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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 잔] ‘이명옥의 크로싱’ 펴낸 이 명 옥 사비나미술관장

    [저자와 차 한 잔] ‘이명옥의 크로싱’ 펴낸 이 명 옥 사비나미술관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빈센트 반 고흐, 백남준, 앤디 워홀 등 미술사를 장식한 거장들의 대부분이 융·복합적 사고를 가진 인재들이었습니다. 지적 호기심과 실험정신이 강하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에 개방적인 사람들이었지요. 그들은 남과 다른 생각으로 기존의 틀을 깨는 위대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서로 다른 학문이나 기술을 섞어 가치를 창조하는 융합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사고가 필요하다.”면서 “예술계의 거장들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명옥의 크로싱’(21세기 북스 펴냄)에서 거장 99명의 작품과 삶을 통해 융합형 인재상을 제시한 이 관장을 지난 22일 만났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류의 자기 계발서가 나오긴 했지만 ‘융합’이 화두인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예술과 접목시킨 것부터 참신하다. ‘팜므 파탈’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 ‘명화 경제토크’ 등 전작에서 보듯이 그는 인문학, 수학, 과학, 경제 등 다양한 분야를 예술과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로 ‘예술계의 콘텐츠 킬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역시 그다운 발상이다. “이번 책은 지금까지 시도했던 다양한 분야들을 하나로 묶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마침 사회 각 분야에서 ‘융합’이라는 단어가 화두로 등장했고, 거장들의 대부분이 융합적 인재들이라는 점에서 방향은 잘 잡은 것 같았지요. 하지만 그 많은 융·복합적 인재들을 어떻게 분류해 소개할지가 최대의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융합형 인재상의 유형을 8가지로 나눴다. 미술 애호가는 물론 미술과 친근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내 것과 네 것을 섞는 하이브리드형, 기술과 예술을 융합한 얼리어댑터형, 일상과 창조를 하나로 만든 발명가형, 경험과 열정을 바탕으로 한 체험형, 다양한 재능과 노력을 자랑한 멀티플레이어형, 몰입을 통해 창조적 작업을 완성시킨 연구자형, 감각과 감각을 넘나드는 크로스 공감각형, 너와 나를 통한 협업형이 그것이다. 유형별로 예술가들이 융합적 사고를 하게 된 배경, 최초의 발상을 작품에 어떻게 반영했고 후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독자들은 일상에서 이들을 통해 어떻게 융합형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제시했다. “통일성, 획일성, 절대가치, 순수성을 중시하던 시대는 갔습니다. 융합, 조합, 결합, 다양성, 협업, 소통을 중시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도 자연히 바뀌었죠. 21세기에는 여러 생각들을 혼합하고 다른 감성을 교환하고 이질적인 요소를 혼합하는 ‘스마트한 잡종’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 관장이 말하는 ‘스마트한 잡종’은 변신로봇 같은 인재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고정관념을 버리고 사고의 경계가 없이 개방적이어야 합니다.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흡수할 줄 알아야 하죠. 한마디로 말하면 ‘유연성’입니다.”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61년전 우정 감사합니다”

    “61년전 우정 감사합니다”

    6·25 전쟁 발발 61주년을 앞두고 미국에서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한인연합회(회장 최정범)와 경기 용인의 새에덴교회(담임목사 소강석)는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미 연방하원 레이번 빌딩에서 ‘한국전 참전용사 감사보은 행사’를 공동 개최했다. 행사에는 한덕수 주미대사를 비롯해 찰스 랭글, 에드 로이스, 에니 팔레오마베가 등 지한파로 알려진 연방 하원의원들이 참석했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리처드 루거 의원 등도 기념 메시지를 보냈다. 초청된 6·25 전쟁 참전용사와 가족 등 200여명은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희생자를 위한 묵념과 기념식에 이어 감사 메시지 영상을 지켜본 뒤 한국 전통음악과 고전무용을 감상하고 주최 측에서 준비한 기념선물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윤순구 워싱턴총영사가 대독한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은 결코 여러분들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이번 행사가 한·미 간 아름다운 우정의 역사를 기념하고 밝은 미래를 여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6·25 전쟁에 참전한 랭글 의원은 “감사합니다.”라고 한국말로 인사한 뒤 “안보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 생존자뿐 아니라 전사자들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50~100명의 참전 미국인을 한국에 초청해 온 소 목사는 “한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참전용사들에 대한 은혜도 갚고 미래 한·미동맹 강화에도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행사 후 인근 보훈병원을 찾아 참전용사들을 위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버지니아주 한인회(회장 홍일송)와 한·미교류협회도 24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참전용사 700여명을 초청해 워싱턴DC 한국전 기념공원 등에서 감사 행사와 기념식을 갖는다. 또 워싱턴문화원과 문화체육관광부, 국기원은 오는 25일 버지니아에서 6·25 전쟁 61주년을 되새기는 태권도 시범 공연을 열 예정이다. 주미대사관도 24일 한국 기념공원에서 한 대사와 유엔 13개 참전국 소속 국방무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갖는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딴 돈 돌려줘”…스파이더 맨 알고보니 포커왕?

    “딴 돈 돌려줘”…스파이더 맨 알고보니 포커왕?

    스파이더 맨이 자신의 능력(?)을 엉뚱한 곳에 발휘한 것 같다. 영화 ‘스파이더 맨’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토비 맥과이어가 최근 ‘포커로 딴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당했다. 소송을 제기한 측은 ‘루더맨 캐피탈 파트너스’의 파산 관리인과 투자자들로 이 회사의 CEO인 루더맨은 맥과이어와 포커를 하다 돈을 다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환 소송을 당한 금액은 31만 달러(약 3억 3000만원). 맥과이어는 캘리포니아의 무허가 도박장에서 포커를 했으며 총 400만 달러(약 43억원) 이상을 벌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소장에 따르면 CEO인 루더맨이 맥과이어와 도박한 돈은 고객들의 투자금인 것으로 전해졌으며 현재 루더맨은 다른 사기 사건에 휘말려 텍사스 주 형무소에서 복역중이다. 또 이 사설 포커장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 등 유명 배우들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맥과이어의 대리인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으며 새 변호사를 고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메릴린 먼로 드레스 50억원에 팔려

    메릴린 먼로 드레스 50억원에 팔려

    메릴린 먼로를 20세기의 섹스 심벌로 떠오르게 한 일명 ‘지하철 드레스’가 460만 달러(약 50억원)에 팔렸다. 영화 ‘7년만의 외출(1955)’에서 지하철 환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흩날리자 먼로가 양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감싸쥐던 흰색 홀터넥 드레스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할리우드 수집품 경매에서 이 드레스가 최고 예상가 210만 달러(약 23억원)의 두 배 이상 가격에 팔렸다고 AFP가 보도했다. 이날 경매는 가수 겸 배우인 데비 레이놀즈(79)가 영화 속 명장면마다 여러 배우들과 함께했던 의상과 소품을 내놓아 이뤄진 것으로, 그가 40년간 모아온 소품과 의상은 3500개에 이른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영화 ‘클레오파트라(1963)’에서 쓴 가발과 찰리 채플린이 쓴 중절모, 줄리 앤드루스가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서 치던 기타도 매물로 나왔다. 경매에서 오드리 헵번이 ‘마이 페어 레이디(1964)’에서 입었던 드레스는 40억원, 메릴린 먼로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에서 입었던 빨간 드레스는 13억원, 주디 갈랜드가 ‘오즈의 마법사(1939)’ 테스트 촬영에서 입은 파란 원피스는 10억원, 그레이스 켈리가 ‘나는 결백하다(1955)’에서 입은 옷은 5억원에 팔려나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CEO 칼럼] 시장경제시스템 다시 한 번 생각한다/장영철 캠코 사장

