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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의 「문화제국주의」/이용원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외규장각도서를 모두 돌려주겠다』는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의 약속과는 달리 프랑스 국내의 분위기는「결코 돌려줄 수 없다」는 쪽인듯 하다. 최근 외신을 타고 들려오는 프랑스내의 반응을 보면 국립파리도서관은 항의의 표시로 지난 19일 열람석 개방을 거부했으며 문화부장관에게 항의문을 보내는등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또 언론이「외국 문화재 반환은 잘못」이라며 책임소재를 따지자 고문서반환 주무부서인 문화부가『엘리제궁(대통령집무실)의 직접적인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발뺌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프랑스인이 자랑하는「문화의식」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그들이「문화국민」의 자존심을 내세워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니 말이다. 한때 강력한 제국주의국가의 하나였던 프랑스는 세계 각국에서 약탈한 수많은 문화재를 현재 루브르박물관·기메박물관·국립파리도서관등 유수한 공공시설에 소장하고 있다.그러나 많은 문화재들이 기초적인 가치평가조차 받지 않은채 창고속에 쌓여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외규장각 도서 2백97책도 그들이 병인양요 때 약탈해 간 문화재이며 지난 70년대 중반 한 한국인 여성에게 발견되기 까지는 국립파리박물관 지하창고에서 먼지만 켜켜 안고 있었다. 그들이 단지 소유하고만 있었던 외규장각 도서에 이름을 찾아주고 가치를 되돌려준건 분명 우리가 한 일이었다.또 앞으로 그 전적들을 보다 귀중하게 간직하고 세밀히 연구할 사람들도 바로 우리이다. 미테랑대통령과 함께 방한했던 자리주 기메박물관장은『문화재란 인류보편의 가치이니만큼 인류공동의 것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게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프랑스가「문화대국」이니 외국의 문화재라도 프랑스에서 보관·전시하는 것이 서로 좋은 일 아니냐는 투다. 외규장각 도서반환과 관련해서 프랑스인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결코「문화적」인게 아니다. 『남의 귀중한 것을 빼앗아왔더라도 물건이 일단 내 손에 있는 이상 그것은 내 것이다.그것이 원래의 소유자에게 얼마나 중요한가는 알바 없다』는 그들의 태도는,우리는「문화애호 국민」이 아니라「문화 제국주의자」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 에르미타주박물관 재정난/러 정부 지원 삭감… 보수작업·경비 어려워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박물관의 하나로 꼽히는 러시아 상트 페테르스부르크(구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주박물관이 극심한 재정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경제개혁의 여파로 내핍을 강요받기는 다른 문화·예술계도 매일반이지만 에르미타주박물관의 재정난은 내부에 소장된 엄청난 문화재의 안전을 직접 위협할 정도여서 심각하기 이를데없다. 한때 정부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편안한 세월을 구가하던 박물관측은 이제는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스스로 짜맞춰 자생해나가야만 한다.정부의 지원금이 끊긴 것은 아니지만 전에 비해 규모가 대폭 삭감된데다 루블화의 가치하락으로 별반 도움이 못된다.올해의 경우 1월에 미화 1달러에 5백루블이던 환율이 7월 1천루블로 급락,정부가 배정해준 연간예산액의 절반이 이미 사라져버렸다. 박물관 고위관리자들이 직원들의 봉급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비롯해 재정난의 징후는 여러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박물관측은 얼마전 임시전시실을 마련하지못해 사전계획된 행사를 치르지 못하다가 유네스코의 무상원조로 가까스로 행사를 치렀다.