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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경운궁 日 방화 추정’ 특종 뒤 해고당해… 대한매일신보 창간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경운궁 日 방화 추정’ 특종 뒤 해고당해… 대한매일신보 창간

    일본에서 무역업을 하던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러일전쟁이었다. 고베에서 안정적 생활을 하던 베델은 돌연 영국 일간지의 특별통신원이 돼 한국에 왔다. 그가 훗날 항일 언론인으로 죽어가던 조선을 위해 싸우게 될 줄은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베델이 잠시 사업을 접고 새로운 일을 모색하던 1904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는 한반도와 만주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전운이 감돌았다. 2월 8일 일본 함대가 중국 랴오닝성 뤼순항을 기습 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시작됐다. 베델은 이때까지도 일본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었다.당시 전쟁은 언론사들의 최고 인기 아이템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월드컵이나 미국 대선처럼 세계인이 큰 관심을 갖는 뉴스거리였다. 유명한 종군 기자는 슈퍼스타 대접을 받았다.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종군기자로 참전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와 같은 작품을 썼다.러일전쟁을 전후해 ‘로이터’를 비롯한 영국의 주요 매체들은 한국으로 특파원을 보냈다. 영국 총리를 역임한 윈스턴 처칠도 종군기자로 러일전쟁 취재차 한국을 찾았다. ‘데일리 크로니클’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내는 전장을 하루라도 빨리 묘사하고자 우선 동북아 사정을 잘 아는 현지 통신원을 채용하기로 했다. 영국 런던에서 정식 특파원을 파견할 경우 물리적으로 한 달 가까이 시간이 걸리는 데다 일본이나 러시아 사정에 밝지 않아 배경지식이 풍부한 기사를 쓰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데일리 크로니클’은 전쟁 발발 직후 일본에 있던 토마스 코웬을 임시직인 특별 통신원에 임명해 조선에 보낸 뒤 베델을 두 번째로 파견했다. 3월 10일이었다. 일본 업체들의 소송과 형제 간 불화 등으로 고베 사업을 접었던 베델은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통신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조선행을 결심했던 것 같다. 지금도 영국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브리스톨 지역 최고 사립고교를 졸업한 베델 역시 기자로서의 바탕은 충분했다. 이때부터 그에게 언론인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한국 황궁의 화재’ 5면 톱기사로 실려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 관련 기사가 전 세계로 퍼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이들의 기사가 적국인 러시아에 들어가면 군사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이 사실을 모르던 외신기자들은 종군 취재 허가를 받으러 도쿄에 갔다가 4월 초순까지 발이 묶였다. 이들은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하지만 고베에서 16년을 살며 일본어에 능통했던 베델은 이들보다 한 달이나 앞서 조선에 들어왔다. 베델은 조선에 온 지 36일 만에 ‘특종’을 발굴했다. 4월 16일자 ‘한국 황궁의 화재’ 기사였다. 베델은 14일 저녁 고종이 머물던 경운궁(현 덕수궁)에서 발생한 의문의 화재 사건을 추적해 ‘일본군이 방화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기사를 전송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이듬해부터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런 궁궐에 어느 날 갑자기 불이 나 중화전과 그곳에 있던 보물이 모두 탔다. 당시 ‘데일리 크로니클’은 그가 쓴 기사를 5면 톱기사로 편집해 전 세계에 타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베델과 코웬은 이 기사 때문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친일 성향의 데일리 크로니클이 일본에 비판적 기사를 쓴 베델을 문책했다는 것과 전장인 한반도에 통신원을 두기보다 본지 기자들이 일본 정부에서 자료를 받아 기사를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데일리 크로니클, 일본에 우호적 기사 지시” 훗날 베델은 이 사건에 대해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일할 때 받은 지시는 ‘우리 신문은 일본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통신원이 쓰는 기사 역시 이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면서 “또 동양에 간 특파원들이 전쟁터에서 얻는 정보보다는 영국 런던 주재 일본대사관에서 듣는 사실이 더 많았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1872년 창간된 ‘데일리 크로니클’은 1930년 ‘데일리 뉴스’와 합병해 ‘뉴스 크로니클’로 바뀌었다. 이 매체는 1960년 ‘데일리 메일’에 흡수돼 지금도 운영 중이다. 학계에는 베델이 ‘데일리 크로니클’에서 경운궁 화재 기사 한 건만 쓰고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것말고도 그가 쓴 기사가 하나 더 있다는 주장이 있다. 서울신문이 취재도중 만난 영국 출신의 역사연구가 에이드리언 코웰(62·싱가포르 거주)에 따르면 베델은 경운궁 화재 기사보다 보름 앞서 4월 1일자에 조선의 전통놀이인 ‘석전’(두 편으로 나뉘어 돌팔매질로 승부를 겨루던 놀이)과 축구를 비교하는 글을 썼다. 해당 기사는 지금도 ‘데일리 크로니클’ 데이터베이스(DB)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베델은 통신원으로서 모두 2개의 기사를 쓴 것이 된다. 코웰은 “당시 통신원들은 자신이 쓴 기사를 다른 매체에도 팔 수 있었다. 이 글을 뉴질랜드 언론사에도 판매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그 기사도 찾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32세 나이에 3개월 만에 신보와 KDN 펴내 특종 기사를 남기고 회사를 떠나게 된 베델은 곧바로 자신이 이곳에서 직접 신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는 단 3개월 만에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발행했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20년 가까이 무역 일만 하던 베델이 갑자기 일사천리로 언론사를 창간한 이유를 두고 지금까지도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우선 신문 발행은 당시로서는 첨단산업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종이 몇 장만 사면 알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정보화 혁명에 비견될 충격이었다. 19세기 말부터 동북아시아 지역은 영자신문 창간이 유행처럼 번졌다. 특히 조선에는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영어신문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에서는 1896년 서재필이 한글판 ‘독립신문’과 영문판 ‘인디펜던트’를 창간했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899년 12월 폐간했다.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미국인 호머 허버트(1863~1949)가 월간지로 발행하던 ‘코리아 리뷰’가 유일한 영어 간행물이었다. 베델은 이런 조선에서 하루빨리 영어신문을 창간해 시장을 선점하면 장기적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 같다. 또 투자금을 모아 회사를 차리는 일은 베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자본을 모으는 이른바 ‘펀딩’은 16년간 무역업을 하며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알던 베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 여기에 그는 일본 시절부터 언론 친화적 모습을 보여줬다. 베델이 고베에 있을 때 발행되던 영어신문 ‘고베 크로니클’은 그가 활동하던 스포츠 클럽 고베 레가타 앤드 어슬래틱 클럽(KR&AC)이 주최하는 연례 총회와 스포츠 경기, 콘서트 등을 단골 기삿거리로 삼았다. 그 역시 여기에 수차례 기고글을 쓰며 논쟁을 즐겼다. 마지막으로 그가 영국에서 상당한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베델연구가 코웰은 “19세기 당시 영국 사정을 감안할 때 베델 정도면 (귀족이나 거대자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소규모 언론사를 운영하거나 기사를 쓰는 데 있어 기본적인 소양은 충분했다”고 말했다. 고베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싱가포르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150㎏→60㎏’…90㎏ 감량하고 인생역전 성공한 女

