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로프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열처리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농가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4년연속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 소품
    2026-07-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47
  • “승리” 외치며 붉은광장서 촛불축제/환호의 물결… 모스크바 표정

    ◎“KGB 없애라”… 창설자 동상을 부숴/“이번 쿠데타는 3번째 기도” 옐친 주장 ○…10만명이상의 러시아인들은 22일 모스크바에서 쿠데타 저지를 축하하는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러시아 최고회의빌딩 앞에서 열린 이날 집회에서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쿠데타의 실패는 피플파워의 승리라고 선언.러시아공화국은 이날 70년간의 공산주의시대 종언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붉은색 공화국기를 러시아혁명 전의 백·청·적 3색기로 공식 교체했다. 모스크바시민들은 최고회의 빌딩앞에서의 집회를 마치고 붉은 광장으로 행진,이곳에서 다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이들은 「옐친」과 「러시아」를 연호하며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 저지를 축하했다. ○…약5천명의 군중들이 22일 모스크바에 있는 KGB 본부앞 광장에 집결,반KGB 시위를 벌이고 KGB를 창설한 제르친스키 동상을 철거하기 시작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 ○“옐친에 노벨평화상을” ○…유럽의회의 기독민주그룹 지도자는 22일 소련 러시아공화국의 보리스 옐친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할 것을 제안했다. 독일의 에곤 클렙슈씨는 유럽의회지도자들의 비상회의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실각시키기 위한 3일간의 쿠데타에 저항을 선도한데 대해 옐친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동유럽에서 강경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평화적 혁명을 이루는데 기여한 정책으로 이미 노벨평화상을 받은바 있다. ○…소련정부 기관지 이즈베스티야의 기자들은 22일 동지 편집국장 니콜라이 예피모프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사건에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그를 파면하기로 결의했다고 이즈베스티야의 막심 유신기자가 말했다. 유신기자는 이즈베스티야의 기자들이 이날 총회에서 또한 앞으로는 이 신문의 1면 머리에 있는 마르크스주의 슬로건인 「전세계의 노동자들이여,단결하라」라는 문구를 삭제하기로 결의했다고 전했다. 그는 AFP통신에 기자총회는 이날 「예피모프가 쿠데타에 기여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를 파면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타스,사전에 알았었다○…소련 관영 타스통신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실각되기 하루전인 지난 18일 이미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이 통신사의 한 간부가 말한 것으로 모스크바의 네사비시마야 가제타지가 보도. 이 신문은 텔레팍스를 통해 배포된 호외판을 통해 타스통신의 한 간부가 겐나디야나예프 부통령의 성명서 전문과,8인 국가비상사태위원회가 지난 17∼18일 밤 타스통신에 소개됐음을 밝혔다고 전했다.이 성명은 지난 19일 아침 공개됐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 공화국 대통령의 쿠데타저항본부인 의사당을 지키는 군인및 민간들은 쿠데타 실패 소식에도 불구하고 21일 저녁 여전히 경계를 펴고 있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축출하려다 실패한 이른바 「쿠데타 음모자들」은 벽에 세워놓고 총살을 해야 할 것이라고 콘스탄틴 코베츠 러시아공화국 국방장관이 21일 밝혔다. 지난 20일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의해 국방장관에 임명된 그는 이날 러시아공화국 의사당 복도에 집결해 있던 일단의 기자들에게 이같이 밝히면서『옐친 대통령이 나에게 장관직을 제의했을 때 내가 수락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만약 쿠데타 주동자들이 그들의 음모가 실패해 체포될 경우 이들을 처형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복귀와 쿠데타 주동자들의 체포를 충심으로 환영한다』고 덧붙였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난 19일 실각되기 이전에 이미 2건의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고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21일 공개. 옐친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공화국 의회에서 대의원들에게 첫번째 쿠데타 음모는 예두아르트 세바르드나제 전외무장관이 지난해 12월 장관직 사퇴연설을 통해 소련에 독재가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성 발언으로 실패했으며 두번째 쿠데타는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가 소련 최고회의에 대해 자신에게 특별 권한을 부여해 줄 것을 설득했던지 난 6월에 있었다고 말했다.
  • 고르비 복귀 소식이 반가운 예레멘코 소 대사대리

    ◎“소­한유대 모든 분야에서 가속화확신/콜레라핑계 고위회담 기피 우스운일” 『27년동안의 외교관생활중 가장 길고 어려웠던 사흘이었습니다.그동안 쿠데타에 맞선 소련국민들에게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한국정부와 국민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본국에서 개혁에 반대하는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복귀한 22일 아침 주한소련대사관의 로엔그린 예레멘코대리대사(52)는 참으로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올레그 소콜로프대사가 본국에서 휴가중이었기 때문에 주한대사관의 총책임자로 누구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본국정세의 변화에 온갖 신경을 다 썼기 때문이다. 그는 『타스통신을 통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그땐 대통령이 체포됐는지 어떤지 몰라 불안했고 매우 슬펐다』면서 『이제 국민들이 쿠데타를 물리친 만큼 소련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소련의 장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가 여기서 끝나면 안된다.개혁은 시작하면 계속해야하는 것이다.자전거가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고르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으로서 존경한다.소련의 민주화를 추진하는데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외신은 전하는데. 『옐친이 쿠데타기간중 국민에게 반쿠데타를 직접 호소한 것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같다.그도 이미 개혁의 맛을 봤으며 연방대통령(고르비지칭)밑의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일 뿐이다. ­한소관계는 우리의 북방정책추진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소관계의 장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기존의 유대관계가 계속 진전할 것으로 낙관하며 특히 정치·사회·문화·경제 등 모든 분야의 협력이 더욱 가속화되기를 희망한다』 ­북한에 대해 매우 잘 아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난 57년부터 8년동안 세차례에 걸쳐 평양주재 소련대사관에 2등·1등서기관과 참사관으로 근무했다.지난 88년11월엔 셰바르드나제 당시외무장관의 북한 공식방문준비단으로 평양에서 김일성주석과도 만났다.어제 신문에서 북한측이 남북고위급회담을 한국의 콜레라비상때문에 판문점에서 열자고 제의를 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우스운 얘기다』 소련 모스크바국립대 동양대학에서 우리말을 익힌뒤 64년까지 소련과학아카데미에서 몇년동안 근무하다 외무부에 들어온 예레멘코대사대리는 모스크바에있는 부인과 역시 모스크바의 한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외딸(34)과 떨어져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도 「3일천하」로 끝난 쿠데타의 부담을 던 탓인지 활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 대사관·상의 활기/항공사엔 모스크바행 예약 쇄도 ○…서울 용산구 한남동 262 청산빌딩 2층에 자리잡은 소련대사관은 예레멘코대리대사가 상오8시57분쯤 출근한데 이어 유학생·기업인 등의 비자발급도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강남구 삼성동159 공항터미널 6층에 있는 소련연방상공회의소 주한대표부(소장 발레리 리자로프)는 이날 소련인 직원 5명과 한국인 직원 1명이 평소보다한시간 빠른 상오8시쯤 출근해 본국에서 전해오는 텔렉스와 타스통신 등을 지켜보며 쿠데타실패에 안도하는 표정. ○…이 건물1층의 소련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 서울지점(지점장 파블리오크 비탈리)도 비행기 좌석을 예약하기 위해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바쁘게 받는등 정상업무에 들어갔다. 예약과 직원 오모양(25)은 『지난 20일과 21일 이틀동안 비행기 이륙이 가능한지,또는 예약을 취소할수 있는지에 대해 문의가 쇄도했으나 오늘은 상오에만 20여통의 비행기 좌석 예약문의가 들어와 바빴다』고 말했다.
  • “비상사태 서명”거부하자 고르비연금/소 정변 「3일드라마」의 전말

