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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을 다루고 합의할까(워싱턴 미소정상회담:1)

    ◎「냉전이후 세계질서」 구상에 최대관심/군사동맹체 변화로 양국위상 크게 약화/쌍무관계 강화,강대국 역량만회 꾀할 듯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31일부터 6월3일까지 워싱턴에서 미소정상회담을 갖고 군축문제를 비롯,통독 및 리투아니아 독립문제 등 국제 현안을 심도있게 논의한다. 본지는 냉전종식을 선언한 지난해 몰타회동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이 갖는 의미와 핵심의제 등을 4회에 걸쳐 풀어 싣는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의 이번주 워싱턴대좌는 냉전종식 후 최초로 열리는 미소정상회담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1945년 얄타와 포츠담에서 풀어진 실을 다시 감아 올릴 좋은 기회라고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지 계간 포린 어페어즈의 편집장 윌리엄 하일랜드는 말한다. 오는 31일부터 6월3일까지 계속될 이번 회담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군축협정과 무역관계 등의 쌍무협조 문제를 매듭짓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중요한 성과를 달성하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은그들이 냉전 이후의 새 질서에 관한 구상을 시작하느냐의 여부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미소간 이념대결이 사라진 것과 더불어 세계문제를 다루는 미소의 역량이 2차대전후 가장 불확실해진 가운데 열린다는 사실도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작년 12월 폭풍우가 몰아치는 지중해의 몰타섬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냉전종식을 선언한지 6개월만에 다시 갖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은 그후의 많은 변화 속에서 특히 소련이 이끌어 온 바르샤바조약기구가 전면 붕괴되고 냉전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서구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새 역할 모색을 위해 고심중이며,강력한 통일독일의 장래가 시급한 국제문제로 부상한 시점에서 열리는 것이다. 더욱이 소련의 국내 안정문제와 진로는 몰타회담후 급격히 불확실해져 볼셰비키혁명 이래 최악의 상태로 지칭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독일 미국과 새로운 안보관계를 협상해야 하는 한편 국내에서 정치 경제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또 민족주의자들의 소요를 억제시키면서 동구정권의붕괴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 더구나 강력한 통일독일의 출현과 관련한 유럽에서의 새로운 세력균형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최소한 미국으로부터의 확고하고 광범위한 보장 없이는 전략무기 감축과 소련군의 동구 철수,통일독일의 나토 귀속에 선뜻 동의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백악관국가안보담당보좌관 브랜트 스코크로프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군축이 아니라 독일의 정치적 지도를 다시 그리는 것이며 그 다음은 소련내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은 지구상 핵무기의 98%에 해당하는 5만5천기의 핵탄두와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이들을 과연 초강대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미소에 국경을 초월한 영향력 행사를 가능케 했던 군사동맹체는 침몰중이며,이에 따라 세계에 대한 미소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금전의 영역이 증대되고 있으나 세계무역에서 미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3,4%에 불과하다. 종전의 미소관계 성격이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파국을 막으려는 방법론에 치중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냉전종식후 국제생활의 새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역점이 바뀌었다고 소련의 미국ㆍ캐나다문제 연구소장 게오르기 아르바토프는 말한다. 바르샤바조약기구가 붕괴되고 독일이 통일을 향해 나아가면서 미국외교도 미소관계 중심에서 소련을 점차 유럽 주요강대국중의 하나로 보는 광범위한 미유럽관계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미소가 유럽의 주요문제에 관해 많은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이번에 논의하는 문제는 앞으로 개최될 일련의 다른 정상회담에서 정리된다. 미국이 참가하지 않는 6월25∼26일의 유럽공동체 정상회담(더블린),7월5∼6일의 나토회원국 정상회담(런던),7월9∼10일의 서방7개국 경제정상회담(휴스턴),6ㆍ7ㆍ9월의 미ㆍ영ㆍ불ㆍ소ㆍ 및 양독 외무장관회담,그리고 금년말로 예상되는 미국포함 전유럽 35개국 정상회담 등이 그것이다. 과거 서방의 통합요소는 안보문제였지만 미래의 통합요소는 무역재정등 경제문제가 될 것이다. 또한 비군사분야에서 세계의 힘의 중심은 둘이 아닌 셋,즉 일본과 동아시아,미국과 캐나다,독일과 유럽이 될 것이며 경제 초강국이 아닌 소련의 세계적 역할은 줄어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는 장거리 또는 전략 핵미사일 감축 및 화학무기 비축 감축협정의 승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베이커 미국무장관과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외무장관은 얼마전 모스크바에서 군축에 관한 예비합의에 도달한 바 있다. 따라서 워싱턴 정상회담후 미소관계는 더욱더 비무장화될 것이다. 오하이오대 역사학교수 존 가디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워싱턴과 모스크바간의 경쟁관계는 경쟁과 협조의 관계로 발전하고 시간이 더 지나가면 협조적 이해관계가 더 많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같은 미소협조는 냉전종식후 약화된 그들의 영향력을 쌍무관계 강화를 통해 만회,유지하려는 관성의 법칙을 반영하는 것일지 모른다.
  • 소 에너지장관 내한/시베리아 개발 논의