    ‘150㎏→60㎏’…90㎏ 감량하고 인생역전 성공한 女

    고도비만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던 여성이 피나는 노력 끝에 무려 90㎏를 감량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호주 브리즈번에 사는 베로니카 콜버트(33)는 몸무게가 149.7㎏에 달했던 3년 전, 심각한 비만 탓에 호흡곤란 및 현기증 등의 증상을 겪었다. 체지방지수(BMI)는 36.6에 달했고,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을 스스로 절제할 수 없어 체중은 끝도 없이 증가했다. 의료진은 그녀에게 이 상태가 지속되다가는 조기 사망에 이를 것이라는 끔직한 진단도 내놓았다. 이후 그녀는 목숨을 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식단을 조절하고 쉼 없이 운동하는 한편, 위 절제술을 통해 식욕을 억제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녀가 살을 빼고 건강을 되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강도 높은 운동과 식단 조절, 수술 등을 통해 점차 체내 지방을 제거해 나갔지만, 그와 동시에 늘어나 있던 피부가 힘없이 쳐지기 시작한 것. 결국 그녀는 또 한 차례 수술을 통해 늘어진 피부를 잘라내는 시술을 받았다. 늘어져서 잘라낸 피부의 무게만 5㎏에 달했다. 3년간 피나는 노력 끝에 베로니카는 무려 90㎏을 감량하는데 성공해 현재 몸무게(59.2㎏)에 도달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달 호주 퀸즈랜드에서 열린 ‘트랜스포메이션 챔피언십’ 1위를 차지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대회는 베로니카처럼 노력과 열정을 통한 다이어트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얻는 동시에, 자신의 삶을 보다 더 건강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경쟁하는 자리다. 베로니카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언제나 비만이고,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서 “이번 대회에 출전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가진 기회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아름다움은 몸무게가 아닌 마음에 있다. 나는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졌으며, 내 삶의 질도 훨씬 좋아졌다. 살을 빼면서 자신감도 한껏 생겼다”며 달라진 삶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캘리포니아 최악 산불에 기름 부은 트럼프

    캘리포니아 최악 산불에 기름 부은 트럼프

    물낭비 정책 비판하며 산불 논쟁 불붙여 언론들 “뜬금없다” 州정부 “온난화 때문”도널드 트럼프(얼굴) 미국 대통령이 역사상 가장 큰 산불로 곤경에 처한 캘리포니아주를 겨냥해 “어리석게도 엄청난 양의 물을 산불 진화나 농업 등에 쓰지 않고 태평양으로 흘려보내고 있다”고 질책하는 트윗을 올려 빈축을 사고 있다. 미 언론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이 뜬금없고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산불은 나쁜 환경법률에 의해 확대되고 훨씬 더 악화했다”고 주 정책을 비판해 산불 악화 요인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지폈다. 주 정부와 전문가들은 즉각 반발했다. 캘리포니아 소방국 부국장 대이널 벌랜트는 뉴욕타임스에 “산불과 맞서 싸울 물은 충분하다. 파괴적인 산불을 만드는 건 온난화 문제”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캠퍼스 환경과학정책학과 교수 마크 루벨은 지역 일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과의 인터뷰에서 “수 자원 문제와 화재 진압은 아무 관련성이 없다. 산불 악화는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31일 샌프란시스코 북쪽 멘도치노 국유림에서 일어난 산불은 6일(현지시간) 주(州) 역사상 가장 큰 산불로 번졌다. 지난 5일 연방 차원의 주요 재난 지역으로 선포됐다. 이른바 ‘멘도치노 콤플렉스 파이어’로 명명된 이 산불은 28만 3800에이커(약 1148.4㎢)의 산림을 태웠다. 서울시 면적(605㎢)의 1.9배에 해당한다. 발화 3주째인 요세미티 국립공원 인근 산불도 진화율은 30%에 불과하다. 국립공원 측은 인기 관광지역을 부분적으로 무기한 폐쇄했다. 앞서 자동차 타이어 펑크로 시작된 샌프란시스코 북쪽 소도시 레딩의 ‘카 파이어’는 지난 주말 7번째 사망자를 내 올해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 중 인명 피해가 가장 컸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사업 실패·소송, 형제들 불화 얽힌 베델… 한국행 배에 오르다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日 사업 실패·소송, 형제들 불화 얽힌 베델… 한국행 배에 오르다

    일본에서 무역 일을 하던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한동안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으나 오래지 않아 악재가 겹쳐 어려움을 겪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일본 업체들의 담합·소송에 휘말리고 형제들과도 관계가 나빠져 결국 일본 사업을 포기했다.●9개나 되는 공장 차렸다가 못 버티고 폐업 1888년 고베에 와 아버지와 이모부 밑에서 무역 일을 배운 베델은 1899년 ‘베델 브러더스’를 세워 독자 사업에 나섰다. 일본의 골동품을 영국에 내다파는 중개업에 자신감이 붙은 베델은 한발 더 나아가 일본에서 직접 물건을 만들어 영국에 수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베델 브러더스’가 생산하기로 한 첫 제품은 바로 러그였다. 러그는 바닥깔개나 무릎덮개 용도로 쓰는 직물제품을 말한다. 베델은 형제들과 1901년 7월 오사카 남부 사카이 지역에 소규모 러그 제조 공장 9개를 차렸다. 당시 사카이에는 일본인들이 조합 형태로 운영하는 러그 공장이 많았다. 한때 이곳은 지역 주민의 70%가 러그 생산에 매달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베델 브러더스’는 이런 사카이에 공장을 차린 첫 외국인 업체였다. 이들이 만든 러그는 품질도 꽤 좋았던 것 같다. 영자지 ‘재팬 크로니클’은 기자가 사카이 공장을 직접 방문하고 쓴 르포 기사에서 “베델의 러그는 터키에서 생산된 최고급 제품과 차이가 없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조업을 처음 해 보는 베델이 한꺼번에 9개나 되는 공장을 무리하게 운영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일본에서는 1899년 외국인에 대한 치외법권이 마무리돼 이들에 대한 소송이 급증했는데 ‘베델 브러더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품질 좋은 러그를 만들기 위해 주변 공장에서 일하던 일꾼들을 대거 스카우트한 것이 일본업체들을 자극했다. 공장을 9개나 돌리다 보니 경쟁회사에서 데려 온 장인의 수도 상당했을 것이다. 이 지역 카르텔은 ‘베델 브러더스’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영업을 방해했다. 결국 베델 형제들은 이들의 보이콧을 버티지 못하고 얼마 안 가 러그 사업을 접었다.●3억원대 러그 납품 분쟁… 日반감도 커져 베델은 이 시기 최소 3건의 소송에 휘말렸다. 사업과 관련된 것으로는 ‘수세미 사건’과 ‘러그 사건’이 대표적이다. ‘수세미 사건’은 주방용품이나 목욕용품으로 쓰는 수세미의 납품을 둘러싼 분쟁이었다. 1902년 2월 고베 상인 나리타 세이사부로는 “‘베델 브러더스’가 수세미 3만 6942개를 주문했지만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다”며 1567.31엔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905년 7월까지 3년 반 동안 재판이 이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결론은 알려지지 않았다. ‘러그 사건’은 러그 납품 대금 관련 소송이었다. 베델이 조선에 온 뒤인 1904년 10월 러그 상인 도이 젠노스케는 베델을 상대로 대금 5026.73엔과 6%의 이자를 별도로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미국 뉴욕·샌프란시스코에서 거래된 엔화의 평균가를 고려하면 5026.73엔은 지금 가치로 27만 4870달러(약 3억 700만원)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베델은 이 시기 조선에서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활동하고 있었다. 원고(도이)와 피고(베델)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자 손해배상 청구가 자연스레 기각돼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했지만, 도이가 이듬해 2월 베델을 상대로 또 한 번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 청구 금액도 처음보다 11% 늘어난 5795.73엔으로 책정했다. 고베 지역 영자지 ‘고베 크로니클’은 이 사건의 첫 공판이 있었던 1904년 10월부터 1905년 2월까지 네 차례의 공판을 기사로 다뤘다. 이 역시도 재판 결과는 기록이 없다. 사업과 관련한 두 가지 분쟁 사이에 작은 소송 하나가 더 있었다. 1903년 초 고베에 살던 히로시마 수마라는 여성이 “1902년 베델의 부인 메리 모드 게일(1873~1965)과 아들 허버트 오언 친키 베델(1901~1964)이 영국에 갔을 때 이들을 수행하고 96.91엔을 받기로 했지만 실제 대가는 40엔이 전부였다”며 재판을 걸었다. 비록 수세미나 러그 대금처럼 큰돈은 아니었지만 베델 입장에서는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렇다할 합의 노력 없이 소송부터 하고 보는 일부 일본인들의 행태에 상당히 실망했던 것 같다. 영국 런던에서 만난 베델의 손자 토머스 오언 베델(59)은 “할아버지(베델)가 자신과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한국을 돕기 위해 나선 이유 가운데 하나로 일본인들의 줄소송으로 인한 반일 감정 때문이 아니었나 추측한다”고 전했다.●日사업하던 형제들 항일 신문 만든 베델 내쳐 베델은 매사 솔직하고 직설적이었다. 베델의 후손들은 그가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1901년 8월 베델은 고베의 인력거꾼들과 요금을 놓고 시비를 벌이다가 싸움이 나서 심한 부상을 입었다. 이를 두고 당시 ‘고베 크로니클’은 “외국인을 집단 폭행한 인력거꾼들의 잘못이 크지만 인력거 면허번호를 떼어 내는 등 불필요한 행동으로 이들을 자극한 베델도 생각이 모자랐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성격 탓에 베델은 형제들과도 사이가 나빠져 결국 동업을 정리하게 된다. 아마도 이들은 일본인들과의 소송 과정에서 관계가 더욱 악화됐을 것으로 보인다. 베델이 한국에서 신보와 KDN을 발행하던 1905년 ‘고베유신일보’ 11월 27일자에는 ‘베델 브러더스’ 고베 지사에서 일하던 S E 길스가 신문사로 찾아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는 “베델은 한때 ‘베델 브러더스’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술고래였고 결근도 잦았다. 급기야 회사를 내팽개치고 한국으로 건너갔다. 이제 이 회사는 베델과 아무 관계도 없다. 우리는 이 내용을 신문에 광고도 했다”고 밝혔다. 길스를 대리인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베델을 과음과 근무태만, 무책임 등의 단어로 묘사한 것을 볼 때 (사실 여부를 떠나) 그를 바라보는 남동생 허버트(1875~1939)와 아서 퍼시(1877~1947)의 감정이 부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본 영자신문에 베델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광고까지 한 것을 보면 한국에서 항일신문을 발간한 큰 형(베델)을 이렇게라도 내치치 않을 경우 ‘베델 브러더스’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형제들의 복잡한 속내가 읽혀지기는 한다.앞서 ‘고베유신일보’는 11월 26일자 기사에 “베델은 1899년 ‘베델 브러더스’를 설립해 지난해(1904년)까지 도자기업을 운영하다가 (사업) 실패로 야반도주하다시피 한국으로 건너간 러시아 스파이”라고 비난했다. 베델이 러시아 스파이라는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가 사업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러그 사업이 실패한 뒤 도자기 판매로 활로를 모색했지만 이마저도 성공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베델은 사업 실패와 잇따른 소송, 형제와의 불화 등으로 16년간 살던 고베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1904년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영국 일간지 ‘데일리 크로니클’의 조선 특파원에 지원해 언론인으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그가 일본에서 사업에 실패한 것이 조선에는 되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고베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런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음악도 빌려듣는 시대… 플랫폼 선점 나선 음원시장 강자들

