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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라노 간 이영애,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은 ○○○○

    밀라노 간 이영애,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은 ○○○○

    배우 이영애가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짜파게티를 꼽았다. 13일 유튜브 채널 ‘보그 코리아’에는 ‘이영애가 밀란 여행 브이로그를 찍었다고?!’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영애는 이탈리아 패션 명품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 윈터 쇼에 참석하기 위해 밀라노를 방문했다. 이영애는 ‘평소 아침 식사에 어떤 걸 먹냐’는 질문에 “따뜻한 물 좀 마셔서 혈액 순환을 시키고, 토마토·양배추·당근·브로콜리를 찐다. 쪄 가지고 올리브 오일하고, 발사믹 소스 섞어 먹는다”고 답했다.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건강식이다. 이어 건강 신경 쓰지 않고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을 묻자 이영애는 “짜파게티”라고 답하며 찐웃음을 보였다. 또 이영애는 “오랜만에 밀라노에 오니까 너무 좋다. 혼자 있으니까 너무 좋다”면서도 “나중에 가족들하고 오는 게 제일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여행 중 나폴레옹 동상을 본 이영애는 “나폴레옹 아저씨 안녕하세요. 여기도 코 만지면 우리나라처럼 소원 이루어지는 게 있나? 가족들하고 다시 올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며 나폴레옹 동상의 코를 만졌다. 1971년생인 이영애는 2009년 사업가 정호영씨와 결혼해 2011년 출생한 이란성 쌍둥이 자녀를 두고 있다.
  • 이영애 “혼자 있으니깐 너무 좋아” 육아 해방의 기쁨

    이영애 “혼자 있으니깐 너무 좋아” 육아 해방의 기쁨

    ‘쌍둥이 엄마’ 배우 이영애가 간만에 육아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13일 유튜브 채널 ‘보그 코리아’에는 ‘이영애가 밀란 여행 브이로그를 찍었다고?!(언니 예뻐요)’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보테가 베네타 2027 겨울 쇼 참석을 위해 밀란을 찾았다는 이영애는 우아하게 모닝커피를 즐겼다. “커피 마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는 스태프의 말에 이영애는 “커피 CF 들어올 거 같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보통 아침 식사는 어떻게 먹냐고 묻자 이영애는 “따뜻한 물을 마시고 뜨끈하게 혈액순환을 시키고 나서 토마토,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를 찐다. 거기에 올리브유, 발사믹 소스를 뿌려서 간단히 먹는 경우가 많다. 건강을 위해서”라고 답했다. 스태프가 다시 “건강 신경 쓰지 않고 제일 먹고 싶은 걸 먹는다면 어떤 게 있냐”고 묻자 이영애는 “짜파게티”라며 웃었다. 산책하던 이영애는 오랜만에 밀란을 찾은 소감을 묻자 “너무 좋다. 혼자 있으니까 너무 좋다. 행복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이내 “나중에 물론 가족들하고 오는 게 제일 큰 소망이다”라고 고쳐 말했다. 나폴레옹 동상을 발견한 이영애는 코를 만지며 “여기도 코 만지면 우리나라처럼 소원이 이뤄지나”라고 물은 뒤 “가족들하고 다시 올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 ‘레옹’ ‘블랙스완’ 내털리 포트먼, 11년 만에 이혼

    ‘레옹’ ‘블랙스완’ 내털리 포트먼, 11년 만에 이혼

    영화 ‘레옹’(1995)과 ‘블랙스완’(2010)으로 유명한 배우 내털리 포트먼(42)이 프랑스 출신 안무가 뱅자맹 밀피에(46)와 결혼 11년 만에 이혼했다고 NBC방송 등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두 사람은 결혼 뒤 프랑스에서 거주해 왔으며 슬하에 아들 알레프(12)와 딸 아말리아(7)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영화 ‘블랙스완’ 촬영 당시 포트먼이 밀피에에게 발레를 배우며 가까워졌다. 2012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관계는 밀피에의 불륜 관련 보도로 급격히 악화됐다. 지난해 5월 프랑스 매체는 밀피에가 프랑스 환경운동가인 카밀 에티엔(26)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스라엘 출신인 포트먼은 13세 때 출연한 ‘레옹’의 흥행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블랙스완’에서 정신분열적인 발레리나 역을 열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 ‘레옹’, ‘블랙스완’ 내털리 포트먼, 안무가 밀피에와 11년 만 이혼

    ‘레옹’, ‘블랙스완’ 내털리 포트먼, 안무가 밀피에와 11년 만 이혼

    영화 ‘레옹’(1995)과 ‘블랙스완’(2010)으로 유명한 배우 내털리 포트먼(42)이 프랑스 출신 안무가 뱅자맹 밀피에(46)와 결혼 11년 만에 이혼했다고 NBC방송 등이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포트먼의 대변인은 “지난해 7월 포트먼이 프랑스에서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결혼 뒤 프랑스에서 거주해 왔으며 슬하에 아들 알레프(12)와 딸 아말리아(7)를 두고 있다. 포트먼은 영화 ‘블랙스완’ 촬영 당시 밀피에에게 발레를 배우며 가까워졌다. 2012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관계는 밀피에의 불륜 관련 보도로 급격히 악화됐다. 지난해 5월 프랑스 매체는 밀피에가 프랑스 환경운동가인 카밀 에티엔(26)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스라엘 출신인 포트먼은 13세 때 출연한 ‘레옹’의 흥행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블랙스완’에서 정신분열적인 발레리나 역을 열연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밀피에는 미 뉴욕시티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이름을 날리다 안무가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2014년 프랑스로 귀국해 파리오페라발레단 예술감독을 맡았다.
  • 나탈리 포트먼, 남편 불륜으로 11년 결혼 생활 마침표

    나탈리 포트먼, 남편 불륜으로 11년 결혼 생활 마침표

    할리우드 배우 나탈리 포트먼이 유명 안무가인 남편 벤저민 마일피드와 결혼 11년 만에 이혼했다. 8일(현지시간) 피플 등의 외신에 따르면 나탈리 포트먼은 지난해 7월, 남편 벤저민 마일피드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이혼이 확정됐다. 나탈리 포트먼은 지난해 벤저민 마일피드가 기후운동가 카미유 엔티엔과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이 불거지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벤저민 마일피드는 에티엔과 시간을 보낸 정황이 담긴 사진이 언론에 공개됐다. 환경 슈퍼스타 그레타 툰베리의 친구인 에티엔은 환경에 관한 여러 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으며 책도 저술했다. 그리고 2020년을 만든 50명의 프랑스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탈리 포트먼은 2011년 6월, 영화 ‘블랙 스완’의 안무 담당자였던 벤저민 마일피드 사이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이후 2012년 8월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약 11년 만에 파경을 맞게 됐다. 한편 나탈리 포트먼은 지난 1994년 영화 ‘레옹’의 마틸다 역으로 출연하며 데뷔했다. 이후 ‘스타워즈’ 시리즈를 비롯해 ‘클로저’ ‘브이 포 벤데타’ ‘블랙 스완’, ‘토르’ 등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미국 텍사스주의 기원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미국 텍사스주의 기원