    소련연방 각료회의 에너지위원회의 마구로프장관을 단장으로 한 고위인사 11명이 현대그룹 초청으로 25일 한국에 왔다. 이들은 앞으로 오는 30일까지 국내에 머물며 소련연방내 부존자원의 공동개발방안을 현대측과 협의할 예정이다.
  • 「전소고려인협회」 창설/오늘 모스크바서 「자치공화국」 설립등 논의

    소련내 한인들의 모임인 「전소고려인협회」 창립총회가 17일 모스크바에서 열린다고 동아일보가 소 노보스티통신을 인용,16일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인들은 이날 총회에서 그동안 소련내 각지에서 설립된 한인문화센터,고려인협회등 각종 단체들을 단일조직으로 정비하는 문제와 연해주에 한인민족공화국을 설립하는 문제등을 논의한다. 이에따라 각종 한인단체들은 「전소고려인협회」로 통합,모스크바에 본부를 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한인자치공화국이나 자치주설립문제는 이미 지난 3월 하바로프스크에서 각지역 한인대표들이 모여 논의한 것을 다시 토론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총회에서는 한인고유의 전통문화와 언어의 보급ㆍ유지문제도 논의할 계획이다.
  • 소련 반체제 사진작가 세르게이 멜리코프

    소련 반체제 사진작가 세르게이 멜리코프씨(34)가 소련내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과 인권유린의 현장을 폭로하기 위해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 초청으로 15일 한국에 왔다. 반정부 발언으로 지난 82년부터 86년까지 3년6개월동안 타시켄트등 여러곳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멜리코프씨는 『그동안 수십년에 걸쳐 소련에서 행해졌던 「인민의 이름으로 인민을 위해서」라는 서두로 시작된 인민체제하의 수많은 정책들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한국인들에게 여실히 보여주기 위해서 왔다』고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혔다. ◎“소 「수용소군도」 참상 알리겠다”/수용소 수감중 몰래 찍은 사진 1백여점을 휴대/「관련문서」 한국서 책으로 출판,전시회도 계획 수용소생활 동안 비밀리에 찍은 사진 1백여점을 가져온 멜리코프씨는 『소련의 정치범 수용소는 1918년 레닌의 명령으로 북극의 백해연안 솔로베츠키섬에 처음으로 건설된 이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지난 86년초까지 존재하고 있었다』며 『현재는 불로 태우고 불도저로 밀고산을 새로 만드는 등 지형을 아예 바꿔 그 흔적을 거의다 없앴는데 그같이 역사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죽음을 무릅쓰고 처참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말했다. 수용소에서의 학살행위가 가장 심했던 것은 스탈린시대로 이 시대에만 4천만명이 수용됐으며 그 가운데 70∼80%는 죽었다고 밝히는 멜리코프씨는 『인종학살을 감행한 스탈린은 소련내에서도 공식적으로 범죄자로 인정되고 있다』며 『이를 방조한 국제법도 책임이 있고 이같은 행위는 법적 시효에 관계없이 단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소련에서는 최근까지 스탈린시대의 여러가지 방법들이 그대로 익숙하게 행해져 왔으며 지금 민주적 변화가 일고 있기는 하지만 민주주의자들과 스탈린식 사회주의자들간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자신이 돌아본 수용소중 1947년부터 53년까지 정치범을 수용했던 마가단 수용소에는 어린이 수용소가 별도로 있었으며 그곳에서 죽은 수백명에 달하는 어린이의 신발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타시켄트의 현대식 형사범수용소에서는 18∼19세의 소년범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켜 아프간전선으로 보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오래된 수용소에는 죽은 사람들의 해골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으며 대부분 두개골이 톱으로 잘려져 있는 것이 일종의 생체실험에 이용된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레닌그라드대학에서 언론학을 공부한 뒤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민간단체인 「소련 어린이기금」부설 아무르발행국의 대외관계 부장직과 소련문화기금 하바로프스크지국의 지도위원직을 맡아 소련 극동지방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멜리코프씨는 소련거주 한국인들에 대해 『매우 어려운 환경속에서 끝까지 인내로 버텨 지금은 땅도 많고 잘살고 있다』고 전하면서 『한국과 소련의 극동지방과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더 활발한 교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같은 관계강화를 위해 하바로프스크시에 한국문화센터 창설을 제의했으며 이것인 성사된다면 센터부지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은행설립,한국학교 설립,한국출판사의 설립 등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로 소련의 새 헌법에 따라 한국인들의 문화기금이 설치돼 있기 때문에 이같은 분야에의 지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산악관련 사진을 찍고 있으며 중국의 텐산산맥을 주제로한 사진집과 동북아시아 지방을 주제로한 사진집을 일본에서 출판할 예정이라는 멜리코프씨는 『그동안 찍은 사진들과 입수해온 수용소 관련 비밀문서들을 「러시아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 출판하고 또 전시회도 가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련의 정세를 묻자 그는 『이렇게 자유스럽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소련정치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는 부인 멜리코마야 볼리나씨(29)와 딸 나스차양(2)과 함께 16일 마산으로 내려가 그곳 경남대에서 학생들에게 1917년 소련 공산혁명 이후 후르시초프시대까지의 소련 정치의 잔학성에 대해 강연을 한 뒤 오는 18일 출국할 예정이다.〈나윤도기자〉
  • 소,베트남주둔군 곧 철수/미의 비 기지 존속여부와 무관

