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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의적 음식·나눔의 정신’ 세계서 인정

    ‘창의적 음식·나눔의 정신’ 세계서 인정

    5일(한국시간)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김장문화’를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면서 김장이 한국인의 나눔정신의 본보기이며, 김치가 자연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한 음식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무형유산위원회는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김장이 한국인들에게는 이웃 간 나눔정신을 실천하는 한편 연대감과 정체성, 소속감을 증대시켰다”고 평가했다. 이로써 한국은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판소리, 강릉단오제,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처용무, 매사냥, 택견, 아리랑 등 모두 16개의 인류무형유산을 갖게 됐다. 임돈희 문화재위원회 무형분과위원장은 “김장문화의 등재는 자연재료를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다양한 공동체 사이의 대화를 촉진할 것”이라며 “한국 식문화 전체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이날 김장문화를 비롯해 등재 권고를 받은 23종목과 정보 보완 1종목에 대한 심의를 벌여 등재를 최종 결정했다. 김장문화는 지난 개별 심사에서 이탈리아, 일본 등의 등재 후보 6종목과 함께 만장일치로 등재권고를 받아 일찌감치 등재가 확실시됐다. 이날 새벽 일본 전통 식문화인 ‘와쇼쿠’(和食)도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257건(지난해 기준) 가운데 음식문화는 모두 6건이 됐다. 지금까지 식문화와 관련된 것은 프랑스의 미식술, 그리스와 스페인 등 4개국의 지중해 요리, 멕시코 전통 요리, 터키의 케시케키(제사음식) 등 4건뿐이었다. 한편 이번 등재 과정에서 유네스코가 우리 정부에 “김치가 인류무형유산 후보로 알려지면 등재 판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김치’를 둘러싼 신경전이 오가기도 했다. 당초 문화재청은 등재 신청 서류에 한글로 ‘김치와 김장문화’, 영문으로는 ‘Kimjang;Making and Sharing Kimchi’로 각각 표기했다. 2010년 음식문화를 처음으로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한 유네스코는 피자, 스시 같은 특정 음식의 등재를 금기시하고 있다. 특정 음식의 상업화를 도울 수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지만, 한국이 김치 종주국으로 인정받는 것을 우려한 중국·일본 등 주변국들의 견제가 심했다는 시각도 많다. 최근 중국의 언론매체 사이에선 ‘김치는 중국에서 유래됐다’거나 ‘김치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느냐’ 등의 부정적 반응이 잇따랐다. 등재에 앞서 열린 의장단 회의에는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한 부의장국 자격으로 그리스, 브라질, 이집트 등 다른 5개 나라와 함께 참여했다. 이 같은 이유로 현지에 파견된 외교부, 문화재청 등 정부 대표단은 이날 한글 공식명칭을 ‘김장문화’로 급히 수정했고, 의장단 회의에선 한국의 김장문화로 한정한다는 의미에서 영문 명칭에 ‘in the Republic of Korea’를 추가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과거로의 시간여행…응답하라 ‘목포 1897’

    과거로의 시간여행…응답하라 ‘목포 1897’

    고백부터 하자. 전남 목포에서 일제강점기가 남긴 몇몇 흔적들만 보면 됐지 싶었다. 저 유명한 ‘목포 오거리’에서 시작해 근대의 낡은 풍경들을 보며 설렁설렁 걷다가 유달콩물, 혹은 팥죽이나 한 그릇 사 먹고 돌아올 요량이었다. 그러다 유달산 비탈에서 낡은 동네를 만났다. 다순구미와 보리마당이었다. 머릿속에서 뎅~ 종소리가 울렸다. 이렇게 기막히고 치열한 풍경을 보았나. 재개발이 예정된 동네는 ‘응사’(응답하라 1994) 세대조차 상상 못할 옛 모습을 품고 있었다.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조선내화 굴뚝 너머로 곧 스러질 집들이 시루떡처럼 쌓인 풍경 말이다. 멀리서 다순구미의 전체적인 모습부터 살피자. 그 뒤 마을에 드는 게 순리다. 들머리는 고하도(高下島)다. 목포 코앞의 섬이다. 지난해 6월 목포대교와 연결되면서 뭍이나 다름없게 됐다. 죽교동 쪽에서 목포대교에 오르면 5분 안쪽에 섬에 닿는다. 고하도는 허사도와 이웃했다. 워낙 작아 뒤돌아보면 금방 시야에서 사라지기 일쑤였고, 그 탓에 본 게 허사가 됐다 해서 허사도다. 지금은 목포 신항이 들어서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섬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허사가 된 셈이다. 고하도는 용을 닮았다. 활처럼 휘어 목포 앞바다를 감싸고 있다. 섬의 끝자락 ‘용오름’까지는 약 3㎞. 잘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왕복 약 2시간 30분이면 돌아볼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하다면 고하도에서 가장 높은 뫼막개(뫼봉)까지만 가도 된다. 고갯마루에 서면 목포의 아이콘 유달산(228m)이 손에 잡힐 듯하다. 목포 시가지와 삼학도 등도 죄다 눈에 담긴다. 고하도가 아니었다면 여태 볼 수 없었던, 매우 낯선 풍경이다. 고하도에서 보는 유달산의 자태가 당당하다. 남정네 ‘알통’을 닮은 암릉들이 여기저기 솟았다. 목포 사람들이 유달산을 목포의 아버지, 봉긋봉긋 솟은 삼학도를 어머니라 부르는 이유, 뫼막개에 서면 알게 된다. 유달산은 아래로 여러 마을들을 거느렸다. 그 가운데 가장 도드라진 풍경을 선보이는 곳이 다순구미(온금동)와 보리마당(서산동)이다. 다순구미는 볕이 잘 드는 곳이란 뜻이다. ‘다순’은 ‘따숩다’란 사투리가 어원이다. ‘구미’는 바닷가 곶부리 뒤편의 후미진 곳을 일컫는다. 이걸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게 온금동이다. 마을은 옛 째보선창 뒤편의 유달산 자락에 매달려 있다. 마을에 들면 시간이 멈춰 선다. 외려 객의 시간이 과거로 끌어내려진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골목은 또 다른 골목으로 이어지고, 씨줄날줄로 얽힌 골목 마디마디엔 수많은 기억이 저당 잡혀 있는 듯하다. 산비탈을 따라 파랗고 노란 집들이 오종종하게 서 있다. 골목엔 무거운 적막이 머문다. 주민들에게 눈인사를 건네도 심드렁한 반응으로 되돌아오기 일쑤다. 과거를 목격한 객의 눈은 즐겁지만, 정작 주민의 삶은 낡은 만큼 팍팍한 게다. 다순구미 이야기를 듣자. 곽순임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이다. 1897년 10월 1일, 목포가 ‘개항’했다. 근대적 의미의 통상항이 됐다는 뜻이다. 이듬해부터는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달산 아래, 그러니까 현재 근대역사관(옛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 등이 있는 평지 지역을 빠르게 장악했다. 1930년대 발간된 ‘목포부사’에 ‘유달산 자락 빼면 평평한 땅은 한 평도 없다’는 내용이 담긴 걸 보면, 사실상 목포의 핵심 지역이 죄다 일본인 손에 들어간 셈이다. 노른자위 땅을 잃은 목포 사람들은 인근 유달산 자락에 하나둘 정착하게 된다. 그곳이 다순구미다. 예전 다순구미엔 ‘조금새끼’들이 살았다. 조금 물때에 밴 자식이라는 뜻이다. 주민들이 질색하며 싫어하는 표현 중 하나다.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들지 않는 때다. 물고기도 잘 잡히지 않는다. 물고기를 잡아 연명해야 하는 주민들은 으레 물이 잘 나는 사리 때 출어해 조금 때 돌아오곤 했다. 여러 날 색에 주린 남정네들이 집에 와 할 일이란 불을 보듯 뻔한 것. 이 마을에 생일이 같은 ‘조금새끼’들이 여럿인 건 그런 이유다. 다순구미는 곧 사라진다. 재개발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가장 높은 곳. 햇살이 밝고 따스하다. 철거를 앞둔 마을의 처연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무말랭이 널린 바위에 앉아 앞바다를 보고 있자니 잠이 쏟아진다.왈왈 개 짖는 소리마저 자장가다. 보리마당 이야기도 짠하다. 보리마당은 현 서산동 가장 윗자락의 너른 공터를 이른다. 이름 그대로 보리를 털어 말리던 곳이다. 오래전 목포 인근의 섬 사람들은 보리나 벼 등을 수확한 뒤 목선에 바리바리 실어 목포까지 날라야 했다. 섬엔 변변한 도정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리는 정미소 가기 전, 그리고 도정을 마친 뒤 각각 볕에 말려야 한다. 보리마당은 바로 그 작업을 벌이던 공간이다. 섬 주민들이 정미소가 있던 도심 외곽에 며칠씩 머물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을 상대로 국밥집과 여관, 시장 등도 생겨났다. 지금은 명맥만 남은 백반거리, 팥죽거리 등도 따지고 보면 이때부터 조성됐던 셈이다. 흔히 다순구미와 보리마당이 같은 지역인 것처럼 표현되곤 하지만, 사실 별개의 마을이다. 아리랑고개(옛 말태기재)를 경계로 윗자락은 다순구미, 아래쪽은 보리마당이다. 시간이 된다면 두 마을을 엮어 돌아보는 게 좋겠다. 예까지 와서 목포의 상징 유달산에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다소 된비알도 있지만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노적봉이 들머리다.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때 노적(곡식 따위를 수북이 쌓은 것)처럼 보이게 해 왜구를 속였다는 바위다. 이난영 노래비와 오포대, 몇 개의 정자를 거푸 지나면 마당바위에 닿는다. 너른 바위에서 굽어보는 풍경이 ‘기가 맥히’다. 마당바위 바로 앞은 일등바위다. 유달산 최고봉이다. 그 아래로 이등바위와 삼등바위가 늘어서 있다. 일등바위 아래쪽 암벽엔 홍법대사(774~835)와 부동명왕상이 조각돼 있다. 홍법대사는 일본 진언종의 개창조사다. 홍법대사가 새겨진 곳엔 거의 예외 없이 부도명왕상도 함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공부를 마친 홍법대사가 일본으로 돌아오다 큰 풍랑을 만났을 때, 부동명왕이 항해 안전을 지켜줬다는 설화를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등바위에서 맞는 해넘이 모습이 장하다. 남들 내려오는 저물녘에 유달산에 오른 것도 이 모습을 보자는 뜻이었다. 사방이 툭 트였다. 그 너른 공간을 보석 같은 풍경들이 채운다. 삼학도가 아스라하고, 멀리 바다 위로 섬들이 둥실 떠 있다. 목포대교와 고하도가 화려한 경관 조명을 켜면, 가장 귀가한 산 아래 집들도 그제야 하나둘 불을 켠다. 평온한 풍경이다. 하산길은 좁고 급하다. 군데군데 세워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천천히 내려와야 한다. 글 사진 목포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 고속도로 끝까지 간 뒤 초원호텔 앞 우회전(영산로), 목포 해양대학 방면으로 좌회전(유달로), 보리마당 방면으로 좌회전(보리마당로)해 아리랑고개를 넘으면 온금동이다. 유달동 주민센터 272-3665. KTX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목포역에서 근대역사문화거리와 유달산이 멀지 않다.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현 근대역사박물관) 건물과, 지점장 사택 등을 휘휘 돌아본 뒤 옛 일본영사관 옆길로 유달산에 오르면 된다. 지점장 사택은 요즘 찻집으로 쓰인다. →잘 곳:신시가지인 하당 쪽에 깔끔한 숙소들이 많다. 샹그리아 비치 관광호텔(285-0100)은 객실에서 맞는 바다 풍경이 빼어나다. 시설도 깨끗한 편.
  •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됐다

