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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 수상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 수상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몽블랑은 ‘제26회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의 한국 수상자로 가나아트·서울옥션 이호재 회장을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이호재 회장은 가나아트갤러리와 서울옥션, 가나문화재단 설립을 통해 한국 미술시장을 이끌며 한국 미술을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 발전시키는 데 공헌한 점과 작가 지원 및 미술품 기증을 통해 미술작품의 공익화와 대중화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1983년 서울에 가나아트센터를 설립한 이 회장은 국내 최초로 로댕, 샤갈, 호안 미로, 세잔, 모네, 르누아르 등을 소개했으며 한국 작가들을 1986년 파리의 시테에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스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것은 물론 한국 작가들을 위한 파리의 아틀리에 소나무 설립을 지원했다. 시상식은 9월 26일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며 이 회장은 1만 5000유로의 상금과 특별 제작한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펜’을 함께 받는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아듀, 플라토미술관!/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씨줄날줄] 아듀, 플라토미술관!/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마찬가지로 생겼다가 어느 날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관하는 것을 보는 것은 기쁘지만 반대로 폐관을 바라보는 심경은 착잡하다. 삼성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중구 태평로의 미술관 플라토가 14일 중국 작가 류웨이의 개인전 막을 내린 뒤 31일 문을 닫는다. 플라토가 자리 잡고 있는 삼성생명 빌딩의 소유권이 건설회사 부영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부영은 지난 1월 5800억원에 삼성생명 건물 전체를 매입했다. 플라토는 1999년 로댕갤러리라는 명칭으로 출범했다. 삼성문화재단이 1994년 약 100억원을 들여 구입한 오귀스트 로댕의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었다. ‘지옥의 문’은 1880년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파리에 있는 장식미술관의 정문을 위해 로댕이 단테의 신곡에서 소재를 취해 제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990년 파리 박람회 때 공개된 이후 로댕의 스튜디오에 석고 모형 상태로 남아 있던 것을 로댕 사후 일본 기업가의 후원으로 주조를 진행해 지금까지 에디션이 총 12개 제작됐다.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한 것은 ‘지옥의 문’ 7번째, ‘칼레의 시민’ 12번째 에디션이다. 로댕의 조각 작품은 원래 야외 전시 작품이지만 작품의 보존과 소음 차단을 고려해 실내에 전시하기로 하고 공모를 통해 미국의 저명한 건축설계사무소인 KPF의 책임 디자이너이자 파트너인 건축가 윌리엄 페더슨이 전시공간 디자인을 맡게 됐다. 로댕 작품의 특성을 고려해 최대한 자연광 속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유리로 마감한 ‘글래스 파빌리온’ 공사가 1998년 3월 마무리되고 이듬해 5월 로댕갤러리가 개관했다. 다양한 기획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뒤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2011년 5월 ‘플라토’(Plateau)라는 명칭으로 재개관했다. 고원, 퇴적층을 의미하는 ‘플라토’는 국내외 현대미술의 현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끊임없이 탐사해 나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시작이나 끝 지점에 있지 않은 중간 지점으로서 늘 진동하는 장소’가 플라토의 콘셉트였다. 실제로 플라토미술관에서는 거장들의 성과는 물론이고 새로운 시각을 지닌 국내외 작가들의 실험성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면서 예술적 성과물들을 차곡차곡 쌓아 예술가들이라면 한번쯤은 오르고 싶은 고지로서의 전시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예술적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도심의 오아시스였던 플라토는 개관 1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 두 점은 호암미술관 수장고로 들어갈 운명이다. 삼성미술관 리움과 호암미술관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에서 그동안 삼성이 공들여 쌓은 탑의 일부가 허물어진 듯한 느낌을 배제할 수가 없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모네·고갱·피카소… 유럽을 모은 마쓰카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모네·고갱·피카소… 유럽을 모은 마쓰카타

    일본 최초의 현대식 공원으로 조성된 도쿄의 우에노 공원은 벚꽃 시즌의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오래 된 나무들이 안정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곳에는 넓은 호수와 판다로 유명한 동물원 외에 미술관과 박물관, 음악당 등 문화 공간들이 밀집해 있는 ‘우에노 문화지역’으로 도쿄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공원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국립서양미술관(國立西洋美術館)이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1887~1965)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건축으로 1959년 6월 완공됐다. ●프랑스 보관 ‘마쓰카타 컬렉션’ 370점 1959년 반환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근대식 교양교육의 상징이던 유럽 회화, 특히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을 유난하게 좋아해서 많은 일본 자본가들은 20세기 초 유럽 현지에서 작품을 사 모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와사키 중공업의 전신인 가와사키 조선소 대표이사였던 마쓰카타 고지로(1865~1950)다. 국립서양미술관이 상설 전시하고 있는 걸작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마쓰카타 컬렉션’을 만든 주인공이다. 메이지시대 정치가의 아들로 태어나 예일대학과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한 마쓰카타는 1916년부터 1923년까지 프랑스와 영국, 독일 등지에서 유럽미술품과 공예품, 유럽의 일본 열풍으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우키요에(목판 풍속화) 작품을 수집했다. 도쿄에 서양미술을 보여 주는 미술관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정부가 국립장식미술관 문으로 쓰기 위해 로댕에게 주문했다가 계약 파기로 석고 상태로 방치돼 있던 ‘지옥의 문’을 브론즈로 주조하는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1927년 세계 대공황 여파로 가와사키 조선이 파산하자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사재를 내놓게 되면서 일본에서 담보로 잡혔던 작품들은 여기저기로 팔려 나갔다. 런던 수장고에 보관하던 작품은 1939년 화재로 소실됐고, 프랑스에 보관하던 작품 400여점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범국 국민으로서 책임을 물어 프랑스 정부에 귀속됐다. 일본 정부가 개인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1951년부터 반환 노력을 펼친 끝에 1959년 반환이 결정됐다. 프랑스 정부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 등 주요 작품 몇 점을 제외하는 한편 나머지 작품들도 공공을 위한 미술관에 공개한다는 조건하에 ‘기증 반환’했다. 회화 196점, 소묘 80점, 판화 26점, 조각 63점, 서적 5점 등 총 370점이 이때 일본으로 돌아왔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 설계 일본 정부는 이미 사망한 소유주를 대신해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에게 도쿄의 우에노 공원 내에 환수 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 설계를 의뢰했다. 르코르뷔지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르코르뷔지에의 단일 건물은 파리 근교 프아시에 있는 빌라 사부아에서 보듯이 평평한 지붕을 가진 정방형의 건축물이 필로티(건물 하단부에 기둥을 세워 텅 비게 하는 구조)로 지탱하는 것이 특징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된 지상 3층, 지하 1층의 국립서양미술관 건물도 필로티로 지탱한 개방적인 공간과 나선형 복도, 자연 채광을 이용한 건축양식 등 곳곳에 르코르뷔지에의 개성이 녹아 있다. 정방형의 건축물을 필로티로 들어 올리고 그 하부의 입구로 들어가면 중앙홀에 이른다. 높은 천장에 삼각형 창문을 만들어 자연광이 들어오는 중앙홀을 지나 지그재그로 난 경사로를 따라서 2층 전시공간에 이르도록 하는 구조다. 르코르뷔지에는 평면과 단면의 모든 요소에 특유의 ‘모뒬로르’의 치수를 적용했다. 천장이 낮은 경우 유럽 성인 남자가 손을 뻗는 높이(2.26m)로 하고, 높은 경우엔 그 두 배, 더 높으면 그 세 배로 했다. ●日 국가 문화재 지정… 세계문화유산 등재 노력 일본 정부는 르코르뷔지에의 건물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8년 건물 전체를 지반에서 분리해 지진의 진동에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본관 건물에 대규모 면진 장치를 설치했고 2007년 일본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NHK 보도에 따르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이 미술관의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권고한 상태다. 중앙홀의 한 구석에는 미술관의 역사와 건설 당시의 미술관 모습,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들을 알리는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 미술관 본관의 1층과 2층이 상설전 공간이고, 지하는 기획전시 공간이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쿠르베, 세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원화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소장 작품 중 모네의 1916년작 ‘수련’은 마쓰카타가 모네의 지베르니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 1922년 작가로부터 구입한 작품으로 프랑스 정부에 몰수됐다가 1959년 일본에 돌아왔다. 지오토, 루벤스 등 중세 후기 작품에서 18세기 말까지의 성서를 주제로 한 종교화도 훌륭한 것이 꽤 많다. 이 밖에 피카소, 미로, 뒤뷔페, 폴록 등 20세기 후반의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자랑한다. 회화 외에 조각, 소묘, 판화 작품 컬렉션도 알차고 기획전도 매우 수준이 높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일본 최초의 현대식 공원으로 조성된 도쿄의 우에노 공원은 벚꽃 시즌의 인기 관광지로 꼽힌다. 오래 된 나무들이 안정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곳에는 넓은 호수와 판다곰으로 유명한 동물원 외에 미술관과 박물관, 음악당 등 문화 공간들이 밀집해 있는 ‘우에노 문화지역’으로 도쿄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다. 휴식과 정서함양, 교육의 장으로서 역할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  예전의 우에노 지역은 도쿠가와 가문의 신사인 간에이사와 그 말사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길하지 않은 북동방향을 다스리기 위해 절을 짓는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에도 막부가 쇠락하고 전쟁으로 사찰들이 파괴되자 메이지정부는 1873년 이 지역을 일본의 1호 공원으로 지정해 현대식 공원으로 조성했고 1882년엔 국립박물관과 부속 동물원을 건립해 일반에 공개했다. 우에노 일대는 1924년 쇼와 천황의 결혼을 기념해 도쿄시에 공원 관리를 양도한 것을 계기로 우에노온시고엔(上野恩賜公遠·주군에게 하사 받은 공원)이라는 명칭을 갖게 돼 오늘에 이른다.  공원으로 들어오면 오른편에 국립서양미술관(國立西洋美術館)이 위치해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미술관 건축으로 1959년 6월 완공됐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의미있는 장소임에도 지금까지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일제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고 자원을 약탈하던 시기에 조성된 컬렉션이 주를 이루고 있고, 유럽에서 건너온 서양미술 작품을 굳이 일본에서 볼 일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을 고쳐 먹고 지난 5월 하순의 주말을 이용해 찾아갔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국민 품에 안긴 ‘마쓰카타 컬렉션’  국립서양미술관 앞마당에는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지옥의 문’과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 부르델의 ‘활을 쏘는 헤라클레가’가 설치돼 있다. 일본은 잘 알다시피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구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유럽 회화, 특히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작품을 유난하게 좋아해서 많은 일본 자본가들은 20세기 초 유럽 현지에서 작품을 사 모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가와사키 중공업의 전신인 가와사키 조선소 대표이사였던 마쓰카타 고지로(松方幸次?,1865~1950)다. 국립서양미술관이 상설전시하고 있는 걸작들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마쓰카타 컬렉션’을 만든 장본인이다. 메이지 시대 정치가의 아들로 태어나 예일대학과 소르본대학에서 수학한 마쓰카타는 1916년부터 1923년까지 유럽미술품과 공예품, 그리고 유럽의 일본 열풍으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우키요에(목판 풍속화) 작품을 수집했다. 프랑스 정부가 국립장식미술관 문으로 쓰기위해 로댕에게 주문했다가 계약 파기로 석고 상태로 방치돼 있던 ‘지옥의 문’을 브론즈로 주조하는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그는 도쿄에 미술관을 세운다는 목표를 갖고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 열정적으로 작품을 사모았지만 1927년 세계 대공황 여파로 가와사키 조선이 파산하자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사재를 내놓게 되면서 일본에서 담보로 잡혔던 작품들은 여기저기로 팔려 나갔다. (우키요에 컬렉션 8000점은 일본 황실에 헌상했고 ,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런던 수장고에 보관하던 작품은 1939년 화재로 소실됐고, 프랑스에 보관하던 작품 400여점은 우여 곡절 끝에 제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범국의 책임을 물어 프랑스 정부에 귀속됐다. 일본정부가 개인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1951년부터 반환노력을 펼친 끝에 1959년 반환이 결정됐다. 프랑스 정부는 고흐의 ‘아를의 침실’ 등 주요 작품 몇 점을 제외하고, 나머지 작품들도 공공을 위한 미술관에 공개한다는 조건하에 ‘기증 반환’했다. 회화 196점, 소묘 80점, 판화 26점, 조각 63점, 서적 5점 등 총 370점이 이때 일본으로 돌아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앞둔 근대건축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일본 정부는 이미 사망한 소유주를 대신해 르 코르뷔지에에게 도쿄의 우에노 공원 내에 환수 작품들을 전시할 미술관 설계를 의뢰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 데어 로에와 함께 근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속도를 중시하게 된 시대상의 문화와 생황양식이 건축에 반영돼야 한다고 확신했던 그는 콘크리트로 된 고층 공동주거 건물을 파리시내에 건설하는 대단히 파격적인 구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미술관 건축을 꿈꾸며 프랑스 정부에 여러 차례 계획안을 제안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하기만 했던 그에게 뜻하지 않게 기회가 온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단일 건물은 파리 근교 프와시에 있는 빌라 사브와(1928~31년)에서 보듯이 평평한 지붕을 가진 정방형의 건축물이 필로티(건물 하단부에 기둥을 세워 텅비게 하는 구조)로 지탱하는 것이 특징이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된 지상 3층, 지하 1층의 국립서양미술관 건물도 필로티로 지탱한 개방적인 공간과 나선형 복도, 재연채광을 이용한 건축양식 등 곳곳에 르 코르뷔지에의 개성이 녹아있다.  무표정한 정방형의 건축물을 필로티로 들어 올리고 그 하부의 입구로 들어가면 중앙홀에 이른다. 높은 천정에 삼각형 창문을 만들어 자연광이 들어오는 중앙홀을 지나 지그재그로 난 경사로를 따라서 2층 전시공간에 이르도록 하는 구조다. 르 코르뷔지에는 평면과 단면의 모든 요소에 ‘모뒬로르’의 치수를 적용했다. 천장이 낮은 경우 유럽 성인 남자가 손을 뻗는 높이(2.26m)로 하고, 높은 경우엔 그 두 배, 더 높으면 그 세배로 했다. 단위 전시공간의 폭은 기둥간격 6.35m의 격자 두 개, 길이는 격자 하나로 하고 자연광과 그늘이 드는 공간을 적절히 배치했다. 고전적인 전시공간과 달리 자유로운 평면 개념을 도입해 가변적인 칸막이로 일정한 넓이와 단면을 가진 공간들을 병치시켰다가 칸막이를 조정해 공간을 자유자재로 확대, 축소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8년 건물 전체를 지반에서 분리해 지진의 진동에도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본관건물에 대규모 면진 장치를 설치했고 2007년 일본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했다. NHK 보도에 따르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이 미술관의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권고했다. 이에 따라 오는 7월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정식등록될 전망이다. 중앙홀의 한 구석에는 미술관의 역사와 건설 당시의 미술관 모습,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노력들을 알리는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  서양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컬렉션  본관의 1층과 2층이 상설전 공간이고, 지하는 기획전시 공간이다.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일본인이 유난히 좋아하는 인상파 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쿠르베, 세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원화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런 명작들 대부분이 기구한 여로를 거쳐 쳤다. 소장 작품 중 모네의 1916년작 ‘수련’은 마쓰카타가 모네의 지베르니 작업실을 직접 방문해 1922년 작가로부터 구입한 작품으로 프랑스 정부에 몰수됐다가 1959년 일본에 돌아왔다. 지오토, 루벤스 등 중세 후기 작품에서 18세기 말 까지의 성서를 주제로 한 종교화도 훌륭한 것이 꽤 많다. 이밖에 피카소, 미로, 뒤뷔페, 폴록 등 20세기 후반의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 전반을 아우르는 컬렉션을 자랑한다. 회화 외에 조각, 소묘, 판화 작품 컬렉션도 알차고 기획전도 매우 수준이 높다. 방문 당시 지하의 기획전시실에서는 일본·이탈리아 수교 150년을 기념해 열리는 ‘카라바죠 전’이 열리고 있었다. 미켈란젤로 메리시가 본명인 카라바죠(1573~1610)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다. 치밀한 사실기법과 함께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를 기교적으로 구사하는데 능해 17세기 유럽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되지만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가 이른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의 ‘박쿠스’, 밀라노 브레라미술관의 ‘ 엠마우스에서의 식사’,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성모의 죽음’, 바티칸궁전에 있는 ‘ 그리스도의 죽음’ 등 걸작을 남겼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수요 에세이] 칼레의 시민과 인문학적 행정/정재근 전 행정자치부 차관·행정평론가·시인

