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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크스·촘스키… 인류사를 바꾼 유대인의 힘

    마르크스·촘스키… 인류사를 바꾼 유대인의 힘

    100명의 특별한 유대인/박재선 지음/메디치/562쪽/2만 1000원 인류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유대인 두 명을 꼽는다면? 하나는 예수일 것이다. 다른 한 사람은? 아마 칼 마르크스일 것이다. 2005년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설문 조사를 통해 마르크스를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선정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사상가이자 경제·역사학자로 19세기 중반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사상 체계를 창시한 인물이다. 그의 이론은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계승되고 이후 공산주의는 70여년간 맥을 이었다. 영국의 학술지 프로스펙트(Propect)는 현세 최고의 지성인으로 놈 촘스키를 2005년 선정했다. 촘스키는 자신의 전공인 언어학은 말할 것도 없고 철학,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수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문가를 뛰어넘는 식견을 보인다. 그가 지성인으로 명성을 얻은 또 다른 이유는 전문지식을 쉽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촘스키는 지식을 충분히 소화해 고도의 전문적 식견이 요구되는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어내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역시 유대인이다. 핵무기를 개발해 핵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펜하이머, 조지 W 부시 정부 8년간 미국의 외교와 국방 정책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시조 격인 레오 슈트라우스도 유대인이다. 그 외에도 걸출한 유대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영국 제국주의 팽창을 이끈 장본인으로 대영제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 국제질서의 큰 판을 기획한 20세기 최고의 외교관 헨리 키신저, 세계 경제·금융 대통령 벤 버냉키, 여론과 언론을 움직인 조지프 퓰리처…. “1600만명에 불과한 유대인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한다”고 말하면 과장일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현재 유대인들은 미국을 배경으로 정치·경제·학술·문화·예술 등에서 세계를 이끌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유대인의 족적은 뚜렷하다. 중세 르네상스 운동, 지리상 발견, 국제 금융망 구축, 공산주의 창안 등 세계사의 결정적인 변혁에는 항상 유대인이 있었다. 1901년부터 시작된 113년 노벨상 역사에서 개인 수상 가운데 유대인은 무려 193명(전체의 23%)에 이른다. 책은 각 분야에서 역사·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유대인 100명의 인물 분석을 모은 것이다. 글을 쓰는 데 방대한 자료가 동원됐고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 사실 확인을 거듭했다는 게 전직 외교부 대사를 지낸 저자의 설명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기고] 농업·농촌의 가치를 되새기며/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기고] 농업·농촌의 가치를 되새기며/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오늘은 올해로 18회를 맞는 농업인의 날이다. 흙 토(土)자를 나누면 십(十)과 일(一)이 되는 점에 착안하여 1996년 11월 11일을 농업인의 날로 정하여 매년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1964년 농사개량구락부 원성군연합회가 11월 11일에 농민의 날 행사를 최초로 개최하였으며 농촌계몽운동가였던 고 원홍기 선생이 제안했던 것이 유래다. 땀과 정성으로 먹거리를 키우고 농촌을 지켜온 농업인들을 격려하면서 국민과 더불어 농업, 농촌의 가치를 되새기는 날이다. 우리 농업 여건은 녹록지 않다. 고령화와 농촌 과소화가 심화하고 있고 소득과 생활여건 등 도농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 우리와 인접하고 농업생산구조가 비슷한 중국과 자유무역협정(FTA)도 추진하고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농업인과 정부, 그리고 국민들이 함께 이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경우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농업, 농촌은 국민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균형발전, 경관 보전과 전통문화 계승에 기여하는 공익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금 어렵다고 농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진국조차 농업, 농촌에 지원을 계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농자천하지대본’을 말한 것도, 대통령이 농업은 생명산업이자 안보산업이라고 강조한 것도 나라의 근본이자 생명의 원천으로서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아니겠는가. 새 정부는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모아 향후 5년간 청사진을 담은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지난 10월 수립하였다. 기업농과 수출증대 위주의 농정에서 벗어나 중소, 영세농을 함께 배려하고 효율성 중심에서 형평성과 농업인의 행복을 함께 추구하며 농업의 경쟁력이 아이디어와 지역특성 등에 크게 좌우되는 점을 감안하여 지역의 참여와 책임이 강조되는 상향식 농정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정부는 먼저 농업과 정보통신 융복합 및 첨단농업기술 개발을 촉진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고 농업을 미래 창조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경영체 지원방식을 농가 유형별, 발전단계별로 체계화하고 생산과 가공, 유통, 체험, 관광 등을 결합한 6차 산업화로 소득원을 다변화하여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또한 경영위험 증가에 대응하여 직불제와 재해보험의 확충을 통해 소득과 경영 안정을 도모한다. 농촌 맞춤형 복지제도를 확충하고 농촌 정주 여건을 개선함으로써 농촌을 매력적인 쉼터, 삶터, 일터로 조성해 나갈 방침이다. 이러한 중장기 농정발전계획은 농업인들의 부단한 자구노력과 도전정신, 그리고 농업, 농촌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지지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정부는 농업인들과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조여 매고 농업, 농촌의 르네상스를 이루어 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농업인의 날을 맞아 어려움 속에서도 풍요로운 결실을 일궈내 주신 농업인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국민 모두가 농업, 농촌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강변 마지막 초고층 아파트 ‘분양大戰’

    한강변 마지막 초고층 아파트 ‘분양大戰’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선호도가 높은 한강 조망권에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분양을 준비하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달과 내년 분양을 앞둔 아파트들은 올 초 서울시가 한강변 건축물에 대한 높이를 제한한 ‘한강변 관리방향’ 발표 전 건축심의를 통과한 물량으로 사실상 한강변 마지막 초고층 아파트라는 희소가치까지 더해졌다. 한강변에 초고층 아파트를 분양하는 건설사는 삼성물산, 대림산업, 대우건설이다. 모두 한강 조망권에다 서울시의 ‘35층 고도제한’을 넘어선 초고층 물량이다. 서울시의 한강변 층수 규제의 반사이익으로 최대 수혜 단지로 꼽히는 곳은 삼성물산이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를 재건축하는 ‘래미안 이촌’(가칭)이다. 한강르네상스를 표방한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한강변 유일 56층 초고층으로 건축심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상 201m에 최고 56층 3개동 508가구로 2014년 중 분양할 예정이다. 대우건설은 이달 서울 마포구 합정동 ‘마포 한강2차 푸르지오’(조감도)를 분양한다. 한강 쪽을 바라보고 단독주택단지가 조성돼 있어 최적의 한강 조망권을 갖췄다. 단지는 지하 6층~지상 36층 2개동으로 전 타입에서 한강을 볼 수 있다. 지하철 2·6호선 ‘합정역’이 단지 내 지하로 연결되는 이중 역세권이며 걸어서 한강공원을 갈 수 있다. 대우건설 분양관계자는 “한강변 층수 규제로 기존 건축심의를 받은 아파트 분양이 이어지면서 한강 조망권에 대한 관심이 재조명되고 있다”며 “소비자들이 한강 조망권을 최대한 누릴 수 있도록 차별화된 설계와 합리적인 분양가로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대림산업도 이달 중 서울 서초구 반포에 초고층 대단지아파트 ‘아크로리버 파크’를 1차 분양한다. 1977년 준공된 신반포 한신1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것으로 반포에서 2000년대에 신규 분양한 아파트 중에서 유일하게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단지다. 강남 한강변에선 처음으로 최고 38층으로 지어진다. 지하 2층, 지상 5~38층 15개동으로 총 1620가구로 조성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시론] 닥치고 빅데이터? 다 치우고 책읽기/조남철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시론] 닥치고 빅데이터? 다 치우고 책읽기/조남철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2011년 인류가 생산해 낸 데이터 양은 그 크기도 쉽게 그려지지 않는 1조 9000억 기가바이트(GB)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에는 무려 35조 GB에 도달할 것이라고 한다. 데이터 양이 무한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사용자가 직접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필요없는 데이터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처럼 폐기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속도와 양에 압도당해 출구를 찾던 사용자들이 슬로시티(slow city), 슬로푸드(slow food) 등의 ‘느림’에 매료되는지도 모르겠다. 느림과 여유로 대표되는 ‘책 읽기’야말로 빅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유용하고 적절한 정보를 찾는 가장 빠른 길이다. 불필요한 정보가 주위에 넘쳐나는데도 정작 본인에게 필요한 책 읽기에는 소홀한 것이 요즘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속내이다. 직장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이 0.8권에 머무르고 있다는 한 포털사이트의 최근 조사는 당혹감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책 읽기가 지식 창조의 근간이며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높여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책 읽기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감 때문인지, 아니면 속도와 인스턴트적 사고가 각광을 받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책과 거리를 두고 있어 아쉽다. 이런 현실 속에 올해 6월 출범한 시민단체 ‘독서르네상스운동’이 지난달 25일부터 사흘 동안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앞마당에서 독서축제인 ‘제1회 읽어라! 대한민국’ 행사를 개최했다. 책 읽기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열린 이 행사에서는 대한민국이 창조적 문화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국민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그 첫걸음으로 독서를 주제로 한 건전한 토론이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열린 것에 대해 아름다움까지 느꼈다. 책을 왜 읽어야 할까.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근본은 독서인구의 성장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품격이 국가정책의 중심이 될 때 그 가치 기준이 명확해지고 ‘국민행복’이 가능해진다. 결국 다양한 독서를 통한 국민의식 성숙이 민주주의 사회의 근본이자 국가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된다. 유명 작가의 강연인 북 콘서트 ‘대한민국 북소리’에서 시민들이 직접 작가를 만나는 시간은 훈훈했다. 학계, 언론계, 출판계 등 전문가들이 ‘책 읽는 나라 만들기’를 위한 ‘국민 대토론회’를 통해 독서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도 좋았다. 무엇보다 쌀쌀했던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국회도서관 앞에 많은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상적이었다. 초·중·고교 학생들이 백일장과 가족신문 만들기 대회에서 부모와 함께 고사리 손으로 글과 기사를 쓰는 모습을 보고 대한민국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독서 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이뤄지기 때문에 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재미있게 책 읽기를 시도해 보도록 마련된 프로그램이었다. 이 밖에도 모교에 안 보는 책을 보내는 책나눔 행사, 야간 독서 프로그램인 달빛 독서회 등의 행사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열기가 뜨거웠다. 독서르네상스운동은 범국민적으로 독서생활운동을 펼쳐 대한민국을 정신 가치가 빛나는 문화복지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책 읽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독서진흥정책 연구 및 제안, 독서 인프라 확대, 함께 책 읽는 사회 만들기, 독서 홍보 및 캠페인 등 다양한 사업을 현재와 같이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백화쟁비독서향’(百花爭比讀書香), 즉 ‘백 가지 꽃의 향기가 독서의 향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빅데이터의 홍수 속에 책장을 넘기는 아름다운 소리와 향기가 대한민국 전역을 뒤덮을 때 창의적인 발상과 성찰 능력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이 창조경제, 문화융성의 주체가 될 것이다.
  • [명인·명물을 찾아서] 인천 중구 ‘근대역사문화의 거리’