    김장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됐다

    한국의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새롭게 등재됐다. 이로써 한국은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아리랑 등에 이어 모두 16개의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5일 오후(한국시간)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8회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나라가 신청한 ‘김장문화’가 등재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위원회는 김장문화가 한국인들이 이웃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공하는 유산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3월 ‘김장문화’의 인류무형유산 등재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지난 10월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심사보조기구가 만장일치로 등재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는 의미의 ‘등재권고’ 판정을 내렸다.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회의에서는 ‘김장문화’ 외에 일본의 식문화인 와쇼쿠, 중국의 주산 및 주판셈 지식·활용, 아르제바이잔의 전통 말타기 놀이 등이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재일교포 의사 출신 세계적 크로스오버 뮤진션 양방언

    [김문이 만난사람] 재일교포 의사 출신 세계적 크로스오버 뮤진션 양방언

    한 남자의 넋두리를 들어본다. “왜 나는 이 시대, 제주도의 아버지와 신의주의 어머니 사이에서 ‘양’이라는 성을 지니고 도쿄에서 태어나 조총련계 학교에 다니고, 일본의 대학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었고, 그러다가 음악을 선택해서, 일본과 아시아권에서 음악을 하고, 유럽에서 레코딩을 하며, 성당에서 음악을 듣고, 지금은 일본의 고원에 거주하면서 나의 나라 한국에서 음악을 왜 계속하고 있는가.” 인생을 살면서 ‘왜’라는 의문부호는 숱하게 접할 터. 어떤 좌절의 순간이나 결단의 기로에서 ‘왜’로 인해 인생이 확 달라지기도 한다. 하여, 남자는 다시 읊조린다. “수천 가지가 되는 ‘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경계를 그을 수도, 매듭을 지을 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왜’가 재미있다. 나에게 한없이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왜’이다. 그 ‘왜’는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매료시켰다.” 이 남자가 우리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공식 주제가 ‘프런티어’를 작곡하면서였다. 이후 MBC 드라마 ‘상도’의 메인 타이틀곡 작곡, KBS 다큐멘터리 ‘도자기’와 ‘차마고도’ 음악감독,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 음악감독, 엔씨소프트 게임음악 ‘아이온’ 총감독, ‘아스타’ 게임 OST 음악작업, 2013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개막공연에서 배병우, 황병기 등과 ‘토크 콘서트’ 등으로 이어지면서 국내팬들과 친숙해졌다. 특히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때 ‘아리랑 판타지’를 작곡해 직접 피아노를 치고 가수 인순이, 뮤지컬 배우 최정원,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국악인 안숙선 등과 무대를 함께해 주목을 받았다. 이쯤 되면 누구인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될 듯싶다. 한국, 일본, 중화권에서 활동하면서 런던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으로 유명한 크로스오버 뮤지션 양방언(53)씨. 재일교포 의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작곡가, 연주가, 편곡가, 프로듀서 등 전방위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록, 월드뮤직, 재즈 등 여러 음악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러한 폭넓은 창작활동은 물론 국립극장 예술감독, 서울시 홍보대사 등을 맡아 사회활동에도 분주하다. 지난 10월에는 아버지의 고향인 제주를 찾아 돌문화공원에서 도민 25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양방언의 제주판타지’를 공연해 제주와 음악적 인연을 ‘찐’하게 맺었다. 또한 이 자리에서 그가 직접 새롭게 작곡한 ‘해녀의 노래’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제주해녀 항일운동의 근거지였던 제주 동부지역의 ‘해녀의 노래’는 일제 강점기인 1933년 당시 동경행진곡에 가사를 붙인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양씨가 작곡한 온전한 우리의 ‘해녀의 노래’(현기영 글)로 불려지게 됐다. 양씨에게 올해는 이래저래 특별한 해이다. 바쁜 일정도 그렇지만 다가오는 크리마스 시즌에는 그동안 숨겨놓은 비장(?)의 음악을 선보이며 한 해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의 넋두리처럼 ‘왜’가 궁금해서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양씨를 만났다. 공연 얘기부터 나왔다. 제목이 ‘크리스마스 피아노 판타지’인 것에 대해 그는 “피아노는 내 음악 인생의 시작점이었고 현재도 근간을 이루고 있다”면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고전적 악기인 피아노가 만들어내는 선율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총체적 공간, 미지의 세계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곡들을 엄선했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그의 음악인생 30여년을 결집시켜 다양한 퍼포먼스와 영상이 어우러진 판타지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전국의 의대생들로 구성된 음악 봉사단 ‘스마일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무대를 통해 불우 이웃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다.(2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에 앞서 이달 중순 ‘피아노 판타지’ 음반과 생애 첫 악보집이 나올 예정이다. 여기에는 ‘프런티어’ ‘아리랑 판타지’ 등 그의 베스트곡을 비롯해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2집 앨범 ‘인투 더 라이트(Into the light)’의 대미를 장식한 감미로운 피아노 솔로 연주곡 ‘피시스 오브 드림’(Pieces of Dream) 등이 담겨진다. “틈틈이 신작을 작곡합니다. 오케스트라가 (곡 안으로)들어가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특히 이번 공연에 선보이는 피아노곡은 그동안 저의 음악인생을 응축시킨 곡으로 의도적으로 다양한 장르를 모았습니다. 게임음악도 있고 영화음악도 있고 스토리도 있습니다. 저는 음악을 할 때 어떤 제약이나 경계 없이 넘어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의 말투는 매우 진지하면서도 중간중간 해맑은 웃음이 담겨 있다. 음악이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음악 없이는 못 살아간다. 의사를 그만두고 음악인생을 살면서 흔들려본 적이 없다. 음악은 행복이고 산소”라고 대답한다. 자신의 음악에는 수학에서의 x축, y축, z축처럼 여러 축이 있고 그 차원을 넓혀가면서 새로운 감성을 찾아내는 일이 매우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 축 중에 하나가 바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영상음악이다. 1995년 홍콩스타TV 드라마 ‘정무문’의 음악감독을 맡아 중화권에서 대히트를 치면서 음악과 영상매체의 환상적인 호흡을 실감했다. 이후 성룡 주연의 영화 ‘썬더볼트’에서 진가를 발휘했고, 일본의 인기 애니메이션 ‘십이국기’ ‘채운국 이야기’ ‘영국사랑 이야기-엠마’, 그리고 한국에서의 방송과 영화 등의 음악감독을 맡아 이 방면에 한 축을 이루었다. 의사출신인 그는 어떻게 음악인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도쿄에서 제주 협재 출신인 친북 성향의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재일교포 2세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의사, 형과 누나들도 의사나 약사일 만큼 의학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한테 양방언(梁邦彦)이라는 이름자에 대한 얘기를 자주 들었다. ‘양’은 성씨이니 집안 내력의 상징이고, ‘방’은 많은 나라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 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사는 동안 일본 이름을 가진 적도, 쓴 적도 없었다. 중국에서도 양방언(Liang Bang Yen)으로 통했다. 그만큼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어린 시절 그는 피아노를 치는 누나 덕분에 집에서 클래식, 재즈, 팝, 영화음악, 가요 등 다양한 음악을 자주 접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조총련계 학교에서 보냈다. 당시 병원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학교 설립에 많은 도움을 준 것이 계기가 됐다. 중학시절에는 친척 형 집에 놀러갔다가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접하면서 음악의 놀라움을 체험했다. 이때부터 음악을 들을 때마다 ‘왜’라는 많은 의문을 갖게 됐다. 공부하는 척 방 안에 틀어박혀 여러번 반복해서 헤드폰과 스피커로 음악을 바꿔 들으며 궁금증을 풀어나갔다. 일본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밴드활동을 했다. 음악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당시 집안 분위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의학공부를 하면서 독일의 유명 피아니스트인 콘라드 한센에게 피아노 레슨을 계속 받았다. 또한 여러 세미프로 음악인들과 자주 만나면서 음악적 영역을 넓혀나갔다. 1984년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시험 등을 거쳐 마취과 의사가 됐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두 글자가 한번도 머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드디어 결심을 했다. 도쿄대 병원으로 발령받고 며칠 뒤 병원 의국장한테 찾아가 의사를 그만두겠다고 통보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에게 알렸다. 어머니는 충격에 엎드려 울었다. 형과 누나들은 노발대발 화를 냈다. 우여곡절 끝에 음악의 길로 방향을 튼 양씨는 가족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집을 뛰쳐나왔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며칠동안 전전긍긍하다가 대학동기의 권유로 낡은 아파트를 구해 10년동안 살았다. 집을 나올 때 가진 돈이 5만엔뿐이어서 건강진단 아르바이트를 하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음악 기자재 등을 구입했다. 그러면서 음악을 같이할 동료들을 만났고 스튜디오와 라이브 무대로 꾸준히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당시 라이브 투어로 유명한 하마다 쇼고를 만나면서 전국 투어를 수차례 경험한 것도 이때였다. 그러는 한편 CF 음악 제작, 레코딩, 편곡 등을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레코드 회사에서 홍콩의 록밴드를 프로듀스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비욘드’ 멤버들과 만나면서 중화권과 인연을 맺었다. 그가 한국 국적을 받은 계기는 이러했다. 조선적(朝鮮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적과는 다르며 일본 법률상 무국적이다)인 그가 일본 국적을 취득하려고 일본 법무성에 문의하자 성(姓)을 일본 성으로 바꿔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 그럴 수가 없어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1999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음악활동을 하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내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때 평창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음악으로 작곡하게 될 것같다”고 귀띔한 뒤 “음악을 통해 좋은 작품을 만나고 멋대로 살고 싶다. 또한 아버지가 태어난 제주가 너무 아름다워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해보는 작업도 할 것”이라며 웃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양방언은 영화 ‘천년학’ 게임 ‘아이온’ 등 음악감독 朴대통령 취임식 ‘아리랑 판타지’ 작곡도 1960년 일본 도쿄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제주도 한림읍 협재리 출신이고 어머니는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이다.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에 밴드 활동을 했고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음악공부를 계속했다. 키보드 연주자, 작곡가, 사운드 프로듀서로서 1980년에서 1995년까지 레코딩, 라이브에 꾸준히 참가했다. 마취과 의사를 그만둔 뒤 본격적으로 음악활동을 재개했으며 록, 재즈, 클래식, 국악, 월드뮤직 등 다채로운 음악성으로 호평받았다. 1996년 일본에서 첫 솔로 앨범인 ‘더 게이트 오브 드림스’(The Gate of Dreams)를 발매했다. 이후 7장의 앨범을 출시했으며 런던 교향악단,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의 유명 관현악단들과 협연했다. 2001년 발매된 ‘파노라마’(Pan-O-Rama)는 한국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고, 앨범에 수록된 ‘프런티어’(Frontier!)는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의 공식 주제가로 채택됐다. 1999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일본 NHK 애니메이션 ‘십이국기’, 홍콩 드라마 ‘정무문’, 성룡의 영화 ‘썬더볼트’, MBC 드라마 ‘상도’, KBS 다큐멘타리 ‘차마고도’, 영화 ‘천년학’ 등에서 음악작곡을 했다.
  • 구름 많은 악천후에도 ‘전천후 위성’ 아리랑 5호 고해상도 영상 첫 공개

