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리비아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 펠레
    2026-04-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131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카다피 암살계획 없다” 오바마, 美 의원 브리핑서 밝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암살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미국의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지난 25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미 의회 지도자들에게 1시간가량 리비아 사태에 대한 현황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리비아 군사 작전을 놓고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으로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같은 자리를 마련했다. 28일에는 연설을 통해 대국민 설득에 나설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지상군 투입이 없을 것이라는 점도 거듭 확인했다. 카다피 명운에 대한 미국의 속내가 어떠하든 공습만으로는 카다피를 제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이와 관련, 27일 ABC방송에 출연해 “과거에 보았던 것처럼 정권교체는 매우 복잡한 일”이라면서 리비아 정권 교체에 관여할 계획이 없음을 재차 밝혔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시리아, 정치범 260명 석방 불구 시민 분노

    국제사회의 시선이 온통 북아프리카의 리비아 사태에 쏠린 사이 시리아와 예멘·요르단 등 중동 지역에서 민주화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의 확산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시리아다. 특히 지난 25일(현지시간) ‘피의 금요일’을 보내면서 정권의 강경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하자 시민들의 분노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시위대 측은 이날 시리아 남부 다라와 타파스, 북부해안의 라타키아 등의 도시에서 시민들이 집권 바트당과 경찰서 등을 습격하려다 정부 측의 공격을 받아 모두 25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공식 사망자 수(13명)보다 곱절 가까이 많다. 또 국제 앰네스티는 다라 등에서 지난 한주 동안의 시위로 최소 5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고 다라의 한 병원 의사는 알아라비야 방송을 통해 “지난 며칠간 시위 과정에서 150여명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등 대량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다급해진 시리아 정부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꺼내들면 민심 수습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25일 48년간 지속된 국가비상사태의 해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26일에는 정치범 260명을 석방했다. 하지만 시위가 격화하고 있는 라타키아에 27일 정부 병력이 파견됐다고 친정부 성향의 알와탄 신문이 보도하는 등 유혈진압의 위협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동의 최빈국 예멘에서도 33년째 집권 중인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 시기 등을 둘러싼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살레 대통령은 올해 안에 총선과 대통령선거를 하고 내년 1월쯤 퇴진한다는 방침을 밝혔으나 야권과 시위대는 ‘기만책’이라고 평가절하하며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아부바크르 알카르비 장관은 26일 알아라비야TV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퇴진 시기를 둘러싼 여야 협상이 며칠 안에 타결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집권당인 국민의회당(GPC)이 반발하고 나서 상황이 불투명하다. 혼란을 틈타 27일 예멘 동부 마리브주에서 알카에다 소속으로 추정되는 무장대원들의 공격으로 정부군 병사 6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고 예멘군이 밝혔다. 한편 지난 1월 이후 석달째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요르단 역시 25일 시위 진압 과정에서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정부는 숨진 55세 남성이 정부 지지자로 심장마비 탓에 사망했다고 주장했으나 야권은 그가 반정부 시위대원으로 경찰에 폭행당해 숨졌다고 맞서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리비아 반군 시르테 코앞까지 진격