    [CEO 칼럼] 시장경제시스템 다시 한 번 생각한다/장영철 캠코 사장

    인류는 끊임없이 발견하고 발명하며 역사를 발전시켜 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였음에도 기존 관념에 매여 있는 계층을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를테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지동설을 망원경으로 확인한 갈릴레오는 종교 재판을 받았고, 운이 없었던 어느 학자는 화형까지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지동설은 유럽이 16세기의 대항해 시대를 거쳐 역사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무수한 발견과 발명 중에서도 ‘시장경제시스템’은 인류가 창안한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인간의 욕망과 자유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혁신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시장만능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을 맹신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론적으로는 시장경제시스템의 균형이 완전경쟁을 통해 달성돼야 하지만 현실의 시장은 구조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 거대 자본과 영세 소상공업자가 자본력과 힘의 불균형 때문에 공정하게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신화에 얽매여 시장자율만 강조하는 것은 종교의 권위로 지동설을 탄압했던 것처럼 근시안적인 일이다. 우리 경제·사회의 과제인 양극화와 성장 불균형 문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용주와 비정규직 등이 시스템 안에서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서 발생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의존적이고 종속되기 쉬우며, 반대로 드물기는 하지만 기술력을 갖추고 핵심부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생산활동을 좌우하는 경우도 생긴다. 금융시장에서는 특정 금융자산과 그 기초가 되는 실물자산에 대한 가격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시장에 구조적 불균형이 생긴다. 금융회사는 경기 호황기에 복잡하고 다양한 금융상품을 통해 높은 수익을 향유하면서, 이를 자신들의 창의력과 위험을 무릅쓴 투자에 대한 대가라고 주장한다. 반면 금융위기 시에는 금융시스템이 공공재라는 점을 들어 책임과 손실을 회피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곤 하는데, 위기를 극복하고 가격기능 회복과 시장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가 경영 실패를 인정하고 손실을 분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불균형을 방치한다면 시장에서 재기의 기회를 박탈당한 소외자들이 발생하고, 이들의 불만이 누적될 경우 시장에 대한 불안은 높아진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시장경제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소외자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오히려 시장경제시스템을 굳건하게 지키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구조적인 측면에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관행을 해소하고 중소기업이 기술혁신을 통해 육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의 노력으로 이들이 시장경제시스템의 당당한 참여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같은 노력이 쌓인다면 시장의 건전한 가격기능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수혜를 받는 대기업과 사회지도층이 먼저 나서서 동반성장과 상생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경제적 불균형 해소와 시스템 밖의 소외자를 보듬어주기 위해서는 공공시스템의 작동도 필요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과 서민금융 지원이 바로 이러한 공공시스템의 일환이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시장 실패 시 발생하는 부실자산에 대한 가격기능이 회복되도록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서민의 신용자산을 육성·보호하고 취업을 지원하는 등 소외계층에 대한 종합자활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유효 수요를 창출, 시장경제시스템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뿐만 아니라 대기업, 사회지도층이 각각 정해놓은 상생의 기조에 맞춰 불균형 문제를 앞장서 해결해 모든 경제주체가 동등한 입장에서 상생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 79년만에…세계 최고령 ‘대졸자’ 등극한 99세 남성

