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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 방랑자 유럽 순례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여행의 기본’쯤 되는 명제다. 모르면 보고도 못 본 것과 다름없다. 건축물이 특히 그렇다. 한 나라의 역사나 문화 등은 교과서나 귀동냥으로 들은 얕은 지식으로나마 얼추 얼개 정도는 꿰맞출 수 있지만 건축물은 여간 생경하지 않다. 그저 거대함에 대한 외경이거나, 화려함에 대한 감동 정도에 그친다. 그러니 눈뜬 장님이 될 수밖에. 나라 밖을 여행할 때 이국적이라고 느끼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건축물인데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유럽 방랑 건축+畵’(최우용 지음, 서해문집 펴냄)는 꽤 유용한 여행서적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서른 살 젊은 건축가의 인문학적 ‘건축 방랑’ 에세이다. 독일의 아헨 대성당부터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핀란드, 체코 등 유럽 10개국 40여개 도시와 80여곳의 건축물을 순례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트르담 대성당과 루브르 박물관은 물론 스페인의 세계적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현대의 건축 철학에도 여전히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르 코르뷔제의 ‘빌라 사부아’, 전설적인 건축가 알바 알토의 공공건축물 등 젊은 건축가의 눈에 비친 다채로운 건축의 세계가 펼쳐진다. 책은 자유분방하다. 건축물이 담고 있는 건축 철학은 물론 근·현대를 아우르는 역사와 각국의 독특한 문화, 그리고 정치적 이념까지 넘나든다. 저자의 발걸음도 교회와 대성당, 박물관, 미술관 등은 물론 공원과 요양원, 심지어 공동묘지까지 찾아 간다. 이처럼 거리낌 없는 관조가 가능했던 것은 필경 저자가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이뤄지는’, 숨막히는 ‘공사판’을 떠나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여행이었기 때문일 게다. 책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의 삶터는 어떠해야 하는가, 도시는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 우리의 삶의 양식은 이대로 괜찮은가 등 건축을 둘러싼 인문·사회과학적 성찰을 녹여내고 있다. 지속가능한 건축을 꿈꾸는 것은 곧 지속가능한 도시와 삶의 양식을 디자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건축은 자의적 해석으로 가득 찬 소통 불가능한 언어의 ‘고립된 자폐적 작품’이 되기 이전에, 우리의 삶과 얼마만큼 조화롭게 밀착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기념사진 수준을 뛰어 넘는 사진과 저자가 직접 묘사한 건축물 스케치 등의 콜라주적 편집도 돋보인다. 아울러 책 말미엔 세계적인 건축가 ‘소개와 건축기행을 위한 쏠쏠한 여행 정보들을 정리해 뒀다. 1만 8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K팝 열기’ 이번엔 런던 달군다

    프랑스 파리에 이어 영국 런던에서도 한국 대중음악, 이른바 ‘K팝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새달 K팝 콘서트 요구 시위계획 19일 오후(현지시간) 아이돌그룹 샤이니가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현지 언론을 상대로 인터뷰를 갖고 라이브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의 K팝 팬들은 이날 아침부터 인근 지하철역에 모여 샤이니를 응원하자는 글을 페이스북을 통해 속속 올리고 있다. 동참 의사를 밝힌 사람만 1300명이 넘는다. 이들은 다음 달 9일에는 K팝 콘서트를 개최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도 계획하고 있다. 지난달 초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K팝 팬들이 벌였던 플래시몹이 런던에서도 재연되는 셈이다. 샤이니의 이날 공연은 샤이니가 EMI뮤직 재팬과 계약을 맺고 일본에 데뷔한 것을 기념하는 사전 프로모션 차원에서 열린다. 현지 언론인 100여명을 대상으로 한 공연인 만큼 향후 현지 언론의 반응과 관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BBC가 지난 15일 서울발 기사를 통해 고질적인 노예계약 문제 등을 다룬 ‘K팝 음악의 그림자’를 보도한 것도 K팝의 실체를 인정하고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1960년대 비틀스가 녹음한 곳이자, 이들의 앨범인 ‘애비로드’의 재킷 사진에 등장해 유명해진 곳이다. 샤이니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공연 모습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았을 뿐 영국에서 K팝 인기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K팝 동호회가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월 영국 주재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K팝의 밤’ 행사는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62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지난 3일 문화원이 유럽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K팝 경연대회를 주최했을 때는 이탈리아에서까지 참가자가 몰렸을 정도다. ●문화원, 9월 콘서트 개최 협의중 문화원에 따르면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그룹은 빅뱅과 2NE1 등이다. 문화원은 현지 정서를 감안해 문화원 한가운데 대형 실물 사진과 함께 빅뱅이 보내준 유튜브 홍보영상으로 팝음악의 본고장인 런던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문화원은 오는 9월 10일부터 이틀간 런던 템스강 일대에서 열리는 템즈축제에서 한국 그룹이 야외콘서트를 여는 방안과 영국 최고의 공연장으로 꼽히는 5000석 규모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K팝 콘서트를 갖는 방안 등을 한국 음악기획사 등과 협의하고 있다. 원용기 문화원장은 “K팝은 영국 젊은 세대를 한국으로 이끌어 주는 중요한 촉매제 구실을 하고 있다.”면서 “한국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음식이나 영화 등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런던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누군가에게 그들은 알록달록 그림이 가득한 옛날 책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냥 도서관 한편에 놓인 채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은 민족문화의 정수였다.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조상들의 삶과 생활을 알 수 있는 역사의 기록이었다. 그들이 145년의 세월을 건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은 이제 옛 사람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금 숨결을 되찾고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30여년에 걸친 우리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우리의 유산들이 외국에서 이 땅을 그리워하고 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장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는 전 세계의 유명한 ‘약탈(掠奪) 문화재’도 모습을 나타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같은 신세였던 외규장각 도서를 부러워하면서…. 그들이 저마다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얘기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덕분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대여’(貸與)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게 아쉽지만, 저와 제 가족은 다시는 이 땅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휘경원(徽慶園) 원소도감의궤(園所都鑑儀軌)가 건배사를 시작하자,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1993년 휘경원 의궤가 홀로 파리 국립도서관을 떠나 한국으로 갈 때 다들 그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후로 18년. 휘경원 의궤의 뒤를 이어 자신들도 금의환향한 것이 스스로 믿기지 않는 그들이었다. 1866년 강화도를 떠난 지 무려 145년 만이다. 휘경원 의궤가 파티장을 둘러본 후 다시 말을 이으려는 찰나, 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문이 열리자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듯한 조각 뭉치부터 미라 머리까지 괴기스럽기 그지없었다. 표정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조각상이 대표로 말을 꺼냈다. ●엘긴 마블 축하드립니다. 한국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조선왕실의궤처럼 다른 나라에 무참히 끌려간 인류의 유산들입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매일 얼굴을 팔면서 살고 있지만, 한순간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의궤가 너무 부럽고 해서 함께 찾아왔습니다. ●휘경원 의궤 감사합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죠. 여기 계신 손님들이 잘 모르실 수도 있어 간략하게들 자리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엘긴 마블 안녕하세요. 전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장식입니다. 기원전 440년 무렵에 만들어졌고, 인물 360여명과 말 219마리로 구성돼 있어요. 제 치욕스러운 이름은 영국 외교관인 엘긴 브루스에서 비롯됐습니다. 19세기 초 터키의 그리스 지배 당시에 저희를 몽땅 긁어모아서 영국으로 옮겨왔죠. 대수집가로 추앙받는 경우도 있던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죠. 저희 가족은 ‘파르테논 마블스’로 불려야 마땅합니다. 성스러운 신전의 장식물을 떼어 와 감상하려 한 약탈자의 이름을 붙이다니요. 아마 가능하기만 했다면 파르테논 신전을 통째로 가져오고도 남았을 테죠. 현재 저희 가족은 대부분 대영박물관에 있고, 일부는 루브르박물관에도 있습니다. ●휘경원 의궤 파르테논 마블님은 문화재 반환운동의 대부로 유명하시죠. ●파르테논 마블 가만있자…, 그게 1960년대였을 거예요. 런던을 무대로 영화를 촬영하던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가 저희가 대영박물관에 있는 걸 보고 통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메르쿠리는 1981년 문화부 장관이 되면서 정부와 전 국민을 상대로 반환운동을 벌였고, 199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한시도 운동을 쉬지 않았어요. 지금도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메르쿠리 이름으로 된 호소문을 받게 됩니다. ●휘경원 의궤 그리스에도 우리나라 박병선 박사 같은 분이 계셨군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더 듣기로 하고, 그 옆에 계신 분도 역시 영국에서 오셨죠? ●로제타스톤 안녕하세요. 전 기원전 196년에 만들어진 프톨레마이오스왕의 공덕비입니다. 1799년 나폴레옹 원정군이 로제타(현재의 라시드) 마을에서 요새를 쌓다가 발견했죠. 뭐 신기한 돌이다 싶어 슬쩍 프랑스로 가져오려고 했는데, 2년 뒤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하면서 영국 소유가 됐죠. 이 전투에서 프랑스가 이겼으면 아마 지금 제 거처는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루브르박물관이 됐을 겁니다. 전 세계 교과서에 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테지만, 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어요.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존재라고 할까요. 이집트 상형문자, 민용(民用)문자, 그리스어 등 세 가지로 쓰여 있어 상형문자 읽는 방법을 현대에 전달했죠. 물론 제 고향인 이집트에서는 절 돌려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여기서 오랜 친구 로제타스톤을 만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전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보통 신전 앞에 쌍으로 있고 수십개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고향에 있는 애들은 6개에 불과하고 외국에 더 많아요. 뉴욕, 파리, 런던에 하나씩 있고 이탈리아에는 무려 16개나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를 무슨 열강의 상징쯤으로 여긴 때문이겠죠. 심지어 뉴욕과 런던의 오벨리스크는 원래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이름으로 투트모세 3세가 만든 한 쌍입니다. 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람세스 2세 오벨리스크의 나머지 한쪽이고요. 게다가 더 놀라운 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우리가 운반을 위해 다 쪼개졌다는 거죠. 상처 입고 신음하는데 보기만 좋으면 다인가요. ●휘경원 의궤 뒤쪽에 계신 아리따운 여자분과 용맹한 전사님은 누구시죠? ●네페르티티 흉상 저 역시 고대 이집트 출신이에요.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 클레오파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으로 알려진 네페르티티 왕비의 모습을 하고 있죠. 1912년 독일오리엔트협회 조사단이 공방터에서 발견해 지금은 베를린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말이 조사단이지 마구잡이로 파헤쳐서 가지고 오면 그만인 시절이었죠. 이집트 최고 미녀의 조각이자 최고의 조각상으로 평가받는 저를 정작 이집트의 후손들은 볼 수 없는 셈이죠. ●토이 모코 전 집으로 돌아갈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는 뉴질랜드의 토이 모코입니다. 마오리족 전사가 전투에서 사망하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신을 새겨 머리를 보관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일종의 미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소장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아예 마오리 전사에게 문신을 새긴 후 목을 자르는 일까지 벌어졌죠. 그 당시 500여개가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1992년부터 뉴질랜드 정부가 저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300여개가 돌아갔습니다. 그나마 고향에 돌아가기 쉬운 건 아마 저희는 문화재라기보다는 개인의 수집에서 비롯된 기념물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저희가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죠. 누구보다 재불 사학자인 박병선 박사의 역할이 컸습니다.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저희들을 찾아냈고, 이를 고국에 알렸죠. 프랑스 내 지식인층에 약탈문화재의 고국 반환을 주장하면서 30년 넘게 외롭게 싸워오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역시 고국에서 수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뭐죠? ●오벨리스크 자랑스러운 그들의 박물관이 약탈문화재로 가득차 있다는 점 때문이겠죠. 그들은 조상들의 유산을 돌려 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루브르의 이집트 천궁도를 비롯한 이집트 유물들도 대부분 도굴된 물건이지요. 마치 장물(贓物)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꼴입니다. 우리 오벨리스크를 가장 많이 소유한 이탈리아는 정작 우리 요구는 무시하면서 자기네 로마 유적은 돌려달라고 떠들고 있어요. 역지사지라는 말도 모르나봐요. 심지어 약탈국 정치인들은 대놓고 “하나둘씩 돌려주다 보면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떠들기까지 합니다. 남의 나라 문화재를 강제로 뺏거나 훔쳐다 놓고 그게 할 소리입니까. ●로제타스톤 맞습니다. 관람객들은 마땅히 우리의 단순한 역사적 가치 이외에 언제 어떻게 훔쳐서 이 나라에 왔고, 그 나라에서 돌려 달라는 운동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는 사실, 또 전 국민들의 소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집트에서 만들어졌고 이집트 상형문자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지, 대영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휘경원 의궤 뭐 사실 그렇습니다. 유명하면 포기하기 더 힘들겠죠. 만약 저희 의궤들이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로제타스톤이나 오벨리스크처럼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면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네페르티티 흉상 프랑스나 영국 정부가 항상 말하죠. 우리가 문화재 보존에 대해 최고의 노하우를 갖고 있고, 돌려받을 국가를 믿기 힘들다고 말입니다. ●파르테논 마블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자 핑계일 뿐입니다. 반환운동이 시작된 후 그리스 정부는 아테네에 영국 박물관 분관을 지어 저희를 전시하자고 영국에 제안했고, 그 전시실은 실제로 대영박물관에 견줘 손색 없이 지어졌죠. 하지만 영국 정부는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둘씩 돌려주는 선례를 만들다 보면, 아직 먹고사느라 조상의 문화에 관심이 적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남미 국가들이 나중에 떼로 달려들 것이 겁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박 박사가 저희를 찾아냈을 때 저희는 폐지 더미 속에 묻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보관과 연구능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한문을 읽고 조선의 문화를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저희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실제로 145년 동안 프랑스 사람들은 저희의 0.1%조차도 파악하지 못했고, 분류조차 못했으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 걸음해 주신 각국의 약탈 문화재 여러분. 우리 의궤의 반환 축하 역시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한국 역시 아직까지 18개국에 7만여점에 가까운 조상의 문화재가 외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문화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소망이 실현되는 날. 다시 한번 진정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약탈 그 역사와 진실(샤론 왁스먼·오성환/ 까치) 위대한 유산 74434(위대한유산 제작팀/ 지식의숲) 조선을 죽이다(혜문/ 동국대출판부) 오벨리스크(권염흠/ 스틸로그라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휴머니스트)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김경임/ 홍익출판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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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미국적인… 가장 고흐다운…