    현재 미국 국토의 4분의1가량을 차지하는 남서부 지역, 즉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애리조나, 콜로라도, 뉴멕시코, 텍사스 주는 19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에스파냐 식민지였다. 신생 미국은 미시시피강 언저리까지만 진출한 상황이었다. 그러다 1803년 제퍼슨 정부가 나폴레옹으로부터 프랑스 식민지인 루이지애나를 헐값에 매입해 미국은 에스파냐 식민지와 국경을 맞대게 됐다. 이후 1810년 중부 아메리카에서는 에스파냐의 식민지배에 대항한 봉기가 일어났고, 1821년 8월 멕시코가 건국되면서 이제는 미국과 멕시코가 국경을 맞대게 됐다. 1820년 에스파냐 식민정부는 미국 출신 이민자 300여 가구에 현재의 텍사스 지역에 대한 이민과 개척, 토지 증여를 허락한 바 있었다. 1821년 이들의 리더였던 스티븐 오스틴은 새로운 멕시코 정부와 이민 조건을 둘러싸고 다시 협상해야 했고, 갓 독립한 멕시코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어렵사리 이민과 개척을 추진해 나갔다. 하지만 멕시코의 정치적 혼란은 진정될 기미가 안 보였고, 멕시코 정부의 이민자에 대한 통제와 억압은 가혹해져 갔다. 특히 가톨릭으로의 개종과 에스파냐어 사용을 강제하는 조치가 취해지면서 미국 출신 이민자들의 불만은 더욱 커져 갔다. 이러한 와중에 멕시코 정부가 허가하지 않은 이민자들이 멕시코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더욱 몰려들었다. 독일 지역 출신이 주류였던 유럽의 이민자들은 미국을 거쳐 새로운 텍사스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정착해 나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허가받은 이들과 달리 이 새로운 이민자들은 멕시코 입장에서는 엄연한 불법 이민자들이었다. 멕시코 정부와 이민자들 간의 갈등은 더욱 커져만 갔고, 결국 1835년 미국의 입장에서는 ‘혁명’으로 지칭하는 이민자들의 반란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텍사스군은 알라모 전투에서 치명타를 입기도 했지만 1836년 4월 산하신토 전투에서 멕시코 대통령을 포로로 잡으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텍사스는 독립 공화국이 됐지만, 내부에서 점차 미국으로 편입돼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됐다. 미국에서도 이를 당연히 여겨 1845년 텍사스를 새로운 주로 편입했다. 이는 당연히 멕시코의 분노를 촉발했다. 멕시코는 텍사스의 독립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텍사스 봉기를 멕시코 땅을 빼앗기 위한 미국의 계략으로 해석했다. 결국 1846년 4월 양국 사이의 전쟁이 멕시코 북서부 지역 전역에서 치열하게 전개됐고, 1848년 미국의 대승으로 끝났다. 미국은 앞서 언급한 현재의 거대한 남서부 지역을 획득했고 이는 향후 미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49년 캘리포니아에서는 사금이 발견돼 서부 개척이 시작됐고, 새로 획득한 여러 주는 노예제 문제와 관련해 남북전쟁으로 향하는 정치적 긴장을 고조시켰다. 그리고 멕시코의 국력은 크게 약화됐다. 최근 미국 대선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텍사스로 밀려드는 ‘불법 이민자’ 문제라고 한다. 텍사스의 기원을 돌이켜볼 때 묘한 역설적 슬픔이 밀려온다.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 유럽 최초의 지하철을 보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기억하다 [한ZOOM]

    유럽 최초의 지하철을 보며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기억하다 [한ZOOM]

