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리비아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수영모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팔로워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총괄선대위원장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 밀수
    2025-12-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098
  • [카다피정권 붕괴] 구심점 없는 과도국가위… 또 다른 권력다툼에 빠지나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정권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리비아의 앞날에 서방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42년을 이어온 전제주의 체제가 민주주의 체제로 순조롭게 전환되길 희망하지만 권력 다툼으로 인한 내분으로 새로운 수렁에 빠져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22일(현지시간) 카다피 정권 몰락을 주도한 리비아 반군이 단결과 화합이란 진정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반군을 대표하는 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는 반정부 인사와 해외 망명자, 카다피 체제에서 이탈한 고위 인사, 아랍민족주의자, 이슬람교도 등 다양한 배경의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차기 지도자로 내세울 만한 구심점을 갖춘 인물도 뚜렷하지 않다. 리비아 동부 벵가지를 거점으로 활동해온 NTC가 권력 이양을 위한 위원회 재편 과정에서 리비아의 폭넓은 부족과 지역의 대표들을 포괄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NTC는 지난달 피살된 반군 최고사령관 압둘 파타 유네스 대장이 반군 내부의 반대세력에 의해 사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심각한 분열상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NTC 내부 개편 논의에 관여하고 있는 리비아 출신의 오마르 터비 미 컴퓨터회사 대표는 CNN 인터뷰에서 “현재 NTC 위원들은 대부분 동부 리비아 지역의 인사들로 임의로 구성된 만큼 위원회를 확대해 리비아 전체를 대표하는 수준으로 만들 준비가 진행 중”이라면서 “비민주주의적 시스템을 민주주의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 최소 24개월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 반군이 정권장악 이후에도 친서방 정책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불확실하다. 로이터는 “카다피 몰락 후 리비아에 자동적으로 친서방 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가 틀렸다는 점이 입증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재스민 혁명’ 이후 아랍과 중동 지역의 일부 국가들이 서방의 민주주의 체제에 가까워졌지만 일부에선 서방과 가깝다는 이유로 권좌에서 쫓겨난 권력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리비아 반군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지원을 등에 업고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나토군의 리비아 주둔 문제에 대해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서방 입장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는 리비아가 독자적인 길을 가며 제 목소리를 내되 이슬람 극단세력 척결과 이스라엘 지지 같은 문제에서 서방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것이다. 유럽외교관계이사회의 대니얼 코르스키 선임연구원은 “서방은 질서 있는 권력 이양을 지원해야 하며, 카다피가 이루지 못했다고 반군 세력 스스로 생각해온 원칙들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리비아 반군 지도자와 주요 관련국 지도자들에게 향후 리비아의 권력 이양과 민주화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에서 “리비아의 미래는 이제 리비아 국민의 손에 달렸다.”면서 “미국은 권력 이양 과정에서 파트너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카다피 몰락] 알아사드·살레의 시간 얼마나 남았나

    [카다피 몰락] 알아사드·살레의 시간 얼마나 남았나

    ‘절반의 성공’에 그칠 듯했던 ‘재스민 혁명’(아랍권역의 반정부·민주화 움직임)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의 사실상 붕괴로 재점화할 조짐이다.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에서 독재자의 세 번째 퇴장을 지켜본 세계인의 관심은 ‘다음 타깃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쏠린다. 당장 시민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시리아와 예멘의 통치자가 강력한 네 번째 후보다. 부자 세습을 통해 11년째 권력을 쥐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탱크와 군함까지 동원해 유혈진압하고 있다. 민주화 시위가 불붙은 5개월 사이 2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알아사드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퇴진 요구를 “대꾸할 가치가 없다.”며 일축했다. 비폭력 반정부 시위를 고집해온 시민들로서는 강한 권력욕을 보이는 알아사드 앞에서 뾰족한 돌파구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알아사드 대통령이 국내외의 거센 비난 여론에도 대국민 학살극을 멈추지 않는 것은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어 서방의 무력 개입 가능성이 낮다. 역내 우방이 없어 고립무원 처지에 놓였던 카다피와는 사정이 다르다. 충성도 높은 군대도 알아사드가 ‘믿는 구석’이다. 막내동생인 마헤르는 정예 부대인 제4사단과 공화국수비대를 이끌며 ‘정권의 수호자’ 역할을 맡고 있다. 군부가 정권과 시위대 사이에서 중립적 자세를 끝까지 지키며 독재자 퇴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튀니지나 이집트와 다른 점이다. 하지만 리비아 사태는 정권의 친위대가 버티는 상황에서도 시민의 힘으로 독재자를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시리아 국민들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다. 카다피와 닮은꼴 행보를 하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35%에 달하는 실업률에 빈곤선 이하 계층 비율이 5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우리(예멘군)는 마지막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선전포고를 해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반정부 시위가 사실상 내전으로 바뀐 지난 6월 대통령궁에서 폭탄 공격을 받았고 중화상 치료차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가 두 달 넘게 체류 중이다. 카다피의 몰락을 지켜본 살레로서는 자신이 앞서 거부했던 사후 처벌 면제를 보장하는 대신 조기 퇴진이라는 걸프협력협의회(GCC) 중재안에 다시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중동 전문가인 제프 포터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리비아 사태는 시리아와 예멘 내 시위대에 강한 자극을 줬다.”면서 “비록 리비아에서처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해도 시위대와 반군, 야권이 저항을 계속한다면 정권을 쓰러뜨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리비아 반군에 100만弗 지원…정부당국자 “대세 기울어졌다”

    정부가 리비아 반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TNC)에 1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22일 “TNC 측이 트리폴리를 모두 장악한 것은 아니지만 대세는 기울었다고 본다.”며 “지난 6월 민관합동회의 이후 리비아 벵가지에 대표단을 파견, 우리 교민의 안전과 기업 공사 재개 등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리비아 카다피 42년독재 끝났다

