론 왜곡된 현실모순 속에서도 올곧은 삶을 살아온 원로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다만 이들은 남앞에 나서기를 자처하지 않았고 더러는 질곡의역사속에서 폄하돼 가려져 왔던 탓이 크다. 역사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계간지 ‘역사비평’은 우리사회에서 학문적 성과와 ‘행동하는 양심’으로 존경받고 있는 원로 12명의 인터뷰기사를 묶어‘학문의 길 인생의 길’(역사문제연구소 엮음)을 출간하였다.주요 면면을보면,한국사 전공자로 이우성(민족문회추진회 회장)·임창순(전 태동고전연구소 소장)·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서양사 전공자로 민석홍(서울대 명예교수)·차하순(서강대 명예교수),경제사 전공자로최호진(한국경제학회 명예 회장)·주종환(동국대 명예교수),언론학 전공자로송건호(전 한겨레 신문 회장)·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이상희(전 서울대교수협의회장),그리고 여성학(사회학)전공자로 이효재(정대협 명예공동대표)등.이들 가운데 임창순 선생은 지난해 작고하였고,송건호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현재 투병중이다.나머지 인사들도 대개 일선에서는 은퇴하였으나 연구·사회활동의 열정은 아직도 여전하다.정년퇴임 이후 더 바쁘고 노후가 ‘아름다운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2인은 해방후 척박한 우리 사회·학계를 특별한 관심과열정으로 주도하고 개척해온 선구자들로 우리 ‘지성사의 기록’이나 마찬가지다.특히 개인사적 기록을 넘어 학자로서의 삶,온몸으로 맞서싸운 시대상황과 그 이면사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도 담고 있어 우리 ‘동시대사의 생생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선비로 불리는 이우성은 식민사학 극복과 민족사학 성립에 기여한 역사학자로,최호진은 1942년 ‘근대조선경제사’출간을 계기로 한국경제학 연구에 이정표를 남긴 한국경제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는다. 또 민석홍은 프랑스혁명 연구와 한국민주주의 연구에 큰 성과를 남겼으며,임창순은태동고전연구소를 설립,후학양성에 일생을 바쳤고 4·19 당시 교수단데모를 주동하였다.사재를 모두 재단에 기부하였으며 ‘화장유언’을 남기기도 했다.학자보다는 언론인으로 유명한 송건호는 일생을 반독재 언론투쟁에바쳤으며 한겨레신문 창간의 주역이기도 하다.강만길은 식민사관 극복과 민족해방운동사·분단문제에 천착해온 실천적 지식인으로 ‘분단시대’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를 주도적으로 창립한이효재는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타파에 앞장서는등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적 활동을 해왔다.언론인 출신이자 언론학자인 리영희는 분단시대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 등사회비평서를 통해 시대를 앞에서 이끌었으며 수 차례 대학에서 쫓겨나 감옥생활을 했다.차하순은 한국의 서양사학을 반석 위에 올린 공로자이며,주종환은 농업경제학자이자 사회운동가로,이상희는 비판적 언론학의 선구자로 언론개혁을 처음 주장했다.끝으로 조동걸은 한국독립운동사와 현대사학사 개척자로,특히 의병연구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고문은 “주로 진보적 학문 분위기를 지닌 인물로현실의 모순에 타협하지 않고 뚜렷한 자기 주견을 내세우며 치열한 삶을 산
  • 계간 ‘인물과 사상’ 13호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김대중 정권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과 고언을 아끼지 않았던 전북대 강준만 교수(신방과)가 현정권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최근 출간된 계간 ‘인물과 사상’ 13권에서 강 교수는 “김대중 정권은 DJ의 독선과 구태의연한 측근들로 인해 몰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미뒤틀릴 대로 뒤틀린 현정국은 모든게 김 대통령의 손을 떠났으며,설령 김 대통령이 마음을 고쳐먹어도 그의 뜻대로 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이러렀다”고 현 정세를 진단했다.지난 87년 대선 당시 ‘비판적’지지를 주장했던 시사평론가 유시민씨는 ‘2000년 총선,나의 세가지 투표원칙’이란 기고문에서 “능력과 인물이 담보되지 않는한 신당이라고 해서 무작정 찍어주지 않겠다”고 밝혔다.이는 유씨가 ‘비판적 지지’에서 ‘선택적 지지’로의 노선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강 교수는 “리영희 교수가 조선일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은 ‘진보’를 박제화시키는 것”이라며 리 교수가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며,한국의 강단 좌파들이 “연고주의와 소아병적 패거리주의에 매몰돼 있다”며 서울대 김세균 교수와 ‘진보평론’에 대해서도 비판을 비켜가지 않았다. 이밖에도 강 교수는 ‘조갑제 옹호’에 이어 ‘박정희 옹호론’을 펴고 있는 문학평론가 이동하씨,‘섬진강시인’김용택씨,야당원로 이철승씨의 ‘조선일보와의 밀월’ 등에 대해서도비판과 고언을 곁들이고 있다.도서출판 개마고원,9,800원정운현기자 jwh59@
  • 60∼90년대 ‘민주화운동 역사’ 복원