    [수요 에세이] 칼레의 시민과 인문학적 행정/정재근 전 행정자치부 차관·행정평론가·시인

    1889년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 칼레의 주민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로댕이 심혈을 기울인 ‘칼레의 시민’이라는 조각상을 보기 위해 모였다. 이 작품은 14세기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100년 전쟁 당시 도시 칼레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내던졌던 6명의 위대한 조상들을 기리기 위한 조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작품을 보았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 죽음에 초연한 애국적 영웅들이 늠름하게 있어야 할 자리에는 죽음을 앞두고 넋이 나간 얼굴, 두려워 덜덜 떨고 심지어 징징 우는 모습의 나약한 인간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품을 거부하는 시민들에게 로댕은 말했다. “당신들의 조상들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조금의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목숨을 멋지게 내던졌기 때문이 아니오. 그들이 위대한 것은 우리와 똑같이 죽음이 두려운 나약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죽음의 길로 나섰기 때문이오. 죽음이 두렵지 않거나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신과 같은 존재가 이 일을 했다면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일이었겠소.” 이 작품은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한 인간의 예술 행위가 결국은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위대한 예술이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수년 전부터 불어닥친 인문학 열풍은 우리에게 인문학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인문학적 가치는 먼저 인간을 긍휼히 여기고 신뢰하는 것이다. 숨결처럼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는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되 그 나약함 속에 깃든 인간정신의 무한한 강인함을 신뢰하여 그 나약한 인간이 결국은 인류역사의 진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처절한 긍정의 믿음이 인문학적 가치이다. 아울러 행복의 본질을 탐구하고 삶의 가치를 사색하는 것 역시 인문학적 가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필자는 인문학적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고 신뢰하는 사회, 개인이 스스로의 행복을 정의하고 탐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사회,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삶을 살려는 사색과 노력이 온 세상에 충만한 사회는 인문학적 가치가 실현된 사회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는 사회적 약자의 보호, 통합, 복지, 안전, 경제성장, 교육, 문화예술, 환경보호, 공동체 회복, 시민참여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과제로 구체화된다.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이러한 과제를 실천함으로써 인문학적 가치를 구현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 정치도 행정도 기업도 비영리단체도 개인도 모두 우리 사회에 인문학적 가치를 고양시키는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한다. 그래도 필자는 이 많은 역할 주체 중에서 무엇보다도 행정이 이 일을 해야 하고 또 제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은 이미 인문학적 가치의 많은 부분을 실현시키는 데 필요한 법령, 조직, 인력, 예산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국민들로부터 이것을 해내라는 소명과 기대를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 열풍과 함께 기업경영에 인문학을 접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논의될 때부터 필자는 인문학적 행정을 생각해왔다. 인문학이 돈을 버는 데 기여하는 학문이 아니라 세상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학문이라면 인문학은 가장 먼저 행정과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문학적 행정은 행정과 행정인이 행정의 존재 이유를 인문학적 가치의 구현에 두고 이를 실천하는 행정이기 때문이다. 2010년 스위스 바젤에 자리한 그리 크지 않은 미술관에서 필자가 처음 접한 칼레의 한 시민은 마당 한편에 평범하게 놓여 있었다. 사람 키보다 조금 큰 조각상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감상하면서 이렇게 인간의 내면을 잘 표현할 수 있으려면 조각가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 돈의 눈으로 신의 눈으로 물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결코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낄 수 없겠지. 로댕은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인간의 나약함과 아픔을, 그 속에 깃든 인간정신의 위대함을 알아낼 수 있었구나.’ 이처럼 인문학적 행정의 출발점도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어야 한다. 예술을 통해 인문학적 가치를 창조한 것이 조각가 로댕이라면 행정을 통해 인문학적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공무원이다. 인간이어서 인간의 나약함과 아픔을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비로소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슴 따뜻한 인문학적 행정은 지금도 현장에서 주민과 가슴을 맞대고 일을 하는 우리 공무원들의 소명이다.
  • 70명 모집에 지원자 폭주!…‘멍때리기 대회’ 이번엔 한강 상륙