    ◎KGB 30명 들이닥쳐 대통령내외 별장억류/크렘린측 전화불통되자 이상 감지/옐친,“대안은 군중동원”대책 주효 워싱턴 포스트지는 21일자에서 사흘동안의 소련쿠데타 실패의 전말을 3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소련에서 두려움이 사라졌을때」라는 제목으로 데이비드 렘니크기자가 쓴 이 글을 통해 쿠데타의 발생·전개·실패과정을 요약,소개한다. 쿠데타가 개시된 19일 하오 늦게 기관총으로 무장한 30여명의 KGB요원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그의 부인 라이사여사를 흑해연안 크리미아반도의 포로스별장에 억류하고 있었다.그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전화통화도 불가능했다.군인들은 이중으로 별장을 포위하고 있었으며 바다쪽에는 15척의 경비정이 포진하고 있었다. ▷쿠데타의 징후◁ 쿠데타의 원인은 고르바초프의 잦은 정책변화와 책략등 지나친 자신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면서 그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강경파들이 궁정반란을 도모했었다고 전직 KGB간부 올레그 칼루긴이 말했다. 첫시도는 1988년 전직 정치국원이었던 이고르 리가초프에 의한 것으로 그는 언론에 신스탈린주의 강령을 발표하므로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의 종식을 꾀했다. 또 옐친은 이번의 쿠데타가 금년들어서만 세번째 시도라고 주장했다.첫번째는 지난 1월 KGB와 군부의 리투아니아 민선정부 전복음모였고 두번째는 같은 무렵 두드러진 강경파의 하나인 빅토르 알크스니스대령이 고르바초프가 「의지」를 잃었다며 군부는 소련지도부의 지원과 관계없이 더이상의 진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것을 들 수 있다. 세번째는 6개월후 고르바초프가 옐친과의 협력관계에 돌입했을때 그의 반대자들은 「헌법상 쿠데타」를 시도,고르바초프와 협의없이 발렌틴 파블로프총리가 연방최고회의로 가서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장관,푸고 내무장관등 강경그룹에 별도의 권한부여를 요청,입법화를 추진했다. ▷쿠데타의 발생◁ 20일 고르바초프가 체결하려 했던 신연방조약은 ▲연방의 붕괴 ▲절대권한의 몰락 ▲개인적 지위의 손실등을 구실로 크렘린의 보수파들에게는 큰불만을 야기시켰다. 쿠데타 이틀전인 17일 하오4시 이후부터 기오르기 샤크나자로프등 고르바초프의 보좌관들은 갑자기 대통령과의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크리미아와 모스크바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러시아 의회와 CIA의 보고에 따르면 야조프국방장관을 포함한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지도부 수명이 일요일인 18일 크리미아의 별장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신연방조약체결 무효화를 위한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포고령에 사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즉시 대통령을 연금상태로 두고 쿠데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쿠데타의 전개◁ 무력시위는 19일 새벽 모스크바와 발트해공화국들의 주요도시에 탱크와 장갑차들이 진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북부러시아의 볼로그다 같은 소도시는 지방KGB가 라디오방송국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옐친과 그 보좌관들은 고르바초프가 권력에서 제거됐다는 사실을 즉각 간파했으며 쿠데타세력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대중을 동원한 시위밖에 없다고 생각,옐친이 강경책을 썼다.그는 연방의회청사내에 월 룸(전투지휘소)을 차려놓았으며 그곳에는 청년정치인,급진파 학자,언론인,심지어는 군장교와 KGB요원들까지도 모여 저항세력의 싱크탱크를 구성했고 옐친은 밖으로 나가 군중들을 이끌었다. 정치적조치로는 이날 아침 외무부에서 야나예프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쿠데타사실을 밝히고 포고령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거취를 밝혔다. ▷쿠데타의 실패◁ 쿠데타가 실패한것은 지난 6년동안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국민들에게 심어진 신사고와 제도적 개혁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한 강경파 지도자들도 각자의 생각이나 목표가 달랐다.실패한 원인은 첫째로 옐친이나 리투아니아지도자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같은 지도자들을 검거하지 않았고 단지 대중적인 지지에만 크게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둘째는 외국특파원이나 국내신문·방송등 언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셋째는 러시아공화국의 KGB책임자인 블라디미르 포데리아킨이 옐친의 편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넷째 강경파지도자나 군인들에게 스탈린시대와는 달리 대량학살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민중에게 두려움이 소멸돼 있다는 사실이었다.옐친이 두려움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마구 진주해오는 군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광부들은 파업을,어린아이들까지도 탱크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반역 8인의 운명은…/당 제명→공직박탈→징역형 수순 유력

    ◎고르비 대응·옐친 입김이 처벌강도 좌우 소련 뿐아니라 전세계를 뒤흔든 쿠데타가 21일 「3일 천하」로 막을 내림에 따라 쿠데타의 주동인물에 대한 향후 처리문제가 주목되고 있다.불발 쿠데타의 주역인 야조프국방,크류치코프KGB의장,파블로프총리,푸고내무,야나예프부통령,티자코프국가산업교통위원장,바클라노프국방위제1부위원장,스타로드브체프농민동맹위원장등 8인 국가비상위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소련연방최고회의는 21일 쿠데타세력이 와해된 직후 비상위원들에 대한 사법조사와 헌법위반에 따른 사법처리 문제를 결정할 조사위원회 구성을 제의했다.최고회의는 또 야조프와 크류치코프를 해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는 별도로 연방검찰총장은 국사범죄에 대한 성격을 띠고있는 쿠데타주동세력의 행위를 조사할 팀을 구성,개인별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앞서 쿠데타실패를 감지한 주동세력중 거사당시 고르바초프의 크림반도 별장에 있었던 야조프·크류치코프·바클라노프·티자노프 등은 「사죄」를 위해 고르바초프를 방문하는 제2의해프닝을 연출한 것으로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이들은 「사죄」에도 불구,22일 상오 다른 위원들과 함께 체포돼 대부분 러시아공 내무부로 이송되어 조사와 처벌을 기다리고 있으며 푸고 내무장관은 자살했다. 한편 공산당 중앙위원회도 고르바초프의 주재로 긴급회의를 개최,쿠데타주동세력의 행동에 대해 토의할 예정으로 있으며 개개인에 대한 쿠데타당시 역할을 조사할 위원회를 설치했다. 코베츠러시아공국방장관은 『8인위원들을 총살해야 한다』고 밝혔지만,고르바초프의 이미지등을 고려,현실적으로 8인위원들은 고르바초프시대이전에 이루어졌던 처형이나 강제수용소 수용과 같은 벌을 받을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이들은 ▲당에서 제명 ▲공직은퇴 ▲징역형등으로 일단락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또한 이들에 대한 처벌은 비상위에서의 역할,비중에 따라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8인위원들에 대한 처벌의 강도와 형태는 결국 고르바초프대통령에 의해 좌우되겠지만,고르바초프는 「은혜」를 입은 옐친등 급진개혁파의입김과 보수파가 전멸될 경우의 정치적인 영향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할 것으로 분석된다. 세확장을 꾀했던 보수파가 쿠데타의 실패로 와해됨에 따라 쿠데타주동세력에 대한 응징과 함께 향후 소련 정계의 개편이 어떻게 이뤄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찬탈과 숙청” 소 권력투쟁 74년