    79년만에…세계 최고령 ‘대졸자’ 등극한 99세 남성

    100세를 바라보는 미국의 한 남성이 세계에서 최고령 대학 졸업자에 등극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오리건 주 지역방송 KTVZ는 “레드먼드에 거주하는 99세 남성이 학업을 중단한 지 79년 만에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고 전했다. 99세의 나이로 세계 최고령 대졸자가 된 할아버지의 이름은 레오 플래스. 그는 미국 대공황기인 지난 1932년, 스무 살의 나이에 월평균 교육비인 80달러를 마련하지 못한 나머지,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이스탄불의 이스턴오리건대학을 졸업하게 된 이 남성은 당시 지인의 소개로 월 150달러를 벌수 있는 벌목 회사에 취직한 뒤, 평생을 벌목공으로 살아왔다. 오는 8월 만 100세가 되는 그는 조카의 조언으로 가지고 있던 성적증명서를 해당 대학에 제출한 뒤, 대학 측으로부터 현행 규정에 적용한 결과, 교양학부의 학사에 해당하는 학위를 인정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KTVZ 캡처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누군가에게 그들은 알록달록 그림이 가득한 옛날 책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냥 도서관 한편에 놓인 채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은 민족문화의 정수였다.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조상들의 삶과 생활을 알 수 있는 역사의 기록이었다. 그들이 145년의 세월을 건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은 이제 옛 사람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금 숨결을 되찾고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30여년에 걸친 우리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우리의 유산들이 외국에서 이 땅을 그리워하고 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장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는 전 세계의 유명한 ‘약탈(掠奪) 문화재’도 모습을 나타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같은 신세였던 외규장각 도서를 부러워하면서…. 그들이 저마다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얘기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덕분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대여’(貸與)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게 아쉽지만, 저와 제 가족은 다시는 이 땅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휘경원(徽慶園) 원소도감의궤(園所都鑑儀軌)가 건배사를 시작하자,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1993년 휘경원 의궤가 홀로 파리 국립도서관을 떠나 한국으로 갈 때 다들 그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후로 18년. 휘경원 의궤의 뒤를 이어 자신들도 금의환향한 것이 스스로 믿기지 않는 그들이었다. 1866년 강화도를 떠난 지 무려 145년 만이다. 휘경원 의궤가 파티장을 둘러본 후 다시 말을 이으려는 찰나, 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문이 열리자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듯한 조각 뭉치부터 미라 머리까지 괴기스럽기 그지없었다. 표정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조각상이 대표로 말을 꺼냈다. ●엘긴 마블 축하드립니다. 한국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조선왕실의궤처럼 다른 나라에 무참히 끌려간 인류의 유산들입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매일 얼굴을 팔면서 살고 있지만, 한순간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의궤가 너무 부럽고 해서 함께 찾아왔습니다. ●휘경원 의궤 감사합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죠. 여기 계신 손님들이 잘 모르실 수도 있어 간략하게들 자리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엘긴 마블 안녕하세요. 전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장식입니다. 기원전 440년 무렵에 만들어졌고, 인물 360여명과 말 219마리로 구성돼 있어요. 제 치욕스러운 이름은 영국 외교관인 엘긴 브루스에서 비롯됐습니다. 19세기 초 터키의 그리스 지배 당시에 저희를 몽땅 긁어모아서 영국으로 옮겨왔죠. 대수집가로 추앙받는 경우도 있던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죠. 저희 가족은 ‘파르테논 마블스’로 불려야 마땅합니다. 성스러운 신전의 장식물을 떼어 와 감상하려 한 약탈자의 이름을 붙이다니요. 아마 가능하기만 했다면 파르테논 신전을 통째로 가져오고도 남았을 테죠. 현재 저희 가족은 대부분 대영박물관에 있고, 일부는 루브르박물관에도 있습니다. ●휘경원 의궤 파르테논 마블님은 문화재 반환운동의 대부로 유명하시죠. ●파르테논 마블 가만있자…, 그게 1960년대였을 거예요. 런던을 무대로 영화를 촬영하던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가 저희가 대영박물관에 있는 걸 보고 통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메르쿠리는 1981년 문화부 장관이 되면서 정부와 전 국민을 상대로 반환운동을 벌였고, 199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한시도 운동을 쉬지 않았어요. 지금도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메르쿠리 이름으로 된 호소문을 받게 됩니다. ●휘경원 의궤 그리스에도 우리나라 박병선 박사 같은 분이 계셨군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더 듣기로 하고, 그 옆에 계신 분도 역시 영국에서 오셨죠? ●로제타스톤 안녕하세요. 전 기원전 196년에 만들어진 프톨레마이오스왕의 공덕비입니다. 1799년 나폴레옹 원정군이 로제타(현재의 라시드) 마을에서 요새를 쌓다가 발견했죠. 뭐 신기한 돌이다 싶어 슬쩍 프랑스로 가져오려고 했는데, 2년 뒤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하면서 영국 소유가 됐죠. 이 전투에서 프랑스가 이겼으면 아마 지금 제 거처는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루브르박물관이 됐을 겁니다. 전 세계 교과서에 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테지만, 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어요.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존재라고 할까요. 이집트 상형문자, 민용(民用)문자, 그리스어 등 세 가지로 쓰여 있어 상형문자 읽는 방법을 현대에 전달했죠. 물론 제 고향인 이집트에서는 절 돌려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여기서 오랜 친구 로제타스톤을 만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전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보통 신전 앞에 쌍으로 있고 수십개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고향에 있는 애들은 6개에 불과하고 외국에 더 많아요. 뉴욕, 파리, 런던에 하나씩 있고 이탈리아에는 무려 16개나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를 무슨 열강의 상징쯤으로 여긴 때문이겠죠. 심지어 뉴욕과 런던의 오벨리스크는 원래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이름으로 투트모세 3세가 만든 한 쌍입니다. 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람세스 2세 오벨리스크의 나머지 한쪽이고요. 게다가 더 놀라운 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우리가 운반을 위해 다 쪼개졌다는 거죠. 상처 입고 신음하는데 보기만 좋으면 다인가요. ●휘경원 의궤 뒤쪽에 계신 아리따운 여자분과 용맹한 전사님은 누구시죠? ●네페르티티 흉상 저 역시 고대 이집트 출신이에요.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 클레오파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으로 알려진 네페르티티 왕비의 모습을 하고 있죠. 1912년 독일오리엔트협회 조사단이 공방터에서 발견해 지금은 베를린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말이 조사단이지 마구잡이로 파헤쳐서 가지고 오면 그만인 시절이었죠. 이집트 최고 미녀의 조각이자 최고의 조각상으로 평가받는 저를 정작 이집트의 후손들은 볼 수 없는 셈이죠. ●토이 모코 전 집으로 돌아갈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는 뉴질랜드의 토이 모코입니다. 마오리족 전사가 전투에서 사망하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신을 새겨 머리를 보관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일종의 미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소장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아예 마오리 전사에게 문신을 새긴 후 목을 자르는 일까지 벌어졌죠. 그 당시 500여개가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1992년부터 뉴질랜드 정부가 저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300여개가 돌아갔습니다. 그나마 고향에 돌아가기 쉬운 건 아마 저희는 문화재라기보다는 개인의 수집에서 비롯된 기념물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저희가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죠. 누구보다 재불 사학자인 박병선 박사의 역할이 컸습니다.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저희들을 찾아냈고, 이를 고국에 알렸죠. 프랑스 내 지식인층에 약탈문화재의 고국 반환을 주장하면서 30년 넘게 외롭게 싸워오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역시 고국에서 수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뭐죠? ●오벨리스크 자랑스러운 그들의 박물관이 약탈문화재로 가득차 있다는 점 때문이겠죠. 그들은 조상들의 유산을 돌려 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루브르의 이집트 천궁도를 비롯한 이집트 유물들도 대부분 도굴된 물건이지요. 마치 장물(贓物)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꼴입니다. 우리 오벨리스크를 가장 많이 소유한 이탈리아는 정작 우리 요구는 무시하면서 자기네 로마 유적은 돌려달라고 떠들고 있어요. 역지사지라는 말도 모르나봐요. 심지어 약탈국 정치인들은 대놓고 “하나둘씩 돌려주다 보면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떠들기까지 합니다. 남의 나라 문화재를 강제로 뺏거나 훔쳐다 놓고 그게 할 소리입니까. ●로제타스톤 맞습니다. 관람객들은 마땅히 우리의 단순한 역사적 가치 이외에 언제 어떻게 훔쳐서 이 나라에 왔고, 그 나라에서 돌려 달라는 운동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는 사실, 또 전 국민들의 소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집트에서 만들어졌고 이집트 상형문자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지, 대영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휘경원 의궤 뭐 사실 그렇습니다. 유명하면 포기하기 더 힘들겠죠. 만약 저희 의궤들이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로제타스톤이나 오벨리스크처럼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면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네페르티티 흉상 프랑스나 영국 정부가 항상 말하죠. 우리가 문화재 보존에 대해 최고의 노하우를 갖고 있고, 돌려받을 국가를 믿기 힘들다고 말입니다. ●파르테논 마블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자 핑계일 뿐입니다. 반환운동이 시작된 후 그리스 정부는 아테네에 영국 박물관 분관을 지어 저희를 전시하자고 영국에 제안했고, 그 전시실은 실제로 대영박물관에 견줘 손색 없이 지어졌죠. 하지만 영국 정부는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둘씩 돌려주는 선례를 만들다 보면, 아직 먹고사느라 조상의 문화에 관심이 적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남미 국가들이 나중에 떼로 달려들 것이 겁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박 박사가 저희를 찾아냈을 때 저희는 폐지 더미 속에 묻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보관과 연구능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한문을 읽고 조선의 문화를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저희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실제로 145년 동안 프랑스 사람들은 저희의 0.1%조차도 파악하지 못했고, 분류조차 못했으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 걸음해 주신 각국의 약탈 문화재 여러분. 우리 의궤의 반환 축하 역시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한국 역시 아직까지 18개국에 7만여점에 가까운 조상의 문화재가 외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문화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소망이 실현되는 날. 다시 한번 진정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약탈 그 역사와 진실(샤론 왁스먼·오성환/ 까치) 위대한 유산 74434(위대한유산 제작팀/ 지식의숲) 조선을 죽이다(혜문/ 동국대출판부) 오벨리스크(권염흠/ 스틸로그라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휴머니스트)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김경임/ 홍익출판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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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중 누가 더 똑똑할까?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중 누가 더 똑똑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수의 오른손잡이보다 소수의 왼손잡이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천재 과학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왼손잡이이고, 음악의 한 역사를 차지하는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와 ‘연기의 신’ 로버트 드니로도 모두 왼손잡이다. 하지만 최근 해외 연구팀이 ‘사실은 왼손잡이 보다 오른손잡이가 훨씬 더 똑똑하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마이크 니콜 호주 플린더즈 대학교수는 “왼손잡이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왼손잡이의 뇌역량(Brainpower)는 오른손잡이보다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호주의 5세 어린이 5000명을 대상으로 학습 능력 등을 조사한 결과, 왼손잡이 학생이 오른손잡이 학생보다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잘 안듣거나 또는 덜 이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니콜 교수는 “왼손잡이의 인지력이 떨어지는 것은 예정일보다 빨리 태어나는 조산아들의 특성과 비슷하다.”면서 “오른손잡이보다 능력이 낮은 왼손잡이의 비율은 조산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규모와 맞먹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국제 왼손잡이 협회는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보다 테니스와 축구, 수영, 펜싱 등에서 월등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아폴로 우주선에 탄 우주인 4명 중 한 명이, 애플사의 매킨토시 웹디자이너 5명 중 4명이 왼손잡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더 똑똑하고 창의력이 있으며 멀티능력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존하는 유명인 중 왼손잡이로는 데이비드 캐머론 영국 총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배우 안젤리나 졸리, 영국 윌리엄 왕세자 등이 있다. 사진=대표 왼손잡이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 캐머런 영국 총리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애플판 카카오톡 ‘i메시지’ 탑재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애플의 모바일 기기 운영체제(OS) iOS의 업그레이드 버전 ‘iOS5’와 차세대 매킨토시 OS인 ‘라이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애플은 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에서 iOS5와 라이언의 특징을 공개했다. iOS5는 이전 버전에 견줘 기능이 대폭 향상됐다. 무엇보다 ▲통합고지센터 ▲뉴스스탠드(신문과 잡지 서비스) ▲트위터 연동 ▲사파리(웹브라우저) 기능 ▲날짜와 위치에 따른 리마인더(알림이) 기능 ▲카메라 기능 ▲편집 기능과 사전, 키보드 등이 강화된 메일 ▲무선 OS 업그레이드 지원 ▲게임센터의 소셜 기능 ▲i메시지 등 10대 핵심 기능이 강화됐다. 통합 고지 기능은 게임이나 음악감상을 방해하는 각종 문자메시지나 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데이트 등 각종 푸시 정보(알림기능 정보)를 통합고지센터로 모은 것이다. 사파리의 경우 특정 웹사이트 방문 시 광고 읽기가 번거로울 경우 이를 막는 기능이 추가됐고, 읽은 글을 즉시 이메일로 보내거나 나중에 다시 읽도록 갈무리하는 ‘리딩 리스트’도 더해졌다. ●통합고지센터·뉴스스탠드 관심 특히 애플은 트위터와 제휴해 iOS5 자체에서 이를 지원하고, iOS가 탑재된 기기 사용자들끼리 메시지와 이미지 등을 주고받을 수 있는 i메시지를 탑재했다. 그룹 메시지도 가능하며 클라우드를 이용해 기기를 바꿔 가며 채팅을 계속할 수도 있다. 아이폰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다른 장소에 있는 아이패드를 통해 계속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다. 이미 국내에도 카카오톡과 마이피플 등 다양한 모바일 메신저들이 서비스 중이어서 아이메시지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플이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아예 아이폰에 내장하면서 모바일 메신저 업체들과 망 부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이통사들과 대립할 가능성도 있어 ‘애플판 카카오톡’에 대한 향후 대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트위터 연동 소셜기능 강화 한편 애플은 올가을쯤 일반 사용자를 대상으로 정식 업그레이드에 나설 예정이다. 아이폰 3GS 이상, 아이패드1·2세대, 아이팟 터치 3세대 이상에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라이언 역시 기존의 맥OS인 ‘스노 레오퍼드’와 비교해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졌다. 가장 큰 특징은 창의 오른쪽 스크롤바가 없어지고 멀티터치 동작 기능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각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전체 화면에서 실행할 수 있게 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광주, 2100억 최첨단 OLED 생산기지 유치

