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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라크,이스라엘 재공격/이스라엘,“보복” 선언… 확전위기

    ◎텔아비브에 미사일 3발… 11명 부상/다국적 지상군,이라크진격 태세 【예루살렘·위싱턴·니코시아 외신종합연합】 페르시아만 전쟁 3일째인 19일 이라크가 또다시 이스라엘에 미사일 공격을 가함에 따라 중동전면전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두번째 미사일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은 즉각 반격에 나서지는 않았으나 아비 파즈너 이스라엘 총리실 대변인은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에 대해 보복할 것이며 「언제,어디서,어떻게」 공격할 것인지는 곧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태교의 안식일인 이날의 미사일 공격은 상오7시20분(현지시간·한국시간 하오2시20분)을 전후해 텔아비브에 떨어졌으며 이번에도 화학무기는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 국방부와 이스라엘 군당국은 텔아비브에 모두 3발의 스커드미사일이 떨어졌다고 확인했으나 미 CBS방송은 텔아비브에서 4차례,예루살렘에서 7차례의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군당국도 11발의 지대지 미사일을 발사,이스라엘내 여러 목표물들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미사일 공격을받은 후 이스라엘 TV는 벽이 허물어진 한 빌딩,크게 부서진 체육관,몇개 가옥의 유리창의 깨진 모습 등을 방영했다. 이스라엘 군대변인은 이날 2차 미사일 공격으로 11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19일 새벽(현지시간) 캠프데이비드 산장에서 취침하다가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으로부터 이스라엘이 받은 두번째 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대이라크 보복을 계속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19일 상오11시 캠프데이비드 산장에서 댄 퀘일부통령,콜린 파월 합참의장,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보좌관,존 수누누 백악관 비서실장 등 고위보좌관들과 만나 긴급 안보회의를 갖고 이스라엘에 대한 이라크의 미사일 공격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이에앞서 부시 대통령은 18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통화중 『이라크가 아직도 강력한 군사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쟁은 앞으로도 수주일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 TV들이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도 『전쟁은 결코 값싼 것이거나 용이한 것은 아니다』고 말해 일반의 예상보다 전쟁이 길어질 것임을 시사했다. 다국적군은 18일 이라크의 대이스라엘 미사일 공격이 있은후 이동식 미사일을 포착,섬멸하기 위한 대대적인 스커드사냥에 나서 40여리로 추정되는 스커드미사일중 10기를 파괴했다. 다국적군은 이와함께 19일에도 바스라 등 이라크 남부와 쿠웨이트 참호속에 있는 이라크 지상군을 분쇄하기 위해 24시간 연속 공급에 나서고 있으며 바그다드를 비롯한 군사거점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공습을 계속하고 있다.
  • 백악관이 개전에 돌입하기까지/NYT 보도

    ◎부시,제네바대좌 결렬후 응징 결심/마지막까지 후세인 양보 기대… 하루 기다려/15일 상오10시30분 「사막의 폭풍」 작전 사인 조지부시 미국 대통령은 언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구체적으로 결심했을까. 왜 유엔의 철군 시한을 넘긴후 하루를 더 기다렸을까. 뉴욕 타임스지는 18일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공격 결정과 함께 관여한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의 말을 인용,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도 결심한 배경과 그 뒷이야기들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선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허용한 국가안보 지시각서에 언제 서명했을까. 부시대통령이 이 명령문에 서명을 한 것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기 하루 전날 즉 유엔의 철군시한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던 15일 상오10시30분(미국 동부시간·한국시간 16일 0시30분). 부시대통령은 이날 백악관내 대통령 집무실에서 타이프 용지에 담긴 지시각서를 다시 한번 읽어본뒤 서명,딕 체니 국방장관에게 넘겨주면서 철군시한이 지난뒤 24시간 이내에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로부터 철군한다는 보장이나 약속이 없는한 명령문에 있는 대로 군사행동을 개시하도록 지시. 이 자리에는 부시대통령,체니 국방장관 이외에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존 수누누 대통령 비서실장,댄 퀘일부통령,콜린 파월 합참의장,로버트 게이츠 백악관 안보담당특별 부보좌관 등만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부시대통령은 철군시한을 남기고 왜 하루를 기다렸는가. 왜 하루만을 기다렸는가. 부시대통령을 포함한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이미 작심했으면서도 후세인이 마지막 순간에 타협해 올 것으로 기대한 흔적이 있다. 즉 후세인이 그의 국민들에게 체면을 살리려 철군시한인 15일까진 버티겠지만 철군시한을 넘기고선 모종 양보조치를 취할 것으로 믿는 것 같다는 것. 미국 등 연합군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개시된뒤 미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가 『우리는 후세인이 좀더 계산이 밝고 영리한 인물인 줄로 믿었다』고 전제한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한 이해득실이 어떤건지에 전혀어두웠으며 그가 그토록 멍청한 친구인지를 몰랐던게 미국측의 최대 잘못이었다』고 야유한 말은 음미할 대목. 철군시한이었던 15일 자정(미국 동부시간)을 넘기고도 후세인쪽에서 전혀 이렇다할 반응이 없자 부시대통령은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개시되던 16일 아침 스코크로프트 보좌관을 불러 체니 국방장관에게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당초 계획대로 이날 저녁 개시하도록 전화할 것을 지시.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에 의하면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감행해야겠다고 구체적으로 작심한 때는 9일 제네바에서 있은 베이커 국무장관과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의 타협모색을 위한 협상이 결렬된 직후. 그 이전부터도 미 행정부내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감돌았고 『전쟁은 시간만 남았다』는 위기감이 팽배했으나 제네바 미­이라크 외무장관 회담에서 어쩌면 이라크로부터 전격제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던 것도 사실. 베이커 국무장관이 제네바의 인터컨티넨틀호텔로부터 전화를 걸어 부시대통령에게 6시간 27분간의 회담에아무런 진전이 없었으며 이라크측으로부터 일언반구 타협기미가 없었다고 보고하자 부시대통령과 그외 고위 보좌관들은 전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최종 판단했다는 것. ▲이라크에 대한 공격이 있던날 아침 부시대통령은 베이커 국무장관과 스코크로프트 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백악관으로 불러 이날 저녁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감행키로 결정. 이어 베이커장관은 반다르 빈술탄 주워싱턴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국무성으로 초치,미국이 16일 저녁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기로 했음을 통고. 베이커장관은 이보다 몇시간뒤 잘만 쇼발 주워싱턴주재 이스라엘 대사도 불러 이같은 방침을 통고하면서 이스라엘이 우려하는 이라크의 스커드­B미사일진지도 미군의 최우선 공격목표임을 설명. 여느때 같으면 부시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었을 소련에 대한 미국 방침 통고는 베이커장관에 의한 신임 소련 외무장관 알렉산드르 베스메르트니흐에의 전화통화로 그쳤다. 그후 고르바초프로부터 후세인과의 직접대화를 요청한 메시지가 부시대통령에게 발송됐으나 메시지가 워싱턴에 도착했을땐 이미 미군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된 이후였다.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공격 결정을 사우디가 크게 환영했음도 특기할 사실이다. 미 행정부 관리들에 의하면 사우디측은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간의 제네바 미­이라크 외상 회담결과에 사우디가 매우 초조해 했다. 결국 베이커­아지즈 회담이 결렬되자 사우디측은 희색이 만면 했다는게 미 행정부 관리들의 얘기. 한편 제네바 회담을 마치고 귀로에 사우디에 들른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파드 사우디국왕과 회담하는 가운데 전쟁이 불가피할 것 같다면서 『괜찮으냐』고 묻자 파드국왕은 흡족한 표정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 한·소 과학장관 회담/5월13일 서울에서