    가장 미국적인… 가장 고흐다운…

    미국과 프랑스 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전시가 각각 열린다.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품들이 한국 나들이를 한 것. 서울 정동 덕수궁미술관과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각각 관람객을 맞고 있다. -덕수궁미술관 ‘휘트니미술관전’ 11일 덕수궁미술관에서 시작되는 ‘이것이 미국 미술이다 : 휘트니미술관전’은 제목 그대로 아시아 최초로 휘트니미술관의 미국 현대미술품들을 집중 전시한다. 휘트니미술관은 미술관 가운데서도 가장 미국적인 미술관으로 꼽힌다. 현대미술에서 이름 높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국제적 성격을 강조한다면, 휘트니미술관은 1930년 출범 때부터 미국 작가 지원을 위해 미국 현대미술품만 수집하겠다고 공언했다.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 ‘아메리칸 아이콘과 소비문화’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미국을 상징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를 드러낸 작품들로 구성됐다. 익히 알려진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을 비롯, 웨인 티보와 제프 쿤스 등의 작품이 선보인다. 2부 ‘오브제와 정체성’은 일상과 개인사에 집중한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센버그 등이 나선다. 3부 ‘오브제와 인식’에서는 일상용품을 비현실적 시공간에 배치해 독특한 의미를 생산해 내는 클래스 올덴버그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이런 현대미술을 많이 접해 봤다면 특별 섹션인 ‘미국 미술의 시작’(American Modernism)에 시선을 줄 만하다. 20세기 초입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나서기 전 급속한 경제개발과 뉴딜정책,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로 인해 혼란스러웠던 미국의 풍경을 고스란히 화폭에 옮긴 존 슬론, 에드워드 호퍼, 조지아 오키프 등의 대표 작품이 나온다. 9월 25일까지. 1만 2000원. (02)2022-0600. -한가람미술관 ‘오르세미술관전’ 오르세미술관은 널리 알려졌듯 파리 센 강변의 폐철도역을 개조해 만들어졌다. 단순히 폐철도역을 재활용해서가 아니라, 인상파 화가들이 기차로 상징되는 현대문명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서 루브르박물관의 인상파 화가 작품을 집중적으로 옮겨둔 것은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오르세미술관 소장품 전시는 한국에서 세 번째. 이전에는 회화가 30~40점 정도만 전시됐다면 이번엔 회화 73점을 비롯, 사진 자료까지 포함해 모두 134점이 전시된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이는 오르세미술관이 대대적인 수리 작업에 들어가면서 해외 전시에 잘 내놓지 않던 작품들까지 내놓게 된 덕분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이란 전시 제목을 받쳐 주는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고흐는 이 작품과 함께 ‘별이 빛나는 밤’(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소장), ‘아를,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 등 별이 있는 밤 풍경 그림을 석 점 남겼는데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 작품이 인상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초기 인상파의 정신적 지주이자 “천사를 그릴 테니 천사를 가져다 달라.”고 했던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가 여자 성기를 적나라하게 그린 ‘세상의 기원’, 딱히 인상파라고 하긴 어렵지만 인상파와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던 밀레의 ‘봄’ 등도 함께 전시된다. 인상파라도 인물화를 잘 그리지 않았던 모네의 초기 인물화 ‘고디베르 부인’처럼 이색적인 작품도 만날 수 있다. 9월 25일까지. 8000~1만 2000원. (02)325-1077~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파리 입성 K-POP] 티켓 10분만에 매진·암표 수십배에 거래

    [파리 입성 K-POP] 티켓 10분만에 매진·암표 수십배에 거래

    프랑스 파리가 K팝에 흠뻑 취했다. 10일(현지시간) 밤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등 한국의 아이돌 그룹의 공연이 펼쳐진 파리의 르제니트 주변은 온통 K팝, 한국의 대중음악에 취한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온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스타의 브로마이드 사진과 한글 이름 등을 피켓으로 만들어 흔들며 이름을 연호하고, K팝을 따라 불렀다. 이 같은 열기는 파리에서 오래 지내 온 한국인들도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 공연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이들은 “K팝이 실체가 있기는 한 거냐.”고 되묻기까지 했었다. 심지어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로 나눠 이뤄진 인터넷 예매가 일시적 과부하로 서버가 다운되는 소동 끝에 시작 15분 만에 매진됐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이들은 긴가민가했다. 주재원으로 파리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콧대 높기가 하늘을 찌르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이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얘기가 도통 믿기질 않는다고 했다. 파리에 있는 한 기업 관계자도 “한국인 직원들끼리 모여서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를 두고 토론을 하곤 했다. 직접 확인해 보기 전에는 미심쩍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난 1일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수백명이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연장해 달라며 시위를 벌인 데 대해서도 그는 “원래 시위가 많은 곳인데다, 수십명이 했는지 수백명이 했는지 누가 알겠느냐.”고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반신반의는 8일 오후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이 프랑스에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1000명에 가까운 프랑스의 열성 팬들이 샤를드골 공항에 몰려나와 K팝 스타들을 향해 환호하고 심지어 눈물 짓는 모습들을 보면서 ‘프랑스의 한류가 정말 실체가 있는 모양’이라며 눈빛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자의 눈에도 지금까지 나온 반응만 보면 일단 K팝이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공연 티켓 예매가 10여분만에 매진됐을 뿐 아니라 공연 직전에는 이런저런 경매사이트에서 원래 가격보다 몇십배 높은 가격의 암표가 거래되기도 했다. 코트라 파리지사에서 11년째 근무하는 프랑스인 프레데리크 클라보는 “젊은 층 일부가 한국 음악을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 르몽드 같은 언론에서 다룰 정도면 실체는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음식에 이어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한국 음악 마니아를 자처하는 마티아스 함사미는 한국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대학에서 전공도 한국어과로 선택한 경우다. 그는 “20대 이하 젊은 층에서는 한국 음악이 굉장히 인기 있다.”며 한국 음악과 미국·일본 음악을 세세하게 비교해 주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인들을 만난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상 중 하나는 “그들이 한국 영화나 음악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에 부는 한류(韓流)라는 식으로 일부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에 비해, 프랑스인들은 한국 문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소화하고 향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단 한국 음악뿐 아니라 일본 음악 중국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최준호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장은 “프랑스인들의 문화 향유 양상을 감안한다면 K팝 등 한국 문화가 앞으로 프랑스에서 더 많이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확신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프랑스인들을 만나 보면 한국 영화와 드라마, 가요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곳을 알려 달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한국의 음악을 불법 다운로드받아야 할 정도로 이들이 체계적으로 한국 문화를 누리기에는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는 “K팝 인기가 올라가더라도 주변의 연계된 부분이 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과거 홍콩영화가 그랬듯 언제 주저앉을지 모른다. 영화, 음악, 음식 등 한국의 다양한 문화와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어 내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 강국진 순회특파원 betulo@seoul.co.kr
  • [관광객 1000만 달성 릴레이 제언(8)] 흔들리지 않는 관광대국/남상만 한국관광협회 중앙회 회장