    ‘더이상 늦기전에 민주화운동 자료를 모아 후세에 남깁시다’ 지난해말 국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법’‘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된데 힘입어 학계에서 민주화운동자료관 건립이 본격 추진되고있다.과거 독재정권하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던 일군의 진보성향의 대학교수들은 최근 60∼90년대 한국현대사의 큰 줄기 가운데 하나인 민주화운동을 생생한 역사자료로 복원할 계획을 내놓았다.이는 그동안 우리 역사와 관련된 자료를 미국·일본 등 외국의 기록보존소나 자료관에 의존해온데 대한 학계차원의 반성도 담고 있는 것으로,자료관이 건립되면 민주화운동에 대한 학술적 재조명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특히 이번 민주화운동 자료관은 각계의 논란속에 추진되고 있는 ‘박정희기념관’건립과 거의 동시에 추진되고 있어역사적 의의가 사뭇 큰 것으로 보인다. 지난 12일 ‘민주화운동 자료관 추진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안국동 참여연대빌딩에서 결성식을 갖고 활동에 돌입했다.이날 결성식에서는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김진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등 원로교수 3명이 공동대표로 선출됐으며 실무진에는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민교협)와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소속 중진교수들이 대거 참여했다.안병욱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학단협 공동대표)는 상임 운영위원장을 맡았다.강정구(동국대·사회학·학단협 공동대표),박호성(서강대·정치학·학단협 상임대표),유초하(충북대·철학·전 민교협 공동의장),김정기(서원대·역사학·역사문제연구소장),최갑수(서울대·서양사·민교협 공동의장)·손호철(서강대·정치학·민교협 공동의장)교수와 이부영 전교조 위원장은 공동 운영위원장으로 참여하였다.전체 추진위원은 60여명. 민주화운동자료관 건립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몇몇 소장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바 있다.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조희연·김동춘 교수와 한국정치연구회 정해구 부회장 등이 주인공.이들은 작년 1월 16일 학단협 소속 소장연구자들과 함께 ‘민주주의기념관 건립을 위한 민주화운동자료관 건립준비모임’을 발족,자료수집 등 자료관 건립의 기초활동을 진행해왔다.이들은 작년 7월부터성공회대측의 지원을 받아 자료수집에 나선 후 현재 약5만여 건의 민주화운동 관련자료들을 수집,현재 일부 자료는 분류·데이타베이스화 작업을 마친상태다.그동안 수집한 자료는 ▲성명서·회의자료·소식지·기관지 등 각종합법·비합법 문건자료 ▲플래카드·포스터·팜플릿·깃발·판화·걸개그림등 물건자료 ▲각종 사진·녹취·영상자료 등으로 이 가운데는 ‘6·10항쟁’ 당시 정의구현사제단의 선언문도 포함돼 있다.추진위는 자료관이 완공될때까지 임시로 이 자료들을 성공회대 신축도서관내 임시자료관에 전시,공개할 계획인데 임시자료관및 상설전시장 개관식은 3월 7일로 예정돼 있다. 한편 추진위는 결성식에서 ‘새천년 12대 사업과제’를 발표,향후 사업계획을 내놓았다.기본적인 자료수집 이외에도 ▲민주화운동 관련인사의 구술·녹취작업 ▲민주화운동 역사현장 표지판 부착사업 ▲민주화운동 역사현장 답사코스개발및 역사기행단 운영 ▲시기·지역·인물별 민주화운동단체 변천도작성 ▲민주인사및 독재인사 인명사전 제작 ▲민주화운동 연구서 발간 ▲해외민주화운동 관련자료 수집및 국내반입추진 등이 눈길을 끌었다.자료수집은 과거자료는 물론 현재 진행중인 민주화 관련단체의 활동자료도 지속적으로모아나갈 계획이며 또 체계적·조직적인 자료축적과 관리를 위해 전문 아키비스트(기록자료전문가)들의 도움도 받고 있다. 실무책임자인 안병욱 상임운영위원장은 “우리는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자랑스러운 민주화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기념관은 물론 제대로 된 자료관 하나가 없는 실정”이라면서 “민주화운동자료관은 민주주의 교육의 장이자산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김삼웅 칼럼] 성한 날개와 상한 날개

    리영희선생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글에서 “인간보다 못한 금수의 하나인 새들조차 왼쪽 날개(左翼)와 오른쪽 날개(右翼)를 아울러 가지고시원스럽게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우주와 생물의 생존원리가 아닐까?”라며 ‘두 날개’로 나는 우리의 모습을 그린 지도 10년이 지났다. 올해는 6·25전쟁으로 남북이 동족상쟁을 치른지 50주년,긴 세월동안 열전과 냉전을 거듭하면서 반세기를 보냈다. 그리고 새천년을 맞는 지금까지도 대립과 증오가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남쪽의 오른쪽 날개와 북쪽의 왼쪽 날개는 크게 상처입고 반신불수의 몸체로 힘겨운 세월을 살았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성한 몸으로도살아남기 힘든 세상에 상한 날개로 날다 보니 고통과 부자유가 말이 아니다. 상처입은 날개에는 이념의 족쇄가 걸리고 가뜩이나 약한 날개끼리 치고받다보니 상처는 더욱 악화되고 증오심만 키워졌다.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틈만 나면 대북 증오심을 부채질하면서 냉전적 대결구도로 회귀하려는 세력이 있다. 50년 지속된 대결구도에서얻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한반도는 서해교전과 동해교류라는 화전양면이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을 내세우는 등 북측의 노선이 크게 바뀌지 않더라도 우리가 참고 포용하는 아량을 보여야 한다. 상처입은 한쪽 날개를 버린다면 당장은 시원할지 몰라도 불구가 되고 결국은 비상을 포기하게 된다. 아놀드 캔더 전 미 국무차관은 한국정부의 햇볕정책이 초기에는 순진한(naive) 느낌을 주었으나 일관성 유지로 이제는 현명한(sensible) 정책이 되고있다고 평가한다. 미·중·일·러 주변 4강도 햇볕정책을 지지한다. 오로지한국의 일부 세력이 이를 훼방할 뿐이다. 현실적으로 대북관계에 있어서 달리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알레르기성 반대다. 남북간의 체제경쟁은 이미 끝났다. 다른 모든 것은 놔두고 남북 평균수명을 대비하면 북한은 남자가 10.8년,여자는 13.6년이나 남한보다 수명이 짧다. 평균수명 뿐만 아니라 체중·체격·용모에 이르기까지 현격한 차이가 난다. 체제경쟁이 끝난 것 아닌가.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후일 ‘남한족’과 ‘북한족’으로 종족이 분리될지 모른다. 