    한동안 벼랑 끝에 몰렸던 리비아 반군이 다국적군의 공습 덕에 카다피 고향인 서부 시르테 코앞까지 진격하면서 전세를 역전시켰다. 아즈다비야와 라스라누프 등 동부 핵심 도시를 장악한 반군은 협상을 바라는 정부 측의 의사와 관계없이 서진을 다짐했다. ●카다피軍 서열 3위 알 간가 포로로 리비아 반정부 세력은 27일(현지시간)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무주공산이 된 빈자와드까지 진출했다. 빈자와드는 반군이 이달 초 트리폴리로 진격할 때 마지막으로 도달했던 동부의 서쪽 끝 도시로 카다피 측의 전략적 요충지인 시르테와 바로 이웃한 곳이다. 반군은 또 동부 항구도시인 라스라누프와 벵가지로 가는 교통 요충지인 아즈다비야, 석유 수출항이 있는 브레가 등도 잇따라 되찾았다. 특히 반군은 아즈다비야 전투에서 정부군의 많은 장병을 포로로 붙잡았으며 이 가운데 카다피 군부 서열 3위인 빌가심 알 간가 장군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알자지라 방송이 보도했다. 반군 대변인 샴시딘 압둘몰라흐는 벵가지에서 AFP통신 기자 등과 만나 “아즈다비야는 100% 우리 손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군 측 관계자는 “동부 유전에서 하루 10만~13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면서 “1주일 내 수출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날 다국적군은 제3의 도시인 서부의 미스라타 주변을 집중 공습했고 카다피 부대의 공격이 중단됐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미스라타는 서부 도시로는 유일하게 반군이 장악하고 있었던 곳으로 최근 카다피군 공격을 받고 포위된 상태였다. 아프리카연합(AU)은 전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회의를 열고 카다피 측과 벵가지 임시정부 측에 협상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리비아 정부 대표로 참석한 압둘아티 알오베이디 전 총리는 “(리비아 정부는) 정전을 약속하며 국제 사회는 상대 쪽에도 이를 요구해야 한다.”면서 반군과의 협상은 물론 선거를 포함한 정치 개혁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시 동부 지역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하게 된 반군은 여세를 몰아 수도 트리폴리가 있는 서부를 공격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시 국가위 “이제 외부지원 필요없어” 임시 국가위원회의 마흐무드 지브릴 대표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다국적군의 공습에 사의를 표하면서 이제 외부 지원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국적군의 감시로 카다피군이 공습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화력이나 군사력 면에서 열세인 반군이 서부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전망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열린세상] 중국 한반도 정책의 미국 요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열린세상] 중국 한반도 정책의 미국 요인/황병무 국방대 명예교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리비아의 내전이 격화되자 서둘러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공군력·해군력 사용을 핵심으로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지상군 투입은 미국의 주저와 중국의 반발로 배제되었다. 그러나 ‘민간인 보호를 위한 모든 필요한 조치’에 따라 카다피 군에 대한 폭격이 실시됐다. 미국은 카다피 축출을 개입의 목적으로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는 공습의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는 강대국 정치에 민감한 한반도의 안정, 평화와 통일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소련·북한·중국이 6·25전쟁 공모 시 미국이 군사개입한다면 중국은 군대를 보내 김일성을 도울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중국의 참전은 한국군이 아닌 미군 주도의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할 때 결정되었다. 휴전회담 초기에 중국은 한반도에서 모든 외국군의 철수를 주장했지만 미국의 강한 반발로 철회했다. 1972년 중국은 미국과의 수뇌회담을 통해 하나의 중국을 인정받고 타이완으로부터 모든 미군과 전술핵무기의 철수를 얻어내는 데 성공하지만 주한 미군의 존재를 묵인한다. 그후 중국은 주한 미군을 중국 안보의 위협보다는 한반도 통일의 방해요인으로 선전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 중국의 주한미군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중국은 주한미군의 공식적 철수 주장은 미국 패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이유로 자제하면서 주한미군 증원이나 새로운 첨단 무기 도입 및 한·미 연합훈련의 강화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견지해 오고 있다. 중국 정부와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의 발생 가능성을 부인한다.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조성,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중국은 북한 난민문제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할 의사가 있으나 북한 급변사태 시 정치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꺼린다.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 시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야 하며 외세의 개입이 없다면 중국도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개입한다면 유엔의 결의를 거쳐야 함을 강조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북한 급변사태를 통일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한국 일부 언론의 보도를 의식한 듯 중국 정부가 지지하는 통일 원칙, ‘당사자 간에 자주·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상기시킨다. 통일한국은 비핵화, 외교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주한미군의 향방에 대해서도 논의를 원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의 단일 국가 등장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안정된 관계를 유지했음을 상기시키면서, 강대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동북아 정세의 안정과 지역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중국은 북한의 핵문제로 미국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미국의 주장에 따라 북한을 압박하기보다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한 여건 조성을 위해 관련국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한다. 전문가들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로 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지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경제가 궁핍해지고 내정이 불안정해지는 사태를 더욱 우려한다. 중국은 이러한 사태의 예방을 위해서도 중국이 북한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북한의 리더십 안정과 경제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중국 정부는 북한의 안정과 비핵화 중 안정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북한의 핵 무장은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고 미국·일본·한국 간의 안보협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붕괴는 동북아 세력균형을 중국에 불리하게 만들어 미국의 패권질서를 강화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의 대비는 일차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 한·미의 군사 대비가 언론에 과도하게 노출되다 보니 북한 붕괴를 겨냥한 통일이 목표인 양 오해 받기 쉽다. 중국은 북한 급변사태의 원인이 핵과 선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북한의 노선에 있음을 직시하고 정책전환을 지원해야 한다. 또 유사시 북한이 중국의 내정불간섭 원칙의 예외지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내부 폭발이 국제전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외교적 대비가 필요하다. 주변국이 납득할 수 있는 통일한국의 외교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 [서울광장] 리더십의 세계화/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리더십의 세계화/최광숙 논설위원