    [관광객 1000만 달성 릴레이 제언(8)] 흔들리지 않는 관광대국/남상만 한국관광협회 중앙회 회장

    우리나라 관광산업은 국가성장동력 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아직도 외부환경 변화에 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물가, 환율, 전염병, 자연재해 등 각종 사회적·자연적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관광업계의 올 한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목표는 1000만명이다. 그러나 올 들어 국내 구제역 발생, 동일본 대지진 등 각종 전염병과 자연재해가 잇따르며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던 관광객 입국이 주춤하고 있다. 4월 말~5월 초는 일본의 황금연휴와 중국의 노동절 연휴가 겹치는 일명 ‘골든위크’다. 지난해 이 기간에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일본인 10만여명을 비롯하여 72만명에 달했지만, 올해는 50만명 선에 머무르며 30%가량 감소 추세를 보였다. 실제 한 여행업체는 지난해 5월에 6000여명의 외국인 관광객 예약을 받았으나 올해는 3000명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행태심리학자인 A 매슬로는 자아실현 및 문화적 욕구는 인간의 최상위 욕구로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를 기반으로 둔다고 했다. 하지만 2002년 중국을 강타한 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올해 일본 대지진 등의 전염병과 자연재해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안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해당 국가의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가한다. 한국의 관광산업도 이 전례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력한 관광 콘텐츠와 관광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환경에 따른 위기상황이 닥치더라도 한국을 대체할 관광지가 존재하지 않을 ‘한국만의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컨대 지난 1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입구에서 프랑스 한류 팬 300여명이 모여 한국 아이돌 가수의 공연 연장을 요청하는 플래시몹 시위를 벌였다. 유럽의 한류 돌풍은 한국 방문의 해에 때맞춰 불어온 기분 좋은 바람이다. 더욱 다행인 것은 유럽의 한류 돌풍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불고 있다는 것이다. 한류의 성장에 따라 프랑스 등 서구권이 한국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현 상황을 한국 방문의 해의 관광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제 주변국의 재해를 계기로 우리의 현황을 다시 한번 점검해 봐야 할 시점이다.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예민한 유럽을 비롯한 외국 관광객의 방문이 다소 주춤한 상태지만, 외래관광객 1000만명 유치 목표에 흔들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인접 국가로서 한국 관광의 안전성을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서도 지난달 ‘관광객 환대실천 범국민운동본부’를 출범하고, 방한 외국인의 재방문율을 높이고자 외국인 관광객의 모든 접점에 호스피탤리티 서비스를 극대화하고 있다. 관광업계뿐 아니라 정부와 국민 모두의 관심과 노력도 절실하다. 정부 차원에서 한국의 이미지 홍보가 중요하며, 음식서비스 개선 등 국민 개개인 또한 온라인, SNS 등을 통해 홍보대사가 되어야 한다. 일본의 재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관광대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다.
  •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15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라는 시간의 흐름.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와 일제 강점기 아시아의 소국(小國) 조선이라는 공간과 위상의 차이. 이 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메디치’로 불리며 이탈리아, 아니 중세 유럽을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조 메디치(오른쪽·1449~1492)와 자국의 역사책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간송(澗松) 전형필(왼쪽·1906~1962). 겉으로 보이는 배경으로는 너무나 다르지만 이들에겐 엄청난 ‘돈’과 예술을 알아보는 ‘혜안’(慧眼)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은 각각 피렌체 우피치미술관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의 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남겼다. 만약 그들이 막대한 재산을 흥청망청 쓰는 데만 골몰했다면, 또는 재산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면 중세미술사와 한국미술사는 다시 쓰여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로렌조 메디치와 전형필이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유산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이들의 노력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 결과로 우리는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서양미술사에만 관심을 갖다가 지난주 간송미술관을 다녀온 후 한국미술의 전통과 매력에 흠뻑 빠진 직장인 윤정은(33·여)씨가 궁금한 점을 모아 인터뷰에 나섰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도대체 어떤 가문이었고 재산 규모는 얼마나 됐나. -메디치 내 증조할아버지인 토스카나 대공(大公) 코지모는 피렌체인들 사이에서 ‘국부’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은행업을 통해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가문의 수장이 됐을 때 내 나이 고작 20세였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특히 우리 가문은 직물산업의 핵심이었던 ‘백반’(양모 세척제)을 움직였고 메디치 은행의 주요 고객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교회였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피렌체가 메디치였고, 피렌체의 모든 것은 메디치 가문의 재산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에 와세다대 법대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서울 일대는 물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를 지나면서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만석꾼 집안이었다. 미곡상을 했는데 내가 24세에 물려받은 논은 4만 마지기(800만평)에 달했다. 1년에 소작농으로부터 쌀 2만 가마니(1만석)를 거둬들였는데, 이를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채 정도였다.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환산하면 매년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논을 몽땅 판다고 가정하면 6000억원 정도였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수치 환산이고 당시 논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훨씬 더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년에 나만큼 버는 조선인은 43명에 불과했다. →<윤정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흥청망청 쓰다 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 집안만 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실패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도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메디치 할아버지 코지모의 영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피렌체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난 그들과 토론하는 법을 배웠다. 10대 때부터 이미 유럽 각국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 덕에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로마어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리스어까지 능통하게 구사했을 정도였으니. 내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돈이 많은 시민이었지만 피렌체 안팎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됐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금욕적인 삶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난 바람둥이였고, 수많은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권력자에게는 그런 게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전형필 난 원래 경성에서 대학을 다니며 조선어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호사가 될 것을 강권하셨고, 그 덕분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만든 법을 연구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가업인 장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부모의 상을 당한 상황에서 본인이 즐기는 데 그것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사랑했는데 특히 수집(蒐集)에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메디치 ‘위대한 로렌조’라는 호칭과 달리 난 콤플렉스가 많았다. 심한 주걱턱이었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었다. 코도 낮았고 목소리는 거칠었다. 하지만 난 비올라와 류트(당시의 현악기), 승마술, 매사냥까지 섭렵했고 유려한 글솜씨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예술에 대한 조예는 못난 겉모습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를 지원해 그들의 작품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했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난 할아버지나 아버지, 다른 귀족들과는 좀 달랐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이외에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고 동양의 예술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라는 당시 사회상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휘문고보 시절 은사였던 고희동(1886~1965·서양화가) 선생과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위창 오세창(1864~1953·서예가) 선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두 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 선생은 나에게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왜놈들 손으로 넘어가는 우리 서화와 전적을 지키는 선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위창 선생은 나에게 ‘간송’이라는 호를 주셨고, 내 수집활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작품을 모아야 하는지, 어떤 눈을 갖춰야 진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윤정은> 돈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 취미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데, 다른 목적은 없었나. -메디치 (웃음) 난 상인이었지만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치인에게 100% 순수한 호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밀라노에 보내고 1488년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나폴리에 보냈다. 그 공국들에 내가 후원하던 예술가를 보내는 게 좋은 작품을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호의를 베풀면서 실은 정치를 한 거였다. 솔직히 내가 예술가를 후원한 돈은 대부분 내가 피렌체의 공직을 겸하면서 공금으로 썼다. 내 재산은 오로지 내 수집품을 모으는 데 집중적으로 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지는 않았나. -전형필 왜 수집에 나섰느냐고 위창 선생이 물었을 때 난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이 언젠가 독립될 것이란 믿음이 없었는데도 수집을 계속했을지는 나도 자신이 없지만, 난 반드시 독립될 것으로 믿었다. 1933년 성북동에 터를 구해 미술관을 지은 것도 독립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팔려 갔던 고려석탑을 다시 사 오면서 난 한번 유출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해방된 후에는 이전처럼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제에 더 이상 빼앗길 염려가 없어진 후에는 조선 사람이 모은 것은 모두 조선 것이기에 해방 후에는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에만 전념했다. →<윤정은> 소장품들에 대해 묻겠다. 두 사람의 노력은 우피치와 간송 미술관으로 남았지만 두 사람 모두 박물관의 개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메디치 우피치는 영어로 하면 ‘오피스’(사무실)를 뜻한다. 그곳은 내 증조부 코지모의 집무실이다. 물론 내가 가장 주목받기는 하지만 우피치 수집품은 우리 가문 전체의 공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화가부터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소장 규모 자체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조토의 ‘성모자’, 다빈치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도록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피치를 박물관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 이후로 200여년이 지난 후 메디치가 최후의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토스카나 공국에 기증하면서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남겼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어느 것도 피렌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형필 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운학문매병’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이 있다. 1937년에는 영국 변호사 개스비에게서 청자 20점을 40만원에 사기도 했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가치는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고, 그것이 원래 내가 수집을 시작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잡스러운 그림을 그린다고 폄하됐던 겸재 정선(1676~1759)을 화성(畫聖)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내 최대의 성과로 생각한다. 그럼 내가 묻겠다.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나. →윤정은 당대 최고의 좋은 자재로 지었다는 미술관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930년대의 근대식 2층 건물과 창틀에는 현대미술관처럼 멋진 조명도 없고 첨단 잠금장치도 없다. 화장실 냄새도 코를 찌른다. 아이들이 유리에 온갖 손자국을 내며 코를 박고 보는 모습은 유럽 미술관의 풍경과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전시하지 않아서 좋았고, 온전히 우리 것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보고 있는 전시품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조상의 것이라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바티칸이나 루브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친구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간송미술관에 가면 간송이라는 사람과 그가 남긴 뜻이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참고서적 간송 전형필/이충렬/김영사 조선의 그림수집가들/손영옥/글항아리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최완수·한상남/샘터 조용헌의 명문가/조용헌/랜덤하우스코리아 메디치 머니/팀 팍스·황소연 옮김/청림출판 메디치‘의 음모/피터 왓슨·김미형 옮김/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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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지향적 도시에서 길을 묻다 / 아부다비