    구름 많은 악천후에도 ‘전천후 위성’ 아리랑 5호 고해상도 영상 첫 공개

    미래창조과학부가 1일 레이더 관측위성인 다목적 실용위성 5호(아리랑 5호)가 촬영한 프랑스 파리의 모습(오른쪽)을 공개했다. 광학 관측위성인 다목적 실용위성 3호(아리랑 3호·왼쪽)와 달리 기상 상황과 관계없이 에펠탑(점선)과 개선문 등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 제공
  • [어린이 책꽂이]

    [어린이 책꽂이]

    똥으로 종이를 만드는 코끼리 아저씨(투시타 라나싱헤 지음, 로샨 마르티스 그림, 류장현·조창준 옮김, 책공장더불어 펴냄) ‘코끼리 똥 책을 들고 냄새를 맡아 보세요. 똥 냄새가 나나요?’ 인간이 코끼리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사람들이 코끼리를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던 스리랑카에서 코끼리 똥을 이용한 종이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평화로운 공존이 이뤄진다. 직접 코끼리 똥으로 만든 재생종이의 촉감이 이야기처럼 촉촉하고 따스하다. 1만원. 누가 바다를 훔쳐 갔지?(안드레아 라이트메이어 지음·그림, 박성원 옮김, 푸른숲주니어 펴냄) 어제만 해도 에밀리가 찰방거리며 놀던 바다가 사라졌다. 바다표범은 “누가 바닷속 마개를 뽑았나?”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해파리는 “어부들이 바다를 데려가 버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다를 훔쳐간 주인공을 만나기까지 현대회화 같은 일러스트가 상상력과 호기심을 한껏 부풀린다. 1만원. 이야기·귀신 전성시대(이상원 지음, 이광익 그림, 문학동네 펴냄) 할머니로부터 오싹한 귀신 이야기, 구수한 경험담을 듣던 유년시절의 아늑한 밤으로 돌아간다. 작가가 고향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채집한 투박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옛 이야기들을 맛깔스러운 입말로 들려준다. 각 9800원. 집과 마을을 지켜주는 민속신앙 이야기(신현득 지음, 도대체 그림, 리젬 펴냄) 조상들은 부엌 아궁이의 불씨 하나, 처마에 얹힌 돌 하나도 정성을 다해 가꿔나갔다. 보잘 것 없는 사물 하나에도 집안을 지켜주는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소박하고 귀한 믿음을 보여주는 갖가지 민속신앙을 신현득 시인이 소개한다. 1만 2000원.
  • EU, 한국 ‘예비 불법조업국’ 지정

    한국이 유럽연합(EU)으로부터 예비 불법조업(IUU) 국가로 지정됐다. 최종 IUU 국가로 지정되면 유럽과의 수산물 수출입은 물론 EU 국가와의 어선 거래가 모두 금지된다. 해양수산부는 26일 EU 집행위원회가 한국을 예비 IUU 국가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어선위치추적장치 의무화를 이행하지 않고 어선 경로를 감시하는 조업감시센터를 가동하지 않은 게 이유였다. 어선위치추적장치와 조업감시센터는 각국에 할당된 조업 한계를 이행하는지 여부를 감시하는 장치로, EU는 한국 어선들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불법어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수부는 해당 장비들을 마련하고 가동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을 확보한 사실을 EU에 적극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U는 지난해 11월 벨리즈, 캄보디아, 피지, 기니, 파나마, 스리랑카, 토고, 바누아투 등 8개국을 예비 IUU 국가로 지정한 데 이어 이번에 한국을 이 명단에 포함시켰다. 아프라카 가나와 카리브해 퀴라소도 이번에 포함됐다. 최종 IUU 국가로 지정되면 유럽과의 수산물 수출입이 전면 금지돼 어민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해수부에 따르면 유럽에 수출하는 황다랑어, 오징어, 바지락 등 수산물은 연간 8000만 달러 규모에 달한다. 해수부는 EU의 이번 조치에 아쉽다는 반응이다. 해수부는 외교부와 함께 올 4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4차례 EU 집행위를 방문해 수차례 불법어업 근절 관련 진행사항을 설명해 왔다. 특히 한국 정부가 불법어업에 대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지난 7월 ‘원양산업발전법’을 개정한 사실을 강조했다. 또 내년 7월부터 어선 감시 체계를 가동하는 사실도 설명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EU가 지적한 어선 감시 체계도 내년 7월부터 본격 가동하는 사실을 이미 EU에 소명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실업계 고등학생도 해외봉사단원 됐다