지은 지 오래된 건물의 보수가 시급하지만 손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전부터 진행돼온 18세기때의 동궁건물 보수작업도 추가자금이 마련되지 않으면 중단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최근에는 궁핍을 조금이나마 모면해볼 요량으로 특별우편엽서의 제작·판매를 시도했지만 단돈 수천달러의 제작비가 없어 이마저도 포기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재정난이 문화재보존의 위기로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박물관측은 최근 5천루블씩 받고 아마추어사진사들을 입장시키기로 결정했다.지금까지는 소장품은 물론이려니와 그 사진의 복사도 금지해왔다. 근 4백개나 되는 전시실내 소장품들의 감시는 전시실 구석에 앉은 중년부인들이 맡고 있다.무장경비원을 고용할 돈이 없어 세계적인 진품들의 안전을 중년부인들의 시력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이러다보니 최근에는 약 10만점의 작품이 사라졌다는 보도가 나와 박물관측이 서둘러 부인하는 심상치 않은 일도 있었다.10만점이면 웬만한 박물관 하나를 채울 수 있는 규모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박물관측은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기껏해야 미국의 코카콜라,프랑스의 샴페인제조회사 등 외국의 후원자들에게 손을 내밀거나 입장료를 인상하는 조치만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박물관측은 최근 외국인의 경우 입장료를 무려 7천루블로 인상하고 내국인은 4백루블로 현상유지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 조치가 하루 3만명에 이르는 방문객의 숫자를 감소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1천개의 방,2백개의 계단,수㎞의 회랑길이등 단순한 박물관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도시같은 에르미타주박물관.많은 서구 거장들의 걸작품을 포함,약 3백만여점의 세계적 보물을 소장한 인류문화의 보고가 이처럼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지만 러시아 국내는 물론 외국으로부터도 박물관 관계자들의 근심을 덜어줄 어떤 움직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불,이 16C 벽화 3년 걸려 복원

    ◎베로네즈작 「가나의 혼인잔치」… 18c에 약탈/포도주 성찬 예수기적 표현 성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기적과 세속적인 귀족계급을 동시에 묘사한 16세기 중엽의 벽화 「가나의 혼인잔치」가 3년만에 거의 완벽하게 「부활」돼 프랑스의 예술계가 흥분하고 있다.이탈리아 천재화가 베로네즈가 1562∼63년에 그린 이 작품은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가 관리부실로 훼손돼 그동안 완벽한 복원을 위해 1백여회에 걸쳐 전문가의 여론을 수렴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었다. 1797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베니스에서 전리품으로 빼앗아오기 전 생 조르쥐 마조에르수도원에 있던 이 벽화의 진본(10m×7m)에는 1백3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갈릴리호수의 서쪽에 위치한 「가나」는 예수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한 바로 그곳이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등장인물들이 시대상황을 초월,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색채가 짙게 밴 「최후의 만찬」 등과는 확연히구별된다.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회장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예수의 뒤편에서 하인들이 양고기를 나르고 있고 왼쪽의 회식자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양측 출입문 기둥들의 화려한 장식,그리고 금빛나는 식기류,귀족들의 비단옷 등은 당시 이탈리아 귀족들의 호사스러운 생활수준을 엿보기에 족하다.