    ◎정권이양때 「인민의 뜻」 배제/개혁·보수파가 번갈아 집권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재임중 쿠데타에 의해 실각됨으로써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래 소련권력의 정상을 차지해온 7명의 정치지도자 가운데 흐루시초프에 이어 두번째로 자연사가 아닌 이유로 도중하차한 지도자가 됐다. 지난 여섯차례의 정권이양과정을 보면 예측불허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통해 후계자가 결정돼왔으며 후계자가 집권한 후에도 실질적인 전권을 장악하기까지는 짧게는 1∼2년,길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같은 후계자 선정에 있어서의 진통은 전임자의 정책을 계승하는 측보다는 반대하고 공격하는 측의 입장이 우월한 양상을 보여 집권자의 변화에 따라 개혁과 보수의 성향이 번갈아 나타나는 양상을 보여왔다. 공산혁명후 소련의 첫지도자인 레닌은 10월혁명후 사회주의연립정부를 구성하자는 사회혁명당등 온건사회주의 정파들의 주장을 배격하고 볼셰비키 단독정부를 수립,자신이 총리가 되고 트로츠키를 외무장관에 임명했다.그러나 이어서실시된 제헌의회 선거에서 볼셰비키는 25%의 지지밖에 얻지못해 소수정부를 유지해오다 이듬해인 18년 국회를 해산하고 볼셰비키를 전러시아공산당으로 개칭,1당독재체제를 확립했다.동시에 자신이 국가수반격인 인민위원회의 의장직을 차지,반대파들을 숙청해가며 24년 사망할때까지 절대적인 지도자로 군림했다.레닌은 1차대전이 끝난후 식량부족과 경제침체가 극에 달하자 21년 개인기업허용및 농만들의 자유로운 식량처분권등을 인정하는 신경제정책(NEF)을 실시했다. 그러나 레닌이 죽자 트로츠키의 2인자 부상 예상을 뒤엎고 스탈린·지노비에프·카메네프의 3두체제가 등장했다.당시 스탈린은 실권없는 당서기장으로 이론이나 실제활동에서 두드러지지 못한 인물이었으나 코민테른 책임자 지노비에프와 공산당 정치국원 카메네프를 재빨리 포섭,레닌의 신경제정책 지지를 표방한 부하린등 우파를 제거했다.그 다음에는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를 이간질시키는 각개격파전술을 구사,레닌 사후 5년만인 1929년말 명실공히 당과 소연방의 최고지도자로 실권을 장악했다. 스탈린은 공업화와 농업집단화를 강제적으로 추진시키는 무자비한 경제정책을 추진했으며 반대자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했다.36년에는 공산당을 모든 공공조직과 국가조직의 핵심으로 규정한 새헌법을 발포,39년부터 52년까지 당대회를 한번도 열지 않은채 철권통치를 해왔다. 53년 30년 가까이 독재체제를 구축해온 스탈린이 죽자 당내에는 유력한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집단지도체제가 불가피해 당시 총리 말렌코프·KGB의장 베리아·외무장관 몰로토프·정치국원 흐루시초프의 4두체제가 수립됐다.원래 스탈린 사망 다음날인 3월6일 당중앙위원회와 정부및 최고회의 합동회의에서 말렌코프를 당간부회 의장·당제1서기·총리등 3개요직에 앉힘으로써 말렌코프체제가 수립되는 듯했으나 4인의 암투가 본격적으로 전개돼 불과 8일만에 당중앙위 총회에서 당 제1서기직을 흐루시초프에게 넘기도록 결정,말렌코프의 권력은 줄어들었으며 이어서 베리야가 KGB를 이용,권력장악을 시도한다는 이유로 숙청됐다. 이후 2년동안 권력투쟁을 벌인뒤 55년 말렌코프를 총리직에서 제거함으로 흐루시초프는 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흐루시초프는 이른바 「해빙」이라는 신정책을 시도했으며 반스탈린정책을 추진,고르바초프등 당시 젊은 당료들을 고무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64년 10월 쿠바위기와 중소이념논쟁 격화등으로 인한 당내불만의 고조로 그가 휴양차 모스크바를 비운 사이 그의 추종자들인 브레즈네프·수슬로프·포드고르니·코시긴등에 의해 추방당했다. 이어서 등장한 것은 총리 코시긴·당제1서기 브레즈네프·최고회의 간부회의의장 포드고르니등에 의한 이른바 트로이카체제(3두체제)였다. 브레즈네프는 이 체제내에서 옛질서의 회복을 강력히 추진하는 반흐루시초프정책을 밀고나가 2년후 서기장에 올랐으나 코시긴총리가 죽고 새헌법이 통과된 77년에야 전권을 장악할수 있었다. 82년11월 브레즈네프의 갑작스런 죽음이후 정치국원 체르넨코와 경쟁을 벌이던 안드로포프 연방최고회의의장은 이틀만에 당서기장에 올랐으며 그는 불과 7개월만에 국가원수격인 연방최고회의간부회의의장에 선출됨으로써 전권을 장악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15개월만에 사망했고 72세의 고령인 체르넨코가 불과 4일만에 후계자로 결정됐다.그 과정에서 고르바초프·로마노프·알리예프등 소장파들의 강한 도전이 있었으나 일종의 과도체제라는 묵계하에 체르넨코가 지명될수 있었다.그는 브레즈네프의 후광을 받으며 성장해왔기 때문에 강력한 보수체제로의 회귀를 꾀했으나 불과 13개월만에 병사,최단명 지도자를 기록했다. 85년3월 체르넨코가 죽자 고르바초프가 후임 서기장에 선출됐으며 그는 1년동안 최고의 정적인 로마노프·빅토르 그리신등을 축출하고 전권을 장악,다음해 3월 개최된 제27차당대회에서 소련의 대변혁을 가져온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을 발표했다. 그는 이어서 90년 3월에는 헌법을 개정,대통령에 취임했으나 군내부의 보수파와 옐친등 급진개혁파등의 도전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이같은 소련의 권력이양과정을 볼때 이번 쿠데타로 누가 권좌에 오르든 상당기간 또 한차례의 권력투쟁은 불가피할것으로 보인다.
  • 「비상위」 강경파 3인 권력전면에/크렘린 실세는 누구인가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푸고 내무/권력중추장악… 「파워트리오」 부상/「대행」야나예프는 「얼굴마담」 인듯 소련 개혁의 기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몰아내고 최고권력을 차지한 것으로 보이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8인 가운데 누가 실세일까. 고르바초프 실각 이후 서방세계는 잠정적으로 권력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비상사태위원회」의 실체 파악에 분주하다. 지난 19일 쿠데타 직후 비상사태위원회는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54)이 헌법에따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고 밝혀 일단 야나예프가 소련의 얼굴을 대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나예프는 급진개혁주의자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등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주장하는 개혁지향세력들의 반발과 분리독립을 거세게 요구하고 있는 공화국들의 움직임을 제어,「비상위」가 지키고자 하는 연방체제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러시아태생인 그는 법률·역사학자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고르바초프에 의해 부통령직에 임명되기 전까지는 중앙정치무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당시 그를 부통령으로 승인했던 인민대표회의는 1차투표에서는 과반수이상이 그를 거부하기도 했을만큼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야나예프가 명목상이지만 대통령직무를 수행하게 된것은 이번 쿠데타의 대외적 모양새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주도세력들이 온건적인 야나예프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이러한 점은 「비상위」가 쿠데타 직후 밝힌 성명에도 드러난다.「비상위」는 성명에서 쿠데타의 정당성을 고르바초프의 무리한 개혁정책으로 인해 피폐화된 경제회복과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공화국들로 인해 무너지는 연방체제 고수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성명의 내용은 그동안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입지가 상당히 약화된 군부등 보수강경파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어 이번 쿠데타의 실세가 누구인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즉 크류치코프 KGB의장(67),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67),보리스 푸고 내무장관(54)등 이른바 「보안 트리오」가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으며 앞으로 소련의 대서방정책과 국내경제정책등을 추진하게 될것으로 추측된다. 지난 87년 서독의 루스트군이 소련방공망을 뚫고 모스크바 광장까지 경비행기 세스나기를 몰고와 인책경질된 스콜로프에 이어 국방장관에 오른 드미트리 야조프는 중앙아시아군관 사령관과 극동사령관을 역임했다. 지난해 12월,내무장관직에 오른 푸고는 공산당내 강경파의 선두주자로 지난달 미·소양국의 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체결과 때를 맞춰 리투아니아공화국 수비대원 7명을 사살한 사건의 배후에 내무부가 개입됐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 과격파로 알려져있다. 크류치코프 KGB의장은 워싱턴 포스트지가 CIA정보를 인용,소련 권력서열 2인자로 부상했다고 보도한 인물로 지난 67년 이래 줄곧 KGB에 몸담아 왔다. 이들 「보안트리오」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인물로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53)를 들 수 있다. 재정통으로 보수강경파인 그는 G­7회담에 참석,서방원조를 요구했던 고르바초프를 비난해 서방기업인에게는 요주의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 「보안트리오」외에 이번 쿠데타의 핵심배후세력으로 올레크 바클라노프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거론되기도 한다. 바클라노프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지난 83∼89년 동안에는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서 미사일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 책임자 역할을 하기도 했던 군·산복합체의 대표격인 인물. 일본 외무성은 그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군·산복합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쿠데타의 실세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밖에 바실리 스타로드브체프 농민동맹위원장(59)과 국영기업및 산업시설협회장 티자코프는 농민들과 광공업 종사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이번 「비상위」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보안트리오」등 보수강경파가 주도세력인 이번 쿠데타세력은 군·경찰등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않아 속수무책인 옐친을 비롯한 개혁주창세력을 누르고 당분간은 계속 소련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제정책에 따라 나타난 경제난을 빌미로 쿠데타를 벌인 만큼 「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쿠데타의 성공여부는 판가름될 것이다.
  • 충격·초조… 소 대사관 업무중단