    [명인·명물을 찾아서] 인천 중구 ‘근대역사문화의 거리’

    우리나라에서 근대 개화기 유물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서울’이라고 답할 것이다. 오래된 수도인 데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전부터 일본인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답은 개항의 관문이었던 ‘인천’이다. 인천 중구에는 제물포가 개항된 1883년부터 한일합병이 이뤄진 1910년대에 이르는 개화기 시대의 건물 50여채가 크게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용도의 건물인 은행·호텔·교회·기상대 등이 일본, 중국, 유럽 등 외국 양식에 따라 세워졌다. 중구는 지난달 3일 자유공원 등에서 ‘근대개항 거리문화제’를 열었다. 구는 이 일대가 우리나라 개항기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임을 강조하기 위해 3년째 거리문화제를 열고 있다. 실제로 중구는 개항기 건축물이 밀집한 데다 국내 최초의 도시계획구역이어서 ‘개항장 근대역사문화의 거리’로 불린다. 어찌 보면 치욕의 역사가 담겼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도시학적 측면에서 보면 다양한 형태의 각국 건물이 자리 잡고 있어 개항도시 인천의 포용성이 느껴진다. 중구청 앞 골목(중앙동2가)에 있는 옛 ‘일본58은행 인천지점’은 1892년 지어진 2층 석판 마감 건물로 발코니, 도머창, 맨사드지붕 등은 프랑스풍 르네상스 양식이다. 인천전환국에서 만든 신구 화폐를 교환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바로 옆에 있는 ‘일본18은행 인천지점’은 2006년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바뀌어 근대 건축문화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18은행에서 50m쯤 떨어진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은 1899년 건립돼 일본영사관 금고 역할을 했으나, 2010년 ‘인천개항박물관’으로 변신, 인천항을 통해 처음 소개된 근대문물 중 대표적인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었던 ‘대불호텔’ 복원 방안도 추진된다. 이 호텔은 외국인들에게 최초로 커피를 팔아 인기를 끌었다. 경인 철도가 놓이기 전 인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인천에서 하루 묵어야만 했고, 이런 수요 때문에 1888년 중앙동1가에 세워진 이 호텔은 서양식으로 설계된 3층 목재 건물이었다. 경인선 개통으로 수요가 감소하자 경영난에 직면한 대불호텔은 1918년 중국음식점인 ‘중화루’로 간판을 바꿨다가 1978년 건물이 헐렸다. 부지 소유주인 김모씨가 지난 9월 386㎡를 중구에 기부채납함에 따라 구는 다음 달 인근 부지까지 매입해 대불호텔 복원·활용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원형보존’ 조치가 내려진 지 2년 만이다. 중구청 앞 큰 길가에 있는 ‘아트플랫폼’은 본래 인천항 개항 후 물류운송 업무가 증가하면서 지어진 10여동의 적벽돌 창고였다. 구는 이곳을 지역 예술인들이 다양한 문화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지난 9월 한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만든 ‘한국근대문학관’에서는 한국 근대문학을 체험할 수 있다. 중구청 뒤편에 있는 자유공원은 1888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공원이다. 개항 이후 서구 열강들이 인천을 거류지로 삼고 세력을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완충 역할을 한 공간으로 처음에는 ‘각국공원’으로 불렸다. 인천기상대는 개항 뒤 선박 입출항이 빈번해진 인천항의 기상관측이 중요해지자 1905년 건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기상대다. 1923년 항동6가에 지어진 인천우체국(현재 인천중동우체국)은 90년간 동일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특이한 존재다. 이 외에도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선린동), 인천 거주 외국인들의 사교클럽이었던 ‘제물포구락부’(송학동1가), 대한성공회 ‘내동교회’(답동), ‘청국영사관’(북성동3가, 현재 화교학교) 등이 한국 근대사에서 인천이 지니는 역사성을 몸소 증명하고 있다. 황은경(53)씨는 “인천에 오래 살면서도 근대 역사와 관련된 문화재가 이처럼 많은 줄 몰랐다”면서 “근대역사문화의 거리를 찾은 뒤 인천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13년째 전 세계 누비는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