    리비아 카다피 42년독재 끝났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사실상 붕괴됐다. 지난 2월 리비아 사태가 촉발된 지 6개월 남짓 만이다. 카다피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전멸 위기에 몰린 카다피군은 22일(현지시간) 수도 트리폴리의 카다피 관저와 녹색광장을 중심으로 최후 항전에 나서 산발적인 총격전이 계속되고 있다. 리비아 반정부군은 21일 ‘인어의 새벽’이라는 작전명 아래 카다피 국가원수의 최후 거점인 트리폴리를 대부분 장악하고, 카다피의 두 아들을 생포하면서 카다피 42년 체제의 종식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반군 측 런던 주재 마흐무드 나쿠아 부대사는 22일 “트리폴리에서 교전이 계속되고 있지만 반군이 수도의 95%를 장악하는 등 통제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반군들이 카다피의 관저가 있는 밥 알아지지야 요새로 통하는 주요 도로에서 카다피 측 저격수들과 맞서고 있다고 전했다. 관저 안에는 카다피의 4남 알 무타심이 버티고 있다고 아랍권 위성TV인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반군은 21일 정부군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트리폴리에 입성했으며, 카다피의 경호와 수도 방위를 책임진 최정예부대 32여단의 기지를 점령했다. 반군은 이날 밤 트리폴리 도심의 ‘녹색광장’까지 완전 장악했다. 반군과 시민들은 “더 이상 녹색광장이 아니라 순교자의 광장이다.”, “승리의 순간이 왔다.”며 환호했다. 이로써 밥 알아지지야 등 일부 지역을 뺀 트리폴리 전역이 반군 통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22일 오후 카다피 친위부대가 필사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반군이 녹색 광장 밖으로 밀려났다. 또 카다피의 아들 중 한명이 이끄는 부대가 트리폴리 중심부에서 반군과 격렬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반군의 트리폴리 입성 과정에서 카다피의 후계자 1순위였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과 3남 알사디가 생포됐다. 장남 모하메드 알카다피는 반군에 투항했다고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전했다. 반군은 민간인 불법 공격 지시 등 반인도 범죄 혐의로 카다피와 함께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사이프 알이슬람이 리비아 내에서 재판받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카다피의 최측근인 한 친척이 체포되고 총리는 튀니지에 머무는 등 내부의 이탈도 가속화되고 있다. 카다피는 정확한 행방이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국외 망명 가능성과 함께 시르테나 남부 사막 기지 등에 은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서방 각국은 잇따라 성명을 내고 카다피 체제의 전복을 기정사실화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트리폴리가 독재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다.”며 카다피의 권력이양을 촉구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데스크 시각] ‘분노의 세계화’ 시대에 산다는 것/김균미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분노의 세계화’ 시대에 산다는 것/김균미 국제부장

    ‘분노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Anger) 경제에서 자주 쓰이는 ‘세계화’라는 용어를 사회적 현상에 적용해 놓고 보니 어쩐지 눈에 설다. 하지만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들불처럼 일고 있는 각종 시위를 보고 있노라면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장기 집권해온 독자재들의 붕괴를 가져온 중동의 ‘재스민 혁명’, 런던을 불태웠던 영국 폭동, 정부의 긴축재정과 허리가 휠 정도로 늘어난 빚더미에 화가 난 그리스 국민들, 국민의 94%가 가톨릭 신도인 스페인에서 재정 부담(1550억원)을 이유로 벌인 교황 방문 거부 시위, 서울에서 진행됐던 대학 반값 등록금 시위. 그런가 하면 지구 반대편 남미의 칠레에서는 대학생과 시민들이 지난 5월부터 공교육 개혁을 요구하며 연일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급기야 냄비와 프라이팬 등을 들고 나와 두들기는 ‘솥뚜껑 시위’로 불만을 폭발시켰다. 이스라엘에서는 고물가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다롄의 한 화학공장이 독성 물질을 무단 방출한 데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져 공장이 폐쇄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들 시위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차이가 있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 손에 잡히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이를 방치하는 정치권과 지도층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쯤 되면 ‘분노의 세계화’라 해도 무방해 보인다. 세계화는 흔히들 무역·자본 자유화가 추진되면서 재화·서비스·자본·노동 및 아이디어 등의 국제적 이동 증가로 인한 각국 경제의 통합화 현상을 지칭한다. 1983년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시어도어 레빗 교수가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5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레빗 교수는 세계화를 신기술의 발달로 미디어의 영역이 넓어져 세계가 좁아진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얼마 전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 유명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 13일자에 실은 칼럼에서 ‘분노의 세계화’ 문제를 짚었다. 프리드먼은 세계화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달하고 있는 정보통신(IT) 기술이 오늘날 분노의 세계화를 가능케 했다고 진단했다. 인터넷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순식간에 한쪽에서 일어난 시위는 지구 반대편 시위 참가자들을 독려하며 상승작용을 일으킨다고 분석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중동의 튀니지에서 시작된 재스민 혁명은 이집트와 예멘, 리비아로 옮겨붙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시위 소식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결국 독재자들의 목을 옥죄었다. 런던에서 시작돼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 폭동은 유사한 사회·경제적 상황에 처한 주변 유럽 국가들을 긴장시켰다. 모방 범죄도 잇따랐다. 하지만 나라 밖에서 들려오는 각종 시위 소식이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한국의 IT 발달 수준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구촌 곳곳의 시위를 촉발시킨 문제들을 한국도 고스란히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천정부지의 대학 등록금, 청년 실업률, 치솟는 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 빚 등등…. 아직은 칠레나 이스라엘, 영국처럼 불만이 분노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 언제까지 우리만 참으며 희생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정부나 지도층이 SNS를 효과적인 선거운동 내지 여론 관리 수단 정도로만 여길 게 아니라 소통의 채널로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디지털시대에, ‘분노의 세계화’ 시대를 산다는 것은 불만뿐 아니라 역으로 희망과 긍정의 힘을 공유할 수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에게, 소말리아에서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아이에게 손을 내미는 우리를 기대해 본다. kmkim@seoul.co.kr
  • ‘2인자’ 차남 생포… 리비아서 재판 받을 듯