    광주, 2100억 최첨단 OLED 생산기지 유치

    ‘광학도시’ 광주시가 세계적 명성의 독일 프라운호퍼 산하 광학마이크로시스템연구소(IPMS)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기지 건설을 유치했다. 미국의 애플 등이 주도하는 스마트 기기 시장에 맞서 독일이 디스플레이 연구·생산의 파트너로 한국을 선택한 것이다. 독일을 방문 중인 강운태 광주시장은 6일(현지시간) 드레스덴에서 프라운호퍼 IPMS, 국내의 ㈜레네테크(대표 박종선)와 공동으로 광주에 OLED 생산 기지를 설립하기 위해 1억 4000만 유로(약 2100억원)의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프라운호퍼 재단은 2013년까지 전체 투자액의 25%를 직접 투자하기로 했고 시장 상황을 봐서 투자액을 점차 늘리기로 했다. 광학 분야에서 전통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프라운호퍼 IPMS 측은 실용화 개발을 마치고 올해 안에 부지가 마련되는 대로 공장 착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이를 위해 오는 10월까지 광산구 진곡산업단지에 3만 300여㎡의 부지를 마련해 정부에 ‘외국인 투자 자유구역’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광주에 첨단 OLED 생산 기지가 완공되면 연구, 설계, 부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집적화된 OLED 밸리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강 시장은 “투자 유치를 통해 광주가 프라운호퍼의 응용과학기술을 산업계에 도입해 수익 창출을 이끌어내는 시스템을 갖추게 됨으로써 세계적 광산업 도시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프라운호퍼 IPMS의 칼 레오 교수는 “광주에 OLED 제조 공장이 설립되면,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막스플랑크와 함께 독일 과학기술 개발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연구 기업이다. 독일 전역 56곳에서 컨소시엄 형태로 운영되는데, 연간 예산만 13억 유로(2조원), 직원은 1만 6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OLED보다 한발 앞선 아몰레드(AMOLED)의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점유율이 99%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아이폰이 독주하던 스마트폰 시장에 맞서 화면이 더욱 밝고 선명한 아몰레드 탑재형 갤럭시폰을 출시해 단숨에 강자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갤럭시S의 판매 중에 아몰레드 부품이 품절되자 곧 어려움을 겪었을 정도로 이에 대한 의존도가 큰 편이다. LED 기술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물론 스마트TV와 핸드PC 등에서도 크게 각광받을 것으로 보이는 디스플레이 첨단 부품이다. 아몰레드의 2015년 시장 규모는 13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독일 측의 이번 투자는 한국의 아몰레드 생산력을 보완해주면서 세계적 연구·생산 밸리를 공동으로 구축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녔다. 드레스덴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이달 28일 인류과학의 큰 별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가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를 박차고 올라 마지막 비행을 하고 나면 파란 하늘이 아닌 까만 우주를 날아다녔던 ‘스페이스 셔틀’은 박물관에서 관람객들과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81년 4월 12일 컬럼비아호가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애틀랜티스, 엔데버 등 대항해시대 유명 탐험선들에서 이름을 따온 5형제가 비행한 횟수는 총 135회. 거리는 8억 5000만㎞에 이른다. 그러나 우주왕복선의 탄생이 사기극에 가까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9년 대통령에 오른 리처드 닉슨은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우주개발 계획을 탐탁지 않아 하며 항공우주국(나사)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나사는 한번 쏘면 재사용할 수 없는 로켓 대신 얼마든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제작하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솔깃한 닉슨은 이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나사는 1주일에 1회, 연간 50회씩 비행이 가능하다고 닉슨을 속였다. 우주왕복선은 ‘돈 먹는 괴물’이었다. 한번 사용한 부품은 대부분 교체해야 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투입한 돈은 1500억 달러(약 162조원)가 넘는다. 1986년에는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2003년에는 컬럼비아호가 귀환 중에 역시 폭발하면서 미국과 과학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호 주인공은 퇴역하는 우주왕복선 3대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이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먼은 ‘파인먼씨 농담도 잘하시네’ 등 저서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의 조사위원회에 참여, 원인을 규명하기도 했다. 우주왕복선을 만난 파인먼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비행을 했는지 그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인먼:이렇게 무사히 만나게 돼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애틀랜티스를 제외하고는 이제 편히 쉴 일들만 남았네. 엔데버 자네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들어졌는데, 나 같은 물리학자가 왜 우주왕복선의 모임에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나? 엔데버:제가 1992년에 태어났으니까 1988년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뵐 기회가 없었죠. 그래도 그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습니다. 1986년 챌린저 형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조사위원회인 로저스위원회(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로저스가 당시 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위원장의 이름을 따 위원회 이름을 부른다. 부위원장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었다)에 참여하셨죠? 그때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파인먼:사실 나한테도 우주왕복선은 TV로나 보던 존재였지. 그래서 처음에 나사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는 거부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사람(기네스 파인먼)이 “모두가 몰려다니면서 정치를 할 게 뻔한데, 제대로 조사를 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난 멍청하게 우쭐해서 그 말을 받아들였지. 디스커버리:그래도 사고 원인을 찾아내셨잖아요. 파인먼:글쎄. 세상에는 내가 챌린저가 발사되던 날의 기온이 크게 낮았고, 그 때문에 연료통의 틈새를 메우는 고무 O링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연료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그 문제를 처음 알아낸 것은 국방부의 커티나 장군이었어. 난 단지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지. 애틀랜티스: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얼음물을 달라고 해서 실제로 O링을 넣어 뒀다가 보여 줬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개회의였는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신 건가요? 파인먼:아무도 나한테 O링을 주지 않았는데, 회의장의 모형에 O링이 있었고 그걸 실험할 수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거든. 사실 조사 과정에서 나사와 관련 회사들이 얼마나 일을 엉망으로 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수많은 부분을 감추려 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어. 챌린저 폭발의 원인이 단순히 O링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디스커버리:이제 뭐 다 지난 일이고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으니 구체적으로 좀 얘기를 해주시죠. 파인먼:120일이 조금 넘는 조사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거기에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랑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라는 말이었지. 누군가 자기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게 불편했던 것이지. 무엇보다 우주왕복선은 사람이 만들고 탄 물건 중에 가장 위험했거든. 너희들은 실제로는 폭탄이나 다름없지. 우주왕복선의 설계상 사고 확률은 100~450회 비행당 1건으로 돼 있어. 군용기가 2만 2000회 비행당 1회, 민간 여객기가 100만건당 1회로 계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위험도지. 그런데 나사는 이걸 민간 여객기와 같은 100만분의1이라고 발표했거든. 엔데버: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죠? 파인먼:“우주왕복선에는 사람이 타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 때문이야. 숫자 조작을 한 거지. 실제로 우주공간에서의 임무를 제외하고, 비행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착륙할 때 바퀴를 꺼내는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밖에 없거든. 그 밖에도 부품들에 생기는 문제를 규정 변경을 통해 허용치로 바꾸거나 엔진 터빈에 생긴 균열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용 가능으로 판정하기도 했어. 조사 과정에서 보니까 엔진, 부품, 연료 등 많은 부분에서 현장 기술자들이 발사를 반대했는데 윗선에서 묵살했더라고. 디스커버리:그런데 왜 무리해서 발사를 한 거죠? 파인먼:챌린저가 폭발한 1986년 1월 28일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예정돼 있었지. 영화배우 출신답게 쇼를 좋아했던 레이건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챌린저호의 우주인과 교신을 하려고 했던 게 무리한 발사의 원인이었다고 봐야지. 특히 챌린저에는 일반인이었던 과학교사 매컬리프 부인이 타고 있었는데 극적 효과로는 최고였겠지. 챌린저가 얼마나 무리한 발사를 하는지 알고도 탔을 만큼 매컬리프 부인이 용감했는지는 별개로 쳐야겠지만 말야. 애틀랜티스:결국 그때 나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을 하셨고, 실제로도 많은 개선이 이뤄졌잖아요. 그런데 2003년에 큰형님인 컬럼비아호가 또 불행한 사고를 당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파인먼:그건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여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주왕복선이 워낙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 외부적으로는 발사 단계에 타일이 떨어져 나가면서 돌아올 때 열을 견디지 못해 폭발했다고 하던데. 일각에서는 나사가 1990년대 후반에 구조조정을 심하게 하면서 관리와 정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하더구먼. 자, 사고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제 30년간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각자의 안식처(디스커버리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엔데버는 캘리포니아과학센터, 애틀랜티스는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로 옮겨지게 됐는데 마지막으로 각자 일생에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되돌아볼까? 디스커버리:전 ‘지구의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1990년 4월에 우주로 올려놨죠. 사람들이 총천연색 우주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은 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까지 우주왕복선 5대가 기록한 우주비행 135회 중 39회가 제 차지였습니다. 애틀랜티스:저 역시 허블망원경의 수리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2003년 2월 컬럼비아 형님이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고 돌아오다가 사라진 이후 나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이외에는 우주왕복선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미국 과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허블망원경을 계속 보게 해 달라는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제가 다시 허블망원경으로 향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전 가장 마지막으로 하늘을 난 우주왕복선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이달 말 비행으로 말이죠. 엔데버:하늘에 떠 있는 가장 큰 인공구조물인 ISS는 제가 주도한 작품입니다. ISS 내 우주인 투입이나 우주인들이 체류하는 데 필요한 물품 공급, 배터리 교체, 로봇 팔 설치 등이 모두 저를 통해 이뤄졌죠. 2007년에는 저를 타고 우주로 간 우주인들이 선생님이 돼 지구의 아이들에게 과학교실을 열기도 했죠. 이젠 모두 지나간 추억이 됐지만 말이에요. 언젠가 제 후배들이 태어난다면 이런 얘기들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 형제들과 수백명의 우주인들이 만들어낸 도전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파인먼:우주를 날아서 비행기처럼 자유롭게 활주로에 착륙한다. 정말 공상과학 소설 같은 얘기를 현실에서 보여준 자네와 나사의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네. 물론 보이저(1977년 발사된 나사의 행성 탐사선. 목성과 토성을 찍었고 현재 태양계 끝에 도달해 있다)처럼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어 태양계 밖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여전히 자네들이 여기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네. 위험한 비행을 하며 형님 둘(컬럼비아·챌린저)을 먼저 보내고 자네들은 살아남지 않았는가 말일세. 우주왕복선이 이뤄낸 수많은 업적보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세상에 홍보용으로 전락한 과학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 줬다는 점이라고 말하겠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일세. 오늘 즐거웠어.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교훈을 주기 바라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리처드 파인먼(1918.5.11~1988.2.15)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양자전기역학을 재정립한 공로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20세기의 거시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된다면, 미시 물리학은 파인먼의 영역. 금고털이와 드럼 연주,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형식과 권위를 거부했던 것으로 유명. ●도움말 주신 분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정홍철 스페이스스쿨 대표 이학명 과학칼럼니스트 ●참고문헌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리처드 파인먼·김희봉/ 사이언스북스) 남이야 뭐라 하건!(리처드 파인먼·홍승우/ 사이언스북스) 우리는 이제 우주로 간다(채연석/ 해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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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300인 전사(戰士) /박홍기 논설위원

