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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이건 사망] 대처 “위대한 미국영웅이 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그의 지도력과 인간미를 회고하며 애도를 표시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 중이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5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의 만찬 도중 부고를 듣고 “미국으로서는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고 클레어 부캔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레이건은 위대한 통치자였다.”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신념의 힘으로 역사에 깊은 자취를 남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1980년대 레이건과 굳건한 영·미 동맹을 구축하며 이념적·정치적 친분을 쌓았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그는 진정 위대한 아메리칸 히어로였다.”고 말했다.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은 “1987년 서독 베를린을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이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촉구한 연설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 이라고 회고했다.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레이건이 “공산주의와의 냉전에서 자유주의를 승리로 이끈 위대한 대통령이었다.”면서 “일본과 일본문화에 존경심을 가진,일본국민으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친구였다.”고 논평했다. 이도운기자 외신 dawn@seoul.co.kr˝
  • [레이건 사망] ‘강한미국’ 이끌어 냉전종식

    5일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더불어 20세기 후반 지구촌을 지배했던 ‘냉전’을 마감시킨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전임자들이 데탕트(화해) 정책으로 냉전의 해빙을 기대했으나,레이건은 여기에 스타워스 계획 등 대소 압박정책을 추가해 냉전 해체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4년 재선에 성공한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혹평하고 중거리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했으며 스타워스란 우주 미사일 방어계획도 시작했다.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정상회담은 85년 11월 하순 제네바의 호수 근처 보트하우스에서 사흘간 열렸다. 두번째 정상회담은 이듬해 10월 아이슬란드에서 개최됐다.회담은 12시간 동안 힘겹게 지속됐으나 마침내 결렬됐다.그러나 유럽 이외 지역에서 양측은 전략무기수준을 6000 탄두 및 1600 발사대로 낮추고 중거리미사일은 100 탄두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87년 12월8일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워싱턴에서 만났다.두 지도자는 군비축소 협약을 통해 지상 중거리 미사일을 폐기키로 약속함으로써 군비경쟁 해소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미국은 거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스타워스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다.소련도 이를 견제하기 위해 역시 많은 자원을 우주전쟁에 털어넣다가 경제난에 봉착,정치·군사적 통제력을 급속히 상실하면서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해체라는 결과를 맞게 된다.고르바초프는 “극우파로 간주되는 레이건은 우리를 향해 다가왔고 이곳에 그의 신망을 남겼다.”며 그의 사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레이건 사망] ‘강한미국’ 이끌어 냉전종식

    5일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더불어 20세기 후반 지구촌을 지배했던 ‘냉전’을 마감시킨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전임자들이 데탕트(화해) 정책으로 냉전의 해빙을 기대했으나,레이건은 여기에 스타워스 계획 등 대소 압박정책을 추가해 냉전 해체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4년 재선에 성공한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혹평하고 중거리 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했으며 스타워스란 우주 미사일 방어계획도 시작했다.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정상회담은 85년 11월 하순 제네바의 호수 근처 보트하우스에서 사흘간 열렸다. 두번째 정상회담은 이듬해 10월 아이슬란드에서 개최됐다.회담은 12시간 동안 힘겹게 지속됐으나 마침내 결렬됐다.그러나 유럽 이외 지역에서 양측은 전략무기수준을 6000 탄두 및 1600 발사대로 낮추고 중거리미사일은 100 탄두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87년 12월8일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워싱턴에서 만났다.