    음악도 빌려듣는 시대… 플랫폼 선점 나선 음원시장 강자들

    세계 음악 시장이 물리적 ‘음반’ 위주에서 디지털 ‘음원’ 중심으로 넘어간 것은 벌써 오래전 이야기이다. 음악시장 90%에 육박하는 음원시장의 형태는 최근 수년 새 다운로드 중심에서 스트리밍 중심으로 이동했다. 사서 저장하던 음악을, 필요할 때 빌려서 듣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엔 인공지능(AI) 스피커, 사물인터넷(IoT), 커넥티드카 등 새로운 기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런 미디어 재생 플랫폼을 얼마나 선점하느냐가 음악시장 패권을 좌우하게 됐다.국내에서는 카카오 멜론이 음원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국내 업체가 거대한 세계 음악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은 미미하다. 아직까지 이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앉아 있는 업체는 ‘스포티파이’인데, 차세대 플랫폼에 접목하는 게 후발주자들에 뒤처져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미국 음악전문매체 디지털뮤직뉴스는 미국 시장에서 애플뮤직이 스포티파이의 유료 가입자 수를 추월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애플뮤직은 애플의 ‘아이폰’과 ‘애플워치’ 등 각종 기기들에 기본 탑재됐다. 애플 기기 사용자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기에 애플뮤직 애플리케이션(앱)을 보유하고 있다. 신제품을 낼 때마다 세계 시장점유율을 잠식하는 기기들에 선탑재된 데에 힘입어 1위 스포티파이를 맹추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더 많은 플랫폼을 장악한 3위 아마존의 추격은 훨씬 무섭다. 아마존 뮤직은 스마트 스피커 ‘에코’를 비롯해 TV, 호텔 등 새로운 플랫폼과 연동해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유료 서비스인 ‘뮤직 언리미티드’는 아마존 프라임 회원에게 기본 제공되는 ‘프라임 뮤직’보다 더 많은 수의 음원과 향상된 기능으로 이용자 수를 늘려 가고 있는데, 업계는 이 성장세를 에코가 견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존 뮤직은 스마트 스피커 외에도 삼성전자가 판매하는 스마트TV와 무선 스피커, 사운드 바 등 모든 오디오 기기에 ‘프라임 뮤직’을 탑재했다. 또 지난 6월 공개한 자사 AI 플랫폼 ‘알렉사’의 호텔용 서비스를 통해서도 아마존 뮤직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호텔용 알렉사는 객실에서 에코로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하거나 조명 조절, 근처 식당 정보 확인 등이 가능한 서비스다. 현재 메리어트호텔과 제휴하고 있다.국내 음원시장을 돌아보면 다운로드 위주의 시장이 저물며 음원 서비스 업체들이 고전하던 중, 2013년 SK텔레콤은 증손회사 지분을 100% 보유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멜론을 매각했다. 2016년 멜론을 운영하던 로엔엔터테인먼트(현 카카오M)를 인수한 카카오는 국내 음원시장을 스트리밍 중심으로 옮겨 놓으며 멜론을 성장시켰다. 2004년 멜론 출범 당시 173억원에 불과했던 음원시장 규모는 지난해 7000억원을 넘어섰고, 멜론은 이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며 카카오 실적의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시장이 커지자 경쟁사들도 공세를 높이고 있다. 2위 업체인 지니뮤직은 CJ디지털뮤직의 합병을 추진하며 멜론을 추격하고 있다. 멜론의 주인이었던 SK텔레콤은 하반기 신규 음악 플랫폼을 출시, 음원 시장 재진입을 계획하고 있다. SM·JYP·빅히트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들과 제휴를 맺기도 했다. 1위 업체 멜론은 음원 재생 플랫폼 점령에서도 1등이다. 한희원 카카오M 멜론컴퍼니 본부장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플랫폼들은 인공지능으로 운영되는 특성으로 인해 이용자의 시간적 여유가 늘어나 콘텐츠와의 결합이 필수적”이라면서 “음원은 어떤 플랫폼과도 접목이 쉽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어 각 플랫폼에 가장 먼저 연동되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지난 1월 카카오톡으로 음악을 공유하는 ‘카카오멜론’을 론칭하며 음원서비스와 메신저를 결합했다. 카카오톡 내에서 음악을 듣고, 대화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듣거나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지난 4월에는 카카오톡의 카카오멜론 플러스친구에서 만날 수 있는 AI 뮤직봇 ‘로니’도 선보였다. 로니는 멜론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음악을 검색하고 이용자의 이용 패턴과 취향을 분석, 맞춤형 재생목록을 만들어 준다. 멜론 관계자는 “카카오멜론에서는 월간 최대 340만건의 음악 말풍선이 공유되고 있으며, 카카오멜론 플러스친구와 친구를 맺은 이용자는 322만명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멜론은 미래 핵심 플랫폼인 커넥티드카에도 들어간다. 구글이 지난달 12일 국내에 출시한 차량용 폰 커넥티비티 서비스 ‘안드로이드 오토’를 통해 2016년 이후 생산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전 차종에서 음성명령으로 멜론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하반기엔 ‘카카오내비’에 인공지능 플랫폼 ‘카카오i’가 탑재될 예정이라, 제조사나 차종에 상관없이 차 안에서 음성으로 멜론의 음악을 재생할 수 있게 된다. 멜론은 홈 IoT 시장에도 진출했다. 삼성전자의 IoT 냉장고 ‘셰프컬렉션 패밀리허브’에 기본 탑재됐고, 카카오가 건설사들에 제공 중인 카카오i를 통해 아파트와 오피스텔에도 접목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이 올해 공급하는 단지부터 카카오톡 기반 메신저로 집 안 IoT기기들을 제어하고 멜론을 통한 음악재생 등이 가능한 ‘대화형 스마트 더샵’ 아파트를 선보이고 있다. 물론 AI스피커에도 들어가 있다. 카카오에 따르면 지난 1~4월 동안 AI스피커 ‘카카오미니’에서 가장 많이 쓰인 기능은 멜론과 연동한 음악재생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현재까지 팔린 20만대의 카카오미니에서 음악이 재생되는 시간은 주당 평균 4000만분에 달한다”고 말했다. 멜론을 바로 뒤에서 추격하고 있는 지니뮤직도 다양한 플랫폼과 접목하며 세를 확장하고 있다. 먼저 1대주주 회사 KT의 AI 플랫폼 ‘기가지니’에 기본 탑재되면서 자연히 홈IoT 플랫폼에 들어갔다. 기가지니는 최근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2대주주인 LG유플러스의 IPTV에서도 음원을 제공한다. 네이버의 AI스피커인 ‘클로바’에서 나오는 음악도 지니뮤직의 음원이다. 특히 최근 첫선을 보인 KT의 AI 호텔 서비스인 ‘기가지니 호텔’에도 기본 적용됐다. 현재 노보텔 엠배서더 동대문 해당 객실에서 음성 명령으로 지니뮤직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커넥티드카 등 자동차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도 진출했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와 제휴를 맺고 약 10개월간 연구개발을 진행, 지난해 ‘재규어 랜드로버 지니’를 선보였다. 지니뮤직은 재규어랜드로버의 차량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인콘트롤’에 탑재돼, 음원 외에도 차량 운행 중 쉽게 음악리스트를 선택할 수 있는 사용자환경(UI)과 분위기·날씨에 따라 선곡할 수 있는 드라이브 추천리스트 등을 제공한다. 지난해 4월 출시된 ‘올 뉴 디스커버리’부터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 전 모델에 탑재돼 있다. 지난 5월부터는 소셜커머스 업체인 위메프의 음악서비스 ‘원더뮤직’에 음원콘텐츠를 공급한다. 원더뮤직은 ‘500원 40회 듣기’, ‘1000원 81회 듣기’, ‘2000원 163곡 듣기’, 기간형 무제한 음악이용권 등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음악서비스를 제공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해풍맞은 김포 아로니아 로컬푸드서 특별 직판행사