    조지 레이코프 미국 UC 버클리대 교수는 저서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보수와 진보의 가치 분석에 가정을 끌어들였다. 이념이 아닌 도덕관과 가정관의 차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가를 가정에 비유해 정부는 부모로, 국민은 자녀로 봤다. 그러면서 보수는 ‘엄한 아버지’에, 진보는 ‘자애로운 부모’ 모델에 대비시켰다. 엄한 아버지 모델에서는 ‘험한 세상에서 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제와 극기를 통해 도덕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악에 굴복하거나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비도덕적’이라는 논리를 폈다. 때문에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비판의 대상이다. 사람들을 공공의 도움에 의존하는, 도덕적으로 나약하고 절제와 의지력이 부족한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자애로운 부모 모델에서는 ‘세상이란 최대한 보살핌을 받고 남을 보살펴야 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도 보수 쪽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방종한 이들이 아니라 사회적 이유나 건강 문제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는 이들로 규정했다. 결국 정부는 자애로운 부모처럼 사회적 약자를 공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 당위론이다. 복지 논쟁이 뜨겁다. 등록금 반값엔 여야가 따로 없다. 재원 확보 방식이 다를 뿐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의 복지 경쟁도 본격화된 지 오래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한국형 복지국가 건설, 김문수 경기지사는 맞춤형 무한복지,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형 그물망 복지를 내세웠다. 민주당은 ‘3+1’(무상 급식·보육·의료+등록금 반값)을 내걸었다. 보편적이든 선택적이든 복지는 시대의 흐름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레오니다스가 이끌던 300명의 최정예 전사처럼 굳건히 협곡을 지켜야 한다.”며 정치권을 겨냥해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또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지 않도록 가시밭길을 떳떳하게 선택하자.”고도 했다. 레오니다스는 스파르타의 왕으로 BC 480년 페르시아 제국의 대군이 쳐들어오자 300명의 전사와 함께 테레모필레 협곡에서 끝까지 맞서다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전사 300명의 용맹과 위대함은 2007년 할리우드 영화 ‘300’으로 재현됐다. 박 장관은 ‘자애로운 부모’보다 ‘엄한 아버지’ 모델을 선택했다. 복지 포퓰리즘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게 새 경제사령탑의 다짐이다. 하지만 내년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어느 모델을 선택할지 자못 궁금하다.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악덕 부모의 항변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1932년 영국 런던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난다. 훗날 ‘세기의 미녀’로 추앙받게 될 아이였지만, 당시 모습은 너무 끔찍했다. ‘다모증’ 때문에 갓 태어난 원숭이 새끼보다 털이 많았다. 엄마에게조차 “지금까지 본 아기들 중 가장 이상한 아기”였으니 말이다. 15개월째 겨우 일어서고, 두 돌이 지나서야 원숭이 같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한 아이는 그때부터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변하듯,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빼어난 외모는 그녀에게서 유년기를 빼앗아 갔다. 이후의 삶 또한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얘기다. 열한 살이 된 ‘리즈’는 1943년 ‘녹원의 천사’라는 영화에서 말을 타고 장애물 경주에 참가하는 ‘벨벳’ 역할을 따낸다. 그러나 체구가 너무 작은 것이 문제였다. 영화사는 이듬해 1월까지 크랭크인을 미뤘는데, 이 사이 극성스러운 엄마 사라 테일러는 호르몬 약제 등을 동원해 불과 4개월 만에 딸의 키를 7㎝나 키워 놓는다. 외모 탓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배우 출신 엄마의 욕망 때문에 리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우로 자라난다. 리즈는 삶과 허구를 혼동할 만큼 배역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면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무려 여덟 번이나 결혼을 하고, 술과 약물에 의존하기도 했다. 훌륭한 위인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자식들을 끔찍이 학대하거나 혹은 자식에게 광적으로 집착하거나, 반대로 철저히 방치한 부모 밑에서 특별한 재능을 꽃피운 자식들이 나오기도 한다. ‘18인의 천재와 끔찍한 부모들’(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 펴냄)은 괴물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천재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천재의 부모들을 폭군형과 교관형, 집작형, 이기적 부모 등 네 유형로 나눈다. 독일 성직자 마르틴 루터는 ‘폭군형 부모’를 뒀다. 어린 시절 호두 한 알 때문에 피가 나도록 맞기도 했는데, ‘자비로운 아버지’에 대한 루터의 이상이 종교개혁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의 배경이 되곤 한다. 모차르트와 마이클 잭슨 등은 교관형 부모 아래서 자랐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어린 아들의 몸이 다 망가질 정도로 혹독한 연주여행을 강요했고, 마이클 잭슨의 아버지는 일곱 살의 어린 마이클을 새벽 2시에 깨워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 독일어 원제를 번역하면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다. 부모들의 항변은 동서가 같고, 고금이라고 다르지 않은 게다. 1만 3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김명자 前환경부장관에게 들어본 ‘원전 해법’

    [김문이 만난사람] 김명자 前환경부장관에게 들어본 ‘원전 해법’