    ‘2인자’ 차남 생포… 리비아서 재판 받을 듯

    42년간 철권통치를 해 온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정권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카다피 일가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전히 결사항전의 의지를 밝혔지만 장남 모하메드 알카다피가 반정부군에 투항한 데 이어, ‘2인자’인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과 3남인 알사디가 반군에 생포돼 카다피 정권의 핵심 기반이 무너졌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리비아 반군 대표부인 과도국가위원회(NTC)의 무스타파 압델 잘릴 위원장은 “사이프 알이슬람이 생포됐다.”고 밝혔다. 잘릴 위원장은 “그는 법정에 넘겨질 때까지 안전한 지역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2일 AFP에 따르면 국제형사재판소(ICC) 대변인은 아버지와 함께 시위대 유혈진압을 진두지휘, 반(反)인도주의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사이프 알이슬람을 ICC가 위치한 헤이그로 송환하는 방안을 국가위원회와 함께 논의 중이라고 확인했다. 이날 루이스 모레노오캄포 ICC 수석검사도 그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했다. 하지만 NTC 측은 그의 재판을 리비아에서 진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도 트리폴리의 카다피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 인근 호텔에서 반군에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생포된 사이프 알이슬람은 서방세계에는 진보적 개혁파로 알려져 있다. 2009년 ‘시민·인민위원회’의 위원장에 추대되고 비영리법인인 ‘카다피 재단’을 통해 대외업무 등을 맡으면서 사실상 2인자로 급부상했다. 2008년 미 팬암기 폭파사건 보상협상, 2010년 한국인 선교사 등 2명에 대한 석방 협상 등에서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반정부 시위사태가 일어나면서 카다피를 대신해 강경입장을 고수하는 바람에 아버지 등과 함께 반인륜범죄 혐의로 ICC에 기소된 바 있다. 우편·통신위원장과 리비아올림픽위원장을 맡은 장남 모하메드는 22일 새벽 반군에 투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다피는 2명의 부인 사이에 7남 1녀를 두고 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대규모 플랜트공사·수출 재개 기대”

    “대규모 플랜트공사·수출 재개 기대”

    리비아 반군이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하면서 카다피 정권이 사실상 종말을 고했다. 이에 따라 국내 건설업계와 정유, 수출 기업들은 리비아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또 정부도 국토해양부, 외교통상부, 국정원 등 관련부처가 협의회를 구성하고 리비아 사태 종결 이후 범정부 차원의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22일 정부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건설업계는 내전으로 리비아에서 공사를 중단한 건설현장 점검 등을 위해 직원을 파견하고, 수출입업체들은 원유 수입 및 상품 수출 재개 등을 위한 실무팀 구성 등에 나서고 있다. 또 정부와 기업들은 반군이 점령한 벵가지를 중심으로 한 리비아 동부지역에 직원들을 파견하고 지역 부족을 중심으로 한 반군들과 이미 물밑 접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건설업계는 최근 리비아 반군 고위 관계자가 카다피 정권과 해외 기업들이 체결한 계약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내전으로 중단됐던 프로젝트가 재개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 건설업체가 리비아에서 공사를 하다가 중단한 규모는 80억 달러 가까이 된다. 트리폴리와 미스라타, 벵가지 등에 현장을 둔 대우건설 관계자는 “정권을 누가 잡느냐보다 리비아 내전사태가 마무리됐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현장을 지키는 직원들을 중심으로 피해상황 등 공사 재개를 위한 점검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현대건설도 발전소 등 공공기관이 발주한 국가 기반시설이 대부분이라 반군이 장악하더라도 공사 재개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에서는 장밋빛 전망도 제기됐다.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장기적으로 리비아 국민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발전을 위한 원동력인 발전소와 낙후된 정유시설 보강을 위한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될 것이란 분석이나왔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발전소, 정유시설 등 대규모 플랜트 공사가 많이 발주될 것”이라면서 “지역 부족과 국내 업체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한 수주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국민투표 등 권력이양 작업을 마치고 안정적인 상황이 유지돼야 신규공사 발주가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올해 발주물량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 재개 등은 빨라야 내년 초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리비아 사태와 관련, 비상대책반과 지원반을 운영 중인 해외건설협회도 국내 업체들의 공사 재개와 손해배상 등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강신영 해건협 실장은 “확실히 사태가 마무리되고 협상 주체가 정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리비아에 기계, 자동차 부품, 타이어 등을 수출하고 있는 제조업체들도 수출 재개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석우 코트라 중앙아시아 CIS팀 과장은 “거의 6개월 동안 리비아 수출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정권이 바뀌어도 가격이나 인지도 면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기계, 자동차 부품 등 리비아 수출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리비아 원유 수급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세계 석유매장량 8위인 리비아는 하루 150만 배럴의 석유를 수출했었다. 전 세계 수요의 2% 정도를 차지하는 리비아의 석유는 그동안 반정부 시위로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국제 석유가격을 배럴당 10~20달러 끌어올린 것으로 진단됐다. 국내 정유업계 관계자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지만 고공행진을 했던 국제 유가가 하락한다면 국내 휘발유 값도 하향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김승훈기자 hihi@seoul.co.kr
  • 반군 ‘모래알 조직’… 잘릴 前법무 두각