    지난 2009년 9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다. 미국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인 이 대학 제럴드 커티스 교수의 ‘일본 현대정치’ 강의를 관심을 갖고 들었다. 그는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의 내정 소식을 전하며 “총리를 할 만한 인물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일본 내각평을 듣고 다소 놀랐다. 그가 일본통이라고는 해도 일본 정치, 아니 일본 정치인 개개인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소 전 총리는 취임 후 1년이 채 안 돼 중도퇴진했다. 그것도 중의원 선거에 패배해 54년 만에 자민당의 간판을 내리게 하고 정권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태평양 건너 멀리 미국에서도 정확한 정보만 있으면 일본 정치인의 리더십을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커티스 교수처럼 미리 알수 있느냐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은 대통령·총리 같은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야 리더십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성군(聖君)은 태평성대 같은 호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백척간두 같은 엄청난 위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자잘한 위기에도 한방에 가는 이가 나오기 마련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그렇다. 일본 대지진 참사를 겪으면서 그의 허약한 리더십을 전 세계가 알게 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시 그가 보인 위기 대응 능력은 아마추어 그 자체다. 문제는 이제 한 나라 지도자의 리더십이 그 나라에만 영향을 주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 듯 한 나라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경을 뛰어넘는 ‘리더십의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환경 문제 이상으로 각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지구촌 사람들을 급속히 하나의 운명체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웃 나라 총리의 원전사태에 대한 부실한 대응이 우리 식탁에 오르던 일본산 명태와 같은 먹거리를 사라지게 한다. 각종 부품과 소재 품귀로 공장의 생산라인이 중단될 수도 있다. 저 멀리 카다피의 독재권력이 촉발한 리비아 사태도 일본 참사와 함께 가뜩이나 불안정한 원자재 가격을 올려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하고 있다. 중동의 한 국가가 민주화되느냐 않느냐는 그 나라 국민만의 문제를 떠나 당장 우리에게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최고의 리더라면 위기시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쿠바 미사일의 위기를 넘긴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을 보라. 그가 1962년 10월 16일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알고 난 뒤 소련의 미사일 철수 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3일이다.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을 정점으로 행정부의 정책 결정 시스템을 긴박하게 움직인 결과였다. 그는 해상봉쇄령부터 시작해 소련 흐루쇼프와의 비밀협상 등 ‘Presidential Resource’(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를 모두 활용했다. 그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이 여차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사태를 막은 것이다. 내년에 대선이 있다. 박근혜·오세훈·김문수·손학규·유시민 등 거론되는 대권 후보들이 경제·안보·재난 등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인물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지, 작은 위기에도 맥없이 무너질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큰일이 터졌을 때 정보체계를 장악하고 독자적인 정책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을 가려내야 한다. 특히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감안하면 국제관계까지 챙길 수 있는 글로벌 역량을 갖춰야 한다. 남북문제를 잘못 다뤘다가는 자칫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동반성장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고, 선진국 반열에 올릴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동북아의 리더,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가 될 만한 인물을 바란다면 과욕인가. bori@seoul.co.kr
  • ICC “카다피정권 기소 100% 확신”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국제공조가 활발한 가운데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반정부 시위를 유혈진압한 카다피 정권이 반드시 국제법의 심판대에 오를 것”이라고 24일(현지시간) 밝혔다.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ICC 수석검사는 이날 이집트 카이로 방문 중 “ICC 조사 결과 카다피 정권 인사들이 반인륜 범죄 혐의로 기소될 것으로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ICC는 지난 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부로 리비아 반정부 시위 초기 트리폴리와 벵가지 등에서 보안군이 자행한 민간인 상대 무차별 발포사건 6~7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각국 경찰 등과 공조해 공격 명령을 내린 주체와 동조자를 파악하려고 증거자료를 모아왔으며, 조사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돼 상당한 증거를 수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레노 오캄포 검사는 “리비아 민간인 살상 증거를 가진 언론인들이 협조하고 있다.”면서도 카다피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카다피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를 좇아갈 것”이라고 에둘러 답변했다고 AFP가 전했다. ICC는 오는 5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조사 내용을 보고하게 된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미스라타에 달린 카다피 운명