    해풍맞은 김포 아로니아 로컬푸드서 특별 직판행사

    신이 내렸다는 현대판 불로초인 아로니아 특별 판매행사가 경기 김포에서 열린다. 김포시는 김포시아로니아연구회·김포농협과 함께 아로니아 생과 출하시기에 맞춰 직판 행사를 오는 8월 9∼11일 북변동 김포농협로컬푸드 직매장에서 개최한다고 31일 밝혔다. 이번 행사는 19개 농가로 이뤄진 아로니아연구회원들이 생산한 제품을 특별 할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기획전이다. 올해 19개 농가의 생산량은 150t가량 예상된다. 8월부터 본격 수확하는 생과를 비롯해 즙과 분말·잼 등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아로니아는 지구상 베리류 가운데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이 가장 많이 함유된 신비의 열매다. 혈액순환 효과가 탁월하며 항암·피로회복·노화방지·다이어트 등에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행사 기간중 아로니아 생과 5kg 이상 구입하는 고객들에게는 김포금쌀 500g을 제공한다. 황우경 김포아로니아연구회장은 “김포지역은 한강하구가 강화도와 맞닿아 있어 해풍을 맞고 일조량이 풍부해 아로니아의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다”며, “특히 무농약 친환경인증과 우수농산물(GAP)인증을 받아 믿을 수 있는 김포아로니아를 많이 드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여기는 남미] 인면수심 성폭행 아빠, 8살 딸 스마트폰에 덜미

    [여기는 남미] 인면수심 성폭행 아빠, 8살 딸 스마트폰에 덜미

    이제 겨우 초등학교에 다니는 친딸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인면수심 아르헨티나 남자가 붙잡혔다. 현지 언론은 "경찰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헤네랄파체코에서 미성년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37세 남자를 체포했다"고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디노라는 이름만 공개된 문제의 남자는 각각 8살과 6살 된 딸을 키우는 이혼남이다. 남자와 헤어진 여자는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 홀로 남은 남자는 딸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매일 밤 두 딸을 번갈아가면서 성폭행했다. 꼬리가 잡히지 않을 것 같았던 남자의 범죄를 세상에 알린 건 어린 나이지만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8살 큰딸이었다. 큰딸은 최근 아빠가 동생을 성폭행하는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곤 모바일메신저를 통해 사진을 멀리 파라과이에 사는 친모의 친구에게 전송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친모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딸들에겐 스마트폰을 쓰는 이웃 친구의 번호를 주고 급한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었다. 큰딸은 친모의 친구에게 사진을 전송하면서 "빨리 엄마에게 보여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친모는 당장 경찰서로 달려갔다. 파라과이 경찰은 즉각 사법공조시스템을 가동, 아르헨티나 경찰에 사건을 알리고 체포를 요청했다. 사법부로부터 체포 명령을 받은 아르헨티나 경찰은 용의자 자택 주변에서 남자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조사에서 남자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지만 경찰이 증거사진을 내밀자 고개를 떨궜다. 경찰은 "위험을 불사하고 사진을 찍어 엄마의 친구에게 전송한 큰딸이 일등공신"이라면서 "두 딸이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진=크로니카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성공과 실패 동시에 겪은 일본 생활… ‘프리메이슨’ 활동

