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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P모건·록펠러家 해부

    1986년에 쓰여진 책이니 케케묵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질서의 축으로 등장한 21세기에 1970~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존 F 케네디 등을 운운하고 있으니 당대를 읽는 책으로 부적격 판정을 받을 법하다. 하지만 ‘제1권력’(히로세 다카시 지음, 프로메테우스 펴냄)은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독점 자본이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정치에 개입하고, 세계 경제를 조종하는지 보여준다. 식량, 정치, 군사, 언론, 사법, 수송, 자원, 과학, 오락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본들이 펼치는 이권 동맹과 암투에 관한 총체적인 보고서이자, 그들이 여전히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토대를 지배하고 있는 데 대한 현재적 의미의 고발서이다. 대상은 은행업으로 출발한 JP 모건, 석유업으로 출발한 록펠러 두 독점자본(재벌)이다. 이들이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동안 미국에 대한 지배를 넘어 전 지구적 지배를 완성할 수 있었는지 처절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혼맥(婚脈)을 통해 정·재계 인맥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정치권력, 언론권력, 문화권력까지 서서히 장악해 나가는 과정을 방대한 자료와 사실을 묶어낸 뒤 이를 통해 자본과 역사, 권력 관계의 진실을 캐낸다. 재벌들이 부와 권력을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를 바 없다. 1983년 매출 베스트 10에 든 기업을 보면 1위 액손, 2위 GM, 3위 모빌, 4위 포드, 5위 IBM, 6위 텍사코, 7위 듀폰, 8위 인디애나 스탠더드오일, 9위 소칼, 10위 GE다. 하지만 진짜 주인을 놓고 다시 정리한 톱10은 1위 록펠러, 2위 모건, 3위 록펠러, 4위 모건-록펠러, 5위 모건, 6위 모건-록펠러, 7위 모건, 8위 록펠러, 9위 록펠러, 10위 모건이라고 책은 소개한다. 케네디 암살사건,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매카시즘도 모두 이 두 가문의 조종을 받았으며, 노벨상과 올림픽조차 두 가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평화운동가이자 손꼽히는 논픽션 작가인 다카시는 이 책을 시작으로 ‘미국의 경제 지배자들’, ‘붉은 방패’, ‘무기제국’, ‘석유제국’ 등 자본의 근원적 문제점을 분석, 비판하는 일련의 저작을 쏟아낸다. 2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부고] 한국전 참전 헤이그 전 美국무장관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알렉산더 헤이그 전 미국 국무장관이 20일 새벽(현지시간) 사망했다. 85세.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소재 존스홉킨스 병원 측은 이날 입원 치료를 받아 오던 헤이그 전 국무장관이 감염에 따른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4성 장군 출신인 헤이그는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등 3개 공화당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과 국무장관 등 고위직을 지냈다. 헤이그는 특히 레이건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으로서 1980년대 초반 한·미 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최근 기밀해제된 미 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첫 외국정상으로 미국에 초청했을 때 한국 정부가 미국의 정치적 지지 문안을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포함시키려다 헤이그의 거부로 무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헤이그는 레이건 대통령 핵심참모들과의 갈등으로 17개월 만에 국무장관직에서 물러났다. 1947년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군 생활을 시작한 헤이그는 6·25전쟁 때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참모로 직접 참전해 한국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이후 베트남전에도 참전했으며 1969년 당시 헨리 키신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군참모로 발탁되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1969~1974년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대령에서 4성 장군으로 고속 진급하며 승승장구했다. 국무장관 재직 시절 발생한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 직후 백악관 기자들 앞에서 “부통령의 귀환을 기다리면서 지금은 내가 백악관을 통제하고 있다.”고 선언한 일화는 과도한 권력집착 성향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헤이그는 198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려다 포기하고, 1988년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중도하차하며 대통령에 대한 꿈을 접었다. kmkim@seoul.co.kr
  • “전두환, 1981년 한·미정상회담서 정치적 지지 요청”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1년 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정상회담 당시 공동성명에 미 행정부의 정치적 지지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려 했으나 미국 측의 거절로 무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측의 거절로 무산 8일(현지시간) 미국 조지 워싱턴대 부설 민간연구기관인 국립안보문서보관소(NS A)가 이달 초 기밀해제로 공개한 미 국무부 공문서에 따르면 2월1일 노신영 외무장관과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 간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한국 측은 공동성명 초안에 정치적 지지 문구를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국무부 문서는 “한국이 가지고 온 공동성명 초안에는 한국의 정치적 안정을 복원하기 위해 취한 전 대통령의 다양한 조치들을 지지하는 ‘정치적’ 문장들이 포함돼 있었다.”며 이에 헤이그 장관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헤이그 장관은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초청한 것 자체가 말보다도 중요한 것이며, 미 행정부는 한국의 국내 문제에 대해서 공식적인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한국 측 요구를 거절했다고 국무부 문서는 기록하고 있다. 한편 공개된 국무부 문서에는 레이건 행정부의 집권 초 전 대통령에 대한 인물평이 자세히 나와 있어 관심을 끈다. 리처드 알렌 국가안보보좌관이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고한 그해 1월29일 문건에는 “전 대통령은 지난 12일 김일성 북한 주석을 한국으로 조건 없이 초청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그러한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식 많이 부족하지만 습득속도 빨라” 국무부 내부 브리핑 자료에서는 “유교적이고 독재적 스타일의 전 대통령은 신속한 해법을 추구하는 충동적 성향이 있으며, 지식은 많이 부족하다.”면서 하지만 “지식습득 속도가 빠르며 젊은 측근 참모들에 비해 독선적이지 않고 융통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충고에 대해서는 “전 대통령은 미국의 충고가 (공개적이지 않고) 사적으로 전달되고, 미국과의 상호협력이 전제될 때 충고를 귀담아 들을 준비가 돼 있는 인물”이라고 기록했다. kmkim@seoul.co.kr
  • G2 냉전/ 함혜리 논설위원