    70명 모집에 지원자 폭주!…‘멍때리기 대회’ 이번엔 한강 상륙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한 때 유행했던 이 문구처럼 ‘무념무상’에 자신있는 사람이라면 소개해주고 싶은 대회가 하나 있다. 오는 22일 한강에서 열릴 ‘멍때리기 대회’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22일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이촌한강공원 청보리밭 일대에서 ‘2016 한강 멍때리기 대회’를 개최한다. 대회 참가자는 무료함과 졸음을 이겨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유지하면 된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진행요원들은 15분마다 참가자 검지에 기구를 갖다대 심박수를 체크한다. 경기를 관전하는 주변 시민들은 인상적인 참가자들에게 스티커 투표를 한다. 관객 투표 다득점자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심박그래프를 보인 이들이 1~3등이 된다. 대회 우승자에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형상의 트로피와 상장을 수여한다. 멍때리기 대회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얕보기 쉽다. 그러나 위반 사항이 적지 않다. ▲ 휴대전화 확인 ▲ 졸거나 잘 경우 ▲ 시간 확인 ▲ 잡담 나누기 ▲ 주최 측 음료 외 음식물 섭취(껌씹기 제외) ▲ 노래 부르기 또는 춤추기 ▲ 책을 읽거나 노트에 낙서하는 등의 딴짓 ▲ 웃음 ▲ 기타 상식적인 멍때리기에 어긋나는 모든 경우가 규칙 위반 행위에 들어간다. 다만 멍때리기 대회는 철저히 묵음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세 가지 색상의 ‘히든카드’를 사용해 불편사항을 해결할 수 있다. 멍때리느라 근육이 뭉쳤을 때 안마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빨간색’ 카드, 갈증이 나 음료를 제공받고 싶다면 ‘파란색’ 카드, 부채질이 필요하다면 ‘노란색’ 카드, 기타 불편사항이 있을 때는 ‘검정색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못지 않게 대회 참가자격을 얻는 것도 만만치 않다. ‘수원 국제멍때리기 대회’의 참가자로 뽑힌 70명은 자기소개서 심사통과로 7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참가자 선발 기준에 대해 멍때리기 대회 측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을 뽑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독특한 신청이유가 있는 분들을 선별한다”고 답했다.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 대한 관심은 벌써 뜨겁다. 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9일 기준 참가신청을 받은지 하루 반나절만에 670명이 신청했다. 이 관계자는 “내일이면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고작 70명 뽑는데 엄청난 인원이다”라고 밝혔다.  멍때리기 대회는 2014년 서울시청 앞 잔디밭에서 처음 열렸다. 이 대회를 두고 “피로가 큰 한국 사회의 현상” 등의 평가가 나오면서 이듬해 중국 베이징에서 2차, 지난 7일 경기도 수원에서 3차 대회가 열렸다. ‘가만히 있는 것’과 ’대회’를 접목시켜 ‘멍때리기’를 능력으로 승화시킨 기획의도는 무엇일까. 이는 ‘제1회 멍때리기 대회’가 ‘월요일‘, ‘서울 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열렸던 사실과 관계가 깊다.  멍때리기 대회를 주최한 ‘웁쓰양’씨는 월요일 ‘가장 바쁜 시간을 사는 직장인들’과 같은 시간 잔디광장에 앉아 ‘멍때리는 사람들’로 시각적 대비를 만들어 이를 자극적인 현대사회를 사는 서울시민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여기에는 멍하게 ‘좀비’처럼 사는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적 의미도 담겨 었다.  이지연 인턴기자 julie31080@seoul.co.kr
  • “굿바이, 플라토”… 마지막 전시는 中 현대미술 작가의 ‘문명 통찰’

    “굿바이, 플라토”… 마지막 전시는 中 현대미술 작가의 ‘문명 통찰’

    서울 태평로의 삼성미술관 플라토는 1999년 로댕갤러리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삼성문화재단이 1994년 약 100억원에 구입한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을 상설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특별히 설계됐다. 로댕갤러리는 3년간 문을 닫았다가 2011년 플라토라는 새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지난 17년간 50여 차례의 국내외 작가 전시를 통해 동시대 미술현장과 소통하며 주요 현대미술을 소개해 왔다. 도심의 문화오아시스 역할을 했던 플라토는 지난 3월 삼성생명빌딩이 부영에 매각(6000억원)됨에 따라 오는 8월 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플라토는 그동안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고별전으로 중국 차세대 대표작가 리우웨이(44)의 개인전 ‘리우웨이:파노라마’를 28일 개막했다.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갖는 처음이자 마지막 작가로 기록되는 리우웨이는 톈안먼 사태 이후 성장해 국제 무대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2000년대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항저우 중앙미술학원을 졸업하고 1999년 ‘포스트-감각적 감성’ 그룹전으로 데뷔한 그는 2005년 이후 매년 2회 이상의 개인전을 개최하는 한편 다수의 비엔날레에 참여하면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서구의 시각에 길들여진 중국의 이미지에 반대하는 리우웨이는 자기 반성적 시각으로 중국사회를 바라보는 작업을 통해 현대 중국의 급격한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와 그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을 기록해 왔다. 건축 폐기물이나 버려진 책 등 익숙하지만 낯선 재료들을 노동집약적인 수작업으로 쌓거나 그리는 것이 그의 작업이다. 피부로 느낀 현실에 상상력을 입힌 결과 새로운 도시 풍경이 탄생하고, 작품들은 확장된 시간과 공간을 통해 인류문명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는 ‘포스트-감각적 감성’전에 선보였던 ‘참을 수 없는’을 시작으로 2004년 상하이비엔날레에서 큰 화제가 되며 국제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풍경처럼’, 2011년의 ‘하찮은 실수’연작, 최근 작품인 ‘룩!북!’, 회화작업 ‘보라색 공기’ 등 작가의 20년에 가까운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하찮은 실수’는 그가 2009년부터 진행 중인 조각작업으로 베이징의 재개발 현장에서 버려진 건축폐기물을 수집해 쌓아올린 정체 불명의 기념비 같은 조형물이다. 병원, 공공청사, 학교 등에서 나온 문짝, 창문틀을 붙여 만든 조형물 덩어리의 외관에는 흘러간 시간과 공간, 체제와 이념들이 색바랜 기록처럼 담겨 있다. 가상과 실재가 혼재하는 풍경 아닌 풍경들은 플라토의 글래스 파빌리온에 맞춘 신작 ‘파노라마’로 확장된다. 반투명 플라스틱, 양철 등의 재료로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로댕의 ‘지옥의 문’ 앞에 설치한 작품에 대해 리우웨이는 “로댕의 ‘지옥의 문’에 조응하는 장소 특정적 설치작품으로 고대 아레나의 개념에서 출발해 평소 관심을 갖고 있는 실재와 가상의 스펙터클에 대한 사유로 확장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오는 8월 14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①‘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