    1804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2세(Franz II·1768~1835)가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약 800년을 이어온 신성로마제국이 역사의 뒤로 사라졌다. 프란츠 2세는 오스트리아, 보헤미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 남은 국가들을 합쳐 동군연합(同君聯合·동일 군주를 모시는 연합체) 국가인 ‘오스트리아제국’을 세웠다. 1848년 오스트리아제국 헝가리에서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제국은 러시아제국의 지원을 받아 혁명을 진압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오스트리아제국의 위상은 하락세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866년 오스트리아제국은 프로이센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독일 연방에서의 영향력마저 상실했다. 오스트리아제국의 위기를 느낀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 I·1830~1916) 황제는 제국 내에서 오스트리아 다음으로 규모가 큰 헝가리에게 공동국가를 제안했다. 기나긴 대타협의 결과 1867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탄생했고, 헝가리는 재정, 외교, 국방 외 분야에서 확실한 자치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유럽대륙 최초로 지하철이 등장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세운 황제에게는 헝가리 국민들의 민심을 얻어야 하는 다음 숙제가 남아 있었다. 황제는 오래 전부터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의 재건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는 오스만제국 침략을 막기 위해 세운 성벽을 허물고 그 자리에 순환도로(링슈트라세·Ringstraße)를 만들었다. 그리고 순환도로를 따라 정부기관, 박물관, 미술관 등을 세웠다. 따라서 진행대로라면 다음 순서는 수도 빈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철도 체계를 만드는 것이었다. 황제는 헝가리 국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 빈이 아닌 부다페스트에 먼저 도시철도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부다페스트 도시철도는 1892년 착공하여 1896년 개통되었다. 이렇게 전세계 두 번째 도시철도이자, 유럽대륙 최초의 도시철도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만들어졌다.유럽대륙 최초 지하철의 우여곡절 하지만 유럽대륙 최초의 도시철도는 거기서 멈추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해체되었고, 헝가리는 유럽대륙의 약소국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패전국이 되면서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소련은 헝가리 국민들의 민심을 달래야만 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같이 도시철도를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게 부다페스트에는 1호선이 완공된 1896년으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1970년 2호선, 1976년 3호선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19세기 만들어진 1호선은 고전적인 분위기가 나는데 반해, 소련이 만든 2호선과 3호선은 소련의 느낌이 난다. 1989년 동유럽에 자유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헝가리 역시 소련에서 독립하여 마침내 헝가리 공화국이 되었다. 헝가리 정부는 1990년대 지하철 확장을 계획했지만 1990년대 동유럽의 혼란과 2000년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약 38년 후인 2014년에서야 4호선을 개통할 수 있었다. 1896년 1호선, 1970년 2호선, 1976년 3호선, 2014년 4호선 이렇게 19세기부터 21세기의 모습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는 부다페스트 도시철도는 2002년 전 세계 모든 도시철도 가운데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그리고 유럽대륙의 첫번째 도시철도는 다섯 번째 노선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1호선만 좌측통행, 2~8호선은 우측통행 “1호선만 좌측통행, 2~8호선은 우측통행. 헷갈렸다간 거꾸로 타요. 출퇴근 시간 뒤바뀌죠. 정신만 차리면 괜찮아요. 멋대로 달리는 지하철” 대한민국 뮤지컬의 전설 ‘지하철 1호선’(김민기 연출) 1부가 끝날 때쯤 모든 배우가 무대에 올라 함께 불렀던 노래 ‘일호선’의 가사이다. 노래가사처럼 서울 수도권 지하철 노선에서 1호선은 좌측으로, 2호선부터는 우측으로 통행한다. 물론 일부 구간이나 노선에서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일각에서는 지하철 1호선을 일제시대에 일본이 만들었고, 나머지 노선은 해방 후에 만들었기 때문에 운행방향이 다르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1호선 착공이 1971년이었기 때문에 일제시대가 아니라 해방 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다. 아마도 당시 우리나라 기술로는 지하철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일제시대에 일본이 만들었다는 오해가 생긴 것 같다. 또한 1호선이 좌측통행을 하는 것은 일본 기술자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 군수물자 운반을 위해 설치한 경부선 선로와 연결해야 했기 때문에 경부선과 같은 좌측통행으로 결정한 것이었다.학전 어게인(again), 학전 포에버(forever) 유럽대륙 최초의 도시철도의 역사를 머리 속으로 정리하며 퇴근길 지하철에 올라탔다. 우리나라 도시철도는 유럽대륙 보다 시작은 약 80년 늦었다. 하지만 쾌적함과 편리함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니 역사를 비교하기 보다는 자부심을 먼저 가져도 될 것 같다. 지하철 좌석에 앉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정리한 내용을 적어 나가고 있었다. 그때 김민기 대표의 건강과 재정난을 이유로 대학로 ‘학전’이 문을 닫는다는 속보가 올라왔다. 갑자기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20대의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이자, 대학로를 찾으면 공연이 없어도 괜히 근처를 서성거리며 추억을 되새김질 헸던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퇴근길 내내 학전의 모든 공간을 채우던,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록음악이 그리워졌다.
  • [데스크 시각] 역사 창작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데스크 시각] 역사 창작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프랑스 혁명군을 이끌며 유럽 대부분을 정복한 군사 천재, 프랑스 변두리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황제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19세기 초까지 그의 존재감은 강력했으나 한편으로는 전쟁광이자 독재자로 불린다. 7개 대형 분쟁을 치르며 유럽에서 최소 300만명이 사망했다. 정권을 비판한 이들을 추방하거나 투옥했고 귀족제와 식민지 노예제도를 부활시킨 탓이다. 지난해 11월 영국 영화 거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이 개봉하자 고증에 실패했다는 평가만 이어졌다. 나폴레옹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처형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 영국 육군 최고 지휘관인 웰링턴 공작을 만나는 장면 등 흥미로운 요소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학계의 비판이다. 특히 프랑스 매체들은 “프랑스 역사를 왜곡한 반프랑스적 영화”라며 비난을 쏟아부었다. 역사 영화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대표적 사례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JFK’(1991)다.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 사건을 오즈월드의 단독 범행이 아니라 정부 고위층이 개입했다는 음모론으로 바라봤다. 워낙 치밀한 각본과 케빈 코스트너, 토미 리 존스 등 명배우의 연기로 아카데미영화상 8개 부문 후보에도 지명됐다. 그러다 보니 음모론을 사실이라고 믿을 우려가 대두됐다. 개봉 후 1992년 갤럽 조사에선 77%가 음모론을 믿는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갤럽 조사를 보면 이미 1970년대부터 70~80% 미국인은 케네디 사망에 음모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영화를 사실이라고 신뢰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의미다. 지금 ‘건국전쟁’을 두고 논란이 크다. 영화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것인데, 물론 이 전 대통령의 공도 없지는 않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이 어떤 인물인지 학교에서 짧은 현대사 시간에 배웠고 이후 과거사 진상보고서 등으로 많이 알고 있어 볼 엄두는 안 난다. 제주4·3사건 관련 보고서는 1947년부터 8년 가까이 제주도에서 무고한 민간인 1만 4442명을 학살하도록 지시한 세력으로 이 전 대통령,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서북청년회 등을 지목한다. 1만명에 달하는 여수·순천 주민이 사망한 사건이나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해 대전·거창·산청·함양·문경 등에서 당시 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은 양민이 수십만 명에 이른다. 모두 좌익세력 색출을 명목으로 삼았다. 해방 후 친일 행태를 청산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약화시켰고 정적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법살인을 저질렀다. 헌법을 유린해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3·15 부정선거의 여파로 4·19 혁명이 일어 결국 이 전 대통령은 하야했다. 집권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양민 학살은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한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봉한 ‘건국전쟁’과 뒤따르는 논란을 보면서 역사 창작물의 순기능을 떠올려 본다. 그 바탕에는 창작의 자유와 선택의 존중을 깔아 뒀다. 어떤 음흉한 속셈으로 역사를 철저히 왜곡하지 않는 한, 인권 유린이나 학살 같은 반인륜적인 행태를 없던 일로 치부하거나 미화하는 또 다른 폭력이 아닌 한 긍정적인 기능은 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내에서 나폴레옹의 공과를 재조명하게 했고, ‘JFK’로서 미국 의회는 케네디 암살에 관한 기록물을 세상에 공개했다. ‘건국전쟁’으로써 이 전 대통령의 평가를 어떻게 내려야 할지 알게 되지 않을까. 105주년 3·1절에 내놓은 대통령 기념사에는 ‘어느 누구도 역사를 독점할 수 없으며’라는 문구가 있다. 여전히 일본과의 파트너십을 강조한 부분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이 문구 액면 그대로는 동감한다. 역사는 일방적인 판단이 아니라 끊임없는 검증의 작업이다. 결국 중요한 건 우리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려는 노력과 비판적 사고를 키우려는 행동,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자세다. 최여경 국제부장
  • ‘냉면 사건’ 14년 후… 아이유, 박명수 앞 ‘눈물’ 글썽