    ◎주필리핀 소대사 【마닐라 로이터 AFP 연합】 소련은 필리핀주둔 미군기지의 장래에 관한 미국과 필리핀 정부의 협상결과와는 상관없이 베트남 주둔 자국군을 철수할 것이라고 필리핀 주재 소련대사가 8일 밝혔다. 올레그 소콜로프대사는 필리핀내 미군기지의 존속여부를 놓고 미국과 필리핀간의 협상을 5일 앞둔 이날 한 오찬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미국정부에 대해 아시아 지역에서의 실질적인 군사력 감축과 아울러 이 지역의 안전보장을 위한 정치적 기구의 결성에 관한 협상에 착수할 것을 촉구했다. 스콜로프 대사는 만일 미국이 필리핀내 군사기지를 존속하게 되더라도 베트남의 캄란만 주둔병력을 철수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고 답변했다.
  • 소,“중앙정부권위 도전 불용” 선언/고르바초프

    ◎“지방 월권행위땐 비상권 발동”/소,리투아공과 협상 가능성 시사 【모스크바 로이터 AFP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새로 선출된 각지방위원회가 월권행위를 자행하고 중앙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면 자신이 직접 개입해서 권한을 행사할 것임을 선언했다고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가 28일 보도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번주 시베리아의 산업도시 스베르들로프스크를 방문,노동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부 급진적인 지방위원회들이 중앙정부의 권위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앞으로 중앙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는 일체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고 프라우다는 밝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지역 및 시위원회들이 마치 연방최고회의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의적으로 문제들을 수집,해결하려 들고 있다』면서 『어떤 경우에도 헌법을 위반하는 자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만약 연방헌법에 의해 부여돼 있지 않은 권력을 침탈하려 기도하는 자들이 있으면 나는 대통령으로서 이에 직접 개입,단호히 다스려나갈 것』임을 천명했다고 프라우다는 전했다. 【모스크바 AP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대변인은 28일 서독과 프랑스가 리투아니아의 독립선언을 당분간 유예하도록 촉구한 것은 리투아니아의 긴장완화를 위해 「건설적인 신호」라고 밝힘으로써 리투아니아와의 협상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아트카디 마스레니코프대변인은 소련중앙정부가 주장하는 것은 리투아니아의 독립선언을 철회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를 「동결」시켜 독립을 유보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경유 싱가포르행 소 항공,노선취소/북한등 통과거부로

    【싱가포르 로이터 연합】 소련국영 아에로플로트항공사는 25일부터 운항할 예정이었던 서울을 경유하는 싱가포르 하바로프스크노선 운항을 돌연 취소했다고 아에로플로트대변인이 24일 밝혔다. 아에로플로트항공사의 극동지역 책임자인 바딤 사진은 이날 싱가포르 하바로프스크노선 취항계획이 중국ㆍ북한ㆍ일본당국으로부터 영공통과 승인을 받지 못해 지난주 취소됐다고 말했다.
  • 소 경제규모 미국의 25% 수준/소 전문가,CIA보다도 낮춰 평가