영향·주거·환경 등 여러가지 조건으로 북한동포들의 체격이 왜소화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일본의 아이누족이나 타이베이의 고산족은 원래부터 작은 체격의 인종이지후천적으로 ‘변형’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인위적으로 ‘남한족’,‘북한족’으로 종족이 갈린다면 단일민족의 수치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조상과 후손에 씻지 못할 죄가 될 것이며 민족만대의 화근이 된다. 본디 하나인 ‘밝고 바르고 큰’ 한민족을 둘로 가르고 한쪽을 ‘말살’의대상으로 여긴다면 형제에 칼질하는 꼴이요,조상무덤에 쇠꼬챙이 꽂는 격이요,역사에 침뱉는 짓이다. 남북문제는 민족과 국제문제라는 이중성 때문에 언론의 보도 논평은 다른외국의 경우와는 크게 달라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어느 적성국가보다가장 적대적으로 보도해왔고 일부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6·25와 냉전체제를 겪으면서 반공주의가 이데올로기인 동시에 국민의 정서와 감정으로 자리잡은데 원인이 있다고는 하지만 국제 냉전체제가 사라지고 한반도에도 화해협력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데도 냉전적 보도관행과 안보상업주의를 버리지못한 것은 언론의 수치다. 1972년 동서독의 기본협정 체결과 유엔 동시가입 이후 양독은 상호체제를인정한 ‘1민족 2국가체제’의 상황이 되었지만 서독언론은 동독을 적대국이 아닌,체제는 다르지만 같은 민족,같은 동포란 인식을 갖고 보도했다. 1988년 동독특파원 윈터는 “나는 독일에서 독일사람의 느낌을 갖는다. 여기(동독)는 내 조국이다. 때문에 스스로 타국에서 특파원의 임무를 수행중인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조국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언론인들이 있었기에 독일은 콘크리트의 유형과 이데올로기라는 무형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의 기적을 일궈냈다. 햇볕정책은 우리쪽에도 이득이 많다. 남북대결로 다시 긴장이 조성되면 누가 한국에 투자를 하고 수출이 가능하겠는가. 햇볕정책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서 빨리 졸업할 수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상한 날개를 치유하면서 두 날개로 날아야 할 이유는 여기서도 찾게 된다.
  • 논객 리영희교수 ‘동굴속의 독백’ 출간

    ‘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분단을 넘어서’ 등의 저자이자 이시대의 대표적 논객으로 불리는 리영희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가 20세기의 끝자락에서 맞은 고희기념으로 글모음집을 출간했다.이번에 펴낸 책은 그동안 리 교수가 발표한 글 가운데서 개인사,칼럼,에세이,수상 등 다분히 인각적 면모와 사상을 엿볼수 있는 글들을 모은 ‘선집’형태다.‘동굴속의 독백’(나남출판)이라는 책 제목과 관련,저자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고 동굴속에 들어가 외쳤던 이솝이야기의 이발사가 한 행동과 나 자신의 글을 대비하기 위해 붙인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은 총6부로 구성돼 있다.제1부 ‘자유인의 단상’에서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스핑크스는 코가 없다’등 70년대 이후 저자가 각종 신문에 발표했던 대표적 칼럼을 모은 것이다. 제2부 ‘삶과 사유의 뒤안길’은 저자가 30년 집필생활의 회상,가족사,젊은시절의 경험담 등을 기록한 내용이며 제3부 ‘전장과 인간’은 고교 영어교사 시절 터진 6·25와 7년에 걸친 자신의 군생활·일화들을 소설처럼 풀어놓은 글들이다. 1∼3부의 글들은 비교적 ‘부드럽고, 가볍고, 일상적인 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를 두고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번 책 출간을 숙의한 후배들의 견해에 따르면, 리영희라는 이름은 ‘경성 인간’이라는 것이다. 열 몇 권의 저서나, 파란많은 사회적 행적이나… 그래서 리영희라는 지식인이 결코 그런 면만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것도 ‘고희’라는 통과의례의 의미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며 자신도 이 점에 대해 수긍이 간다고 털어놨다. 반면 4∼6부의 글들은 여전히 종래 리 교수의 본색을 담은 글들이다.제4부‘난세의 지식인들에게’는 시대의 전환기 때마다 지조를 헌신짝처럼 내던져온 지식인과 언론인들을 향한 리 교수 특유의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담겨있다.‘지식인의 기회주의’‘언론인들은 권력자들의 창녀가 아닐텐데?’등등.제5부 ‘탱크를 녹여서 보습을’은 이 책 가운데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그만큼 저자가 무게를 둔 분야라고 할수도 있다.저자 역시 월남민으로서 몸소 체험한 이산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본문 앞에 ‘나의 고향 삭주 대관’을 실은 것이나,금년 9월에 출간된 ‘반세기의 신화’에실렸던 ‘못다 이룬 귀향’을 다시 실은 것은 모두 이런 뜻에서일 것이다. 이밖에 남북관계·통일문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각교정을 촉구하는 글도 몇편 실려있다. 마지막 제6부 ‘거짓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서’는 한미관계,한일관계 등 한반도 주변정세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담고 있다. 후배·후학들에 떠밀려 고희기념으로 이 책을 출간한 리 교수는 “이런 뜨거운 정의 후학들이 있다는 사실이 바로 지난 세월의 나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자위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근 연세대 대학원생·교수들은 20세기 인문사회과학에 가장 영향을 끼친국내학자로 리 교수를,해외학자로는 프로이트를 꼽은 바 있다.그동안 리 교수의 책을 출간해온 출판사 7곳이 중심이 돼 이 책의 출판기념 축하모임을마련한 것도 출판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우리는 100년동안‘ 완결판 ‘정치와 경제 이야기’나와