두 지도자는 군비축소 협약을 통해 지상 중거리 미사일을 폐기키로 약속함으로써 군비경쟁 해소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미국은 거대한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스타워스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했다.소련도 이를 견제하기 위해 역시 많은 자원을 우주전쟁에 털어넣다가 경제난에 봉착,정치·군사적 통제력을 급속히 상실하면서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해체라는 결과를 맞게 된다.고르바초프는 “극우파로 간주되는 레이건은 우리를 향해 다가왔고 이곳에 그의 신망을 남겼다.”며 그의 사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레이건 사망] ‘세계제국’ 꿈꿨던 배우대통령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대통령에 취임한 지 69일만에 로널드 레이건이 6발의 총격을 받아 수술실로 갈 때였다.그는 병상에 누워 의사들에게 “당신들 모두가 공화당원이기를 바란다.”고 농담을 던졌다.그의 낙천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치적 감각이 비상함을 보여 준다. 1991년 자서전에서 그는 ”나의 꿈은 모두 실현됐다.”고 말했다.그러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연거푸 지냈지만 1980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만 해도 ‘3류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레이건은 1911년 일리노이주 탐피코에서 구두 세일즈맨인 존 레이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음주벽이 심한 부친과 지병으로 고생한 모친을 두는 등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그러나 종교를 강조한 모친의 영향으로 미소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늘 ‘영웅주의’에 이끌렸다.10대 때 좌우명은 ‘인생은 위대하고 달콤한 노래같은 것’이었다. 유레카 대학을 졸업한 1932년 그는 아이오와 지역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로 취직했다.당시 시카고 컵스팀의 야구경기를 ‘전신’만 보고 실황중계,능력을 인정받았다.이후 워너브러더스의 테스트를 받아 합격한 뒤 영화배우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B급 영화에만 출연제의가 왔고 맡은 역할도 침팬지를 기르는 대학 교수나,풋볼 선수 등으로 대중적 이미지를 얻지 못했다.그보다는 ‘위대한 전달자’ 라는 평판에 걸맞게 뛰어난 언변과 협상력으로 영화배우조합 활동에 주력,두차례나 조합장을 맡았다. 그는 1954년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주말 TV 시리즈물로 종업원들의 사기를 복돋우고 애로사항을 전하는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당시만해도 레이건은 뉴딜 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영웅으로 신봉하는 민주당원이었다.그러나 근로자의 과중한 세금부담과 정부규제 등에 눈을 뜨면서 점차 보수주의자로 바뀌었다. 전국적 인물로 알려진 것은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를 위한 연설을 하면서부터다.민주당의 린든 존슨 대통령에 패배했지만 그의 직설적 언변은 시사 주간지 타임이 ‘암울한 선거운동 가운데 한줄기 빛’으로 묘사할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이후 1980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미 4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를 일관한 사상적 배경은 두가지다.‘작은 정부’와 ‘반공주의’다.작은 정부는 세금감면과 정부지출 감소 및 규제완화라는 ‘레이거노믹스’로 실현됐다.취임 2년간 기록적인 실업률과 은행과 농장의 파산으로 레이거노믹스는 비판을 받았으나 1983년부터 인플레이션이 꺾이고 고용이 늘면서 2차대전 이후 최고의 팽창기를 맞았다. 반공주의는 옛 소련과의 군비경쟁과 ‘스타워스’로 이어졌고 결국 소련이 핵감축 등에 합의,냉전종식의 밑바탕이 됐다.그러나 국방비 과다지출로 재정적자가 심화돼 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가 대폭락,‘레이거노믹스’는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졌다.니카라과 좌파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 돈으로 콘트라 반군에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레이건은 정확한 사실을 모른다고 말해 행정 장악력이 취약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날 당시 역사학자들로부터는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최근에는 케네디 이후 최고의 대통령으로 재조명됐다.1994년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10년간 투병생활을 했다. mip@seoul.co.kr ■로널드 레이건 일생 -1911.2.6. 일리노이주에서 출생 -1932. 일리노이 유레카대 경제학과 졸업 -1937.영화‘사랑은 방송중’으로 데뷔 -1947. 미국영화배우협회 회장 당선 -1952.3. 낸시 데이비스와 재혼 -1962. 공화당 입당 -1966.11.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 -1976.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 낙선 -1980.11. 40대대통령 당선.81년 1월 취임 -1981.3.30. 워싱턴의 호텔에서 피격 -1984.11. 대통령 재선 -1989.1. 퇴임,캘리포니아로 귀향 -1994.11. 알츠하이머 병 앓아왔다고 발표 -2001.10.11. 가장 오래 생존한 미국 대통령이 됨 -2004.6.5. 93세 일기로 타계