큼지막한 술항아리와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 어릿광대들의 모습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특히 흑인하인들은 16세기 무렵 베니스에서 노예제도가 성행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이 그림은 또 난간 뒤쪽에서도 예수의 기적으로 마련된 고기와 포도주가 곁들여진 풍성한 만찬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르네상스 당시 항구도시 베니스는 이미 부가 넘쳐 흐르는 「사치의 쇼윈도」였음을 이 그림은 여실히 입증해주고 있다.터번을 머리에 두른 회교국 군주 술탄의 사신들도 눈에 띄고 또한 당시만 해도 진귀하던 마로멜로(오렌지)잼과 접시에 담긴 과자류 등의 묘사도 매우 사실적이다. 사실 베니스출신 상인들은 10세기경부터 지중해의 크레타섬을 지배해온 아라비아인들과 교류,사탕판매권을 독점하는 등 그 활동영역을 넓혀왔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이번 복원과정에서의 논란과 마찬가지로 이미 제작당시에도 종교회의에서 성직자들이 화가 베로네즈의 처벌을 요구하는 등 물의를 빚었었다. 이 벽화와 베로네즈에 대한 평가 또한 엇갈리고 있다.『수준이하의 형편없는 졸작』이란 악평이 있는가 하면 최근 프랑스 국립박물관협회가 발간한 서책은 『속물적인 것과 기독교의 복음을 동시에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 16세기 베네치아 회화 한자리에(미술)

    ◎이 도시국가… 티티엔 등 수많은 거장 배출/“현대미술의 원조” 관객 몰려 파리 도심의 전시장 그랑 팔레에는 요즘 「티티엔의 세기」라는 이름의 16세기 베네치아 미술 특별전시회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탈리아 미술의 현란한 개화는 피렌체의 「콰트로첸토」 (4백이라는 뜻이며 1400년대의 미술을 말함)를 거쳐 베네치아의 「칭퀘첸토」(1500년대 미술)로 이어진다.당시 베네치아 미술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티티엔이기 때문에 그를 포함한 거장들의 명작 3백점을 파리에 모은 이번 전시회를 「티티엔의 세기」라고 이름붙였다.4백년전의 그들을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작품들이 파리의 루브르미술관과 국내외 각지에서 옮겨져왔다. 지오르지오네,지오반니 벨리니,로렌초 로토,세바스티아노 델 피옴보,티티엔,일 틴토레토,베로네제….베네치아는 놀랍게도 한 세기 동안에 이 큰 화가들의 무리를 배출함으로써 서양미술사의 한 시대를 대표하게 되었다.그 시대는 특히 「티티엔의 세기」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없을 정도로 이 화가의 예술적인 업적과 다른 화가들에게 준 영향이 컸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베네치아가 16세기에 예술의 꽃을 피운 것은 유럽의 상업 중심지로서 돈이 모여들고 풍부한 재력이 예술가를 포용했기 때문이었다.당시 화가는 특별한 대접을 받았으며 그림재주가 있으면 출세가 보장되었다. 16세기 베네치아 회화가 밝은 조명을 받는 까닭은 바로 거기서 벌써 현대미술의 싹이 트고 있었다는 데 있다.소재의 취택이나 표현기법에서도 전시대와 확연한 줄을 긋는다. 티티엔(1490?∼1576)이 만년에 그린 난폭스런 「마르사스의 징벌」은 매우 충격적인 작품으로 현대의 표현주의 회화와 비슷하고 평범한 아낙을 소재로 한 지오르지오네의 「노파」 역시 현대회화와 다를 바 없다.바사노의 「십자가에서 내려지심」이라는 작품은 검정색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명암의 극렬한 대비가 인상적이다. 16세기 베네치아 회화는 엄밀히 말하면 지오르지오네(1477∼1510)에서부터 출발한다.티티엔은 스승인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지오르지오네는 페스트로30대에 죽었지만 티티엔은 장수했기 때문에 더 많은 작품과 더 큰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티티엔 또한 페스트로 죽었으니 옛날 이 병의 맹위가 어떠했는지 알만하다. 이번 전시회에는 티티엔의 그림 54점(모두 루브르미술관 소장품)이 내걸렸는데 역시 가장 볼만한 것들이라는 평이다.지오르지오네의 작품은 「노파」 「로라」등 18점이 전시돼 있으나 그의 최고 걸작이라는 「폭풍」등 3개의 그림이 빠졌음을 많은 이들이 아쉬워한다.괴기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로라」는 심리적 초상화의 효시로 꼽히고 있다. 오는 6월1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는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만을 보아온 사람들에겐 커다란 놀라움이 될 것이다.