    실업계 고등학생도 해외봉사단원 됐다

    제빵·제과, 자동차 정비, 용접, 컴퓨터 교육 등을 전공한 실업계 고등학생 31명이 정부의 해외봉사단원으로 선발돼 내년 2월부터 8개월 동안 기술전수 등 해외봉사 활동을 벌인다. 대상은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 베트남 등 4개 동남아 국가의 직원훈련원과 기술학교이며, 기계 및 컴퓨터 등의 기술을 전수한다. 실업계 고등학생을 주체로 한 정부의 해외봉사 활동은 처음이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은 앞으로도 해마다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들은 25일부터 출국 전까지 국내에서 영어와 현지어, 국제개발협력 등에 대해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코이카는 25일 경기 성남시 시흥동 코이카 본부에서 이들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드림봉사단’ 1기 발대식을 가졌다. 코이카는 이와 함께 이날 ‘개발원조의 날’ 기념식, 신임 홍보대사 위촉식, 해외봉사상 시상식을 가졌다. 신임 홍보대사에는 연기자 박보영, 가수 닉쿤, 가수 나르샤 등이 위촉됐다.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해 온 해외봉사자 8명에게는 대한민국 해외봉사상을 수여했다. 대통령 표창은 1994년부터 에티오피아에서 20년 동안 아동급식 지원, 학교설립 등에 헌신해 온 밀알복지재단의 정순자(58)씨가 받았다. 국무총리 표창은 1992년부터 중국·몽골 등에서 치과교정 교육에 헌신한 한국치과교정연구회의 고 김일봉(2012년 사망)씨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기아대책의 송장헌(51)씨에게 돌아갔다. 송씨는 1996년부터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을 위한 복지센터 건립 등 교육 지원 사업을 벌였다. 외교부 장관 표창은 2006년부터 모로코·요르단에서 장애 아동과 난민 아동에 대한 봉사활동을 벌여온 한지혜(29)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이 받았다. 코이카 이사장상은 코이카봉사단원인 이상윤(48)·강경애(54)씨에게 각각 수여됐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장 표창은 동티모르에서 2007년부터 6년 5개월 동안 공정무역 커피 사업과 교육환경개선 등 지역개발 사업을 수행해 온 YMCA의 양동화(34)씨가 받았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장 표창은 탄자니아, 남부 수단 등에서 9년 4개월 동안 식수 공급 활동을 벌여 온 써빙프렌즈의 이동선(54)씨가 받았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실업계 고등학생도 해외봉사단원 됐다

    실업계 고등학생도 해외봉사단원 됐다

    제빵·제과, 자동차 정비, 용접, 컴퓨터 교육 등을 전공한 실업계 고등학생 31명이 정부의 해외봉사단원으로 선발돼 내년 2월부터 8개월 동안 기술전수 등 해외봉사 활동을 벌인다. 대상은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 베트남 등 4개 동남아 국가의 직원훈련원과 기술학교이며, 기계 및 컴퓨터 등의 기술을 전수한다. 실업계 고등학생을 주체로 한 정부의 해외봉사 활동은 처음이다.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KOICA)은 앞으로도 해마다 특성화 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봉사단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들은 25일부터 출국 전까지 국내에서 영어와 현지어, 국제개발협력 등에 대해 필요한 교육을 받는다. 코이카는 25일 경기 성남시 시흥동 코이카 본부에서 이들 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드림봉사단’ 1기 발대식을 가졌다. 코이카는 이와 함께 이날 ‘개발원조의 날’ 기념식, 신임 홍보대사 위촉식, 해외봉사상 시상식을 가졌다. 신임 홍보대사에는 연기자 박보영, 가수 닉쿤, 가수 나르샤 등이 위촉됐다.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해 온 해외봉사자 8명에게는 대한민국 해외봉사상을 수여했다. 대통령 표창은 1994년부터 에티오피아에서 20년 동안 아동급식 지원, 학교설립 등에 헌신해 온 밀알복지재단의 정순자(58)씨가 받았다. 국무총리 표창은 1992년부터 중국·몽골 등에서 치과교정 교육에 헌신한 한국치과교정연구회의 고 김일봉(2012년 사망)씨와 국제구호개발기구인 기아대책의 송장헌(51)씨에게 돌아갔다. 송씨는 1996년부터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을 위한 복지센터 건립 등 교육 지원 사업을 벌였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미제사건 푼 과학수사 10건… ‘대구 여대생 의문사’ 등 선정

    대구 여대생 의문사 사건 등 목격자가 없어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사건들의 피의자가 검찰의 과학수사로 검거돼 재판에 넘겨졌다.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는 과학적 수사기법을 활용해 신종범죄 수법을 찾아내거나 원인 미규명 사건을 해결한 ‘3분기 과학수사 우수사례’ 10건을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NDFC에 따르면 1998년 대구 구마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여대생 의문사 사건은 성폭행 정황이 사건현장에서 발견됐지만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될 뻔했다. 하지만 대구지검은 다른 사건으로 입건된 스리랑카인으로부터 채취한 DNA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보관해 오던 피해 여대생의 속옷에서 검출된 정액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지난 9월 이 스리랑카인을 구속기소하고 스리랑카에 있는 공범 2명에 대해서는 기소중지했다. 2011년 10월에는 한 여성이 불륜관계이던 남성과 여자문제로 다투다 이 남성에게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사망하게 했다. 이 여성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화재·진술 분석 등을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해 구속기소했다. 이 밖에 스마트폰 악성 앱을 만들어 수천만원을 가로챈 국제 스미싱 조직 적발과 제주 서귀포시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 등의 피의자를 검거하는 데도 과학수사의 힘이 컸다. 검찰 관계자는 “우수사례들은 과학적 수사기법으로 초동수사의 오류를 시정하거나 신종수법 범죄 및 원인 미규명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한 사건들”이라고 밝혔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과학기술위성 3호 대전 지상국과 교신 성공

    과학기술위성 3호 대전 지상국과 교신 성공

    국내 첫 적외선 우주 관측 위성인 ‘과학기술위성 3호’(STSAT-3)가 21일 오후 10시 10분(현지시간 오후 7시 10분)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과 교신에 성공했다. 러시아 야스니 발사장에서 발사된 지 6시간 만이다. 미래창조과학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발사관리단은 “STSAT-3을 실은 드네프르 로켓이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라 위성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드네프르 발사체는 ‘SS18’로 불린 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개조한 로켓으로, 나로호처럼 지상 발사패드에서 발사되는 게 아니라 ‘사일로’라고 하는 지하 벙커에서 발사되는 게 특징이다. 지난 8월 야스니에서 발사된 아리랑 5호 위성도 드네프르 발사체에 실려 궤도에 오른 바 있다. 이번에 발사된 드네프르엔 STSAT-3 외에도 손바닥 크기의 큐브위성부터 세탁기만 한 소형 위성까지 23개 위성이 실렸다. 국내 벤처기업 쎄트렉아이가 제작해 수출한 ‘두바이샛2’도 포함됐다. 이 때문에 발사장에서 30㎞ 정도 떨어진 상황실에는 우리 발사관리단뿐 아니라 17개국 위성 관계자 70여명이 모였다. STSAT-3의 수명은 2년으로 앞으로 97분에 한 바퀴씩 지구를 돌면서 우주 생성 원리를 규명하기 위한 관측, 한반도 지역 해수온도 감지, 산불·재난 상황 감시 등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독립운동가 故한형석 선생 주택 새단장

    독립운동가 故한형석 선생 주택 새단장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항일 음악가인 고 한형석(?~1996) 선생이 생전에 거주했던 부산 서구 부민동 주택과 주변이 말끔하게 단장된다. 시는 한 선생 주택 주변 정비 사업을 다음 달 완료할 방침이라고 20일 밝혔다. 현재 이 집에는 한 선생의 부인이 살고 있다. 이번 정비 사업은 한 선생이 부민동에 한국 최초의 아동 전용 극장인 자유아동극장을 세웠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한 선생은 일제강점기 광복군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아리랑과 항일 가곡 등 100여곡의 작품을 남긴 음악가다. 해방 뒤 부민동의 자유아동극장, 야학 등을 통해 청소년 예술 교육의 터전을 닦은 문화예술 혁명가이며 교육 선각자이기도 하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완료한 임시수도 기념거리 조망 쉼터, 아미골 찬샘물터, 까치고개 푸른 쉼터, 고분도리 전망대, 고분도리 카페, 아미 문화학습관 등과 연계한 관광 코스로 활용돼 산복도로 탐방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한국 발전 뒷받침 법제 벤치마킹 북적