    ◎군비 GNP의 25%… 공식발표의 3배/생활수준도 미국의 20%선으로 열악 소련의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정보분석가 및 학자들과 가진 회의에서 소련경제를 놀라울 정도로 가차없이 낮게 평가했다고 회의주최자들이 23일 전했다. 이들 소련 경제전문가들이 표명한 견해는 소련경제의 방향전환 전망까지도 비관적이었다고 미기업연구소의 학자이자 회의의장을 맡은 니콜라스 에버스태트가 전했는데 소련 경제전문가들이 내린 결론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들어 있다. ▲소련경제는 그 규모가 미국경제의 약 4분의1로 세계8위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소련경제의 규모를 미국경제의 절반인 세계2위로 공식 추정한 바 있다. ▲소련군비는 정부의 공식 수치인 국민총생산(GNP)의 9% 또는 CIA가 추정한 15%보다 많은 GNP의 25%이다. ▲소련시민의 평균생활수준은 미국의 약 20%이다. CIA는 미국수준의 3분의1로 잡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올레그 보고몰로프는 소련의 연간 군사비를 GNP의 20∼25%인 약 2천억루블로 잡았는데 이것은 공식적으로 전해진 7백70억루블과는 큰 차이가 있다. 【소련의 군사부담 수준은 대체로 북한과 같으며 이것은 소련이 전쟁태세에 있는 고도로 군사화된 사회임을 의미한다』고 에버스태트 의장이 말했다. 소련의 고위 경제전문가들이 미국의 경제전문가들과 솔직한 의견교환을 하기로는 처음인 4일간에 걸친 이번 회의에서 뜻밖에 일이 많았다면서 그 한가지는 소련의 경제적 실적을 과장한 소련의 선전을 미CIA가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소련관리들이 비난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소련의 1류경제학자 빅토르 벨킨은 소련의 GNP가 현재의 달러가치로 현재 연간 약 5조3천억달러인 미국 GNP의 14∼28%에 불과하다고 추정하면서 이같은 수준으로 소련은 미국 일본 서독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인도 다음으로 세계 8위라고 말했다.
  • 소 무역대표부에 도둑

    지난 22일 하오2시30분쯤부터 23일 상오9시 사이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항터미널건물 6층 601호 주한소련무역대표부에 누군가 들어가 책상과 캐비닛등을 열고 서류등을 뒤지고간 흔적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소련무역대표부 나자로프소장(50)은 『지난 22일 하오 퇴근한 뒤 다음날 출근해 보니 출입문의 열쇠구멍이 드라이버로 뜯기고 사무실안 책상서랍에 있던 서류들이 사무실바닥에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고 말했다.
  • 북한의 핵사찰 수용/일,소에 영향력 요청

    【도쿄 연합】 일본정부는 20일 핵재처리 공장건설과 관련,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도록 소련이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외무성의 아카오(적미)유엔국장은 센다이(선대)에서 열린 유엔군축회의참석차 일본을 방문중인 페트로프스키 소련외무차관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은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 위반상태가 시정되기를 바란다』며 이같이 요청했다.
  • 남북한기업 합작설 일 보도사실과 달라/동아제약회장 밝혀

    【고베=강수웅특파원】 강신호동아제약회장은 17일 한국과 북한이 합작,소련 하바로프스크에 약품제조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는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의 보도에 관해 『북한과의 합작은 생각해 본 일도 없으며 북한과는 실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며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 시베리아 철도개통이후 한인 푸대접/러시아동방정책 추진과 위상변모

    ◎러시아농민들의 극동행렬에 밀려나/1990년이민장려칙령마저 폐기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을 연결하는 5천8백마일의 시베리아철도는 명실공히 세계최장의 철도라 할 수 있다. 이 철도의 건설은 러시아의 동방진출과 동방경영을 보다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계획이 완성된 것은 1890년 12월이었다. 당시 집권자인 알렉세이3세는 우랄산맥 동쪽의 첼리아빈스크로부터 옴스크 이르크추크를 거쳐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철도건설을 결정, 1891년에 그의 아들 니콜라이를 시베리아철도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한 후 본격적인 건설에 나섰다. 공사는 모두 6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당초 건설계획은 1억7천5백만달러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1891년부터 1903년까지 13년동안에 완성키로 돼 있었다. 그러나 험악한 지형과 기후조건 등으로 건설공사가 지연된데다 노일전쟁ㆍ1차세계대전 등을 겪으며 계속 지연돼 볼셰비키혁명 1년전인 1916년에야 최종적으로 완공을 보게 됐다. 당초 계획보다 2배나 긴 26년만에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착공 7∼8년만에 개통돼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개통된 극동의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간 우수리선은 1891년에 착공,1897년에 완성되었으며 바이칼호이동의 공사는 1904년까지 대부분 마무리됐었다. 어쨌든 시베리아철도는 이 공사 책임자였던 세르게이 위테교통통신상의 말대로 『금세기 전세계 최대 사업중의 하나』였음에 틀림없다. 시베리아철도의 개통은 러시아인들의 시베리아 이민에 많은 편리를 제공하게 되었고 따라서 극동으로의 이주에 필요한 비용도 대폭 경감하게 됐다. 그러자 이민의 수도 늘어나게 되어 시베리아철도위원회는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에 많은 혜택을 주었던 1861년의 이민장려칙령을 1900년 6월에 폐기해 버렸다. 가난한 러시아 농민들은 주로 1900년 이후부터 시베리아철도를 따라 동방으로의 이주를 시작했다. 1900년에는 1만7천명의 농민들이,그리고 1901년에는 1만1천3백64명의 농민들이 연해주로 옮겨왔다. 이러한 이주농민의 급증에 따라 농민에게 분여할 경작지가 부족하게 되자 1902년에는 사전답사를 통해 1인당 15데샤치나(15정보)의 토지를 확보할 수 있을 경우에만 이주를 허용하는 제도가 도입됐다. 이로 인해 이민의 수는 다소 감소해 1902년에는 5천8백62명,1903년 8천9백11명,1904년 1천3백77명,1905년에는 2백14명이 연해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1905년의 혁명이후에 러시아정부의 정책이 다시 바뀌어 극동에의 이민을 장려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유럽러시아 지역의 지주들이 농민의 소요에서 벗어나도록 그들에게 이민을 허용하려 했던데 있었다. 이에 따라 이민 숫자가 크게 늘어나 20세기초 극동지방의 인구급증을 초래했다. 1897년에서 1914년까지 시베리아의 인구는 4백60만에서 7백60만이 되어 65.2%가 늘어났으며 그중 극동지방의 인구는 90만에서 1백60만으로 77.8%가 증가했다. 한편 행정편제는 1884년에 자바이칼,아무르,연해주(프리모르)지방이 극동변강을 구성하고 있었으며,1894년에는 자바이칼지방이 동시베리아 총독의 관할에 귀속됨으로써 분리됐고 1909년부터 1917년까지 극동변강은 아무르,프리모르,캄차카,사할린 등 4개의 지방(오블라스트)으로 구성되었다. 극동변강의 행정 책임자는 총독이었으며 각 지방의 책임자는 군무지사로 불리웠고 그 밑에 군ㆍ면에 해당하는 행정으로 우에즈드,볼로스트가 있었다.
  • 일 니가타∼사할린 항공편 6월에 개설