    [김문이 만난사람]13년째 전 세계 누비는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표적 인물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술뿐만 아니라 과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가 남긴 쪽지에는 오늘날의 낙하산, 비행기, 전차, 잠수함과 비슷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또 그의 아이디어 작품집에는 나무 자전거 형태를 구상한 실제 스케치와 설계도가 남아 있었다. 자전거의 역사를 얘기할 때 보통 200년이라고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보다 훨씬 더 일찍 자전거를 생각했던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불후의 저서 ‘역사의 연구’를 쓰기 위해 로마 유적을 찾아 이탈리아 전역을 자전거로 답사했다. ‘역사의 연구’는 구상에서 전 12권 완결까지 40년, 집필에만 27년(1934~1961년)이 걸렸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자전거는 인간에게 어떤 ‘사유’와 ‘내면의 철학’을 끄집어내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봄과 가을은 자전거의 계절이라고도 한다. 깊어가는 이 가을에 자전거를 타고 산으로, 들로, 강변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나름대로 치유와 건강, 낭만과 인고의 즐거움,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 자전거를 탄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자전거 전용열차가 생겨날 정도로 자전거 마니아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차백성(63)씨는 13년째 자전거를 타고 세계 각국을 누비는 특별한 자전거 여행가다. 북미대륙과 하와이 7000㎞ 종주, 일본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5000㎞ 종주, 뉴질랜드와 중국 등 자전거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10만㎞를 넘게 달렸다. 특히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마라톤 평원을 달린 그리스 병사의 심정으로 터키에서 알프스를 넘어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토고와 시합을 하루 앞둔 프랑크푸르트 월드컵 경기장까지 2006㎞를 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그동안 ‘아메리카 로드’ ‘재팬 로드’ 등 두 권의 여행기를 써서 자전거 여행 작가로, 문화체육관광부 자전거홍보대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또 있다. 대기업 건설회사 공채 1기로 출발해 연봉 1억원의 임원 자리에 올랐을 때였다. 어릴 적 생각했던 자전거 여행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두 바퀴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내년 봄에는 세 번째 여행기 ‘유럽 로드’가 완성되는 대로 러시아로 향한 페달을 힘껏 밟을 예정이다. 지난 23일 오전 서울 방화대교 남단의 넓은 주차장에서 차씨를 만났다. 요즘 근황을 물었더니 “최근에는 동호인들과 함께 제주와 서해안, 아라뱃길에서 탄금대 등을 다녀왔다”면서 아울러 여행기를 쓰느라 바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과 2012년 서유럽에서 동유럽까지 다녀온 얘기를 이번에 책으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과연 몇 개의 나라를 자전거로 여행했을까. 아프리카만 빼고 세계를 다 다녀온 셈이라며 웃는다. 만난 장소가 야외여서 그런지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를 배경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자 자전거 세계여행의 지존다운 철학이 줄줄이 나온다. “자전거는 인간적인 도구입니다. 교통, 환경, 에너지, 건강, 여행 등 다섯 가지를 일거에 해결하지요. 자전거는 20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파워는 두 다리에서 나오고 100% 운동에너지로 바뀌지요. 자전거는 영원한 아날로그입니다. 과학이 발전하고 로켓을 만들어 하늘로 쏘아 올리지만 자전거는 변치 않는 영원한 인간적 도구로 남을 것입니다.” 자전거는 인류가 발명한 가장 훌륭한 도구라고 거듭 역설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밀레니엄을 맞아 영국 BBC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17세기 산업혁명 이후 최고의 발명품은 자동차, 비행기, TV, 컴퓨터도 아닌 자전거였다. 또한 지구를 살리는 중요한 물건으로 자전거를 첫째로 꼽았다. 차씨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자전거는 사람의 힘으로 체인을 돌려야 바퀴가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전거와 혼연일체가 돼 국내의 산, 해변, 섬, 고개, 평야, 강변 등을 두루 다녔다. 그러다가 해외로 서둘러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토인비의 이탈리아 자전거 여행에서 힌트를 얻게 되면서였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본능과 질서에 채워진 족쇄를 풀고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확인하기 위해 그가 잠든 지중해 크레타 섬을 자전거로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묘비명 역시 저에게 이렇게 속삭이더군요.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므로.’ 저의 여행은 바로 그런 자유를 향유하려는 몸짓이라고 생각하지요.” 그가 다음 여행지로 러시아를 선택한 것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안톤 체호프 등의 문학 유적지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안톤 체호프의 경우 세상을 떠난 부친이 한국외국어대 교수였을 당시 전공했던 각별한 인연도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첫 여행지를 미국의 서부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넓은 땅에서 좋아하는 바다를 원 없이 바라보며 마음껏 달리고 싶었고 또 오랜 풍상의 회사생활에 시달린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인내의 한계를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일본 종주를 할 때에는 “예절과 친절 뒤에 감춰진 일본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어 행장을 꾸렸고 달리는 동안 일본만의 독특한 역사와 전통을 체험했다”고 말한다. 이어 다뉴브강 등 유럽의 여러 강변에서 페달을 밟았지만 우리나라 한강의 자전거 환경보다는 훨씬 못하다면서 자전거 여행의 장점을 강조한다. “과거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을 우습게 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하는 시대입니다. 자동차를 타게 되면 주마간산식으로 바깥을 보게 되고 그렇다고 걸어가기엔 너무 늦거든요. 특히 자전거로 여행하면 체력까지 늘잖아요.” 그는 초등학교 때 자전거를 배워 밤낮으로 동네를 휘젓고 다녀 ‘자전거 꼬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중학시절에는 김찬삼씨의 세계여행기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세계여행의 꿈을 키웠다. 어느 날 자전거 한 대가 생기자 보란 듯이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당시만 해도 자전거가 귀할 때였다. 틈만 나면 서울시내를 쏘다녔고 고교시절 여름방학 때는 서울에서 대구(태어난 곳)까지 첫 장거리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했다. 강원 춘천에서 장교로 군복무하던 때에도 첫 월급으로 자전거를 구입해 주말이면 강촌, 가평, 심지어는 화천까지 내달렸다. 1976년 대우건설에 입사한 후 아프리카 파견 근무 시절에도 자전거를 탔다. 그만큼 자전거는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그는 50살이 되던 해에 다들 부러워하는 대우건설 상무직을 그만두고 마침내 오랜 꿈이었던 자전거로 세계여행을 떠나게 된다. “인생 2모작을 자전거로 했지요. 또 자전거로 여행을 통한 열정과 꿈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나이에도 얼마든지 모험을 할 수 있고 후배와 다음 세대들에도 도전과 꿈을 심어주자고 다짐했지요. 지금도 자전거에 여장을 꾸리노라면 마치 무병(巫病)을 앓는 것처럼 가슴이 뛰고 신열이 생겨납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선진국일수록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특히 네덜란드의 왕실 가족은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다닐 정도라고 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면서 몇 가지 몸의 변화를 경험했다. B형간염이 있었는데 저절로 항체가 생겼고 근육과 폐활량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그 나이에 있을 법한 혈압, 당뇨 또한 없이 여전히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체력 나이는 10년 정도 젊어졌다면서 “자전거는 자기 몸의 연장이다”라고 강조한다. 자전거로 여행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는 “역사나 테마여행을 하면 좋다”고 권한다. 자전거여행을 위한 간단한 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전거여행은 캠핑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헬멧, 패니어, 배낭, 자물쇠, 속도계, 물받이, 장갑, 램프류, 자전거 가방, 선글라스, 수리 공구 등은 기본입니다. 국내에서 가볼 만한 곳은 속초에서 7번국도를 따라 경주까지 이르는 코스, 전북 부안에서 출발해 변산반도를 돌아 순창, 남원, 구례 화엄사에 이르는 코스, 비행기로 제주공항에 내려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코스 등이 좋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의 도전과 꿈을 물었더니 “러시아를 다녀온 뒤 아프리카를 종주하는 것이며 ‘세계 로드’의 책을 다섯 권 내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차백성은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4년 한국외국어대 개교 당시 부친이 러시아과 교수로 임명되면서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했다. 인하공대 토목과를 졸업하고 1976년 대우건설 공채 1기로 입사했다. 24년 동안 근무하면서 10년을 수단, 나이지리아 등에서 보냈다. 2000년 12월 상무이사를 끝으로 회사를 그만둔 뒤 미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뉴질랜드, 유럽 등을 자전거로 여행했다. 자전거 전문지 ‘자전거 생활’에서 5년 동안 여행기를 연재했으며 국내외 각종 언론매체에 여행담을 발표했다. 또 2008년 북미대륙과 하와이 여행기를 담은 책 ‘아메리카 로드’를 펴냈다. 2010년에는 80일간 일본열도를 종주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팬 로드’를 펴냈다. 현재는 유럽 여행기를 쓰고 있으며 내년 봄에는 러시아를 다녀온 뒤 카이로의 피라미드에서 케이프타운의 희망봉까지 종단할 예정이다. 한국아프리카협회 이사, 문화체육관광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 황금 주파수 검은 대륙서 통하나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은 이미 2010년 가입자 5000만명을 돌파하면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통사들은 롱텀에볼루션 어드밴스트(LTE-A), 광대역LTE 등 신규 서비스를 꾸준히 내놓고 있지만 결국은 포화 시장에서 서로 가입자를 뺏고 뺏기는 싸움을 하는 모양새다. 이런 때에 앞으로 이통사는 어디서 먹거리를 마련해야 할까. 이에 대한 KT의 답은 ‘해외시장 개척’이었다. 제조업과 달리 ‘통신=내수산업’으로 이해되는 상황에서 새 먹거리 창출을 위한 창조적인 도전을 한 셈이다. 28일 르완다 정부와 KT의 공동 주관으로 막을 올린 아프리카 전략 정상회의는 KT의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주변국 및 글로벌 기업 등에 널리 알린다는 의미가 있다. KT는 지난 6월 3년 내 르완다에 LTE 전국망을 구축하고 이후 25년간 독점 사업권을 부여받기로 르완다 정부와 합의했다. 이동통신이 주파수라는 공공자원을 활용하는 기간산업인 점을 감안하면 KT는 외국기업으로서 이례적으로 르완다에서 25년간 안정적인 ‘주파수 채굴 사업권’을 획득한 셈이다. 이석채 회장은 이 소식을 지난 6월 KT·KTF 합병 4주년 행사에서 직접 발표했다. 아프리카는 오랜 시간 동안 세계 경제에서 소외돼 오다 200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 성장을 보이며 ‘기회의 땅’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KT가 진출한 르완다는 1994년 내전으로 인구의 10%가 죽고 산업기반의 70%가 파괴됐지만 십수년 사이 대대적인 부패 척결, 중앙은행 독립화 등 개혁 정책으로 지금은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모델’로 불리고 있다. 또 이곳은 이동통신 가입자 증가율이 100%가 넘고 인터넷 가입자 중 95%가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는 등 모바일 네트워크에 대한 수요가 커 아프리카 내 정보통신기술(ICT)의 허브로 떠오르고 있다. KT는 내수 시장뿐 아니라 아프리카 주변국으로의 사업 확장을 위한 거점 국가로서 르완다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 르완다는 동아프리카 4개국과 국경을 마주하는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시장 접근성이 뛰어나다. KT 관계자는 “르완다가 전국망 LTE 등 네트워크 기반에 힘입어 ICT로 경제 성장을 이뤄내면 동아프리카를 넘어 세계적인 신흥국가 ICT 발전 모델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 사업은 민간 기술 투자로 한 국가의 경제 발전과 국민생활 증진을 돕는 획기적인 민간 외교의 선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키갈리(르완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런던한국영화제 새달 7일 막올라… 개막작 ‘숨바꼭질’

    유럽에 한국의 영화와 문화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해 온 제8회 런던한국영화제가 다음 달 7일(이하 현지시간) 개막한다. 15일까지 9일간 영국 런던 시내에서 열리는 이 영화제에서는 모두 43편의 영화가 관객들과 만날 예정으로 허정 감독의 스릴러 ‘숨바꼭질’이 개막작, 송해성 감독의 코미디 ‘고령화가족’이 폐막작으로 상영된다. 영화제 기간 동안 강우석 감독 회고전도 열린다.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중심에 섰던 강 감독의 영화를 살펴본다. ‘투캅스’ ‘공공의 적’ ‘이끼’ 등 6편이 상영된다. 상영 후에는 강 감독, 배우 설경구, 오동진 영화평론가가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며 강 감독의 영화 인생을 조명하는 마스터클래스도 열린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4편의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김지운 감독의 세계 최초 단편영화 특별전’도 눈길을 끈다.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에서는 ‘빨간 마후라’ ‘피아골’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상영되며 ‘7번방의 선물’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올해 인기를 끈 영화를 상영하는 ‘박스오피스 히트’ 섹션도 마련됐다. 런던 상영이 끝나면 옥스퍼드, 브래드퍼드, 세인트앤드루스에서 순회전이 열릴 예정이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불어라, 독서 열풍! 국회도서관 광장서부터