  • 러시아 에르미타주미술관/새 모습 단장 안간힘

    ◎세계3대미술관… 200년역사 자랑/비새고 보안장치 허술… 서방자본유치 계획 2백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미술관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파리의 루브르,런던의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3대 미술관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에르미타주는 낡은 건물과 보안·전시시설등을 현대적으로 보수할 계획아래 미국등 서방의 자본을 끌어들이는 등의 자구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마다 정부에서 보조해주는 지원금의 액수가 전반적인 경제침체로 절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올해 87만달러의 운영예산을 책정한데 이어 보수비로 37만달러를 더 배정했으나 실제로 보수에 필요한 3억달러에는 턱도없는 수준이라고 미술관관계자들은 말하고 있다. 미술관측은 미국의 한 기업을 참여시켜 전시시설은 물론 상점 고급카페 출판시설등을 갖춘 현대식 미술관으로 고칠계획이다. 에르미타주는 그동안 정부지원금과 입장수입,해외순회전시회등으로 재정을 충당해 왔으나 지난91년 소련의 붕괴로문화부가 해체된 뒤 심각한 운영난을 겪고 있다. 미술관측은 외국자본의 도입과 함께 소장미술품의 일부를 팔아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으나 정부에서는 법률로 예술품의 해외판매를 금지,재정난 타개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는 1764년 카테리나여제가 설립,황후의 소장미술품을 보관,전시하는 궁정박물관으로 출발했다.그뒤 1852년 니콜라스1세때 다시 건축,일반에 공개됐으며 1917년 10월혁명이후 황제일가의 소장품들은 정부의 소유가 됐다. 4백개의 전시실에 3백여만점의 방대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해 방문객만도 3백50만명을 넘는다. 요즘은 원시문화 고전시대문화 동양문화 러시아문화 유럽미술 화폐등 6개 부문으로 분류되어 있고 특히 유럽의 미술품들이 충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비롯,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색채의 마술사 티티안,바로크양식의 대가 루벤스,이밖에 프랑스 자연주의 작가 코로등 화집에서나 찾아볼수 있는 빛나는 작품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다. 그러나 천장과 벽에 금이 가 비가 새는데다 보안장치도 오래된 것이어서 미술품 전문도둑들이 겨냥하는 목표물이 되어왔다.지난해에도 독일의 18세기 도기가 도난당했다. 러시아의 경제침체속에도 에르미타주가 그 화려한 명성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미술애호가들은 바라고 있다.
  • 베를린 새단장/28개 박물관 대대적 정비

    ◎동·서분할 문화재 “교통정리”/파손유적 복원… 소장품 분류,재배치 계획 통일독일의 수도가 될 베를린이 요즘 대대적인 문화재 재정비 사업으로 분주하다.도시의 분단과 함께 동서로 분할됐던 각종 문화유적과 예술품들을 복원하고 재배치하기 위한 방대한 사업이 통일도시 베를린의 면모를 일신하려는 국가 및 시당국의 계획아래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베를린시내에는 폐허로 방치되다시피한 것들을 포함해 모두 28개의 공공박물관이 있다.이들 박물관은 각종 예술품을 뒤죽박죽으로 소장하고 옛장벽을 경계로 거의 반반씩 나뉘어 있다. 베를신시는 이들 소장품을 분야·시대·지역별로 분류해 각 박물관에 재배치할 계획아래 총비용 15억마르크(약 7천6백억원)의 이 문화대역사를 문화재관리단체인 프러시아 문화재단에 맡겼다. 