    ‘컨트롤타워가 없다.’ ‘포스트 카다피’ 정권을 이끌어 나갈 리비아 반정부 세력이 맞닥뜨린 가장 큰 고민이다. 서방 국가가 합법정부로 인정한 주요 반정부 조직인 과도국가위원회(NTC)에는 카다피 체제에서 이탈한 관료들과 오랫동안 정부에 투쟁해 온 반정부 인사, 해외 망명자, 아랍 민족주의자, 이슬람교도, 사회주의자, 기업인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 가운데 차기 지도자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2007년부터 카다피 정권에서 법무장관을 지내다 지난 2월 이탈한 무스타파 압델 잘릴 국가위원회 위원장이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외교문서에서 ‘공정한 시각을 가진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라는 평가를 받은 잘릴 위원장은 구체적인 권력 이양 로드맵을 제시하는 등 나름대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정부와 단절된 새 인물을 원하는 일부 반군들은 카다피의 다른 이너서클 출신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가위원회에서 외교정책을 맡은 마무드 잘릴 반군 임시정부 총리도 외국 정부와의 접촉을 늘리며 세력을 넓히고 있다. 미국으로 망명해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알리 타우니 국가위원회 재무·석유장관과 1975년 카다피 정권 전복을 모의하다 발각돼 감옥살이 끝에 21년 전 석방된 오마르 엘하리리 국가위원회 국방장관도 새 정부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을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反)카다피 세력과 최근 반정부 세력으로 돌아선 카다피 이너서클 사이의 갈등이 반정부세력의 효율적인 리더십 구축 노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리비아는 또 140여개의 부족이 난립해 있어, 민족·부족 간 균열과 파벌주의로 갈등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경파가 득세할 경우 리비아가 2003년 미국의 침공을 받은 뒤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으로 혼란을 거듭했던 이라크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카다피 정권 몰락 계기로 본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는

    카다피 정권 몰락 계기로 본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역사 속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독재자들의 말로를 되돌아본다. ●차우셰스쿠 등 도피중 처형 22년간 루마니아를 철권통치하며 김일성을 모방해 우상화 작업에 혈안이 돼 있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전 대통령은 1989년 카다피처럼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을 시도했다. 하지만 평소 정권에 불만이 많았던 군은 총부리를 차우셰스쿠에게 돌렸고, 북한으로 도망치려다 붙잡힌 그는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됐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뒤 연인 클라라 페타치와 함께 알프스 산맥을 따라 도망쳤던 베니토 무솔리니 전 이탈리아 총리 역시 유격대에 붙잡혔다. 메제그라라는 마을에서 페타치와 함께 처형당한 무솔리니의 시신은 밀라노의 로레타 광장에 매달렸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도 고향인 티그리트에서 숨어지내다 미군에 체포된 지 3년만인 2006년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소모사 부자, 암살도 대물림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 전 니카라과 대통령은 20년 독재 후 1956년 암살 당했다. 그 자리를 두 아들이 잇따라 차지, 소모사 일가는 1979년까지 62년간 니카라과를 지배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에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도 1980년 암살당해 권력뿐 아니라 죽는 방식까지도 대물림했다. 독립 이후 정권 전복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조제프 카빌라 현 대통령은 아버지 로랑 카빌라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가였으나 변절, 독재를 하다 2001년 쿠데타 과정에서 암살됐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이 17년간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정치적 이유로 살해된 이들이 공식적으로만 3197명이고, 1000여명은 여전히 실종상태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8년 뒤인 1998년 영국 런던에서 체포됐지만 건강상 이유로 석방돼 귀국했다. 칠레에 돌아와서는 가택연금됐고 2006년 심장마비로 숨졌다. ‘20세기 가장 부패한 지도자’로 꼽히는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재직 중 부패혐의로 처벌받지는 않았지만 물러난 뒤 10년간 은둔생활을 하면서 빼돌린 돈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피노체트·밀로셰비치 감옥행 ‘발칸의 도살자’라 불렸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연방 대통령은 2000년 실각한 뒤 2001년 4월 세르비아에서 체포됐다. 1999년 구유고슬라비아국제형사재판소(ICTY)에 의하여 전쟁범죄와 학살죄, 반인도적범죄 혐의로 기소돼 같은 해 7월 네덜란드 헤이그로 이송됐으며 재판을 받던 중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프리카의 히틀러’로 불리는 이디 아민 전 우간다 대통령 역시 망명 생활 중 사망했다. 집권 기간 동안 전체 1000만명 인구 중 정적 등 최소 30만명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79년 반군에 쫓겨 리비아로 도피했다가 사우디아라비아로 건너갔다. 죽는 날까지 우간다 땅을 다시 밟지 못했다..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의 엄청난 낭비벽으로 더욱 유명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은 1986년 2월 부정선거가 발목이 잡혀 집권 21년 만에 하와이로 쫓겨났다. 3년 뒤 가족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퇴진 요구 말도 안돼” 버티는 알아사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반군의 맹공으로 벼랑 끝에 선 가운데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서방국가의 퇴진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서방국가가 리비아 사태처럼 군사개입 카드를 꺼내들 경우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위협도 빼놓지 않았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현지 국영TV와 인터뷰를 갖고 “퇴진 요구는 말할 가치도 없다.”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리아 국민들에 의해 선택된 대통령에 대해 해서는 안 되는 언급”이라고 일축했다. 알아사드는 정치 개혁 로드맵도 제시했다. 오는 12월 지방선거를 시행한 뒤 이번주 새 정당법이 발효되면 내년 2월 의회를 다시 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반정부 인사들은 알아사드의 개혁 조치와 대화 요청을 전면 거부한 가운데 터키에 모여 이번 사태를 지원할 위원회 발족을 위한 회담에 나섰다. 대표단 중 1명인 와엘 메르자 교수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주말까지 위원회 명단 구성에 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유럽연합(EU)은 시리아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새 제재안 채택을 위한 막판 협상에 나섰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카다피 어디있나