    한국과 소련은 정부간 과학기술협력 기반을 적극 조성해 나가기 위해 3월26일 서울에서 차관급을 수석대표로 하는 한소 원자력 공동조정위원회를 갖고 20개 과세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한편 5월13∼16일에는 서울에서 한소 과학장관 회담을 개최,53개 첨단기술 공동연구 및 기업화 과제를 추진키로 했다. 서정욱 과학기술처차관 주재로 MG·크루그로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17·18일 과기처에서 열린 제2차 한소 경협 과학기술분과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의 양국간 과학기술협력 기반조성,첨단기술 공동연구 및 기업화,원자력분야 협력방안을 폭넓게 논의,소 대표단의 출국전 20개 원자력관련 공동연구문제를 매듭짓기로 했다.
  • 리투아공 유혈사태 왜 일어났나

    ◎공화국 탈소 움직임에 「초강경 대응」/소 보수파 입지 강화의 반증 세계의 이목이 온통 페르시아만 쪽으로 몰려있는 가운데 소련당국의 독립요구 시위를 벌이는 리투아니아 공화국 시민들에게 유혈진압을 단행했다. 흡사 지난 1956년 전세계의 관심이 수에즈운하에 쏠려있는 동안 헝가리에 탱크를 몰고 들어간 경우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최근 수개월간 크렘린 내부의 움직임을 보면 이번 무력진압은 페르시아만 사태와는 관계없이 언젠가는 일어날 사태발전으로 예견돼 왔었다. 무력진압의 표면적인 이유는 소련연군에 대한 징집 거부이다. 발트해 3개 공화국을 비롯해 몰다비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등 독립노선을 표방한 7개 공화국에서는 현재 연방군으로의 징집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 공화국 청년들의 입대불응 이유는 소련군이 점령군이기 때문에 입대명령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방공화국 정부들은 이들에게 징집에 응하지 말것을 공공연히 부추기고 지난 8일 크렘린이 병력을 투입,병역 기피자 검거에 나서자 시민들에게 총궐기해 이를 저지할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크렘린 권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크렘린은 그동안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해오며 민족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취해왔다. 고르바초프 집권 이래 민족소요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은 89년 그루지야 공화국 수도 트빌리시 시에서 군이 발포,20여명을 사망케 한 것과 90년 아제르바이잔에 병력 1천여명을 파견해 소요 진압에 나선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생필품 부족 등 경제난이 더 극심해지고 연방공화국들이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선언하는 등 국정 전반이 혼란으로 빠져들자 군부 KGB 관료조직 등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보수세력들의 입장에 점차 동조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 12월 인민대표회의에서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을 사실상 불허하는 새 연방법이 채택됐다. 아울러 소요 지역에 대해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통령 직접통치를 명할 수 있는 비상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연방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치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따라서 새해 들어서 더욱 고조되고 있는 발트해 3국 등의 독립요구에 대한 크렘린의 무력대응은 충분히 예견돼 온 것이었고 앞으로 진압대상 지역과 경우에 따라 희생자 수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크렘린 당국은 지금까지는 민족소요 지역에 대한 무력진압 등 내정문제에서의 강경입장을 대외문제에까지 연결시키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마무리 단계에 있는 전략무기 제한협상(START)과 페르시아만 사태 대응 등에서 계속 미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국들은 발트해 공화국들에 대한 크렘린의 무력진압을 페레스트로이카의 중대한 방향전환 신호로 받아들이고 강력한 비난과 경고를 보내고 있다. 부시 미 행정부는 이런 상태라면 오는 2월의 미소 정상회담에 예정대로 임하기가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의 스코크로프트 안보담당 보좌관과 말린 피츠워터 대변인 등이 잇따라 이 문제를 미소관계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했다. EC 등 유럽국들과 캐나다도 약속한 대소 경협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크렘린도 연방공화국들과 극적인 타협점을 찾거나 독립을 허용해 주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강경대응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서방국들도 이런 입장을 감안해 일방적으로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을 지지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 식으로라도 소련이라는 대국이 와해되지 않고 안정을 유지하는게 세계 평화에도 플러스라는 계산들을 하는지도 모른다. 서방국들의 힘으로 크렘린의 무력사용을 막기는 힘들 것같다. 더구나 미국은 지금 페르시아만에 매달려 있다. 발트해 공화국들로서는 시기적으로도 너무 불리한 때 「당하게」된 것같다.
  • 소 새 총리에 파블로프재무/고르비 지명

    ◎셰바르드나제 후임은 미정 【모스크바 UPI연합특약】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발렌틴 파블로프 현 재무장관을 리슈코프 총리의 후임으로 지명했다고 레오니드 크라브추크 우크라이나공 최고회의 의장이 12일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고르바초프는 이날 연방평의회에서 이 사실을 밝혔다』고 말했다. 크라브추크 최고회의 의장은 『고르바초프의 제안은 연방평의회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고르바초프는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후임은 발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연방평의회는 15개 공화국의 지도자들로 구성돼 있다.
  • 「페만 무력사용안」 미 의회,오늘 표결