    독서르네상스운동(상임대표 조남철·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이 지난 7~17일 회원 879명을 대상으로 ‘국회의원은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 같은가요’라고 묻자 53.1%가 ‘한 권 이하’를 꼽았다. 야박한 평가 같지만, 실상은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에 비해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한국출판연구소의 ‘연간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1년 성인의 연 평균 독서량은 9.9권으로 한 달에 한 권을 넘지 못했다. 차츰 책을 멀리하고 진학과 취업을 위해서만 책을 읽는 사회 문화를 바꾸기 위해 국회와 독서르네상스운동이 손을 잡았다. 이들은 한우리와 동양기전 협찬으로 25일부터 사흘 동안 국회도서관 광장에서 ‘읽어라, 대한민국’이란 주제로 독서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작가 6명이 강연에 나서는 ‘북콘서트’와 ‘책 읽는 나라 만들기 국민 대토론회’가 개최되고 70여개 출판사들이 도서를 할인 판매하는 ‘북페어’도 열린다. ‘독서 백일장’, ‘가족신문 만들기’, ‘달빛 독서회’에는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다. 이 중 26일 오후 6~9시에 열릴 ‘달빛 독서회’는 해질 무렵 국회를 책 읽는 공간으로 단장할 전망이다. 독서르네상스운동 홈페이지에서 참가 신청을 하면 된다. 행사를 기획한 오서경 한우리 독서문화정보개발원 연구실장은 “책 읽는 국회의 모습을 먼저 선보인 뒤 앞으로 범국민적 독서문화 확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6일 오후 2시에 열릴 ‘국민 대토론회’에서는 독서를 활성화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된다. 최인자 신라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책을 읽으면 균형 잡히고 통합적인 삶을 살 수 있고, 책 읽는 시민이 창발적 변화를 주도하고 화합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 수 있다”면서 “계몽주의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즐길 수 있는 독서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열린세상] 원자력 안전의 마지막 보루는 원자력안전위원회/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원자력 안전의 마지막 보루는 원자력안전위원회/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10일, 정부가 그동안 진행해 온 원전 부품 품질 서류 위조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인 품질 서류가 약 30만 건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라 아직 조사가 일부 남아 있기는 하나, 우리나라에서 현재 운전되고 있는 원전에 대해서는 모두 조사가 끝난 것이라고 한다. 최근 10년간 부품에 대해 전부 다 뒤져 조사를 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 품질 서류가 위조되어 원전에 납품된 부품은 주로 공기필터, 밸브, 볼트, 지지대 스터드와 같은 것으로, 안전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부품은 없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일부 케이블, 수소제거 설비와 같은 기기가 있었지만, 지난 5월 위조된 서류를 통해 성능이 검증되지 못한 케이블이 설치돼 원전 운전을 정지한 원전 3기(신고리 1, 2호기, 신월성 1호기)를 제외하고는 안전을 위해 원전을 긴급히 정지시켜야 할 만한 건은 없었다고 한다. 그동안 원전이 불시 정지될 때마다 많은 사람이 원전 설비나 부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았는데, 이번 조사 과정에서 최근 10년간의 원전 정지 사건과 서류 위조 부품과의 연관성을 분석해 본 결과 다행히도 연관이 없다고 한다. 그동안 발생한 불시 정지가 부품의 문제라기보다는 운영 측면에서의 문제 비중이 컸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사결과 품질 서류 위조가 확인된 부품, 기기에 대해서는 교체할 부분은 모두 교체하고, 나머지는 정상적인 시험을 거쳐 다시 품질 서류를 발행하거나 운전 가능성 평가 등 안전성 확인 작업들을 모두 끝마쳤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신고리 원전 3, 4호기에 사용된 케이블 성능이 불량으로 나타나 케이블을 전면 교체해야 하므로 준공시기가 늦어지게 되었다. 화재 테스트에 실패한 케이블의 불량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력 비상사태가 일상화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정부는 앞으로의 조사 과정에서도 원전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부품이 발견되면, 재빠르고 강력한 조치를 통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재빨리 출범시켜 국제 사회는 물론 국제원자력기구의 신임을 얻는 데에도 큰 덕을 보았다. 그래서 원안위는 한국 원자력의 안전판만 되는 것이 아니고 국제사회의 모범이 되는 원안위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의 원자력은 그동안 착실한 발전을 거듭해 와서 이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원전 4기를 수출하고 핀란드,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UAE의 추가 수출 등 국제 사회의 신뢰를 얻는 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데 집안 꼴이 말이 안 되면 수출은커녕 조롱당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한국의 원자력이 르네상스를 구가한다고 할 때 무언가 비상사태가 터질지 모르니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조심스러운 충고가 있었다. 그 이후로 후쿠시마 사태가 터졌고 원전 비리가 드러났다.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원자력을 가동할 수밖에 없는데 부정부패에 얼룩진 원자력의 잘못을 발본색원하지 않고는 국민의 신뢰를 얻어가며 지속할 수도 없고 부정부패의 고리를 완전히 차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외국에 수출도 할 수 있다. 집안 단속도 못하면서 무슨 수출을 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원자력은 이제 제2의 도약기를 맞고 있다. 원전 수출의 새로운 시장 개척과 고속로 개발 등 제4세대 원전 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빌 게이츠가 인정해 주듯 한국의 원자력은 더욱더 발전할 가능성이 가장 큰 역동성을 갖고 있는 나라다. 지나간 잘못을 일벌백계하고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원자력, 세계 속에 중흥하는 원자력이 되기 위해 밑바닥부터 안전을 다지는 작업을 해야 하겠다. 그래서 원안위와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크다. 이 두 곳의 말이 원자력 안전의 바이블이 되겠다는 각오로 일 할 때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에서 신용하는 한국의 원자력이 될 것이다. 원자력 안전 만큼은 권력의 어느 기관과도 타협하지 않는 냉혹한 안전 문화를 만들어 주길 기대해 본다.
  • [얘들아, 대학가자-입시전문가 어드바이스] Q : 현재 고2 대입 지원 횟수 달라지나

    [얘들아, 대학가자-입시전문가 어드바이스] Q : 현재 고2 대입 지원 횟수 달라지나

    Q: 내년에 고 3이 되는 인문계 남학생 A입니다. 고 3인 선배들이 A·B 선택형 수능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것을 지켜보며 ‘힘들겠다. 그래도 우리 때는 좀 안정화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교육부에서 발표한 대입제도 개선안을 찾아보니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수시는 4개, 정시는 2개 원서를 쓸 수 있는 것이니까 지금 고 3인 선배들보다 원서 쓸 기회가 줄어드는 건가요. 앞으로 1년 동안의 수험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겨울방학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지금부터 뭘 해야 하는지, 바뀐 제도 안에서 저는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A: 내년에 고 3이 되는 예비 수험생이나 현재 중 3~고 1인 학생 그리고 학부모라면 지난 8월 발표된 ‘대입제도 개선안’(시안)과 9월 발표된 ‘2015 대입전형기본사항’에 따른 여러 가지 뉴스로 인해 많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특히 대입제도 개선안(시안)은 2017학년도 수능 체제 개선안을 포함한 대입 제도의 ‘총체적 개선’을 강조했기 때문에 당장 내년도부터 대학 입시를 치러야 하는 고 2 학생들은 무엇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입니다. 옆에서 지켜보기에 거의 ‘공포’에 가깝게 큰 걱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 지난 두 달 동안 A군처럼 “수시는 4개, 정시는 2개 원서만 쓸 수 있나요”라고 질문하는 학생이 많았지만, 원서 지원 가능 횟수는 올해와 똑같이 내년에도 수시 6회와 정시 3회로 유지됩니다. 이런 오해는 대입 전형 수를 간소화하는 방안, 즉 수시 전형은 4개로 정시 전형은 2개로 줄여 각 대학에서 만들 수 있는 전형 수를 총 6개로 제한한 것을 잘못 이해한 것에 기인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학생과 학부모들은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대비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입시가 복잡해질수록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전략’입니다. 물론 실력 즉 공부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더 복잡해지는 대학 입시의 흐름 속에서 전략 없이 성공하기는 쉽지 앖습니다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대입 제도를 간단하게 만들고 싶어 하고, 가시적으로 가장 효과가 클 수 있는 대입 전형 간소화 방안으로 전형 수 제한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2015 대입전형기본사항’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전형수 제한’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전형명 제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각 대학의 여러 가지 특성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입학사정관 전형명(OKU미래인재, KU자기추천자, SSU미래인재, 네오르네상스, 다빈치 등)을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통일하는 것입니다.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여전히 ‘교과·비교과·면접·자기소개서·추천서’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합격 여부를 판정할 수 있습니다. ‘학교생활충실자’, ‘학교생활우수자’, ‘학생부성적우수자’ 등으로 다양하던 ‘교과 우수자 전형’ 역시 ‘학생부 교과 전형’으로 통일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집 인원에서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겠지만 2014학년도까지의 중심 기조가 크게 흔들린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고 2인 A군은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올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본인의 강점을 명확하게 찾아 겨울방학 동안 집중적으로 준비한 뒤 3학년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때 강점이라는 것은 단순히 특정 과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2015학년도에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내신’(교과점수), ‘비교과 활동’, ‘특기’(어학, 수학, 과학), ‘수능 성적’ 중 특정한 한 요소에 강점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본인의 지난 2년간의 고등학교 생활을 앞선 네 가지 요소로 나누어 분석한 뒤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그 강점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 겨울방학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강점을 찾는 과정에서 네 가지 요소를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맞지만, 거기에도 일정한 기준이 있습니다. 만일 B라는 학생의 2학년 2학기까지의 내신교과점수가 3등급이고 수능모의고사 평균등급은 3.5등급이라고 한다면 상대적으로는 내신교과점수가 강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3등급의 내신교과점수로 ‘학생부 교과 전형’에 지원해 합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실제 서울 소재 대학에서 정시 합격자 수능 평균 등급과 ‘학생부 교과 전형’ 합격자의 교과점수 평균등급이 일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신교과점수는 1학년 1학기 때부터의 성적을 누적해 계산하기 때문에 3학년 1학기에만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고 평균 등급을 올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B학생은 겨울방학 동안 내신교과점수는 현상유지하되 수능 점수를 2등급 내외 끌어올리기 위해 수능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별로 특색 없는 교과나 비교과 활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추가적인 준비만 하다가 수능 성적도 제대로 올리지 못해 입시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내신교과점수가 아주 뛰어나거나 특별한 비교과 활동이 존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능 공부를 가장 기본적인 방향으로 잡고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능은 누적된 결과물을 평균으로 계산해 내는 것이 아니므로 겨울방학부터라도 차근히 준비하면 분명 지금보다 나은 성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A군보다 한 학년 아래인 현재 고 1 학생들이 스스로를 ‘예비 수험생’으로 느끼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지금 고 1인 학생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연세대나 고려대가 나를 데려가기 위해 꽃가마를 준비해 올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다른 준비 없이 고등학교 1년을 보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1학년인 학생들은 ‘진짜 수험생’이 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 있습니다. 그 1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2학년 말에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 고 1이라면 본인이 가장 잘하고, 더 잘할 수 있으며,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해야 합니다. 이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발현되는 것이므로 이번 겨울방학을 이용해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고 여러 가지 활동을 경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활동 중에는 ‘수능 공부’도 있을 수 있고, ‘영어 캠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각각의 학생마다 본인만의 독특한 역사가 시작됩니다. 역사는 ‘진실성’과 ‘일관성’을 바탕으로 하고 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생긴 ‘개인의 역사’는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될 수도 있고, 2년 뒤 ‘자기소개서’에 녹아들 수도 있으며, 내신 시험 준비나 수능 준비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만들어 추진력 있고 꾸준한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김병진 강남청솔학원 입시전략연구 소장
  • 脫원전 국민감정 의식… 전기소비 억제 의도