    ‘냉면 사건’ 14년 후… 아이유, 박명수 앞 ‘눈물’ 글썽

    가수 아이유가 박명수의 진심이 담긴 선물에 눈물을 보였다. 이어 14년 전 있었던 ‘냉면’ 사건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할명수’에는 ‘울다 웃다 아이유(IU)와 10년만에 티키타!카 했습니다, 할명수 ep.172’라는 제목의 영상이 업로드됐다.아이유와 박명수는 2009년 MBC ‘무한도전’을 통해 만났다. 당시 아이유는 해당 프로그램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에서 박명수와 제시카가 함께한 노래 ‘냉면’에 객원 보컬로 참여했다. 이후 이들은 2015년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서 ‘레옹’으로 듀엣 무대도 함께 하는 등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박명수는 여러 방송을 통해 명절마다 아이유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며 고마움을 표한 바 있다. 그간 아이유의 선물에 보답하기 위해서일까. 이날 박명수는 아이유에게 여러 선물을 건넸다. 장미 100송이에 이어, 아이유의 할머니 선물까지 준비해 눈길을 끌었다. 그뿐만 아니라 PPL이 아닌, 직접 본인이 구매한 디퓨저임을 강조하며 선물 공세를 펼쳐 훈훈함을 자아냈다. 장미꽃 100송이를 받은 아이유는 “와 대박이다. 이 옷까지 해서 세트 같다. 감사해요. 선생님”이라며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박명수는 “다음 선물이 있는데 빨리 끝내겠다. 할머니 계시지?”라고 이야기하며 아이유의 할머니 선물까지 준비한 모습을 보였다. 아이유는 “눈물 나려고 한다”라며 눈시울을 붉혔고, 이어 “완전 고급 포장. 진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해당 선물은 궁중 한과였다. 디퓨저 선물까지 이어지자, 아이유는 10년 치 감동을 몰아받는 모습을 보여 웃음을 안겼다. 아이유는 “명수 선생님의 참 안목으로. 진짜 너무 좋다. 너무 감사하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선생님 왜 이렇게 다정해지셨냐. 원래 다정하신 건 알았는데 다정함을 드러내시는 게 너무 좋은 것 같다. 원래 처음 뵀을 때부터 다정하신 거 알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 17살에 처음 만난 거 아시냐. ‘냉면’ 대타하러 갔을 때”라며 ‘냉면 사건’을 언급했다. 박명수는 “그때 진짜 화가 났긴 했다”면서 “어떻게 된 거냐면 자산 록 페스티벌에서 ‘냉면’을 부르기로 했는데 제시카를 데려오라 그랬다”라며 ‘냉면 사건’을 설명했다. 당시 대타로 나온 아이유 앞에서 박명수가 “제시카 데려와!”라며 소리를 높였다는 것. 아이유는 ‘좋은 날’로 뜨기 전이었다고. 앞서 아이유는 웹 예능 핑계고에 출연해 이를 언급하며 “그 일로 명수 선생님이 지금까지 사과한다”고 밝힌 바 있다.
  • [씨줄날줄] 중립국의 운명

    [씨줄날줄] 중립국의 운명

    중립국은 전쟁이 발발해도 어느 한쪽 나라의 편을 들지 않는 나라를 말한다. 영세중립국은 국제법상 조약에 의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뿐 아니라 타국 간 전쟁에서도 중립을 지키는 대신 영토의 보전과 독립이 보장되는 국가다. 대표적으로 스위스, 오스트리아, 라오스 등이 있다. 영세중립국의 상징인 스위스는 치열한 내전과 주변 국가들의 침략을 막기 위해 중립 정책을 표방해 왔다. 대내적으로는 15세기 중엽부터 자치권을 가진 각 주의 영토 획득 내전을 방지하려는 정책적 고려였다. 국제적으로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4개국으로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1499년 독립 이후 중립 정책을 유지해 온 스위스는 나폴레옹 전쟁 이후 열린 1815년 빈회의에서 영세중립국으로 공인받았다. 2차 대전의 패전국인 오스트리아는 승전국들에 의해 강제로 중립국이 된 경우다. 2차 대전 초기에 독일에 점령당했다가 독일이 패전하자 1945년 7월 4일 모스크바선언으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분할 통치를 받게 된다. 이후에도 소련의 반대로 영세중립국 지위를 획득하지 못하다가 1955년 중립국을 선언한 뒤 세계 55개국의 승인을 얻었다. 중립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립 노선을 표방했던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무력 침공을 받아 1945년 중립 노선을 포기했다.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역시 1·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난 뒤 1949년 영세중립국을 포기하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제국은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두고 중립국을 선언했으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겼다. 2년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립국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스웨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2022년 5월 200년 넘게 유지해 온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핀란드와 함께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핀란드는 지난해 4월 31번째 나토 가입국이 됐다. 반면 반대하던 헝가리의 승인으로 스웨덴은 이르면 새달 1일 나토의 32번째 회원국이 된다. 러시아와 북한의 밀월이 갈수록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사라지는 중립국들이 던지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 ‘英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6대손 별세’

    ‘英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6대손 별세’

    19세기 가장 부유한 가문이자 각종 음모론의 주인공이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의 6대손 제이콥 로스차일드 경이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6일(현지시간) 그의 가족은 성명을 발표하고 “우리 아버지 제이콥은 많은 사람의 삶에서 큰 존재였다”며 “유대인 관습에 따라 소규모 가족장을 치를 예정”임을 밝혔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명성은 1700년대 후반 독일 프랑크푸르트 빈민가에서 골동품 중개인으로 큰 성공을 거둔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로 시작된다. 암셸은 아들 5명을 유럽 각지로 보내 사업을 확장하며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패배를 예상하고 영국 국채를 매입하면서 엄청난 부를 갖게 된다. 별세한 로스차일드 경은 다섯 아들 가운데 영국 맨체스터로 간 셋째의 후손으로 영국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가족 은행인 NM 로스차일드에 합류했다. 하지만 사촌과의 전략 분쟁으로 가족 사업을 떠나 투자 신탁업체인 알아티 캐피털 파트너스를 설립해 런던 증권거래소의 가장 큰 신탁업체로 키웠다. 미국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자문위원이기도 했던 로스차일드 경은 자선사업가이자 예술 후원가로 영국 전역의 건축 복원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국립미술관 이사회 의장, 헤리티지 복권기금 의장 등을 역임하며 서머싯 하우스, 스펜서 하우스 등 영국 신고전주의 건축의 상징과도 같은 건물들을 복원했다. 그는 1998년 영국 아카데미 명예 회원이 됐고 2002년 여왕으로부터 공로 훈장을 받았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팔레스타인의 땅 약 80%를 매입해 이스라엘 건국의 기반을 닦은 것으로도 유명한데 로스차일드 경은 이스라엘 자선 재단인 야드 하나디브 재단의 회장으로 29년간 활동했다. 조지 오스본 전 영국 재무장관은 “그는 자신의 특권을 최대한 활용해 영국의 문화 및 상업에 크게 공헌했다”며 “똑똑하고 호기심 많으며 새로운 프로젝트와 건조한 유머로 가득찬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 30대 아이유 출발도 ‘음원 차트 줄 세우기’

    30대 아이유 출발도 ‘음원 차트 줄 세우기’

