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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손으로 두방이면 잡는 황소를 정보부 협박에…”

    “맨손으로 두방이면 잡는 황소를 정보부 협박에…”

    “전부 그렇게 먼저 보내고 난 후에는…프로레슬링이 지금 인기가 없으니까 큰 죄를 지은 거 같아.참 팬들에게 사랑받았는데….이렇게 모래성같이 싹~ (인기가 사라지니) 내 자신이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거지.어디 누구한테 가서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왕년의 프로레슬러 천규덕(77)씨가 과거를 회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천씨는 한국 프로레슬러 1세대로 혼자 남아있는 현실에 다시 한 번 회한의 감정을 내뱉었다.  그에게 한국 프로레슬링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얘기를 듣기 위해 최근 ‘프로레스링 동우회’를 찾았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건물 5층에 마련된 동우회 사무실.좁은 계단을 오른 뒤 헬스클럽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넓지않은 공간에는 사무를 보는 직원도 번듯한 간판도 없었다.낡은 건물의 한 귀퉁이 옥탑방,한국 프로레슬링의 현 주소를 보는 듯 했다.  한때 전국민을 들썩이게 만들며 링 위를 호령했던 챔피언에게 현재 주어진 자리는 사각의 링이 아닌 쿠션이 푹 꺼진 낡은 소파였다.천씨는 이 곳에서 한국 프로레슬링의 영광과 좌절에 대해 얘기했다.  ●일본 방송 보고 기술 배우던 초창기  그는 부산에서 군생활을 하던 중 전파사 TV로 전설적인 레슬러 고 역도산(본명 김신락 1963년 사망) 선수의 시합을 보고선 프로레슬링에 입문(1950년대 후반으로 추정)했다.  “1949년도에 육군항공대(현재 공군)에 입대를 한 뒤 부산에 있는 부대로 발령을 받았지.근데 그때만해도 부산 해안가에서는 일본 방송이 잡혔어요.어느날 전파사 TV에 역도산씨가 나오는 거야 그 분이.스타일 보니까 손으로 막 치고 있더라구.나도 이건데(손) 한 번 해보자 해서 다음날 같은 체육관에 있던 고 장영철 선수(2006년 사망)한테 가서 말하면서 시작했어요.우연하게 시작한 거지.”  천씨가 털어놓은 한국 프로레슬링의 초창기는 주먹구구식이었다.  “시합을 하려면 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는 밑에 매트를 깔고 나무로 된 기둥을 세운 다음에 링을 만들었지.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TV보고 ‘이렇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했죠.기술도 TV보고 배우고….덩치 큰 사람들이 로프 위에 탁~걸치면 기둥이 무너졌어요.그때는 다 그렇게 했어요.” ●찬란했던 전성기  부산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천씨는 장영철과 함께 1963년쯤 서울로 진출해 흥행을 거듭하게 된다.그가 회상하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는 너무도 화려했다.지금의 쇠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했어요.인기가 하늘을 찔렀지.배고프고 밤이면 할 게 없었어.놀거리도 없었지.근데 우리가 이걸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겠느냐 말야.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일본 사람들 불러다가 때려눕히니 얼마나 통쾌했겠느냐 이거야.장충체육관에 한 7000~8000명이 들어가는데 그 바깥에 사람들이 더 많았어.표를 못 구해가지고 암표가 막 3~4배씩 뛰고,그래도 표 못 구하면 다방이나 그런데로 몰려가고…TV가 나온(널리 보급된) 뒤에 레슬링하는 날이면 거리에 택시가 없었어요.다 그거 구경한다고 집으로 들어가버려서….”  1965년 중반 일본에서 활동하던 고 김일 선수(2006년 사망)가 귀국해 프로레슬링의 인기를 한층 높이게 된다.그의 박치기 한 방에 일본 선수들이 고꾸라지는 모습에 국민들은 희열을 느꼈다.김일은 전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국민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하지만 천씨 등 ‘국내파’는 김일의 등장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당황스러웠지.우리가 틀을 잡아놓고 나니까 오오키 긴타로(김일의 일본식 이름)라고 들어오니 당황스러운 거죠….일본 이름으로 활동했으니까 한국 사람인 줄도 몰랐고.기분이 안 좋을 수 밖에 없었던 거죠.그래도 내 마 딱 그 사람이 그래도 외국에서 시합 많이 해 봐서 경험은 많을 거 아니냐고 해서 같이 시합을 하게 된 거야.일주일에 하루 이틀 쉬고 계속 시합이 잡혔지.정부가 국제 경기를 한 달에 한 번씩 하라고 하고.”  김일 장영철 천규덕 등의 활약에 한국 프로레슬링은 승승장구한다.  ●‘프로레슬링은 쇼’ 사건  “그러다가 레슬링이 쇼다 그 사건이 터져서…참 인기가 그게…한 번 떨어지니까 좀처럼 되살리기 힘들대요.갈수록 사람이 줄고 (팬들로) 꽉 찼던 장충체육관이…”  1965년 11월 27에 터진 ‘장영철 파문’을 얘기하는 천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일본 오쿠마 선수가 장 선수한테 새우꺾기(허리를 꺾는 기술)를 했어.원래 로프를 잡으면 놔주는데…움직일 수 없으니까(로프까지 못 가니까) 옆에 있던 한국 선수들한테 올라오라고 (장선수가) 손짓을 해서 집단 폭행을 했다는 거지.홧김에....그것 때문에 선수들이 연행돼서 경찰서로 갔죠.거기서 기자들이 ‘이기 레슬링 짜고 하는 거 아이가.’라고 묻는데 장 선수가 대답을 못 한 거야.취조받고 그러니까 겁도 나고 해서.그러다 보니 다음날 신문 사회면에 대문짝만하게 ‘레슬링이 쇼’라고…난 그때 전주에 시합하러 내려가 있었는데.”  당시 신문 등 관련자료들에는 이 사건에 대해 “장영철이 경찰서에서 ‘프로레슬링에선 사전에 경기 과정과 우승자를 논의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프로레슬링의 규칙 등을 검사가 잘못 이해하고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식으로 발표했다.” 등으로 기록돼있다.  천씨가 기억하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는 여기까지였다.(하지만 이 부분은 다른 자료들과 좀 배치되는 면이 있다.