    한국 발전 뒷받침 법제 벤치마킹 북적

    “외국인 투자 촉진과 기업 유치 확대를 위해 어떤 법률 제도들을 제정했나”, “산업단지 조성과 지원을 위한 법적 지원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수출진흥을 위한 법규는 어떻게 구성했나.” 미얀마, 필리핀, 베트남, 몽골 등 아시아 17개국 법률 전문가들과 외교사절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뒷받침하고 체계화해 온 법률제도를 벤치마킹하는 데 깊은 관심과 함께 법제 교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13일 법제처와 한국법제연구원 등의 공동주최로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 법제전문가 교류회의’에 참가한 이들의 주 관심사는 사회경제적 변화를 수용해 온 한국 법률제도의 내용과 변화 과정, 법률제도가 경제발전을 어떻게 뒷받침했느냐 등이다. 역동적인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 금융 및 산업·기업 관련 법규, 조세제도, 이를 관리·운영하기 위한 각종 행정 법령 등이다. 회의 대주제는 ‘법제교류, 현주소와 나아갈 길’. 다른 아시아국가보다 앞서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의 법제가 아시아국가의 발전에 어떻게 도움을 주고 아시아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지 모색해 보는 것도 주목적이었다. 회의에는 제정부 법제처장, 이원 한국법제연구원장 등 국내 법제 관계자들과 아흐마드 알바라크 사우디 대사 등 외국 사절 및 전문가 등 국내외에서 모두 4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과 어떤 분야의 법제 교류를 원하는지 그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필리핀, 스리랑카, 태국, 동티모르 등 12개국의 법제 관련 담당자들의 회의도 별도로 열렸다. 제 법제처장은 “해당 국가들의 한국의 법제에 대한 실질 수요를 발굴하고 협력 방안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회의는 법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정부기관의 역할, 법령 인프라와 법제교류, 분야별 법제의 국가별 적용 등의 세션으로 진행됐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역사문제의 가장 큰 적은 무관심”

    “역사문제의 가장 큰 적은 무관심”

    “주변국과의 역사 문제에서 가장 큰 적은 일본 정부나 중국 정부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무관심입니다. 역사 왜곡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가 한국사를 바로 알고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한국사와 관련한 핵심 현안들을 전문가들과 함께 쉽게 풀어쓴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사 10’(메가북스)을 펴냈다. 서 교수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4년 전 한 대학생이 안중근 의사를 ‘도시락 폭탄을 던진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걸 듣고 한국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역사를 담은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외국인이 ‘왜 독도가 한국 땅이냐’고 물었을 때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책은 독도, 일본군 위안부, 동북공정, 야스쿠니 신사, 약탈 문화재 반환, 독립운동 인물, 독립운동 역사, 한글, 한식, 아리랑 등 10가지 이슈에 대해 전문가 10명이 각각 재미있게 풀어 썼고, 서 교수는 각 장마다 해당 이슈의 국내외 홍보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덧붙였다. 책은 영문으로도 번역될 예정이며, 인세는 전액 한국사 광고 제작 비용으로 사용된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지상파 하이라이트]

    ■리얼체험 세상을 품다(KBS1 밤 10시 50분) 배우 이세은이 촬영차 스리랑카를 방문해 가는 곳마다 한류스타의 면모를 보인다. 또한 이세은이 밤마다 야생코끼리의 습격을 받는 오지 마을에서 코끼리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질 예정이다. 이세은과 코끼리의 천국 스리랑카에서 만난 야생 코끼리와의 생존을 건 전쟁을 함께한다. ■수목 드라마 비밀(KBS2 밤 10시) 궁지에 몰린 도훈(배수빈)은 세연(이다희)의 도움으로 민혁(지성)과 유정(황정음)에게 반격을 해온다. 도훈과 세연에게 압박당한 민혁과 유정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도훈은 K그룹을 배신하고, 민혁은 도훈에게 반격한다. 민혁과 세연의 결혼식으로 예정된 날짜가 다가오고, 유정과 민혁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메디컬 탑팀(MBC 밤 10시) 김태형 환자가 광혜대학병원의 경영전문컨설턴트로 오고, 혜수와 승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태신은 다시 탑팀에 합류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안부 인사를 전하던 중 주영이 데리고 온 허동민 환자가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허동민 환자는 수술을 안한다고 했는데 왜 했느냐며 주영을 원망하는데…. ■드라마 스페셜 상속자들(SBS 밤 10시) 지숙(박준금)은 김원(최진혁)에게 김탄(이민호)의 열여덟 생일에 제국홀딩스 주식을 받으면 지분율이 비슷해지거나 더 많아질 거라 말하며 김원을 자극한다. 한편 김탄은 은상(박신혜)을 방으로 데려와 영도(김우빈)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묻고, 마침 기애(김성령)에게 둘이 있는 모습을 들키고 만다. ■다문화 사랑(EBS 밤 8시 20분) 한국에 푹 빠져있는 푸른 눈의 사진가 리 스매더스. 벌써 12년째 머물고 있지만, 여전히 그에게 한국은 흥미롭다. 그는 그 모든 순간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게다가 가장 좋아한다는 한국의 풍경 사진을 비롯해, 자신이 가르치던 50명 남짓한 학생들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회를 여는가 하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리얼 대탐험(OBS 밤 9시 50분) 생계를 위해서 수천년 전부터 사냥을 해왔던 마지막 남은 다섯 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각기 다른 자연과 환경 속에서 그곳에 맞는 사냥법과 도구를 사용해서 사냥하는 이들 부족은 전통적으로 자연과 동물과의 관계를 항상 존중하며 생활해 왔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어린 독수리를 훈련하는 몽골의 베르쿠치족을 만나본다.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특수학교 다니는 중증장애 학생 대상으로 진로탐색부터 취업알선까지 ‘워크 투게더’

    올해로 설립 23년째인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최우선 고객은 중증 장애인이다. 장애인 중에서도 취업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공단은 이성규 이사장이 취임한 2011년부터 장애인 고용의 핵심 목표를 ‘중증 장애인 고용’에 맞추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 운영 중인 ‘워크 투게더 센터’ 사업은 교육과 고용이 연계된 맞춤형 서비스여서 주목된다. 이 사업은 현재 재학 중인 중증 장애학생의 진로 탐색부터 취업 알선까지 연계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단 관계자는 10일 “그동안 특수학교 등에 재학 중인 장애학생은 구직 상담이나 전문 취업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적었던 터라 학부모와 장애인 학생들이 워크 투게더 사업에 큰 호응을 보낸다”고 말했다. 또 대기업과 공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에 장애인 근로자를 취업시키는 데도 힘을 쏟는다. 공단은 기업들과 장애인 고용증진 협약을 체결하고 장애인을 위한 직무 발굴, 맞춤 훈련, 채용 대행 등 개별 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과 LG, 롯데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의 장애인 대규모 채용과 대기업의 장애인 자회사형 표준사업장(모회사 대신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설립된 자회사) 운영,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진행 중인 직업영역개발 사업도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공단 관계자는 “국내 장애인 고용이 단기간에 많은 발전을 이뤄온 까닭에 우리나라 장애인 고용정책과 공단의 사업 등이 개발도상국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태국과 몽골, 피지, 스리랑카 등 여러 국가의 요청으로 해외 장애인의 직업능력 개발과 고용 확대를 위해 국제협력 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해외 39곳, 53개 기관이 함께한 국제협의체인 ‘국제장애인 직업능력개발협회’의 의장국으로 선출됐으며 개발도상국 장애인 전문가들을 초청해 연수도 실시하고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김기덕 “사람들은 나를, 괴물이라 하지 이중잣대 같아, 난 인간적인데”

    김기덕 “사람들은 나를, 괴물이라 하지 이중잣대 같아, 난 인간적인데”