    “혹시 나의 안부를 묻는 누군가 있거든 전해 줘/걔는 홀씨가 됐다구”(‘홀씨’) 아이유의 새 미니 음반 ‘더 위닝’의 5곡 전곡이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과 지니, 벅스 등 실시간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음원 퀸’의 귀환을 알렸다. 21일 최신 차트에 따르면 ‘더 위닝’의 더블 타이틀곡 ‘쇼퍼’와 ‘홀씨’는 멜론 ‘톱100’ 3위와 5위에 안착했다. 그룹 뉴진스의 혜인이 피처링하고 2012년 돌연 은퇴를 선언했던 원로 가수 패티김의 내레이션이 깔린 ‘쉬’(Shh..)는 9위, ‘관객이 될게’는 14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24일 선공개된 ‘러브 윈스 올’은 발매 직후부터 지금까지 부동의 1위다. 글로벌 관심도 뜨겁다. 이날 기준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에서는 태국, 베트남, 브라질 등 15개 국가·지역에서 ‘더 위닝’이 정상을, 유튜브 뮤직의 인기 급상승 섹션에서도 타이틀 두 곡이 정상권에 들었다. 미니 음반이지만 2021년 12월 ‘조각집’ 이후 2년 2개월여 만에 발매됐고 ‘레옹’과 ‘삐삐’ 등 메가 히트곡을 만들어 낸 이종훈·이채규 작곡가가 의기투합한 데다 아이유가 전곡 모두 가사를 쓴 ‘아이유표 노랫말’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30대가 된 아이유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만의 승리를 정의한다. 그는 지난 19일 인터뷰 영상에서 앨범 주제에 대해 “아무도 헷갈리지 않게끔 앨범 이름으로 박았다”며 당당히 ‘승리’라고 밝혔다. 그에게 승리의 의미는 ‘더 많이 성공하고 더 많이 돈을 번다’는 물질적 욕망의 실현이 아니다. 올해 데뷔 16년을 맞은 아이유는 신곡 ‘홀씨’에 비유한 자신의 삶과 욕망,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꼭 꽃으로 피어나야만 결실을 맺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고 담담하게 전한다. ‘러브 윈스 올’에서는 어떤 위기도 이겨 내는 단단한 사랑의 힘을, ‘쇼퍼’에서는 당당하게 욕망하는 삶을, 그리고 화려하게 꽃피우지 않아도 하나의 멋진 씨로 살아가는 홀씨의 포부를 담아 낸 앨범이다. 다음달 2~3일과 9~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4회에 걸쳐 열리는 ‘아이유 허(H.E.R.) 월드투어 서울 콘서트’는 일찌감치 전석 매진돼 6만명이 아이유의 컴백 공연을 함께한다.
  • 꼭 꽃으로 피어나야만 결실을 맺는 건 아니라는 아이유…앨범 전곡 차트 줄세우기

    꼭 꽃으로 피어나야만 결실을 맺는 건 아니라는 아이유…앨범 전곡 차트 줄세우기

    “혹시 나의 안부를 묻는 누군가 있거든 전해줘/ 걔는 홀씨가 됐다구”(‘홀씨’) 아이유의 새 미니음반 ‘더 위닝’의 5곡 전곡이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과 지니, 벅스 등 실시간 차트 상위권을 휩쓸며 ‘음원퀸’의 귀환을 알렸다. 21일 최신 차트에 따르면 ‘더 위닝’의 더블 타이틀곡 ‘쇼퍼’와 ‘홀씨’는 멜론 ‘톱100’ 3위와 5위에 안착했다. 그룹 뉴진스의 혜인이 피처링하고 2012년 돌연 은퇴를 선언한 원로가수 패티김의 내레이션이 깔린 ‘쉬’(Shh..)는 9위, ‘관객이 될게’는 14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24일 선공개된 ‘러브 윈스 올’은 발매 직후부터 지금까지 부동의 1위다. 글로벌 관심도 뜨겁다. 이날 기준 아이튠즈 톱 앨범차트에서 태국, 베트남, 브라질 등 15개 국가·지역에서 ‘더 위닝’이 정상을, 유튜브 뮤직의 인기 급상승 섹션에서도 타이틀 두 곡이 정상권에 들었다. 미니음반이지만 2021년 12월 ‘조각집’ 이후 2년 2개월여 만에 발매됐고, ‘레옹’과 ‘삐삐’ 등 메가 히트곡을 만들어 낸 이종훈·이채규 작곡가가 의기투합하고 아이유가 전곡 모두 가사를 쓴 ‘아이유표 노랫말’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30대가 된 아이유는 이번 앨범을 통해 자신만의 승리를 정의한다. 그는 지난 19일 인터뷰 영상에서 앨범 주제에 대해 “아무도 헷갈리지 않게끔 앨범 이름으로 박았다”라며 당당히 ‘승리’라고 밝혔다. 그에게 승리의 의미는 ‘더 많이 성공하고 더 많이 돈을 번다’는 물질적 욕망의 실현이 아니다. 올해 데뷔 16년을 맞은 아이유는 신곡 ‘홀씨’에 비유한 자기 삶과 욕망,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꼭 꽃으로 피어나야만 결실을 맺는 건 아닐 수도 있겠다”고 담담하게 전한다.‘러브 윈스 올’이 어떤 위기도 이겨내는 단단한 사랑의 힘을, ‘쇼퍼’에서는 당당하게 욕망하는 삶을, 그리고 화려하게 꽃 피우지 않아도 하나의 멋진 씨로 살아가는 아이유만의 포부를 담아낸 앨범이다. 다음 달 2~3일과 9~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4회에 걸쳐 열리는 ‘아이유 허(H.E.R.) 월드투어 서울 콘서트’는 일찌감치 전석 매진돼 6만명이 아이유의 컴백 공연을 함께한다.
  • [열린세상] ‘무법자’ 조국의 출마 선언/유창선 정치평론가

    [열린세상] ‘무법자’ 조국의 출마 선언/유창선 정치평론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4월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무능한 검찰독재 정권 종식을 위해 맨앞에서 싸우겠다”는 출사표였다. 그러나 그가 어떤 상황인지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지난 8일 조 전 장관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업무방해·청탁금지법 위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그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대신 재판부는 “원심과 이 법원에서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거나 그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고, 무엇보다 범죄 사실에 대한 인정이 전제되지 않은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양형 기준상의 진지한 반성이라고 평가하기도 어렵다”고 질타했다. 조 전 장관이 법정 구속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버젓이 총선 출마를 하는 광경은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됐던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씨와도 대비된다. 지난해 7월 항소심 선고에서 최씨는 통장잔고 증명서 위조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항소심까지 충분히 방어권이 보장됐으며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법정 구속을 했다. 당시 최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판결은 끝났다. 대통령의 장모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돼 실형 선고까지 받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법 앞에서는 대통령의 장모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준 장면이었다.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두 사건의 판결 결과는 묘한 대비를 드러낸다. 징역 1년을 선고받은 대통령의 장모는 법정 구속돼 감옥에 갇힌 반면 그보다 형량이 높은 조 전 장관은 법정 구속을 면하고 선거 출마까지 했다. 조 전 장관의 경우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이 설명됐지만, 현직 대통령의 장모 또한 그럴 우려가 없음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상고심에서야 사실을 다투는 것도 아니니 증거인멸의 필요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대통령 장모의 사례를 떠나서 2심에서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구속되는 것이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다. 문제는 재판부의 이 같은 관용적 판결이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 전 장관은 “4월 10일은 무도하고 무능한 윤석열 정권 심판뿐 아니라 복합 위기에 직면한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입시 비리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2심에서까지 징역형을 선고받은 당사자가 총선에 출마한다는 것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우리 정치가 정상적이라면 당연히 공천 배제의 1순위 대상이어야 한다. 여론의 역풍을 불사하면서 조 전 장관이 출마를 강행하려는 것은 일종의 ‘원한 감정’(르상티망)일 것이다. 그러나 성찰 없는 복수의 적개심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전복시킬 위험이 농후하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니코프도 자신에게 갇혀 있었다. 자신을 나폴레옹과 같은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로 생각했던 라스콜니코프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심지어 살인조차도 허용된다고 믿었다. 오만했던 그로 하여금 죄를 뉘우치게 한 것은 여인 소냐의 사랑이었다. 자신이 죽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해롭기만 한 ‘이’(蝨)라고 믿었던 오만함에서 빠져나오고서야 그는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법원의 일관된 판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만함의 성에 갇혀 있는 조 전 장관은 그가 주장하는 ‘검찰독재 정권’을 심판할 자격이 없다. 카뮈의 소설 ‘전락’에 나오는 정의로운 변호사 클라망스는 그 시대의 다른 사람들을 심판하기 위해 먼저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며 참회했다. 심판도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해야 공감을 얻는다. 법원의 거듭된 판결도 무시하면서 출마하겠다는 조 전 장관의 모습은 ‘심판자’가 아니라 ‘무법자’에 가깝다.
  • 100년 전 ‘망명녀’ 다시 잇다