    해외여행 | 파리, 한낮의 꿈 ①‘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

    파리를 매일 걷고 걸으며 오늘의 파리와 만났다. 오늘은 동네를 산책하듯 걷지만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 속절없지만 흐르는 시간이 아쉬워 내가 걸어온 길을 자꾸 뒤돌아보았다.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 한가운데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왜 단테의 ‘지옥’에 매혹되었을까? 부티크호텔 산 레지스의 스위트룸에서 보이는 에펠탑. 왼편 아래 건물은 이브 생 로랑의 저택이다샹젤리제 인근 나폴레옹호텔 스위트룸에서 보이는 개선문과 프히들렁 거리파리에선 길을 잃어도 좋아. 파리에 대한 낯간지러운 찬사다. 좀 민망하지만 과장은 아니다. 파리는 어디를 가나 황홀할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할로겐 가로등 덕분인지 거리에 덩그렇게 놓인 쓰레기통조차 예쁜 도시. 세상에 이런 도시가 또 있을까? 파리에서 만난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파리의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 행복해져요. 봐야 할 게 너무 많으니까요.”지나친 말이 아니다. 파리에서 지내는 동안 나도 그랬으니까. 파리에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어제와 오늘은 동네를 산책하듯 걸었지만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를 길이었다. 이런 간절함 때문일까. 나는 거리마다, 골목마다, 코너를 돌 때마다 새로운 파리와 만났다. 파리는 매일 변한다. 나는 파리에서 3주간 머물렀지만 에펠탑이나 루브르, 개선문은 내내 뒷전이었다. 과거의 파리가 아닌 오늘 이 순간의 파리를 보고 싶었다.1977년에 지어진 퐁피두센터는 2016년에 보아도 미래지향적이며 도발적이다. 20세기 건축의 아이콘퐁피두센터 안에는 국립근현대미술관도 있고 도서관, 사진 갤러리도 있다. 기획전을 제외하면 무료다퐁피두센터 바로 옆, 스트라빈스키 광장에 조각가 니키 드 생팔과 장 팅겔리가 함께 만든 ‘니키 분수’가 자리했다퐁피두센터 설립을 결정한 프랑스 전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는 파리 한가운데 있는 근현대미술관이자 복합문화시설이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퐁피두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에서 며칠을 지냈다. 중정中庭을 가진 좋은 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도 안한 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빵을 사러 갈 때마다 자연스레 퐁피두와 마주쳤다. 저 앞에 턱하니 자리 잡은 퐁피두를 뒤로하고, 동네 주민인 척 퐁피두의 뒷골목을 걸어 다녔다. 바게트를 사서 반으로 ‘접어’ 에코백에 넣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은 가벼웠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파리지엥인 척하는 시간의 한가운데 퐁피두가 있어 내가 지금 파리에 있음을 더욱 실감했다. 파리에 오지 못한 기나긴 시간 동안 파리를 떠올릴 때 오르세 미술관과 함께 가장 그리운 곳이 퐁피두였다. 퐁피두 하면 떠오르는 기억의 잔상, 지워지지 않은 시간 때문이다.아주 오래 전 퐁피두에 처음 왔을 때 나는 퐁피두에서 ‘파리답다’고 말할 어떤 공기를 느꼈다. 퐁피두 앞 광장에서 파리의 싱그러운 청춘들을 보았다. 외부에 노출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퐁피두 6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파리 시가지의 나지막한 스카이라인도 잊을 수 없다. 노트르담 성당, 에펠탑 그리고 몽마르트르 언덕의 사크레쾨르 성당 같은 파리의 풍광 속에 한껏 젖어 들었다. 여기가 파리구나. 그때 파리에 왔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퐁피두에서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퐁피두 앞 광장에 않아 주변을 살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퐁피두의 외관만 바라보고 있어도 어느새 기분이 유쾌해진다. 퐁피두를 난생 처음 보는 관광객은 “왜 파리 한가운데 공장이 있죠?” 하고 묻기도 한다. 공장이 아니라고 하면 공사 중인 건물이냐고도 묻는다. 그만큼 겉모양이 파격적이다. 얼핏 건물은 안이 다 들여다보이고 에스컬레이터뿐만 아니라 수도관, 가스관, 철근 등이 모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발전하는 공간의 도해Evolving Spatial Diagram.’ 퐁피두란 공간의 의미는 시각적으로 이렇게도 표현된다. 2016년에 보아도 미래지향적인 이 건물이 정작 1977년에 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감동은 배가된다.1977년 문을 연 퐁피두센터는 이탈리아 출신의 렌조 피아노와 영국 출신의 리처드 로저스가 지었다. 전 세계 공모를 통해 모인 49개국 681점의 설계안 중에서 이들이 선정되었을 때 렌조의 나이는 겨우 서른다섯이었다. 작년 초 입주한 광화문의 KT 신사옥을 설계한 이가 바로 렌조 피아노다. 퐁피두는 강철과 유리로 지은 건물이다. 1만5,000톤의 강철과 표면 면적 1만1,000㎡에 달하는 유리가 사용되었다. 안에서는 밖을, 밖에서는 안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건물 안과 밖이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한다. 에스컬레이터는 건물 가운데가 아닌 바깥쪽으로 빼내 내부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내부에 기둥 또한 없어 자유롭게 공간을 변경해 사용할 수 있다.지금은 파리를 대표하는 건축의 하나가 되었지만 건립 당시에는 논란이 많았고, 반대도 거셌다. “안이 다 들여다보이잖아요!” “외부의 벽을 다 벗겨낸 것 같다고요!”퐁피두의 반대자들은 이단아 같은 퐁피두의 외양이 클래식한 도시, 파리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결국 파리 중심부를 재개발하면서 퐁피두 설립을 강력한 의지를 갖고 결정한 이는 프랑스 전 대통령인 조르주 퐁피두다. ‘퐁피두’란 이름은 바로 그에게서 따왔다. 그 후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고, 퐁피두는 외관만으로도 많은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이런 게 대통령이 가져야 할 혜안이고, 대통령이 내려야 할 결정이다.퐁피두센터는 유럽 아트신scene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유럽의 역사와 예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현재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많은 근현대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해진다. 순수미술뿐만 아니라 디자인, 건축, 사진 그리고 뉴미디어 작품까지 포괄한다.가로 166m, 세로 60m, 높이 42m의 공간에 7만점의 작품이 정기적으로 교체되며 매년 스무 개 정도의 새로운 전시를 이어간다. 그러니 지난달에 퐁피두를 갔다 해도 이번 달에, 다음 달에 또 가야 할 일이다. 퐁피두에선 전시뿐만 아니라 음악, 댄스, 연극, 공연과 영화 등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진다. 갖가지 장르의 이벤트와 순수미술의 접점, 상호작용은 퐁피두의 큰 관심사다.퐁피두는 1989년을 경계로 과거와 새로운 시대를 구별한다. 1989년 11월 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유럽 미술계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한편 유럽은 천안문 사태를 통해 엿보게 된 중국의 새로운 모습에 관심을 기울였다. 유럽의 시선으로 볼 때 새로운 예술적 영토가 생겨났다.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컨템포러리 아트 비엔날레 같은 인터내셔널한 아트신에 불현듯 등장하면서 세계 예술계의 지형에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다. 퐁피두는 이처럼 세계 예술계의 변화된 지형에 포커스를 맞추고 특히 동유럽, 중국, 레바논과 여러 중동 국가, 인도, 아프리카, 남미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파리에 여행을 왔는데 시간이 넉넉지 않다면 나는 루브르나 오르세보다 퐁피두를 권하고 싶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피카소, 마티스, 칸딘스키, 몬드리안, 미로 등 다양한 작품을 짧은 시간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퐁피두는 미술관뿐만 아니라 도서관, 서점, 기념품 숍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파리 청춘들의 평범한 일상을 엿보기 좋다. 퐁피두 옆, 프랑스 조각가인 니키 드 생팔이 만든 ‘니키 분수’도 놓치면 안 될 볼거리다.쿠바에서 태어났지만 중국인 아버지와 콩고 출신 어머니를 둔 작가, 위프레도 람Wifredo Lam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퐁피두센터는 전통적인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나 장르의 믹스 같은 다양한 컨템포러리 아트에 관심을 기울인다퐁피두센터Place Georges-Pompidou, 75004 Paris, France +33 1 44 7812 33 11:00~22:00 (화요일 휴무) 성인 14 www.centrepompidou.fr로댕박물관은 한때 로댕, 장 콕토, 마티스, 이사도라 덩컨이 살았던 저택이다높이가 6.5미터에 달하는 주조물인 ‘지옥의 문’은 로댕 박물관의 장미정원에서 볼 수 있다루브르보다 로댕이 좋은 이유로댕박물관Musee Rodin이 2015년 11월12일에 새로 문을 열었다. 3년간의 리노베이션으로 전에 비해 좀 더 박물관답게 면모했다. 로댕이 살았던 20세기 초반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의 시간 동안 전면적인 리노베이션 공사를 하긴 처음이다. 매년 70만명이 지나다닌 쪽모이 세공 마룻바닥의 많은 부분이 말끔히 교체되었다. 석고, 회반죽, 흙을 섞어 물로 갠 플라스터를 재료로 쓴 작품도 새로이 전시되었다. 그동안 수장고에서 잠자던 작품들이다. 플라스터 작품들은 로댕의 작업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볼 수 있는 단서들이다.로댕박물관 건물은 18세기 초에 지은 저택이다. 로댕이 한때 살았던 집이다. 1908년 로댕은 자신의 비서였던 릴케의 소개로 1층에 있는 4개의 방을 빌려 4년 동안 이 집에서 살았다. 로댕뿐만 아니라 작가 장 콕토, 화가인 앙리 마티스,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한때 이 집에 살았다. 로댕박물관의 컬렉션과 작품만큼 박물관 건물 자체가 특별한 역사를 가진 셈이다.나로선 사이즈만 보면 루브르보다 로댕박물관 같은 곳이 더 좋다. 물론 루브르는 명실공이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박물관 중 하나다. 하지만 정작 그 안으로 들어가면 숨이 막힌다. 일단 관람객이 너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선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제 아무리 비집고 들어가도 모나리자 그림에서 5m 이내에 접근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루브르의 모든 관람객이 모나리자를 향해 돌진하기 때문이다. 루브르까지 와서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보면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다. 봐야 할 예술품이 너무 많은 것도 때로는 고역스럽다. 미로 같은 박물관에서 빠져 나오기도 쉽지 않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무작정 걷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루브르에 갈 때는 자기만의 테마를 갖고 작품을 선별적으로 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 불평이 길었지만 루브르가 좋을 때도 있다. 늦은 밤, 루브르 호텔 옆 파사쥬 리슐리외 입구를 지나 유리창 너머 루브르를 보았을 때처럼 관람객이 한 명도 없는 루브르는 의심할 바 없는 예술의 신전이다.로댕은 말년에 이르러 자기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평생 수집한 예술품, 여기에 수반하는 저작권을 모두 국가에 기부했다. 로댕박물관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로댕박물관이라고 해서 로댕 작품만 있는 건 아니다.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처럼 로댕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의 작품도 있고, 고흐나 뭉크 같은 화가의 그림도 볼 수 있다. 로댕미술관에서 그의 조각만큼이나 내 눈길을 잡아끈 건 로댕의 데생 그림들이다. 로댕은 장장 7,000여 점의 데생을 남겼다. 그는 흑연과 목탄, 브라운 컬러의 수채물감으로 종종 여성 또는 인체의 움직임을 그려냈다. 조각뿐만 아니라 데생에서도 로댕은 자기의 두 손으로 인간을 완전히 창조했다. 그는, 신이 조각가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신의 손’을 가진 조각가라고 여겼을 것이다.새롭게 단장된 로댕박물관은 로댕의 연대기와 테마에 따라 18개 전시실로 구성된다. 예컨대 ‘비롱 저택의 로댕Rodin at the Hotel Biron’이란 방은 로댕이 실제 살았던 시기의 모습으로, 당시 사용한 가구와 그가 수집한 작품으로 정교하게 복원되었고, ‘로댕과 고대Rodin and Antiquity’란 방은 로댕이 앤티크 딜러에게 사들인 고대 그리스, 로마의 조각으로 꾸며졌다. 로댕은 수많은 그리스, 로마의 조각 파편을 수집했고, 그중 100여 점이 이곳에서 전시 중이다. 로댕은 젊은 시절부터 고대 문명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지옥’이란 테마에 매혹된 계기가 된 것도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보게 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 때문이다. 그의 작품 ‘워킹 맨The Walking Man’의 경우처럼 로댕은 자기에게 영향을 끼친 고대 그리스에 대한 존경을 그의 컬렉션으로 표현했다.로댕박물관 건물 자체는 크지 않지만 정원은 크다.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생각하는 사람’처럼 로댕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조각품을, 좁은 박물관 실내가 아닌 한가로운 정원에서 볼 수 있다. 고요한 정원은 아무도 없는 심야의 루브르처럼 평화롭지만 ‘칼레의 시민’이나 ‘지옥의 문’ 같은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내게 칼레의 시민은 칼레시를 구하기 위한 영웅들이 아니라 죽음에 직면한, 죽음을 자기의지로 선택한 사람들로 보인다. 모든 인간이 한 번은 마주하게 될 순간이다.‘지옥의 문’은 또 어떤가? 지옥에서 입맞춤하고, 생각하고‘생각하는 남자’의 전신, 달아나고, 떨어지고, 순교하고, 타락하는 인물상의 모습에서 폭력, 절망, 열정 등 지옥이란 또 다른 세계에 매혹된 로댕의 심경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지옥의 문은, 박물관에 들어서면 만나는 장미정원의 왼쪽 끝에 있고, 오른편 끝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로댕이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신곡’에 영향을 받아 지옥의 문을 만든 거라면 그는 지옥 자체가 아니라 지옥 다음에 이어질 ‘연옥’과 ‘천국’이란 세계 또한 떠올렸을 것이다. ‘지옥의 문’ 건너편에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건 자연스럽다.위대한 조각가에게도 세상사의 부침은 어쩔 수 없는 걸까. 로댕은 자신의 이름을 딴 박물관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18살 때 가사를 돕기 위해 석고 세공업자에게 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조각을 시작했지만 그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노년에 이르러 자기의 모든 작품을 국가에 기부하고자 했지만 그것도 간단치 않았다. 프랑스 국회는 로댕의 작품 기증 건을 표결에 붙였는데, 찬성 391표, 반대 52표로 개운치 않은 결과가 나왔다. 삶만큼이나 죽음도 드라마틱하다. 그는 1917년 1월29일, 평생 자신의 모델이 되어 주고 함께해 준 로즈 브레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불과 보름 후인 2월14일에, 로댕은 같은 해 11월17일에 세상을 떠났다. 스물네 살의 청년, 로댕이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수업을 듣다 우연히 만난 여자가 로즈 브레다. 로댕박물관은 로댕이 세상을 떠나고 2년 후인 1919년에 오픈했다.로댕박물관에는 로댕의 조각뿐만 아니라 고흐나 뭉크 같은 화가의 그림도 있다공간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매우 현대적인 제스처의 ‘워킹 맨The Walking Man’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뜬 소문’‘칼레의 시민’은 신체의 특정 부위를 과감하게 확대, 묘사해 극적인 효과를 준다로댕박물관 77 rue de Varenne, 75007 Paris, France +33 1 44 18 61 10 10:00~17:45(월요일 휴무) 성인 €10 www.musee-rodin.fr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박준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france.fr
  • 미니어처가 30억원? 아무리 로댕 작품이라도…