    ‘카다피 운명은 미스라타 지역에….’ 다국적군 공습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에도 반군 점령 도시들에 대한 카다피군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이들 도시 탈환 여부가 카다피의 운명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도 트리폴리와 반군 중심축인 동부 벵가지 사이의 전략적 요지 미스라타에서의 승부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AFP 통신, 알아라비야 TV 등은 24일(현지시간) 트리폴리와 군사기지가 있는 동부 외곽 타주라에서 다국적군 대공포 공격이 도시를 뒤흔들었다고 전했다. 연합군 전투기는 카다피 거점인 남부 사브하도 공격하며 압박 수위를 더했다. 그러나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160㎞ 떨어진 미스라타 지역에선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교전이 격화되면서 반군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동부 전선 도시 아즈다비야에서도 반군과 카다피군이 맹렬히 충돌했다. 카다피군은 미스라타 지역에 특히 반격의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탱크와 다연장로켓 등 우월한 중화기력과 저격수들을 동원하는 것은 물론 물과 전기를 끊는 수법으로 반군과 시민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BBC는 이 지역에서 정부군이 완전히 축출된다면 카다피와 추종자들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밖에 진탄 등의 지역에서도 전세가 역전될 기미를 보이면서 카다피의 선전전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시민들에게 전황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한편 보급줄이 막힌 시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알자지라 등 아랍권 언론들은 전했다. 리비아 정부 대변인은 이날 “정부군이 미스라타를 완전히 장악했으며 알카에다와 연계된 반군 강경파만이 도시 외곽에서 버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군 대변인은 이를 부인하면서 아즈다비야에서 카다피 세력이 항복 협상을 요청해 왔다고 전했다. 조직화되지 못한 반군은 전세가 우월한 동부에서 독립국가를 따로 세울 의중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토의 개입이 늦어질수록 전세는 불리해질 전망이다. BBC는 반군의 군사적 실패가 리비아 민주화 시위의 실패로 직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나토로 넘어간 작전권… 리비아 공습 고삐 죄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리비아 군사작전의 지휘를 맡게 됐다. 나토의 개입을 반대하던 터키가 입장을 전격 선회한 데 따른 것이다. 이르면 이틀 안에, 늦어도 내주 초에는 나토가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으로부터 군사작전의 지휘권을 이양받을 전망이다. 25일(현지시간) 다국적군이 7일째 공습에 나선 가운데 리비아 정부 대표단과 반정부군 중재에 나선 아프리카연합(AU)은 회의에 앞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 대해 리비아사태 이후 처음으로 질책을 가했다. 장 팽 AU 사무총장은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회의 개막연설에서 “민주선거가 이끄는 권력이양기를 촉구한다.”면서 “리비아 땅에 정치적 개혁은 필수적이며, 무아마르 카다피 친위대와 반군이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반정부군의 참석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날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오는 29일 영국 런던에서 열릴 예정인 리비아 군사작전 참여국들의 접촉그룹 회의에 앞서 “프랑스와 영국이 이번 사태를 봉합할 군사, 정치, 외교적 해결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FP가 보도했다. 프랑스는 전날 미스라타에서 카다피군 전투기를 격추시킨 것을 증거로 들며 “리비아 영공이 통제되고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전날 상주대표부 대사급 북대서양위원회(NAC) 회의 직후 성명을 내고 “회원국이 리비아 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시행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당분간 다국적군 작전과 나토의 작전이 함께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전 지휘권이 초기에는 나토와 다국적군의 이원화 형태로 행사되다가, 단계적 수순을 거쳐 나토로 일원화될 것이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다만 구체적인 군사작전의 범위와 지휘권 행사의 명확한 시점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나토에 작전권을 이양한 뒤 프랑스는 리비아 사태에서 빠질 것”이라면서 “이는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말했다고 현지통신은 전했다. AFP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나토 관계자의 말을 인용, “비행금지구역의 작전 지휘 통제뿐만 아니라 민간인 보호의 지휘 통제도 이번 주말까지 나토에 이양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나토가 전체 작전권을 통제할 명분이 있는지를 놓고 그동안 의견이 엇갈렸지만, 28개 회원국 모두 리비아 군사작전은 나토가 맡아야 한다고 의견 일치를 봤다.”고 밝혔다. 터키가 나토 개입에 찬성으로 돌아선 것은 미국의 끈질긴 설득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카다피군이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밀려났지만 위협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전제하고 “(나토의 지휘권 행사로) 더 넓은 범위의 민간인 보호 군사작전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나토 회원국이 지상에서 시행하는 인도주의 임무 수행 등 ‘더 넓은 범위의 민간인 보호 작전’에 합의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반군 臨政구성…리비아 ‘분단’ 위기

    리비아 반군세력의 구심체로 알려진 국가위원회는 23일(현지시간)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마무드 지브릴(59)을 총리로, 알리 타루니(60)를 재정·경제정책 책임자로 임명했다.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를 거점으로 동부를 장악한 반군세력이 독자적인 정부 구성에 박차를 가하면서 리비아가 21세기 최초의 분단국이 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반군 측은 새로운 정부 모양새를 갖춰 나가는 동시에 ‘세속적인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국가 정체성도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브릴 임시총리와 타루니 재정·상업위원장 모두 미국식 사고방식에 익숙한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각각 피츠버그대학과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유학파다. 타루니 위원장이 미국에서 활동했던 금융과 경제 전문가라는 점은 향후 반군세력의 경제정책이 카다피와 정반대로 미국식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칠 가능성을 시사한다.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로 전제군주를 몰아낸 뒤 외국자본이 장악했던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강력한 자원민족주의를 견지해 왔다. 외신들은 벵가지 출신인 타루니는 미국 워싱턴대 포스터 비즈니스 스쿨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카다피 반대 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해 왔다고 전했다. 반군 측은 현재 정부운영에 필요한 재원 확보를 당면과제로 삼았다. 타루니 위원장은 “지금 우리가 현금이 모자라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유동성이 있어서 기본적인 것들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에서 인쇄해 카다피 정부에 보내기로 했던 리비아 화폐 4억 디나르(약 1조 2000억원)를 영국정부가 자신들에게 제공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각국 정부가 동결된 리비아 국부펀드 자산을 바탕으로 신용을 제공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군 대변인인 니산 구리아니는 알자지라와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리비아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라면서 “우리는 리비아 서쪽과 우리의 수도 트리폴리를 해방시켜 이 나라를 하나로 통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호언장담과 달리 반군은 여전히 카다피군에 맞설 만한 무력과 군인들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 현재 미스라타와 아즈다비야 등지에서 카다피군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반군은 당면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국적군에게 무기지원을 요청 중이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저환율로 물가 잡아라”