    100년 전 ‘망명녀’ 다시 잇다

    신랄하고 리듬감 넘치는 근대 여성 작가 김말봉의 이야기를 한 세기 뒤의 여성 작가인 박솔뫼가 이어서 썼다. 같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말씨도 어휘도, 심지어 그들이 서 있는 마음의 풍경조차도 크게 다르다.‘기도를 위하여’(작가정신)는 출판사의 프로젝트인 ‘소설, 잇다’의 네 번째 책이다. 근대와 현대의 여성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한 뒤 이들의 소설을 한 권의 책에 담아서 읽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선배가 쓴 소설의 뒷이야기를 후배가 상상력을 발휘해 이어 나가는 방식이다. “나를 흉악한 구렁에서 건져낸 은인에게 머리를 베어 신이라도 삼아 바쳐야 할 윤숙이에게 이렇게 쓴잔으로 갚아야 되는가 어디 남자가 없어서 하필 윤숙이의 애인을 빼앗게 되는고……”(‘망명녀’, 44쪽)김말봉의 데뷔작 ‘망명녀’는 박솔뫼의 ‘기도를 위하여’로 이어진다. 담배와 모르핀에 중독된 명월관 기생 최순애는 친구 허윤숙의 도움으로 구렁텅이 같은 삶에서 빠져나올 계기를 얻는다. 그러나 이미 흐트러진 생활의 기강을 혼자서 다잡는 건 어려운 일. 그러던 순애는 별안간 윤숙의 애인 윤정섭이 설파하는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고, 자연스레 그에게도 이끌린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 떠오르는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 순애는 정섭과 결혼을 맹세하고 그와 함께 나라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둘의 결혼식 날 정섭은 순애에게 소포를 보내는데, 어떤 위험한 물건을 전해 달라는 내용이다. 박솔뫼는 감옥에 갇힌 순애와 정섭이 ‘옥중 혼례’를 치른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이번에도 윤숙의 도움으로 순애는 감옥을 빠져나오지만, 목숨을 오래 부지하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하지만 죽은 순애는 이내 산 사람의 세계로 넘어오고 순애의 혼과 윤숙, 정섭은 한자리에 눕는다. 셋은 각자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단편과 장편을 넘나들며 활약한 김말봉은 개성이 뚜렷한 필치에도 불구하고 문학사에서 좀처럼 제대로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는 당대 어느 문학평론가가 소설을 왜 쓰느냐고 묻자 대뜸 “돈 벌려고 쓰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누가 뭐래도 소설은 재밌어야 하고 널리 읽혀 독자들에게 선의의 감동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설은 철저히 대중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철칙을 지켰던 그는 현실에서도 대중 안에 있었다. 3·1운동 때 시위대 맨 앞에 있다가 구금됐으며, 해방 후에는 공창 폐지 입법화에도 앞장섰던 대가 센 여성 운동가다. ‘망명녀’ 외에도 김말봉의 걸작 단편 ‘고행’과 ‘편지’도 실려 있다. 특히 ‘고행’은 읽고 있으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좀체 참을 수 없을 정도다. 같이 영화를 보기로 한 아내를 속이고 내연녀 ‘미자’의 집으로 간 주인공 남성. 그러나 미자와 절친한 사이인 그의 아내도 때마침 미자네 집으로 찾아온다. 결국 알몸으로 벽장에 숨어서는 아내가 한시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기만을 기다린다. 하필 수박을 한 접시 먹고 거기다가 맥주까지 마신 그는 밀려오는 요의에 정신이 아득해지는데…. 힘껏 오줌을 참으면서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을 합리화하는 그의 모습은 애잔하기 짝이 없다. “그래 남자가 오입 좀 하였기로서니 어떻단 말이야. 세계를 정복한 나폴레옹의 궁중 생활은 어떠하였으며 더구나 진시황은 삼천 궁녀를 그리고 솔로몬 왕은 일천 왕비를 두지 않았는가. 남자가 이렇게 담이 없고 기분이 없어 어디다 써?”(‘고행’, 82쪽)
  • “개 124마리와 촬영, 기쁘면서도 난장판이었다”

    “개 124마리와 촬영, 기쁘면서도 난장판이었다”

    “40년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연기에 충격받은 배우가 3명 있습니다. 게리 올드먼, 최민식 그리고 이번 영화에 출연하는 케일럽 랜드리 존스입니다.” 24일 개봉한 영화 ‘도그맨’을 연출한 프랑스의 거장 뤼크 베송(65) 감독이 주연배우에 대해 극찬하며 한국 대표 배우 최민식을 언급했다. ‘안나’(2019)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그는 전날 한국 기자들과의 화상 간담회에서 “퀄리티가 굉장히 좋은 곳(한국)에서 개봉하는 만큼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흥분된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영화는 아버지의 학대로 철창에 갇혀 개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 남자가 개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얻은 뒤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작품을 구상할 당시 극중 인물을 완성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다고 밝힌 그는 “보통 60% 정도만 구상하고 나머지는 상황, 배우, 연기에 의존해 촬영하면서 만들어 간다”고 작업 방식을 소개했다. 특히 더글러스 역을 맡은 존스에 대해 “6개월 동안 그와 영화를 준비했다”면서 “존스의 연기를 보며 ‘레옹’(1995)을 연출할 때 느꼈던 충격을 또 느꼈다”고 말했다. 최고로 꼽은 다른 배우 최민식에 대해서는 “작업할 때 의사소통이 안 돼 표정과 몸짓만으로 디렉팅을 했는데 너무나 좋은 연기를 펼치더라”고 덧붙였다. 최민식은 앞서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2014)에 출연했다. 베송 감독이 당시 2시간 동안 최민식에게 출연을 부탁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영화에는 무려 124마리의 개가 등장한다. 그는 이 작업에 대해 “매일매일 정말 기쁘고 즐거우면서도 난장판이었다”고 소개했다. “다섯 마리는 훈련이 됐고 나머지는 전혀 훈련이 안 된 개들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다섯 살짜리의 생일 파티에 124명의 친구가 온 모습이었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는 한국 영화인과 다시 협업할 가능성에 대해 “예술계는 유일하게 언어나 어떤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열려 있는 분야”라며 “훌륭하게 잘하기만 하면 다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도그맨’ 뤽 베송 “인생최고 배우 3명 중 하나가 최민식”