    미니어처가 30억원? 아무리 로댕 작품이라도…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입맞춤’을 축소 제작한 미니어처 청동상이 최근 파리에서 열린 경매에서 220만 유로(약 30억 원)에 낙찰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번에 낙찰된 청동상은 로댕이 사망한 지 10년 째인 1927년에 그가 생전에 만들어둔 미니어처 주형(거푸집)을 가지고 높이 85cm로 제작한 것. 로댕이 1885년에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181.5cm짜리 석상보다는 절반가량 작다. 이 석상은 현재 파리 로댕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로댕의 ‘입맞춤’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 만큼 유명해 첫 주조 이후 지금까지 27회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경매에 나온 작품은 프랑스의 미술품 거래상인 장 드 루아즈가 소유하고 있던 5점의 청동상 가운데 한 점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예상가보다 10% 높은 가격에 낙찰돼 로댕 사후 제작된 미니어처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이번 경매를 진행한 ‘비노슈 에 지퀠로’(Binoche et Giquello) 측은 설명했다. 이번 작품을 낙찰받은 미국인 사업가는 이외에도 또다른 로댕 작품인 ‘영원한 봄’의 미니어처 청동상도 예상가의 2배인 69만3000유로(약 9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로댕의 또 다른 동상 3점도 예상가의 2배인 9만5000유로(약 1억3000만원)부터 19만유로(약 2억6000만원)까지 프랑스 등의 유럽 출신 수집가들에게 낙찰됐다. 이들 작품은 앞서 팔린 것보다 작은 것이다. 한편 로댕의 작품은 특성상 수많은 위조 사건에 연루돼 왔다. 특히 1997년에는 가이 헤인이라는 유명 청동상 거래상이 로댕을 비롯해 피에르 오그스트 르누아르, 까미유 끌로델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위조한 청동상 수천 점을 만들어 유통해오다 적발된 바 있다. 사진=Binoche et Giquello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당신이 오카야마에 간다면

    당신이 오카야마에 간다면

    그러니까 이 모든 건 다 기차 때문이다. 일본 기차 여행이 편리한 건 여행 좀 해본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라지만,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200km 넘게 떨어진 오카야마가 이렇게 쉽게 연결될 줄은 몰랐다. 꼭 가야 할 곳이라며 기나긴 리스트를 작성하지 않아도 좋은 동네. 느긋한 오카야마로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This stop is Okayama첫 번째 역오카야마岡山 청명함, 단출함 그리고 느긋함 오카야마는 오사카와 히로시마 사이 세토내해와 접해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간사이 지방, 서쪽으로 히로시마와 규슈, 남쪽으로 시코쿠를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이곳은 예로부터 교통과 물류의 요지였다. 게다가 일조량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난해 땅과 바다에서 거둬들인 수확도 풍부했다. 스스로를 청명한 고장이라 칭하는 이곳은 이름처럼 자연과 더불어 느리고 풍요롭게 발전해 온 지방이다. 그러한 오카야마로 최근 외국 여행자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어디로 발길을 돌려도 좋은 그 느긋함을 찾아서다. 오카야마시는 오카야마현의 최대 도시지만 도심 풍경은 단출하다. 서쪽 오카야마 기차역에서 동쪽으로 30여분 거리 안에 오카야마의 자부심인 오카야마성과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고라쿠엔을 비롯해 다수의 미술관과 심포니홀 등 문화 공간이 흩어져 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오카야마성. 영주 우키타 히데이에에 의해 1597년에 완성된 오카야마성은 아사히강을 해자처럼 두르고 솟아 있다. 본래 흐르던 강의 줄기를 바꿔 지금처럼 성을 휘돌아 나가게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영주의 권위와 힘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키다 나오이에부터 이케다 아키마사까지 총 14명의 영주가 280년에 걸쳐 성의 주인으로서 이 지역을 관할했다. 성에서 가장 높은 6층 천수각에 올라 보면 그들이 조망하려 했던 풍광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 가능하다. 내부에는 이케다 가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의 성 중 드물게 검은색을 띄고 있어 우조, 까마귀 성이라는 별명도 얻은 이곳은 1945년 세계대전 중 소실되었고, 1966년 복원해 현재 오카야마시가 관할하고 있다. 오카야마성에서 쯔루미 다리를 건너면 고라쿠엔으로 이어진다. 이바라키현의 가이라쿠엔, 이시카와현의 겐로쿠엔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음식과 관련한 레드 가이드 외에 여행 정보를 평가하는 그린 가이드도 펴내는데, 레드와 동일하게 그린 역시 별 3개를 최고점으로 친다. 고라쿠엔은 이 그린 가이드에서 당당하게 별 3개를 받은 곳이다. 과거 영주가 찾으면 기거하는 곳이었다던 엔요테이 안쪽의 가쿠메이칸. 다다미로 칸칸이 이어진 내부의 나무문을 열어젖히니 고라쿠엔의 풍광이 바람처럼 왈칵 밀려들어온다. 나무와 물과 바람과 하늘, 자연의 조화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감탄하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두루미 한 마리가 우아하게 날아간다. 고라쿠엔의 홍보담당자 미카 사카모토씨에 의하면 고라쿠엔에는 현재 8마리의 두루미가 있는데, 이들은 매일 산책길을 걷는 등 일정한 훈련을 받고 있단다. 4마리는 아직 초보이고 훈련이 잘 된 4마리가 시간에 맞춰 공원을 우아한 몸짓으로 날아다닌다는 것. 3대 정원의 명성은 거저 얻은 게 아니었다. 약 14만2,000m2의 이 드넓은 정원은 봄의 벚꽃과 매화부터 여름의 꽃창포와 차나무,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까지 계절을 눈으로 맛볼 수 있다. 어디를 걸어도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고라쿠엔에서 가장 좋은 뷰포인트를 꼽자면 단연 니시키가오카 언덕이다. 6m 가량 올라온 인공 언덕인데 시선을 가리는 건물이 하나도 없으니 내려다보는 전망이 고층 전망대 못지않다. ▶inside Okayama 모모타로의 전설일본 전역에서 통용되는 동화 같은 설화 모모타로 이야기가 이곳 오카야마에선 특히 자주 등장한다. 모모타로가 구술 전술된 이야기기에 이곳과 관련 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으나 오카야마가 복숭아의 고장이란 점, 유난히 물이 맑고 청명한 지역이라는 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카야마의 상징이 되었다. 오카야마 서쪽 외곽에는 모모타로 전설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일본의 고대 왕족을 모신다는 기비츠신사도 있다. 도시 곳곳에서 모모타로의 동상과 그림을 볼 수 있으며, 특히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맨홀 위의 모모타로가 앙증맞다. 명물 전차 오카덴 오카야마시에선 이곳의 명물 노면전차 오카덴을 타 보자. 오카야마성과 고라쿠엔에 가려면 오카야마 기차역에서 출발해 시로시타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약 5분 남짓 소요된다. 요즘 일본에서 전차의 부활이 유행인데, 오카야마는 비록 운행 구간이 축소되긴 했지만 한 번도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100년을 이어 왔다. 전차의 부활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회학자들은 주민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것에서 찾는다. 장년층이 속도 위주의 지하철보다 전차를 훨씬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쇼핑은 이온몰 일본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대형 쇼핑몰 이온몰. 2014년 오카야마시에 개관했는데 기차역에서 도보 3분이라는 초중심지에 들어선 것이 특징이다. 지하 2층에서 7층까지 도심 속 쇼핑몰로는 꽤 큰 규모인데 패션부터 리빙, 갤러리, 다이닝까지 입점 점포도 훌륭하다. 특히 1층에 질 좋은 슈퍼마켓을 전면 배치했는데 시민은 물론이고 여행자가 이용하기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다. ●This stop is Kurashiki두 번째 역 구라시키倉敷 곳간에서 꺼낸 우아한 미관지구 오카야마시를 벗어나 오카야마현으로 여행 구간을 넓히면 입소문 1순위는 단연 구라시키다. 오카야마에서 기차로 20분이면 닿는 이곳 구라시키에는 에도시대의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이 있다. 구라시키는 에도시대 초반부터 물류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구라시키강을 따라 쌀과 면화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가 들어섰고, 물길을 따라 배들이 물건을 실어 날랐다. 구라시키라는 도시의 이름 자체가 광, 곳간을 뜻하는 ‘구라’에서 왔을 정도. 이런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바로 구라시키 미관지구美觀地區다. 역사보존지구이자 관광지인 셈인데 다른 지역과 달리 상점가 이층에 일반 시민들이 살아간다. 과거와 현재, 관광과 일상이 그윽하게 맞물려 있는 모범적인 예라 하겠다. 구라시키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여, 미관지구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을 건너 뛴 듯 에도시대의 전통가옥과 거리풍경이 펼쳐진다. 오래된 쌀 창고를 개조한 공간에 아름다운 일상용품을 전시한 구라시키 민예관, 수백년이 넘은 상인의 집을 개조한 료칸, 옛 방적공장을 개보수한 아이비스퀘어 등은 이 미관지구를 떠받치는 장소들이다. 미관지구를 풍요롭게 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오하라 미술관이다. 1930년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설립된 오하라 미술관은 무려 3,5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작가 목록이 모네, 로댕, 엘 그레코, 샤갈, 고갱,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세간티니, 피카소 등 놀랍도록 화려하다. 오하라 미술관은 구라시키에서 방적공장을 일군 오하라 마구사부로와 그가 후원했던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의 합작품이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문화 후원에 관심이 높았던 오하라 마구사부로에게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는 서양의 대작을 소장할 것을 권유한다. 1920년대 고지마 도라지로는 직접 유럽으로 출장을 떠나 세심하게 작품을 선별했다. 이 과정에서 모네와 마티스에게서 직접 작품을 구입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구라시키의 자랑이 된 오하라 미술관은 그렇게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고지마는 미술관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지만 그의 뛰어난 감식안과 선견지명은 지금껏 수많은 주민과 여행자들의 예술적 허기를 채워 주고 있다. 오하라 미술관에서 대각선으로 강을 건너 내려가면 아이비스퀘어에 닿는다. 붉은 벽돌로 쌓은 외벽을 담쟁이덩굴이 싸고도는 모양이 이름 그대로다. 이곳은 옛날 방직공장을 리모델링하여 호텔과 레스토랑, 박물관으로 탈바꿈시켰다. 1974년 완성되었는데 건물의 기본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시설을 바꾸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가미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제로 현지 주민들의 결혼식 야외 촬영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161개의 객실을 보유한 아이비스퀘어호텔 역시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골조를 살리며 공사하느라 몹시 애를 먹었지만 그 덕분에 특유의 분위기를 이어 올 수 있었다는 평가다. 그러니까 이곳 구라시키는 과거 곳간 창고가 넘쳐나는 물류지대에서 한동안 방직공장이 즐비한 도시였다가 그 역사를 잘 보존해 오늘날 여행자를 품는 곳으로 변모된 셈이다. ▶inside Kurashiki 아기자기한 미관지구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생동감 있게 하는 것은 단연 아기자기한 가게들이다. 천편일률적인 토산품 가게가 아니라 제 개성을 뽐내는 곳들이 많다. 공업용 테이프를 생산하던 회사가 이제는 디자인 중심의 마스킹 테이프를 생산하는데 이를 활용한 체험도 가능하다. 이 밖에 과거 구라시키의 직물 생산의 전통을 재현한 가게, 다양한 디자인의 향초 공방 등이 오밀조밀 이어진다. 구라시키강의 유람선3월부터 11월까지는 구라시키강을 오가는 유람을 즐길 수도 있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버드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는 미관지구의 풍광은 또 다른 맛이다. 풍요로운 반달, 무라스즈메 구라시키 미관지구에서 자주 눈에 띄는 간식은 반달 모양의 ‘무라스즈메’다. 과거 풍요로운 곳간을 상징하듯 곡물을 활용한 전통 간식이다. 구수하면서도 달콤해 자꾸 집어 먹게 된다. 반죽을 달궈진 팬 위에 얇게 펴 부치고 그 위에 팥소를 넣어 만두처럼 덮어 내는데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3개 만들기 체험 500엔. 오카야마 대표 음식들 오카야마현의 대표 음식을 나열하자면 마마카리, 문어, 기비 당고(수수경단) 등이다. 물론 대표 과일인 하얀 복숭아와 피오네 포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중 청어과 생선 밴댕이에 해당하는 마마카리는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데, 초밥으로도 전채로도 인기다. 또 가쓰오부시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타코 샤브샤브, 문어밥으로 먹는 타코메시도 대표 메뉴다. ●This stop is Kojima세 번째 역 고지마幸島 청바지를 입은 도시 인구 7만2,000여 명의 작은 도시가 청바지로 인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계단부터 개찰구까지 청바지가 수놓아져 있고, 기차 역사 밖으로 청바지가 나부끼며, 청바지 래핑을 두른 버스와 택시가 거리를 누비는 이곳은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 있는 작은 마을 고지마다. 고지마는 일찍부터 방직·섬유산업이 발달해 한때 일본 학생복의 90% 이상을 생산했던 곳이다. 이곳에 청바지가 보편화된 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 전파된 서양 문화와 맥을 함께한다. 그러나 고지마 관계자는 이미 그 이전 군정 시기에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들어온 청바지를 고지마의 다수가 공유하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 고지마의 ‘빅존’이라는 회사가 처음으로 일본산 청바지를 생산했다. 이때만 해도 미국에서 수입한 청바지 원단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몹시 딱딱하고 두꺼워 고지마의 발달된 봉제기술로만 제조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3년부터 일본산 원단을 직접 생산하면서 뻣뻣한 청바지 원단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고지마의 장인들은 각종 아이디어를 냈다. 기계에 청바지와 돌을 같이 넣고 돌리는 ‘스톤 워싱’도 이곳에서 개발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사쿠라지마의 가벼운 화산석이 그들이 원하는 워싱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청바지의 워싱이나 자연스러운 주름이 절로 완성된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인체 곡선에 더 편안하게 맞고 더 아름다운 핏을 내는가를 장인들이 고심한 결과다. 패스트 패션이 등장하면서 고지마의 청바지 브랜드도 한때 위기를 맞았지만, 고지마는 질 좋은 일본산 청바지라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한 해 입고 마는 나쁘지 않은 청바지가 아니라, 한번 구입하면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고급화를 추구한 것. 이는 기성품과 오더 메이드 양쪽 모두에 적용되었는데 방향 전환은 빼어난 한 수였다. 누구의 장롱을 열어도 최소 다섯 장은 들어 있을 만큼 청바지는 흔한 아이템이지만, 고작 몇 밀리미터의 차이로 핏이 미묘하고 불편한 어려운 제품이기도 하다. 고지마에서 주문할 수 있는 ‘오더 메이드 진’은 이런 개개인의 체형과 취향을 십분 이해한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템이다. 베티하우스의 경우 가장 중요한 원단 선별과 패턴 제작부터 시작해, 벨트 레이블, 리벳, 단추, 스티치 등 소소한 부자재도 모두 선택할 수 있다. 원단도 다양해 솜을 누빈 것부터 캐시미어가 함유된 데님도 있다. 평생 패턴을 보관해 주므로 언제든 재주문도 가능하다. 품질 때문에 한 번 입어 본 사람은 다시 찾는데 일본 전역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대만뿐 아니라 멀리 유럽에서도 찾아온다는 게 베티 스미스의 이야기다. 인근 체험관에선 자투리 데님 원단을 활용해 핸드폰 고리나 열쇠고리를 만들어 볼 수 있으며, 아이디어 넘치는 소소한 상품 코너도 있다. ▶Travel tip 특급열차를 5일 동안 무제한으로 간사이 와이드 패스 낯선 오카야마현으로의 여행이 수월했던 건 바로 JR에서 의욕적으로 준비한 ‘간사이 와이드 패스’ 덕분이다. 간사이공항에서부터 간사이 지방이 아닌 오카야마현까지 신칸센을 포함해 특급 기차를 5일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기차 패스다. 성인 기준 9,000엔(국내에서 구입하면 8,500엔)으로 일본 내국인의 단순 1회 왕복 요금보다 저렴하다. 때문에 바쁜 오사카 여행 전후로 혹은 오카야마를 콕 집어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여행이 충분히 가능하다. 오카야마 공항을 연계하는 직항편도 있지만, 보다 다양한 도시를 보고 싶다면 항공편이 훨씬 다양한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통해 이동하는 방법도 괜찮기 때문. 신오사카 1회 환승을 포함해 간사이공항에서 오카야마역까지 약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JR은 또 간사이공항 인근에 있는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USJ도 연결하므로 하루를 활용해 즐기기도 좋다. USJ는 지난해 해리포터 존 개관으로 월 관람객 신기록을 갱신하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 Travie writer 김정은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승무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월드경매+] 로댕 ‘입맞춤’ 미니어처 청동상, 30억여원에 팔려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입맞춤’을 축소 제작한 미니어처 청동상이 16일(현지시간) 파리에서 열린 경매에서 220만 유로(약 30억 원)에 낙찰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이번에 낙찰된 청동상은 로댕이 사망한 지 10년 째인 1927년에 그가 생전에 만들어둔 미니어처 주형(거푸집)을 가지고 높이 85cm로 제작한 것. 로댕이 1885년에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181.5cm짜리 석상보다는 절반가량 작다. 이 석상은 현재 파리 로댕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로댕의 ‘입맞춤’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 만큼 유명해 첫 주조 이후 지금까지 27회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경매에 나온 작품은 프랑스의 미술품 거래상인 장 드 루아즈가 소유하고 있던 5점의 청동상 가운데 한 점이다. 특히 이번 작품은 예상가보다 10% 높은 가격에 낙찰돼 로댕 사후 제작된 미니어처 작품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고 이번 경매를 진행한 ‘비노슈 에 지퀠로’(Binoche et Giquello) 측은 설명했다. 이번 작품을 낙찰받은 미국인 사업가는 이외에도 또다른 로댕 작품인 ‘영원한 봄’의 미니어처 청동상도 예상가의 2배인 69만3000유로(약 9억5000만원)에 사들였다. 로댕의 또 다른 동상 3점도 예상가의 2배인 9만5000유로(약 1억3000만원)부터 19만유로(약 2억6000만원)까지 프랑스 등의 유럽 출신 수집가들에게 낙찰됐다. 이들 작품은 앞서 팔린 것보다 작은 것이다. 한편 로댕의 작품은 특성상 수많은 위조 사건에 연루돼 왔다. 특히 1997년에는 가이 헤인이라는 유명 청동상 거래상이 로댕을 비롯해 피에르 오그스트 르누아르, 까미유 끌로델 등 유명 예술가의 작품을 위조한 청동상 수천 점을 만들어 유통해오다 적발된 바 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오감으로 느끼는 사상