    ‘고시출신자들은 당대 최고 엘리트임이 분명하다.우수한 학생이 대체로 법대나 의대로 진학하는 건 일제시기 이래 지속되고 있다.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 이런 분야로만 집중되는 것과 수많은 인재들이 고시준비만을 위해 젊음을 소진하는 일이 과연 바람직할까’ ‘대표적인 반공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은 99년초 극우노선의 배격을 선언했다.그리고 이 단체에서 발간하는 잡지는 한 때 빨갱이라는 비판을 받던 리영희 교수의 인터뷰기사를 실었다.반공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념적 지향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1909년 합방 직전 경제생활의 기준이 되는 척관법 등 도량형을 일본식으로 바꿨다.이전까지는 쌀 한 가마니가 경상·함경도에서는 4∼5두였으나 경기·충청·전라도 등에서는 8두에 이르는등 크게 차이가 났다.현재 쌀은 일본식 됫박이 기준이 됐지만 다른 잡곡의 경우 상품에 따라 용량에 차이가 있을 정도로 우리의 상거래관습은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최근 발간된 ‘우리는 지난 100년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3편,정치와 경제 이야기’의 주요 내용들이다.지난해말 나온 1편 ‘삶과 문화이야기’,2편 ‘사람과 사회이야기’를 잇는 마지막 책.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지난 한세기 동안 진행된 각 분야의 주요 변화상을 망라하고 있다. 지난 3년여동안 소장 역사연구자 10여명이 모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주제 49가지를 추려내,해당 전공 소장학자들에게 집필하게 했다.이같은 시도는 한국출판계에서 이례적인 일.출판사측은 “새천년을 맞아 역사의 저편으로 묻힐 우리의 20세기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따라서 책은 대체로 각 분야의 변화상을 고루 짚었지만 일부에서는 필자의주장이 너무 앞서 듯한 느낌을 준다.예컨대 ‘고시와 출세의 역사’에서 ‘법조인이나 지도자의 자질로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이 의미가 없는 걸까’라고 의미있는 질문을 제기한다.그러나 ‘됫박과 잣대의 역사’에서 과거 우리의 도량형 문란현상과 관련,‘상품화폐경제의 발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해석하는 대목은 다소 이해되지 않는다.아울러 ‘땅,투기의 대상인가 삶의터전인가’에서 현재의 땅과 집문제의 근원으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을 꼽은다음,‘일제가 토지소유권 개념을 우리 사회에 적용했으며 우리는 아직도 이 틀을 청산하지 못한 채 존속시키고 있다’고 설명한 대목 역시 뜻이 아리송하다.현재의 땅투기 등이 토지소유권의 도입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주장인지,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현재 땅투기의 원인이라는 것인지 한눈에 알 수 없게 돼 있다.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 고교생 눈높이에 맞춰’ 쓰여진 책이라면,필자의주장보다는 객관성을 살려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되는데,이런 ‘배려’가 다소 미흡한 것으로 지적된다. 박재범기자 jaebum@
  • “강요당한 분단의 거짓 신화·우상 깨야”

    우리에게 ‘통일’은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우리는 통일논의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마치 자신은 ‘천사’요,상대방은 ‘악마’인양 반세기를 지내온 남북한.금세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세계 유일의분단국으로 남아있는 우리의 현실을 매섭게 비판한 비평집이 출간됐다.저자는 ‘전환시대의 논리’‘분단을 넘어서’‘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등을통해 남북·민족문제를 지속적으로 천착해온 리영희(李泳禧·70)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대우교수.이번에 출간한 책은 ‘반세기만의 신화-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삼인,10,000원)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남북문제에 관해 ‘진실’일 것으로 믿어온 온갖 ‘거짓’의 정체를 밝혀보려 했다”면서 “거짓과 우상과 신화가 난무했던 20세기는 가고 21세기의 문이 열리고 있지만 유독 한반도의 인민만이,강요당한민족분단이 가져온 신화와 우상의 거짓을 아직도 신봉하고 있다”고 우리의몰역사적인 현실을 꼬집는다. 이 책은 총3부으로 구성돼 있다.제1부 ‘남·북한의 선악설을 넘어서’는과연 우리에게 통일의지가 있는지를 묻는다.저자는 “특히 남한의 경우 거짓을 강요했던 광적인 극우·반공주의·외세의존적 폭력체제가 사라진 지금도‘인식의 혁명’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분석한다.그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예수·부처의 신도임에도 굶고있는 북녘동포를 돕자는 말만 나오면‘빨갱이’‘용공’‘철부지’ 등 매도의 소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며 분별없는 ‘선악설’의 이분법적 사고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같은 결론은 저자가 40년간 남북문제를 ‘관찰·연구’해온 결과이자 실향민의 한스런 감성까지를 담은 것이어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제2·3부는 저자가 ‘통일시론’ 등에 발표한 논문들을 중심으로 엮은 것으로 저자의 비판적인 통일·역사관이 돋보인다.