    ◎하원,승인 확실… 상원은 불투명/민주당선 독자적 「평화해결안」 제출 【워싱턴 AP로이터 연합】 대이라크 무력사용 승인문제를 둘러싸고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는 미의회 10일 쿠웨이트 점령 이라크군을 축출시키기 위해 전쟁에 돌입할 것인가 아니면 외교적 해결 노력과 경제제재를 지속할 것인가 여부를 판가름하게 될 중대한 토의에 들어갔다. 베트남전 이래 가장 역사적인 중대 결정을 내리게 될 미의회는 이날 다소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토의에 들어갔다. 대이라크 무력사용 승인문제에 관한 이번 미의회의 토의는 제네바에서 열린 미ㆍ이라크 외무장관 회담이 실패한지 6시간만에,또 유엔의 이라크군 철수시한을 5일 앞두고 시작된 것으로 의회는 12일 무력 사용승인문제를 표결 처리할 예정이다. 부시대통령을 지지하는 하원내 민주 공화 양당 의원 24명은 이날 공식적인 전쟁 선포권은 아니지만 부시대통령에게 이라크군의 쿠웨이트 철수를 명령한 유엔 결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미군 병력의 사용을 승인해주는 결의안을 제출,이에 관한 의회의 토의가시작됐다. 이 결의안은 하원에서는 통과될 것이 거의 확실되고 있으나 상원에서의 통과 가능성은 아직 분명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찰스 로브상원의원+은 페르시아만에서의 무력사용을 승인하자는 결의안이 상원을 통과할 가능성은 50대50 정도라고 말했다. 공화당 및 부시대통령 지지인사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맞서 조지 미첼상원 민주당 원내총무와 리처드 게파트하원 민주당 총무 등 상하 양원의 민주당 지도자들은 대이라크 경제제재 조치와 외교적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 지금 이 시기에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주장하며 자신들의 결의안을 제출해놓고 있으며 이들 결의안 역시 이번 주말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민주당의원들의 결의안도 그러나 모든 노력이 소진됐을 경우 무력사용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한편 민주당의 스티븐 솔라즈하원 의원과 공화당의 로버트 미첼하원 의원 등 부시의 지지자들은 9일 제네바 미ㆍ이라크 외무장관회담의 실패로 돌아감에 따라 의회에서의 무력사용 승인의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솔라즈 의원은 『부시대통령에게 무력사용을 승인하는 것이 페르시아만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최후이자 최선의 희망』이라고 밝혔다. ◎부시 돕는 「전략 4인방」/베이커 등 페만정책 입안 “참모 역할”/체니­파월,무력사용 방법 실무 조언 부시대통령은 지난해 8월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뒤부터 국제적인 반이라크 연합전선을 지도하고 페르시아만에서의 전쟁발발에 대비하기 위해 매우 비밀스럽게 선발된 소수의 고위 보좌관들에게 자문을 구해왔다.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1백50여명의 「예스맨」들로 구성된 혁명사령평의회를 갖고 있는데 반해 부시 미대통령은 대통령직의 사활이 걸린 대이라크 전략을 입안하고 실행하기 위해 4명의 측근들로 구성된 전쟁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4명의 위원들 가운데서도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미대통령 안보담당 보좌관은 페만 위기의 발발시점부터 부시의 대이라크 전략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쳐온 위원회의 핵심인물이다. 퇴역 공군대장으로 오랫동안 부시의 외교정책 수립을 도와온 스코크로프트 보좌관은 이라크의 전격적인 쿠웨이트 침공에 맞서 미국내에 있는 이라크와 쿠웨이트 자산을 동결하도록 부시대통령에게 요청한 측근중의 측근이다. 미대통령 4인 전쟁위원회에 또 다른 멤버로 부시의 오랜 친구이며 측근인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이 있다. 베이커 장관은 부시의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으며 이라크의 오랜 우방이던 소련을 미국이 주도하는 반이라크 연합전선에 가담시키는 최대의 외교적 성과를 이룩했다. 베이커가 대이라크 전략의 외교적 측면을 담당하고 있다면 리처드 체니 국방장관과 콜린 파월 합참의장은 이라크와의 전쟁을 포함한 대이라크 무력사용전략에 관해 부시를 보좌하는 실무진이라 할 수 있다.
  • 한·일 정상회담­만찬 이모저모

    ◎“동반자관계 더욱 굳건히” 건배 제의/“북방정책,아주평화에 기여”/가이후 가이후 도시키(하부준수) 일본총리는 방한 첫날인 9일 하오 노태우대통령과 1차 정상회담을 갖고 이어 공식만찬에 참석하는 등 분주한 일정을 보냈다.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날 하오3시10분쯤부터 약 70분동안 청와대 본관에서 1차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주변정세 및 국제협력문제 등을 논의. 지난해 5월에 이어 두번째로 대좌한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먼저 지난해 방일때 일본의 환대에 감사하고 가이후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새로운 우호 협력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인사했고 가이후총리 역시 방한초청에 감사하고 노대통령의 일본의회 연설이 일본 국민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으며 북방정책이 한반도 긴장완화와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의 시대를 여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화답. 양국정상은 이어 아태지역에서의 한일 양국의 주도적 역할,자유무역주의 후퇴,보호주의 대두에 대한 공동대처,페르시아만 사태에 대한 공동인식 등을 논의한뒤 일·북한 수교 등에 대해 집중 논의. ○「3김」 등 1백명 참석 가이후총리는 특히 이달말 평양에서 열릴 일·북한 수교 교섭 본회담에서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문제를 정식 제기하겠다고 밝히는 등 한국과 약속한 「대북수교 5원칙」의 준수를 다짐.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같은 가이후총리의 다짐은 북한이 핵안전협정에 가입하지 않는 한 국교정상화 교섭을 진전시키지 않겠다는 말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해 주목. ○…가이후총리는 예정보다 2분 늦은 이날 하오3시2분 군의장대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청와대 본관 현관앞에 도착. 가이후총리는 이어 노대통령의 안내로 본관복도 입구에 마련한 방명록에 「일본국내각 총리대신 해부준수」라고 서명. 양국 정상 내외는 대접견실로 자리를 옮겨 공식 기념촬영을 했으며,노대통령은 가이후총리에게 수교훈장 광화대장을 수여하고 악수를 교환. 이어 양국 정상은 서로 준비해 둔 선물을 각각 설명했는데,가이후총리는 노대통령 내외에게 자신의 서명이 든 사진과 진주브로치,후지산 전경이 담긴일본 전통그림을,노대통령은 자신의 사진과 서명이 든 백자항아리,보석함을 각각 선물. ○「월인천강지곡」 인용 ○…노대통령 내외가 가이후총리 내외를 위해 청와대 영빈관에서 베푼 공식만찬 행사는 이날 저녁 6시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진행. 양국 정상 내외는 영빈관 1층에서 만찬에 앞서 일본측 수행원과 우리측의 3부요인·정당대표·입법부·외교단 등 각계 대표 등을 차례로 접견한 뒤 2층 귀빈실로 자리를 옮겨 잠시 환담을 했으며 이어 양국 정상 내외는 만찬장에 입장하여 헤드 테이블에 서면서 애국가와 일본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만찬을 시작. 노대통령은 만찬사를 통해 『가이후총리의 이번 방한은 우리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인 동반자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개방과 개혁의 시대적 조류가 이 분단된 동토에도 화해의 봄을 재촉하도록 일본 국민도 성원해주기 바란다』며 건배를 제의. 가이후총리는 답사에서 『귀국의 역사상 위대한 인물인 세종대왕은 월인천강지곡에서 「좋은 씨를 뿌리면 좋은 열매가 열린다」고 읊었다』고 인용하면서 『노대통령의 방일은 크고도 좋은 씨앗이었다』고 평가. 한일 양국에서 각계인사 1백여명이 부부동반으로 초청된 이날 만찬에는 노재봉 총리서리 등 전 각료와 김영삼 민자당대표,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김재광·조윤형 국회 부의장이 참석했고 가이후총리와 면담을 거절했던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김봉호 사무총장과 함께 참석했으며,이재형 전 국회의장,정석모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최영록·이규호 전 주일대사,그리고 외교사절로 그레그 미 대사,소콜로프 소련대사 등이 참석.
  • 「KAL유해 소각」 추궁/한/“구체자료 있으면 전달”/소