    ‘도그맨’ 뤽 베송 “인생최고 배우 3명 중 하나가 최민식”

    “40년 동안 영화를 만들면서 연기에 충격받은 배우가 3명 있습니다. 게리 올드만, 최민식, 그리고 이번 영화에 출연하는 케일럽 랜드리 존스입니다.” 24일 개봉한 영화 ‘도그맨’을 연출한 프랑스의 거장 뤼크 베송(64) 감독이 주연 배우에 대해 극찬하며 한국 대표 배우 최민식을 언급했다. ‘안나’(2019)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그는 23일 한국 기자들과 화상 간담회에서 “퀄리티가 굉장히 좋은 곳(한국)에서 개봉하는 만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흥분된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영화는 아버지의 학대 탓에 철창에 갇혀 개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 남자가 개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특별한 능력을 얻은 뒤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베송 감독은 더글라스 역을 맡은 존스에 대해 “6개월 동안 그와 영화를 준비했다”면서 “존스의 연기를 보며 ‘레옹’(1995)을 연출 할 때 느꼈던 충격을 또 느꼈다”고 했다. 작품을 구상할 당시 극 중 등장하는 인물들을 완성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다는 베송 감독은 “보통 60% 정도만 구상하고 나머지는 상황, 배우, 연기에 의존해 촬영하면서 만들어간다”라고 작업 방식을 소개했다. 영화에서 더글라스는 휠체어를 타고 직업을 구하지만, 여의치 않자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베송 감독은 이에 대해 “일자리를 찾을 때 모두가 거부하지만 유일하게 카바레에서 기회를 준다. 여장을 하는 건 다른 사람을 연기할 수 있는 장치”라면서 “영화를 통해 사회에서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더 잘 받아들이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고로 꼽은 다른 배우 최민식에 대해서는 “작업할 때 의사소통이 안 되어 표정과 몸짓만으로 디렉팅을 했는데도 너무나 좋은 연기를 펼치더라”고 덧붙였다. 최민식은 앞서 베송 감독 영화 ‘루시’(2014)에 출연했다. 베송 감독이 당시 2시간 동안 최민식에게 출연을 부탁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도그맨’에는 무려 124마리의 개가 등장한다. 그는 이 작업에 대해 “매일매일 정말 아주 기쁘고 즐거우면서도 난장판이었다”고 소개했다. “다섯 마리는 훈련이 됐고 나머지는 전혀 훈련이 안 된 개들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다섯 살짜리의 생일 파티에 124명의 친구가 온 모습이었다”고 유쾌하게 웃었다. 한국 영화인과 다시 협업할 가능성에 대해 “예술계는 유일하게 언어나 어떤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열려 있는 분야”라면서 “훌륭하게 잘하기만 하면 다 함께 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장애와 외로움, 절망 앞에서… 개들로부터 구원받다 [영화 프리뷰]

    장애와 외로움, 절망 앞에서… 개들로부터 구원받다 [영화 프리뷰]

    총기 사고로 하반신 불구 된 남자개 마음대로 부리는 초능력 얻어악당 ‘조커’ 연상케 하는 연기 호평 잔혹한 갱단이 모여 있는 술집에 큰 개 한 마리가 달려 들어오더니 두목의 성기를 물어 버린다. 이어 한 남성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고 “주민들에게 자릿세를 뜯지 말라”는 협박이 이어진다. 두목이 알겠다고 하자 개는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 버린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뤼크 베송 감독의 신작 ‘도그맨’은 개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투견을 키우는 가정에서 자란 더글러스(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굶는 개에게 몰래 먹이를 줬다는 이유로 철창에 갇혀 개들과 함께 살아간다. 어느 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아버지가 더글러스를 향해 총을 쏘고, 파편이 척추에 박혀 그는 하반신 불구가 된다. 공교롭게도 더글러스는 이 사건으로 개들을 부릴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얻게 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휠체어를 탄 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데다 좋아했던 여성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그는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한다. 더글러스 역을 맡은 배우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영화 초반 기이한 모습과 언행에 언뜻 악당 ‘조커’를 떠올릴 법하다. 개를 부리면서 악당을 공격하는 모습에서는 언뜻 ‘레옹’의 모습도 묻어난다. 그러나 감독은 더글러스의 유년 시절과 그가 도그맨이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보여 주며 애정을 불어넣고 도그맨을 독특한 캐릭터로 만들어 낸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라는 프랑스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시구가 전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재미와 기이함, 그리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감독의 대표작으로 충분히 이름을 올릴 만하다. 115분. 15세 관람가.
  • 불행에 빠진 남자, 개들의 사랑으로 구원받다…영화 ‘도그맨’

    불행에 빠진 남자, 개들의 사랑으로 구원받다…영화 ‘도그맨’

    잔혹한 갱단이 모여 있는 술집에 큰 개 한 마리가 들어온다. 개는 곧장 두목에게 달려가 그의 성기를 물어버린다. 이어 두목에게 한 남성의 전화가 걸려 오고 “주민들에게 자릿세를 뜯지 말라”는 협박이 이어진다. 두목이 알겠다고 하자 개는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버린다. 일당들이 개를 쫓아가보지만, 개는 이미 사라진 후다. 24일 개봉하는 뤼크 베송 감독 신작 ‘도그맨’은 개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투견을 키우는 가정에서 자란 더글러스(케일럽 랜드리 존스)는 굶는 개에게 몰래 먹이를 줬다는 이유로 철창에 갇혀 흙바닥에서 개들과 함께 살아간다. 어느 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아버지가 더글러스를 향해 총을 쏘고, 파편이 척추에 박혀 하반신 불구가 된다. 공교롭게도 더글러스는 이 사건 이후 개들을 부릴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얻는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다. 휠체어를 타고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데다, 좋아했던 여성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은 그는 본격적으로 능력을 사용한다. 개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일종의 초능력을 소재로 삼아 상업 영화로서 재미를 톡톡히 챙긴다. 더글러스의 말을 알아듣는 개들의 표정이라든가, 팀을 꾸려 물건을 훔치거나 악당들을 함정으로 밀어 넣는 개들의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더글러스를 맡은 배우 케일럽 랜드리 존스의 존재감도 빛난다. 영화는 미국 뉴저지주 한 도심에서 여장을 한 해 피를 온몸에 묻힌 더글러스가 경찰에 체포돼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 초반 기이한 모습과 언행에 언뜻 악당 ‘조커’를 떠올릴 법하다. 개를 부리면서 악당을 공격하는 모습에서는 언뜻 ‘레옹’의 모습도 묻어난다. 그러나 감독은 더글러스의 유년 시절과 그가 도그맨이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며 애정을 불어넣고 도그맨을 독특한 캐릭터로 만들어낸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라는 프랑스 시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의 시구가 전체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배신하지 않는 개의 성품, 그리고 이를 사용할 줄 아는 도그맨을 인간 군상에 대비해 보여준다. 남을 괴롭히는 인간, 사실은 속물적인 인간, 탐욕에 가득한 인간과 대비되는 도그맨이 영화 말미 신을 부르짖는 장면이 강렬하다. 재미와 기이함, 그리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감독의 대표작에 충분히 이름을 올릴 만하다. 115분. 15세 관람가.
  • 코페르니쿠스의 무덤에 얽힌 괴이한 이야기 [이광식의 천문학+]