당시 신문기사 등에 따르면 1974년에도 국내에서 김일 선수가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결을 벌이는 등 흥행이 잘 됐다고 알려졌다.이후 김일과 장영철 천규덕의 불화가 깊어지고 후진양성이 되지 않는 등 악재가 겹쳐 1970년대 중후반 프로레슬링이 침체된다고 전해진다.)  ●잿빛 추억 그리고 하늘색 꿈  “사람이 안 들어오더라구.100명이 줄고 그 다음날이면 100명이 더 줄고….내가 그래서 김일-장영철-나 3자 시합도 주선해보고,미국도 유학갔다 오고 그랬는데도 결국 안 되더라구.한달에 한번 시합하다가 두달에 한번,6개월에 한번….시골로 다니면서 무슨 서커스단도 아니고…이제 나도 나이도 먹고 그냥 주저앉았는데 그러다 김일씨도 혼자서 해보니 안되잖아요.그 때 세 사람이 한 몸이 돼서 화합하고 그랬어야 하는데,그래서 레슬링이 이지경이 된 거죠.”  1985년 링을 떠난 천씨는 선수시절부터 몸을 담았던 영진약품 무역부에서 1989년까지 근무한다.그후 군 동기생의 회사에서 6년간 일을 한다.1998년에는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으로 원로 선수들과 함께 프로레슬링 동우회를 결성한다.  또 2008년에는 동국대 사회체육대학원 스포츠엔터테인먼트과에서 프로레슬링의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하지만 학생 수가 적어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강의를 그만두게 된다.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프로레슬링 대회는 1년에 다섯번도 채 되지 않는다.선수층도 얇고 무엇보다 ‘젊은 스타’가 수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천씨는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까지 프로레슬링 인기 부활의 불씨를 당길 꿈을 놓지 않고 있다.다른 단체들과 손을 잡고 큰 시합을 열 계획을 구상중이라고 했다.  “옛날엔 죽이라 살리라 때리라 이랬는데 이제는 손뼉치고 웃고 즐기는 시대가 됐어.우리 프로레슬링도 그렇게 가야지.팬들은 쇼라는 걸 다 알고 있다 이거야.즐겁게만 해달라는 거지.이게 팬들의 요구사항일 거예요.”  그는 여든이 다된 지금에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아침 저녁으로 앉았다 일어나기,아령들기 등으로 5시간씩 단련하고 있다고 했다.언젠가 인기가 다시 되살아나는 날까지 자신과 프로레슬링을 지탱하기 위해. 글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사진 동영상 인터넷서울신문 김상인vj bowwow@seoul.co.kr  
  • 천규덕, 황소 때려잡다 ‘남산’ 끌려갈뻔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 천규덕(77)씨는 최근 서울 종로에 있는 ‘프로레스링 동우회’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당시 기억에 남는 일화 3가지를 소개한다.   ●역도산 제자될 뻔  역도산(본명 김신락 1963년 사망)의 경기를 보고 프로레슬링계에 입문한 천씨는 훗날 역도산을 만나게 된다.  역도산은 1963년 가을 프로레슬링 전용 경기장 건립을 추진하기 위해 귀국하게 된다.이 소식을 들은 그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조선호텔 앞으로 가 도열,역도산을 만난다.  천씨는 당시 현역 군인 신분으로 공군 상사 정복을 입어 유독 눈에 띄었다.역도산은 천씨와 악수를 하며 “나와 많이 닮았다.”고 일본말로 했다.역도산은 이어 관계자 불러 “이 사람을 일본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다.후계자로 지목한 것이다.  천씨는 일본으로 돌아간 역도산으로부터 ‘자신의 도장으로 오라.’는 초청장을 받고 제대신청을 한다.그러나 같은 해 12월 제대 수속을 밟던 중 역도산이 칼에 찔려 숨졌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일본행은 물거품이 된다.  ●황소 때려잡다가 ‘남산’ 끌려갈 뻔 1970년대초 천씨는 프로레슬링 흥행을 위한 볼거리로 황소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이벤트를 기획한다.전설적인 무술인 최배달(본명 최영의 1994년 사망)이 소뿔을 격파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일단 아이디어를 냈는데 ‘진짜 될까.’ 싶어서 마장동 도축장에 갔죠.연습삼아서 (도축되러 가는) 소를 치니까 딱 두방에 가대요.소 콧등하고 목 옆에 급소에 한 방씩.아 이거 되는구나 해서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죠.”  그런데 행사 며칠전 ‘날던 새도 떨어뜨린다’던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에서 전화가 온다.  “천 선수 왜 하필 황소를 때려잡아.공화당 상징이 황소 아닌가.그러면 공화당을 때려잡는다는 말 아냐.”  이 전화에 소름이 쫙 돋은 천씨가 “그래도 홍보를 다 해놨는데 어떡하느냐.”고 하자 중앙정보부 인사는 “황소가 세다는 걸 보여줘야 하니까 천천히 보내라.”고 방법을 알려준다.실제로 천씨는 장충체육관에서 ‘열몇 방’에 황소를 보내게 된다.  “한방에 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많이 때리니 사람들 반응이 좋겠어요.” 천씨가 회고하는 당시 관중들의 반응이다.  ●김일과 붙을 뻔 한국 프로레슬링을 거론할 때 김일(2006년 사망)이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장영철(2006년 사망)과 천규덕은 그 뒤에 위치한다.천씨는 ‘1인자’ 김일과 맞붙은 적이 있었을까.  천씨의 말에 따르면 김일-장영철-천규덕 간 1대1 방식의 3자 시합을 자신이 제안해 성사된 적이 있다고 한다.그러나 천씨와 김일은 서로 겨룬 적이 없다.천씨는 정확한 연도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대해서는 상세히 말했다.  “셋이서 서로 다 스타라고 하니까 진정한 강자를 가려내자고 제안했지.영웅은 하나여야 하니까.또 장영철 선수가 국내파고,김일 선수는 해외파였으니까 서로 ‘한 번 싸워보시오.’라고 해서 경기를 치렀어.첫날 나하고 장 선수가 붙었는데 내가 이기면 안되니까(남은 둘이 시합을 못하니까) 양보를 했지.그런데 장 선수가 김일 선수랑 경기를 안 하겠다는 거야 글쎄.”  결국 천씨와 장영철만 붙고 나머지 두 시합(장영철-김일, 천규덕-김일)은 열리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맨손으로 두방이면 잡는 황소를 정보부 협박에…”