    #장면1 영화 ‘그날이 오면’은 핵전쟁의 참상을 그린 작품이다. 그레고리 펙과 에바 가드너의 열연도 있었지만 핵이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다주는가 하는 문제를 심도있게 다뤄 1962년 개봉 당시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2000년에 리메이크가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인상적인 것은 핵전쟁으로 전멸해 버린 도시 어디에선가 발신되는 모스 신호를 추적해 가는 미해군 잠수함 승무원의 모습이었다.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한가닥 기대를 갖고 떠나는 장면이 압권이다. #장면2 만약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개발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 그럴 뻔했다. 1938년 독일의 과학자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우라늄235의 연쇄 핵반응 실험에 성공한다. 그러자 핵무기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이 무렵 레오 실라르드, 유진 위그너 등의 과학자들은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개발하느니 서방 측이 먼저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때마침 나치의 유태인 탄압으로 미국 망명길을 택했다. 실라르드는 미국으로 건너간 뒤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원자폭탄 제조와 관련된 편지에 서명해 달라고 설득한다. 결국 이 편지가 발단이 돼 미국은 1939년 ‘우라늄 위원회’를 결성했고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원자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원자력이 인류에게 어떤 재앙을 가져올지, 그 비극적인 결과를 생생하게 보면서 일반인들도 높은 관심을 갖게 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비록 이웃나라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세계 각국도 원전정책에 대한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김명자(67) 전 환경부장관은 헌정사상 최장수 여성장관, 국민의 정부 최장수 장관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당시에도 그의 행보가 화제였지만 지금도 사단법인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 사회통합위원, 저탄소 녹색성장 국민포럼 공동대표, 극지포럼 공동대표, 헌정회 이사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그가 최근에 ‘원자력 딜레마’라는 책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접하면서 집필을 시작해 두 달 만에 책을 완성할 정도의 놀라운 필력을 과시해 눈길을 끈다. 3년째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 전 장관을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시내 음식점에서 만났다. 자연스럽게 책과 원자력 얘기부터 나왔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벌어진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원전 정책이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섬,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의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원자력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징검다리 에너지로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 또한 원전 수출국이 된 전환기에 어떻게 원자력 관리에서 선진적 역량을 발휘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야 할 중대 기로에 섰습니다. 뿔뿔이 나뉜 (원자력의) ‘부분의 관점’을 통합해 국가 차원의 ‘전체의 관점’을 정립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책을 내게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김 전 장관은 익히 잘 알려진 여성 과학자다. 그렇다면 원자력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을까. 그는 이 물음에 과학사를 공부하면서 원자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원자력 공학을 전공한 스페셜리스트는 아닙니다. 그러나 20여년간 제너럴리스트로서 원자력과 인연이 좀 있지요. 1992년 ‘현대사회와 과학’(동아출판사)을 펴낼 때 원자폭탄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뤘고 대학강단에서 과학사 과목을 가르칠 때 이런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과학자들이 인류 재앙을 일으키는 원자력 연구를 해서는 안 될 일을 했지요. 원자력 과학자들은 연구에만 몰두하다 보니 가공할 파괴력, 즉 우리 인간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인문사적인 부분을 놓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전 장관은 책을 내면서 4주만에 원고를 탈고했다. 그는 이번 책이 ‘마지막’이라고 강조했다. 눈도 아픈 데다 평소 원자력에 대한 정열을 한꺼번에 다 쏟았기 때문에 미련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1994년 석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원자력의 문화사적 이해’와 ‘원자력의 사회적 이해’ 등의 논문을 내놓을 만큼 이 분야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원자라는 비가시적 실체의 원자력에 지구를 몇번 날리고도 남을 파괴력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야기를 다시 후쿠시마로 돌렸다. 원전 르네상스라는 말이 앞으로도 통할지 궁금했다. “세계적으로 힘을 얻고 있던 원전 확대 정책에 일단 찬물을 끼얹은 격입니다. 더욱이 안전관리를 잘하는 기술강국으로 알려졌던 일본에서 체르노빌급의 심각한 사고가 났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지요. 어쨌거나 원전정책은 사회적 수용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정책 추진이 지연되거나 전환되는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사고가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나라 원전 발전비중은 에너지의 34%로 세계 5위의 원전국입니다. 재생 에너지 비율은 2%도 안 되지요. 나날이 전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는 매우 취약합니다.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면서 세계 원전의 정책이 급격한 방향전환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은 사회적 비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원자력 담론을 슬기롭게 정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원자력계가 시급히 대응해야 할 과제는 무엇일까. 그는 “원자력 안전규제 체제의 독립성과 투명성, 그리고 신뢰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아울러 “신규 원전건설과 기존 원전 수명 연장 기준을 재검토해서 기술적 보완의 여지를 살피고 안전과 기술개발 부문의 국제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에너지 리더십’을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정치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가 아니냐고 물었다. “원전정책은 에너지 리더십뿐만 아니라 팔로어십까지 갖추어야 풀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답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 그리고 지역 사회가 함께 그 답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투명한 토론 공간을 마련해야 하고 정치권은 그 장을 펼치는 촉매역할을 해야 합니다.” 원자력은 인류 미래의 정말 필요한 에너지로 있어야 할까. 아니면 재앙을 우려해 궁극적으로는 없애야 할까. “새로운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계가 구축될 때까지 징검다리 에너지로서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원자력의 기능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따라서 원전의 위험성만 부각시키기보다는 최대한 원전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부분에서 답을 찾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원전정책만 따로 떼어서 보는 것보다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틀을 놓고 따져 보는 ‘에너지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김 전 장관은 정부와 사회의 협력으로 스웨덴의 사례를 설명했다. “스웨덴은 원전 국가 중 유일하게 고준위 방폐물의 최종 처분 부지 선정을 완료했습니다. 법 제정부터 시작해 33년이 걸렸고 11년 걸려 시설을 짓는 중이지요. 이처럼 긴 호흡으로 지역사회와 대화하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결과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김 전 장관은 “원자력에 관련되는 광범위한 전문가 그룹이 관리 방안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도출하고 다음 단계로 그것에 근거하여 일반 공론화를 추진한다는 얼개가 중요하다.”면서 상충되는 모든 의견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끝장 토론을 거쳐서라도 견해차를 좁혀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김명자 전 장관은… 1944년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함남 단천 출신으로 성균관대 영문학자로 이름을 날렸다. 경기 여중과 여고를 나온 뒤 서울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미국 버지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1971)를 취득했다. 1972년부터 1999년까지 서울대와 숙명여대에서 화학과 과학사를 강의했다. 1999년 6월 환경부장관이 된 뒤 3년 8개월동안 재임하면서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장관’ ‘국민의 정부 최장수 장관’ 등의 기록을 남겼다. 장관 재임시절 에코-2 프로젝트, 4대강 수계 특별법, 천연가스 버스 보급 등을 추진했고 환경부가 2001년, 2002년 제1, 2회 정부부처 업무 평가에서 최우수 부처로 대통령 표창을 이끌었다. 17대 국회의원으로 일할 때는 국방위원회 간사로 군인복지기본법 제정과 국방 R&D활성화에 기여했고 국회 윤리특별위원장, 한·미의원협의회와 한일의원연맹 고문, 국회 FTA 포럼 대표의원 등으로 활동했다. 현재 사단법인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 사회통합위원, 차기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저탄소 녹색성장 국민포럼 공동대표, 극지포럼 공동대표,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헌정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또 카이스트(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1994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진흥상 대통령상을 비롯, 제1회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상(2002), 청조근조훈장(2004) 등을 받았다. 저서와 번역서로는 ‘과학혁명의 구조’ ‘동서양의 과학전통과 환경운동’ ‘과학기술의 세계’ ‘에덴의 용’ ‘앞으로의 50년’ 등 10여권이 있다.
  • [깔깔깔]

    ●난센스 퀴즈 약은 약인데 아껴 먹어야 하는 약은? 절약. 낭떠러지 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싸는 똥은? 떨어질똥 말똥, 죽을똥 살똥.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뜻은? 내 오늘 안에 빚갚으리오. ●마징가 마징가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느님께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그러자, 하느님이 나타나시더니. 하느님: 네가 소원 비는 것을 들었다. 그 간절한 마음에 사람이 되게 해 주겠다. 단! 사람들 입에서 마징가라는 말이 나온다면 다시 마징가로 돌아가게 된다. 마징가: 네!!! 사람이 된 마징가는 한 여자를 만나고 사귀다가 여자의 아버님을 찾아갔다. 그 아버지는 맏이(첫째)만 좋아했다. 아버지: 자네 혹시 맏인가?
  •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교도소 톱5 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교도소 톱5 는?