    脫원전 국민감정 의식… 전기소비 억제 의도

    원전 확대 포기와 전기 사용 억제를 뼈대로 한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안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원전비리로 비등해지고 있는 탈(脫)원전 국민감정을 의식한 무리한 계획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전력 수요가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에서 제1차 기본계획에서 제시된 원전 비중 41%를 22~29%로 감축하는 데에 따른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된다. 사실 원전만큼 경제적이면서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낮은 친환경 에너지원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다. 발전원별 원가(원/㎾h)를 보면 석탄이 65.1원, 액화천연가스(LNG)가 125.2원인 데 반해 원전은 47.08원에 불과하다. 온실가스 배출 수준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버금간다. 때문에 2008년 제1차 계획에서 원전 역할 강화를 명시했고 ‘원전 르네상스’가 예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 비중 목표를 설정할 때 경제성·환경성 못지않게 안전성과 국민 수용성을 고려했다는 김창섭 민관워킹그룹 위원장의 말대로 2차 계획은 원전 확대 정책이 더는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측면을 반영했다. 문제는 전력 사용량이 갈수록 는다는 점이다. 워킹그룹은 에너지 수요 전망에서 전력 사용량이 연평균 2.5%씩 증가해 2035년에는 28%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원전 대체제와 수요관리를 통한 전력수요 억제를 들고 나왔다. 현재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상용화 속도가 더디다는 점을 고려하면 석탄과 LNG가 유력한 원전 대체제로 꼽힌다. 하지만 환경문제와 높은 생산 원가를 고려할 때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핵심 방향은 에너지 소비의 과도한 전기화를 억제함으로써 발전소나 송·변전시설 증설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반발을 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전 비중을 1차 계획보다 절반 수준으로 줄였음에도 대체 에너지 공급 계획이 부실하다는 점에서 2차 계획의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전 비중이 1차 계획보다 줄어드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무책임하게 줄였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고 부작용은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번 계획을 아무리 뜯어봐도 원전 비중 축소에 대한 대안이 없다”면서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는 1차 계획과 동일하고, 결국 석탄 활용과 수요 관리로 잡겠다는 건데 수요 관리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추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전 비중 축소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점진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국내 원전 비리에 따른 국민들의 ‘반원전·탈원전’ 감정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며 “이번 계획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민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국민적 반발도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원전 비중 축소는 마치 원전 건설계획을 중단하는 것 같은 착시효과일 뿐 내용을 살펴보면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전력소비 증가가 예측된 상황에서 원전 설비 비중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한다면 그만큼 원전 발전 용량을 늘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화원, 조선의 민낯을 그리다

    화원, 조선의 민낯을 그리다

    어느 겨울 한 귀인이 휘하를 이끌고 야산에 올랐다. 몸종이 말을 끌고, 군복차림의 ‘일산(양산)’잡이가 멋진 일산을 받쳐 들었다. 중년의 귀인은 도포를 입고 훤칠한 말을 탔다. 말 뒤로는 꾀 많고 눈치 빠른 집사가 갓을 쓴 채 따른다. 술상을 인 건장한 찬비와 안줏감을 지고 가는 동자, 사냥몰이를 하며 짐을 진 하인 외에도 사냥개와 매까지 동원한 성대한 사냥이다. 조선시대 어느 고을의 원님 행차를 묘사한 이 그림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필치로 물 흐르듯 이어진다. 농묵으로 균형을 잡고 여린 중담묵으로 감미롭게 표현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손길 닿는 대로 가볍게 쳐댔지만 빈틈없는 짜임새는 단원 김홍도(1745~1824)의 붓끝임을 말해준다. 1795년 안팎에 그려진 ‘호귀응렵’(호탕한 귀인의 매사냥)은 이 시기 연풍현감으로 재직하던 단원의 자화상에 다름없다. 단원은 당대 최고의 화가이자 ‘화원’(畵員·궁중화가)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화원으로선 드물게 현감까지 올랐지만, 매사냥에 빠져 파직된다. 이후 ‘월하취생’ ‘낭원투도’와 같은 단원의 그림에선 술병과 사발, 벼루와 먹이 나뒹굴고, 신선과 선승이 등장한다. 스승인 표암 강세황(1713~1791)은 “단원의 마음은 스스로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중인(中人) 출신 화가의 울분을 위로했다. 한량처럼 밖으로 나돌던 혜원 신윤복(1758~?)은 또 어떤가. 아버지와 함께 2대째 화원으로 일한 혜원은 어려서부터 사대부 도령들과 어울리며 당시 은밀한 풍속을 그림으로 까발렸다. 조선시대 빨래터를 묘사한 ‘계변가화’에선 맑은 물소리와 방망이질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건장한 한량이 활을 든 채 여인들만의 세상인 빨래터를 지나다 눈길이 머문다. 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추파와 웃통을 벗어젖힌 노파의 밉살스러운 표정까지 불꽃 튀는 연정이 담겨 있다. 단원과 혜원의 풍속화를 비롯해 조선시대 화원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은 오는 13일부터 27일까지 올 하반기 정기 전시를 ‘진경(眞景)시대 화원전‘으로 마련했다. 진경시대는 조선 숙종부터 정조 때까지 120여년간의 문화 르네상스기를 이른다. 이 시기 특징을 잘 버무린 화원 21명의 그림 80여점이 전시회에 나온다.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진경시대는 조선 초기 지배이념인 주자성리학이 퇴계와 율곡의 조선성리학으로 바뀌던 때”라며 “비로소 우리 자연과 풍속, 복식은 물론 내면을 보여주는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시초는 사서삼경에 능했던 사대부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 진경산수화는 한 세대 뒤 단원과 이인문 등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궁중화가들에 의해 더욱 발전한다. 하지만 정선의 제자였던 현재 심사정(1707~1769)과 강세황은 진경산수에 반발해 명대의 남종문인화를 수용한다. 그렇게 겸재와 현재의 화풍은 화원인 진재해와 김희겸, 최북과 변상벽 등에 의해 제각기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선 풍속화가로만 알려진 단원의 빼어난 산수화, 사군자 등도 엿볼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 (02)762-0442.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다빈치가 그린 ‘사라진 초상화’ 500년 만에 발견

    다빈치가 그린 ‘사라진 초상화’ 500년 만에 발견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예술가이자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500년 만에 발견돼 그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다빈치 연구자이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카를로 페드레티는 “스위스 비밀금고에 숨겨져있는 그림이 다빈치가 직접 그린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61cm x 46.5cm의 이 초상화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교양있는 여성이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사벨라 데스테(1474-1539)를 그린 것이다. 특히 다빈치는 1499년 데생용 연필로 데스테의 스케치를 남긴 바 있으며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그러나 스케치 외에 실제 초상화는 발견되지 않아 다빈치 작품 중 최고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페드레티 교수는 “처음 그림을 보고 한 눈에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면서 “탄소 측정결과 르네상스 시대 그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초상화의 입가를 보면 다빈치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면서 “최고의 명작인 ‘모나리자’에 앞서 그린 세기의 걸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그림은 400여점의 명화를 소유한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가족의 것으로 감정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졌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종로(하)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종로(하)