    1971년 4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제 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했던 미국 선수단과 기자들은 중국을 친선 방문했다. 오랜 세월 단절됐던 미국과 중국 관계를 개선시킨 ‘핑퐁외교’를 계기로 그해 7월 헨리 키신저 당시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의 극비 방중이 이뤄졌다. 다음해 2월에는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이 방중, 미국과 중국은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미국은 하나의 중국만이 존재하고,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것을 접수한다. 미국 정부는 이러한 입장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완곡한 표현으로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 측 의견을 수용한 셈이다. 미국은 1979년 1월 타이완과의 국교를 단절했지만 같은 해 4월 발효한 타이완과의 관계조정법을 통해 고위관료 교류 및 무기판매의 근거를 마련했다. 두 개의 중국을 인정하는 관계조정법에 대해 중국이 강력 항의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2년 타이완에 무기를 팔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 약속은 10년 만인 1992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깨졌다. 이어 아들 부시 대통령도 타이완에 무기판매를 결정했다. 미·중 갈등의 골은 중국의 경제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거대 세력, 즉 ‘G2(주요 2개국)’로 부상하면서 미국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도 이에 질세라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로 강력히 응수하고 있다. 중국이 높아진 경제력과 위상을 바탕으로 동북아 인접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에 대한 견제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타이완에 약 64억달러어치의 첨단무기 판매를 승인하고 이를 미 의회에 통보했다. 중국은 즉각 미국과의 모든 군사교류를 중단하고 무기판매에 관여한 미국기업을 제재하는 등 4개항의 대응조치를 발표했다. 중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 등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한 양국 간 협력에도 지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 중국산 강관 상계관세 부과, 최근의 구글 사태에 이어 무기판매 강행으로 갈등 파고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과거 미·소 냉전에 버금가는 냉전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미·중 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두 나라의 정책변화가 우리에게도 즉각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한 면밀한 대책을 마련해 둬야 할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한국 민주화에 기여” 워싱턴서 릴리 전 美대사 추모식

    한국의 6월 민주 항쟁과 중국 톈안먼 사태 등 동북아시아의 격동기에 한국과 중국에서 대사를 지낸 고(故) 제임스 릴리 전 대사 추모식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존스 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열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린 파스코에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릴리 전 대사는 동아시아의 평생 친구였고 한국의 민주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했다.”면서 “그는 국익과 원칙이라는 측면에서는 결코 주저함이 없었지만 실용주의의 중요성을 이해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현홍주 전 주미 대사, 외교통상부는 추모식장에 화환을 보내 고인과 한국의 특별한 인연을 되새겼다. 릴리 전 대사는 2004년 발간한 자서전 ‘차이나 핸즈(China Hands)’에서 주한대사 시절인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한국의 계엄령에 반대하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해 계엄령 선포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가까스로 막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중국 칭다오 태생인 릴리 전 대사는 지난해 11월12일 워싱턴에서 지병인 전립선암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81세. 워싱턴 연합뉴스
  • [부고]6월항쟁 계엄반대 릴리 前미국대사 별세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제임스 릴리 전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의 시블리메모리얼병원에서 별세했다. 81세. 가족 측은 릴리 전 대사가 전립선 암 합병증을 앓아왔다고 밝혔다. 아시아에서 오랫동안 중앙정보국(CI A) 요원으로 활동했던 릴리 전 대사는 한국과 중국의 민주화 격동기인 1986~91년 한국과 중국주재 대사를 각각 역임한 아시아통이다. 릴리 전 대사가 주한미국 대사를 지내던 1986~89년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기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등 민주화 요구가 분출되던 시기였다. 릴리 전 대사가 지난 2004년 발간한 자서전 ‘차이나 핸즈(China Ha nds)’에 따르면 1987년 6월 항쟁 당시 한국의 계엄령을 반대하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직접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전달해 계엄령 선포 직전까지 갔던 상황을 가까스로 막았다고 회고하는 대목이 있다. 미 정부 내 중국통인 그는 주중대사(1989~91)에 부임하자마자 발생한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당시 중국의 인권탄압을 강하게 비난하며 사태 해결을 위해 물밑 조율작업을 벌였다. 릴리 전 대사는 석유관련 사업을 하던 부친이 중국에서 머물던 1928년 칭다오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미 예일대를 졸업한 뒤 조지워싱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고인은 1951년 CIA에 투신했다. 이후 1978년까지 27년간 도쿄와 베이징, 타이완, 홍콩,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 등지를 무대로 활동했다. 릴리 전 대사는 이후 국무부로 자리를 옮겨 외교관 활동을 시작했으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지낸 뒤 주한·주중대사를 잇달아 역임했다. 릴리 전 대사는 지난해 여름 캐서린 스티븐스 현 주한미국대사의 미 상원 외교위 인준 청문회에 참석, 스티븐스 대사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고 한국 관련 싱크탱크 행사들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kmkim@seoul.co.kr
  • 카다피 못잖은 ‘유엔 10대 막장 발언’