특히 지난 6월 ‘서해교전’이후 논란이 된‘북방한계선’과 관련,“남·북 사이의 서해수역은 어느 쪽도 합법적으로관할권의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수역”이라면서 “남북한은 이 수역에 대한 성격규정을 새로 정립할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비판의 칼날은 언론(인)에게도 사정없이 가해진다.저자는“우리나라의 신문·방송은 섣부른‘국가안보’와 국가 지상주의의 ‘유일사상’주술에 꼼짝없이 묶여 선전·선동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며 원인을 냉전의식의 잔재,광적인 반공사상,맹목적 애국주의,미국의 국가이기주의와 패권주의,민족간의화해보다 대립을 부추기는 습성 등에서 찾았다.“휴전선 남과 북에는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다.어느 쪽도 절대악도,절대선도 아니다.통일을 위해 각자 자기사회의 ‘악’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남북한이‘함께’ 변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근본사상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25돌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문규현신부)이 오는 26일 창립 25주년을맞아 다음달 4∼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기념행사를 갖는다. 이번 행사는 민주화운동이 치열했던 지난 70∼80년대,사제단과 사회운동의역사와 성과를 되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짚어보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관련 행사로는 과거 민주화운동을 정리한 책인 ‘암흑속의 횃불’ 봉정식과심포지엄·문화공연·기념미사 등이 마련된다. 또 4일 오후2시 개막식이 끝난뒤 곧바로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와 김선태신부(전주신학원 부원장)가 ‘민족사 안에서의 사제단 25년’’십자가는 우리의 길’이란 주제로 각각 강연한다. ‘암흑속의 횃불’은 지난 94년 사제단 창립 20주년을 맞아 출범된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 가톨릭계에서 70∼80년대 펼친 민주화운동의 내용과일지, 성명성·발표문 등 자료를 연도별로 모은 책.현재 74∼85년까지를 6권으로 정리했는데 이번에 봉정된다. ‘기쁨과 희망 사목연구원’이 주최하는 심포지엄에선 ‘민족과 사회정의’를 주제로 함세웅신부(인간과 정의) 이이화교수(민족사안에서의 정의의 흐름) 김광식교수(오늘의 사회적 삶속에서의 정의)가 발제에 나선다. 문화공연은 ‘기억 결심 실천’이란 주제 아래 70∼80년대의 사제단관련 사건을 엮은 것.노래패의 공연과 영상·나레이션으로 구성된 1시간짜리 공연이다. 마지막 행사는 통일염원 기념미사.김인국 백남해 최종수 신부의 주례로 진행되며 이 시대 사제들이 지켜야 할 소명과 다짐을 천명한 사제헌장이 낭독된다. 김성호기자
  • [새 정당 새 인물](3)정치권 영입추진 학계인사

    정치권의 ‘아이디어 뱅크’는 역시 학자그룹이다.‘국민의 정부’ 탄생과정에 준(準)공개적으로 간여,정권교체에 일익을 담당한 학자들이 있는가하면 드러내지 않고 여야 정치권의 논리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학자들이 있다. ‘조언’ 방식도 다양하다.칼럼니스트로 나서 여야의 정책논리를 명쾌하게설명하는 이들이 있다.‘정책기획위원’이나 ‘자문위원’식으로 특정모임에 참여,시중의 여론을 정권 핵심부에 전달하기도 한다.포럼·세미나를 통해정권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그룹도 있다. 여권이 신당 창당 과정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사람으로는 김찬국 상지대 총장,리영희 한양대 객원교수,이만열 숙대·오두환 인하대·유홍준 영남대·이장희 외대·오세철 조혜정 연세대·정운찬 서울대·장하성 고려대·유병용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등이다.영남권에서는 김재훈 금오공대 총장,장혁표 전 부산대 총장,이종오 계명대 교수 등이,강원지역 출신으로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었던 최장집 고려대교수와 경실련 시민입법위원장을 지낸 같은 대학의 김일수 교수가 있다.이재정 성공회대 총장은 국민정치연구회를 이끌며 신당 창당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소속 상당수의 교수들도 현 정부의 ‘개혁이론’을 개발·전파하거나 시중의 비판여론을 여과없이 정권 핵심부에 전달하는 사람들이다.이들 가운데 동국대의 백경남 사회과학대학장과 황태연 교수,국민대의 유승남,연세대의 김한중,서울대의 박찬욱 임강원,대전대의 유재일 교수 등은 글재주를 인정받는 칼럼니스트들이다.기획위원은 아니지만 민족통일연구원 소속의 황병덕 박사의 통일칼럼과 수원대 이주향 교수의 사회칼럼도재치있다. 30대 학자로 ‘대통령론’ 저자인 함성득 고려대 교수도 정가에서 자주 들먹여지는 이름이다.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정치권을 예리하게 분석,비판하는 소장학자군으로 서울대 최정운,중앙대 장훈,국민대 문태훈 교수를 꼽는다. 여권의 ‘개혁론’을 전파하고 있는 황태연 백경남 교수는 독일에서 공부한 ‘독일군단’들이다.정치권 주변인사는 아니지만 ‘독일군단’으로는 인하대의 서규환,한양대의 안석교,명지대의 신율,홍익대의 이국영 교수 등이 있는데 이들은 활발한 세미나를 통해 정치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개진한다. 아태평화재단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원로학자군도 정책이나 개혁논리를 정밀하게 진단하거나 현안과 관련해 각계의 여론을 수집하는 ‘창구’다.송자명지대 총장,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김민하 전 중앙대 총장(현 교총 회장),변형균 김점곤 박사 등이 그들이다. 고려대의 김호진,연세대의 김황조,성균관대의 임종률 교수 등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노동계의 여론을 정부측에 수렴시킨다.