    미래지향적 도시에서 길을 묻다 / 아부다비

     3월,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서울의 봄을 뒤로하고 10시간 남짓의 비행 끝에 당도한 아부다비는 상쾌한 초여름 바람과 기분 좋을 만큼 따뜻한 햇빛으로 방문객을 반겼다. 반듯하게 자리잡은 도심의 거리와 깨끗한 해변, 거기에 아름다운 빛깔의 바다가 펼쳐지고, 여기저기 공사가 진행 중인 고층 빌딩들은 새 도시의 활기와 냄새를 풍긴다. 사막 지역에 자리잡은 도시임에도 곳곳에 조성된 너른 녹지는 기획 도시의 계획적이고도 힘 있는 추진력을 짐작케 한다.  모래 바람이 휘몰아치고 더운 열기에 숨이 막히리라 상상하며 떠났던 어설픈 여행자는 순간, 모든 상투적인 판단을 내던진다. 그리고 새롭고 신기한 공기에 취해 최고급 브랜드와 고품격 문화로 치장을 시작한 떠오르는 ‘잇시티(it-city)’ 아부다비로 서서히 빠져들어 간다.  글·사진 한윤경 기자 취재협조 에티하드항공 www.etihadairways.com  ◈ Travie info.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i), 샤르자(Sharjah), 아지만(Ajman), 움알카이와인(Umm al-Qaiwain), 라스알카이마(Ras al-Khaimah), 푸자이라(Fujairah)의 7개 토호국으로 이루어진 연합 국가이다.  7개 토호국 중 최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아부다비는 전세계 석유 물량의 10% 정도를 공급하고 있는 최대 산유국으로 1971년 12월,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 탄생한 직후부터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수도이자 정치와 행정, 비즈니스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독립 직후부터 아부다비의 군주,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이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대통령을 맡아 왔으며 2004년 그의 사망 이후 현재까지 그의 아들 셰이크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Sheikh Khalifa bin Zayed Al Nahyan)이 그 뒤를 이어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대통령직을 수행해 오고 있다.  약 2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아부다비는 ‘2009년 포뮬러 1 에티하드항공 아부다비 그랑프리’, ‘아부다비 사막 챌린지’ 등을 비롯하여 세계적인 국제행사를 연중 개최하는 활기찬 도시로 부각되고 있다.      ■ 전통과 자연, 지금의 그들을 만든 질료  낯선 여행지를 처음 만나는 일은 마냥 설레는 일이다. 첫 만남의 순간부터 탐험자의 오감이 본능적으로 그곳의 빛과 바람, 색깔과 냄새를 탐색하게 된다. 그 과정 중에 또한 그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문화, 역사를 엿보고 마침내 지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든 ‘그곳다움’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나기도 한다. 그 순간, 그 여행지에 대한 무한 애정 또한 함께 샘솟기 시작한다.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 모스크(그랜드 모스크)  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 Mosque(Grand Mosque)  멀리서도 환하게 아른거리는 그랜드 모스크는 아부다비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아부다비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이다. 모든 정성과 열의를 총동원해 그들의 종교적 심성과 국가적 자부심을 발현시킨 장소이며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 전(前) 대통령이 잠든 곳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82개의 순금 뾰족탑을 얹은 돔과 1,000개의 기둥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스크를 들어서면 역시 하얀 대리석 바닥과 벽과 천장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이슬람을 믿는 그들이 상상하는 천상의 모습이다. 눈에 띄는 꽃의 패턴과 창틀의 문양,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름답고 모던한 장식물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1980년대부터 계획을 세우고 1990년대 후반부터 건설을 시작한 그랜드 모스크는 미식축구장 5배 크기에 4만명이 동시에 기도할 수 있는 규모를 자랑하며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모스크로 손꼽히고 있다. 모로코풍 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이탈리아, 독일, 모로코, 인도, 터키, 이란, 중국, 그리스 등 전세계의 유명 디자이너와 건설업체들이 그랜드 모스크 대공사에 참여했다. 대리석과 금을 비롯해 크리스탈, 세라믹 등 38종이 넘는 각종 건축자재와 특산품들이 전세계로부터 공수되었다고 하니 가히 글로벌 건축물이라 할 만하다.  그랜드 모스크는 그 수치적 스케일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가히 압도적인 기념물이다. 1,200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수공예로 만들었다는 주기도실의 카페트는 7,126명이 동시에 올라설 수 있는 규모이며 그 카페트 위에 앉아 천장을 올려다보면 지름 10m, 무게 9톤이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황금빛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어 호화로움을 뽐낸다.  이슬람 교도가 아닌 일반 관광객에게 개방되는 유일한 모스크로 팔, 다리가 드러나거나 몸매가 보이는 의상을 입어서는 안 되고 스카프로 머리를 가려야 하는 등, 남녀에 따라 요구되는 입장시 규칙이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  개장시간 오전 9시~오후 8시(금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가이드투어 일~목요일 오전 10, 11시, 오후 5시/ 금요일 오후 2, 5, 8시/ 토요일 오전 10, 11시, 오후 2, 5, 8시(영어로 약 45~60분 가량 진행)/ 10명 이상의 단체인 경우, 사전 예약 필수  홈페이지 www.szgmc.ae/en    아부다비 매 병원 Abu Dhabi Falcon Hospital  과거 우리에게도 매 사냥의 역사는 있었다. 매를 날려 짐승을 포획하는 사냥으로 정확하고 강인한 매의 용맹함과 힘을 도구로 활용했던 사냥 방식은 유난히 매와 사람 사이의 믿음과 교감을 중요시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매’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아랍에미리트의 상징인 나라 새이며 황족들에게 사랑받는 동물로, 매 사냥은 그 옛날 우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부 귀족층의 취미생활로 여겨져 왔다. 현재 아랍에미리트 매 사냥 인구는 약 6,000~7,000명 정도. 이렇게 사랑받는 매는 비행기 이동시에도 우리에 갇혀 짐칸에 실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승객과 함께 한 좌석을 차지하며 이동하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아부다비에는 매를 보호하고 매 사냥의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매 병원’이 운영 중이다. 1999년에 개원한 아랍에미리트연합 최초의 공립 매 병원은 주변 국가를 통틀어 그 규모와 프로그램면에서 특별함을 자랑한다. 개원 이래 특권층 애호가들만이 이용하던 것을 2007년부터 일반에게 개방하면서 아랍 문화를 소개하고 생태 관광을 선보이는 프로그램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다.  이곳에서는 약 60여 마리의 매를 관리하며, 치료와 재활, 미용 관리 및 훈련을 맡아하는데, 매를 직접 팔 위에 앉혀 보고, 날려 보내는 체험을 포함해서 매 병원과 박물관 견학도 할 수 있다.  개장시간 오전 10~오후 2시(금, 토요일 휴관) 입장료 10살 이상 AED170, 10살 이하 AED60 가이드투어 1일 전 예약 필수(영어로 진행)  홈페이지 www.falconhospital.com    민속촌 Heritage Village  현지인들에게는 싱겁고 작위적일 수 있지만 초행길의 여행자라면 필수코스인 곳이 어느 나라에나 있는 민속촌이다. 아부다비 역시 마찬가지. 쉽고 빠르게 아부다비의 과거 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 시간의 색깔과 향기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아부다비의 민속촌은 에미리트 문화유산클럽(The Emirates Heritage Club)이 조성한 곳으로 오아시스식 전통마을을 재현한 곳이다. 야외시장인 ‘수크(souk)’에서 보석이나 향신료 등 각종 잡화를 팔고 한 켠에서는 넓지 않은 마당에서 낙타 타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석유시대 이전의 사막 야영지나 관개시설 등을 통해 지난 시간의 삶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잠시 스치듯 둘러본 민속촌 뒤쪽으로 무심한 듯 파랗게 일렁이던 바닷물이 터덜터덜 돌아보던 무심한 발걸음에 반전을 안긴다. 전통배 도우(Dhow)가 심심하게 얹혀져 있는 새하얀 모래밭과 표현할 길 없는 색감으로 펼쳐져 있는 바닷물 위로 수천만년 내려쬐던 중동의 햇빛이 따갑게 반짝거렸다.  개장시간 오전 9시~오후 5시(금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visitabudhabi.ae    사막 사파리 Desert safari  사막이란 생전 처음 만나는 황당한 세상. 감도 잡히지 않던 상상 속의 모래 언덕 위엔 책에 나온 삽화였나, 파르스름한 달빛 아래 사막여우가 한 마리 서 있었다.  처음 사막 초입에 도착한 SUV 자동차는 사막 드라이빙에 앞서 살짝 바퀴에서 바람을 빼낸다. 흥미로운 액티비티를 앞두고 운전자나 동승자나 기대감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어댄다. 테마파크 놀이기구 정도로 생각했다면 20분여, 사막의 모래 구릉을 쉬지 않고 미친듯이 오르내리는 상황이란, 경우에 따라 난감한 일이다. 기운차게 괴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달궜던 초반의 기운참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멀미도 빈번한 일인 듯, 운전자의 반응이 태평스럽다. 바로 그 언덕 위아래로 수십 차례 곤두박질을 치다 보면 모래 천지에, 사방 구분이 막막한 이 별세상이 머리 위아래로 바짝 존재를 드러낸다.  동남아 휴양지에서 해양 액티비티가 투어의 기본이듯, 사막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사막 사파리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기본적인 투어 코스다. 이 투어를 통해, 원 없이 사막의 모래바람을 온몸으로 뒤집어쓸 수도 있고, 낙타 타기와 모래 썰매, 사막 드라이빙을 즐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요새처럼 자리한 사막의 캠프에서 맛있는 즉석 바비큐에 물담배, 헤나 페인팅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정말 운이 따라 준다면 똑 떨어지는 사막의 일몰과 밤하늘에 쏟아질 듯 수런거리는 별무리를 만날 수 있다.  가격 AED150~300(1일 사파리 기준) 예약 및 문의 Desert Adventures Tourism +971 635 2788, Hala Abu Dhabi +971 617 7810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미래를 준비하는 놀라운 스케일  아랍에미리트 중에서도 ‘부자 산유국‘’아부다비는 곳곳에 건설 현장이 산재해 있는 성장 진행형의 도시이다.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석유 산유국의 통치자들이 후손들을 위해 내린 100년 대계의 결정은 다름 아닌 문화 자부심을 남겨 주자는 것. 펑펑 쏟아지는 석유를 앞에 두고 석유 고갈 이후를 가늠하며, 후손들이 대대손손 누릴 수 있는 우아한 계획을 도출해 낸 것이다.    페라리 월드 아부다비 Ferrari World Abu Dhabi  아부다비 외곽에 자리한 야스섬(Yas Island)은 아부다비 도심에서 30분, 두바이까지 50분 정도 거리에 자리한 엔터테인먼트·레저·생활 문화 공간. 아부다비 정부는 이곳에 테마파크, 호텔 및 골프장 등을 조성하고 관광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시설이 바로 페라리 월드 아부다비. 페라리 월드는 세계 최초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페라리 테마파크로 실내 테마파크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2010년 하반기에 오픈한 이곳은 세계 최고 속도의 롤러코스터인 포뮬라 로사, 스피드 오브 매직, 지포스 등, 페라리를 소재로 한 20여 가지의 놀이기구와, 페라리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갤러리아 페라리 그리고 기념품숍과 식당가 등을 갖추고 있어 가족 방문객들은 물론, 자동차에 관심 많은 성인들에게도 흥미로운 곳이다. 페라리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2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빨간색 지붕이 이 테마파크의 상징이다.  개장시간 오후 12시~밤 10시(월요일 휴무) 이용료 일반 이용권 AED225(신장 150cm 이상), AED165(신장 150cm 미만)/ 프리미엄 이용권 AED495(신장 150cm 이상), AED370(신장 150cm 미만)    야스 마리나 서킷 Yas Marina Circuit  우선 보통의 남자라면 자동차, 그것도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는 매끈하게 잘 빠진 경주용 자동차를 만나는 순간, 동공이 살짝 풀리고 입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야스 마리나 서킷은 야스섬의 대표적 스포츠 시설이다. 매년 F1 에티하드항공 아부다비 그랑프리가 열리는 곳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레이싱 경기를 개최할 수 있는 수준의 설비와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세계 규모의 각종 챔피언십, 행사와 회의 등을 진행한다.  가능한 액티비티에는 카트 드라이빙, 포뮬라 1 드라이빙, 야스 트랙 데이, F1 카 탑승, 레이싱 면허 코스 등이 있어 자동차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 만하다.  개장시간 오전 10시~오후12시/ 오후 2~4시(일, 월요일 휴무) 투어요금 어른 AED120, 13세 이하 AED60 홈페이지 www.yasmarinacircuit.com    글로벌 문화특구, 사디얏섬  Saadiyat Island  야스섬에 이어 아부다비의 희망찬 미래 청사진이 과감하게 펼쳐지고 있는 곳이 바로 사디얏섬이다. 27km2 넓이의 사디얏섬은 현재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과 호텔 및 리조트 시설 등을 유치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최대 규모의 최상급 문화 밀집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해서 준비하고 있는 자이드 국립 박물관, 구겐하임 아부다비, 루브르 아부다비 등, 앞으로 들어올 미술관과 호텔의 이름을 살짝 들먹이는 것만으로도 이 섬의 차별성과 품격을 짐작하게 된다. 그 밖에도 다양한 공연예술센터와 해양 박물관 등도 조성해 나갈 예정으로 2~3년 후부터는 예술 애호가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할 꿈의 공간이 순차적으로 현실화되리라 기대해 본다.  사디얏섬은 아부다비 도심해안으로부터 약 500m 정도 거리로 아부다비 도심까지 10분 이내, 아부다비 공항까지 20분, 두바이까지 50분 정도 거리로 접근이 편리하다. 현재 사디얏섬 프로젝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마나랏 알 사디얏(Manarat Al Saadiyat)’을 운영하고 있어 사디얏섬의 미래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마나랏 알 사디얏 개장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 홈페이지 www.saadiyat.ae      ◈ 아부다비 풍경을 한눈에 담다 헬리콥터 투어  지상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본 아부다비의 명소들을 아부다비 해안을 따라 하늘 위에서 일목요연하게 내려다볼 수 있다. 잘 만들어 놓은 도시의 풍경, 흰 모래가 흐르는 해안선과 푸른 바다의 대비, 곳곳에 자리한 인공섬과 그곳에 자리한 별장들이 마치 잘 만들어 놓은 미니어처를 들여다보는 듯 탐난다. 일정 끝 무렵에 헬리콥터 투어로 아부다비 일정을 마무리한다면 큰 감흥을 챙길 수 있다.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4시30분(금, 토요일 휴무) 가격 AED830(20분 투어, 1인 기준) 홈페이지 www.falconaviation.ae    ◈ hotel  야스섬 대표 호텔을 즐기다 / 야스 호텔 Yas Hotel  2009년 11월에 오픈한 야스 호텔은 레저와 엔터테인먼트 등의 여가시설이 집중해 있는 야스섬에 자리하고 있는, 야스섬 대표 호텔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지붕은 야스섬 대표 이미지이기도 하다. 밤이 되면 어부의 그물을 형상화했다는 지붕에 촘촘히 박힌 수천개의 LED 조명이 켜지고 색을 바꿔 가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야스 호텔은 현대적 건축 디자인도 눈길을 끌지만 입지 또한 흥미롭다. 반은 마리나 서킷이 자리한 육지에, 반은 마리나 요트클럽쪽 바다에 몸을 걸쳤다. 또한 가까운 거리에 18홀 규모의 야스 링크 아부다비 골프클럽과 페라리 월드가 자리하고 있어 야스 호텔을 중심으로 다양한 놀이와 휴식이 가능하다. 2개 동으로 이루어진 야스 호텔은 499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10개의 룸을 보유한 스파시설과 체육시설, 수영장 등이 있어 호텔 안에서도 시간을 보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그 밖에도 다양한 컨퍼런스룸과 식당, 바 등도 갖추고 있어 다양한 행사도 가능하다.  대낮 같은 자동차 경기장과 바다 전망을 즐기며 휴식도 취하고 한껏 기분을 내기 원한다면 야스 호텔은 꽤나 괜찮은 선택이다. 아부다비국제공항에서 10분, 아부다비 도심에서 30분 거리. www.TheYasHotel.com    국가 대표 호텔의 명망 / 에미리트 팰리스 Emirates Palace  에미리트 팰리스는 그 화려함과 규모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초특급 호텔이지만 아부다비에서는 호텔 그 이상의 의미이다. 아부다비의 랜드마크이자, 국가 행사시 영빈관의 역할도 하고 있는 에미리트 팰리스는 3년여에 걸쳐 2만명 이상이 동원된 약 30억 달러 규모의 건축 내력 또한 화제에 오르고 있다. 100헥타아르에 달하는 전체 면적에 건물의 양쪽 끝에서 끝까지의 길이가 1km에 이르는 등 그 규모에 대한 언급 또한 기록의 연속이다. 호텔 앞으로 1,3km에 이르는 프라이빗 해변을 보유하고 있으며 114개의 돔으로 이루어진 호텔의 외관도 자랑거리이다. 금과 대리석뿐만 아니라 1,000여 개의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샹들리에로 꾸민 호텔은 아부다비의 필수 볼거리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호텔 내부에 금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는 것도 에미리트 팰리스에서 발견하는 독특한 재미. 394개의 객실 또한 아라비아풍에 현대적인 감각을 입히고 최고의 편의시설로 고품격 휴식을 보장하고 있다. www.emiratespalace.com    ◈ golf  쪽빛 바다 전망 라운딩 / 야스 링크 아부다비 골프 클럽 Yas Links Abu Dhabi Golf Club  골프를 잘 치든, 골프 문외한에게든 야스 링크 아부다비의 안달루시아식 클럽 하우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골프장은 가슴 탁 트이는 풍광을 자랑한다. 세계적인 골프 코스 설계자 카일 필립스(Kyle Phillips)가 디자인한 이곳의 골프 코스는 스코틀랜드 해안 마을 특유의 전통적인 링크 골프 코스의 표본을 잘 보여 주는 것으로 총 7,450야드, 파 72 규모의 아부다비 최초의 링크 골프 코스이다.  야스섬 서쪽 해안에 자리한 야스 링크는 18홀 모두 바다 조망이 가능해 전망이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또한 야스 링크 골프 클럽은 스포츠 라운지와 두 곳의 노천 테라스, 그리고 별도의 만찬실을 갖춘 바랑카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고 수영장과 사우나 및 숍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더욱 편리하다. 야스 링크 아부다비는 멤버십 회원 및 게스트 모두 이용 가능하다. 개장시간 오전 7시~밤 12시 가격 비지터 기준, 주중(일~목요일) 9홀 AED250, 18홀 AED499/ 주말 9홀 AED400, 18홀 AED799 홈페이지 yaslinks.com    ◈ mall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 아부다비 마리나 몰  Abu Dhabi Marina Mall  마리나 몰은 아부다비 대표 쇼핑몰로, 쇼핑센터 이외에도 아이스링크와 볼링장, 영화관 등을 갖춘 다기능 복합 쇼핑몰이다. 명품 브랜드숍부터 트렌드를 앞서가는 상품들이 빼꼭한 수많은 숍들이 눈길을 끌고, 쇼핑몰 안에 다양한 레스토랑, 커피숍도 자리하고 있어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다. 매년 1월 중순에서 2월 말 사이에 최대 세일 이벤트가 진행되니 이 시기를 맞춰 방문하면 좋다.  개장시간 토~수요일 오전 10시~밤 10시, 목요일 오전 10시~밤 11시, 금요일 오후 2시~밤 11시 홈페이지 marinamall.ae     ◈ Travie tip. 아부다비는 에티하드항공으로!  에티하드항공은 2003년 왕실 칙령으로 설립된 아랍에미리트연합 국영항공사로 2009년, 2010년, 2년 연속 월드 트래블 어워드(World Travel Awards)에서 수여하는 ‘세계 최고의 항공사(World Leading Airline)’로 선정된 바 있다. 현재 중동, 아프리카, 호주, 유럽, 북미 및 아시아 등 전세계 44개국, 총 66개 노선을 운항 중이며 2010년 12월, 서울-아부다비 첫 직항 노선으로 신규 취항했다. 에티하드는 29개 항공사와 공동운항협약을 체결해 국제적인 항공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시아나항공과 공동운항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또한 에티하드항공은 제휴 항공사를 통해 모든 취항지의 일등석 및 비즈니스석 탑승객들을 위한 고급 라운지를 제공함으로써 기내 서비스뿐 아니라 지상 서비스에 있어서도 섬세하게 신경쓰고 있다. 아부다비의 퍼스트 클래스 프리미엄 라운지에서는 식스 센스 스파, 시가 라운지, 샴페인 바, 최고급 식사 등을 즐길 수 있도록 고급 서비스가 제공되며 비즈니스 목적의 여행객들에게는 회의실도 제공된다. 또한 기도실 및 장기 환승 탑승객을 위한 휴게실도 마련하고 있다.    Essential Abu Dhabi 에티하드항공은 2011년을 ‘아부다비의 해’로 정하고 아부다비를 테마로 한 ‘에센셜 아부다비(Essential Abu Dhabi)’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주요 내용은, 에티하드항공 탑승권인 ‘패스 투 매직(Pass to Magic)’을 제시한 관광객과 비즈니스 여행자들에게 아부다비 도착 이후 7일간 아부다비의 주요 호텔과 여행사, 레스토랑, 상점 및 테마파크, 문화유적지와 경기장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것. 또한 올 8월31일까지 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이원구간의 에티하드항공 승객 중 프리미엄 클래스 승객을 대상으로 아부다비 혹은 두바이 고급 호텔 무료 숙박권(조식 및 리무진 서비스 포함)도 제공한다. 이번 캠페인은 아부다비 및 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 여행하는 모든 여행객과 아부다비 경유 승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www.essentialabudhabi.com    ◈ Travie info.   아랍에미리트는 이슬람 국가로 인구의 96% 이상이 이슬람을 믿는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종교적 판단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여행시 현지의 관습과 종교를 존중하도록 해야 하며 타 종교의 선교 활동 등은 불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주류 구입 및 공공장소에서의 음주 또한 금지사항. 단, 관광객 유치 및 비즈니스 활동에 장애가 없도록 외국인에 대해 5성급 호텔 및 제한된 장소에서의 음주만을 허용하고 있다. 주류 구입은 주류 구입 허가증 소지자에 한해 허용된다. 또한 공공장소에서의 심한 노출을 피해야 하고 현지 여성을 촬영해서도 안 된다.   에티하드항공에서 주 7회 매일, 서울-아부다비 노선을 운항 중이다. 비행시간은 약 10시간. 화폐 단위는 아랍에미리트 디르함(AED, Dirham). 2011년 4월 기준, 1디르함은 296원.  한국보다 5시간 느리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공간 여닫는 線의 놀림