    【도쿄=강수웅특파원】 일본 니가타(신사)와 소련의 사할린 내륙을 연결하는 직행 항공편이 오는 6월부터 개설될 전망이 밝다고 일본 산케이(산경)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이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 의한 개방정책의 일환으로 군사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사할린 상공을 개방키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이 보도는 전했다. 직행항공로는 니가타를 출발,소련 극동지역의 현관인 하바로프스크를 경유해 사할린의 샤프체르스크(구일본명 탑로)에 도착하는 것으로 니가타∼하바로프스크가 약 2시간쯤 걸린다.
  • 첫 서울취항… 메틸알코올 나눠마셔/소기승무원 1명 사망ㆍ3명 입원

    지난달 30일 우리나라에 첫 취항했던 소련 국영 아에로플로트항공 승무원 가운데 4명이 호텔 객실에서 메틸알코올을 물에 타 마셔 1명이 숨지고 1명은 중태,2명은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4일 하오 6시쯤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 힐튼호텔 325호실에 투숙중이던 블라디미르 마슬로프씨(36)가 심한 복통과 구토증세를 일으켜 서울 종로구 한국병원으로 옮겼으나 5일 0시10분쯤 숨졌다. 이에 앞서 숨진 마슬로프씨와 함께 투숙했던 알렉사노레 보리소프(31),빅토르 리콜리네(30),세르게이 나브로프씨(32) 등 3명도 3일 자정쯤 같은 증세로 한국병원에 입원했다가 6일 상오 10시쯤 서울 강동구 풍납동 중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리콜리네씨는 중태다. 보리소프씨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일 저녁 서울 이태원에서 3달러를 주고 알코올 3병을 산뒤 호텔객실로 돌아와 넷이서 함께 이 알코올을 물에 타 나누어 마신뒤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 심한 복통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보리소프씨는 『소련에 있을 때도 가끔 알코올을 물에 타 마셔왔다』고 말했다. 이들의 치료를 맡은 중앙병원 내과과장 홍창기씨(53)는 『3명이 모두 시각장애를 일으키고 있으며 피 속에 산이 많이 포함된 산혈증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메틸알코올을 마신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숨진 마슬로프씨도 죽기전에 완전히 시력을 잃었으며 부검결과,사인이 알코올중독으로 판명됐고 식도와 위,십이지장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이들이 인체에 치명적인 공업용 메틸알코올을 너무 많이 마셔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이들에게 메틸알코올을 판 업소를 찾고있다. 이들은 지난달 30일 낮 12시48분 아에로플로트소속 SU599 일류신62­M 정기여객기편으로 동료승무원 11명 및 승객 51명과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그동안 서울 힐튼호텔에 머물렀었다. 숨진 마슬로프씨는 소련에서 떠나기전부터 몸이 아팠으나 한국에 오고싶어 이를 숨기고 자원,오는 도중 줄곳 기내에서 누워있었다. 한편 아에로플로트 첫 취항의 소련측 대표로 왔던 민항성 제 1차관 보리스 E 파니코프씨도 이날 하오 2시50분쯤 김포공항 1청사 귀빈실에서 출국대기중 고혈압으로 쓰러져 공항의료실에서 응급치료를 받을 뒤 출국했다.
  • 소 방송 이산가족찾기 출연/교포 2명의 친척찾아 연락(조약돌)