    ◎“고르비 실각”소식… 주한 소 각기관 표정/“반신반의”… 사태파악 분주/소 상의/“잼버리 참가자 귀국 가능”/항공사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진 19일 하오 용산구 한남동 261의1 주한 소련대사관은 7대의 일반 전화를 일체 받지 않는 등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며 본국에서의 소식만을 기다리는 등 매우 초조한 모습이었다. 때마침 소콜로프대사가 휴가로 본국에 가있는 상태여서 대사관 직원들은 더욱 안타까운 표정이다. 예레멘코공사는 이날 하오 기자들과 만나자 『아직 본국으로부터 어떠한 공식훈령도 접수되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알고있는 것은 타스통신이 보도한 대통령의 사임사실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공식통보가 오면 한국 외무부를 통해 공식입장을 밝히겠다』고 긴장된 표정으로 말했다. 대사관측은 국내 정세변화와는 관계없이 매주 월·화·목·금요일 상오9시30분부터 낮12시30분까지 해오던 비자발급업무를 정상적으로 해나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만큼은 비자 업무를 일찍 중단하고 문을 닫았다. 이날 소련에 유학을 가기 위해 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하러온 김종미씨(26·여·고려대 노어노문학과졸)등 학생 3명은 『자칫 소련 국내정세의 급변으로 한소관계가 냉각돼 유학길마저 막힐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159 공항터미널 6층 소련연방상공회의소 주한대표사무소(소장 발레리 라자로프)는 라자로프소장이 지난달 본국으로 휴가를 떠나 소련인 직원 4명이 사태파악을 위해 대사관등으로 달려가는등 동분서주하는 모습. 이날 상공회의소에는 직원 6명 가운데 소련인 직원 1명과 한국인 여직원 1명만 남아 타스통신의 속보를 지켜보며 사태진전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한국인 여직원 홍모양(25)은 『하오2시쯤 타스통신을 보고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서울의 대기업체등에서 고르비실각 사실을 본국으로부터 연락받았느냐는 전화가 빗발쳤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공항터미널내에 위치한 소련 국영 아에로플로트항공 서울지점에서 일하는 소련인 4명과 한국인 2명 등 6명의 직원들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소식이 전해진 19일 낮 한결같이『그럴리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앞날을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김포공항사무소의 이근영차장(39)은 『고르비가 실각됐다지만 수요일과 금요일 등 매주 2회씩 운항하는 비행기편은 차질없이 운항할 것으로 본다』며 『 20일에도 세계잼버리대회에 참가했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피해청소년 1백2명이 예정대로 전세기를 이용,김포를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 “소 새 권력의 핵” 8인비상위