    코페르니쿠스의 무덤에 얽힌 괴이한 이야기 [이광식의 천문학+]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5세기 전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천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였다. 진정한 르네상스맨이었던 그는 수학자, 엔지니어, 작가, 경제 이론가 및 의사로도 활동했다. 1543년 폴란드 프롬보르크에서 사망한 코페르니쿠스는 지역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그의 무덤의 위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아무도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어떤 사람이었나?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폴란드의 중부 도시 토룬에서 태어났다. 그는 지역 상인에게서 태어난 네 자녀 중 막내였다. 아버지가 죽은 후 코페르니쿠스의 외삼촌이 그의 교육을 책임졌다. 코페르니쿠스는 18살인 1491년부터 1494년 사이에 크라쿠프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나중에는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볼로냐, 파도바, 페라라에서 공부했다. 의학, 교회법, 수리천문학, 점성술을 공부한 코페르니쿠스는 30살인 1503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바르미아의 주교후(主敎侯)였던 영향력 있는 외삼촌 루카스 바첸로데 밑에서 일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수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의사로 일했다. 당시에는 천문학과 음악이 모두 수학의 한 분야로 간주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두 가지 영향력 있는 경제 이론을 공식화했다. 1517년 그는 화폐수량론을 발전시켰는데, 이 이론은 나중에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에 의해 다시 심화되었고, 1960년대 밀턴 프리드먼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1519년 코페르니쿠스는 화폐의 유통과 가치 평가를 다루는 화폐 원리인 그레셤의 법칙으로 알려진 개념도 도입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모델 과학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공헌의 초석은 그의 혁명적인 우주 모델이었다. 지구가 우주의 고정된 중심이라고 주장하는 일반적인 프톨레마이오스 모델과 달리 코페르니쿠스는 지구와 다른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코페르니쿠스는 행성 궤도의 크기를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로 표현하여 비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연구가 교회와 동료 학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두려워했다. 그의 대작〈천구의 운동에 관하여>는 1543년 그가 사망하기 직전에야 출판되었다. 이 저작의 출판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획기적인 전환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으며,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지 20여 년 후에 태어난 갈릴레오와 같은 미래의 천문학자들을 위한 길을 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어디에 묻혔나?프롬보르크 대성당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마지막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들 무덤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다. 16세기와 17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코페르니쿠스의 유해 찾기 시도는 여러 번 실패를 거듭했다. 또 다른 실패한 한 사례는 1807년 아일라우 전투 이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에 의해 이루어졌다. 수학에 밝았던 나폴레옹은 코페르니쿠스를 박식가, 수학자, 천문학자로 높이 평가했다. 나폴레옹은 근대 천문학의 문을 연 위대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2005년에 폴란드 고고학자 그룹이 마침내 본격적인 수색에 착수했다. 프롬보르크 대성당의 참사원 위원을 지냈던 코페르니쿠스가 재임 기간 동안 자신이 담당했던 대성당 제단 근처에 묻혔을 것이라고 보는 역사가 예지 시코르스키의 주장에 따라 제단 근처를 조사했다. 이 제단은 현재 성십자가 제단으로 알려진 성 바츠와프 제단이다. 이 제단 근처를 집중적으로 발굴한 결과, 60~70세 남성의 불완전한 해골을 포함해 13개의 해골이 발견되었고, 그중 한 해골이 코페르니쿠스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법의학이 밝혀낸 ‘코페르니쿠스’제단 근처에서 발견된 문제의 두개골은 얼굴 재구성의 기초가 되었다. 형태학적 연구 외에도 DNA 분석은 역사적 유물이나 고대 유물을 식별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재구성된 두개골의 얼굴은 코페르니쿠스와 비슷했지만, 이것으로 완전한 증거가 될 수는 없었다. 코페르니쿠스로 추정되는 유해의 경우 치아 상태가 잘 보존돼 있어 유전자 식별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 DNA를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친척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러나 2006년 과학사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괴이한 사건이 일어났다.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DNA 참고자료가 발견된 것이다. 그것은 코페르니쿠스의 머리카락으로, 코페르니쿠스가 수년 동안 사용했던 천문학 장서의 책갈피 사이에 끼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17세기 중반 스웨덴의 폴란드 침공 이후 전쟁 전리품으로 스웨덴으로 반출되었다. 현재 웁살라 대학교 구스타비아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책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책의 주요 사용자인 코페르니쿠스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 몇 올이 발견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머리카락은 무덤에서 회수된 치아 및 뼈 물질과의 유전적 비교를 위한 참고자료로 평가되었다. 머리카락은 발견된 해골의 치아와 뼈에서 나온 DNA와 비교한 결과, 치아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골격 샘플은 모두 머리카락의 DNA와 일치하여 그 유해가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고고학 발굴, 형태학적 연구 및 고급 DNA 분석을 포함한 다학제적 노력을 통해서도 역시 설득력 있는 결론에 도달했다. 프롬보르크 대성당의 성십자가 제단 근처에서 발견된 유해는 코페르니쿠스의 것일 가능성이 확정적이다. 이 기념비적인 발견은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의 마지막 안식처를 밝혀낸 것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데이터를 뒷받침하는 현대 법의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유해는 아무 묘비도 없이 무명으로 묻혔다가 사망한 지 5세기 만에 최고의 예우를 갖춰 ‘영웅’으로 재안장됐다. 대성당측은 코페르니쿠스의 사망 467주기 다음날 치러진 장례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탄압에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했다. 폴란드 국민들은 코페르니쿠스를 국민영웅으로 칭송하는 추모행사를 갖기도 했다. 새로 세워진 검은 화강암의 묘비에는 지동설을 표시하는 태양계의 도형을 새겨넣어 500년 전 그의 업적을 기렸다. 살아 생전에는 자기 학설도 발표하지 못했던 조심스러운 영웅의 부활답다고나 할까. 이광식 과학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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