    “전부 그렇게 먼저 보내고 난 후에는…프로레슬링이 지금 인기가 없으니까 큰 죄를 지은 거 같아.참 팬들에게 사랑받았는데….이렇게 모래성같이 싹~ (인기가 사라지니) 내 자신이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밖에 안 드는 거지.어디 누구한테 가서 하소연할 사람도 없고….” 왕년의 프로레슬러 천규덕(77)씨가 과거를 회상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천씨는 한국 프로레슬러 1세대로 혼자 남아있는 현실에 다시 한 번 회한의 감정을 내뱉었다. 그에게 한국 프로레슬링이 가장 빛나던 시절의 얘기를 듣기 위해 최근 ‘프로레스링 동우회’를 찾았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건물 5층에 마련된 동우회 사무실.좁은 계단을 오른 뒤 헬스클럽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는 넓지않은 공간에는 사무를 보는 직원도 번듯한 간판도 없었다.낡은 건물의 한 귀퉁이 옥탑방,한국 프로레슬링의 현 주소를 보는 듯 했다. 한때 전국민을 들썩이게 만들며 링 위를 호령했던 챔피언에게 현재 주어진 자리는 사각의 링이 아닌 쿠션이 푹 꺼진 낡은 소파였다.천씨는 이 곳에서 한국 프로레슬링의 영광과 좌절에 대해 얘기했다. ●일본 방송 보고 기술 배우던 초창기 그는 부산에서 군생활을 하던 중 전파사 TV로 전설적인 레슬러 고 역도산(본명 김신락 1963년 사망) 선수의 시합을 보고선 프로레슬링에 입문(1950년대 후반으로 추정)했다. “1949년도에 육군항공대(현재 공군)에 입대를 한 뒤 부산에 있는 부대로 발령을 받았지.근데 그때만해도 부산 해안가에서는 일본 방송이 잡혔어요.어느날 전파사 TV에 역도산씨가 나오는 거야 그 분이.스타일 보니까 손으로 막 치고 있더라구.나도 이건데(손) 한 번 해보자 해서 다음날 같은 체육관에 있던 고 장영철 선수(2006년 사망)한테 가서 말하면서 시작했어요.우연하게 시작한 거지.” 천씨가 털어놓은 한국 프로레슬링의 초창기는 주먹구구식이었다. “시합을 하려면 링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때는 밑에 매트를 깔고 나무로 된 기둥을 세운 다음에 링을 만들었지.뭐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TV보고 ‘이렇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했죠.기술도 TV보고 배우고….덩치 큰 사람들이 로프 위에 탁~걸치면 기둥이 무너졌어요.그때는 다 그렇게 했어요.” ●찬란했던 전성기  부산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천씨는 장영철과 함께 1963년쯤 서울로 진출해 흥행을 거듭하게 된다.그가 회상하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는 너무도 화려했다.지금의 쇠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했어요.인기가 하늘을 찔렀지.배고프고 밤이면 할 게 없었어.놀거리도 없었지.근데 우리가 이걸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겠느냐 말야.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일본 사람들 불러다가 때려눕히니 얼마나 통쾌했겠느냐 이거야.장충체육관에 한 7000~8000명이 들어가는데 그 바깥에 사람들이 더 많았어.표를 못 구해가지고 암표가 막 3~4배씩 뛰고,그래도 표 못 구하면 다방이나 그런데로 몰려가고…TV가 나온(널리 보급된) 뒤에 레슬링하는 날이면 거리에 택시가 없었어요.다 그거 구경한다고 집으로 들어가버려서….” 1965년 중반 일본에서 활동하던 고 김일 선수(2006년 사망)가 귀국해 프로레슬링의 인기를 한층 높이게 된다.그의 박치기 한 방에 일본 선수들이 고꾸라지는 모습에 국민들은 희열을 느꼈다.김일은 전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국민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하지만 천씨 등 ‘국내파’는 김일의 등장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당황스러웠지.우리가 틀을 잡아놓고 나니까 오오키 긴타로(김일의 일본식 이름)라고 들어오니 당황스러운 거죠….일본 이름으로 활동했으니까 한국 사람인 줄도 몰랐고.기분이 안 좋을 수 밖에 없었던 거죠.그래도 내 마 딱 그 사람이 그래도 외국에서 시합 많이 해 봐서 경험은 많을 거 아니냐고 해서 같이 시합을 하게 된 거야.일주일에 하루 이틀 쉬고 계속 시합이 잡혔지.정부가 국제 경기를 한 달에 한 번씩 하라고 하고.” 김일 장영철 천규덕 등의 활약에 한국 프로레슬링은 승승장구한다. ●‘프로레슬링은 쇼’ 사건 “그러다가 레슬링이 쇼다 그 사건이 터져서…참 인기가 그게…한 번 떨어지니까 좀처럼 되살리기 힘들대요.갈수록 사람이 줄고 (팬들로) 꽉 찼던 장충체육관이…” 1965년 11월 27에 터진 ‘장영철 파문’을 얘기하는 천씨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일본 오쿠마 선수가 장 선수한테 새우꺾기(허리를 꺾는 기술)를 했어.원래 로프를 잡으면 놔주는데…움직일 수 없으니까(로프까지 못 가니까) 옆에 있던 한국 선수들한테 올라오라고 (장선수가) 손짓을 해서 집단 폭행을 했다는 거지.홧김에....그것 때문에 선수들이 연행돼서 경찰서로 갔죠.거기서 기자들이 ‘이기 레슬링 짜고 하는 거 아이가.’라고 묻는데 장 선수가 대답을 못 한 거야.취조받고 그러니까 겁도 나고 해서.그러다 보니 다음날 신문 사회면에 대문짝만하게 ‘레슬링이 쇼’라고…난 그때 전주에 시합하러 내려가 있었는데.” 당시 신문 등 관련자료들에는 이 사건에 대해 “장영철이 경찰서에서 ‘프로레슬링에선 사전에 경기 과정과 우승자를 논의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프로레슬링의 규칙 등을 검사가 잘못 이해하고 ‘프로레슬링은 쇼’라는 식으로 발표했다.” 등으로 기록돼있다. 천씨가 기억하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는 여기까지였다.(하지만 이 부분은 다른 자료들과 좀 배치되는 면이 있다.당시 신문기사 등에 따르면 1974년에도 국내에서 김일 선수가 안토니오 이노키와 대결을 벌이는 등 흥행이 잘 됐다고 알려졌다.이후 김일과 장영철 천규덕의 불화가 깊어지고 후진양성이 되지 않는 등 악재가 겹쳐 1970년대 중후반 프로레슬링이 침체된다고 전해진다.) ●잿빛 추억 그리고 하늘색 꿈 “사람이 안 들어오더라구.100명이 줄고 그 다음날이면 100명이 더 줄고….내가 그래서 김일-장영철-나 3자 시합도 주선해보고,미국도 유학갔다 오고 그랬는데도 결국 안 되더라구.한달에 한번 시합하다가 두달에 한번,6개월에 한번….시골로 다니면서 무슨 서커스단도 아니고…이제 나도 나이도 먹고 그냥 주저앉았는데 그러다 김일씨도 혼자서 해보니 안되잖아요.그 때 세 사람이 한 몸이 돼서 화합하고 그랬어야 하는데,그래서 레슬링이 이지경이 된 거죠.” 1985년 링을 떠난 천씨는 선수시절부터 몸을 담았던 영진약품 무역부에서 1989년까지 근무한다.그후 군 동기생의 회사에서 6년간 일을 한다.1998년에는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으로 원로 선수들과 함께 프로레슬링 동우회를 결성한다. 또 2008년에는 동국대 사회체육대학원 스포츠엔터테인먼트과에서 프로레슬링의 역사를 가르치기도 했다.하지만 학생 수가 적어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강의를 그만두게 된다.현재 국내에서 열리는 프로레슬링 대회는 1년에 다섯번도 채 되지 않는다.선수층도 얇고 무엇보다 ‘젊은 스타’가 수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천씨는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까지 프로레슬링 인기 부활의 불씨를 당길 꿈을 놓지 않고 있다.다른 단체들과 손을 잡고 큰 시합을 열 계획을 구상중이라고 했다. “옛날엔 죽이라 살리라 때리라 이랬는데 이제는 손뼉치고 웃고 즐기는 시대가 됐어.우리 프로레슬링도 그렇게 가야지.팬들은 쇼라는 걸 다 알고 있다 이거야.즐겁게만 해달라는 거지.이게 팬들의 요구사항일 거예요.” 그는 여든이 넘은 지금에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다.아침 저녁으로 앉았다 일어나기,아령들기 등으로 5시간씩 단련하고 있다고 했다.언젠가 인기가 다시 되살아나는 날까지 자신과 프로레슬링을 지탱하기 위해. 글 /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사진 ·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김상인VJ bowwow@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盧 이르면 28일 소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측에 26일 출두 날짜를 통보해 주기로 했다. 출두 날짜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노 전 대통령측이 소환시기를 빨리 결정해 주기를 원하고 있어 이르면 28일 소환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답변서 회신을 25일로 맞춰달라고 했는데 내일 노 전 대통령측에서 보낼 것 같다.”면서 “다음날까지 검토하고 소환일정을 잡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경호 차원에서 하루 만에 조사를 마칠 예정이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까지 헬기로 이동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질문 내용과 답변이 예상되는 수준이라 답변서 작성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면서 “검찰이 소환조사 일정도 빨리 결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이자, 현 정권의 막후 실력자로 알려진 천신일(66) 세중나모여행 회장 수사와 관련, 천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코스닥 상장사 세중나모여행과 세중아이앤씨, 세중정보기술 등의 주식 및 금융거래에서 수상한 정황을 포착하고 관련 자료를 금융감독원에서 넘겨받아 분석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천 회장은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8월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으로 올림픽 응원차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격려금이라며 2000만원을 위안화로 주길래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친형 건평씨가 2004년 말~2005년 초 노 전 대통령에게 박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당시 중부지방국세청장을 국세청장으로 기용해 달라고 청탁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심리로 열린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첫 공판에서 검찰은 건평씨를 증인으로 신청하며 이를 공개했다. 정은주 장형우기자 ejung@seoul.co.kr
  • 헐크 호건 “전 아내에 살인충동 느꼈다”