    ◎전원 공산당 강경파… 초헌법적 권한행사 비상사태가 선포된 고르초프이후 시대 소련의 전권을 장악,새 소련의 위상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될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일단 6개월간의 비상사태선포기간중에만 활동하게될 「한시적인」 기구로 돼있다. 이 위원회는 소련내의 모든 권력을 장악,새 연방조약 체결을 둘러싼 각 공화국들간의 대립과 같은 민족분규문제와 파탄에 빠진 소련경제의 회생을 위한 경제개혁의 계속적인 추진등 소련의 당면현안들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초헌법적」 기구로서 소련내의 새 질서형성과 국제사회에서의 소련의 위치설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위원회가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게될지는 한마디로 예측할 수 없지만 8명의 구성멤버 대부분이 공산당내의 강경보수주의자들이란 점은 앞으로 이 위원회가 떠맡을 기능을 점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 크류치코프KGB의장,파블로프총리,야조프국방장관,푸고내무장관등 보수파 지도자의 이름이 들어있으며 이 위원회가 보수노선 회귀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기본적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관계자도 3명이 끼어있다.이것은 이 위원회의 정치적 기반이 넓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주목되고 있다. 야조프국방장관,크류치코프KGB의장,푸고내무장관은 국내 치안세력을 대표하는 「세마리의 까마귀」로 불린다. 지난 1월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수도 빌니우스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에 대한 무력제압작전도 이들 3명의 합동 작품이었다고. 이와는 달리 주목되는 3명은 바클라노프국방회의부의장,스타로드브체프농민동맹의장,티자코프소련국영기업협회의장이다. 바클라노프는 군·산복합체의 대표이며 스타로드브체프는 국영농장및 집단농장의 이익을 대표한다. 이들은 모두 구체질해체 위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3명을 비상사태위원회의 멤버에 가담시킨 이유로는 ▲권력기구 내부에서의 권력탈취,즉 「궁정쿠데타」라고 보여지는 것을 피하고▲신정권의 기반이 산업 농업 서비스업에 미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다는등의 계산이 있었던 것으로보여진다. □국가비상위 위원명단 ▲올레크바클라노프국방위제1부의장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의장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 ▲보리스 카를로비치 푸고 내무장관 ▲VA스타로드브체프농민동맹위원장 ▲AI 티자코프 국영기업협회장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
  • “공산주의 되살리려는 「반개혁 쿠데타」”

    ◎6년5개월 권좌 왜 무너졌나/「바깥에 굽실…」 고르비행태에 보수 반발/민족문제·군축협상등 강경선회 할듯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휴가를 즐기던 19일 새벽(현지시간) 갑자기 실각당한 배경에는 소련군부와 비밀경찰 KGB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이날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발표한 야나예프연방부통령,파블로프연방총리,바클라노프연방방위위원회 제1부의장 등이 모두 군부의 지원을 받는 보수파라는 점,그리고 이날 구성된 국가비상위원회에 크류치코프 KGB의장과 야조프국방장관이 포함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설득력이 있다. 소련군부와 KGB는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내세운 84년 무렵부터 그 위치가 흔들려 왔지만 지난 7월말 소련 공산당이 시장경제로의 개혁을 포함하는 새 강령을 채택한 데 이어 20일 새 연방조약이 체결되면 군과 KGB의 활동영역이 크게 축소되는 등 지금까지 누려온 정치적 위치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만큼 결정적으로 코너에 몰리게 된다. 소련 군부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 이후 ▲소련군의 동유럽으로부터의 잇다른 철군▲지난해 11월 파리에서 조인된 CFE(유럽재래식무기) 감축협정에 따른 병력감축▲군수산업의 민수산업으로의 전환▲민족분규에 따른 국내 치안불안 등에 불만을 품어 왔다. 더욱이 새 공산당 강령안과 새 연방조약이 체결될 것이 확실시되던 올해 들어서 소련 군부는 노골적으로 반개혁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이들은 이러한 불만을 간헐적으로 터뜨려 왔는데 지난달 23일에는 현역 국방차관등 12명이 보수적 신문인 소비에츠카야 로시야지에 게재된 공동성명에서 고르바초프의 노선을 비판하면서 「바깥에 굽실거리는」 지도자를 축출하기 위해 단결하자고 호소,최악의 경우 쿠데타도 불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시사했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실패로 끝난 보수파인 파블로프총리의 비상대권 요구도 군이 깊이 개입한 것으로 전해진 바 있고 검은 대령으로 알려진 알크스니스대령 등도 인민회의 등을 통해 군부의 보수적 입장을 대변해 왔다. KGB도 개혁 이후 최대의 피해자라고 불릴 만큼 몰락의 기로에 서 왔으며 외국인 감시와 종교탄압 반체제인사 감시를 일삼아오던 일부 기구는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었다. 지금까지 소련 역사를 통해 지도자가 실각하는 경우­말렌코프,흐루시초프등­ 공산당 정치국을 통해 이루어졌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날 군부의 움직임은 공산권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또 야나예프의 이름으로 발표된 포고령은 이번 정변이 헌법 127조 7항에 따라 이뤄진 조치라고는 하지만 전례없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비상위원회를 조직한 것으로 보아 이는 공산당이 권력의 핵심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에 KGB와 군의 직접적 개입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음을 보여준다. 1917년 노동자 농민 소비에트와 함께 병영 소비에트를 조직,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켰고 혁명 후에는 서방의 간섭과 반혁명세력의 준동을 무력으로 제압해 공산 소련의 기초를 다져온 소련군부는 혁명수호 최후의 보루라는 자부심이 흔들린 적이 없다. 소련 군부와 KGB는 이처럼 공산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무력의 전위에 서 오면서도 무력을 통한 직접적인 정치개입은 자제해왔는데고르바초프의 개혁이 미국에 대한 굴욕적 외교와 공산주의 원칙을 포기하는 데 이른 것으로 여겨지자 공산주의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직접 개입하는 최후의 선택을 취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앞으로 KGB와 소련 군부는 개혁파의 도전과 정책 수행의 직접적 책임에 노출되면서 개혁과 민족문제,그리고 미국과의 군축협상에서 공산주의 원칙을 반영하는 강경한 목소리를 관철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소련지도자 재임연표 ▲레닌=1917.10∼1922.3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 수립. ▲스탈린=1922.3∼1953.3 5차례의 5개년계획추진.대규모 숙청등 전체주의 체제 구축. ▲흐루시초프=1953.3∼1964.10 초기 말렌코프 등과 집단지도체제 구축.56년 스탈린 비판.58년 1인집권 확립했으나 64년 보수파 브레즈네프에 의해 축출됨. ▲브레즈네프=1964.10∼1982.11 체코 「프라하의 봄」을 무력진압하는 한편 미국과는 데탕트 추구. ▲안드로포프=1982.11∼1984.2 KGB의장출신으로 처음 권력장악.군부의 지지 업고 부패추방과 경제개혁을추구했으나 실효 못거두고 사망. ▲체르넨코=1984.2∼1985.3 소련 역사상 최단명 지도자.대내정책과 미국에 대한 정책에서 강경노선 취함. ▲고르바초프=1985.3∼1991.8 혁명2세대로 처음 최고권력 장악.실용적 개혁정책을 추구했으나 보수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권좌에서 축출됨.
  • 신데탕트·페레스트로이카 “위기”(크렘린 대지진:1)