    [조선을 사랑한 英언론인 베델의 히스토리] 성공과 실패 동시에 겪은 일본 생활… ‘프리메이슨’ 활동

    1888년 아버지와 이모부의 사업을 돕고자 일본으로 간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고베에서 16년간 살면서 성공과 실패를 모두 맛봤다. 그는 사업이 번창해 큰 돈을 벌었고 결혼도 했다. 지역 스포츠클럽 사무국장을 맡아 리더십을 발휘했다. 반면 비밀결사단체로 알려진 ‘프리메이슨’에도 가입하는 등 미스터리한 면도 보였다. 16세 소년 베델이 고베에 왔을 때는 일본이 고베항을 개방(1868년)한 지 정확히 20년이 되던 해였다. 고베는 개항 당시만 해도 사람이 거의 없던 허허벌판이었다. 하지만 바다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쉽게 들어오면서 외국의 자본과 기술이 빠르게 퍼졌다. 인구도 1895년 15만 3382명, 1901년 25만 9040명, 1910년 38만 7915명으로 급속히 늘었다. 20세기 초 조선의 수도 한양의 인구가 20만명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곳이 얼마나 크고 활기찬 도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도 일본에서 쓰이는 “성공한 사람은 교토에서 공부하고, 오사카에서 돈을 벌어, 고베에 산다”는 말은 이 무렵부터 생겨났다. 베델은 일본 시절 초기 이모부인 퍼시 알프레드 니콜(1848~1899)의 집(고베시 73번지)에 기거하며 일을 배웠다. 현재 이곳에는 1992년 지어진 ‘신크레센토 빌딩’이 들어서 있다. 고베시 문서관의 ‘재팬 디렉터리’에 따르면 니콜은 적어도 1883년부터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업이 번창하자 1886년 동서이자 베델의 아버지인 토머스 행콕 베델(1849~1912)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토머스 행콕도 본업이 궤도에 오르자 자신은 영국쪽 일을 맡고 큰아들 베델을 일본에 보내 분업에 나섰다. 베델은 고베의 이모부와 런던의 아버지 사이에서 업무를 익히며 사업 노하우를 체득해 갔다.이들이 했던 사업은 완호물(玩好物) 매매였다. 완호물은 쉽게 구하기 어려운 외국산 물품을 말하는데, 당시 영국인에게는 일본산 도자기나 골동품, 칠기, 장신구가 그런 것들이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 인상파 거장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일본 판화에 매료돼 그 화풍을 모방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듯 당시 영국을 비롯한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예술작품이 인기를 얻었다. 이를 반영하듯 고베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옛날 그림과 유기제품, 동전, 고의상, 갑옷 등을 파는 상점들이 많았다.베델이 사업을 하던 19세기 말은 영국이나 일본 모두 무역으로 번영을 구가하던 때였다. 그는 두 나라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에 런던에 있던 아버지를 도와 상당한 부를 모을 수 있었다. 베델은 성격이 외향적이고 활달했다. 1909년 5월 7·8일자 ‘배설공의 약전’에는 그가 “각종 유희를 좋아하고 활발용장한 품성을 가졌다”고 기록돼 있다. 고베 시절 그는 여러 가지 운동과 음악을 즐겼고 체스도 잘 뒀다. 술과 담배도 좋아했다. 고베 지역 영자지 ‘고베 크로니클’에는 그가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없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는 기사가 수차례 등장한다. 그가 적극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베델은 1901년 고베 외국인 스포츠클럽 ‘고베 레가타 앤드 어슬래틱 클럽’(KR&AC)에서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1901년 1월 30일자 ‘고베 위클리 크로니클’에는 자신을 ‘다섯 살 난 (KR&AC) 멤버’라고 밝힌 이가 “지난해 열린 레가타(여러 명이 함께 요를 젓는 요트) 대회 선수 선발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KR&AC를 비난하는 기고가 실렸다. 그러자 베델은 2월 6일자 기고를 통해 “우리 클럽에 5살짜리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고 비꼰 뒤 “나이에 비해 글을 꽤 잘 썼지만 생각은 매우 어리석다”며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가 논쟁을 피하지 않는 불같은 면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1899년은 베델에게 큰 전환점이 된 해였다. 아버지 토머스 행콕은 두 번째 동업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일본 사업을 대신 맡아줄 사람이 필요해졌다. 여기에 이모부 니콜도 세상을 떠났다. 51세였다. 그는 사업차 고베에서 영국 런던으로 배를 타고 가다가 포르투갈 해상에서 숨을 거뒀다. 평소 지병이 있었던 것 같다. 베델에게 ‘사업 스승’ 니콜의 죽음은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현재 니콜은 고베 외국인 묘지에 안장돼 있는데, 서울신문은 취재 과정에서 니콜의 묘지를 찾는 후손과 연락이 닿아 이 사실을 전달했다. 27살이던 베델은 이 때부터 독자 사업에 나섰다. 베델은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고자 자신의 첫 회사인 ‘베델 브러더스’를 세웠다. 이 회사는 이름처럼 삼형제인 베델과 허버트(1875~1939), 아서 퍼시(1877~1947)가 함께 운영했다. 이들은 각각 고베와 요코하마, 런던에 사무실을 내고 완호물을 사고 팔았다.이때 베델은 회사 설립을 위해 잠시 영국에 들렀다가 은행원 존 게일의 둘째 딸 메리 모드 게일(1873~1965)을 만났다. 이들은 이듬해인 1900년 고베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베델 부부는 1901년 외아들 허버트 오언 친키 베델(1901~1964)을 낳았다. 그는 ‘짐’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이름 가운데 ‘친키’는 일본어로 ‘新規’(새로운 것)라는 단어다. 그가 일본에서 얻은 아들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베델 브러더스‘는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아버지가 물려준 영업처를 형제들이 잘 관리했던 것 같다. 베델은 이때 번 돈으로 1901년 오사카 남쪽 사카이 지역에 러그(깔개나 무릎덮개 용도로 쓰는 직물제품) 생산공장을 차렸다. 당시 러그는 영국인 가정의 필수 품목이었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중개하는 수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자본가로 성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는 훗날 베델이 일본 사업을 포기하는 원인이 된다. 한편 베델은 일본에서 ‘프리메이슨’에 가입해 활동했다. 프리메이슨은 중세 교회 건축가 집단에서 출발했다가 기독교 보수성에 반발해 조직된 비밀결사체로 알려져 있다. 프리메이슨이 ‘그림자 정부’(세계를 은밀히 지배하고 있다는 초국가적 조직)의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도 있다. 정성화 명지대 사학과 교수와 한국학 자료 수집가 로버트 네프가 함께 쓴 ‘서양인의 조선살이,1882~1910’에는 베델이 조선에서 프리메이슨 설립 멤버로 활동했다고 전한다. 프리메이슨 서울 지부인 ‘한양롯지’ 홈페이지에도 베델을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한다. 영국에서 만난 베델의 손녀 수전 제인 블랙(62)은 “할아버지(베델)는 영국 선박업자 조지 쇼어의 소개로 일본 거주 시절 프리메이슨에 가입했다”면서 “할아버지는 (비밀주의 원칙을 지키려고) 가족에게도 프리메이슨 내부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면, 영국 출신 역사 연구가인 에이드리언 코웰(62)은 “베델은 (일본에서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1908년 영국 법원 판결에 따라 중국 상하이에서 3주간 복역하고 돌아온 뒤에 서울에서 가입했다”면서 “당시 조선에서 프리메이슨이 막 생겨나던 때였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요직을 맡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안신 배재대 복지신학과 교수는 그의 논문 ‘한국 프리메이슨의 역사와 특징’에서 “프리메이슨은 신종교 성격을 띤 엘리트주의 모임”이라면서 “다만 베델이 조선에 왔던 시기 프리메이슨은 종교적 의미보다는 친목과 자선을 위한 형제공동체적 성격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고베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런던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해동 용궁사서 눈물 터진 아비가일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해동 용궁사서 눈물 터진 아비가일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아비가일과 친구들이 바다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19일 방송된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는 파라과이 친구들이 아비가일 투어를 떠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아비가일은 현재 파라과이에서 기차를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이 기차를 타는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서 일부러 부산을 기차로 가기로 했다. 친구들은 본격적인 여행에 앞서 파라과이에서 직접 공수해온 약초를 넣어 떼레레를 제조했다. 그리고는 부산으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무엇보다 실비아는 한국 여행에 앞서 제작진에게 한 번도 보지 못한 바다를 보고 싶다고 소망을 드러낸 바 있다. 이에 실비아는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잠이 든 다른 친구들과 달리 잠시도 창 밖에서 눈을 떼지 않고 풍경을 눈에 담으려고 했다. 이후 아비가일은 첫 번째 목적지로 해동용궁사를 선택했다. 파라과이 친구들은 해동용궁사 입구에 세워진 12지신을 보고 신기해했다. 아비가일은 득남불상을 보고는 장난스럽게 베로니카에게 배를 만져보라고 했다. 실비아는 아비가일에게 득남불상의 의미를 듣고는 자신도 아들을 낳고 싶다면서 불상의 배를 만졌다. 해동용궁사에서 바다를 본 파라과이 친구들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베로니카는 카메라에 풍경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실비아 역시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잠시 말을 잊었다. 파라과이 친구들은 해동용궁사를 둘러 본 뒤 함께 소감을 나눴다. 실비아는 해동용궁사를 보며 불교의 경전 같은 것을 외우며 소원을 빌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고 했다. 무엇보다 실비아는 하는 일이 잘 되고 다시 만나기를 빌었다고 했다. 그러자 결국 실비아는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 모습에 다른 친구들 역시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비가일은 그런 실비아를 안아줬다. 이후 아비가일은 “리포터를 하면서 좋은 곳을 가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외로웠던 것 같다”면서 눈물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부부싸움은 아내보다 남편 건강에 치명적”(연구)

    “부부싸움은 아내보다 남편 건강에 치명적”(연구)

