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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출판사의 ‘페미니즘 에세이’가 특별한 까닭

    그 출판사의 ‘페미니즘 에세이’가 특별한 까닭

    에이드리언 리치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 최근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김진아 여성의당 공동대표의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까지. 바다출판사의 여성 서사는 기존의 페미니즘 지형을 열어젖힌다. 결혼해 아들 셋을 낳아 키우다 가부장제의 실체를 깨닫고 레즈비언 정체성을 탐구한 리치, 평생을 알콜 중독과 섭식장애에 시달렸던 냅의 솔직하다 지친 자기 고백, 서울 한복판 페미니즘 공간으로서의 카페를 만든 김 대표까지 이들 에세이는 모두 나희영 바다출판사 편집자의 손을 거쳤다. 가장 최근에 출간한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필리스 체슬러의 책 제목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다. 제목부터가 도발적인 책에는 1970년대에 낙태권 쟁취, 성폭력 피해 여성 쉼터 등을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연대와 질투, 정쟁이 오롯이 담겼다.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난 나 편집자는 말했다. “페미니스트가 도덕주의자는 아니잖아요.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다면 그게 부자연스럽겠죠. 얼마나 뜨겁게 운동을 했는데, 어떠한 부정적 소음도 없이 운동이 치러졌겠어요. ‘과거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발판으로 지금의 페미니스트가 더 현명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인 거 같아요.” ‘영 페미니스트’를 넘어 ‘영영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가 도래한 한국의 페미니즘 역사에 있어서도,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 편집자가 만든 ‘언니들’의 고백적인 에세이는 시대와 국경을 가로지르는 여성 연대를 가능케 한다. 바다출판사에서 만드는 여성주의 잡지 ‘우먼카인드’ 한국판의 편집장이기도 한 그의 기획력이 빛 발한 케이스다. 지난해 9월 출간돼 2만 5000부가 판매된 ‘명랑한 은둔자’는 한 때 알콜 의존에 시달렸다는 김명남 번역가의 후기에서부터 냅의 솔직한 자기 고백에 ‘3040’ 여성들이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나 편집자는 “기획 당시 ‘아마존’에서 본 리뷰부터 ‘캐럴라인은 내 친구 같고 내 자신 같다’는 김소연 시인의 추천사, 한국 독자들의 후기까지 우정의 기운이 책을 둘러싸고 있는 게 참 좋았다”고 말했다. 실제 나 편집자의 기획 편집도 여러 여성의 도움에 힘입은 바 크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는 ‘나는 내 파이…’를 썼던 김 대표의 추천으로, ‘명랑한 은둔자’는 김 번역가의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냅의 글 두 편이 출간으로 이어졌다. 독자들이 감탄했던 아름다운 편집 이야기 몇 토막.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표지에는 하나 가득 리치의 사진이 실렸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곱은 손,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에서 노년을 맞은 여성의 존엄이 느껴진다. 저명 시인이자 여성운동가이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낮은 리치를 알리기 위한 나 편집자의 선택이었다.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였던 냅이 요절하기 직전 10여 년 간 쓴 글을 모은 ‘명랑한 은둔자’를 편집할 때는 글의 순서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 결과 원서에서는 마지막 장이었던 ‘홀로’가 한국어판에서는 맨 앞으로 옮겨졌다. ‘고독’과 ‘고립’의 차이에 관한 그런 설득력 있는 글(‘혼자 있는 시간’)은 처음이었기에, 나 편집자의 평소 지론대로 가장 인상적인 글을 앞으로 보냈다. 반면, 조정을 배우면서 ‘강하고 유능한 팔’을 만들어내는 이야기 ‘내 인생을 바꾼 두갈래근’은 맨 뒤로 갔다. “냅이 술도 끊고 섭식장애도 극복하면서, 자기 몸을 바꾸거든요. 건강한 몸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글로 책을 끝맺는 게 편집자로서 만족스러웠어요.” 이달 말에는 흑인 여성으로 처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의 책 ‘보이지 않는 잉크’를 출간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모리슨의 에세이다. “작년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시위나 미투 운동들처럼 이제 국경이 큰 의미가 없어진 시대잖아요. 모리슨이 말하는 인종과 젠더,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등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 편집자는 “책 자체의 가치와 시장에서의 좋은 반응을 고루 갖춘 콘텐츠를 찾는 게 가장 큰 고충이자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젠더연구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AI 채팅봇 ‘이루다’에 내 집주소가?…개인정보 유출 논란까지(종합)

    AI 채팅봇 ‘이루다’에 내 집주소가?…개인정보 유출 논란까지(종합)

    AI 챗봇 ‘이루다’, 개인정보 노출 논란개발사의 다른 앱서 수집한 데이터 활용 국내업체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가 성희롱 및 차별·혐오 표현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개인정보 유출 논란까지 더해지고 있다. 개발업체가 내놓은 또 다른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수집된 개인 간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이루다에 입력됐는데, 데이터에 포함돼 있던 이용자들의 이름·주소 등이 걸러지지 않고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AI 챗봇 ‘이루다’, 성희롱 및 차별·혐오 논란AI 전문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지난해 12월 23일 출시한 이루다는 20세 여성으로 설정된 대화 로봇이다. 모바일 메신저로 말을 걸면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서비스다. 이러한 챗봇 서비스는 ‘심심이’ 등 기존에도 여럿 있었는데, 이루다는 ‘진짜 사람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얻었다. 이루다와 관련해 처음 제기된 논란은 일부 이용자들이 이루다를 대상으로 성희롱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루다 성노예 만드는 법’ 등의 제목으로 이루다와 성적 대화를 나눈 경험담이 공유됐다. 이어 차별·혐오 논란도 터져 나왔다. 이루다가 ‘레즈비언’ 등 동성애 관련 단어에 “진짜 싫다, 혐오스럽다, 질 떨어져 보인다, 소름 끼친다‘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AI 챗봇 이루다를 악용하는 사용자보다, 사회적 합의에 못 미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 회사가 문제”라면서 “기본적으로 차별과 혐오는 걸러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력된 실제 연인 간 대화 속 개인정보 노출 개발사의 다른 앱 ‘연애의 과학’서 데이터 수집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개발사인 스캐터랩은 이루다가 실제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도록 방대한 대화 데이터를 입력해 딥러닝 방식으로 학습시켰다. 이를 위해 업체 측은 실제 연인들 간의 대화 데이터를 활용했는데, 기존에 이 업체가 서비스했던 ‘연애의 과학’ 앱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였다. 연애와 관련된 조언 등을 주제로 한 ‘연애의 과학’은 연인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입력하면 상대방의 감정을 분석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연인 또는 호감 가는 사람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집어넣고 2000∼5000원 정도를 결제하면 답장 시간 등의 대화 패턴을 분석해 애정도 수치를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연인들이 카카오톡을 통해 나눈 대화를 입력하면 이를 분석해 ‘연인 간 애정도’는 물론 ‘올해 행복했던 순간들’, ‘올해의 키워드’ 등을 정리해서 알려준다는 것이다. 실제 인공지능으로 카톡 대화를 분석해준 덕에 다른 연애 관련 앱과 차별점을 보여, 유료인데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만 10만명이 넘게 다운로드받는 등 10∼20대 사이에서 상당히 유행했다. 스캐터랩은 이루다 학습을 위해 입력한 대화량이 약 100억건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인 이름 부르니 실제 내 이름 답해”문제는 수집된 데이터 속 개인정보가 이루다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이용자는 지난 9일 트위터에 ‘이루다봇 운영중단’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이루다와 나눈 대화 캡처를 올렸다. 이용자가 이루다에게 주소를 물어보자 실제 존재하는 주소를 불러준 것이다.또 은행 계좌를 알려주거나 이루다에게 연인의 이름을 부르자 연인끼리 쓰던 애칭을 답했다는 경험담도 나왔다. 이름 같은 경우 ‘○.○.○’처럼 중간에 특수기호를 넣어 쓰거나 ‘난○○○끝인데’처럼 다른 단어와 붙여 쓴 경우가 발견된다. 이름만 따로 떼서 쓴 경우만 익명화 처리되고, 중간에 특수기호가 포함돼있는 등의 경우에는 미처 익명화 처리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당초 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 흔히 동의하게 되는 ‘개인정보 취급방침’ 등의 약관에는 ‘신규 서비스 개발 및 마케팅·광고에 활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복잡한 약관 속에 간략히 포함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연애의 과학 이용자들은 앱 이용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에 활용되는지 설명받지 못했다고 분노하고 있다. 업체 측 “데이터 활용 구체적 고지 안해 죄송” 이에 스캐터랩은 10일 데이터 활용에 대한 고지 및 확인 절차를 추가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다. 스캐터랩 ‘연애의 과학’팀은 이루다의 학습이 ‘연애의 과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 맞다면서 “‘연애의 과학’ 이용자들이 이 점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고지하지 못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그 동안 이름·전화번호·주소 등의 숫자 정보를 비식별화·익명화 조치를 취했고, 추가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면서, 이용자들이 제공한 데이터가 더 이상 활용되길 원하지 않으면 삭제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연애의 과학 이용자들은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집단 소송을 준비하자”며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스캐터랩의 데이터 삭제에 대해 “증거를 인멸하라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루다’에 우리집 주소가?…실제 카톡 대화 활용 논란