    카다피 어디있나

    리비아 반군이 22일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트리폴리 관저 주변까지 진격한 가운데 카다피의 행방에 전 세계와 언론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반군은 카다피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과 3남 알사디를 생포했지만 카다피의 행적은 파악하지 못했다. ●“가족과 튀니지로 망명할 것” 카다피는 전날 밤 국영TV가 방송한 녹음연설에서 “우리는 결코 트리폴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거듭 밝혔으나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이날 아프리카 연합이 카다피에게 앙골라나 짐바브웨 망명을 권유했으며, 트리폴리 공항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비행기 2대가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마이테 은코아나 마샤바네 남아공 외무장관은 카다피가 아닌 자국 국민을 대피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남아공 외교부는 카다피가 리비아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비아 반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 대변인 마흐무드 샴만은 영국 스카이뉴스 인터뷰에서 “카다피의 행방에 대한 무수한 소문이 있지만, 나는 그가 알제리 국경 부근에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AFP통신은 최근 2주일간 카다피를 만났다는 한 외교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카다피가 아직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42년 철권통치 권력의 강제 퇴장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카다피 최후의 선택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반군의 손에 잡히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려면 해외 망명과 국내 은신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국내 은신땐 고향 시르테 유력 현재로서 유력한 망명국가는 튀니지다. 튀니지는 리비아 서쪽과 국경을 접한 나라로 내전이 격화되던 지난 5월 카다피의 부인과 딸이 도피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해외 망명이 어렵다면 국내에서 은신처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카다피가 이미 고향인 시르테나 남부 사막기지에 은신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카다피가 최후의 순간까지 트리폴리에서 은신하며 기약 없는 후일을 도모하는 방법도 있다. 막판 궁지에 몰리면 자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마침내 비참한 최후 맞은 리비아 카다피

    리비아를 42년간 철권통치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 리비아 반군은 어제 수도 트리폴리 입성에 성공했다. 카다피의 장남은 투항했고, 차남과 3남은 생포됐다. 트리폴리는 카다피의 최후 거점 도시다. 이에 앞서 반군은 카다피 5남이 지휘해온 트리폴리 외곽의 친위 정예부대 기지를 접수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휴가지인 마서스 비니어드섬에서 성명을 통해 “카다피 정권에 대항하는 힘이 정점에 달했다.”면서 “트리폴리는 독재자의 손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6개월여간의 지루했던 내전은 미국, 영국 등 다국적군의 지지와 지원을 받은 반군의 승리로 사실상 끝이 났다. 지난해 말부터 아프리카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불어닥친 ‘피플파워’는 24년간 통치했던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을 축출하고, 30년간 이집트를 강압 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쫓은 데 이어 카다피를 끌어내리는 데도 사실상 성공했다. 총과 대포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찾겠다는 시민들을 굴복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튀니지의 재스민혁명을 시작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카다피의 몰락에 따라 민간인들에 대한 유혈 진압도 서슴지 않고 있는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퇴진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 이제 리비아에서는 ‘포스트 카다피’ 체제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반카다피 진영의 대표기구인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의 역할이 보다 중요해졌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리비아에 민주정부가 수립돼 하루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카다피 정권의 몰락을 가장 우려스러운 눈으로 볼 대표적인 정권은 아무래도 3대째 세습을 준비하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일 것이다. 북한 정권은 주민을 억압만 한다고 해서 제대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부와 군은 북한의 움직임을 보다 면밀히 점검해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또 정부는 교민 안전은 물론 카다피 이후에도 리비아의 건설사업에 우리 건설업체들이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차분하면서도 내실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 나토군 공중지원… 6만5000 카다피군 반군에 ‘백기’

    나토군 공중지원… 6만5000 카다피군 반군에 ‘백기’

    ‘현존 최장기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쌓은 난공불락의 요새조차 자유에 목마른 반군의 기세 앞에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공중 지원’을 받은 반군은 21일(현지시간) 내전 개시 6개월여 만에 처음 수도 트리폴리에 입성, 시설 대부분을 장악했다. CNN은 “반군이 카다피의 대문 앞 계단까지 접근했다.”며 42년간 이어진 카다피 철권통치의 종말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전했다. 반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의 아랍에미리트연합 주재 대사인 아레프 알리 나야드는 “오늘이 (카다피가 없는) 첫날”이라며 사실상의 승리를 자축했다. ‘인어의 새벽’이라는 작전명으로 수도 함락전을 개시한 반군은 이날 서부 나푸사 산을 통해 트리폴리까지 순식간에 밀고 들어갔다. 트리폴리의 27㎞ 외곽에 있는 최정예부대 ‘카미스 여단’이 가로막았지만 어렵지 않게 격퇴했고 수도 중심부로 치고 나갔다. 카미스 여단은 카다피의 7남 카미스가 이끄는 수도방위군이다. AP통신은 카미스 여단 간부 중 한명이 몇년 전 카다피가 자신의 형을 숙청하자 앙심을 품고 반군에 투항하면서 정예부대가 허무하게 함락됐다고 전했다. 또 카다피군이 동부전선 방어에만 신경쓰는 틈을 타 반군이 서부 산악지역에서 진격해 온 것도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트리폴리에는 6만 5000여명의 친카다피 병력이 있었지만 큰 저항은 없었다고 CNN이 전했다. 반군 측은 자신들이 22일 오전까지 카다피 관저인 ‘밥 알아지지야’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을 장악했다며 트리폴리 함락이 임박했다고 밝혔다. 카다피 지지자들의 집결지였던 녹색광장과 미티가 국제공항도 접수했다. 반군은 카다피가 집권 이후 이름 붙인 녹색광장을 ‘순교자의 광장’으로 개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군 측 관계자는 “트리폴리의 핵심시설인 병원과 군 막사, 외국 취재진이 머무는 릭소스호텔 등은 여전히 카다피 측이 장악 중”이라고 밝혔다. 반군이 등장하자 트리폴리는 일순간 ‘해방구’로 변했다. 반정부군이 100여대의 군 트럭에 나눠 타고 대열을 이루며 진격하자 시민들은 길가에 늘어서 환호하며 반겼다. 카다피는 반군이 숨통을 죄어 오는 상황에서도 “트리폴리를 포기하지 않고 결사항전해 승리를 쟁취할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카다피를 지켜 줄 ‘우군’은 많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이 생포됐고 3남인 알사디도 붙잡힌 것으로 알려지면서 독재자는 벼랑 끝에 섰다. 반군에 투항한 것으로 알려진 장남 모하메드는 이날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카다피 정권이) 현명하지 못해 리비아의 위기와 혁명이 발생했다.”며 국민에게 사과했다. 목격자들은 사면초가에 몰린 카다피의 트리폴리 관저와 녹색광장 주변에서 22일 오후 늦게까지 치열한 교전음이 들렸다고 전했다. 또 군대를 이끌고 트리폴리로 진격한 카다피의 아들 중 한명이 중심부에서 반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아랍권 위성 TV인 알아라비야가 보도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순교하겠다” 리비아 앵커 TV서 총기들고 위협