    ‘붉은 가족’(6일 개봉)의 각본을 쓰고 제작한 김기덕(53) 감독은 “나를 바라보는 이중 잣대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인간의 욕망과 금기를 건드린 ‘뫼비우스’와 ‘피에타’ 같은 작품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대중적 색채가 짙은 ‘배우는 배우다’나 ‘영화는 영화다’ 등도 ‘김기덕’이라는 스펙트럼을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김유미와 정우가 주연을 맡고 이주형 감독이 연출한 ‘붉은 가족’은 가족으로 위장해 남한에서 살아가는 북한 간첩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람들이 왜 나를 괴물로 보는지 모르겠다”는 그를 어렵게 인터뷰했다.  →전재홍 감독의 ‘아름답다’와 장훈 감독의 ‘영화는 영화다’를 제작하면서 “제작자보다는 후원자에 가깝다”고 했다.  -근본적으로 수입을 목적으로 제작하는 게 아니니까. 후원자라는 것도 이제 좀 올드한 느낌이고, 큰 차이는 없겠지만 후원자보다는 지원자에 가까울 것 같다. ‘메인스트림’이라고 하는 한국의 영화 학교 출신이 아니면서 영화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이 첫 단추를 끼우기 어렵지 않나. 연출력이나 시나리오 집필력도 부족하고 많은 어려움이 있다. 내가 쓴 시나리오를 건네면 (외부에서) 이야기에 관심도 생기고, 그런 상황에서 연출자의 재능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항상 감독이고 싶지 제작자이고 싶지는 않다”고 했었는데.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많이 쓰는 편이다. ‘피에타’나 ‘뫼비우스’는 어둡고 사회적으로 무거운 메시지를 전한다고 보는데 제자 감독들에게 맡기는 것 중에는 경쾌하고 오락적인 영화도 많다. 그런 영화들도 내가 가진 감성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이야기의 힘은 시나리오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쉽게 말해서 이 중에 내가 해도 되는 게 있고 아닌 게 있다. 제작을 맡은 영화는 연출한 감독이 더 능력이 있다고 본다. 내가 (감독으로서) 고민하는 주제는 ‘붉은 가족’이나 ‘영화는 영화다’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보편적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일 텐데, 인간이 살면서 풀지 못한 비밀 같은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주제라면 ‘붉은 가족’ 같은 영화는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어떤 모순을 다룬다. 내가 못할 것은 없지만 나는 다른 욕심이 있다.  →‘붉은 가족’은 1억 2000만원으로 제작했는데 어떻게 마련했나.  -‘풍산개’와 ‘피에타’ 수입 가지고 하는거다(웃음). ‘풍산개’ 수익에서 남은 돈으로 ‘피에타’를 만들었고 ‘피에타’ 수익으로 ‘붉은 가족’과 개봉 예정인 ‘신의 선물’을 만들었다. 영화사들이 보통 (투자를 받지) 돈을 잘 안 쓰는데 나는 ‘실탄’으로, 제작비로 쓴다.  →각본과 제작을 맡았던 ‘풍산개’도 남북 문제를 다뤘는데.  -아버지가 상이용사이셨다. 6·25 전쟁 때도 참전했었고 몸에 총알을 네 발 정도 맞으셨다. 제대 뒤에 거의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약으로 살다 돌아가셨다. 내겐 아픈 어린 시절이 있는데, 그때 아버지가 너무 폭력적이고 무섭고 공포스러웠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두려웠는데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의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좀 알게 됐다. 그게 분단의 현실에서 온 것이고, (거기에) 숙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분단으로 고착된 현실에서 이념적으로 충돌하고, 그 안에서 풀지 못한 숙제 때문에 늘상 이리저리 살고. 이것을 조금 더 풀고 싶었다. ‘풍산개’는 남북 사이에 유령이라는 존재를 등장시켜서 지나친 이념 경쟁 속에 결국 이산가족이 피해를 보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이 파괴된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붉은 가족’은 남한의 모순적 자본주의, 북한의 모순적 체제주의를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우리가 정말 잊어버린 것과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려고 했다. 한 가족과 한 인간,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냉정하게 하는 것 같다.  →‘붉은 가족’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웃기는 이야기인데 ‘풍산개’ 이후에 당장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용의자’ 같은 북한 소재의 영화가 개봉하는 걸 보면서 이런 소재에는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바탕도 그렇고, 아버지의 상처도 잘 알고 있고, 경기 일산에서 휴전선 바로 앞에 오랫동안 살았고, 철책 안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본 적도 있었다. 좋은 배우가 나오고 제작비도 만만치 않은 다른 영화에 비해 ‘붉은 가족’은 제작비도 적고 배우들도 덜 알려졌지만 이야기로는 앞서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또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연출이 후배인 전재홍 감독에서 또다른 후배인 장철수 감독으로 교체되는 등) 자본이 감독을 교체시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내 후배들이 들어가고 빠지는 과정을 보면서 조금 더 깨끗하고 정직하고 의미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객이나 극장 수는 부족하지만 영화로서는 괜찮은 영화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왜 가족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나.  -한반도에 사는 남북이 가족이지 않나. 흑인, 백인, 황인이 있고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 있다면 한반도에는 한국이라는 큰 가족 구도가 있다고 봤다. 남북은 형제라는 구도에서 트러블이 있는 거고. 남한 가족과 북한 가족이라는 설정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이 숨어 있다고 봤다. 체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힘 자랑을 하는 건 한쪽이 이기거나 져야 끝나지만 가족은 그런 게 아니지 않나. 가족은 서로 이해하면 완성되는 거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끌어왔는데 영화에서는 양쪽이 모두 미완성이다. 하나는 체제로서의 딱딱한 가족이고 하나는 자본주의에 너무 나른해진 풀어진 가족이다. 그런데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해해 나간다.  →영화에서 남한 가족은 서로 반목하고, 자본주의에 젖어 있으며, 위계도 전복돼 있다. 남한의 가족을 이렇게 바라보나.  -굉장히 압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가족이 실제로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비와 돈 중심주의, 예의가 무시되는 모습 등이 총체적으로 모여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자본주의가 붕괴시키는 흐트러지는 가족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러블 안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간애를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의 가족에는 그런 게 없다. 그런 인간애를 통해 ‘사는 건 이런거야’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남한 가족이 아웅다웅하며 위아래도 없어 보이지만 엄청난 자유로움이 있어야 그런 흐트러짐이 가능하지 않나. 경직되어 있으면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북한 가족이 그런 것을 발견하면서 스며들고 녹아드는 거다.  →왜 가족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나.  -한반도에 사는 남북이 가족이지 않나. 흑인, 백인, 황인이 있고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 있다면 한반도에는 한국이라는 큰 가족 구도가 있다고 봤다. 남북은 형제라는 구도에서 트러블이 있는 거고. 남한 가족과 북한 가족이라는 설정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본질이 숨어 있다고 봤다. 체제적으로,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힘 자랑을 하는 건 한쪽이 이기거나 져야 끝나지만 가족은 그런 게 아니지 않나. 가족은 서로 이해하면 완성되는 거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이야기를 끌어왔는데 영화에서는 양쪽이 모두 미완성이다. 하나는 체제로서의 딱딱한 가족이고 하나는 자본주의에 너무 나른해진 풀어진 가족이다. 그런데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해해 나간다.  →영화에서 남한 가족은 서로 반목하고, 자본주의에 젖어 있으며, 위계도 전복돼 있다. 남한의 가족을 이렇게 바라보나.  -굉장히 압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가족이 실제로 있다고는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비와 돈 중심주의, 예의가 무시되는 모습 등이 총체적으로 모여 있는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자본주의가 붕괴시키는 흐트러지는 가족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러블 안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인간애를 포기하지 않는다. 