‘일본통’인 최상룡 고려대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물밑에서 총기획하는등 ‘뜨는 학자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들 ‘이론가’는 현실정치에 관심은 많지만 신당이나 정치권 참여의사를물으면 대다수가 부정적이다.이들 중 참신한 인사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는앞으로 여권이 풀어야 할 숙제다. 유민기자 rm0609@ *학계인사들의 기대 정치학자들은 21세기형 신당의 정치주역들이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밝혔다.일부는 인물 됨됨이에 초점을 맞췄고,다른 일부는 인물을 뽑는 방식에 무게를 실었다.시각은 달랐지만 ‘새 정치’‘새 인물’을 강조하는 점에서는 공통분모를 이뤘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인 동국대 정치학과 황태연(黃台淵)교수는 개혁성을 ‘제1덕목’으로 꼽았다.“21세기 비전과 전망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개혁적인 인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부총리를 지낸 한완상(韓完相) 전 서울대 교수는 “우선 사람이 참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어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실패한 것은 개혁이라는 새 술을 새 인물이라는 새 부대에 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신당창당이 총선 장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야만 참신한 인사들이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황수익(黃秀益)교수는 인물선정 방식에 비중을 두었다.황교수는 “대통령이 개입하지 말고 유권자들이나 지구당 일반 당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상향식 공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황교수는 “상향식 공천이적잖은 문제가 있지만 대통령이나 당총재 1인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것보다는 더 나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역시 서울대 정치학과 박효종(朴孝鍾)교수는 “개혁성,전문성,참신성 등은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얘기”라면서 “당선 후에도 유권자들에게 떳떳하게얘기할 수 있도록 도덕적,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대 행정학과 유승남(柳勝男)교수는 “현재 인물에게 21세기 정치를 맡길 수 없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면서 “참신함과 개혁성,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인물로 구성원들을 대폭 교체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끝)-리영희교수

    ‘진실을 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오랫동안 주입되고 키워지고 굳어진신념체계와 가치관이 자기의 내부에서 무너지는 괴로움은 매우 큰 것이다.절대적인 것,신성불가침의 것으로 믿고 있던 그 많은 우상의 알맹이를 알게 된-잠을 캐우는-괴로움을 준다’(‘우상과 이성’(한길사)서문 일부). 70년대 중반부터 10여년동안 ‘지성의 전당’ 문턱을 넘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대했을 문구다.그 속에는 단숨에 책을 읽은 뒤,뿌옇게 밝아오는 창문을 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부르르 떤 기억도 배어있을것이다. 리영희씨(70·한양대 대우교수)의 ‘우상과 이성’은 대학 새내기들에게 ‘껍데기를 벗는’ 아픔을 준 동시에 세상의 참모습을 보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리교수 자신도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와 함께 가장아끼는 저서라고 말한다. “제 책을 읽은 많은 대학생들이 학생운동·감옥 등 예기치 못한 길로 접어든 사실에서 ‘도의적 미안함’같은 게 들 때가 있습니다.하지만 다시 그런상황이 오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겁니다”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 입구에 자리잡은 한양아파트.정체성 없는 삶이 싫어아파트에 문패를 달고 사는 ‘당대의 논객’은 여전히 꼿꼿했다. ‘대쪽과 선비’.리교수의 삶에 잘 어울리는 말이다.기자와 교수로서 두번씩 ‘잘린’ 기이한 인생역정은 현대사에서 양심을 지키려면 당연히 거쳐야하는 ‘통과의례’였다. “무슨 거창한 이념이 있었다기 보다는 ‘거짓’이 태생적으로 맞지 않아서 이렇게 살아왔나 봅니다.특히 대중을 속이고 바보로 만들면서 개인적인 치부나 향달에 몰입하는 권력집단의 거짓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그들은 전 국민을 비인간화하고 인간다운 권리와 정체성을 박탈하는 집단이죠” ‘거짓과의 싸움’.아주 쉬워 보이지만,그러나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 소신을 지키기 위해 리교수는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64년 11월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가시밭길 인생길이 열린다.‘대기자’의 꿈을 품고 57년 ‘언론계 공채 1호’로 합동통신에 들어간 뒤 7년만에 부딪친 첫 필화(筆禍)였다. “‘아시아 아프리카 비동맹회의 외상들이 남북한 대표를 동등하게 대우하고 유엔가입 문제를 논의한다’는 기사를 썼는데 ‘반공법 위반’의 올가미를 씌운거죠.해설기사도 아니고 있는 사실만 다루었는데 죄가 되었던 것은박정희가 서서히 군부독재를 강화하려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감옥에서 몇 달을 보낸 뒤 선고유예로 나왔다.