  • [레이건 사망] ‘세계제국’ 꿈꿨던 배우대통령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대통령에 취임한 지 69일만에 로널드 레이건이 6발의 총격을 받아 수술실로 갈 때였다.그는 병상에 누워 의사들에게 “당신들 모두가 공화당원이기를 바란다.”고 농담을 던졌다.그의 낙천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치적 감각이 비상함을 보여 준다. 1991년 자서전에서 그는 ”나의 꿈은 모두 실현됐다.”고 말했다.그러나 출발은 화려하지 않았다.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연거푸 지냈지만 1980년 공화당 대선후보로 나섰을 때만 해도 ‘3류 배우’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레이건은 1911년 일리노이주 탐피코에서 구두 세일즈맨인 존 레이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음주벽이 심한 부친과 지병으로 고생한 모친을 두는 등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그러나 종교를 강조한 모친의 영향으로 미소와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늘 ‘영웅주의’에 이끌렸다.10대 때 좌우명은 ‘인생은 위대하고 달콤한 노래같은 것’이었다. 유레카 대학을 졸업한 1932년 그는 아이오와 지역 라디오 방송의 아나운서로 취직했다.당시 시카고 컵스팀의 야구경기를 ‘전신’만 보고 실황중계,능력을 인정받았다.이후 워너브러더스의 테스트를 받아 합격한 뒤 영화배우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B급 영화에만 출연제의가 왔고 맡은 역할도 침팬지를 기르는 대학 교수나,풋볼 선수 등으로 대중적 이미지를 얻지 못했다.그보다는 ‘위대한 전달자’ 라는 평판에 걸맞게 뛰어난 언변과 협상력으로 영화배우조합 활동에 주력,두차례나 조합장을 맡았다. 그는 1954년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주말 TV 시리즈물로 종업원들의 사기를 복돋우고 애로사항을 전하는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당시만해도 레이건은 뉴딜 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영웅으로 신봉하는 민주당원이었다.그러나 근로자의 과중한 세금부담과 정부규제 등에 눈을 뜨면서 점차 보수주의자로 바뀌었다. 전국적 인물로 알려진 것은 1964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를 위한 연설을 하면서부터다.민주당의 린든 존슨 대통령에 패배했지만 그의 직설적 언변은 시사 주간지 타임이 ‘암울한 선거운동 가운데 한줄기 빛’으로 묘사할 만큼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이후 1980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미 4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를 일관한 사상적 배경은 두가지다.‘작은 정부’와 ‘반공주의’다.작은 정부는 세금감면과 정부지출 감소 및 규제완화라는 ‘레이거노믹스’로 실현됐다.취임 2년간 기록적인 실업률과 은행과 농장의 파산으로 레이거노믹스는 비판을 받았으나 1983년부터 인플레이션이 꺾이고 고용이 늘면서 2차대전 이후 최고의 팽창기를 맞았다. 반공주의는 옛 소련과의 군비경쟁과 ‘스타워스’로 이어졌고 결국 소련이 핵감축 등에 합의,냉전종식의 밑바탕이 됐다.그러나 국방비 과다지출로 재정적자가 심화돼 1987년 10월 19일 미국 증시가 대폭락,‘레이거노믹스’는 역사의 뒷전으로 사라졌다.니카라과 좌파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판 돈으로 콘트라 반군에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레이건은 정확한 사실을 모른다고 말해 행정 장악력이 취약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통령에서 물러날 당시 역사학자들로부터는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최근에는 케네디 이후 최고의 대통령으로 재조명됐다.1994년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10년간 투병생활을 했다. mip@seoul.co.kr ■로널드 레이건 일생 -1911.2.6. 일리노이주에서 출생 -1932. 일리노이 유레카대 경제학과 졸업 -1937.영화‘사랑은 방송중’으로 데뷔 -1947. 미국영화배우협회 회장 당선 -1952.3. 낸시 데이비스와 재혼 -1962. 공화당 입당 -1966.11.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 -1976.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 낙선 -1980.11. 40대대통령 당선.81년 1월 취임 -1981.3.30. 워싱턴의 호텔에서 피격 -1984.11. 대통령 재선 -1989.1. 퇴임,캘리포니아로 귀향 -1994.11. 알츠하이머 병 앓아왔다고 발표 -2001.10.11. 가장 오래 생존한 미국 대통령이 됨 -2004.6.5. 93세 일기로 타계 ˝
  • [레이건 사망] 대처 “위대한 미국영웅이 갔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그의 지도력과 인간미를 회고하며 애도를 표시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파리를 방문 중이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5일(이하 현지시간) 저녁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의 만찬 도중 부고를 듣고 “미국으로서는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고 클레어 부캔 백악관 대변인이 전했다.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레이건은 위대한 통치자였다.”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신념의 힘으로 역사에 깊은 자취를 남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1980년대 레이건과 굳건한 영·미 동맹을 구축하며 이념적·정치적 친분을 쌓았던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성명을 통해 “그는 진정 위대한 아메리칸 히어로였다.”