    “저환율로 물가 잡아라”

    동일본 대지진과 연합군의 리비아 공습 여파 등으로 물가 압박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부의 ‘미시 대책’들이 총동원됐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 5%대 진입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뒤늦게 ‘거시 카드’를 내놓았지만 정책의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다. 성장과 물가 사이에 눈치보기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요 ‘거시 대책’ 가운데 금리 부문은 탄력이 붙었다. 특히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부활로 향후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 불안감을 다소 진정시켰다. 하지만 물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율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물가를 잡기 위해 ‘저(低)환율 정책’으로 전환할 때라고 주문한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121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1월 19일 1110.3원을 기록한 이후 계속 오름세다. 동일본 대지진과 리비아 사태 등이 겹치면서 환율은 지난 17일 올들어 최고치인 1140원대(장중)로 치솟기도 했다. 말일 종가 기준으로 환율을 보면 ▲지난해 9월 1140.2원 ▲10월 1125.3원 ▲11월 1159.7원 ▲12월 1134.8원 ▲올해 1월 1121.5원 ▲2월 1128.7원 등이다. 지난해 9~10월 글로벌 ‘환율 전쟁’과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개최로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을 때 원·달러 환율은 떨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엔 계속 오름세를 탔다. 대외 변수를 감안하더라도 정책당국이 지난해 11월 이후 환율에 개입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가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값이 급등한 지난 3~4개월 동안 환율은 이처럼 물가 안정보다 수출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파급력은 국제 유가의 4배에 이른다. 환율과 국제유가가 각각 10% 상승했을 때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환율이 0.8%포인트, 유가는 0.2%포인트 수준이라는 것이다. 환율은 수입물가에 바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파급 속도도 물가 변수 가운데 빠른 편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내놓은 ‘수입물가 환경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두바이유 가격과 국내 소비자물가와의 시차 상관계수를 추정한 결과 시차 3개월에서 상관계수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두바이유가 이달부터 국내 물가에 본격 반영된다는 뜻이다. 정진영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성장에도 신경을 쓰다 보니 환율 하락폭이 커질 때마다 개입했을 것으로 본다.”면서 “수출이 워낙 좋기 때문에 정부가 환율을 내버려두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정택 인하대 교수는 “환율이 시장 기능으로 내려간다면 내려가게 둬야 한다.”면서 “리비아 사태 등으로 환율이 움직일 때마다 미세 조정에 나서서는 안 된다.”고강조했다. 이용섭 민주당 의원도 고환율이 고물가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환율을 적정하게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韓경제 긍정적… 올 4.75% 성장”

    “韓경제 긍정적… 올 4.75% 성장”

    “선진국에서는 물가가 오르는데,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가계의 실질임금이 줄어드는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영국 HSBC그룹의 스티븐 킹 글로벌리서치센터장은 24일 봉래동 HSBC서울지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중남미의 이머징국가는 경제 성장에 성공했지만, 미국·영국·독일 등 선진국 경제는 여전히 2007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침체기를 겪고 있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 및 철학을 전공한 그는 인디펜던트지 칼럼니스트로 일하다가 1988년 HSBC그룹에 합류, 일본·유럽·미국 시장 분석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고 1998년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됐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시장과 이머징마켓 시장의 차이가 극명해지고 있다고 진단한 킹 센터장은 “미국·일본처럼 부채를 많이 짊어진 선진국으로부터 성장동력을 넘겨받은 중국·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이 원자재 확보 경쟁을 벌이면서 원자재값이 오르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을 했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 전망치를 4.75%로 잡았고,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릴 것으로 예측했다. 킹 센터장은 “한국은 이머징국가보다 생활수준이 높지만, 유럽이나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아마 경기침체보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더 주시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접한 일본의 지진피해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반응했다. 킹 센터장은 “한국은 일본의 산업 경쟁국으로서 혜택이 있을 수 있지만,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부품·소재 등 중간재를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본 지진이 미치는 경제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진 피해가 발생한 지역의 경제규모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4%에 불과하다.”고 했다. 몇십년 만에 르네상스를 맞이한 원전 건설 바람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원전의 안전성에 회의가 생기겠지만, 투자자들은 화석연료로 회귀하기보다 원전 건설을 여전히 선호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원래 전 세계적으로 불안감이 조성됐을 때 가장 수혜를 보는 국가가 미국”이라면서 일본 지진과 리비아사태가 수습 국면에 들어서면, 이머징국가에서 유출됐던 자금이 회귀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개혁·미국적 시각” 국가개발의장 지내