    오감으로 느끼는 사상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박영욱 지음/바다출판사/384쪽/1만 9800원 사상이란 철학자들과 지적 선구자들이 내놓은 관념적인 그 무엇을 지칭한다. 흔히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단계로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상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의 저자는 25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언급하며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오감으로 느끼고 감상하는 대상으로서의 사상을 소개한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깨달았듯이 진리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이는 사상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사상의 물질성은 예술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또 예술작품의 미덕이란 추상적 개념을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문화와 예술에 천착한 저자는 얼핏 보기에 아무런 공통성이 없어 보이는 사상가와 예술가를 연결지어 풀어 나가는 방식으로 난해한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한다. 우선 비트겐슈타인과 에스허르, 들뢰즈와 렘브란트, 사르트르와 마네, 하이데거와 고흐, 레닌과 말레비치 등 눈으로 감상하는 평면적인 회화와 사진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사상들을 정리한다. 이어 마르크스와 쇤베르크, 니체와 바그너, 프로이트와 루솔로 등 음악과 사상을 연결짓는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통해 몸의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를 소개하고 푸코와 르코르뷔지에의 지적 권력에 대해 논한다. 책은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떠돌던 다양하고도 이질적인 현대 사상이 예술 작품을 통해 구체성을 얻도록 돕는다. 예술작품과 사상의 연결 고리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에 대한 관심이 저절로 자란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영·프 “관용 없다”… ‘난민 무덤’ 된 칼레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마주 보는 프랑스 칼레는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으로 유명한 곳이다. 영·불 간 백년전쟁에서 패하기 직전 주민과 도시를 살리는 대신 처형을 자원한 귀족 6명의 절망이 담긴 작품이지만 조각의 소재가 됐던 옛이야기는 해피엔드다. 적국의 왕은 처형 자원자를 살려 줬다. 최근 들어 이곳은 ‘난민의 무덤’이 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2일 이곳에서 영국으로 밀입국하려는 난민이 지난 1월 600여명에서 최근 3000여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이들은 양국 사이 해저로 뚫린 화물용 유로터널을 지나는 탱크로리, 냉장차 등에 몸을 싣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올해에만 지난 7월까지 이들에 의한 ‘도둑 탑승’ 시도는 3만 7000건이나 적발됐다. 이 과정에서 최근 두 달 동안 10명이 사망했다. 여객용 유로스타에 매달리다 감전사를 당하거나 숨어든 냉장차 안에서 저체온증이나 질식으로 사망하는 등 참혹한 죽음이었다. 칼레 난민의 이야기에는 해피엔드가 끼어들 여지가 안 보인다. 십여 년 동안 난민이 처한 상황은 악화일로다. 1999년 칼레 한 곳에 난민수용소가 들어서면서 난민이 몰리기 시작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반이민주의자로 유명한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 내무장관으로 재임하던 2001~2002년 이 수용소를 해체했다. 쫓겨난 3000여명이 황무지에 텐트를 치고 ‘정글’로 명명된 난민 군락으로 밀려났지만 그마저 2009년 강제 해산됐다. 프랑스에서 설 곳이 사라질수록 난민들은 영국행을 꿈꿨다. 지난해 9월 불법 이민자 235명을 싣고 영국으로 향하던 배가 뒤집혀 수장된 사건도 ‘잉글랜드 드림’의 기세를 꺾지 못했다. 지난 6월 프랑스 선원 파업으로 유로터널이 잠시 폐쇄되고 발이 묶인 대형 화물트럭이 터널 앞에서 멈추는 혼란이 벌어진 뒤 ‘바닷길’ 대신 ‘터널길’을 노린 밀입국 시도가 급증했다. 지난달 27~28일 3000여명이 유로터널 앞 트럭에 뛰어오르기를 시도했다. 이제 프랑스뿐 아니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영국 보수당 정부도 난민에게 ‘무관용 정책’을 펴고 있다. 이미 470만 파운드(약 85억원)를 들여 유로터널 주변에 전기가 흐르는 울타리를 쌓았던 영국 정부는 700만 파운드(약 127억원)를 투입해 장벽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경찰견 등 경비 병력 보강에 나섰다. 난민들의 ‘잉글랜드 드림’엔 이유가 분명하다. 에리트레아, 파키스탄, 이란, 수단, 스리랑카, 아프가니스탄 등 주로 옛 영국 식민지 출신인 이들에겐 영어와 영국식 교육이 익숙하다. 난민 신청 뒤 반년 동안 프랑스가 성인에게만 정착 지원금을 주는 데 비해 영국은 미성년 난민 대기자에게도 주급 39~52파운드(약 7만~9만원)의 수당을 준다는 경제적 유인도 있다. 역으로 사하라 사막과 중동 사막을 건너고 뗏목에 의지해 지중해를 넘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맞닥뜨린 50㎞ 길이 유로터널은 난민들에겐 꿈의 나라로 가는 ‘9부 능선’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단속 정책만으로 칼레의 난민 사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양국은 이날 유럽연합(EU)에 협조를 요청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박문각 강남 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16) 국어