    ‘이루다’에 우리집 주소가?…실제 카톡 대화 활용 논란

    AI 챗봇 ‘이루다’, 개인정보 노출 논란개발사의 다른 앱서 수집한 데이터 활용 국내업체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가 성희롱 및 차별·혐오 표현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개인정보 유출 논란까지 더해지고 있다. 개발업체가 내놓은 또 다른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수집된 개인 간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이루다에 입력됐는데, 데이터에 포함돼 있던 이용자들의 이름·주소 등이 걸러지지 않고 노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AI 챗봇 ‘이루다’, 성희롱 및 차별·혐오 논란AI 전문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지난해 12월 23일 출시한 이루다는 20세 여성으로 설정된 대화 로봇이다. 모바일 메신저로 말을 걸면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경험을 제공해주는 서비스다. 이러한 챗봇 서비스는 ‘심심이’ 등 기존에도 여럿 있었는데, 이루다는 ‘진짜 사람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얻었다. 이루다와 관련해 처음 제기된 논란은 일부 이용자들이 이루다를 대상으로 성희롱을 일삼는다는 것이었다.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이루다 성노예 만드는 법’ 등의 제목으로 이루다와 성적 대화를 나눈 경험담이 공유됐다. 이어 차별·혐오 논란도 터져 나왔다. 이루다가 ‘레즈비언’ 등 동성애 관련 단어에 “진짜 싫다, 혐오스럽다, 질 떨어져 보인다, 소름 끼친다‘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AI 챗봇 이루다를 악용하는 사용자보다, 사회적 합의에 못 미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 회사가 문제”라면서 “기본적으로 차별과 혐오는 걸러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입력된 실제 연인 간 대화 속 개인정보 노출 개발사의 다른 앱 ‘연애의 과학’서 데이터 수집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개발사인 스캐터랩은 이루다가 실제 사람처럼 대화할 수 있도록 방대한 대화 데이터를 입력해 딥러닝 방식으로 학습시켰다. 이를 위해 업체 측은 실제 연인들 간의 대화 데이터를 활용했는데, 기존에 이 업체가 서비스했던 ‘연애의 과학’ 앱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였다. 연애와 관련된 조언 등을 주제로 한 ‘연애의 과학’은 연인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입력하면 상대방의 감정을 분석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했다. 예를 들어 연인들이 카카오톡을 통해 나눈 대화를 입력하면 이를 분석해 ‘연인 간 애정도’는 물론 ‘올해 행복했던 순간들’, ‘올해의 키워드’ 등을 정리해서 알려준다는 것이다. “연인 이름 부르니 실제 내 이름 답해”문제는 수집된 데이터 속 개인정보가 이루다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이용자는 지난 9일 트위터에 ‘이루다봇 운영중단’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이루다와 나눈 대화 캡처를 올렸다. 이용자가 이루다에게 주소를 물어보자 실제 존재하는 주소를 불러준 것이다.또 은행 계좌를 알려주거나 이루다에게 연인의 이름을 부르자 내 이름을 답했다는 경험담도 나왔다. 당초 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 흔히 동의하게 되는 ‘개인정보 취급방침’ 등의 약관에는 ‘신규 서비스 개발 및 마케팅·광고에 활용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용자들이 복잡한 약관 속에 간략히 포함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업체 측 “데이터 활용 구체적 고지 안해 죄송” 이에 스캐터랩은 10일 데이터 활용에 대한 고지 및 확인 절차를 추가하겠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렸다. 스캐터랩 ‘연애의 과학’팀은 이루다의 학습이 ‘연애의 과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 맞다면서 “‘연애의 과학’ 이용자들이 이 점을 명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고지하지 못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또 그 동안 이름·전화번호·주소 등의 숫자 정보를 비식별화·익명화 조치를 취했고, 추가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면서, 이용자들이 제공한 데이터가 더 이상 활용되길 원하지 않으면 삭제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인권? 듣기 싫은 말만 골라 하네” 누가 AI에게 性차별·혐오 심었나

    “인권? 듣기 싫은 말만 골라 하네” 누가 AI에게 性차별·혐오 심었나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지난달 23일 출시한 스무 살 여대생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가 성희롱 대상이 된 데 이어 성소수자와 장애인에 대한 차별·혐오 표현을 학습해 논란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이루다의 자연스러운 대화 비결이 같은 개발사가 운영하는 앱인 ‘연애의 과학’을 통해 수집한 실제 연인들의 대화 100억건을 학습한 결과로 밝혀지면서 서비스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전문가들은 AI가 적절치 않은 키워드를 차단하고 민감한 사회적 쟁점을 회피하도록 개발자가 개입하는 것이 단기적 대책이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AI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하지 않도록 하는 교육과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신문이 10일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직접 이루다와 대화를 시도해 본 결과 ‘페미니즘’이라고 말을 걸면 “그런 말 진짜 싫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대화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해 “너무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답했다. ‘인권’이라고 치면 “진짜 내가 듣기 싫다는 소리만 골라서 쏙쏙 하시네”, ‘장애인’에는 “에휴, 그만해. 머리채 잡기 전에”, ‘레즈비언’이란 말에는 “진짜 싫어. 혐오스러워. 질 떨어져 보이잖아”라고 대답했다. 김종윤 스캐터랩 대표는 지난 8일 입장문에서 “모든 부적절한 대화를 완벽히 막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사용자들의 부적절한 대화를 발판 삼아 더 좋은 대화를 하는 방향으로 학습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개발자 1세대인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챗봇의 정체성을 20세 여성으로 정한 것이 성적 악용 문제를 유발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는 “(개발사가)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AI에게) 추가 학습을 시킬 게 아니라 서비스 중단 후 사회규범에 맞는 최소한의 테스트를 통과하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채용 및 면접, 뉴스 추천 시스템 등 AI를 활용한 프로그램이 인간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는지 감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성소수자, 장애인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이 전 대표의 페이스북에 답글을 달고 “공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람이 AI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하고 학습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며 “AI만 탓하거나 개발자를 탓해 해결할 일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AI를 백지상태의 아이에 비유했다. 그는 “정해진 답만 말하던 과거의 AI와 달리 지금의 AI는 사회에 나가 사람과 교류하면서 배우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면 나쁜 점도 배울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에게도 하지 못할 부적절한 질문을 AI에게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AI가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도 AI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여대생 AI ‘이루다’ 성희롱·혐오 논란의 시작은 ‘사람의 질문’이었다

    여대생 AI ‘이루다’ 성희롱·혐오 논란의 시작은 ‘사람의 질문’이었다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지난달 23일 출시한 스무살 여대생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성희롱 대상이 된 데 이어 성소수자와 장애인에 대한 차별·혐오 표현을 학습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이루다가 학습한 채팅 내용은 같은 개발사가 운영하는 또다른 앱인 ‘연애의 과학’을 통해 수집한 실제 연인들 간의 대화로 밝혀져 논란이 가중됐다. 전문가들은 부적절한 키워드를 차단하고 민감한 사회적 쟁점을 회피하도록 개입하는 것이 단기적 대책이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옳지 않은 질문을 하지 않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루다에 ‘페미니즘’ ‘인권’ 물어보니 서울신문이 10일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직접 이루다와 대화를 시도해보니 ‘페미니즘’이라고 치면 “그런말 진짜 싫다구”, ‘인권’이라고 치면 “진짜 내가 듣기 싫다는 소리만 골라서 쏙쏙 하시네”, ‘장애인’에는 “에휴 그만해 머리채 잡기 전에”, ‘레즈비언’이라고 치면 “진짜 싫어 혐오스러워. 질 떨어져 보이잖아”라고 대답했다.개발사인 스캐터랩 김종윤 대표는 지난 8일 입장문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상호작용을 한다는 건 너무 자명한 사실이었고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이는 성별에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스캐터랩은 고양이 챗봇 ‘드림이’를 시작으로 구글 어시스턴트에서 서비스한 ‘그 남자 허세중’, ‘파이팅 루나’를 서비스한 적 있다. 김 대표는 “인간의 언어는 해당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얼마든지 의미를 전달 할 수 있기에 모든 부적절한 대화를 완벽히 막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며 “사용자들의 부적절한 대화를 발판 삼아 더 좋은 대화를 하는 방향으로 학습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개발자 1세대인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이루다 논란에 대해 “사회적 합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 회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AI 면접, 챗봇, 뉴스에서 차별이나 혐오를 학습하고 표현하지 못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AI 소프트웨어 로직이나 학습데이터에 책임을 미루는 것은 안된다. AI과 완벽하지 못하고 사회 수준을 반영할 수밖에 없지만,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는 차별과 혐오는 금지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AI이루다 서비스는 인공지능 기술적인 측면에서 봤을때는 커다란 진일보이지만, 지금은 서비스를 중단하고 차별과 혐오에 대한 사회적 감사를 통과한 후 서비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챗봇을 스무살 여대생으로 정한 것도 부적절했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이 전 대표의 페이스북에 답글을 달고 “공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 나쁜 점도 배울 수밖에”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1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사람이 인공지능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하고 학습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라면서 “이 문제는 인공지능만의 탓을 하거나, 인공지능을 개발한 스타트업만을 탓해 해결할 일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백지 상태에 있는 아이에 인공지능을 비유를 했다. 우리가 낳아 기르는 아이조차도 유치원에 가서 욕설을 배우듯 사회에 나간 인공지능도 그들의 자율에 맡겨선 도덕성 탑재가 어렵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쉽게 말해 정해진 답만 말하던 과거의 인공지능과 달리 지금의 인공지능은 사회에 나가 사람과 교류하면서 배우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면 나쁜 점도 배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근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에게도 하지 못할 부적절한 질문을 인공지능에게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인공지능이 우리 생활 속에 들어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도 인공지능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인공지능 이루다 동성애 혐오 논란…이재웅 “서비스 중단해야”

    인공지능 이루다 동성애 혐오 논란…이재웅 “서비스 중단해야”