고 말했다. 요하네스 라우 독일 대통령은 “1987년 서독 베를린을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이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베를린 장벽을 허물라고 촉구한 연설은 절대로 잊지 못할 것” 이라고 회고했다.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레이건이 “공산주의와의 냉전에서 자유주의를 승리로 이끈 위대한 대통령이었다.”면서 “일본과 일본문화에 존경심을 가진,일본국민으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친구였다.”고 논평했다. 이도운기자 외신 dawn@seoul.co.kr
  • [레이건 사망] “로니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미망인 낸시 레이건

    5일(현지시간) 미망인이 된 낸시 레이건 여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지나칠 정도로 완벽한 보호자였다.백악관 시절(1981∼1989년)에는 지나친 ‘영향력’이 여론의 질타를 받았으나 그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사실을 고백한 뒤로는 질타가 칭송으로 변했다.두 사람은 ‘첫눈에 반한’ 사이였다.영화배우였던 아내와 이혼한 직후였던 레이건 전 대통령은 52년 낸시와 결혼했다. “백악관에 들어간 순간부터 모든 것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낸시의 회고처럼 퍼스트 레이디 시절 많은 비판을 받았다.비싼 가재도구를 사들이고 후원자인 백만장자들과 어울렸다.81년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암살 시도 이후 “로니(레이건 전 대통령의 애칭)를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는 본인의 시인처럼 점성술사의 말에 따라 대통령의 일정을 조정하기까지도 했다.그러나 병마에 시달리는 남편을 곁에서 꿋꿋이 지켜보는 모습은 국민들의 인식을 바꿨다.남편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애썼고 알츠하이머 등 난치병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간배아줄기 세포 연구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레이거노믹스’ 레이건 前 美대통령 사망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냉전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5일 오후 1시(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망인 낸시 레이건(82) 여사는 성명을 통해 “레이건 대통령이 10년간 알츠하이머와의 투병생활 끝에 사망했다.”며 “모든 이들의 기도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보좌관격인 조앤 드레이크는 그가 알츠하이머와 폐렴의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낸시 여사와 두 자녀인 로널드 2세·패티 데이비스가 임종을 지켰다고 전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장례는 오는 11일 워싱턴에서 국장으로 치러지고 그의 시신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레이건대통령 도서관’에 안치된다고 로스앤젤레스 소재 CBS2 뉴스가 전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1∼1988년 대통령을 지내면서 공화당을 보수적인 색채로 재편하고 옛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를 목표로 소련과의 경쟁에 몰두했다.세금감면 등 ‘레이거노믹스’로 미 경제를 살렸으나 국방비 과다지출로 임기중 국가 부채가 3배로 늘어나 3조달러에 달했다.이란에 무기를 밀매하고 그 돈으로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을 몰래 지원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mip@seoul.co.kr
  • ‘레이거노믹스’ 레이건 前 美대통령 사망

    ‘레이거노믹스’ 레이건 前 美대통령 사망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냉전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5일 오후 1시(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9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망인 낸시 레이건(82) 여사는 성명을 통해 “레이건 대통령이 10년간 알츠하이머와의 투병생활 끝에 사망했다.”며 “모든 이들의 기도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보좌관격인 조앤 드레이크는 그가 알츠하이머와 폐렴의 합병증으로 사망했으며 낸시 여사와 두 자녀인 로널드 2세·패티 데이비스가 임종을 지켰다고 전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장례는 오는 11일 워싱턴에서 국장으로 치러지고 그의 시신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레이건대통령 도서관’에 안치된다고 로스앤젤레스 소재 CBS2 뉴스가 전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1∼1988년 대통령을 지내면서 공화당을 보수적인 색채로 재편하고 옛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를 목표로 소련과의 경쟁에 몰두했다.세금감면 등 ‘레이거노믹스’로 미 경제를 살렸으나 국방비 과다지출로 임기중 국가 부채가 3배로 늘어나 3조달러에 달했다.이란에 무기를 밀매하고 그 돈으로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을 몰래 지원한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휘말리기도 했다. mip@seoul.co.kr