    ○…대한적십자사는 4일 소련관영 모스크바방송의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국인 교포 2명의 친척을 찾아내 이를 소련측에 연락. 적십자사는 최근 소련관영 모스크바방송이 매주 1,3주 일요일 하오6시에 정기적으로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을 방송한다는 계획에 따라 지난 1일 안금자(62ㆍ여ㆍ하바로프스크 거주)ㆍ송완용씨(40ㆍ〃) 등 한국인 교포 3명이 출연한 가운데 첫번째 방송을 실시하자 이를 청취,국내에서 송씨의 조카인 안송죽씨(59ㆍ여ㆍ경기도 안산시 고잔2동 670)와 안씨의 삼촌인 송기상씨(61ㆍ전북 정읍군 감곡면 계룡리 184)를 수소문끝에 찾아냈다.
  • 「태극나래」모스크바에 첫 안착

    ◎김포서 10시간17분비행끝 셰레메치예프공항에/본사 이중호특파원KAL기취항 동승취재기/한복교민50명””어서오세요””뜨거운 환영 “”몇년전만 해도 생각못한일””승객들 감격 「승객여러분 저희 항공기는 방금모스크바의 세례메치예프 공항에 도착했읍니다. 지금시각은 상오1시58분입니다. 대한항공의 모스크바 첫 취항에 탑승해 주신 것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모스크바의 4월은 역시 봄인데도 밖에는 눈발이 흩날렸다. 그러나 기온은 예상보다 포근했다. 지난 31일 하오8시40분 4백10명의 승객을 태우고 서울을 떠난 대한항공 913편(기장이상재.58)보잉747기가 10시간17분만에 모스크바 공항에 안착하는 순간 이곳에서 내린 45명의 승객은 물론, 이항공편으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스위스 취리히까지 가는 3백55명의 통과여객들도 모두 마음속으로부터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태극마크도 선명한 KAL기는 계류장으로 들어가 멎었고 로딩브리지를 통해 소련땅을 처음밟았다. 탑승객들은 공항청사 입구에서부터일단의 환영인파에 휩싸였다.이곳에 사는 교민 50여명이 손에손에 태극기와 소련기를 들고「어서오십시오」라며 일행을 따뜻이 맞았다. 이 가운데는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 교민3.4세 청소년들도 끼어 있었다.치마 저고리를 곱게 받쳐 입은 여성들도 여러명있었다. 승객들이 이들환영객의 안내로2층입국장에서 입국수속을 밟을때 3층트랜짓라운지(통과여객대합실)로 가던 통과여객들은 아래층의 모스크바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부러운듯 모두난간에 줄지어 서서 내려다 보았다. 소련의 공항당국자들은 다소 행동이 느린듯했으나 우리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승객들은 5층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한밤중인데도 성대한 아에로플로트 관계자와 공노명초대소련영사회처장과 재소교민회의 미하일박회장,허진부회장등 많은 교민들이 참석했다.공처장은 기념사를통해「1945년12월 모스크바에서삼상회담이 열리던 때만해도 45년뒤 이와같은 큰역사적인 일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고 상기시키고「돌이켜보면 양국항공사에는 대단히 가슴 쓰라린 일도 있었으나 이제 우리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며 우애를 다져나가자」고 말했다. 서울∼모스크바 정기항공노선의 개설축하를 위해 함께도착한 우리측이헌석사절단장(교통부 항공국장)은 도착성명에서 그동안의 양국 항공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오늘날 한.소간에 정기노선의 교류가 트이게 된 것은 노태우대통령의 북방정책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접합점을 이루어 가능했던 것」이라고 지적하자 특히 소련측 관계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소련의 항공관계자들은 아에로플로트의 서울취항과 함께 대한항공의 모스크바 취항은 두나라 관계개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지난 31일 하오8시51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모스크바행 첫KAL기는 강릉상공을 지나 30분만에 동해로 빠져 9시32분 일본영공에 들어섰다.도쿄관제탑과의 교신에서 안두찬부기장은「주긴항로인 니가타(신석) 상공까지 갔다가 소련영내로 들어가는 대신 카두보로 직항하겠다」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도쿄관제탑은 곧 항로수정을 허용하겠다고 알려왔다.하오10시40분「여기는 하바로프스크,다이얼을 12450으로맞추어라.현재 위치와 속도.고도를 말하라」는 소련관제자의 영어무선방송이 들려왔다. 소련 상공을 유유히 날으고 있는 KAL기와 소련관제탑과의 첫교신이었다.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고 별빛은 초롱초롱했으나 아래는 칠흑같은 어둠뿐이었다. 이 여객기로 2일부테 레닌그라드에서 개최되는 비행안전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합승 한 한국항공대 홍순길교수(52)는 「모스크바에 태극날개가 취항하다니….형용할 수없는 감개를 느낀다」고 말하고 10년전외국항공기로 모스크바공항에 1시간 기착했을때 무슨일이 없을까 마음조이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술회했다. 비행10시간17분만에 기수는 드디어 아래로 숙였다.모스크바였다.
  • KAL 정기편/소에 공식취항