    교도소는 사회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갱생 및 재교육을 실시하는 곳으로 사회와 격리된 생활과 규칙은 그 담장 만큼이나 높다. 최근 한 해외사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교도소 5’를 선정해 눈길을 끌고 있다. 도저히 교도소라고 느껴지지 않는 해외의 특이한 교도소를 소개한다. 1. 고급 호텔 수준 오스트리아 ‘레오벤 교도소’ (Justizzentrum Leoben) 멀리서 보면 고급 호텔이나 회사 처럼 보이지만 실제 교도소다. 멋진 외관과 내부 인테리어로 별 다섯개 짜리 교도소라고도 불린다. 입구에는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쓰여있으며 재소자들의 사회복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자유도 보장된다. 이곳에는 205명의 재소자가 복역하고 있으며 재소자의 인권을 과보호 한다는 논란도 있다. 2. 재소자가 스스로 운영하는 볼리비아 ‘산 페드로 교도소’(San Pedro Prison)   잠겨진 문을 열고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면 아무도 죄수복을 입고있지 않으며 레스토랑, 시장, 호텔 등과 뛰어노는 아이들도 볼 수 있다. 이 교도소는 재소자 들끼리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아 스스로 운영하는 하나의 사회로 간수도 없다. 여기 재소자들은 안에서 돈을 벌 수 있으며 이 돈으로 살 곳을 구입하거나 빌린다. 재소자 가족의 입소도 허락돼 가족끼리 생활하는 경우도 있으며 재소자가 교도소 안에서 범죄를 일으키면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형을 받게 된다. 볼리비아의 재정상태가 열악해 교도소 내부는 이같이 재소자들에게 맡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춤추는 필리핀 ‘세부 교도소’(Cebu Prison) 최근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집단으로 춤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교도소다. 교도소 측은 재소자의 교화 프로그램으로 춤을 가르치고 있으며 댄스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톡톡한 홍보효과도 누리고 있다. 관광객들도 교도소를 구경갈 수 있으며 죄수옷 등을 구입하거나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교도소 측은 “교화 프로그램으로 댄스를 도입한 이후 재소자들의 생활이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었다.”고 전했다. 4. 세계 최초 육아 교도소 스페인 ‘아랑후에스 교도소’(Aranjuez Prison) 아이가 있는 재소자의 경우 가족 모두 생활할 수 있게 설계된 세계 최초 육아가 가능한 교도소다. 입소 조건은 부부가 모두 재소자로 3세 미만의 아이가 있는 경우 해당된다. 방 벽에는 디즈니 캐릭터가 장식돼 있으며 외출 허가를 얻으면 가족들이 바캉스도 갈 수 있다. 교도소 측은 “아이와 함께 생활한 재소자들의 재범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5.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영국왕실령 ‘사크 교도소’(Sark Prison)  영불 해협에 있는 영국왕실령 사크섬에 있는 초미니 교도소다. 인구 600명 정도의 작은 섬에 있는 이 교도소는 멀리서 보면 교도소라기 보다는 창고 수준이다. 최장 1일을 가둘 수 있으며 150년 이상이나 사용되고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는 어느 날 한 권의 노트를 집어든다. 라이토는 이 노트에 이름과 방법을 적으면 그 사람이 그대로의 운명을 맞게 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사신 류크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데스노트’였던 것이다. 다양한 규칙을 숙지한 라이토는 노트를 활용해 범죄자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라이토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전 세계의 범죄율은 70% 이상 줄고, 인터넷과 사회 구성원들은 그를 ‘키라’라 부르며 신(神)으로 추앙하기 시작한다. 2003년 일본의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한 오바타 다케시와 오바 쓰구미의 만화 ‘데스노트’는 인간의 본성에 도전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의 독자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데스노트를 한 번쯤 소지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악행을 한 사람이 응징을 당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토머스 앨바 에디슨(1847~1931), 로버트 스콧(1868~1912).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의 이번 주 주인공들은 능력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은 ‘라이벌’로 인해 마음껏 행복을 누리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고통, 패배자라는 주변의 시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갈등과 콤플렉스. 이들에게 가상의 데스노트를 쥐어주면 어떤 내용을 적을까. 위대한 천재들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 라이벌들을 살펴봤다. “흉내쟁이에 촌뜨기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라파엘로(1483~1520)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다.”(미켈란젤로의 회고문 중에서) ●주요 내용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 날 그려 넣었단다. 그것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같이 더럽게 못생긴 인물로 말이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아테네 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가죽장화나 옷이나 전부 지금 시대 복장인데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얼굴까지 똑같이 그려 놨으니 아예 대놓고 욕 먹이는 짓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 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옆에서 내가 시스티나 천장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엇보다 기분 나쁜 건 벽화의 주인공인 플라톤으로 내 필생의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려 놓았다는 거다. 우르비노(이탈리아의 시골) 출신의 촌뜨기가 처음 볼 때부터 기본이 안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술가라면 무릇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파엘로 저놈은 어릴 때부터 나랑 다빈치 작품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베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더니 이젠 그걸 조금씩 바꿔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건 그냥 모방이자 습작 화가지. 후세 사람들이 저놈 그림이랑 내 그림을 같은 높이에 걸어 놓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된다. 라파엘로는 분명히 자기 고향 선배이자 후견인인 브라만테(1444~1514·성베드로 성당 설계자)와 짜고 날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스티나 예배당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나보고는 20m나 되는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하고, 라파엘로한테는 편하게 집무실 벽화를 맡기다니. 난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해설 괴팍하고 추남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잘생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진 라파엘로를 평생의 원수로 생각했다. 특히 라파엘로와 브라만테가 서로 짜고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다고 믿었다. 자기보다 8세 어렸던 라파엘로가 37세에 요절한 후에도 각종 기록에서 증오심을 나타냈다. “가증스런 교류전기 찾은 테슬라” -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만든 가증스러운 교류(交流)의 위험을 알려 주려면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1885년 에디슨이 직원들에게) ●주요 내용 큰일났다. 결국엔 교류가 이기고 마는 것인가. 세르비아 출신 과학자 한 명을 단지 똑똑하다는 소문만 듣고 고용했다가 내 평생의 성과가 날아가게 생겼구나. 난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해 주겠다는 테슬라의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다. 테슬라가 내 발명인 직류(直流)와는 전혀 다른 교류를 발견한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그놈이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직류가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은가.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JP 모건이 자신의 대저택에 내 설비를 깔았을 때만 해도 영광은 내 것이라 믿었는데 일개 직원 나부랭이가 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세 차례의 싸움에서 난 모두 졌다. 솔직히 잔머리를 좀 굴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교류를 이용해 개와 고양이를 죽이는 공개실험도 해 봤고,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도 만들었다. 제길. 도끼 살인마 케믈러가 즉사하지 않고 구워지는 바람에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내 업적의 집대성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만국박람회장의 조명설비 입찰에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 패하기도 했지. 마지막 승부처로 삼았던 나이아가라폭포 조명 설비에서도 웨스팅하우스가 GE를 눌렀고, 모든 이들은 교류를 전기로 인식하게 되겠지. 남은 건 하나뿐이다.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테슬라가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뭐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날씨를 변화시키는 장비, 순간이동 장치 등이나 만들겠다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니. 1700만 달러나 되는 교류 로열티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이미 테슬라를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곧 잊혀지고 난 영원한 발명왕으로 남을테니까. ●해설 1915년 테슬라와 에디슨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테슬라는 이를 거부했고 시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테슬라는 무선통신, 유도전동기,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을 개발했고 미국 전기전자학회는 테슬라에 대해 “그의 작업 결과를 없앤다면 자동차들이 멈출 것이며, 도시들이 깜깜해지고 공장들이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소문만 무성한 탕아 모차르트” - 살리에리 “당신도 알고 있죠.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내가 독살했다는 얘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임종 직전의 살리에리가 피아니스트인 이그나츠 모셰레스에게) ●주요 내용 내가 풋내기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모차르트를 죽여서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나는 황제의 음악가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데, 자기 능력을 주체조차 못하는 애송이를 죽여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가. 이게 다 모차르트가 천재라고 떠드는 소문이 과장돼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솔직히 모차르트가 훌륭한 음악가인 건 맞다. 나처럼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밟아 가는 성장 과정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으니까. 5세에 작곡을 하고 10세도 안 돼 연주회를 다녔다는 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연주회장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능력에 걸맞은 인품을 주지는 않았다. 작곡을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궁정생활을 영위할 최소한의 자제심도 없는데. 그 낭비벽과 문란한 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음악가로서 나 역시 그의 재능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하이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 나를 위해 세 곡의 소나타를 바칠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천재와 노력파 같은 과장된 소문으로, 내 영광스러운 일생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해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 이 같은 소문이 퍼졌지만, 역사적으로 독살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고 모차르트는 그 스스로 신장병과 요독증을 앓고 있었다. 소문에 상처받은 살리에리는 죽는 날까지 이를 괴로워했다. “날 속이고 남극점 먼저 간 아문센” - 스콧 “영국인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불운은 이기지 못했다.” (스콧이 자국민에게 보낸 편지) ●주요 내용 로알 아문센(1872~1928·노르웨이), 나쁜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북극을 탐험한다고 나를 속이더니 결국 상대를 안심시켜 놓고 남극점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헛소문을 낸 것이었나. 북극 탐험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주겠다는 내 호의를 거절하고, 전화도 안 받을 때 이미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어쩐지 로버트 피어리가 이미 북극점을 정복한 상태인데 왜 또 거길 가겠다고 한 건지 이상하긴 했다. 남극점을 정복하겠다는 내 기자회견과 신문기사를 보며 아문센은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이런 곳에서라도 대영제국을 이겨보겠다는 그 얄팍한 수를 읽지 못하고 신사답게 정정당당히 승부하려던 내가 멍청했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불과 35일이다. 난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그곳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을 평생 꿈꿔 왔는데, 그곳에는 노르웨이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인류가 남극점을 정복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는데 그 최초의 영광은 고작 한 달 남짓에 영원히 북유럽의 바이킹에게 넘어가는구나.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내 실수였다. 말을 끌고 남극에 오다니. 사람의 동반자인 개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동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와중에 나 역시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인류 최초’라는 이름이 결코 신사다운 행동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기 전에야 깨달았다는 것이 아쉽다. ●해설 군인이었던 스콧은 1904년 남극에서 660㎞ 지점까지 접근한 기록을 세우며 국가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7년 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를 아문센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맞았다. 현재 남극점에는 연인원 1000명 이상이 상주하는 ‘아문센·스콧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서적] ▲서양미술의 걸작(양정무/네이버 오늘의 미술)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엘리자베스 런데이·최재경/에버리치홀딩스) ▲빛의 제국(질 존스·이충환/양문) ▲모차르트 컨스피러시(스코트 마리아니·이정임/노블마인) ▲발트슈타인 소나타(이재규/21세기북스)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정재승/달) ▲아문센과 스콧(피에르 마르크·배정희/비룡소)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라이너 K 랑너·배진아/생각의 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 목성 위성도 화산 폭발?…‘이오’ 근접 사진 눈길