    리비아 반군 임시정부를 이끌 마무드 지브릴(59) 총리는 국제무대에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1987년 아랍 최초로 리더십 양성에 관한 회의를 주최했고, 리비아 국가계획위원회 대표와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다. 특히 그는 서방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서 ‘전략계획과 의사결정’으로 박사학위를 따고, 이곳에서 강의를 해온 까닭에 서구의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고 영어에도 능통하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에서는 지브릴 총리를 ‘개혁적 마인드의 소유자’, ‘미국적 시각을 가진, 진지한 협상 상대’라고 평가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가 터진 뒤 반군의 거점인 벵가지에서 결성된 국가위원회의 비상위원장을 맡으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지난 10일에는 파리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만나 국가위원회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지지와 승인을 이끌어냄으로써 외교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반군의 의회기구인 국가위원회의 무스타파 모하메드 압델 잘릴(59) 위원장은 카다피 정권의 관료 출신이다. 압델 잘릴은 반정부 시위 이전에도 카다피 정권 내 가장 양심적인 인물로 평가 받아 왔다. 지난달 21일 카다피 정권의 반정부 시위대 유혈진압을 비난하며 법무부 장관직을 사임했다. 최근에는 1998년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발생한 미국 팬암 여객기 폭파사고가 카다피에 의한 것이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압델 잘릴은 반정부 시위 전부터 정부 내에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죄수들을 마구 잡아들여 가두는 행태에 대해 비판하고, 이들의 석방을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동부의 법무행정을 맡았을 당시 정권이 무고한 시민을 교수형에 처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한 적도 있었다. 온건하고 독실한 이슬람 신자로 알려진 그는 사임 직후 반군의 구심체인 국가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고 현재 카다피 정권에 의해 50만 디나르(4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모호한 군사작전, 오바마 ‘난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리비아 군사작전’과 관련해 사방에서 난타를 당하고 있다. 카다피가 물러나야 한다면서도 미군을 2선으로 빼고 지상군 투입도 안 하겠다고 하는, 이도 저도 아닌 모호한 태도가 국내에서 많은 ‘적’을 양산하는 형국이다. ●“대통령 입장 헷갈려” 여당인 민주당에서 진보성향 의원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의회와 상의 한번 없이 공습을 개시할 수 있느냐.”고 오바마를 성토한 데 이어 이번엔 군사작전에 찬성하는 편인 야당(공화당)이 “군사작전 목표가 불분명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대다수 언론도 “대통령의 입장이 뭐가 뭔지 헷갈린다.”는 보도 일색이다. 공화당 소속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23일(현지시간) 오바마 앞으로 공개서신을 보내 리비아 군사작전의 목표가 무엇인지, 무아마르 카다피를 제거할 것인지 등을 따져 물었다. 베이너는 편지에서 “이번 작전이 국가안보적 이익과 중동정책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국민과 의회에 리비아 작전의 범위와 대상, 목표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이날자 사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카다피가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공습 목표가 카다피의 제거는 아니라고 말하는 등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함으로써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군사작전 목표 분명히” CNN 등 방송들도 오바마가 처음엔 “카다피가 물러나야 한다.”고 했다가 나중엔 “공습은 민간인에 대한 카다피군의 공격을 막는 데 국한될 것”이라고 한 발언을 비교해 가면서 마치 비꼬듯이 오바마의 노선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이날도 미국의 작전 참여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공습이 카다피의 축출에 실패한다 해도 지상군을 동원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지상군 투입은 절대 불가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군은 이번 주에 작전 지휘권을 넘길 계획”이라며 “미군은 정보 분야에서 미국만이 보유한 전파방해기 등 군사자산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WTI 배럴당 105.75弗… 금값도 사상 최고치 경신

    리비아 사태를 비롯해 아랍지역 불안이 고조되면서 23일(현지시간) 유가가 3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값도 상승세를 거듭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종가보다 78센트(0.7%) 오른 배럴당 105.75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2008년 9월 26일 이후 최고 수준이다. 유가는 리비아 군사작전을 이끄는 미국의 새뮤얼 라클리어 제독이 수일 또는 수시간 안에 추가 공습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 뒤 오름세로 출발했다. 애덤 메시 트레이딩 그룹의 토드 홀위츠 수석 애널리스트는 “예루살렘의 폭탄 폭발과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까지 겹쳐 지역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유가가 영향을 받고 있다.”면서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유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 에너지정보청은 미국의 지난주 원유 재고량이 213만 배럴 늘어난 3억 5280만 배럴이라고 밝혔다. 당초 예상 증가치는 150만 배럴이었다. 반면 휘발유 재고는 532만 배럴 하락해 2억 1970만 배럴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금값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이날 NYMEX에서 4월물 금값은 10.40달러(0.7%) 오른 온스당 1438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전 최고치는 지난 2일의 1437.70달러였다. 린드 월독의 상품 스트래티지스트인 아담 클로펜스타인은 “금값이 조만간 1500달러를 넘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금을 사는 이유를 찾는 대신, 금을 사지 않는 이유를 파악하는 편이 훨씬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아랍의 불안과 일본의 대재앙,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정책 지속, 인플레이션 우려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밝아오지 않는 ‘오디세이 새벽’