    각국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유엔총회가 항상 무겁고 심각한 자리만은 아니다. 때로는 정상들의 돌출 행동으로 세계인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곳이 바로 유엔이다. 텐트를 설치하겠다고 떼를 쓰더니 회의장에서는 90분간 연설하면서 각종 돌출 행동과 기행을 연출한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올해 유엔총회의 대표적인 화제의 인물이었다. 미 외교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카다피 못지않게 화제를 뿌린 유엔의 10대 연설을 선정,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다피의 90분 연설도 1957년 키르슈나 메논 인도 대사의 연설과 비교하면 초라해진다. 유엔 최장 연설로 기록된 메논의 ‘장광설’은 무려 8시간이 넘는다. 당시 카슈미르 분쟁에 대해 ‘사자후’를 토한 메논 대사는 실신 상태에 이르자 잠시 연설을 중단한 뒤 다시 1시간을 더 연설했다. 당시 메논의 옆에서는 의사가 혈압을 재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1960년 유엔총회에 처음으로 참석해 4시간29분간 연설하며 국제사회 데뷔식을 치렀다. 당시 카스트로는 호텔에서 산 닭과 함께 생활해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니키타 흐루쇼프 러시아 서기장의 60년 ‘구두 연설’도 순위에 올랐다. 흐루쇼프는 갑자기 구두를 벗더니 단상을 두드렸고 이는 흥분한 웅변술의 고전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FP는 전했다. 남미 좌파 지도자들은 유엔 총회에서 작심한 듯 미국을 비판하곤 했다.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은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을 지목하며 “람보는 영화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일갈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006년 총회 연설에서 “악마가 어제 여기 왔었다. 아직도 유황 냄새가 난다.”며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을 조롱했다. 하지만 차베스는 올해 총회 연설에서 “유황 대신 희망의 냄새가 난다.”며 오바마 행정부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밖에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헨리 캐벗 로지 미 유엔대사 등의 연설도 순위에 올랐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안보리 핵확산 방지 결의안 채택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24일 핵무기 확산 근절에 목적을 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날 회의는 예정에 없이 갑자기 소집됐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안보리 회의를 주재,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안보리 15개 이사국들은 회의에서 핵무기 및 핵물질의 확산 방지와 핵실험 금지를 위한 유엔 회원국의 노력과 핵확산 금지조약(NPT)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결의를 익명으로 표결에 부쳤다.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안보리 결의를 통해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자신의 비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대하는 기회로 만든다는 계획인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마련한 안보리 결의안 초안에는 무기급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생산을 금지하는 새로운 국제협약이 포함됐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또 핵물질을 수출할 경우 단서 조항을 달아 해당 국가가 NPT에서 탈퇴하더라도 국제 사찰관들이 계속해서 모니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이는 지난 2003년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한 뒤 국제 사찰단원들을 추방하는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결의안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북한이나 이란 등 특정 국가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핵 확산 금지에 대한 도전들을 비난하고 안보리가 이미 채택한 제재 결의를 재확인함으로써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를 우회적으로 겨냥했다.오바마 대통령은 표결 직후 “우리가 오늘 채택한 이 역사적 결의안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약속을 소중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이것은 역사적 순간이며, 새로운 미래를 위한 신선한 출발의 순간이다.”라고 평가했다.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회의를 주재하면서 “우리는 비록 냉전시기에 핵전쟁의 악몽을 피했지만 지금 핵 확산의 위기를 맞고 있는 만큼, 새로운 전략과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 하나의 핵무기가 하나의 도시, 즉 뉴욕·모스크바·도쿄·베이징·런던·파리 중 한 곳에서만 터져도 수십만명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핵전쟁은 이길 수 없으며,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도 말했다.kmkim@seoul.co.kr
  • 미군, 수렁 속 아프간전에 ‘니미츠함’ 투입

    미군, 수렁 속 아프간전에 ‘니미츠함’ 투입

    아프간전이 점차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주요 도시에서 탈레반 세력을 몰아냈다고 하지만 점차 게릴라 전의 양상을 보이며 험준한 산악지역으로 전장이 옮겨가고 있다. 도심지에서의 테러도 심심찮게 발생해 지난 17일에는 이탈리아군 병사 6명과 민간인 10명이 사망했다. 지난 20일 공개된 보고서에서 스텐리 맥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충분한 병력이 없다면 (전쟁이)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고 말해 최근 아프간전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신중한 입장을 표명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미해군 ‘CVN-68 니미츠’함이 아프간에서 작전에 들어갔다. 미해군은 지난 18일, ‘니미츠’함 소속 제 11항모항공단(Carrier Air Wing)이 ‘엔듀어링 프리덤’(Enduring Freedom) 작전의 첫 임무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엔듀어링 프리덤 작전은 9.11사건으로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을 가리키는 공식명칭으로 현재 아프간을 주전장으로 하고 있다. 니미츠함은 지난 7월 초부터 작전 중인 ‘CVN-76 로널드 레이건’함을 교대해 수개월 간 작전을 펼칠 예정이다. 이번에 투입된 ‘니미츠함’은 니미츠급 항모의 네임쉽으로 약 85대의 항공기를 탑재하고 호위함들과 함께 항모타격그룹(CSG)를 구성해 강력한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다. 니미츠급 항모는 ‘슈퍼캐리어’라는 별명에 걸맞게 만재배수량이 약 9만t에 달하고 길이는 330m가 넘어 현존하는 군함 중 최대크기를 자랑한다. 사진 = 미해군   서울신문 나우뉴스 군사전문기자 최영진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美 애국법 논란 확산