    목성 위성도 화산 폭발?…‘이오’ 근접 사진 눈길

    목성의 ‘달’ 이오(Io)의 지표면 밑에 엄청난 양의 마그마가 들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미항공우주국(NASA)이 공개했던 이 위성의 최근접 사진이 관심을 받고 있다. 2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NASA의 목성 탐사선인 갈릴레오호가 1995년부터 8년간 목성 탐사 중 촬영해 보내온 사진을 소개했다. 공개된 사진은 지난 1997년 7월 28일 약 60만 km의 거리에서 촬영된 것으로 이오의 화산 분출 장면을 담고 있다. 윗부분에 파란색 기둥은 필란 파테라(Pillan Patera)로 알려진 칼데라 화산의 연기가 표면 위로 140km 정도 솟아오르는 모습이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가운데 어두운 부분에 화산 분화구 아래쪽으로, 그림자가 진 프로메테우스라는 화산이 약 75km에 달하는 연기기둥을 뿜어내고 있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그리스의 신 이름을 따서 붙여진 프로메테우스의 연기기둥은 지난 1979년 보이저호가 처음 발견해 갈릴레오호가 마지막까지 그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에 나타나 과학자들은 적어도 18년 이상은 이 화산이 활동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 외에 유일하게 활화산을 가지고 있는 목성 위성 ‘이오’는 지구 지름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지만 지구보다 100배 이상의 마그마를 가지고 있어 태양계에서 가장 화산활동이 활발한 천체로 알려졌다. 한편 이오는 표면 밑에 끊임없이 부글거리는 마그마의 지속적인 작용으로 피자의 치즈가 터진 것처럼 독특한 외형을 갖고 있으며, 목성의 강력한 중력으로 지구의 달처럼 갯벌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NASA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15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라는 시간의 흐름.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와 일제 강점기 아시아의 소국(小國) 조선이라는 공간과 위상의 차이. 이 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메디치’로 불리며 이탈리아, 아니 중세 유럽을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조 메디치(오른쪽·1449~1492)와 자국의 역사책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간송(澗松) 전형필(왼쪽·1906~1962). 겉으로 보이는 배경으로는 너무나 다르지만 이들에겐 엄청난 ‘돈’과 예술을 알아보는 ‘혜안’(慧眼)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은 각각 피렌체 우피치미술관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의 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남겼다. 만약 그들이 막대한 재산을 흥청망청 쓰는 데만 골몰했다면, 또는 재산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면 중세미술사와 한국미술사는 다시 쓰여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로렌조 메디치와 전형필이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유산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이들의 노력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 결과로 우리는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서양미술사에만 관심을 갖다가 지난주 간송미술관을 다녀온 후 한국미술의 전통과 매력에 흠뻑 빠진 직장인 윤정은(33·여)씨가 궁금한 점을 모아 인터뷰에 나섰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도대체 어떤 가문이었고 재산 규모는 얼마나 됐나. -메디치 내 증조할아버지인 토스카나 대공(大公) 코지모는 피렌체인들 사이에서 ‘국부’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은행업을 통해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가문의 수장이 됐을 때 내 나이 고작 20세였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특히 우리 가문은 직물산업의 핵심이었던 ‘백반’(양모 세척제)을 움직였고 메디치 은행의 주요 고객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교회였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피렌체가 메디치였고, 피렌체의 모든 것은 메디치 가문의 재산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에 와세다대 법대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서울 일대는 물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를 지나면서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만석꾼 집안이었다. 미곡상을 했는데 내가 24세에 물려받은 논은 4만 마지기(800만평)에 달했다. 1년에 소작농으로부터 쌀 2만 가마니(1만석)를 거둬들였는데, 이를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채 정도였다.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환산하면 매년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논을 몽땅 판다고 가정하면 6000억원 정도였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수치 환산이고 당시 논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훨씬 더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년에 나만큼 버는 조선인은 43명에 불과했다. →<윤정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흥청망청 쓰다 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 집안만 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실패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도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메디치 할아버지 코지모의 영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피렌체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난 그들과 토론하는 법을 배웠다. 10대 때부터 이미 유럽 각국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 덕에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로마어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리스어까지 능통하게 구사했을 정도였으니. 내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돈이 많은 시민이었지만 피렌체 안팎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됐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금욕적인 삶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난 바람둥이였고, 수많은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권력자에게는 그런 게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전형필 난 원래 경성에서 대학을 다니며 조선어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호사가 될 것을 강권하셨고, 그 덕분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만든 법을 연구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가업인 장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부모의 상을 당한 상황에서 본인이 즐기는 데 그것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사랑했는데 특히 수집(蒐集)에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메디치 ‘위대한 로렌조’라는 호칭과 달리 난 콤플렉스가 많았다. 심한 주걱턱이었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었다. 코도 낮았고 목소리는 거칠었다. 하지만 난 비올라와 류트(당시의 현악기), 승마술, 매사냥까지 섭렵했고 유려한 글솜씨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예술에 대한 조예는 못난 겉모습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를 지원해 그들의 작품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했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난 할아버지나 아버지, 다른 귀족들과는 좀 달랐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이외에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고 동양의 예술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라는 당시 사회상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휘문고보 시절 은사였던 고희동(1886~1965·서양화가) 선생과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위창 오세창(1864~1953·서예가) 선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두 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 선생은 나에게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왜놈들 손으로 넘어가는 우리 서화와 전적을 지키는 선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위창 선생은 나에게 ‘간송’이라는 호를 주셨고, 내 수집활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작품을 모아야 하는지, 어떤 눈을 갖춰야 진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윤정은> 돈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 취미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데, 다른 목적은 없었나. -메디치 (웃음) 난 상인이었지만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치인에게 100% 순수한 호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밀라노에 보내고 1488년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나폴리에 보냈다. 그 공국들에 내가 후원하던 예술가를 보내는 게 좋은 작품을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호의를 베풀면서 실은 정치를 한 거였다. 솔직히 내가 예술가를 후원한 돈은 대부분 내가 피렌체의 공직을 겸하면서 공금으로 썼다. 내 재산은 오로지 내 수집품을 모으는 데 집중적으로 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지는 않았나. -전형필 왜 수집에 나섰느냐고 위창 선생이 물었을 때 난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이 언젠가 독립될 것이란 믿음이 없었는데도 수집을 계속했을지는 나도 자신이 없지만, 난 반드시 독립될 것으로 믿었다. 1933년 성북동에 터를 구해 미술관을 지은 것도 독립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팔려 갔던 고려석탑을 다시 사 오면서 난 한번 유출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해방된 후에는 이전처럼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제에 더 이상 빼앗길 염려가 없어진 후에는 조선 사람이 모은 것은 모두 조선 것이기에 해방 후에는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에만 전념했다. →<윤정은> 소장품들에 대해 묻겠다. 두 사람의 노력은 우피치와 간송 미술관으로 남았지만 두 사람 모두 박물관의 개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메디치 우피치는 영어로 하면 ‘오피스’(사무실)를 뜻한다. 그곳은 내 증조부 코지모의 집무실이다. 물론 내가 가장 주목받기는 하지만 우피치 수집품은 우리 가문 전체의 공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화가부터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소장 규모 자체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조토의 ‘성모자’, 다빈치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도록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피치를 박물관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 이후로 200여년이 지난 후 메디치가 최후의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토스카나 공국에 기증하면서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남겼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어느 것도 피렌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형필 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운학문매병’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이 있다. 1937년에는 영국 변호사 개스비에게서 청자 20점을 40만원에 사기도 했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가치는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고, 그것이 원래 내가 수집을 시작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잡스러운 그림을 그린다고 폄하됐던 겸재 정선(1676~1759)을 화성(畫聖)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내 최대의 성과로 생각한다. 그럼 내가 묻겠다.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나. →윤정은 당대 최고의 좋은 자재로 지었다는 미술관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930년대의 근대식 2층 건물과 창틀에는 현대미술관처럼 멋진 조명도 없고 첨단 잠금장치도 없다. 화장실 냄새도 코를 찌른다. 아이들이 유리에 온갖 손자국을 내며 코를 박고 보는 모습은 유럽 미술관의 풍경과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전시하지 않아서 좋았고, 온전히 우리 것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보고 있는 전시품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조상의 것이라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바티칸이나 루브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친구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간송미술관에 가면 간송이라는 사람과 그가 남긴 뜻이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참고서적 간송 전형필/이충렬/김영사 조선의 그림수집가들/손영옥/글항아리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최완수·한상남/샘터 조용헌의 명문가/조용헌/랜덤하우스코리아 메디치 머니/팀 팍스·황소연 옮김/청림출판 메디치‘의 음모/피터 왓슨·김미형 옮김/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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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伊 “모나리자 실제모델 유해 발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 작품인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유해가 최근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돼 세상에 공개됐다. 이탈리아 연구팀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에 있는 성 우르술라 수도원 묘지에서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여성 리자 게라르디니의 유해를 찾았다.”고 밝혔다.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이자 유골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게라르디니는 리펜체의 부유한 상인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부인으로 알려졌다. 1479년에 태어나 63세인 1542년 6월에 사망해 이 수도원에 안장된 기록이 있어 연구진은 이곳 묘지를 중심으로 발굴 작업을 펼쳤다. 이번에 발견된 유해는 키 153cm인 여성의 두개골과 늑골, 척추 등이다. 모나리자 실제 모델 유해 발굴 프로젝트를 주도한 고고학팀의 실바노 빈세티는 “이번 유해가 한 명의 것인지는 검사를 해봐야 확인이 되겠지만, 적어도 성 우르술라 지하묘지에 게라르디니의 유골이 묻혀 있다는 가설은 확인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탄소동위원소 연대 측정 및 게라르디니 후손과의 DNA 분석을 이용해 신원을 확인한 뒤 두개골을 토대로 얼굴을 재현할 계획이다. 그동안 ‘모나리자’의 실제 모델에 대해서는 여러 설들이 제기돼 왔다. ‘수년에 여러 인물에 영향을 받은 가상의 여인’이라는 설과 ‘다빈치의 자화상’이라는 추측, 심지어 올해 초에는 이탈리아 문화계에서 다빈치의 남성 제자 ‘살라이’(지안 지아코모 카프로티)라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정황상 이번에 유해로 발견된 리자 게라르디니가 ‘모나리자’의 실제 주인공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모나리자’의 ‘모나’가 결혼한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고 ‘리자’가 그녀의 이름과 같기 때문이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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