    “순교하겠다” 리비아 앵커 TV서 총기들고 위협

    21일(현지시간) 리비아 반군이 카다피 마지막 근거지에서 정부군과 최후의 교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리비아의 한 방송국의 앵커가 무장한 채 생방송 뉴스에 등장해 리비아 내 급박한 분위기를 짐작케 했다. 리비아 반군중심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와 나토(북대서양조양기구)는 수도 트리폴리를 함락,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를 고립시켜 항복 또는 해외도피를 유도하기 위한 이른바 ‘인어공주의 새벽’(mermaid dawn) 작전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리비아 정부 산하 방송사 알-리비아(al-Libiyah)의 한 여성 앵커는 생방송 뉴스에 손에 총을 든 유례없는 모습으로 등장해 “반군들의 침략에서 방송국을 지키겠다.”며 결사 항전의 의지를 내비쳤다. 아랍권 방송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 여성앵커는 “방송국의 모든 직원들은 무장한 채 순교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손에든 무기는 죽거나 죽이는 용도로 쓰일 것이며, 반군들은 절대로 우리 방송국은 물론 트리폴리, 리비아를 빼앗지 못한다.”고 총을 흔들며 강력히 주장했다. 이 뉴스 영상은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를 통해서 전 세계로 확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랍권 방송들에 따르면 리비아 반군이 트리폴리 근교 수크 알 고마, 타주라, 우라다, 알 사바 등 지역을 장악했으며, 카다피의 차남과 3남이 반군에게 체포되고 장남이 반군에게 투항하는 등 사실상 카디피 정권이 42년 만에 붕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풀이된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반군, 트리폴리 함락작전 개시… “국제공항 장악”

    반군, 트리폴리 함락작전 개시… “국제공항 장악”