이 재단의 문화재 재정비작업은 우선 과거 동베를린지역의 박물관들을 복원하고 소장품들을 깔끔하게 손질하는 것부터 시작된다.따라서 동부지역에서는 황폐화된 박물관밀집지구 「박물관섬」을 중심으로 신축·보수공사가 한창진행되고 있다.2차대전때 파괴돼 터만 남은 노이에박물관은 복원신축공사가 진행되고 있꼬 50년대에 내부계단을 설치해 원래모습을 상실한 알테박물가는 이를 헐어내는 보수공사가 벌어지고 있다.이밖에 보데박물관·페르가몬박물관·국립미술관 등 다른 박물관들도 외부단장과 내부현대화작업으로 부산하다. 서부지역의 박물관·미술관 밀집지구인 포츠담광장 근처 「문화포럼」에 새로 두개의 박물관이 들어서고 있다.이곳에는 이미 미술관 하나가 완공됐다. 프러시아재단은 이같은 시설공사가 완료되면 회화·조각품 등 방대한 양의 문화재를 정해진 박물관에 재배치하기위한 교통정리를 할 계획이다.이 계획에는 이웃박물관끼리의 작품이동,동서사이의 이동뿐만 아니라 벨기에 근처의 국경도시 달렘으로부터 조각품들을 운반해오는 작업도 포함돼있다.따라서 조만간 독일에서는 각종 보물의 대이동이 벌어질 전망이다. 이 계획이 완성되면 관람객들은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부부의 초상화를 보기위해 두개의 박물관을 찾을 필요가 없어지고 이집트의 유물들도한 장소에서 모두 살펴볼 수 있다.또 관심분야에 따라 국내 조각품들은 보데박물관에서,19세기 회화작품은 박물관섬의 국립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으면 같은 20세0기 회화라 하더라도 그것이 전반기작품이냐 후반기작품이냐에 따라 다른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물론 통일의 후유증인 경제난을 겪고있는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독일국민들의 불만도 없지는 않다.그러나 루브르와 오르세박물간을 갖고있는 파리의 경우를 들어가며 지난세기 프리드리히 빌헬름4세가 베를린을 유럽문화의 중심지로 건설하려했던 꿈을 이루자는 문화게의 호소는 이같은 불만들을 잘 해소시키고 있다.
  • 외언내언

    『나는 1940년 가을부터 반년쯤/남만주의 간도성에서 살아본 외엔/아무데도 외국에 나가 본 일이 없던 사람이라/1977년 내 나이 63세가 되자…』◆미당 서정주시인의 「제1차 세계일주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한 일간지에 「세계일주 방랑기」를 쓰기로 하고 떠났던 얘기를 읊조리는 시.이때를 말하는 또다른 시 「먼 세계방랑의 길」은 이렇게 써나간다.『이 세상의 매력이란 매력은 모조리 만끽해 보자/그걸로 또 여행기 책을 써 찍어 팔아설라문/억대 돈도 한번 벌어 잘 살아보자/환갑 진갑 다 지낸 전라돗놈이…』.멕시코에 들렀을 때 객혈을 하여 고생했다는 얘기가 애처롭다.◆『1984년 3월,그러니까 내 나이 일흔살 때/프랑스 정부가 돈을 내어 시인의 자격으로 우리 내외를 초청해 주어서/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 시인 몇사람과/르와르 강가의 옛 귀족들의 성을 여드렛동안 구경하고 돌아다녔는데…』.「제2차 세계여행」이라는 시의 허두.그는 이 시에서 『안잊히는 건 시인 「휠리쁘 수의뽀오」­』라고 말한다.「고생시킨 노처」와 함께 로렐라이바위 뒤 언덕에도 올라 감회에 젖었고.◆『시인 서정주씨 러시아유학 떠났다』.엊그제의 신문·방송은 이렇게 보도한다.떠나는 모습이 유쾌해 보인다.하지만 말이 그렇지 어찌 「유학」이라고야 하겠는가.「제3차 세계여행」쯤 되는 것이겠지.그렇다해도 세계의 문물을 「공부」하기로 든다면야 「유학」이라 못할 것도 없는것.우랄 알타이어주의 뿌리도 찾아볼 생각이라고 했는데 수십편에 이르는 「세계산시」의 속편도 머릿속에 이미 구상되어 있는 것이리라.◆올해 78세의 노시인은 이번에도 「고생시킨 노처」와 더불어 간다.화락이 가득하여 시적인 황혼의 아름다움을 흩뿌린다.더 깊어진 시심으로 건강하게 귀국하시기를.