    헐크 호건 “전 아내에 살인충동 느꼈다”

    “O.J. 심슨이 이해된다.” 왕년의 미국 프로레슬링 스타 헐크 호건(55·본명 테리 볼리아)이 이혼한 전 부인 린다 볼리아(49)를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헐크 호건은 최근 잡지 ‘롤링스톤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995년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O.J. 심슨을 거론하며 “심슨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말했다. 지난 9일 헐크 호건은 전 부인 린다가 30살 연하의 새 남자친구 찰리 힐과 만나는 것과 호건의 차나 보트를 운전하는 것을 금지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19살짜리 소년이 내 차를 몰고, 내 침대에서 아내와 자고 있다.”면서 “모든 것을 범죄 장면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숨통을 끊고 싶었다.”며 거친 말들을 쏟아냈다. 금지령 요청과 함께 그는 “찰리 힐이 교통법규 위반으로 인한 엄청난 채무액 부담을 우리 가족에게 지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린다는 호건의 요구가 자신과 힐의 사랑을 방해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지난 2007년 린다의 갑작스러운 이혼서류 접수로 파경을 맞은 이들은 이후 둘 다 30살 어린 새 애인을 만나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사진=헐크호건과 전 부인 린다 볼리아 이혼 전 모습 (FilmMagic)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자고 나면 새 얼굴… 끝모를 ‘박연차 로비열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화수분이다.’ 자고나면 돈을 받은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검찰 안팎에서 회자되는 말이다. ‘박연차 리스트’에는 권력자들로 넘쳐난다.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의원, 도지사뿐 아니라 국세청과 경찰, 검찰, 국가정보원, 법원에까지 로비자금을 뿌린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박 회장 여비서 다이어리에 적힌 정·관계 인사의 약속 일정과 태광실업 은행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토대로 박 회장을 압박, “누구에게 돈을 건넸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태풍의 눈 천신일 현 여권 실세로 향하는 출입문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박 회장에게 수십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천 회장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천 회장이 박 회장의 자금을 MB캠프의 경선·대선자금으로 건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007년 12월 천 회장은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 대통령에게 30억원을 빌려줬고, 이 대통령은 그 돈을 특별당비로 냈다. 문제는 천 회장이 대형 여행사를 경영한다지만, 현금 30억원을 은행에 보관할 만큼 자산가는 아니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박 회장이 새로운 정권에 보험을 들고 싶어 ‘의형제’처럼 가까운 천 회장을 통해 MB캠프를 지원했을 것이란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천 회장과 이 대통령, 천 회장과 박 회장의 끈끈한 관계가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천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로 50년 가까이 인연을 맺었고, 박 회장과는 대한레슬링협회 회장, 부회장으로 친분을 쌓았다. ●고위관료들 좌불안석 부산·경남 지역에서 근무했거나 연고가 있는 고위 관료들은 언제 ‘박연차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지 알 수 없어 긴장하고 있다. 박 회장의 여비서 다이어리에는 경찰·검찰·국세청·국가정보원 고위 관료들의 이름이 수두룩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직 검사장이 박 회장과 골프회동을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경찰 총수를 지낸 인물이 박 회장에게 전별금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세무조사 무마 로비와 관련해서는 국세청 전·현직 고위 간부 4, 5명이 ‘박연차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부산에서 오래 근무한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거론되더니 이번에는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김성호씨와 김만복씨가 튀어나왔다. 김 전 원장은 검사 때부터 박 회장과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전해졌고, 김 전 원장은 2007년 2월 박 회장의 셋째딸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박 회장이 일상적인 ‘관리’ 차원에서 돈을 건넸다고 보이지만, 국정원의 업무 범위가 워낙 넓어 사업 청탁이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박연차 리스트’가 70명에 이른다는 소문이 점차 사실로 드러나면서, 검찰은 정치인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고위 관료를 차례대로 소환해 박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로컬플러스] 14일 해남서 전국레슬링대회