    대테러활동 지원을 위한 ‘애국법(Patriot Act)’ 일부 조항의 효력 연장을 놓고 미국 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인권 침해 논란을 빚었던 조항에 대해 미 상·하원이 처음으로 청문회를 열기로 한 가운데 법 개정을 주장하는 시민단체 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 법무부는 지난 16일 의회에 올해로 효력이 종료되는 애국법의 3개 조항에 대해 효력을 연장하기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로널드 와이치 법무부 차관보 명의의 서한에 따르면 이들 3개 조항에는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기관의 개인 업무기록 열람권과 이동 감청 허용, 해외 테러단체와 연계되지 않은 개인 테러범인 이른바 ‘외로운 늑대(lone wolf)’ 소환 등이 포함돼 있다. 와이치 차관보는 서한에서 “의회가 인권 보호를 위해 법 개정을 제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우리 행정부는 (이들 조항의) 효율성이 손상되지 않는 조건 내에서 재검토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번 청문회 증인에는 과거 의회 정보위원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법률전문가 수전 스파울링 등이 포함돼 있다. 스파울링 등 반대론자들은 애국법이 더욱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9·11테러 이후 정보기관의 권한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무고한 시민들의 개인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들은 청문회에서 정보기관이 테러 용의자에 대해 혐의를 적용할 때 지금보다 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단 한 차례도 사용된 적이 없는 ‘외로운 늑대’ 소환 조항도 실효성 논란을 불러올 전망이다. 뉴욕타임스는 미 연방수사국이 지난 2004년부터 현재까지 이동 감청은 약 140차례, 업무기록은 약 250차례 열람을 각각 요청했다고 덧붙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애국법은 논란거리다. 루스 페인골드 상원의원은 “의회 구성원 개개인은 우리 정보당국에 미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도구를 주기 원한다.”면서 “하지만 법이 연장되기 위해서는 일부 결함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러한 법 개정 움직임이 결실을 볼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똑같은 논란을 일으켰던 해외정보감시법(FISA) 수정안 역시 인권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바 있다. FISA 수정안은 영장 없는 도청을 허용하고 불법 도청에 협조했던 통신회사에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 역시 찬성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날짜만 대면 모든 걸 기억해내는 4명[동영상]

    날짜만 대면 모든 걸 기억해내는 4명[동영상]

    사람을 만난 날짜는 물론 그의 중간 이름,자동차 번호,심지어 그들이 점심으로 먹은 메뉴까지 일일이 기억해낸다면….  이런 능력은 하늘이 내린 탤런트일까 아니면 문제 덩어리일까.엄청난 기억력을 부러워하는 일도 한 순간,그들이 얼마나 골치 아플까 동정하는 마음이 들 것이다.전문가들은 이들의 비범한 능력이 강박성 장애(OCD)와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별걸 다 관심있게 들여다 보는 미국 블로그 ‘멘탈 플로스’가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대학 ‘학습과 기억 신경학센터’가 최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네 명의 ‘슈퍼 메모리’를 22일 소개했다. ■밥 페트렐라  로스앤젤레스의 한 테니스 채널에서 프로듀서로 일하는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모든 번호를 기억해낼 수 있다.하지만 더욱 뛰어난 것은 스포츠 경기에서 일어난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다 떠올릴 수 있다는 것.예를 들어 1981년 3월30일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암살된 것은 물론,미 대학농구(NCAA) 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인디애나 대학이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에 승리를 거둔 날이란 답이 즉각 돌아온다.더욱 인상적인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미 프로축구(NFL) 피츠버그 스틸러스 얘기만 나오면 그가 본 경기 상황을 거의 슬로 비디오 보듯이 풀어 헤쳐내고 경기한 날짜와 함께 최종 점수까지 정확히 기억해낸다.        ABC 뉴스에 따르면 페트렐라는 다섯 살이 된 이후로 생일을 어디에서 누구랑 지냈는지를 딱 두 해만 제외하고는 모두 기억해 냈다.남들 같으면 흐릿할 1970년대의 기억도 그의 머리 속에선 생생한 그림이다.  그는 “내가 썼던 모든 ATM 비밀번호를 기억한다.다른 사람들 것까지.휴대전화를 2006년 9월24일 분실했는데 많은 이들은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저장된 번호를 기억해낼 수 없어 미쳐버리겠지만 난 머리 속에 있기 때문에 번호를 절대 저장하지 않아 걱정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질 프라이스  네 사람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프라이스는 자신의 재능을 “멈출 수 없고 통제할 수 없으며 완전 피곤한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그녀는 OCD에 걸린 것으로 진단받은 첫 인물이며 최근 ‘잊어버릴 수 없는 여인’이란 회고록을 냈다.14살 이후로 살아온 모든 날들을 기억할 수 있다고 한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비디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돌아다니는 것에 비유한 바 있다. “날짜 하나를 던지면 비디오 테이프를 뽑아 플레이어에 넣고 그날 벌어진 일을 보듯이 말할 수 있다.”       유대교 주일학교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는 그녀도 페트렐라와 같은 캘리포니아 출신이다.파티에서 그녀를 만난 이들은 로커비 공항 폭탄테러가 발생한 날(1988년 12월21일)부터 드라마 ‘달라스’의 마지막편 내용까지 꿰뚫고 있는 그녀의 능력에 강한 인상을 받는다.회고록에서 그녀는 비범한 기억력을 일종의 ‘폐(弊)’라고 묘사했다.왜냐하면 자신이 쫓아다닌 이로부터 거절 당했던 가슴아픈 일들까지 자기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비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브래드 윌리엄스  초강력 기억 능력을 폐라고 묘사하는 프라이스가 있다면 위스콘신주의 라디오 진행자인 브래드 윌리엄스 같은 이도 있다.자신의 능력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사람들로부터 시험받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MSNBC와의 인터뷰에서 1991년 11월7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자 그는 농구스타 매직 존슨이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임을 밝힌 날이라고 답한 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그리고 그 일주일 전에는 커다란 폭풍설이 일었다.”고 밝혔다.  페트렐라와 달리 윌리엄스는 스포츠와 관련된 내용은 잘 기억해내지 못하는 반면,대중문화의 사소한 내용들에 대해선 비범한 기억력을 보여준다.예를 들어 아카데미상 역대 수상자 이름을 줄줄이 읊을 수 있고 1990년대 퀴즈 프로그램 ‘저파디’에 출연했을 때 ‘1984년 영화들’이란 범주의 다섯 가지 문제를 모두 맞췄다.  ’학습과 기억 신경학센터’ 관계자들은 동의하지 않지만 윌리엄스는 특별한 재능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그는 “자라면서 난 남들과 다르다고 여길 만한 구석이 진짜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잊혀질 수 없는(Unforgettable)’이란 다큐영화를 제작 중인데 곧 상영관에 걸릴 예정이니 관심있는 이들은 확인해보라.   ■릭 배론  클리블랜드주 오하이오가 고향인 배론은 프라이스 얘기를 신문에서 읽은 뒤 스스로 USA 투데이를 찾아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커밍아웃했다.프라이스와 달리 배론은 자신의 비범한 재능을 활용해 온갖 기억력 콘테스트에 도전,상금을 휩쓸고 있다.그가 딴 전리품에는 레스토랑 상품권부터 스포츠 입장권,심지어 무료 바캉스 쿠폰까지 있다.배론은 11살 이후 삶의 모든 세세한 과정을 기억할 수 있으며 7살로 돌아가더라도 상당히 자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USA 투데이에 따르면 그의 누이는 그가 분명한 OCD 증후를 드러내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일을 줄 세우고 분류해낸다.자신이 지불한 계산서마저 발행한 연방준비은행 지부별로 분류하고 그 도시에 연고를 둔 스포츠팀이 무엇을 했는지에 따라 분류하더군요.”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러·그루지야 1년만에 또 전운

