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다양성이 글로벌 시대의 핵심코드다/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
해마다 미국 포천지는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을 선정해 발표한다. 이 순위는 미국 400대 기업 직장인들이 이상향으로 꼽는 기업 순위나 다름없다. 물론 선정된 기업 입장에도 대단한 영예이다. 요즘은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정하는 기준도 시대상을 반영해 진일보하고 있다. 예로 미국의 HRC라는 단체는 해마다 ‘GLBT가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을 선정해 발표하는데,GLBT(Gay,Lesbian,Bi-sexual,Transgender·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성전환자)의 약자다. 성적 소수자들이 일하기 더 좋은 기업이 어디인지 우열을 가린다는 것과 상위 순위에 선정된 기업들은 투자은행, 광고회사, 회계법인,IT기업을 막론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뽐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바로 ‘다양성(diversity)’이라는 글로벌 시대의 핵심코드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순위는 해당 기업이 인적자원 관리에 있어 얼마나 적극적이고 성공적으로 다양성을 실현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성인력 활용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라는 데에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한 90년대.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성별, 인종, 국적, 종교, 성적기호 등에 대한 편견없이 인재의 풀을 넓혀 인적자원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여성차별, 인종차별,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모두 기나긴 역사를 통해 인류의 DNA에 각인된 뿌리깊은 편견이다. 기업이 인적자원의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이같은 뿌리깊은 편견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같은 변화는 기업들의 시대의식이 성숙했기 때문이기보다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계산된 전략적 고민의 산물로 봐야 한다.
현대의 기업은 더 이상 하드웨어적 경쟁력에서 절대적 차별화를 이루기 어렵다. 기업문화에 내재된 소프트웨어적 경쟁력이야말로 결정적 차이를 만드는 요소다. 다양한 조직 구성원이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역동성과 유연성은 기업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고 창의성과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 어느 분야보다도 셈에 밝은 기업세계는 이렇게 다양성이 가진 힘과 잠재력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자신과 닮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무리짓기는 기업이라는 생태계에서도 일반적인 현상이다. 기업문화에 맞는 인재를 선별하겠다는 취지로 뽑은 조직원들은 그 기업이 생각하는 평균적 이상형으로 구성된 비슷비슷한 사람들의 거대 집합소가 되기 쉽다. 비슷한 성장배경, 비슷한 학력수준, 비슷한 생활환경의 사람들이 모인 집단에서는 ‘나와 다름’을 대하는 개방적 태도, 나아가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
다양성은 글로벌 시대 경쟁력의 원천이다. 꼭 기업세계에 국한해 얘기하지 않더라고 한국도 이제 다양성의 미덕에 눈을 뜰 때가 아닌가 싶다. 외부인이 느끼기에 한국은 아직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정서적 환경과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적응하기 쉽지 않은 나라로 비친다.
이미 한국은 다양성의 잠재력을 시험할 수 있게 도와줄 많은 동반자들을 가지고 있다.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외국인 노동자, 해외입양아, 전세계 해외동포 그리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우리기업의 외국인 직원들까지 그들은 모두 우리 의식 속에 다름을 인정하고 소화할 수 있는 글로벌 시대가 요구하는 소양의 인자를 심어줄 한 식구들이다. 대기업 기업광고에서 ‘동성애자가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자랑스러운 문구를 볼 수 있는 나라, 탈북자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나라, 하인스 워드의 출연이 더 이상 국민적 각성을 요구하는 사건이 되지 않는 나라를 꿈꿔 본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먼 미래 ‘제 2의 오바마’로 혜성처럼 등장할 대한민국의 새싹이 지금 이 순간 이 나라 어느 다문화 가정에서 성장하고 있는지도….
박현정 크레디트스위스 기업커뮤니케이션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