    지난 6개월 동안 내전을 벌여 온 리비아가 반군이 ‘인어공주’라는 작전명 아래 처음으로 수도 트리폴리를 포위하고 시내에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다. 로이터·AFP 등 서방 외신들은 트리폴리 내부에서도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41년 철권정치에 반대해 봉기가 일어났다면서 카다피 정권 붕괴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21일(현지시간) 전했다. 알자지라는 목격자와 반군 측을 인용해 20일 저녁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트리폴리 시내 곳곳에서 반군과 카다피 친위부대 사이에 전투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소속 공군이 공중 지원해 주는 것도 반군에 적잖은 힘이 되고 있다. 20일 나토는 리비아 정보 당국 수장이자 카다피의 처남인 압둘라 알세누시의 자택을 비롯해 트리폴리 외곽을 집중 폭격했다. 반군은 지난주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50㎞ 떨어진 자위야를 장악해 트리폴리와 이웃 나라 튀니지를 연결하는 보급로를 차단한 데 이어 20일에는 트리폴리 동쪽 140㎞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 즐리탄을 점령했다. 알자지라는 반군이 트리폴리 근교의 수크 알고마, 타주라, 우라다, 알사바 등의 지역까지 차지했다고 전했다. 반군이 운영하는 텔레비전 방송은 반군이 무기고는 물론 트리폴리 국제공항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반군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NTC) 압델 하피즈 고가 부의장은 “트리폴리에서 반군과 조율한 봉기가 일어났다. 그들은 오랫동안 (봉기를) 준비해 왔다.”면서 “카다피 친위부대원 상당수가 도망쳤다.”고 주장했다. 반면 카다피 국가원수는 21일 새벽 국영 텔레비전에 방영된 육성 메시지를 통해 “리비아 국민이 ‘쥐새끼들’을 소탕했다.”면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리비아 석유를 탐하고 있다. 반군은 리비아를 대표하지 않으며 리비아 국민을 파괴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무사 이브라힘 정부 대변인도 “일부 무장한 반군들이 트리폴리에 잠입했지만 곧바로 격퇴했고 지금은 평온을 되찾았다.”고 말해 트리폴리에서 양측이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미국 CNN방송은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카다피가 ‘최후 결전’을 준비하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아직까지 카다피가 리비아를 떠나려 한다는 징후는 없다고 전했다. 반면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대변인은 19일 CNN에 “언제 카다피가 물러날지는 모르지만 물러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카다피 정권에는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이웃 나라인 튀니지는 반군 대표기구 NTC를 “리비아를 대표하는 유일한 기구”로 공식 인정했다. 게다가 내부에선 이탈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 카다피 정권 내 2인자였던 압데살람 잘루드 전 총리가 트리폴리를 떠나 반군 진영에 합류했다. 잘루드는 알자지라에 올린 영상에서 트리폴리 시민들에게 “폭군에 대항해 봉기하라.”고 촉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혼돈의 중동… 시리아·예멘·리비아 수장 3인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46), 예멘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69),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69). ‘아랍의 봄’ 이후 중동 불안의 중심에 선 3인의 운명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알아사드는 지난 3월 이후 반정부 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2000명에 이르는 자국민을 희생시켰다. 아버지 하페즈로부터 지난 2000년 대통령직을 물려받은 알아사드는 1982년 아버지가 이슬람 폭동을 문제 삼아 3만명 이상의 자국민을 학살한 전철을 뒤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대공포와 장갑차, 군함 등을 앞세운 정부군의 유혈 진압으로 북서부 항구도시 라타키아와 홈스, 훌라 등에서 연일 수십명씩의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급기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8일 오전(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알아사드의 퇴진을 공식 요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에서 “시리아 주민을 위해 알아사드가 물러나야 할 시간이 됐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알아사드 정권의 미국 내 자산 동결과 시리아산 석유의 미국 수입 전면 금지,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직간접 수출 금지 등을 포함한 강력한 추가 제재 방안도 발표했다. 그동안 미국은 “알아사드가 정통성을 잃었다.”며 개혁을 압박해 왔지만, 그의 퇴진을 요구하기는 처음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알아사드와의 통화에서 군사적 공격과 대규모 체포의 중단을 촉구했다. 이에 알아사드는 “시위대에 대한 군사 작전은 중단됐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에서는 살레의 귀국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33년간 집권 중인 살레는 지난 6월 반정부 세력의 공격으로 화상을 입고 치료차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러 왔다. 살레는 지난 16일 알아라비야 TV에 출연, “임기가 끝나는 2013년 이후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고 선거를 통해 권력을 넘기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신들은 미국과 사우디가 살레의 귀국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은 걸프협력위원회(GCC)의 ‘사후 처벌 면제 및 30일 이내 퇴진’ 중재안을 지지하고 있다.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카다피는 6개월 남짓한 내전 끝에 비극적 종말로 치닫고 있다. 반군 대표기구인 국가과도위원회(NTC)의 무스타파 압둘 잘릴 위원장은 18일 “승리가 임박했다. 트리폴리를 에워싸려고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NTC는 어떤 협상도 없을 것이며, 카다피는 강제로 내쫓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카다피 퇴진 후 8개월 내 권력 이양을 위한 선거 실시’라는 로드맵도 공개됐다. 한때 반미 진영에서 추앙받던 카다피는 권좌를 지키려고 광적인 학살극을 벌이다 끝내 비참한 독재자의 최후를 앞두게 됐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클린턴 전 대통령 채식주의자 됐다

    클린턴 전 대통령 채식주의자 됐다

    심장수술 이력이 있는 빌 클린턴(64) 전 대통령이 채식주의자로 거듭났다. 미국 인터넷 매체인 허핑턴 포스트는 18일 클린턴 전 대통령이 채식위주의 다이터트로 몸무게를 약 20파운드(9㎏) 줄이는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번주 CNN 방송 진행자 산자이 굽타 박사에게 “계란이나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물론 여하한 유제품도 먹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같은 방송의 백악관 출입기자 볼프 블리처에게 채식위주의 식단을 지키겠다고 한 공언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정치 일선에 있을 때 햄버거나 스테이크 등 육식 위주로 왕성한 식욕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는 2004년 심장수술을 받은 데 이어 지난 2월에도 심장 관상동맥에 스텐트 2개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는 등 심장질환을 앓으면서 채식주의를 실천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의학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들이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신진대사장애증후군을 앓을 개연성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채식을 하면 심장 등 몸에 해로운 LDL 콜레스트롤도 수준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미국사회에서 채식을 하는 게 오히려 경제적 비용이 더 들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잡지 ‘베지테리언 타임스’에 따르면 트위터의 공동 설립자 비츠 스톤, 여배우 올리비아 와일드, 오하이오 주 출신 하원의원 데니스 쿠치니치 등 유복한 인사들이 채식주의 대열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CNN방송 캡쳐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볼리비아 “샌드위치 실컷 먹어라” 남다른 개 사랑

    볼리비아 “샌드위치 실컷 먹어라” 남다른 개 사랑

    남미 볼리비아에서 개들이 샌드위치 파티가 벌어졌다. 16일(현지시간) ‘개의 친구’로 불리는 성인 샌 로크의 날을 맞아 볼리비아의 민간단체가 라파스와 엘알토 등지에서 샌드위치를 개들에게 나눠줬다. 이 샌드위치를 만든 단체는 동물보호단체인 ‘애니멀SOS’. 단체는 샌드위치 3000개를 만들어 버려진 채 길에서 사는 개들에게 무료급식(?)을 실시했다. 단체는 닭고기를 푸짐하게 넣은 샌드위치를 나눠주기 위해 트럭 5대를 동원했다. 관계자는 “쓰레기통을 뒤지며 생활하는 개들이 간만에 포식을 했다.”며 흐믓해 했다. 애니멀SOS가 개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시작한 건 10년 전. 매년 샌로크 성일을 기념하는 8월16일 특별히 만든 음식을 버려진 개들에게 먹이고 있다. 볼리비아 천주교인의 개 사랑은 유별나다. “개도 함께 축복을 받아야 한다.”며 애완견을 데리고 성당에 가는 신자들이 있다. 사진=자유언론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리비아 카다피 물러나면 대혼란?