    러시아와 그루지야 간 전쟁 1주년을 앞두고 두 나라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무력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도 양국에 직접 대화 채널을 가동하며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통해 그루지야 문제를 논의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48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전화였지만 오바마는 통화에서 그루지야 지역 내 위기관리 체계와 국제적 모니터링을 강조했다. 조지프 바이든 미 부통령도 이날 미하일 사카시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무력충돌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 정·부대통령이 함께 그루지야 문제를 거론한 모습은 그만큼 지역 내 위기가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또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은 물론 그루지야와 동맹관계도 유지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이들의 무력충돌은 곧 외교적 딜레마를 의미할 수밖에 없다. 두 나라의 충돌 가능성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러시아는 그루지야가 남오세티야를 박격포와 수류탄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맹비난했다. 러시아는 공격이 계속된다면 응징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4일 전투대응태세를 격상했다. 그루지야 역시 러시아가 최근 자국 내로 국경선을 옮기며 도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국간 날 선 비난과 더불어 지난해 전쟁의 책임소재를 묻는 공방도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가 전쟁 첫날 오전 5시15분에 작전을 시작했다는 주장을 담은 문서를 유럽연합(EU)조사단에 제출했다. 그루지야는 “완전한 날조”라고 강력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그루지야의 시각으로 전쟁을 서술한 영문 서적도 전쟁 1주년을 맞아 3권 이상 출간할 예정이다. 하지만 서방국가들은 갈등 중재는커녕 제대로 된 감시활동도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국경지대의 유일한 감시단체인 그루지야유럽연합감시단(EUMM)은 무력충돌 가능성과 관련, 양측의 주장 모두 확인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EUMM은 감시 캠프를 남오세티야 국경 안에 설치하지도 못해 감시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또 지난해 전쟁과 관련한 보고서 작성도 늦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 모두 자국에 유리한 사실들이 보고서에 담겨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미 정책연구기관 저먼마셜펀드의 로널드 아스무스는 “서방 국가들은 전쟁 가능성이 수차례 예견되고 있지만 이를 막기 위한 어떤 일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용어 클릭 ●러시아·그루지야전쟁 2008년 8월7일 그루지야가 독립 움직임을 보이던 자치주 남오세티야에 공습을 감행했다. 하지만 곧바로 러시아가 남오세티야 내 러시아 시민권자 보호를 명분으로 개입, 5일만에 러시아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다.
  • “오바마 암살위협 하루에 30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는 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하루에 30번이나 암살위협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작가 로널드 케슬러가 새 저서 ‘대통령의 비밀경호국’(In the President’s Secret Service)에서 밝힌 사실이다. 이는 1년에 3000번의 살해위협을 받아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비해 무려 400%나 높은 수치라고 텔레그래프가 3일(현지시간) 책 내용을 인용, 보도했다. 이때문에 비밀경호국의 업무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호 암호명이 ‘변절자’인 오바마를 노린 집단에는 미 테네시주의 백인우월주의자 그룹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지난해 한 총기상을 털어 88명의 흑인을 총격 사살하고, 14명을 참수하는 잔혹극을 벌였다. 그리고 마지막 암살 대상이 미국 역사상 첫번째 흑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였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치러진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도 ‘비상 중의 비상’이었다. 소말리아에 기반을 둔 이슬람 극단주의단체인 알샤바브와 관련된 인물들이 취임식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당시 경호국은 94개 경찰과 군, 정보기관에서 차출된 4만명의 경호 요원을 동원해 ‘철통경호’를 폈다. 인근 빌딩의 직원과 호텔 투숙객들의 범죄 기록까지 샅샅이 뒤질 정도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암살정보는 기밀에 부친다. 구체적인 정황이 알려지면 모방범죄만 들끓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대부분의 위협은 신빙성이 없지만 개별사항들은 면밀히 조사한다.최근 업무 가중에 치이는 한 경호국 요원은 “필요한 인력의 반밖에 없다고 본부에 건의하지만 ‘귀머거리 본부’는 “너희는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며 우리의 요구를 번번이 좌절시킨다.”고 호소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페일린 美주지사 돈 때문에 사퇴?