    >>세운상가와 물거품이 된 녹지축 조성계획 우리가 흔히 세운상가라고 부르는 상가는 하나의 건물이 아니다. 종로에서 퇴계로에 걸쳐 남북으로 1㎞에 이르는 8개 동의 거대한 건물군이다. 종로변 세운상가(현대상가)에서 시작해 청계천로를 건너면 대림상가로 이어지고 을지로 쪽 삼풍상가와 풍전호텔을 지나 만나는 마른내길을 건너면 나오는 신성상가와 진양상가가 퇴계로에 면하는 어마어마한 구조물이다. 아파트도 흔치 않던 시절인 1966년 6개 건설업체와 개인 지주 모임 등 8개 업체가 분할 시공해 1970년 초 완공했다. 언필칭 동양 최대였다. 종로, 청계천로, 을지로, 퇴계로 등 도심을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4개의 큰길을 남북 방향으로 거스르는 모양새 자체가 파격이었다. 한때 ‘도시 속의 도시’로 칭송받았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역린(逆鱗)은 ‘도시의 괴물’로 낙인찍혔다. 과거 없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법. 세운상가에도 당대사가 담겨 있다. 세워진 지 50년이 지난 시점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건물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세운상가는 처녀가 애를 낳은 것 이상으로 말 못할 태생의 비화를 간직하고 있다. 세운상가 터는 일제가 미군공습 때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개공지(疏開空地)로 비워 놓은 공터였다. 일제는 서울시내 19곳에 이르는 소개도로에 대한 대대적인 건물 철거작업을 시행했는데 그때의 유산이다. 종묘 앞~필동, 서울역~회현동, 필동~신당동, 서울역~충정로, 서울역~갈월동, 원남동~동대문~광희문 등이 주요 소개도로였다. 덕분에 해방 후 퇴계로, 의주로, 율곡로, 청파로 같은 큰길을 쉽게 낼 수 있었다.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1966년 6월 20일 “종묘 앞에서 대한극장 앞 사이의 무허가건물 일체를 철거 정리하고 도로용지 일부에 민간자본을 유치해서 산뜻한 건물을 짓겠다”라는 계획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해 허락을 얻었다. 공병장교(예비역 준장) 출신답게 전격적인 철거 작전을 실시했다. 당시 신문보도를 보면 인현동 지역의 무허가 상가주택 1100채가 자진 철거하거나 강제 철거됐다. 다른 지역의 철거 대상 무허가 건물도 1000채를 넘었다. 무려 2200채의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는 사상 최대의 작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불과 두 달 만인 1966년 8월 말 도로용지를 제외한 너비 50m, 길이 893m, 총면적 4만 4737㎡(약 1만 3533평)의 부지가 조성됐다. 기공식날 김 시장은 세운상가라는 휘호를 남겼다. ‘세운’(世運)이라는 작명은 ‘세계의 기운이 모인다’는 뜻이었다. 1970~1980년대 세운상가는 장사동·입정동·산림동의 기계공구상가, 부품상가와 함께 국내 전자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1987년 용산 전자상가가 세워지기 전까지 한국의 실리콘밸리였다. 최초의 개인용 PC를 개발한 삼보컴퓨터와 ‘아래아 한글’의 한글과 컴퓨터 등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음향기기 관련 기기를 사거나 수리하려면 세운상가로 가야 했다. 전자제품과 컴퓨터, 업소용 게임기, 불법 성인물과 해적판 등의 천국이었다. 도청장치와 감시카메라 업체는 지금도 호황을 누린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건물은 민자 유치를 통한 지역정비, 상가와 주택이 결합한 고급 주상복합이었다. 뿐만 아니라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보행 데크로 연결하고 차량과 보행자를 분리하는 첨단 건물이었다. 그러나 시공사와 조합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통에 시대를 앞서 가던 보행 데크 개념 등은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미완의 실패한 건물이 됐다. 2003년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창경궁~종묘~세운상가~퇴계로~남산~한강까지 서울의 녹지축을 복원키로 하면서 철거 대상으로 지목됐다. 실제 2009년 현대상가가 철거돼 녹지축이 일부 조성됐지만 ‘남산르네상스’를 부르짖던 오세훈 시장이 물러나면서 또 한 번 미완인 상태로 남았다. 1층을 도로로 사용하고 상부에 주상복합을 짓는 세운상가의 설계 형태는 이후 낙원상가에도 재연됐지만, 보편적인 도심개발 형태로 정착되지 못했다. 어쨌든 세운상가는 도심재개발사업의 초기 사업모델을 제시했고 이후 서울 도심부의 경관적 측면, 기능적 측면에서 다양한 논란을 일으킨 ‘문제적’ 건물로 남았다. 세운상가는 판잣집과 집창촌 철거 같은 시대적 소임을 다했지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나 역사의식 없이 이뤄진 즉흥적인 바벨탑 쌓기가 도시에 얼마나 큰 상처인지를 보여주는 증좌(證左)로 남았다. 김수근은 자신의 설계목록에서 세운상가를 빼곤 했다. >>세계 최대 집창촌 종삼 소탕 ‘나비작전’과 동대문운동장 종묘와 사창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외람스럽게도 한국전쟁 이후 20년 동안 종묘 앞에는 ‘종삼’(鍾三)이라는 이름의 세계 최대 규모의 집창촌이 기생하고 있었다. 1966년 그때로 되돌아가 보자. 종묘 앞에서 대한극장에 이르는 너비 50m, 길이 1㎞에 무려 4만 9586㎡(약 1만 5000평)의 공지에 2200여동의 무허가 판잣집과 집창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판잣집이라기보다 천막집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세운상가가 들어선 바로 그 자리다. 1950년 초 종묘 앞에 국회의사당을 짓는 계획이 문화재관리국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문화재관리국이 조선왕조의 정신적 고향인 종묘 앞에 국회의사당을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하자 전주이씨 양녕대군파인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수용해 남산 조선신궁 자리에 건립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1968년 종삼을 소탕하려는 ‘나비 작전’이 펼쳐졌을 때 종삼의 범위는 종로3가와 4가, 단성사 뒷골목, 종묘 앞 일대를 중심으로 낙원동, 봉익동, 훈정동, 와룡동, 묘동, 권농동, 원남동은 물론이고 길 건너 남쪽의 관수동, 장사동, 예지동까지 암세포처럼 퍼져 있었다. 당시 서울시가 현재의 낙원상가부터 종로5가까지 조사해 보니 윤락여성 1368명, 포주 11명, 바람잡이 17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낙원동 등 한옥지구(고급), 종묘 앞 등 무허가 건물지대(하급), 종묘 건너편 소개도로 터(최하급) 등 3등급으로 분류됐다. 이 지역을 현장 답사하던 김현옥 시장과 중구청장 일행에게 윤락여성이 접근해 유객 행위를 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흥인지문(동대문)은 종로의 끝이자 도성의 동쪽 관문이었다. 동대문종합시장(동대문쇼핑타운)은 18세기 영조의 청계천 준설 때 퍼낸 흙이 쌓여 생긴 인공산(假山)이 있던 자리였다. 1899년 전차가 다니면서 전차의 차고지로 쓰였다. 전차가 사라진 1970년 종합시장건물이 들어섰고, 시장 뒷골목에 책 도매상가들이 모여 ‘대학천’이라는 책골목 길을 형성했다. 서적도매상의 산실인 대학천은 동숭동 옛 서울대 문리대에서 청계천 쪽으로 흐르던 하천 이름이다. 1977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생기기 전 동대문종합시장 한쪽에는 동대문고속버스터미널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의 전면 개통과 함께 고속버스시대가 열린 터였다. 고속버스 기사와 안내양이 지금의 항공기 승무원처럼 각광받던 때였다. 서울 도심에는 버스회사에 따라 동대문을 비롯하여 서울역 앞, 관철동, 충무로 등 6개의 고속버스터미널이 어지럽게 난립하고 있었다. 동대문터미널은 이용 인원이 가장 많은 ‘메이저’ 터미널이었다. 한남대교와 장충단공원을 거쳐 직선코스로 도심에 진입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조건이었지만 강남 개발과 강북 인구 분산이라는 대세에 밀려 사라졌다. 주차장 터에는 6성급 메리어트호텔이 지어지고 있으며 완공을 앞두고 있다. 중앙청과 서울시청,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은 1950~1970년대 우리 사회의 바로미터였다. 중앙청이 정치의 무대였다면, 시청 앞은 정치가 시각화되는 장소였다. 또 서울운동장은 스포츠제전의 장이기에 앞서 정치의 장이었다. 경기대 건축대학원 안창모 교수는 “시청 앞 행사를 보면 당시 정치적 화두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운동장은 스포츠시설이었지만 스포츠보다는 정치의 무대로 사용된 기록이 많았다. 야구장이 있던 곳은 1882년 임오군란의 현장이다. 본래 훈련도감의 군대 주둔지였으나 이를 신식군대인 별기군의 훈련장으로 사용했는데 사건 당시 구식 군대의 습격을 받은 일본인 교관이 숨지면서 임오군란을 촉발한 곳이다. 숨 가빴던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격동의 시절 서울운동장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84회 생일축하 행사(1959년 3월 26일)가 열린 지 두 해 뒤 4·19혁명 1주년 행사(1961년)가 열렸고 이듬해에는 5·16 1주년 행사(1962년)가 열렸다. 운동장이 시대의 거울이었다. 훈련도감 훈련장~경성운동장~서울운동장을 거쳐 동대문운동장이었던 자리에 2009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됐다. 그 중심에 이라크가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내년 3월 완공을 앞두고 자태를 드러냈다. 마치 외계 비행물체를 연상케 하는 전위적인 금속 질감의 건물 외형이 생경하다. 600년 동안 서울을 지켜온 보물 1호 흥인지문과 외계 물체의 기 싸움이 궁금하다. joo@seoul.co.kr
  •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서 사랑에 취하고 낭만에 젖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서 사랑에 취하고 낭만에 젖다

    영원한 사랑의 주인공, 줄리엣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베로나에서 한여름 밤의 오페라 무대를 만난다. 알프스 아래 첫 마을, 치비달레의 중세 축제와 고색창연한 르네상스 도시, 페라라의 버스커스 축제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나 음악과 낭만이 넘치는 곳, 이탈리아 북동부의 보석 같은 소도시로 떠난다. 28일 오전 9시 40분 방송되는 KBS 1TV ‘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여정이다. 불멸의 사랑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 죽음마저 막지 못한 이들의 사랑은 소설 속 배경 도시 베로나를 사랑의 성지로 만들었다. 특히 베로나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줄리엣의 집은 사랑의 순례자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명소다. 벽은 그들이 남긴 사랑의 낙서로 가득하고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줄리엣 동상을 어루만지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린다. 하지만 베로나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올해로 페스티벌 탄생 ‘첸테나리오’(100주년)를 맞이한 베로나 오페라 축제다. 1913년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아이다’를 공연하면서 시작된 이 축제는 올해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이했다. 2000년 전 목숨을 건 검투사의 대결이 펼쳐졌던 베로나 아레나. 그 역사적인 무대에서 별빛 아래 산들바람 맞으며 2만명의 관객 앞에서 열창하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피오렌차 체돌린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본다. 이탈리아 국민 작곡가로 여겨지는 베르디의 생가도 둘러본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절벽, 신들의 거처로 불리는 돌로미티 산맥은 가파른 수직 절벽과 폭이 좁고 깊은 계곡이 길게 형성되어 있어 이탈리아 알프스의 진수를 선사한다. 1993년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산악 영화 ‘클리프행어’의 촬영지로 유명한 몬테크리스탈로와 돌로미티의 상징이자 천혜의 트레킹코스, 트레치메디라베레도의 장엄한 풍경 속으로 빠져보자. 이탈리아 북부 최고의 패러글라이딩 명소, 해발 2218m의 몬테발도에서는 가르다 호수 위를 나는 환상적인 비행에 담당 PD가 도전했다. 발 아래 펼쳐지는 고봉준령과 호반 도시 말체시네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나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선두 아스날,’공짜’ 영입 플라미니 외질급 활약 반색