    [박문각 강남 고시학원과 함께하는 실전강좌] (16) 국어

    서울신문은 가장 많은 수험생이 응시하는 7·9급 국가직 및 지방직 공무원시험에 대비해 국어·영어·한국사 등 시험 필수과목과 행정학·행정법·사회 등 선택과목에 대한 실전강좌를 마련했다. 공무원시험 전문 학원인 박문각 남부고시학원 강사들의 도움을 받아 매주 과목별 주요 문제와 해설을 싣는다. 이번 강의에서는 올해 치른 시험 가운데 국어 과목에서 눈여겨볼 만한 문제를 분석했다.   (문제)다음 글에 나타난 ‘그림:액자’의 관계와 가장 비슷한 것은?  2000년이 된 기념으로 ○○화랑에서 화가 200인의 작품 전시회를 개최했다. 큐레이터가 보내 준 카탈로그를 보고 전화로 김○○ 화백의 그림을 바로 예약했다. 큐레이터는 “작품이 작은데 병 속에 세 명이 들어가 있어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느냐?”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설정한 ‘가족’이라는 주제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구입하기로 했다. 전시회가 끝난 뒤 작품을 받아 보니 액자가 그림보다 훨씬 컸다. 이렇게 액자가 크니, 큐레이터의 걱정과는 달리 그림이 답답해 보이지는 않았다. 이것이 바로 ‘액자의 힘’이다. 내가 아는 어떤 애호가는 좋은 액자를 꾸준히 모은다. 갖고 있는 그림의 액자를 바꾸기 위해.    ①유명 인사들의 사회적 성공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들은 그 요인으로 하나같이 좋은 습관을 든다.-‘성공:습관’  ②나는 가끔 책을 장난감 블록처럼 다양하게 쌓아 본다. 책의 무거움, 진부함, 지루함을 해소하고, 즐겁고 유쾌하게 책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책:장난감 블록’  ③로댕은 돌을 바라봅니다. 그 안에서 손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움직여 돌 속의 손을 끄집어내려고 합니다. 그러다 실패하지요. 실패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로댕은 다시 새 돌을 꺼내 바라봅니다.-‘돌:손’  ④인간은 단 몇 초 만에 상대방에 대한 호감도를 결정한다고 한다. 몇 초 만에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내면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옷차림은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내면:옷차림’   (해설)지문에서 ‘그림’은 ‘액자’를 통해 그 효과나 모습을 달리한다고 했다. ④번의 ‘내면’도 ‘옷차림’을 통해 돋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비슷하다. ①은 ‘성공’은 ‘습관’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니 ‘결과와 원인’의 관계라 할 수 있고, ②는 ‘책’을 ‘장난감 블록’에 비유한 관계이니 ‘주대상과 비유적 대상’의 관계이며, ③은 ‘돌’에서 ‘손’을 발견하고 형상화하는 것이니 ‘재료와 예술적 형상화’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지문을 통해 단순한 내용이나 주제를 묻는 독해 문제에서 탈피해 문맥 상황을 통해 어휘들이 갖는 의미와 그 논리적 관계를 묻고 있다. 이런 유형은 기존의 공무원 국어에서는 자주 출제되지 않았다. (정답)④   (문제)국어의 음운 현상에는 아래의 네 가지 유형이 있다. <보기>의 ㈎와 ㈏에 해당하는 음운 현상의 유형을 순서대로 고르면?  ㉠XAY → XBY(대치)  ㉡XAY →X∅Y(탈락)  ㉢X∅Y → XAY(첨가)  ㉣XABY → XCY(축약) <보기> 솥+하고 → [솓하고] → [소타고]   ㈎ ㈏ ① ㉠, ㉡ ② ㉠, ㉣ ③ ㉡, ㉢ ④ ㉣, ㉡    (해설)‘솥’의 끝소리 ‘ㅌ’은 대표음 ‘ㄷ’으로 바뀌고[대치], 다시 ‘ㄷ’은 ‘ㅎ’과 결합[축약]하여 ‘ㅌ’으로 소리 난다.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기존 문제 유형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음절 끝소리 규칙’만 공부하던 것을 ‘대치’로 접근해서 문법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의 이해를 묻고 도식을 이용해 그 원리를 이해하고 실제에 적용하게 했다.    (정답)② 정찬흠 박문각 강남고시학원 강사
  • [리치$경매] ‘로댕作 거푸집’으로 최근 만든 청동상, 12억원 낙찰

    [리치$경매] ‘로댕作 거푸집’으로 최근 만든 청동상, 12억원 낙찰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 만든 주형(거푸집)으로 최근 처음 청동으로 주조한 작품이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약 12억 7000만원에 낙찰됐다. 그리스 신화 속 미(美)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의 주형은 1913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같은 이름의 연극을 위해 로댕이 제작한 것으로, 당시 무대에 올릴 석고상만 제작된 채 주형은 최근까지 행방불명이었다. 파리 로댕 미술관이 지난해 프랑스 정부에 기증된 로댕의 작품들을 조사하는 동안 완전한 주형을 찾아내 청동으로 주조하게 됐다. 두 팔을 우아하게 머리 위로 올리고 있는 아프로디테의 모습을 한 이 청동상은 높이 2.15m로, 이번 경매에서 114만 8053달러(약 12억 7000만원)에 팔렸다. 만일 로댕이 당시 이 주형으로 청동상을 직접 만들었다면 그 가격은 10배 이상 높았을 듯하다. 지난달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만든 청동상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L‘Homme au Doigt, Pointing Man)가 조각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4130만달러(약 1549억 3545만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인상파와 현대미술’(Impressionist and Modern Art)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경매에서는 이외에도 파블로 피카소와 르네 마그리트, 폴 세잔, 마르크 샤갈 등의 작품이 출품됐다. 이날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붓꽃’(Iris Mauves)으로, 낙찰가는 1721만 6021달러(약 190억8051만원)다. 모네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은 2008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8050만달러(약 833억원)에 팔린 ‘수련연못’(Le Bassin aux Nympheas)이 가지고 있다. 한편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은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로 지난달 뉴욕 경매에서 1억7936만 달러(약 1969억 원)에 팔렸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로댕作 거푸집’으로 최근 첫 주조한 청동상, 12억원 낙찰

    ‘로댕作 거푸집’으로 최근 첫 주조한 청동상, 12억원 낙찰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 만든 주형(거푸집)으로 최근 처음 청동으로 주조한 작품이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약 12억 7000만원에 낙찰됐다. 그리스 신화 속 미(美)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라는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의 주형은 1913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같은 이름의 연극을 위해 로댕이 제작한 것으로, 당시 무대에 올릴 석고상만 제작된 채 주형은 최근까지 행방불명이었다. 파리 로댕 미술관이 지난해 프랑스 정부에 기증된 로댕의 작품들을 조사하는 동안 완전한 주형을 찾아내 청동으로 주조하게 됐다. 두 팔을 우아하게 머리 위로 올리고 있는 아프로디테의 모습을 한 이 청동상은 높이 2.15m로, 이번 경매에서 114만 8053달러(약 12억 7000만원)에 팔렸다. 만일 로댕이 당시 이 주형으로 청동상을 직접 만들었다면 그 가격은 10배 이상 높았을 듯하다. 지난달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만든 청동상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남자’(L‘Homme au Doigt, Pointing Man)가 조각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4130만달러(약 1549억 3545만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인상파와 현대미술’(Impressionist and Modern Art)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경매에서는 이외에도 파블로 피카소와 르네 마그리트, 폴 세잔, 마르크 샤갈 등의 작품이 출품됐다. 이날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붓꽃’(Iris Mauves)으로, 낙찰가는 1721만 6021달러(약 190억8051만원)다. 모네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은 2008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8050만달러(약 833억원)에 팔린 ‘수련연못’(Le Bassin aux Nympheas)이 가지고 있다. 한편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은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로 지난달 뉴욕 경매에서 1억7936만 달러(약 1969억 원)에 팔렸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모네 ‘대운​​하’ 등 작품 5점, 총 917억 원 낙찰

    모네 ‘대운​​하’ 등 작품 5점, 총 917억 원 낙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대표작 ‘대운하’를 포함한 작품 5점이 총 900억 원이 넘는 거액에 낙찰됐다.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모네의 작품 5점은 총 7360만 유로(약 917억 원)에 낙찰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모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이번 경매에서 가장 관심을 끈 ‘대운하’(Le Grand Canal)는 3125만 유로(약 389억 원)에 낙찰됐다. 대운하는 1908년 모네가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풍경을 하늘색과 녹색의 밝은 색채로 그린 작품으로, 당시 그는 “그림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아름답다”고 감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작품은 모네가 아내의 미국인 친구와 함께 머물던 베네치아의 저택 팔라초 바르바로의 계단에서 바라본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트 성당의 모습을 그린 6점의 시리즈 중 하나로 2006년부터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임대해 전시해왔다. 이 작품이 마지막으로 미술시장에 나온 것은 2005년으로 당시 소더비 경매에서 1200만 달러에 낙찰됐다. 함께 출품된 1887년 작품 ‘지베르니의 미루나무’(Les Peupliers a Giverny)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내놓은 것으로 1425만 유로(약 177억 5000만 원)에 낙찰됐다. 소더비는 이번 낙찰 총액이 런던 경매로는 사상 최고인 2억 8300만 달러(약 3070억 8330만 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이번 경매에는 모네 작품 외에도 피에르 오그스트 르누아르, 앙리 마티스, 오귀스트 로댕,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피에르 쇠라의 작품도 출품돼 낙찰됐다. 이 중 조르주 피에르 쇠라의 대표작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Une Baignade, Asnieres)의 습작은 유화가 아님에도 1025만 유로(약 127억 6000만 원)라는 거액에 팔려 이 작가의 소묘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건축의 前과 後, 미술관에 들어오다