    서방 다국적군의 리비아 공습 작전인 ‘오디세이 새벽’이 출구 없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만만치 않은 육상 전력을 뽐내며 응전하는 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은 군사작전 지휘권 이양을 두고 불협화음만 계속 내고 있는 탓이다. 또 카다피 쪽이 출구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과 물밑 협상에 나선 정황도 포착됐다. 나토는 24일 리비아 군사작전 지휘권 논의를 재개했다. 전날 회의에서는 아랍연맹과 아프리카연합까지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리비아 군사 개입에 대한 정치적 결정을 맡기고 나토는 기술적 작전 수립 및 지휘만 책임지자는 절충안이 나왔으나 독일과 터키가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프랑스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둬 지나치게 앞서 나가면서 공통의 목표를 설정하기가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유럽연합(EU) 정상들도 이날 역내 금융 안정 문제와 함께 리비아 사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카다피 쪽은 서방이 군사작전의 사령탑을 세우지 못하며 헤매는 사이 역습의 고삐를 바짝 조였다. 리비아 정부군은 전날 제3의 도시 미스라타의 반군 세력을 향해 심야 포격을 가했다. 환자 200명을 포함해 400여명이 머물던 미스라타의 한 병원까지 공격하는 잔혹함을 보였다. 또 트리폴리 남서쪽의 진탄에서도 카다피군의 탱크와 전차가 불을 뿜으며 반정부군을 압박했다. 하피즈 고가 반군 대변인은 “카다피군의 공격으로 미스라타에서 16명이 사망하고 진탄에서 6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반군은 카다피의 파상공격 탓에 거점인 벵가지의 남부 아즈다비야 외곽에서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리비아 정부는 심리전도 이어갔다. 다국적군의 폭격기가 23일과 24일 수도 트리폴리와 인근 타주라 지역의 군사기지 등을 공격하자 리비아 국영 뉴스통신사 자나는 “서방의 공습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다국적군의 공격 명분에 상처를 남기려고 애썼다. 프랑스 정부는 5차 공습을 통해 지중해 연안에서 250㎞ 내륙에 위치한 공군 기지를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계속된 공습에도 카다피가 지상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작전 기간에 대한 전망도 엇갈리고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이번 작전이 언제 끝날지에 대한 시간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2~3주면 끝날 것이라는 환상은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차모프 전 리비아 주재 대사도 “카다피는 수개월간 버틸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알렝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연합군 작전이 수개월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장기화 우려를 일축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한편 카다피 쪽이 미국 등과 비밀 접촉을 통해 출구 전략을 찾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미 MSNBC방송에 출연해 “카다피 측근 일부는 현 상황에서 빠져나갈 기회를 찾으려고 손을 내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매주 1억弗 소요… 재정적자 악화

    리비아 군사작전에 뛰어든 미국이 천문학적인 전비(戰費)로 딜레마에 빠졌다. 금융위기의 잔재가 여전하고 만성적인 재정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을 계속 지출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윈슬로 휠러 미 국방정보센터 예산 전문가는 22일(현지시간)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B2 스텔스기 3대의 경우 대당 작전비용이 한 시간에 8만 달러(약 8980만원), 스텔스기가 합동직격탄(JDMA)을 투하했을 때 비용이 100만 달러에 이른다.”고 말했다. ●스텔스기 작전비용 시간당 8만弗 실제 미국과 영국이 발사한 161기의 토마호크 미사일에 2억 2500만 달러가 들었고, 리비아 상공에서 추락한 F15 전투기의 가격은 3000만 달러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비용 부담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작전에서 ‘예상외의 군사작전’을 위해 편성된 기존 예산을 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쟁이 조기에 종료되지 않는다면 의회에 추가 예산을 긴급 요청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미 전략예산평가센터(CSBA)는 “미국은 매주 3000만∼1억 달러의 비용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데니스 쿠치니치(오하이오) 하원 의원은 최근 동료 의원들에게 돌린 서신에서 “이라크·아프간전에 이미 수조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두 전쟁 모두 난공불락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며 오바마 행정부를 압박했다. ●백악관 군사작전 단기종결 시사 이를 의식한 듯 백악관 예산관리국 케네스 베어 대변인은 “현 단계의 비용은 기존 재원으로 감당하고 있으며 추가 예산을 요청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미국의 군사작전이 단기간에 종결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리비아 내전 탈출 러시 유럽 ‘난민 역풍’ 맞나