    세라 페일린 미국 알래스카 주지사가 26일(현지시간) 공식 사퇴했다. 이달 초 갑작스런 사퇴 의사를 밝힌 페일린의 향후 행보에 쏠리는 대중의 관심은 그만큼 그가 미 정치계의 ‘이슈 메이커’임을 방증한다.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통령 후보로 나서며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노쇠한 이미지를 보완했던 그는 공화당의 다음 대선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인물 중 하나다. 페일린은 이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선 정말 아무런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남편 토드도 “임기응변 식으로 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계획을 함구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세간의 궁금증만 커지고 있다. 사퇴 이유 중 하나로 ‘금전적 문제’를 꼽는 시각도 상당하다.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26일 연이은 송사로 페일린의 법정비용이 50만달러(약 6억 2000만원)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또 법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한 ‘알래스카 펀드 트러스트’도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라는 비판을 받아 자금 마련에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됐다. 또 CSM는 이번 사퇴가 수입을 창출할 기회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회고록 집필과 방송 활동 등으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CN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세상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고 말한 메간 스테이플턴 대변인의 발언은 페일린의 명성에 대한 자신감이 그만큼 높음을 의미한다. 장외행보를 통해 돈도 벌고 대선후보로서 몸값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사회적네트워크사이트 트위터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겠다는 입장도 밝힌 터다.한편 페일린의 공식일정은 다음달 8일 있을 캘리포니아주 로널드 레이건 도서관에서의 연설이다. 그의 연설은 앞으로 행보를 가늠할 첫 무대가 될 전망이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김창일 아라리오 갤러리 회장 세계 200대 미술품 수집가에

    서울과 천안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의 김창일(58) 회장이 미국의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뽑은 세계 200대 미술품 수집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아트뉴스 여름호는 이같은 내용과 함께 김 회장의 주된 수집분야가 현대미술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상위 10위의 수집가로는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첼시 구단주인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 창업자의 아들인 로널드 S 로더, 프랑스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 등이 선정됐다.
  • 美 네거티브 선거운동의 진화 한눈에