북한의 가족에는 그런 게 없다. 그런 인간애를 통해 ‘사는 건 이런거야’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남한 가족이 아웅다웅하며 위아래도 없어 보이지만 엄청난 자유로움이 있어야 그런 흐트러짐이 가능하지 않나. 경직되어 있으면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북한 가족이 그런 것을 발견하면서 스며들고 녹아드는 거다.  →‘피에타’를 두고도 “돈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 대한 영화”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도 자본주의에 무척 비판적이다.  -그렇게 비판적이지만은 않은 게 남한 가족이 그 안에 포기하지 않는 정(情)이 있고, 그건 다른 모든 것을 전복시킬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피에타’에서도 마찬가지다. 강도가 ‘미선이가 엄마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바뀌고 잔인한 것을 걷어내지 않나. 자본과 자기 생각이 중심인 사회지만, 나는 자본주의가 갈빗대 몇 개는 부러졌어도 구심점이 되는 등뼈는 부러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치고 박고 부러지는 것으로 척추가 모두 훼손되는 건 아니니까. 꼭 비판적이라기 보다, ‘이런 것들이 인간의 삶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나 이해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배 위에서 벌어지는 ‘붉은 가족’의 결말은 어떻게 떠올렸나.  -애초에 계획한 것은 아니었고 쓰면서 발전시킨 부분이다. 그 장면을 쓰면서 마지막에 북한 가족은 어차피 죽을 테니까 (남한 가족의 모습을) 반복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겠다고 생각했다. 북한 가족을 유일하게 한 번 가족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다. 죽음을 앞둔 북한 가족에게 작가로서 할 수 있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붉은 가족’은 어떤 뜻인가.  -북한이 ‘빨갛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나라든 위험에 처하고 자기 발언이 약하고 무언가 게릴라적이고 억압을 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붉은 깃발을 준비한다고 생각한다. 붉은 색에는 ‘결집’에 대한 것도 있고 ‘피를 흘려서라도’라는 절체절명의 요소도 있다. 북한이 전 세계적으로 고립되는 등 여러 가지 상황에서 붉은 색이 주는 이미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 가족이) 붉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들이 푸른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역설적으로 붉은 가족이라는 제목을 붙인 거다. 체제에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붉은 가족’에도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두만강’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저작권료가 있어서 결국 아리랑을 쓰게 됐다. 다 돈 때문이다.  →이주형 감독과는 어떻게 연을 맺었나.  -12월이나 1월쯤 개봉 예정인 문시현 감독의 ‘신의 선물’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 현장 편집하는 스탭으로 처음 왔었다. 이 감독을 지켜 본 전재홍 감독 등이 굉장히 인간적이고 재능있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단편을 보라고 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짧은 애니메이션이었는데 인상 깊었다. 조감독도 하지 않았고 아무 경험도 없었지만 치열하게 영화를 고민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용감하게 연출을 맡겼다. 전재홍 감독에게 ‘풍산개’, 장훈 감독에게 ‘영화는 영화다’를 맡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느 한 가지가 좋으면 맡긴다. 실패하더라도 비용은 1억~2억원이다. ‘붉은 가족’은 시나리오를 나름대로 살리면서 데뷔작으로는 잘 만든 것 같다.  →열애설이 나기도 했던 김유미와 정우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나는 시나리오를 건넨 뒤에는 현장에도 잘 가지 않고 간섭을 안하는 편이다. 연기력 하나로 뽑았다고 들었다. 개봉관도 몇 개 잡혀 있지 않은데 (열애설로 관심이 높아져서) 우리한테는 사실 고마운 일이다(웃음).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는 무척 강하지만 이야기의 전개나 구조는 작위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각본을 쓸 때 그런 생각을 하나.  -물론 한다. 그런데 나무가 자랄 때는 가지치기를 해서 영양분을 몰아줄 필요가 있다. 균형을 잡는 거다. 내 영화는 그런 구조라고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가지치기를 한 나무가 아쉽게 보일 수 있지만 멀리서 보면 그런 나무가 더 멋있다. 나는 더 큰 이야기, 더 큰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방식 같다. 시나리오를 처음 쓸 때부터 그렇게 훈련했다. 쉽게 말해 쓸데없는 것들은 안 보여주는 거다. 감성적으로 이미지를 길게 가져가거나 대사로 부연할 수도 있을 거다. 내 영화가 객관적으로 합의되는 좋은 영화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더 넓고 큰 것을 보여주기 위해 멀리서 보는 거다.  →서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뭔가.  -나는 내 영화가 메시지를 향해 달려가는 기사 같다고 생각한다. 잔설명을 잘 하지 않는다. 어떤 소설가는 내 영화에 서사가 없다는 말을 했는데, 문학이나 영화를 전공하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기존의 방식 대신) 내가 살아온 방식이나 성장 과정에 기준점을 둔다. 문화 표현물이 가지고 있는 형식에 대해 내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지나친 서사나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편이다. 영화들이 전형적으로 쓰는 기승전결이 나에게는 거북스럽다. 중고등 교육에서 가르치는 필수라고 하는 요소들을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붉은 가족’ 언론 시사회에서 “(상영관이 적은데) 불법 다운로드를 해서라도 봐달라”고 했다.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에 여전히 문제를 느끼나.  -그 말은 인터뷰 마지막에 통제되지 않고 그냥 나왔던 말인데 본의 아니게 기사 제목으로 걸려서 합법 다운로드 캠페인을 하는 분들에게 죄송했다. 그건 심정적 발언이었지 정말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알 거다. 자기가 만든 영화가 많이 알려지지 않을 때는 정말 그런 심정을 갖게 된다. 우리가 만든 영화를 누가 봐주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화인들이 다 비슷할 거다. 대기업 문제는 수익을 내야 하는 자본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불가피하다고 본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불변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힘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붉은 가족’도 상영관을 많이 잡지 못했는데 이걸 모닥불로 해서 산불을 만들고 싶다. 관객들이 상영관을 채워주고, 그걸로 상영 수익이 생기면 극장을 더 늘릴 생각이다. (메가박스 등에서 일부 상영관을 잡는 등) 멀티플렉스 계열에서도 작품의 뜻을 이해해줘서 놀라고 있다.  →전보다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커진 것 같다.  -‘붉은 가족’이나 ‘신의 선물’을 보면서 ‘이게 김기덕 영화냐’고 한다. 김기덕 영화 같지 않다는 뜻인데, 나를 보는 이중잣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뫼비우스’나 ‘피에타’, ‘나쁜 남자’처럼 공격적이고 끝까지 가는 영화로만 비쳐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나를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나를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인간적이라고도 한다(웃음). ‘붉은 가족’이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이나 모두 나인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국 내 영화를 아쉽게 생각하는 분들이 만들어낸 울타리에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영화를 보려면 다른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학교에 가면 학교에 갇히지 말아야 하고 옷을 입으면 옷 속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야생을 가진 인간이니까. ‘뫼비우스’는 특히 그런 면이 있는 영화일 거다. 하지만 나는 그걸 굳이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차기작은.  -항상 열심히 뭔가 쓰고는 있는데 뭐가 될지는 모른다. 두 세 개가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 일단 ‘붉은 가족’이 잘 됐으면 좋겠다. 모닥불이 산불이 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극장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감독하는 영화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쪽이 재미있는 것 같다. 특별히 국내 관객을 겨냥하는 것도 아니고, 위험하더라도 내 생각을 순수하게 전하는 일이니까.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이 시대 마지막 어릿광대 국악인 김뻑국