‘거짓’과 타협할 줄 모르던 ‘지성’은 마침내 68년 해직통보를 받았다.외신부장이던 당시 ‘베트남 파병’의 본질을 꿰뚫고 한국 언론계에선 유일하게 반대논리를 펴다가 회사와정부의 미움을 받았던 것. “정부의 압력으로 강제해직되었지만 사실 제 맘속에도 ‘염증’이 생겼습니다.신문사 간부라는 인텔리가 정권이나 체제의 앞잡이가 되어 국민을 속이고 진실을 가릴 능력을 박탈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교수는 이후 1년 6개월 동안 애써 ‘인텔리의 옷’을 벗으려고 노력했다. 할 수없어 ‘책 보따리’장수로 나섰다.소설가 고 이병주씨와 출판사를 차린 뒤 책을 팔려고 서울시내 중·고교를 발이 터지도록 다녔다.그러나 지식인의 때를벗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우선 먹고 사는 일이 힘들더라구요.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지식’으로 먹고 살던 놈이 딴 일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죠.어쩌면 그 역시 ‘관념론’이었다는 반성을 하고 합동통신사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어정쩡한 반지식인이 되기보다는 더 철저한 지식인이 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극악한 권력’과 더 치열하게 싸우기로 한 것이다.결과는 두번째 옥고였다.71년 1월 박정희가 유신헌법의 고삐를 한창 조일 때 ‘지식인 64명서명’운동을 전개한 혐의다.다시 쫓겨났다.그러던 중 한양대에서 제의가 와 기사 대신에 강의로 양심의 소리를 이어갔다.비록 60만명의 독자는 없어졌지만 ‘우상’에 길들인 수많은 대학생들에게 ‘이성’을 들려주었다. 첫 결실이 ‘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 비평사 74년)였다.인식과 실천을 결합하려는 의지는 ‘8억인과의 대화’(창작과 비평사 77년) ‘우상과 이성’(한길사 77년)등 ‘화려한 금서’를 잇따라 터뜨렸다.감옥이라는 코스는 당연했다.만만하면 걸고 넘어지던 ‘반공법 위반’으로 2년을 쇠창살 속에서 보냈다. 당시 중앙정보부와 검·경찰의 합동작품인 ‘불온한 이념서적 30권’ 리스트에 리교수의 저서 3권 모두가 상위에 자리잡았음(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 1,2위, ‘우상과 이성’ 4위)은 그의 위치를 증명한다. 그는 언변이 화려하지 않고 눌변이다.그러나 그 속에는 일관되게 ‘지성’을 지켜온 고집이 들어있다.더디지만 꾸준한 걸음이었기에 80년대 거세게 몰아닥친 ‘극좌’의 목소리에도 휩쓸리지 않았고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잽싸게 변신하는 ‘역풍’에도 초연했다.오히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강조하면서 버티고 있다. “자본주의가 승리했다지만 실제는 절반의 승리와 패배가 공존합니다.이기심에 근거한 동기부여로 물적 생산력을 극대화하여 현실 사회주의에 이겼지만 인간의 가치를 물질의 하위 범주로 만들었거든요.인간을 더 중요시하는사회주의라는 ‘마이신’을 만들지 못하면 타락·부패합니다” 자본주의 논리가 득세하는 현실에 뼈아픈 일침을 가한 그는 마지막으로개인적 소망을 들려주었다. “이제 지적 활동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후배들의 몫이라고 봅니다.평생고생한 아내와 함께 여행도 하고 즐겁게 책이나 읽고 싶습니다.무엇보다 노욕(老慾)을 피하는게 최대의 목표입니다.‘리영희’라는 지식인이 추하지 않고 올곧게 사는게 후학을 격려하는 자세라고 봅니다”이종수기자 vielee@'금지문화' 시리즈를 마치며 지난 해 6월 13일 시작한 기획시리즈 ‘금지문화 금지인생-이제야 말한다’가 23회로 끝을 맺습니다. 대중음악·출판·문학·연극·판소리 등의 다양한 문화판에서 ‘말도 안되는 이유’로 탄압을 받았던 작품과 그것을 일군 삶을 조명하는 작업은 우리현대사의 기형적인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드러난 ‘금지인생’의 사연은 절절했고 탄압의 빌미는 어쩌구니 없었습니다. 그저 좋아서 부른 서정적 노래(양희은),국토에 대한 사랑(조태일),올바른역사 기술(‘해방 전후사의 인식’),전통 춤이나 소리로 현실을 읊은 것(이애주,임진택,김명곤)이 모두 금지당했습니다. 검열의 잣대도 다양했습니다.“앨범표지가 장발이다”(이정선),“대통령찬가를 만들지 않았다”(신중현),“노래 제목이 물고문을 연상시킨다”(한대수)….공통점은 ‘어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획득한 권력집단은 늘 ‘당근과 채찍’을 병행합니다.우리가 확인한 ‘금지인생’에는 정권의 당근을 거부하고 채찍을 자청한이들만이 뿜는 향기가 풍겨납니다. 시리즈를 연재하는 동안 ‘금지인생’이 가르쳐준 지혜도 많습니다.혹독한탄압으로도 ‘진실은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 없다’는 것과 역경을 헤쳐온이들이 결국 우리 시대의 문화주역으로 각자의 장에서 탄탄하게 뿌리를 내렸다는 것입니다.아울러 우리 사회가 진보했지만 여전히 다른 얼굴을 한 ‘금지’는 존재하고 우리의 주역들은 그것과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결국 이시리즈는 단순히 먼지 가득한 창고에서 케케묵은 과거를 들춘 게 아니라 오늘의 문제를 제기한 셈입니다. 그동안 바쁜 일상생활에도 취재에 협조해주신 여러 ‘금지인생’의 주역들과 시리즈에 관심을 표명해주었던 독자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종수기자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22)-창작과 비평사