    ◎1차 정책협의회 한소양국은 7일 하오 외무부 회의실에서 제1차 한소정책 협의회를 열고 한반도 주변정세 및 남북관계 개선,유엔가입문제,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의 방한 등 양국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회의에는 우리측에서 유종하 외무차관을 수석대표로 공노명주소대사,이시영 외무부정특반장,나원찬 외무부 구주국장 등이,소측에서는 로가초프 외무차관을 수석대표로 소콜로프 주한대사,예레멘코 대리대사 등이 참석했다. 유차관은 KAL기 탑승객 유해를 소련군 당국이 소각했다는 미시사주간지 및 소이즈베스티야지 보도와 관련,『우리 국민과 언론들은 이 사건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정확한 사실여부 확인과 함께 새로운 정보나 자료가 있을 경우 우리측에 있는 그대로 전달해 줄것을 소측에 강력 요청했다. 로가초프 차관은 이에 대해 『이즈베스티야지 보도는 미뉴욕타임스에 게재된 기사를 근거로 작성된 것』이라며 『이즈베스티야지도 소속기자들을 사할린에 파견했지만 구체적 자료를 얻지 못한 것으로안다』고 밝히고 『이 사건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나 자료가 있으면 외교경로를 통해 한국측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로가초프차관은 그러나 『이같은 언론보도 내용을 근거로 원칙적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며 양국민이 이 문제로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은 서로 유익한 자세가 못된다』고 지적하고 『한국측이 제기한 사항을 소련내 관계기관에 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로가초프차관은 또 『남북한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한국의 주변국가들의 국제적인 보장이 이뤄질 수 있다면 소련은 이에 참여할 용의가 있다』고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 소,“남북정상회담 적극중재”/로가초프외무차관 오늘 내한

    ◎고르비친서 청와대에 전달/빠르면 연내개최 가능성/내일 첫 정책협의회서 경협등 논의 이고르 로가초프 소련 외무부차관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특사자격으로 6일 낮 2박3일간의 일정으로 아에로플로트 특별기를 이용,방한한다. 한소 외무부의 아태 담당차관으로 소콜로프초대 주한대사 등 12명의 공식수행원과 함께 내한하는 로가초프차관은 7일 상오 청와대로 노태우대통령을 예방,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고 한소간 경협증진,남북관계 개선,고르바초프의 방한 등에 관해 협의하는 한편 이에대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되고 있다. 로가초프차관은 특히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최근 한반도 문제해결에 적극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만큼 이번 방한기간중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중재역할을 소련이 맡을 것임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따라 소련측의 적극적인 중재의사에다 남북한간의 입장이 어우러져 연내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로가초프차관은 청와대 예방에이어 이상옥 외무부장관과 만나 양국 공동관심사에 관해 논의하며 7일 하오에는 유종하 외무부차관과 제1차 한소 정책협의회를 갖고 지난해 12월 노대통령의 방소와 모스크바선언 이후의 양국간 실질협력관계 증진 및 한반도를 포함한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양국은 또 이번 정책협의회에서 오는 4월경으로 예상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문제도 심도있게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가초프차관은 이번 방한을 마친뒤 곧바로 중국을 방문,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및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입장을 중국측에 전달하면서 남북한 긴장완화 방안에 관해서도 협의를 갖는데 이어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무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협력과 보증역할을 할 용의를 밝힌 사실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면서 『로가초프차관이 특별기를 이용,급히 서울에 온 것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소련 지도부의 메시지를 우리측에 전달할 가능성이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지난해 12월 양국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깊이있는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북한에 대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소련이 남북관계 개선,특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중재역할을 하겠다면 이를 전폭적으로 환영한다는 것이 우리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 소 천연가스 개발 구체화/한ㆍ미ㆍ일 참여

    ◎파이프라인 1만㎞건설 추진/야쿠츠크ㆍ사할린 앞바다 가스전 시굴착수 【도쿄=강수웅특파원】 한국ㆍ미국ㆍ일본 기업 및 소련 정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소련 야쿠츠크 공화국과 사할린 앞바다의 천연가스를 총연장 1만㎞의 파이프라인으로 공급하는 거대한 사업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다고 교도(공동) 통신이 2일 업계 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소련정부와 도쿄(동경)무역(대표 송궁강부),한국의 현대그룹 그리고 미국 석유회사는 총 1백억 달러를 투입,야쿠츠크 지구의 천연가스(추정 매장량 1조㎥)를 3년동안 일정 생산규모까지 개발하는 한편,가스전이 있는 빌류이스크로부터 구경 1.42㎞ 크기의 파이프라인 부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파이프라인은 야쿠츠크∼블라고베시첸스크∼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한반도 동쪽해안∼부산∼쓰시마(대마)해협∼기타큐슈(북구주)∼홋카이도(북해도)∼사할린 북부로 연결,동해를 안고 총연장 1만㎞의 고리모양을 이루게 된다. 소련은 이 사업의 일환으로 사할린 앞바다에서 가스전의 시굴 준비에 들어갔으며 사할린에서 대륙의 콤소몰스크까지는 이미 파이프라인 부설 작업을 끝냈다.
  • 개혁부진 인책 재무장관 사임/소 러시아공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27일 인민대표대회에서 성난 어조로 소련 지도부는 개혁을 밀고 나갈 것이냐 아니면 물러날 것이냐를 결정할 마지막 선택의 순간을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자신이 부통령으로 지명한 겐나디 야나예프가 인민대표대회에서 인준을 받는데 실패한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그는 『우리는 개혁이냐 퇴진이냐의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다. 만약 현 지도부가 소련이 전환점을 지났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확신시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치무대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또 공화국의 독립문제에 대해 정치적 라이벌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과 최후 담판을 벌일 준비가 되어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러시아공화국의 강경개혁파 재무장관이었던 보리스 표도로프(33)가 사임했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27일 보도했다. 옐친의 측근인 표도로프는 소연방이나 러시아공화국 모두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어떤 진전도이루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과거의 통제경제체제로 복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 크렘린 사퇴파동 “여전히 미스터리”