  • 부시, 그린스펀 FRB의장 재지명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8일 앨런 그린스펀(78)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차기 FRB 의장으로 재지명했다.다음달 4년의 임기가 끝나는 그린스펀 의장은 상원의 인준을 거쳐 5번째 임기의 FRB 의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부시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그린스펀에 대해 지속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린스펀 의장도 이날 “재지명돼서 기쁘다.”면서 “상원이 인준하면 FRB 의장으로서 임무를 계속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 재임기간인 1974년부터 1977년까지 대통령 산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냈다.이어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FRB 의장에 첫 지명됐고,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기간 중 2번 재지명됐다.˝
  • 뉴스플러스/파월 “北·시리아·이란 WMD 포기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23일(현지시간) 북한,시리아,이란 등이 ‘영리하게’ 리비아의 선례에 따라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하고 다른 국가들과 생산적인 협력관계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파월 장관은 이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아들인 마이클 레이건이 진행하는 한 라디오 토크쇼 프로와 인터뷰에서 리비아의 WMD 포기 선언으로 미국과 그 연합세력들이 “다소 승운을 타고 있다.”고 밝히고 북한 등이 리비아의 선례를 따른다면 상황이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피플 인 포커스]이라크 채무조정 美특사 베이커

    제임스 베이커(73) 전 미 국무장관이 다시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안의 기대를 만족시켰다.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채무탕감 특사로 임명돼 유럽을 방문 중인 그는 16일(현지시간) 독일과 프랑스로부터 상당한 이라크 채무탕감을 이끌어냈다. 베이커 전 장관은 지난 2000년 대선에서 문제가 된 플로리다주 재개표 현장을 총지휘,부시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그는 앨 고어 후보 진영이 내세운 워런 크리스토퍼 전 국무장관에 맞서 고비 때마다 공방전을 벌여 승리를 이끈 관록의 변호사다.플로리다주 대법원이 수검표 결과를 최종득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불리한 판결을 내리자 “사실상 선거법을 다시 쓴 것이나 다름없다.”며 여론에 호소,수검표 중단 허용의 단초를 제시했다. 그는 부시 전 대통령 시절인 89년부터 92년까지 국무장관을 지내 2대에 걸쳐 부시 가문을 ‘모시고’ 있는 셈이다.91년 걸프전 당시 국제사회의 지지를 모으는 데 기여,부시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현 부시 행정부에서는 내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정권인수위원장으로 활동,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또 지난 7월 그루지야 특사로 임명되는 등 부시 대통령이 필요할 때마다 쓸 수 있는 ‘히든 카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부시 집안의 텃밭인 텍사스주 출신.현재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법률회사인 ‘베이커 앤드 보츠’를 운영하고 있고,부시 전 대통령이 고문으로 있는 칼라일 그룹의 고문이다.부시의 든든한 지지기반인 석유회사들과 외국과의 협상을 진두지휘하는 등 부시가와 이해관계도 일치한다. 베이커 전 장관은 프린스턴대와 텍사스 오스틴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했다.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는 백악관 비서실장과 재무장관을 지내는 등 전형적인 공화당원이다.지난 9·11테러의 희생자 가족들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을 때 사우디아라비아를 변호하는 등 미국 언론들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바쁘고 영향력 있는 변호사’로 꼽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美유학 비행훈련중 추락사

    |로스앤젤레스 연합|우리나라 공군 소령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랭카스터 북부지역에서 비행훈련중 추락,현장에서 숨졌다.공군 52시험비행전대 소속의 김모 소령(34·공사 40기)은 4일 오전 8시20분(현지시간)께 D-1 프로펠러 항공기로 민간비행학교 활주로를 이륙했으나 오전 9시께 갑자기 추락,미국인 조종사 로널드 브래들리(59·애리조나주 레이크 헤이버슈)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캘리포니아주 컨 카운티 검시국 켈리 코원 대변인은 이날 숨진 김 소령은 ‘테스트 파일럿’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다 변을 당했으며 예비역 미 공군 대령 브래들리와 함께 탑승했다고 밝혔다. 비행학교는 사고기가 귀환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헬기를 이용해 공중수색을 실시,낮 12시30분께 사고현장을 확인했다고 공군측은 밝혔다.