    【모스크바=이중호특파원】 소련에 첫 공식 취항한 대한 항공 913편 보잉 747정기여객기(기장 이상재ㆍ58)가 1일 상오2시15분(현지시간)모스크바의 셰레멘치예프공항에 도착했다. 모스크바행 45명등 탑승객 4백10명을 태우고 31일 하오8시40분 김포공항을 떠난 KAL기는 동해와 일본북부상공을 거쳐 하바로프스크쪽 소련영공에 진입,시베리아항로를 따라 모스크바의 셰레멘치예프공항에 안착,이곳에서 승객을 내리고 태운뒤 급유를 받고 네델란드의 암스테르담과 스위스의 취리히를 향해 떠났다.
  • 소,주바티칸대사 첫 임명/유네스코 집행위원 카를로프

    【모스크바 AP UPI 연합】 소련은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집행위원회 위원직을 맡고 있는 고위 직업외교관 유리 카를로프(52)를 사상 처음으로 바티칸의 소련 특명 전권 대사로 임명 했다고 관영 타스통신이 29일 보도했다. 바티칸은 지난 15일 소련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 했다고 밝힌 후 이탈리아인 프란세스코 콜라수오노 대주교를 소련 대사로 임명 했었다. 카를로프 대사는 지난 6년동안 이탈리아 주재 소련대사관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지난해 8월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서한을 전달한바 있는 바티칸 문제 전문가이다.
  • 서울∼모스크바 직항시대 “이륙”/KAL 첫 취항의 의미와 앞날