    카다피군이 리비아 반군 거점인 벵가지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는 가운데 이를 피해 인근 국가로 탈출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에이드리언 에드워즈 유엔난민최고대표사무소(UNHCR) 대변인은 22일(현지시간) “리비아 동부의 가정과 학교, 대학 강당에는 난민 수천명이 머물고 있다.”면서 “이집트 쪽으로 탈출하는 리비아인의 수가 하루 평균 1000명으로 최근 들어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AFP통신은 “토브루크와 데르나, 아즈다비야 등의 도시는 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난민이 대규모로 발생하면서 가장 우려하고 있는 곳은 유럽이다. 난민들이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대거 유입될 가능성이 큰 까닭이다. 최근 유엔은 내전을 피해 리비아를 탈출한 사람이 30만명을 넘었다는 통계를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리비아에 인접한 이탈리아의 걱정이 가장 크다. 타임지는 최근 “유럽이 리비아 공격에 나선 것은 사태를 가능한 한 빨리 진정시켜 앞으로 야기될 유럽 내 리비아 난민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취지도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카다피가 결사항전을 선언하고 벵가지 등 반군 장악 지역에 대한 공격을 퍼부어 난민이 대거 발생하자 공습의 화살은 유럽으로 되돌아가는 형국이다. ‘민간인 보호’를 기치로 내건 공습이 오히려 대량 난민 문제를 야기하는 역설적인 상황도 다국적군 입장에선 부담스럽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나토 개입’ 공은 독일·터키로

    ‘나토 개입’ 공은 독일·터키로

    미국과 프랑스, 영국 등 리비아 공습의 주연인 3국이 군사작전 지휘권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넘기기로 합의하면서 나토가 새 ‘중앙지휘부’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하지만 참전을 꺼리는 독일과 유럽 내 이슬람국가인 터키가 나토의 개입에 반대해 단일대오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전화통화를 갖고 나토가 리비아 작전 지휘권을 이양하는 데 합의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엘살바도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며칠 안에 국제연합군에 작전지휘권을 이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애초 자국이 리비아 군사작전을 계속 주도해 북아프리카 지역 내 영향력을 회복하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미국, 영국이 동조하지 않자 결국 나토로의 지휘권 이양에 합의했다. 프랑스는 그러면서 나토의 효과적인 작전 수행을 명분으로 내세워 영국과 프랑스, 미국, 그리고 아랍연맹국의 외무장관이 참여하는 특별위원회 창설을 제안했다. 리비아 공습의 주도권을 일정부분 유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들 3국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나토가 군사작전 지휘권을 실제 넘겨받으려면 험한 산을 넘어야 한다. 지휘권 이양을 위해서는 28개 나토 회원국 전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독일과 터키는 군사작전 불참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독일 정권은 자국 여론이 참전에 부정적인 데다 리비아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불투명해 나토의 군사개입을 꺼린다. 아랍권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터키 또한 “리비아 문제를 외부개입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경우 미국 등이 집요한 설득에 나선다면 마지못해 나토로의 작전 지휘권 이양을 받아들이겠지만 터키는 완강한 입장을 고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원삼(국제관계학) 선문대 교수는 “터키는 서방사회가 ‘카다피 제거 뒤 리비아에서 곧바로 철군’ 등 다양한 전제조건을 받아들여야만 지휘권 이양에 동의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리비아 상공 장악한 여성장군

    리비아 상공 장악한 여성장군

    미국 공군의 리비아 공습을 여성 사령관이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여성이 실전에서 미 공군 작전을 책임지기는 처음이다. 23일 미국 포린폴리시(FP) 웹사이트에 따르면,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의 미군 아프리카사령부(AFRICOM) 산하 제17공군 사령관인 마거릿 우드워드 소장이 전투기와 폭격기를 동원한 리비아 공습을 지휘하고 있다. 미 17공군 사령관은 53개국 9억명으로 이뤄진 아프리카 전역을 관할하는 자리다. 우드워드는 전투기를 조종한 적은 없지만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대형 공중급유기와 수송기, 훈련기 등을 사고 없이 몰았다. 그녀는 총 3800시간이 넘는 비행 경력을 보유, ‘최상급 비행사’로 인정받는다. 무거운 중력과 기압을 견뎌야 하는 조종사의 역할을 3000시간 이상 하려면 남녀를 막론하고 엄청난 체력이 요구된다. 우드워드는 1982년 애리조나주립대에서 항공우주 공학을 전공한 뒤 1983년 공군에 입대해 일선부대의 작전과 참모 분야에서 경험을 닦았고 국방부 장관실에서도 의전담당으로 일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