    [김문이 만난사람] 이 시대 마지막 어릿광대 국악인 김뻑국

    살면서 가장 좋은 재미를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보는 것, 아니면 듣는 것일까. 대체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듣는 편이 낫다고들 말한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재미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재담(才談)은 익살과 재치를 부리며 재미있게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창작보다는 전승(傳承)에 기초를 두고 흥미롭게 이야기를 실타래처럼 풀어나간다. 장구와 북을 치며 서로 주고받는 재담과 여러 타령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한다. 그렇다면 잠깐, 남녀가 주고받는 재담의 한 장면을 들어보자. 남:억조창생 만민시주님네, 이 내 말을 들어보소. 청춘이 가고 백발이 올 줄 알았으면 10리 밖에다가 가시철망을 쌓을 걸.(나무관세음보살 목탁소리를 한다) 여:이봅세 아즈바이, 이봅세 아즈바이, 어쩌면 그 소리를 잘 지르시지비? 남:아즈마이~여기가 어니 고장, 어니 댁이지비? 함경도 어랑타령 고장 아니메~아즈마이 가만히 관상 보니 혼자 삼동? 여:말 맙소, 갈라새끼 술지방 앙카이(남편이 술집 여자를 데리고 도망갔다는 함경도 지방의 욕) 옆에 차고 후르륵 날러 혼자 삼둥. 어쩌면 좋겠소, 어쩌면 좋겠소, 가슴 답답해서 못 살겠다. 내 눈에 햄세국물(김칫국)이 쫄쫄 흘리메, 정말 가슴 답답해서 못 살겠다. 아즈바이 아까 잘하던 소리 한번 아니 들려주겠소? 남:니가 먼저~살자고~옆구리 꾹꾹 찔렀지, 내가 먼저 살자고 계약에 도장 먼저 찍었나? 여:무주공산 뜬 달은 뜨나마나 하구요, 멍텅구리 새서방은 있으나마나 허다. 이어 둘이 합창을 한다. ‘날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이십리 못 가서 불한당 맞고, 삼십리 못 가서 되돌아오리리라, 아하하 어이야 어야더야 내 사랑아. 아리랑 고개에다 초가삼간 짓고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자~’ 김뻑국을 아시는가. 젊은이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40대 후반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추억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재담의 명인 김뻑국씨는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34년생이니까 올해 우리 나이로 팔순이다. 예전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여전히 공연무대에 올라 특유의 민요재담을 펼치면서 대표적 만담 콤비로 알려진 ‘장소팔·고춘자’ 이후 마지막 재담꾼으로 외롭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 ‘김뻑국예술단의 소리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소리극 공연을 열고 관객들에게 웃음을 흠뻑 선사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서대문 농협 대강당에서 2인 소리극 형식으로 제자와 함께 조용한 무대를 갖기도 했다. 앞에 언급된 남녀의 재담 장면에서 남자는 김씨, 여자는 제자 김순녀씨가 맡았다. 둘은 이 무대에서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아리랑을 불러 눈길을 끌었다. 외국어로 아리랑을 부르게 된 계기는 우리의 아리랑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였다. 종로3가 국악로에 있는 ‘김뻑국예술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민요재담이 대중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무슨 인터뷰를 하느냐고 했다. 재담인생 55년에 요즘도 열심히 공연을 다니고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재담은 춥고 배고팠던 시절 민초들의 해학이고 한풀이이자 격조 높은 풍자였다”면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먼저 회고한다. 그는 일제 때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이 되던 11살 때 부친의 출생지인 충남 보령에 정착했다. 하지만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생들한테 ‘일본 하꼬짝(궤짝)’이라고 놀림을 받으며 ‘왕따’를 당했던 것. 한글을 잘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쫓아다니면서 때리는 등 못살게 구는 학생들 때문에 도망치듯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뚝섬 근처에서 우연히 국악인 이충선씨를 만나 1년 넘게 머슴살이를 했다. 굿판이나 질펀한 놀이마당이 펼쳐지는 날 이씨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큰 재미였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인천과 수원을 거쳐 용인 남사초등학교에서 숨어 지냈다. 끼니는 빈집 광을 뒤져 남아 있는 씨알로 근근이 해결했다. 그렇게 1년 3개월을 지낸 뒤 다시 서울로 왔다. 탑골공원에서 배회하고 있을 때 공연 중인 국악인 최경명씨를 만났다. 이후 그는 최씨를 따라다니면서 장구와 피리, 배뱅이소리를 어깨너머로 배웠고 인천과 강화 등지에서 약장수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배뱅이굿을 하는 이은관씨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아 이씨와 인연을 맺고 40년 동안 같이 지내게 된다. “하루는 육영수 여사의 초대를 받고 소록도 위문공연을 가게 됐습니다. ‘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른 김상국, ‘노란 샤스 입은 사나이’의 가수 한명숙씨도 함께 갔지요. 이때 다른 분들은 10분 정도 노래를 불렀으나 저는 이충선씨를 따라다니면서 배운 재담으로 30분 가까이 무대 위에 섰지요. 환자들도 막 웃고 그러니까 무대가 화기애애했어요. 육영수 여사도 좋아하시면서 몸소 무대까지 다가오시더니 악수를 청하더군요. 엊그제(10·26) 박정희 대통령을 추모하러 간 것도 그런 인연에서였습니다.” 김씨가 재담가로 유명해진 결정적인 계기가 있다. 박정희 정권 때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만남이다. 사연은 이렇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였다. 김씨는 이은관씨와 함께 종로3가에 있는 요정집 ‘오진암’으로 초대받았다. 가 보니 김지미, 서수남, 하청일 등 유명 연예인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이후락 부장이 북한에 무사히 다녀온 기념으로 파티를 연 자리였다. 이 부장은 술을 한 잔씩 돌리면서 각자 노래 한 곡씩 부르게 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라고 하면 매우 근엄한 위치여서 다들 조용하게 불렀다. 그러나 김씨 차례가 오자 원래 하던 대로 소리 내어 불렀다. ‘네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꾹꾹 찔렀지. 내가 먼저 살자고 계약에 도장을 찍었나’를 민요풍으로 불렀다. 분위기가 확 반전됐다. 이 부장이 기분이 좋았던지 “바로 그거야 한 번 더 불러 봐”라고 했다. 이왕 내친김에 야한 노래를 했다. ‘○○산 자리봉에 좁쌀 서말 심었더니 공알새가 날아와~’ 다들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이 부장은 “저런 사람 세 사람만 있으면 남북통일도 문제 없어”라고 하면서 김씨를 옆자리에 앉힌 뒤 백지수표(100만원 이하) 한 장을 건넸다. 당시 100만원은 집 한 채 값이었다. “그 수표를 들고 한국은행을 갔습니다. 은행장이 직접 나와 인사를 하더군요. 이후락씨 사인을 보더니 다들 굽실굽실하는 거예요. 어떻게 받았으며 다 찾아갈 거냐는 등 아주 친절하게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10만원만 우선 달라고 했지요. 그것으로 양복점에 가서 옷을 맞춰 입고 남대문시장에 가서 해군 단화를 구입했습니다. 나머지는 안비취, 묵계월, 박동진 등 국악인들에게 공연을 하도록 도와주었지요.” 아울러 ‘김뻑국예술단’을 창단한 뒤 전국 면소재지까지 가서 공연을 하면서 암울했던 시절에 해학과 웃음을 선사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재담 한마디 툭 던진다. “서방님의 양말을 꿰맬 때 본처는 이빨로 실을 끊고, 둘째 마누라는 가위를 사용합니다. 셋째는 냄새를 맡고는 아예 양말을 버리지요. 하하하.” 김씨는 살아온 세월이 그래선지 팔순의 나이에도 악동(樂童)처럼 웃는다. 얼핏 보면 동자승 같기도 하고 철없는 촌놈 같기도 하다. 김뻑국이라는 이름은 방송국 데뷔 시절 ‘뻑국 뻑뻑국’이라는 소리를 잘 내서 그렇게 됐다고 말한다. 본명은 김진환이다. 김씨는 2010년 자신의 예술인생 50년을 맞아 남산 국악당에서 화려한 공연무대를 가졌다. 이때 각계 인사들이 참여해 한마디씩 덕담을 건넸다. 단국대 명예교수인 서한범 문학박사는 “김뻑국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름이 재미있어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재담과 소리, 몸짓과 연기로 청중을 몰고 다니는 유명세 때문이다. 선생은 익살스러운 말이나 행동,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능력이 있어 이 시대의 마지막 어릿광대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분이다”라고 했다. 그랬다. 어린 시절 피리의 명인 이충선을 따라다니면서 굿당의 대감놀이를 배웠고 김윤심의 재담과 소리를 익히기도 했으며 최경명에게는 장구와 피리, 1960년도에는 이창배 문하에서 경기민요를 배웠다. 그러면서 김뻑국만의 독특한 스타일의 영역을 개척하면서 많은 국악인들의 앞날을 열어주기도 했다. 꿈은 무엇일까. “일본에는 재담이나 만담 문화재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한 명도 없습니다. 꼭 인간문화재가 아니더라도 ‘명예문화재’라는 증서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재담을 배우려는 제자들이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그러면서 노래를 한다. ‘만나보세~만나보세~어머님 아버님 앞마당에서 만나보세~얼쑤.’ 팔순에 눈을 감고 장구 치고 북 치며 달밤에 외로이 홀로 앉아 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김뻑국은 1934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진환이다. 11살 때 광복을 맞아 아버지 출생지인 충남 보령에 정착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에서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니다가 국악인 이충선씨를 만나 머슴살이를 했다. 6·25전쟁을 겪은 뒤 국악인 최경명씨를 만나 피리와 배뱅이소리를 배웠다. 인천과 강화도에서 약장수를 하던 시절 배뱅이굿을 하는 이은관씨를 만나 40년을 같이 지냈다. 1960년 이창배의 문하에 입문해 본격적으로 경기민요를 배우게 된다. 이정업의 장구, 김천흥의 춤, 박동진의 판소리, 박해일의 재담을 배우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다. 1974년 남북적십자회담 환영공연을 했으며 1975년 ‘김뻑국예술단’을 창단했다. 최근에는 정선아리랑 연주법을 독창적인 기법으로 개발했고 우리 아리랑을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부르면서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현재 ‘김뻑국예술단’의 단장이다.
  • [기고]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 아리랑/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기고]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 아리랑/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18세의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55년 만에 캄보디아에서 발견된 훈 할머니의 이야기가 한때 많은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캄보디아의 한 어린이가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신기하게 여긴 기자가 찾아낸 훈 할머니의 버려진 55년간의 삶. 그 사연 많은 삶을 지탱해 준 것은 바로 아리랑이었다. 훈 할머니는 고국을 떠나 평생을 캄보디아에서 살면서 이름조차 잊었지만 ‘고향,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단어’ 그리고 ‘아리랑 가락’만은 잊지 않았다고 한다. 훈 할머니의 사연은 아리랑이 한국인들의 삶과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일요일이었던 지난달 27일 오후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아리랑 문화융성의 우리 맛, 우리 멋’이라는 특별 행사에 참석했다. 이날 공연은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해 청와대에서 열렸다고 한다. 객석에 앉아 음악에 맞춰 ‘아리랑’이란 문구가 새겨진 소고를 치며 공연을 관람하던 박 대통령은 가수 김장훈으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아 즉석에서 아리랑을 한 소절 불렀다. 아리랑은 여러 말이 필요 없다. 그저 마음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리랑 속에 다 녹아 있다. 이날 함께 부르고 즐겼던 아리랑은 우리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고 미래임을 확인했다. 아리랑은 다 어울린다. 국악은 당연하고 재즈, 클래식, 힙합, K팝 등 다양한 음악과 영화, 연극, 클래식, 전통·대중문화, 세계문화와도 흥겹고 신명나게 한 판을 벌인다. 아리랑은 길과 고개에 핀 야생화와는 ‘얼쑤!’ 외치며 한 폭의 그림이 됐고, 전통문화의 진수 궁중음식과는 찰떡 궁합을 이루었다. 아리랑은 세대와 이념, 지역의 벽을 넘어 진정한 국민 화합 및 문화융성의 본향(本鄕)이다. 우리 조상들은 일상생활 속의 ‘한’과 ‘슬픔’을 놀이판에서, 특히 아리랑 소리판에서 ‘신명’과 ‘흥’으로 풀어 가는 ‘멋’을 지닌 민족이다. 아리랑 소리판은 웃음이 있고 흥이 있고 신명이 있고 풍자와 해학이 있는 “신·흥·한·멋”의 마당이다. 아리랑은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아리랑은 한국인 정서의 근간이 되고, 문화적 DNA이다. 아리랑은 역사이고 문화이며 삶이다. 또 아리랑은 정선이고, 진도이고, 밀양이며 문경이기도 하다. 다시 아리랑은 담배이고, 성냥이 되기도 한다. 민요이고 유행가이며 재즈가 됐다가 시와 소설과 영화로 탄생하기도 한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한민족에게는 길 위의 노래이고, 고개의 소리이며, 화합과 소통의 창구다. 2012년 12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됐다. 아리랑이 한국인의 것을 넘어 세계인들도 공유할 수 있는 유산으로 공인된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도 세계인들에게 아리랑의 역사와 생활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소개하는 ‘아리랑로드: 해외순회전’ 사업을 2013년 일본을 필두로 미주, 중앙아시아, 유럽 등으로 돌아오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민족 공동체의 징표인 아리랑은 국내외 한민족 통합의 구심점이다. 이 길에서 만날 해외동포들에게 아리랑은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노래 이상의 그 무엇이고, 희망이자 긍지이며 삶을 지탱하는 동아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국감 이슈] 홍상표 “유영익 아들 채용 절차상 하자” 인정

    홍상표(56)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이 2006년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의 아들 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29일 인정했다. 홍 원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민석(민주당) 의원으로부터 관련 질문을 받고 “원칙상으로는 맞지 않는다.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앞서 지난 27일 유 위원장의 아들 유모씨가 2006년 채용 조건이었던 ‘미국 현지에서 엔터테인먼트 관련 마케팅 5년 이상 경력’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콘텐츠진흥원 미국 사무소 마케팅 디렉터에 채용됐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안 의원에 따르면 유씨는 아리랑TV의 영어 자막 검수와 주한 미국대사관 근무가 경력의 전부였는데도 19명의 지원자를 제치고 1등으로 합격했다. 국정감사에서는 이와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서상기(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원장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홍 원장은 “원칙에 어긋난 것 같기는 한데, 그 사람(유씨)에게 특혜를 굳이 주려 한 것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라고 해명했다. 또 “당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려 노력했지만, 현지 소장들과 연락이 안 돼 어떻게 (유씨를) 추천하게 됐는지 소상하게 알아내지는 못했다”고 답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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