    ◎서울∼파리 항로 3천6백㎞ 단축… 14시간대로/북경경유땐 동아∼유럽잇는 중심지 부상기대 취리히행 대한항공 903편보잉747기가 우리나라 정기여객기로는 사상 처음으로 28일 상오 2시15분(현지시간) 모스크바에 기착함으로써 역사적인 한소항공교류가 시작됐다. 기술착륙만 하는 이 903편에 이어 오는 31일 정식으로 승객을 태운 913편이 모스크바에 취항하면 한소항공교류는 본 궤도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이날 903편으로도 모스크바 공식취항을 준비하기 위한 우리쪽 선발대 10여명이 모스크바에 내려 사실상의 여객취항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모스크바 정기항공노선은 이날의 대한항공 903편에 이어 오는 30일 소련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의 SU599편 일류신 62­M 여객기가 김포에 취항하고 31일 대한항공 913편이 모스크바로 간 뒤 4월25일 아에로플로트 817편이 서울에 취항하면 일단 4개 항로로 편성된다. 대한항공 903편은 27일 하오 8시40분 김포공황을 이륙,동해와 일본 북부상공을 거쳐 소련 영공에 들어가 하바로프스크에서 시작되는시베리아항로를 따라 모스크바에 기착했다가 서독의 프랑크푸르트와 스위스의 취리히로 운항했다. 소련쪽 첫 공식취항기인 아에로플로트 599편은 현지시간 29일 하오 7시30분 모스크바를 떠나 중국의 상해를 거쳐 30일 낮12시 40분 김포공항에 내린다. 우리측 첫 공식취항기인 대한 항공 913편은 31일 하오8시50분 김포를 이륙,903편과 같은 항로를 따라 현지시간 4월1일 상오 3시25분 모스크바에서 승객 49명을 내린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거쳐 취리히로 간다. 아에로플로트 817편은 599편과는 달리 상해를 거치지 않고 하바로프스크쪽으로 서울에 왔다가 싱가포르로 운항할 예정이다. 이들 서울∼모스크바를 잇는 4개 노선은 모두 주1편 왕복운항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아에로플로트와의 쌍무협정에 따라 모스크바 경유 2개 노선 말고도 프랑스의 파리행 4편과 프랑크푸르트행 1편,영국의 런던행 2편등 주7편의 유럽행 노선을 지난 25일부터 시베리아등 소련영공을 통과해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소련영공 통과로 서울∼파리항로는 알래스카의 앵커리지를 경유하던 1만4천5백20㎞에서 1만9백14㎞로 자그마치 3천6백㎞가 단축되고 18시간30분 걸리던 운항시간도 3시간30분∼4시간30분이 줄어들었다. 이에따라 한번 운항에 연료비만 2만달러가량 절감되고 운항시간도 줄어 1회에 8천달러의 소련영공통과료를 부담하더라도 승무원의 휴식과 기체정비 대체기투입등에서 많은 여력이 생겨 고객에 대한 서비스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 운항시간 단축에 따라 상대적 경쟁력이 높아져 그동안 주로 외국항공편을 이용했던 상당수 내국인들은 물론 동남아쪽에서 모스크바로 여행하는 외국인들까지 유치할 수 있게 됐다. 항공전문가들은 서울∼모스크바 항로 및 소련영공통과 유럽항로의 개설로 서울이 아시아의 교통요지로 부상하고 무역중심지로서 발돋움 할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따라 북경항로를 개설하게 되면 서울은 동부아시아에서 유럽을 잇는 항로의 중심지가 되어 그 입지가 크게 강화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북경 및 상해 하바로프스크,도쿄,홍콩,타이베이의 가운데 자리잡아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통 중심축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울이 교통요지로 부상하면서 북태평양노선이 급속히 발전하는데 따라 항공수송량이 증가하고 국제관문으로서의 기능이 갈수록 커질 것은 분명한 일이다. 서울∼모스크바항로의 개설은 이같은 항공측면 뿐만아니라 한소 두 나라의 관계개선 및 동구권국가들과의 협력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항로개설에 따른 한소양국의 인적ㆍ물적 교류의 증대는 그만큼 상호이해를 넓혀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국교수립 등 정치 경제 문화교류등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또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우리와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동구권국가와도 항로개설이 가능해지고 그에 따른 교류확대가 뒤따를 전망이다. 다만 이같은 일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북경취항과 중국영공 통과라는 과제를 안고 있어 당분간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라 할 수 있다. 아직까지 경제협력 등 각종 교류가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탓으로 모스크바행 승객이나 화물이 극히 적어 시장기반이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한소정기 항공노선의 개설이 성사되기까지는 대한항공과 아에로플로트를 비롯한 두 나라 항공관계자들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 우리의 북방정책과 서울 올림픽이 큰 힘이 됐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88년7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대한항공의 조중건 사장 일행은 아에로플로트의 카첸코부사장과 시베리아 항로 운항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이때 소련쪽은 서울 올림픽 참가를 위한 전세기운항문제를 제기하며 앞으로의 상호협조를 다짐했다. 또 서울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지자 소련쪽의 태도가 우리보다 오히려 적극적이어서 우리쪽 관계자들을 놀라게했다. 대한항공은 모스크바취항보다 유럽행 여객기의 소련영공 통과 운행을 우선 희망했으나 아에로플로트의 사모로코프 사장 등은 『우리도 서울에 취항하고 싶다』고 나왔던 것이다. 그들은 『서울이 올림픽을 치른 훌륭한 도시로서 동부아시아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다』면서 모스크바∼하바로프스크∼서울∼싱가포르 노선 등의 개설을 요구 했다. 결국 두나라 관계자들은 주2회 왕복운항등에 관한 최종합의에 이르렀을 뿐만아니라 대한 항공이 희망하고 있는 서울∼북경∼모스크바 항로의 개설에도 소련쪽에서 적극적으로 측면지원하는 데까지 뜻을 모아 소련취항의 효과는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KAL기,모스크바 첫 기착/취리히행,오늘 새벽

    유럽행 승객과 승무원등 3백63명을 태운 대한항공 903편 보잉747기(기장 정태관ㆍ59)가 27일 하오 8시40분 김포공항을 떠나 일본 니가타 북부와 소련의 하바로프스크및 시베리아 상공을 거쳐 10시간35분만인 28일 상오 2시15분(현지시간) 우리나라 정기 여객기로는 사상 처음으로 모스크바의 셰레멘치예프공항에 기착했다. 이 여객기는 모스크바에서 1시간25분쯤 머물면서 급유를 받고 승무원을 바꾼 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스위스 취리히로 갔다. 대한항공은 이에 앞서 지난 25일부터 파리행 901편을 비롯한 주9편의 유럽행정기 여객기를 시베리아항로로 운항하고 있으며 오는 31일 913편으로 모스크바에 공식 취항한다. 대한항공 913편은 31일 하오 8시40분 승객 4백10여명을 태우고 김포공항을 떠나 4월1일 상오 2시15분(현지시간) 모스크바에 착륙할 예정이며 이에 앞서 소련 아에로플로트사의 서울행 정기여객기 SU599편이 30일 상오 10시35분 승객을 태우고 김포공항에 취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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