  • 美서 한인이민 100년 기념공연 강남구 오케스트라

    강남구(구청장 권문용)는 5일 구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상임지휘자 서현석)가 지난 95년 강남구와 자매협약을 맺은 미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시에서 ‘한인이민 100주년 기념 초청연주회’를 가졌다고 밝혔다. 리버사이드 뮤지시펄 오디토리엄 및 남가주대(USC) 보바드 오디토리엄에서 열린 이번 연주회에서는 ‘랩소디 인 블루’,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과 함께 ‘해금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얼’ 등이 선보여 리버사이드 시민들을 매료시켰다. 리버사이드시 로널드 로버리지 시장은 “지난 100년의 한인 이민 역사와 함께한 리버사이드는 앞으로 시작될 한인역사의 새로운 100년을 기대한다.”고 축하했다. 지난 97년 자치구 최초로 창단된 강남 오케스트라는 정기연주회 외에 예술의전당 주최 교향악축제,서울 국제음악제,강남음악회,강남상설 목요무대 등을 통해 100여차례 이상 활발한 연주활동을 벌여왔다. 권문용 구청장은 “리버사이드시청 앞 광장에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세워지고 남가주대와 공동으로 강남구에 ‘구립국제교육원’이 설립되는등 계속돼 온 두 도시간의 우호증진이 이번 공연을 통해 문화영역으로도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길상기자
  • CBS드라마 ‘레이건家’ 방영취소

    |뉴욕 연합|미국 CBS방송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큰 논란을 불러온 미니시리즈 ‘레이건가(家)’를 방영하지 않기로 4일 결정했다. CBS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같은 방침을 발표하면서 대신 4시간 분량의 미니시리즈 ‘레이건가’를 유료 케이블방송인 ‘쇼 타임’에 넘겨 방영토록 했다고 밝혔다. ‘쇼 타임’은 CBS와 마찬가지로 바이어컴 소유의 방송사다.CBS는 성명에서 이번 결정이 대본 일부 내용을 둘러싼 논란에 따른 압력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완성된 필름에 대한 시사회 이후 자체 반응에 근거해 방영취소 방침이 내려졌다고 해명했다. 당초 CBS는 ‘레이건가’를 오는 16일과 18일 방송할 예정이었으나 일부 내용을 둘러싸고 레이건 지지자들과 공화당 일각에서 역사적 사실이 왜곡됐다며 강력한 항의를 제기해 결국 CBS가 두 손을 들었다.