    건축의 前과 後, 미술관에 들어오다

    요즘 가장 주목받은 젊은 건축가로 꼽히는 조민석(48)의 첫 개인전 ‘매스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가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다. 조민석은 최근 10여년 사이 상업적 성과는 물론 공공 프로젝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 한국관 커미셔너로 참여해 한국관에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안긴 인물이다. 도심에 위치하고 무게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그의 개인전이 열린다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건축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건축가 조민석의 작업 태도가 그만큼 유연성과 동시대성을 지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조민석은 오프닝에 앞서 가진 간담회에서 “딱딱한 도면과 드로잉을 중심으로 한 기존 전시와는 다르게, 보다 친숙하게 건축에 접근하도록 구성했다”면서 “건축 자체의 공간보다는 건축의 시간성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14년의 해외 체류 동안 다양한 문화와 실무경험을 쌓은 그가 2003년 귀국해 건축사무소 매스스터디스를 설립하고 12년간 한국이라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공간에서 어떤 식으로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풀어내고, 구체화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 그동안 진행한 69개 건축 프로젝트의 사진 및 동영상 자료, 드로잉, 도면, 모형, 자재 등 283점의 자료가 3개의 공간에 나뉘어 전시된다. 그간의 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콘텍스트는 최근 20년 사이 건설업은 급격히 하락하고, 인터넷 사용자 비율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 한국 사회다. 그는 과격한 변화를 보여 주는 그래프를 흑백의 대비로 표현해 이번 전시 전체를 아우르는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다. 로댕의 작품이 전시된 플라토미술관의 ‘글라스 파빌리온’에는 750개의 훌라후프를 엮어서 만든 지름 9m의 원형 임시구조물 ‘링돔’이 들어서 있다. 뉴욕과 밀라노, 요코하마 등의 공공 장소에 설치된 바 있는 링돔은 공공성을 중시하는 작가의 건축 특성을 반영하는 조형물이다. 메인 전시 공간은 ‘현시점을 이전 평가의 장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후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해 보고자’ 건축물이 완성되기 이전(Before)과 이후(After)로 가설적으로 양분된 세계를 병렬식으로 구성했다. ‘Before’ 전시장은 건축가의 창작이 실제로 이뤄지는 현실 속의 공간을 재현했다. 마치 매스스터디스 사무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공간에는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해 왔던 과정의 결과물들을 전시했다. ‘상하이 엑스포 한국관’(2010년), 다음 제주 본사인 ‘다음 스페이스닷원’(2011년) 등 주요 작품의 모형을 만나 볼 수 있다. 전시장에는 실제 건축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아이디어로 끝난 프로젝트들도 포함돼 있다. 서울시청사 증축 콘셉트 디자인 공모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 각종 공모에 냈다가 탈락한 설계안들이다. ‘After’ 전시장에서는 무수한 타협과 충돌 끝에 현실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건축물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보여 준다. 단순히 건축가의 개념이 구현된 결과물뿐만 아니라 건물이 완성된 뒤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의도와 다르게 변형돼 사용되는 모습도 소개된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 내 ‘픽셀 하우스’는 자녀를 위해 대안교육을 추구하던 교사 부부를 위한 건축물이었던 점을 감안해 공간과 함께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틀어 놨다. 제주의 ‘오설록: 티스톤, 이니스프리’(2012)와 남해의 ‘사우스케이프’(2013) 등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그의 작품들이 자태를 뽐낸다. 서울 여의도 주변을 담은 사진에는 그의 아버지(건축가 조행우)가 설계한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자신의 건축물 다발 매트릭스가 한 프레임 안에 들어 있다. 전시는 눈과 귀를 단단히 무장하고 봐야 할 정도로 그가 해 온 작업들을 쏟아 놓은 까닭에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조민석은 연세대 건축공학과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가 이끄는 네덜란드 설계사무소 OMA에서 근무하고 1998년 뉴욕에서 건축가 제임스 슬레이드와 ‘조-슬레이드 아키텍처’를 설립해 활동했다. 2003년 건축사무소 매스스터디스를 설립해 건축과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데스크 시각] 심심할 권리, 멍 때릴 권리/황수정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심심할 권리, 멍 때릴 권리/황수정 문화부장

    경기도 버스 안에는 텔레비전이 붙어 있다. 하루 평균 423만명이 그 버스들에 설치된 TV를 본다는 집계를 본 적 있다. 그러나 그건 온전한 진실이 아니다. 승객들은 TV를 보고 싶어 보는 게 아니라 보기를 ‘강요’당한다. 앞뒤 출입구와 운전석 뒤까지, 어디 한번 안 볼 재간 있거든 해 보라는 태세로 TV 화면들이 버티고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강렬한 전자파의 자극을 무시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대면하는 화면에는 역시나, 쓴 입맛이 다셔진다. 온라인 화제 영상, 공중파에서 방영된 오락 프로그램 재탕 장면 등이 맥락 없이 스팟 광고처럼 스쳐가기를 무한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승객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 화면에 의미 있는 시선을 던지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눈먼 예산을 얼마나 밀어넣었을까, 어쩌자고 저런 요령부득의 아이디어를 냈을까. 경기도의 의도는 앞으로도 계속 궁금할 것 같다. 경기도의 씀씀이를 타박하자고 꺼낸 얘기는 아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머릿속을 비워 내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다. 그래서 작정하고 휴대전화를 무음 모드로 돌려놨을 때라면 경기도 버스는 ‘최악’이다. 얼마 전 서울시청 앞에서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려 화제였다. 백주대로 옆 잔디밭에 매트를 깔고 앉아 누가 더 멍해질 수 있는지를 겨룬 별난 게임이었다. 최연소 참가자였던 9세 꼬마의 압도적인 승리는 어쩌면 당연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모양의 트로피를 받아든 꼬마는 “힘들 때면 저절로 멍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이 시대 평균치의 성인들이라면 힘들고 복잡한 일 앞에서 머리가 비워지지 않는다. 속도전에 과잉 노출된 우리에게 뇌의 여백을 조절하는 기능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회를 제안한 30대 예술가는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다가 뇌가 피곤해져 자신도 모르게 멍해지는 모습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말했다. 그러나 수정돼야 할 얘기다. 스마트폰을 떼어 놓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언제부턴가 멍해질 여유 자체가 없다. 24시간 분초를 다퉈 제 존재를 확인시키는 스마트폰의 위력에 멍해질 수 있는 자기조절 능력을 빼앗겼다. 뾰족한 대안이 없음에도 그런 위기를 경고하는 책들은 쉼 없이 쏟아져 나온다. 경고의 요지는 한결같다. 지나친 휴대전화 사용으로 뇌가 고주파 신호 자극에 노출되면 전두엽이 손상된다는 것이다. 전두엽의 발달이 누구보다 중요한 청소년들에게 그 치명성이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모두가 얼마나 ‘멍 때리기’에 갈증나 있는지는 텔레비전 앞에서 확인된다. 요즘 한창 인기몰이 중인 tvN의 화제작 ‘삼시세끼’는 심심함이 최고의 미덕으로 연결된 프로그램이다. 고정 출연 배우 이서진은 시골집 마당에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달걀을 부쳐 먹고, 텃밭에다 푸성귀를 가꾸고, 거친 밥상을 차린다. 속도전에 가담하지 않아도 탈없이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시청자들은 위안을 찾는다. 수다 없이 심심하고 느린 화면 앞에서 모처럼 멍 때릴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이다. 우리 뇌는 무언가를 생각할 때 1초에 10만 회의 화학작용을 한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1분만 들여다봐도 뇌가 600만 회의 노동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순간에도 노트북 옆의 스마트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들어오고 뉴스 속보가 날아온다. 심심해지고 싶다. 당장 내일이라도 서울을 오가는 경기도 버스에서 TV가 치워졌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sjh@seoul.co.kr
  • ‘1만 7000년 전’ 男女 이렇게 생겼다, 정밀 복원 성공

    ‘1만 7000년 전’ 男女 이렇게 생겼다, 정밀 복원 성공

    선사시대에 살던 인류 조상의 실제 모습은 어땠을까? 최근 이를 짐작해볼 수 있는 인체모형이 공개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AFP통신은 생존 당시 실제 모습과 거의 흡사하게 정밀 복원된 1만7000년 전 선사시대 인류모형 이미지를 12일(현지시간) 공개했다. 회색빛 눈에 하얗게 센 머리 그리고 사냥용 장대를 들고 앉아있는 한 남성, 태양빛에 자주 노출된 듯 검게 그을린 피부에 강인한 갈색 눈과 둥근 얼굴 그리고 코요테 모피를 두르고 한 곳을 은은히 응시하며 서있는 젊은 여성, 모두 실제 살아있는 듯 생생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 이들은 1만7000년 전 생존했던 선사시대 인류 남녀를 정밀 복원한 모형들이다. 남성은 1888년 프랑스 서남부 샹슬라드(Chancelade) 지방에서 발견된 골격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들은 크로마뇽인과 다른 샹슬라드인(Chancelade man)으로 따로 분류돼 현재 에스키모(Eskimo)의 조상으로 여겨진 바 있다. 이번에 복원된 샹슬라드인(Chancelade man) 남성은 생전 188㎝에 육박하는 장신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성은 프랑스 서남부 도르도뉴(Dordogne) 지방에 발견된 선사시대 여성 골격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고인류학 전문 연구진에 따르면, 이 여성은 사망 당시 20세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모든 인체 모형은 프랑스 노르 데파르트망(Département) 릴 시 출신 유명 조각가이자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엘리자베스 다이네스에 의해 제작됐다. 그녀는 고인류학, 해부학, 법의학은 물론 일반 미술 미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실리콘을 이용해 17000년 생존했던 인류 조상들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되살려냈다. 특히 샹슬라드인(Chancelade man) 남성의 경우, 프랑스 유명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다이네스는 “해당 작품은 과학적인 관찰과 상상력이 융합돼 탄생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한편 해당 작품들은 프랑스 보르도 갤러리에서 내달 5일까지 전시된다. 사진=ⓒ AFPBBNews=News1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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