    땅끝인 전남 해남 우슬체육관에서 14일부터 20일까지 7일 동안 제27회 회장기 전국레슬링대회가 열린다. 초·중·고와 대학·일반부 등 170개 팀 3000여명이 갈고 닦은 기량을 겨룬다. 해남에서는 24~30일 전국대학배구대회, 7월 제37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전국 남녀 중·고펜싱선수권대회가 열려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 추억의 레슬링 스타, 게임서 한자리에

    추억의 레슬링 스타, 게임서 한자리에

    THQ코리아는 최근 ‘플레이스테이션3’용 스포츠게임 ‘WWE 레전드 오브 레슬매니아’를 출시했다. 이 게임은 지난 80~90년대 당시 WWF(현 WWE)의 명승부들을 직접 즐겨 볼 수 있도록 설정됐다. 헐크 호건을 비롯해 얼티밋 워리어, 밀리언 달러맨 등 유명 선수 및 매니저 40인 이상이 등장해 추억의 레슬링 경기를 재현한다. 부가 서비스로 추억의 명승부를 선수 입장에서 체감하는 레슬매니아 투어 모드, 온라인 서비스인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를 통해 타 게임 이용자와 게임 실력을 겨루는 온라인 멀티플레이어 대전 모드 등도 준비됐다. 박상근 THQ코리아 지사장은 “과거 WWF 시절의 추억을 간단한 버튼 입력만으로 현란한 레슬링 기술을 구사할 수 있어 남녀노소 즐기기에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연차회장 로비 스캔들] MB정권 징검다리는 천신일?

    [박연차회장 로비 스캔들] MB정권 징검다리는 천신일?

    추부길(53) 전 청와대 홍보기획관을 박연차(64·구속) 태광실업 회장에게 연결시켜 준 사람은 천신일(66) 고려대 교우회장인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추 전 비서관은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박 회장으로부터 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며, 영장실질심사를 포기했다. 세중나모여행사 대표인 천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로 현 정권의 막후 실력자로 통한다. 이 대통령과 함께 ‘고대 61회(61학번 동기모임)’ 회원인 천씨는 현 정권을 탄생시킨 공신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대선 직후인 2007년 크리스마스에는 이 대통령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상득 의원 등과 함께 부부동반으로 저녁식사를 했을 정도다. 박 회장이 천씨를 추 전 비서관과 같은 현 여권 주요 인사와 접촉할 ‘징검다리’로 활용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천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로 알려진 박 회장의 ‘구명 로비’를 맡았다는 소문은 지난해 말부터 떠돌았다. 지난해 7월 국세청이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자 박 회장이 동향 선배인 천씨에게 ‘긴급구조(SOS)’를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은 점차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추 전 비서관이 천씨를 통해 박 회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고, 세무조사 무마와 검찰 고발을 막으려고 박 회장이 천씨 등과 수시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일부 언론은 보도했다. 검찰 관계자도 “박 회장과 추 전 비서관의 연결고리가 천씨”라고 인정했다. 천씨가 박 회장의 구원투수로 나선 것은 얽히고설킨 개인적, 사업적 관계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산이 고향인 천 회장과 밀양이 고향인 박 회장은 동향 선후배 사이로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왔다. 특히 박 회장의 친구였던 천씨의 동생이 갑자기 죽자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으며 더욱 돈독해진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천씨가 회장으로 활동하는 대한레슬링협회의 부회장을 지난 1월까지 박 회장이 맡았었다. 또 천씨는 2006년 박 회장이 농협에서 인수한 휴켐스의 사외이사로 일하다 논란이 일자 지난 11일 사임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경사났네! 서울 중구 여자레슬링팀 ‘아마조네스’

    경사났네! 서울 중구 여자레슬링팀 ‘아마조네스’

    서울지역 유일의 여성 레슬링팀인 중구청 ‘아마조네스’가 창단 1년 만에 국가대표 선수를 4명이나 배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20일 중구에 따르면 화제의 주인공은 이종무 감독과 선수 6명 가운데 김지은(67㎏급), 배미경(73㎏급), 김주연(55㎏급), 엄지은(51㎏급) 등이다. 이들은 지난 17일 강원 화천군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체급별 1위에 올라 태극전사의 영예를 안았다. 국가대표 4명은 조만간 태릉선수촌에 입촌, 다음달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와 9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중구 여자레슬링부는 출범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난해 2월 선수 3명으로 창단해 12월과 올 1월 선수 2명씩을 보강했지만 한 선수가 운동을 그만둬 어려움을 겪었다. 소형 아파트에서 6명이 다함께 모여 지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용인대, 관동대 등에 재학 중인 학생 선수도 3명이나 돼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강행군도 감내했다. 창단식도 지난해 12월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치를 수 있었다. 이런 고통 덕분인지 오히려 감독과 선수 간 유대감은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 ‘막내’ 김지은부터 ‘왕언니’ 배미경까지 똘똘 뭉친 팀워크가 강점이다. 이 감독은 “여자 선수들이라서 지도하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다들 열심히 믿고 따라와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했다. 중구 여자레슬링부는 지난해 2월 창단 직후 제26회 회장기전국레슬링대회에 참가, 55㎏급과 63㎏급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했다. 지난해 5월 베이징올림픽 파견 2차 선발전은 물론 KBS배전국레슬링대회(7월), 제34기 대통령기전국시·도대항대회(8월), 제89회 전국체육대회(10월)에서도 승전보가 이어졌다. 팀 운영을 맡은 강계숙 주임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구민들의 전폭적 지원과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쾌거”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오늘도 구에서 운영하는 충무아트홀에 갖춰진 레슬링 전용 연습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오늘의 경기]