    진시황은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파묻었다.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앗은 자들은 늘 그러했다.저항을 부르고 수많은 ‘금지’를 낳았다.우리 현대사에도 ‘지상의 양식’을 지향하다 ‘잉크를 묻힌 죽은 물체’가 돼버린 옥고들이 많다. 시집 ‘신동엽전집’(75),‘국토’(조태일),‘타는 목마름으로’(김지하,82)‘대설 남(南)’(〃,82),‘8억인과의 대화’(리영희,77)…등도 그 대열에있다.당국의 붉은 딱지가 붙은 이 책들은 모두 모태가 같다.69년 등록한 출판사 ‘창작과 비평사’다. 저항의 첫 발은 약간 거슬러 올라간다.66년 서울 종로구 공평동 문우출판사에서 발행한 132면의 문예계간지 ‘창작과 비평’이 그것. ‘…대중의 소외가 혹심한 사회일수록 철저한 수준을 고수하는 소수 작가·지식인의 비중이 커지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국토분단과 기성사회의 모순을 유지함으로써만 자신의 특권을 간직할 수 있는 소수를 제한다면,적어도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잠재적으로나마 우리의 이상에 동조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창작과 비평’창간호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자세’의 일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하고 온 젊은 영문학자 백낙청교수의 의도에 공감한 국악인 황병기씨 등 지인들과 문우출판사 오영근사장 등이 쌈지돈을 모았다.‘비평의 정신’을 싹틔운 주역은 백교수와 소설가 한남철,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조교 김상기,기자이던 임재경·이종구씨 등 5인이었다.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어조는 단호했다. 69년 백낙청교수가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면서 염무웅교수(영남대 독문학)가 편집장으로 바통을 이어받아 암울했던 70년대를 버텼다.염교수는 ‘창비의정신’을 이렇게 말한다. “사회과학이나 현실에 발딛고 기본 민주주의 성취,실학·국학시리즈로 민족 전통의 현대적 계승과 분단 극복 지향,기층 민주주의 역량성장에 이바지등 3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학의 고유한 미적 가치를 최대로 추구하면서 이런 과제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여타의 목적주의 문학이나 천박한 참여문학과는 차별성을 두었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에 발행한 ‘신동엽전집’(창비신서 10,75년)이 긴급조치 9호의 미움을 사면서 창비의 ‘화려한 금서 리스트’가 막을 연다.이어 77년에 ‘8억인과의 대화’(창비신서 18)로 편역자 리영희교수와 발행인 백낙청교수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돼 리교수는 구속되고 백교수는불구속 기소되었다. 수난속에서도 명맥은 유지하던 ‘창비’는 80년에 이르러 ‘절망적인 탄압’에 직면한다.7월말 국가보위입법회의로부터 계간 ‘창비’의 강제 폐간이라는 철퇴를 맞은 것이다. 암중모색하던 ‘창비’는 82년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창비시선 33)로 새벽을 열려고 나섰다.이화여대·연세대 앞에서 불티나게 팔리던시집은 학원사찰팀의 눈에 띄여 판매금지·압수라는 공식적인 과정을 거쳤다.“압수된 책이 작두로 잘렸다”는 ‘창비인’들의 회고는 당시 검열의 상징이다.심지어 국세청 세무사찰로 추징금 1,000만원을 부과하는 비열한 수단도 동원했다.이에 굴하지 않고 ‘대설 남’ 1권을 내놓았으나 문공부가 판매금지하고 전량을 봉인했다. 끊임없이 ‘비판의무기’를 갈던 ‘창비사’는 85년 부정기간행물(무크)로 얼굴을 달리하여 ‘창비’ 57호를 간행했다.이번에는 서울시가 불법으로 정기간행물을 냈다는 꼬투리를 잡아 ‘출판사 등록 취소’로 탄압했다. 그러나 이제 ‘창비’는 혼자가 아니었다.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중문화운동협의회 등의 항의농성 및 성명발표와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등 11개 출판사 대표의 항의성명이 이어졌고 문인·학계 인사가 중심이 돼 등록취소에 항의하는 ‘범지식인 서명운동’을 펼쳐 2,853명의 서명록을 문공부에 전달했다. 당시 발행인이었던 김윤수교수(영남대)는 “회사가 없어져 책임자로서 어깨가 무거웠다”면서 “‘창비’를 살리려고 문공부 담당국장과 10개월의 마라톤 협상에 들어갔다”고 밝힌다.그 과정에 당국은 ‘창비’ 회생조건으로 백교수가 손을 떼고 이름도 바꾸라고 강요했다. 어렵사리 사태를 수습한 김윤수 발행인은 86년 8월5일 ‘창작사’로 신규등록했다.87년 2월6일 부정기간행물 형태로 ‘창비 1987’(통권 58호)을 간행했다.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는 말이 있듯 ‘창작사’는 87년 2월17일 ‘창작과 비평사’라는 출판사 이름을 되찾았고 다음해 계간 ‘창비’도 다시 제 얼굴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평탄한 앞날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89년 겨울호에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실어 다시 수난시대로 접어든다.이시영주간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다. 이시영 상임고문은 “11월 23일 퇴근 길에 남산으로 끌려갔는데 안기부는그동안 저를 통해 최대로 민족문학작가회의와 문단에 대한 총점검을 하려고했다”면서 “‘창비’ 매호를 낱낱이 분석하고 필자들 성향까지 꿰뚫고 있었다”라고 전한다. 숨가쁜 ‘창비’의 발자취에는 일그러진 현대사의 모습이 오롯이 녹아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기름지게 한 거름이기도 하다.정해렴 김윤수 고세현씨등으로 이어지는 발행인을 중심으로 현대사의 주역들을 일궈냈다. 고은 조태일 김지하 신경림 이성부 이시형 김용택 곽재구 김남주 고정희 김명수 등이 시로 독재자에‘침을 뱉었다’.이문구 황석영 현기영 방영웅 김한수 등이 소설이라는 쟁기로 척박한 땅에서 리얼리즘의 열매를 일구었다.송건호 리영희 박현채 강만길씨 등은 우상을 깨고 이성을 외쳤다.‘창비’는이들의 ‘사상의 거처(居處)’였다. 이제 ‘창비’의 나이 33세.‘잔치를 끝내지 않으려’는 과제가 남아 있다. 지난 96년 ‘영원한 창비인’ 백낙청교수(하버드대 교환교수로 재미)가 창비 30년을 정리하면서 밝힌 입장에서 ‘창비’의 앞날은 여전히 튼실할 것임을 예고한다. “정말 중요한 일은 시장경제의 논리와 ‘창비’ 고유의 지향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혹은 아슬아슬한 긴장’을 유지하는 일이겠습니다”이종수기자 vi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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