    공간 여닫는 線의 놀림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 모렐레(85)의 ‘망령된 선들’(Senile Lines) 전시는 선들에 의해 갇히고, 선들에 의해 열리는 공간을 다룬다. 아니, 공간에 의해 연결되거나 차단되고 반사된 선이라고 거꾸로 말해도 된다. 이 공간은, 혹은 선은 닫힌 것인가 열린 것인가, 이어진 것인가 끊긴 것인가, 여기까지인가 저기까지인가 되묻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1950년 첫 전시 이래 455번이나 열린 개인전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 놓은 과정을 음미해볼 수 있다는 점이 전시의 가장 큰 매력이다. 모렐레는 최근 프랑스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작가. 미국 주도의 현대미술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1950년 이래 개인전만 455번 주연화 갤러리현대 큐레이터는 “현대미술에서 프랑스가 소외된 부분이 있었는데 최근 프랑스는 모렐레를 통해 이런 흐름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프랑스는 지난해 루브르미술관 영구 설치작업을 모렐레에게 맡겼고, 올해에는 7월까지 퐁피두센터에서 ‘재설치’(Reinstallation)를 주제로 대규모 회고전을 진행하고 있다. 네온을 활용하는 것이나, 미니멀리즘적 취향 등이 세련된 맛을 풍긴다. ●한국 첫 전시… 1층부터 시간순 작품 배열 한국 첫 진출인 이번 전시에서도 이런 점을 강조했다.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시간순으로 작품을 배열했다.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소재로 삼은 2층에서부터 기하추상에 집중했던 지하 1층으로 내려오며 역순으로 보는 것이 재미 면에서는 더 낫다. 뿌리를 추적해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모렐레가 활동 초기에 “지극히 단순한 것, 무와 다름없는 것들에게 끌린다.”고 하다가, 말년에 들어서는 “미술 전시란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가 챙겨오는 스페인식 소풍”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짐작된다. 프랑스 작가답게 말장난이 심하다. 전시 제목도 그렇고, 작품 제목들도 마찬가지다. 오는 11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 사간동 현대갤러리 신관. (02)2287-35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문화마당] K팝과 신한류/조혜정 영화평론가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문화마당] K팝과 신한류/조혜정 영화평론가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얼마 전 TV 뉴스가 귀에 들어와 박혔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젊은이들이 모여 시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갑자기 2005년 프랑스 방리외에서 벌어진 젊은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연상되면서 짧은 순간에도 방리외 사태를 예견한 듯한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1995)라는 영화가 스치며 지나갔다. 그러나 다음 멘트와 펼쳐진 풍경 앞에서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보도의 내용은 인종주의나 경제적 불평등 같은 무거운 내용이 아니라 음악공연을 하루 더 연장해 달라는, 말하자면 ‘청원성’(請願性) 시위였다. 그들은 루브르 앞에서 한데 모여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부르는 것은 한국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노래. 파리 한복판에서 시위가 벌어진다는 한마디에 방리외와 ‘증오’를 연상한 내 순간의 상상력에도 어이가 없었지만, 프랑스 젊은이들이 함께 한국 아이돌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 또한 뜻밖이었다. 근래 한국의 대중음악, 이른바 K팝(Pop)이 동남아는 물론이고 유럽과 남아메리카 등지에도 알려져 팬덤이 형성되고 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지난 2월 ‘런던 K-팝의 밤’ 행사장에 들어가려 영국 청소년들이 200m 이상 줄을 섰고, 작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1만 5000 관객들이 한국 아이돌 가수의 공연을 보면서 환호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멕시코나 브라질에서도 K팝을 즐기고 따라 부르는 현지 젊은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미국의 경제전문TV 블룸버그는 “한국의 K팝이야말로 진정한 파워 브랜드이며, 한국산업의 가장 잠재력 있는 무기”라고 언급했다. 영국 BBC에서도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이 한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나 해외에서 생각하는 한국의 국가브랜드는 한류이며, K팝은 아시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초기 영화와 드라마에 의해 촉발된 한류는 이제 K팝이라는 콘텐츠를 통하여 새로운 도약, 즉 ‘신한류’(新韓流)로서 조성되고 있다. 흥분과 속단은 경계해야 하지만, 세계인들이 K팝을 즐기는 현상은 나쁘지 않다. 팝의 종주국이라며 다른 나라의 음악을 브리티시 팝(영국), 프렌치 팝(프랑스), J팝(일본)이라고 자국 중심으로 분류하는 미국에서조차 K팝의 약진을 이야기한다. 비틀스의 모국 영국에서, 샹송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K팝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는 이들을 보는 것은 내심 기분 좋은 일이다. 해외에서 삼성 디지털TV나 스마트폰, 현대자동차로 인식되던 한국의 국가브랜드와 이미지는 박찬욱·이창동의 영화, 원더걸스·소녀시대·샤이니 같은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는 문화부의 ‘2010 콘텐츠산업 동향 보고서’에서도 나타나는 바, 콘텐츠 수출에서 공연을 포함한 음악산업이 급성장세를 기록(전년 대비 158.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하드웨어 콘텐츠에서 소프트웨어 콘텐츠로의 관심 이동은 그것이 정서적·감성적 접근이기 때문에 그 파급효과는 더 클 수밖에 없다. 한 나라의 문화 콘텐츠는 산업적 연관성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문화적 이해와 친연성을 형성하는 데 중심역할을 하게 된다. 시작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대중음악을 세계인들이 즐기게 된 것은 글로벌 맞춤기획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같은 미디어 환경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한 것이 주효했다고 할 것이다. 이미 디지털시대에 접어들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가 소통과 소비의 중심으로 부상한 지금 그들의 문화 소비와 욕구에 맞춰 기획하고 홍보하는 것은 기본이다. K팝 열풍은 유튜브를 통하여 한국 대중음악 관련 동영상이 서비스되면서 더욱 확산된 것이 그 증거다. 물론 전제되어야 할 것은 콘텐츠의 내용이다. K팝의 인기는 글로벌한 감각과 취향에 걸맞은 음악, 노래와 춤, 외모와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준비된 가수들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신한류의 시대를 맞아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도록’ 문화종사자들의 지혜를 모을 때다.
  • “아이가 원하는 교육을 시키려 애썼어요”