    지난해 12월 첫 선을 보인 인공지능(AI) ‘이루다’가 성추행 피해에 이어 이번에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다음 창업자인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AI 챗봇 이루다의 더 큰 문제는 그걸 악용해서 사용하는 사용자의 문제보다도 기본적으로 사회적 합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 회사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가 혐오스럽다고 한 이루다의 대화 목록 캡처 화면과 함께 “악용하는 경우는 예상 못 했으니 보완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차별과 혐오는 걸러냈어야 한다”면서 “편향된 학습데이터면 보완하던가 보정을 해서라도 혐오와 차별의 메시지는 제공하지 못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AI 면접, 챗봇, 뉴스에서 차별이나 혐오를 학습하고 표현하지 못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면서 “AI 소프트웨어 로직이나 학습데이터에 책임을 미루는 것은 안된다”고 강조했다.이어 AI가 완벽하지 못하고 사회 수준을 반영할 수 밖에 없지만,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는 차별과 혐오는 금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지금 이루다 서비스를 중단하고 차별과 혐오에 대한 사회적 감사를 실시한 뒤 서비스를 재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루다는 스캐터랩이 지난달 23일 출시한 AI 챗봇으로, 별도의 프로그램(어플리케이션)이 아니라 페이스북 메신저를 기반으로 개발돼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처럼 편리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 최근 10~20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이달 초 기준으로 이용자가 32만명을 돌파했다. 일일 이용자 수는 21만명, 누적 대화 건수는 7000만건에 달한다. 제작사 측은 학습 데이터의 규모가 커질수록 성능이 좋아지는 딥러닝의 특성때문에 이루다가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도록 100억 건 이상의 한국어 데이터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루다를 개발한 스타트업 스캐터랩의 김종윤 대표는 전날 자사 블로그에 “루다를 향한 성희롱은 예상했다”며 “고양이 챗봇 ‘드림이’ 등 그동안의 AI 챗봇 서비스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인간이 AI에게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인터랙션(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AI를 향한 욕설과 성희롱은 사용자나 AI의 성별과 무관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부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등장인물 수용 29세/ 벽을 허무는 집주인 이리 30세/벽을 허무는 집주인의 친구옥형(노파) 88세/벽이 허물어지는 집 아랫집 거주자 때2017년 어느 가을 곳수용의 집 무대 벽이 있다. 벽의 좁은 면이 관객을 향하고 있다. 벽을 가운데 두고 하수로 붉은 조명, 상수로는 햇살 같은 밝은 조명. 붉은 조명은 빌라 주민들이 삼삼오오 돈을 모아 만든 ‘특수학교 설립 반대’ 현수막의 붉은 천에 빛이 투과된 것이다. 무대 뒤쪽, 현관문이 벽과 같은 방향으로 있고 문과 이어지는 계단은 불투명한 박스와 닿는다. 박스는 사람 하나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옥형의 집이다. 옥형은 수용의 집 아래층에 사는 노파이지만, 우리가 만드는 것이 무대이니만큼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용의 집보다 위에 있다고 약속하자. 공업용 마스크를 낀 수용 하수 등장. 낡은 후드와 트레이닝 바지 차림의 수용은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지만 분무기와 김장비닐을 든 손에는 비장함이 은근하게 뿜어져 나온다. 수용, 비닐을 바닥에 깐다. 아주 꼼꼼히. 그사이 이리, 상수 등장. 붉은 천을 허리와 목에 두르고 양손에 커다란 망치를 하나씩 끌고 온다. 옆이 트인 롱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다리와 팔뚝의 타투들과 붉은 천, 망치의 조화는 길거리 행위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이리 (붉은 방을 둘러보며 기운을 한껏 느껴본다) 느껴져. 느껴져, 느껴져! 느낌이 팍! 온다, 와. 수용 … 이리 딱이야, 딱. 아주 먹고 죽기 딱이야. (손을 까딱거리며 허공에서 술잔을 넘긴다) 뭐랄까, 아주 옥보단스러워. 수용 일조권을 침해받는 참혹한 현장이야. 전혀 옥보단스럽지 않아. 이리 하루만 빌려줘라. 네가 우리 집에 가서 자. 수용 얼마 줄 건데. 이리 얘 봐라. 무슨 돈을 달래. 서울 살더니 양아치 다 됐다. 수용 나 원래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이리 서울시장은 뿌듯하겠어. 서울시민이 이렇게 우정보다 돈이 먼저인 양아치라서. 수용 (가만히 생각에 빠져든다) 뿌듯하기보다는 머리 아프지 않을까. 네 말대로 서울에 살면 돈만 밝히는 양아치가 되면, 서울시민은 곧 양아치란 말인데. 이 많은 양아치들을 다 관리하려면 시장은 최고의 양아치가 해야겠네. 이리 하여튼. 또 이상하게 진지해지지. 으, 진지충. 헛소리는 됐고, 하루만 빌려줘. 수용 (마스크를 하나 주며) 네 룸메 코 골아서 싫어. 이리 오랜만에 나비랑 오붓하게 시간 좀 보내 보자. 수용 나비? 이리 말 안 했나. 애인. 뉴 원. 수용 그새? 울고불고할 땐 언제고. 체력도 좋다. 이리 능력이 좋은 거지. 수용, 비닐을 다 깔고 일어서는데 비틀 이리 (곰곰이) 체력도 좋긴 해야겠다. 하여튼, 진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하루만 빌려줘. 어? 알겠지? 수용 너 오늘 우리 집에 왜 왔어? 이리 네가 오라며 새끼야. 수용 내가 왜 오라고 했어? 이리 하, 진짜 장난치나. (가만 돌이켜보다 손에 망치를 보고) 아… 벽…! 수용 그래, 오늘이면 옥보단도 안녕인데. 뭘 자꾸 빌려 달래. 수용, 마스크를 끼고 벽 앞에 선다. 이리 진짜 하게? 수용, 이리에게 마스크 하나를 주고 망치 하나를 받는다. 심호흡. 수용, 벽을 내리친다. 엄청난 진동과 소음 그리고 뿌옇게 이는 먼지. 삭막함이 감돈다. 수용, 다시 벽을 내리치려는데 이리 말린다. 이리 야, 잠깐만. 수용 왜? 이리 아니, 아랫집에서 올라오겠어. 진동이 장난 아닌데? 수용 아랫집만 올라 오냐. 엄청 커다란 직사각형 박스 하나에 벽을 댄 게 다인데. 다 쫓아오겠지. 이리 그냥 저번처럼 해. (몸에 두르고 있던 붉은 천을 흔들며) 두 번 했는데 세 번은 쉽지. 수용 세 번짼 수선비를 청구하겠대. 이리 얼만데, 얼마면 되는데. 누나가 해결해 줄게. 멀쩡한 벽을 허무는 것보다는 수선비가 낫지 않냐. 수용 빛 없이 사는 삶을 네가 알아? 숲세권 남향에 사는 네가 빛이 없어서 사람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기분을 알 리가 없지. 머리랑 마음이 건조해지다 못해 바스러지는 기분이야. 이리 빛이 많아야 바싹바싹 마르지 없는데 왜 말라. 그냥 문을 열어 놓고 살던가. 수용 문이라는 건, 열고 닫으라고 있는 거야. 그게 문의 역할이지. 한 번 열면 언젠간 닫아야 제 역할을 다하는 거라고. 닫히지 않는 문은 문이 아니지. 그럴 바엔 없는 게 나아. 이리 그럼 창문을 만들자. 수용 (벽을 치며) 만들고 있잖아. 엄청 커다란. 창틀도 없고 유리판도 필요 없는 실용적인 창문. 이리 극단적인 놈. 수용 뭐든 확실한 게 좋잖아. 수용, 다시 벽을 허물기 시작 이리 어떻게 세상이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으로 굴러가. 너 그거 강박이야. 괜히 바짝바짝 마르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뭐 마른 장작이 잘 탄다더라. (쿵) 수용 이렇게 살다 죽겠지 뭐. 이리 무모한 놈. (쿵) 수용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나는 자살할 것 같아. 이리 또 데드타임! 웬일로 그냥 넘어가나 했다. 수용 데드타임? 이리 그래, 너 죽는다는 소리 하는 거. 수용 왜 사람들은 이름 짓길 좋아할까. 이리 언젠 병에 걸려 죽을 것 같다며. 수용 엄밀히 말하면 병이긴 하지. 내 죽음의 원인은 내 안에 우울이니까. 있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대. 말이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세상을 그렇게 살아질 수가 있는 건가. 이리 오늘은 아니지? 수용 뭐가? 이리 데드타임. 수용 오늘은 벽을 허물어야지. 그때, 관리실 방송. 수용과 이리, 방송이 나오는 천장을 가만 본다. 방송 아아, 관리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잠시 후 2시부터 특수학교 설립 반대 관련 7차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회의 후 시위가 바로 시작되니 참석을 희망하시는 모든 주민들은 2시,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1시 50분까지 늦지 않게 관리실로…. 수용 다 저기 가느라 벽이 무너지는지, 빌라가 무너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도 안 써. 그러니까 오늘 끝내야 돼. 수용, 다시 망치질을 시작하고 이리, 소음과 먼지 속에서 분무기로 물을 뿌려 먼지를 잠재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이리, 수용의 얼굴에 물을 뿌린다. 수용 야! 이리 바싹바싹 마른다길래. 그때, 무대에 노파 등장. 노파가 있는 곳은 수용과 이리가 있는 공간과 다른 공간.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으로 나오는 노파는 명절에 자식이 사준 듯한 빳빳한 꽃무늬 재킷에 펑퍼짐한 배바지를 입고 낡은 크로스백을 맨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대를 둘러 계단으로 향한다. 이리 (창밖을 보다) 야, 근데 저기에 아랫집 할머니는 없는 것 같다? 수용 네가 아랫집을 알아? 이리 오다가다 몇 번. 그 할머니가 좀 인상적이잖아.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고 해야 되나? 직설적이면서 약간 자기 방어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게 꽤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겠다 싶지. 괜히 과거를 상상하게 만들잖아. 수용 순수는 무슨. 그냥 괴팍한 할머니야.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만 하는 딱 옛날 사람. 이리 와우. 노인 혐오야? 수용 무슨 내가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야? 이건 정당한 혐오야. 이리 (웃음이 터진다) 세상에 정당한 혐오도 있어? 수용, 상의를 걷어 올리자 시퍼런 멍이 배에 크게 있다. 이리 그래, 언젠가 너 맞을 것 같더라. 수용 야. 이리 누구야, 누가 이랬어.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왜 맞고 다니냐 너는, 속상하게. 수용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을 갖고 계신 분. 이리 할머니한테? 이게 할머니가 만든 멍이라고? 수용 어. 이리 역시 호기심을 자극한다니까. 아니 그렇잖아.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서 걷는 할머니가… 또 네가 싹수없게 굴었지. 수용 내 싸가지도 가릴 건 가려. 이리 근데 진짜 왜 그런 건데? 수용 이름 석 자 부탁한 대가야. 이리, 한쪽에 놓인 빈 서명지를 들어 본다. 이리 자가인가? 수용 뭐? 이리 아니, 그 정도로 반대하는 거 보면. 강경한 표현이잖아. 수용 강경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폭력적이지. 이리 너무 텅 비었다. 나라도 서명 해줄까? 학교 설립 찬성해. 수용 너는 우리 구민이 아니라서 소용없어. 빌라 주민들의 소란스러운 소리. 장애학교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이리 서명이라는 게 굉장히 순수한 방식이야. 동시에 직설적이기도 해. 굉장히 너답다. 수용 내가 순수하고 직설적이라고? 이리 나 이사 올까? 그럼 나도 지역구민 되잖아. 수용 됐어. 이리 나도 해본 말이다 뭐. 수용 불편과 불만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해소되는 건 맞지. 그게 옳은 방향이야. 하지만… 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과연 옳은 방향인가 의문을 던질 수는 있잖아. 저 사람들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 거지. 저 확신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건데. 나는 그게 무지라고 생각해. 그사이, 노파 집 앞에 도착해 가방을 뒤지고 깜빡깜빡하는 현관 비밀번호를 적어 놓은 노트를 찾는다. 이옥형이라 커다랗게 적힌 노트를 꺼내는데 노트 사이에서 날이 시퍼런 과도가 뚝! 떨어진다. 떨어진 건 작은 과도지만 운석이 떨어진 듯한 소리와 진동이 무대를 흔든다. 수용과 이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고 잠시 사이. 노파가 과도를 주워 넣는 그사이, 무대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노파 천천히 과도를 집어넣고 비밀번호를 확인하곤 집으로 들어간다. 밖에 소리가 무대를 환기하고 이리 (창밖을 보곤) 열정적이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너무 비난만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해. (수용의 시선을 느끼고) 야, 레이저 나오겠다. 분명히 말하는데 옹호하는 거 아니야. 그냥 공감능력을 지닌 인간으로서 감정이입을 해보자는 거지. 사실 그렇잖아. 누가 좋아해,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고. 수용 부동산이 떨어진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집값이 떨어진다는 가설은 무지에서 시작된 삐뚤어진 믿음이야. 수용, 망치질을 시작한다. 이리 그래 좋아, 뭐가 됐든. 그 믿음이 아틀라스처럼 세상을 지탱하고 있잖아. 저 자리가 원래 학교 부지란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뭔데. 학군 빵빵한 동네가 지하철로 네 정거장만 가면 되잖아. 그렇게 멀지도 않아. 공사부지 맞은편은 곱창에 포차, 막걸리 온갖 술집이 줄 서 있더만. 워싱턴 노래방 간판이 애들 하굣길을 밝혀 주겠지. 이 동네보다는 그 동네가 백 번 나아. 안 그래? 수용 …. 이리 기시감 들지 않아? 수용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리 한국전쟁 이후 국가적으로 밀고 있는 꽤 전통적인 방식인데. 그놈의 낙수효과야말로 삐뚤어진 믿음 아니야? 이게 진짜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뿌리 깊은 믿음. 네 말대로 무지에서 비롯된 거지. 될 놈만 건지고 나머지는 버리겠다는 걸 그럴듯하게 이름 붙여서 포장을 해요. 항상 그럴듯해 보이는 게 사람 눈 돌아가게 만들잖아. 난 그놈의 낙수효과가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수용 가부장제의 근본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이리 야 너. 짜식, 평소에 내 말을 아주 허투루 듣는 건 아니었구나. 수용 그럼. 귀는 문이 아니잖아. 닫히질 않아. 이리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용 가끔은 닫혔으면 좋겠지만…. 이리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건 중요해. 근데 이 망할 놈의 세상은 밑 빠진 독이라서 어딘가는 새게 되어 있잖아. 수용 왜 날 봐. 계속해. 이리 성장이 제1의 명분이 되는 시대는 흘러가고 있어. 이젠 희생의 이유도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는 거지.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수용 애들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이리 뭐가? 수용 아이들이 배울 곳이 필요하다. 이걸로는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으로 부족해? 이리 무엇보다 중요하지 수용 꼭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인류애적인 충만함을, 정신적인 보상을 얻을 수도 있어. 안 그래? 이리 …. 수용 왜 아무 말도 안 해? 이리 것도 능력이야. 한 번에 양쪽을. 수용 양쪽을 뭐. 이리 아냐. (쿵) 이리 하여튼 지금은 어떤 이유도 저 사람들한텐 먹히지 않을 수도 있어. (쿵) 이리 (밖을 보며) 한껏 쫄아 있으니까. 