    ■WBC 2라운드 1차전 한국-멕시코(낮 12시 샌디에이고 펫코파크) ■핸드볼 연맹회장기 중·고대회(오전 10시 익산 원광대체)■레슬링 국가대표 선발전(오전 9시30분 강원 화천중·고체) ■태권도 제4회 3·15기념 전국대회(오전 9시 김해체)
  • ‘WWE 레전드 오브 레슬매니아’ 25일 국내 발매

    ‘WWE 레전드 오브 레슬매니아’ 25일 국내 발매

    프로레슬링 게임 ‘WWE 레전드 오브 레슬매니아’의 ‘플레이스테이션3’(PS3) 버전이 오는 25일 국내에 정식 발매된다. 이 게임은 추억 속 프로레슬링 스타인 ‘헐크 호건’을 비롯해 ‘얼티밋 워리어’, ‘미스터 퍼펙트’ 등 유명 슈퍼스타 40명 이상이 등장하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간단한 조작 방식을 기반으로 추억 속 레슬링 경기를 펼칠 수 있고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오리지널 슈퍼스타의 제작도 가능하다. 온라인 서비스인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에 접속하면 타 게임 이용자와 원거리에서 게임 실력을 겨룰 수도 있다. 한편 국내 배급사인 THQ코리아는 3월 13일부터 19일까지 7일간 이 게임의 예약 판매 행사를 갖는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박사모 쓰고 제2인생 김원기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김문 전문기자 인물 프리즘] 박사모 쓰고 제2인생 김원기 LA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선진화된 체육시설 컨설팅센터를 만들어 사회복지체육의 발전에 힘을 쏟겠습니다. 아울러 우리나라 체육정책 컨설팅을 비롯해 엘리트 체육인들의 진로를 도와주는 일에 앞장서겠습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은퇴후에는 막상 갈 데가 별로 없거든요.” 1984년 LA올림픽 레슬링 62㎏급에서 금메달을 따내 온 국민의 박수를 받았던 김원기(47)씨. 최근 경희대 대학원에서 체육학 박사학위를 따내 또 한번 화제가 됐다. 그의 박사학위는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레슬링 선수로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그래서 요즘 각종 단체 및 여러 학교 등에 강연을 다니느라 바쁘다. ● 올 하반기 미국으로 1년 연수 떠나 그는 “그동안 여러번의 방황과 좌절을 겪으며 어렵게 박사모를 쓴 만큼 새로운 각오로 다시 한번 금메달을 따내는 마음으로 열정을 쏟겠다.”면서 “유능한 체육인들이 해외에서 좀더 업그레이드된 지도자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나라 체육발전에도 이바지하겠다.”고 다부진 의욕을 보였다. 그가 올 하반기 미국으로 1년 동안 체육인재 육성을 위한 연수를 다녀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불우이웃돕기는 물론 함평나비축제 홍보대사, 경남 고성 공룡엑스포홍보대사 등을 맡아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제2의 체육인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에는 온갖 설움과 곡절도 많았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 그의 명함을 받았더니 ‘십자성마을회’ 전무이사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궁금해하자 “7년 전부터 지인을 통해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서 “십자성마을회 본부는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고 6·25와 베트남전 등에 참전했던 군인들을 위한 복지사업을 하고 환경·전기계측 설비기기를 생산, 조달청과 지자체 등에 납품을 한다.”고 설명했다. ● 보험회사 거쳐 ‘십자성마을회’로 그는 현역에서 은퇴한 직후인 1985년 1월 삼성생명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사회를 제대로 알고 배우자는 생각에서 운동팀을 떠나 필드경험에 뛰어들었던 것. 보험모집, 앙케트조사 등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어쩌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을 만날 경우에는 “새로운 인생경험을 하려고 그런다.”고 넙죽 인사를 건네곤 했다. 2000년 10월 그만둘 때까지 말단 보험설계일에서 총무과 대리, 영업소장, 본부 업무과장, 교육담당차장 등을 거칠 정도로 능력발휘를 했다. 이후 1년여 실업자로 있다가 지금의 십자성마을회로 옮겼다. 그러는 한편 평소 교회 등을 통해 봉사활동을 꾸준히 펼쳤다. “저는 원래 모태신앙인입니다. 식구들이 다 기독교도이지요. 현재는 목동 이대병원 앞 교회에서 안수집사를 맡고 있습니다. 주일이면 (옆에 동행한 부인을 가리키며) 집사람과 함께 어김없이 주님 앞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공학도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집안형편이 어려워 함평농고에 진학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때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딴 직후 학교은사의 권유로 고1 때 레슬링에 입문했다. 이제는 왕년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서 ‘박사님’ 소리까지 듣게 됐다. k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청새치와 레슬링을?…맨손 낚시의 명수