    “아이가 원하는 교육을 시키려 애썼어요”

    “재능을 미리 발견해 길을 열어 준다는 점에서 영재교육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2006년 독일 슈페르거 국제콩쿠르 최연소 우승에 이어 이듬해 러시아 쿠세비츠키 국제콩쿠르에서 우승, 세계 음악계를 깜짝 놀라게 한 더블베이스(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성민제(22)씨. 자식을 영재로 키우는 비결을 묻자 어머니 최인자(49)씨는 이렇게 답했다. 민제씨가 서울 광진구 홍보대사로 위촉돼 구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바이올린도, 첼로도 아닌 하필이면 왜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독주회를 하기엔 부적합한 악기인 더블베이스를 가르치게 됐는지 묻자 “현악기 중 가장 저음을 내는 악기지만 인간이 악기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특이한 악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더블베이스는 무게만 무려 15㎏에 달하는 ‘몸집 좋은 녀석’이다. 최씨는 “악기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집안 분위기가 컸다.”고 말했다. 민제씨의 아버지(성영석·서울시립교향악단 소속)도, 동생(미경·2010년 제6회 요한 마티아스 슈페르거 국제 더블베이스 콩쿠르 우승)도 모두 같은 악기 연주자다. ●학벌보다 인성 더 중요하다 생각 최씨는 “다른 애들처럼 처음엔 태권도 등 이것저것 다 가르쳐 봤어요. 공부보다 재능과 소질을 계발하려고 노력했죠.”라면서 “부모가 원하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교육을 시키려고 애썼어요. 바로 그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이어 “민제가 악기를 처음 잡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키가 작아 의자 위에 방석을, 그것도 모자라 사전까지 올려놨다.”며 조기 교육의 열정을 떠올렸다. 언제 싹수(?)를 보였을까. 최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면서 “그때 독일에서 한달 보름 동안 레슨을 받았는데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가르치는 족족 빨아들이더라.”고 회상했다. ●줄리아드 러브콜도 뿌리쳐 민제씨는 선화예중을 졸업하고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16세에 고교과정 없이 대학에 입학한 것이다. 줄리아드의 ‘러브콜’을 뿌리친 건 최씨 부부가 ‘학벌’보다는 ‘인성’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들에게도 좌절은 있었다. 2009년 9월 뮌헨 콩쿠르 1차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최씨는 “또래들에 비해 경험이 적은 게 걱정이지만 기교보다는 관중의 마음을 울리는 연주를 위해서라면 한번 실패쯤은 되레 약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담담하게 말했다. 독일 뮌헨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을 밟고 있는 민제씨는 내년 3월 29일 사라 장(장영주), 장한나 등이 거쳐간 루브르박물관 독주회를 앞두고 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열린세상] 기록문화의 위기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열린세상] 기록문화의 위기다/임상빈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주임교수

    얼마 전 청주를 다녀왔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을 둘러봤다. 관람객들이 집중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말투에 힘이 있는 노신사. 직지활자와 직지 제작과정 모형 그리고 신라·고려·조선시대의 목판본, 금속활자본, 목활자본 등 전시물에 대해 정성껏 설명하고 있었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고인쇄물에 대해 설명하는 자원봉사자 일을 5년째 하고 있단다. 귀경길에 낭보를 접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도서 297권이 5월 반환된다는 소식이었다. 프랑스가 약탈해 간,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직지)의 친정’을 막 다녀온 여행에 기쁜 소식이 겹치면서 여러 감회가 교차됐다. 연구실에 돌아와 외규장각도서의 반환 협상 자료를 찾아봤다. 이 도서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은 1975년이다. 이 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씨가 파손도서 창고에서 발견한 것이다. 모리스 쿠랑이 ‘조선서지’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 문화재는 국제법상 프랑스 소유를 인정받고 있다. 그 실존을 확인한 것만도 당시엔 대단한 성과였다. 우리 정부가 무려 17년이 지난 1992년 처음으로 약탈도서 반환을 요구했다. 이듬해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이 테제베 매각협상을 유리하게 전개하기 위해 이 문서의 반환을 약속했지만 곧 반환협상은 무산됐다. 프랑스가 등가등량교환을 조건으로 세운 탓이다. 약탈문화재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똑같은 가치의 문화재를 자신에게 주고 고도서를 찾아가라고 ‘생떼’를 쓴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 정부는 이에 합의했다. 국민여론이 폭발했다. 합의 자체가 없던 일이 됐다. 5년이 지난 뒤인 1998년 민간 차원의 형식으로 외규장각도서 반환협상이 재개됐다. 그 이후 민간은 물론 정부의 갖은 노력 끝에 영속 귀속을 의미하는 장기 대여의 쾌거를 얻어낸 것이다. 문화재 반환을 둘러싸고 ‘생떼’를 쓰던 18년 전과 지금의 프랑스 정부 입장에 변화가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형식적 소유권을 끝까지 고집하는 프랑스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우리 국민의 요구대로 무상반환을 한다면 이것이 선례가 되어 세계 3대박물관으로, 프랑스의 자존심인 루브르박물관은 텅텅 비게 될지도 모른다. 노신사의 목소리가 이명 현상처럼 계속 달라붙는 느낌이다.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문명국만이 할 수 있는 대역사다. 그 기록을 제대로 보존하고 지키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다. 기록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우리의 기록역사문화는 세계 최고임을 인정받고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기록문화유산이 직지, 훈민정음, 팔만대장경, 동의보감 등 7개나 된다. 우리보다 역사가 깊은 중국도 5개에 불과하다. 그것도 청나라 왕조에 국한된 것이다. 일본은 하나도 없다.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기준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세계 역사와 문화발전에 기여, 또는 세계사의 중요한 변화를 반영했다고 인정되지 않으면 등재가 불가능하다. 이같이 우리 기록문화를 인정받을 수 있음도 우리의 힘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가치를 설파하던 노신사의 열정, 그에게 열중하던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아마도 이날, 아니 어느 날이든 청주고인쇄박물관을 다녀간 청소년과 어린이는 자발적으로 관람감상문을 썼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스스로 기록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기록의 필요성을 찾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본 사람들만큼 기록을 소중하게 여길까.’라고 되물어 본다. 왠지 답답하다. 외규장각도서가 발견된 이후 반환 요구를 요청하는 국민의 소리를 17년 동안 외면했던 정부, 등가등량교환에 합의했던 과거 정부의 모습에서 현재 정부의 모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인 사찰, 대포폰, 하드디스크 파기, 아랍에미리트연합 파병 등에서 왜곡된 기록문화를 보게 된다. 현재 우리는 기록을 지키고 빼앗긴 기록물을 찾아오는 문제가 아니라 기록하는 자체의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기록문화의 위기다.
  • 동서양 명화를 듣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으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 페르디낭 들라크루아는 쇼팽과 그의 연인 상드,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파가니니의 초상화를 남겼다. 들라크루아의 걸작들을 보면서 초상화 속 대가들의 음악을 듣는다면 어떨까.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시도인 ‘아르츠 콘서트: 세기의 사랑’이 오는 13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아르츠 콘서트란 미술(art)의 스페인식 발음인 ‘아르츠’와 공연을 뜻하는 ‘콘서트’를 조합한 것으로 공연기획사인 스톰프뮤직이 내놓은 새로운 공연 형식이다. 공연을 이끌어 가는 콘서트마스터는 ‘공고 출신 도슨트(미술해설가)’로 유명한 윤운중이 맡았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오르세 미술관,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 등 유럽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4만여명의 관람객에게 작품 해설을 한 ‘미술 박사’다. ‘화가와 음악가의 우정과 사랑, 고전으로 만나다’를 주제로 한 1부에서는 들라크루아의 초상화와 요제프 딘 하우저의 ‘리스트가의 저녁식사’ 등과 함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쇼팽, 리스트, 드뷔시, 브람스의 음악이 연주된다. 첼리스트 송영훈과 피아니스트 아비람 라이케르트가 무대에 함께 선다. 2부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등 사랑을 표현한 화가들의 명작에서 연상되는 느낌을 대중적으로 재해석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크리스틴 역을 맡았던 김소현과 라울 백작으로 나온 손준호, 재즈 피아니스트 윤한, 싱어송라이터 루빈, 그룹 스윗소로우 등이 감미로운 사랑 노래를 전한다. 3만~8만원. (02)2658-3546.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인도주의자’ 위고 사형폐지를 논하다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인도주의자’ 위고 사형폐지를 논하다