    배우자와의 의견 불일치가 아내는 물론 남편에게도 골치 아픈 일인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결혼 생활 중 겪게 되는 이런 갈등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아내보다 남편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밝혔다. 1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네바다주립대와 미시간주립대 공동 연구팀이 이성애자 부부 373쌍을 대상으로 16년간 시행한 연구에서는 남편은 결혼 생활에서 갈등을 겪으면 아내보다 두통에 더 시달리고 잠을 더 못 자며 전반적으로 건강이 더 나빠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 양육과 금전 문제, 그리고 시댁·처가와의 관계 등 부부 사이 겪게 되는 논쟁은 기존 연구에서도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와 염증을 늘리고 식욕 조절에 변화를 일으키는 등 다양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심혈관이나 면역체계 등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부부 사이 갈등이 아내와 남편 각각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연구팀은 참가 부부들이 결혼한지 1년째와 3년째, 7년째, 그리고 16년째를 대상으로 각각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이들 부부에게는 지난해 자녀 양육과 금전, 종교, 시댁·처가와의 관계 등 6가지 주제에서 1가지 이상에서 의견 불일치가 있었는지부터 가족들과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여가는 어떻게 보냈는지와 같은 질문을 줬다. 또 이들은 건강 상태가 일하는 데 방해가 되는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지, 수면 문제가 있는지, 가끔 긴장하고 불안한지, 두통이 있는지와 같이 건강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에도 답해야 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결혼 생활 중 겪는 갈등은 아내와 남편 모두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특히 남편이 아내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이번 연구에서는 결혼 생활 초기에 의견이 서로 일치한 부부들은 그렇지 않은 부부들보다 더 많은 건강 혜택을 경험했지만, 이런 보호 효과는 결혼 후기에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결혼한 사람들은 이혼하거나 사별, 또는 결혼한 적이 없는 사람들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사는 경향이 있다는 증거는 꾸준히 발견됐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결혼 생활이 건강과 웰빙에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연구를 이끈 네바다주립대의 로지 슈라우트 박사는 “결혼 생활에서 겪은 심각한 갈등은 흡연이나 음주만큼 건강에 나쁜 것”이라면서 “갈등은 결혼 생활 내내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우자가 의견 충돌 중 적대적이거나 방어적이라면 혹은 어떤 해결책도 없이 같은 주제로 계속 논쟁한다면 갈등은 특히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번 연구를 살펴본 영국 에식스대학의 베로니카 라마체 교수는 “부부 사이 의견 충돌은 신체에 장기적으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미국 콜로라도주(州) 포트콜린스에 있는 콜로라도주립대에서 열린 국제관계연구협회(IARR) 연례 회의 중에 발표됐다. 사진=tomwang / 123RF 스톡 콘텐츠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동대문구에 온 크리스티나”...다문화 주부 상대 강연

    “동대문구에 온 크리스티나”...다문화 주부 상대 강연

    서울 동대문구는 12일 동대문다사랑행복센터에서 ‘2018 동대문 다문화 아카데미’의 첫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명사특강’에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가 다문화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고 13일 밝혔다. 강연은 결혼이민자의 사회적 자립을 돕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콘팔로니에리씨가 강사로 나와 본인의 한국생활 적응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기까지의 과정, 처음 한국에 와서 문화 차이로 겪었던 에피소드 등을 특유의 유쾌한 말투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특히 결혼이민자들이 흔히 겪게 되는 일들과 그 일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 방법을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참석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특강에 참석한 한 결혼이민자는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데에 많이 힘들었는데, 오늘 비슷한 일들을 겪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위로가 되고 나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김종수 가정복지과장은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결혼이민자의 안정적인 정착과 자립을 돕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루나’ 레티샤 클레망, 프랑스에서도 ‘생짜’ 신인 여배우 뜬다

    ‘루나’ 레티샤 클레망, 프랑스에서도 ‘생짜’ 신인 여배우 뜬다

    월드컵 우승을 향해 진군하는 프랑스. 그 특별한 선수들 중에서도 차세대 에이스로 우뚝선 킬리안 음바페는 98년생으로 약관의 나이에 불과하다. 프랑스에서는 축구뿐만 아니라 영화계에도 새로운 세대의 배우들이 착착 등장하고 있다. 8월 16일로 개봉이 확정된 프랑스 로맨스 영화 ‘루나’(감독 엘자 디링거)의 주연 배우로 활약한 레티샤 클레망과 로드 파라도가 바로 그들이다. 영화 ‘루나’는 여주인공 ‘루나’가 자신과 남자친구 무리가 폭행했던 ‘알렉스’를 사랑하게 되면서 생기는 복잡한 감정을 그려낸 서스펜스 로맨스 영화로 주인공 ‘루나’ 역을 맡은 레티샤 클레망은 연기 경력은 물론이고 연기 공부조차 해본 적이 없던 배우로 화제가 됐다. 학교에서 캐스팅 되고 한 달간의 리허설 후 촬영을 마친 그녀는 “아직 인생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며 간호학 공부 또한 계속 하고 있다고 한다. 신중한 그녀와는 달리 언론과 평단에서는 “앞으로 눈 여겨 보아야 할 배우”(Le Figaro), “특별한 재능의 젊은 배우”(L’express),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배우”(Le Monde)등의 찬사를 쏟아냈고 감독 또한 레티샤의 스크린테스트 첫 날, 그녀가 영화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이 그녀를 좋아하게 될 것임을 알았다고 한다.그녀에게 상처를 입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루나를 사랑하게 되는 ‘알렉스’ 역은 ‘말로니의 두번째 이야기’로 권위 있는 세자르 영화제 신인상을 수상한 로드 파라도가 맡았다. 이미 프랑스의 차세대 연기자로 자리매김한 그는 최근 프랑스의 토니 상이라고도 불리는 최고 권위의 연극 상인 몰리에르 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대세로 인정을 받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또한 로드 캐스팅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는데 그를 캐스팅 한 건 다름 아닌 레티샤를 캐스팅 했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다. 엘자 디링거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는 어떠한 한 타입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배우”라고 높이 평가하며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한 영화 속 루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클로에’ 역의 리나 쿠드리 역시 베니스 영화제에서 오리종티 여자연기상을 수상하는 등 ‘루나’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눈부신 재능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한편 새로운 세대의 반짝이고 역동적인 에너지로 넘치는 영화 ‘루나’는 8월 16일 개봉해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면역세포의 배신...암 전이, 알고보니 면역세포 때문이라고?

    면역세포의 배신...암 전이, 알고보니 면역세포 때문이라고?

    면역세포는 인체 외부에서 들어오는 각종 세균과 스트레스 자극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을 지키는 면역세포가 ‘배신’을 하게 되면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아토피 피부염 같은 각종 자가면역질환에 걸리게 된다.그런데 국내 연구진이 면역세포의 배신 때문에 암세포가 다른 조직으로 전이되는 속도가 빨라지기도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생명과학부 대런 윌리엄스 교수와 정다운 연구교수 공동연구팀이 암세포와 면역세포, 섬유모세포 사이 신호교환에 의한 암 전이 촉진 과정을 규명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기초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클리니컬 캔서 리서� � 최신호에 실렸다. 정상세포가 여러 요인으로 변이돼 미세혈관을 만들어 무한 증식하는 암세포는 주변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변화시킨다. 이 때문에 암세포를 공격해야 하는 면역세포인 대식세포도 암 성장과 전이를 돕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까지는 암세포 전이에 면역세포가 어떻게 관여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연구팀은 암세포와 면역세포인 대식세포, 세포간 결합에 관여하는 섬유모세포 사이에서 신호교환 시스템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암세포에 의해 섬유모세포에서 분비되는 특정 신호물질이 급증하고 이 중 인터루킨-6, 과립구 대식세포-콜로니 자극인자(GM-CSF)라는 두 신호물질이 종양 촉진성 대식세포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대장암을 유발시킨 생쥐에게 인터루킨-6와 GM-CSF를 억제하는 약물을 주입하자 종양 촉진성 대식세포 숫자가 줄어들면서 암세포의 크기는 10분의 1로 줄고 전이현상도 거의 나타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윌리엄스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암세포와 면역세포간 신호 인자를 밝혀냄으로써 암전이 억제를 위한 새로운 전략을 짜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효과적인 항암 치료를 위해서는 암세포 뿐만 아니라 종양 촉진성 대식세포 억제가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동대문 ‘다문화 아카데미’ 운영

    서울 동대문구가 이달부터 오는 11월까지 21회에 걸쳐 ‘2018 다문화 아카데미’를 운영한다고 10일 밝혔다. 초기 적응을 마친 결혼이민자가 자기점검 및 미래설계를 통해 내적 역량을 강화하고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한 시간이다. 방송인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37·여·이탈리아)의 ‘명사특강-한국생활적응기’, 자기돌봄 집단미술치료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당당한 나 찾기’, 취업 집단상담 프로그램 ‘내게 맞는 일자리 탐색’, 아로마테라피에 대해 배우는 ‘건강한 천연 화장품 만들기’, 지역 명소를 탐방하는 ‘우리 지역의 역사와 문화 바로알기’, 플리마켓 등에 참여해 보는 ‘당당한 사회참여’ 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참가 대상자는 지역 내 결혼이민자로 선착순 30여명을 모집한다. (02)957-1067.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정찬주의 산중일기] 행복한 여행