  • 노대통령,“남북관계도 하나씩 개선될 것”(모스크바 여로)

    ◎“레닌그라드는 우리 선각자들 구국뜻 편 곳”/세계적인 물리기술연구소 「이오페」 둘러봐/교민들 추운 날씨에도 공항 나와 귀국길 배웅 ○환송객과 작별인사 ▷서울향발◁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을 공식방문했던 노태우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 여사는 16일 하오 6시(한국시간 17일 0시) 역사적인 3박4일의 방소일정을 마치고 레닌그라드의 폴코보국제공항에서 특별기편으로 서울로 향발. 공항에는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위원회 위원 및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 등 소련측 인사들이 노 대통령 일행을 환송. 또 재레닌그라드 교포들도 영하 10도 안팎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항으로 나와 노 대통령의 귀국길을 배웅. 노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위원회 위원에게 『3박4일 동안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소련국민들이 베풀어준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하루빨리 서울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서울에서의 한소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 노 대통령은 공항에서의 환송행사가끝나자 소련측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트랩에 올라 손을 흔들어 작별의 인사를 하고 특별기에 탑승. 노 대통령 일행은 약 10시간30분간을 비행한 후 17일 상오 서울에 도착할 예정. ▷기자간담회◁ ○…노 대통령은 이날 아침(현지시간) 숙소인 네바강변에 자리잡은 레닌그라드시 영빈관에서 수행기자단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이번 방소의 소감과 성과에 대해 소상히 설명. 노 대통령은 이날 1시간 동안 계속된 간담회에서 『이번 방문을 통해 체제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를 실감했다』며 『소련은 자랑스런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갖고 있고 풍부한 자원도 있어 체제만 좋았으면 무척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소련사람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소개. 노 대통령은 이번 방소의 하이라이트였던 14일 양국 정상회담 내용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통일정책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려고 마음먹고 준비를 했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내 생각을 다 아는 듯 통일은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내가 할 이야기를 정리해 먼저 이야기하는 바람에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부탁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해력도 빠르고 문제 핵심도 쪽집게처럼 집어내는 명석한 지도자였다』고 평가. 노 대통령은 또 「모스크바선언」에 따른 향후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는 『남북도 과거 어느 때보다 노력하고 있는만큼 아직까지 만족스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하나씩 개선되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이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다 듣고 나니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아 수십 번 만난 사람 못지않게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며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이 잘 속인다고 하나 마음이 통하면 모든 것을 벗어주고 신의를 제일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피력. 양국간 경제협력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노 대통령은 미묘한 부분이라고 감지한 듯 『경제협력이란 것이 무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지 말라』고 손을 내젓고는 『소련사람들은 체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무상은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 이날 조찬간담회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 및 김종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수정 공보수석비서관,김종휘 외교안보보좌관 등 공식수행원이 모두 참석했는데 노 대통령은 간담회가 끝난 뒤 공로명 주소 대사를 가리키면서 『여기 와서 고생 많이 했는데 우리 모두 함께 박수를 쳐주자』고 제의해 참석자 모두가 박수로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 ○한국과 구연을 강조 ▷레닌그라드시장 주최 오찬◁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1시(한국시간 하오 7시)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 노 대통령은 오찬 답사에서 『지난 1884년부터 20년간 우리 두 나라가 선린의 관계를 다졌을 때 우리 외교사절들은 두 나라의 우의를 레닌그라드에서 다졌고 우리의 선각자들이 식민세력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롭자 구국의 뜻을 처음 편 곳도 바로 이 도시였다』고 한국과 레닌그라드와의 구연을 강조. 