    ◎“개혁혼란·경제난 타개”구실,보수파 반격/동서화해 조류 역류 위기… 세계가 긴장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조류가 역류할 위기를 맞고 있다. 2차세계대전이후 세계사를 지배해온 냉전시대의 막을 내리게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실각하고,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화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으로 소련은 최대의 정치적위기를 맞았으며 국제정치무대의 주인공 중의 하나였던 고르바초프의 퇴장은 국제정치 기류를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계를 놀라게 한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최근 절정에 이른 소련내의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갈등과 대립에서 보수파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소련 공산당은 지난15일 고르바초프의 핵심 측근이며 개혁정책 입안자인 야코블레프를 축출,개혁파에 대한 대반격을 본격화했다. 소련군부도 군기관지 적성을 통해 『군내의 모든 공산당원들은 일치단결하여 당과 군을 방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오랜 침묵을 깨고 자기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었다.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은 지난 16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공장의 공산당 활동금지조치를 적용하자 더 이상 개혁파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일로 예정돼 있던 신연방조약체결 하루전날 고르바초프를 축출했다. 강경파 지도자들은 소련의 새로운 「탄생」을 저지한 것이다. 관영 타스통신은 소련은 새로 구성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의해 통치될 것이며 의장은 겐나디 야나예프 부통령이 맡았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한은 소련 강경보수파의 상징인 군부와 KGB가 장악한 것으로 분석된다. 8명의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과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 KGB의장이 포함돼 있는 사실이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위원회에는 또 발렌틴 파블로프 연방총리,보리스 푸고 내무장관등 강경파들로 구성돼 있어 소련이 다시 강경보수파의 통치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동유럽의 대변혁을 가져오며 서방세계에서는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소련의 경제를 회복시키는데는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를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점진적인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해 왔다. 정통적인 공산주의 경제체제로는 소련의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키는 「실험」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고르바초프의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면도 없지않다. 소련의 경제성장은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때도 있었고 고질적인 식량난은 더욱 악화돼왔다. 더욱이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은 소연방체제의 「붕괴」를 가져왔다.리투아니아공화국등 발트해 3개공화국을 비롯,6개공화국이 신연방조약 가입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국가해체과정」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밝혀,발트해 3개공화국 등이 주도하고 있는 소련내의 분리·독립움직임을 힘으로라도 저지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강경보수파들은 소연방이 해체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분리독립을 추진하고 있는 발트해 3개공화국들의 독립의지도 매우 강하기 때문에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이들의 저항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공화국 국민들 뿐만아니라 러시아공화국등 다른 소련인들의 반응도 주목된다. 옐친대통령의 급진개혁 깃발아래 개혁을 서두르는 러시아공화국 국민들도 개혁이 후퇴될 경우 반발이 예상된다. 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물론 비상사태선포가 소련 각부문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개혁의 속도나 방법에 대해 보수파들이 큰 불만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소련의 개혁속도는 늦추어지지 않을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강경보수파들도 개혁은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식의 개혁이든 현재 소련이 안고 있는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은 소련 국내보다 오히려 세계사적인 측면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도 할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마감하고 동서화해의 새시대를 개막시켰다. 고르바초프의「대변혁 드라마」는 유럽의 정치지도를 다시 그리게 만들었으며 지구촌 곳곳의 분쟁을 하나 하나 해결시켰었다. 그의 개혁정책은 냉전의 마지막 잔재로 남았던 한반도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한국은 소련과 국교정상화를 이루었으며 북한도 지금까지의 철저한 고립정책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한반도의 긴장완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이같이 세계를 무겁게 누르고 있던 냉전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출하는데 미국과 함께 주연역을 맡았었다. 그러나 세계사를 바꾸어 놓은 고르바초프의 「정치드라마」는 대단원의 막이 내리기도 전에 또다른 힘에 의해 중단됐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강경보수파에 의해 중단된 것이다. 소련의 보수화는 미국을 주축으로한 서방세계를 긴장시킬 것이다. 미국은 고르바초프를 소련역사상 최초로 믿을만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를 체결하는 등 미소밀월시대를 맞았었다. 그러나 미소의 밀월시대는 일단 끝났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냉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정치분석가들은 전망한다.소련도 「스탈린이나 브레즈네프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국제정치 역학관계는 미국의 대소대응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새로운 지도자들과 어떤 관계를 정립하느냐에 따라 국제정치의 성격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시대의 화해의 새국제질서가 정착되기는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환한 웃음이 국제정치무대에서 사라지면서 국제정치가 난기류에 휩싸이고 있다.
  • 마케도니아공도 독립 추진/유고,연방붕괴 가속화 될듯

    【베오그라드 AP AFP 연합】 세르비아를 포함한 유고슬라비아 3개 공화국이 새 연방 결성을 위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마케도니아공화국 정부가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통과를 적극 추진,유고연방 해체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키로 글리고로프 마케도니아공화국 대통령은 이날 아드리아해 휴양지 오리드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공화국 주민들에게 오는 9월8일 공화국의 독립 여부를 묻기 위해 실시될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다. 그는 마케도니아인들이 『유고내 주권국가들의 동맹체제 안에서 주권을 유지하고 독립돼 있는 마케도니아』를 위해 찬성 투표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국민투표에서 마케도니아인들은 독립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되며 결과가 이러한 예상대로 나온다면 마케도니아는 슬로베니아및 크로아티아공화국에 이어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이탈하는 3번째 공화국이 된다.
  • 소 새 연방 「민주 주권공화국」 시대로