    세계적인 정치 1번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네거티브 선거 운동의 출발은 시정잡배들이 던지는 막말 잔치와 다름없었다. 그랬던 것이 라디오, TV, 인터넷 시대 등을 차례로 맞이하며 세련되고 교묘하게 진화를 거듭한다. 2006년에는 상대 후보에 대한 인터넷 검색시 부정적인 뉴스가 쏟아져 나오게 하는 이른바 ‘구글 폭탄’이라는 방식이 나왔다고 한다. 미국 정치 분야의 베테랑 기자인 데이비드 마크는 ‘네거티브 전쟁’(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을 통해 미국 건국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치러졌던 수많은 선거를 사례로 제시하며 네거티브 선거 운동의 진화를 보여 준다. 각각 정치부 기자로,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국내 정치 현장을 경험했던 양원보와 박찬현이 옮겼다. 미국에서 TV 정치 광고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는 1964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인 린든 존슨(민주당)과 배리 골드워터(공화당)가 맞붙었다. 냉전 시대라 핵무기로 인한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진 시절이었다. 존슨 캠프는 정치 광고 역사상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데이지걸’이라는 광고를 내보낸다. 30초짜리 이 광고에는 들판에서 데이지 꽃을 따며 꽃잎을 세는 한 소녀가 나온다. 카메라는 소녀를 클로즈업하고 갑자기 카운트다운을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화면은 곧 핵폭발로 인한 버섯 구름으로 뒤덮이고 존슨이 등장해 지지를 호소한다. 딱 한 차례 방송된 이 광고에는 골드워터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다. 그러나 선거 기간 내내 여러 매체를 통해 회자되며 극우보수파의 지도자였던 골드워터가 핵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는 암시를 유권자들에게 각인시켰다. 네거티브가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만은 아니다.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애드먼드 팻 브라운(민주당)은 로널드 레이건(공화당)의 도전을 받는다. 브라운 캠프에서 내보낸 한 광고에는 브라운이 어린이에게 “넌 누가 에이브러햄 링컨을 쐈는지 알지?”라고 농담을 건네는 장면이 등장한다. 링컨이 배우 출신에게 암살당했다는 사실과 레이건이 배우였다는 점을 빗댄 것. 하지만 이 광고 때문에 브라운은 비열한 사람으로 비쳐지게 됐고, 결국 레이건이 이겼다. 수많은 사례를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선거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네거티브 때문에 유권자들이 선거에 흥미를 잃는 경우도 있지만 당파성이 최고조에 달한 선거에서 투표가 오히려 늘어난 경우도 있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저자는 “포지티브 캠페인은 진짜 핵심 정보를 생략할 수 있어 유권자들의 오판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네거티브 공세에 대한 후보자들의 대응도 공직을 어떤 식으로 수행할지 미리 보여 주는 척도가 된다. 저자는 “후보자들이 선명하고 뚜렷한 정체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스스로와 상대 후보간 차이점을 분명히 할 때 궁극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유권자”라고 강조한다. 물론 전제가 따라붙는다. 네거티브는 최소한의 사실(fact)이 존재해야 하며 치졸한 속임수나 사기와는 구분해야 한다. 또 네거티브 때문에 투표가 왜곡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권자 스스로 최소한의 노력을 들인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좋다는 게 선뜻 다가오지 않는다면 우리 시민단체들이 펼쳤던 2000년 16대 총선과 2004년 17대 총선에서의 낙천·낙선 운동을 떠올려 보자. 뜨거운 논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16대 때 낙천·낙선 운동은 유엔이 ‘올해의 시민운동’으로 선정해 다른 나라에 전파되기도 했다. 1만 9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마이클잭슨 여전히 說·說·說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이 끝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의혹은 계속 제기되고 있다. 잭슨 시신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는지, 생전에 안정제를 복용했는지 등에 대해 외신들은 아직도 추측성 보도를 계속 쏟아 내고 있다. ●시신 행방 여전히 오리무중… 1주뒤 공개? 잭슨의 시신이 안치된 황금색 관이 장례식 당일 로스앤젤레스(LA) 스테이플스센터를 떠난 뒤 사라져 의문이 제기됐지만 잭슨의 가족은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닫고 있다. 심지어 LA타임스는 8일(현지시간) 잭슨의 시신이 화장됐다는 추측이 제기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잭슨의 시신은 가족들의 미공개 장례식이 치러지기 전 이미 매장됐고 스테이플스센터에는 빈 관이 운구됐다는 얘기도 흘러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윌리엄 브래튼 LA 경찰청장은 “우리는 일부 비밀을 지켜야 한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LA타임스는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 “잭슨의 시신은 지난주 LA카운티 검시소에서 부검이 실시된 뒤 유족에게 인계돼 보호 중이며 시신 매장 장소와 시기는 아직 최종 결정되지 않았다.”면서 “시신의 행방은 최소한 1주일 이상 비밀에 부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신 곳곳에 바늘자국… 마취제 광? 잭슨의 생전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의혹이 끊임없이 나온다. AFP통신은 이날 “잭슨의 몸 곳곳에 바늘 자국이 있어 그가 강력한 성분의 진정제를 복용하다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CNN과 ABC뉴스도 소식통의 말을 인용, “시신을 부검한 결과 여러 군데의 정맥주사 자국과 약해진 정맥들이 발견됐다.”면서 “주사 자국은 디프리반 같은 약물을 정기적으로 주사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디프리반은 강력한 성분의 진정제인 프로포폴 제품으로 마취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잭슨의 주치의 아널드 클라인 박사는 이날 “나는 잭슨에게 약이나 그 어떤 것도 과잉 투여한 의사가 아니다. 디프리반을 어떻게 처방하겠느냐.”고 반박했다. 한편 잭슨의 장례식은 미국 전역 18개의 TV 채널에서 방송돼 총 311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다이애나 전 영국 황태자비의 장례식에 이어 미국에서 중계된 장례식 가운데 세 번째로 높은 시청률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그리피 주니어가 오른손에만 흰 장갑 낀 이유

    그리피 주니어가 오른손에만 흰 장갑 낀 이유

     타석에 들어선 그의 오른손에는 흰 장갑이 끼어져 있었지만 왼손은 맨손으로 방망이를 움켜쥐고 있었다.평소 두 손 모두에 짙푸른 색 장갑을 끼는 그였기에 팬들은 의아해 했다.  고(故)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이 거행된 7일 밤(이하 현지시간) 새피코 필드에서 열린 미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경기 첫 타석에 들어선 켄 그리피 주니어(시애틀 매리너스)가 선보인 ‘짝짝 패션’이 눈길을 끌었다고 야후! 스포츠의 블로그 ‘빅리그 스튜’의 블로거 데이비드 브라운이 전했다.  그가 타석 근처에서 방망이를 휘저어보일 때 운동장에 잭슨의 히트곡 ‘빌리 진’이 울려퍼지면서 의아했던 관중들은 그의 특이한 패션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아챘다.블로거는 1984년 잭슨이 백악관을 찾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뒤에서 거의 똑같은 포즈를 취한 바 있다.그리피 주니어는 고인의 포즈를 거의 정확히 재연해낸 것이다.  경기 전에 그리피 주니어가 타석에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이런 패션을 하겠다고 했을 때 농담인 줄로만 여겼다고 털어놨다.그리피 주니어가 “아자씨는 잘 속아넘어가잖아.”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모의 뜻과 성적은 별개였다.첫 타석에서 그는 볼넷을 골라 1루에 나갔는데 추모의 뜻으로라도 ‘문워크’하지 않았다.그리피 주니어가 만약 했더라면 지난 1963년 지미 피어살이 루 근처에서 뒷걸음질친 데 이어 첫 메이저리거가 될 뻔했다고 블로거는 덧붙였다.  두 번째 타석부터는 짙푸른 장갑을 두 손 모두에 끼고 나와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팀은 4-12로 졌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뮌헨회담은 실패작이었다