    ◎“내년 2월까지 각료직 유지” 고위층 시사/미·소 전략무기 감축협상에도 계속 관여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의 사임을 둘러싼 수수께끼는 21일 한 관리가 셰바르드나제의 후임이 내년 2월까지 임명되지 않을 것 같다고 시사하고 대통령의 한 보좌관이 셰바르드나제가 각료직을 유지할 것 같다고 암시함으로써 풀리지 않은채 깊어만 가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사임한다고 발표한지 하룻만인 이날 셰바르드나제와 약 2시간에 걸쳐 회담했으나 비탈리 이그나텐코 대통령대변인은 두사람이 이 회담에서 전적으로 대외문제만 논의하고 셰바르드나제 장관의 사임에는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그나텐코 대변인은 고르바초프와 셰바르드나제가 페르시아만 사태,미 소 전략무기 감축협상,유럽배치 재래식무기 감축을 논의했다면서 『바꾸어 말해 두사람은 대통령과 외무장관간의 정상적 협의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각료직을 유지할 것임을 시사하고『누구나 사임하자마자 사무실을 박차고 걸어나갈 수는 없으며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한 후 고르바초프는 후임자를 결정하기에 앞서 셰바르드나제 사임에 대한 외국반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민대표대회 수석공보관 아르카디 마슬레니코프는 기자들에게 최고회의(의회)가 내년 2월11∼13일의 미 소 정상회담때까지 새 외무장관을 인준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셰바르드나제의 후임자문제는 『예컨대 2월20일부터나 의회에 상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최고회의는 인민대표대회가 끝난 후 오는 29일에 소집되었다가 1월1∼2일 휴회한 후 속개되어 긴급안건,특히 예산문제를 토의한다. 대통령위원회 위원인 게오르기 샤흐나자로프는 셰바르드나제의 정치생활이 끝나지 않았으며 그에게 다른 각료직을 맡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이 나라 고위직 후보명단에서 셰바르드나제의 이름을 지우지 말라』면서 『대통령은 셰바르드나제,바카틴(전 내무장관),야코블레프(전 국제문제담당 대통령보좌관)와 같은 동료를 손쉽게 배척할 사람이 아니며 셰바르드나제는 고르바초프 팀에 잔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샤흐나자로프는 독재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셰바르드나제의 사임연설이 고르바초프를 겨냥했다는 것을 부인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보수파위험의 증대를 경고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인민대표회의에서의 사임표명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중인 미 소 전략무기 감축협상의 마무리작업에 계속 관여할 것이라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비탈리 이그나텐코 소련 대통령대변인의 말을 인용,셰바르드나제 장관이 내년 2월의 모스크바 미 소 정상회담에서 조인될 예정인 전략무기 감축조약을 위해 계속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그나텐코 대변인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21일 2시간에 걸쳐 회담한 결과 이같은 결정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타스통신은 이어 『셰바르드나제가 계속 소련 외교의 책임자로 머물러 있기로 동의했다는 것은 소련의 외교정책이 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련의고위관리들은 셰바르드나제 장관이 헌법개정과 더불어 교체되기 전까지는 계속 외무장관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 소 개혁파,고르비에 탈보수 요구/인민대회 연설

    ◎“페레스트로이카 주역 반동에 희생”/“셰바르드나제,대통령 자문역에”/고르비 보좌관 【모스크바 외신 종합】 소련의 개혁파 지도자들은 21일 속개된 인민대표대회에서 소련이 독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의 우려에 공감을 표명하고 보수강경파들을 비난하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강경파들의 압력을 거부하라고 촉구했다. 개혁파 인민대표 파벌인 「지역간 그룹」의 대표 비탈리 첼리셰프는 이날 연설을 통해 『전 정치국원 알렉산데르 야코블레프·셰바르드나제 장관,그리고 전 내무장관 바딤 바카틴 등 페레스트로이카의 주역들이 반동세력의 압력을 받아 정치활동무대에서 밀려난 데 대해 심한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고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계획을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자의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레닌그라드시장 아나톨리 소브챠크는 『소 연방으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각 공화국들이 상호간 경제협정을 체결하지않으면 소련내의 수천 개 공장들이 조업을 중단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될 경우 민주파·급진파·보수파 모두가 군부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 연방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추구하는 벌스해연안 공화국 지도자들은 『민족분규와 분리주의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라고 촉구하는 군부강경파들의 득세는 중앙정부의 탄압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한편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고위 보좌관인 게오르기 샤흐나자로프는 이날 『셰바르드나제가 외무장관직에서 전격 사임했지만 고르바초프 정치자문팀의 일원으로 계속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셰바르드나제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정치자문팀의 일원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고 『그는 경솔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비탈리 이그나텐코 대통령대변인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이날 셰바르드나제와 2시간 동안 만나 장관직 사임과 향후 대책에 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 “「페레스트로이카」에 막후 영향” 프리마코프 유력

    ◎소외무 후임은 누구 ▲예프게니 프리마코프(61·사진)=경제학 박사이며 전직 교수출신. 셰바르드나제의 사임발표 후 소련 언론이 가장 먼저 후임자 임명 가능성 거론. 지난해 외무부차관겸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임명됨. 중동 및 극동문제 전문가로 고르바초프의 신사고 외교정책 실시에 막후 영향을 끼침. 정부개편시 새로운 부통령 직책을 맡을 것으로도 전망된 바 있음. ▲발렌틴 팔린(64)=원로 외교관이며 서유럽 문제전문가. 지난 88년 공산당 국제국장에 임명됨. 현재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정부기관지 이즈베스티야 논설위원. 지난 65년 당시 그로미코 외무장관의 고위 보좌관 역임. ▲블라디미르 페트로프스키(57)=지난 86년 이래 외무차관. 유엔에서 외교관 생활시작 후 외무부 유엔 과장,국제기구 과장 역임. 최근 고르바초프의 특사로 바그다드 방문 후 귀국한 뒤 성가상승. ▲유리 보론초프(61)=외무부 제1차관. 미국 및 프랑스·인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근무경력. 지난 88년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시 특명대사로 활약. 85년대 이스라엘 외교관계 회복모색을 위한 비밀회담 특사,미 소간 중거리 핵무기 감축협상대표 등 역임. ▲알렉산데르 베스메르트니크(57)=현재 주미 소련대사. 미 소 관계 전문가로 지난 70년부터 83년까지 워싱턴 주재 소 대사관 서 근무후 외무부의 미국,북미지역담당 차관에 임명된 뒤 외무부의 제1차관 3명중 한명으로 승진.
  • 면폐증환자 첫 발생/밧줄 회사직원 진단결과 판명