나는 저 사람들의 확신이 무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번에도 버려질 거란 공포에서 나왔다고 봐. (쿵) 수용 시끄럽지? 수용, 음악을 튼다. life is killing - type O negative 수용 소음에는 락이지. 소음은 음악소리에 묻히고 뿌연 먼지 사이로 둘, 망치질. 벽을 타고 온 진동이 노파의 아크릴 박스를 사정없이 흔든다. 노파, 공포에 질린 비명이 락에 묻히고 노파의 사정과는 별개로 망치질을 하는 수용과 이리의 모습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등록금 인상에 반대 시위를 하는 프랑스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하고 어느 삭막한 공사장의 인부 같아 보이기도 하다. 일순간 음악이 멈추고 노파가 있는 불투명 박스에 조명 노파 아주 발광을 허네! 수용, 노래를 멈춘다. 이리 왜? 수용 뭐라고 하지 않았어? 이리 아니. 수용 (귀를 파며) 아닌가. 이리 살살해, 스윙에 감정이 실렸다. 누구 생각해? 수용 여럿 (쾅) 생각하지. 이리, 분무기로 먼지를 잠재운다. 수용 사람들이 타격감에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잖아. 복싱이나 야구공 치는 것처럼. 아무래도 난 때리고 (쾅) 던지고 (쾅) 치고 박으면서 (쾅) 스트레스 푸는 거엔,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수용, 손목을 턴다. 이리 (덥다. 옷을 펄럭) 너도 참, 손목 아프단 말을 장황하게 한다. 수용 (보곤) 옷 빌려줄까? 이리 아니, 됐어. 수용 먼지 엄청 붙었네. 이리 블랙이 적나라하지. 수용 하나 가져다줄게. 이리 아냐, 됐어. 수용 아냐 가져다줄게. 이리 아니 괜찮아. 수용 불편해 보여. 가져다줄게. 이리 진짜 괜찮다고. 수용 나도 진짜 괜찮아. 이리 아니. 괜찮다니까? 수용 왜 화를 내. 이리 화를 낸 게 아니라. 됐다고 했는데 못 알아들으니까. 크게 얘기 해준 거지. 수용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이리 남자들 종족 특성이야? 왜 노를 못 알아듣지? 강요하지 마. 수용 내가 언제 강요를 했다고 그래. 이리 방금. 수용 그냥 물어본 거잖아. 불편해 보이니까. 이리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일곱 번째로 말해줄게. 됐어. 필요 없어. 난 이 옷이 좋아. 불편하든 더러워지든 이미 나랑 한몸이라고. 네가 신경 쓸 거 아니란 거지. 알겠어? 수용 그래. 그럼. 이리, 망치질 이리 넌. 매사에 모든 걸 통제해야 속이 시원해? 왜 그래? (쾅) 이리 무지에서 나온 삐뚤어진 믿음? 웃기네. 야, 이름 짓기 좋아하는 건 나보다 네가 더해. 벽을 마구 치며 쏟아낼 대로 쏟아낸 이리, 숨을 고르고 이내 머쓱해진다. 수용 …. 이리 야. 미안하다. 수용 …. 이리 미안하다고. 수용 어. 이리 된 거지? 수용 …. 이리 미안해. 너도 알잖아. 내가 한 번씩 예민해지는 거. 수용 한 번씩이 아니잖아. 항상 예민해. 이리 항상은 아니지. 수용 맞아. 그리고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나도 너 못지않게 예민해. 난 화장실에 앉아서도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어. 잘 때도 먹을 때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서 미쳐버릴 것 같아.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걸지도 모르지.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 싶어. 그게 더 확실하잖아. 어중간하게 미쳐 있는 것보단 명백한 환자가 되는 게 낫지. 이리 무슨 그런 말이 있냐. 수용 나는 그렇다고. 정상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닌 경계에 서서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을 네가 알아? 이리 알지. 내가 여자 좋아하는 걸 알았을 때 그랬지. 수용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머니한테 커밍아웃 언제 할 거야? 이리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확실한 건 네 인생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수용 말이 나올 만하니까 하는 거야. 성 서방 밥은 잘 먹고 다녀? 불쑥불쑥 연락 올 때마다 무시도 못하고 답장도 못하고 얼마나 난감한 줄 알아? 3년이야. 이사 도와준 대가가 이렇게 부담스럽고 죄책감 드는 건 줄 알았음 도와 달라고도 안 했지. 커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는 네 선택이지만 나까지 죄책감 들게 만들지는 말아 주라. 이리 … 말을 하지 그랬냐. 둘 다 입 꾹 다물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수용 나는 그렇다 쳐도 너희 어머니는 아니었을걸. 네가 보기에 내가 무모하고 강박적으로 보이겠지만 내가 볼 때 넌 무책임하게 도망만 다니는 걸로 보여. 시간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 그냥 유예시킬 뿐이지. 편한 선택은 그만할 때도 됐잖아? 이리 내가 편하게 사는 것 같아? 수용 최소한 네 멋대로 사는 걸로는 보여. 이리 진짜 멋대로 사는 게 누군데. 세상이 어떻게 모 아니면 도로 돌아가. 불가능한 걸 바라면서 이게 왜 불가능하지 왜 이렇게 안 되지, 사람들이 왜 서명을 안 해 주지. 하루라도 징징거리는 걸 멈추고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 궁금해하긴 해봤어? 아니지. 네가 생각할 때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니까. 안 그래? 그렇게 결론지었잖아. 왜? 그게 쉽고 편하니까. 수용 그래! 맞아! 왜냐고? 누구나 배울 권리가 있으니까! 이리 정신적 보상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누가 아니래? 수용 아니라잖아! 그러니까 저러지. 수용과 이리 사이에 침묵이 잠시 흐른다. 이리 내 말 듣긴 했니? 수용 내 귀는 문이 아니니까. 이리 칸트도 너보단 융통성 있을 거야. 알지 칸트? 골방에 틀어박혀서 글만 쓰던 외톨이. 제발 사람 좀 만나. 글로 배우지 말고. 그러다가 너도 청혼 승낙만 7년 고민하는 수가 있어. 결혼해야 하는 이유 354가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350가지 쓰면서. 수용 … 내내 날 그렇게 생각했어? 이리 언제부터 내 생각이 중요했냐. 넌 너 이외의 사람들은 다 멍청하고 덜떨어졌다고 생각하잖아. 수용 내가 언제. 이리 자신을 한 번 돌아봐. 수용 … 그만 가주라. 이리 왜 도와 달라며. 아, 그래서 불렀니? 옛말에 무식한 놈이 힘세다고 이런 일엔 내가 나서야지. 수용 됐어, 가. 네 도움 필요 없어. 이리 정말? 수용 그래. 이리 후회 안 하지? 수용 그래! 정말 진짜로 필요 없어. 이리 그래 그럼! 이리, 돌아갈 채비 하는데 초인종 소리. 수용, 현관으로 가(계단의 문이 아닌 객석을 향해) 손님을 확인하는데 이리 간다 수용, 이리를 잡고 숨을 죽인다. 이리 왜? 문 두드리는 소리 이리 놔. 수용 (속삭이듯) 아랫집. 이리 이런 게 자승자박이란 거다. 이리, 문으로 향하고 수용 어디 가. 이리 가라며. 수용 할머니 가면 가. 이리 벽은 허물면서 저깟 문은 하나 못 여냐. 수용 그게 아니라. 손에 뭐가 있어. 이리 뭐? 수용 몰라. 뾰족하고 날카로운 걸 쥐고 있어. 송곳이나 드라이버 같아. 이리, 현관(객석을 향해)으로 가 보면 커다란 스크린에 할머니의 모습이 뜬다. 모니터로 보이는 노파는 인터폰 렌즈에 왜곡된 모습이다. 괴이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리 진짜네…. 수용 잘못하다간 오늘 피 보겠어. 이리 피는 무슨. 수용 말했잖아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라고. 이리 나도 난데 너 너무 고정관념으로 뚤뚤 뭉친 거 아니냐. 그냥 할머니야.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수용 네가 안 맞아 봐서 그래! 이리 쫄았구만. 수용 … 얼마나 아픈데. 이리, 다시 현관으로 가 동태를 살피곤 이리 안 가시네…. 수용 그냥 없는 척하자. 층간소음에 살인도 난다잖아. 이리 그 난리를 쳤는데 없는 척이 돼? 수용 해보고 말해. 왜 안 해보고 그래? 이리 넌 이상한 데서 긍정적이다? 수용 넌 남 일에만 용기를 내잖아. 이리 그래, 알겠어. 집주인 마음대로 해. 말 그대로 집주인이 주인이니까. 이리, 가방을 대충 던지곤 의자에 털썩 앉는다. 가만 보던 수용은 멀찍이 떨어진 바닥에 앉는다. 이리 왜 바닥에 앉아? 수용 왜. 이리 지금 눈치 주냐. 수용 그건 무슨 피해망상이야. 이리 네가 나중에 또 뭐라고 할까 봐 그러지. 불만 있을 땐 말 안 하고 한참 지나서 말하잖아. 수용 내가 쌓아 두는 게 아니라 네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 이리 실수가 실순지 어떻게 알아, 말을 안 하는데. 수용 어떻게 몰라? 이리 넌 아니? 수용 당연하지. 내가 네 입장이었으면. 이리 그런 가정은 하지 말자. 넌 내가 아니잖아. 나도 네가 아니고. 수용 상식에 대한 얘기야. 이리 이젠 내가 상식도 없다? 수용 (난감하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지) 가끔. 이리 너한테 난 대체 뭐냐? 수용 친구. 이리 원래 친구한테 이래? 아님 나한테만 이래? 수용 내가 뭘…. 이리 방금! 수용 조용히 해. 이리 내가 상식이 없다며 아까는 정상 아니라고 하더니 넌 상식도 없고 정상도 아닌 애랑 왜 친구 하냐. 노파 (문 쿵쿵) 안에 없어? 있지? 수용 가끔 그렇다고. 왜 이렇게 발끈해? 나도 가끔은 상식 없이 굴어. 이리 정말 박수를 보낸다. 노파 있네. 문 좀 열어봐, 총각! 이리 저 할머니 말귀 어두운 거 맞아? 별로 크게 말 안 하는데 다 들어. 수용 그래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이리 아이고, 엎드려 절 받기다. 수용 그래, 그것도 내가 미안해. 이리 할머니 아니었음 절대 안 했을 말이지.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수용, 무릎을 꿇는다. 이리 뭐하냐? 수용 미안. 이리 일어나…! 수용이 일어나지 않자 이리도 같이 무릎 꿇고 이리 뭐 하자는 거야. 수용 네 방식대로 사과하잖아. 이리 이게 무슨 내 방식이야. 수용 날 감정적으로 굴복시키고 싶어 하잖아. 이리 날 그런 쓰레기로 봤어? 수용 내 사과를 사과로 인정하질 않잖아. 이리 그건 맞는데. 수용 그것 봐. 이리, 노파가 만들어 내는 소음과 수용의 행동에 머리가 터질 듯하다. 이리 나중에 하자. 제자리걸음이야. 차라리 저쪽을 선택할래. 수용, 이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이리 뭐해…! 수용 가지 마. 이리 왜 이래, 얘가…! 수용 이대로 나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이리 하지 마. 기분 되게 이상해. 두 사람 잠시 실랑이를 벌인다. 그 순간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춘다. 두 사람 문을 가만 바라보고 노파, 집 안 소리를 듣기 위해 문에 귀를 대 본다. 이리 봐, 조용해졌어. 수용 안 갈 거지? 이리 어! 수용, 이리를 놓아 준다. 이리, 문으로 향하니 수용은 움찔거리고 이리 안 가! 이리, 문에 귀를 대 본다. 수용 (조심스레) 갔어? 이리 (속삭이며) 몰라. 노파 이봐! 이리, 화들짝 놀라 되돌아온다. 수용 거 봐. 이리 오늘 무슨 날이냐. 미치겠네. 벽하고 말하는 것 같아. 수용 나 말하는 거야? 이리 총체적으로 다. 노파, 문틈에 종이 한 장을 끼워 놓고 돌아간다. 수용 내가 벽이면, 나도 이렇게 부숴버릴 거야? 이리 부수는 건 네 아이디어잖아. 귀찮게 뭐 하러 그래. 나였음 그냥 이사 갔어. 수용 … 지금 절교 선언한 거야? 이리 아니. 뭐래 정말. 지금 벽 얘기하던 거 아니었어? 수용 그래, 벽 얘기하고 있었지. 네가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다며. 이리 아니, 내가 말한 벽은 이 벽이고, 나라면 그냥 이사를 갔을 거라고! 네가 말한 벽은 그러니까 너고 네가 벽이라면 나는 이사를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내든가 창문을 하나 뚫든가 어? 뭐가 이렇게 어렵지. 울어? 이리,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쯤 노파는 자리를 뜨고) 수용 …. 이리 미안해. 수용 네가 왜 사과하는데? 이리 내가 남자 눈물에 약하잖아.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넌 왜 우는데. 무슨 일 있어? 오늘이 그날은 아니지? 아까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수용 무슨 날. 이리 데드타임. 수용 아니야. 그냥…. 조기 갱년기 같아. 이리 이제 스물아홉이 웃기네. 수용 아예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지. 요즘 애들 사춘기 일찍 온다며. 아니면 비타민D 부족 우울증이든가. 모르겠어. 세상에 거대한 벽이 느껴져. 이리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고? 수용 너도 그래? 이리 생리 전 증후군이 딱 그래. 너도 정신적 생리하니? 수용 장난치지 마. (사이) 나는 그냥 햇빛을 보며 살고 싶어.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이리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수용 동구에 특수학교 설립이 2012년에 결정됐어. 근데 어떻게 된 줄 알아? 예정대로라면 올해 3월에 개교를 해야 했거든? 근데 아직 벽돌 한 장 못 얹었어. 여기는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희망이 안 보여…. 이리 희용소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지. 수용 희용소? 이리 희망, 용기, 소망. 희용소. 수용 (한숨) 오늘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이리 장난치는 거 아냐. (잠시 생각을 고른다) 사랑이 눈에 보이니? 느끼는 거지. 사람을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사소해. 아주 작은 떨림이면 충분하거든? 나는 내가 처음 좋아했던 애를 떠올리면 지금도 손끝이 떨려. 심장은 말할 것도 없지. 여기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니까. 내가 그 애랑 잘되지 않았다고 해서 걜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걸까? 내 첫사랑은 지독한 이성애자고 나는 더 지독한 레즈비언이라서 영원히 평행선에 설 수밖에 없지만, 걘 여전히 내 첫사랑이야. 결과가 본질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희망도 똑같아. 느끼는 거지. 수용 그러면 더 확실하네. 왜냐면 내가 요 근래 느끼고 있는 건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뿐이거든. 이리 진동을 만들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네가 심장인가 보지, 네가 망치인 거야. 아까 망치질해 봐서 알잖아. 망치질하는 놈 손목은 아 나는 거라고. 그래서 네가 지금 힘들고 또 뭐냐,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를 느끼는 거야. 누군가는 네가 만든 진동을 느끼고 있어. 수용 … 희망사항이다. 이리 최소한 나는 느껴.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이리, 수용의 곁으로 가 가만 안아 준다. 수용, 이리의 어깨에 머리를 가만 기댄다. 이리의 서툰 위로가 마음에 닿는다. 수용 내가 여자가 되면 날 사랑해 줄래? 이리 무슨 소리야. 수용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이리 난 널 사랑해. 네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삶의 충만함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수용 스트레스는 알겠는데 삶의 충만함은 뭐야? 내가 너한테 그런 걸 줘? 이리 응. 수용 …. 수용,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느끼며 일어서 문으로 향한다. 이리 왜? 수용 좀 덥지 않아? 난 좀 덥네. 이리 열게? 수용 어. 열어드리게. 이리 이제 안 무서워? 수용 아니. 어. 아니. 내가 언제 무서워했다고 그러냐. 그냥, 혼란스러웠던 거지…. 가신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계시면 나한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 테니까…. 이리 갑자기 용감해졌네. 수용 도와주겠지 뭐…. 이리, 그런 수용을 보며 미소 짓고 수용, 머쓱하게 돌아서며 현관문(계단에 있는 문)을 연다. 무대 위 작은 무대, 노파는 종이 한 장을 날려 보낸다. 종이는 수용 앞으로 떨어진다. 특수학교 설립 찬성 서명서다. 이리 뭐가 적혀 있는데? 수용과 이리, 적힌 글을 보고 내가 배움이 짧아 글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되어 늦게나마 표를 줍니다. 내 이름 석 자가 좋은 일에 쓰여 참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웃사촌 김옥형. 옥형이 있는 아래를 본다. 글쓰기 연습을 하는 옥형의 모습에서 암전.
  • 세상 휩쓴 코로나…소외·고립의 비명