    ‘카다피가 물러나면 카오스가 기다리고 있을 것’ 6개월 넘게 계속된 리비아 내전이 반군의 승리로 끝날 조짐을 보이자 리비아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반정부 세력이 사분오열한 상태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가 축출돼 ‘권력 진공 상태’가 되면 또 다른 내전이 리비아를 덮칠 것이라는 전망이 떠오른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은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권좌에 오르는 시나리오를 염려하는 눈치다. 리비아 반군 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의 만수르 사이프 알나스르 프랑스 주재 대사는 17일(현지시간) “우리 군이 자위야를 완전히 장악했다.”면서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올해는 8월)이 끝날 때 최후의 승리를 축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위야는 카다피가 장악하고 있는 트리폴리에서 서쪽으로 48㎞ 떨어진 최전선이다. 리언 패네타 미국 국방장관도 16일 미 국방대학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카다피가 집권할 수 있는 날은 이제 숫자로 꼽을 수 있다고 본다.”며 내전 종식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승리가 가까워질수록 반군을 도와온 서방사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반군 거점인 리비아 벵가지 주재 서방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반군의 조속한 승리가 ‘가장 나쁜 시나리오’”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보도했다. 나토 소속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토는 지금 리비아에서 ‘최악의 성공’을 거두게 생겼다. 반군은 정부를 운영할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카다피가 이대로 떠나면 권력 진공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정부 세력의 분열은 지난달 압둘 파타 유니스 반군 최고사령관이 내부 세력에 의해 피살된 이후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때문에 ‘카다피’라는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 또 다른 내전이 불거질 것이란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리비아 사정에 밝은 한 위험평가 컨설턴트는 “‘포스트 카다피’ 시대가 반드시 더 평화로울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면서 “여러 내부 분파 간 갈등과 반목이 시작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극단주의 성향의 이슬람 세력이 반군 안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도 리비아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한 서방 외교관은 “서양에서 교육받은 자유주의자들이 힘을 잃고 강경파들이 힘을 얻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고 전했다. 한편, 반군은 카다피 정권과의 협상은 없을 것이며 카다피를 축출한 뒤 신속히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열린세상] 땜질식 접근으론 북핵 해결 못한다/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열린세상] 땜질식 접근으론 북핵 해결 못한다/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지난 20년 동안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관계 개선의 핵심 전제였다. 이명박(MB) 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한반도의 핵심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였다. 북한은 이런 MB정부의 대북 제안을 거부했으며, 2차 핵실험 감행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본격 가동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논의하기 위한 양측 간 고위실무접촉 내용을 이례적으로 폭로했다. 이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 해결은 더 요원해지는 듯했다. 비관적 전망이 팽배한 가운데 지난달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6자회담 남북 수석대표와 외무장관들이 전격적으로 회담을 가졌다. 일주일 후 미국 뉴욕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개최돼 6자회담 재개문제를 비롯해 양국 간 향후 일정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6자회담이 중단된 후 북핵문제와 관련한 가장 긍정적 변화로 볼 수 있다.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실제로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는 포기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크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이나 2·13합의에 명시돼 있다. 경제, 에너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한반도평화체제와 동아시아안보체제 구축과 관련해 북·미, 북·일 등 관련국가와의 국교정상화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해 북한에 부과된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안이 철회됨으로써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분류돼 투자와 교역에서 혜택을 받는다. 또 MB정부가 제안한 ‘그랜드바겐’ 구상에 따라 대규모 경제지원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외교·정치·군사적 이익의 순서로 미래의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는 앞서 이익의 순서와 역순이며 비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소위 적대세력(?)으로부터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방인 중국으로부터의 자주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핵을 보유함으로써 김정은의 3대세습에 대한 대내외적 비난을 잠재우고 정권의 정당성, 강성대국의 정당화를 기할 수 있다. 북한은 이라크, 리비아 등이 미국 등의 일방적 공격을 당한 것도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핵을 보유하면 경제적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대통령의 임기와 같은 최대 5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 미국의 대북정책 역시 짧으면 4년 길면 8년이다. 반면 중국은 최소 10년이고 북한은 지도자의 수명을 넘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북핵 문제는 정책의 시간만이 아니라 정권의 수명과도 연관이 있어 북한정권의 실질적인 변화 없이 해결될 수 없다. 미국이 국내 재정 악화와 리더십 약화 등으로 여력이 없는 것도 핵문제의 획기적 전환을 어렵게 한다. 아울러 북한의 핵문제는 현재와 미래의 선택문제이다. 핵을 폐기할 경우 미래세대에게 혜택이 주어질 것이나, 핵을 포기하지 않고 보유할 경우 현재 정권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김일성 체제를 포기할 수 없는 김정일 정권은 미래 후속세대의 희생을 담보로 핵을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MB정부의 ‘비핵·개방·3000’은 실행에 옮기지도 못한 채 폐기될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MB정부의 정책 실패라기보다는 김정일 정권의 한계이자 숙명이다. 따라서 북핵문제의 해법은 정책의 시간성을 충분히 확보하거나 장단기 해법을 병행 모색하는 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비핵·개방·3000’이란 미래지향적 근원적 해법은 존치하면서도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현실적이고 대증요법인 간여관리정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비핵·개방·3000’의 비전과 철학을 계승할 정권 재창출에도 집중해야 한다. 임기를 1년반이나 남겨놓고 핵문제의 막연한 절충과 땜질식 보완을 통해서는 수십년 동안 정권과 체제의 사활을 걸고 덤벼드는 북한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