    【부산연합】 면섬유가 폐에 쌓여 호흡기장애와 심장질환을 일으켜 ILO(국제노동기구)가 직업병으로 인정한 면폐증환자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부산에서 발생했다. 부산 동아대 강창운교수(38·내과)와 인제대부속 백병원 이종태교수(33·예방의학)는 21일 『지난 6월 마닐라삼으로 로프를 만드는 회사인 부산시 영도구 남항동1가 19 한국제강(대표 김동훈) 제조부에서 일하던 최진익씨(42)가 심한 호흡장애를 일으켜 정밀진단한 결과 면폐증환자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최씨는 지난72년 8월부터 이 회사에 근무,86년부터 호흡이 곤란하고 팔·다리에 통증을 느껴왔으며 지난 88년부터는 이 증세가 심해 상오만 근무하고 인근병원서 치료했으나 계속 악화돼 올해 6월부터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이같이 밝혀진 것이다. 면폐증은 미국·영국 등지의 면섬유공장 근로자들에게 자주 발생돼 ILO에 정식 직업병으로 등록돼 있는데,국내에서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 하바로프스크­서울/새 항공로 개설 추진/모스크바방송

    【내외】 한소간의 관계정상화에 따라 항공분야에서의 협조도 강화되고 있으며 지난 4월 개설된 한소 직항로 외에 가까운 앞날에 하바로프스크∼서울∼싱가포르행 항로를 새로 개설할 예정이라고 모스크바방송이 보도했다.
  • 소 대의원,새 연방안 거부/국민투표 실시 제의도 반대

    ◎“연방정부에 너무 많은 권한 부여” 【모스크바 외신 종합 연합 특약】 소련 인민대표대회에 참석중인 많은 대의원들은 18일 고르바초프의 새로운 연방안을 거부하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아르놀드 루텔 에스토니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은 이날 연설을 통해 『발트 3국은 소련 정부와의 국가간 관계가 정상화되기를 바란다』면서 『지난 40년 에스토니아가 소련에 병합될 당시 국민투표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연방안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공화국 등 발트 3국은 올초 독립을 선언했으며 새로운 연방안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다. 옐친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도 『새로운 연방안에 대한 국민투표안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라트비아공화국의 부총리인 일마르스 비슈어르는 『현 위기를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각 공화국이 같은 정치지도자 밑에 있지 않고 중앙정부의 압력을 느끼지 않는 경제연방을 형성하는 것』이라면서 『소련에 병합된 지난 40년의 상황이 되풀이 될 수 없다』고 새로운 연방안을 거부했다. 또한 많은 대의원들은 현재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고르바초프의 보좌관인 게오르기 샤흐나자로프는 『국민투표는 새 연방을 지체시킬 것』이라면서 『곧 최고회의가 소집되어 새로운 연방안 문제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크공화국 공산당서기장은 『연방정부가 내린 결정이 각 공화국들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면서 『고르바초프의 신 연방조약안은 연방정부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 두 정상,한반도에 정통 메모없이 회담/노대통령 방소 취재기

    ◎술술 풀린 2시간 대좌… 바로 핵심돌입/“개혁 소용돌이·내치 어려움” 서로 공감 지난 14일 상오 11시부터 하오 1시까지 2시간 동안 모스크바 크렘린궁 올드 레드룸에서 진행된 「노·고르비」 단독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번도 메모를 꺼내본 적이 없다. 노태우 대통령은 일반 정상회담의 관행대로 참모들이 마련해준 회담자료철을 가져가긴 했으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아무런 메모를 보지 않고 대화를 계속해나가자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서론없이 핵심사항에 바로 뛰어들었다. 「평양으로 가는 길이 막혀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북방정책의 목표였기 때문에 남북한 관계를 중심으로 한 한반도 주변정세 대화에 1백20분간의 회담중 90분을 끌어나갔다. 두 정상의 단독회담에는 기록원 자격으로 소련측의 체르니아예프 외교보좌관과 우리측 김종휘 외교안보보좌관 등 단 두 사람이 배석했다. 김 보좌관은 회담 순간순간을 되살리면서 『고르비는 아무런 관계자료를 들춰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남북한 관계,한반도문제에 완전히 정통하고있었고 두 사람의 대화가 척척 맞아들어가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노 대통령도 『그가 고맙게도 내가 하려는 얘기를 먼저 정리해서 하길래 새삼 우리의 통일정책을 설명,이해를 구하고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3박4일간에 걸친 노 대통령의 공식 소련방문의 최대성과는 「모스크바선언」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냉전종식을 세계인들에게 천명한 것도 꼽을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한반도문제 해결에 관한 한소간의 인식일치를 확인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험과 통일의 외부적 장애요인을 크게 제거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소련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저녁 수행중인 이홍구 정치특보로부터 국내정세에 관한 일일보고를 받았다. 이 보고는 청와대에 남아 있는 노재봉 대통령비서실장이 회기 막바지의 국회상황을 중심으로 종합보고서를 팩시밀리로 보낸 것을 토대로 이뤄졌다. 이 종합보고서에는 노 대통령의 방소활동에 대한 각계 주요인사들의 반응도 포함되어 있어 대통령이 「외치」를하는 동안에도 「내치」에 대한 감각이 중간에 끊기지 않도록 배려된 것이다. 노 대통령이 국내정치에 대한 감각이 연속되고 있음은 16일 레닌그라드에서 있은 수행기자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도 잘 드러났다. 「귀국하면 김대중 평민당 총재와 회담을 가질 계획이냐」는 질문에 노 대통령은 즉각 『그런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 오리라고 본다』고 답변해 이미 「청와대회동」 복안이 서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외치에 탁월한 고르비도 내치에 애를 많이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뭔가 공감하는 듯했다. 14일 노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하기로 한 소련측 주요인사 가운데 야코블레프 대통령위원회 위원이 오찬장에 나타나지 않아 우리측 관계자들이 다소 찜찜해하고 있던중 소련측 관계자가 『우리 국내정치로는 대단히 중요하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권력강화 여부가 걸린 17일의 인민대표회의를 앞두고 각 공화국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을 상대로 득표활동을 하러 나갔다』며 「불참」에 대해 우리측의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단독정상회담 말미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소련 국내정치에 어려움을 토로하자 노 대통령도 6·29선언 이후 6공 전반부까지 민주화에 편승한 혼란·무질서가 극도에 달했지만 이를 「전환기적 상황」으로 치부하고 인내해오면서 차차 질서를 확립해가고 있는 한국의 예를 들면서 국내정치의 어려움에 대한 얘기를 서로 나누었다. 노 대통령의 방소기간중 소련측은 거의 완벽한 경호를 제공했다. 우리 귀에는 비밀·첩보·공작활동으로 악명 높았던 KGB가 경호문제를 총괄관장,우리측 경호관계자들과의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크류치코프 KGB 의장은 한소정상회담이 있은 다음날인 15일 상오 이현우 경호실장과의 면담을 요청,『한소 양국 국가원수의 경호를 위해 필요하다면 테러 등 범죄·마약정보 교환·인적 교류까지 하자』고 제의했고 이 실장은 이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측은 심지어 노 대통령이 레닌그라드에서 관람할 「백조의 호수」 공연장인 키로프극장에 북한의 누구누구가 관람객으로 극장에 가게 되지만 염려할 것은 없다는 정보까지 우리측에 사전에 알려준 것으로전해졌다. 노 대통령의 방소방문을 수행취재하면서 이익동기가 없고 경쟁이 없는 체제가 70년 동안 지속된 결과 나라는 물론 개인의 삶의 질을 얼마나 황폐화시켜 놓았는가를 실감했다. 그리고 소련이 한국의 경협에 대해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는 것은 소비재 몇 개 더 얻고 협력자금 몇 푼 더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기간에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국이 어느새 동북아 및 아태지역 평화와 발전의 핵심축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해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우리의 국내정치가 좀더 넓은 시야에서 이뤄져야겠다고 느꼈다.
  • 대소 투자 우선순위 조정/오늘 청와대 임시 각의