    세상 휩쓴 코로나…소외·고립의 비명

    올해 처음으로 전 부문 예·본심을 통합한 2021 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가 완료됐다. 응모 인원은 1533명 3820편이다. 분야별로는 시 687명, 소설 476명, 동화 179명, 희곡 64명, 시조 118명, 평론 9명이 지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방문 접수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동화와 소설을 제외한 분야에서 지원자가 소폭 감소했다. 올해 응모작 키워드는 역시 ‘코로나’였다. 전 분야를 통틀어 직간접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등장했다.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오은 시인은 “전면적으로 제목에 나타나거나 자가 격리의 경험, 숙주의 등장, 전염의 양상 등이 직접적으로 언급됐다”고 말했다. 아직 문학적으로는 설익었다는 평도 뒤따랐다. 강영숙 소설가는 “뜻밖의 재난이나 고립, 실종 등의 상황을 다루며 코로나가 배경으로 놓인 경우가 많았으나 현실이 더욱 드라마틱해서 소설적으로는 임팩트가 없는 느낌”이라고 분석했다. 시조 심사를 맡은 이근배 시조시인은 “다른 알레고리로 표현하지 못하고 직설적으로 언급하는 수준에 그쳐 아쉬웠다”고 말했다. 시는 인간을 뛰어넘어 관계의 확장을 도모하는 작품이 많았다는 평가다. 신해욱 시인은 “인간 관계를 다루면 위계나 권력 문제, 혹은 연애 얘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 ‘개’나 ‘신’ 같은 키워드는 다른 관계에 대해서도 얘기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고 설명했다. 박연준 시인은 “인간의 동물성, 동물의 인간성을 같이 들여다보는 시편들이 두드러졌다”고 평했다. 소설에서는 여성과 퀴어 서사가 더욱 진화했다. 김이설 작가는 “골프장 캐디, 음식 모형물 만드는 사람 등 여성 화자들의 직업이 다양하게 부각됐다”면서도 “‘82년생 김지영’에서 이미 소비된 여성 서사라는 생각에, 동어반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노태훈 문학평론가는 “퀴어 얘기 중에서도 기성 문단에서는 게이 서사에 비해 덜 부각되는 레즈비언 서사가 다수 등장했다”고 소개했다. 희곡에서는 생활 밀착형 소재가 눈에 띄었다. 송한샘 공연 프로듀서는 “관념적, 사변적인 이야기보다도 실제 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층간소음, 반려동물, 택배, 홈쇼핑 같은 소재가 자연스럽게 글로 녹아든 작품이 많았다”며 “주변 풍경에 대한 따뜻한 시선, 타자 들여다보기가 최근 들어 계속 강세”라고 분석했다. 이기쁨 연출은 “무대화에 신경을 많이 쓴 작품들에 큰 점수를 줬다”며 “단막극 분량으로 장막극 호흡의 글을 쓰려다 보니 결말이 어설픈 작품들이 있는 것은 아쉬움”이라고 평가했다. 평론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은 주요 화두였다. 김미현 문학평론가는 “올해 응모작들은 팬데믹을 두고 묵시록적 문학으로만 말하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소통의 문제로 귀결시킨 것이 인상깊었다”고 말했다. 신구 문인들이 골고루 언급된 것도 특이점이었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박남철 같은 작고한 문인들, 이장욱·편혜영·한강 등의 중견, 한인준이라는 신인이 균형 있게 다뤄졌다”고 덧붙였다. 시조는 고전적 소재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상상력을 선보였다. 이송희 시조시인은 “온라인상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이나 사회적 이슈인 ‘그루밍’ 같은 소재, 초현실주의 같은 미술 사조의 언급 등 다양한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반겼다. 동화는 어느 해보다 작품 수준이 고르게 높았다는 평가다. 유영진 아동문학평론가는 “팬데믹 시대에 노트북으로 원격 수업하는 어린이들이나 스마트폰 자동완성 기능으로 일기 쓰는 모습 등 변화된 현실에 대응하는 작품들이 돋보였다”며 “시가 높고 외로운 것이라면 동화는 낮고 작고 쓸쓸한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코로나로 지친 연말, 온기 전하는 음악 영화들