    ‘파리의 노트르담’은 인간의 숙명에 대한 고찰이며, 파리시와 그곳의 아름다운 건축물에 대한 송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프랑스의 부조리한 사법제도에 대한 맹렬한 비판이기도 했다. 자유를 부르짖는 낭만주의자, 인도주의자였던 빅토르 위고(그림)에게 사형제도는 도덕을 후퇴시키고, 민중의 미덕을 해치는 악습으로 여겨졌다. 작품에 등장하는 루이 11세는 위고에 의해 비쩍 마르고 성질 급한 노인네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 왕의 경악스러운 지점은 다름 아니라 여기다. 왕의 일행이 감옥을 시찰하던 중 창살 저 너머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보이지 않는 죄수는 자신이 무고하다며 제발 자비를 베풀길 간청하지만, 왕의 귀에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신하들이 모두 그 소리에 소름이 끼쳐 얼어붙어 있는데도 왕은 하던 말만 계속 하고, 신하들에게 질문하고, 문서를 읽으며 감옥 안을 거닌다. 아름다운 노트르담 대성당과 루브르궁이 있는 이곳 프랑스에는 비세트르 성과 그레브 광장이 함께 존재한다. 강도와 살인자들은 비세트르 성에 감금되었고, 사형수들은 마차를 타고 그레브 광장에 도착해 처형된다. 비정한 왕과 재판관들은 가난한 민중들이 못 배우고 굶주려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15세기로 날아간 위고가 열여섯 살의 가녀린 소녀 에스메랄다를 목매달게 한 것은 그의 나이 29세 때의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2년 전 이미 ‘사형수 최후의 날’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통해 사형 및 사법제도의 기만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 짧은 소설에서 위고는 사형을 언도받은 한 남자의 고독과 상념을 그린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단두대의 붉은 받침대 아래 흥건히 고인 피 속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는” 죽은 자의 영혼을 읽어보길 독자에게 권한다. 사형 당하기 1분 전까지도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고 숨 쉬는 젊은 남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이 글은 다른 어떤 호소문보다 강렬하고 소름 끼친다.
  • [뉴 시티노믹스 시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⑩·끝) ‘예술의 메카’ 베니스

    [뉴 시티노믹스 시대-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⑩·끝) ‘예술의 메카’ 베니스

    이탈리아 베니스 중앙역에 내린 관광객들은 기차역을 나서는 순간 베니스가 왜 ‘물의 도시’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역 앞의 수상택시 정류장과 유람선 선착장. 바삐 오가는 크고 작은 배들. 줄지어 선 건물 1층에서 찰랑거리는 바다 물결까지. 기차역을 오르는 계단 앞은 언제나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베니스의 낯선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는 관람객들로 가득하다. 자동차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물의 도시 베니스의 또 다른 이름은 ‘비엔날레의 도시’다. ‘2년에 한번 열린다’는 뜻에서 비롯된 예술전시제 비엔날레가 바로 베니스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올해로 116년. 1896년 시작한 뒤로 홀수해에 열리는 미술 비엔날레와 1986년부터 짝수해에 열리고 있는 건축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에서 4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물의 도시를 찾는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세계 최고의 예술축제로 우뚝 선 것은 ‘전통’보다는 ‘혁신’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건축가와 작가들이 매년 새로운 디렉터로 위촉돼 자신의 비전을 마음껏 펼친다. 거장의 숨결보다는 신진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조류와 가능성이 비엔날레를 찾는 관람객들의 관심거리다. 지난해 열린 건축 비엔날레 역시 여러 가지 새로운 이슈로 주목받았다. 여성 최초로 건축 비엔날레 디렉터를 맡은 세지마 가즈요 덕분이다. 뉴욕 뉴뮤지엄을 설계하고 루브르박물관 분관 신축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세지마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프리츠커상의 지난해 수상자다. ‘건축의 중심은 사람’이라는 세지마의 철학은 ‘건축 안에서 사람이 만나다’라는 비엔날레의 모토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비엔날레 조직위 관계자는 “참여 작가들의 평균 나이가 40대 초반으로 대폭 젊어졌고, 절반가량은 올해 처음으로 참여한 건축가들”이라며 “특히 일반인 관람객들과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건축 비엔날레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체험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스마트폰 앱스토어에서 베니스 비엔날레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적합한 주택과 건물을 만들 수 있다. 조직위 측은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수록 더 좋아진다는 점에 착안한 프로그램”이라며 “스마트폰을 전시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은 비엔날레가 추구하는 혁신적인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독일 하노버 세빗이나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등 다른 전시회와 달리 거대한 전시장이 없다는 점이다. 전시장은 산마르코 광장의 거대한 시계탑과 성당 뒤편으로 펼쳐진 공원과 시내 건물 곳곳에 흩어져 있다. 자르디니(정원)와 아르세날레 구역이 전시장 중심으로 활용되지만 사실상 경계가 없다. 베니스의 명물인 조각배 곤돌라가 다니는 수로 양편에 늘어선 건물 곳곳이 전시장이다. 좀 더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한 나라 간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해 건축 비엔날레에는 한국을 비롯해 모두 53개 나라가 참여했고 바레인, 이란, 말레이시아 등 6개 나라가 처음 베니스를 찾았다. 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직접 국가관의 테마를 정하고 젊은 건축가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프랑스관의 경우에는 ‘땅을 재단하는 건축가’로 불리며 이화여대ECC를 설계한 도미니크 페로가 책임자를 맡았다. 페로는 “한 나라를 대표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훌륭한 작품을 보이는 것은 예술가의 의무이자 영광”이라며 “국적을 막론하고 모든 건축가들이 서로의 작품에 감탄하면서도, 자국의 자존심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관은 아이아크의 하태석 대표가 커미셔너를 맡아 ‘미분생활 적분도시’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미분화된 사람들이 모여 적분화된 사회를 만든다는 다소 난해한 소재였지만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적극 활용해 큰 인기를 끄는 데 성공했다. 호주관은 2050년 시드니의 모습을 담은 3D 애니메이션을 선보여 수많은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고, 다른 국가들도 관객들의 참여를 돕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오롯이 그 자체로 유명해진 전시회가 아니다. 한때 유럽 최고의 부자도시였던 베니스 곳곳에 남아 있는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해변의 풍광을 찾는 관광객들에 기댄 측면이 강하다. 밀라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한주희씨는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비엔날레가 열리고, 이탈리아에서도 여러 전시회가 있지만, 이왕이면 베니스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가격대의 호텔과 훌륭한 음식, 주변 도시로의 연결성도 모두 베니스 비엔날레가 커나갈 수 있는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베니스 사람들은 베니스와 비엔날레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두 가지가 서로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같은 강점이 이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베니스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글로벌 시대] 중국의 스케일과 중국인의 심리/민귀식 한양대 중국문제 연구소 연구교수

    [글로벌 시대] 중국의 스케일과 중국인의 심리/민귀식 한양대 중국문제 연구소 연구교수

    광저우(廣州) 아시안게임이 막을 내렸다. 행사의 후반부가 연평도 군사 충돌로 인해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의 힘과 역동성을 충분히 보여준 대회였다. 중국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세계에 증명하고 싶어 하는 의도가 역력히 드러난 행사였다. 20년 전의 베이징 아시안게임은 천안문사태 직후 열린 터라 중국의 입장이 수세적이었다면, 이번 광저우의 경우는 자신감에 넘친 최근의 중국 위상을 뽐내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이었다. 아시안게임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다양한 첨단기술이 동원되었다는 야외개막식 행사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주장(珠江)을 무대로, 도시를 배경으로’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개막식은 주경기장이 아닌 도심을 흐르는 강물 위에서 진행한다는 참신한 아이디어의 결과였다. 도시 전체가 개막식의 배경이 되도록 한다는 발상은 이미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선보이기는 했지만, 공간 스케일이 큰 중국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조 4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조절하는 로프에 매달려 펼친 군무(群舞)의 화려함이나, 57만명의 자원봉사자가 동원된 것도 중국이 아니고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경기내용으로 보면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광저우가 개최한 중국 전국체전에 다른 나라들이 들러리를 섰다는 비아냥도 있지만, 대회의 규모나 외형적인 성공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스케일 큰 행사를 벌이는 중국인의 심리는 무엇일까? 과거 세계를 제패하던 시절의 화려함과 세계 패권에 도전하는 현재 입장에서 추구하는 통 큰 스케일은 동일한 심리의 반영일까? 지난 10월 종료된 상하이 엑스포는 또 다른 의미의 중국적 과시라고 할 수 있다. 여의도 면적의 62%나 되는 전시장 크기는 그 이전 개최지인 스페인 사라고사 엑스포의 20배나 돼, 행사규모에서 어느 나라도 중국을 따라올 수 없다는 인상을 주고도 남았다. 또 전시 참가국과 행사장 면적 및 관람객 수, 그리고 200만명에 달한 자원봉사자 등은 159년 엑스포 역사에서 여러 가지 최고 기록을 남겼다. 지난 9월 30일 시안(西安)에서 개원한 당나라 궁전 대명궁(大明宮)의 규모는 중국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의 스케일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약 24조원을 들여 복원한 이 궁전은 그 크기가 자금성(紫禁城)의 4.5배이고, 프랑스 루브르궁전의 8배나 된다. 당시 제국이던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의 힘을 짐작하게 한다. 궁전으로 뻗은 주작대로(朱雀大路)는 너무 넓어서 지금은 복원할 수도 없지만, 그 폭이 150m로 요즘의 48차선이나 되었다. 서울의 세종로가 16차선 50m인 것과 비교하면 중국인들의 큰 스케일 선호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인은 춘추전국시대에 천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치열한 권력투쟁을 하면서 권위와 그 권위를 보장하는 장치로 스케일 큰 건축물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 주변국의 복종을 강요하는 세계 중심국의 상징으로 화려한 건물을 활용했고, 이것이 특유의 체면문화와 결합되면서 한층 강화되고 일반화되었다. 즉, 백성들이 체면과 과시를 위해 크고 화려한 것을 선호했다면, 지배층은 이를 권위와 권력의 상징으로 활용한 것이다. 체면은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는 심리가 내재돼 있고, 과시는 열등감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동하는 행동이다. 그래서 오래된 부자는 검소할 수 있지만 벼락부자는 화려한 치장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국가권력도 제국의 정점에 있을 때는 스케일 크기를 방어적으로 활용하는 데 치중하지만, 제국에 도전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을 상대를 압도하거나 자신의 힘을 공격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삼게 된다. 이것이 당나라의 원래 대명궁과 최근 복원된 대명궁의 상징이 달라 보이는 이유이고, 올림픽과 엑스포에 이은 아시안게임의 화려함을 마냥 찬탄만 하기에는 마음 한쪽에 걸리는 게 있는 이유이다.
  • 신진작가의 성장통…서상익 두번째 개인전 ‘서커스’

    신진작가의 성장통…서상익 두번째 개인전 ‘서커스’