    [정찬주의 산중일기] 행복한 여행

    올해는 텃밭에 아무것도 심지 못하고 말았다. 5월 초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 6월 중순 무렵에 돌아왔으니 파종이나 모종 시기를 놓쳐 버린 탓이다. 내가 산방을 비운 사이에 웃자란 잡초들은 텃밭의 주인 행세를 하듯 의기양양 무성했다. 두 팔에 풀독이 오르고 며느리밑씻개나 덩굴풀 가시에 긁혀 약을 발라 가며 잡초를 겨우 다 뽑아냈지만 소용없었다. 늦었으나 고추 농사라도 지어 볼 요량으로 농부를 만났지만 허사였다. 멀쑥한 고추를 흙과 함께 통째로 옮겨 온다고 해도 살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이 농부의 단언이었다.내 산방 뉴스는 텃밭의 봄철 농사를 실패한 것 말고 또 있다. 한 살 된 진돗개 흰둥이를 지인으로부터 입양한 사실이다. 진돗개는 적어도 태어난 지 서너 달 안팎의 강아지가 키우기 좋지만, 궁여지책이었다. 진돗개는 한 번 정한 주인을 잘 바꾸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녀석에게 정성을 들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 입양을 강행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대충이나마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긴 여행을 떠나기 닷새 전에 13살 된 검둥개 지장이가 숨을 거두었다. 산방 뒤에 봉분을 만들고 향을 피웠다. 아내는 한글로 된 ‘반야심경’을 읽어 주었다. 여행하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려고 녀석이 눈을 앞당겨 감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그렇게 주장하지만, 나는 지금도 반신반의 상태다. 녀석이 눈을 감기 전에 소나기가 오려고 해서 녀석을 안고 추녀 밑 토방으로 옮겨 주었는데 그것이 내게 위로를 줄 뿐이다. 영원한 작별 전에 가벼워진 녀석을 한 번 껴안아 주었으니까. 그런데 녀석은 내가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산방에서 여전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했다. 녀석의 그림자가 어른댔다. 특히 녀석의 빈집을 지나칠 때면 그런 느낌이 더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지인이 키우다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떠나보내는 한 살 된 흰둥이를 맞이해 지장이를 대신하게 했다. 흰둥이의 이름은 ‘행운’이라고 지었다. ‘행운’이라고 작명한 까닭은 녀석을 만난 것이 행운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아내가 끼니를 챙겨 주던 새끼 길고양이 노랑이도 산방을 다시 찾아왔다. 어쩌면 아내가 없는 산방을 날마다 찾아왔다가 돌아갔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에게 고양이 이름을 ‘행복’이라고 부르면 좋겠다고 제의했다. 그러자 아내는 곧 노랑이를 ‘행복’이라고 불렀다. 길고양이 노랑이를 ‘행복’이라고 부르는 순간 아내 역시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행복이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언행, 습관에서 생겨나는 긍정의 메아리 역시 행복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긍정의 메아리가 행복이라면 흐뭇한 여행의 추억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내와 함께 로마에서 4박5일, 중국 천안문 희생자 추모광장이 있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폴로니카 소도시에서 1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2주를 보냈는데, 그때의 인상적이었던 시간이 뭉게구름처럼 되살아나곤 하는 것이다. 로마 중심지인 코르소 거리에 조그만 괴테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아는 한국 관광객은 드물 것 같다. 더구나 나는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입장료를 할인받는 행운까지 얻었다.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개업한, 그러니까 1760년에 영업을 시작한 카페 그레코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달달한 카푸치노를 마셨다. 괴테나 안데르센이 자주 들렀던 명소라는 자부심에서인지 종업원들은 연미복을 입고 손님을 맞았으며 벽에는 오래된 명화들이 걸려 있다. 폴로니카에서 기차로 간 피렌체에서는 단테 하우스를 찾아가 그의 서사시 ‘신곡’(神曲) 원제가 ‘코메디아’(La Comedia)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신곡’ 가운데 예수 이전에 태어나 세례를 받지 못한 호메로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이 지옥에 가 있는 것 자체가 희극(코메디아)인 까닭을 비로소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빈에서 보낸 2주간 역시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를 초대한 베흐너 박사와 권숙녀 부부 집으로 갔을 때 마치 내가 국빈이라도 된 듯 태극기를 게양해 주었던 것이다. 도나우 강변에 태극기가 잠시 펄럭였던 광경이 나를 오래도록 행복하게 할 것 같다.
  • “정신질환 심각” 병가 내고 월드컵 원정응원 떠난 교사 ‘덜미’

    “정신질환 심각” 병가 내고 월드컵 원정응원 떠난 교사 ‘덜미’

    거짓말을 하고 여행을 떠난 교사가 직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아르헨티나 라팜파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 남자가 병가를 내고 몰래(?) 러시아 월드컵 원전응원을 떠난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게 됐다고 현지 언론이 6일 보도했다. 빅토리아라는 도시의 한 초등학교 체육교사인 남자는 지난달 중순 학교에 병가를 냈다.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건강한 교사였지만 정신질환이 있다는 말에 학교 측은 허락을 했다. 이 체육교사는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5일까지 유급 휴가를 얻었다. 학교 측은 적절한 치료를 받고 복귀하길 원했지만 병가를 얻은 교사는 곧바로 친구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월드컵이 열리는 러시아.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건 러시아 월드컵 원정응원을 가기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덕분에 남자는 러시아 월드컵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만끽했지만 거짓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친구들이 러시아에서 찍은 사진들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면서 해외여행 사실을 드러난 것. 익명의 제보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학교 측이 확인하는 과정에선 교사가 대담한 행동이 또 드러났다. 문제의 교사는 월드컵 취재를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아르헨티나 TV 기자들과 길거리 인터뷰까지 한 사실이 확인된 것. 학교 관계자는 "학교를 속일 작정이었다면 얼굴이라도 가리고 다녔어야 하지만 체육교사가 뻔뻔하게 인터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 교사의 해명을 듣진 못했지만 명백한 물증이 있는 만큼 징계를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면서 "파면까지 검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뉴스를 접한 네티즌들은 "황당한 거짓말을 하고 해외여행을 간 사실을 보면 진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덜컥 병가를 내준 학교도 문제다"라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진=크로니카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NBA 새크라멘토에서 뛰었던 허니컷 총격전 끝 자살

    NBA 새크라멘토에서 뛰었던 허니컷 총격전 끝 자살

    미국 대학농구 UCLA와 프로농구(NBA)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뛰었던 타일러 허니컷이 로스앤젤레스에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7세 젊은 나이였다. 지난 6일 오후 5시(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경찰청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아들이 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신고 전화를 받고 셔먼 오크스 지역의 자택으로 출동했다. 처음에는 허니컷의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출동한 경찰은 문제의 남성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이 남성은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뒤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경찰은 다음날 아침 일찍 자택에 진입,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 남성의 시신을 확인하고 그가 NBA 선수 출신인 허니컷이란 사실도 확인했다. 사건 초기 그가 경찰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LAPD는 그가 총기 오발 사고로 다친 상태였으며 경찰 총격을 받고 숨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허니컷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UCLA 선수로 뛰었다. 2학년이던 2010~11시즌 PAC-10(지금의 PAC-12)에서 올컨퍼런스 퍼스트팀에 선정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11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킹스에 지명되며 2011~12시즌 NBA 무대를 밟았지만 두 시즌 동안 24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1.2득점 1.0리바운드 0.4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리노 빅혼스에 잠깐 몸 담았다가 휴스턴 로케츠로 이적했다. 2013년에 미국을 떠나 이스라엘 리그 아이로니 네스 시오나에서 뛴 뒤 이듬해 러시아리그 BC 킴키를 거쳐 2015년 터키 리그 아나돌루 에페스를 거쳐 다시 킴키에 복귀했다. 킴키 구단은 그의 에이전트에게 사망 소식을 확인했다며 추모 글을 올렸다. 2017~18시즌은 킴키에서 17경기에 출전, 경기당 평균 9.2득점 5.4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인천항서 처음으로 붉은불개미 여왕개미 발견…검역당국 긴장