노 대통령은 이어 『지난 봄 이 도시의 문화사절로 한국을 방문했던 레닌그라드교향악단의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우리 국민은 새 친구를 맞은 기쁨 속에,그 높은 예술성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면서 『레닌그라드가 한소 두 나라간의 새로운 시대도 힘차게 이끌어 달라』고 당부. 노 대통령은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읽은 푸슈킨,고골리,도스토예프스키의 시와 산문,소설에 담겨 있는 이 도시의 모습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서 『우리와의 관계는 끊겨 있었으나 레닌그라드는 한국인 모두의 마음에 친근한 도시』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이어 『한 세기 전 우리나라의 첫 외교사절이 이 도시에 이르기까지는 세 대륙과 두 대양을 거쳐 50일이 걸렸지만 교류와 협력의 넓은 길이 새 시대와 함께 열린 이제부터는 10시간의 비행으로 서로를 찾아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됐다』면서 『우리는 한 지구촌에 사는 진정한 이웃이 되었다』고 강조. 노 대통령은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선도해온 레닌그라드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승리로 이끄는 향도가 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건배를 제의한 뒤 「발소예 쓰바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이날 오찬은 노 대통령의 방소 3박4일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감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양국 참석자들은 시종 밝은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면서 작별의 아쉬움을 표시. ▷수호기념비 헌화◁ ○…노 대통령은 일요일인 이날 상오 레닌그라드시내 승리의 광장에 있는 레닌그라드 수호기념비에 헌화,지난 41년부터 45년까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봉쇄작전에 대항해 기아 속에서도 이곳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레닌그라드시민들의 넋을 추모. 노 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10분 수호기념비 앞 광장에 도착,레닌그라드지역 제1부 사령관과 기념비 관리소장의 영접을 받은 뒤 기념비 연혁을 설명듣고 곧바로 수호용사기념동상 앞으로 가서 헌화. ○서울대와 학술교류 ▷물리기술연구소 방문◁ ○…노 대통령은 이어 소련 물리학의 산실인 이오페물리기술연구소를 방문,아페로프 소장으로부터 연구소의 역사와 연구현황,한국과의 협력 가능분야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전시실을 시찰. 아페로프 소장은 『소련 최고의 물리학자로 「물리학의 어버이」로 불리는 고 이오페 박사가 1918년에 설정한 이 연구소는 현재 반도체·광학·전자공학·고체물리학·초전도체·핵융합·천체물리학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이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4명의 노벨상 수상자,60여 명의 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30여 명의 레닌상(소련 최고의 과학기술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소개. 아페로프 소장은 또 한국과의 협력관계를 설명하면서 『현재 대우와 합작사업을 하고 있으며 서울대와도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다』면서 『소련의 첨단과학기술과 한국의 상품화기술간의 협력을 위해 한소 공동학술연구센터를 설립토록 하자』고 제의.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과학기술분야에서도 활발히 협력하기로 약속했다』며 『나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협력이 강화되어 큰 결실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 노 대통령은 『반도체의 경우 일본이 돈을 다 벌고 있는데 한소 양국의 첨단기술과 응용기술이 접목되면 우리가 그 돈을 나눠 가질 수 있다』면서 『양국은 경쟁대상이 아니어서 서로감출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협력이 잘 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 노 대통령은 방명록에 서명한 뒤 전시실에 들러 고강도유리를 직접 망치로 두드려보는 등 양국간의 기술협력에 큰 관심을 표시했으며 아페로프 소장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을 소개하며 노 대통령의 연구소 방문에 큰 만족을 표시. 이날 연구소측은 노 대통령에게 맘모스 상아로 만든 피터 1세상(레닌그라드를 건설한 황제)과 규소유리로 만든 레닌그라드의 상징범선을 선물로 전달. ▷박물관 방문◁ ○…노 대통령 내외는 방소 마지막 일정으로 레닌그라드의 헤르미타지박물관을 방문,1시간반 동안 소장품을 감상.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3시45분 공식수행원과 함께 박물관에 도착,슈스로프 박물관장의 영접을 받고 방명록에 서명한 뒤 전시관을 돌아봤다. 헤르미타지박물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소장품 1점당 1분씩 관람하면 모두 5년이 걸릴 정도로 많은 동서양의 유물·미술품·각종 세공품 등이 소장돼 있다. 하오 5시20분 박물관 시찰을 마친 노 대통령 내외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 내외와 각각 동승하여 폴코보공항으로 향발. ▷이삭사원 관람◁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이날 상오 레닌그라드시내에 있는 러시아정교 이삭사원을 관람하고 환영나온 한인동포들을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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