    ◎「신연방조약」 서명행사 일정발표의 저변/발트3국등 제외 9∼10개공 참여/군사·조세만 연방정부서 관할/20일 러시아·우즈베크공 첫 서명… 10월까지 계속 새로운 소련방의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볼셰비키혁명뒤인 1922년 구성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이 공식적으로 깃발을 내리고 「소비에트 민주주권 공화국연방」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소련의 언론들은 9일 15개공화국 가운데 9개 공화국이 새연방협정에 서명키로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질 첫 서명행사는 오는 20일에 실시되며 러시아·카자흐·우즈베크공화국이 테이프를 끊는다. 이어 9월2일에는 백러시아와 타지크가,9월20일에는 키르기스 및 투르크멘공화국이 서명하며 아제르바이잔과 우크라이나공화국은 10월10일로 서명일자를 잡아놓고 있다. 다만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등 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발트3공화국과 그루지야·아르메니아·몰다비아등 6개공화국은 서명을 않겠다는 입장이나 이중 아르메니아가 서명가능성을 비치고 있어 불참공화국은 5개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레본 페트로시얀 아르메니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은 7월말 크렘린과 신연방참여 9개공화국이 모스크바교외 고르비의 별장지 「노보 오가료보」에 모인 자리에 갑자기 참석,이같은 뜻을 밝혔다.페트로시얀의장은 이 자리에서 조만간 국민투표를 실시해 연방참여여부를 가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투표결과가 연방불참 쪽으로 나오더라도 크렘린이 요구하는대로 향후 5년간의 독립유예기간을 거치겠다고 했다.이 유예기간동안은 새 연방의 정회원이 되든지 아니면 준회원으로 남아 독립에 필요한 정치·경제적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말했듯 소련은 현재 공화국들의 주권요구가 높아지면서 중앙정부와 공화국간에 일종의 「법률전쟁」이 벌어지는 형국이다.모든 것이 연방 따로 공화국 따로이다. 공화국간 식품공급도 제대로 안되고 기계부품공급이 안돼 트랙터·농기구들이 수십대씩 정비공장에 방치돼 있다.모스크바 TV방송들은 연일 이런 장면을 방송하며 신연방조약체결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새연방조약의 기본정신은 군사·조세권을 비롯해 통화관리·세관 등은 연방정부가 맡고 나머지 권리는 대폭 공화국 정부에 넘긴다는 것이다.연방공화국들은 외국과의 교역도 자유로 하고 영사관계까지 맺을수 있도록 했다. 또한 신연방내에서는 단일 화폐를 사용하고 최혜국 대우를 하는등 경제적으로는 단일국가 형태를 유지한다. 문제는 독립의사를 굽히지 않고있는 발트3공화국의 태도이다. 크렘린은 신연방조약이 체결돼 경제적 고립을 겪을 경우 발트3공도 입장이 완화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같다.페트로프스키연방외무차관은 최근 이즈베스티야지와의 회견에서 발트공들이 원할 경우 유엔가입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독립 외에는 다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크렘린이 발트3공에 이같이 집착하는 이유는 우선 이런 식으로 떨어져나가 반소정부가 영토 한쪽옆에 들어설까 우려되고 이들의 전략적 가치도 포기할수 없기 때문이다.당장의 문제는 현재 이들 공화국내 독립찬성·반대세력간의 대립으로 언제 또 유혈충돌이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벌써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들 공화국내 「구국위원회」등 독립반대세력이 연방군과 합세해 공화국군·시민단체와 충돌,사상자를 낼 경우 의외의 사태악화를 불러올 우려가 있다.지난달 31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서 발생한 리투아니아공 경찰·세관원 피살사건은 조약체결을 앞두고 이러한 우려를 더욱 짙게 한다.진상조사가 진행중이지만 독립문제와 관련한 테러쪽으로 혐의가 모아지고 있다. 이곳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크렘린이 결국 양보할 것이라는 견해와 발트공들이 결사독립의 자세를 버리고 자결권 영역을 차차 확대하는 쪽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견해가 엇비슷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들 외에 서명거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그루지야·몰다비아공도 문제가 간단치는 않다. 그루지야·몰다비아에는 공화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신연방참여를 원하는 자치공·자치구들이 있어 새로운 불씨로 등장하고 있다. 예를들어 압하지야 자치공은 결사적으로 연방참여를 주장하는데 특히 이 자치공은 1931년까지 연방공화국이었다가자치공으로 지위가 격하됐기 때문에 그루지야가 끝까지 서명을 않을 경우 연방공화국 자격을 새로 얻어서라도 가입하겠다는 기세이다. 소련방의 총인구는 1990년말 현재 약2억8천8백만으로 집계돼 있다.그중 서명공화국들의 인구를 합치면 약2억6천만명이고 서명거부 공화국 인구는 2천만명이 채 안된다.크렘린의 의도를 엿볼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차선책으로 발트3공들을 제외하고 새연방을 만들어도 전혀 「제국의 위세」에 손상이 오지 않는다는 계산을 했을 법하다. 레닌은 혁명뒤 새 연방을 만들면서 구차르시대의 러시아제국을 「민족들의 감옥」이라고 욕했다. 모든 민족들의 권리가 동등하게 존중되는 새 연방을 구상했던 것이다.그러나 그 구상은 70여년동안 「공산당 통치」라는 멍에에 묶여 엉뚱하게 변질돼 버렸다. 공산주의의 멍에를 벗으면서 소련에선 또 한번 새로운 연방이 약속되고 있다.그 새연방이 처음부터 절름발이로 시작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 소­쿠바 협력유지/미 간섭 격렬 비난

    【모스크바 AFP 연합 특약】 파블로프 소련총리는 2일 소련이 쿠바와 계속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할것이라고 밝히면서 미국이 소련과 쿠바간의 유대관계에 일방적으로 간섭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파블로프총리는 이날 마르코비치 유고대통령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어떤 나라도 소련·쿠바관계에 간섭하려 해서는 안되며 미국이 이에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말했다.
  • “미소에 새 SDI계획 타진”/부시,정상회담서

    ◎우발 핵전·제3세계국의 공격 대비/“「후속 무기감축협상」계속”/미 관리 【워싱턴 AFP 로이터 연합】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다음주 모스크바 미소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최신 대미사일 방어계획에 대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동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스코크로프트 백악관안보담당보좌관이 26일 말했다. GPALS(제한공격에 대한 세계적 차원의 보호)로 알려진 이 계획은 미국의 전략방위계획(SDI)의 일부로 소련의 핵공격보다는 우발적인 발사나 제3세계국가로부터의 잠재적 공격에 대비한 것이다. 소련은 우주배치 SDI계획이 양측의 탄도탄 요격미사일(ABM)수를 1백기로 제한한 지난 72년의 ABM조약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이를 거부해왔다. 한편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은 미국이 모스크바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제난을 겪고있는 소련을 지원하기 위해 소련에 무역상의 최혜국(MFN)지위를 부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피츠워터대변인은 미소간 전략핵무기감축협정(START)이 그동안 세부사항을 마무리짓고 오는 31일 하오 모스크바정상회담에서 공식 조인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START 체결후에도 탄도미사일폐기등 무기감축협정에 관한 협의를 소련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미행정부의 한 고위관리가 했다.
  • “대규모 대소 경원 G7서 반대”/오늘 개막/백악관,정상회담 전망

    ◎경제개혁 계획 미비로 【케네벙크포트 로이터 연합】 미국은 런던에서 15일 개막되는 서방선진 7개공업국(G­7)정상회담 참가국들간에 대규모 대소경제지원에 반대한다는 합의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13일 말했다. 스코크로프트 보좌관은 G­7 국가들이 대소경제지원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으나 경제개혁프로그램이 없는 상태에서 소련에 막대한 규모의 재원이 제공되지는 않을 것이란 일반적인 합의가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보낸 23페이지에 달하는 서한은 소련경제를 자유시장 경제로 전환하는데 따른 구체적인 계획을 담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스코크로프트 보좌관은 소련이 대규모 경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개혁계획이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대한 자금을 제공해도 낭비만 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G­7정상회담에서 부시대통령이 갖고있는 목표는 소련에서 진행되고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안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소련이 시장경제를 향한 확고한 계획을 추진할 때까지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IBRD)의 준회원 자격만 부여하고 대소지원도 기술적인 지원에만 국한하기 위해 로비활동을 벌여왔다.
  • 이라크/“모든 핵시설 사찰 수용”/유엔의 미 군사공격 제지 전제로

    ◎미,“군사행동땐 다국군 구성” 【바그다드·유엔본부·런던 AP AFP 로이터 연합】 유엔안보리가 이라크에 대해 이라크내 핵시설 및 프로그램에 대해 보다 폭 넓은 내용을 담은 목록을 오는 25일까지 제출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가운데 이라크는 13일 유엔 핵사찰단이 국내의 모든 핵시설 및 장비에 대한 조사를 벌이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미국이 이라크에 새로운 공격을 감행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유엔에촉구했다. 한편 유엔핵사찰단의 디미트리 페리코스 단장은 이라크가 핵시설 및 장비에 대한 새로운 목록을 곧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케네벙크포트 로이터 AP AFP 연합】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국가안보담당보좌관은 13일 이라크가 핵무기개발노력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미국은 이라크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할 용의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또 이라크에 대한 군사공격이 있게 될 경우 이는 미국을 비롯한 대이라크연합군의 참여속에서 취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스코크로프트 보좌관은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그러나 자신은 이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G7 영 정상회담때 고르비,획기적 제안”/소 총리 밝혀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다음주 경제개혁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제시,서방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외국인 투자에 대한 철의 장막을 해제할 것이라고 소련의 고위관리들이 11일 말했다. 파블로프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주 고르바초프는 G­7지도자들과의 회담을 통해 예상할 수 없는 제안들을 할 것』이라고 밝혀 고르바초프가 서방의 경제지원을 위해 획기적인 계획을 준비중인 것을 시사했다.
  • 소,체그도민 북한감옥 조사/북한,「유치실」운영 시인