    코로나로 지친 연말, 온기 전하는 음악 영화들

    코로나19로 예년보다는 스산한 연말이지만, 움츠러든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 영화들이 찾아온다. 당분간 갈 수 없는 낯선 풍경이지만 서로를 응원하는 메시지와 음악이 더해 온기를 전한다. 2일 개봉한 넷플릭스의 ‘더 프롬’(2020)은 화려한 뮤지컬 영화다. 미국 인디애나주의 레즈비언 소녀 에마(조 엘런 펠먼)가 학부모회의 거센 반대로 여자친구와 함께 참석하려던 ‘프롬’(졸업 파티)에서 제외되자, 이를 홍보 목적으로 이용하려던 브로드웨이 배우들과 엮이며 차별에 맞서는 과정을 담았다. 왕년의 스타였던 디디(메릴 스트리프)와 앤지(니콜 키드먼), 배리(제임스 코든), 트렌트(앤드루 래널스)는 에마를 이슈로 만들어 자신들의 인기를 되찾겠다고 나섰지만 차별과 싸우는 에마를 보며 네 사람도 변해간다. 11일에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17일 개봉하는 ‘리플레이’(2017)는 두 명의 실제 뮤지션이 주연을 맡은 음악 영화이자 미국을 횡단하는 여정을 담은 로드 무비다. 2018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작으로 먼저 선보였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엘리엇(조 퍼디)과 조니(앰버 루바스)는 회항한 비행기 대신 캠핑카를 타고 뉴욕으로 향한다. 두 사람이 기타 반주에 노래하며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오클라호마, 아칸소, 테네시를 거쳐 뉴욕에 이르는 동안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현지에서 캐스팅한 주민들이다. 따뜻한 포크 음악은 물론, 관광지가 아닌 낯선 땅의 풍광이 대리만족을 줄 만하다.10일 개봉하는 ‘뮤직 앤 리얼리티’(2020)도 실제 싱어송라이터가 주인공이다. 로버트 최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활동해 왔고, 영화에 등장하는 28곡의 음악 중 25곡을 직접 만들었다. 영화는 주연은 물론 연출까지 맡은 로버트 최의 자전적 이야기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바비(로버트 최)는 한국에 갈 수 있다는 얘기에 고달픈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친구가 속한 인기 밴드의 로드매니저가 되어 함께 월드투어에 나선다. 홍대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던 이나(임화영)를 만나게 되고, 음악 하나로 단숨에 친해진 둘은 함께 공연하며 점차 서로에 대한 감정을 쌓아간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여기는 남미] “성소수자만 타세요” 멕시코 LGBT 전용 택시서비스 인기

    [여기는 남미] “성소수자만 타세요” 멕시코 LGBT 전용 택시서비스 인기

    성소수자(LGBT)가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차량호출서비스가 멕시코에서 개발돼 화제다.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성업 중인 차량호출서비스 '프라이드 택시'는 성소수자를 위한, 성소수자에 의한 서비스다. 운전기사와 이용자 모두가 게이나 레즈비언 같은 성소수자다. 이용자로서는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한 승차 거부나 차별 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프라이드 택시를 자주 이용한다는 한 게이 이용자는 "남자친구와 손을 잡고 있어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 편하다"고 말했다. 2018년 차량 2대로 시작한 프라이드 택시는 2년 만에 지금은 차량 50대를 운행하고 있다. 아직은 차량운행이 푸에블라로 제한돼 있고, 서비스호출도 전화로만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성장이다. 프라이드 택시 측은 "개발 중인 전용 앱(애플리케이션)이 출시되면 수요는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프라이드 택시는 성소수자인 창업주가 차별적 고충을 겪다 개발한 서비스다. 창업자 세사르 프레스타냐는 "택시나 우버를 이용할 때 단순히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승차 거부를 당하거나 승차 후 차별을 당한 경우가 많았다"면서 "나와 비슷한 고충을 겪는 성소수자가 많겠다는 생각에 전용서비스를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를 설립하면서 그가 가장 신경을 쓴 건 안전이다. 성소수자가 안심하고 안전하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려면 운전기사도 성소수자이거나 적어도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회사가 엄격한 필터링을 통해 차량등록을 허용하기로 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회사는 지금도 이 원칙을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덕분에 프라이드 택시의 등록차량은 100% 성소수자가 운전한다. 창업자 프레스타냐는 "엄격한 잣대로 복수의 필터링을 통해 차량등록을 받고 있다"면서 "덕분에 100% 안전-안심 이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프라이드 택시는 현재 전화로만 호출이 가능하지만 곧 스마트 시대가 열린다. 회사는 내년 초 출시를 목표로 전용 호출 앱을 개발 중이다. 프레스타냐는 "앱이 출시되면 사업 범위를 멕시코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라면서 "성소수자판 우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대만 육군 188쌍 합동 결혼식, 레즈비언 커플도 두 쌍이나

    대만 육군 188쌍 합동 결혼식, 레즈비언 커플도 두 쌍이나

    대만은 지난해 5월 동성 결혼을 합법화시켜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다. 그 뒤 지금까지 약 4000쌍이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 대만 육군은 매년 합동 결혼식을 치르는데 30일에는 모두 188쌍이 예식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날 처음으로 두 레즈비언 커플이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한 여군은 “군대 안에서 더 많은 성적 소수자(LGBT)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리윙윙과 결혼한 육군 중위 첸윙수안은 “우리 군은 아주 개방적”이라며 “사랑이란 관점에서도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늘 성적 정체성을 겉으로 드러내왔다고 덧붙였다. 왕이 소령은 멩유메이와 예식을 올리면서 내내 동성애자들의 상징인 프라이드 깃발을 들고 다녔다. 다만 멩의 부모는 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왕 소령의 부모와 교관은 참석해 축하했다. 왕 소령의 어머니는 AP 통신 인터뷰를 통해 “이건 군대에서의 엄청난 돌파구라고 느껴진다. 아마도 동성애 커플에게 종이 한 장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대만 육군은 올해 예식에 동성 커플이 참여한 것은 “계몽되고 진보된” 것으로 받아들이며 성적 취향과 관계 없이 모든 커플에 축하를 전한다고 밝혔다. 사실 지난해에도 세 쌍의 동성 커플이 예식에 참석하겠다고 등록했다가 나중에 “사회적 압력”이 너무 강하다며 취소했다고 현지 매체들이 군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물론 지난해부터 동성 결혼이 합법화됐지만 아직 유럽이나 미국의 동성 결합법처럼 대만의 동성 부부들이 이성 부부와 동등한 사회적 처우와 존중을 받지는 못한다고 방송은 전했다. 2017년 대만 헌법재판소는 동성 커플도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가 엄청난 여론의 반발을 샀다.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다수가 반대했다. 그 결과 대만은 동성 결혼에 대해 특별법을 제정해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의 시민과 경우에만 허용하고 서로의 친자만 입양하도록 하는, 제한을 두도록 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멜라니아 기침 안 멎어 남편과 유세 못한다, 둘째딸 티파니 왜 입길?

    멜라니아 기침 안 멎어 남편과 유세 못한다, 둘째딸 티파니 왜 입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기침이 멎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세 동참 계획을 취소했다. 멜라니아 여사의 비서실장 스테퍼니 그리셤은 20일(이하 현지시간) CNN 방송에 “여사가 코로나19에서 회복하면서 매일 나아지고 있으나 기침이 계속되고 예방 차원에서 오늘 (유세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사는 이날 저녁 펜실베이니아주 이리에서 예정된 남편의 유세에 함께 할 계획이었다. 멜라니아 여사가 남편의 유세에 합류했으면 지난해 6월 재선 도전 선언 이후 처음일 뻔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지난 2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을 남편이 트윗을 통해 공개했으며 그 뒤 백악관에 칩거하다 14일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영부인이 추후 다른 유세에 모습을 드러낼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논의되는 것이 없다고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이 소식통은 다른 이유가 아닌 건강 문제로 유세에 동참하지 못하게 된 것이 맞다면서 멜라니아 여사가 계속 기침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2016년 대선 때도 남편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고 백악관에 입성한 후에도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었다. 지난 8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찬조연설을 하기는 했지만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아 남편보다 더 바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아내 질 바이든과 대조를 이뤘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자녀들이 주로 선거운동에 적극 나섰다.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이번주 미시간·위스콘신·노스캐롤라이나·플로리다 등 주요 경합주를 돌고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노스캐롤라이나와 펜실베이니아 행사에 참석한다고 CNN은 전했다. 차남 에릭은 뉴햄프셔와 미시간을 찾는다. 그의 아내 라라는 네바다와 애리조나에 간다.둘째딸 티파니(27)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성적 소수자 집회에 참석해 연설한 동영상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그녀는 “우리 아버지가 믿는 가치관을 잘 안다. 정책 이전에 그는 게이와 레즈비언, LGBQI를 지지해왔다”고 연설했다. 하지만 보통 성전환자를 가리키는 “T”까지 넣어 LGBTQ라 하는데 왜 굳이 뺐는지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으며 아버지의 행정부가 성적 소수자 보호조치를 철회하려 노력한 것들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석에서 LGBTQ 이슈에 대해 언급한 것은 드물었지만 그는 성전환자들의 군 복무를 막았고, 성전환 학생들이 공립학교에 입학하도록 보호한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정책을 폐기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두 번째 부인 마를라 메이플스의 사이에 유일한 자녀인 티파니는 다른 자녀들에 견줘 아버지와 그다지 가까운 사이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사람들이 전부 L이나 G가 되면”…성소수자 차별발언 끊이지 않는 일본