    인천항서 처음으로 붉은불개미 여왕개미 발견…검역당국 긴장

    인천항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여왕개미 1마리를 포함해 붉은불개미 수백마리가 발견됐다. 국내에서 붉은불개미 여왕개미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환경부·농촌진흥청 등 관계기관과 학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합동 조사를 펼친 결과 인천항 컨테이너 야적장 최초 발견 지점에서 여왕개미 1마리, 애벌레 16마리, 일개미 560여 마리가 추가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최초 발견지점에서 약 80m 떨어진 지점에서는 일개미 50여 마리가 나왔다. 농식품부는 “붉은불개미 유입 시기는 최초 발견지점 조사 결과를 볼 때 올해 봄인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군체 크기가 작고 번식이 가능한 수개미와 공주개미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초기 단계의 군체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사실에 비춰볼 때 확산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인근 추가 발견지 조사 결과를 봐야 더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붉은불개미가 최근 잇따라 발견된 데 이어 자체 번식이 가능한 여왕개미까지 발견되면서 정부는 전문가와 함께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검역본부는 발견지점을 정밀히 조사하고, 주변에 예찰 트랩을 11개에서 766개로 대폭 늘렸다. 농식품부는 “정부는 올해 3월부터 붉은불개미가 분포하는 국가로부터 오는 컨테이너를 들여오는 항만 12곳에 컨테이너 점검인력 122명을 투입해 예찰 활동을 강화했다”면서 “인천항에는 임시로 점검인력을 추가로 배치해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발견 지점 주변 200m에 있는 컨테이너에 대해서는 반출 전 철저히 소독하고, 야적장에 대해서 추가 정밀 조사를 벌일 예정이다. 유입 원인, 시기, 발견 지점 사이의 연계성 등을 밝혀내기 위해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한 역학조사도 한다. 이번 붉은불개미 발견은 지난해 9월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국내 최초로 발견된 이후 여섯 번째다.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나온 사례로는 네번째다. 인천항에서는 앞서 2월 수입 고목 묘목에서 일개미 1마리가 발견된 적이 있지만, 그 때는 보세창고 내부였다. 붉은불개미에 물리더라도 그 독성은 꿀벌에 물릴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일각의 우려와 달리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검역당국에 따르면 붉은불개미의 독에는 알칼로이드인 ‘솔레놉신’과 벌이 가진 펩타이드 독성분인 ‘포스포리파제’나 ‘하이알루로니다제’ 등이 포함돼 있다. 쏘이면 통증에 이어 가려움증이 나타나며 세균에 감염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체보다는 가축과 농작물 피해에 대한 우려가 더 크고, 이 때문에 미국 등 각국 당국이 신속히 검역과 방제에 나서는 실정이다. 검역본부 관계자는 “다만 독성 과민반응이 있는 사람들은 아나필락시스성 쇼크 반응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검역본부가 미국 곤충학자 저스틴 슈미트가 발표한 ‘곤충 독성지수’를 소개한 것에 따르면 붉은불개미의 독성 지수는 1.2다. 이는 꿀벌 1.0보다는 높지만 작은 말벌 2.0, 붉은수확개미 3.0, 총알개미 4.0 보다는 현저히 낮다. 농식품부는 “최근 기온이 올라가 붉은불개미의 번식·활동 여건이 좋아지고 있다”며 “외래병해충을 발견하는 즉시 신고(☎ 054-912-0616)해 달라”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베델 일대기, 영화·드라마로 더 많이 알려졌으면”

    “베델 일대기, 영화·드라마로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한국 독립운동 도운 삶에 매료 1970년대부터 英·日 돌며 연구 “목숨 바친 숭고한 희생 기억되길”“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된 1904~1909년은 양기탁과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 안창호, 고종, 이토 히로부미, 호머 허버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 등 역사책에 나오는 근현대사 인물이 대거 등장하는 스펙타클한 시기예요. 일제의 끊임없는 위협에도 이들의 이야기를 용기 있게 담아낸 대한매일신보 창업자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은 당시 우리나라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독립운동가처럼 베델의 일대기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돼 보다 많은 분들이 기억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어요.”오는 18일부터 서울신문 창간 114주년을 기념해 게재되는 특별기획 ‘베델’ 취재를 위해 만난 ‘베델 전문가’ 정진석(79)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5일 자신이 일생을 바쳐 연구한 베델의 삶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베델은 1904년 러·일전쟁 취재를 위해 영국 일간지 ‘데일리 크로니클’의 현지 특파원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일본에 우호적 기사를 강요하는 회사 방침에 반발해 해고된 뒤 그해 7월 양기탁과 대한매일신보,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했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 등 침략 행위를 비판하고 고종의 헤이그 특사 파견을 주도적으로 보도했다. 국채보상운동을 공론화하고 독립운동단체 ‘신민회’의 본거지도 제공했다. 일본인이 무단 반출한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국보 86호) 문제를 국제이슈화해 석탑 반환에 크게 기여했다. 1909년 일제의 압박에 따른 스트레스와 심장질환 등으로 세상을 떠난 베델은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정 교수는 “베델이 만든 신보는 원래 외국인들을 위한 영자지 KDN(4페이지)에 부록(2페이지)처럼 만들었던 것”이라면서 “하지만 되레 신보가 한국인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인기를 얻자 영국인인 그는 한국법이나 일본법을 적용받지 않는 치외법권을 십분 활용해 한국의 독립을 도왔다”고 설명했다. 베델의 삶에 매료된 그는 1970년대부터 영국과 일본을 찾아다니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베델 관련 자료를 모으고 연구 중이다. 베델이 태어난 영국 브리스톨과 1888~1904년 무역업을 했던 일본 고베, 요코하마 등을 돌며 사진과 기록을 찾아내 오류 투성이였던 베델 연구를 대부분 바로잡았다. 베델 한 사람을 취재하고자 런던정경대(LSE)에서 수학하기도 했다. 그는 “베델 선생은 한·영 수호조약이 체결된 1883년 이후 한국인에게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영국인”이라면서 “수십년간 국내 방송사 등에 베델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반응이 없어 안타깝다. 자신과 아무 이해관계도 없던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좀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아쿠아리움 처음 간 파라과이 친구들 “대박”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아쿠아리움 처음 간 파라과이 친구들 “대박”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파라과이 친구들이 인생 처음으로 아쿠아리움을 방문했다. 5일 방송되는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는 파라과이 친구들의 아쿠아리움 방문기가 공개된다. 이날 방송에서 파라과이 친구들은 한국에서의 첫 여행지로 아쿠아리움을 선택했다. 파라과이엔 바다도, 아쿠아리움도 없기 때문에 친구들이 꼭 가보고 싶어 했던 장소였다. 아쿠아리움에 들어서자마자 친구들의 입에서는 감탄이 끊이질 않았다. 친구들은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이런 게 아예 없잖아. 이제야 보는 거지”, “완전 대박이야”, “이거는 절대 못 잊을 거 같아”라고 말하며 아쿠아리움 방문에 매우 만족했다. 한편, 관람 도중 파라과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종들을 보자 친구들의 반응은 180도 바뀌었다. 처음 아쿠아리움에 입장했을 때는 “아름답다”, “엄청 큰 천사야”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남미 어종인 파쿠를 보자마자 “이 파쿠 좋은 거 봐봐 엄청 좋다”, “이거 한 3~5kg 정도는 돼 보이는데?”라고 말해 마치 수산시장에서 횟감을 고르는 듯 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낚시가 취미인 베로니카는 “파쿠 정말 맛있어”, “이제 이거 하나 꺼내고 싶은데”라고 말하며 군침을 삼켰다. 급기야 파쿠로 할 수 있는 요리에 대한 쿠킹클래스까지 열렸다는 후문. 파라과이 친구들의 달콤살벌한 아쿠아리움 관람기는 5일 오후 8시 30분 MBC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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