    청새치를 맨손으로 잡은 뉴질랜드 모험 낚시가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모험 낚시 마니아’ 매트 왓슨(33)은 최근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 입수해 맨손으로 청새치를 잡는 특별한 낚시에 도전했다. 3세 때부터 낚시를 해왔다는 왓슨은 이 도전을 앞두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5명으로 이뤄진 팀은 11개월 간 실전에 버금가는 철저한 예행연습을 실시했고 그 중 뉴질랜드 해안에서 총 5번 성공을 거뒀다. 도전 당일 왓슨은 그 어느 때보다 열정을 갖고 헬리콥터에서 점프해 바다로 입수했고 얼마 뒤 물 속에서 제 키보다 더 큰 청새치와 치열한 혈투를 벌였다. 왓슨은 능숙한 솜씨로 청새치를 제압해 제트스키와 서핑보드가 세워진 수면 가까이로 올리는데 성공했다. 이어 제트스키에 올라타 이 청새치를 완전히 낚을 수 있었다.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왓슨의 도전은 TV 프로그램인 ‘Ultimate Fishing Show’의 카메라에 담겼다. 도전을 마친 왓슨은 “청새치를 잡는 과정에서 몸에 멍이 몇 군데 들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도전이었다.”며 소감을 말했다. 위험하거나 겁나지는 않았냐는 물음에 “다치는 것은 겁나지 않았다. 몸을 던져 더 과격하게 할 수 있었는데 TV 카메라가 있어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웃는 여유를 보였다. 왓슨은 잡은 청새치를 다시 바다에 놓아줬다. 그는 “청새치는 나와 같은 모험 낚시가에게 최고의 목표물이다. 몸집이 크고 힘이 셀 뿐만 아니라 귀하기 때문이다. 도전의 성공으로 낚시가로서 절정의 기쁨을 맛봤다.”고 말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더 레슬러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더 레슬러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부른 ‘더 레슬러’의 주제가엔 다음의 가사가 나온다. ‘나를 위로해줄 것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정작 내가 쉴 집엔 머물 수 없다네. 내가 믿는 건 오직 으스러진 뼈와 상처투성이의 몸. 당신은 자유롭게 살려고 애쓰는 외다리 남자를 본 적이 있습니까?’ ‘더 레슬러’에서 만날 주인공은 그런 남자다. 사회의 기준으로 헤아릴 때 결코 인생을 잘 살았다고 볼 수 없지만, 자기가 사랑하고 믿는 바를 얻기 위해 평생을 내달린 남자. ‘더 레슬러’는 초라하나 꿋꿋한 모습의 그 남자가 마음 한 곳을 울리고 떠나는 영화다. 레슬링이 스포츠 산업으로 확실히 자리 잡은 1980년대, 랜디 로빈슨은 누구보다 화려하게 링을 누빈 레슬러였다. 그가 특기인 ‘더 램’으로 강자들을 메다꽂을 때면 관중은 장내가 떠나갈 듯한 환호로 답했다. 그러나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싸구려 무대에서 근근이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그에겐 제대로 쉴 수 있는 집조차 없다. 엎친 데 덮친다고, 심장이 나빠진 그는 어쩔 수 없이 링을 떠나게 된다. 외로운 마음을 달래려 찾아간 외동딸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단골 술집의 스트리퍼는 그의 구애를 불편하게 대한다. 어렵사리 구한 일자리도 그에게 굴욕감을 안긴다. 자칫 최루성 신파로 빠질 법한 영화가 기어코 사실적인 영화로 완성된 건 감독 다렌 아로노프스키의 공이다. ‘더 레슬러’에는 억지 감동을 의도한 어떤 장식도 없다. ‘더 레슬러’는 지치고 나이 든 남자에게 쉽사리 연민을 느끼지 않으며,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는 주변인들이 냉정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가 견뎌내야 하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지만, 바로 그렇게 함으로써 인물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더 레슬러’를 보는 동안 눈물 흘릴 일은 없겠다. 아마도 눈물은 영화를 본 뒤 집으로 오는 길에 흐를 것이다. ‘더 레슬러’의 또 다른 감동은 주연을 맡은 미키 루크와 주인공 랜디 로빈슨의 삶이 유사하다는 데서 기인한다. 배우로서 미키 루크의 첫 번째 전성기도 1980년대였다. ‘보디 히트’, ‘다이너’, ‘나인 하프 위크’, ‘엔젤 하트’, ‘와일드 오키드’ 등에 출연하던 시절의 그는 가장 섹시하고 아름다운 남자 배우로 손꼽혔다. 그러나 자신의 곱상한 외모에 저항한 미키 루크는 스스로를 배우가 아닌 삶으로 내몰았고, 결국 그는 쇠락한 배우로 연명하기에 이르렀다. 소소한 배역을 통해 복귀를 준비하던 그는 드디어 ‘더 레슬러’로 빛나게 부활하는 데 성공한다. ‘더 레슬러’는 불꽃같은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일깨우는 영화다. 우리는 종종 ‘레슬링은 쇼다.’라는 말로 이 스포츠와 비즈니스를 야유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간과하는 바는, 레슬링의 진정한 가치가 그것이 쇼이기 때문에 성취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레슬링은 이 세상에서 선이 항상 승리하는 유일한 자리다. 레슬링이 쇼라는 걸 아는 관객은 쇼가 아니라면 인간의 유토피아가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랜디가 왜 죽음을 무릅쓰고 링으로 돌아가는지 이젠 알 것 같다. 상처 입은 늙은 사자는 낙원을 찾고 있었던 게다. 원제 ‘The Wrestler’, 감독 다렌 아로노프스키, 새달 5일 개봉. 영화평론가
  • 美언론 “추성훈, 아시아 시장의 열쇠”

    美언론 “추성훈, 아시아 시장의 열쇠”