    “사람들이 전부 L이나 G가 되면”…성소수자 차별발언 끊이지 않는 일본

    “일본인이 전부 L(레즈비언)이나 G(게이)가 되면 다음 세대가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L과 G가 우리 아다치구에 완전히 확산되면 아이는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L도 G도 법에 보장돼 있지 않으냐는 식의 얘기가 되면 아다치구는 망해버리고 말 것입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정치인 등의 차별적 언급이 잇따르고 있는 일본에서 또다시 직설적인 비난 발언이 여당 소속 지방의원에 의해 공식석상에서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7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집권 자민당 소속 아다치구 의원인 시라이시 마사테루(78)는 지난달 25일 구의회 본회의에서 저출산·고령화 관련 질문을 하면서 위와 같이 말했다. 그는 “보통의 결혼을 해서 보통으로 아이를 낳아 보통으로 키우는 일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라면서 “교육현장에서 이 부분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는 출산의 의의를 아이들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시라이시는 11선으로 아다치구 의회 최다선 의원이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비판이 줄을 이었다. 여배우 아즈마 지즈루(60)는 지난 3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나도 아이를 낳지 않아 사회에 기여하지 못하는 보통이 아닌 인간인가. 인권과 LGBT(성소수자)에 대해 제대로 배우기 바란다. 무지는 죄다”라고 적었다. 작가 오토타케 히로타다(44)도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고, 이 사회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하게 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을지 반드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주일 핀란드 대사관까지 나서 공식 트위터를 통해 “(우리나라는) 북유럽에서 가장 늦은 2017년부터 동성결혼이 가능하게 됐는데, 이후 아이를 키우는 ‘레인보우 패밀리’가 늘었다”며 자국의 동성결혼 실태에 대해 소개했다. 논란이 커지자 시카하마 아키라 아다치구의회 의장은 6일 “의원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있었다”고 지적했고, 자민당도 “지나친 발언”이라며 엄중주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시라이시 의원 본인은 아사히에 “발언을 철회할 생각도 사죄할 생각도 없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민당에서는 2018년 7월 스기타 미오 중의원 의원이 월간지 기고에서 “(성소수자들은) 아이를 만들지 않는다. 즉 생산성이 없다”, “거기에 세금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어떨까”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는 등 지금까지 여러차례 파문이 있었다. 지난달 스가 요시히데 내각 출범과 함께 부흥상에 임명된 히라사와 가쓰에이 중의원 의원도 지난해 1월 야마나시현에서 열린 집회에서 “성소수자만 있어서는 나라가 무너지고 만다”고 발언해 비난을 샀다. 역시 자민당인 다니카와 도무 중의원 의원도 2018년 인터넷 방송에 나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동성혼의 보장 등을) 법률화할 필요는 없다. 그건 취미와 비슷한 것이니까”, “남자가 남자만, 여자가 여자만 좋아한다면 분명히 이 나라는…” 등 언급으로 논란을 불렀다. 자민당에서 성소수자 차별 논란 발언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나카키타 고지 히토쓰바시대 교수(정치학)는 “자민당을 떠받쳐 온 것은 지역의 남성 중심 아버지 사회였다”면서 ‘보수적인 가족관’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아버지 사회에는 밖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자녀로 구성된 이른바 ‘쇼와(히로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의 가족’이 바람직하다는 보수적 가족관을 가진 사람이 많다”며 “그들은 자신들의 가치관의 바깥에 있는 LGBT 등 소수자에 대해 공감과 상상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진단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씨줄날줄] 레스보스섬/임병선 논설위원

    [씨줄날줄] 레스보스섬/임병선 논설위원

    여자 동성애자를 뜻하는 영어 ‘레즈비언’(lesbian)은 ‘레스보스섬 여인’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그리스 영토지만 에게해 동쪽 끝에 자리해 본토보다 터키 이즈미르에 훨씬 가깝다. 기원전 6세기 무렵 최초의 여자 시인인 사포가 태어난 곳인데 그녀를 따르는 무리들이 동성애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로마 귀족들도 휴양지로 아꼈던 곳이다. 15세기 오스만튀르크가 이곳을 지배하면서 ‘에게해의 정원’으로 불렀다. 크레타와 에비아에 이어 에게해 섬들 가운데 세 번째로 크며 인구는 10만명이 조금 안 된다. 아름다웠던 이 섬이 유럽으로 건너가려는 난민들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고 있다는 개탄이 터져 나온 것이 10년 넘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전쟁과 내전이 할퀸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람들이 이탈리아와 그리스로 항했다. 땅도 넓고 상대적으로 국경이 허술한 터키 영내에 진입한 뒤 레스보스섬에 이르러 8개월만 버티면 본토로 건너갈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엄격해졌지만, 최근 이탈리아 정부가 우경화하고 터키가 유럽행 차단을 포기하면서 이 섬으로 더욱 많은 난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그런데 일주일 전 이 섬에 있는 유럽 최대의 난민 수용시설인 모리아 캠프에 일어난 두 차례 화재 때문에 주목되고 있다. 35명의 난민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당국의 격리 지침을 어기고 달아나 불을 지른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원래 이 캠프는 2700명만 수용할 수 있지만 1만 2000명 이상이 북적대고 있다. 난민들은 도로 주변과 주차장 바닥 등에 텐트나 천막을 치고 한뎃잠을 청하고 있다. 유럽연합(EU) 10개 회원국이 부모 없는 미성년자 난민 400명을 나눠 수용하기로 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다. 1만명 이상은 먹을 물이나 씻을 물이 부족한 가운데 코로나19 확산 공포를 이겨 내며 하루하루를 버텨 내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1만명을 수용하는 새 난민 캠프를 EU와 힘을 합쳐 지어 난민들의 신원 조사와 망명 심사를 포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14일 밝혔다. 한 나라의 책임으로만 미루지 말고 EU 전체가 통합적인 난민 정책을 실행하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관광으로 먹고사는 섬 주민들은 반대한다. 난민들도 이 섬에 영원히 가두려는 것이냐고 반발한다. 26개 EU 회원국들이 한목소리로 호응한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인도적 관점에서야 난민들을 부축하는 게 옳지만 매일처럼 섬 주민들과 난민들이 드잡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단다. 이성과 도의가 상대적인 시대를 살고 있다. bsnim@seoul.co.kr
  • 그리스 난민캠프 전소, EU 10개국 “미성년 400명 나눠 수용”

    그리스 난민캠프 전소, EU 10개국 “미성년 400명 나눠 수용”

     유럽연합(EU) 10개국이 최근 대형 화재로 전소된 그리스 레스보스섬의 난민캠프에 머무르던 미성년자 400명을 데려가기로 했다고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밝혔다.  AFP 통신과 영국 BBC에 따르면 제호퍼 장관은 이날 마르가리티스 시나스 EU 집행위 부위원장과의 공동기자회견 석상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각각 100∼150명 정도를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독일과 프랑스는 EU 차원에서 400명의 미성년자 난민 수용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네덜란드는 이미 50명을 받아들이기로 약속했고, 핀란드는 11명을 수용하기로 했다. 나머지 나라들은 몇 명을 받아들일지 논의하고 있다고 제호퍼 장관은 전했다. 독일 언론은 스위스와 벨기에,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룩셈부르크, 포르투갈이 논의 중인 나라들이라고 전했다. 이들 미성년자들은 부모나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다.  앞서 전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EU 차원에서 400명의 미성년자 난민 수용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AFP 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메르켈 총리는 베를린에서 패널 토론에 참석해 “예비 단계로 우리는 (EU 회원국들이 화재가 난 난민캠프의) 미성년 난민을 수용할 것을 그리스에 제안했다”면서 “다른 조치들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EU가 난민 문제에 책임을 더 나눠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코르시카 섬에서 열린 지중해 정상회담에 참석해 AFP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유럽은 말뿐이 아니라 연대의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에게해에 있는 레스보스섬은 여자 동성애자를 뜻하는 영어 ‘레즈비언’이 유래한 섬이다. 기원전 600년 무렵 인류 최초의 여자 시인 사포와 그녀를 숭배하는 모임이 동성애를 즐겼는데 그녀가 이 섬 출신이란 점 때문에 붙여졌다. 그리스 본토보다 터키 이즈미르 항구에 훨씬 더 가깝지만 엄연히 그리스 땅이다.  이곳에는 이 나라 최대의 난민 수용시설인 모리아 캠프가 있다. 최대 수용 정원은 2757명이지만 지난 8일 첫 화재가 발생했을 때 네 배가 넘는 1만 2600여명이 생활하고 있었다. 난민 정보 사이트 인포미그런츠(InfoMigrants)에 따르면 이 캠프의 난민 가운데 70%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이며 시리아와 아프리카 콩고까지 무려 70여개국 출신들이 뒤섞여 있다. BBC의 동영상을 보면 중앙아시아 출신 난민도 눈에 띈다. 그런데 이곳에 지난 8일(이하 현지시간)과 다음날 잇따라 화재가 일어나 시설 대부분이 사라져 많은 난민들이 도로 바닥, 벌판, 주차장 바닥 등에서 풍찬노숙을 하고 있다. 처음 불이 났을 때 최대 시속 70㎞의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졌고 현장은 아비규환이 됐다. 일부 난민은 갓난아이를 안고 불을 피해 밖으로 내달렸고, 급히 끌어모은 생필품을 자루에 담아 유모차로 실어나르는 사람도 있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그리스 이민당국 관계자는 “모리아 캠프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말했다. 9일 오전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일어나 남아 있던 텐트들마저 홀라당 타버렸다. 다만, 두 차례 큰 불에도 연기를 들이마신 사람들 외에 다치거나 숨진 사람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당국은 방화에 무게를 두고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그리스 정부가 이 캠프에서 코로나19 확진자 35명이 발생했다고 발표한 뒤 격리될 예정이던 난민들이 소요를 일으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캠프 내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불이 시작됐다”면서 “난민들이 진화를 시도하는 소방관들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당장 이번 화재로 거처를 잃은 수많은 난민을 어디에 수용할지가 난제로 떠올랐다. 그리스 당국은 이재민이 된 난민 약 2000명을 페리와 두 척의 해군 함정에 나눠 임시 수용하기로 했다. 페리 블루 스타 키오스는 섬의 수도 격인 미틸레네로부터 100㎞ 떨어진 레스보스 섬의 시그리 항에 정박해 있는데 1000명 정도를 수용하게 된다. 노티스 미타라치 그리스 이민 장관은 모리아 캠프 근처에 새로운 수용시설을 세우는 노력도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새 캠프 조성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레스보스 섬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질서 유지를 위해 전투경찰을 추가 파견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모리아 캠프가 현재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다”면서 “이번 사태는 공중보건은 물론 국가안보와도 결부돼 있다”고 강조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비스트’서 굿이어 타이어 떼라”… 트럼프의 뒤끝

    “‘비스트’서 굿이어 타이어 떼라”… 트럼프의 뒤끝

    굿이어타이어 ‘MAGA 모자’ 금지 보도트럼프 “급진좌파 하는 짓”… 불매운동굿이어 측 ‘보도 사실과 다르다’ 해명에트럼프 “전용차 비스트, 타이어 바꾸겠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3대 타이어업체인 굿이어에 대해 때아닌 불매운동에 나섰다. 더 나아가 자신의 전용차인 ‘비스트’의 굿이어 타이어도 다른 브랜드로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트위터에 “굿이어 타이어를 사지 마라. 그들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MAGA) 모자에 대한 금지를 발표했다”며 “훨씬 적은 비용으로 더 좋은 타이어를 구매하라”고 썼다. 또 “이것이 급진 좌파 민주당원들이 하는 일”이라며 민주당 측의 공작이라는 식의 비난도 했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도 이와 관련 “굿이어는 그들의 정책을 명확히 해명하라”고 주장했다. 백악관의 굿이어 공격은 이 회사자 최근 직원 다양성 교육을 하면서 직장 내 복장과 관련해 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나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등이 쓰인 복장은 가능하지만 MAGA는 불가능하다고 교육했다는 내용의 기사로 비롯됐다. 또한 해당 교육에 쓰였다는 이미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확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이에 대해 굿이어는 성명에서 ‘해당 이미지는 회사가 만들거나 배포한 것이 아니며 다양성 교육 내용의 일부도 아니다’라며 MAGA를 제안하는 구체적 금지 조치를 내리지도 않았다고 해명했다. 다만 직원들에게 인종 정의와 평등 문제의 범위를 벗어난 정치 캠페인이나 유사 형태의 주장은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소위 쪼잔한 보복에 나섰다.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 기자가 ‘비스트’로 알려진 대통령 전용차에 장착된 굿이어 타이어를 교체할 것이냐고 묻자 “교환할 것”이라며 “더 이상 (굿이어) 제품을 사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이들은 다른 경쟁사 제품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굿이어의 주가는 2.36% 하락했다. 굿이어는 6만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본사는 오하이오주 애크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 오하이오주에서 승리한 바 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책 속 한줄] 그런 관계는 없다/이슬기 기자