    선두 아스날,’공짜’ 영입 플라미니 외질급 활약 반색

    2013-14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가 5라운드까지 진행된 가운데 ‘유럽 도움왕’ 메수트 외질과 ‘각성 모드’의 아론 램지의 맹활약 속에 아스날이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리그 2경기 출전만에 리그 도움왕(3도움)으로 뛰어오른 외질과 연속 골을 기록중인 램지의 일거수 일투족에 영국언론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아스날의 선두 질주에는 또 다른 숨은 공신이 있다. ‘공짜’로 영입된 마티유 플라미니(30)다. 영국 매체 텔레그래프는 22일 열린 아스날 – 스토크 시티의 5라운드 경기에서 아스날이 3-1 승리를 거둔 이후, “플라미니는 ‘4200만 파운드’의 사나이 외질만큼 중요하다”라는 기사를 통해 플라미니의 영향력을 극찬하고 나섰다. 스카이스포츠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는 앨런 스미스는 해당매체를 통해 “마치 ‘경운기’를 보는 것 같다”라며 “절대로 달리는 것과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고 플라미니를 평가했다. 플라미니에 대해 찬사를 쏟아내고 있는 것은 텔레그래프 뿐이 아니다. 심지어 5경기만에 “플라미니, 이번 시즌 최고의 영입인가?”라며 다소 이른 전망을 내놓는 매체도 있다. 영국 런던 소재의 인터넷매체 ‘히얼이즈더시티(Here is the city)’는 “아스날이 플라미니를 영입했을 때 모든 이가 비웃었지만, 플라미니가 이번 시즌 최고의 영입이 안 될 것도 없다”는 평가를 내놓았으며 축구전문매체 ‘트라이얼풋볼(tribal football)은 “플라미니가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며 그의 부활을 내다봤다. 실제로 2012-13 시즌을 앞두고 알렉스 송이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이후 아스날은 늘 수비형 미드필더의 부재에 고생해왔으며, 이번 시즌에도 브라질 국가대표 수비형 미드필더 루이스 구스타보(볼프스부르크) 등의 영입을 노렸으나 실패하며 팬들의 공분을 샀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 끝에 영입한 선수가 플라미니였다. 아스날에서 최정상급 수비형 미드플더로 성장한 직후, 이적료 한 푼 남기지 않고 자유계약선수로 AC밀란으로 이적했던 플라미니는 사실 아스날 팬들에겐 그리 반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AC밀란에서도 주전자리를 잃고 로테이션 선수로 출전하다 결국 자유계약 신분이 됐던 선수였기 때문에, 플라미니를 ‘퇴물’로 취급하는 팬이나 축구전문가도 많았다. 그런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출장과 동시에 플라미니는 아스날에 수비적인 안정을 더해주며 아스날의 연승가도에 큰 버팀목이 되고 있다. 무리하게 공격진에 가담하기 보다는 후방에 남아 상대팀이 공격해올 때 항상 큰 소리로 동료들의 위치를 지정해주며 아스날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수비실수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토트넘과의 북런던더비에서 교체로 투입되자마자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수비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스토크시티 전에서는 돋보이는 위치선정 능력과 활동량으로 적재적소에서 상대편의 패스를 차단했다. 그런 플라미니의 활약은 한 때 그를 ‘배신자’로 생각했던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많은 팬들이 SNS상에서 “‘공짜’ 플라미니가 ‘25m’ 펠라이니보다 낫다”라는 등의 칭찬을 연발하고 있으며 스토크시티 경기 후 스카이스포츠 등 다수매체에서 지정한 MOTM(맨오브더매치)에도 선발됐다. 이날 아스날이 기록한 3골이 모두 외질의 발에서 시작되었으며, 그의 홈경기 데뷔전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플라미니가 MOTM에 선정된 것은 그가 5경기 만에 벌써 팬들과 전문가들의 눈을 사로잡았다는 증거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앨런 스미스는 “부주장 아르테타가 부상에서 복귀하게 되면 플라미니가 계속 선발로 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플라미니를 영입한 것은 벵거 감독의 탁월한 선택이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스날은 전통적으로 선수부상에 가장 많이 시달리는 구단 중의 하나다. 플라미니가 현재의 경기력을 시즌 내내 유지할 수 있다면, 그가 복귀 후 첫 인터뷰에서 했던 “나는 아스날에서 못 다 이룬 일이 있다”라는 말처럼 아스날이 8년 무관의 한을 끊어내는 것도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성모 스포츠통신원 yo235@naver.com
  • 부산 동아대 박물관이 뜨는 이유는?

    동아대학교 박물관 관람객 수가 해마다 크게 증가해 시민의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6일 동아대에 따르면 동아대 석당박물관이 2009년 5월 부산 서구 동대신동 구덕캠퍼스에서 부민동 부민캠퍼스로 이전한 뒤 2만 1799명의 관람객이 찾아 대학 박물관으로서 위상을 달리했다. 2010년과 2011년에는 각각 2만 6256명과 3만 4813명이 다녀갔다. 지난해 관람객은 4만 3701명으로 2009년보다 2배가량 늘어났다. 국보와 보물 등 다량의 유물 소장, 편리한 접근성과 시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등 때문이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람객도 줄을 잇는다. 지난달 1일에는 중국 관광객 171명, 같은 달 7일에는 일본 관광객 36명과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17명, 지난 6일에는 리쓰메이칸 대학에서 28명이 방문했다. 오는 24일에는 삿포로학원 대학에서 12명이 찾을 계획이다. 석당박물관은 국보인 동궐도와 개국원종공신녹권(開國原從功臣券)을 비롯해 보물 11점, 부산시 유형문화재 20점 등 3만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조선왕조 마지막 황후인 순종비 순정효황후(1894~1966)의 ‘주칠 나전가구’(朱漆 鈿家具) 일괄이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 제277호로 지정됐다. 또 ‘생생하게 들려주는 생생(生生)근대 이야기’와 ‘수요문화영상’ 등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 박물관을 편안하고 친숙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정은우 관장은 “소장한 유물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다”며 “다양하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앞으로도 시민들이 자주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르네상스 양식이 가미된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짜리 이 박물관은 등록문화재 41호로 1925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경남도청으로 사용됐다. 한국전쟁 때에는 임시수도정부 청사로 부산지방법원, 부산지방검찰청사 등으로 이용됐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당신의 책]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알베르토 망겔·자니 과달루피 지음, 최애리 옮김, 궁리 펴냄) 엄청난 독서가가 아니라면 기획 자체를 엄두조차 내지 못할 ‘무시무시한’ 저술이라는 사실을 일러둬야 할 책이다. 저자는 서점 점원으로 일하던 중 눈이 보이지 않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위해 책을 읽어주다 내처 독서가이자 작가로 변신한 알베르토 망겔. 그가 이탈리아 최고의 여행작가 자니 과달루피와 함께 만든 책은 문학 등 예술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곳’들을 담고 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세계에 대한 온갖 정보를 담은, 지도에 없는 지리백과사전인 셈이다. 760여개 작품에 나오는 1300여곳의 상상 속 장소를 사전 형태로 실었다. 1256쪽. 6만 5000원. 르네상스(폴 존슨 지음,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지식인의 두 얼굴’ ‘기독교의 역사’ 등으로 잘 알려진 영국의 저명 역사 저술가인 폴 존슨이 르네상스 시대에 대한 정보와 통찰을 담았다. 방대한 역사적 자료와 인물, 작품 해설 등으로 채워져 있어 예술 미학서로서도 손색없다. 중세 후기 누적된 부의 집중 현상과 인쇄업의 발달로 대표되는 기술적 혁명이 르네상스 시대를 불렀다고 전제하고, 그 시대의 문학과 학문, 조각, 건축, 회화 등을 영역별로 나눠 당대 작가들과 작품들을 면밀히 분석한다. 단테, 보카치오, 페트라르카, 초서, 에라스무스 등으로 이어지는 르네상스 문학 발전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건축 부문도 집중 조명했다. 성 베드로 대성당 등 주요 건축물들의 탄생 과정이 두루 조망된다. 264쪽. 1만 2000원. 스티븐 호킹(키티 퍼거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영국의 천재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71)의 삶과 연구 성과를 입체적으로 조망했다. 과학저술가인 저자가 1991년 출간한 책의 확대 개정판. 호킹의 저서 ‘호두껍질 속의 우주’의 원고 편집에 관여했을 정도로 호킹과 인연이 깊은 지은이는 천재 학자의 유연한 학문적 태도에 주목했다. 예컨대 블랙홀은 크기가 절대로 작아질 수 없다고 주장하고 나서 다시 작아질 수도 있으며 심지어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고 나중에 주장을 바꾸기도 했다. 호킹의 일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대물리학의 발전사도 짚게 된다. ‘정상 우주론’에서 ‘빅뱅 우주론’으로 넘어가는 과학 혁명, 빅뱅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제기된 인플레이션 우주 모형의 발전 과정, 최근 호킹이 선호하는 ‘영원한 인플레이션’까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해볼 수 있다. 504쪽. 2만 2000원. 종교 너머, 아하!(오강남·성소은 엮음, 판미동 펴냄) 지난해 종교 간, 종교인·비종교인 간 소통과 이해를 목적으로 출범한 ‘종교 너머 아하’가 창립 1주년을 맞아 기획한 책. 다원화 시대, 소통 막힌 종교를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자처해온 이 단체의 회원 10명이 쓴 글을 엮었다. 종교 전반에 관해 총체적으로 점검하는 네 편의 글과, 새 시대의 필요에 의해 변화가능한 개별 종교의 대안에 천착한 글 여섯 편 모음.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종교의 궁극적 역할을 고민하면서 인간과 삶에 맞닿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를 공통적으로 제안한다. 자기중심적 표층종교를 지양하자는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작은 교회’의 가능성에 주목한 김진호 목사(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헌신과 봉사에서 신앙의 의미를 찾는 박충구 감리교신학대 교수의 글이 들어 있다. 252쪽. 1만 3000원.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1) 남산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11) 남산