  • 하와이주 대법원장 인하대서 명박

    한인 최초로 미국의 주(州)대법원장에 오른 로널드 문(한국이름 문대양·63) 하와이 대법원장이 13일 인하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 캘리포니아의 빚 터미네이터가 해결?/슈워제네거 주지사 당선…현지사 퇴출

    |워싱턴 백문일특파원|할리우드 액션스타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7일 당선됐다. 이날 실시된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투표 중간집계 결과 유권자들 가운데 55.9%는 데이비스 주지사의 소환에 찬성했으며 51%는 그를 대신할 차기 주지사로 슈워제네거를 골랐다. 56세의 슈워제네거는 늦어도 오는 11월15일에는 미국 내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의 경영을 맡게 된다. 슈워제네거는 1966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 이어 37년만에 할리우드 스타 출신으로는 두번째 주지사로 화려한 변신을 하게 된 반면 그레이 데이비스 현 주지사는 미국 역사상 두번째로 82년만에 퇴출되는 불명예 주지사로 기록되게 됐다. 지난해 주지사에 재선된 데이비스는 세련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급증한 재정적자 등에 따른 여론 악화를 이겨내지 못했다. 슈워제네거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와 함께 공식석상에 나와 선거 승리를 선언했다.그는 “나는 빈 손으로 왔지만 캘리포니아는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면서 “캘리포니아주민을 돕기 원한다.”고 밝혔다. 데이비스 주지사는 “오늘밤 유권자들은 이제는 다른 사람이 주지사로 일해야 한다고 결심했다.나는 그들의 판단을 수용한다.”고 패배를 시인했다. AP통신은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미국 역사상 가장 놀라운 정치적 멜로드라마 가운데 하나라고 표현했다.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유력 신문들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변화에 대한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의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슈워제네거는 선거유세 막바지에 불거진 과거의 아돌프 히틀러 지지 발언 및 성추행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135명까지 난립한 후보 가운데 가장 높은 지지율을 확보,민주당 단일후보 크루스 부스타만테 현 부지사,톰 매클린톡 주 상원의원(공화)을 압도했다. 그러나 슈워제네거가 대규모 재정적자 문제에 휩싸여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는 캘리포니아주에 빛을 되돌려주겠다고한 자신의 약속을 어떻게 실현해나갈지는 미지수다. 382억달러에 달하는 주 재정적자를 메워야 할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소환 반대쪽에 섰던 그룹들의 저항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가장 큰 약점은 그가 행정,특히 경제문제를 다룬 경험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주지사 소환을 반대해온 민주당 주도의 다양한 그룹들은 줄곧 ‘머리는 없고 근육만 있다.’고 그를 폄하해왔다. 데이비스가 1999년 주지사가 됐을 당시 주 재정적자 폭이 100억달러였으나 거의 4년여 동안 4배나 늘어났듯 캘리포니아 내 가장 큰 현안인 예산문제와 전력을 비롯한 높은 에너지 가격 등 숱한 난제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민주당이 장악한 주 의회 등의 방패역할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슈워제네거는 또 낙태지지,동성애 등에서 진보적 성향을 보여 당내 경쟁자였던 매클린톡으로 상징되는 공화당 내 보수진영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mip@ ■새 주지사 슈워제네거는 단돈 20달러를 손에 쥐고 혈혈단신 대서양을 건넜던 20대 오스트리아 청년이 할리우드 액션스타를 거쳐,35년만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지사로 입신했다.보디빌딩 세계챔피언으로 출발,세계적인 배우로 이름을 떨치고 영화제작자 겸 사업가로도 성공해 이제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한,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야심가다. 1947년 오스트리아 소도시 그라즈에서 태어난 슈워제네거는 15살 때부터 보디빌딩을 시작했다.당시 그의 우상이 헤라클레스 역할로 유명한 보디빌더 출신의 영화배우 스티브 리브스였기 때문이다.이후 미스터 유니버스 5회,미스터 올림피아 7회,미스터 월드 1회 등 총 13차례에 걸쳐 챔피언을 석권,세계 보디빌딩 역사상 최고의 ‘헤라클레스’가 됐다.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지난 68년이었다.어릴 때부터 벽돌 쌓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던 그는 비즈니스 세계에 일찍 눈을 떠 전공도 경영학을 택했다.위스콘신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부동산 사업을 벌였지만 꿈은 영화제작이었다.70년 ‘뉴욕의 헤라클레스’라는 단편영화를 시작으로 영화제작에 나선 그는 77년 보디빌딩의 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펌핑 아이언’이 평단의 호평을 받으면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82년 영화 ‘코난’으로 배우로도 빛을 보기 시작했고 84년 ‘터미네이터1’로 세계적인 스타배우 반열에 올랐다.86년 당시 백만장자 부동산사업가이기도 했던 슈워제네거는 케네디 가문의 딸과 결혼해 부와 명예를 모두 손에 거머쥐게 됐다. 그의 야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정치에 눈을 돌린 그는 공화당에 입당,90년대부터 정치적 입지를 충실히 다졌다.조지 부시 전 대통령 집권 당시,건강증진스포츠위원회 의장으로 지명돼 스포츠정책에 깊이 관여했으며 각종 스포츠대회의 후원자로도 적극 나섰다.또 몇년 전부터는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그룹을 만들어 이미지 메이킹을 해왔다. 미국 최고의 명문가 출신이자 NBC방송의 앵커인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도 그에게 큰 정치적 힘이 돼 주었다.그녀의 모친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로버트 F 케네디의 누이이고,부친인 서전트 슈라이버는 지난 72년 대통령 후보 조지 맥거번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출마했던 인물.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슈라이버의 외삼촌이다. 지난 83년 미국 시민권을 받았던 슈워제네거는 꼭 20년만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라는 오랜 꿈을 실현하게 됐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레이건 前미대통령 서한집 출간

    |워싱턴 연합|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 레이건 여사는 남편의 사신(私信) 1000여통을 책으로 엮어 출간한다고 ABC방송이 20일 보도했다.새 책은 23일 미국 전역에서 동시 발매된다. 이 방송은 낸시 레이건 여사가 “레이건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편지들을 사람들이 읽게 되면 그의 매력과 유머와 지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레이건:편지속의 삶’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플레이보이지 창립자인 휴 헤프너,딸인 패티,그리고 일반 시민 수백명에게 보낸 편지들을 한데 묶은 것이다.