    ◎3개 영사관 설치등 후속조치 추진/반테러·경호 정보 교환 합의/이 경호실장,KGB 의장 만나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이 3박4일간의 소련방문을 마치고 귀국함에 따라 18일 상오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 주재로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방소성과를 뒷받침하기 위한 범부처적 후속조치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방소를 통해 2중과세방지,투자보장,무역 및 과학기술협력협정 등 4개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한소 양국 실질 관계증진에 따른 법적·제도적 장치가 일단 완비되었다고 판단,국내 기업들의 대소 진출이 중동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투자우선순위 조정,과당경쟁방지대책 등을 강구할 예정이다. 정부는 우선 미수교국 여행제한을 규정한 북방외교 기본지침에서 소련을 대상국에서 제외,연내에 소련 여행자유화를 실시할 계획이다. 특히 외무부는 이번의 성공적인 한소정상회담이 한중 수교 촉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내년 1월 중순 주북경 무역대표부 개설과 때 맞춰 중국 외교부측과도 수교교섭을 벌일 방침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회담결과를 설명하고 이번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의 오랜 냉전체제를 청산하고 평화와 안정을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만큼 회담내용에 대한 완벽한 후속대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우리 기업의 대소 진출을 지원하고 재소동포들의 조국왕래를 돕기 위해 하바로프스크 등 극동지역,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중앙지역의 알마아타 혹은 타슈켄트 그리고 레닌그라드 등지에 총영사관을 설치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내년 1월 서울에서 열린 제2차 한소 정부대표단회담에서 대소 경협의 규모와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될 수 있도록 관계부처간의 협의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고르비 방한 관련” 한소 양국은 상호 국가원수의 경호상 필요할 경우 테러 등 범죄와 마약에 대한 정보교환은 물론 경호 인적교류까지 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17일 밝혀졌다.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 경호업무를 총괄한 이현우 대통령 경호실장은 이날 하오 『한소정상회담 다음날인 지난 15일 소련의 국가원수 경호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크류치코프 KGB 의장과 회동,이같이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양국 경호책임자간의 합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노 대통령의 방한초청에 대해 『멀지않은 장래에 한국방문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혀 내년봄 방한을 시사한 점과 관련,구체적인 실무준비작업의 하나가 아닌가 보여 주목된다.
  • 노대통령,“남북관계도 하나씩 개선될 것”(모스크바 여로)