    남산 하면 벼슬길 진출을 위해 ‘열공’하던 딸깍발이 선비와 그들이 살던 낭만적인 남촌 풍경이 떠오른다. 조선 신궁과 통감부, 헌병사령부, 일본인 거주지 같은 좋지 않은 상념도 꽈리를 튼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라는 애국가 구절이나 한때 ‘남산’으로 불리던 옛 중앙정보부의 추억도 있다. 케이블카와 도서관, 어린이회관, 서울타워도 빠지지 않는다. 한강과 함께 서울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이기에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가 겹쳐 떠오르는 것이리라. 남산은 사대문 안에서 고개만 들면 보이는 산이기에 익숙하고 친근하다. 풍수지리학상 342m 높이의 백악(북악)이 조선 한양의 주산(主山)이었다면 265m의 남산은 안산(案山)이었다. 쉽게 풀면 나라(임금) 앞에 놓인 밥상이나 책상 같은 개념의 산이다. 팔도에서 올리는 봉수대의 마지막 종착점이어서 남산 5개 봉수대에서 피어오르는 한 줄기 연기가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평화의 산이기도 했다. 남산 위에 오르면 도성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기에 오르지 못하도록 금했다. 덕분에 산림이 우거지고 울창해 서울의 허파가 되었다. 서울의 팽창에 따라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자연지리적인 요건을 갖췄다. 우리가 남산에 대해 꽤 안다고 생각하지만 잘못 아는 것도 있다. 일례로 남산 소나무이다. 산림청에 등록된 4440개의 우리나라 산 이름 중 남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31개에 이른다고 한다. 옛사람들은 마을 앞산을 남산 또는 앞산이라고 불렀다. 남(南)자를 ‘남녘 남’ 자가 아닌 ‘앞 남’으로 썼다. 남산은 앞산을 한자로 쓴 것이다. 목멱(木覓)의 유래도 흥미롭다. 남산의 다른 이름은 ‘마뫼’였다. 마뫼의 ‘마’는 ‘앞’, 뫼는 산의 우리말이다. 독립지사이자 역사학자였던 안재홍에 따르면 목멱은 이두식 표기다. 목(木)은 ‘마’를, 멱(覓)은 ‘뫼’를 적었다는 얘기다. 남산=앞산=마뫼=목멱이 같은 뜻 다른 이름이다. 방방곡곡 동네 앞산의 소나무가 모두 ‘남산 위의 저 소나무’인 셈이다. 샌님이 살던 남촌에 언제부터 왜색의 기운이 드리웠을까. 남산과 일본의 악연은 뿌리 깊다. 조선 초부터 임진왜란(1592~1598) 이전까지 일본 사신이 머물던 동평관이 남산 기슭 인현동 2가에 있었다. 남산은 7년 전쟁기간 동안 왜군 진지였다. 마스다 나가모리 등 왜장이 살았다고 해서 왜장터(왜성대)라고 불렸다. 그들의 진지는 지금의 정동에까지 이르렀다. 일제는 그로부터 292년이 지난 1884년 갑신정변을 틈타 남산 기슭 녹천정 자리를 영사관자리로 제공받아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곳에 일본공사관, 통감부, 총독부가 속속 들어섰다. 지금의 예장동, 주자동, 충무로1가인 진고개(본정)일대는 일본인 거주지였다. 진고개를 거점으로 남대문, 회현동, 명동(명치정), 을지로(황금정)쪽으로 주택가와 상가가 확장됐다. 화려한 남촌 일본인 상가는 북촌 조선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오늘날 일본인 관광객이 유독 명동을 즐겨 찾는 까닭도 그들이 누렸던 옛 영화를 그리워하는 회귀본능이 아닐까. 해방 직후 본정(本町)을 일본인이 두려워하는 이순신 장군의 호를 딴 충무로(忠武路)로 바꾼 것은 이를 차단하려는 속뜻이 작용한 것 같다. 남산과 남촌은 조선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일본인촌으로 변했다. 종로 우미관을 주름잡던 김두한 패가 청계천을 경계로 진고개 일본 건달과 세력을 다투던 시절이다. 19가구 89명(1885년)에 불과하던 일본인은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자 1986가구 7677명(1905년)으로 늘었다. 강제병 탄이후 8794가구에 3만 4468명(1910년)으로 무서운 팽창세를 보였다. 일제의 남산 잠식은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졌다. 1898년 예장동에 대성궁(경성신사)이라는 작은 신사를 세우더니, 1904년에는 2만여 평을 임대해 필동에 헌병대사령부를 구축했다. 1908년에는 30만 평을 영구 무상임대, 한양공원을 조성하고 조선 신궁을 세웠다. 그들이 잠식한 땅이 현재 남산공원(87만 6000평)의 3분의 1을 넘는다. 일제가 열도를 창조했다는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와 명치 천황을 모신 조선 신궁은 한반도 전역에 있는 일본 신사의 총본부였다. 신궁은 사대문 안 어디에서나 보이는 남산 꼭대기에 있었으며 시내에서 전차가 신궁 밑을 지나갈 때는 승객 전원이 일어서서 묵념을 올려야 했다. 1918년 남산중턱 13만평의 수목을 베어내고 조성에 들어가 1925년 완공됐다. 지금의 남산식물원 자리이다. 일본의 성지 조성을 위해 남산은 깔아뭉개졌다. 남산 중턱 힐튼호텔에서부터 384개의 계단을 만들어 올라가도록 꾸몄다. 남대문에서 조선 신궁에 이르는 참배로를 조성하려고 남대문에서 남산을 잇는 성곽을 부수고 자동찻길을 냈다. 지금의 소월로이다. 남산생태계를 파괴한 주범이다. 조선신궁과 황국신민서사탑은 광복 직후 서울시민들이 가장 먼저 달려가 파괴할 정도로 원성이 높았다. 남산의 동쪽 기슭 장충단은 명성황후시해사건(1895) 당시 일본자객에 맞서 순직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곳이다. 장충단(奬忠壇)이란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다. 일제는 창경궁, 덕수궁과 함께 이곳을 공원으로 희화화하고서 장충단 동편 지금의 신라호텔 영빈관 터에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를 세웠다. 일본 1000엔권 지폐에 얼굴이 등장하기도 한 이토의 업적을 영구히 기념한다는 구실로 내선일체를 꾀했다. 당시 여행안내책자에서 경성 제일명소로 칭송했다. 총독부를 지을 때 헐어낸 경복궁 선원전을 부속건물로,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을 정문으로, 광화문 양옆 궁성벽 석재를 가져다가 담으로 쌓았다. 박문사 건물은 해방 후에도 동국대 기숙사로 쓰였고 흥화문은 신라호텔 정문으로 쓰이다가 1988년에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중구 필동 남산한옥마을은 악명 높은 헌병통치의 본산인 조선헌병대사령부 터였다. 조선 초 박팽년의 사저였던 한국의집은 조선총독부의 2인자 정무총감의 관저로 쓰였다. 이들은 남산 중턱 왜성대에 총독관저를 세우고 그 아래 조선헌병대사령부를 뒀다. 서울유스호스텔은 일본공사관과 통감관저,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통감부와 총독관저가 각각 자리했었다. 남산은 경복궁 안에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어 옮겨가기 전까지 일본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남산꼭대기 N타워 옆 팔각정은 도심을 조망할 수 있는 평범한 정자에 불과하지만, 내력은 간단치 않다. 이 자리는 조선 태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부터 천하의 명당이었다. 태조가 남산의 산신을 모시려고 지은 국사당(國師堂)이 있던 자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무속사당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민속신앙 터인 국사당이 일본 토착신앙의 대표인 신궁에 쫓겨 인왕산으로 강제로 옮겨진 것이다. 일제는 ‘일본 최고 신과 살아있는 신인 천황을 모시는 신궁에 식민지 나라의 굿 집이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1925년 오백년 내내 있던 자리에서 내쳐버렸다. 한국의 무속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신도(神道) 역시 원시종교에 가깝지만, 정부나 국민이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다. 일본 정치인들의 정치생명을 건 야스쿠니 신사참배 행렬에서 엿볼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국사당을 원상회복시키자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잘못 얘기를 꺼냈다간 종교전쟁이 일어날 판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고,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보고 싶어하는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명동을 거쳐 남산타워에 오른 일본인 관광객들이 국사당 축출 사연을 듣는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광복 후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권도 남산을 그냥 두지 않았다.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승만은 국사당 터에 국사당을 되돌리기는커녕 자신의 호를 딴 우남정을 만들었고, 당시 세계최대 규모의 동상을 세웠다. 조선 신궁 터를 국회의사당 신축부지로 결정해 1959년 기공식까지 가졌지만 2년 뒤 5·16 쿠데타로 백지화됐다. 3500가구 2만 5000명이 정착한 서울 최초의 판자촌인 해방촌이 남산의 북쪽 기슭 12만 6000평을 차지하도록 사실상 허가해 남산의 피폐를 가속화했다. 이런저런 압력과 로비를 통해 숭의학원, 리라학교, 동국대학교가 남산에 틈입했다.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가장 집중적으로 훼손된 곳은 장충단공원이었다. 장충체육관, 신라호텔, 자유센터, 타워호텔(반얀트리), 국립극장, 국립국악원, 옛 재향군인회(동국대), 옛 중앙공무원교육원(동국대) 등이 줄줄이 들어선 것이다. 장충단공원은 21만평이 넘던 서울시내 최대 근린공원에서 9만평의 평범한 공원으로 쪼그라들었고 1984년 남산공원으로 흡수합병당하는 신세가 됐다. 1994년 외인아파트 2동이 폭파 철거되는 등 남산제모습찾기운동이 시작됐고 2009년 남산르네상스를 내세운 오세훈 전 시장이 찢어진 남산녹지축 연결을 시도했지만 마무리짓지 못했다. 남산에는 지금도 동상 10기, 기념비 14개를 비롯한 각종 시설물 28개, 체육시설 269개가 촘촘하다. 그러나 남산은 이들에게 마른 품을 기꺼이 내주고 있다. 아! 남산이여…. 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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