    “UFC, 한국에서 대회 열릴 수도” UFC가 최근 추성훈의 영입으로 한국에서 대회를 열만한 조건을 갖추게 됐다고 미국 격투사이트 ‘셔독’이 전했다. 셔독은 ‘UFC의 추성훈은 또다른 아시아 시장의 열쇠’(UFC’s Akiyama a Key to Other Asian Market)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UFC의 아시아 진출에 대해 분석했다. 추성훈을 재일교포(zainichi)라고 소개한 사이트는 “추성훈은 세계에서 가장 ‘굶주린’ 시장의 슈퍼스타”라며 한일 양국 시장에서 추성훈의 영향력을 설명했다. 사이트는 이 기사에서 “UFC주최사 주파(Zuffa)는 한국 시장에 일본보다 더 쉽게 진출할 수 있는 토양을 다졌다.”면서 “추성훈과 김동현, 그리고 유명한 데니스 강이라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는 스타파워는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서울 장충체육관과 같은 중형 경기장에서 프로모션 대회를 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셔독은 ‘UFC 한국대회’의 근거로 오는 6월 UFC99의 장소로 독일이 거론되고 있다는 점과 필리핀에서도 경기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지난 2008년 한국에서 WWE가 열렸던 당시 좌석이 절반밖에 차지 않았던 것은 한국 스타가 없었던 데다가 프로레슬링은 한국에서 현재의 종합격투기만큼 인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사이트는 전했다. 셔독은 이에 앞서 “UFC주최사 주파(Zuffa)는 일본 MMA산업에 편승해 온 한국을 향해 진입로를 만들기 시작했다.”면서 “한국에서는 큰 대회의 경우 같은 날 중계방송을, 김동현의 경기 같은 경우엔 실시간 중계방송을 하기도 한다.”고 한국의 격투기 시장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한편 추성훈은 UFC와 4경기 계약을 맺은 것으로 전해졌다. 데뷔전은 오는 8월이 유력하지만 구체적인 경기 일정과 상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FEG코리아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장애인스키 세계선수권 개막 ‘간판 3총사’ 메달권 진입 겨냥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알파인스키세계선수권대회가 19일 개막된다. 우리나라 장애인스키 1호 실업팀 하이원리조트 소속의 한상민(30)과 박종석(42), 이환경(36)은 18일 새롭게 각오를 다지며 메달권 진입의 희망을 한껏 부풀리고 있다. 이번 대회는 국제장애인스키연맹(ASD) 랭킹 포인트가 100점 이내인 160여명이 참가하기 때문에 1년 남은 밴쿠버겨울패럴림픽의 전초전이기도 하다. 이들 가운데 하반신 마비 장애인인 한상민이 가장 메달권에 가깝다. 한상민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패럴림픽 때 사상 처음 은메달을 따낸 ‘간판 선수’이다. 지난달에는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또 지난달 말부터 이번 대회가 열리는 하이원리조트 슬로프에서 보름 가까이 적응 훈련에 매진해왔다. 좌식스키는 2006년 토리노대회 회전 금메달리스트인 마르틴 브락센탈러(독일) 등이 출전한다. 한상민은 회전·대회전보다 스피드가 강조되는 슈퍼대회전· 슈퍼복합·활강에서 메달을 노린다. 지난해 이탈리아 월드컵 활강에서 7위에 오른 자신감에다 홈 이점을 살려 메달권 진입을 현실화시킬 기세다. 한상민은 “스피드가 많이 좋아졌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추락사고로 척수마비 장애인 박종석은 뒤늦게 스키를 신었지만 타고난 운동 신경으로 기량이 급상승, 메달권 진입의 기대를 모은다. 박종석은 지난해 12월 참가한 유러피언컵에서 국내 최초로 3위에 입상했다. 레슬링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으로 군 복무 중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이환경도 상위권 입상과 랭킹 포인트 끌어올리기에 나선다. 이환경은 “지난해부터 새 감독님의 집중 지도로 기량이 좋아졌다. 최근 컨디션과 슬로프를 내려오는 감각이 좋다. 일단 10위 안에 들어 밴쿠버올림픽 때 좋은 출발 순번을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LA올림픽 레슬링 김원기씨 경희대서 체육학 박사학위 받아

    LA올림픽 레슬링 김원기씨 경희대서 체육학 박사학위 받아

    “박사과정에 진학해 공부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습니다. 후배 체육인들을 훌륭한 지도자로 키우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1984년 미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전 레슬링 국가대표 김원기(47)씨가 금메달을 딴 지 25년 만에 체육학 박사가 돼 돌아왔다.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김씨는 17일 “마침내 소망했던 꿈이 이뤄졌다.”며 공부에 늦깎이로 도전해 학위를 받게 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1989년 전남대 교육대학원에서 운동생리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던 그는 2007년 어렵사리 마음을 먹고 다시 강의실에 앉았고 ‘A+ 짜리’ 대학원 생활을 통해 4학기 만에 박사학위를 따내 주변으로부터 “역시 금메달감”이란 찬사를 들었다. 16년간 몸담았던 보험회사를 2003년 떠난 뒤 ‘십자성 마을회’라는 단체의 전무이사로 자리를 옮겨 제2인생을 시작했던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데에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한국 체육과 후배 체육인에 대한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했기 때문. 그는 체계적인 체육지도자 양성 시스템이 없는 국내 현실을 늘 아쉬워했고 현역 시절 금메달을 따며 빛을 발했던 후배들이 정작 사회에 나와 마땅한 길을 찾지 못한 채 과거 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설명했다. 그가 박사과정에 진학해 쓴 논문에도 이런 고민이 절절이 녹아있다. 스포츠 지도자의 역량을 강화해 단순 이용시설에 그치고 있는 스포츠 복지시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이런 과정 속에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을 재목감이 될 만한 지도자로 발굴해 양성해야 한다는 게 그의 논문의 주된 내용이다. 그는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메달리스트들에 대한 수요가 없다. 제대로 된 스포츠센터를 만들고 팀을 구성해 은퇴한 선수들을 지도자로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시간 소망했던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요즘은 영어학원에 다니며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다시 뛰고 있다. 조만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날 계획인 김씨는 선진 스포츠를 배운 뒤 국내에 돌아와 관련 분야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해 볼 생각이다. 연합뉴스
  • 씨름 국제레슬링연맹 가입 추진

    씨름이 국제레슬링연맹(FILA) 가입을 추진한다. 이만기·이준희 등 민속씨름 스타들은 12일 올림픽파크텔에서 세계씨름연맹 창설을 발표한다. 3월 유럽, 6월 아시아, 9월 세계씨름대회를 차질없이 치르면 연말 FILA 승인을 받아 산하단체에 가입할 수 있다. FILA는 스모 등 각국 전통 격투기를 산하단체로 두고 있다.
  • [UFC] 생피에르 “내가 진짜 천재”

    천재와 천재의 대결,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종합격투기 UFC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조르주 생피에르(27·캐나다)가 웃었다.현 웰터급챔피언인 생피에르는 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MGM그랜드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UFC 94’에서 라이트급 챔피언 BJ 펜(30·미국)에 4라운드 TKO 승을 거뒀다. 지난 2006년 첫 맞대결에 이어 또한번 승리, 상대전적 2전전승의 우위를 지켰다. 생피에르는 이날 승리로 웰터급 타이틀 2차방어에 성공, 종합격투기 경량급 최강자임을 입증했다. 생피에르는 통산전적 18승2패. 반면 한 체급 올려 도전했던 펜은 13승1무5패가 됐다. 생피에르는 한층 발전한 타격과 강력한 레슬링 실력을 앞세워 펜을 압도했다. 2라운드 초반 상대를 강력하게 압박한 생피에르는 4라운드에서 완벽하게 승기를 장악했다. 강력한 파운딩으로 펜의 안면을 강타한 것. 결국 펜은 4라운드 종료 뒤 기권 의사를 밝혔다. 웰터급 경기에 출전한 유일한 한국인 UFC 파이터 김동현(28)은 카로 파리시안(27·미국)에게 1-2(29-28 28-29 28-29)로 아쉽게 판정패했다. 김동현은 1라운드에 파리시안의 백포지션을 잡는 등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라운드부터 주도권을 내준 뒤 3라운드에선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상대에게 밀렸다. 김동현은 이날 패했지만, 세계 톱클래스의 파리시안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쳐 가능성을 보였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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