    뮌헨회담은 실패작이었다

    등산에서 흔히 쓰는 정상(Summits)이라는 단어를 외교 용어로 처음 가져다 쓴 이는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었다. 그는 1950년 2월 에든버러 연설에서 소련 최고위층과의 또 다른 회담을 제안하며 이 단어를 사용했다. 이후 언론도 자주 사용하며 외교 용어로도 대중의 의식 속에 뿌리내리게 했다. 두 적수 사이의 위험한 만남,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벌이는 순간, 명성을 죽이느냐 살리느냐를 결정하는 건곤일척의 기회, 일단 시작하면 물러서기가 거의 불가능한 여행 등 정상회담은 서사시적 특성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을 유혹하곤 한다. 그런데, 이미 원시시대부터 외교와 협상이라는 관습이 있었음에도 안전과 체면 문제로 정상회담은 기피됐다. 적어도 19세기까지는 그랬다. 정상회담은 항공기 여행, 대량 살상무기의 등장, 대중매체에 의한 가정 내 뉴스 보급 등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지며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이 같은 기준에서 데이비드 레이놀즈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차 대전 발발 직전인 1938년에 열렸던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과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의 뮌헨 회담을 현대적인 정상회담의 출발점으로 본다. 레이놀즈 교수는 ‘정상회담-세계를 바꾼 6번의 만남’(이종인 옮김, 책과함께 펴냄)에서 20세기를 움직인 6대 정상회담을 집중조명한다. 뮌헨 회담을 비롯, 2차 대전을 빨리 끝내려고 했던 1945년 미국·소련·영국의 얄타 회담, 1961년 빈 회담, 1972년 모스크바 회담, 1985년 제네바 회담 등 냉전시대에 이뤄진 미국과 소련의 세 차례 회담, 1978년 중동 평화를 위한 캠프 데이비드 회담 등이다. 저자는 정상에 올라가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했는지, 정상에서의 회담은 잘 진행됐는지, 어떻게 지상으로 내려왔는지 등을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즉, 정상회담 3단계인 준비, 협상, 실천 과정을 두루 살피고 있는 것. 실패한 정상회담의 대명사는 뮌헨 회담이다. 레이놀즈 교수는 배짱이 없는 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유화책만 제시했고, 아마추어 외교를 펼친 끝에 히틀러에게 속았다고 본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좋은 관계를 맺었다고 착각했으나 1년 뒤 2차 대전이 일어났다. 성패와 관련해 다소 엇갈리는 의견도 있지만 프랭클린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이 함께 했던 얄타회담은 히틀러 체제를 구제하고 전쟁을 1년 더 지속시켰다. 빈 회담은 만남 자체가 강조된, 준비되지 않은 정상회담으로 실패작이 됐다. 존 F 케네디와 니키타 흐루시초프는 탐색전과 이념 논쟁만 벌였다. 이후 쿠바 미사일 위기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이 뒤따랐다. 반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제네바 회담은 개인적인 화학작용과 함께 보좌관들의 팀워크를 활용, 끈기 있게 대화를 지속해 냉전 종식을 이뤄냈다. 지미 카터도 캠프 데이비드 회담에서 세부사항까지 꼼꼼하게 관리하며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합의를 끌어냈다. 저자는 정상회담에 임하는 주인공들 개개인의 품성과 건강, 회담 과정도 중요하지만 실천도 그에 못지않다고 강조한다. 회담 뒤 자국으로 돌아와 국민과 의회를 설득하지 못하면 회담은 물거품이 된다는 것. 2003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에 대한 유엔 결의안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 대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믿었지만, 미국 정부는 결국 자국 내 보수적 여론에 휘둘려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2만 9000원.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힐러리는 극락조 꽃, 미셸은 모든 꽃 다 좋아해”

    30년을 하루같이 백악관의 꽃 장식을 맡아온 ‘최고 플로리스트’ 낸시 클라크(64)가 지난 29일 은퇴했다. ABC 인터넷판은 31일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를 비롯해 ‘에어 포스 원(대통령 전용기)’ 등 미국 대통령의 주변을 꽃으로 장식해온 그녀가 30년 만에 백악관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클라크가 백악관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8년. ‘백악관 꽃집’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이후 백악관의 정식 직원이 됐다. 지난 30년 동안 그녀가 ‘모신’ 대통령은 모두 6명. 클라크는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역대 퍼스트 레이디들의 꽃 취향도 제각각이었다고 회상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부인 로즐린은 흰 동백꽃,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는 모란꽃,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극락조 꽃 등 열대성 꽃을 유난히 좋아했다는 것. 현재의 백악관 안주인 미셸은 모든 꽃을 다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잊지 못할 감동의 순간도 많았다.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남긴 이는 레이건 전 대통령. 그가 유방암 수술을 잘 견뎌낸 부인 낸시에게 바칠 꽃을 특별히 요청해 왔을 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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