    떠오르는 신진 작가 서상익(33)의 두 번째 개인전 ‘서커스’가 26일부터 서울 삼성동 인터알리아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다. 화가의 작업실을 어슬렁거리는 사자 등 일상과 공상의 세계를 뒤섞은 화면 구성으로 주목 받았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미술관, 아파트 같은 현실적인 공간 안에 영화, 음악 등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덧붙이는 방식으로 예술과 사회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페인트 잇 블랙’(Paint it black)은 까맣게 칠해진 그림 앞에 서커스 복장을 한 원숭이가 붓을 들고 있고, 관람객들이 앞다퉈 이 모습을 촬영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생뚱맞아 보이는 이 그림은 작가가 지난해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갔을 때 모나리자 그림 앞에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를 보고 구상한 것으로, 명화에 집착하는 미술 관람객의 태도를 유머러스하게 비꼬고 있다. 텅 빈 캔버스 앞에서 심각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그린 ‘길들여지지 않기’나 미술관 한편에서 변기에 앉아 혼자 체스를 두는 마르셀 뒤샹이 등장하는 ‘플레잉 더 게임’ 등도 작가가 미술 현장에서 체험하고 느낀 감상들을 담고 있다. 영화와 음악적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도 눈에 띈다. 존 레넌을 주인공으로 한 ‘유주얼 서스펙트’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장면을 차용한 ‘나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미술시장에 갓 진입한 작가의 심적인 부담감과 정체성 등에 대한 고민을 풀어낸 작품들이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경찰은 누아르 영화의 영향이다. 전시는 일관된 흐름보다는 다양한 실험과 모색의 흔적이 강하다. 그래서 이 젊은 작가의 다음 작업이 더 기다려진다. 12월 10일까지. (02)3479-011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상상 그 이상의 루브르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상상 그 이상의 루브르

    대영박물관, 바티칸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이자 영화와 소설 ‘다빈치 코드’의 주무대였던 루브르의 뒤편은 상상 이상이었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루브르박물관 내 ‘프랑스 복원 및 보존 연구소´(C2RMF) 곳곳에 최고의 작품과 유물들이 즐비했다. 무궁무진한 이 ‘보물창고’에 공개된 곳보다 감춰진 곳이 많으니 ‘성배’나 ‘프리메이슨’ 같은 수많은 음모론의 온상이 된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루브르는 프랑스 전체 박물관 소장품의 60%를 보유하고 있다. 복원이나 연구가 루브르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루브르 지하에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촘촘히 연결돼 있습니다. 이 지하 통로 덕분에 작품들은 건물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게 되고, 운반과정은 외부에 철저히 숨길 수 있습니다.” 소피 르페르는 복원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작품이 옮겨지는 과정부터 털어놓았다. 지하도로와 작품을 옮길 수 있는 대형 엘리베이터들은 1983년부터 1989년 사이에 진행된 루브르 대보수 기간에 설치됐다. 이때 함께 조성된 것이 그 유명한 666개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루브르의 입구, 유리 피라미드다.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주도로 이뤄진 루브르 대보수에는 30억 프랑이라는 거액이 투자됐고, 이는 오늘날 루브르의 명성으로 이어졌다. 프랑스 전역에서 옮겨진 소장품들 역시 지하통로를 통해 C2RMF로 운반된다. 작품이 C2RMF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카메라다. 이틀 이상 가시광선·적외선 투사, 특수 촬영 등을 거치면 과거에 복원된 부분이나 덧칠된 부분이 그대로 나타난다. 복원 이전과 이후를 기록하는 목적도 있다. 엑스레이 촬영을 이용하면 화가가 작품을 그리던 당시의 기법과 생각까지도 읽을 수 있다. 루브르가 최근 매입한 17세기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작품을 보고 있던 엑스레이 판독팀 관계자는 그림을 보여 주며 “처음 그릴 때는 작품 속의 바이올린이 없었고, 트럼펫이 2개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면서 “19세기 말 뢴트켄의 엑스레이 발견은 복원 기술의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원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것인데, 엑스레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탄소연대측정실과 재료분석실 등 다양한 연구실을 지나 커다란 방에 들어서자 박물관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원통형의 첨단장비가 눈에 들었다. C2RMF의 자랑인 루브르선형입자가속기(AGLAE)다. 이온빔을 쏘아 훼손 없이 작품의 연대는 물론 성분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AGLAE는 박물관에 있는 세계 유일의 가속기로, 1000억원을 호가한다. 훼손된 이집트 파피루스 글자를 해독하거나, 각종 고대작품의 연대를 세밀하게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AGLAE실 관계자는 “세계 각국 연구진들이 가속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지만, 미술품만을 위해 이런 장비를 구비하는 건 루브르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과학의 힘이 인류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 가운데 무엇을 먼저 연구하고, 복원할까. 그 순서를 어떻게 정하는지 궁금했다. 복원사 파스칼 프티는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작품을 만든 사람의 명성”이라며 “한 사람의 방이나 소장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에 소장자도 주요한 고려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복원에 들어가는 돈을 해당 박물관에서 지불할 수 있느냐도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지하 연구소 위에는 ‘에콜 드 루브르’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복원학교와 C2RMF 복원실이 있다. ‘밀라노미술품복원학교’와 함께 두 개뿐인 복원전문학교이자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에콜 드 루브르는 학생 수가 적고 입학시험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가구 분야의 경우 매년 5명의 전문가만이 배출된다. 복원기술 이외에 역사학, 박물관학과도 있고 역사·문화적 배경을 우선적으로 가르쳐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소양을 갖춘 장인을 양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 학생은 “입학에만 300~40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면서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에서 학교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실제 입학에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복원실은 5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1~3층은 미술품·장신구 복원실, 4층은 섬유·카펫 복원실, 5층은 가구 복원실이다. 미술품 복원실에 들어서자 크고 작은 작품들이 마치 도서관의 책처럼 산더미로 쌓여 있는 장관이 펼쳐졌다. 각 창가마다 커다란 그림 하나씩이 세워져 있고, 복원 전문가들이 확대경을 쓴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붓칠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주인공 준세이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복원사들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시간보다 그림을 쳐다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붓칠 한 번을 위해 여러 각도에서 작품을 지켜보고, 앞뒤로 오고 가는 일을 반복했다. 작업 중인 작가 이름과 작품명을 알려줄 수 없다는 한 복원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작품의 가치가 내 붓칠에 달려 있다는 점 때문에 항상 어깨가 무겁다.”면서 “맡은 작품을 그린 작가의 생각이나 당시 시대적 배경을 느끼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한 분위기의 그림 복원실과 달리 4층 가구복원실은 활기가 넘쳤다. 황실가구에 많이 쓰였던 거북이 등껍질 물량이 세관을 통해 오랜만에 확보됐기 때문이었다. 루이 15세가 사용했던 시계 받침대를 복원하고 있던 마크 앙드레 파울린은 “예전에 사용했던 소재들 중 상당 수가 요즘 시대에 유통이 금지된 경우가 많다.”면서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에서 꺼내 사용하곤 하는데, 종종 세관에서 압수된 물건이 이쪽으로 넘어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복원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실제 복원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19세기 후반 화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예술사 프레데릭 르블락은 “가장 중요한 것은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지만, 처음 그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흔적까지도 살리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형을 아무리 재현한다고 해도 원작자가 그린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복원에 사용되는 모든 것들은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도둑맞아서 유명해진 모나리자, 예술을 보는 인간심리 왜 그럴까

    ‘모나리자’가 유명해진 까닭은. 답은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1911년 8월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도난당했다. 이때만 해도 ‘모나리자’(가로 53㎝·세로 77㎝)는 루브르를 대표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신비의 미소를 상징하는 여인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도난당한 ‘모나리자’를 찾기 위한 수사인력이 대대적으로 동원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현상금이 걸리고 심령술사까지 등장했으나 2년 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모나리자’가 걸려 있는 텅빈 벽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또 ‘모나리자’는 관광지의 각종 상품부터 커피잔, 심지어는 미국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에 의해 대량으로 복제되기 시작했다. 독일 평론가 발터 베냐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말하기 전에 이미 ‘모나리자’는 문화적으로 대량복제되는 최초의 미술작품이 됐다. 지금처럼 회화의 역사 속에서 가장 흔하게 복제되고 소비되는 이미지가 됐던 것. 이 절도 사건의 범인은 결국 2년 만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피렌체에서 잡힌다. 그림을 팔려고 내놓자 한 화상이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범인이 백만장자일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루브르 미술관에 ‘모나리자’를 내걸었던 노동자였다. 현장에 지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를 주목하지 않았다. 노동자와 명화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다들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고전문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정신분석학의 대가 자크 라캉 밑에서 정신분석 학위를 받고 현재 영국 런던에서 임상의로 재직 중인 저자 다리안 리더. 그는 모나리자의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잃어버리고서야 비로소 어떤 것을 찾게 되고, 그것의 진가를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여기서 시각 예술을 보는 이유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그러고 쓴 책이 ‘모나리자 훔치기’(박소현 옮김, 새물결 펴냄)이다. 저자는 책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주치의였고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는 평생 지기로 이론적으로 폭넓게 교류했던 라캉의 이론을 중심으로 정신분석학적으로 현대 사회와 시각 문화의 관계를 설명한다. 다빈치와 윌렘 드 쿠닝, 마르셀 뒤샹, 피카소, 현대 미술가 마크 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끄집어내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게 인용된 한 토막.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 ‘도둑맞은 편지’의 내용이다. 도둑맞고 다시 훔쳐오는 편지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놓여져 있는 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수 있듯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다는 것은 실제로 우리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책은 말한다. 1만 65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복원기술 발전 힘은 투자 KIST 연구자 수준 높아”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복원기술 발전 힘은 투자 KIST 연구자 수준 높아”

    “연구소의 장비를 단순히 유지하는 데에만 매년 200만유로(약 32억원)가 넘는 금액이 투자됩니다. 실제 복원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복원을 의뢰한 각 박물관에서 지원하죠. 끊임없이 복원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프랑스가 최고의 박물관을 가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C2RMF 소장인 필리페 월터는 루브르의 힘을 ‘투자’라고 강조했다. 루브르 안에는 복원 및 보존 연구소뿐 아니라 작품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도서관과 데이터베이스, 작품을 돋보이도록 하는 전시기술만 연구하는 파트가 각각 따로 운영되고 있다. 이 모두가 대대적인 투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월터 소장은 “연간 100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루브르를 찾는 것은 최고 수준의 작품을 최고의 환경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라며 “1920년 루브르에서 처음으로 엑스레이를 이용해 그림을 촬영한 뒤로 복원기술은 시시각각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C2RMF에서 일하는 보람에 대해 월터 소장은 “매일매일 세계 최고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를 비롯한 C2RMF 연구원들은 모나리자를 비롯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밀로의 비너스’ 등 수많은 걸작들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있다. 모나리자의 경우 1930년, 1960년, 2004년에 복원실로 옮겨져 보존상태에 대한 분석작업이 진행됐고, 2008년에는 연구원들이 직접 장비를 들고 박물관 내에서 연구를 진행했다고 월터 소장은 설명했다. 월터 소장은 루브르가 갖고 있는 복원 노하우에 대해 “단순한 기술로만 복원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명의 C2RMF 연구진의 전공을 살펴보면 미술, 고고학, 역사, 동양학, 아프리카학, 디자인, 물리, 화학, 원자력 등 사실상 모든 학문이 총망라돼 있다.”면서 “세계 각국에 기원을 갖고 있는 수많은 작품을 연구하는 데 이 같은 다양성이 큰 무기가 된다.”고 밝혔다. C2RMF는 지난해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다. 기초기술연구회가 지원하는 KIST 문화재 보존과학기술사업단 이정인·이연희 박사팀이 C2RMF와 함께 전통염료 분석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월터 소장은 “공동연구를 하면서 KIST 연구자들의 수준이 의외로 높다는 점에 놀랐다.”면서 “KIST에서 가속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데, 루브르에서 선형입자가속기(AGLAE)를 통해 얻은 성과를 생각하면 한국의 문화재 연구가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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