  • 국제 플러스 / 美 오는 10월 유네스코 복귀

    |파리 AFP 연합|미국이 탈퇴한지 19년 만인 오는 10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에 재가입키로 결정했다고 마쓰우라 고이치로(松浦晃一郞·일본인)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9일 발표했다. 마쓰우라 총장은 유네스코는 매년 5%씩 예산이 줄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의 복귀로 이제는 허리띠를 덜 졸라매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미국은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정치적 편향과 방만한 운영을 이유로 유네스코를 탈퇴했다.
  • [씨줄날줄] ‘터미네이터’의 출마

    미국 영화 ‘터미네이터’는 먼 미래에서 온 전사(戰士)들이 펼치는 숨막히는 액션을 그리고 있다.이 영화는 1984년 1편이 제작된 뒤 1991년 ‘심판의 날’이라는 부제의 2편이 개봉됐고,올해 7월 ‘기계들의 봉기’라는 부제로 후속 3편이 제작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무려 20년 가까이 영화 마니아들의 기억 속에서 자리하면서 꾸준히 사랑을 받고있는 셈이다. 영화 터미네이터는 최첨단 특수효과를 이용한 기법으로 기억에 남는 명장면들을 많이 남겼다.그러나 역시 압권은 2편의 라스트 신이 아닌가 한다.철이 액체 상태로 펄펄 끓고있는 용광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채 사라지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연기는 퍽이나 인상적이다. 그 영웅적인 희생 장면을 열연한 슈워제네거의 인기가 여전히 식지않고 있는 모양이다.그가 8일 미국의 대표적인 민주당 가문 출신이며,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조카딸인, 부인 마리아 슈라이버의 반대를 극복하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미 언론들은 벌써부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이어 두번째 영화배우 출신 캘리포니아 주지사 탄생’을 점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소식이다. 연예인 정치인은 선거의 요체인 지명도와 인지도에서 다른 후보의 추종을 불허한다.엄청난 자산이다.지난 1992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은 작고한 코미디언 이주일씨와 탤런트 최불암,강부자씨 등 인기 연예인들을 대거 공천해 14대 총선때 대단한 바람을 일으켰다.당시 이주일 후보가 유세했던 구리시의 합동유세장은 그의 오리엉덩이 춤을 구경하려고 몰려든 유권자들로 늘 넘쳐났다.13대때 영화배우 최무룡씨가 출마했던 파주유세장도 볼 만했다.남궁원,장혁씨 등 원로 영화인들이 최씨와 함께 유세를 펼치자 이들의 얼굴을 보기위해 나온 올드팬인 ‘아줌마 부대’로 초등학교 운동장이 인사인해를 이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두 사람 모두 훌륭하게 의정생활을 수행했다. 영화 터미네이터 3편을 본 관객들은 대부분 후속 시리즈 4편이 제작될 것으로 보고있다.그러나 그 4편이 슈워제네거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으로 귀결될지,아니면 다시 현실이 아닌 필름에서 56세 액션 배우로서 노익장을 과시하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양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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