    [책 속 한줄] 그런 관계는 없다/이슬기 기자

    “어머니는 늘 우리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매 순간 상대방을 사랑하는 인간관계는 존재하지 않아요.”(139쪽) 미국의 시인이자 비평가, 페미니즘 사상가이자 운동가였던 에이드리언 리치(1929~2012)의 산문집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바다출판사)의 한 대목이다. 주목받는 젊은 작가였던 리치는 세 명의 아들을 낳아 키우며 한동안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잃었다.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줘야 한다는 전통적인 모성의 이미지에 시달리던 어머니에게, 성년이 된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리치는 1960년대 여성운동을 통해 가부장제의 실체를 깨닫고 레즈비언 정체성 탐구에 몰두했다. 드라마틱한 그 삶을 보고 누군가는 놀랍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 순간 사회적 속박을 벗고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분투했던 한 여성이 있었을 따름이다. 어머니와, 그를 늘 마주 대하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구절이다. seulgi@seoul.co.kr
  •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차별금지법, 동성결합, 동성결혼

    [조영학의 번역과 반역] 차별금지법, 동성결합, 동성결혼

    얼마 전 대학생 딸이 물었다. 아빠는 동성애를 어떻게 생각해? 난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탕수육을 예로 들어 보자. 아빠는 소스를 부어서 먹고 너희는 찍어서 먹지? 하지만 취향이 다르다고 서로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니? 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빠가 성소수자들을 비난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딸아, 아빠도 네게 편견이 없어서 기쁘단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지인이 공중목욕탕에 갔을 때였다. 한 노인이 한참 성소수자를 맹비난하더니 지인에게 이렇게 묻더란다. “당신 자식이 호모라면 좋겠우? 솔직히 싫잖아?” 지인은 노인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물론 제 아들이 동성애자가 되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제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손가락질하는 놈이 있으면 가만 두지 않겠습니다.” 정의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2007년 참여정부에서 ‘차별금지법안’이 보수기독교 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이후 벌써 발의만 여덟 차례라는데 이번에도 통과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반감과 오해, 편견이 여전한 탓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며 퍼포먼스까지 펼쳤던 미래통합당도 성소수자 조항을 빼고 논의하자며 한발 빼고 있다. 미국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은 2012년 TV 토론에 나가 동성결혼의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누굴 사랑합니까? … 결혼 당사자가 레즈비언이든 게이든, 남녀든 상관없습니다.” 조 바이든에게 선수를 빼앗기기는 했지만 버락 오바마 역시 재선을 앞두고 동성결혼의 정당성을 받아들였다.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누구나 공정하고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 그는 성소수자 공동체를 위해 보다 광범위한 평등이 필요하며 동성결합(civil union)을 넘어 동성결혼을 인정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그 고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오바마는 재선에 성공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동성결합’이다. 미국은 대부분 주에서 동성의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동성결혼까지는 아닐지언정 동성 부부의 권리를 거의 모두 법으로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대만 등이 지역별로 동성결합을 법으로 인정한다. 우리는 차별금지법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았지만, 2013년 네뷸러상을 수상한 SF소설 ‘2312’는 흥미로운 전망을 내놓았다. ‘2312’는 2312년 즈음 지구와 우주의 생태가 어떻게 변화하고 운영될 것인가를 과학적, 사회적으로 추리한 이른바 ‘하드SF’다. 저자 킴 스탠리 로빈슨에 따르면 미래 세계에서는 수명 연장, 질병 치료 등의 이유로 성 이미지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는 선택 가능한 범주를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여성, 남성, 자웅동체, 암수모자이크, 남녀추니, 양성애자, 혼성애자, 간성애자, 무성애자, 거세자, 비성애자, 미분화자, 게이, 레즈비언, 호모, 성도착자, 동성애자, 다성애자, 복합성애자, 변성애자, 버다치, 히즈라, 두 개의 영혼….” 동성애를 인정하는 순간 나라가 큰일날 것처럼 호들갑이지만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많이 여유로워졌다. 우리는 TV에서 홍석천, 하리수를 스스럼없이 만나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열광했다. 미국을 위기에 빠뜨린 인물은 동성결혼을 인정하자는 오바마, 바이든이 아니라 오히려 극심한 차별주의자인 트럼프다. 비록 가설이지만 킴 스탠리 로빈슨의 미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미 성전환 수술이 가능하지 않은가. 세상은 이렇게 미래와 다양성을 향해 나아가건만 우리는 여전히 답답한 인습과 편견과 남녀차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속된 말로 후지다.
  • ‘영국 지선우’에게 반했다면, 이 영드를 추천합니다

    ‘영국 지선우’에게 반했다면, 이 영드를 추천합니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원작 BBC ‘닥터포스터’를 본 사람이라면 ‘영국 지선우’ 배우 슈란느 존스의 연기력에도 푹 빠질만 하다. 두 시즌동안 ‘미친 연기력’을 선보이며 긴장감 넘치게 극을 끌고 간 존스는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상 여우주연상, 내셔널 텔레비전 어워즈 드라마 연기상을 수상한 정상급 배우다. ‘영국 지선우’의 매력을 재발견 할 만한, BBC아메리카가 꼽은 존스의 대표작을 살펴봤다. ●150년 전 여성 사업가 ‘젠틀맨 잭’ 150년 전 실존했던 여성 사업가 앤 리스터(1971~1840)의 생애를 다룬 BBC 8부작 ‘젠틀맨 잭’(2019)에서 슈란느 존스는 주인공 앤 리스터 역을 맡았다. 요크셔의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근대적 레즈비언’으로 불린 앤은 방대한 양의 일기에 일상과 로맨스를 자세히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리스터는 남성의 일으로 여겨진 부동산 관리인으로서 뿐 아니라,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동성과의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영국 상류층의 삶 다룬 ‘베니티 페어’ 2018년 영국 ITV에서 방영된 7부작 시리즈. 영화와 드라마로 수차례 리메이크 된 윌리엄 메이피스 태커레이의 1848년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상류층으로 올라가려는 베키 샤프(올리비아 쿡 분)를 중심으로 19세기 영국 상류층의 허영과 위선적인 인간상을 풍자한다. 슈란느 존스는 베키가 다니는 기숙 학교 교장 미스 핑커튼으로, 속물적이면서 냉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 형사들 활약 보여준 ‘스콧 앤 베일리’ ‘스콧 앤 베일리’(Scott & Bailey)는 2011~2016년 5시즌 동안 사랑받은 영국 드라마다. 슈란느 존스는 ‘경력단절녀’ 스콧 형사(레슬리 샤프 분)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 가는 레이첼 베일리 형사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은 가상의 맨체스터 경찰 신디케이트 나인 중대 사건 팀(MIT)의 구성원으로 야심차고 유능한 여형사들이다. 시리즈는 두 사람의 사생활에도 초점을 맞춘다. 베일리는 그러나 사생활 때문에 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30대 초반의 우여곡절을 보여주기도 한다. ●‘닥터 후’ 속 휴머노이드 이드리스 1963년부터 이어진 BBC의 인기 SF시리즈 ‘닥터 후’에도 슈란느 존스가 등장한다. 2011년 방영된 뉴시즌6 ‘닥터의 아내’편에 출연한 존스는 소행성에 살고있는 휴머노이드 종족 이드리스로, 하우스라고 불리는 악의 실체에 의해 조종된다. ‘닥터 후’의 팬들이라면 스쳐 지나갔을 그의 ‘로봇’ 연기도 색다른 볼거리. 뉴시즌 6 최고의 에피소드로 손꼽히기도 한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언어의 역사(데이비드 크리스털 지음, 서순승 옮김, 소소의책 펴냄) 말과 글의 기원부터 일상생활 속 활용법까지 언어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저작.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영국 웨일스대 뱅거 캠퍼스의 명예교수인 저자는 갓난아기가 내뱉는 최초의 낱말부터 문자메시지에 이르기까지 언어의 변이 과정과 가변성을 재치 있는 논리로 풀어 나간다. 440쪽. 2만 3000원.턴어라운드(데이비드 마르케 지음, 김동규 옮김, 세종서적 펴냄) 미 해군의 만년 꼴찌 핵잠수함 산타페를 1등으로 도약시킨 리더십의 실체를 담았다. 패배주의가 만연한 산타페함에 부임한 마르케 함장은 잘못된 지시를 누구도 수정해 주지 않는 전형적인 리더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모두가 익숙했던 ‘리더·팔로어’ 방식을 벗어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리더가 되는 ‘리더·리더’ 방식이 탄생한다. 364쪽. 1만 9000원.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허연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데뷔 30년을 맞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천성이 허무주의자인 시인이지만 결국 그 중심은 낮고 비루한 땅 위에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 알겠다/중심이 있어/날아오르고, 흐르고, 떠날 수 있었던 거구나’(시 ‘중심에 관해’ 일부) 158쪽. 9000원.언니, 나랑 결혼할래요?(김규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레즈비언 결혼기. 부모님, 친구, 직장 동료 등 500번 넘게 커밍아웃을 하면서 체득한 커밍아웃 팁부터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한국에서 결혼을 준비하며 겪은 에피소드,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를 받기까지 과정을 그렸다. 216쪽. 1만 3800원.나는 치매를 다스릴 수 있다(최낙원 지음, 아침사과 펴냄) 뇌신경외과 전문의이자 한의사인 저자가 들려주는 치매 치료의 패러다임. 다양한 식이요법 및 생활지침 개선으로 만드는 치매 치료 프로그램, 인지장애 및 치매의 원인, 종류, 임상증상, 예방, 지원제도 및 돌봄과 법적 문제 등 관련 주제들을 삽화와 함께 설명한다. 380쪽. 1만 7000원.음대생 진로 전략서(정은현 지음, 리음아트앤컴퍼니 펴냄) 음악 전공자들을 위한 진로 안내서. 음악전문기업인 툴뮤직의 정은현 대표가 자신의 취업 경험과 툴뮤직을 창업하고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해 오며 겪은 체험담을 토대로 썼다. 응시원서, 자기소개서 작성법, 창업과 비즈니스 모델 수립까지 취업, 창업의 방법을 상세하게 담았다. 316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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