    ◎“레닌그라드는 우리 선각자들 구국뜻 편 곳”/세계적인 물리기술연구소 「이오페」 둘러봐/교민들 추운 날씨에도 공항 나와 귀국길 배웅 ○환송객과 작별인사 ▷서울향발◁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을 공식방문했던 노태우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 여사는 16일 하오 6시(한국시간 17일 0시) 역사적인 3박4일의 방소일정을 마치고 레닌그라드의 폴코보국제공항에서 특별기편으로 서울로 향발. 공항에는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위원회 위원 및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 등 소련측 인사들이 노 대통령 일행을 환송. 또 재레닌그라드 교포들도 영하 10도 안팎의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항으로 나와 노 대통령의 귀국길을 배웅. 노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소련 대통령위원회 위원에게 『3박4일 동안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소련국민들이 베풀어준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린다』는 말과 함께 『하루빨리 서울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다시 뵙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서울에서의 한소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 노 대통령은 공항에서의 환송행사가끝나자 소련측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뒤 트랩에 올라 손을 흔들어 작별의 인사를 하고 특별기에 탑승. 노 대통령 일행은 약 10시간30분간을 비행한 후 17일 상오 서울에 도착할 예정. ▷기자간담회◁ ○…노 대통령은 이날 아침(현지시간) 숙소인 네바강변에 자리잡은 레닌그라드시 영빈관에서 수행기자단과 조찬간담회를 갖고 이번 방소의 소감과 성과에 대해 소상히 설명. 노 대통령은 이날 1시간 동안 계속된 간담회에서 『이번 방문을 통해 체제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를 실감했다』며 『소련은 자랑스런 역사와 문화의 전통을 갖고 있고 풍부한 자원도 있어 체제만 좋았으면 무척 잘사는 나라가 되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소련사람 스스로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소개. 노 대통령은 이번 방소의 하이라이트였던 14일 양국 정상회담 내용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통일정책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려고 마음먹고 준비를 했는데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내 생각을 다 아는 듯 통일은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내가 할 이야기를 정리해 먼저 이야기하는 바람에 따로 이야기할 필요도 부탁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해력도 빠르고 문제 핵심도 쪽집게처럼 집어내는 명석한 지도자였다』고 평가. 노 대통령은 또 「모스크바선언」에 따른 향후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는 『남북도 과거 어느 때보다 노력하고 있는만큼 아직까지 만족스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하나씩 개선되어 나가게 될 것』이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이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하고 다 듣고 나니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아 수십 번 만난 사람 못지않게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며 『사람들은 러시아인들이 잘 속인다고 하나 마음이 통하면 모든 것을 벗어주고 신의를 제일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피력. 양국간 경제협력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노 대통령은 미묘한 부분이라고 감지한 듯 『경제협력이란 것이 무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지 말라』고 손을 내젓고는 『소련사람들은 체면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무상은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 이날 조찬간담회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 및 김종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수정 공보수석비서관,김종휘 외교안보보좌관 등 공식수행원이 모두 참석했는데 노 대통령은 간담회가 끝난 뒤 공로명 주소 대사를 가리키면서 『여기 와서 고생 많이 했는데 우리 모두 함께 박수를 쳐주자』고 제의해 참석자 모두가 박수로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 ○한국과 구연을 강조 ▷레닌그라드시장 주최 오찬◁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1시(한국시간 하오 7시) 소브차크 레닌그라드시장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 노 대통령은 오찬 답사에서 『지난 1884년부터 20년간 우리 두 나라가 선린의 관계를 다졌을 때 우리 외교사절들은 두 나라의 우의를 레닌그라드에서 다졌고 우리의 선각자들이 식민세력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롭자 구국의 뜻을 처음 편 곳도 바로 이 도시였다』고 한국과 레닌그라드와의 구연을 강조. 노 대통령은 이어 『지난 봄 이 도시의 문화사절로 한국을 방문했던 레닌그라드교향악단의 공연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우리 국민은 새 친구를 맞은 기쁨 속에,그 높은 예술성에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면서 『레닌그라드가 한소 두 나라간의 새로운 시대도 힘차게 이끌어 달라』고 당부. 노 대통령은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읽은 푸슈킨,고골리,도스토예프스키의 시와 산문,소설에 담겨 있는 이 도시의 모습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면서 『우리와의 관계는 끊겨 있었으나 레닌그라드는 한국인 모두의 마음에 친근한 도시』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이어 『한 세기 전 우리나라의 첫 외교사절이 이 도시에 이르기까지는 세 대륙과 두 대양을 거쳐 50일이 걸렸지만 교류와 협력의 넓은 길이 새 시대와 함께 열린 이제부터는 10시간의 비행으로 서로를 찾아 우정을 나눌 수 있게 됐다』면서 『우리는 한 지구촌에 사는 진정한 이웃이 되었다』고 강조. 노 대통령은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선도해온 레닌그라드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승리로 이끄는 향도가 될 것으로 믿는다』면서 건배를 제의한 뒤 「발소예 쓰바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이날 오찬은 노 대통령의 방소 3박4일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감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양국 참석자들은 시종 밝은 표정으로 담소를 나누면서 작별의 아쉬움을 표시. ▷수호기념비 헌화◁ ○…노 대통령은 일요일인 이날 상오 레닌그라드시내 승리의 광장에 있는 레닌그라드 수호기념비에 헌화,지난 41년부터 45년까지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의 봉쇄작전에 대항해 기아 속에서도 이곳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레닌그라드시민들의 넋을 추모. 노 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10분 수호기념비 앞 광장에 도착,레닌그라드지역 제1부 사령관과 기념비 관리소장의 영접을 받은 뒤 기념비 연혁을 설명듣고 곧바로 수호용사기념동상 앞으로 가서 헌화. ○서울대와 학술교류 ▷물리기술연구소 방문◁ ○…노 대통령은 이어 소련 물리학의 산실인 이오페물리기술연구소를 방문,아페로프 소장으로부터 연구소의 역사와 연구현황,한국과의 협력 가능분야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전시실을 시찰. 아페로프 소장은 『소련 최고의 물리학자로 「물리학의 어버이」로 불리는 고 이오페 박사가 1918년에 설정한 이 연구소는 현재 반도체·광학·전자공학·고체물리학·초전도체·핵융합·천체물리학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이 연구소에서 지금까지 4명의 노벨상 수상자,60여 명의 소련 과학아카데미 정회원,30여 명의 레닌상(소련 최고의 과학기술상) 수상자를 배출했다』고 소개. 아페로프 소장은 또 한국과의 협력관계를 설명하면서 『현재 대우와 합작사업을 하고 있으며 서울대와도 학술교류협정을 체결했다』면서 『소련의 첨단과학기술과 한국의 상품화기술간의 협력을 위해 한소 공동학술연구센터를 설립토록 하자』고 제의.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과학기술분야에서도 활발히 협력하기로 약속했다』며 『나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협력이 강화되어 큰 결실이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 노 대통령은 『반도체의 경우 일본이 돈을 다 벌고 있는데 한소 양국의 첨단기술과 응용기술이 접목되면 우리가 그 돈을 나눠 가질 수 있다』면서 『양국은 경쟁대상이 아니어서 서로감출 필요가 없기 때문에 협력이 잘 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 노 대통령은 방명록에 서명한 뒤 전시실에 들러 고강도유리를 직접 망치로 두드려보는 등 양국간의 기술협력에 큰 관심을 표시했으며 아페로프 소장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을 소개하며 노 대통령의 연구소 방문에 큰 만족을 표시. 이날 연구소측은 노 대통령에게 맘모스 상아로 만든 피터 1세상(레닌그라드를 건설한 황제)과 규소유리로 만든 레닌그라드의 상징범선을 선물로 전달. ▷박물관 방문◁ ○…노 대통령 내외는 방소 마지막 일정으로 레닌그라드의 헤르미타지박물관을 방문,1시간반 동안 소장품을 감상.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3시45분 공식수행원과 함께 박물관에 도착,슈스로프 박물관장의 영접을 받고 방명록에 서명한 뒤 전시관을 돌아봤다. 헤르미타지박물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소장품 1점당 1분씩 관람하면 모두 5년이 걸릴 정도로 많은 동서양의 유물·미술품·각종 세공품 등이 소장돼 있다. 하오 5시20분 박물관 시찰을 마친 노 대통령 내외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 내외와 각각 동승하여 폴코보공항으로 향발. ▷이삭사원 관람◁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는 이날 상오 레닌그라드시내에 있는 러시아정교 이삭사원을 관람하고 환영나온 한인동포들을 격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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