    ◎프라우다지 보도 【모스크바 연합】 소 당국은 최근 시베리아 하바로프스크 인근 체그도민에 위치한 북한임업사업소가 설치,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비밀감옥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지 조사단을 파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는 9일 하바로프스크지방 검사국위원회가 지난 68년 소­북한 임업협정체결이래 22년만에 처음으로 북한임업사업소내 제반상황을 최근 조사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측은 조사단에 대해 비밀감옥의 존재를 강력히 부인했으나 현지 북한 범법자를 송환하기 위해 「유치실」을 운영하고 있는 사실은 시인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 신문은 또 북한측의 완강한 거부로 소련현지조사단이 3일이 지난 후에야 임업사업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전하고 1만3천명으로 추산되는 북한벌목인부에 대한 총책임자는 사회안전부의 장성급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 미·소,전략무기 마무리 협상/소 외무등 대표단 내일 방미

    ◎부시,“타결땐 월말 방소… 정상회담 【워싱턴 AFP 로이터 연합】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협상을 마무리 짓기위해 오는 10일 알렉산데르 베스메르트니흐 외무장관을 워싱턴에 파견할 예정이라고 미 백악관이 8일 밝혔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앞서 지난 6일 조지 부시 미대통령이 전략핵감축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촉구하는 긴급 메시지를 보낸데 대해 7일 회답을 통해 베스메르트니흐장관을 단장으로하는 고위급 협상 대표단을 파견할 것임을 전달해왔다고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이 말했다. 소련 대표단은 오는 11∼12일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등 미관계자들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피츠워터 대변인은 밝히면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START 협상 완결을 위해 노력을 배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부시대통령과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피츠워터 대변인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회신이 워싱턴주재 소련대사관을 통해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전달됐으며 소련측 START협상 대표단중에는 미하일 모이세예프 소련군 참모총장,알렉세이 오부코프 외무차관 등도 포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부시대통령은 이달말께 모스크바를 방문,고르바초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그 전제조건으로 START 협상 타결을 주장하고 있다.
  • 백악관 앞뜰 “국빈맞이” 예포 21발(노 대통령 북미순방여로)

    ◎전례없는 인파… 악수 공세에 진땀/교민들과 일일이 인사,공항출발 지연/“봄바다에 떠있는 영산”… 북한변화 강조 ○“다시 만나 반갑다” 인사 ◎…노태우대통령의 국빈방문에 따른 공식 환영행사는 백악관 남쪽뜰에서의 옥외환영식과 백악관 본관 2층 크로스홀에서의 공식수행원및 환영위원 접견순으로 2일 상오10시(한국시간 2일 하오11시)부터 약30분간 진행. 환영식은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사열대 등단후 의장대의 양국 대통령에 대한경례에 이어 애국가와 미국 국가연주,양국국가 연주중 21발의 예포발사,양국 대통령의 의장대 사열,부시대통령 환영사,노대통령 답사순으로 20분간에 걸쳐 장중하고 엄숙하게 거행. 노대통령 내외는 환영식에 앞서 영빈관을 출발,10시 정각 백악관에 도착했으며 부시대통령 내외는 외교사절 출입구인 디플로매틱 엔트런스 앞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영접. 양국 대통령내외는 서로 『다시 만나 반갑습니다』라며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고 나서 잠시 인사말을 주고 받은뒤 리드 백악관의전장의 안내로 전면의 환영식장으로 이동. 환영식에는 이상옥외무장관을 비롯한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김봉규공사등 우리측 환영위원회위원,김상하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한 수행경제인등 특별초청인사들과 비공식수행원,대사관직원과 가족,상사주재원,교민지도자등 우리측인사 3백여명과 퀘일 부통령내외,베이커 국무장관내외,수누누 비서실장,제레미아 합참차장,그레그주한대사내외를 비롯한 미측 환영위원회위원등 4백여명이 참석. 양국 정상내외는 환영식이 끝난후 백악관 2층 크로스홀로 이동해 부시대통령,노대통령,바바라 부시여사,김옥숙여사순으로 나란히 서서 우리측 공식수행원과 양측 환영위원들을 접견. ○15분간 단독회담 가져 ◎…양국 정상은 약30분간에 걸친 공식환영행사에 이어 상오10시30분(현지시간)1층의 대통령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바로 옆의 각료회의실에서 단독및 확대정상회담을 약1시간 가량 진행. 단독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이,미측에서는 스코우크로프트대통령안보보좌관이 배석했으며,통역은 우리측의 이정하공보비서관과 미측의 크리스텐센 주한미대사관 1등서기관이 각각 수행. 약15분간의 단독회담에 이어 열린 확대정상회담에는 우리측에서 이상옥외무,이봉서상공,현홍주주미대사,정해창비서실장,김종인경제수석,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이수정공보수석,이정하비서관(통역)이,미측에서는 퀘일부통령,베이커국무,모스배커상무,스코우크로프트안보보좌관,솔로몬국무부 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크리스텐센 서기관(통역)이 각각 배석. ○잇단 박수답례에 상기 ◎…첫 기착지인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일 하오5시(한국시간 2일 상오6시)전용기편으로 워싱턴 앤드루스공군기지에 도착한 노태우대통령은 현지 교민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베풀어진 리셉션에 참석하는 것으로 워싱턴 일정을 시작. 노대통령이 저녁 7시 정각 리셉션장인 옴니슈람호텔 리젠시 볼룸에 입장하자 현홍주 주미대사와 최광수 현지교민회장 등이 박수로 영접했고 노대통령은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격려. 노대통령은 모임에 앞서 오석봉 전현지한인회장(61)및 태권도사범 존 리(한국명 이준구)씨 등과 잠시 환담.노대통령은 존 리씨에게 『국위를 선양해 고맙습니다』고 말했고 존 리씨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영광으로 느끼며 활동합니다』고 답례. 노대통령은 교민들의 잇따른 박수답례에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북한은 변화할 것이며 봄바다에 떠 있는 빙산은 녹게 마련』이라고 힘주어 말하면서 연단을 치기도. ○플래카드 들고 환호성 ◎…노대통령내외가 도착한 앤드루스 공항에는 교민 1천여명이 나와 플래카드와 피켓등을 들고 환호하는등 어느때보다도 환영열기가 고조됐는데 노대통령의 해외순방에서 환영교민이 이처럼 많기는 처음. 이날 하오5시께 대한항공 특별기가 공항에 도착한 직후 노대통령내외가 리드 백악관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오면서 교민들을 향해 손을 번쩍 치켜들자 교민들은 일제히 환호. 노대통령은 트랩밑에 대기하고 있던 빅스 워싱턴지구 공군사령관,그레그 주한대사,솔로몬 국무부 아태담당차관보,앤더슨 부차관보등 미국측 인사와 현홍주주미대사등의 영접을 받았다. 노대통령내외가 양측 인사들로부터 영접을 받는 동안 2백여m 떨어진 교민환영대에서 계속 환호성이 터지자 노대통령내외는 환영대쪽으로 이동해 교민들과 일일이악수로 인사를 나눴는데 교민의 수가 많아 공항출발 시간이 15분간 지연되기도.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